4장

 

자본수출

 

자유경쟁이 완전히 지배적이었던 예전의 자본주의에서는 상품수출이 전형적인 것이었다. 이제 독점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최근 단계에서는 자본수출이 전형적인 존재다.

 

자본주의란 노동력 자체가 상품이 되는, 상품생산의 가장 높은 발전 단계다. 국내에서의 교환은 물론이고 국제적인 교환이 증대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고유하고 두드러진 특징이다. 개별 기업, 개별 산업부문, 개별 국가의 발전에서 드러나는 불균등성과 불규칙성은 자본주의에서는 불가피한 것이다. 가장 먼저 자본주의 국가가 된 영국은 19세기 중반에 자유무역을 채택하여 자신이 '세계의 공장', 즉 모든 나라에 공산품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겠다고 선언했다. 다른 나라들은 공산품을 공급받기 위해 영국에 원료를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나라들이 '보호' 관세를 통해 자기 방어를 하면서 독립적인 자본주의 국가로 발전함에 따라, 19세기 마지막 4반세기 무렵 영국의 이러한 독점은 무너졌다. 20세기에 접어들었을 때 우리는 새로운 종류의 독점이 형성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첫째, 자본주의가 발달한 모든 나라에서 자본가들의 독점적인 동맹이 형성되었다. 둘째, 엄청난 규모로 자본이 축적된 소수의 가장 부유한 나라들이 독점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선진 국가에 막대한 '과잉자본'이 발생했다.

 

만약 자본주의가 현재 어디서든 공업에 비해 형편없이 뒤쳐져 있는 농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면, 아울러 정도의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도처에서 반봉건 상태로 거지처럼 사는 주민대중의 생활수준을 높일 수 있다면, 자본의 과잉에 대해 할 말은 없을 것이다. 이런 '논리'는 자본주의에 대한 소부르주아적인 비판자들이 끊임없이 들고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아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발전의 불균등성이나 기아에 허덕이는 대중의 생활수준이나 모두 이 생산양식의 근본적인, 피할 길 없는 조건이자 전제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자본주의로 남아 있는 한에서는 과잉 자본은 그 나라 대중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면 자본가들의 이윤이 감소할 것이기 때문에 자본을 해외, 즉 후진국들에 수출함으로써 이윤을 증대시키기 위해 사용된다. 이 후진국들에서는 이윤이 높은 것이 보통이다. 자본은 부족하고 토지가격은 상대적으로 낮은데다 임금이 낮고 원료가 싸기 때문이다. 자본수출의 가능성은 많은 후진국들이 이미 세계 자본주의의 순환 속에 끌려 들어와 있으며, 그곳의 주요한 철도 노선들이 개통되거나 부설되기 시작했고, 공업발전의 기본 조건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등의 사실에 의해 창출되었다. 자본수출의 필연성은 몇몇 나라들에서 자본주의가 '지나치게 성숙'해서 자본에게 (낙후된 농업과 대중의 빈곤이라는 조건 때문에) '수익성 좋은' 투자 대상이 있는 분야가 부족하다는 사실에 의해 창출되었다.

 

다음은 주요 3개국이 해외로 투자한 자본의 규모에 관한 대략적인 수치다.

 

연도 영국 프랑스 독일

1862년 36 — —

1872년 150 100(1869년) —

1882년 220 150(1880년) ?

1893년 420 200(1890년) ?

1902년 620 270~370 125

1914년 750~1,000 600 440

 

이 표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자본의 수출이 커다란 발전을 이룬 것은 역시나 20세기 초의 일이다. 전쟁 전 이 3대 주요 국가의 해외 투자액은 1,750~2천억 프랑에 이르렀다. 이 금액에서 나오는 수익은 적게 잡아 연이자 5퍼센트로 해도 1년에 80~100억 프랑에 이를 것이 틀림없다. 이야말로 세계 대다수의 민족과 국가들에 대한 제국주의적 압박과 착취의 견고한 토대이자, 한 줌의 부유한 국가들이 지니는 자본주의적 기생성의 견고한 토대인 것이다!

 

해외에 투자되는 이러한 자본이 여러 나라들에 어떻게 분포되어 있고, 또 어디에 투자되고 있는가, 이 문제들에 대해서는 대략적인 답변을 할 수 없지만 그것으로도 어느 정도 현대 제국주의의 전반적인 상호관계와 관련성을 밝힐 수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 합계

유럽 40 230 180 450

아메리카 370 40 100 510

아시아, 아프리카, 호주 290 80 70 440

합계 700 350 350 1,400

 

영국이 1위를 차지한 것은 식민지 영토 때문으로 영국의 식민지는 아시아 등지는 말할 것도 없고 아메리카(예를 들어 캐나다)에도 매우 광대하게 존재한다. 거액의 자본수출은 여기서 무엇보다 광대한 식민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제국주의에 있어서 식민지가 가지는 중요성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서술할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이 나라의 해외 자본 투자는 주로 유럽에, 그 중에서도 특히 러시아에 (최소한 100억 프랑 이상)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그 대부분은 산업 기업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대부분 대부 자본, 즉 국가 차관이다. 영국의 식민지 제국주의와 구별해서 프랑스는 고리대 제국주의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독일의 경우는 제3의 형태다. 식민지는 크지 않고, 독일이 해외에 투자하고 있는 자본은 유럽과 아메리카에 아주 균등하게 분포되고 있다.

 

자본수출은 자본이 유입되는 나라의 자본주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고 그 발전을 눈에 띄게 촉진한다. 그러므로 자본수출이 어느 정도 자본수출국의 발전을 조금 정체시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대신 전세계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을 더욱 확대, 심화시킨다.

 

자본수출국들은 어떤 '이익'을 획득할 가능성을 거의 언제나 손에 넣을 수 있는데, 그 이익의 성격은 금융자본 및 독점의 시대가 지닌 특성을 조명해준다. 예를 들면 베를린에서 발행되는 잡지 《디 방크》는 1913년 10월에 다음과 같이 썼다.

 

"국제 자본시장에서는 얼마 전부터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¹³¹의 희곡에서 나왔을 법한 희극이 상연되고 있다. 스페인에서 발칸까지, 러시아부터 아르헨티나, 브라질, 중국에 이르는 수많은 나라들이 차관을 요구하며—때로는 정말 끈질기게—공공연하게 또는 은밀하게 대규모 화폐 시장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화폐 시장의 현재 상황이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닌데다 정치적 전망도 밝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화폐 시장도 이웃 나라가 자기 나라를 제치고 차관에 웃해서, 그러면서 어떤 반대급부를 확보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에 감히 차관 요청을 거부하기 어려워하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국제 거래에서는 거의 항상 통상조약에 있어 양보든, 석탄보급소든, 항만 건설이든, 유리한 이권이든, 대포의 주문이든 무언가가가 채권자에게 이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¹³²

 

금융자본은 독점의 시대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독점은 가는 곳마다 독점의 원리를 전파한다. 유리한 거래를 위해 공개된 시장에서의 경쟁 대신 '연고'를 이용한다. 차관의 일부를 채권국의 생산물, 특히 군수품, 선박 등을 구입하는 데 지출하는 것을 차관 조건으로 삼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관행이다. 프랑스는 최근 20년간(1890~1910년) 아주 빈번하게 이 수단에 호소했다. 이처럼 자본수출은 상품수출을 촉진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그때, 특히 큰 기업들 사이의 거래는 실더가 '완곡하게' 표현한 것처럼¹³³ "매수와 종이 한 장 차이"뿐이다. 독일의 크루프, 프랑스의 슈네데르, 영국의 암스트롱¹³⁴ 등은 거대은행 및 정부와 밀접하게 유착돼 있어, 차관 계약을 체결하는 데 있어 쉽사리 '무시'할 수 없는 대표적인 회사들이다.

 

1905년 9월 16일 러시아와의 통상조약에서 프랑스는 차관을 제공할 때 러시아를 '압박'해서 1917년까지가 기한인 몇 가지 양보를 얻어냈다. 1911년 8월 19일 일본과의 통상조약¹³⁵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의 관세전쟁¹³⁶은 1906년부터 1911년까지 오직 7개월간의 중단 기간을 제외하고는 계속되었는데, 그것은 부분적으로 세르비아에 군수품을 공급하는 일로 오스트리아와 프랑스가 경쟁하면서 벌어졌던 것이었다. 폴 데사넬(Paul Deschanel)¹³⁷은 1912년 1월 하원의회에서, 프랑스 회사들이 1908년부터 1911년까지 세르비아에 4,500만 프랑의 군수품자를 납품했다고 밝혔다.

 

상파울로(브라질) 주재 오스트리아-헝가리 영사의 보고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브라질 철도 건설은 대부분 프랑스, 벨기에, 영국, 독일의 자본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 나라들은 철도 건설과 관련된 금융거래를 통해 건설자재 공급권이 자기 나라에 주어지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금융자본은 문자 그대로 세계의 모든 나라들에 자신의 그물망을 펼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식민지에 설립된 은행들과 그 지점들이다. 독일 제국주의자들은 이런 점에서 특히 '잘' 하고 있는 '오래된' 식민지 보유국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영국은 1904년에 지점 2,279개를 거느린 식민지 은행 50개(1910년에는 5,449개의 지점을 거느린 72개 은행)를 가지고 있었고, 프랑스는 지점 136개를 거느린 은행 20개를, 네덜란드는 지점 68개를 거느린 은행을 16개를 가지고 있었지만, 독일은 "다 합쳐봤자" 지점 70개를 거느린 은행 13개밖에 없었다.¹³⁸ 미국의 자본가들은 그들 나름대로 영국과 독일의 자본가들을 부러워하고 있다. 미국 자본가들은 1915년에 이렇게 푸념했다. "남아메리카에서는 독일 은행 다섯 개가 지점 40개를 두고 있다. …… 영국과 독일은 최근 25년 사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에 약 40억 달러를 투자했다. 그 결과 영국과 독일은 그 세 나라 총 무역액의 6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¹³⁹

 

자본수출국들은 은유적인 의미에서 자기들끼리 세계를 분할했다. 하지만 금융자본은 세계의 실질적인 분할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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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금융자본과 금융과두제

 

힐퍼딩은 이렇게 쓰고 있다. "산업의 자본 가운데 그것을 사용하는 산업가들의 것이 아닌 부분이 끊임없이 증대하고 있다. 산업가들은 이 자본의 소유자들을 대표하는 은행을 통해서만 이 자본을 사용할 수 있다. 한편 은행은 자기가 가진 자본의 점점 더 큰 부분을 산업에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되며, 이러하여 성격상 점점 더 산업자본가가 되어간다. 이러한 방식으로 현실적으로 산업자본으로 전환되는 은행자본, 즉 화폐 형태의 자본을 나는 금융자본이라고 부른다." 금융자본이란 "은행에 맡겨져 있으면서 산업가가 사용하는 자본"이다.⁹⁴

 

이 정의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를 지적하지 않기 때문에 불완전한 정의다. 그것은 바로 생산과 자본의 집중은 독점으로 나아가고 있거나, 이미 독점에 도달했을 정도로 현저하게 진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힐퍼딩의 저술 전체는 전반적으로 자본주의적 독점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 정의를 내린 장 앞의 두 장은 특히 더 그러하다.

 

생산의 집중, 그로부터 성장한 독점조직들⁹⁵, 은행과 산업의 융합 또는 유착, 그것은 금융자본의 발생사인 동시에 금융자본이란 개념의 내용인 것이다.

 

우리는 이제 자본주의적 독점조직들의 '경영'⁹⁶이 상품생산과 사적소유라는 일반적인 환경에서 어떻게 필연적으로 금융과두제의 지배가 되는가에 대한 기술로 넘어가야 한다. 유념해야 할 것은 리서, 슐체-게베르니츠, 리프만 등과 같은 독일—아니, 단지 독일에서만이 아닌—부르주아 학문의 대표자들은 최다 제국주의와 금융자본의 응호자라는 점이다. 이자들은 과두제가 형성되는 '역학'과 수법, 그것의 '정당하거나 부당한' 소득의 규모, 과두제와 의회의 유착관계 등을 파헤치기는 커녕 그것을 윤색하고 미화한다. 이자들은 거드름 피우는 애매모호한 문구들을 통해, 은행 이사들의 '책임감'에 호소하고 프로이센 관리들의 '의무의식'을 치켜세우는 것을 통해, '감독'과 '규제'에 관한 전혀 중요하지 않은 법안들을 미주알고주알 진지하게 분석하거나, 예를 들면 리프만 교수가 도달한 다음과 같은 '과학적' 정의처럼 시시한 이론적 유희를 통해 그 '빌어먹을 문제들'을 회피한다. "상업이란 재화를 모으고, 보관해서, 그것을 사람이 사용하도록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생업활동이다."⁹⁷ (강조는 그 교수의 저서 그대로) 그렇다면 상업은 교환을 아직 몰랐던 원시인에게도 존재했고, 사회주의 사회에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금융과두제의 무시무시한 지배라는 무시무시한 사실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즉 미국, 프랑스, 독일에서도 부르주아적 관점에서 있으면서도 금융과두제를 대체로 올바르게 묘사하고—물론 소시민적인 관점이긴 하지만—그것을 비판하고 있는 문헌들이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앞에서 이미 얼마간 서술한 '지주제도'다. 이 제도에 아마도 누구보다도 빨리 눈을 뜬 독일의 경제학자 하이만은 사태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경영자는 본사(말 그대로 '모회사')를 통제하고, 그 회사는 다시 그것에 의존하는 회사('자회사')를 지배하며, 자회사는 다른 종속회사('손자회사')를 지배한다. 이렇게 해서 그다지 크지 않은 자본을 갖고서도 거대한 생산부문들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자본의 50퍼센트를 가지고 주식회사를 언제나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면, 경영자는 100만 마르크의 자본만 갖고도 '손자회사'에서 800만 마르크의 자본을 통제할 수 있다. 이런 '연쇄관계'가 더욱 확대된다면, 100만 마르크로 1,600만 마르크, 3,200만 마르크 등을 통제할 수도 있는 것이다."⁹⁸

 

실제로 경험이 보여주는 바로 주식의 40퍼센트만 소유하면 충분히 주식회사의 사업을 운영할 수 있다.⁹⁹ 흩뿌리져 있는 소주주의 상당수는 실제로 주주총회에 참가하는 등의 일을 결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식 소유의 '민주화'라는 것에서 부르주아적인 궤변가와 기회주의적인 '열치기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자본의 민주화', 소규모 생산의 역할과 중요성의 증대 등을 기대하고(또는 기대하는 척하고) 있지만, 이 주식 소유의 '민주화'는 사실 금융과두제의 위력을 증대시키는 방법의 하나인 것이다. 덧붙이자면, 더 선진적이거나 더 오래되어 '경험이 풍부한' 여러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더 작은 액면의 주식을 법률로 허용하고 있는 것이 그런 까닭이다. 독일에서는 액면이 천 마르크 이하인 주식을 발행하는 것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독일 금융계의 거두들은 법적으로 1파운드(20 마르크, 약 10루블)짜리 주식도 발행할 수 있는 영국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독일의 거대산업가로 '금융왕' 중 한 명인 지멘스(Siemens)¹⁰⁰는 1900년 6월 7일 제국의회에서 "1파운드 주식은 영국 제국주의의 기초"¹⁰¹라고 말했다. 이 장사꾼이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로 여겨지고 있는, 제국주의란 특정 민족의 사악한 특성이라고 생각하는 어느 무례한 저술가¹⁰²보다 제국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더 깊이 있고 더 '마르크스주의적인' 관점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주제도'는 독점가들의 권력을 엄청나게 증대시키는 데 복무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처벌당할 위험 없이 교묘하고 더러운 방법으로 대중을 갈취할 수 있게 한다. 왜냐하면 형식적으로 '모회사'의 경영자들은 '독립적'이라고 여겨지는 '자회사'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지만, 자회사를 통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잡지 《디 방크》1914년 5월호에 실린 사례 한 가지를 보자.

 

"카셀에 있는 스프링용 강철 제조 주식회사는 수년 전에는 독일에서 가장 수익이 높은 기업 중 하나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부실한 경영으로 인해 배당율이 15퍼센트에서 0으로 곤두박질했다. 이 회사의 경영진이 주주들의 허락도 받지 않고, '자회사' 중 하나인, 명목상 자본금이 수십만 마르크밖에 되지 않는 하시아유한회사에 600만 마르크를 대부해주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밝혀졌다. '모회사'의 주식자본의 거의 세 배 액수인 이 대부는 모회사의 대차대조표에 전혀 기재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은폐가 법적으로는 완전히 적법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 비밀은 만 2년이 되도록 밝혀지지 않았다. 이것은 상법의 어떤 규정에도 저촉되지 않았다. 책임자로서 이 허위 대차대조표에 서명한 감독이사회 회장은 당시 카셀상공회의소의 회장이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주주들은 한참 후, 그 대부가 실패[이 글을 쓴 사람은 실패라는 단어에 인용부호를 달았어야 마땅하다]한 것이 확실해져서야 그 사실을 알았고, 사정을 미리 알았던 사람들이 벌써부터 스프링용 강철 제조 주식회사의 주식을 팔아치우고 있었기 때문에 주식 가격은 거의 100퍼센트까지 떨어져 있었다."

 

"주식회사에서는 매우 흔한 대차대조표의 눈속임 곡예의 이 전형적인 실례는 주식회사들의 이사회가 개인 기업가보다 훨씬 가볍게 위험한 일을 시작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해준다. 현대의 대차대조표 작성 기술은 이사회가 그 위험을 일반 주주들에게 은폐할 가능성을 제공할 뿐 아니라, 실험이 실패한 경우에는 주요 당사자가 적당한 시기에 그 주식을 매각하여 피해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제공한다. 반면 개인 기업가는 자신이 하는 일의 전부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많은 주식회사의 대차대조표는 위에 씌여 있는 글자를 먼저 지워야만 그 아래에 있는 글의 의미를 해독할 수 있는 중세 시대의 복기지(palimpsest)와 비슷하다."(복기지란 먼저 쓴 글씨를 덮칠해서 지우고 그 위에 다른 글씨를 쓴 양피지다.)

 

"대차대조표의 진짜 의미를 볼 수 없게 하는 수단으로 가장 간단해서 가장 자주 이용되는 방법이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합병함으로써 단일한 사업을 몇 개 부분으로 분할하는 것이다. 이 제도의 이점은—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다양한 목적들에 있어서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에, 이 제도를 이용하지 않는 대회사는 오늘날 극히 예외적일 정도다."¹⁰³

 

글쓴이는 가장 광범위하게 이 제도를 이용하고 있는 거대독점회사의 예로 저 유명한 알게마이네 엘렉트리치테츠 게젤샤프트¹⁰⁴(이 회사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 것이다)를 들고 있다. 1912년에 이 회사는 175~200개의 회사에 출자하여, 당연히 이들을 지배하면서 전체적으로 약 15억 마르크의 자본을 통제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¹⁰⁵

 

선의를 지닌—즉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미화하려고 하는 선의를 지닌—대학교수와 관리들이 대중의 주의를 그쪽으로 돌리려 하는 규제법규, 대차대조표 공개, 일정 양식에 따른 대차대조표 작성, 감시기구 설립 등은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적소유는 신성한 것이며, 누군가가 주식을 사고 팔고 교환하고 담보를 잡히는 등의 일은 그가 누구라 해도 금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 대은행에서 '지주제도'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는 E. 아가트(Agahd)가 제시하고 있는 자료를 보고 판단할 수 있다. 그는 러시아-중국 은행의 직원으로 15년 동안 근무한 사람으로 1914년 5월에 『대은행과 세계 시장 Großbanken und Weltmarkt』¹⁰⁶이라는 별로 적합하지 않은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저자는 러시아의 대은행들을 두 개의 주요 그룹으로 분류한다. 즉 (a) '지주제도'하에서 활동하고 있는 은행과, (b) '독립 (이때의 '독립'은 외국 은행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뜻으로 자의적으로 해석되고 있다)해 있는' 은행으로 나누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출자'와 지배에 참여하고 있는 외국 대은행들의 국적에 따라, 첫 번째 그룹을 세 개의 하위 그룹, 즉 (1) 독일의 출자, (2) 영국의 출자, (3) 프랑스의 출자로 나누고 있다. 또 저자는 은행의 자본을 (상업과 공업에) '생산적'으로 투자된 것과 (증권업무와 금융업무에) '투기적'으로 투자된 것으로 구분한다. 그는 태생적인 소부르주아적·개량주의적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유지한 채로도 두 번째 형태에서 첫 번째 형태를 분리하여 두 번째 것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제시한 수치는 다음과 같다.

 

<도표 참조>

 

이 수치에 따르면, 이 대은행들의 '운전'자본¹⁰⁷을 구성하는 약 40억 루블 중 4분의 3 이상, 즉 30억 루블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외국 은행, 주로 파리의 은행(유명한 은행 트리오, 즉 파리은행연합, 파리-네덜란드 은행, 소시에테제네랄)과 베를린의 은행(특히 도이체방크와 베를린할인은행)의 사실상의 '자회사'에 불과한 은행들이다. 러시아의 2대 대은행인 러시아은행(러시아 외국무역은행)과 국제은행(페테르부르크국제상업은행)은 1906년과 1912년 사이에 자본금을 4,400만 루블에서 9,800만 루블로, 적립금을 1,500만 루블에서 3,900만 루블로 증가시켰는데, 그 "4분의 3이 독일 자본이다." 앞의 은행은 베를린의 도이체방크 콘체른에 속해 있고, 후자는 베를린의 베를린할인은행 콘체른에 속해 있다. 선량한 아가트는 베를린의 은행들이 주식의 대부분을 갖고 있고, 그로 인해 러시아의 주주들이 무력하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다. 자본을 수출한 나라들이 단물을 빨아먹고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예를 들어 베를린의 도이체방크는 시베리아상업은행의 주식을 베를린으로 갖고 가서 1년간 금고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가, 그 뒤 100대 193의 비율, 액면가의 거의 2배 가까운 상장가로 팔아 약 600만 루블의 이득을 '벌어들였다.' 이런 이득을 힐퍼딩은 "창업자 이득(promoter's profits)"¹⁰⁸이라고 불렀다.

 

이 저자는 페테르부르크 대은행들의 전체 '자금력'을 80억 루블이 넘는 82억 3,500만 루블, 거의 82.5억 루블로 산정하고 있는데, 그렇게 하면서 그는 외국 은행의 '출자', 더 정확히 말하면 지배를 프랑스 은행들 55퍼센트, 영국 은행들 10퍼센트, 독일 은행들 35퍼센트로 나누고 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총액 82억 3,500만 루블 중 36억 8,700만 루블, 즉 40퍼센트 이상이 신디케이트들, 즉 프로두골과 프로디메트¹⁰⁹ 및 석유·야금·시멘트산업 신디케이트들의 수중에 있다. 자본주의적 독점조직들의 형성으로 인한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융합은 러시아에서도 이렇게 엄청난 진전을 이루었다.¹¹⁰

 

몇몇의 손에 집중되어 사실상 독점을 이루고 있는 금융자본은 창업, 유가증권 발행, 국채 등을 통해 갈수록 불어나고 있는 막대한 이윤을 획득하면서, 금융과두제의 지배를 강화하고, 독점가의 배를 채울 공물을 사회 전체로부터 걷어들인다. 힐퍼딩은 여기서, 미국 트러스트들의 '경영'¹¹¹ 방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들 가운데 하나를 제시한다. 1887년에 헨리 하브마이어¹¹²는 15개의 작은 회사들을 결합하여 자본총액이 650만 달러에 이르는 설탕 트러스트를 설립했다. 그런데 이 트러스트의 자본은 미국식 표현으로 '물을 먹여'¹¹³ 5천만 달러로 부풀려져 공표되었다. 이 '과대자본화'는 유나이티드스테이츠 철강이 장래의 독점이윤을 계산에 넣어 미리 최대한의 철광산을 사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래의 독점이윤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실제로 이 설탕 트러스트는 독점가격을 설정해서, 일곱 배나 '물을 먹인' 자본에 대해 10퍼센트의 배당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이윤을 얻었다. 트러스트를 설립할 당시 실제로 투입한 자본금의 약 70퍼센트를 배당금으로 지불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09년에 이 트러스트의 자본금은 9천만 달러였다. 22년 만에 자본금이 열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금융과두제'의 지배는(『프랑스의 금융과두제에 반대한다Contre l'oligarchie financière en France』는 퀴시스(Lysis)¹¹⁴가 쓴 유명한 책의 제목이다. 1908년에 5판이 나왔다.) 아주 조금 다른 형태를 취했다. 거대은행 네 개가 유가증권 발행에 있어 상대적 독점이 아니라 '절대적 독점'을 누리고 있다. 이는 사실상 '대은행들의 트러스트'다. 그리고 독점은 증권발행을 통해 독점이윤을 보장한다. 차관이 발생하면, 차관을 받는 나라가 총액의 90퍼센트 이상을 가져갈 수 없는 것이 보통이고, 10퍼센트는 은행 등 중개자의 수중에 떨어진다. 4억 프랑의 러시아-청나라 차관에서 은행이 얻은 이윤은 8퍼센트나 되었으며, 8억 프랑의 러시아 공채(1904년)에서는 10퍼센트, 6,250만 프랑의 모로코 공채(1904년)에서 18.75퍼센트였다. 소규모 고리대자본에서 발전을 시작한 자본주의는 거대한 고리대자본으로서 그 발전을 마치는 것이다. 퀴시스는 "프랑스인은 유럽의 고리대금업자"라고 말한다. 경제생활의 모든 조건이 이러한 자본주의의 변질 때문에 심각한 변화를 겪고 있다. 인구, 공업, 상업, 해운업의 정체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는 고리대금업으로 부유해질 수 있다. "800만 프랑의 자본을 대표하는 50명이 4개 은행에 예치된 20억 프랑을 통제할 수 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지주'제도 역시 똑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거대은행의 하나인 소시에테제네란이 '자회사'인 이집트제당회사의 회사채 6만 4천 장을 발행했다. 발행가격은 액면가의 150퍼센트였다. 다시 말해 은행은 1루블당 50코페이카를 버는 것이다. 하지만 이 회사의 배당금은 가공의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대중'은 9천만 프랑에서 1억 프랑의 손실을 입었다. 게다가 "소시에테제네랄의 이사들 중 한 사람은 제당회사의 중역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가 "프랑스 공화국은 금융군주국이다"라든지, "금융과두제가 완전히 지배하고 있으며, 그것은 신문과 정부도 지배하고 있다"¹¹⁵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금융자본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인 유가증권 발행에서 생기는 이상하게 높은 수익성은 금융과두제의 발전과 강화에서 특별히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다. 독일의 《디 방크》는 "국내에 외국채권의 인수와 유통에 필적할 정도로 수익을 가져다주는 사업 분야는 없다"고 쓰고 있다.

 

"유가증권 발행 사업만큼 높은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은행 업무도 없다." 《독일 경제German Economist》의 자료에 따르면 산업기업의 증권 발행을 통해 얻은 연평균 이윤은 다음과 같다.

 

 

1895년 38.6% 1898년 67.7%

1896년 36.1% 1899년 66.9%

1897년 66.7% 1900년 55.2%

 

"1891년부터 1900년까지 10년 동안 독일에서 산업증권을 발행해서 얻은 수익만 10억 마르크 이상이다."¹¹⁷

 

산업의 호황기에는 금융자본이 엄청나게 높은 이윤을 얻고, 불황기가 되면 건실하지 못한 작은 기업들이 쓰러진다. 대은행은 이렇게 쓰러지는 기업들을 혈값으로 사들이거나, 벌이가 좋은 '구조조정(Sanierungen)', '구조재편(Reorganisation)' 작업에 참여한다. 부실기업을 '구조조정'할 때 "주식자본은 감가되는데, 더 작아진 자본에 대해 수익이 분배되면서 적정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또는 만일 이윤이 전혀 없는 경우라면 새로운 자본이 조달되어 가치가 낮게 평가된 기존 자본¹¹⁸ 과 합쳐져 이제 충분한 이윤을 낳게 된다." 힐퍼딩은 여기에 이렇게 덧붙인다. "이러한 구조조정이나 구조재편은 은행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첫째는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궁지에 몰린 회사를 자신에게 종속시키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¹¹⁹

 

예를 들어보자. 도르트문트의 유니온광업주식회사는 1872년에 설립되었다. 약 4천만 마르크의 주식자본이 발행되었고, 첫해 12퍼센트의 배당이 들어오자 상장가격은 170퍼센트까지 뛰었다. 금융자본은 약 2,800만 마르크의 용돈을 벌어들이며 실속을 챙겼다. 이 회사의 설립에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은 독일 최대의 은행인 베를린할인은행이었는데, 그 자본금은 가볍게 3억 마르크에 도달했다. 이후 유니온의 배당금은 점차 줄어들어 0으로 떨어졌다. 주주들은 자본을 '감자'하는 것에, 즉 자본의 전부를 잃지 않기 위해 일부를 잃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몇 차례의 '구조조정'을 한 결과, 유니온사의 장부에서는 30년간 7,300만 마르크가 넘는 돈이 사라졌다. "현재 이 회사 최초의 주주들은 주식 액면가의 겨우 5퍼센트만을 가지고 있다."¹²⁰ 하지만 은행은 '구조조정' 때마다 계속 돈을 '벌어들였다.'

 

급격하게 발전하는 대도시 근교에 대한 땅투기도 금융자본에게는 굉장한 돈벌이가 되는 사업이다. 은행들의 독점은 여기서 토지소득의 독점 및 교통노선의 독점과 결합된다. 왜냐하면 토지가격의 상승, 땅을 수익성 있게 분양할 수 있는 가능성 등은 무엇보다 도심에 접근하는 교통의 편의성에 달려 있는데, 이 교통노선들은 지주제도 및 이사직의 분배를 통해 바로 그 은행들과 유착돼 있는 대회사들의 관리하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디 방크》의 기고자이자, 토지 매매와 저당 등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독일의 저술가 L. 에쉬베게가 "수렁"이라고 부른 일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보스바우운트크나우어 같은 건설회사들이 '건설하며 거대한' 도이체방크에서 1억 마르크의 돈을 끌어다가 도시 근교의 땅에 광기 어린 투기를 하다 파산—물론 은행은 이 과정에서 '지주'제도를 통해, 즉 배후에서 은밀히 움직였다—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1,200만 마르크의 손실만 보고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부실한 건설사들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고, '정직한' 베를린 경찰이나 행정관청으로부터 토지에 관한 정보나 시의회의 건축허가증 등을 받을 수 없었던 소자산가들과 노동자들은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¹²¹

 

유럽의 대학교수나 선량한 부르주아들이 위선적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개탄하고 있는 '미국식 윤리'는 금융자본 시대에는 문자 그대로 어느 나라에서나 모든 대도시의 윤리가 돼버렸다.

 

1914년 초, 베를린에서 운수업 트러스트, 즉 베를린의 세 운송업체인 고가철도, 시가전차, 버스회사 사이의 '이익공동체'가 형성될 것 같다는 소문이 들렸다. 《디 방크》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러한 계획이 있는 것은 버스회사의 주식이 반 이상 다른 두 운수업체들에게 넘어갔다는 것이 밝혀졌을 때부터 알려져 있었다. …… 이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은 운수업을 통합함으로써 비용을 절약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으며, 그렇게 절약된 금액의 일부는 결국 공중의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그 말을 그대로 믿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형성되려 하고 있는 이 운수업 트러스트의 배후에는 몇 개의 은행들이 도사리고 있으며,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자신들이 독점하고 있는 운송수단을 토지매매의 이익에 종속시킬 수 있기 때문에 문제는 복잡하다. 이와 같은 추정이 타당하다는 것을 납득하기 위해서는 이미 고가철도회사가 설립될 때부터 그 설립을 장려했던 한 대은행의 이익이 개입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다시 말해, 이 운수업체의 이익은 토지매매의 이익과 따로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이 철도의 동부선은 나중에 철도 건설이 확정됐을 때 이 은행이 그 자신과 몇몇 관련자들에게 엄청난 이익을 남기며 매각했던 토지를 지나갈 예정이었다.“

 

일단 독점이 형성되어 수십억의 돈을 움직이게 되면, 그것은 절대적인 필연성을 가지고 정치체제나 다른 어떤 '세부적인 것들'이 어떻게 관계 없이 사회생활의 모든 면으로 침투해 들어간다. 독일의 경제문헌들은 프랑스의 파나마 스캔들¹²³이나 미국의 정치부패를 비꼬아 이야기하면서 프로이센 관리의 성실함을 맹목적으로 찬미하곤 한다. 하지만 실은 부르주아 문헌들조차 독일 은행업에 대해 논할 때면 순수한 은행업무의 범위를 훨씬 벗어난 이야기들을 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관료들이 은행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은행을 향한 행진"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실정이다.

 

"마음속으로 베를린 가의 폭신한 의자를 동경하고 있는 정부 관료의 청렴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¹²⁴(베를린 가는 베를린에 있는 거리인데, 그곳에 도이체방크가 있다.) 《디 방크》의 발행인 알프레트 란스부르크는 1909년에 『비잔틴주의의 경제적 의의』The Economic Significance of Byzantinism라는 글을 썼는데, 이 글은 내친김에 빌헬름 2세의 팔레스타인 여행과 "이 여행의 직접적인 결과로 나타난 바그다드 철도 건설, 즉 우리의 모든 정치적 실책들을 합친 것보다도 훨씬 더 '포위'에 책임이 있는 저 저주해야 마땅한 '독일 기업가 정신의 대사업'"¹²⁵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포위'라는 것은 독일을 고립시키고, 제국주의적인 반독일동맹의 올가미로 독일을 에워싸려고 한 에드워드 7세¹²⁶의 정책이다). 이미 우리가 언급한 적 있는 같은 잡지의 기고자 에쉬베게는 1911년에 『금권정치와 관료 Plutocracy and Bureaucracy』라는 글을 써서, 글의 제목에 걸맞은 사례의 하나로 푈커(Völker)라는 독일 관료의 사건을 폭로했다. 그 남자는 카르텔 위원회의 위원으로 아주 열성적으로 활동했고, 얼마 뒤 최대의 카르텔인 철도 신디케이트에서 높은 급여를 받는 자리를 차지했다. 결코 우연이 아닌 그와 유사한 일들이 몇 차례나 벌어졌기 때문에, 이 부르주아 저술가는 "독일 헌법에 보장된 경제적 자유는 경제생활의 수많은 분야에서 이미 내용 없는 빈말이 되었다"라거나, 현재와 같은 금권정치 아래에서는 "가장 광범위한 정치적 자유조차 우리들이 자유롭지 못한 국민으로 전락하는 것에서 우리들을 구원할 수 없다"¹²⁷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한 가지 예를 드는 것으로 그치겠다. 지금으로부터 수년 전에 모든 신문들은, 신용국장이었던 다비도프(Davydov)가 몇 년에 걸쳐 100만 루블 이상의 급여를 받는다는 계약 조건으로 관직을 떠나 대은행에 이직했다고 보도했다. 신용국이란 "국가의 모든 신용기관의 활동을 조정"하는 임무를 갖고 있으며, 수도와 은행들에게 8억~10억 루블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관청이다.¹²⁸

 

자본의 소유가 자본의 생산적 투자와 분리되는 것, 화폐자본이 산업자본 또는 생산자본과 분리되는 것, 화폐자본에서 나오는 소득으로만 생활하는 금리생활자가 기업가나 자본 운용에 직접적으로 종사하는 사람들과 분리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일반적 특성이다. 제국주의 또는 금융자본의 지배는 이런 분리가 상당한 정도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가장 높은 단계다.

 

금융자본이 다른 모든 형태의 자본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금리생활자와 금융과두제가 지배적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금융상의 '힘'을 가진 소수의 국가가 다른 모든 국가 위에 우뚝 솟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이 어느 정도로 진행되어 있는지는 증권발행, 모든 종류의 유가증권 발행에 대한 통계자료를 보고 판단할 수 있다.

 

A. 네이마르크(Neymarck)는 《국제통계협회 회보 Bulletin of the International Statistical Institute》¹²⁹에 전세계의 증권발행에 대한 매우 상세하고 완전한 비교 자료를 발표했다. 이 자료는 그 뒤 몇 차례나 경제학 문헌에 부분적으로 인용되었다. 다음의 표는 40년간의 통계다.

 

| 10년 주기별 증권발행액 |

 

연도 발행액

1871~1880년 761

1881~1890년 645

1891~1900년 1,004

1901~1910년 1,978

 

1870년대에 세계적으로 증권발행 총액이 높았던 것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과 그에 이은 독일의 회사 창업 봄으로 인해 관련된 공채발행이 활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체로 19세기의 마지막 30년 동안에는 증가 속도가 그다지 빠르지는 않았고, 20세기의 첫 10년 동안 뚜렷한 증가세를 나타내기 시작해서 발행고가 거의 두 배로 늘었다. 그러므로 20세기 초는, 앞에서 언급했던 독점조직들(카르텔, 신디케이트, 트러스트)의 성장이라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금융자본이 성장했다는 점에 있어서도 전환기라 할 수 있다.

 

단위: 억 프랑

영국 1,420

미국 1,320

프랑스 1,100

독일 950

러시아 310

오스트리아-헝가리 240

이탈리아 140

일본 120

네덜란드 125

벨기에 75

스페인 75

스위스 62.5

덴마크 37.5

스웨덴, 노르웨이, 루마니아 등 25

합계 6,000

 

1910년 전세계 유가증권 총액을 네이마르크는 대략 8,150억 프랑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는 중복 계산됐을 법한 액수를 어림잡아 빼서, 이 액수를 5,750~6천억 프랑으로 잡았다. 이를 국가별로 나타낸 것이 앞의 표다(총액을 6천억 프랑으로 했을 때).

 

이 표에서는 각각 천억~1,500억 프랑의 유가증권을 갖고 있는 네 개의 부유한 자본주의 나라들이 두드러져 보인다. 이 네 나라 중 두 나라 영국과 프랑스는 가장 오래된 자본주의 나라이자, 나중에 보겠지만 가장 많은 식민지를 가진 나라들이다. 그리고 다른 둘인 미국과 독일은 발전 속도 및 자본주의적 독점이 산업에 확산되는 정도에 있어 가장 앞서 달리고 있는 자본주의 나라들이다. 이 네 나라들은 모두 합쳐 4,790억 프랑, 즉 전세계 금융자본의 거의 80퍼센트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의 거의 모든 나머지 나라들은, 국제적 은행가이자 세계 금융자본의 네 '기둥'인 저 국가들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채무국·조공을 바치는 나라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금융자본에 대한 종속과 유착의 국제적인 그물망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 자본수출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상세히 고찰하는 것은 특히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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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은행과 그것의 새로운 역할

 

은행의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기능은 지불 과정을 중개하는 것이다. 은행들은 활동하지 않는 화폐자본을 활동적인 자본, 즉 이윤을 창출하는 자본으로 전환시키며, 온갖 종류의 화폐소득을 모아서 자본가계급의 관리에 맡긴다.

 

은행업이 발전하고 소수 업체로 집중됨에 따라, 은행들은 중개인이라는 겸손한 역할에서 벗어난다. 그들은 한 나라나 여러 나라의 자본가와 소자산가들 전체가 가진 거의 모든 화폐자본과 생산수단과 원료산지 대부분을 지배하는 전능한 독점가로 변모한다. 수많은 겸손한 중개인들에게 한 줌의 독점가로의 이러한 변신은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로 성장전화하는 기본 과정 중 하나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은행업의 집중에 대해 더욱 자세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1907~8년 독일에서, 100만 마르크 이상의 자본을 보유한 주식은행들의 총예금액은 70억 마르크였다. 1912~3년에 이 총예금액은 이미 98억 마르크에 이르렀다. 5년 사이에 40퍼센트가 증가한 것이다. 그리고 증가한 금액인 28억 마르크 가운데 27억 5천만 마르크는 천만 마르크 이상의 자본금을 지닌 57개 은행의 것이었다. 대은행과 소은행 사이의 예금액 분포 상황은 다음과 같다.

 

예금총액의 백분율 <도표 참조>

 

소은행들은 대은행들에 밀려나고 있으며, 9개에 불과한 대은행들에 총예금액의 거의 절반이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는 아직 매우 많은 것들, 예를 들어 많은 소은행들이 사실상 대은행들의 지점으로 변한 것 등이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설명할 것이다.

 

1913년 말에 슐체-게베르니츠(Schulze-Gävernitz)⁵⁴는 총예금액 약 100억 마르크당 베를린의 9개 대은행의 예금액이 51억 마르크라고 산정했다. 예금액뿐 아니라 모든 은행자본을 고려하여 이 저자는 이렇게 서술했다. 1909년 말, 베를린의 9대 대은행은 그들과 제휴하고 있는 은행들과 합쳐서 113억 마르크, 즉 독일 은행자본 총액의 약 83퍼센트를 지배하고 있었다. 자신과 제휴하고 있는 은행들과 합쳐서 약 30억 마르크라는 금액을 장악하고 있는 도이체방크는 프로이센국유철도금고와 더불어 구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분산화돼 있는 자본의 집약체다.⁵⁵

 

나는 '계열' 은행이 언급된 부분을 강조했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최근 자본주의적 집중의 가장 중요하고 두드러진 특징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대기업들, 특히 대은행들은 자신보다 작은 회사들을 직접 흡수하기도 하지만, 그 회사들을 자신들의 '계열'로 만들고 종속시켜 '자기' 그룹 또는 (전문 용어로는) '콘체른'에 포함시키기도 하는데, 이는 주식의 구매나 교환, 신용 체계 등을 이용해서 작은 회사들의 자본에 출자하여 주식을 보유함으로써 이루어진다.⁵⁶ 리프만 교수는 현대의 '지주 (holdings) 회사와 금융회사'에 대해 기술하기 위해 5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노작'을 바쳤다.⁵⁷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책은 제대로 해석되지도 못한 자료들에 굉장히 수상쩍은 '이론적' 고찰을 덧붙인 것일 뿐이다. 이런 출자를 통한 '지주'제도가 집중이라는 측면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는, 그 자신도 은행가인 리서⁵⁸가 독일의 대은행에 대해 쓴 책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하지만 그의 자료들로 넘어가기 전에 '지주'제도의 구체적인 예를 한 가지 들어보자.

 

도이체방크 '그룹'은 가장 크진 않더라도 가장 큰 은행 그룹들 가운데 하나다.⁵⁹ 도이체방크 그룹의 모든 은행들을 한데 연결시키는 중요한 건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1차, 2차, 3차의 지주 형태, 또는 결국 같은 말이지만 1차, 2차, 3차의 종속(도이체방크에 대한 군소 은행들의 종속)을 구분해야 한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도표가 나온다.

 

<도표 참조>

 

도이체방크에 '간헐적으로' 종속되는 '1차 종속' 은행 여덟 개 중에는 외국 은행 세 개가 포함되어 있는데, 하나는 오스트리아 은행(빈의 은행연합)이고 둘은 러시아 은행들(시베리아상업은행과 러시아무역은행)이다. 도이체방크 그룹에는 모두 87개 은행들이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또는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전체 자본—도이체방크가 직접 소유하고 있는 자본과 도이체방크의 통제를 받는 모든 은행들의 자본—은 약 20~30억 마르크로 추정된다.

 

이런 그룹의 전면에 있는, 국제발행처럼 특별히 크고 수익성이 높은 금융사업을 위해 자기보다 조금 규모가 작은 다른 은행 대여섯 개와 협약을 맺는 은행이란 이미 '중개인' 역할을 넘어서서 한 줌의 독점가들의 연합으로 변모한 것이 분명하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독일에서 은행업의 집중이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었는지는 다음에 간략하게 인용한 리서의 자료를 보고 알 수 있다.

 

<도표 참조>

 

우리는 전국을 망라하는 촘촘한 연결망이 얼마나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지를 보고 있다. 이 연결망은 모든 자본과 화폐 소득을 집중시키고, 분산되어 있는 수천, 수만의 기업을 단일한 전국적인 자본주의 경제로, 나아가 전세계적인 자본주의 경제로 전환시킨다. 우리 시대의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을 대표해 슐체-게베르니츠가 앞에 나왔던 인용문에서 언급한 "분산화"란 실제로는 이전에 비교적 '독립적'이었거나,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국부적(지역적)이고 폐쇄적이었던 경제 단위들의 점점 더 많은 수가 단일한 중심에 예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이것은 집중이며, 다시 말해 거대 독점조직들의 역할과 중요성과 힘의 강화인 것이다.

 

보다 오래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이런 '은행망'은 더욱 조밀하다. 1910년에 아일랜드를 포함한 영국의 모든 은행들의 지점 수는 7,151개로 집계되었다. 4개의 대은행이 각각 400개 이상(447개에서 689개까지)의 지점들을 갖고 있었으며, 그 다음 4개의 은행은 각각 200개 이상의 지점들을, 또 다른 11개의 은행은 각각 100개 이상의 지점들을 갖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큰 3대 은행인 크레디리오네, 파리국립할인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은 다음과 같이 영업과 지점망을 확장했다.

 

<도표 참조>

 

현대 대은행들의 '결속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리서는 독일에서뿐 아니라 전세계에서도 가장 큰 은행들 중 하나인 베를린할인은행⁶³(이 은행의 자본금은 1914년에 3억 마르크에 달렸다)이 주고받은 서류의 양을 자료로 제시했다.

 

파리의 대은행 크레디리오네의 거래계좌 수는 1875년의 2만 8,535개에서 1912년에 63만 3,539개로 증가했다.⁶⁴

 

아마 장황한 논문들보다 이런 간단한 수치들이, 자본의 집중 및 은행 거래의 증가가 은행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더 일목요연하게 보여줄 것이다. 흩어져 있던 자본가들은 하나의 집단적인 자본가가 되었다. 몇몇 자본가들을 위해 당좌계정⁶⁵을 운영할 때 은행의 이 업무는 순수하게 기술적이고 완전히 보조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업무가 엄청난 규모로 증대되면 한 줌의 독점가들이 전체 자본주의 사회의 상공업 업무들을 자신들의 관할 아래 두게 된다. 왜냐하면 이들 독점가는 은행 거래 관계, 즉 당좌계정 및 기타 금융 업무들을 통하여—우선 개별 자본가들의 재정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고, 그들의 신용을 제한하거나 확장하거나 막거나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통제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며, 마지막으로 그들의 수익을 결정하고 그들로부터 자본을 빼앗거나 그들이 자본을 빠르거나 대규모로 증가시키는 것을 허용하는 등 그들의 운명을 전적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방금 베를린할인은행의 자본금이 3억 마르크라는 사실을 언급했다. 베를린할인은행이 이렇게 자본을 늘린 것은 베를린의 양대 은행인 도이체방크와 베를린할인은행 사이에 벌어진 주도권 다툼에서 생겨난 부수적인 사건들 가운데 하나였다. 1870년에 아직 신흥업체였던 도이체방크의 자본금은 겨우 1,500만 마르크밖에 되지 않았다. 베를린할인은행의 자본금은 3천만 마르크였다. 그런데 1908년에는 도이체방크의 자본금이 2억 마르크, 베를린할인은행의 자본금이 1억 7천만 마르크였다. 1914년 도이체방크가 자본금을 2억 5천만 마르크까지 늘리자, 베를린할인은행은 또 다른 일급 대은행 샤프하우젠은행연합과 합병하여 자본금을 3억 마르크로 늘렸다. 물론 이러한 주도권 싸움은 두 은행들 사이의 '합의'가 점점 빈번해지고 공고해지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이러한 발전 과정은, 가장 온건하고 가장 신중한 부르주아 개량주의의 한계를 결코 벗어나지 않는 관점에서 경제 문제를 바라보는 은행업 전문가들에게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만든다.

 

독일 잡지 《디 방크》⁶⁶는 베를린할인은행의 자본금이 3억 마르크까지 증대한 것에 대해 이렇게 썼다. "다른 은행들도 똑같은 길을 따를 것이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금 독일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300명은 점점 50명, 25명 또는 그 이하의 수로 줄어들 것이다. 최근의 집중 운동이 은행업에만 그칠 것이라고 예상해서는 안 된다. 개별 은행들의 관계가 긴밀해지면, 자연스럽게 그 은행들이 후원하는 산업 신디케이트들 간의 접근으로 이어질 것이다. …… 어느 날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 눈앞에 오직 트러스트밖에 없는 것을 보고 눈을 비비며, 개인적 독점을 국가독점으로 바꿔야 하는 불가피성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태의 발전을, 주식 조작으로 약간 촉진시키긴 했지만, 자연스럽게 그냥 내버려두었다는 것 외에는 원칙적으로 비난받을 게 아무것도 없다."⁶⁷

 

이것이 바로 부르주아 언론이 보여주는 무능함의 전형이다. 부르주아 언론과 부르주아 학문의 차이는 사태의 본질을 흐리고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않으려는 데 있어서의 성실함과 열망의 정도 차이뿐이다. 집중의 결과들에 '놀라는 것', 자본주의적인 독일정부나 자본주의적인 '사회'('우리 자신들')를 '비난하는 것', 독일의 '카르텔' 전문가 치어슈키⁶⁸처럼 "카르텔은 트러스트처럼 기술과 경제의 진보를 지나치게 촉진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미국의 트러스트를 두려워하고 독일의 카르텔을 '더 선호하는 것',⁶⁹ 주식제도의 도입으로 집중이 더 촉진되거나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것이 과연 무능함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사실은 사실일 뿐이다. 독일에는 트러스트가 없고 오직 카르텔만 있지만, 300명도 안 되는 대자본가들이 그것을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자본가들의 수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은행법은 나라마다 제각각이지만 자본주의 나라라면 어디에나 있는 은행들이, 자본 집중과 독점 형성의 과정을 한층 심화시키고 촉진시킨다.

 

"은행은 사회적 규모로, 그것이 단지 형태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일반적 부와 생산수단의 일반적 분배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마르크스는 반세기 전 『자본』에 이렇게 썼다(러시아어 번역본, 3권, 2책, 144쪽). 앞에서 인용한 은행자본의 성장, 가장 거대한 은행들이 가진 지점 및 출장소의 수와 그 계좌 수의 증가 등에 관한 수치들은 우리에게 전체 자본가계급의 "일반적 부기"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비단 자본가들의 것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데, 왜냐하면 은행은 일시적으로나마 소자영업자들, 사무원들, 극소수 상층 노동자들의 것까지 모든 종류의 화폐수입을 긁어모으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의 일반적 분배"는 형식적인 면에서 볼 때 수십억의 돈을 관리하고 있는 현대의 은행들—프랑스의 가장 큰 은행 3~6개와 독일에서 가장 큰 은행 6~8개—로부터 성장한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보면 생산수단의 이러한 분배는 전혀 "일반적"이지 않고 사적인 것이다. 이런 독점자본은 주민대중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농업발전이 공업 발전에 절망적으로 뒤쳐지며, 공업 중에도 '중공업'이 나머지 모든 산업분야들로부터 조공을 뜯어가는 그런 조건에서 활동하는 대자본, 특히 거대독점자본의 이해와 부합한다.

 

자본주의 경제의 사회화와 관련하여, 저축은행과 우체국이 은행들과 경쟁하기 시작한다. 저축은행과 우체국은 은행들보다 '비집중화'되어 있어, 그 영향 범위에 있어 더 많은 지역을, 더 많은 시골을, 더 광범위한 주민 집단을 장악하고 있다. 다음의 자료는 미국의 한 위원회가 은행과 저축은행의 예금액 증가를 비교해놓은 것이다.

 

<도표 참조>

 

저축은행은 예금액에 대해 4퍼센트나 4.25퍼센트의 이자를 지불하기 때문에, "수익성 높은" 자본 투자처들을 찾아야 하며 어음 업무나 담보대출 업무 등도 취급할 수밖에 없다. 은행과 저축은행 사이의 경계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예를 들어 보품과 에르푸르트의 상업회의소는 저축은행이 어음할인 같은 "순수한" 은행 업무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우체국의 "은행 업무"를 제한할 것을 요구했다.⁷¹ 은행계의 거물들은 국가독점이 자신들에게 예기치 못한 결과로 돌아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물론 이런 우려는, 비유하자면 한 사무실에 있는 두 계장이 서로에 대해 갖는 경쟁심을 넘어서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저축은행의 수십억 자본을 실제로 좌지우지하는 것은 결국은 바로 그 은행자본의 거물들이고,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국가독점이란 파산에 직면한 이런저런 공업 분야의 백만장자들에게 소득을 보장하고 늘려주는 수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자유경쟁이 지배하던 예전의 자본주의가 독점이 지배하는 새로운 자본주의로 변화하는 것은 특히 증권거래소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난다. 《디 방크》는 이렇게 쓰고 있다. "증권거래소는 은행이 아직 발행된 증권의 많은 부분을 자기 고객들에게 다 팔 수 없었던 옛 시절에 꼭 필요했던 거래 중개인 역할을 오래전에 중단했다."⁷²

 

"모든 은행이 증권거래소라는 말은 은행이 커지면 커질수록, 은행업의 집중이 진전되면 진전될수록, 더 많은 진실을 담게 된다."⁷³ "과거 1870년대에 젊은 혈기를 주체하지 못했던 증권거래소가"(1873년 증권거래소의 파탄⁷⁴, 회사 창업 스캔들⁷⁵ 등을 '미묘하게' 암시하고 있다.) "독일의 산업화를 야기했다면 …… 지금은 은행과 산업이 '자신의 힘만으로 끌고 나갈' 수 있다. 증권거래소에 대한 우리나라 대은행들의 지배는 …… 독일이라는 산업국가가 빈틈없이 조직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낼 뿐이다. 만약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경제법칙들의 영역이 그로 인해 좁아지고, 은행을 통한 의도적인 통제 영역이 엄청나게 확대된다면 그 결과 소수의 수뇌부가 지는 국민경제에 대한 책임은 무한히 증대한다." 독일 제국주의의 옹호자이며 모든 국가의 제국주의자들에게 권위를 인정받는 독일 교수 슐체-게베르니츠는 이렇게 말하면서⁷⁶ '사소한 일' 한 가지를 교묘히 넘기려고 애쓰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은행을 통한 의도적인 통제란 빈틈없이 조직된 한 줌의 독점가들이 대중을 약탈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부르주아 교수의 임무는 은행 독점조직들의 모든 역할을 밝히거나 그 모든 책략을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미화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더욱 권위 있는 경제학자이자 '은행가'인 리서역시 부정할 수 없는 그 사실들을 아무 의미 없는 공문구들로 얼버무리고 있다. "이것은 증권거래소가 전체 경제 및 유가증권을 유통시키는 데 반드시 필요했던 특성, 즉 자신에게 모여 드는 경제의 운동들에 대한 가장 정밀한 측정기일 뿐만 아니라 거의 자동으로 작동하는 조절자라는 특성을 점점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⁷⁷

 

바꾸어 말하면, 조절자로서 증권거래소를 반드시 필요로 했던 예전의 자본주의, 즉 자유경쟁 자본주의는 과거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신 자유경쟁과 독점이 혼합된, 무언가 분명히 이행적인 성격을 가진 새로운 자본주의가 도래했다. 당연히 이 최신의 자본주의가 무엇으로 '변화'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떠오르지만, 부르주아 학자들은 이런 문제가 제기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30년 전에는 자유롭게 경쟁하는 경영자들이 '노동자들'의 손노동을 제외한 사업 활동의 9할을 수행했다. 지금은 고용된 사무직원들이 그런 정신노동의 9할을 수행하고 있다. 은행 업무는 그런 발전의 선두에 서 있다."⁷⁸ 이러한 슐체-게베르니츠의 고백은 또다시 최신의 자본주의, 즉 제국주의 단계의 자본주의가 무엇으로 이행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부딪힌다.

 

집중화로 인해 자본주의 경제 전체의 수뇌대에 서게 된 소수의 은행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독점적인 협정, 곧 은행 트러스트를 향한 움직임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거세지고 있다. 미국에는 아홉 개가 아니라 두 개의 가장 큰 은행, 즉 억만장자 록펠러(Rockefeller)의 은행과 억만장자 모건(Morgan)의 은행이 110억 마르크의 자본을 지배하고 있다.⁷⁹ 독일에서는 증권거래소의 이해를 대변하는 신문 《프랑크푸르터 차이퉁 Frankfurter Zeitung》이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베를린할인은행의 샤프하우젠은행연합 인수합병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를 지면에 실었다.

 

"은행의 집중이 진행됨에 따라, 큰 액수의 대출 요구를 할 수 있는 기관의 범위는 갈수록 좁아지고, 그 결과 극소수의 은행 콘체른들에 대한 대공업의 종속성이 증가한다. 이러한 산업과 금융의 유착으로 말미암아 은행자본에 의존하는 산업회사는 활동의 자유를 제약받게 된다. 때문에 대공업은 은행들의 트러스트화(연합 또는 트러스트로 전환)가 강화되는 것을 복잡한 심경으로 따르고 있다. 실제로 개개의 대은행 콘체른 사이에서 경쟁을 제한하기 위해 모종의 협정을 맺는 조짐이 이미 몇 차례 나타났다."⁸⁰

 

또다시 은행업 발전의 마지막 단어는 독점인 것이다.

 

은행과 산업 사이의 긴밀한 유착에 대해 말하자면, 은행의 새로운 역할이 아마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는 곳은 바로 이 영역일 것이다. 은행이 사업가에게 어음을 할인해주고 당좌 계정을 개설해주는 등의 경우, 이 업무들 하나하나로 보면 이 사업가가 가진 독립성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으며 은행도 중개자라는 겸손한 역할에서 벗어나진 않는다. 그러나 이런 업무들이 점점 잦아져서 지속적인 것이 된다면, 은행의 수중에 막대한 자본이 '집결'된다면, 은행이 회사의 당좌계정을 운영하면서 고객의 경제 상황을 점점 더 자세히 점점 더 완전하게 알 수 있게 된다면(이것이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그 결과 산업자본가는 은행에 더욱 완벽하게 종속당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은행들과 가장 큰 상공업 기업들 사이에 이른바 인적 결합, 즉 주식 소유를 통해, 또 은행 이사가 상공업 기업의 감독이사회(또는 경영이사회)⁸¹에 참여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를 통해 이쪽과 저쪽의 융합이 발전한다. 독일 경제학자 아이델스는 이러한 자본과 기업의 집중 형태에 대해 아주 자세한 수치들을 수집했다. 베를린의 6대 은행은 344개 공업 기업에서 이사들을 통해, 407개 공업 기업에서 중역들을 통해, 모두 751개 회사에서 자신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 이 은행들은 289개 회사의 감독이사회에서 각각 두 자리씩을 갖고 있거나 의장직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상공업 회사들 속에서 매우 다양한 공업 분야들과 보험업, 운수업, 식당, 극장, 예술 산업 등을 볼 수 있다. 한편 이 6대 은행의 감독이사회들에는 (1910년 현재) 크루프 시⁸²나 대형 해운회사 하파크(함부르크-아메리카 노선)⁸³ 등의 이사들을 비롯해 대산업의 실업가 51명이 참여하고 있었다. 1895년에서 1910년까지 6대 은행들은 각기 수백 개, 즉 281개에서 419개에 이르는 회사들을 위해 주식 및 채권발행에 참가했다.⁸⁴

 

은행과 산업의 '인적 결합'은 그 양쪽과 정부의 '인적 결합'으로 보완된다. 아이델스는 이렇게 썼다. "감독이사회의 이사직은 당국과 관계에서 여러 가지 편의(!!!)를 줄 수 있는 명망가나 전직 정부 관리들에게 자연스레 돌아가곤 한다. …… 대은행의 감독이사회에서 국회의원들이나 베를린 시의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따라서 거대 자본주의 독점조직들의, 말하자면 그 생성과 완성은 '자연적'이고 '초자연적'인 모든 수단에 의해 전속력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금융왕 수백 명 사이에서 일정한 분업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

 

"대산업의 실업가 개개인의 활동 영역이 (은행 이사회에 참여하는 등) 확대되고, 은행의 지부장들(Provinzdirektoren)이 특정한 공업지대 한 곳을 전담하게 되는 것과 동시에 대은행의 경영자들 사이에서도 [특정 분야에 대한] 일종의 전문화가 증가한다. 이는 오직 은행업 전체의 규모가 크고, 특히 산업과의 관계가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이런 한 분업은 두 방향으로 수행되는데, 한편으로는 그 산업과 모든 거래가 이사 한 명의 전문 영역으로 위임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각 이사들이 [감독이사회의 참가자로서] 업종과 이해관계에 따라 하나 또는 여러 개의 유사한 기업들의 감시를 담당한다."(자본주의는 이미 개별 기업을 조직적으로 감독하는 데까지 성장한 것이다.) "독일 내 산업, 때때로 독일 서부의 산업이"(독일 서부는 독일에서 가장 공업화된 지역이다.) "어떤 한 사람의 전담 업무가 되고, 외국의 정부 및 산업과 관계, 인적 정보, 주식 거래 등이 다른 사람들의 전문 업무가 된다. 그 외에도 각 은행 이사들은 [감독이사로서 발언권을 보유한] 고유한 담당 업종이나 담당 지역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주로 전력회사의 감독이사회에서, 어떤 사람은 화학공장이나 양조공장이나 제당공장에서, 또 어떤 사람은 소수의 개별 제조업체들과 [많은 경우] 보험회사 (같은 비제조업 회사)들의 감독이사회에서 활동한다. …… 확실한 것은 대은행의 사업적 규모가 커지고 다양성이 증대함에 따라 은행 경영자들 사이에서도 분업이 크게 증대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 목적은 그들을 순수한 은행 업무에서 어느 정도 끌어올려, 산업의 일반적인 문제와 개별 업종의 특수한 문제들에 관해 더 나은 판단력과 전문성을 갖추게 하고, 이를 통해 은행이 영향을 미치는 산업 영역 내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그리고 그러한 결과를 낳고 있다). 이러한 은행 시스템은 산업 전문가들, 특히 철도와 광업 계통에 종사하던 기업가나 전직 관료들을 은행의 감독이사회에 선출하려는 노력으로 보완된다."⁸⁵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프랑스의 은행업에서도 동일한 시스템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3대 은행 가운데 하나인 크레디리오네는 특수한 금융조사국(service des etudes financieres)을 설치했다. 여기서는 항상 50명 이상의 기사, 통계전문가, 경제학자, 법률가들이 일하고 있다. 이 기관은 매년 60만~70만 프랑의 경비를 쓰고 있다. 그것은 여덟 개의 부서로 나뉘어 있는데, 한 부서는 전문적으로 산업기업에 관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다른 부서는 전반적인 통계를 연구하며, 세 번째 부서는 철도회사와 기선회사를, 네 번째 부서는 유가증권을, 다섯 번째 부서는 재정보고서 등을 연구한다.

 

그 결과, 한편으로는 양자의 융합, 곧 N. I. 부하린(Bukharin)이 적절하게 표현한 대로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결합이 증가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은행이 진정 '보편적 성격'을 가진 기관으로 성장전화⁸⁷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주제를 가장 탁월하게 연구한 저술가 아이델스가 이 문제에 관해 정확히 표현한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산업과 맺는 관계들을 총체적으로 고찰한 결과로서, 산업에 작용하는 금융기관의 보편적 성격이 드러난다. 다른 형태의 은행들과 반대로, 때때로 문헌에서 제기하는 은행이 발전의 기반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특정 지역이나 업종에 전문화되어야 한다는 요청과 반대로, 대은행들은 가능한 다양한 지역과 업종의 산업 기업들과 융합을 추구하고, 개별 기업의 역사로 설명되는 지역적·산업적 (자본)⁸⁸ 분포의 불균등을 점차 제거하려 한다." "산업과 융합을 일반화시키는 것이 하나의 경향이며, 그 융합을 영속적이고 강고하게 만드는 것이 또 하나의 경향이다. 이 두 경향 모두 6대 은행에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미 상당히, 그리고 매우 비슷한 수준으로 실현되고 있다."

 

상공업계에서는 은행의 '테러리즘'에 대한 불평이 자주 들려온다. 그리고 다음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대형 은행들이 '호령하던' 시절에 그러한 불평이 울려퍼진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901년 11월 19일에 베를린의 이른바 D은행들(4개 최대 은행들의 이름이 문자 D로 시작한다⁸⁹) 중 하나가 독일 중부 북서 시멘트 신디케이트 이사회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귀 사가 이달 18일 제국신문⁹⁰에 게재한 공고로 판단컨대 당사는 이달 30일에 열리는 귀사의 총회에서 당사가 받아들이기 적절치 않은 변화를 귀사의 사업에 초래할 수 있는 결정이 채택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당사는 지금까지 귀사가 이용하던 신용을 정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 그러나 만일 언급된 총회에서 당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정이 내려지지 않고, 이 점에 관련하여 장래에도 그럴 것이라는 적당한 보장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기꺼이 새로운 신용 제공에 관한 교섭에 응할 용의가 있다는 점을 밝힙니다."⁹¹

 

그 불평은 대자본의 억압에 대해 소자본이 하는 불평과 본질상 동일하다. 다만 여기서는 커다란 신디케이트가 '소'자본 취급을 당하고 있을 뿐이다! 소자본과 대자본의 오랜 투쟁이 새로운, 아득히 더 높은 발전 단계에서 재개되고 있는 것이다. 수십억의 자본을 가진 대은행의 기업들이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단으로 기술진보를 촉진할 수 있으리란 것은 자명한 일이다. 예를 들어 은행들은 기술연구를 위해 특별한 단체들을 설립하는데, 그 성과는 물론 그들과 '친밀한' 산업기업들에게만 돌아간다. 이런 단체들로는 전기철도문제연구협회나 중앙과학기술연구소 등이 있다.

 

대은행의 경영자들이 국민경제의 새로운 조건이 형성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그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아이델스는 이렇게 썼다. "최근 몇 년간, 대은행의 경영진과 감독이사회의 인사 변동을 관찰한 사람이라면 산업의 전반적 발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대은행의 필수적이며 점점 더 긴급해지는 과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차 지배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또 이로 인해 그들과 은행의 더 나이든 경영진들 사이에서 업무상뿐 아니라 잦은 개인적 충돌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근본적인 문제는 은행이 산업의 생산 과정에 깊이 개입하는 것으로 인해 금융기관으로서 본연의 사업에 해가 되지는 않는가, 또 신용의 증가와는 아무 관계가 없으면서 전보다 훨씬 더 산업 경기의 맹목적인 지배에 노출되는 영역으로 은행을 끌어 들이는 활동을 위해 견실한 원칙과 안정적인 이윤이 희생되지는 않는가 하는 것이다. 많은 고참 은행 경영진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반면 신진 경영진들의 대다수는 현대의 대규모 산업 발전이 대은행과 오늘날의 산업적인 은행 사업을 불러일으킨 것과 똑같이 산업 문제들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대은행의 새로운 활동에 있어서 아직은 확고한 원칙도, 구체적인 목적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양측 모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⁹²

 

옛 자본주의는 수명을 다했다. 새로운 자본주의는 무엇인가로 이행해가는 과정이다. 독점과 자유경쟁을 '화해'시키기 위한 '확고한 원칙과 구체적인 목적'을 발견하는 것은 물론 가망 없는 일이다. 실무자들의 고백은 '조직된' 자본주의의 매력을 상투적으로 찬양하는 슐체-게베르니츠, 리프만과 그 비슷한 '이론가'들 같은 자본주의 옹호자들과는 전혀 다른 올림을 갖고 있다.

 

대은행의 '새로운 활동'이 최종적으로 확립된 시기는 언제인가,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우리는 아이델스에게서 상당히 정확한 답을 발견한다.

 

"새로운 대상, 새로운 형태, 새로운 기관을 가진 산업관계, 즉 중앙집권적인 동시에 분산적으로 조직된 대은행은 1890년대 이전에는 특정적인 경제 현상으로 거의 형성되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는 그 출발점을 대규모 '합병'과 함께 산업적 은행 정책에 기초한 분산적 조직이라는 새로운 형태가 처음 도입된 1897년으로까지 앞당겨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이 시점을 조금 더 뒤로 미룰 수도 있는데, 왜냐하면 [1900년의] 공황이 집중화 과정을 산업과 은행에서 크게 촉진·강화시켰고, 처음으로 산업과 연계를 대은행의 실질적인 독점으로 전화시켰으며, 그것을 더더욱 긴밀하고 강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⁹³

 

따라서 20세기, 그것은 옛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자본주의로의, 자본 일반의 지배에서 금융자본의 지배로의 전환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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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생산의 집중과 독점

 

 

산업이 엄청나게 성장하고 점점 더 큰 기업들로 생산이 급속하게 집중되는 과정은 자본주의의 가장 고유한 특성들 중 하나다. 현대 산업 통계 조사는 이 과정에 대한 가장 완벽하고 가장 정확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예를 들면 독일에서 제조업체 천 개 중 대기업, 즉 노동자 5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업체는 1882년에는 3개, 1895년에는 6개, 1907년에는 9개였다. 그리고 노동자 100명당 이러한 대기업에 속한 비중도 각기 22명, 30명, 37명꼴로 늘어났다. 하지만 생산의 집중은 노동자의 집중보다 훨씬 더 두드러지는데, 이는 대기업에서의 노동이 훨씬 더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증기 기관과 전동기에 대한 자료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독일에서 상업, 운송업 등을 포함해 넓은 의미에서 산업으로 불리는 것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전체 326만 5,623개 업체 중 대기업은 3만 588개로 겨우 0.9%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들은 노동자 1,440만 명 중 570만 명, 즉 39.4%, 증기력 880만 마력 중 660만 마력, 즉 75.3%, 전력 150만 킬로와트 중 120만 킬로와트, 즉 77.2%를 사용하고 있다.

 

전체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수의 기업들이 증기력과 전력 총량의 4분의 3 이상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총 기업 수의 91%를 차지하는 (5명 이하의 노동자를 고용한) 소기업 297만 개에 대한 몫은 증기력과 전력 총량의 7%에 불과하다! 거대 기업 몇만 개가 모든 것이고, 수백만 개의 작은 기업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노동자 천 명 이상을 고용한 기업은 독일의 경우 1907년에 586개였다. 이 기업들은 전체 노동자의 거의 10분의 1(138만 명)과 증기력·전력 총합의 거의 3분의 1(32%)을 사용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화폐 자본과 은행들은 한 줌에 불과한 거대 기업들의 이러한 우위를 훨씬 더 압도적으로 만든다. 게다가 그것은 글자 그대로 압도적인 탓에, 실제로 중소 규모는 물론 몇몇 대규모 ‘소유주들’까지 포함된 수백만 명이 겨우 몇백 명의 백만장자 금융 자본가들에게 완전히 예속되어 있다.

 

현대 자본주의의 또 다른 선진국인 미국에서 생산의 집중은 훨씬 더 강하게 증대하고 있다. 미국의 통계는 좁은 의미의 산업만을 대상으로 연간 생산 가치의 규모에 따라 기업을 분류한다. 1904년에 생산고가 100만 달러 이상인 큰 대기업들은 1,900개(전체 21만 6,180개 중 0.9%)가 있었다. 이 기업들은 총 140만 명의 노동자(전체 550만 명 중 25.6%)를 고용하고 56억 달러(전체 148억 달러 중 38%)의 생산고를 기록했다. 5년 후인 1909년, 이 수치는 각기 3,060개 기업(전체 26만 8,491개 기업 중 1.1%), 200만 명의 노동자(660만 명 중 30.5%), 90억 달러(전체 270억 달러 중 43.8%)의 생산고를 기록했다.

 

이 나라 모든 기업의 총생산 가운데 거의 절반이 전체 기업 수의 100분의 1밖에 안 되는 기업들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3천 개의 거대 기업들은 258개 산업 부문에 걸쳐 있다. 따라서 분명 집중이 일정 단계로 발전하면 저절로 독점으로 나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거대 기업 수십 개가 자기들끼리 타협에 이르는 것은 쉬운 일인데다, 기업의 큰 규모 자체가 경쟁을 어렵게 만들고 독점으로 가는 경향을 낳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쟁이 독점으로 변화하는 것은 최근 자본주의 경제의, 가장 중요한 현상은 아닐지라도, 매우 중요한 현상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우리는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다룰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오해가 생길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을 짚고 넘어가자.

 

미국의 통계는 250개 산업 부문에 3천 개의 거대 기업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얼핏 각 부문마다 12개씩의 거대 기업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모든 산업 부문에 대기업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최고 단계로 발전한 자본주의의 매우 중요한 특성은 기업 결합, 즉 저마다 다른 산업 부문들이 하나의 기업으로 결합하는 과정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원료 가공의 연속적인 단계들(예를 들면 철광석에서 선철을 제련하고, 선철을 강철로 제강하고, 그 강철로 여러 가지 완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따라 일어날 수도 있고, 한 분야가 다른 분야에 보조적인 역할(예를 들면 폐기물이나 부산물의 가공, 포장재의 생산 등)을 할 때 나타나기도 한다.

 

힐퍼딩은 이렇게 쓴다. “기업 결합은 경기순환상의 변동을 제거해 좀 더 안정적인 이윤율을 보장한다. 둘째로 기업 결합은 중간 상인의 개입을 없앤다. 셋째로 그것은 기술적 발전을 촉진하고 따라서 단독 기업에 비해 초과 이윤을 획득할 수 있게 해준다. 넷째로 그것은(원료 가격의 저하가 완성품 가격의 저하보다 급속하지 않은) 심각한 불황기 동안 단독 기업에 비해 결합 기업에게 경쟁상의 우위를 강화시켜준다.”

 

독일의 부르주아 경제학자 하이만은 독일 철강 산업에서의 ‘복합 기업’, 즉 결합 기업들에 대한 전문 서적을 저술했는데, 그 저서에서 그는 “순수 기업들은 낮은 완제품 가격에 비해 높은 원료 가격에 압박받아 파멸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광경이 그려진다.

 

“한편에는 석탄 신디케이트로 굳게 조직된 수백만 톤의 석탄을 채취하는 대규모 석탄 회사들이,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그것들과 밀접하게 결부된 강철 신디케이트를 지닌 대규모 제강 공장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거대 기업들, 즉 연간 40만 톤의 강철을 생산하고, 원광석과 석탄을 엄청나게 채취하며, 강철 완제품을 생산하고, 공장 지역의 숙소에 거주하는 1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때로는 철도나 항구까지 직접 소유하고 있는 이 기업들이 전형적인 독일 철강 산업체다. 이렇게 해서 집적은 더욱더 진전되고 있다. 개별 기업들의 규모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서로 다른 산업분야들에 속하는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거대한 기업들로 결합되며, 베를린의 여섯 개 대형 은행들이 이 과정을 지원하고 주도하고 있다. 독일의 광업은 집적에 관한 카를 마르크스의 학설이 옳다는 것을 정확하게 증명한다. 사실, 이것은 관세와 운임률로 산업을 보호하고 있는 나라에 관한 일이다. 독일 광업은 이제 수탈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숙했다.”

 

예외적으로 양심적인 이 부르주아 학자는 이러한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높은 무역 장벽으로 산업을 보호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그가 독일을 특별하게 분류하는 것 같다는 점은 지적해 두어야겠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은 단지 집중 및 기업가들의 독점 연합, 카르텔, 신디케이트 등의 형성을 촉진시켰을 뿐이다. 비록 좀 더 느리고 아마 다른 형태를 취할 수도 있지만, 자유 무역 국가인 영국에서도 집중이 독점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은 특히 중요한 사실이다. 헤르만 레비 교수는 영국의 경제 발전 수치를 근거로 하여 ‘독점, 카르텔, 그리고 트러스트(Monopole, Kartelle und Trusts)’라는 전문 연구서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영국 기업들의 큰 규모와 높은 기술 수준 자체가 독점화 경향을 지니고 있다. 한편 집중은 기업으로 하여금 막대한 양의 자본을 사용하게 만든다. 때문에 새로운 기업은 필요한 자본의 규모가 점점 더 커지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새로운 기업의 출현은 어려워진다. 다른 한편으로는(그리고 우리는 이 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기업들은 집중으로 형성된 거대 기업의 수준에 도달하려 하면서 저마다 엄청난 양의 과잉 생산물을 만들어낼 것이다. 예외적으로 수요가 증가할 경우에는 판매 이익을 얻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이 과잉 생산물들은 새로운 기업에게도, 기존의 독점 연합들에게도 모두 손해가 될 정도로 가격을 떨어뜨릴 것이다.” 보호 관세가 카르텔 형성을 용이하게 하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영국에서 기업가들의 독점 연합과 카르텔, 트러스트는 대개 주요 경쟁 기업들의 수가 “20여 개”로 줄어들 경우에만 생겨난다. “대규모 산업에서 집중이 독점 형성에 미치는 영향은 여기에서 수정처럼 명백하게 드러난다.”

 

반세기 전 마르크스가 ‘자본’을 썼을 때, 압도적 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자유 경쟁을 ‘자연법칙’으로 여겼다. 자유 경쟁이 생산의 집중을 낳고, 집중이 일정한 발전 단계에 이르면 독점으로 전화한다는 자본주의에 대한 이론적·역사적 분석으로 논증한 마르크스의 저작은 당시 학문의 침묵 속에서 말살되려 했다. 그러나 이제 독점은 사실이 되었다. 경제학자들은 개별 독점 현상들을 기술하는 산더미 같은 책을 써대면서도 “마르크스주의는 논파됐다”라고 입을 모아 선언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 속담에서 말하듯이 사실은 완고한 것이므로, 외면할 수는 없다. 사실이 보여주는 바, 예컨대 보호 무역이나 자유 무역이나와 같은 개개 자본주의 국가들의 차이는 독점이 취하는 형태나 출현 시기처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차이를 낳을 뿐이다. 생산의 집중으로 독점이 형성되는 것은 현 단계 자본주의 발전의 보편적인 기본 법칙이다.

 

유럽의 경우에는 새로운 자본주의가 옛 자본주의를 확실하게 대체한 시기를 꽤 정확하게 단정할 수 있다. 바로 20세기 초다. ‘독점 형성’의 역사를 개괄한 최근의 저작들 중 하나는 이렇게 쓰고 있다.

 

“1860년 이전의 시기에서도 몇 가지 자본주의적 독점의 사례들을 가져올 수 있다. 지금 매우 보편화된 형태의 맹아를 그 가운데에서 찾아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분명 카르텔로 가는 전사(前史)일 것이다. 현대적인 독점의 진정한 출현은 가장 이르게 잡아도 1860년대에 시작되었다. 독점이 성장한 첫 번째 주요 시기는 1870년대의 국제적인 산업 불황에서 시작되어 1890년대 초까지 지속된다.” “이 문제를 유럽 관점에서 고찰하면 자유 경쟁의 발전이 1860년대와 70년대에 정점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시기 영국은 옛 형태의 자본주의 조직 건설을 완성했다. 독일에서는 이 조직이 수공업과 가내 공업과의 치열한 투쟁에 들어가 나름의 존재 형태를 창출하기 시작했다.”

 

“대변혁은 1873년의 파국에서,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을 뒤따른 불황에서 시작되었다. 1880년대 초 거의 알아보기 힘들었던 휴지기와 1889년에 보기 드물게 강력했으나 짧았던 호황기가 있긴 했지만, 이 불황은 이후 22년 동안 유럽 경제사를 장식했다.” “1889~90년의 짧은 호황기 동안 호황에 편승하려고 카르텔이 많이 활용되었다. 이러한 무분별한 행태는 카르텔이 없었을 경우보다 물가를 더 빠르고 더 높게 상승시켰고, 이 카르텔들은 거의 모두 파산이라는 무덤 속에서 치욕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다시 판매 부진과 물가 하락의 시기가 5년 동안 계속되었다. 하지만 산업계에서는 이제 옛날 분위기가 지배적이지 않았다. 불황은 더 이상 새로운 호경기 이전의 당연한 휴지기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에서 카르텔 운동은 그 두 번째 시기에 들어갔다. 카르텔들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모든 경제 활동의 기초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것들은 원료 가공을 필두로 차례로 다른 산업 분야들을 장악하고 있다. 이미 1890년대 초에 카르텔들은 코크스 신디케이트를 조직했고, 그 형태를 본떠 석탄 신디케이트가 만들어졌지만 그러한 카르텔 조직 방법은 본질적으로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19세기 끝무렵의 큰 호경기와 1900~3년의 공황은, 적어도 광업과 철강업에서는, 최초로 완전히 카르텔의 보호 아래 있었다. 당시만 해도 그것은 새로운 것으로 보였지만, 이제 경제 활동 대부분이 자유 경쟁에서 보통 벗어나 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자명한 사실이 되었다.”

 

따라서 독점의 역사를 핵심적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1860~70년대: 자유 경쟁의 발전이 정점에 도달한 단계. 독점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맹아에 불과하다. (2) 1873년 공황 이후: 카르텔들은 장기간 발전했지만 아직 예외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것들은 아직 견고하지 못하며 일시적인 현상이다. (3) 19세기 끝무렵의 호경기와 1900~3년의 공황: 카르텔들은 모든 경제 활동의 기초 가운데 하나가 된다. 자본주의는 제국주의로 전화되었다.

 

카르텔들은 판매 조건, 지불 기한 등에 대해 서로 협약을 맺는다. 판매 영역을 자기들끼리 나누고, 제품의 생산량을 결정하며, 가격을 정하고, 개별 기업들에게 이윤을 분배하는 등.

 

독일에서 카르텔의 수는 1896년에 약 250개였고, 1905년에는 약 1만 2천 개 회사가 참가한 385개로 집계되었다. 하지만 이 수치들은 실제보다 낮춰 잡은 것임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 앞에서 인용한 1907년 독일 산업 통계 수치를 보면 이 1만 2천 개 거대 기업들에 증기력과 전력 총량의 절반 이상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미국에서 트러스트의 수는 1900년에 185개, 1907년에 250개로 집계되었다. 미국의 통계는 모든 제조업체를 개인 회사와 주식회사로 분류한다. 1904년에는 23.6%, 1909년에는 4분의 1이 넘는 25.9%의 업체가 후자에 속했다. 그 회사들에 속한 노동자들은 1904년에 70.6%, 1909년에 75.6%로 전체 노동자의 4분의 3을 차지했다. 생산 규모는 각각 109억 달러와 163억 달러, 즉 총생산액의 73.7%와 79.0%를 기록했다.

 

특정 산업 분야 총생산의 70~80%가 카르텔과 트러스트의 수중에 집중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라인-베스트팔렌 석탄 신디케이트는 1893년 설립 당시 그 지역 전체 석탄 생산의 86.7%, 1910년에는 이미 95.4%의 집중을 이루었다. 이런 식으로 탄생한 독점은 막대한 수익을 보장하고, 거대한 규모의 기술적 생산 단위를 형성하게 된다. 미국의 유명 석유 트러스트인 스탠더드 석유 회사는 1900년에 설립되었다. “그 회사의 자본금은 1억 5천만 달러에 달했다. 그리고 1억 달러 상당의 보통주와 1억 600만 달러 상당의 우선주가 발행되었다. 1900~7년 사이에 우선주에 지불된 이익 배당은 각기 48, 48, 45, 44, 36, 40, 40, 40%로, 그 총액은 3억 6,700만 달러였다. 1882년부터 1907년까지 8억 8,900만 달러의 순이익이 발생했으며, 그 중 6억 600만 달러가 이익 배당금으로 지급되었고, 나머지는 자본 준비금으로 적립되었다.” 1907년 “철강 트러스트(유나이티드스테이츠스틸)에 속한 업체들의 노동자와 사무원은 모두 합하면 21만 180명이나 되었다. 독일 광산업의 거대 기업인 겔젠키르헨 광산 회사에는 1908년 노동자와 사무원이 4만 6,048명이 있었다.” 이미 1902년에 그 철강 트러스트는 철강 900만 톤을 생산했다. 그 생산량은 1901년에 미국 철강 총생산량의 66.3%, 1908년에 56.1%를 차지했고, 각 해당 연도 철광석 채광량의 43.9%와 46.3%를 점유했다.

 

트러스트에 대한 미국 정부 위원회의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쟁자들에 대한 트러스트들의 우위는 거대한 경영 규모와 뛰어난 설비 장치에 기초한다. 담배 트러스트는 설립 이래 손 작업을 기계 작업으로 대대적으로 교체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담배 트러스트는 이 목적을 위해 담배 가공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특허라면 전부 사들였고, 거기에 막대한 금액을 지출했다. 많은 특허가 처음에는 쓸모없는 것으로 판명되었고, 트러스트에서 근무하는 기술자들이 개선해야 했다. 1906년 말에는 오직 특허 매점만을 위해 자회사 두 개를 설립했다. 역시 기계화를 목적으로 트러스트는 자체 주물 공장, 기계 공장, 수선 공장 등을 세웠다. 브루클린에 있는 이러한 시설 중 한 곳은 평균 3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여기서는 담배, 소형 시가, 코담배, 포장용 은박지, 담뱃감 등의 제조와 관련된 발명 실험을 한다. 그 발명품을 개선하는 일도 그곳에서 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트러스트들은 이른바 기술 개발 기술자(developing engineer)들을 고용하고 있는데, 이들의 업무는 새로운 생산 방법을 고안해내고 기술 개선을 시험하는 것이다. 강철 트러스트는 자사의 기술자와 노동자들이 기술을 높이거나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발명을 할 경우 큰 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독일의 대공업, 예컨대 최근 몇십 년 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한 화학 공업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기술 개선 사업이 진행되었다. 화학 공업에서는 이미 1908년에 생산의 집중 과정이 두 개의 주요한 ‘연합체’을 탄생시켰는데, 이들 역시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독점으로 발전해갔다. 처음에 이 ‘연합체’들은 자본금 규모가 각기 2천만~2,100만 마르크에 이르는 대규모 공장들이 두 쌍으로 짝을 지은 ‘2자 연합’이었다. 즉 한쪽에는 회흐스트의 옛 마이스터 공장과 프랑크푸르트의 카셀라 공장이 연합했고, 다른 쪽에는 루드비히스하펜의 아닐린소다 공장과 엘베르펠트의 옛 바이어 공장이 연합했다. 이후 한쪽 연합체는 1905년에, 다른 쪽 연합체는 1908년에 다시 각기 다른 대공장과 협정에 들어갔다. 그 결과 자본금이 각각 4천만~5천만 마르크인 ‘3자 연합’이 두 개 생겨났고, 이 두 ‘연합’ 사이에서는 이미 ‘수렴’, 즉 가격 등에 관한 ‘협약’이 시작되고 있다.

 

경쟁은 독점으로 전화하고 있다. 그 결과 생산의 사회화가 막대한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기술을 발명하고 개선하는 과정도 사회화된다.

 

이는 미지의 시장에 팔기 위해 생산하는, 서로를 전혀 알지 못하는 분산된 생산자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이전의 자유 경쟁과 완전히 다른 것이다. 집중은 한 나라뿐 아니라,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세계 전역의 많은 나라에 있는 모든 원료 산지(예를 들면 철광석 매장지)를 대략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지점에 이르렀다. 그러한 계산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이 산지들은 거대한 독점 연합체들의 수중에 들어 있다. 시장의 규모에 대한 대략적인 계산이 이루어지고, 이 연합체들은 협약에 따라 그것을 자기들끼리 ‘분할한다’. 숙련 노동력을 독점하고, 최고의 기술자들을 고용하며, 운송로와 운송 수단(미국의 철도, 유럽과 미국의 선박 회사)을 장악한다. 자본주의는 제국주의 단계에서 생산의 가장 광범위한 사회화에 바짝 다가간다. 말하자면 그것은 자본가들의 뜻이나 의식에 반하여 그들을 새로운 사회 질서, 즉 완전한 자유 경쟁에서 완전한 사회화로 가는 이행의 질서로 끌어들인다.

 

생산은 사회적인 것이 되고 있지만, 전유(專有)는 개인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 사회적 생산 수단은 소수의 사적소유로 남아 있다. 형식적으로 인정되는 자유 경쟁의 전반적인 틀은 남아 있지만, 소수 독점가들의 나머지 주민들에 대한 억압은 백 배나 더 무거워지고, 더 부담스러워지고, 더 견디기 어려워진다.

 

독일 경제학자 케스트너는 ‘카르텔들과 국외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투쟁’을 다룬 전문 저서를 한 권 썼는데, 여기서 국외자들이란 카르텔에 속하지 않은 기업가를 말한다. 케스트너는 이 책에 “강제적 조직화”라는 제목을 붙였으나, 자본주의를 미화하지 않으려면 당연히 독점가 연합으로의 강제적 종속화에 대해서도 언급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도 ‘조직화’를 위해 독점가 연합들이 사용하고 있는 현대의 가장 새롭고 문명화된 투쟁 수단의 목록을 살펴보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1) 원료 공급의 중단(‘카르텔 참가를 강제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 (2) ‘담합’(즉 소속 노동자들이 카르텔에 속한 기업들에서만 일하기로 한 노동조합과 자본가 사이의 협정)으로 인한 노동력 공급 중단, (3) 운송 수단의 박탈, (4) 판로의 봉쇄, (5) 카르텔하고만 거래 관계를 맺기로 한 구매자와의 계약, (6) 조직적인 가격 인하 (‘국외자들’, 즉 독점가들에 종속되지 않은 기업들을 파산시키기 위해, 일정 기간 원가 이하로 판매하는 데에 수백만 마르크를 지출한다. 가솔린 산업에서는 40마르크에서 22마르크로, 즉 거의 절반으로 가격이 인하되었던 사례도 있었다!), (7) 신용 거래 중단, (8) 불매 운동.

 

우리 앞에 더 이상 소기업과 대기업, 기술적으로 뒤처진 기업과 앞선 기업 사이의 경쟁적인 투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앞에 존재하는 것은 독점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독점이 행하는 교살, 억압, 전횡이다. 이 과정은 어느 부르주아 경제학자의 의식에 이렇게 드러나고 있다.

 

케스트너는 서술한다. “순수한 경제 활동의 영역에서도 종전 의미의 상업 활동에서 조직적·투기적 활동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가장 큰 결실을 누리고 있는 것은 자신의 기술적·상업적 실무를 토대로 구매자의 요구를 가장 잘 판단하여 잠재된 수요를 찾아낼 수 있는, 다시 말해 그것을 ‘열어놓을’ 수 있는 상인이 아니라 투기의 천재(?!)들이다. 개별 기업과 은행 사이의 조직적 발전, 일정한 관계가 맺어질 여지 등을 예측하거나 적어도 짐작 정도는 할 수 있는……”

 

이것을 쉬운 말로 번역하면 이러한 뜻이 된다. 즉 자본주의의 발전은, 상품 생산이 여전히 ‘지배적’이며 모든 경제의 기초로 간주되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파괴되었으며 주요 이윤은 금융 투기의 ‘천재’들에게 돌아가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러한 금융 투기와 협잡의 토대는 당연히 생산의 사회화다. 하지만 이렇게 사회화에까지 도달한 인류의 거대한 발전은 투기꾼만 이롭게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뒤에서,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에 대한 소시민적·반동적 비판자가 바로 이러한 ‘토대 위에서’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공정한’ 경쟁으로 되돌아가려고 꿈꾸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케스트너는 말한다. “카르텔 형성의 결과로서 나타난 지속적인 가격 상승은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생산 수단, 특히 석탄, 철, 칼륨에서만 확인되었고 제조 상품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가격 상승과 관련된 이윤의 증가 역시 생산 수단을 제조하는 산업에 국한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지적에 다음과 같은 점을 덧붙여야 할 것이다. 카르텔 형성 덕분에 (반제품이 아닌) 원료를 가공하는 산업들은 완제품 산업을 희생시켜 높은 이윤을 얻었을 뿐 아니라, 그 산업들에 대한 자유 경쟁에서는 없었던 지배적 지위를 얻게 되었다.”

 

앞에서 강조한 단어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마지못해 극히 드물게 인정하는, 카를 카우츠키를 필두로 하는 현대의 기회주의 옹호자들이 어떻게는 발뺌하며 회피하려 애쓰는 사태의 본질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배와 그에 결부된 강압은 ‘자본주의 발전의 최근 단계’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이것은 막강한 경제적 독점의 형성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 발생했다.

 

카르텔들이 이용하는 수단의 또 다른 예를 살펴보자. 모든 원료 산지나 주요 원료 산지를 장악할 수 있는 곳에서 카르텔의 출현과 독점의 형성은 특히 용이하다. 그렇다고 원료 산지를 장악하는 것이 어려운 다른 산업 분야에서는 독점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일 것이다. 시멘트 산업의 원료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독일에서 이 산업은 강력하게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공장들은 남독일 신디케이트, 라인-베스트팔렌 신디케이트 등 지역 신디케이트로 연합하였다. 가격은 독점으로 고정되어 있다. 화차 한 량당 제조비가 180마르크인데도 가격은 230~280마르크다! 기업들은 12%에서 16%의 이익 배당금을 주고 있다. 게다가 현대의 투기 ‘천재들’이 분배받은 배당금 외에도 거액의 수익을 주머니에 챙길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수익성이 높은 산업에서 경쟁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면 독점가들은 간계를 부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산업의 상황이 나쁘다는 거짓 소문을 유포하고, 신문에 “자본가들이여! 시멘트 사업에 자본을 투자하는 것을 삼가라”고 익명의 경고를 게재하며, 결국에는 ‘국외자들의’(즉 신디케이트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의) 회사를 매수하고 그들에게 6만~8만 마르크에서 15만 마르크에 이르는 ‘양도금’을 지불한다. 독점은 양도금을 지불하는 ‘온건한’ 방식에서 경쟁자들에게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하는 미국식 방법에 이르기까지 온갖 수단을 다해 자신의 진로를 개척해나간다.

 

카르텔이 공황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든 자본주의를 미화하려고 하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퍼뜨린 주장이다. 반대로 몇몇 산업 분야에서 형성된 독점은 자본주의 생산 전체에 고유한 무정부성을 강화하고 더욱 심화하게 만든다. 자본주의의 일반적 특징인 농업 발전과 공업 발전 사이의 격차도 더욱 확대된다. ‘독일 대은행과 산업의 관계’에 대한 가장 주목할 만한 저작 가운데 하나를 쓴 아이델스(Otto Jeidels)가 인정한 바처럼, 카르텔화가 가장 고도로 진전된 이른바 중공업, 특히 석탄 산업과 철강 산업의 특권적인 위치는 나머지 산업 분야에서 “무계획성의 증가”를 불러오고 있다.

 

뻔뻔스럽게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리프만은 이렇게 말한다. “국민 경제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그것은 더욱 모험적인 기업들에게, 또는 외국 기업이나 발전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한 기업들에게, 또는 마지막으로 단지 지역적인 중요성밖에 갖지 못하는 기업들에게 더욱더 의존하게 된다.” 결국 위험성이 커지는 것은 자본의 막대한 증대와 관련되어 있고, 자본의 증대는 말하자면 물이 넘쳐흐르듯이 자본이 해외로 흘러나가는 것이다. 동시에 급격한 기술 발전은 국민 경제의 여러 측면 사이에 더 많은 불균등, 무질서, 위기의 요인을 불러온다. 따라서 리프만도 이렇게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인류는 멀지 않은 미래에 또다시 국민 경제 조직에 영향을 미칠 기술 분야의 대변혁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 전기와 항공 …… “대개 이러한 근본적인 경제적 변화의 시기에는 격심한 투기가 일어난다.”

 

그런데 공황(대부분 경제적인 것이지만 꼭 경제적인 것만은 아닐 수도 있는 모든 종류의 공황)은 다시 집중으로, 독점으로 가는 경향을 막대한 정도로 강화한다. 우리가 알다시피 현대 독점의 역사에서 전환점 역할을 했던 1900년의 공황에 대한 아이델스의 고찰은 매우 유용하다.

 

“1900년 공황기에는 주요 산업 분야의 거대 기업은 물론, 지금의 개념으로는 시대에 뒤떨어진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던 기업이 여전히 많이 존재했다. 이들은 산업 호경기의 과도기를 타고 높이 오른 단독 기업(즉 결합되지 않은 기업)이었다. 가격 저하와 수요 감소는 거대 결합 기업에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았거나 아주 짧은 기간만 영향을 끼쳤지만, 이러한 순수 기업들을 비참한 상태에 빠뜨렸다. 그 결과 1900년의 공황은 1873년의 공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산업의 집중을 초래했다. 1873년의 공황도 좀 더 우수한 기업을 일정하게 선별하는 역할을 했지만, 당시의 기술 수준으로는 그러한 선별의 결과로 공황을 극복한 기업이 독점으로 가는 것은 어려웠다. 이러한 지속적인 독점은 그 분야의 매우 정교한 기술, 방대한 조직과 자본력에 힘입어 오늘날의 철강과 전기 산업의 거대 기업에서나 매우 높은 수준으로 존재하며, 기계 산업과 일부 금속 분야, 운송 산업 등의 기업에는 좀 더 낮은 수준으로 존재하고 있다.”

 

독점. 이 말은 “자본주의 발전의 최근 단계”를 설명하는 가장 결정적인 단어다. 하지만 우리가 은행들의 역할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현대의 독점이 가진 진정한 힘과 중요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극히 불충분하고 불완전하며 빈약한 것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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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

 

 

서문

 

 

이 소책자는 1916년 봄 취리히에서 작성되었다. 당시 그곳에서 참고할 문헌, 특히 프랑스어·영어·러시아어 자료의 절대적인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제국주의를 다룬 주요 영어 저작인 J. A. 흡슨 (Hobson)의 책을 주의 깊게 활용할 수 있었으며, 이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업이었다.

 

차르 체제의 검열을 염두에 두고 작성한 이 소책자는 오직 이론적 영역, 특히 사실에 대한 경제적 분석에만 논의를 국한해야 했다. 정치적 문제를 다룰 때는 극히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으며, 차르 체제하의 모든 혁명가들이 ‘합법적인’ 문헌을 작성할 때 사용하던 암시와 우회적 표현 (이슬식 언어)에 의존해야 했다.

 

이 소책자는 사회주의 혁명이 임박했음을 알려주는 제국주의의 본질, 그리고 사회주의를 배신하고 부르주아지 편으로 전향한 사회배외주의 (말로만 사회주의를 외치고 실제로는 배외주의를 실천하는 태도)의 실상을 다룬다. 아울러 노동 계급 운동 내부의 이러한 분열이 제국주의라는 객관적 조건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을 검열의 눈을 피해 ‘노예의 언어’로 서술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자유로운 시기에 검열로 왜곡되고 억압된 본문들을 다시 읽는 일은 고역에 가깝다. 해당 쟁점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1914년부터 1917년 사이에 해외에서 집필한 글들을 모아 조만간 출간될 신판을 참조할 것을 권한다.

 

특히 본문의 119~120쪽은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거기에서는 자본가들과 그 편에 가담한 사회배외주의자들이 (카우츠키 (Kautsky)는 일관성 없는 태도로 이들에 반대하고 있다) 자기 국가 자본가들의 영토 합병을 얼마나 파렴치하게 은폐하는지 검열을 통과하는 방식으로 드러내고자 일본의 사례를 제시했다! 사려 깊은 독자라면 제시된 일본을 러시아로, 조선을 핀란드·폴란드·쿠를란드·우크라이나·히바·부하라·에스토니아 등 소수 민족 거주 지역으로 쉽게 적용하여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은 근본적인 경제 문제, 즉 제국주의의 경제적 본질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이 소책자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해당 연구 없이는 현대의 전쟁과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프랑스어판과 독일어판 서문

 

 

I

 

 

러시아어판 서문에서 언급했듯이 이 소책자는 1916년 차르 체제의 검열을 염두에 두고 작성되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본문을 전면적으로 교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제1차 세계 제국주의 전쟁 전야인 20세기 초, 객관적이고 확실한 부르주아지 통계 자료와 학자들의 고백을 바탕으로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총체적 구조를 밝혀내고자 한 이 책의 주된 목적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차르 체제의 검열 속에서 집필된 이 소책자가 가진 사례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공산주의자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최근 대다수 공산주의자들이 체포된 상황에서, 미국이나 프랑스의 공산주의자들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미미한 합법성조차도 ‘세계 민주주의’를 가장한 사회평화주의의 편견의 허구성을 고발하는 데 적극 활용되어야 한다. 이 서문에서는 검열로 인해 원문에 직접 담지 못했던 핵심적인 내용들을 추가로 밝히고자 한다.

 

 

II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전개된 제1차 세계대전은 양 진영 모두에게 제국주의적 성격을 띤 침략적·약탈적 전쟁이었다. 이는 세계 재분할을 비롯해 식민지와 금융 자본의 ‘세력권’을 분할 및 재분할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되었다.

 

이 전쟁의 진정한 사회적·계급적 성격은 외교사의 표면적 기록이 아니라 모든 교전국의 지배 계급이 처한 객관적인 이해관계와 상황을 분석하여 파악할 수 있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일부 임의의 사례나 개별 수치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전 세계 경제 활동의 토대와 모든 교전국의 종합적인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접근해야 한다.

 

1876년과 1914년의 세계 분할 (6장), 1890년과 1913년의 세계 철도 분할 (7장)을 서술하며 인용한 수치들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총괄적 지표다. 자본주의 기간 산업인 석탄·철강 산업의 집약체인 철도는 세계 무역과 부르주아 민주주의 문명의 발전 수준을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척도다. 철도가 대규모 생산, 독점, 신디케이트, 카르텔, 트러스트, 금융 과두제와 맺는 연관성은 앞선 장들에서 밝힌 바 있다. 철도망의 불균등한 분포와 발전은 현대 독점 자본주의가 전 세계적 범위에서 초래한 결과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며,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가 유지되는 한 이러한 경제 체제 아래서는 제국주의 전쟁이 불가피함을 입증한다.

 

철도 건설 사업이 언뜻 보기에는 단순한 문명 보급이나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처럼 여겨질 수 있으나, 자본의 사적 소유 구조와 결합할 때 그 본질은 완전히 달라진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철도 부설은 거대 자본과 독점 체제가 전 세계 노동 민중과 식민지 주민들을 착취하고 예속하기 위한 핵심적인 수단으로 기능한다.

 

소소유자의 노동에 기반을 둔 사적 소유, 자유 경쟁, 민주주의 등 자본가와 언론이 민중을 기만하기 위해 내세운 구호들은 이미 과거의 산물이 되고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소수의 ‘선진국’이 세계의 인구를 식민지적 방식으로 억압하고 지배하는 세계 체제로 변모했다. 이 과정에서 확보된 부와 지배권은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소수의 거대 독점 국가들 사이에 분배되며, 이들은 자신들만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전 세계를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다.

 

 

III

 

 

군주국 독일이 강요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 그에 이은 ‘민주’공화국 미국·프랑스와 ‘자유’ 국가 영국이 강요한 훨씬 더 잔혹하고 비열한 베르사유 강화는 어떤 면에서 인류에게 극히 유익한 기여를 했는데, 평화주의자와 사회주의자로 자처하면서도 ‘윌슨주의’를 지지하고 제국주의 시대에 평화와 개량이 존속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제국주의의 용병들과 반동적 속물들의 정체를 폭로했기 때문이다.

 

영국과 독일 금융 강도 집단 중 누가 더 큰 몫을 차지하는가를 판가름하기 위해 벌어진 전쟁이 발생시킨 수천만 명의 시체와 불구자들과 더불어, 저 두 ‘평화 조약’은 그동안 부르주아지가 짓밟고, 억누르고, 기만하고, 우롱해온 수백, 수천만 민중을 전례 없이 빠르게 각성시키고 있다. 이렇게 하여 전쟁이 만들어 낸 전세계적인 폐허로부터 전 세계적인 혁명적 위기가 자라나고 있으며, 그것은 아무리 길고 험난한 과정을 거치더라도 필경 프롤레타리아트 혁명과 그 승리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2인터내셔널의 바젤 선언, 1912년에 이미 전쟁 일반이 아니라 1914년에 발발한 바로 그 전쟁을 올바르게 예측했던 그 선언은 지금 제2인터내셔널 영웅들의 모든 치욕스러운 파산과 변절을 폭로하는 기념비로 남아 있다.

 

그래서 이 선언을 이 판의 부록으로 다시 수록하여, 제2인터내셔널의 영웅들이 당시 임박한 전쟁과 프롤레타리아트 혁명 사이의 연관성을 정확하고 분명하며 직설적으로 언급했던 이 선언의 문장들을 마치 도둑이 범행 장소를 피해 다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회피하고 있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거듭 상기시키고자 한다.

 

 

IV

 

 

이 소책자는 ‘카우츠키주의’ 비판에 특히 주의를 기울인다. 카우츠키주의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이론가들’, 제2인터내셔널의 지도자들 (오스트리아의 오토 바우어 일파, 영국의 램지 맥도널드 등, 프랑스의 알베르 토마 등), 그리고 수많은 사회주의자·개량주의자·평화주의자·부르주아민주주의자·목사들이 대표하는 세계 각국에 걸친 이념적 사조다.

 

이 이념적 사조는 한편으로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와 부패의 산물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전반적인 생활방식상 부르주아적·민주주의적 편견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소부르주아 이념의 불가피한 결과다.

 

카우츠키 및 그 동조자들의 견해는 그 저술가가 수십 년간, 특히 무엇보다 사회주의 내의 기회주의자들 (베른슈타인, 밀랑, 하인드먼, 곰퍼스 등)과 투쟁하면서 옹호해 온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원칙들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 세계의 ‘카우츠키주의자들’이 지금 실제 정치 무대에서 (제2 또는 황색 인터내셔널을 경유하여) 최악의 기회주의자들과 단결하고, (사회주의자들이 참여한 부르주아 연립 정부들을 매개로) 부르주아 정부와 힘을 합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국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프롤레타리아트 혁명 운동 일반, 특히 공산주의 운동은 ‘카우츠키주의’의 이론적 오류에 대한 분석과 폭로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게다가 마르크스주의를 자처하지는 않지만 카우츠키나 그 일파와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모순의 심각성과 그것이 만들어낸 혁명적 위기의 필연성을 퇴색시키는 평화주의와 ‘민주주의’ 일반이 전 세계에 걸쳐 여전히 매우 강력하게 퍼져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경향들과 투쟁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 당의 의무다. 프롤레타리아트 당은 부르주아지에게 우롱당하고 있는 소소유자들과, 얼마간은 소부르주아적 생활 조건에 놓여 있는 수백만 근로 인민을 부르주아지에게서 되찾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V

 

 

제8장 ‘자본주의의 기생성과 부패’에 대해 몇 마디 언급해야겠다. 이 책의 본문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과거에는 ‘마르크스주의자’였지만 지금은 카우츠키의 전우이자 ‘독일 독립사회민주당’에서 부르주아적·개량주의적 정책을 펼치는 주요 대표자들 중 한 명인 힐퍼딩은 이 문제에 있어 노골적인 평화주의자이자 개량주의자인 영국인 홉슨보다 한 발 뒤처져 있다. 노동 운동 전체의 국제적 분열은 이제 완전히 드러났다 (제2인터내셔널과 제3인터내셔널). 두 경향 사이의 무장 투쟁과 내전도 나타났다. 러시아에서는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이 볼셰비키에 맞서 콜차크와 데니킨을 지지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스파르타쿠스단에 맞서 샤이데만주의자들과 노스케 일파가 부르주아지와 손을 잡았다. 핀란드, 폴란드, 헝가리 등지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이러한 세계사적 현상의 경제적 토대는 과연 무엇인가?

 

그 토대는 바로 자본주의의 기생성과 부패다. 그리고 이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최고 단계인 제국주의의 고유한 특징이다. 이 소책자에서 증명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는 지금 전 세계를 약탈하는, 단지 ‘이자 놀이’만으로, 한 줌 (세계 인구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아무리 ‘관대하게’ 부풀려 잡는다 해도 5분의 1도 안 되는) 극히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들을 탄생시켰다. 전쟁 전 부르주아지의 통계에 따르면 그들은 자본 수출에서 전쟁 전의 가치로 연간 80~100억 프랑의 수입을 얻었다. 물론 지금은 훨씬 더 많다.

 

그러한 엄청난 초과 이윤 (왜냐하면 그것은 자본가들이 ‘자기’ 나라의 노동자들로부터 짜내는 이윤 이상으로 획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으로 노동 계급 지도자들과 노동 귀족 상층을 매수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선진’ 국가 자본가들은 실제로 그들을 매수하고 있는 바, 수천 가지 다른 방법으로,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공공연하게나 암암리에 그들을 매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르주아화된 노동자 계급 내의 상층, 다시 말해 ‘노동 귀족’은 생활 양식에서, 임금 수준에서, 모든 세계관에서 전적으로 소시민적인데, 이들은 제2인터내셔널의 주요한 기둥이고 요즘은 (군사적으로는 아니라도) 부르주아지의 주요한 사회적 기둥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실질적으로 노동 계급 운동 내에서 숨어서 활동하는 부르주아지의 첩자이자 자본가 계급의 노동 관리인이며 실제로 개량주의와 배외주의를 전파하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의 내전에서 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필연적으로 부르주아지 편으로, ‘코뮌파’에 반대하는 ‘베르사유파’ 쪽으로 돌아선다. 이러한 현상의 경제적 뿌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의 정치적·사회적 의미를 평가하지 못한다면, 공산주의 운동과 임박한 사회혁명의 실천적 과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제국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 사회혁명의 전야다. 이는 1917년 이래 전 세계적 규모에서 확인되었다.

 

1920년 7월 6일

 

N. 레닌

 

 

지난 15~20년간, 특히 스페인-미국 전쟁 (1898년)과 보어 전쟁 (1899~1902년) 이후, 구세계와 신세계의 경제·정치 문헌들은 우리가 겪고 있는 시대를 규정하기 위해 ‘제국주의’라는 개념을 점점 더 빈번하게 다루고 있다. 1902년에는 영국 경제학자 홉슨의 저작 『제국주의론 (Imperialism)』이 런던과 뉴욕에서 출판되었다. 저자는, 과거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카우츠키의 현재 입장과 본질적으로 같은 종류의, 부르주아 사회개량주의와 평화주의 관점에 서 있기는 하지만, 제국주의의 기본적인 경제적·정치적 특질들을 매우 훌륭하고 정확하게 기술했다. 1910년에는 빈에서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자인 루돌프 힐퍼딩의 저작 『금융자본 (Das Finanzkapital)』 (러시아어 번역판은 1912년에 모스크바에서 출간)이 출판되었다. 저자가 화폐 이론 문제에서 범한 오류와 마르크스주의를 기회주의와 절충시키려는 그 악명 높은 경향에도, 이 저작은 힐퍼딩이 이 책의 부제로 쓴 것처럼, “자본주의 발전의 최근 단계”에 대한 매우 귀중한 이론적 분석을 보여준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제국주의에 대해 언급된 것들은, 특히 이 문제에 대한 방대한 양의 신문·잡지 기사들과 결의안들, 예컨대 1912년 가을에 열렸던 켐니츠 대회와 바젤 대회의 것들이, 이 두 저자가 서술했거나, 더 정확히 말하자면 종합했던 논의들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차후에 우리는 제국주의의 기본적인 경제적 특징들의 연관과 상호관계에 대해 되도록 좀 더 알기 쉬운 형태로 간략하게 서술하고자 한다. 이 문제의 비경제적인 측면들을 고찰해 보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지만 우리가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독자 모두가 관심을 갖지는 않을 인용 문헌과 여타 주들은 책자 말미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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