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생산의 집중과 독점
산업이 엄청나게 성장하고 점점 더 큰 기업들로 생산이 급속하게 집중되는 과정은 자본주의의 가장 고유한 특성들 중 하나다. 현대 산업통계 조사는 이 과정에 대한 가장 완벽하고 가장 정확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예를 들면 독일에서 제조업체 천 개 중 대기업, 즉 노동자 5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업체는 1882년에는 3개, 1895년에는 6개, 1907년에는 9개였다. 그리고 노동자 100명당 이런 대기업에 속한 비중도 각기 22명, 30명, 37명꼴로 늘어났다. 하지만 생산의 집중은 노동자의 집중보다 훨씬 더 두드러지는데, 이는 대기업에서의 노동이 훨씬 더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증기 기관과 전동기에 대한 자료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독일에서 상업, 운송업 등을 포함해 넓은 의미에서 산업으로 불리는 것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전체 326만 5,623개 업체 중 대기업은 3만 588개로 겨우 0.9퍼센트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들은 노동자 1,440만 명 중 570만 명, 즉 39.4퍼센트, 증기력 880만 마력 중 660만 마력, 즉 75.3퍼센트, 전력 150만 킬로와트 중 120만 킬로와트, 즉 77.2퍼센트를 사용하고 있다.
전체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수의 기업들이 증기력과 전력 총량의 4분의 3 이상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총 기업수의 91퍼센트를 차지하는 (5명 이하의 노동자들을 고용한) 소기업 297만 개에 대한 몫은 증기력과 전력 총량의 7퍼센트에 불과하다! 거대기업 몇만 개가 모든 것이고, 수백만 개의 작은 기업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노동자 천 명 이상을 고용한 기업은 독일의 경우 1907년에 586개였다. 이 기업들은 전체 노동자의 거의 10분의 1(138만 명)과 증기력·전력 총합의 거의 3분의 1(32퍼센트)을 사용했다.²⁶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화폐자본과 은행들은 한 줌에 불과한 거대기업들의 이런 우월성을 훨씬 더 압도적으로 만든다. 게다가 그것은 글자 그대로 압도적인 탓에, 실제로 중소 규모는 물론 몇몇 대규모 '소유주들'까지 포함된 수백만 명이 겨우 몇백 명의 백만장자 금융자본가들에게 완전히 예속되어 있다.
현대 자본주의의 또 다른 선진국인 미국에서 생산의 집중은 훨씬 더 강하게 증대하고 있다. 미국의 통계는 좁은 의미의 산업만을 대상으로 연간 생산가치의 규모에 따라 기업을 분류한다. 1904년에 생산고가 100만 달러 이상인 큰 대기업들은 1,900개(전체 21만 6,180개 중 0.9퍼센트)가 있었다. 이 기업들은 총 140만 명의 노동자(전체 550만 명 중 25.6퍼센트)를 고용하고 56억 달러(전체 148억 달러 중 38퍼센트)의 생산고를 기록했다. 5년 후인 1909년, 이 수치는 각기 3,060개 기업(전체 26만 8,491개 기업 중 1.1퍼센트), 200만 명의 노동자(660만 명 중 30.5퍼센트), 90억 달러(전체 270억 달러 중 43.8퍼센트)의 생산고가 되었다.²⁷
이 나라 모든 기업의 총생산 가운데 거의 절반이 전체 숫자의 100분의 1밖에 안 되는 기업들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3천 개의 거대기업들은 258개 산업부문을 망라하고 있다. 따라서 분명 집중이 일정 단계로 발전하면 저절로 독점에 접근한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거대기업들 수십 개가 자기들끼리 타협에 이르는 것은 쉬운 일인데다, 기업의 큰 규모 자체가 경쟁을 어렵게 만들고 독점으로 가는 경향을 낳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쟁이 독점으로 변화하는 것은 최근 자본주의 경제의—가장 중요한 현상은 아닐지라도—매우 중요한 현상들 중 하나다. 그래서 우리는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다룰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오해가 생길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을 짚고 넘어가자.
미국의 통계는 250개 산업부문에 3천 개의 거대기업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얼핏 각 부문마다 12개씩의 거대기업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모든 산업부문에 대기업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최고 단계로 발전한 자본주의의 굉장히 중요한 특성은 기업결합, 즉 저마다 다른 산업부문들이 하나의 기업으로 결합하는 과정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원료 가공의 연속적인 단계들(예를 들면 철광석에서 선철을 제련하고, 선철을 강철로 제강하고, 그 강철로 여러 가지 완제품들을 생산하는 것)에 의해 일어날 수도 있고, 한 분야가 다른 분야에 보조적인 역할(예를 들면 폐기물이나 부산물의 가공, 포장재의 생산 등)을 할 때 나타나기도 한다.
힐퍼딩은 이렇게 쓴다. "기업결합은 경기순환상의 변동을 제거해 좀 더 안정적인 이윤율을 보장한다. 둘째로 기업결합은 중간상인의 개입을 없앤다. 셋째로 그것은 기술적 진보를 가능하게 하고 따라서 단독 기업에 비해 초과이윤을 획득할 수 있게 해준다. 넷째 그것은 (원료 가격의 저하가 완성품 가격의 저하보다 급속하지 않은) 심각한 불황기 동안 단독 기업에 비해 결합 기업에게 경쟁상의 우위를 강화시켜준다."²⁸
독일의 부르주아 경제학자 하이만(Heymann)은 독일 철강 산업에서의 '혼합 기업', 즉 결합 기업들에 대한 전문서적을 저술했는데, 거기에서 그는 "순수 기업들은 낮은 완제품 가격에 비해 높은 원료 가격에 압박받아 파멸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런 광경이 그려진다.
"한편에는 석탄 신디케이트로 굳게 조직된 수백만 톤의 석탄을 채취하는 대규모 석탄회사들이,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그것들과 밀접하게 연결된 강철 신디케이트를 지닌 대규모 제강공장들이 존재한다. 이런 거대기업들, 즉 연간 40만 톤의 강철을 생산하고, 원광석과 석탄을 엄청나게 채취하며, 강철 완제품들을 생산하고, 공장 지역의 숙소에 거주하는 1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때로는 철도나 항구까지 직접 소유하고 있는 이 기업들이 전형적인 독일 철강산업체다. 이렇게 해서 집적은 더욱더 진전되고 있다. 개별 기업들의 규모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하나의 산업분야에 속하는 서로 다른 산업분야들에 속하는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거대한 기업들로 결합되며, 베를린의 여섯 개 대형 은행들이 이 과정을 지원하고 주재하고 있다. 독일의 광업은 집적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학설이 옳다는 것을 정확하게 증명한다. 사실, 이것은 관세와 운임률로 산업을 보호하고 있는 나라에 관한 일이다. 독일 광업은 이제 수탈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숙했다."²⁹
예외적으로 양심적인 이 부르주아 학자는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높은 무역장벽으로 산업을 보호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이 사람이 독일을 특별하게 분류하는 것 같다는 점은 지적해뒤야겠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단지 집중 및 기업가들의 독점연합, 카르텔, 신디케이트 등의 형성을 촉진시켰을 뿐이다. 비록 좀 더 느리고 아마 다른 형태를 취할 수도 있지만, 자유무역 국가인 영국에서도 역시 집중이 독점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은 특히 중요한 사실이다. 헤르만 레비(Hermann Levy)³⁰ 교수는 영국의 경제 발전 수치들을 근거로 하여 '독점, 카르텔, 그리고 트러스트Monopole, Kartelle und Trusts'라는 전문 연구서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영국 기업들의 큰 규모와 높은 기술 수준 자체가 독점화 경향을 지니고 있다. 한편 집중은 기업에게 엄청난 양의 자본을 사용하게 만든다. 때문에 새로운 기업은 필요한 자본의 규모가 점점 더 많이 요구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새로운 기업의 출현은 어려워진다. 다른 한편으로는(그리고 우리는 이 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새로운 기업들은 집중으로 형성된 거대기업의 수준에 도달하려 하면서 저마다 엄청난 양의 과잉 생산물을 생산해낼 것이다. 비정상적으로 수요가 증가할 경우에는 판매이익을 얻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이 과잉 생산물들은 새로운 기업에게도, 기존의 독점연합들에게도 모두 손해가 되는 수준으로 가격을 떨어뜨릴 것이다." 보호관세가 카르텔 형성을 용이하게 하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영국에서 기업가들의 독점연합과 카르텔, 트러스트는 대개 주요 경쟁 기업들의 수가 "20여 개"로 줄어들 경우에만 생겨난다. "대규모 산업에서 집중이 독점 형성에 미치는 영향은 여기에서 수정처럼 명백하게 드러난다."³¹
반세기 전 마르크스가 '자본'을 썼을 때, 압도적 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자유경쟁을 '자연법칙'으로 여겼다. 자유경쟁이 생산의 집중을 낳고 집중이 일정한 발전 단계에 이르면 독점으로 전화한다는 자본주의에 대한 이론적·역사적 분석을 논증한 마르크스의 저작을 이용 학문은 침묵이라는 슬쩍으로 말살려져 했다. 그러나 이제 독점은 사실이 되었다. 경제학자들은 개개의 독점 현상들을 기술하는 산더미 같은 책들을 써대면서도 "마르크스주의는 논파됐다"라고 입을 모아 선언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 속담에서 말하듯이 사실은 완고한 것이고, 좋은 삶은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이 보여주는 바, 예컨대 보호무역이나 자유무역이나 같은 개개 자본주의 국가들의 차이는 독점이 취하는 형태나 출현 시기처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차이들을 낳을 뿐이다. 생산의 집중에 의해 독점이 형성되는 것은 현 단계 자본주의 발전의 보편적인 기본법칙이다.
유럽의 경우에는 새로운 자본주의가 남은 자본주의를 확실하게 대체한 시기를 꽤 정확하게 단정할 수 있다. 바로 20세기 기초다. '독점 형성'의 역사를 개괄한 최근의 저작들 중 하나는 이렇게 쓰고 있다.
"1860년 이전의 시기에서도 몇 가지 자본주의적 독점의 사례들을 가져올 수 있다. 지금 매우 보편화된 형태들의 맹아를 그 중에서 발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분명 카르텔로 가는 전사(前史)일 것이다. 현대적인 독점의 진정한 출현은 가장 이르게 잡아도 1860년대가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독점이 성장한 첫 번째 주요한 시기는 1870년대의 국제적인 산업 불황에서 시작되어 1890년대 초까지 지속된다." "만약 이 문제를 유럽 차원에서 고찰한다면 자유경쟁 발전은 1860년대와 70년대에 정점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시기 영국은 남은 형태의 자본주의 조직의 건설을 완성했다. 독일에서는 이 조직이 수공업 및 가내공업과의 결연한 투쟁에 들어가 그 자신의 존재 형태를 창출하기 시작했다."
"대변혁은 1873년의 파국에서,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을 뒤따른 불황에서 시작되었다. 1880년대 초 거의 알아보기 힘들었던 휴지기와 1889년에 보기 드물게 강력하나 짧았던 호황기가 있긴 했지만 이 불황은 향후 유럽 경제사를 22년이나 장식했다." "1889~90년의 짧은 호황기 동안 이에 편승하기 위해 카르텔들이 많이 활용되었다. 이런 무분별한 노선은 카르텔이 없었을 경우보다 물가를 더 빠르고 더 높게 상승시켰고, 이 카르텔들은 거의 모두 파산이라는 무덤 속에서 치욕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다시 판매부진과 물가하락의 시기가 5년 동안 계속되었다. 하지만 산업계는 이제 옛날 분위기가 지배적이지 않았다. 불황은 더 이상 당연한 것, 즉 새로운 호경기 이전의 휴지기로만 보이던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에서 카르텔 운동은 그 두 번째 시기에 들어갔다. 카르텔들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모든 경제활동의 기초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것들은 원료가공을 필두로 차례로 다른 산업분야들을 장악하고 있다. 이미 1890년대 초에 카르텔들은 코크스 신디케이트를 조직하고, 그 형태를 본따 석탄 신디케이트가 만들어졌지만 그런 카르텔 조직 방법은 본질적으로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19세기 끝무렵의 큰 호경기와 1900~3년의 공황은—적어도 광업과 철강업에서는—최초로 완전하게 카르텔의 보호 아래 있었다. 당시만 해도 그것은 아직 새로운 것으로 보였지만, 이제 경제활동 대부분이 자유경쟁에서 통상적으로 벗어나 있다는 것은 일반적인 인식에서 자명한 사실이 되었다.“
따라서 독점의 역사를 핵심적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1860~70년대: 자유경쟁의 발전이 가장 높이, 정점에 도달한 단계. 독점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맹아에 불과하다. (2) 1873년 공황 이후: 카르텔들은 장기간 발전했지만 아직 예외적이다. 그것들은 아직 견고하지 않으며, 일시적 현상이다. (3) 19세기 끝무렵의 호경기 및 1900~3년의 공황: 카르텔들은 모든 경제활동의 기초들 가운데 하나가 된다. 자본주의는 제국주의로 전화되었다.
카르텔들은 판매조건, 지불기한 등에 대해 서로 협약을 맺는다. 판매영역을 자기들끼리 나누고, 제품의 생산량을 결정하며, 가격을 정하고, 개별 기업들에게 이윤을 분배하는 등.
독일에서 카르텔의 수는 1896년에 약 250개, 1905년에는 약 1만 2천 개 회사가 참가한 385개로 집계되었다.³⁴ 하지만 이 수치들은 실제보다 낮춰 잡은 것임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 앞에서 인용한 1907년 독일 산업통계 수치를 보면 이 1만 2천 개 거대기업들에 증기력과 전력 총량의 절반 이상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미합중국에서 트러스트의 수는 1900년에 185개, 1907년에 250개로 집계되었다. 미국의 통계는 모든 제조업체들을 개인회사와 주식회사로 분류한다. 1904년에는 23.6퍼센트, 1909년에는 4분의 1이 넘는 25.9퍼센트의 업체들이 후자에 속했다. 그 회사들에 속한 노동자들은 1904년에 70.6퍼센트, 1909년에 75.6퍼센트로 전체 노동자의 4분의 3을 차지했다. 생산규모는 각각 109억 달러와 163억 달러, 즉 총생산액의 73.7퍼센트와 79.0퍼센트를 기록했다.
특정 산업분야 총생산의 7, 8할이 카르텔과 트러스트의 수중에 집중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라인-베스트팔렌 석탄 신디케이트는 1893년 설립 당시 그 지역 전체 석탄 생산의 86.7퍼센트, 1910년에는 이미 95.4퍼센트의 집중을 이루었다.³⁵ 이런 식으로 탄생된 독점은 엄청난 수익을 보장하고, 막대한 규모의 기술적 생산단위들을 형성하게 된다. 미국의 유명 석유 트러스트인 스탠더드 석유회사³⁶는 1900년에 설립되었다. "그 회사의 자본금은 1억 5천만 달러에 달했다. 그리고 1억 달러 상당의 보통주와 1억 600만 달러 상당의 우선주가 발행되었다. 1900~7년 사이에 우선주에 지불된 이익배당은 각기 48, 48, 45, 44, 36, 40, 40, 40퍼센트로, 그 총액은 3억 6,700만 달러였다. 1882년부터 1907년까지 8억 8,900만 달러의 순이익이 났으며, 그 중 6억 600만 달러가 이익배당금으로 지급되었고, 나머지는 자본준비금으로 적립되었다.³⁷ 1907년 "철강 트러스트(유나이티드스테이츠스틸³⁸)에 속한 업체들의 노동자와 사무원들은 모두 합하면 21만 180명이나 되었다. 독일 광산업의 거대기업인 겔젠키르헨 광산회사에는 1908년 노동자와 사무원이 4만 6,048명이 있었다.³⁹ 이미 1902년에 그 철강 트러스트는 철강 900만 톤을 생산했다.⁴⁰ 그 생산량은 1901년에 미국 철강 총생산량의 66.3퍼센트, 1908년에 56.1퍼센트를 차지했고⁴¹, 각 해당 연도 철광석 채광량의 43.9퍼센트와 46.3퍼센트를 점유했다.
트러스트에 대한 미국 정부위원회의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쟁자들에 대해 트러스트들이 갖는 우월성은 거대한 경영 규모와 우수한 설비장치에 기초한다. 담배 트러스트는 설립 이래 손작업을 기계작업으로 대대적으로 교체하기 위해 모든 곳에서 모든 노력을 다했다. 담배 트러스트는 이 목적을 위해 담배 가공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특허라면 전부 다 사들였고, 거기에 엄청난 금액을 지출했다. 많은 특허들이 처음에는 쓸모없는 것으로 판명되었고, 트러스트에서 근무하는 기술자들에 의해 개선되어야 했다. 1906년 말에는 오직 특허 매점만을 위해 자회사 두 개를 만들었다. 역시 기계화를 목적으로 트러스트는 자체 주물공장, 기계공장, 수선공장 등을 세웠다. 브루클린에 있는 이런 시설 중 한 곳은 평균 300명의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다. 여기서는 담배, 소형 시가, 코담배, 포장용 은박지, 담뱃감 등의 제조에 관련된 발명 실험들을 한다. 그 발명품들을 개선하는 일도 그곳에서 하고 있다."⁴² "그리고 다른 트러스트들은 이른바 기술개발 기술자(developing engineer)들을 고용하고 있는데, 이들의 업무는 새로운 생산 방법을 고안해내고 기술개선을 시험하는 것이다. 강철 트러스트는 자사의 기술자와 노동자들이 기술을 높이거나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발명을 할 경우 큰 상금을 지급하고 있다."⁴³
독일의 대공업, 예컨대 최근 몇십 년 동안 엄청나게 발전한 화학공업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기술개선 사업이 진행되었다. 화학공업에서는 이미 1908년에 생산의 집중 과정이 두 개의 주요한 '그룹'을 탄생시켰는데, 이들 역시도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독점으로 발전해갔다. 처음에 이 '그룹'들은 자본금 규모가 각기 2천만~2,100만에 이르는 대규모 공장들이 두 쌍으로 짝을 이룬 '2자 연합'이었다. 즉 한쪽에는 회히스트의 옛 마이스터 공장과 프랑크푸르트의 카셀라 공장이 연합했고, 다른 쪽에는 루드비히스하펜의 아닐린소다 공장과 엘베르펠트의 옛 바이어 공장이 연합했다. 이후 한쪽 그룹은 1905년에, 다른 쪽 그룹은 1908년에 다시 각기 다른 대공장과 협정에 들어갔다. 그 결과 자본금이 각각 4천만에서 5천만 마르크인 '3자 연합'이 두 개 생겨났고, 이 두 '연합' 사이에서는 이미 '수렴', 즉 가격 등에 대한 '협약'이 시작되고 있다.
경쟁은 독점으로 전화하고 있다. 그 결과 생산의 사회화가 엄청난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기술을 발명하고 개선하는 과정도 사회화된다.
이는 미지의 시장에 팔기 위해 생산하는, 서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분산된 생산자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이전의 자유경쟁과 완전히 다른 것이다. 집중은 한 나라뿐 아니라,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세계 전역의 많은 나라들에 있는 모든 원료 산지(예를 들면 철광석 매장지)를 대략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지점에 이르렀다. 그런 계산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이 산지들은 거대한 독점연합체들의 수중에 장악돼 있다. 시장의 규모에 대한 대략적인 계산이 이루어지고, 이 연합체들은 협약에 따라 그것을 자기들끼리 '분할한다.' 숙련노동력을 독점하고, 최고의 기술자들을 고용하며, 운송로 및 운송수단—미국의 철도, 유럽과 미국의 선박회사—들을 장악한다. 자본주의는 제국주의 단계에서 생산의 가장 광범위한 사회화에 바짝 다가간다. 말하자면 그것은 자본가들의 의지나 의식에 반하여 그들을 어떤 새로운 사회 질서, 완전한 자유경쟁에서 완전한 사회화로 가는 이행의 질서로 끌어들인다.
생산은 사회적인 것이 되고 있지만, 전유(專有)는 개인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 사회적 생산수단들은 소수의 사적소유로 남아 있다. 형식적으로 인정되는 자유경쟁의 전반적인 틀은 남아 있지만, 소수 독점가들의 나머지 주민들에 대한 억압은 백배나 더 무거워지고, 더 부담스러워지고, 더 견디기 어려워진다.
독일 경제학자 케스트너는 '카르텔들과 국외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투쟁'을 다룬 전문적인 저서를 한 권 썼는데, 여기서 국외자들이란 카르텔에 속하지 않은 기업가들을 말한다. 케스트너는 이 책에 "강제적 조직화"라는 제목을 붙였으나, 자본주의를 미화하지 않으려면 당연히 독점가 연합으로의 강제적 종속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도 '조직화'를 위해 독점가 연합들이 사용하고 있는 현대의 가장 새롭고 문명화된 투쟁수단들의 목록을 살펴보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1) 원료 공급의 중단('카르텔 참가를 강제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들 중 하나'), (2) '담합'(즉 소속 노동자들이 카르텔에 속한 기업들에서만 일하기로 한 노동조합들과 자본가들 사이의 협정)에 의한 노동력 공급 중단, (3) 운송수단의 박탈, (4) 판로의 봉쇄, (5) 카르텔들하고만 거래관계를 맺기로 한 구매자들과 계약, (6) 조직적인 가격인하 ('국외자들', 즉 독점가들에 종속되지 않은 기업들을 파산시키기 위해, 일정 기간 원가 이하로 판매하는 데에 수백만을 지출한다. 가솔린산업에서는 40마르크에서 22마르크로, 즉 거의 절반으로 가격이 인하되었던 사례도 있었다!) (7) 신용거래 중단, (8) 불매운동.
우리 앞에 더 이상 소기업과 대기업의, 기술적으로 뒤처진 기업과 기술적으로 앞선 기업의 경쟁적인 투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앞에 존재하는 것은 독점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대해 독점이 행하는 교살, 억압, 전횡이다. 이 과정은 어느 부르주아 경제학자의 의식에 이렇게 반영되고 있다.
케스트너는 서술한다. "순수한 경제활동의 영역에서도 종전 의미의 상업 활동에서 조직적·투기적 활동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가장 큰 성공을 누리고 있는 것은 자신의 기술적·상업적 경험을 토대로 구매자들의 요구를 가장 잘 판단하여 잠재 상태에 있는 수요를 발견할 수 있는, 다시 말해 그것을 '열어놓을' 수 있는 상인이 아니라 투기의 천재(?!)들이 다. 개별 기업들과 은행들 사이의 조직적인 발전, 일정한 관계 가 맺어질 가능성 등을 예측하거나 적어도 예감 정도는 할 수 있는……"
이것을 일상적인 말로 번역하면 이러한 뜻이 된다. 즉 자본주의의 발전은, 상품생산이 여전히 '지배적이고' 모든 경제의 기초로 간주되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파괴되었으며 주요한 이윤은 금융 조작의 '천재'들에게 돌아가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러한 금융 조작과 협잡의 토대는 당연히 생산의 사회화다. 하지만 이렇게 사회화에까지 도달한 인류의 거대한 진보는 투기꾼들만 이롭게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뒤에서,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에 대한 소시민적·반동적 비판자들이 바로 이러한 '토대 위에서'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공정한' 경쟁으로 되돌아가려고 꿈꾸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케스트너는 말한다. "카르텔 형성의 결과로서 나타난 지속적인 가격상승은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 특히 석탄, 철, 칼륨에서만 관찰되었고 제조상품에서는 관찰되지 않았다. 가격상승과 관련된 이윤의 증가 역시 생산수단을 제조하는 산업에 국한되었다. 우리는 이 관찰에 다음과 같은 점을 덧붙여야 할 것이다. 카르텔 형성 덕분에 (반제품이 아닌) 원료를 가공하는 산업들은 완제품 산업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여 높은 형태로의 이익을 얻었을 뿐 아니라, 그 산업들에 대해 자유경쟁에서는 없었던 지배적 위치를 얻게 되었다."⁴⁵
앞에서 강조 표시를 한 단어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마지못해 아주 드물게 인정하는, 카를 카우츠키를 필두로 하는 현대의 기회주의 옹호자들이 어떻게는 발뺌하며 회피하려 해 쓰는 사태의 본질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배와 그에 결부된 강압은 '자본주의 발전의 최근 단계'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이것은 전능한 경제적 독점의 형성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 발생했다.
카르텔들이 이용하는 수단의 또 다른 예를 살펴보자. 모든 원료산지들이나 주요 원료산지들을 장악할 수 있는 곳에서 카르텔의 출현과 독점의 형성은 특히 용이하다. 그렇다고 원료산지를 장악하는 것이 불가능한 다른 산업분야에서는 독점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일 것이다. 시멘트산업의 원료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독일에서 이 산업은 강력하게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공장들은 남독일 신디케이트, 라인-베스트팔렌 신디케이트 등 지역 신디케이트로 연합하였다. 가격은 독점으로 고정되어 있다. 화차 한 량분당 제조비가 180마르크인데도 가격은 230~280마르크다! 기업들은 12퍼센트에서 16퍼센트의 이익배당금을 주고 있다. 게다가 현대의 투기 '천재들'이 분배받은 배당금 외에도 거액의 수익을 주머니에 챙길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수익이 높은 산업에서 경쟁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면 독점가들은 간계를 부리는 것도 마다치 않는다. 산업의 상황이 나쁘다는 거짓 소문을 유포하고, 신문에 "자본가들이여! 시멘트사업에 자본을 투자하는 것을 삼가라"고 익명의 경고를 게재하며, 종내에는 '국외자들의'(즉 신디케이트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의) 회사들을 매수하고 그들에게 6만~8만에서 15만 마르크에 이르는 '양도금'을 지불한다.⁴⁶ 독점은 어디에서나 양도금을 지불하는 '온건한' 방식에서 경쟁자들에게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하는 미국식 방법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온갖 수단을 다해 자신의 진로를 개척해나간다.
카르텔이 공황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든 자본주의를 미화하려고 하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퍼뜨린 이야기다. 반대로 몇몇 산업분야에서 형성된 독점은 자본주의 생산 전체에 고유한 무정부성을 강화하고 더욱 침해하게 만든다. 자본주의의 일반적 특징인 농업 발전과 공업 발전 간의 불균형도 더욱 확대된다. '독일 대은행들과 산업의 관계'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저작들 중 하나를 쓴 아이델스(Otto Jeidels)⁴⁷가 인정한 바처럼, 카르텔화가 가장 고도로 진전된 이른바 중공업, 특히 석탄산업과 철강산업의 특권적인 위치는 나머지 산업분야들에서 "무계획성의 증가"⁴⁸를 불러오고 있다.
뻔뻔스럽게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리프만⁴⁹은 이렇게 말한다. "국민경제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그것은 더욱 모험적인 기업들에게, 또는 외국기업들이나 발전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한 기업들에게, 또는 마지막으로 단지 지역적인 중요성밖에 갖지 못하는 기업들에게 더욱더 의존하게 된다."⁵⁰ 결국 위험성이 커지는 것은 자본의 엄청난 증대와 관련되어 있고, 자본의 증대는 말하자면 물이 쥐에서 흘러넘치듯이 자본이 해외로 흘러가는 것이다. 동시에 급격한 기술발전은 국민경제의 다양한 측면들 사이에 더 많은 불균형, 혼란, 위기의 요인들을 불러온다. 따라서 리프만도 이렇게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인류는 멀지 않은 미래에 또다시 국민 경제조직에 영향을 미칠 기술분야의 대변혁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 전기와 항공 …… "보통 일반적으로 이런 근본적인 경제적 변화의 시기에는 격심한 투기가 일어난다."⁵¹
그런데 공황—대부분 경제적인 것이지만 꼭 경제적인 것만은 아닐 수도 있는 모든 종류의 공황—은 다시 집중으로, 독점으로 가는 경향을 엄청난 정도로 강화시킨다. 1900년의 공황, 우리가 알다시피 현대 독점의 역사에서 전환점 역할을 했던 그 공황의 중요성에 대한 아이델스의 고찰은 매우 유용하다.
"1900년 공황기에는 주요 산업분야의 거대기업들은 물론, 지금의 개념으로는 시대에 뒤떨어진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던 기업들이 여전히 많이 존재했다. 이들은 산업 호경기의 과도기를 타고 높이 오른 순수 기업(즉 결합되지 않은 기업)들이었다. 가격 저하와 수요 감소는 거대 결합 기업들에게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았거나 아주 짧은 기간만 영향을 끼쳤지만, 이런 순수 기업들은 비참한 상태에 빠뜨렸다. 그 결과 1900년의 공황은 1873년의 공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산업의 집중을 초래했다. 1873년의 공황도 좀 더 우수한 기업들을 일정하게 선별하는 역할을 했지만, 당시의 기술 수준으로는 그런 선별의 결과로 공황을 벗어나는 데 성공한 기업들이 독점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런 지속적인 독점은 그 분야의 매우 복잡한 기술, 방대한 조직과 자본력에 힘입어 오늘날의 철강 및 전기산업의 거대기업들에서나 매우 높은 수준으로 존재하며, 기계산업과 일부 금속 분야, 운송산업 등의 기업들에는 좀 더 낮은 수준으로 존재하고 있다."⁵²
독점. 이 말은 "자본주의 발전의 최근 단계"를 설명하는 가장 결정적인 단어다. 하지만 우리가 은행들의 역할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현대의 독점들이 가진 진정한 힘과 중요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극히 불충분하고 불완전하며 빈약한 것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