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당 재정 구조와 소유 재산 형성 


한국에서 모든 정당의 소유 재산 총액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공개된다. 정당은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영리 법인이 아닌 비영리 정치 단체이다. 정치자금법상 정당의 수입은 당비, 국가가 지급하는 정당 보조금 (국고보조금), 후원금 등으로 엄격히 제한되며, 이를 활용한 영리 목적의 투자 행위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투자 대비 이익을 평가하는 개념인 ‘수익률’은 정당 통계에서는 산출되지 않으며, 선관위 역시 ‘정치 자금 수입 및 지출 총액’ 항목으로만 회계 보고를 받아 공개한다.

 

정당의 재산은 각 정당이 소유한 건물의 가액, 토지, 예금 잔액 및 비품 등을 합산하여 매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된다. 정당의 수입·지출 총괄표는 국고보조금, 당비, 후원금 등이며 주요 정당별 자산 (재산) 규모는 다음과 같다.

 

정당 소유 부동산 (당사 건물 등)의 가치는 과거 매입 당시의 가격 또는 공시지가 수준의 정부가액으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실제 가치는 훨씬 더 높다.

 

· 국민의힘: 약 1,146억 원으로,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중앙당사 건물로 (2020년 7월 매입하여 약 440억 원을 기록) 그 외에 시·도당사 부지 및 건물, 정당 경상·선거 보조금 잔액 및 예금 등이 포함된다.

 

· 더불어민주당: 약 626억 원으로,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중앙당사 건물로 (2016년 매입가 약 193억 원으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마찬가지로 부동산 자산과 당비 적립금, 국고보조금 예금 잔액이 자산의 대부분이다.

 

· 소수 정당 및 신생 정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등): 자체 소유한 건물이 없기 때문에 여의도나 시·도 지역 임차 당사의 ‘임차보증금’과 선관위로부터 받은 보조금 중 지출하고 남은 소액의 ‘예금 잔액’, 사무용 집기 (비품)가 재산 내역의 전부이다.

 

정당 재산의 경우 일반 기업의 대차대조표와 같이 분류되어 토지 및 건물 (부동산), 현금 및 예금, 임차보증금, 기타 (비품 및 차량)이 신고된다. 정당은 비영리 단체임에도 정당의 자산이 불어난 데에는 선거 제도상의 특성이 작용한다. 대선이나 총선이 있는 해에 정당들은 의석수에 따라 국가로부터 ‘선거보조금’을 미리 받는다. 선거가 끝난 후, 후보자의 특표율이 15%를 넘으면 국가가 ‘선거 비용’을 다시 전액 보전 (환급)해 준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여유 자금이 정당의 예금 자산으로 쌓이며, 양당은 이 자금을 활용해 대출을 갚거나 당사 건물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재산을 증식해 왔다. 물론 정치자금법에 따라 모든 정당의 세부 수입·지출 장부와 재산 총액 일람표는 누구나 열람하여 확인할 수 있다. 원외 정당의 재산 소유 현황도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자산가가 설립한 일부 정당을 제외하면 장부상 자산이 거의 없는 상태에 가깝다.

 

원외 정당의 재정 구조와 당내 활동의 한계


원외 정당의 경우 자산 형성이 어려운 구조적 요인은 경상보조금이 배제되어 선관위는 매년 수백억 원의 경상보조금을 정당들에 지급하지만, 국회 의석이 확보된 원내 정당들에 우선 배분되므로, 의석이 없는 원외 정당은 이 고정 수입을 전혀 받지 못한다. 선거 때 지급되는 선거 보조금 역시 원외 정당은 소수 예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제외된다. ‘선거비용 보전제도’로 인해 후보자나 정당 득표율이 10-15%를 넘어야 선거에 쓴 돈을 국가가 돌려준다. 득표율이 낮은 원외 정당은 선거에 수억-수십억 원을 지출하고도 단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해 선거가 끝날 때마다 심각한 부채를 안거나 자산이 완전히 파산 상태에 이르게 된다. 더불어 대중적 인지도가 낮아 중앙당 후원회에서도 모금액이 매우 적으며, 법정 모금 한도액을 채우는 경우가 거의 없다. 소수 핵심 당원들의 자발적 당비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이다. 일부 원외 정당의 경우에는 당 대표 개인의 막대한 사재 출연이나 독특한 형태의 기부금으로 인해 원외임에도 수십억 원대의 자산이나 예금을 보유하여 선관위에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

 

특정 정당이나 모든 정당이 해산될 경우 경제적·사회적 이점으로는 재정 환수 효과와 정치 비용 감소 등이 생긴다. 정당법 제48조에 따라 위헌정당해산이 결정될 경우, 당내 채무를 청산하고 남은 모든 잔여 재산은 국고로 귀속된다. 이는 부동산 및 예금 자산 확보, 지급 보조금을 회수하게 된다. 경상보조금도 절감되어 매년 분기별로 정당의 의석수와 득표율에 따라 지급되는 경상보조금 지출이 사라진다. 한국 정부는 매년 수백억 원 규모의 세금을 정당 경상보조금으로 편성하여 지급하므로, 정당 해산 시 개별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정당에 지급되는 수백억 원대의 선거 보조금 지출이 전액 생략된다. 선거 후 득표율 조건 (15% 이상 전액, 10-15% 반액)에 따라 국가가 후보자들에게 돌려주던 선거 비용 보전금 부담도 원칙적으로 소멸한다.

 

선거 관리 및 단속 비용 감소와 사회적 갈등 비용 완화에도 도움을 준다. 정당과 후보자 수가 줄어들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및 ‘지방자치단체’가 선거를 관리하는 데 투입하는 행정 인력, 공보물 인쇄 비용, 투·개표소 운영 비용, 불법 선거 운동 단속 비용 등의 예산이 감축된다. 정당 간의 극단적인 정쟁이나 여론 분열을 막기 위해 소모되던 사회적 비용 (시위 관리 비용, 정치적 소송 비용, 매체 규제 비용 등)이 줄어드는 간접적인 경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는 경제적 이점과 정치 제도적 가치 사이의 상충 관계가 존재한다.

 

2026년도 한국 정부의 총지출 (본예산) 규모는 약 727조 9,000억 원이다. 주 예산 비용은,

 

국방 및 외교·통일 (안보 비용) > 일반·지방 행정 및 치안 (내부 관리 비용) > 국책 채무 이자 및 예비비 (재정 유지 비용)이며, 이 외에도 국가 관리 비용 등이 포함된다. 기본적으로 국세 수입의 핵심은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상속세’ 등 국민과 기업이 법에 따라 납부하는 세금이다. 2026년 기준 정부는 약 390조 원 규모를 국세로 조달하고 있다. 조달 방식에는 세외 수입 및 기금 수입도 포함되며, 서비스 수수료, 벌금·과태료, 그리고 국민연금·고용보험 등 특정 목적을 위해 적립되는 사회보험성 기금 수입이다. 세금과 기금 수입만으로 727조 원의 유지 비용을 모두 충당하지 못할 경우, 정부는 적자국채 발행 (부족분 조달)로 부족한 금액만큼 국가 명의의 채권 (국채)을 발행하여 빚을 내어 비용을 메운다. 이는 장기적으로 세금 부담으로 이어지게 된다.


한국 정치 정당 해산의 이점과 공산당 집권의 목적

 

결국, 사유 재산 폐지와 생산 수단의 전면 사회화가 요구되며, 한국 경제의 중추인 삼성, 현대 등 주요 재벌 대기업과 금융 기관의 소유권은 해체된다. 이는 노동자 공산 국가가 통제하는 국유화를 거쳐, 점진적으로 노동자 평의회가 직접 방식으로 운영하는 ‘사회화’ 형태로 전환된다. 토지 및 부동산의 전면 국유화도 시행되는데, 여의도 금융가, 강남 부동산 등 한국 사회의 핵심 자산 축적의 원인이었던 토지 사유제가 폐지되고 노동자 공산 국가 및 지역 공동체의 소유로 전환된다. 주거는 더 이상 상품이 아닌 기본 권리로 재배치된다.

 

이윤 추구를 위한 이러한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가 해체됨에 따라, 사회적 필요에 따른 생산 체제로 바귀면서 화폐의 점진적 폐지와 ‘노동 시간 바우처’가 도입되어 재화의 가치를 매기던 자본주의적 화폐는 점진적으로 소멸한다. 노동자는 자신이 일한 시간에 비례하는 인증 (바우처)를 받아 공동체 창고에서 필요한 생필품과 교환하는 방식으로 이행한다. 앞서 언급한 국가 유지 비용 (세금 기반의 727조 원)의 개념이 완전히 사라진다. 세금을 걷어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총생산물을 자원 배분 위원회와 노동자 평의회가 직접 필요한 곳 (의료, 교육, 공공 시설 (인프라)에 무료로 직결하는 구조로 바뀐다.

 

마지막으로, 사멸의 시작으로 관료 기구의 해체와 자치적 공동 관리가 실현된다. 국가 사멸의 핵심은 ‘사람에 대한 지배’에서 ‘사물에 대한 관리’이다. 전문 관료와 상비군 같은 물리적 억압 기구가 해체된다. 전문 직업 관료제가 폐지됨에 따라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등 고위층이 해체된다. 모든 행정 업무는 일반 노동자들이 교대로 돌아가며 수행하며 레닌의 주장대로, ‘모든 이가 관료가 되지만 아무도 관료가 되지 않는 상태’로, 이들의 급여는 일반 노동자 평균 임금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된다. 상비군과 경찰도 해체되어 노동자 민병대로 임시 전환되며 징병제 기반의 거대한 직업 군대와 경찰 조직은 해체되고, 지역 및 일터 기반의 노동자 민병대가 치안과 방위를 자발적으로 담당한다.

 

생산력이 극도로 발달하여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공산주의 고도기에 진입하면, 억압 기구로서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국경과 함께 소멸한다. 국가라는 강제력 있는 기구는 사라지고, 순수한 자원 배분과 통계를 담당하는 기술적 위원회만 남는다. 이는 행정 기능의 완전한 사회 이관으로, 지정학적 국경의 소멸에 따라 가장 거대한 국가 유지 비용이었던 ‘분단 비용 (국방비)’은 북조선 체제 역시 자본·국가 해체 단계를 밟으며 ‘한반도 노동자 연방’ 또는 ‘국제 코뮌 연합’으로 흡수됨에 따라 원칙적으로 소멸한다. 한국은 특히 국제 혁명과 함께한다. 그러나 정당 체제 고착이 아닌 국가 사멸을 최종 목표로 하는 공산당의 집권과 사회 변혁은 의회 선거에서 다수 의석을 얻는 수준의 개량주의적 접근만으로는 어렵다. 자본주의 국가 기구는 기본적으로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공고히 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므로, 법적·제도적 집권에서 사회 경제 구조 전반을 아래로부터 재편하는 구체적이고 조직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우선 분단 이데올로기나 반공주의 (레드 콤플렉스)를 정면으로 돌파하고, 자본주의 체제 비판에 대한 대중적 동의를 얻어야 한다. 노동 가치와 소외의 의제화로, 한국 자본주의 모순을 단순히 ‘개혁’ 대상으로 보지 않으며, 생산 수단의 사유제 자체에서 기인하는 구조적 문제임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끊임없는 교육과 선전이 필요하다. 국가가 사회를 통제하는 현 구조를 ‘노동자 스스로 관리하는 사회’로 대체하고자, 국가 기구의 억압성과 비효율성을 폭로하고 사회적 자치 담론을 확장해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권력 기구 구성을 위해 노동자 평의회 형성에서 이중 권력 상태에 대한 사회의 주도권을 두고 평의회의 결정과 정당성을 더 신뢰하도록 만드는 실천적 역량이 요구된다. 이는 ‘현장 평의회’의 중요성이다. 집권 시 자본의 철수나 태업에 맞서 생산력을 보존할 수 있는 실질적 기반이 된다. 한국 경제 구조에 맞춘 이행기에는 공산당 집권 즉시 복잡한 순환 출자로 얽힌 재벌 체제를 해체하고, 이를 사회적 소유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공급망 붕괴나 생산 중단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술 관료 및 현장 노동자 간 정교한 연대와 계획 경제 가이드라인 및 매뉴얼을 수립해야 한다. 기간 산업 (물류·통신·에너지 등) 우선 장업하여 핵심 시설을 평의회 통제하에 단단히 고정하여, 자본가 계급의 저항이나 대외적인 경제 봉쇄 압박을 견뎌낼 수 있는 자급 및 생존 체력을 다져야 한다. 한국은 특히 해외 의존도가 높으므로, 고립된 변혁만으로는 주변 자본주의 국가들의 군사·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실패할 확률이 높으므로, 중국에 대한 체제 비판, 아시아 노동자 계급과의 연대 등 국제적으로 단결과 남북한의 민족 대립에서, 양측 지배 계급에 반대하는 ‘남북 노동자 계급의 공통 투쟁’으로 전환하여 분단 비용과 상비군 해체의 정당성을 동시 확보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결과적으로 공산당이 부상하여 집권 시 단순히 표를 모아 정권을 잡는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국가 기구 없이도 사회가 스스로를 생산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물질적 능력을 노동자 대중이 스스로 증명하고 조직해 내는 장기적인 실천에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7장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반군국주의 과업

  

반애국적인 반군국주의는 독일에서 알맞은 토양을 찾지는 못했고 앞으로도 찾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 국제적인 연대를 소개하고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적인 투쟁을 목적으로 나라들의 평화를 전파하면서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선전은 더욱 더 단계적으로 스며들어야 할 것이다. 위에서 논의했던 반군국주의 강령의 요구는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적절한 기반도 끌어올린다.

 

널리 알리자면 자국에서 모든 해로운 군국주의의 많은 분파들을 평상 시에도 더욱 감지할 수 있으며 더 큰 곤란과도 싸워나가야 할 것이며 그러므로 군국주의에서 계급전쟁적 성격은 더욱 두드러지며 주요한 타격을 개시할 장소는 국내와 국제적인 상황에 따라서도 그때마다 결정할 것이다.

 

독일에서 무슨 모양과 방법으로든 선전을 완성하거나 소개해보든지 군대 내에서 선전을 개시하는 문제는 법적인 한계도 지켜야한다는 건 당연하게 전제해야 하고, 미리 거부하는게 좋다.

 

독일 사회민주주의는 군국주의를 고발하는 자료수집에 관해서는 충분하게 조사하진 않았다. 군 예산, 부차적인 군사적인 부담들의 증가와 군대의 평화적인 발판에 대해서만 더 자세하게 조사했다. 군사적인 부담들과 세금 정책 및 보호 간의 연관들도 면밀한 조사도 기다리고 있고, 무엇보다도 부족한 조사로는 군인들의 학대, 군사적 정의의 착취, 군인들의 자살, 군대 내 위생 상태, 복무 중 발생한 피해, 임금 및 연금 조건만이 아니라 군인들의 고용에서 임금 삭감과 이에 관한 군단의 법령과 파업 파괴자로도 동원하는 군인, 게다가 파업에서 군사적인 개입과 무장한 경찰, 군사적인 거부운동 제도 때문에 발생한 쓰러진 피해자, 정치적 행동에 따른 군사적인 개입, 사회정치적이고 정치적인 투쟁에서 군사회 이용, 다른 나라의 모든 영토에 군국주의, 해군적인 군국주의와 식민지적인 군국주의들로부터 특히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투쟁에 군국주의는 착취한다. 반대하는 군국주의 청년회에 관한 자료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반군국주의 운동에 대립하는 관습의 자료도 적절한 순서로 정리하지도 않았다.

 

이 모든 자료들은 정기적으로 수집하고, 엄선하고 대조해보면서 체계적으로 이뤄내야하며, 일반적인 반대운동도 연관해서 보면 부수적인 문제로 다룰 수는 없다.

 

물론 이런 자료는 우선 일반적인 반대운동, 의회와 언론, 일반적으로 분류해볼 수 있는 전단지들과 회담들에 사용해야한다. 그러나 반군국주의에 직접적으로 분명한 목적과 확실한 방향을 향해서 특히 중요한 인구의 기층에도 침투해 비옥하게 해야한다. 우선 군 복무에 의무가 있는 젊은 사람들만의 문제로만 다루는게 아니라 반군국주의를 젊은 사람들에게 교육하고자 특히 부모들, 특히 여성들에게도 발휘해볼 수도 있다. 또한 젊은 노동자와 실습생들에게 작용을 가하는 나이든 노동자에 대한 문제도 이런 추세에 최대한 활용하는게 좋다. 마지막으로, 군사회 맞선 투쟁은 더욱 활발하고 정기적으로 지속해야한다.

반대운동은 군사적인 불복종만으로는 직간접적으로 어디에서도 호소할 순 없지만 군국주의에서 본질과 계급투쟁에서 군국주의의 역할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한다면 목적에 완전하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이고, 사람들에게 상반적인 자질과 행동들을 효과적으로 전면에 내세울 수 있다면 군국주의에 맞서는 분노와 증오감도 부를 수 있다.

 

법적인 한계에서 젊은 사회주의 기관들도 선전에 주요한 전달자들이어야 하며, 의문의 여지도 없지만 계급의식을 조성해서 군국주의 혹은 군국주의자들을 침식하게 해야한다.

 

젊은 사회주의자 사회들은 반군국주의 정신도 더욱 퍼져나가게 해야하고 책자, 전단지, 강연, 강의과정들로부터 젊은 사람들도 알아볼 수 있게 적절한 지침과 형태로도 전달해볼 수 있다.

축제와 예술적인 흥미들도 같은 목적으로도 활용해볼 수도 있고 사회적인 구성원들을 반군국주의적인 선전자로도 다시 전수받을 수 있다. 청년 사회주의 기관들은 같은 또래의 동급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도 소개하고, 출판물을 퍼뜨리면서 가족, 친구나 친척, 작업장, 공장에서도 지반을 갖출 수 있다.

 

젊은 사회주의 기관은 반대운동을 자체로 회원들에게만 한정하지 말고 할 수 있는 한 멀리서도 확장할 수 있어야한다. 젊은 노동자의 전반적인 대중에게도 호소할 수 있어야한다. 또한 위에서 언급했던 나이든 노동자들에게도 흥미를 끌게할 수 있어야한다. 언론, 전단지, 책자, 정기적인 회담, 공개적인 강연, 예술적인 흥미, 축제의 매체로부터 체계적으로 작업해보는게 좋고 일반적으로 젊은 사람들만이 아니라 성년들에게도 젊은 반군국주의적인 사회주의자들의 반대운동으로부터 설득해볼 수 있다. 훈련병들을 배웅해주거나 분류할 수 있는 모든 시위운동들도 동일한 목적을 제공하는데 수용할 수 있어야한다.

 

추가적으로 당은 지금까지 군인들의 문제를 더욱 체계적인 단계로도 다룰 수 있어야하며 비임관한 장교들도 자신들의 자료로 적극적으로 전달해야하고 의회에서 그들의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관계1)도 얽혀있기 때문에 법적으로 예외적이지 않는 한에서 이들에게 사회적인 동의도 구하려고 노력한다.

 

퇴역 군인들로 특수한 군사회를 설립하는 벨기에의 관습과 네덜란드 사회가 군사회에 반대하는 특수한 과업을 독일에서는 권할 수는 없고 일반적인 정치와 노동조합 기관들에서도 충분하다.

 

다른 나라들에서 발생한 사건을 둘러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얼마나 더 많이 남아있는지도 알 수 있고 위에서 언급한 강령을 살펴보면 당도 반군국주의 영역에서도 수 많은 작업을 해왔고 본분을 다하는데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반군사주의 선전에 대해선 어느 정도 초기적인 단계에 있다.

 

현재로선 이 모든 다방면의 과업을 중심적으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건 분명하며, 중앙에서도 이를 나서서 조절하고 미래적인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이를 위해선 중앙위원회의 설립도 필수적으로 보여진다. 그래야만 모든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반대운동들이 신중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군국주의 선전은 넓은 그물망처럼 전국적으로도 덮어낼 수 있다. 젊은 프롤레타리아들은 계급의식과 군국주의에 대한 원한도 체계적으로 채울 수 있다. 이런 반대운동은 젊은 프롤레타리아들의 마음을 따뜻하게하고 젊은 열의를 불러 일깨우고자 한다. 프롤레타리아 청년은 사회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적인 반군국주의에 일원이다. 모두가 자신의 본분을 다할 수 있다면 반드시 성취해낼 수 있다. 혈기가 있던 사람은 군대에 있다.

 

참조

 

1. 임금, 식사, 의복, 숙소, 처우의 조건들을 개선하고, 복무하는데 있어 덜 힘들게 하고 학대에도 맞서 싸우며, 징계, 처벌, 불평 제기 군사적인 재판 등으로부터 법률도 개혁하고자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6장

 

독일에서 반군국주의와 독일 사회민주주의

 

독일 사회민주주의 강령과 국제 사회주의, 적지만 마르크스주의 학교를 대상으로 한 “정치적 힘의 점령” 즉, 자본주의적인 소수독재제 대 프롤레타리아트들의 힘들 간에 사회적인 상관관계를 철폐하고, 민주적인 프롤레타리아 힘들의 상호관계로 잠정적으로 대체하면서 이는 우선 자본주의에서 소수독재제의 권력에서 가장 중요한 조각인 자본주의적인 군국주의의 철폐도 포함한다.

 

최적의 강령은 특수한 방식으로 군국주의 물음을 다루고, 군국주의와 관련한 특수한 문제와 특수한 목적들을 결정하면서 특수한 반군국주의 선전에 대한 모든 반론들도 원칙적으로 충족한다. “수비적으로 장비들을 착용하는 보편적 훈련을 요구한다. 상비군들을 민병대로 대체한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결정은 사람들로 대신한다. 중재로부터 모든 국제적인 분쟁들도 해결한다.” 그래서 이 강령은 현재와도 가까운 미래에 대한 분명하게 공상적인 견해도 거부하며, 직접적으로 군국주의에도 맞서지만 분류할 수 있는 모든 전쟁을 위한 태세에도 맞서며 자본주의로부터, 정치적이고 국가적인 반동으로부터 유발한 전쟁만이 아니라 모든 전쟁에 참가하고 관여하는 걸 원칙적으로 거부하며 전쟁에 맞서 싸울 뿐만이 아니라 공상적인 방식을 거부하고 실제로도 일어날 수 있는 전쟁과 그로 인한 결과들에도 맞서 싸운다. 그래서 독일 사회민주주의는, 모든 외국의 정당에서 대부분은 압도적이고 심지어 프랑스 정당에서도 헤르베적인 의미에서 반애국적이거나 크로포트킨적으로 반국가적인 건 아니지만, 계급 전쟁의 성격의 결과를 따라서 함께 비애국적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 사회민주주의 당을 반론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적이라는게 당연시한다면 자국에서는 군국주의의 찬칼를 위한 적, 한 마디로 적이며 가장 중요한 과업들 중 하나로는 그 뿌리와 가지를 뜯어야한다. 1900년 파리 회담의 결정을 실행하고자 지금까지도 독일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사회민주주의에 실력있는 지도자들도 독일에서 특수한 반군국주의 선전을 개시하려는 시도에는 반복적으로 저항해왔으며, 독일 사회민주당만큼 전 세계에서 군국주의에 싸우는 사회민주당은 없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대부분 진실이 있다. 독일 의회가 현존한 이래로 독일 사회민주주의는 군국주의에 게 무자비하고 끊임없는 수준으로 비판했으며, 의회와 언론에서 모든 내용들과 오용들과 사회민주주의는 군국주의를 기소하는 방대한 양의 자료도 수집했으며, 그리고 끈질긴 끈기로 전반적인 반대운동의 일환으로 군국주의에 맞서는 투쟁을 수행해왔다. 이에 당은 옹호도 찬사도 필요하진 않은 경의로, 행위들이 이를 대신한다. 그리고 아직은 대규모로 발생한 문제도 보완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전개한 반군국주의는 싸우는데도 성공적이었고 이 투쟁를 형성하는데 일치하는 목적을 추구하면서도 전혀 부인하지도 않았고 그리고 분류하자면 투쟁이 미래에도 절대적으로 필수적이고 매우 유익하면서도 성공적이라는데에는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직은 문제를 해결한 건 아니다. 반군국주의 선전의 가장 필수적인 부분인 젊은 사람들의 교육적인 문제도 간과할 순 없다.

 

 

물론 전반적인 반대운동은 사람들의 눈을 뜨게하고 모든 반자본주의자와 사회민주당원들도 자체로 가장 의지할 수 있는 훌륭한 반군국주의자다. 그리고 일반적인 계몽적인 노력도 반군국주의적인 편견에 대한 모든 의혹을 해결해주지만 일반적인 반대운동으로는 아직 누구에게 호소할 수 있겠는가? 이는 성인 노동자, 남성과 여성의 척도를 정당하고 필연적으로 잘라낼 수 있지만 우리는 성인 프롤레타리아만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인 어린이들, 프롤레타리아인 젊은 사람들과도 함께하고자 한다…

 

젊은 사람들…“사람들은 어린시절이 있었고 미래도 있다.”

 

 

여기에 이어서 부모들도 자녀였으며 자녀들도 부모를 이루는 젊은 사람들도 있다!

 

 

모든 경우에 한 가정의 부모들도 자신들의 능력에 따라 자녀에게도 사회민주주적인 정신을 스며주지 않는 한 비참한 사회민주주의자로 남을 것이며, 자녀들도 사회민주주주의자로도 자라날 수 있다. 또한 프롤레타리아의 젊은 사람들이 성장할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인 조건의 작용과 부모들의 영향도 함께 작용한다는 견해와도 일치하며, 가장 중요하고 동시에 가장 명백한 반대운동과 계몽적인 수단을 이루기도 하며, 당 활동으로부터 영향을 줄 수 없고 원칙적으로 무시해야한다는 반동적인 부분의 모든 시도들도 쉽게 지워버릴 수 있고 자본주의는 어린이들의 정신을 교활한 방식으로 붙잡는다. 그러나 이 주제만을 다룰 수는 없지만 위에서 언급한 사고의 경향을 분명하게 살펴보면 현재에 반대운동이 어디에서 실패하고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고 보다 더 크고 지속적으로 실패하는데 있는 시급한 해결책도 요구할 수 있다.

 

“모든 사회민주주의자는 자신의 자녀도 사회민주주의자로 자라난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지만 이는 우선 심각한 결점이다. 시간과 선의가 주어지더라도 일반적으로 교육적인 과제를 아는 사람은 몇 명이고, 사회민주주의적인 프롤레타리아들은 얼마나될까? 아무리 좋은 의지가 있더라도 교육에 필요한 시간을 가지지도 못하고, 필요한 지식들도 얼마나 가질 수 있을까? 대부분은 계급의식이 있는 아버지가 발휘하는 교육적인 작용보다 계몽적으로는 후퇴하고 있는 여성과 다른 가족구성원들이 아쉽지만 더욱 큰 영향력을 미친다. 당이 의무를 다하고자 한다면 젊은 사람들을 전반적인 방식으로 교육한 후에 노력하여 가정적인 교육도 함께할 준비를 마쳐야만 한다. 특히 반군국주의적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젊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부분적으로 특수한 반대운동도 지속하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서 프롤레타리아 중에서 정말로 계몽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몇 명이나 될까? 사회민주주의적인 비판의 원리들과 사회민주주적인 포부에 대해 이들 스스로가 다른 사람들도 계몽할 수 있을 정도로 알릴 수 있는가? 그리고 평화적인 시기에 얼마나 많은 프롤레타리아가 헌신할 준비를 마치고 꾸준하고 끊임없이, 날마다 지속적으로, 기꺼이 어렵더라도 부지런하게 교육적인 노력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부분적으로만 아는 사람, 더욱 알아간 사람, 덜 알은 사람, 그리고 막대한 숫자로 미적지근한 사람들도 포함한다면 말이다. 얼마나 많은 프롤레타리아들이 여전히도 사회민주주의에 대해 얼마나 문외한가! 여기에 가장 좋은 프롤레타리아 싹으로 가득찬 거대한 벌판이 있으며, 심지어 측량조차 할 수 없고 성인 프롤레타리아트가 퇴보한 부분들까지도 우리들에게 넘어올 때까지 재배를 미룰 수 없는 벌판들이다. 물론 계몽한 부모들의 자녀들에게 작용을 미치는 건 더 쉬우며 할 수 없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젊은 프롤레타리아의 괴로운 부분을 위해서도 노력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젊은 사람들 가운데 반대운동이 필요하다는 건 의문의 여지가 없고 이런 반대운동으로 인해서 대상에 따라 서로다른 생활의 조건들과 조화를 이루며 기본적으로 상이한 방법으로 작업해야하며, 젊은 사람들의 서로다른 견해, 서로다른 성향과 서로다른 성격은 세부적으로 다루어야한다는 추론을 따르며, 일반적인 반대운동과 나란하게 특수한 부분을 부여해야하며 적어도 어느 정도는 특수한 단체들의 손에 맡기는게 좋으며. 당이 직면한 문제들과 결정적인 투쟁들도 더욱 가까워져 오면서 반대운동은 너무 광범위하고 파생하는 많은 결과들을 가져오며 분업할 필요를 더욱 더 강조하며, 상대적이더라도, 상대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분업도 우리는 전혀 모른체하지 않는다.

 

 

이제 한 걸음 더 전진한다면 반군국주의 반대운동은 젊은사람들 내에서 반대운동 가운데 매우 특수하고 독특한 역할을 해준다. 젊은 사람을 교육해보고자 한다면 사회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어려운 계급들에게 자주 호소해야 하며, 프롤레타리아인 젊은 사람들을 더욱 포용하기 위해선 교육적으로 일반적인 노력보다 훨씬 더 멀리 퍼져나가야 하며,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의 교육적인 시설, 교육적인 과정, 강연 과정들에서 자주 접할 수는 없고 젊은 사람들에게 저작을 정기적으로 읽도록 접할 수도 없다. 또한 반군국주의 반대운동은 나이가 들면서는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노력들과 거의 접촉할 수 없기에 젊은 프롤레타리아들에게 호소하는게 좋다. 그렇다, 17세에서 21세 사이에 젊은 사람들이 적절한 대상이다.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노력들보다 훨씬 더 선전적인 성격도 띠고 있다. 이런 반대운동을 형성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어느 정도는 후자의 교육적인 형태에서는 벗어나는게 좋으며, 또한 특수한 위험들도 있기 때문에 분류하자면 일반적인 분투들과는 결합하지 않는게 좋으며 한편으로 이런 일반적인 분투들보다 더 어렵지 않게하는 건 무조건적으로도 필요하고 불신을 초래하지 않고자 하며 또 한편으로는 모든 함정들을 잘 알고 특수하게 전수받은 사람들의 안내에 따라 반군국주의 반대운동을 괴롭힐 수 있는 위험을 최대한 피하고자 단계적으로 조치를 취하는게 좋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반군국주의 자료의 예로 군인들의 학대, 군사적인 정의 등은 너무 방대하고 흩어져 있기 때문에 이 모든 자료를 최대한으로 활용하고자 한다면 단순하게 세분화하고 분업하는게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활용할 뿐만이 아니라 편집하고 엄선해서 모양을 갖추어야한다.

 

반군국주의 반대운동은 성인들 가운데서도 더욱 세부적으로도 효과적일 수 있다는걸 보여주는 바로 마지막 주장이다.

 

그러므로 보답을 줄 수 있는 충분한 작업의 기회도 있다!

 

그리고 독일에서 헌신한 반군국주의 반대운동으로부터 반군국주의를 발전하면서 지금까지 성취했던 성공들은 무엇이 있는가?

 

 

확실히 독일군들의 대부분은 “붉다”. 독일 국가 내 정당 무리들을 한 눈에 흘긋봐도 상태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당연한 사실로 여기는 근거로 “제국 연합”의 유명한 수장인 폰 리베르트 중장(Lieutenant General von Lieber)은 “사회민주주의의 발전과 독일 군대에 미친 작용”이라는 흥미로운 화제의 책을 쓰고자 펜을 들었다. 지금은 사회민주당 배신자인 심지어 막스 로렌츠(Max Lorenz)조차도 무력감 때문에 경멸하고 있으며, 그의 고백에 따라 한때는 헌신적이었던 신봉자를 불태우고 있고, 폰 아이히혼 장군(General von Eichhorn)은 1906년 가을에 군대에 반사회민주주의적인 훈련교육을 신봉하도록 도입하고자 했다. 확실히 독일 유권자들의 3분의 1은 즉 25세 이상의 독일 남성 유권자들은 1903년 독일의회 선거에서 거의 사회민주주의에 투표한 건 사실이며 물론, 적어도 당분간은 사회민주주의가 나이든 “계급들”보다 젊은 “계급들” 가운데서 더 강력한 지지를 얻는다는 건 전반적으로도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비율이 21-22살의 “계급들”이라서 좋은지에 대한 여부는 의문스럽다 또한 이런 젊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확신이 단단한 요소에는 전혀 속하지 않는다는 걸 매우 분명하게 해야하고, 그리고 사회민주주주의에 투표를 던지거나 실제로 사회민주당원으로 활동하는 건 굉장한 차이가 있으며 혹은 군대 내에 반군국주의의 여파로 뒤따른 모든 개인적인 위험에도 마주할 준비를 마쳐야한다. 심지어는 “심리”, “제안”, “피의 논리”로 다른 지면에서도 다뤘지만, 규율을 무너뜨릴 수 있거나 강력하게 기여하는 요인일 수 있으며, 계산적으로도 군대의 3분의 1이라도 이런 영적이고 도덕적인 정신적인 상태로 유지할 수 없게하거나 적어도 자국의 적에 맞서, 노동운동에 맞서, 쿠데타로, 폭력적이고 위헌적인 행동으로 고용도 어렵게 한다는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특히 전쟁을 위해 예비군과 예비역을을 동원하는 경우에는 군국주의에 더 부정적일 수 있는 건 사실이다. 1906년 10월, 보르베르트(Vorwaerts)의 한 군사적 협력자는 전쟁 시 소집한 예비역들과 예비군 병사들 가운데 지목하면서 이 경우에는 전체 군대의 대략 5분의 4를 이루며 적어도 100만 명은 여전히 군국주의적인 의미에서도 의지할 수 없다고 간주할 수 있다고 했으며 분명하게, 이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심지어 군국주의적인 대중의 “제안”, 또한 집단적인 정신병을 인정하면서도 숨길 수는 없다. 그리고 지휘권을 가진 군국주의적인 당국의 “제안”은 여기서도 군사적인 부역자들의 계산에도 큰 흠집을 낼 수 있다.

 

여기서 달성했던 건 노동운동 내에서도 전반적인 선전의 수단들로부터 성취할 수 있었다. 미래의 군인들에게도 특히 호소하면서도 지금까지는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선전가의 활동으로 이뤄낸 건 거의 드물며, 잘 알려진 “군 복무 의무자들을 위한 안내서”(Guide to Those Liable to Military Service) 외에도 1906년 여름에 당 집행위원회가 발행했던 전단지는 이보다 적절한 건 알지 못할 정도이며 두 출판물 모두 군대에 복무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법률적인 조항만을 다루고 있다. 진화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모든 걸 저절로 이뤄질 수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니며 분류하자면 이런 정적주의와 운명론은 역사적인 유물론의 의미에서 심각한 실수라는 건 사실이며, 모든 선전의 뒷처리들도 마찬가지고 일반적인 반대운동만이 아니라 특수한 반군국주의 선전도 정당할 수 있지만 독일 내 반군국주의 선전을 보다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개선해야하는 건 사실이다. 독일 남부에 “젊은 수비대”는 용감하게 문제의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한 공로도 있으며, 물론 작은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곧 이어질 것이고, 목적이 어렵다면 곧바로 활동적인 지원도 찾아봐야 한다. 독일에서도 무정부주의적인 반군국주의 싹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독일에 사회민주주의도 독일 노동운동의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핵심이자 정예부대인가?”라는 질문도 계속 던지고 있으며, 지나치게 조심하거나 확신하지도 않으며 문제를 밤늦게까지 씨름하고 해결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부족하게 무장했지만 모든 힘과 전투적인 방법으로 최대한 발휘하며, 세계대전이나 러시아 개입1)이라는 사실과도 마주했으며 어느 정도는 피해낼 수 있었지만, 그리고 독일 사회민주주의도 여기에 책임져야하는가?

 

그리고 마침내, 독일 노동자들은 반군국주의 선전의 시야에도 떠오른 경찰의 노동자 대학살에 충분하게 박차를 가할 준비도 되지 않았는가?

 

이대로 둘 순 없기에 독일 사회민주주의는 군국주의도 평화를 바란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고 말을 내뱉도록 허용할 수 없고 눈감을 수도 없으며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위험한 군국주의를 닿는 한 미리 줄여보고자 서둘러 반군국주의 선전을 개시하라!

 

그리고 분류하자면 독일에서 선전은 특히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뒤로 미룰만한 이유도 없으며 반대로, 오히려 가속하여 전진하고자 하는 동기여야한다.

 

독일 프롤레타리아가 고통스러워하는 자국의 정치적인 상황은 자포자기할만큼 절박해졌으며 독일 프롤레타리아트가 활동할 시기도 이제 충분히 무르익었다.

 

참조

 

1. 이런 희한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건 의문의 여지가 없으나 1906년 11월 4일 독일의회에서 부엘로우(Buelow) 왕자가 발표한 이후에도 의심스러운 건 줄지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5장

 

특수한 반군국주의 선전을 위한 요구

 

반드시 군국주의는 내부에서 자멸하고 분열하는 많은 병균들을 품고 있으며 틀림없이 전반적인 자본주의 문화에도 서로를 산산조각낼 수 있는 모순적인 요소들도 많이 내포하며 그 중에선 작지 않게는 과학적, 예술적, 윤리적인 진형의 경향들도 군국주의에 맹공격을 가할 수 있다. 이를테면, 짐플리치시무스(Simplicissimus) 저작을 훼손하는 활동도 결코 과소평가할 순 없다.1) 크롬웰(Cromwell)의 역사관에서 1790년 프랑스와 1806년 독일의 역사는 얼마나 군국주의 체제가 더럽고 썩어서 그 자신도 무너지는지를 잘 알려준다. 물론 착상의 일종으로 사람들과 국가 권력 가운데 모든 피비린내 나는 분쟁들에서 고유한 혈액의 심리가 활발하고 강력해지면서 혈액의 최면술이나 심지어는 안드레예프가 언급한 세력들의 상관관계를 결정적으로 뒤집을 수 있는 피의 논리가 바로 있다. 이 모든 건 그 자체로는 유기적인 분열 과정의 일부로 선전의 필요에 대한 물음과 아무런 연관은 없으며, 자본주의에서 모든 서로다른 생활의 모습들도 마찬가지이다. 이 모든 걸 훌륭한 반대운동들의 틈새와도 잘 연관할 수 있어야한다.

 

군국주의에서 특수한 위험을 보여줄 수 있으며 프롤레타리아트는 최종적으로 이빨을 드러내고 무장한 도둑과 마주하고 있으며, “돈이냐 목숨이냐”(la bourse ou la vie)지만 “돈이고 목숨이고!”(la bourse et la vie) 심지어 도둑의 도덕도 앞선다. 군국주의는 미래에 큰 위험일 뿐만이 아니라 심지어는 타격하지 않더라도 현재에도 실재한다. 군국주의는 경제적인 생활에도 희생적인 제물만이 아니라 문화적인 발전에도 흡혈귀이고 계급들로 모으는 주된 거짓말쟁이다. 군국주의는 또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운동을 형성하는 계급투쟁의 전술들에서 마지막 비밀이자 공개적인 규제자이기도 하다. 모든 중요한 물음들도 자본주의의 잔혹한 권력으로 주된 기반인 군국주의로부터 결정한다. 군국주의는 반국주의 활동들도 무력화할 수 있으며, 군국주의는 무더위 속의 태풍이 엄습하고 방해하면서 당 활동은 부진해지고 의회주의는 더욱 더 나태해진다.

 

군국주의의 약해지게 하는 건 할 수 있는 한으로 평화롭고 유기적으로 발전하거나 적어도 할 수 있는 한으로 무력적 충돌도 제한하고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생활과 당 투쟁으로 신선한 생활에도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걸 의미한다. 군국주의에 맞서 무자비하고 체계적으로 싸워온 결과로 당은 튼튼해지고 혁명적인 정신으로 스며들면서 혁명적인 정신에도 활력을 돋구는 원천이다.

 

이 모든 걸 이루는데 필요한 군국주의와 싸우는데만이 아니라 특수한 방식으로도 싸워나간다. 이런 많은 파생한 결과들을 가지는 위험한 구조는 대담하고 대규모로도 강력하게 다뤄야만 대처할 수 있고 군국주의에 부합하는 행위도 구석구석 도처에서도 지칠 줄도 모르고 많은 파생한 결과들도 여전히 주목받는다. 군국주의에 맞서 싸우는데 흔한 류로 반대운동의 위험한 여건보다 더욱 탄력적이고 적합한 특수한 행동을 취하도록 강요한다. 독일에서는 대다수 사람들이 이런 개념에 맞서고자 싸우고 있으며 지금도 노력하고 있으며, 마지못해 이겨낸 모든 의심과 염려를 불식하고자 여성과 젊은 사람들에게도 특수한 선전도 펼친다. 농업 노동자들 가운데서도 반대운동만이 아니라 개별적인 수공예품들로 노동조합 선전도 세부적으로 다루었으며 마침내, 다른 나라들에서도 성공적으로 해낸 반군국주의 선전도 짚어볼 수 있으며 아마도 만하임에서 부결했던 114개의 동의안에도 빠르게는 시일 내에 기본적인 발상에 대한 문제도 전반적으로 알아낼 것이다.

 

분류하자면 이런 행동은 1900년 국제 회담에서 만장일치로 해결해서 잘 알려진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의무이기도 하다.

 

이런 특수한 선전에 대한 요구가 군국주의에게 역사적은 아닌 무정부주의적인 개념과 전혀 관련은 없다. 우리는 자본주의 아래에서도 군국주의가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가장 분명하게 의식하며 잘 알고 있고 물론 우리는 군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일부에만 불과하기 때문에 자본주의보다 우위에 있는 수준에 놓는 먼 발상도 전혀 가지지 않는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본주의에서도 특히나 해롭고 위험한 삶의 표시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우리의 전반적인 반대운동은 형태도 구체적으로 띠면서 자본주의적인 삶의 표시에도 직접적으로 맞선다. 우리는 반군국주의 세력과 함께 싸우면서도 흔한 정치 투쟁과는 별개로 한계를 지적할 수 있으며, 즉 반자본주의적이고 반군국주의적이며, 노동조합 투쟁과 협동조합과 교육적인 투쟁도 함께하면서 나란하기를 바란다.2)

 

반군국주의는 역사적으로 본래 이론적인 일반론에서도 중요하고 효과적이고 실천적인 운동으로도 성장한다면, 반군국주의는 모든 곳에서도 자라날 수 있으며, 연대한 민병대의 군대를 사용하면서도 자국의 적에 맞서면서 함께하는 건 물론이고, 국가들이 특수한 반군국주의 선전에 맞선다는 건 단 하나의 중요한 근거도 없다. 지금까지도 이런 군대 투입들을 실제로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으며, 또는 너무 오래 전에 발생해서 사람들의 의식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불을 질러 타오른 후에도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 건 언제나 사회민주주의가 자부할 수 있었다. 반대로 역사와 사회학, 비슷한 정당들의 경험들에서도 배우고 미래를 멀리 내다볼 수 있었으며, 그리고 이런 경험으로 훨씬 나은 전진을 할 수 있었다. 역사, 사회학, 이런 경험은 반군국주의에 대해서 참으로 분명하게 피력하며. 시기적으로도 무르익었다.

 

참조

 

1. 폰 제플린 소장(Major General von Zepelin)은 <교차로>(Kreuzzeitung), 1906년 12월 23일 자에서 이 위험을 세부적으로 기록했다.

 

2. 위에서 특수한 반군국주의 선전이 필요한 추가적인 이유로는 p.165에서부터 이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4장

 

반군국주의 전술들.

 

반군국주의 자체로는 구체적으로 프롤레타리아적이거나 혁명적이지도 아니지만 군국주의도 구체적으로 부르주아적이거나 자본주의적이지도 아니다. 이를테면 1812년 9월에 에른스트 모리츠 아른트(Ernst Moritz Arndt)가 쓴 “군인들을 위한 문답서”에서 배반한 왕자들에 맞서 반역을 위해 공개적으로 군인들을 소집한 러시아의 데카브리스트(Decembrists)와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의 지나간 과거를 떠올리면 충분하다. 더욱 결정적인 증거는 근래에 러시아 혁명이 준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반군국주의에 국한하고자 한다.

 

해외의 군국주의에 맞선 전술들.1)

 

반군국주의의 최종적인 목적은 군국주의의 철폐, 즉 모든 모습의 군대를 폐지한다. 군대에 대한 요구들과 함께 묘사하거나 군국주의의 다른 모든 표명들도 무너져야하며 실제로는 군대의 존재에 있어선 부수적인 결과들일 뿐이다. 집이 무너지면 지붕도 함께 가라앉는다.

 

이런 목적은 오직 프롤레타리아의 관계에서 군대를 동원할 필요를 제외할 수 있는 국제적인 상황을 전제할 때만이 프롤레타리아로부터 즉시 성취할 수 있으며, 이 사례에서 프롤레타리아의 관계는 결코 민족적인 관계들에서도 반대할 필요도 없어진다.

 

자본주의를 위한 군사적 조직을 필요로 한다는 건 논리적인 견해에서 할 수 있는 충돌을 줄여나가거나 동일한 규모에서 국제적인 군비축소로 제거할 수 있다. 할수 있는 충돌을 줄여나가는 건 애초에 지구로부터 장래를 지나서 강대국을 신뢰하는 확장 정책을 단념하는 걸 의미하며, 이는 끝으로 세계 연방 국가의 창설과도 같다.

 

그러나 이는 당분간 “영구적인 상태”에 도달하진 못하고 고유한 자본주의적 세계 정책을 대체해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최종적인 목적에 이를 때까지는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미래의 낭만적인 꿈이다.

 

그리고 국제적인 군비축소와 관련해서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이는 군사적인 국가들이 군국주의적인 경쟁을 단념해야 할 뿐만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국가들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이로부터 개별적인 군대들에 비례해서 파견대를 설립과 관련해선 중재적인 제안이 발생한다. 군비축소는 자본주의에서 지배계급들이 군사적인 최후의 수단에 호소하도록 유도하며 즉 생존적인 사실관계들에서 자본주의가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관계들 중에서 특히 확장 정책에서도 많든 적든지 국제적인 관계들을 분명하게 포기한다는 걸 의미한다. 이 모든 걸 자본주의의 지배 하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믿음은 전 세계에 걸쳐 자연적이고 정치적인 영구적인 상태에 이르기 전에는 단순한 미신에 불과하다. 물론 세계 정책에 상반해서 세계 연방을 지지하는 영향력에는 후진국에서도 프롤레타리아가 외교적인 정책에 미치는 영향력도 더욱 강해지고 발휘하고 있다. 전쟁의 위험들을 줄여나가고 세계적인 정책을 평화적인 정책으로 전환하는데 있어 프롤레타리아트의 영향력도 커질 수 있지만 보나파르트주의적인 함정들의 위험도 커진다. 따라서 일어날 수 있는 전쟁을 총체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전쟁을 제거하는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역시나 반군국주의도 현존하는 군대들과 행동을 무력화하거나 일격을 가하는데 성공적이라면 국제적으로도 적합한 규모의 수단들로도 군비축소를 가져올 수 있다. 이는 헤르베(Hervé)의 요구들이면서도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직접적으로 나아간 그의 발상에선 본질이다. 계획의 실행을 두고는 다소 무거운 반론들도 많이 제기했다. 다음은 군축과 혁명의 조합을 포함하는 제안에는 적용할 수 없지만 이런 반론들 중에선 가장 무거운 반론이다. 가장 진보적인 국가들에서도 파업 중에는 엄밀하게는 문명화한 세력들도 상대적으로 가장 약해질 수 있어 저급한 문화권을 포식할 채비를 갖춘 파업 파괴자들도 거의 대부분은 늘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제적인 규모로 완전하고 보편적인 군축을 가져올 순 없다.

 

그러나 헤르베의 발상에는 원칙적으로 프롤레타리아의 사례에서 어떠한 상황이나 경우에도 민족이 그 자신을 보호하는데 흥미가 없어질 때만 채택할 수 있다. 그리고 주요한 논쟁은 이를 두고 매우 일관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 논쟁에서 카우츠키의 “현실정치”는 공격적이고 수비적인 전쟁 가운데서 표면적이고 오해하기 쉽게 구분하는데서 정확히 만족하진 않는다. 사회민주주의가 실현하려는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영구적인 상태와 사회에서 계급적 성격의 폐지가 국제적으로도 실현할 때까지는 사회민주주의조차도 스스로가 차단할 수 없는 일어날 수 있는 전쟁이 현존한다는 실질적인 입장을 알아내지 못하고 있는 욘느(Yonne)연맹의 과도한 반애국주의보다는 확실히 우선할 만은 하다. 다른 지면에서도 언급했지만 두말하지 않아도 자본주의 아래에서 전쟁의 일반적인 원인들에 프롤레타리아는 전쟁과는 무관하며, 더욱 온 힘을 다해서 전쟁에 반대해야할 정도로 구성했다. 그렇다고 모든 전쟁들이 프롤레타리아에 맞서는 직접적인 행위라는 건 부정확한 사고다. 보나파르트주의적 의미에선 물론할 수도 있으며 보나파르트주의는 “현재에도 늘”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세계 정책과 연관해서 전쟁의 원인들에 대해선 필수적으로 세계 강대국들의 자본주의적 계급들 간에는 이익을 위한 성과들을 두고 다툰다. 물론 이러한 전쟁의 결과와 과정에서 반란과 혁명도 발생할 수 있고 교전 중인 국가들이 자국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맞서 무기들을 되돌리는 요구를 강요할 수도 있으므로 프롤레타리아에 반대하고자 교전 중인 국가들 간에는 지배계급들의 결속도 이뤄지지만 대부분의 사례들에선 이는 전쟁의 중지로 이어지는 추세에 있다. 그리고 예상했든 말든 모든 운수가 전쟁에서 자본주의적 동기들에 기반하는 건 당연하며 보나파르트주의적 결과도 생산하는 반면에 전쟁이 불리하게 진행해도 문화적인 피해는 분명하지만 아무튼 자본주의적인 반동을 전복할 수 있는데 조화를 둔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트는 전쟁에 맞서는 강력한 동기를 지니면서 여기저기서도 전쟁에 맞서 싸우는 흔적을 남긴다는 걸 쉽게 품을 수 있고 추천한다. 사고의 선각자이자 격려자인 헤르베주의는 소중한 사명을 지니고 이를 완수한다.

 

우선 전쟁의 분류하고 구분하고자 한다...후에 이를 어디에서 군축에 대해 원칙적으로 분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물론 원칙적으로 전쟁에 대해 취하는 태도에 대한 물음은 가장 실제로도 중요하기도 하고 단순한 이론적인 추측도 아니다. 반면에 구체적인 사례가 주어졌을 때 그 자체로 해결책을 제시하는게 아니라 구체적인 사례는 상황에 알맞은 동요로 인해서 명료한 통찰력도 흐리게 하는 경향을 쉽게 가져온다. 프랑스 독일 전쟁과 헤레로(Herero) 반란이 일어났을 때 독일에서 당내에 발생한 사건은 수비를 늦추지 말고 원칙의 물음을 정리하라고 경고한다.

 

 

또한 원칙적으로 바람직한게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과는 별개로 실제로 성취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개별적인 사례에 대해서도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경의를 표하면서도 헤르베는 위험한 착각들도 소중하게 여긴다. 시간적으로 노동계급에게도 유해한 모든 전쟁에 맞서는 총파업과 군사적인 파업을 감행할 때가 아직 무르익진 않았다.

 

헤르베는 “활동적인 반군국주의와 반애국적인 반대운동의 산맥이 마호메트(Mahomed)에게 올 거다!”라고 외친다. 여기서 헤르베는 무정부주의적 색채를 보여준다. 압도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대중이 사회민주주의적 의미에서 아직은 계급의식이 없고 깨닫지 않았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프롤레타리아가 격렬한 맹목적인 애국주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침착하게 단념하고 준비할 뿐만이 아니라 정신을 차리고 반애국적인 행동에도 나설 수 있을까. 완전한 성취들은 군축의 성공과 군축의 조치만으로는 도달할 순 없으며, 노동자 계급이 차지하는 교육과 훈련의 조치들이 정비례한다면 가장 후진국의 모든 나라들이 자신들을 가장 잘 방어할 수 있다. 이런 행동은 전쟁에 참전한 국가들에서 광대한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의 훈련과 투쟁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거의 고르게 최고 수준으로 높이지 않는 한에서 문화적으로 낙후하는 요인일 수 있다. 노동자의 단체와 보편적이고 혁명적인 계몽은 전쟁 시에 성공적인 총파업과 군사적 파업을 위한 전제적인 조건이다. 이를 위해 단지 반군국주의 선전까지 활용한다면 더욱 멋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프롤레타리아가 이런 행동들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면 정치적인 힘을 획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발생했을 때 일반적인 획득보다도 프롤레타리아의 힘을 발휘하는데 더욱 불리하게 발휘하는 조건도 없다. 그리고 군사적 파업과 반란을 결합하려는 헤르베의 계획과 관련해선 즉 정치적인 힘을 장악하고 혁명이 스스로를 수비할 수 있도록 하려는 시도는 순전하게 논리적으로도 문화적으로 낙후하는 요인은 아닐 것이다. 단순한 군사적인 파업이나 총파업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제안을 국제적인 규모로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과는 별개로, 사회적인 혁명에서 실행할 수 있는 모든 계획을 전국적인 규모에서 실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묻기만 하면 된다.

 

우선 전국적인 규모로 실현할 수 있으며 프롤레타리아트의 발전과 생계에 있어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정치적인 압력을 받는 단계에 정비례한다. 그리고 이런 압력은 그 강도와 경제적, 정치적, 지적인 발전에 영향을 주는 방법에 따라서도 늦춰지거나 가속화할 수 있다. 따라서 영국과 같이 프롤레타리아의 발전이 높아도 적당한 압력을 받는 나라들도 독일의 농업 지역과 가톨릭 신자들이 압도적인 산업 지역과 같이 압력이 강하고 프롤레타리아의 발전이 낮은 지역보다 목적에 도달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에서는 실행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독일에서는 한참이나 뒤떨어졌다. 그리고 단순한 반군국주의 선전이 계급의식을 일깨우는데 탁월하게 수행할 순 있어도 부족한 공급을 대신할 순 없다. 추가적으로 반란들이 일어날 순 없다는 반론도 있다. 가장 할동적인 방법으로 반대운동을 지속하더라도 지능적으로 침착하게 추론한다면 프롤레타리아를 규탄하고 유해한 전쟁조차도 모든 전쟁이 꼭 프롤레타리아에게 해롭다고 가정할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가 착취하는 모든 국가들만이 아니라 가장 좋은 상태에 있는 국가의 대중조차도 혁명적 열기에 휩싸이고 이는 성공적인 반란이 곧바로 일어날 수 있는 전제적인 조건이다. 전쟁은 자국에서 정치적인 군국주의와의 분쟁만큼이나 아무데서나 일정하게 발생하는 건 아니다. 전쟁은 일반적으로 대중들의 의식에 따른 이론적인 유형으로 오히려 장래의 위험을 드러낸다. 전쟁은 계급투쟁에서 대중들에게 자명한 단순한 표명이 아니다. 그리고 외국의 행동들에도 의존하기 때문에 전쟁에 맞서는 활동들도 파악하기가 어렵다. 이에 헤르베는 우습거나 동시에 위태로운 방식으로 무너질 수 없게 하는 반전 활동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추진력들도 과소평가한다. 던지려던 폭탄이 주머니에서 터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에도 구분하는 문제다! 모든 걸 동일한 단위로 측정하진 말라!

 

물론 개별 국가 내에선 강력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긴장을 느슨하게 하고 이를 극한에서 이끌어 내는 혁명적인 세력들의 전쟁들도 있다. 이 범주로는 러시아에서 개입의 경우가 속하지만 오히려 실행을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2) 이런 전쟁이 발생한다는 건 서유럽 사람들에게 가장 무자비한 계급적인 전쟁을 개시하는 도화선일 수 있다. 자유를 갈망하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더러운 집행자들에 맞서고 권위적으로 매질하는 숭배자들에도 맞서, 자국의 반동에도 맞서 채찍을 휘두르는 봉기에 원인이다. 실제로 바양(Vaillant)도 전쟁에 외쳤던 “전쟁보단 반란이다”라는 구호는 모든 문명 국가들의 프롤레타리아트 가운데에서 열렬한 메아리도 일어났다.

 

이를테면 스웨덴과 노르웨이 간의 전쟁에서도 목숨을 각오한 연대가 자연스럽게 생겨난 사례들도 현재에도 이미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전술들에 원칙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 표준적인 발전은 아니다. 알맞은 시간 내에 프랑스와 독일 간의 전쟁에서도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혁명적인 계몽 작업에서 이런 연대의 기간을 신속하게 다가오게 하는 건 양국의 사회민주주의에 달려 있다. 물론 대부분은 전쟁의 원인에 달려있지만 거부할 순 없다, 이를테면 세계 정책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식민지적인 전쟁의 원인은 전쟁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에게도 맷돌의 가루만큼이나 적은 영향만을 가져온다.

 

 

실질적인 동기나 원칙적인 근거도 없이 공격을 위한 군대의 준비 태세만을 그저 줄이는 상대적인 군축에 맞서 당분간은 예외적인 사례들에서만 완전한 군축을 목적으로 설정할 수 있다. 상비군을 폐지하고 민병대의 주민군으로 대체하고 이와 대응해서 군비 지출을 삭감하자는 건 가스통 모흐(Gaston Moch)도 숙련적인 방식으로 이를 증명했고, 서로다른 모든 유해한 군국주의 영향력3)을 약화할 수 있는 계급의식을 지닌 프롤레타리아가 그 기치 아래에 모든 곳에서도 지속적으로 새겨온 요구다.

 

따라서 현대 노동운동의 원칙들에 기반해서 대다수 단체들이 “해외의 적에 맞선 군국주의”에 관해 일반론만을 담는 건 최소한의 반군국주의 강령을 담은 국제 회담의 결정에서 좋은 근거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별 국가 정당들의 전술적인 강령이 실패한다는 사실은 그리 당연하진 못하며 대체로 모든 곳에선 군국주의에 맞선 투쟁과 군국주의의 이런 측면에 대해선 그들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며 일반적인 정치들의 분야에서도 투쟁은 국가 정당들의 선전을 세부적으로 다뤄본 후에 과도하게 분투하지는 않고 전반적으로 사회 질서에 영향력을 발휘해서 목적에 더욱 가까워지도록 시도하는 방식으로 실행한다. 리모주(Limoges)에서 열린 프랑스 당 대회에서 바양(Vaillant)이 발의했던 결의안은 1907년 슈투트가르트(Stuttgart) 회담에서도 제안할 예정이었으며, 주요한 특징들은 훌륭하고 유익했다.

 

이런 사회민주주의의 태도에 대한 무정부주의자들, 특히 니우벤후이스(Nieuwenhuis)의 비난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결의안은 한 무력감을 배신할 수도 있겠지만 거창하진 않으며 더군다나 실현할 수 없는 설계들을 선전하고 현재에도 완전하게 해결할 수 없는 전술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공상적이고 몽환적이다.

 

2. 자국의 군국주의에 맞선 전술들.

 

“자국에 군국주의”에 맞서는 투쟁에 관계하는 물음은 훨씬 간단하다. 이 투쟁은 훨씬 더 성공을 가망할 수 있고 그 자명한 목적으로 군축, 즉 국가적 권력에서 무조건적이고 유효한 군축이다. 개별적인 국가에서 정치적인 조건을 가장 쉽게 맞출 수 있는 투쟁적인 방법은 느리고 늘어진 가운데에 있으며, 고요하면서도 완전하게 프랑스의 계몽적인 노력으로 전쟁에 외친다,

“병사들이여 쏘지말라”(“Soldats, vous ne tirerez pas!”)

 

이런 투쟁을 세부적으로도 다룰 필요가 있으며 지속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에게도 늘 명령을 강요하고 있으며, 파업 중인 노동자들이나 정치적 시위들을 벌이는 노동자에도 맞서 군대를 동원하는게 일상적인 국가들에선 더욱 그렇다. 프랑스와 벨기에,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와 모든 곳에서도 세분화해서 반군국주의 선전이 어떻게 특수한 형태를 드러내고 계급투쟁에서 군사적인 개입의 압력 아래에서 실질적일 수 있는지 추적해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노동조합주의 운동의 대다수 지지자들이 반애국적 성향도 극히 일부에 불과한 헤르베주의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 응용하고 또한 미국에서도 리(Lee)4)의 증언대로 미국에서도 응용한다. 그리고 독일에서도 이런 류의 특수한 반군국주의 선전이 만연한 무관심과 조우한다면, 이 나라에서 무장한 군대들을 파업에 개입한다는 사실 때문에도 결코 적은 정도가 아니기에 동반하는 유혈 사태는 실제로 피할 수 있었다. 과연 아이가 빠진 우물을 덮는 진보적인 대중운동들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인가? 심지어 사회민주주의조차도 기쁘고 분명하게 먼 미래를 내다보는 강령이 있음에도 모든 카산드라의 부름에 귀를 막는건가?

 

3. 무정부주의와 사회민주적인 반군국주의.

 

 

사회민주주의의 목적은 경제사적인 개념에서 추론할 수 있고, 오직 그 안에서만 정당한 걸 찾아내므로 모든 이상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무정부주의의 목적은 역사적인 근거 없이도 사상적으로 해석해서 두 운동들 가운데 관계와 대조를 보인다.

 

사회민주적인 개념은 역사적으로 유기적이지만 무정부주의적 개념은 임의적으로 기계적이다. 무정부주의는 실제로도 사람을을 진화를 알고 진화를 전수하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자신들의 의지에 대리인이기도 하며, 따라서 이런 의지에 영향을 미치는 과업을 스스로가 설정한다.

사회민주주의 역시나 노동자들의 의지에도 영향을 미치는 걸 과업으로 부과한다.

 

그러나 이 모든 데에는 가장 기본적인 성격들도 상이하게 존재한다.

 

무정부주의의 경우에 의지에 영향을 미치는 건 사회민주주의를 성취하기 위한 유일하게 필수적인 예비 조건이며 객관적인 경제 발전 단계에선 부수적으로 중요하며 계급적이고 대중들의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무엇도 건너뛸 수는 없다.

 

 

무정부주의자들은 충분한 활력을 소진할 수 있다면 언제나 그런 영향력도 발휘할 수 있다. 사회민주주의는 경제적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특정한 성질이 존재하는 한 대중적이고 계급적인 선언에서만 할 수 있다. 두 개념 모두 이런 성질이 필요한가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반면에, 사회민주주의 내에서는 주로 주어진 사례에서 상이하고 이런 성질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발생한다. 물론 경제적인 조건들이 행동하기에도 무르익었는지에 대해선 해결하기가 어려우며 그리고 영향력을 받는 척도를 잡기도 어렵다, 특히 개인적으로 필수적인 성질의 척도인 낙관주의 혹은 비관주의적인 기질은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로부터 사회민주주의 내에서 상이한 문제들도 발생하며 이런 영향력을 더 큰 단계에서 발휘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작은 정도만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무정부주의에 접근한다. 무정부주의적 사회주의자들도 있다. 따라서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가 모순적인 대조가 아님에도 이 두 성향 가운데는 분광들의 색채들처럼 모든 색조들을 찾아낼 수 있다.

 

 

의지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정도는 성질의 정도에 따라 달려있고, 계급적으로나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평정은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자극에 대한 혼란은 고요할 때보다 헤아릴 수 없을만큼 크다. 때때로 혼란스러운 도깨비불처럼 잠재적으로 작용한다. 때로는 완전하게 위험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잠재적으로 대단히 소중하다, 즉 조용하기 보단 자극하는 시기에 더욱 성취할 수 있으나 즉시 조용하게 되돌아오며, 또 다시 잃어가며, 적어도, 일정한 한계에서 도움을 주는 활력의 잔여를 발생한다. 혁명적인 역사는 이를 지속적으로 확인해볼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이다.

 

두 가지 기본 개념들은 근본적으로 무정부주의가 소수의 결연한 사람들이지만 성취할 수 있는 모든 과정에서 상이하며, 대중의 의지들을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지 활용하고자 한다. 물론 사회주의는 분명한 목적으로 결연하고 훌륭한 소수가 결정적인 순간들에 대중들을 이끌어내고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견해를 지닌다. 그러나 이 견해도 상이하다. 사회주의는 이런 영향력을 발휘한 후에도 싸워나가고 소수가 대중들의 의지를 일깨우고 수행하는 의미에서만 실행할 수 있다고 간주하는 반면에, 무정부주의는 틀림없는 사실을 따르며, 계몽한 전제주의적으로도, 결연한 소수의 찬탈자는 끝에 앞서 그들의 고유한 의지와 대중들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의미에서 부분적인 상황에서도 대중들의 훌륭한 사회적 의지도 발휘할 준비를 마친다.

 

무정부주의는 야생적인 말을 타고서 경제적이고 사회적 조건들에 뿌리내려진 곤경에 도약하거나 경우에 따라선 거꾸로 말에 굴레를 씌우려고 한다. 태초부터 행동이 있었다는 근원적인 발상에 있다. 물론 계급투쟁의 발전 과정에서 무정부주의가 제안하는 행동을 실행할 수 있는 올바른 시기가 올 수도 있다. 그러나 무정부주의의 결점은 방법들의 절대적으로 실행할 수 없다는게 아니라, 무정부주의가 주어진 시기에 권력의 사회적 상호관계를 잘 보지는 못한다는 사실에서 상대적으로 실행할 수 없다는데 있다. 결국에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시각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정부주의의 제안들이 발전의 이후 단계들에서도 실현하고 수락할 수 있다면, 정당할 수는 없어도 그러나 반대로 무정부주의적인 전술들에 대한 비난들에서 전술들을 올바르게 하려면, 그들의 강점은 자주 사고를 자극한다는데 있다.

 

무정부주의자와 무정부주의적 반군국주의는 무정부주의자와 무정부주의적 총파업과 관계한다. 분류하자면 이런 반군국주의의 군사적 파업은 항상 정점이라서 외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쌍둥이 형제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반군국주의의 본질을 파악하고 사회민주주의적 반군사주의와 상이한 부분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반군국주의를 선전하는 방법, 반군국주의가 도달하고자 하는 최종적인 목적과 대상, 그리고 반군국주의가 이 대상에 도달하고자 추구하는 방법으로 반군국주의의 원인을 유지해야한다.

 

반군국주의 운동의 원인은 무정부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견해에서 둘 모두 군국주의를 사회적인 계획들의 실현에서 기계적이고 폭력적인 성격의 특수한 방해물로 주목한다는데서 동일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그 원인에는 무정부주의와 사회민주주의적인 세상의 개념들이 서로 다르고 상이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군국주의가 자본주의적으로 유기적인 성격에 대한 무정부주의적 개념은 얼마나 일관적일 순 없는지에 대해선 더 자세하게 기술할 순 없지만 경제와 사회적인 발전의 법칙에는 적용해볼 수 있다.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적 반군국주의 가운데 필수적으로 상이한 모든 기반들이 있으며, 이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사회민주주의적인 반군국주의는 자본주의적인 작용에서 군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동시에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발전과 법칙들을 수행하고 이를 적용해본다. 무정부주의는 자체로도 군국주의를 지배계급들이 임의적이고 우연적인 방식으로 초래한다고 간주한다. 무정부주의는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발전의 법칙을 무시하는 공상적인 사상적 견해에서 자본주의 일반에서 임금들에 맞서는 투쟁과 마찬가지로 군국주의와도 맞서는 투쟁을 벌인다. 무정부주의는 단지 표면적으로만 봐도 개인적인 결의에 호소하면서 군국주의를 몰아내고자 시도한다.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발전에 기반을 두진 않으며 독립적인 태도로 이뤄진다. 무정부주의는 변화하는 단계에서 사회적인 목적만이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인 개념과 그 방법들에 있어서도 개인주의적이다.

 

단지 전쟁의 함성에서 만족한다면 무정부주의와 사회민주주의적 반군국주의의 최종적인 목적은 모두 동일하며, 군국주의의 완전한 철폐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는 군국주의의 본질적인 개념에 따라 단독적으로 군국주의의 완전한 철폐는 할 수 없다고 간주한다. 군국주의는 계급사회의 마지막 체제인 자본주의와 같이 몰락할 수밖에 없다. 물론 자본주의도 불변하는게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를 겪으며 본래적인 수많은 반대적인 성향, 무엇보다도 프롤레타리아적 성향에 의해 상당하게 변화했거나 약해질 수 있다.5) 따라서 다른 나라들에서 군국주의라 부르는 자본주의 자체도 생계적인 표명에는 서로다른 형태에서도 알겠지만 약해지는게 어렵지 않으며 또한 자본주의와 연관한 건 같이 느슨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더욱 크거나 더 작게도 다른 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으며. 자본주의적 발현과 군국주의에선 유기적인 자본주의6)의 성격에서 무엇도 바꿀 수 없으며, 사회민주당은 반군국주의에서 선전의 목적이 고립적으로 싸우지만도 않는다는 사실이며, 그리고 마지막 목적은 군국주의의 고립적인 철폐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조적으로 무정부주의적인 반군국주의 선전은 군국주의의 고립적인 철폐가 매우 분명하고 최종적인 목적이다. 물론 무정부주의자들도 이를 역시 비유기적인 자본주의적 의미에서 알 수 있지만 대부분은 자본주의에도 맞서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을 수 없고, 서로다른 선전이지만 평나란한 노선에서 이를 수행한다. 그리고 갈지자적인 성격으로 이론적 과정을 밀고 나가는 무정부주의자들조차도 참으로 더욱 심오한 사회적인 시각도 얼핏 드물게는 보인다.

 

본질적으로 서로다른 역사적인 해석의 방법에서도 투쟁의 방법들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반군국주의 운동을 촉진하는 방법과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을 사용하는 방법도 여기선 구분해야만 한다. 첫째로는 무정부주의는 우선 윤리적 열의, 도덕적인 자극, 인류애적이고 정의로운 주장들과 함께 노력한다. 즉, 반군국주의에서 계급적인 전쟁의 성격을 묵살하는 의지에 대해 분류할 수 있는 모든 추진들과 보편적으로 적용하고 무조건적이고 관념적인 흐름에도 마침표를 찍으며 매우 지속적으로도 자주 민간인만이 아니라 장교들에게도 주목한다.7) 그러므로 무정부주의적 반군국주의의 선전이 많은 불신을 불러일어난 방식은 톨스토이주의자들의 애처로운 연설들과 베르타 폰 수트너(Bertha von Suttner)와 같은 세계적인 평화로 전쟁에 맞선 벗들에게 전한 무력한 주문과도 닮았다.

 

대조적으로 사회민주주의적 반군국주의 선전은 계급투쟁도 선전하기 때문에 원리적으로 계급투쟁에서 군국주의의 적들인 계급들에게도 항의한다. 물론 붕괴하는 과정에서 부르주아지의 조각들도 떨어져나가는 걸 보는 건 만족스럽다. 그들을 쟁취하고자 사람들을 계몽하더라도, 무조건적인 명령, 인도주의적인 견해, 자유와 정의에서 윤리적인 요구들이 아니라 계급투쟁에 연관한다. 내용적으로도 프롤레타리아트의 관계들과, 군국주의의 역할과 계급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할 수 있으며 해야만 하는 역할들도 설명한다. 이로부터 계급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관계에서도 군국주의와 관련한 프롤레타리아트의 과업도 추론할 수 있다. 물론 사회민주당의 반군국주의 선전은 사람의 기본적인 권리들에 대한 마음을 자극하는 윤리적인 주장들과 전반적으로 단호한 규범의 분노들에도 그리고 아름다워도 결코 실천할 수 없고 시대적으로도 뒤떨어진 부르주아지의 도덕적인 원칙들과, 심지어 종교적이고 특히 기독교적인 관념들과 개념들까지도 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건 부수적인 역할에 불과하다. 이들은 계급의식의 빛살이 뇌에도 도달할 수 있도록 아직은 계몽되지 않은 프롤레타리아의 닫힌 눈을 더욱 쉽게 뜰 수 있도록 돕는다. 게다가 행동에 대한 열의를 부르는 목적도 있다.

 

무정부주의의 경우에는 반군국주의에 적용하고 반군국주의적인 기운들을 효과적으로 부여하는 방법은 다시 한번 개인주의적이고 공상적인 성격이지만 개인적으로 군 복무를 거부하고, 개인적으로 무기들에 대한 의존도 거부하고, 개인적으로 항의들을 제기하며 큰 압박도 가한다. 무정부주의자의 문헌은 이런 모든 사례들도 매우 신중하고 엄밀하게 기록한다. 물론 두 가지 목적들도 있으며 좀 전에 언급한 군국주의에 맞서는 행동을 취하고 반군국주의 운동을 도와 일종의 선전으로도 행동한다. 이런 용감한 사례들은 귀감도 부르고 이런 ‘주인공’들을 지지할 수 있는 원리들에 대한 열의와 찬사도 일깨운다는 전제에서도 출발한다.

 

사회민주주의와 반군국주의는 서로다르지만 단지 계기이자 전조일지라도 반드시 이런 개별적인 행동들은 대중 운동들의 도화선이자 전조일 수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다. 물론 화약통에 연결한 도화선에 불을 붙일 수 있는 긴장들이 최고조에 달하면서도 가장 비판적으로 보내는 계기이다. 군국주의 정신이 단계적이고 유기적으로 산산조각나고 사기를 저하하는 효과가 바로 사회민주주의가 군국주의에 맞서는 방법이다. 모든 건 이런 목적을 달성하고 마무리하는 부수적인 단계에서 한 부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심지어 무정부주의에서도 국제 반군국주의 협회에서도 보여줬지만 개인적인 행동의 요구들도 성장해서 비판적으로 널리 바라보고 더욱 결정적인 영향력도 행사하고 있다.

 

무정부주의적 반군국주의자들의 전술들은 군사적인 파업에 관해서도 훌륭하고, 선의와 큰 활력을 감안한다면 구름들도 부를 수 있다고 예상해볼 수 있으며 반면에 사회민주주의는 단지 논리적으로도 군사적인 파업에 대해 혁명에 참가하도록 궁극적으로 군대에 동기를 자극하고, 군국주의 정신이 분열하는 건 심리적으로도 필수적인 결론이고 계몽적이고 계급적으로 나눈 결과에서 오직 나란하게 다시 산산조각낼 수 있다.

 

도멜라 니우벤후이스(Domela Nieuwenhuis)가 쓴 작은 소책자인 “군국주의”(Le Militarisme)는8) 무정부주의적 반군국주의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그에게 세상의 지배자들은 왕관을 쓴 왕들이 아니고 유기적이고 필수적인 사회적인 체제에서 자본주의를 결코 부정하지도 않는 은행가, 금융가와 자본가들이며 그에게 전쟁은 은행가들의 자발적인 결정에 달려 있으며 그에게 반동은 “성직자들에서 칼 마르크스까지” 확장한 권위적인 정당이다. 군인들의 계급적인 위치도 조사해보지도 않고 그는 프레데릭(Frederic)의 발언들을 아주 일반적인 방식으로 수용하며, “내 병사들이 사고하기 시작하면 군대에는 한 명도 남지 않을 것이다”는 양심의 가책에 여전히 시달리면서 그는 라블라이(Laveleye)의 저서 <유럽 전쟁의 실질적인 원인과 중재>(Des causes actuelles de guerre en Europe et de l'arbitrage)에서 제안했던 반군국주의 선전 방법들을 빌리고 있다.

 

1. 국제적인 수송에서 모든 제한 철폐

 

2. 운송, 우편과 전보 관세들을 더욱 저렴하게 제공.

 

3. 동일한 국제적인 화폐 제도, 동일한 측정 무게와 치수들과 국제적인 무역법 도입.

 

4. 외국인들도 원주민과 동등한 터전 마련.

 

5. 외국어와 전반적인 외국 문화에 대한 지식 증진

 

6. 평화적인 사랑을 장려하고 전쟁에 대한 증오를 배양하는 주장들을 지지하고 모으는 예술작품들과 저적들을 수용할 수 있는 광범위한 문학적이고 문헌적인 창작활동.

 

7. 대의제에 힘을 효과적으로 부여하고 집행기관들이 전쟁과 평화를 권위적으로 결정할 권리를 박탈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모든 선전.

 

8. 한 나라에서 초과적인 재산을 다른 나라들에서 자연적인 재산으로 증진하는데 적용할 수 있는 모든 공업적인 사업들을 선호하고, 세계적인 자본을 국제적인 자본들의 관계에서 연대 설립.

 

9. 니우벤후이스는 성직자들이 무엇보다도 퀘이커교도들의 관습에 따라서만 전쟁에 대한 공포를 심어줄 수 있다는 반론을 제기했으며 그는 이런 반군국주의적인 더욱 효과적인 방법들을 숙고했다.

 

10. 노동자들의 국제적인 관계 증진

 

11. 평화에 적대적인 왕, 대통령, 상원, 의회들을 사회적인 시설들로 대체.

 

12. 외교관직 철폐

 

13. 역사적인 교육을 문화적으로도 역사적인 수업으로 전환하고 개선.

 

14. 상비군들의 철폐

 

15. 중재로부터 국제적인 분쟁 해결

 

16. 미국의 관습에도 따른 유럽연합을 구성하는 여러 유럽 국가들

 

17. 전쟁 시 군사적 파업 및 총파업

 

18. 소극적인 저항과 개인적인 복무 거부

 

19. 보편적인 진화와 인류 전반를 위한 복지 조건들의 증진.

 

여기서 니우벤후스는 주목할만한 발언을 했다. “만일 한 사람이 전쟁에서 무언가 잃은게 있다면 평화를 보전하는게 이득이다”, 일부 프롤레타리아트가 현재에도 평화를 가로막고 방해한다면!

 

주의 깊은 평론가라면 기본적인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개념적 혼란, 주제 배치에서 혼란, 세부적인 개념적 혼란을 여기서 다뤄볼 것이다.9) 여기에선 혼란들만 볼 수 있었지 주요한 핵심은 언급하지 않았으며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 즉 군국주의에 어느 정도의 경제적 기반들에 관련한 건 부수적인 문제로 우연하게만 언급했다. 오히려 부차적인 성격의 이차적이고 삼차적인 요점들을 특히 중시하고 매우 몽환적이고 공상적인 방법들을 나란하게 배치했다. 반군국주의를 선전하는 수단들은 반군국주의적 행동 자체로도 함께 모여있지만 기본적인 개념을 표면적으로만 개인적으로 주도하면서 선의에 맡기려는 경향은 자체로도 분명하다. 니우벤후이스의 작은 책자의 마지막 문장에서 무정부주의적인 개념의 기반들은 부족하게 폭로를 밝혀낸다. 계속 읽으면 “대담하고, 더욱 대담하고, 늘 대담하다면 승리를 거두리라.”

 

참조

 

1. “사회주의 생활”(Vie Socialiste) 제1부, 제15-18호, “사회주의 운동”(Mouvement Socialiste)” 1905년 호와 “전진”(Vorwaerts) 1905년 9월 17일호에 실린 조사를 참고, 또한 국제 회담들의 의정서도 참고.

 

2. 번역하자면 독일은 러시아에 개입해서 차르를 거들면서 러시아 혁명을 진압한다.

 

3. 모흐의 “민주주의적 군대”(The Army of Democracy) 참조, 베벨의 “상비군이 아닌 민병대로”(Not a Standing Army but a Citizen Army) p. 44과 이어서 베른의 “군국주의 학살” (Man-Killing Militarism), p. 52과 이어진, 베벨로부터 인용했던 “사회민주당 선거자들을 위한 안내”(Handbook for Social-Democracy Electors), 1903, p. 20을 따라 참조.

 

4. <사회>(Socialite), 18 호, p. 80 참조.

 

5. 같은 책 이어진 p. 161과 p. 167 참조.

 

6. 더 좋은 말도 있다. “계급사회에서 제도들의 성격에서도 유기적으로 생겨난다.”

 

7. 러시아에서는 장교들도 이미 반군국주의로부터 계급전쟁을 줄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8. <새 시대> 출판, 17호. 파리, 1901.

 

9. 니우벤후이스가 “각성”(the Ontwaking), 196쪽에서 이어진 A.I.A. 회담의 선언문을 비판하면서 작성한 내용들은 더욱 명료하고 더 심도 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