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경제주의자들의 수공업성과 혁명가 조직

 

위에서 우리가 분석한 『노동자의 대의』의 주장, 즉 경제투쟁이 가장 널리 적용될 수 있는 정치 선동의 수단이며, 지금 우리의 임무는 경제투쟁 자체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하는 것이라는 등등의 주장은 우리의 정치적 임무뿐만 아니라 조직적 임무에 대해서도 그들의 이해가 협소함을 드러내고 있다. "고용주와 정부에 대한 경제투쟁"을 위해서는 중앙 집중화된 전 러시아적 조직, 분노·저항·정치적 반정부성 등을 표출하는 온갖 형태를 하나의 총공세로 통일시킬 조직, 혁명 활동이 직업인 사람들로 구성되고 전체 인민의 진정한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 지도받는 조직이 전혀 필요치 않다. 따라서 그런 투쟁을 통해서는 이러한 조직이 생겨날 수도 없다. 이 역시 자명한 일이다. 어떤 조직이든 조직의 성격은 당연히,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 조직의 활동 내용에 의해 규정된다. 그런 까닭에 『노동자의 대의』는 위에서 분석한 주장들을 통해 그 정치 활동의 협소함뿐만 아니라 조직 작업의 협소함마저도 신성화하고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언제나 그렇듯이 『노동자의 대의』는 그의 심성이 자생성에 굴복하고 있는 기관지임이 드러난다. 그런데 자생적으로 형성되는 조직 형태에 굴복하는 것, 우리의 조직 작업이 얼마나 협소하며 원시적인지 또 우리가 이 영역에서 아직 얼마나 "수공업자"에 지나지 않는지에 관한 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야말로 우리 운동의 진정한 질병이다. 물론, 이는 쇠퇴에 따르는 질병이 아니라 성장에 따르는 질병이다. 하지만 자생적 분노의 물결이 운동의 조직가이자 지도자인 우리를 휩쓸고 있는 지금은, 후진성을 옹호하고 협소함을 정당화하는 온갖 경향에 반대하는 가장 비타협적인 투쟁이 특히 필요하다. 실천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또는 이제 뛰어들려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우리를 휩쓸고 있는 수공업성에 대한 불만을 일깨우고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불굴의 결의를 각성시키는 것이 특히 필요하다.

 

1. 수공업성이란 무엇인가?

 

1894년에서 1901년까지 전형적인 시대인 주된 시기의 활동 상황을 간단히 그려 보임으로써 이 문제에 답해 보도록 하겠다. 이미 우리는 이 시기에 청년 학생들이 예외 없이 맑스주의에 심취하였음을 지적한 바 있다. 물론 이것은 이론으로서의 맑스주의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기보다는 오히려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문제의 답으로서의, 적을 향한 행군에 나서라는 촉구로서의 맑스주의에 심취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신참 민병들은 놀라울 정도의 원시적인 장비와 준비로 행군에 나섰다. 심지어 아무런 장비도 없고 전혀 준비되지 못한 경우도 허다했다. 그야말로 촌놈처럼 몽둥이 하나만 들고 전쟁에 나선 것이다. 학생 서클은 노장 운동가들과 전혀 관계없이, 다른 지방의 서클들이나 심지어는 같은 도시 다른 구역의 서클들과도 전혀 관계없이, 혁명 활동의 개별 부분들을 전혀 조직하지 못한 채, 어느 정도라도 일정 시기에 대한 체계적인 계획도 전혀 없이, 노동자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고 활동에 뛰어든다. 서클은 점진적으로 조금씩 더 폭 넓은 선전과 선동을 전개하고, 자신들이 등장했다는 사실 하나로, 상당히 넓은 층의 노동자와 자금을 제공하고 "위원회" 산하에 새로운 청년 그룹들을 배출하는 그런 교양 계층 일부의 공감을 얻어 낸다. 위원회(또는 투쟁동맹)의 매력이 증가하고 그 활동 규모도 성장한다. 위원회는 그야말로 자생적으로 그 활동을 확대해 나간다. 일 년, 아니 몇 달 전에 학생 서클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문제를 결정했던 바로 그 사람들, 노동자들과의 관계를 꾸려 그것을 유지하고 유인물을 제작하고 배포했던 그 사람들이 이제 다른 혁명가 그룹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고, 문건들을 어렵사리 입수하고, 지역신문 발간에 손을 댄다. 그들은 시위를 조직하자고 말하기 시작하고 마침내 공개적인 전투행위에 돌입한다. (이 전투행위는 정황에 따라 최초의 선동 유인물, 신문의 창간호, 최초의 시위 등등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보통, 이러한 행위의 시초는 즉각적이고 완전한 실패를 자초한다. 그것이 즉각적이고 완전한 실패인 것은 이 전투행위가 사전에 숙고되어 세밀하게 준비된 길고도 완강한 체계적인 투쟁 계획의 결과가 아니라 관습적으로 진행되어 온 서클 활동의 자생적 성장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경찰은 학생 시절부터 이미 "이름을 날렸던" 지역의 주요 활동가들을 잘 알고 있었으며, 단지 물고기사냥하기에 가장 적절한 순간을 기다려 왔던 것이다. 경찰은 서클이 충분히 성장하여 가시적인 범죄 구성요건을 갖출 만큼 뻗어 나갈 기회를 일부러 제공하며, 그들이 잘 알고 있는 몇몇 인물들은 "새끼를 칠 수 있도록"(내가 아는 한, 이는 우리 동료들과 헌병들이 모두 사용하는 은어이다.) 언제나 남겨 둔다. 이러한 전쟁은 몽둥이로 무장하여 현대식 군대에 맞서 싸우는 한 무리의 전투에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단 하나 놀랄 만한 것은 이 운동의 생명력이다. 전투원들이 전혀 준비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은 범위를 넓히고 성장하여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사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장비의 원시성은 처음에는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병사들을 폭 넓게 끌어들이는 조건 중의 하나로서 합법칙적이라고까지 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심각한 전투행위가 시작되자마자(본질적으로 그 전투행위들은 1896년 여름 파업[38]으로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 전투조직의 결점들이 점차 뻗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일련의 과오(사회주의자들의 죄악을 기록하여 국민에게 호소한다든지, 노동자들을 수도에서 지방의 산업 중심지로 추방시킨다든지 하는 따위의)를 범했던 정부는 곧 새로운 투쟁 조건에 적응하였으며, 완벽하게 무장된 선동권, 첩자, 헌병대 부대들을 필요한 장소에 파견할 수 있었다. 조직적인 소탕이 매우 빈번하게 반복되어 엄청난 사람들을 덮쳤고 지역의 서클들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그 결과, 노동자 대중은 문자 그대로 지도부 전체를 상실했으며, 운동의 성격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하게 되어 활동의 연관이나 계승이라곤 아예 정립될 수도 없을 정도였다. 지역 활동가들의 경악할 만한 산개, 서클 구성의 우연성, 이론·정치·조직 문제에서의 협소한 시야와 준비 부족 등은 앞서 설명한 조건이 낳은 필연적인 결과물이었다. 우리에게 지구력과 보안이 결여된 탓에, 몇몇 지역에서는 노동자들 사이에 지식인에 대한 불신이 퍼져 나가고 지식인을 멀리하는 경향이 생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지식인은 너무 경솔해서 패배를 자초한다!"

 

결국, 이러한 수공업성은 모든 생각 있는 사회민주주의자가 하나의 질병으로 체감할 정도가 되었다. 운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누구나 이 사실을 안다. 운동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독자들이 우리가 운동의 특징 단계나 특징 병폐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앞서 한 번 거론한 적이 있는 증인의 말을 인용하겠다. 발췌문이 길더라도 불평하지 말기 바란다.

 

"더 폭 넓은 실천 활동으로의 점진적인 이행" — 『노동자의 대의』 제6호에서 B-v는 이렇게 쓰고 있다 — "러시아 노동자운동이 겪고 있는 전반적 전환기에 의해 직접 규정되는 이 이행이 하나의 특징적인 성격이라면……, 러시아 노동자운동의 전반적 메커니즘에는 그만큼 흥미로운 또 하나의 성격이 있다.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은 페테르부르크뿐만이 아니라 러시아 전역에서 감지되고 있는 것처럼 행동에 적합한 혁명 세력이 전반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노동자운동의 전반적 활성화, 노동자 대중의 전반적 발전, 점점 빈번해지는 파업, 정부의 탄압·체포·추방·유형을 강화시키는 노동자의 더욱 공개적인 대중 투쟁 등에서 수준 높은 혁명 세력의 부족은 점점 더 두드러지고 있다. 따라서 그것이 운동의 깊이와 그 일반적 성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다. 수많은 파업이 혁명 조직의 강력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이루어지고 있다. …… 선동용 유인물과 비합법 문건의 부족을 모두 느끼고 있다. …… 노동자 서클들은 선동자가 없는 체로 방치되어 있다. …… 이와 함께 눈에 띄는 것은 항상적인 자금 결핍이다. 한마디로 노동자운동의 성장이 혁명 조직의 발전과 성장을 앞지르고 있다. 현재 활동 중인 혁명가들의 실제 수는 동요하는 노동자 대중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수중에 집중시키고 모든 소요에 조직성과 정연한 형태를 부여하기에는 너무도 미미한 수준이다. …… 개별 서클들과 개별 혁명가들은 서로 결집하고 연합하지 못한 채, 규율에 따라 움직이는 강력하고 단일한 조직, 계획적으로 발전된 부분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조직을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 파괴된 서클을 대신하여 즉각 새로운 서클들이 출현하는 것은 "운동의 생명력을 입증할 뿐, 충분한 수의 제대로 된 혁명운동가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이렇게 토를 달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페테르부르크 혁명가들의 실천적 준비의 부족은 그들의 활동 결과에도 나타난다. 최근의 몇몇 재판, 특히 자기해방그룹과 대자본노동투쟁그룹[61] 등에 대한 재판이 보여 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즉 노동조건에 관해 세밀히 알지 못하고, 따라서 해당 공장의 선동 조건도 모르고 보안의 원칙도 모든 채 단지 사회민주주의당의 일반적 관점만을 숙지한 젊은 선동가가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은 기껏 4, 5, 6개월 정도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러고는 체포되고, 체포에 뒤이어 조직 전체, 아니면 적어도 그 일부분이 페멸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한 그룹의 존속 기간이 몇 개월 단위라면 그 그룹이 과연 성공적이고 유익한 활동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분명, 현존하는 조직들의 결합을 전적으로 전환기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 현재 활동 중인 조직들의 수직인 구성, 주요하게는 질적인 구성이 여기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은 분명한 일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첫째 임무는…… 성원을 엄격히 선발하는 가운데 조직들을 실질적으로 통일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2. 수공업성과 경제주의

 

우리는 이제, 벌써 모든 독자가 저절로 떠올리게 될 것이 분명한 하나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운동 전체에 내재된, 성장에 따르는 질병인 이 수공업성을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당 안의 하나의 경향인 "경제주의"와 관련지을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조직 작업의 미숙과 실천적 훈련의 부족은 사실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며, 시작부터 흔들림 없이 혁명적 맑스주의의 관점을 견지했던 사람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물론 어느 누구도 준비 부족 그 자체를 두고 실천가들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수공업성"이라는 개념 안에는 준비 부족 외에 다른 어떤 것이 포함되어 있다. 전체 혁명 활동의 폭이 전반적으로 협소하다는 것, 이 협소한 활동을 통해서는 훌륭한 혁명가 조직이 건설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마지막으로 — 이것이 주요한 점인데 — 이 협소함을 정당화하고 그것을 특수한 "이론"으로 격상시키려 시도하는 것, 즉 이 분야에서도 자생성에 굴종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 같은 시도가 드러난 순간, 수공업성과 "경제주의"의 관련은 명백해졌다. 또한 우리가 "경제주의"(즉 맑스주의 이론, 사회민주주의 당의 역할, 그 정치적 임무 등에 대한 협소한 이해)를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다면 조직 활동의 협소함을 타파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도 의심의 여지가 없어졌다. 그런데 이 같은 시도는 두 가지 경향으로 드러났다. 어떤 이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 시작했다. 혁명가들이 "강제하고" 있는 그처럼 폭 넓고 전투적인 정치적 임무를 아직 노동자 대중 스스로 제기하지는 않았으며, 그들은 아직까지는 당면한 정치적 요구를 위해 싸워야 하고 "고용주와 정부에 대한 경제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그런데 대중운동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 같은 투쟁에 자연스럽게 조용하는 것이 바로 전혀 준비되지 못한 청년이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조직이다.) 온갖 종류의 "점진 개혁주의"와는 거리가 먼 다른 이들은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정치혁명을 완수하는 것"은 가능하며 또 그렇게 해야만 하지만, 이를 위해 완강하고 집요한 투쟁으로 프롤레타리아트를 교양할 강고한 혁명가 조직을 만들 필요는 전혀 없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쉽게 잡을 수 있고" 또 이미 잘 알고 있는 몽둥이를 움켜쥐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비유법을 쓰지 않고 말하자면, 우리가 총파업을 주도하는 것** 또는 "자극적 테러"를 수단으로 노동자운동의 "힘없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 등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기회주의자들과 "혁명주의자들", 이 두 경향 모두 현재 지배적인 수공업성 앞에 굴복하여 그것을 탈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믿지 않고 있다. 이들은 우리의 일차적이고 가장 절실한 실천적 임무, 즉 정치투쟁의 힘, 불요불굴성, 계승성 등을 보장할 수 있는 혁명가 조직을 건설해야 하는 임무를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앞서 B-v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였다. "노동자운동의 성장이 혁명 조직의 발전과 성장을 앞지르고 있다." 이 "가까이 있는 관찰자의 귀중한 보고"(B-v의 글에 대한 『노동자의 대의」편집진의 평가)는 우리에게 이중의 가치가 있다. 그것은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 안에 존재하는 위기의 주요 원인이 대중의 자생적 고양에 미치지 못하는 지도자들("이데올로그들", 혁명가들,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후진성에 있다고 판단한 우리가 옳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그것은 "경제주의자들의" 편지(『불꽃』제12호)의 필자들, 끄리첸스키, 마르티노프 등이 자생적 요소와 지루한 일상 투쟁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위험성에 관해, 또 과정으로서의 전술 등에 관해 말한 이 모든 논리가 수공업성을 옹호하고 찬양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이론가"라는 말을 할 때마다 경멸의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리고, 우리가 뻔히 아는 준비 부족과 미숙함 앞에 자신이 무릎 꿇고 있는 것을 "생활 감각"이라고 말하는 이 사람들은 사실상 우리의 가장 절실한 실천적 임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다. 이들은 뒤처진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친다. "보조를 맞추어 걸어가시오! 앞지르지 마시오!" 이들은 조직 작업에서 창의력과 정력의 결핍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 폭넓고 대담한 과업을 제기할 "계획"의 결핍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과정으로서의 전술"을 외친다! 우리의 주요한 과오는 정치적, 조직적 임무를 일상적 경제투쟁의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당면의 이해관계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계속해서 우리를 향해 다음과 같은 똑같은 노래를 불러낸다. "경제투쟁 자체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해야 하오!" 다시 한 번 말하겠는데, 이는 문자 그대로 장례 행렬을 보고 축하한다고 외쳤던 설화의 주인공과 똑같은 "생활 감각"인 것이다.

 

이 현자들이 누구에도 비할 바 없이, 정말 "나르시소스처럼" 얼마나 거만하게 플레하노프를 훈계했는지 한번 생각해 보라. "대체로(sic[원문 그대로!!]) 노동자 서클들은 현실적, 실천적 의미의 정치적 임무, 즉 정치적 요구를 위한 합목적적이고 성공적인 실천 투쟁이라는 의미의 정치적 임무를 감당할 수 없다."(『노동자의 대의』편집국의 답변」24쪽.) 신사 양반들! 서클도 서클 나름이오. "수공업자들"의 서클은 자신들의 수공업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그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한, 당연히 정치적 임무를 감당할 수 없겠지요. 게다가 이 수공업자들이 그 수공업성에 흠뻑 빠져 있다면, 그들이 "실천적"이라는 단어를 항상 강조해서 쓰고 가장 후진적인 대중의 이해 수준으로까지 자신들의 임무를 격하시키는 것이 실천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경우 당연히 이 수공업자들은 가망이 없으며 정말 아무런 정치적 임무도 감당할 수 없소. 하지만 알렉세예프, 미슈킨, 할투린, 젤랴보프 같은 사람들이 지휘하는 서클은 진정한, 그리고 가장 실천적인 의미에서의 정치적 임무를 감당할 수 있소. 그것은 자생적으로 깨어나고 있는 대중이 그들의 뜨거운 선전에 호응을 보내고, 그들의 넘치는 정력이 혁명적 계급의 정력적인 지원을 얻고 그것으로 지탱되기 때문이며, 또 그러한 한에서 그런 것이오. 이 혁명적 계급을 적시고 그 계급의 자생적 각성의 필연성과 불가피성을 입증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노동자 서클들" 앞에도 높고 큰 정치적 임무를 제기했던 플레하노프는 골백번을 옳소. 그런데 당신들은 그 같은 임무를 격하하고, "노동자 서클" 활동의 폭과 정력을 축소하기 위한 구실로 그 이후 발생한 대중운동을 빙자하고 있지 않소. 이것이 수공업자가 자신의 수공업성에 흠뻑 빠져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오? 당신들은 실천성을 자랑하오. 그러나 당신들은 러시아의 실천가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즉 하나의 서클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한 사람의 정력이라도 혁명 과업에서 얼마나 큰 기적을 낳을 수 있는지를 모르고 있소. 아니, 당신들은 70년대에 있었던 그런 지휘자들이 우리 운동에서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무엇 때문에? 우리가 준비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나 우리는 준비되고 있고, 준비될 것이며, 그러하여 준비되어 있을 것이오! 사실 유감스럽게도 "고용주와 정부에 대한 경제투쟁"이라는 고인 물에는 곰팡이가 생겨났소.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뒷모습"을 외경하듯 관조하면서(플레하노프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릎을 꿇고 자생성을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오. 하지만 우리는 이 곰팡이를 없앨 수 있을 것이오. 이제야말로, 진정으로 혁명적인 이론을 지침으로 삼는 러시아의 혁명가는 진실로 혁명적이고 자생적으로 깨어나고 있는 계급에 의거하여 마침내 — 마침내! — 올곧게 일어서서 장사의 힘으로 포효할 수 있소.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우리의 정치적 임무와 조직 활동의 폭을 낮추는 온갖 은밀한 의도가 학생 시절부터 이미 실천 활동을 꿈꾸어 온 수많은 사람과 실천가 사이에서 경멸받고 조롱당하도록 하는 것뿐이오. 우리가 이 일을 해내고 말테니, 신사 양반들, 냉정을 유지하시길!

 

「무엇으로부터 시작할 것인가?」라는 글에서 나는 『노동자의 대의』에 반대하여 이렇게 쓴 바 있다. "어떤 특정한 문제에 관한 선동 전술이나 당 조직의 어떤 세부적인 일을 수행하기 위한 전술을 24시간 안에 바꾸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아무런 원칙도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24시간이 아니라 24개월이라 할지라도 전투적 조직과 대중 속에서의 정치 선동이 일반적으로, 항상, 그리고 무조건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관점을 바꿀 수는 없다." 이에 대해 『노동자의 대의』는 이렇게 답한다. "『불꽃』의 비난 가운데 유일하게 사실에 근거한 척하는 이 비난도 전혀 근거 없는 것이다. 『노동자의 대의』의 독자들이라면 우리가 애초부터, 『불꽃』이 등장하기 전부터 이미 정치 선동을 요구했음은 물론이고……"(여기에 덧붙여, 노동자 서클뿐만 아니라 "대중적 노동자운동도 전제주의 타도를 일차적인 정치적 과제로 내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며," 단지 당면한 정치적 요구를 위한 투쟁만이 그러한 임무가 될 수 있다고, 또 "한 번의, 또는 극단적인 경우에는 몇 번의 파업이 있은 후에, 대중은 당면한 정치적 요구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라고 말하면서), "…… 우리가 유일한 사회민주주의 정치 선동 자료를 발간하여,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동지들에게 국외로부터 공급해 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덧붙이자면, 당신들은 그 유일한 자료에서 오로지 경제투쟁을 바탕으로 해서만 정치 선동을 가장 널리 적용했소. 그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이 협소한 선동이 "가장 널리 적용될 수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까지 도달했소. 신사 양반들, 당신들은 자신이 내세운 논거가 바로 『불꽃』이 등장해야 했던 필연성 — 그러한 종류의 자료가 유일한 것이기 때문에 — 을 입증하고 『불꽃』과 『노동자의 대의』 사이의 투쟁의 필연성을 입증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말이오? ……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출판 활동은 사실상 당의 전술적 통일을 준비해 온 것이다.……" (전술은 당과 함께 성장하는 당 임무의 성장 과정이라는 신념의 통일 말인가? 굉장한 통일이로군!) …… "그리하여 동맹은 그 자체로 '전투조직'의 가능성을 마련해 놓았으며, 그러한 조직을 창건하기 위해 국외 조직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왔다."(『노동자의 대의』제10호 15쪽.) 교묘히 발을 빼 보려는 헛된 시도로군! 나는 당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왔다는 사실을 결코 부정할 생각이 없소. 나는 당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의 한계가 당신들의 근시안적인 이해 수준으로 인해 제한되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또 주장하는 바이오. "당면한 정치적 요구들"을 위한 투쟁을 수행하기 위한, 아니면 "고용주와 정부에 대한 경제투쟁"을 수행하기 위한 "전투조직"을 말하는 것 역시 웃기는 일이오.

 

하지만 만일 독자들이 수공업성에 대한 "경제주의자"의 사략의 진수를 보고 싶다면, 절충적이고 변덕스러운 『노동자의 대의』로부터 일관성 있고 단호한 『노동자의 사상』으로 눈을 돌려 볼 필요가 있다. R. M.은 『별책 부록』13쪽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제 이른바 혁명적 지식인에 관해 두 마디만 하겠다. 혁명적 지식인이 '짜르 체제에 대항하는 단호한 전투에 돌입할' 충분한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은 실제로 여러 차례 입증된 바 있는 사실이다. 다만 비극은 우리의 혁명적 지식인이 정치경찰의 무자비한 탄압을 받고 있는 까닭에 정치경찰과의 투쟁을 전제주의에 대한 정치투쟁이라고 생각해 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들은 한 가지 문제에서 막혀 있으니, '전제주의와 투쟁하기 위한 세력들을 어디서 획득해야 하는가?' 가 그것이다."

 

자생적 운동의 숭배자(가장 나쁜 의미의 숭배자)가 경찰과의 투쟁을 이렇게 도외시 경멸하다니, 얼마나 훌륭한가? 이 숭배자는 자생적 대중운동에서는 정치경찰과의 투쟁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로 우리의 어설픈 보안 능력을 정당화하려 하는 것 아닌가!! 이 기피한 결론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말 몇 명 안 된다. 그 정도로, 우리의 혁명 조직이 가진 결함이라는 문제는 모든 사람에게 뼈아픈 현실이 되어 있다. 하지만 예를 들어 만일 마르티노프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는 그가 자신의 논리를 끝까지 사고해 볼 용기가 없거나 그럴 능력이 없는 까닭이다. 사실, 대중이 가시적인 결과를 약속하는 구체적인 요구를 제기해야 한다는 그런 "임무"라면, 강고하고 중앙 집중화된 혁명가들의 전투조직을 창건하기 위한 특별한 고민이 필요하거나 하겠는가? "정치경찰과 전혀 투쟁하지" 않는 대중이라 해서 과연 그 정도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겠는가? 나아가 몇몇 지도자들을 포함하여 "정치경찰과 투쟁할" 능력이 전혀 없는 노동자들 역시 (거의 대다수가) 이 임무를 담당하려 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러한 임무라는 것이 수행될 수 있겠는가? 그러한 노동자들, 평균적 대중에게는 파업에서 또는 경찰과 군대에 맞선 가두 투쟁에서 엄청난 정력과 자기희생을 보여 줄 능력이 있으며, 전체 운동의 중대적인 결과를 결정할 힘이 있다. (또한 그들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른바 정치경찰과의 투쟁을 위해서는 특수한 자질이 필요하다. 혁명 활동이 직업인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중이 구체적인 요구를 "내세울"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 대중이 혁명 활동이 직업인 사람들을 많이 "내세울"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직업적 혁명가 조직과 순수한 노동자운동의 상호 관계라는 문제에 이르게 되었다. 이 문제가 글로 다루어진 적은 거의 없지만, 우리 "정치가들"은 다소간 "경제주의"에 경도된 동지들과 토론하거나 논쟁하면서 이 문제를 충분히 논해 왔다. 이 문제는 특별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선 또 하나의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경제주의"와 수공업성의 연관에 관한 우리의 논리 전개를 끝내겠다.

 

N. N. 씨는 「답변」이라는 자신의 글에서 이렇게 쓴 바 있다. "노동해방그룹은 정부와의 투쟁을 위한 물리력이 어디에 있는지 헤아려 보지도 않고, 이 투쟁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적시하지도 않은 채, 정부에 대한 직접적 투쟁을 요구하고 있다." 투쟁의 길을 강조한 후, 필자는 "길"이라는 말에 다음과 같은 주를 단다. "이러한 상황은 보안 목적이라는 것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왜냐하면 강령의 핵심이 음모가 아니라 대중운동이기 때문이다. 대중이 비밀스런 길로 갈 수는 없다. 도대체 비밀 파업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비밀 시위와 비밀 청원이라는 것이 가능한가?"(『바데메콤』59쪽.) 필자는 이 "물리력"(파업과 시위의 주동자들)과 투쟁의 "길"이라는 양자 모두에 거의 가깝게 다가섰다. 그러나 결국 어찌할 바 모르고 혼란 상태에 빠져 있으니, 그것은 그가 대중운동에 "굴종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운동을 우리의 혁명적 활동성을 자극하여 고무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를 혁명적 활동성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어떤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파업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파업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비밀 파업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러시아 노동자 대중에게는 파업이 "비밀스런" 것으로 남을 수 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그렇게 된다.) 왜냐하면 정부가 파업 노동자들과의 모든 연락을 단절시키려 부심하고 파업에 관한 자료가 유포되는 것을 어떻게든 불가능하게 만들려고 고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데서 벌써 "정치경찰"과의 특별한 "투쟁", 즉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매우 광범위한 대중으로서는 결코 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그러한 투쟁이 필요한 것이다. "기술상의 모든 규칙을 동원하여" 이런 투쟁을 조직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바로 직업적으로 혁명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대중이 운동에 자생적으로 이끌려 들어온다고 해서 투쟁을 조직할 필요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바로 그 때문에 조직이 더욱 필요해진다. 경찰이 어떤 파업과 집회라도 비밀스런 것으로 만드는 것을 우리 사회주의자들이 막지 못한다면 (또 어떤 때는, 우리 스스로가 파업과 집회를 비밀리에 준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대중에 대한 직접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해낼 능력이 있다. 왜냐하면 자생적으로 깨어나고 있는 대중이 점점 더 많은 수의 "혁명 활동이 직업인 사람"을 자기 주변에서도 배출하게 될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든 노동자들에게 제자리 뛰기를 권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것이기 때문이다.

 

3. 노동자 조직과 혁명가 조직

 

사회민주주의자에게 정치투쟁이라는 개념이 "고용주와 정부에 대한 경제투쟁"이라는 개념으로 윤곽을 잡힌다면, 다소간의 차이는 있더라도 "혁명가 조직"이라는 개념이 "노동자 조직"이라는 개념으로 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런 일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으나, 조직에 관해 논하면서 우리가 문자 그대로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매우 일관성 있는 한 "경제주의자"와 토론한 것이 지금 생각난다.[62] 논점은 『누가 정치혁명을 수행할 것인가?』라는 소책자에 관한 것이었는데, 우리는 그 글의 주요한 결점이 조직 문제를 도외시한 것이라는 데는 금방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우리는 이내 서로 연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화가 더 진전되자, 우리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상대방은 파업기금, 상조회 등을 간과한다는 점에서 그 글의 필자를 비판했고, 나는 정치혁명의 "수행"을 위해 필요한 혁명가 조직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견해차가 드러나자마자 그 어떤 원칙적인 문제에 관해서도 이 "경제주의자"와 합의할 수 있었던 기억이 없다!

 

우리의 견해차의 근원은 어디에 있었던가? "경제주의자들"은 조직적 임무, 정치적 임무 둘 다에서 항상 사회민주주의를 벗어나 노동조합주의의 길로 새 버린다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사회민주주의당의 정치투쟁은 고용주와 정부에 대한 노동자들의 경제투쟁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복잡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또한 그 결과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당 조직은 그런 투쟁을 위한 노동자 조직과는 다른 종류의 것일 수밖에 없다. 노동자 조직은 첫째, 노동조합 조직이어야 하며, 둘째, 가능한 한 폭넓은 조직이어야 하며, 셋째, 가능한 한 공개적이어야 한다. (물론 나는 여기서, 그리고 또 뒤에서도 전제주의 러시아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혁명가 조직은 무엇보다 먼저, 그리고 주요하게 혁명 활동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을 아우른다. (그런 까닭에 나는 사회민주주의자인 혁명가를 염두에 두면서 혁명가 조직을 논하는 것이다). 그러한 조직의 성원들이 갖는 이 공통된 특징 앞에서는 노동자와 지식인의 모든 차이가 일소되어야 한다. 성원들 개개인의 직업의 다양함에 관해서는 말할 나위도 없다. 이 조직은 그렇게 폭넓지 않아야 하며 가능한 한 비밀스러워야 한다. 이 세 가지 차이점에 관해 좀더 살펴보자.

 

정치적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는 노동조합 조직과 정치 조직의 차이가 노동조합과 사회민주주의당의 차이만큼이나 확연하다. 물론 역사적, 법적, 그밖의 여러 조건에 따라 여러 나라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사회민주주의당의 관계가 다양한 형태를 띠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 관계들이 긴밀하고 복잡한 정 도는 다소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그 관계는 가능한 한 긴밀하고 가능한 한 덜 복잡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조합 조직과 사회민주주의당 조직의 일치라는 말은 자유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다. 언뜻 보기에, 러시아에서는 전제주의의 압제가 사회민주주의 조직과 노동자 단체의 모든 차이를 쓸어버리고 있는 듯하다. 노동조합이든 서클이든 모든 것이 금지되어 있으며, 노동자의 경제투쟁 무기이자 그 주요한 표출 형태인 파업이 일반적으로 형사상의 범죄(때로는 정치적 범죄이기까지!)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조건은 한편으로는 경제투쟁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을 정치 문제에 직면하도록 "떠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노동조합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혼동하도록 "떠밀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끄리첸스키, 마르티노프 일파와 같은 자들은 첫째 종류의 "떠밀기"에 관해서는 열심히 말들을 하면서도 둘째 종류의 "떠밀기"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사실 "고용주와 정부에 대한 경제투쟁"에 99퍼센트 물두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 중 일부는 활동 기간을 통틀어(4~6개월) 단 한 번도 보다 복잡한 혁명가 조직의 필요성이라는 문제에 부딪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일부는 비교적 널리 유포된 베른슈타인주의 문건과 부딪치게 될 것이고, 그 문건을 통해 "지루한 일상 투쟁의 단계적 진전"의 커다란 중요성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머지 사람들은 "프롤레타리아트 투쟁과 긴밀하고도 유기적인 연관", 노동조합운동과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연관의 새로운 모범을 세상에 내보이겠다는 매혹적인 생각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본주의 무대에 늦게 진출한, 따라서 노동자운동의 무대에 늦게 진출한 나라일수록 더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조합운동에 참여하여 그 운동을 지원할 수 있으며, 그런 나라일수록 비(非)사회민주주의적 노동조합의 수가 적을 수 있고 또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판단한다. 지금까지는 그런 판단이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비극은 이들이 더 멀리 나아가서 사회민주주의와 노동조합주의의 완전한 융합을 꿈꾼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페테르부르크투쟁동맹 규약」의 예에서 이러한 꿈이 우리의 조직 계획에 얼마나 유해하게 반영되고 있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경제투쟁을 위한 노동자 조직은 노동조합 조직이어야 한다. 사회민주주의자인 노동자라면 누구나 이러한 조직에서 가능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협조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공장의" 조합원들이 모두 사회민주주의자일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우리에게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대중에 대한 우리의 영향력은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고용주와 정부에 대한 투쟁을 위해 단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공장의 조합에 참여하도록 내버려 두자. 공장의 조합이 이 기본적인 단계의 이해에라도 다다를 수 있는 사람들을 모두 결합시키지 못한다면, 그래서 매우 폭넓은 조직이 되지 않는다면, 조합의 목적 자체가 달성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조직의 폭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그들에 대한 우리의 영향력도 넓어진다. 그러한 영향력은 경제투쟁의 "자생적" 발전에 의해서는 물론이고, 사회주의적 조합원들이 동료에게 직접적이고 의식적인 영향을 미침으로써도 생겨난다. 그러나 조직의 성원이 광범위할 경우에는 엄격한 보안 유지(경제투쟁에 참여하기 위한 것보다 훨씬 많은 준비가 필요하므로)가 불가능하다. 광범위한 조직 성원과 엄격한 보안 유지라는 두 가지 필요성 사이의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공장 조직은 어떻게 하면 가능한 한 비밀스럽지 않게 될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 두 가지 방법이 없다. 공장의 조합을 합법화시키는가(몇몇 국가에서는 이 과정이 사회주의적이고 정치적인 단체의 합법화에 선행되어 이루어진 바 있다.), 아니면 비밀스럽게 그러나 조직원 대중에게는 보안성이라는 것은 거의 전무할 만큼 "자유롭고", 독일식으로 말하면 lose(느슨하게), 정형화되지 않은 형태로 조직을 유지하는가.

 

러시아에서 비사회주의적이고 비정치적인 노동자 단체의 합법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또한 빠르게 성장하는 우리 사회민주주의적 노동자운동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이 합법화 시도 — 주로는 기존 체제의 지지자들로부터 비롯되었지만, 부분적으로는 노동자들 스스로나 자유주의적 지식인도 참여한 시도 — 를 배가하고 고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있다. 바실리예프나 주바토프 같은 작자들이 이미 합법화의 깃발을 치켜들었으며, 오제로프 씨, 보름스 씨 등이 그에 협조하기로 벌써 약속했고 또 협조를 이행한 바 있다. 노동자들 가운데에도 이미 이 새로운 경향의 추종자들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이 경향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중시할 것인가. 이에 관해서는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에 두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없다. 우리에게는 주바토프, 바실리예프, 헌병과 성직자들이 이 경향에 참여하는 온갖 사례를 폭로하고 노동자들에게 이들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를 설명해 줄 의무가 있다. 우리에게는 또한 노동자들의 공개 집회에서 자유주의적 활동가들의 연설 속에 숨어들어 있을지도 모를 화해론적 "조화의" 목소리를 폭로할 의무가 있다. 그들이 평화적 계급 협조가 바람직하다는 자신의 신념 때문에 이러한 노선을 택하든, 당국에 아첨하고자 하는 바람 때문에 그러하든, 아니면 단순히 명청해서이든 그런 건 아무 상관없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는 노동자들에게 경찰이 빈번히 그들 앞에 설치해 두는 덧에 걸리지 말 것을 경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 경찰은 그러한 공개 집회와 허가된 단체들 속에서 "열성 활동가들"을 찾아내고 합법 조직을 매개로 비합법 조직에 선동끈들을 투입시키려고 애쓴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을 한다고 해도, 노동자운동의 합법화가 결국은 우리에게 이익이 되지 결코 주바토프 같은 자들에게 이롭지 않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는 바로 폭로 캠페인이라는 것을 통하여 밀에서 잡초를 솎아 내게 되는 것이다. 잡초가 무엇인지는 이미 지적한 바 있다. 밀이란 훨씬 더 광범위한 노동자층, 가장 후진적인 노동자층의 관심을 사회와 정치 문제로 돌리는 것이며, 우리 혁명가들이 본질적으로 합법적인 기능(합법 서적의 유포, 상조 활동 등등)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한 기능들이 발전되면 필연적으로 더욱 많은 선동 자료들이 우리에게 제공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주바토프와 오제로프 같은 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고, 또 말해야 한다. "신사 양반들, 노력하시게, 노력하시라고! 당신들이 노동자에게 덧을 놓는 (직접적 도발이라는 의미에서든 아니면 노동자들을 "스트루베주의"로 "정당하게" 타락시킨다는 의미에서든) 만큼, 우리는 당신들을 폭로하는 문제에 신경을 쓸 것이오. 당신들이 실제로 일보 전진한다면 — 비록 "소심한 지그재그" 그 자체이긴 하지만 일보 전진은 전진이다. —,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것이오. '계속하십시오!'"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실제적인 일보 전진은 노동자를 위한 공간을 실제로 확장시키는 것일 수 있다. 그러한 확장은 어떤 것이든 우리에게 이익이 되며 합법단체들의 출현을 앞당길 것이다. 그러한 합법단체들에서는 선동끈들이 사회주의자들을 포획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자들이 추종자를 얻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이제 우리의 과업은 잡초와 투쟁하는 것이다. 온실의 화분에서 밀을 키우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잡초를 솎아 내면서 그 자체로 밀의 씨앗이 발아할 수 있는 토양을 가꾸게 되는 것이다. 또한, 아파나시아 이바니치, 풀리헤리아 이바노브나[63] 같은 자들이 온실 재배에 몰두하고 있을 때, 우리는 오늘의 잡초를 베고 내일의 밀을 수확할 일꾼들을 키워 내야 한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비밀스럽지 않으며 가능한 한 광범위한 노동조합 조직을 창출하는 문제는 우리가 합법화를 수단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주바토프와 오제로프 같은 자들이 비록 부분적일지라도 이러한 해결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면 우리는 매우 기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그들과 정력적으로 싸워야 한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비밀 노동조합 조직의 길이다. (우리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처럼) 이미 이 길로 나선 노동자들에게 우리는 모든 지원을 대해야 한다. 노동조합 조직은 경제투쟁을 발전시키고 강화하는 데 매우 유용하게 기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 선동과 혁명적 조직화에도 매우 중요한 보조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또 이제 시작되고 있는 노동조합운동을 사회민주주의당을 위해 바람직한 궤도로 올려놓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페테르부르크의 "경제주의자들"이 거의 5년 동안 매달린 조직 계획의 어리석음을 분명하게 알 필요가 있다. 그 계획은 1897년 7월의 「노동자 기금 규약」(『노동자 신문』제9~10호 46쪽. 『노동자의 사상』제1호에서 발췌.)과 1900년 10월 「조합 노동자 조직 규약」(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간행된 특별 전단, 『불꽃』제1호에 실린 바 있음.)에서 서술된 바 있다. 이 두 규약의 주요한 결함은 광범위한 노동자 조직을 세세하게 정형화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조직과 혁명가 조직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잘 정돈된 둘째 규약을 한번 살펴보자. 이 규약은 전부 52개 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23개 항은 "노동자 서클들"의 조직 기구, 사업 수행 체계, 운영 권한에 관해 서술하고 있는데, "노동자 서클들"은 각 공장마다 조직되고("10인 이하") "중앙 (공장) 그룹"을 선출한다고 한다. "중앙 그룹 — 제2항에 등장 — 은 소속 공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관찰하고 공장에서 일어난 사건의 일지를 작성한다." "중앙 그룹은 모든 기금 납부자에게 달마다 기금의 상태에 관해 보고한다." (제17항) 기타 등등. 10개 항은 "지역 조직"에 관한 것이고, 19개 항은 "노동자조직위원회"와 "투쟁동맹 상트페테르부르크위원회"의 극도로 복잡한 연결에 관한 것이다. (이 양 위원회는 각 지역과 "집행 그룹" — "선전가 그룹, 지방 연락 그룹, 국외 연락 그룹, 자료 관리 그룹, 출판 그룹, 재정 그룹" — 에서 선출된 사람들로 구성된다.) 사회민주주의당이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에 관계된 "집행 그룹"이라니! "경제주의자"의 사상이 사회민주주의로부터 노동조합주의로 어떻게 옆길로 새고 있는지, 사회민주주의자는 무엇보다 먼저 프롤레타리아트 해방 투쟁 전체를 지도할 능력을 가진 혁명가 조직에 관해 생각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경제주의자"에게는 얼마나 낯선 것인지를 이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 주기도 어려울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해방"과 "짜르의 폭정"에 대한 투쟁을 언급하면서 이따위 조직 규약을 쓰는 것은 사회민주주의당의 진정한 정치적 과제에 관해 아무런 개념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50여 개 항 가운데 단 하나의 항도, 러시아 절대주의의 모든 측면과 러시아의 다양한 사회계급들의 전체 성격을 조명해 주는 실로 폭넓은 정치 선동이 대중 속에서 필요하다는 것에 대한 실낱같은 이해조차 보여 주지 않는다. 정말이지 그러한 규약으로는 정치적 목표는 말할 것도 없고 노동조합주의적 목표마저도 실현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는 직업별 조직이 필요한데, 규약에서는 이를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특이적인 것은 이 모든 "체계"의 놀랄 만한 육중함이 아닐까. 이 체계는 획일적이고 우스우리만치 자질한 규칙들로 이루어진 영구적인 실을 이용하여 삼 단계 선출 방식을 통해 각각의 공장들과 "위원회"를 연결시키려 애쓴다. "경제주의"라는 협소한 시야에 의해 억눌린 사상은 여기서 형식적 관료주의 냄새를 풍기는 세세한 일들에 매달린다. 물론, 실제로는 이 모든 항의 3/4이 한 번도 적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각각의 공장에 중앙 그룹이 있는 그 같은 "비밀" 조직은 믿기 어려울 만큼 광범위한 패배를 헌병이 쉽게 조직하도록 돕는다. 한때 폴란드의 동지들도 모두가 노동자 기금을 널리 설립하는 데 몰두했지만, 이것이 헌병들에게 풍성한 수확만을 안겨 줄 뿐이라는 것을 확신하자 금방 이러한 생각을 거부했다. 그렇게 그들은 운동의 이러한 한 시대를 이미 겪은 바 있다. 만일 우리가 광범위한 노동자 조직을 원하되 광범위한 패배를 원치 않는다면, 헌병들에게 만족을 안겨 주기를 원치 않는다면, 우리는 이 조직이 완전히 무형의 조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경우, 조직이 원활히 기능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여기 이 기능들을 한번 보라. "…… 공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관찰하고 공장에서 일어난 사건의 일지를 작성한다."(규약 제2항.) 정말 이러한 일을 반드시 정형화해야 할 것인가? 이러한 일은 이를 위한 특별한 그룹을 전혀 만들지 않고 비합법 신문에 투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편이 훨씬 더 낫지 않겠는가? "…… 공장에서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노동자 투쟁을 지도한다."(규약 제3항.) 이 역시 정형화할 필요가 전혀 없다. 명민한 선동가는 노동자들이 어떤 요구를 제기하고 싶어 하는지를 단순한 대화를 통해서도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세밀하게 간파해 낸다. 그런 후에 그는 필요한 문서를 넘겨주기 위해, 이제는 광범위한 것이 아니라 좁은 범위의 혁명가 조직에 이를 전하게 된다. "…… 1루블당 2코페이카씩 회비를 내는…… 기금을 조성한다."(제9항.) — 그 다음에는 달마다 기금의 상태에 관한 보고서를 모든 회원에게 제공한다(제17항), 회비를 내지 않는 회원들은 제명한다(제10항) 등등. 바로 이런 것이야말로 경찰에게는 천국 그 자체이다. "중앙 공장 기금"의 모든 비밀을 간파하고 돈을 압수하고 뛰어난 사람들을 전부 정리해 버리기 위해 이보다 더 쉬운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특정 조직(매우 좁은 범위의 비밀스러운)의 직인이 찍힌 1코페이카나 2코페이카 쿠폰을 발행하는 것이 더 간단하지 않겠는가, 아니면 아예 쿠폰 없이 모금하고 그에 관한 보고서는 일정한 암호를 붙여 비합법 신문에 게재하는 것이 더 간단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하면, 목적이 달성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헌병들이 그 실마리를 찾아내는 것은 백배나 더 어려워질 것이다.

 

하나하나 예를 들어 이 규약을 계속 분석해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위에서 말한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장래성 있고 노련하며 강인한 노동자들이 긴밀하게 결합된 중핵이 있어 이들이 주요 지역에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확보해 두고 엄중한 보안 규칙에 따라 혁명가 조직과 연결되어 있다면, 그 어떤 정형화된 형태 없이도 대중의 폭넓은 협조 속에 노동조합 조직이 담당하는 모든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사회민주주의당을 위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말이다. 헌병들의 온갖 방해를 뚫고 사회민주주의 노동조합운동을 공고히 하고, 이를 발전시키는 것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내게 이렇게 반박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조직이 전혀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등록된 확실한 회원이 전혀 없을 정도로 lose(느슨)하다면, 그런 것은 조직이라 부를 수도 없다고. 그렇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에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 "회원 없는 조직"은 필요한 모든 것을 해낼 것이며, 사회주의와 장래의 노동조합 사이의 강고한 관계를 처음부터 보장할 것이다. 절대주의 아래에서 선거, 보고, 전체 투표 등등을 갖춘 광범위한 노동자 조직을 원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공상가일 뿐이다.

 

이로부터 나오는 교훈은 간단하다. 만일 우리가 강고한 혁명가 조직을 튼튼히 건설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면, 우리는 전체 운동의 불요불굴성을 지키고 사회민주주의당의 목적과 본래의 노동조합의 목적 둘 다를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듯 보이는 (하지만 실제로는 헌병이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혁명가들을 경찰의 접근망에 내놓는) 매우 광범위한 노동자 조직에서 출발한다면, 우리는 이 두 가지 목적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실현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수공업성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그 분산성과 끝없는 지리멸렬로 주바토프 식 또는 오제로프 식 노동조합이 대중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뿐이다.

 

그렇다면 대체 혁명가 조직의 기능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이제 우리는 이에 관해 상세히 논해 보겠다. 그러나 이에 앞서, "경제주의자"와 여전히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애절한 그 운명이여!) 우리의 테러주의자가 취하는 아주 전형적인 논리 하나를 더 분석해 보겠다. 노동자를 위한 잡지『자유』(제1호)에는「조직」이라는 기사가 있다. 그 글의 필자는 자신의 지인들, 이바노보-보즈네센스크의 "경제주의자" 노동자들을 옹호하고 싶어 한다.[64]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대중이 침묵을 지키고 정치적 자각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리고 아래로부터 운동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유감스러운 일이다. 한번 보라. 대학 도시에서 학생들이 명절을 맞아 또는 여름을 보내려 흩어져 집으로 간다. 그러면 노동자운동은 정지해 버린다. 외부로부터 떠밀려 일어나는 그 같은 노동자운동이 과연 현실적인 힘일 수 있는가? 그럴 수는 없다……. 노동자운동은 아직 자기 발로 걷는 법을 깨쳐 익히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있다. 모든 일이 다 그렇다. 학생들이 흩어지면 일은 중단된다. 가장 쓰임새 있는 크림층을 뽑아내면 우유는 쉰다. '위원회'가 검거되고 아직 새 위원회는 만들어지지 않았으므로 또다시 소강상태다. 물론 어떤 위원회가 만들어질지 아직은 모른다. 어쩌면 이전의 위원회와는 전혀 다른 것이 될지도 모른다. 처음 위원회는 이렇게 말했지만 나중 위원회는 그 말을 뒤집는다. 어제와 오늘 사이의 연관은 사라진다. 어제의 경험은 내일의 교훈이 되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은 저 깊은 곳, 대중 속에 뿌리를 두지 않고 백 명의 바보들이 아니라 열 명의 똑똑한 사람들이 활동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열 사람은 언제나 조그만 그물로도 다 잡을 수 있지만, 조직이 대중을 획득하면 모든 것이 대중으로부터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애를 써도 과업을 괴멸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63쪽.)

 

사실이 올바르게 묘사되어 있다. 우리의 수공업성을 그린 이 그림은 엉터리가 아니다. 그러나 결론은 그 어리석음이나 그 정치적 우둔함으로 보아 『노동자의 사상』에 필적할 만하다. 그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다. 왜냐하면 필자는 "저 깊은 곳"에 있는 운동의 "뿌리"에 관한 철학적, 사회-역사적 문제를 헌병에 맞서 더 나은 투쟁을 하는 기술적-조직적 문제와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치적 우둔함의 극치다. 왜냐하면 필자는 형편없는 지도자들을 떠나 훌륭한 지도자들에게 호소하는 대신에 지도자들 일반을 떠나 "대중"에게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테러로 정치 선동을 대체하라는 사상이 정치 문제에서 우리를 뒤로 잡아당기듯, 이는 조직과 관련하여 우리를 뒤로 잡아당기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사실 나는 『자유』가 우리에게 바친 이 혼돈을 어디서부터 분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야말로 embarras de richesses(많아서 당황스러운) 상황을 겪고 있는 것이다. 문제를 일목요연하게 보여 주기 위해, 예를 드는 것으로 시작해 보겠다. 독일의 경우를 한번 살펴보자. 당신들은 독일에서는 조직이 대중을 포섭하여 모든 것이 대중으로부터 진행되고 있으며 노동자운동이 자기 발로 걷는 법을 깨쳐 익힌 지 오래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겠지요?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수백만의 대중이 어떻게 "열 명의" 경험 많은 정치 지도자를 높이 평가할 줄 알게 된 것일까, 어떻게 이 지도자들에게 굳게 매달리고 있는 것일까! 의회에서 적대 정당의 의원들이 사회주의자들을 다음과 같이 약 올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훌륭하신 민주주의자들이군 그래! 노동자계급의 운동이란 건 당신들 에게는 말뿐이오. 실제로는 한 무리의 지도자들이 계속해서 나서고 있는 것 아니오? 해가 바뀌어도, 수십 년이 지나도, 늘 베벨이고 늘 리프크네히트 아니오? 당신들이 말하는 이른바 선출된 노동자의 의원들이 황제가 임명한 관료들보다 더 오래 교체되지 않는구면!" 그러나 "지도자"와 "대중"을 대립시키고 대중의 어리석고 본능적인 허영심에 불을 질러 "열 명의 똑똑한 사람들"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무너뜨림으로써 운동의 항구성과 강고함을 없애려는 이 데마고그들의 시도에 독일인들은 경멸 어린 비웃음으로 대응했을 뿐이었다. 독일에서는 정치사상이 이미 충분히 발전되어 있으며 정치적 경험도 충분히 쌓여 있어서, 재능 있는 "열 명"(재능 있는 인재들이 백 명에 한 명꼴로 나오는 것은 아니므로)의 경험 많고 직업적으로 준비된, 세월의 오랜 교육으로 단련되었으며 누구보다 탁월하게 서로 보조가 맞는 지도자들 없이는 현대사회에서 단 하나의 계급도 굳건히 투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다. 독일인들도, 주변에서 "백 명의 바보들"에게 아첨하며 그들을 "열 명의 똑똑한 사람들"보다 높이 평가하고 대중의 "근육으로 다져진 주먹"[65]을 치켜세우는 그러한 데마고그들을 알고 있었다. 이들은 경솔한 "혁명적" 행동에 나서라고 대중을 부추기면서(모스트나 하셀만처럼), 신념에 철저하고 흔들림 없는 지도자들에 대한 불신을 조장한다. 독일 사회주의는 사회주의 내부의 온갖 데마고그 분자들과 비타협적인 불굴의 투쟁을 벌인 바로 그 대가로 성장하고 강화되었다. 그런데 자생적으로 각성된 대중에게 충분히 준비되고 성숙된 노련한 지도자들이 없다는 사실이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의 위기 일체를 설명해 주고 있는 이러한 시기에, 우리의 현명하신 양반들은 바보들의 심오한 사상을 이렇게 크게 외치고 있지 않은가! "운동이 아래로부터 이루어지지 않다니 엉망이군."

 

"학생들로 구성된 위원회는 안정적이지 않으므로 쓸모없다."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로부터 나오는 결론은 직업적 혁명가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필요하며 직업적 혁명가로 단련될 수 있다면 학생이든 노동자든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신들은 노동자운동이 외부로부터 떠밀려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나 내리고 있으니! 정치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당신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경제주의자들"과 함께 그 수공업성을 편들어 준다는 사실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이 우리의 노동자들을 "떠밀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물어 봐도 되겠는지요? 학생들이 노동자들에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단편적인 정치 지식과 우연히 입수한 사회주의 사상의 파편들(오늘날 학생들의 주요한 지적 양식은 합법적 맑스주의인데, 그것으로는 초보적인 지식과 자질구레한 단편들을 얻을 수 있을 뿐이기 때문에)을 제공했다는 것이 전부다. 또한 그 정도의 "외부로부터의 떠밀기"란 것도 그리 많지 않다. 그와는 반대로 그것이 우리 운동에는 너무도 부당하리만큼 너무도 부족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너무나 멍렬하게 자기 세계에만 빠져들어 초보적인 "고용주와 정부에 대한 경제투쟁"에 노예처럼 굴종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 혁명 활동이 직업인 사람들은 그와 같은 "떠밀기"에 백배나 더 많이 치중해야만 하며 또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적어도 당신들만큼 미성숙한 노동자)가 자신에게 정치 지식과 혁명적 경험을 제공하는 모든 사람을 불신하게 만들 것이 틀림없는 꺼림직한 단어, 즉 "외부로부터의 떠밀기"와 같은 말을 당신들이 선택한 순간, 바로 그 선택이 그러한 모든 사람에게 본능적인 반발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신들은 데마고그이며, 데마고그는 노동자계급의 최악의 적이다.

 

제발, 나의 논쟁이 "동지라 볼 수 없는 태도"라고 그렇게 서둘러 개탄의 소리를 높이지는 말라! 나도 당신들의 의도가 순수함을 의심할 생각은 없다. 나는 이미 정치적 무지함이라는 것 하나 때문에 데마고그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게다가 나는 당신들이 데마고그의 수준으로까지 타락했다는 것을 증명했다. 또한 데마고그는 노동자계급의 최악의 적이라는 사실을 나는 결코 지치지 않고 반복할 것이다. 데마고그가 최악인 까닭은 군중의 어리석은 본능에 불을 붙이기 때문이다. 미성숙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친구로 나서고 있는, 가끔은 진정 그렇게 나서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이 적들을 분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데마고그가 최악인 까닭은 혼란과 동요의 시기, 우리 운동의 면모가 이제 막 다듬어지고 있는 시기에 데마고그로 대중의 주의를 끄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 없기 때문이다. 대중은 가장 빠져린 시련을 겪고 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범한 오류를 확신할 수 있게 된다. 바로 이 때문에, 오늘날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의 슬로건은 데마고그의 수준으로까지 타락하고 있는 『자유』 및 『노동자의 대의』와의 단호한 투쟁이 되어야 한다. (이에 관해서는 나중에 더 상세히 논할 것이다.)*

 

"백 명의 바보들보다 열 명의 똑똑한 사람들을 잡는 것이 더 쉽다." 이 위대한 진리(이 진리를 선사해 준 것에 대해 백 명의 바보들은 당신들에게 언제나 박수를 보낼 것이다.)가 자명해 보이는 것은 단지 당신들이 논리를 전개하면서 하나의 문제에서 다른 문제로 건너뛰었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위원회"의 일망타진, "조직"의 일망타진을 말하기 시작했고 계속 말하고 있다. 그러더니 이제는 "저 깊은 곳"에 있는 운동 "뿌리"의 일망타진이라는 문제로 건너뛰었다. 물론 우리 운동이 포획되지 않는 이유는 깊은 곳에 수십만 개의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의 요점은 이것이 전혀 아니다. "깊은 곳에 있는 뿌리"라는 점과 관련하여 보자면, 우리의 온갖 수공업성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역시 우리를 "일망타진"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운동의 계승성 일체를 파괴하는 "조직"의 일망타진을 안타까워하고 있으며 또 그러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당신들이 조직의 일망타진이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그로부터 빗나가지 않은 만큼, 나는 당신들에게 열 명의 똑똑한 사람들을 일망타진하는 것이 백 명의 바보들을 일망타진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고 말하겠다. 또한 당신들이 아무리 내가 "반민주주의적"이니 어떠니 하면서 대중을 부추긴다 할지라도 나는 이 명제를 옹호할 것이다. 내가 이미 여러 번 지적했듯이, 조직 관계에서 "똑똑한 사람들"이라 함은 오직 직업적 혁명가들을 칭하는 것이어야 하며 그들이 학생 출신이든 노동자 출신이든 그런 것은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바이다. 1) 혁명가 조직의 지속적이고 견고한 계승성이 없다면 그 어떤 혁명운동도 강고해질 수 없다. 2) 운동의 기반을 이루고 운동에 참여하면서 투쟁에 자생적으로 끌려오는 대중의 폭이 넓으면 넓을수록 (그럴수록 데마고그들이 미성숙한 대중층을 다른 쪽으로 끌고 가기가 더욱 쉬어지기 때문에) 그러한 조직의 필요성은 더욱 절박해지며, 그러한 조직은 더욱더 강고해져야 한다. 3) 그러한 조직은 직업적으로 혁명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주로 구성되어야 한다. 4) 전제주의 국가에서는 정치경찰에 맞선 투쟁 기술면에서 전문적인 준비를 하고 직업적으로 혁명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이 조직에 참여하는 수준으로까지 조직 구성원의 범위를 좁히면 좁힐수록, 그러한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고, 5) 또한 운동에 참여할 기회를 갖게 되고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될 노동자계급과 그 밖의 사회계급 출신의 성원들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우리의 "경제주의자", 테러주의자, "경제주의자이자 테러주의자들"에게 이 명제들을 반박해 보라고 제안하는 바이다. 이제 나는 이 명제들 중 마지막 두 가지를 살펴보겠다. "열 명의 똑똑한 사람들"과 "백 명의 바보들" 가운데 어느 쪽을 일망타진하는 것이 더 쉬운가라는 문제는 위에서 분석한 문제, 즉 엄격한 비밀 활동이 필요한 가운데 대중적 조직이 가능한가라는 문제로 귀착된다. 광범위한 조직을 높은 보안 수준, 즉 정부에 대한 투쟁의 지속적이고 견고한 계승성에 반드시 필요한 그러한 수준으로까지 올려놓는 일은 결코 할 수 없다. 그리고 가능한 한 적은 수의 직업적 혁명가의 수중에 모든 보안 기능을 집중시킨다는 것이 이 혁명가들이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생각하고" 대중은 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지는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이러한 직업적 혁명가들은 대중으로부터 점점 더 많이 배출될 것이다. 왜냐하면 "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몇몇 학생들과 경제투쟁을 주도하는 노동자들이 모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점과 직업적 혁명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수년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점을 대중이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중은 수공업성 하나만을 "생각하지" 않고 바로 그 같은 성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직보안 기능의 집중이 운동의 모든 기능을 집중시킨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열 명의" 직업적 혁명가들이 비합법 저술 활동의 보안 유지 기능을 전담한다고 해서 실로 광범위한 대중이 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폭이 축소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열 배나 증대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아니 오직 이렇게 해야만, 비합법 문건을 읽고 그에 협력하고 부분적으로는 그 문건을 배포하는 일이 더 이상 비밀 활동이 아닐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 왜냐하면 수천 부씩 뿌려지는 각각의 문건들에 대해 사법적, 행정적 실마리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경찰이 금방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비단 출판물에만 관계된 것이 아니라 시위까지를 포함한 운동의 모든 기능에 해당된다. 우리의 경찰 못지않게 직업적으로 엄격히 훈련되고 경험 많은 "열 명의" 혁명가들이 비밀 활동의 모든 측면, 즉 유인물의 작성, 대략적인 계획의 수립, 시의 각 지역·각 공장 구역·각 학교별 지도부의 임명 등등의 일에 집중함으로써, 대중은 시위에 매우 적극적으로 또 매우 폭넓게 참여해도 더 이상 해를 입지 않게 된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승리하게 될 것이다. (나의 관점이 "비민주주의적"이라고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어리석기 짝이 없는 반박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세세히 논하였다.) 혁명가 조직에 가장 엄밀한 보안 기능이 집중된다고 해서, 광범위한 대중을 대상으로 하며 따라서 가능한 한 정형화되어 있지 않으면서 가능한 한 비밀성이 적은 다른 조직들, 즉 노동조합, 비합법 문건 강독 서클, 노동자 자체 학습 서클, 기타 모든 주민 계층의 사회주의 서클, 민주주의 서클 등등의 전반적인 대중 활동의 내용과 폭이 약화되지는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더욱 풍부해진다. 아주 다양한 기능을 가진 그 같은 서클, 단체, 조직들은 최대한 많이, 최대한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도처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조직들을 혁명가 조직과 혼동하는 것, 그것들 사이의 경계를 없애는 것, 대중 속에서 그렇지 않아도 믿을 수 없을 만큼 희미한 의식, 즉 대중운동에 "봉사"하기 위해서는 사회민주주의 활동에 전문적으로 자신의 전부를 바치는 사람들이 필요하며 그러한 사람들은 인내와 강인함으로 자신을 직업적 혁명가로 키워 내야 한다는 의식을 눌러 버리는 것은 어리석고 유해하다.

 

지금은 정말 그러한 의식이 믿기 어려울 지경으로 희미해진 상태다. 조직 관계에서 우리가 범한 주요한 과오는 우리가 스스로의 수공업성으로 러시아 혁명가의 권위를 실추시켰다는 점이다. 이론 문제에서 힘없이 갈팡질팡 헤매고 대중의 자생성을 빌미로 자신의 협소한 시야로 인한 흐리명덩함을 정당화하는 자, 인민의 호민관보다는 노동조합의 서기에 가까우며 적에게도 존경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폭넓고 대담한 계획을 제시할 능력도 없는 자, 정치경찰과의 투쟁이라는 직업적 기술에 서툴고 일천한 자 — 미안하오만 — 이런 자는 혁명가 아니라 한날 보잘것없는 수공업자다.

 

단 한 사람의 실천가도 나의 이 신랄한 표현에 화내지 말기를. 준비 부족이 문제의 핵심인 한, 나는 그 문제를 누구보다 먼저 나에게 적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매우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임무를 내세웠던 한 서클[66]에서 활동한 바 있다. 그때 그 서클의 구성원인 우리 모두는 저 유명한 격언을 변형시켜 "우리에게 혁명가 조직을 달라. 그러면 우리는 러시아를 뒤덮고 말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역사적 시기에 우리가 수공업자에 머무르고 있다는 의식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내가 그때 겪었던 그 낯 뜨거운 모멸감이 그 이후 어쩔 수 없이 종종 떠오를 때마다, 우리의 임무는 혁명가가 수공업자로 전락하는 것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수공업자를 혁명가로 격상시키는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혁명가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설교나 늘어놓는 저 사이비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한 쓰디쓴 감정은 더욱 커져 왔다.

 

4. 조직 활동의 범위

 

우리는 위에서 B-v로부터 "페테르부르크뿐만이 아니라 러시아 전역에서 감지되고 있는 것처럼 행동에 적합한 혁명 세력이 부족하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논박하려 들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느냐이다. B-v는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의 역사적 원인을 규명하는 데 몰입하지는 않겠다. 다만, 계속되는 정치적 반동으로 타락하였으며 이미 완수되었거나 이행되고 있는 경제적 변화들로 인해 갈기갈기 찢긴 사회는 그 내부로부터 혁명 활동에 적합한 사람을 극히 적은 수만 만들어 낸다는 점, 노동자계급이 노동자 혁명가들을 배출함으로써 부분적으로 비합법 조직의 성원을 충당하지만 그런 혁명가의 수는 시대의 요구에 미치지 않는다는 점만 말하겠다. 더구나 공장에서 11시간을 보내는 노동자는 자신의 처지로 인해 우선적으로 선동가의 기능을 수행할 수는 있지만, 선전과 조직, 비합법 문건의 복사와 공급, 성명서 발표 등의 기능은 그 무게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몇 안 되는 극소수 지식인의 몫이 되고 있다. (『노동자의 대의』 제6호 38~39쪽.)

 

우리는 많은 점에서 B-v의 이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 우리가 강조해 놓은 부분에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 그 문구는 B-v가 우리의 수공업성에 널리리가 나 있으면서도(조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실천가라면 누구나 그런 것처럼), "경제주의"에 가위눌려서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빠져나올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사실 사회는 "대의"에 적합한 극히 많은 사람을 만들어 내지만, 우리에게는 이들을 모두 활용할 만한 능력이 없다. 우리가 고찰하는 이 문제에서 우리 운동의 과도적 위기 상황은 다음의 말로 정식화할 수 있다. 사람이 없다. 그런데도 사람은 많다. 사람은 많다. 왜냐하면 노동자 계급도, 그리고 더 많은 다양한 사회계층도 해가 갈수록 더 많은 불만을 느끼며, 저항하고 싶어 하고, 절대주의에 맞선 투쟁을 강력히 지원할 태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주의가 더 이상 용인 불가능함을 아직은 모든 사람이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갈수록 광범위한 대중이 점점 더 첨예하게 이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지도자가 없고 정치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다. 각각의 사람에게, 아무리 사소한 역할을 지닌 사람에게도, 할 수 있는 일을 제공한다는 작업, 광범위한 동시에 통일적이고 정연한 작업을 일정에 올릴 수 있는 뛰어난 조직가들이 없기 때문이다. B-v도 인정하듯, "혁명 조직의 성장과 발전"은 노동자운동의 성장에 뒤쳐져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층의 국민의 일반 민주주의 운동의 성장에도 뒤쳐져 있다. (하긴 B-v도 지금쯤은 그의 결론에 추가하여 이 점도 인정할 것이다.) 운동의 광범위한 자생적 기반에 비해 혁명 활동의 규모는 지나치게 협소하며, "고용주와 정부에 대한 경제투쟁"이라는 빈궁한 이론에 너무 짓들려 있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 선동가는 물론이고 사회민주주의자 조직도 "주민의 모든 계급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때이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그 조직 활동의 수천 가지 세분화된 기능을 다양한 계급의 대표자들에게 분배할 수 있다는 점을 의심하는 실천가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전문화의 부족 — 이는 우리의 커다란 기술적 결함 가운데 하나여서, 이 점을 B-v는 그처럼 쓰라리게 그처럼 정당하게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공동의 대의 속에서 개개 "업무"가 세분화되면 필수록 그러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들(대부분의 경우에 이들은 결코 직업적 혁명가가 될 수 없다.)을 더 많이 찾을 수 있으며, 경찰이 이 모든 "세부적 일관"을 일망타진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또한 어떤 사소한 건으로 한 사람을 체포함으로써 국고의 "보안" 비용 지출을 상쇄할 만한 "사건"을 만들어 내기도 점점 어려워진다. 우리에게 협조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의 수와 관련하여 보자면, 우리는 이미 앞 장에서 지난 5년 동안 이 측면에서 일어난 거대한 변화를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모든 세분화된 조각을 통일된 대오로 모으기 위해서는, 운동의 기능과 함께 운동 자체를 조각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에게 자기 활동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믿음 — 이러한 믿음이 없이는 결코 활동할 수 없을 것이다. * — 을 심어 주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을 위해서는, 바로 시련으로 다져진 혁명가들의 군건한 조직이 필요하다. 그러한 조직 아래에서 당의 힘에 대한 믿음이 더욱 군건해지고 점점 더 확산될수록, 이 조직은 점점 더 비밀 조직이 되어갈 것이다. 사실, 전쟁에서는 아군뿐만 아니라 적에게도 그리고 모든 종합적인 진영에게도 아군의 힘에 대한 믿음을 불어넣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다. 우호적인 중립자가 때때로 사태를 결정지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탄탄한 이론적 기반 위에서 있으며 사회민주주의 기관지를 보유하고 있는 그러한 조직 아래에서는, 운동에 유입된 많은 수의 "외부" 인자들이 운동을 궤도에서 이탈시키지 않을까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와는 반대로 바로 지금, 수공업성이 지배적인 이 시기에, 우리는 많은 사회민주주의자가 자신만이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생각하면서 Credo의 노선에 이끌리고 있음을 보고 있다.) 한마디로 전문화는 필연적으로 중앙 집중화를 전제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반드시 중앙 집중화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전문화의 필요성 일체를 매우 훌륭하게 개발한 B-v자신도 인용된 논리의 둘째 부분에서는 — 우리 생각으로는 — 그것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 출신의 혁명가 수가 적다고 그는 말한다. 이는 맞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까이 있는 관찰자의 귀중한 보고"가 사회민주주의당의 현재적 위기의 원인과 그에 따른 위기의 치유 수단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충분히 확인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바이다. 혁명가들이 대중의 자생적 고양에 전반적으로 뒤처져 있음은 물론이고, 심지어 노동자 혁명가들조차 노동자 대중의 자생적 고양에 뒤쳐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 사실이 가장 일목요연하게 확인해 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점, 즉 노동자에 대한 우리의 의무 문제를 토론할 때면 빈번히 우리에게 펼쳐 보이곤 하던 그 "교육학"이 "실천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엉터리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반동적이라는 점이다. 이 사실이 입증하는 것은 우리의 제일차적 의무, 가장 절박한 의무는 노동자 혁명가를 당 활동이라는 지점에서 지식인 혁명가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단련시키도록 돕는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당 활동이라는 지점에서"를 강조한 것은 다른 지점에서도 노동자가 그 같은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며 또 그렇게 절실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동자를 혁명가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주된 관심을 쏟아야지 "경제주의자들"이 바라는 것처럼 스스로가 어떻게든 "노동자 대중"의 수준으로 내려가거나 (이 점에서 경제주의적 "교육학"의 계단을 한 단계 올라선) 『자유』가 바라는 것처럼 "중간 노동자"의 수준으로 내려가는 데 관심을 쏟아서는 결코 안 된다. 나는 노동자를 위한 대중 서적들, 특히 후진 노동자를 위한 매우 대중적인 서적의 필요성을 부정할 생각은 전혀 없다(물론 쓸모없는 저질 작품만 아니라면). 그러나 나를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그 교육학을 항상 정치 문제, 조직 문제로 끌어들인다는 점이다. 정말 당신들, "중간 노동자"의 후원자이신 신사 양반들은 노동자 정치나 노동자 조직을 논하기 전에 항상 노동자들 앞에 머리를 숙이고 싶어 하는데, 그것은 사실상 노동자를 모욕하는 것이다. 제발, 심각한 일을 말할 때는 꼿꼿이 서서 말하고, 교육학은 정치가나 조직가가 아니라 교육자에게나 갖다 바치시라! 과연 지식인 중에는 선진 지식인, "중간층", "대중"이 없단 말인가? 모두들 지식인을 위한 대중 서적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며, 또 그러한 책들이 쓰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런데 대학생 조직이나 고등학생 조직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이 마치 무슨 발견이라도 한 듯이 "중간 학생"의 조직이 최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꼽쩌 설명하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라. 틀림없이 그런 글을 쓴 사람은 비웃음을 당할 것이며, 이는 당연한 이치다. 그런 저자에게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자, 당신에게 조직 사상 나부랑이가 있다면 이리 쥐 보시오. 거기서 우리 중 누가 '중간'이고 누가 위고 아래인지 우리 스스로 가려 보리다. 그런데 만일 당신에게 자신의 조직 사상이 없다면 '대중'과 '중간'에 관해 당신이 계속 애쓴 것은 다 헛일임이 드러날 것이오." "정치"와 "조직"에 관한 문제 자체가 벌써 너무나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그 문제들은 매우 신중하게 논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음을 아시라. 노동자(대학생, 고등학생도 마찬가지)가 이런 문제를 우리와 함께 논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을 준비시키는 것은 가능하며, 또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당신들이 이미 이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으니, "중간층"이나 "대중"들에게로 뒷걸음하거나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하지 말고 진실하게 답변하시라.

 

노동자 혁명가가 자신의 일을 해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준비되기 위해서는 그 역시 직업적 혁명가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B-v가 노동자는 공장에서 11½ 시간을 보내므로 (선동 외의) 다른 혁명적 기능들은 "그 무게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몇 안 되는 극소수 지식인의 몫이 되고 있다."라고 한 말은 틀렸다. 일이 그렇게 된 것은 결코 "어쩔 수 없이"가 아니라 우리의 후진성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발굴의 능력을 지닌 노동자를 직업적 선동가, 조직가, 선전가, 배포자 등등으로 변모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임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특별히 신경을 써서 키우고 길러야 할 것을 보전할 줄 모르 채 자신의 역량을 그야말로 부끄럽게 소진하고 있다. 독일인의 예를 보라. 그들의 역량은 우리보다 백배나 크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 능력 있는 선동가 등등이 "중간 정도의 사람"으로 판별되는 일은 그리 흔치 않다는 것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바로 지금도 능력 있는 모든 노동자에게 역량을 한껏 계발하고 제대로 적용시킬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려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한 노동자를 직업적 선동가로 만들고, 그가 자신의 활동을 하나의 공장에서 모든 작업장으로, 하나의 지역에서 전국으로 확대시키면서 활동의 장을 넓히도록 일깨운다. 그 노동자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요령을 터득하고 경험을 쌓으며 시야와 지식의 폭을 넓힌다. 그는 다른 지방과 다른 당의 뛰어난 정치 지도자들을 바로 옆에서 관찰하면서, 자신도 그같이 높은 수준에 올라설 수 있도록, 그리고 노동자 사회에 대한 지식과 신선한 사회주의적 신념을 직업적 숙련과 함께 아우를 수 있도록 노력한다. 직업적 숙련이 없다면 프롤레타리아트는 매우 잘 훈련된 적들의 대오와 강고한 투쟁을 벌일 수 없다. 이렇게 해서, 아니 오직 이렇게 해야만, 노동자 대중 속에서 베벨이나 아우어 같은 사람들이 배출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국가에서는 상당 정도 저절로 진행되는 일도 러시아에서는 우리의 조직이 체계적으로 수행해야만 한다. 어느 정도 재능이 있는 "장래성 있는" 노동자 출신 선동가라면 공장에서 11시간씩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당이 그의 생계를 보장할 수 있도록, 그가 적기에 비합법 활동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또 활동 장소를 변경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더 많은 경험을 연마하고 시야를 넓힐 방법이 없으며, 헌병과의 투쟁에서 최소한 몇 년씩 버터 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노동자 대중의 자생적 고양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질수록, 그들 중에서 출중한 선동가뿐만 아니라 뛰어난 조직가, 선전가, 그리고 좋은 의미의 "실천가들"이 더 많이 나오게 된다. (우리의 지식인들 중에 이런 사람들은 극히 적다. 우리의 지식인들은 대개 러시아식으로 천하태평하고 게으른 사람들이다.) 전문적으로 준비되어 오래도록 노동자 혁명가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의 분견대(게다가 당연히도 "어떤 종류의 무기라도 다 될 수 있는" 혁명가들)가 생긴다면, 그때는 세계의 어느 정치경찰도 이들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혁명에 지극히 헌신적인 이들 분견대는 가장 광범위한 노동자 대중의 헌신적인 신뢰를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바로 우리의 몫인바, 우리는 노동자들을 "지식인"과 나란히, 공통된 직업적 혁명가 훈련의 길로 "떠미는" 일을 거의 하지 않고 있으며, 노동자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일", "중간 노동자" 등등의 바보 같은 말들로 그들을 뒤로 잡아당기는 일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른 여러 점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점에서 보더라도 (비록 대부분의 "경제주의자들"과 초보 실천가들은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조직 활동의 범위가 협소한 것은 이론 및 정치적 임무의 협소함과 명백히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자생성에 굴종한 결과,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일"로부터 한 걸음이라도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대중의 직접적인 당면 요구를 그저 따르는 것 이상으로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신사 양반들, 겁내지 마시게! 조직과 관련하여 우리는 너무 높이 올라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조차 황당할 정도로 너무 낮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게.

 

5. "음모적" 조직과 "민주주의"

 

우리 중에는 "생활의 소리"에 너무 민감해서 이 글에서 피력하는 견해를 견지하는 사람들을 "민주주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인민의 의지'파"[5]와 같다고 비난하면서, 바로 그 "생활의 소리"를 무엇보다 더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이들의 비난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노동자의 대의』도 그러한 비난에 동조하는 것은 물론이다.

 

페테르부르크의 "경제주의자들"이 『노동자 신문』 역시 "'인민의 의지' 파"와 같다고 비난했다(그 신문을 『노동자의 사상』과 비교한다면 이해가 될 만도 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래서 『불꽃』이 창간된 직후 한 동지가 우리에게 어떤 도시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불꽃』을 "인민의 의지" 기관지로 부른다고 알려 왔을 때도 우리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에게는 이 비난이 칭찬일 뿐이었다. "경제주의자들"에게 '인민의 의지' 파라고 비난받지 않은 어떤 올곧은 사회민주주의자가 있었던가?

 

이러한 비난은 두 가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첫째, 사람들은 짜르 체제에 단호히 선전포고를 하는 전투적 중앙 집중 조직에 관한 사상이라면 어떤 것이든 모두 "'인민의 의지' 파"라고 부를 만큼 혁명운동의 역사를 잘 모르고 있다. 하지만 70년대의 혁명가 조직이었으며 우리 모두의 전범이 되어 마땅한 이 탁월한 조직을 만든 것은 결코 '인민의 의지' 파가 아니라 흑토 재분배파와 '인민의 의지' 파로 분열된 '토지와 자유'[67]다. 그러므로 전투적 혁명 조직에서 '인민의 의지' 파의 특징을 찾아 내는 것은 역사적으로는 논리적으로 불합리한 일이다. 왜냐하면 심각한 투쟁을 정말 실제적으로 생각하는 혁명 노선이라면 그 어떤 것이나 그 같은 조직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민의 의지' 파가 불만에 가득 찬 모든 사람을 조직에 포섭하고 전제주의에 대한 단호한 투쟁을 조직 노선으로 삼으려 노력했다는 점은 오류가 아니다. 그와 반대로 그것은 그들의 지대한 역사적 공헌이다. 그들에게 오류가 있다면, 그들이 본질적으로 혁명 이론이 결코 될 수 없는 이론에 의지했다는 점, 그래서 발전하고 있는 자본주의사회 내부의 계급투쟁과 자신들의 운동을 탄탄히 연결할 힘도 능력도 없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대중적, 자생적 노동자운동이 생겨나면 '토지와 자유' 같은 훌륭한 조직, 어디에도 비견되지 않을 만큼 훌륭한 혁명가 조직을 창건할 의무가 면제될 것이라는 생각은 맑스주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결과(혹은 그것을 "스트루베주의"의 정신으로 이해한 결과)로만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은 정반대로 그러한 운동이야말로 우리에게 이 의무를 부여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자생적 투쟁은 강력한 혁명가 조직의 지도를 받지 않는 한 진정한 "계급투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많은 사람 — 끄리첸스키(『노동자의 대의』제10호 18쪽)도 그 속에 포함될 것이 분명하다. — 은 정치투쟁을 "음모"로 바라보는 견해에 대해 사회민주주의자들이 항상 제기해 온 반론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우리는 정치투쟁이 음모의 수준으로 협소해지는 것을 막으려 했고, 물론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강고한 혁명 조직의 필요성을 부정한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따라서 각주에 언급한 소책자에는 — 예를 들자면 —, 정치투쟁을 음모로 둔갑시키는 데 대한 반론과 함께 "절대주의에 대한 단호한 공격"을 위해 "봉기"와 온갖 "다른 공격 수단*을 다 "이용할" 수 있을 만큼 강고한 조직의 상이 (사회민주주의의 이상으로서) 묘사되어 있다. 전제주의 국가에서 이처럼 강고한 혁명 조직은 그 형태상 "음모적" 조직이라 불릴 수도 있는데, 그 이유는 프랑스어 단어 "conspiration"이 러시아어 "음모"와 같은 것이며 이런 조직에는 최대한의 비밀 엄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비밀 엄수는 이 조직의 절대적인 필수 조건이어서 다른 모든 조건(조직원 수, 그들의 선별, 여러 기능 등등)이 이에 적합한 것이어야 할 정도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민주주의자가 음모적 조직을 만들어 한다는 비난을 두려워하는 것은 순진해도 너무 순진한 것이다. "인민의 의지'파"라는 비난과 마찬가지로 이런 비난은 "경제주의"의 모든 적에게는 칭찬과 같다.

 

다음과 같이 우리를 반박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모든 비밀 활동의 끈을 자기 수중에 집중하고 있는 그처럼 강력하고 엄격한 비밀 조직, 중앙 집중이 필수적인 조직은 너무 쉽게 시기상조적인 공격을 감행할 수 있으며, 정치적 불만이 증대하고 노동자계급 및 기타 계급 속에 동요와 분노가 강해짐에 따라 가능하고 또 필요하게 될 운동의 격화를 그렇게 되기도 전에 경솔하게 촉발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답하는 바이다.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전투조직이 패배 — 다른 조건 하에서라면 결코 필연적이지 않은 — 로 끝날 수도 있는 경솔한 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물론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추상적으로 사고하는 것에 그칠 수 없다. 어떤 전투도 모두 추상적인 패배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전투를 조직적으로 준비하는 것 외에는 이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오늘날 러시아의 조건이라는 구체적인 기반 위에서 이 문제를 제기한다면, 운동에 안정성을 부여하고 경솔한 공격의 가능성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강고한 혁명가 조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긍정적인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조직이 없고 혁명운동이 빠르게 자생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바로 지금, 별써 상반되는 두 극단(이 두 극단은 당연하게도 "서로 유사하다.")이 눈에 띈다. 하나는 전혀 근거 없는 "경제주의"와 온건 노선의 선전이며, 다른 하나는 "강화되고 발전되고 있지만 아직 중점이라기보다는 시작에 가까운 운동에 인위적으로 종말의 징후를 불러일으키려"(V. Z., 『여명』 제2~3호 353쪽) 노력하는, "경제주의"만큼이나 근거 없는 "자극적 테러"다. 나아가 『노동자의 대의』의 예는 이 양 극단에 굴복하고 있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이미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다른 원인은 차치하고라도, 혁명가라면 "고용주와 정부에 대한 경제투쟁"에 결코 만족하지 않으며 그래서 이곳저곳에서 상반되는 극단이 항상 발생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오직 중앙 집중화된 전투조직, 사회민주주의 정치 노선에 확고한, 말하자면 모든 혁명적 본능과 열망을 충족시켜 주는 그러한 조직만이 무모한 공격의 위험으로부터 운동을 막아 내고 성공을 약속하는 공격을 준비할 능력이 있다.

 

조직에 대한 이러한 관점이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 것이다. 앞의 비난이 러시아적 특징을 보이는 것이라면, 이는 국외에서 특징적인 비난이다. 따라서 국외의 조직(국외러시아사회민주주의자동맹[9])만이 다른 지침들과 함께 다음과 같은 지침을 편집국에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조직 원칙. 사회민주주의당의 성공적인 발전과 통합을 위해서는 그 당 조직의 광범위한 민주주의 원칙을 강조하고 이를 발전시키며 정취하기 위해 싸워야 하며, 이는 우리 당 대오에서 발견되고 있는 반민주주의적 경향으로 인해 특히 필요한 일이다.(『두 대회』18쪽.)

 

『노동자의 대의』가 『불꽃』의 "반민주주의적 경향"에 도대체 어떻게 맞서 싸우고 있는지는 다음 장에서 보게 될 것이다. 지금은 "경제주의자들"이 제기하고 있는 이 "원칙"을 좀 더 가까이서 자세히 살펴보자. 아마도 "광범위한 민주주의 원칙"이 다음의 두 가지 필수 조건을 내포하고 있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첫째는 완전한 공개성이고, 둘째는 모든 직위의 선출제다. 공개성 없이 민주주의를 운위하는 것은 우스운 일일 것이다. 더욱이 공개라는 것은 조직원들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독일의 사회주의당을 민주주의적 조직이라 부른다. 그 당에서는 당대회의 회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일이 공개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직원 외의 모든 사람에게 폐쇄적인, 비밀에 싸인 그러한 조직이라면 어느 누구도 이를 민주주의적 조직이라 하지 않는다. 여기서 절로 나오는 질문은 "광범위한 민주주의 원칙"의 주요한 조건이 비밀 조직으로서는 실현 불가능한 것일 때 이 조건을 내세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광범위한 원칙"이라는 것은 소리만 큰 빈 수레 같은 문구다. 아니,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이 문구는 조직 관계에서 현시점의 절박한 임무가 무엇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광범위한" 혁명가에게 비밀 엄수의 능력이 부족한 현실이 우리를 풍미하고 있으며 또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정도인지는 모두들 알고 있다. "엄격하게 조직원을 선발해야 한다."(『노동자의 대의』 제6호 42쪽)라고 매우 정당하게 요구하고 있는 B-v가 얼마나 쓰라리게 이를 한탄하는지를 우리는 보았다. 그런데 여기, 자신의 "생활 감각"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들은 이런 상황에서 엄격한 비밀과 엄격한 조직원 선발은 불필요하다고 강조하지만, 그러나 "광범위한 민주주의 원칙"은 강조하고 있다! 이런 것을 보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한다.

 

민주주의의 둘째 원칙, 즉 선출제와 관련해서도 상황이 나온 것은 아니다. 정치적 자유가 있는 국가에서 이 조건은 당연한 것이다. "당 강령의 원칙들을 인정하고 자신의 능력에 따라 당을 지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원으로 간주된다." 이는 독일사회민주주의당의 조직 규약 제1조다. 극장의 관객들 앞에 무대가 열려 있듯 모든 정치 무대가 만인 앞에 열려 있으므로, 어떤 것이 인정이고 어떤 것이 거부인지, 어떤 것이 지원이고 어떤 것이 반대인지를 모든 사람이 신문과 집회를 통해 알게 된다. 어떤 정치 활동가가 무슨 일에서 시작하여 어떻게 성장해 왔으며, 어려운 시절에 어떻게 능력을 발휘하였고, 어떤 자질이 뛰어난지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이런 까닭에 자연히 모든 당원이 상황을 잘 알고 있으므로, 그 활동가를 어떤 당직에 선출할 수도 있으며 또 선출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정치 무대에서 당원이 내딛는 일보 일보가 총체적으로 감독(문자 그대로의 의미로)됨으로써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메커니즘이 창출되는데, 이 메커니즘 속에서는 생물학에서 "적자생존"이라 불리는 일이 이루어진다. 각각의 활동가는 완전한 공개성, 선출제, 총체적 감독 등의 "자연선택"을 통해 결국 "자기 자리"를 찾게 되고, 자신의 역량과 재능에 가장 맞는 일에 전념하며, 자신의 과오로 빚어진 모든 결과를 겪으면서 이를 통해 오류를 인식하고 거기서 벗어날 줄 아는 능력을 만인이 보는 앞에서 입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그림을 우리의 전제주의라는 틀에 한번 끼워 넣어 보라! 러시아에서 "당 강령의 원칙들을 인정하고 자신의 능력에 따라 당을 지원하는" 모든 사람이 비밀 혁명가의 일보 일보를 통제하게 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가? 혁명가가 활동을 위해 이 "모든 사람" 열이면 아홉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숨겨야만 하는 상황에서, 이 모든 사람이 이런저런 혁명가를 선출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가? 『노동자의 대의』가 그렇게 호연장담한 그 말들의 진정한 의미를 조금이라도 깊이 한번 생각해 보라. 그러면 헌병의 침탈이 지배하고 있는 전제주의의 압흑속에서 당 조직의 "광범위한 민주주의"라는 것은 쓸모없고 유해한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이 쓸모없는 장난감인 이유는 실제로 그 어떤 혁명 조직도 광범위한 민주주의를 한 번도 실행해 본 적이 없으며 또 결코 실행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유해한 장난감인 이유는 실제로 "광범위한 민주주의 원칙"을 적용하려 시도할 경우에는 경찰의 광범위한 침탈만 용이해질 뿐이며, 도처에 만연한 수공업성이 영구화되고, 실천가들이 직업적 혁명가로 성장해야 하는 중대하고도 절박한 임무를 벗어던지고 선거제도에 관한 세세한 "서류상의" 규약을 작성해야 한다는 생각이나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민주주의 게임"이 어디에선가, 특히 여러 소규모 그룹들에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국외에서 뿐인데, 국외에는 자신이 진정 해야 할 생생한 일을 찾을 기회가 없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모여 있기 때문이다.

 

혁명 과업에서 민주주의와 같은 매끌 좋은 "원칙"을 내세우는 『노동자의 대의』가 즐겨 쓰는 수법의 전모가 얼마나 불생사나운지를 독자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나는 다시 한 증인의 말을 인용하겠다. 이번 증인은 세레브라코프이다. 그는 런던에서 발행되는 잡지 『전야』의 편집장이며, 『노동자의 대의』에는 무한한 천사를 바치고 플레하노프와 "플레하노프파"에게는 커다란 증오를 퍼붓는 사람이다. 국외러시아사회민주주의자동맹의 분열을 다룬 기사에서 『전야』는 단호하게 『노동자의 대의』의 편에 서서 플레하노프에게 형편없는 말을 한 다발 쏟아부었다.[68] 그런 까닭에 이 문제와 관련된 그의 말이 우리에게는 더욱 귀중하다. 『전야』 제7호(1899년 7월)의 「노동자자기해방그룹의 호소문에 관하여」라는 기사에서 세레브라코프는 "심각한 혁명운동에서 나타나는 자아도취, 최고 지도권, 이른바 아레오파고스[69]"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무례한 태도"라고 지적하며, 그 중에서도 특히 이렇게 쓰고 있다.

 

미슈킨, 로가초프, 젤랴보프, 미하일로프, 페롭스카야, 피그너 등은 한 번도 자기 자신을 지도자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또 아무도 그들을 선출하거나 임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선전의 시기와 정부에 대한 투쟁의 시기에 그들은 가장 어려운 활동을 담당했으며, 가장 위험한 곳으로 향했고, 그들의 활동이 가장 큰 결실을 맺었으므로, 사실상 그들은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던 셈이다. 따라서 최고 지도권은 그들이 원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지혜, 정력, 헌신성에 대한 주위 동료들의 신뢰의 결과였다. 독단적으로 운동을 통솔하는 아레오파고스 같은 것을 두려워한다면(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이에 관한 글을 쓸 이유도 없다.), 그것은 이미 너무 순진한 일이다. 도대체 누가 그런 사람의 말을 듣겠는가?

 

우리는 독자들에게 묻는다. "아레오파고스"와 "반민주주의적 경향"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 『노동자의 대의』의 "매끌 좋은" 조직 원칙도 순진하고 무례하기는 마찬가지다. 순진하다고 한 것은 "아레오파고스"든 아니면 "반민주주의적 경향"의 사람들이든 "그들의 지혜, 정력, 헌신성에 대한 주위 동료들의 신뢰"가 없다면 아무도 그들의 말에 그저 복종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무례하다고 한 것은 그 조직 원칙이 몇몇 사람들의 허영심이나 우리 운동의 실제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 또 사람들의 준비 부족 및 혁명운동사에 대한 무지에 교묘히 편승하고 있는 데마고그와 같은 언동이라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 운동의 활동가들에게 유일하게 심각한 조직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엄격한 비밀 엄수, 엄격한 조직원 선발, 직업적 혁명가 준비이다. 이 같은 것들이 실제로 갖춰진다면 "민주주의"보다 더 큰 어떤 것이 보장된다. 혁명가 상호간의 완전한 동지적 신뢰가 그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 러시아에서는 이것을 민주주의적인 총체적 감독으로 대체하는 일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민주주의적" 감독이 실제로 불가능하다고 해서 혁명 조직의 조직원들이 통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 큰 잘못이다. 그들은 민주주의 (서로를 완벽하게 신뢰하는 동지들의 긴밀한 중핵 내부의 민주주의)의 장난감 같은 형식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의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더욱이 그들은, 진정한 혁명가들의 조직은 어떤 수단 앞에서도 부적격한 조직원을 막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장구한 역사가 있으며 러시아 (또한 국제적인) 혁명가 사회의 충분히 성숙된 공론이 있다. 이로 인해, 동지적 관계의 의무에서 조금이라도 물러설 경우에는 가차 없이 엄격한 처벌이 뒤따른다. (사실 장난감 같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진정한 "민주주의"는 동지적 관계라는 이 개념 속에 그 전체의 한 부분으로서 포함되는 것 아니겠는가!) 이 모든 점을 고려한다면, "반민주주의적 경향"에 관한 이런 말들과 결의안에서 풍겨 나오는 국외에서 벌이고 있는 장군 놀이의 썩은 냄새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또 하나 지적해야 할 점은 이 같은 말들이 나오게 된 또 다른 원천인 순진함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의 혼란을 먹고 자란다는 점이다. 영국의 노동조합에 관한 웹 부부의 책[54]에는 「원시적 민주주의」라는 흥미로운 장이 있다. 그들은 이 책에서, 조합 초창기에 영국의 노동자들이 조합 운영에서 모든 사람이 각 부분별로 모든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징표로 여겼던 것을 말하고 있다. 모든 문제가 조합원 전원의 투표로 결정되었음은 물론이고, 직무 역시 전 조합원이 돌아가면서 말았을 정도였다. 노동자들이 이 같은 민주주의 개념의 부조리를 깨닫고, 한편으로는 대표제와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조합 상근자의 필요성을 이해하게 된 것은 오랜 역사적 경험을 겪은 뒤였다. 납입되는 회비와 수령되는 보조금의 비율 관계는 민주주의적 투표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보험 전문가의 의견이 함께 필요한 문제라는 점을 노동자들이 이해하게 된 것은 조합의 기금이 몇 번의 재정 파탄에 직면한 후였다. 다음으로, 의회 제도와 인민 입법에 관한 카우츠키의 책[70]을 한번 보라. 맑스주의 이론가인 그의 결론이 "자생적으로" 단결한 노동자들이 수년의 실천에서 깨달은 교훈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카우츠키는 리팅하우젠이 민주주의를 원시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에 단호히 반대하여,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인민의 신문은 인민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야 한다." 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을 사회민주주의적으로 지도하기 위해서는 직업적 언론인, 의원 등등이 필요함을 증명하고 있다. 그는 인민의 직접 입법이 현대 사회에서는 매우 제한적으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파급효과를 노려" 그것을 높이 격찬하고 있는 "무정부주의자와 글쟁이들의 사회주의"를 공격하고 있다.

 

우리 운동에서 실천 활동을 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청년 및 노동자 대중들 사이에 민주주의에 대한 "원시적인" 관점이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지 알고 있다. 이런 관점이 규약이며 저작물 속에도 침투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베른슈타인 경향의 "경제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규약에 이렇게 써 놓았다. "제10항. 조합 조직 전체의 이해관계와 관련되는 모든 일은 조합원 전원의 투표에 의해 다수결로 결정한다." 테러주의 경향의 "경제주의자들"은 이들의 말에 맞장구치며 같은 말을 반복한다. "위원회의 결정을 모든 서클이 검토하며 그런 연후에야 그 결정은 효력이 있다."(『자유』 제1호 67 쪽.) 조직 전체를 선거의 원칙에 입각하여 건설해야 한다는 요구에 더하여 전체 투표를 폭넓게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고 있는 점을 주목하라! 물론 우리는 민주주의적인 조직의 이론과 실천을 실제로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실천가들을 이 일로 비난할 생각이 전혀 없다. 하지만 지도적 역할을 맡을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노동자의 대의』가 이러한 상황에서 광범위한 민주주의 원칙에 관한 결의안에만 그치고 있다면, 어떻게 이를 단순한 "파급효과 노리기"라고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6. 지역 활동과 전 러시아적 활동

 

조직의 비민주주의성과 음모적 특성이라는 견지에서 이 글이 피력하는 계획을 반대하는 것이 전혀 근거가 없다면 또 다른 문제가 남는데, 이는 매우 자주 제기되는 문제라서 상세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 그것은 지역 활동과 전국 활동의 상호 관계에 관한 문제이다. 중앙 집중적 조직이 형성되면 구심이 지역 활동에서 전국 활동으로 옮겨 가는 것이 아니냐, 그렇게 되면 노동자 대중과 우리의 탄탄한 관계와 지역 선동의 안전성 일반이 약화되어 결국 운동에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리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운동이 어려운 이유는 바로 지역 활동가들이 과도하게 지역 활동에만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따라서 전국 활동으로 구심을 어느 정도 옮기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그러한 구심 이동은 지역 선동의 안전성과 결합의 강도를 강화시킬 뿐 약화시키지는 않는다고 답할 것이다. 중앙기관지와 지역기관지의 문제를 한번 보자. 우리에게 신문 작업은 훨씬 광범위하고 확장된 혁명 과업 일반을 설명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예에 불과할 뿐 그 이상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 것을 독자들께 부탁드린다.

 

대중운동의 초창기(1896~1898년)에 지역 활동가들은 전 러시아적 기관지인 『노동자 신문』을 만들려고 시도한 바 있다. 그 다음 시기(1898~1900년)에 운동은 엄청나게 전진한다. 하지만 지도자들의 관심은 지역신문에 완전히 매몰되어 있다. 이 모든 지역신문들을 전부 헤아려 보면, 한 달에 대충 한 호씩 신문이 나는 셈이 된다.* 과연 이것이 우리의 수공업성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것이 우리의 혁명 조직이 운동의 자생적 고양에 뒤처져 있음을 명백하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만일 이만큼의 신문을 분산된 지역 그룹들이 아니라 하나의 단일한 조직이 발행했다면, 우리는 엄청난 역량을 아낄 수 있었을 것임은 물론이고 우리의 활동도 무한히 큰 안정성과 계승성을 확보했을 것이다. 지역신문에만 거의 매달려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바로 그 실천가들(유감스럽게도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는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과 이 문제에서 놀라울 정도로 돈키호테 기질을 발휘하고 있는 저 사회 평론가들은 이와 같은 간단한 이치를 너무 자주 간과하고 있다. 실천가들은 보통, 전 러시아적 신문 창간에 주력하는 것은 지역 활동가들로선 "버거운"** 일이라는 생각과 신문이 전혀 없는 것보다는 지역신문이라고 있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물론 지역신문이라고 있으면 낫다는 말은 매우 지당하다. 우리도 또한 지역신문이 일반적으로 큰 의의와 효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느 실천가 못지않게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문제는 러시아 전역에서 2년 반 동안 발행된 30여 호의 지역신문이 확인히 보여 주고 있는 산개성과 수공업성을 과연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역신문의 일반적 효용성에 대해, 논란의 여지도 없는 너무나 공통된 말을 하는 것에 그치지 말라. 2년 반 동안의 경험으로 폭로된 그 신문들의 부정적인 측면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용기 또한 가져야 한다. 경험이 증명하는 바와 같이, 우리의 조건에서 지역신문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원칙적으로 흔들리고 정치적으로 의미를 상실하고 있으며, 혁명 세력의 소모라는 점에서 지나치게 값비싸며, 기술적 측면(말할 것도 없이,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인쇄의 기술이 아니고 발행의 빈도와 정기성이다.)에서 전혀 만족스럽지 못하다. 더욱이 위의 결함들은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라 산개성의 필연적 결과물이며, 그러한 산개성은 한편으로는 지역신문들이 이 시기를 지배하고 있음을 설명해 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지배 덕분에 지탱되는 것이기도 하다. 개개의 지역 조직으로서는 자신의 신문을 정치적 기관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그 원칙의 확고부동함을 보장한다는 것이 그야말로 역부족이다. 또한 우리의 정치생활 일체를 조명할 만한 충분한 자료를 모으고 활용한다는 것도 역부족이다. 그런데 자유국가에서 수많은 지역신문의 필요성을 옹호하는 데 쓰이는 논거, 즉 지역 노동자들이 신문을 인쇄할 경우에 비용이 저렴하다는 점과 지역 주민을 위한 정보가 풍부하고 신속하다는 점은 우리에게는 — 경험이 입증하듯 — 지역신문을 반대하는 논거가 되어 돌아온다. 혁명적 역량의 소모라는 의미에서 지역신문들은 터무니없이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또한 아무리 조그만 비합법 신문일지라도 그것을 내기 위해서는 대규모 비밀 장치가 필수적인데, 수공업자의 작업장에서는 그러한 장치를 마련할 수조차 없으므로 공장제 대공업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에서 지역신문들은 매우 드문드문 간행된다. 이 비밀 장치의 원시성은 곧바로 경찰이 대규모 침탈을 위해 한두 호의 발간과 배포를 이용하는 결과로 귀결된다. (실천가라면 누구나 이런 예를 한둘씩 알고 있다.) 대량 침탈은 모든 것을 완전히 쓸어버리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좋은 비밀 장치가 있으려면 혁명가들을 직업적으로 훌륭하게 준비시키는 것이 필요하며, 일관된 방식으로 분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두 가지 조건은 개개의 지역 조직이 그 시점에서 아무리 강력하다 할지라도 지역 조직의 능력을 훨씬 넘어서는 일이다. 우리 운동 전체의 공동의 이해관계(원칙적으로 확고부동하게 노동자들을 사회주의적이고 정치적으로 교양하는 것)를 차치하고라도 특수한 지역적 이해관계도 지역적이지 않은 신문이 더 잘 지원할 수 있다. 이는 언뜻 보기에만 역설적으로 여겨질 뿐, 실제로 우리가 지적한 2년 반 동안의 경험은 이를 반박할 여지가 없도록 증명해 준다. 30호의 신문들을 발간한 지역 역량들 모두가 하나의 신문을 만드는 작업에 투여되었다면, 그 신문은 100호까지는 아니더라도 60호는 쉽게 나왔을 것이며, 순전히 지역적 특성을 지닌 운동의 모든 특수한 일까지도 자연히 더욱 충분히 반영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정도의 조직에 도달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 필요성을 인식해야 하며, 각각의 지역 서클은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기다리거나 망상에 불과한 — 우리의 혁명적 경험에 근거해 볼 때 — 지역신문의 접근 용이성이나 친밀성 따위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전 러시아적 신문을 탄탄히 조직하는 문제를 고심하고 이를 위한 작업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실천 활동에 또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람들로는 자신들이 실천가들과 특별히 친밀하다고 생각하는 정치 평론가들이 있는데, 이들은 이 헛된 망상을 간과하지 못하고 놀랍도록 공허한 싸구려 논리, 즉 지역신문도 필요하고 구역 단위의 신문도 필요하고, 전 러시아적 신문도 필요하다는 논리로 발을 빼고 있다. 물론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이 모든 신문이 필요하다. 그러나 구체적인 조직 문제에 착수할 때는 자신이 처한 조건과 시기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자유』(제1호 68쪽)는 「신문 문제를 집중 조망하면서」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가 볼 때, 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지역이라면 그 어디라도 자체의 노동자 신문이 있어야 한다. 다른 어떤 곳에서 들어오는 신문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들의 신문이 있어야 한다." 이 평론가가 자기 말의 의미를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면, 독자 여러분이라도 그를 대신하여 생각해 보라. "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지역"은 러시아에 수백 군데는 아니라도 수십 군데는 되지 않는가! 그런데 실제로 모든 지역 조직이 전부 자체의 신문을 발행하는 데에 전념한다면 우리의 수공업성은 얼마나 더 오래 답습되겠는가! 이러한 산개성은 지역 활동가가 진정한 혁명가로 성장하지도 못하고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헌병들에게 일망타진되는 것 — 그것도 "정말 별다른" 수고도 없이 — 을 얼마나 용이하게 만들겠는가! 기사의 필자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전 러시아적 신문의 독자는 "자기 도시가 아닌 다른 도시들에서 일어나는 공장 생활의 단면들"이나 공장주의 갖은 책략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를 시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아를 주민이라면 결코 질리지 않고 읽을 수 있다. 신문에서 '두들겨 패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 또 '깍아내리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를 매번 알고 있기 때문에 들뜨는 것이다."(69쪽.) 물론 아를 주민은 들뜰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이 정치 평론가의 생각 역시 너무 "들떠 있다." 자질한 일에 매달리는 것을 이렇게 옹호하는 것은 정도가 지나치지 않은가? 이 점을 그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누구 못지않게 공장 폭로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이 그 시의 신문인『노동자의 사상』의 페테르부르크 통신문을 읽는 것을 이제는 지겨워 할 정도에까지 이르렀음을 명심해야 한다. 지역에서의 공장 폭로를 위한 것으로는 유인물이 언제나 있어 왔으며, 그것은 앞으로도 언제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신문의 유형으로 끌어올려야 하지 그것을 공장 유인물의 수준으로 격하시켜서는 안 된다. "신문"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장 생활의 "단면들"이 아니라 그 굵직굵직하고 전형적인 결함 사례들의 폭로이며, 그러한 폭로는 아주 두드러진 예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바로 이 때문에 모든 노동자와 운동의 모든 지도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이며, 또한 그들의 지식을 살찍우고 그들의 시야를 터우며 새로운 구역, 새로운 직업의 노동자층을 각성시키는 초석을 놓을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지역신문에서는 공장 경영진이나 다른 정부 당국들의 온갖 책략을 그 자리에서 따끈따끈한 기사로 낼 수 있다. 그런데 멀리 있는 공동의 신문에까지 정보가 들어갈 무렵이면, 지역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벌써 잊어버리고 만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지? 그걸 어떻게 기억해!'"(같은 쪽.) 정말이지 그걸 어떻게 기억해! 바로 이 사람으로부터 우리가 들어 알고 있는 것처럼, 2년 반 동안 30호의 신문들이 여섯 개 시에서 발간되었다. 한 도시에서 평균적으로 반년에 한 호가 나온 것 아닌가! 우리의 이 경솔한 정치 평론가에서 지역 활동의 생산성이 세 배나 높다고 가정한다고 해도(평균적인 도시의 경우에는 말도 안 되는 얘기인데, 왜냐하면 수공업의 범주 안에서는 생산성을 현저히 향상시킨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두 달에 한 호씩 겨우 나올 수 있다. 그러나까 "따끈따끈한 기사"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그러나 열 개의 지역 조직이 통합하면, 각자의 대표를 공동 신문 제작에 관계된 직무에 파견하기만 하면 충분하다. 그러면 자질한 사건들이 아니라 정말 전형적이면서 두드러진 획포들을 이 주일에 한 번씩 러시아 전역에서 "기사로 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조직 상황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이 점을 의심치 않을 것이다. 적을 범죄 현장에서 바로 불잡는 문제로 보자면 — 번지르르한 말로만이 아니라 심각하게 생각한다면 —, 비합법 신문으로서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다. 그것은 비밀리에 뿌려지는 전단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포착할 수 있는 시간 한계란 대부분 하루 이틀을 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흔한 단기 파업이나 공장 내 충돌과 시위 등을 생각해 보라.)

 

우리의 필자는 보리스 끄리첸스키가 빛낸 바 있는 줄기찬 일관성으로 특수에서 일반으로 상승하면서 계속해서 말한다. "노동자가 생활하는 곳은 공장뿐만이 아니다. 도시도 포함된다." 그러면서 그는 시의회, 시립 병원, 공립학교 등의 문제를 지적하고, 노동자 신문은 도시의 일반적 문제들을 침묵하며 보아 넘겨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그 자체로는 매우 훌륭하지만 아무 내용도 없는 추상성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는데, 사람들은 너무나 빈번히 지역신문에 관해서 그러한 추상적인 논리 전개에 갇혀 있다. 첫째, "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지역이라면 그 어디라도"『자유』가 원하는 것처럼 그 지역에 관한 세세한 지면이 있는 신문들이 실제로 등장한다면, 이는 우리 러시아의 조건에서는 어김없이 조합한 간행물이 되어 버릴 것이고, 짜르 전제주의를 향한 전 러시아적인 혁명 공세의 중요성에 관한 의식을 약화시키고, 뿌리 뿌리지 않고 여전히 끈질기게 숨어 있었거나 짓눌린 채 있었던 저 경향— 있지도 않은 의회는 너무 많이 거론하면서, 현존하는 시의회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하는 법이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유명한 말[72]로 악명을 떨친 바 있는 — 의 싸움을 복돋아 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우리가 "어김없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자유』가 고의적으로 이를 원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현상을 원하고 있음을 이 말을 통해 강조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의도가 좋았다고 해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여러 도시의 상황을 우리의 전체 활동에 적합한 전망 속에서 조망하기 위해 첫째로 필요한 것은 이 전망이 충분히 연구되어 논리 하나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예로 뒷받침되어 튼튼히 정립되는 것이다. 또 그런 전망이 전통이라는 안정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아직은 우리에게 요원하다. 그런데 광범위한 지역신문을 생각하고 그것을 논할 수 있는 상황이 되기 전에 첫째로 해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이다.

 

둘째, 여러 도시의 상황을 실제로 훌륭하고 흥미 있게 기록하려면 책을 통해서만 파악할 것이 아니라 충분히 잘 알아야만 한다. 그런데 러시아를 통틀어 이러한 지식이 있는 사회민주주의자는 거의 없다. 여러 도시와 국가의 상황을 신문(대중용 소책자가 아니라)에서 다루려면, 숙련된 사람들이 수집하고 다듬은 다방면의 생생한 자료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자료를 수집하고 또 다듬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온갖 일을 다 하며 전체 투표라는 게임에 빠져 있는 원시적인 서클의 "원시적 민주주의"로는 부족하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주의자 작가단, 전문 기자단, 곳곳마다 연락망을 확보해 두고 온갖 "국가 기밀"(러시아 관료들은 이런 기밀을 알고 있다고 으스대는 걸 좋아해서 이를 쉽게 발생한다.) 속으로 침투하며 갖가지 "막후 사건"에 접근할 능력이 있는 사회민주주의자 통신원단, 도처에 자리 잡고 무엇이든 다 알아내는 "직무에 배치된" 사람들 등등이 있어야 한다.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민족적 등 온갖 억압에 맞선 투쟁의 당인 우리는 이 같은 전지전능한 군단을 찾아내어 모으고 훈련시키고 동원하여 행군시킬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아직은 해야 할 일일 뿐이다!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우리는 이러한 일을 조금도 해내지 못했을 뿐더러, 심지어 이 일을 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의식조차 전혀 없다. 사회민주주의 신문에서 우리의 외교, 군사, 종교, 도시, 재정 등등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폭로하는 생생하고 재미있는 글, 기사, 통신문 등을 한번 찾아보라. 거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거나 발견하더라도 정말 적은 양일 것이다.⁴ 이런 까닭에 "어떤 사람이 다가와" "노동자가 모여 있는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지역이라면 그 어디라도" 공장, 도시, 국가 등의 획포를 폭로하는 신문이 필요하다고 "매우 멋있고 유창한 말을 늘어놓으면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미는" 것이다!

 

지역신문이 중앙신문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은 빈곤의 상징이기도 하고 풍요의 상징이기도 하다. 운동이 대규모 생산을 위한 역량을 키우지 못하고 여전히 수공업성에 매여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공장 생활의 자질구레한 일들" 속으로 빠져들 때, 그것은 빈곤의 징표이다. 운동이 전면적 폭로와 전면적 선동의 임무를 이제 충분히 강화시켰고 따라서 중앙신문 외에 수많은 지역 신문들이 필요하게 될 때, 그것은 풍요의 징표이다. 현재 러시아에서 지역신문이 지배적인 이 현상이 무엇을 증명하고 있는지는 각자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나는 나 자신의 결론을 정확하게 정식화하는 데 그치겠다. 지금까지 러시아에서 대부분의 지역 조직들은 거의 배타적으로 지역신문만을 생각하고 그것을 위한 작업에만 열중하고 있다. 이는 비정상적이다. 정반대의 상황, 즉 대부분의 지역 조직들이 전 러시아적 기관지를 주요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위한 작업에 주로 열중하는 상황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는 한, 지면상의 전면적 선동으로 운동을 실제로 지원할 수 있는 신문을 우리는 단 하나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반면, 이 일을 이루어 낸다면 필요한 중앙신문과 필요한 지역신문들 사이의 정상적인 관계가 자연스럽게 정립될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구심을 지역 활동에서 전국 활동으로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은 전문적인 경제투쟁의 영역에는 적용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여기서 노동자의 직접적인 적은 개별 기업가나 그들의 그룹인데, 이들은 정치투쟁에서 우리의 직접적인 적인 러시아 정부 조직, 즉 아주 사소한 일들까지 단일한 명령으로 지도하는 엄격한 중앙 집중적 조직이자 순수한 군사 조직인 그런 조직과 비교할 때, 거의 조직으로 묶여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경제투쟁은 — 우리는 이미 여러 번 이를 지적한 바 있다. — 직종과 관계된 투쟁이다. 따라서 이 투쟁을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작업장별 단결뿐 아니라 직종과 관련된 노동자들의 단결도 필요하다. 또한 기업가들이 더욱 신속하게 별의별 연합체 및 신디케이트를 만들어 단결해 나갈수록, 이러한 노동조합의 단결은 더욱 절실히 필요해질 것이다. 우리의 산개성과 수공업성이 노동자의 단결을 가로막고 있으니, 이 단결을 위해서는 전국의 노동조합을 지도할 수 있는 단일한 전 러시아적 혁명가 조직이 필요하다. 앞서 우리는 이러한 목적을 위해 바람직한 조직 유형을 이미 말한 바 있는데, 이제 여기서는 신문 문제와 관련하여 몇 가지만 더 언급하겠다.

 

각각의 사회민주주의 신문에는 반드시 노동조합 투쟁(경제투쟁)을 다루는 지면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노동조합운동의 성장은 노동조합 신문에 관해서도 생각하게끔 만든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드물게 보이는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아직 노동조합 관련 신문을 논할 수조차 없어 보인다. 아무리 둘러싸도 당장 먹을 빵도 없는 상황에서 이는 하나의 사치인 것이다. 비합법 활동 조건에 적합하고 지금 필요한 형태의 노동조합 신문이 될 수 있는 것은 노동조합의 소책자들이야 할 것이다. 소책자들은 해당 공장의 노동조건, 러시아 각 지방에서의 노동조건의 차이, 해당 직종 노동자의 주요 요구 사항, 그와 관련된 법률의 미비점, 어떤 공장 노동자들의 발군의 경제투쟁 사례, 이들 노동조합 조직의 맹아적 상태와 현재 상태와 이들의 결핍점 등의 문제를 다룬 합법 자료를 비합법 자료들을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분류해야 한다. 그러한 소책자들이 있다면, 첫째, 우리 사회민주주의 신문은 해당 업종 노동자들만이 특별히 관심을 갖는 직종과 관련된 세세한 문제를 다수들 더 이상 다루지 않아도 될 것이다. 둘째, 소책자들은 노동조합 투쟁의 경험이 만든 결과들을 기록하고, 수집되는 자료들을 보존하며 — 지금은 수많은 전단과 단편적 통신문이 문자 그대로 사라지고 있다. — 종합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소책자들은 선동가에게 일종의 지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노동조건은 상대적으로 완만히 변해가며, 해당 공장 노동자들의 주요 요구 사항은 너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1885년의 모스크바 지역 섬유 노동자들의 요구[74]와 1896년 페테르부르크 섬유 노동자들의 요구 사항[38]을 비교해 보라.) 이 요구 사항과 필요로 하는 점을 종합하면, 낙후된 지방이나 후진 노동자층에게 경제 선동을 행하기 위한 훌륭한 교과서 역할을 해마다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지구에서 일어난 성공적인 파업 사례나 어떤 지방의 좀 더 나은 생활수준 및 노동조건에 관한 자료들은 지역 노동자들이 새로운 투쟁을 계속해 갈 수 있도록 고무한다. 넷째, 노동조합 투쟁을 총괄할 출발점을 찾고 그런 방식으로 러시아 노동조합운동과 사회주의의 관계를 강화시킴으로써 사회민주주의당은 우리의 노동조합 활동이 총체적 사회민주주의 활동에서 너무 작지도 않고 너무 크지도 않은 몫을 차지하도록 배려할 것이다. 지역 조직이 다른 도시의 조직들과 아무런 관계없이 떨어져 있을 경우에는, 이 점에서 적절한 균형을 지킨다는 것이 무척 어려우며 때로는 거의 불가능하기도 하다. (『노동자의 사상』의 예를 보면, 이럴 경우 노동조합주의의 방향에서 얼마나 터무니없는 과장이 있을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맑스주의 관점을 확고하게 견지하고 정치투쟁 일체를 지도하며 직업적 선동가단을 확보하고 있는 전 러시아적 혁명가 조직이라면 적절한 균형을 확립하는 문제의 어려움을 결코 겪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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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노동조합주의 정치와 사회민주주의 정치

 

이제 다시 『노동자의 대의』를 칭찬하는 것으로 시작해 보자.

「폭로 문건과 프롤레타리아의 투쟁」— 마르티노프는 『노동자의 대의』 제10호에서 『불꽃』과의 이견을 다룬 자신의 글에 이러한 제목을 붙였다. "우리는 노동자 당의 발전 도상에서 부딪치게 되는 체제를 폭로하는 것에만 그칠 수 없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당면 이해관계 및 가까운 미래의 이해관계들에도 화답해야 한다."(63쪽.) 그는 이견의 핵심을 이렇게 정식화했다. "…… 『불꽃』……은 사실상 우리의 체제, 특히 정치체제를 폭로하는 혁명적 반정부 세력의 기관지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과의 긴밀하고 유기적인 연관 속에서 노동자의 대의를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같은 쪽.) 이렇게 정식화해 준 데 대해 마르티노프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정식화는 우리 모두의 높은 관심을 얻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질상 『노동자의 대의』와 우리의 이견만이 아니라 정치투쟁이라는 문제에 관한 우리와 "경제주의자들"의 전반적인 이견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제주의자들"이 "정치"를 무조건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사회민주주의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항상 노동조합주의적으로 이해할 뿐임을 이미 보여 준 바 있다. 마르티노프 역시 완벽하게 그렇다. 따라서 우리는 바로 그를 이 문제에 관한 "경제주의적" 오해의 전형으로 삼는 데 이의가 없다. 『노동자의 사상』의 『별책 부록』의 필자들도, 자기해방그룹 성명서의 필자들도, 『불꽃』 제12호에 실린 "경제주의자들의" 편지의 필자들도 이와 같은 선택에 대해 우리에게 자신들의 정당함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 우리가 이를 증명해 보일 것이다.

 

1. 정치 선동과 경제주의자들의 정치 선동 협소화

 

러시아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이 폭 넓게 확산되고 강화된 것과 발을 맞추어 경제 상황(공장과 직종의 상황)을 폭로하는 "문건"이 나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전단들"의 주요 내용은 공장 체제를 폭로하는 것이었으며, 이내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폭로를 갈망하는 열정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사회민주주의자 서클들이 노동자들에게 노동자들의 빈궁한 생활,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든 노동, 일체의 권리를 빼앗긴 노동자들의 처지 등에 관한 모든 진실을 말해 주는 새로운 종류의 전단들을 보급하고자 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노동자들은 각 공장과 작업장에서 산더미같이 많은 통신문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이 같은 "폭로 문건"은 전단에서 그 죄악이 폭로된 작업장에서뿐만이 아니라 폭로된 사실들을 조금이라도 전해 듣게 된 모든 작업장에서도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서로 다른 공장에서 종사하고 서로 다른 직종에 종사한다 할지라도 노동자들의 불행과 곤궁이라는 것은 대개 비슷했으므로, "노동자의 삶에 관한 진실"은 모든 이를 감격시켰다. 가장 후진적인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전단을 만들려는" 진정한 열의가 자라났다. 그것은 현대사회체제 전체에 대항한 전쟁의 이 맹아적인 형태를 향한 승고한 열의였다. 또한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전단들"은 실제로 하나의 선전포고였다. 왜냐하면 폭로된 사실들은 실로 엄청난 선동의 효과를 나타내어, 노동자들로 하여금 역겨울 정도로 추악한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는 공통된 요구를 내세우고 파업으로 이 요구를 지지하려는 태세를 갖추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공장주 스스로가 이 전단들이 선전포고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해야 했을 정도였다. 그들은 그러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앉아서 기다리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폭로라는 것은 그것이 등장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위력적이었으며, 강력한 도덕적 압력이라는 의의를 획득했다. 전단이 한번 뿌려지기만 해도 내세운 요구의 전부 혹은 일부가 관철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경제 폭로(공장 상황의 폭로)는 경제투쟁의 중요한 지렛대였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노동자들의 자기방어를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그러한 의의는 여전히 남게 될 것이다. 가장 선진적인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는 지금도, 어떤 벽촌 "수공업 작업장"이나 모든 이의 기억 속에서 잊혀 버린 가내 수공업종의 열악한 상황을 폭로하는 것이 계급의식을 각성시키고 노동조합 투쟁을 촉발시키고 사회주의를 확산시키는 출발점이 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⁴

 

최근에는 압도적 다수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공장 상황의 폭로를 조직하는 이같은 작업에 전적으로 몰입해 있다. 몰입 정도가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보여 주고 그러한 몰입이 본질적으로 그 자체로서는 아직 사회민주주의 활동인 것은 아니며 노동조합주의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망각되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사상』을 상기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본질적으로 폭로 활동은 해당 직종의 노동자들과 고용주 사이의 관계에만 집중되어, 거둔 성과라고는 노동력의 판매자들이 이 "상품"을 좀 더 유리하게 판매하는 법과 순전히 상거래를 바탕으로 하여 구매자들과 싸우는 법을 겨우 배우는 것뿐이다. 그러한 폭로는 사회민주주의 활동의 시작이자 하나의 구성 요소가 될 수도 있었지만(혁명가 조직이 이를 제대로 이용한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순수한 노동조합" 투쟁, 사회민주주의적이지 않은 노동자운동으로 귀결될 수도 있었다(자생성에 굴종할 경우에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사회민주주의가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지도하는 것은 그저 유리한 조건으로 노동력을 판매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무산자로 하여금 유산계급에게 자신을 판매하도록 강제하는 사회체제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다. 사회민주주의가 노동자계급을 대표하는 것은 각각의 기업가들과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현 사회의 모든 계급 및 조직된 정치적 힘인 국가에 대한 관계에서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경제투쟁으로 자신을 제한할 수 없을 뿐더러 경제 폭로가 자신들의 지배적인 활동이 되도록 방치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노동자계급의 정치 교양과 그들의 정치 의식 진전에 적극 매진해야 한다. 『여명』과 『불꽃』이 공동으로 "경제주의"를 처음으로 공격하자, 이제서야 "모두 이에 동의한다." (우리가 이제 보게 될 것처럼, 비록 몇몇 사람들은 말로만 동의하고 있긴 하지만.)

 

여기서, 정치 교양은 어떤 것이어야 하나는 물음이 생겨난다. 그것은 전제주의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적대성이라는 사상을 선전하는 것에 한정될 수 있는가? 물론 아니다. 노동자들의 정치적 억압을 설명하는 것으로는 (그들과 고용주들의 이해관계가 상호 대립함을 설명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했던 것처럼) 불충분하다. 이와 같은 억압이 각각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나타나고 있는 바를 (우리가 구체적인 경제적 핍박 현상들에 관해 선동을 시작했던 것처럼) 선동해야 한다. 이 억압은 사회의 그야말로 다양한 계급에게 행해지고 있으며 직장에서, 공공 생활에서, 개인과 가족, 종교 생활과 학술 활동, 기타 등등 삶의 온갖 다양한 분야에 걸쳐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전제주의에 관한 전면적인 정치 폭로를 조직하는 일을 자신의 몫으로 떠안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을 진전시키기 위한 우리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 너무나 분명하지 않은가? (경제 선동을 행하기 위해서는 공장 내의 약력 행위 사례를 폭로해야 했던 것처럼) 핍박의 구체적인 현상들에 관해 선동하기 위해서는 그 현상들을 폭로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는 명백해 보인다고? 하지만 바로 여기서 또한, 정치의식을 전면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에 "모두" 말로만 동의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바로 여기서, 예를 들어 『노동자의 대의』는 전면적 정치 폭로를 조직하는 (또는 조직화의 기초를 다지는) 임무를 떠안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 같은 임무에 매진해 온 『불꽃』마저 뒤로 집어당기기 시작했음이 밝혀진다. 한번 들어 보라. "노동자계급의 정치투쟁은 단지(그런데 바로 '단지'가 아닌 것이다.) 경제투쟁의 가장 발전된, 광범위하면서도 현실적인 형태일 뿐이다."(『『노동자의 대의』의 강령』, 『노동자의 대의』 창간호 3쪽.) "이제 사회민주주의자 앞에는 경제투쟁 자체에 어떻게 가능한 한 정치적 성격을 부여할 것인가라는 임무가 놓여 있다."(제10호 42쪽, 마르티노프.) "경제투쟁은 적극적인 정치투쟁으로 대중을 끌어들이기 위해 가장 널리 적용될 수 있는 수단이다."(동맹의 대회 결의안과 "수정안". 『두 대회』11, 17쪽.) 독자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이 모든 것이 『노동자의 대의』가 탄생한 순간부터 가장 최근의 『편집진의 지침』에 이르기까지 『노동자의 대의』를 관통하고 있는 문구들인데, 이 문구들은 모두 정치 선동과 정치투쟁에 대한 한 가지 관점을 표현하고 있다. 모든 "경제주의자들"에게 지배적인 견해, 즉 정치 선동은 경제 선동의 뒤를 쫓아야 한다는 견해에 비춰 이 관점을 주시해 보라. 경제투쟁은 대중을 정치투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일반적으로 "가장 널리 적용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이러한 관점이 과연 올바르단 말인가? 전적으로 옳지 않다. 경찰의 폭압과 전제주의의 광폭함이 드러나는 모든 현상, 온갖 사례야말로 그 같은 "끌어들이기"를 위해 부족함 없이 "널리 적용될 수 있는" 수단이지, 결코 경제투쟁과 관련된 현상들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지방의 행정장들, 농민에게 가해지는 체벌, 뇌물에 찌든 관리들, 도시 "평민"에 대한 경찰의 대우, 굶어 죽어 가는 사람들에 대한 탄압, 지식과 세상에 눈뜨려는 국민적 지향에 대한 공격, 세금 짜내기, 이교도 탄압, 병사들에 대한 가혹한 훈련, 대학생과 자유주의적 지식인에 대한 군대식 치우 — "경제"투쟁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지 않은 이 모든, 그리고 이와 유사한 수천 가지 억압 현상이 어째서 정치 선동을 위해서나 정치투쟁으로 대중을 끌어들이기 위해 일반적으로 덜 "널리 적용될 수 있는" 수단이자 계기란 말인가? 사실은 정반대다. 노동자가 (그 자신이나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 때문에) 폭력, 전횡, 권리 박탈로 고통 받는 이러한 생활 속의 사례들 중에서 이른바 직종과 관련된 투쟁에서 나타나는 경찰의 탄압 사례는 분명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사회민주주의자에게는 그에 못지않게 "널리 적용될 수 있는" 다른 여러 수단들이 있는 것인데, 그중 하나만을 "가장 널리 적용될 수 있는" 것이라 선언하여 정치 선동의 폭을 미리 좁혀야 할 까닭은 대체 무엇인가?

 

오래전에, 아주 오래전에 (꼭 일 년 전에!……) 『노동자의 대의』는 이렇게 썼다. "한 번의, 또는 극단적인 경우에는 몇 번의 파업이 있는 후에, 정부가 경찰과 헌병을 투입하게 되면, 대중은 곧 당면한 정치적 요구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제7호 15쪽, 1900년 8월.) 현시점에서 동맹은 이런 기회주의적인 단계론을 이미 폐기한 바 있다. 동맹은 우리에게 양보했다. 동맹의 성명은 이러했다. "처음부터 경제적인 것을 바탕으로 해서만 정치 선동을 수행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다."(『두 대회』11쪽.) 훗날의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 역사가는 동맹이 과거의 오류 중 일부분을 부정한 이 사실만으로도 우리의 "경제주의자들"이 사회주의를 얼마나 격하시키겠는지를 어떤 구구한 담론들에서보다 훨씬 더 잘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재외동맹은 정치를 협소화시키는 한 가지 형태를 부정한 대가로 다른 형태의 협소화에 동의하도록 우리를 부추길 수 있다고 꾀꼬리고 있다니, 얼마나 순진한 일인가! 차라리, 가능한 한 폭넓게 경제투쟁을 수행해야 한다고, 정치 선동을 위해서는 항상 경제투쟁을 활용해야 하지만 대중을 적극적인 정치투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가장 널리 적용될 수 있는 수단이 경제투쟁이라고 간주할 "필요가 전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 좀 더 논리적이지 않겠는가?

 

동맹은 유대인노동자동맹(분트) 제4차 대회의 결의안에 있는 "최상의 수단"이라는 표현[53]을 "가장 널리 적용될 수 있는 수단"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한 것에 의의를 부여한다. 사실, 우리는 이 결의안들 중 어떤 것이 더 낫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우리의 의견으로는 둘 다 형편없기 때문이다. 동맹도 분트도 여기서 (부분적으로, 그리고 어쩌면 의식하지도 못한 채, 전통의 영향을 받아) 정치를 경제주의적으로, 노동조합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길로 빗나가고 있다. 이런 오류가 빚어진 것이 "최상의"라는 말을 썼기 때문인지 아니면 "가장 널리 적용될 수 있는"이라는 말을 썼기 때문인지는 사태의 본질을 전혀 바꾸어 놓지 못한다. 동맹이 만일 "경제적인 것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 선동"이 가장 널리 적용되고 있는 ("적용될 수 있는"이 아니라) 수단이라고 말한다면, 그 말은 우리 사회민주주의 운동 발전의 일정 시기에 대해서는 옳다. 1898년에서 1901년까지 수많은(대다수는 아닐지라도) 실천가에 대해서라면, "경제주의자들"에 대해서라면, 옳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실천가들과 "경제주의자들"은 실제로 정치 선동을 거의 배타적으로 경제적인 것을 바탕으로 해서만 적용해 왔기 (그것을 적용해 온 한에서!) 때문이다.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노동자의 사상』도, 자기해방그룹도 그와 같은 정치 선동을 인정해 왔고 또 심지어 권장해 오지 않았던가! 『노동자의 대의』는 경제 선동이라는 유익한 활동이 정치 선동을 협소하게 하는 해악을 수반했다는 사실을 단호히 비판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대신에, ("경제주의자들"에 의해) 가장 널리 적용되고 있는 수단을 가장 널리 적용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선언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이런 자들을 "경제주의자들"이라고 부르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우리를 "혹세무민하는 자"니, "해당 분자"니, "가톨릭 교황의 사신"이니, "중상모략을 일삼는 자"니 하며 심한 욕설을 퍼붓고, 자신들에게 치명적인 모욕을 안긴 모든 사람 앞에서 음소하고, 저주나 다름없는 말 — "이제는 '경제주의'에 책임이 있는 사회민주주의 조직은 단 하나도 없다."* — 을 떠들어 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은 조금도 놀랍지 않다. 아아, 중상모략을 일삼는 이런 사악한 자들이 정치가들이라니! 혹시 인간에 대한 중오심 하나만으로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모욕을 안겨 주기 위해 이들이 일부러 "경제주의"를 고안해 낸 것은 아닐까?

 

마르티노프가 스스로의 입으로 제기한 "경제투쟁 자체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한다"라는 사회민주주의당의 임무에는 어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의미가 있는가? 경제투쟁은 노동자가 노동력 판매의 유리한 조건을 얻어 내고 노동조건과 노동자들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고용주와 벌이는 집단적 투쟁이다. 이 투쟁은 필연적으로 노동조합 투쟁이다. 왜냐하면 다양한 직종에 따라 노동조건은 천차만별이며, 따라서 그러한 조건의 개선을 위한 투쟁은 직종별로 (서구에서는 노동조합들이 담당하고 있으며, 러시아에서는 임시적인 동업조합들과 유인물을 통해 이루어지는 등의 형태로) 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투쟁 자체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한다는 것은 "입법 및 행정 조치들"을 통하여 해당 직종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직종별 요구 사항들을 실현함을 의미한다. (이는 마르티노프가 자신의 글 43쪽에서 표현한 바 있다.) 바로 이것이 모든 직종의 노동자 단체들이 하고 있는 일이며 항상 해 온 일이다. 철저한 학자(이자 "철저한" 기회주의자) 부부인 웹 부부의 글[54]을 훑어보라. 그러면 여러분은 영국의 노동조합들이 이미 오래전에 "경제투쟁 자체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하는" 임무를 인식하고 실현하고 있으며, 이미 오래전부터 파업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협동조합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을 가로막는 온갖 법적 제약을 철폐하기 위해, 여성과 아동을 보호하는 법을 제정하기 위해, 위생법 및 공장법을 통해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처럼 "지극히" 깊은 뜻을 담은 듯 혁명적으로 들리는 "경제투쟁 자체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한다."라는 화려한 문구 뒤에는 사실 사회민주주의 정치를 노동조합주의 정치로 격하시키려는 케케묵은 열망이 숨어 있는 것이다! "교조의 혁명화를 생활의 혁명화보다 높이 두는"* — 과연 그러한가? — 『불꽃』의 일면성을 교정한다는 미명 아래 그들은 우리에게 경제 개혁을 위한 투쟁이라는 뭔가 새로운 것을 선사한다. 사실상 "경제투쟁 자체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한다."라는 문구 속에 들어 있는 내용은 경제 개혁을 위한 투쟁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마르티노프도 자신이 쓴 글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했다면, 이런 솔직한 결론에 생각이 미쳤을 것이다. 『불꽃』에 대항해 중무기를 쳐들고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당은 경제적 착취, 실업, 기아 등을 막는 입법 및 행정 조치들을 취하라는 구체적인 요구를 정부에 내세울 수 있었고, 그렇게 해야 했을 것이다."(『노동자의 대의』 제10호 42~43쪽.) 조치들을 취하라는 구체적인 요구 — 과연 이것이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편견 없는 독자들에게 묻겠다. 『노동자의 대의』(내가 이 꼴사나운 통용어를 쓰는 것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의 추종자들이 『불꽃』과 자신들의 견해차라며 경제 개혁을 위한 투쟁의 필요성이라는 테제를 제기하고 나섰을 때 우리가 그들을 숨이 있는 베른슈타인주의자들이라 부른다고 해서 과연 그것이 그들에게 중상모략을 가하는 것인가?

 

혁명적 사회민주주의당은 그 활동의 일부로서 항상 개혁을 위한 투쟁을 포함시켜 왔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나 "경제" 선동을 활용하는 것은 정부에 갖가지 조치들을 취하라고 요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전제주의 정부를 전복시키도록 요구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게다가 뒤의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또한 사회민주주의당은 경제투쟁을 바탕으로 해서만이 아니라 사회생활과 정치생활의 전반적인 모든 현상을 바탕으로 해서 이 같은 요구를 정부에 제기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간주한다. 한마디로 사회민주주의당은 부분을 전체에 종속시키듯이 개혁을 위한 투쟁을 자유와 사회주의를 위한 혁명 투쟁에 종속시킨다. 마르티노프는 정치투쟁 발전의 필연적 방법이라며 이른바 경제적 방법이라는 처방을 내리려 애쓰고 있는 것으로써 또 다른 형태의 단계론을 부활시키고 있는 것이다. 혁명운동의 상승기에 개혁을 위한 투쟁이라는 "임무"인지 뭔지를 들고 나선 그는 이로써 당을 뒤로 잡아당기고, "경제주의자", 자유주의적 기회주의자들의 손을 들어 주고 있다.

 

그뿐 아니라. 마르티노프는 "경제투쟁 자체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한다."라는 거만한 테제 속에 개혁을 위한 투쟁을 몰래 숨겨 둔 채 경제 개혁 하나만을 (심지어는 공장 내의 개혁 하나만을) 무슨 특별한 것이라도 되는 양 자랑스럽게 내걸었다. 우리는 그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혹시 부주의한 탓은 아닐까? 그러나 만일 그가 "공장 내의" 개혁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면, 방금 우리가 인용한 그의 테제 자체는 아무 의미도 없게 된다. 어쩌면 그는 경제 분야에서만 정부가 "양보"할 가능성이 있고 또 그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 만일 그렇다면 이는 이상한 착각이다. 태형, 거주증, 토지 배상금, 이교도, 검열 등등에 관한 입법 분야에서도 양보는 가능하며, 실제로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당연히 정부로서는 "경제적" 양보(아니면 거짓 양보)를 하는 편이 가장 싸고 가장 유리하다. 왜냐하면 정부는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자 대중에게 정부에 대한 신뢰를 불어넣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우리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경제 개혁이 우리에게 더 많은 가치가 있다거나 아니면 마치 우리가 바로 그것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듯한 견해(혹은 오해)가 들어설 여지를 어떤 식으로도 절대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 위에서 제기한 구체적인 입법 및 행정 조치들의 요구에 관해 마르티노프는 이렇게 말한다. "이 같은 요구는 공허한 말이 아니다. 그것은 너무도 가시적인 결과들을 약속하며, 그럼으로써 노동자 대중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우리는 "경제주의자들"이 아니오. 오, 아니고 말고! 우리는 단지 베른슈타인 씨, 프로코포비치 씨, 스트루베 씨, R. M. 씨, 그리고 tutti quanti(그들과 같은 모든 사람들)처럼 결과의 "가시성" 앞에 노예처럼 굽실거리고 있을 뿐이오! 우리는 단지, "가시적인 결과들을 약속하지" 않는 모든 것이 "공허한 말"임을 (뚜벤틸로프와 함께) 분명히 하고 있을 뿐이오! 우리는 단지, 마치 노동자 대중이 전제주의에 대한 그 어떤 저항 — 그런데 그 저항이라는 것은 결코 그 어떤 가시적인 결과도 약속하지 않는다. — 도 적극적으로 지지할 능력이 없다는 듯 (또한, 자신의 속물근성을 노동자 대중에게 덮어씌우려는 작자들에 맞서 노동자 대중이 이미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한 사실이 없기라도 한 듯) 말하고 있을 뿐이오!

 

하나님께 마르티노프 자신이 인용한 실업과 기근을 방지하는 "조치들"의 예라는 것을 한번 보라. 『노동자의 대의』가 공언한 대로라면 『노동자의 대의』가 "가시적인 결과들을 약속하는" "구체적인 입법 및 행정 조치들의 요구"를 마련하고 이를 정초하는 데 전념하고 있는 동안, "항상 교조의 혁명화를 생활의 혁명화보다 높이 두는"『불꽃』은 자본주의 체제 전체와 실업 사이의 끊을 수 없는 연관을 해명하려 애썼고, "기근이 오고 있다"라고 경고했으며, "굶어 죽어 가는 사람들을 탄압하는" 경찰과 천인공노할 "임시 강제 노역 규정들"을 폭로했다. 또한 『여명』은 「국내 문제 비평」에서 기근 관련 부분을 발췌한 인쇄물들을 선동용 소책자로 발행했다. 하느님 맙소사, 이 얼마나 "일면적인," "삶 자체"의 명령에 귀를 막은 교조주의자들이며, 치유가 불가능한 편협한 정통주의자들인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들의 어떤 글에도 단 하나의, — 오, 끔찍하군! — "가시적인 결과들을 약속하는" 정말 단 하나의 "구체적인 요구"도 들어 있지 않다니! 불쌍한 교조주의자들! 전술은 성장하는 성장의 과정이며 경제투쟁 자체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이들에게 확신시키려면, 끄리첸스키와 마르티노프의 과학 세례를 내려야 하지 않겠는가!

 

"고용주와 정부에 대한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정부에 대한 경제투쟁'이라!!)에는 그 직접적인 혁명적 의의 외에 또 다른 의의가 있다. 그것은 그 투쟁이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정치적 무권리 상태라는 문제에 끊임없이 직면하게 만든다는 점이다."(마르티노프, 44쪽.) 우리가 이 문구를 이렇게 옮겨 쓴 것은 앞서 이미 수백 수천 번 했던 말을 반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용주와 정부에 대한 경제투쟁"이라는 이 새로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식화를 해 준 데 대해 마르티노프에게 특별히 감사하기 위해서다. 얼마나 매력적인가!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실력으로, 너무도 숨쉬 좋게 "경제주의자들" 사이의 뉘앙스 차이와 모든 사적인 이견을 일소하는 "경제주의"의 핵심 전체 — "모든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주력하며, 그들 공동의 이해관계를 위해 벌이는 정치투쟁"에 참여할 것을 노동자들에게 촉구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단계론을 거쳐, "가장 폭 넓은 적용 가능성" 등등에 관한 대회의 결의안에 이르기까지 — 가 여기 이 간명한 문구 속에 표현되어 있다. "정부에 대한 경제투쟁"이란 그야말로 노동조합주의 정치다. 그 같은 정치로부터 사회민주주의 정치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멀다.

 

2. 마르티노프가 플레하노프를 어떻게 심화시켰는가에 관한 일담

 

"요사이 우리 주변에 이렇게 많은 로모노소프 같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등장했다니!" 이 말은, "경제주의"에 경도된 수많은 사람이 기필코 "자신의 머리로" (경제투쟁이 노동자들을 무권리 상태라는 문제에 직면하도록 만든다는 따위의) 위대한 진리에 도달하려 하고, 지금까지의 혁명사상 및 혁명운동의 발전이 일구어 낸 모든 것을 타고난 천재들 특유의 노골적인 경멸감으로 인해 간과하게 되는 경약할 만한 경향을 염두에 두면서, 어느 날 한 동지가 했던 말이다. 그러한 천재는 바로 로모노소프-마르티노프이다. 그의 글 「당면 문제들」을 살펴보라. 그러면 여러분은 이미 오래전에 악셀로트가 말했던 것(이 점에 관해서 우리의 로모노소프는 당연히도 침묵하고 있다.)에 그가 어떻게 "자신의 머리로" 다가가는지, 또 예를 들어 이러저러한 부르주아지 계층들이 드러내고 있는 반정부성을 우리가 간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가 어떻게 깨닫기 시작하는지(『노동자의 대의』제9호 61, 62, 71쪽. 『노동자의 대의』편집진에 보낸 악셀로트의 「답신」을 참조하라. 22, 23, 24쪽.)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 쯧쯧! — 단지 "다가가고 있고" 단지 "시작하고 있을" 뿐, 그 이상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고용주와 정부에 대한 경제투쟁"이라는 말을 거우 운운하고 있을 만큼 여전히 악셀로트의 사상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898년에서 1901년에 이르는 3년 동안 『노동자의 대의』는 악셀로트를 이해하려고 무척 애썼다. 그런데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니! "인류가 그러하듯" 사회민주주의당은 언제나 자신이 실현할 수 있는 과제만을 제기하기 때문에 그럴까?[55]

 

그러나 이러한 로모노소프 같은 자들의 특징은 무식하다는 점에 있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은 절반의 비극일 뿐이다.) 더 나아가 자신들의 무지몽매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 그들의 특징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비극이며, 그들이 플레하노프를 "심화"시키는 일에 곧장 달려든 것도 이 때문이다.

 

"플레하노프가 이 책(『러시아에서 기근과 투쟁할 때 사회주의자들의 임무』)을 쓴 이후 많은 세월이 흘렀다." — 로모노소프-마르티노프는 말한다. — "지난 10년 동안 노동자계급의 경제투쟁을 이끌어 온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아직까지 당의 전술을 이론적으로 폭 넓게 혁신시키지 못했다. 이제 이 문제가 물 위에 떠올랐다. 만일 우리가 그러한 이론적 혁신을 원한다면, 당연히 우리는 플레하노프가 한때 전개한 전술 원칙들을 현저히 심화시켜야만 할 것이다. …… 우리는 이제 선전과 선동의 차이를 플레하노프가 했던 것과는 다르게 규정해야만 한다. (바로 앞에서 마르티노프는 플레하노프의 다음과 같은 글을 인용했다. "선전가는 한 사람 혹은 몇몇 사람에게 많은 사상을 전달한다. 반면, 선동가는 단 하나의 또는 몇 가지의 사상을 전달하는 대신에 수많은 대중을 대상으로 한다.") 우리는 현존 체제 전체 혹은 그 체제의 부분적인 발현 현상들을 혁명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선전으로 이해한다. 그것을 한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 하느냐 아니면 광범위한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 하느냐는 아무 상관없다. 선동이란 엄밀한 의미에서(sic[원문 그대로!]), 대중에게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촉구하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사회생활에 직접적인 혁명적 개입을 이룰 수 있도록 조력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이해한다."

 

마르티노프 식의 새로운, 더 엄밀하고 더 심오한 용어법을 만들어 낸 러시아 — 아울러 전 세계 — 사회민주주의당에 축하를 보낸다. 지금까지 (플레하노프와 함께, 그리고 국제 노동자운동의 다른 모든 지도자와 함께) 우리는 선전가가 예를 들어 실업 문제를 다룬다면 위기의 자본주의적 본질을 설명하고 현대사회에서의 그 불가피성을 보여 주고 사회주의사회로의 변혁의 필요성을 서술하는 등등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한마디로 선전가는 (상대적으로) 소수의 사람들이 이 사상 전체를 그 총체성 속에서 한 번에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그만큼 "많은 사상"을 제공해야 한다. 선동가라면 동일한 문제를 다루더라도 모든 청중에게 그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가장 두드러진 사례들, 말하자면 실업자 가족의 아사라든지 빈곤의 심화 등을 예로 들어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을 활용하면서 "대중"에게 하나의 사상, 즉 부의 증대와 빈곤의 증대 사이의 모순이 얼마나 부조리한가 하는 사상을 전달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아 부을 것이다. 이 모순에 대한 충분한 설명은 선전가에게 맡기고, 이 역겨운 부정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대중 속에서 터져 나오게 촉발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선전가는 주로 저술 활동을 하지만 선동가는 생생한 말로 활동한다. 선전가에게 필요한 자질은 선동가에게 필요한 것과는 다른 성격의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카우츠키와 라파르그를 선전가라고 한다면 베벨과 게드는 선동가다. 실천 활동의 제삼의 분야 또는 제삼의 기능을 설정하여 "대중에게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일"을 이 기능에 포함시키는 것은 대단히 황당한 일이다. 단일한 행위로서의 "촉구하는 일"은 때로는 이론적 저술이나 선전용 소책자를 필수적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보완하는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순전히 하나의 실행 기능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실제로 곡물관세에 반대하는 독일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오늘날의 투쟁을 한번 보자. 이론가들은 관세정책에 관한 연구서를 저술하면서 통상조약과 무역의 자유를 위해 싸우도록, 말하자면 "촉구하고 있다." 선전가는 잡지에서 동일한 일을 하고 있으며, 선동가는 대중 연결을 통해 이를 행한다. 여기서 대중의 "구체적인 행동"이란 의회에 보내는 곡물관세 인상 반대 청원서에 서명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론가, 선전가, 선동가는 이 같은 행동을 간접적으로 촉구하게 되며, 직접적으로 촉구하는 것은 공장마다, 집집마다 서명 용지를 나눠 주는 노동자들이다. "마르티노프 식 용어법"에 따르면, 카우츠키와 베벨 둘 다 선전가이며 서명 용지 배포자가 선동가가 된다. 그렇지 않은가?

 

독일의 예를 들자니 Verballhornung(페어발흐르농)이라는 독일어 단어가 떠오른다. 이를 글자 그대로 옮기면 "발흐른화"이다. 요한 발흐른은 16세기 라이프치히의 출판업자였다. 그는 철자 독본을 발간했는데, 통례대로 이 독본에 수탉 그림을 그려 넣었다. 그런데 단 하나 특이한 것은 며느리발톱이 있는 보통 수탉의 모습을 그려 넣은 것이 아니라 발톱이 없는 수탉과 그 옆에 한 쌍의 달걀을 그려 넣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표지에 "요한 발흐른의 개정판"이라는 문구를 집어넣었다. 바로 이때부터 독일인들은 사실상 더 나빠진 그 같은 "개정"을 두고 Verballhornung이라고 말한다. 마르티노프 같은 인간들이 플레하노프를 "심화시키고" 있는 것을 보자니 어쩔 수 없이 발흐른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의 로모노소프는 무엇을 위해 이런 잡탕을 "고안해" 넣을까? "플레하노프가 이미 15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불꽃』은 오직 사태의 한 측면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39쪽)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다. "『불꽃』에서는, 최소한 현재로서는, 선전의 임무가 선동의 임무를 뒷전으로 밀어내고 있다."(52쪽.) 이 구절을 마르티노프 식 언어에서 범인류적인 언어로 옮긴다면(인류는 아직 새로 발견된 용어법을 받아들이지 못했으므로),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즉『불꽃』에서는 정치 선전과 정치 선동의 임무가 "일정한 가시적인 결과들을 약속하는" "입법 및 행정 조치들을 취하라는 구체적인 요구(또는 아직 마르티노프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 구 인류의 낡은 용어법을 한 번이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다면, 사회 개혁에 대한 요구)를 정부에 내세우는" 임무를 뒷전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독자들에게 이 테제를 다음의 장광설과 비교해 보라고 제안하는 바이다.

 

이 강령(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의 강령)에서 우리를 경악케 하는 것은 그들이 현재 우리 나라에 있는 공장 문제에 관한 공장주들의 입법 회의, 아니면 하다못해 지방자치 기구에라도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것의 중요성은 모두 간과하면서(그들의 혁명적 허무주의 터분에), (우리 나라에는 있지도 않은) 의회에서 노동자들의 활동이 갖는 우선적 중요성을 일차적인 것으로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장광설의 주인공은 로모노소프-마르티노프가 자신의 머리로 도달한 그 사상을 보다 직설적이고 분명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가 바로 『노동자의 사상』의 『별책 부록』(15쪽)에 나오는 R. M.이다.

 

3. 정치 폭로와 "혁명적 활동성 교양"

 

마르티노프는 『불꽃』에 대항하여 "노동자 대중의 활동성 상승"이라는 자신의 "이론"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이 활동성을 펼히하려는 자신의 열망을 드러낸 꿀이 되었다. 이 활동성을 발휘할 장이자 선호되어야 할 특별히 중요하고도 "가장 널리 적용될 수 있는" 활동성 고취 수단이 모든 "경제주의자"가 받들어 모시는 바로 그 경제투쟁이라고 그가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류의 특징은 그것이 마르티노프 한 사람만의 특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노동자 대중의 활동성 상승"은 우리가 "경제적인 것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 선동"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만 획득될 수 있다. 그런데 정치 선동의 필수적인 확대를 위한 주요 조건들 중의 하나는 전면적인 정치 폭로의 조직화다. 이러한 폭로를 통해서가 아니라면 대중의 정치의식과 혁명적 활동성을 교양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종류의 활동은 모든 국제 사회민주주의자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이다. 정치적 자유가 있다 해도 이러한 폭로의 영역은 결코 없어지지 않으며 단지 어느 정도 그 방향이 달라질 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당이 자신의 입지를 특별히 강화하고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지칠 줄 모르는 정치 폭로 캠페인의 정열에 힘입은 결과다. 노동자들이 전횡과 탄압, 폭력과 권력 남용이 행해지고 있는 — 그것이 어느 계급에 관계된 것이든 — 각종 모든 사례에 대응하는 법을 익히지 않는다면, 이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관점에서가 아닌 바로 사회민주주의 관점에서 대응하는 법을 익히지 않는다면, 노동자계급의 의식은 진정한 정치의식이 될 수 없다. 노동자들이 구체적인, 게다가 항상 절박한(당면한) 정치적 사건과 사례들을 통해 다른 사회계급들의 지적, 도덕적, 정치적 생활이 표출되는 모든 현상에 걸쳐 그것들 각각을 관찰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그리고 모든 계급, 계층, 집단의 생활과 활동의 모든 측면에 대해 유물론적 분석과 유물론적 평가를 실천적으로 적용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노동자계급의 의식은 진정한 계급의식이 될 수 없다. 노동자계급의 주의, 관찰력, 의식을 배타적으로, 혹은 그렇지는 않더라도 우선적으로 노동자계급에게로 돌리려는 자는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노동자계급의 자기 인식은 이론적 지식만이 아니라, 아니 더 올바르게 말하자면 이론적 지식보다는 정치생활의 경험에서 생겨난, 현대사회의 모든 계급들의 상호 관계에 대한 충분하고도 명료한 이해와 불가분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경제투쟁이 대중을 정치 운동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가장 널리 적용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우리 "경제주의자들"의 설교는 그 실천적 중요성으로 볼 때 극히 유해하며 극히 반동적이다. 노동자가 사회민주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주, 성직자, 고급 관리, 농민, 학생, 부랑인 등의 경제적 본질과 그들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상을 분명히 이해하고, 그들의 강점과 약점을 알고, 각 계급 및 계층이 자신들의 이기적 의도와 본 "마음"을 은폐할 때 흔히 사용하는 문구들과 갖가지 궤변들을 분석해야만 한다. 또한 어떤 제도와 법률들이 누구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지, 또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를 분석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 어떤 책에서도 이 같은 "명료한 이해"를 얻을 수 없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모든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하다못해 귀엣말로 소곤거리면서라도 그 나름대로 얘기하고 있는 일들, 그리고 여러 사건들, 수치들, 판결문 등등에서 드러나고 있는 일들을 생생하게 펼쳐 보이고, 그때그때 놓치지 않고 폭로하는 것만이 그러한 이해를 가져다줄 수 있다. 이러한 전면적 정치 폭로는 그 자체로 대중의 혁명적 활동성을 교양하는 필수적이고도 기본적인 조건이다.

 

인민에 대한 경찰의 야수 같은 대우, 이교도 사냥, 농민에 대한 구타, 추악한 검열, 병사들에 대한 학대, 이제 막 시작된 가장 순수한 문화 사업에까지 가해지는 탄압 등등에 대해 왜 러시아 노동자는 아직까지 별다른 혁명적 활동성을 보이지 않고 있는가? "경제투쟁"이 이를 "부추기지" 않기 때문인가? 이런 활동이 "가시적인 결과들"을 거의 "약속하지" 않으며 "적극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다시 한 번 말하건대, 이 같은 견해는 두통거리를 남 사람에게 뒤집어씌우고 가지 자신의 고유한 속물근성(다른 말로 하자면 베른슈타인주의)을 노동자 대중에게 전가하려는 시도일 뿐 달리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대중운동의 후진성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우리에게 있으며, 이 모든 추악한 일을 충분히 신속하고 명료하게 널리 폭로할 능력이 우리에게 아직 없었던 것도 우리의 책임이다. 우리가 이 일을 한다면(우리는 그렇게 해야 하며, 또 할 수 있다.), 가장 평범한 노동자라도 학생들, 이교도들, 농민들, 작가들 위에서 광폭하게 날뛰면서 그들을 능멸하는 그 검은 세력이 바로 자신의 생활 곳곳에서 자신을 억누르고 핍박하는 세력임을 깨닫게, 또는 느끼게 될 것이다. 또한 그런 것을 느끼게 되면, 자기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에게 호응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늘은 검열관에게 야유를 보내고, 내일은 농민 반란을 진압한 지방행정장의 집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모레는 종교재판을 담당하는 법복 입은 헌병들을 단단히 흔내 주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노동자 대중에게 생생하고도 전면적인 폭로의 세례를 안겨 주기 위해 변변하게 한 일은 아직까지 없다. 아니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우리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도 이 같은 자신의 의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공장 생활이라는 좁은 틀 안에서 "지루한 일상 투쟁"의 뒤를 자생적으로 종종 따라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꽃』은 완전무결하고 빛나는 사상의 선전에 비해 지루한 일상 투쟁의 단계적 진전이 갖는 의미를 축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마르티노프, 61쪽)라고 말하는 것은 당을 뒤로 잡아당기는 것이며, 우리의 준비 부족과 후진성을 옹호하고 찬양하는 것이다.

 

대중에게 행동을 촉구하는 문제로 말하자면, 열정적인 정치 선동과 타오르듯 생생한 폭로만 있다면 저절로 되는 것이다. 법인을 현장에서 체포하여 만인이 보는 앞에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즉시 낙인을 찍는다면, 이는 그 자체로 그 어떤 "촉구"보다 나은 효과를 가져온다. 누가 군중에게 이른바 "촉구했는지", 누가 이러저러한 시위들을 계획했는지를 나중에 규명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될 정도로 종종 그것은 효과적이다. 포괄적인 의미가 아닌 구체적인 의미에서 촉구한다는 것은 행동이 일어나는 장소에서만 가능하며, 즉각 행동에 참여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 사회민주주의적 평론가의 일은 정치 선동 및 정치 폭로를 강화하고 확대하고 심화시키는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촉구하는 일"에 관해 한마디 더 하겠다. 이번 봄의 사태가 있기 이전에, 학생들의 강제 징집 문제와 같이 노동자에게 그 어떤 가시적인 결과도 확실히 약속하지 않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노동자들에게 촉구한 유일한 신문이 『불꽃』이었다. 『불꽃』은 "학생 183명의 강제 징집"에 관한 1월 11일자 포고령이 공포되자마자 이에 관한 기사를 게재했으며 (제2호, 2월), 『불꽃』은 어떤 시위도 시작되기 전에 "노동자들은 학생들의 지원에 나서야 한다"라고, "인민은" 이 같은 야만적인 도전에 대해 정부를 공개적으로 웅징해야 한다고 직설적으로 촉구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묻는다. 마르티노프가 "촉구하는 일"에 관해 그렇게 수없이 말하고, 심지어 "촉구하는 일"을 하나의 특수한 활동 형태로까지 분류하면서, 그 같은 촉구에 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이 회한한 상황을 어떻게,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가? 이 일이 있은 후 마르티노프가 『불꽃』은 '가시적인 결과를 약속하는' 요구를 위한 투쟁을 제대로 "촉구하지" 않고 있으므로 일면적이라고 선언한 것은 속물근성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노동자의 대의』를 비롯한 우리의 "경제주의자들"이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후진 노동자들의 비위를 맞춘 덕분이다. 그러나 노동자 사회민주주의자, 노동자 혁명가(이러한 노동자들의 숫자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가시적인 결과를 약속하는" 요구를 위해 투쟁하라는 이 모든 논리에 격분하여 반박할 것이다. 그들은 이것이 1루블에 1코페이카를 보태 준다는 낡은 동요의 변종일 뿐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한 노동자라면 『노동자의 사상』과 『노동자의 대의』의 상담원들에게 이렇게 말해 줄 것이다. "신사 여러분, 당신들의 진짜 의무는 이행하지도 않으면서, 우리가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고 있는 그러한 일에 지나치게 열심히 개입하려고 그렇게 부질없이 안달하지 마시오. 사회민주주의자의 임무가 경제투쟁 자체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정말 어리석은 말이오.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할 뿐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주요 임무는 아니잖소.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러시아에서도 경찰조차 스스로 경제 투쟁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하기 시작했소. 노동자들도 스스로 정부가 누구 편에 서 있는지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있소.⁴ 마치 아메리카 대륙이라도 발견한 듯이 당신들이 터벌리며 열중하고 있는 바로 그 '고용주와 정부에 대한 노동자의 경제투쟁'이라는 것은, 러시아 벽촌의 대중들 가운데서 파업이라는 것은 들어 본 적이 있지만 사회주의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들어 본 적도 읽어 본 적도 없는 노동자들도 스스로 하고 있는 일 아니오. 가시적인 결과를 약속하는 구체적인 요구를 내세우면서 당신들 모두가 지원하고 싶어 하는 우리 노동자들의 '활동성'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이미 있소. 또한 직장의 판에 박힌 소소한 작업 속에서 우리 스스로가 지식인들의 그 어떤 도움 없이도 그러한 구체적인 요구들을 빈번히 제기하고 있소.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활동성으로는 부족하오. 우리는 '경제적' 정치라는 축 하나만으로 먹여 키울 수 있는 아이들이 아니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알고 싶소. 우리는 정치생활의 모든 측면을 상세히 알고 싶고, 갖가지 정치적 사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소. 이를 위해서는 지식인들이 우리 스스로도 아는 일을 반복해서 말하지 말고*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것, 공장의 경험과 "경제적" 경험으로는 스스로 결코 깨달을 수 없는 것, 바로 정치적 지식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더 많이 제공해 주는 것이 필요하오. 그런 지식은 당신들, 지식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오. 당신들은 우리에게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백배, 천배는 많이 그러한 지식을 우리에게 제공할 의무가 있고, 게다가 말, 소책자, 논문 따위의 형태(이런 것들은 자주 볼 수 있소만 — 솔직히 말하는 것을 양해해 주시오 — 지루하고 재미없소.)만이 아니라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정부와 지배계급이 생활의 전 영역에서 행하고 있는 바를 생생하게 폭로하는 형태, 꼭 그러한 형태로 전달할 의무가 있소. '노동자 대중의 활동성 상승'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그만 좀 하고, 이러한 임무를 더 열심히 수행해 주시오. 우리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활동적이며, 그 어떤 '가시적인 결과'도 약속하지 않는 요구라 할지라도 공개적인 가두 투쟁으로 그것을 지지할 수 있단 말이오! 우리의 활동성을 '상승시키는 것'은 당신들이 할 일이 아니지 않소. 당신들에게도 바로 그 활동성이라는 것 자체가 부족하지 않소. 자생성에 덜 굴종하고 자신의 활동성 상승에 관해 더 많이 생각하시오. 신사 여러분!"

 

4. 경제주의와 테러주의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위의 각주에서 우리는 우연히 연대하게 된 "경제주의자"와 비(非)사회민주주의자인 테러주의자를 대비해 보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해, 이들 사이에는 우연적인 것이 아닌 필연적인 내적 연관이 있다. 아래에서 우리는 이를 다시 언급해야 할 것인데,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은 혁명적 활동성의 교양이라는 바로 그 문제에서 필수적인 일이다. "경제주의자들"과 테러주의자들에게는 하나의 공통된 뿌리가 있다. 자생성에 굴종하기가 바로 그것인데, 앞 장에서 우리는 이를 하나의 일반적인 현상으로 언급했다. 이제 우리는 정치 활동과 정치투쟁의 영역에 미치는 영향력이라는 면에서 이를 살펴보겠다. 언뜻 보기에는, 우리의 주장이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지루한 일상 투쟁"을 강조하는 사람들과 개개인의 가장 헌신적인 투쟁을 호소하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분명 매우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역설이 아니다. "경제주의자들"과 테러주의자들은 자생적 경향의 양 극단에 굴종하고 있다. "경제주의자들"은 "순수한 노동자운동"이라는 자생성에, 테러주의자들은 노동자운동과 혁명 활동을 단일한 범주로 묶어 파악할 능력이나 가능성이 없는 지식인들의 뜨거운 분노라는 자생성에 굴종하고 있다.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버렸거나 아니면 애초부터 믿은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테러 이외에 자신의 울분과 혁명적 열정을 분출할 다른 출구를 찾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처럼, 우리가 지적한 양 경향의 자생성에 대한 굴종은 저 유명한 Credo 강령의 실행 개시일 뿐 그 외의 무엇도 아니다. 노동자들은 "고용주와 정부에 대한 자신들의 경제투쟁"을 벌이고(Credo의 저자는 우리가 자신의 사상을 마르티노프 식 언어로 표현하고 있음을 물론 용서해 주시겠지! 이렇게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Credo에서도 노동자가 어떻게 경제투쟁 속에서 정치체제에 직면하는지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자기 힘으로 정치 투쟁을 한다. 당연히 테러의 도움으로! 정말 논리적이고 필연적인 결론이다. 이 강령을 실천하기 시작한 사람들 자신이 그 필연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를 역설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이 그야말로 좋은 의도로 테러에 호소하거나 경제 투쟁 자체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하라고 호소한다 해도 정치 활동에는 그들의 의식과는 전혀 무관한 자기 논리가 있다. 지옥은 좋은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 이 경우에도 좋은 의도가 "최소 저항 노선" 또는 순전히 부르주아적인 Credo 강령의 노선에 대한 자생적인 애착을 막지는 못한다. 사실 수많은 러시아 자유주의자 — 공공연한 자유주의자와 맑스주의의 가면을 쓴 자유주의자 둘 다 — 가 마음으로 테러에 공감하고 있으며 이 시점에서 테러주의적 정서가 고양되는 것을 지지하려 노력하는 상황 역시 우연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운동에 대한 전면적 원조를 자신의 임무로 내세웠지만 테러를 강령에 포함시킨, 말하자면 사회민주주의당으로부터 해방된 혁명적 사회주의 그룹 '자유'가 등장했을 때, 이 사실은 악셀로트의 뛰어난 통찰력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으나, 그는 1897년 말에 벌써 사회민주주의당의 동요가 낳은 이 같은 결과를 문자 그대로 예언하고(「현재의 임무와 전술 문제에 부쳐」[36]) 저 유명한 『두 전망』의 개요를 작성했던 것이다. 씨앗 속에 다 자란 나무가 있듯이,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의 이후의 모든 논쟁과 견해차는 이미 이 두 전망 속에 함축되어 있다.

 

위에서 지적한 관점에서 보면, "경제주의"라는 자생성에 맞서지 못했던 『노동자의 대의』는 테러주의의 자생성에도 역시 맞서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여기서 자유그룹이 테러를 옹호하기 위해 내세운 특수한 논거를 짚어 보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 자유그룹은 테러의 공포용 역할을 "전면 부정한다."(『혁명주의의 부활』[56] 64쪽.) 그 대신에 테러의 "자극적(흥분제의) 의의"를 제기하고 있다. 이는 첫째로, 테러에 복무할 것을 강요했던 사상적 전통(사회민주주의당 이전의 전통)의 쇠퇴 및 와해의 한 단계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테러로 정부를 "위협하고" 그림으로써 조직을 괴란하는 것이 이제는 불가능함을 인정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강령에 의해 신성시된 활동 영역으로서의 테러, 즉 하나의 투쟁 체계로서의 테러를 완전히 단죄한다는 것을 뜻한다. 둘째로, 이는 "대중의 혁명적 활동성 교양"이라는 과업과 관련된 우리의 절박한 임무를 이해하지 못한 전형적인 경우라는 점에서 더욱 특징적이다. 자유그룹은 노동자운동을 "선동하고" 그것에 "강한 자극"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테러를 선전하고 있다. 이 이상 적나라하게 스스로를 논박한 논거를 상상하기는 어려운 일 아닌가! 우리는 묻는다. 과연 특별한 "홍분" 수단을 고안해 내야 할 정도로 러시아의 삶에 폭정이 부족하단 말인가? 다른 한편으로, 러시아의 전횡을 겪어 보고도 격분하지 않고 격분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정부와 한 줄의 테러주의자 간의 한판 대결 역시 "코를 후비면서" 바라볼 것이라는 점이 명백하지 않은가? 문제는 노동자 대중은 추악한 러시아의 삶에 매우 강하게 흥분하고 있는 반면에 우리에게는 러시아의 삶이 쥐어짜내는 인민의 흥분이라는 물방울과 물줄기 —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 하나하나를 집중시켜 낼 — 이렇게 표현해도 괜찮다면 — 그리고 모을 힘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물줄기들은 반드시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결합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실현가능한 임무이며, 노동자운동의 엄청난 성장과 위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은 정치 문건에 대한 노동자들의 갈망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테러를 촉구하는 것은 경제투쟁 자체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하라는 촉구와 마찬가지로, 또 다른 형태로 러시아 혁명가들의 가장 절박한 임무, 즉 전면적인 정치 선동 수행을 조직하는 임무를 회피하는 것이다. 자유그룹은 "만약 대중 속에서 정력적이고 강도 높은 선동이 시작된다면, 그것의 자극적(흥분제의) 역할은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혁명주의의 부활』68쪽)라고 직설적으로 고백하면서도 선동을 테러로 대체하고 싶어한다. 이것이 바로 이번 봄[*]의 사태가 보여준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테러리스트와 "경제주의자들" 둘 다 대중의 혁명적 활동성을 과소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한쪽은 인위적인 "흥분제"를 찾으려 덤벼들고, 다른쪽은 "구체적인 요구"를 말한다. 그러면서 둘 다 정치 선동과 정치 폭로의 조직이라는 일에서 자기 자신의 활동성을 발전시키는 문제에는 제대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그리고 다른 어떤 때에도, 이것은 다른 그 무엇으로도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일이다.

 

5. 민주주의를 위한 전위투사로서의 노동자계급

 

우리는 가장 폭 넓은 정치 선동의 수행과 아울러 이에 따른 전면적인 정치 폭로의 조직화가 — 그것이 진정한 사회민주주의 활동이라면 — 그 무엇보다도 절실하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활동 임무임을 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노동자계급에게 정치적 지식과 정치 교양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에만 의거하여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그 같은 문제제기만으로는 너무 협소하다. 그것은 일반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당 전체의 일반 민주주의적인 임무를, 그리고 특수하게는 오늘날의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의 일반 민주주의적인 임무를 간과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경제주의자"에게 가장 "친근한", 이른바 실천적 측면에서 사태에 접근해 보도록 하겠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의식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에는 "모두 동의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것을 해야 하며,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나온다. 경제투쟁은 노동자들을 노동자계급에 대한 정부의 관계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만들 뿐이다. 따라서 "경제투쟁 자체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한다"라는 임무에 우리가 아무리 매진해도, 우리는 그러한 임무의 틀 안에서는 결코 노동자의 정치의식을 (사회민주주의 정치의식의 수준으로까지) 발전시킬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틀 자체가 협소하기 때문이다. 마르티노프의 정식화가 우리에게 가치 있는 것은 그것이 갈광질광 헤매는 그의 능력을 잘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마르티노프의 정식화가 우리에게 가치 있는 것은 그 정식화가 모든 "경제주의자"의 근본적인 오류, 즉 노동자의 계급적 정치의식은 이른바 그들의 경제투쟁 내부로부터, 말하자면 오로지 (아니면 하다못해 주로) 경제투쟁에만 의거해서, 오로지 (아니면 주로) 이 투쟁만을 기반으로 하여 발전시킬 수 있다는 그들의 확신을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같은 견해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경제주의자들"은 우리가 자신들을 논박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화를 내면서도, 그 이견의 근원에 관해서는 충분히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바로 그런 까닭에, 우리가 문자 그대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는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계급적 정치의식은 오직 외부에서, 즉 경제투쟁의 외부에서, 고용주에 대한 노동자의 관계라는 영역 밖에서 노동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 이 같은 지식을 건질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은 국가와 정부에 대한 모든 계급 및 계층의 관계라는 영역이며 모든 계급의 상호 관계라는 영역이다. 따라서 노동자에게 정치적 지식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경제주의"에 경도된 실천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의 실천가들을 만족시키는 한 가지 답변만으로 답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에게 가라"라고 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동자에게 정치적 지식을 가져다주려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모든 주민 계급 속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기 군대의 분견대를 모든 방면으로 파견해야 한다.

 

우리는 일부러 이처럼 모가 난 정식화를 선택하고 있다. 간단하고도 신랄한 표현을 일부러 쓰고 있다. 이는 결코 역설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경제주의자들"이 용서받지 못할 정도로 무시하고 있는 임무에, 그리고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는 노동조합주의 정치와 사회민주주의 정치의 차이에 그들이 충분히 "직면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독자들에게 열내지 말고 우리의 말을 끝까지 주의 깊게 들어 보시라고 부탁드린다.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널리 확산된 사회민주주의자 서클이라는 유형을 한번 보라. 이런 서클의 활동을 예의 주시해 보라. 이들은 "노동자와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에 만족하면서 공장 내의 악덕 행위, 자본가들에게 편파적인 정부의 행위, 경찰의 폭력 등을 격렬하게 비판하는 내용의 전단을 발행한다. 노동자들과의 모임에서 대화는 보통, 아니 거의 대부분 이 같은 주제를 벗어나지 않는다. 혁명운동의 역사, 정부의 대내외 정치 문제, 러시아와 유럽의 진보적 경제성장, 현대사회에서의 여러 계급들의 처지 등등에 관한 대화나 보고는 극히 드물며, 사회의 다른 계급들 안에 체계적인 관계를 만들어 내고 이를 확대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어느 누구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본질적으로, 대부분의 경우에 그러한 그룹의 성원들에게 이상적인 활동가 상은 사회주의자, 즉 정치적 지도자이기보다는 노동조합 서기에 훨씬 가까운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영국의 노동조합 서기라면 누구나 노동자가 경제투쟁을 수행하는 것을 항상 도우며, 공장 폭로를 조직하고, 파업의 자유와 (해당 공장에서 파업이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경고하기 위한) 사수대 구성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과 조치들의 부당함을 설명하고, 부르주아계급에 속하는 중재재판관의 편파성 등등을 설명한다. 한마디로 노동조합의 서기들은 한결같이 "고용주와 정부에 대한 경제투쟁"을 수행하고 돕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이 아직은 사회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사실, 이상적인 사회민주주의자는 노동조합의 서기가 아니라, 인민의 호민관, 즉 전횡과 억압 — 그것이 어디에서 발생하건, 어떤 계급, 계층에 관계된 것이건 상관없이 — 이 드러나는 온갖 현상에 대응할 능력이 있는, 그리고 이 모든 현상을 경찰의 폭력과 자본주의적 착취라는 하나의 그림으로 종합할 능력이 있는, 또한 모든 사람 앞에서 자신의 사회주의적 신념과 민주주의적 요구를 표명하고 모든 사람에게 프롤레타리아트 해방 투쟁의 전 세계적, 역사적 의의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 어떤 사소한 사건이라도 활용할 능력이 있는 그러한 인민의 호민관이어야 한다는 사실은 아무리 주장해도 충분치 않다. 예를 들어 로버트 나이트(영국의 가장 강력한 노동조합의 하나인 보일러공협회의 유명한 서기이자 지도자)와 빌헬름 리프크네히트 같은 활동가를 비교해 보라. 그리고 마르티노프가 『불꽃』과 자신의 이견을 정리해 놓은 대립 구도를 그들에게 한번 적용해 보라. 그러면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마르티노프의 글을 한 장씩 넘겨 나가겠다. 나이트가 훨씬 더 많이 "대중에게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촉구했으며"(39쪽), 리프크네히트는 "현존 체제 전체나 그 체제의 부분적인 발현 현상들을 혁명적으로 조명하는"(38~39쪽) 데 더 많이 전념했다. 또한 나이트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당면한 요구들을 정식화하고 그것들을 실현하는 수단을 적시했지만"(41쪽), 리프크네히트는 이러한 일은 물론이고 "이와 동시에 다양한 반정부 계층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지도하고" "그들에게 최종 행동 강령을 지시하는"(41쪽) 것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 나이트는 이른바 "경제투쟁 자체에 가능한 한 정치적 성격을 부여하려"(42쪽) 노력하고 "일정한 가시적인 결과를 약속하는 구체적인 요구들을 정부에" 훌륭하게 "내세우는"(43쪽) 능력을 보인 반면, 리프크네히트는 "일면적인" "폭로"(40쪽)에 훨씬 더 많이 전념했다. 나이트는 "지루한 일상 투쟁의 단계적 진전"(61쪽)에 더 큰 의의를 부여한 반면, 리프크네히트는 "완전무결하고 빛나는 사상의 선전"(61쪽)에 더 큰 의의를 부여했다. 리프크네히트는 자신이 지도하는 신문을 이른바 "혁명적 반정부당의 기관지, 다양한 주민 계층의 이해관계와 충돌하고 있는 우리의 체제, 특히 정치체제를 폭로하는 기관지"(63쪽)로 만든 반면, 나이트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과 긴밀하고 유기적인 연관 속에서 노동자의 대의를 위해 활동했으며"(63쪽) — 그 "긴밀하고 유기적인 연관"이라는 것을, 우리가 앞서 끄리쳅스키와 마르티노프의 예를 통해 배웠던 자생성에 굴종하기라는 의미에서 이해한다면 — 스스로는 "그 자체로 자신의 영향력을 배가시켰다"라고 확신했지만 — 마르티노프도 물론 마찬가지이다 — 사실은 "자신의 영향력을 축소시켰다." 한마디로, 여러분은 마르티노프가 de facto(사실상) 사회민주주의당을 노동조합주의의 수준으로 전락시키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비록 그가 이렇게 한 것이 사회민주주의당의 건투를 빌지 않아서가 결코 아니며, 단지 플레하노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 플레하노프를 심화시키려고 조금 서둘렀기 때문인 것이 분명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다시 우리가 서술하고 있던 문제로 돌아가자. 앞서 우리는 사회민주주의자라면,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의식을 전면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로만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모든 주민 계급 속으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등장한다. 어떻게 그것을 할 것인가? 우리에게 이를 위한 힘이 있는가? 다른 모든 계급 속에 그 같은 활동을 위한 토양이 있는가? 이것이 계급적 관점으로부터 후퇴하는 것, 또는 후퇴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가? 이 문제들을 잠시 살펴보자.

 

우리는 이론가로서, 선전가로서, 선동가로서, 조직가로서 "주민의 모든 계급 속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회민주주의자의 이론 활동은 개별 계급들의 사회적, 정치적 처리가 갖는 모든 특수성을 연구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이 점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방향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은 매우, 매우 미미하다. 공장 생활의 특수성을 연구하는 데 집중된 활동과 비교하면 균형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적다. 여러분은 여러 위원회나 서클에서 제철 산업 같은 것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데까지 파고드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조직의 성원들(이러저러한 이유로 실천 활동에서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게 된 — 이런 일은 빈번히 일어난다. — 성원들)이 우리의 사회생활 및 정치생활의 어떤 절박한 문제, 다른 계층의 주민들에게 사회민주주의 활동을 위한 동기를 제공할 정도의 힘이 있는 그런 문제에 관한 자료를 모으는 일에 전문적으로 종사하고 있는 예는 거의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현재의 노동자운동 지도자들 대부분의 준비 부족을 말할 때 이 부분에서의 준비에 관해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또한 "프롤레타리아트 투쟁과의 긴밀하고 유기적인 연관"에 대한 "경제주의적" 이해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주민의 모든 계층 속에서의 선전과 선동이다.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이 임무가 다소 쉬운 이유는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대중적 회합과 집회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민주주의자가 모든 계급을 대표하는 의원들 앞에서 발언하는 의회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의회도, 집회의 자유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사회민주주의자의 말을 듣고 싶어 하는 노동자들과의 회합을 마련할 능력이 있다. 또한 우리는 온갖 계급의 대표들이 민주주의자의 말을 듣고 싶어 하기만 한다면 그들과의 회합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혁명운동을 지지한다."[58]라는 것, 따라서 우리에게는 한순간이라도 자신의 사회주의적 신념을 감추지 않으면서 전 국민 앞에서 일반 민주주의적 과제를 표명하고 강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사실상 잊고 있는 자는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일반 민주주의의 문제를 제기하고 첨예화시키며 해결하는 데서 자신이 만인 앞에 서 있어야 한다는 의무를 사실상 잊고 있는 자는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점은 누구나 확실히 동의하고 있는 것이니!" 참을성없는 독자가 우리를 제지한다. 또한 최근의 동맹 대회에서 채택된 『노동자의 대의』 편집진을 위한 새 지침도 직설적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의 특수한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직접 관련되어 있는, 아니면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의 모든 혁명 세력의 전위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관련되어 있는, 사회적, 정치적 생활의 모든 사건과 현상은 정치 선동과 선전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두 대회』17쪽. 강조는 우리가 한 것.) 그렇다. 매우 올바르고 좋은 말이다. 그러므로 만일 『노동자의 대의』가 이 말들을 이해했다라면, 그래서 이 말들과 나란히 정반대의 말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충분히 만족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전위"라고, 선진 대오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은가. 우리가 선두에서 나아가고 있음을 보고 나머지 모든 대오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행동해야만 한다. 우리는 독자들에게 묻는다. 과연 나머지 "대오"의 대표들이 우리가 "전위"입네 말하면 우리를 신뢰할 만큼 그렇게 바보들인가?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상황을 떠올려 보기만 해 보라. 러시아의 교양 있는 급진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적 입헌주의자들의 "대오" 앞에 사회민주주의자가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전위요, 이제 우리 앞에는 경제투쟁 자체에 어떻게 가능한 한 정치적 성격을 부여할 것인가라는 임무가 놓여 있소." 조금이라도 똑똑한 급진주의자나 입헌주의자라면(그런데 러시아의 급진주의자와 입헌주의자 가운데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 그런 말을 듣고서 조용히 웃기만 할 것이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물론 혼잣말로. 이런 사람은 대부분의 경우 노련한 외교가니까.) "이렇게 멍청한 '전위'가 있나! 그것은, 그러니까 노동자의 경제투쟁 자체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우리,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선진적 대표들의 임무라는 것도 모르고 계시는군. 사실, 우리도 서유럽의 모든 부르주아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을 정치에 끌어들이길 원하고 있단 말이야. 하지만 그것은 사회민주주의 정치가 아니라 바로 노동조합주의 정치여야만 하지. 노동자계급의 노동조합주의 정치가 바로 노동자계급의 부르주아적 정치란 말이야. 그런데 이 '전위'께서 만든 자기 임무의 정식화라는 게 바로 노동조합주의 정치의 정식화가 아닌가! 그러나 그들이 마음껏 자기 자신을 사회민주주의자라고 부르도록 내버려 두라고. 나는 꼬리표를 보고 열 내는 그런 어린애가 아니란 말이야! 단지 저 극악한 정통 교조주의자들한테 항복하지만 말라고. 사회민주주의당을 무의식적으로 노동조합주의의 궤도로 잡아넣고 있는 사람들에게 '비판의 자유'를 주도록 하라고!"

 

사회민주주의의 전위를 운운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 — 자생성이 우리 운동을 거의 지배하고 있는 이 시점에 —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것이 "자생적 요소의 과소평가"라는가 완전무결하게 빛나는 사상의 선전에 비해 지루한 일상 투쟁의 단계적 진전이 갖는 의미를 축소하는 것 등등이라는 사실을 우리의 입헌주의자가 알게 된다면, 그의 가벼운 미소는 박장대소로 바뀔 것이다! 의식성이 자생성을 능가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까지도 일반적으로 승인하지 않을 수 없는 대담한 "계획"을 제기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선진" 대오라니! 혹시 이들은 후위라는 말과 전위라는 말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마르티노프의 다음 언명을 깊이 숙고해 보라. 40쪽에서 그는 『불꽃』의 폭로 전술이 일면적이며, "우리가 아무리 정부에 대한 불신과 증오를 퍼뜨린다 해도, 그 정부의 타도를 위한 충분하고 적극적인 사회적 역량을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따옴표 속의 이 말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이니, 자신의 활동성은 낮추려 하면서 대중의 활동성은 높이겠다는 고심이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마르티노프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당연히 혁명적 역량("타도를 위한")이다. 그런데 그는 과연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가? 다양한 사회계층들은 보통 때는 항상 뿔뿔이 제 갈 길을 가므로, "이를 고려할 때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다양한 반정부 계층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동시에 지도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적극적인 행동 강령을 강제할 수 없으며, 하루하루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어떤 방법으로 투쟁해야 하는가를 지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자유주의적인 계층들은 이제 벌써 자신들의 당면 이해관계를 위한 적극적인 투쟁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 투쟁이 그들을 우리의 정치체제에 직면하도록 할 것이다."(41쪽.) 이처럼 마르티노프는 혁명적 역량에 관해, 전제주의 타도를 위한 적극적인 투쟁에 관해 운을 떼 놓고서는 노동조합의 역량, 당면 이해관계를 위한 적극적인 투쟁이라는 얼굴로 새어 버린다! 우리가 학생들, 자유주의자들 등등의 투쟁을 그들의 "당면 이해관계"를 위해 지도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얘기가 아니라는 점 아닌가, 참으로 존경스러운 "경제주의자"여! 우리가 거론한 것은 다양한 사회계층들이 전제주의 타도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다양한 사회계층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지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위"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 우리의 학생들, 우리의 자유주의자들 등등을 "우리의 정치체제에 직면하도록" 고심하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만이 아니다. 전제주의 정부의 경찰과 관리들이야말로 누구보다도 먼저, 그리고 누구보다도 더 많이 이 문제를 고민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선진적 민주주의자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대학 제도나 지방행정 제도 같은 것들에만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정치체제 전체의 부당함이라는 생각에 직면하도록 만드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반정부 계층이 우리 당과 우리의 정치투쟁을 강력히 도울 수 있도록, 또 실제로 돕게 되도록 우리 당의 지도 아래 그 같은 전면적인 정치투쟁을 조직해야 할 임무를 떠안아야 한다. 우리는 사회민주주의자 실천가들을 이러한 전면 투쟁의 모든 현상을 지도하고 필요한 순간에는 동요하는 학생들, 불만 어린 지방의원들, 분노한 이교도들, 모욕당한 교사 등을에게 "적극적인 행동 강령을 강제할" 능력을 갖춘 정치 지도자로 단련시켜야 한다. 따라서 마르티노프의 주장, 즉 "그들에 대해 우리는 체제의 폭로자라는 소극적인 역할로만 나설 수 있다. …… 우리는 그들의 희망 사항을 여러 정부 위원회에 전해 줄 수 있을 뿐이다."(강조는 우리가 한 것)라는 주장은 완전히 틀렸다. 이 말을 함으로써, 마르티노프는 자신이 혁명적 "전위"의 진정한 역할이라는 문제에 대해 정확히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독자들이 이 점에 주목한다면, 마르티노프의 다음과 같은 결론이 지닌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매우 다양한 주민 계층들의 이해관계와 우리의 체제, 특히 정치체제가 충돌하는 한에서『불꽃』은 그러한 체제를 폭로하는 혁명적 반정부 세력의 기관지다. 이에 반해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과의 긴밀하고 유기적인 연관 속에서 노동자의 대의를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활동 영역을 축소시킴으로써 그 자체로 우리의 영향력을 배가시키고 있다."(63쪽.) 이 결론의 진정한 의미는 이런 것이다.『불꽃』은 노동자계급의 노동조합주의 정치(어떤 착각이나 준비 부족, 또는 신념으로 인해 우리의 실천가들은 너무나 빈번히 이러한 정치의 틀에 갇혀 있다.)를 사회민주주의 정치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고자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노동자의 대의』는 사회민주주의 정치를 노동조합주의 정치의 수준으로 끌어내리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여전히 『노동자의 대의』는 이것이 "공동의 대의에서 충분히 양립 가능한 입장들" (63쪽)이라고 모두에게 단언하고 있다. O, Sancta Simplicitas [오, 성스러운 단순함이여]!

 

더 나아가 보자. 우리에게는 과연 모든 주민 계급을 향하여 선전하고 선동할 수 있는 힘이 있는가? 물론 있다. 이 사실을 심심하게 부정하는 경향이 있는 우리의 "경제주의자들"은 1894년 (대략)부터 1901년 사이에 우리 운동이 내디던 저 엄청난 진전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 진정한 "꼬무니주의자들"은 오래전에 지나가 버린 운동 초창기의 관념 속에 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때 우리는 정말 놀랄 정도로 무력했다. 그때는 노동자들 사이에서의 활동을 위해 무조건 떠나는 결단과 그러한 활동을 외면하는 어떠한 경향이라도 단호히 단죄하는 결의가 자연스럽고도 정당한 것이었다. 그때는 노동자계급 속에서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과제의 전부였다. 지금은 거대한 역량이 운동에 흡입되어 있다. 교양 계급의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뛰어난 사람들이 모두 우리에게로 오고 있다. 운동에 이미 입문한, 또는 참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 사회민주주의당에 이끌리는 사람들이 모든 지방에 걸쳐 어느 곳에는 있을 정도다. (반면에 1894년에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우리 운동의 주요한 정치적, 조직적 결함 중의 하나는 역량 있는 이 모든 이를 흡수하여 이들 모두에게 알맞은 일을 부여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좀 더 상세히 말하겠다.) 이들의 거의 대다수에게는 "노동자에게로 갈" 기회가 전혀 없기 때문에, 역량을 우리의 주요 과업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는 성립될 수도 없다. 그와는 반대로, 노동자들에게 진실하고 포괄적이며 생생한 정치 지식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우리 국가 메커니즘의 내적 추진력을 알 기회를 제공하는 온갖 지점에, 모든 사회계층 속에, 어떤 곳을 불문하고 "우리 사람들", 즉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있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사람들은 선전이나 선동과 관련하여 필요할 뿐만 아니라 조직과 관련하여서는 더더욱 필요하다.

 

모든 주민 계급 속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은 있는가? 이를 보지 못하는 사람 역시 의식성이 대중의 자생적 고양에 뒤처진 사람이다. 노동자운동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만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반정부당을 지지하는 것에 거는 희망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제주의를 용납할 수 없고 전제주의의 붕괴가 필연적이라는 인식을 불러일으켰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불만이 표출되는 갖가지 형태를 활용하고 맹아 상태의 저항일지라도 그 작은 조각들을 모두 모아 다듬어 내야 하는 자기 임무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저 말로만 "정치가"요 사회민주주의자일 뿐일 것이다.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근로 농민, 가내공업가, 영세 수공업자 등등의 수백만 대중 모두가 조금이라도 숙달된 사회민주주의자의 설교를 항상 목마르게 듣게 될 것이라는 점은 차치해 두자. 하지만 주민 계급 중에 자신들의 무권리 상태와 폭정에 불만을 가진, 그래서 가장 절박한 일반 민주주의적 요구의 대변자인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선전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 그룹, 서클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계급을 하나라도 꼽을 수 있겠는가? 주민의 모든 계급, 계층 속에서 사회민주주의자가 행하는 이러한 정치 선동의 구체적인 상을 그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에게 이러한 선동의 주요한 (하지만 당연히 유일한 것은 아닌) 수단으로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 폭로를 제시할 것이다.

 

「무엇으로부터 시작할 것인가?」(『불꽃』 제4호, 1901년 5월) — 이에 관해서는 뒤에서 상세히 논해야만 할 것이다. — 에서 나는 이렇게 쓴 바 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의식 있는 인민의 모든 계층 속에서 정치 폭로를 향한 열망을 깨우쳐 내야 한다. 현재 정치 폭로의 목소리가 이렇게 드문드문, 약하고 소심하게 들리는 것에 당황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결코 경찰의 전횡을 전반적으로 묵인하며 따르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폭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언제라도 그럴 태세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연단이 없으며, 연설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열렬히 동의를 표하는 청중이 없고, 연설자들이 '전능한' 러시아 정부에 대한 항변을 호소할 만한 세력을 인민들 가운데 어디서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 우리에게는 이제 짜르 정부를 전 국민 앞에 폭로하기 위한 연단을 만들 능력이 있으며 또 그럴 의무가 있다. 사회민주주의 신문이 그 연단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계급이야말로 정치 폭로에 이상적인 청중이다. 그들은 전면적이고 생생한 정치적 지식을 다룬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더 많이 필요로 한다. 그들에게는 누구보다도 훌륭하게 이러한 지식을 적극적인 투쟁으로 구현할 능력이 있다. 비록 그러한 투쟁이 아무런 "가시적인 결과"를 약속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전 국민적 폭로를 위한 연단이 될 수 있는 것은 전 러시아적 신문뿐이다. "현대 유럽에서 정치 기관지 없이는 정치 운동이라 불릴 만한 운동을 상상할 수 없다." 이 점에서 러시아 역시 현대의 유럽에 속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신문은 우리 나라에서 이미 오래전에 하나의 힘이 되었다. 그렇지 않다면 정부가 신문을 매수하고 카트코프나 메셰르스키 같은 자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느라 수만 루블씩을 지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 비합법 언론이 검열의 빗장을 뚫었고, 합법적이고 보수적인 신문들이 공개적으로 그것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도록 했다는 것은 전제주의 러시아에서 새로운 일이 아니다. 70년대에도, 심지어 50년대에도 그러했다. 그런데 지금은 비합법 신문을 읽고 그를 통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할지" —『불꽃』(제7호)에 편지를 보내 온 한 노동자의 표현을 빌리자면[59] — 를 배우려 하는 국민의 층이 몇 배나 넓고 두터워졌다. 경제 폭로가 공장주에 대한 선전포고이듯이 정치 폭로는 바로 정부에 대한 선전포고다. 나아가 이 같은 폭로 운동이 폭 넓고 힘 있게 되면 될수록, 전쟁 개시를 위해 선전포고를 하는 사회계급의 수가 많고 결단력이 높게 되면 될수록, 이 선전포고는 더욱 큰 도덕적 의의를 갖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폭로는 이미 그 자체로 적대 체제를 붕괴시키는 하나의 강력한 수단이자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적의 동맹군을 적으로부터 이탈시키는 수단, 전제주의 정권의 항시적인 참여자들 사이에 불신과 적대감을 조장하는 수단인 것이다.

 

전 국민적 폭로를 실제로 조직할 당만이 우리 시대 혁명 세력의 전위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전 국민적"이라는 말은 매우 많은 함의를 갖는다. 비노동자계급 출신(전위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계급들을 포섭해야만 한다.)의 폭로자들 가운데 압도적 다수는 상식 있는 정치인들과 냉정한 사업가들이다. 그들은 "전능한" 러시아 정부는커녕 하다못해 말단 관리에게라도 "항변한다"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러한 항변이 실제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과 우리가 하나의 정치 세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에만, 우리에게 하소연하게 될 것이다. 국외자의 눈에 그 같은 세력으로 비치려면, 우리의 의식성, 창발성, 정력을 상승시키기 위해 흔들림 없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후위의 이론과 실천에다 "전위"라는 이름표를 달아매는 것으로는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만일 정부에 대한 전 국민적 폭로의 실제적인 조직화를 우리가 담당해야 한다면, 우리 운동의 계급적 성격은 무엇으로 드러날 것인가? "프롤레타리아트 투쟁과의 긴밀하고도 유기적인 연관"을 비이성적으로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할 것이고 또 이미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전 국민적 폭로를 우리 사회민주주의자가 조직한다는 점으로 드러난다. 고의적이든 아니든 맑스주의를 왜곡하는 것을 한 치도 묵인하지 않는 견고한 사회민주주의 정신으로, 선동이 제기하는 모든 문제를 조명할 것이라는 점으로 드러난다.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혁명적 교양과 전체 인민을 대표하는 정부에 대한 공격을 하나의 끊을 수 없는 전체로 통일하고 아울러 정치적 자립성을 수호하며, 노동자계급의 경제투쟁을 지도하고,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층을 부상시켜 그들을 우리 진영으로 끌어들이게 될, 착취자들과 노동자계급의 자생적인 충돌을 활용하는 당이 이러한 전면적 정치 선동을 수행할 것이라는 점으로 드러난다!

 

그런데 "경제주의"의 가장 특징적인 성격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러한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프롤레타리아트의 가장 절실한 요구(정치 선동과 정치 폭로를 통한 전면적 정치 교양)가 일반 민주주의 운동의 요구와 일치하는 이 지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몰이해는 비단 "마르티노프 식" 문구들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 문구들과 의미상 일맥상통하는, 이른바 계급적 관점에 관한 인용문에서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불꽃』 제12호에 실린 "경제주의자들의" 편지의 필자들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 "『불꽃』의 이러한 주요 결정(이데올로기의 과대평가)이야말로 사회민주주의당과 다양한 사회계급 및 경향들과의 관계라는 문제에서 이 신문이 보여 주는 자기모순의 원인이다. 이론을 쭉 진열함으로써……"(당과 함께 성장하는 당 임무의 성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반(反)전제주의 투쟁으로 즉각 전환해야 한다는 임무를 — 분명, 현재 상황에서 노동자들에게 이 임무가 너무나 과중하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 결정한 뒤……" (우리는 이 임무가 어린 자식들을 걱정하는 "경제주의자" 지식인들보다는 노동자들에게 더 쉬운 것임을 느낀다. 더 나아가 우리는 그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은 — 저 잊을 수 없는 마르티노프의 말을 빌리자면 — 그 어떤 "가시적인 결과"도 약속하지 않는 요구를 위해서라 할지라도 기꺼이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 …… "그럼에도, 노동자들이 이 투쟁을 위한 힘을 이후에 스스로 축적하는 과정을 기다릴 인내심이 없는 『불꽃』은 일련의 자유주의자들과 지식인들 속에서 동맹군을 찾기 시작한다……."

 

그렇소, 그렇고 말고. 우리는 정말 온갖 "중재자들"이 옛날 옛날에 약속한 바 있는 축복받은 시간, 우리의 "경제주의자들"이 자신들의 후진성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자신들에게 정력이 부족한 것을 마치 노동자들의 역량이 부족한 것처럼 합리화시키기를 그만두는 그러한 시간을 "기다릴" "인내심"이란 인내심은 모두 잃어버렸죠. 우리의 "경제주의자들"께 묻는다. "노동자들이 투쟁을 위한 힘을 축적하는" 것의 핵심이 도대체 무엇이오? 그것이 노동자들을 정치적으로 교양하고 그들 앞에 우리의 억압적인 전제주의의 모든 측면을 폭로하는 일이라는 것은 명백하지 않소? 바로 이러한 작업을 위해 지방의원, 교사, 통계학자, 학생 등에 대한 정치 공세를 폭로하는 일에 우리와 함께할 태세를 갖춘 "일련의 자유주의자들과 지식인들 속의 동맹군"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 역시 명확하지 않소? 이 놀랍도록 "교묘한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정말 그렇게도 어렵단 말이오?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비(非)프롤레타리아계급들 중에서 자신들의 지지자, 직간접적인 동맹자들을 획득해야 하는 임무는 주로,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바로 프롤레타리아트 속에서의 선전 활동의 성격에 의해 좌우된다."[60]라는 사실은 악셀로트가 이미 1897년부터 당신들에게 되풀이해 말해 온 것이 아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티노프와 다른 "경제주의자들"은 여전히, 노동자들은 먼저 "고용주와 정부에 대한 경제투쟁으로" 힘(노동조합주의 정치를 위한)을 비축하고 그리고 난 다음에 노동조합주의적 "활동성의 교양"을 사회민주주의적 활동성의 교양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경제주의자들"은 계속해서 말한다. "…… 그러한 모색 속에서『불꽃』은 빈번히 계급적 관점에서 이탈하여 계급 모순을 은폐하고, 정부에 대한 공통의 불만을 — '동맹군들'의 불만은 원인과 정도가 매우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다. 예를 들자면, 지방의회에 대한『불꽃』의 태도가 그러한 것이다……." "『불꽃』은 정부가 던져 주는 동남에 만족하지 못하는 귀족들에게 노동자계급의 지원을 약속이라도 해 주는 듯하다. 그러면서 이러한 계층들의 계급적 차이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이마도 편지의 필자들은「전제주의와 지방의회」라는 기사들(『불꽃』제2호와 제4호)을 언급하고 있는 모양인데, 독자 여러분이 그 기사들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 글들이 "신분적, 관료적 지방의회의 온건한 선동"과 "유산계급조차 하고 있는 자주적 활동"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다루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 글에는 지방의회에 반대하는 정부의 투쟁을 노동자가 무관심하게 바라보아서는 안 되며, 또 혁명적 사회민주주의당이 정부 앞에 온몸으로 떨쳐 일어나면 지방의원들에게는 온건한 어조를 버리고 강하고 격렬한 발언을 해 줄 것이 요청된다고 적혀 있다. 편지의 필자들은 어떤 점에 동의하지 않는단 말인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들은 노동자가 "유산계급"이니 "신분적, 관료적 지방의회"니 하는 말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인가? 그들은 지방의원들에게 온건한 논조를 강경한 논조로 바꾸라고 촉구하는 것이 "이데올로기의 과대평가"라고 생각한다 말인가? 그들은 노동자들이 절대주의가 지방의회까지도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 알지 못하더라도 절대주의와 투쟁할 수 있는 "힘을 축적할" 수 있다고 상상한다 말인가? 이 모든 것이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분명한 것은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편지의 필자들이 사회민주주의당의 정치적 임무를 매우 혼란스럽게 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다음과 같은 문구를 보면 더 분명해진다. "『불꽃』이 학생 운동에 보이는 태도 역시 그러한 것(즉 "계급 대립을 은폐하는 것")이다." 우리가 노동자들에게 대중 시위를 통해 폭력, 만행, 고배 풀린 행동의 실제 진원지는 학생이 아니라 러시아 정부라는 사실을 천명해야 한다고 촉구하는(『불꽃』제2호) 대신에 『노동자의 사상』의 정신에 입각한 논평을 실어야 했단 말인가! 그 같은 생각을 1901년 가을에, 그러니까 2월과 3월 사태가 일어난 후에, 학생운동에서도 전제주의에 대한 저항의 "자생성"이 사회민주주의당의 의식적 운동 지도를 앞지르고 있음을 증명하는 새로운 고양을 눈앞에 둔 시점에, 사회민주주의자들이 피력하고 있다. 경찰과 코사크인들에게 구타당하는 학생들을 웅호하는 노동자들의 자생적 열의는 사회민주주의 조직의 의식적 활동을 능가하고 있다!

 

계속해서 편지의 필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 반면, 다른 기사들을 통해 『불꽃』은 갖가지 타협들을 준엄히 질책하면서, 예를 들면 게드파[3]의 성급한 행동을 옹호하고 나선다." 오늘날의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의 이견에 관해 자신감에 차서 이처럼 경솔하게, 이러한 이견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며 그것으로 인한 분열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그 말들을 심사숙고하라고 충고하는 바이다. 다양한 계급들에 대한 전제주의의 적대성을 해명하는 문제에서, 그리고 전제주의를 반대하는 다양한 계층들이 존재함을 노동자들에게 인지시키는 문제에서 아직까지 우리가 한 일은 놀랄을 정도로 미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타협", 말할 것도 없이 "정부와 고용주에 대한 경제투쟁" 이론과의 타협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한 조직 내에서 성공적으로 일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농노 해방 40주년을 맞아 계급투쟁을 농촌에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해 왔으며(제3호), 또한 비제의 비밀 각서 사건을 계기로 지방자치와 전제주의가 화해할 수 없다는 사실에 관해서도 말해 왔다(제4호). 우리는 새로운 법률과 관련하여 토지 소유자 및 이들에게 봉사하는 정부의 농노제를 공격했으며(제8호), 비합법 지방의회 대회를 환영하고, 치욕스러운 청원 운동을 넘어 투쟁으로 나서라고 의원들을 격려해 왔다(제8호). 우리는 정치투쟁의 필요성을 이해하기 시작하여 그러한 투쟁으로 이행해 간 학생들을 독려하면서(제3호), 그와 동시에 학생들에게 가두시위에 참가하지 말라고 요청한 "순수 학생"운동 지지자들이 드러낸 "조잡한 무식"을 절타했다(제3호, 2월 25일의 모스크바학생회집행위원회의 성명서와 관련하여). 우리는 신문 『러시아』의 간교한 자유주의자들의 "백일몽"과 "위선"을 폭로했으며(제5호), 그와 동시에 "저명한 자유주의적 지방의원들, 연로한 교수들과 학자들, 평화적 자유주의자들에게 징벌을 가하는" 정부 고문실의 만행을 밝혔다(제5호, 「경찰의 문필 활동 탄압」). 우리는 "노동자 후생 복리에 관한 국가 후견" 프로그램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를 파헤쳤으며, "위로부터의 개혁으로 아래로부터의 개혁 요구를 사전에 막는 것이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기다리는 것보다 낫다."라는 "귀중한 고백"을 환영한 바 있다(제6호). 우리는 통계국원들의 저항을 격려하고(제7호), 파업을 파괴하는 통계국원들에게 절타를 가했다(제9호). 이러한 전술이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의 빛을 흐리고 자유주의와 타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자체로 자신이 Credo 강령의 진정한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따라서 그가 아무리 이 강령을 부정한다고 해도 사실상 바로 이 강령을 실행하고 있음을 폭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로써 그는 사회민주주의당을 "고용주와 정부에 대한 경제투쟁"으로 끌어가고 있으며, 또한 "자유주의적인" 문제에 매번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사회민주주의적 태도를 명확히 해야 하는 임무를 포기하고 자유주의 앞에 굴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6. 다시 한 번 "중상모략을 일삼는 자들"에 대하여, 다시 한 번 "혹세무민하는 자들"에 대하여

 

독자들에게 기억하시다시피, 이 친절한 단어들은 『노동자의 대의』가 사용한 것이다. "노동자운동을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토양을 간접적으로 마련해 주었다."라는 우리의 비판에 『노동자의 대의』는 그런 식으로 응수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단순한 『노동자의 대의』는 이러한 비판이 논쟁 중의 돌출 발언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정해 버렸다. 그들의 말을 빌리면, "이 극악한 교조주의자들이 온갖 불쾌한 말로 우리에게 비방을 퍼냈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도대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도구가 되는 것보다 더 불쾌한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그러고는 다음과 같이 굵은 활자로 "반박문"을 게재한다. "노골적인 중상모략"(『두 대회』30쪽), "혹세무민"(31쪽), "가장무도회"(33쪽). 성급하게 욕을 해 댐으로써 적의 사상을 고찰할 만한 능력이 자신에게 없음을 증명해 보이면서, 『노동자의 대의』는 제우스가 그랬던 것처럼(비록 제우스와 닮은 점은 거의 없지만) 자신이 틀렸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화가 나 있다. 그런데 사실 대중운동이 어떤 형태로든 자생성에 굴종하는 것, 사회민주주의 정치를 노동조합주의 정치로 격하시키는 것이 왜 노동자운동을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토양을 마련하는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으려면 조금이라도 생각해 보았어야 한다. 자생적 노동자운동 자체로는 노동조합주의만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뿐이다. (또한 필연적으로 만들어 낸다.) 그런데 노동자계급의 노동조합주의 정치가 바로 노동자계급의 부르주아적 정치다. 노동자계급이 정치투쟁, 심지어 정치혁명에 참여한다고 해도, 그것이 그들의 정치를 사회민주주의 정치로 만드는 것은 결코 아니다. 『노동자의 대의』는 갑자기 이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국제적인 사회민주주의당과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당의 심각한 문제들을 자신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만인이 보는 앞에서 마침내 꾸밈없이 솔직하게 말해야겠다는 생각이라도 불현듯 든 것일까? 오, 천만에. 『노동자의 대의』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여긴 없는데요" 수법이라 불리는 그런 방식을 뻔뻔히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아니오, 이 말을 내 말이 아니오, 나는 마부가 아니오. 우리는 "경제주의자"가 아니오, 『노동자의 사상』은 "경제주의"가 아니오, 러시아에는 "경제주의"라는 것이 아예 없소. 이는 매우 교묘하고도 "외교적인" 수법이다. 단 하나, 조금 난처한 점이 있다. 그것은 이 수법을 실천하는 기관지들에게는 다들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대의』는 러시아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것은 대체로 "환상"이라고 여긴다(『두 대회』32쪽).* 행복한 사람들이군! 이들은 타조처럼 날개죽지에 머리를 처박고는, 그렇게 하면 주위의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상상하고 있다. 맑스주의가 붕괴되었다고, 심지어 사멸하고 있다고 온 세상에 자신들의 승전보를 달마다 알리는 일련의 자유주의적 사회 평론가들, 노동자들에게 계급투쟁에 관한 브렌타노 식 이해와 노동조합주의 정치 개념을 심어 주는 자유주의자들을 고무하는 자유주의 신문들(『상트페테르부르크 통보』,『러시아 통보』등등 무수히 많다.), 기라성 같은 맑스주의 비판가들 — 이들의 진짜 경향은 Credo가 너무도 멋지게 열어 보인 바 있으며, 이들의 저작 상품들은 유일하게 세금도 물지 않고 러시아를 활보하고 있다. — 그리고 특히 2월과 3월 사태 이후 비(非)사회민주주의적 혁명 경향의 활성화, 이 모든 것이 분명 환상이란 말인가! 이 모든 것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아무 관계도 없단 말인가!

 

『노동자의 대의』는『불꽃』제12호에 보낸 "경제주의자들의" 편지의 필자들처럼 "왜 이번 봄의 사건들이 사회민주주의당의 권위와 위신을 강화시키는 대신에 비사회민주주의적 혁명 경향을 그처럼 활성화시켰는지 심사숙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임무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노동자 대중의 활동성이 우리의 활동성보다 높았기 때문이며, 우리에게는 제대로 준비된 혁명 지도자들과 조직가들, 즉 모든 반정부 계층이 지닌 성향을 잘 알고 운동의 중심에서 서서 자생적 시위를 정치적 시위로 변화시키고 그것의 정치적 성격을 확대시킬 수 있는 혁명 지도자들과 조직가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조건에서는 사회민주주의자와 노동자보다 더 기민하고 더 정력적인 혁명가들,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닌 그러한 혁명가들이 우리의 후진성을 이용하게 될 것이 불가피하며, 노동자들이 경찰과 군대에 맞서 아무리 헌신적이고 정열적으로 싸운다 할지라도, 아무리 혁명적으로 나선다 할지라도, 이들은 그 같은 혁명가들을 지지하는 세력으로만 남을 뿐이며 사회민주주의당의 전위가 아니라 부르주아 민주주의당의 후위가 될 것이다. 독일의 사회민주주의당을 한번 살펴보라. 우리의 "경제주의자들"은 독일 사회민주주의당의 약점만을 취하려 하고 있다. 어째서 독일에서는 단 하나의 정치적 사건이라도 사회민주주의의 권위와 위신을 높이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 그것은 사회민주주의가 언제나 정치 사건을 가장 혁명적으로 평가하고, 폭정에 맞선 온갖 저항을 방어하는 지점에서 다른 모든 사람의 선두에 있기 때문이다. 사회민주주의는 경제투쟁이 노동자들을 무권리 상태에 직면하게 한다거나 구체적인 조건이 운영적으로 노동자운동을 혁명적 길로 밀고 간다는 등의 논리를 펴는 것으로 스스로를 잠재우지 않는다.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적, 정치적 생활의 모든 영역과 문제에 개입한다. 그러나가 황제 빌헬름이 부르주아 진보당 출신의 시장 임명을 거부한 사건에도, "음란" 서적 및 그림 금지법 제정 문제에도, 교수 임용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 행사 문제 등등에도 개입한다. (아직 우리의 "경제주의자들"이 이는 본질적으로 자유주의와 타협하는 것이라고 독일인들에게 가르치지 못했나 보군!) 사회민주주의는 어디서나 만인의 선두에서 서서 모든 계급의 정치적 불만을 각성시키고, 잠든 이들을 흔들어 깨우고, 뒤처진 이들을 끌어당기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의식과 정치 활동성 발전을 위해 모든 측면의 자료를 제공한다. 그 결과, 사회주의의 의식적인 적들마저 선진 정치 투사에게 존경의 빛을 감추지 못하고, 희한하게도 중요한 문서들이 부르주아 진영은 물론이고 관료 및 궁정 내부에서조차 『전진』의 편집실로 종종 넘어오곤 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언뜻 "모순"으로 보이는 수수께끼의 해답이 놓여 있다. 그것은 『노동자의 대의』의 이해 수준을 훨씬 넘어서기 때문에 『노동자의 대의』는 그저 두 손을 높이 들고 "가장무도회"라고 외칠 뿐이다! 실제로 한번 상상해 보라. 우리 『노동자의 대의』는 대중적인 노동자운동을 제일 중요하게 내세우고 있소. (그래서 이를 굵은 활자로 쓰는 바이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자생적 요소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소. 우리는 경제투쟁 자체, 바로 그 자체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하고자 하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과 긴밀하고도 유기적인 연관을 맺고자 한단 말이오! 그런데 사람들은, 우리가 노동자운동을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토양을 마련하고 있다지 않소. 누가 이런 말을 한단 말이오? "자유주의적" 문제에 사사건건 개입하고("프롤레타리아트 투쟁과의 유기적인 연관"을 이렇게도 이해하지 못한다 말인가!), 학생들, 심지어 (오, 빌어먹을!) 지방의원들에게까지 그렇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자유주의와 "타협"하려 나서는 자들이 그들이고! 어찌됐던 비(非)-프롤레타리아트계급 주민들 속에서의 활동에 더 많은("경제주의자들"과 비교하여) 노력을 기울이려 하는 자들이 그들이고! 이것이 "가장무도회"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오?

 

가엾은 『노동자의 대의』여! 언제쯤에야 이들은 이 복잡한 메커니즘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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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대중의 자생성과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의식성

 

우리는 70년대의 운동보다 한층 더 폭 넓고 깊은 우리 운동을 그 시대와 같은 헌신적인 결의와 열정으로 고무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현재의 운동이 갖는 강점은 대중의(주요하게는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의) 각성이고 약점은 지도자인 혁명가들의 창발성과 의식성의 부족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 최근, 이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지배적이었던 모든 견해를 뒤엎을 만큼 위협적인 놀라운 발견이 일어났다. 이 발견을 이룬 것이 『노동자의 대의』다. 『노동자의 대의』는 『불꽃』및 『여명』과 논쟁을 벌이면서, 부분적인 반대에 그치지 않고 "전반적인 견해차"를 보다 심오한 근원적인 문제, 즉 "자생적 요소와 의식적, '계획적' 요소의 상대적 중요성에 대한 서로 다른 평가"로 끌어가려 시도했다. 『노동자의 대의』의 비난 어린 테제는 이렇게 말한다. "발전의 객관적 혹은 자생적 요소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우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불꽃』및『여명』과의 논쟁이『노동자의 대의』로 하여금 이 같은 '전반적인 견해차'에 생각이 미치도록 한 것 외에 다른 어떤 결과도 가져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 유일한 결과야말로 우리에게는 큰 만족이다." 테제는 그 정도로 의미심장하며, 그만큼 명료하게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의 현재의 이론적, 정치적 견해차의 핵심 전체를 비추고 있는 것이다.

 

자생성과 의식성의 관계라는 문제가 대단한 일반적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에, 따라서 세밀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이 문제에 천착해야 한다.

 

1. 자생적 고양의 시작

 

우리는 앞 장에서 1890년대 중반에 러시아의 교육받은 젊은이들이 견잡을 수 없이 맑스주의에 경도되어 갔음을 지적했다. 1896년의 그 유명한 페테르부르크 산업 전쟁[38]에 뒤이은 노동자 파업의 시기도 바로 이와 같은 견잡을 수 없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러시아 전역으로 파업이 확산되어 간 것은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인민 운동의 깊이를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자생적 요소"에 관해 말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이러한 파업 운동이야말로 자생적인 것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생성이라는 것도 그야말로 갖가지다. 파업은 러시아에서 "자생적인" 기계 파괴 등을 수반하며 70년대에도, 그리고 60년대에도 (심지어는 19세기 초반에도) 일어난 바 있다. 이 같은 "폭동들"과 비교하여 본다면 90년대의 파업은 "의식적"이라고까지 할 만하다. 이 기간에 걸쳐 노동자운동이 이루어 낸 이 같은 일보 전진은 그만큼 의미 있는 것이다. 이는 "자생적 요소"가 그 본질상 바로 의식성의 맹아적 형태임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원시적인 폭동들도 그 자체로 어느 정도 의식성이 있었음을 표현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억누르는 체계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태고적부터의 믿음을 버렸다. 그들이 집단적인 반격의 필요성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느끼기 시작하기는 했다. 그리고 당국에 대한 노예적인 복종을 단호하게 떨쳐 버렸다. 하지만 이것은 어쨌거나 투쟁이라기보다는 절망과 복수심의 발현에 훨씬 가까웠다. 90년대의 파업은 우리에게 훨씬 더 번득이는 의식성을 보여 준다. 특정한 요구 사항이 제기되고, 더 적합한 순간이 언제인지 미리 계산되고, 다른 지방의 유명한 사례와 경우들이 논의되는 등등이 그러하다. 폭동이 단순히 짓눌려 온 사람들의 반란이었다면, 체계적인 파업은 이미 그 자체로 계급투쟁의 맹아를 표현했다. 그러나 그것은 맹아일 뿐이다. 저절로 일어난 이 파업들은 노동조합주의적인 것이지 아직 사회민주주의적이지는 않은 투쟁이었다. 그 파업들은 노동자와 고용주의 대립이 각성되고 있음을 알려주었지만, 노동자들에게는 현대의 정치체제 및 사회체제 전체와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타협할 수 없는 대립 관계에 놓여 있다는 의식, 즉 사회민주주의 의식이 없었다. 아니, 있을 수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90년대의 파업은 "폭동들"과 비교할 때의 그 엄청난 진보에도 불구하고 순전히 자생적인 운동에 머물렀다.

 

우리는 사회민주주의 의식이 노동자들에게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오직 외부에서 들여올 수 있을 뿐이었다. 노동자계급은 그 자신의 힘만으로는 노동조합주의 의식, 즉 조합으로 단결하여 고용주들과 투쟁하고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이러저러한 법률들을 정부가 제정하도록 하는 등등의 것이 필요하다는 신념을 마련할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은 모든 나라의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⁴ 사회주의 학설이라는 것은 유산계급의 교육받은 대표자들, 즉 지식인들이 일구어 낸 철학, 역사, 경제 등의 이론들에서 자라난 것이다. 현대의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들인 맑스와 엥겔스 역시 그 사회적 지위로 볼 때 부르주아 지식인에 속했다. 그와 꼭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도 사회민주주의 학설은 노동자운동의 자생적 성장과는 전혀 무관하게 발생하였다. 그것은 혁명적인 사회주의적 지식인의 사상 발전의 당연하고도 필연적인 결과로 발생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언급하고 있는 시기, 즉 1890년대 중반에 이르러 이 학설은 노동해방그룹이 이미 완전히 작성해 놓은 강령이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혁명적 청년들 대부분을 전취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노동자 대중의 자생적 각성, 의식적인 삶과 의식적인 투쟁에 대한 자각이 현실로 존재했으며, 사회민주주의 이론으로 무장하여 노동자들에게 뛰어든 혁명적 청년도 있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종종 잊혀지곤 하는 (그리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하나의 사실을 명백히 하는 것이다. 이 시기의 최초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열성적으로 경제 선동에 매달리면서도 — 또한, 이와 관련하여, 당시에는 필사본이었던 소책자 『선동에 관하여』[39]의 정말 유용한 지침들을 매우 중요시하면서도 — 그것을 유일한 임무로 생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애초부터 일반적으로는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의 실로 광범위한 역사적 임무를, 특수하게는 전제주의 타도라는 임무를 내세웠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예를 들자면, 노동자계급해방투쟁동맹[40]을 결성한 페테르부르크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1895년 말에 『노동자의 대의』라는 제호 아래 신문 창간호를 편집했다. 발간을 막 앞둔 이 신문은 1895년 12월 8일 밤, 즉 9일 새벽, 이 그룹 성원의 한 사람인 아나톨리 알렉세예비치 바네예프*의 집에서 헌병의 습격을 받아 압수되었고, 그리하여 『노동자의 대의』 창간호는 햇빛을 보지 못할 운명에 처해졌다. 이 신문의 사설[41](아마도 이 글은 경찰청 문서 보관실에 있다가 30년쯤 지난 후 『러시아 고사』와 같은 책이 발견할지도 모른다.)은 러시아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임무를 개괄하고 있는데, 그 첫째 임무로 설정한 것이 정치적 자유의 정취였다. 다음으로 「우리의 장관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라는 기사가 있었는데, 이는 문맹퇴치위원회들을 경찰이 피멸시킨 사건을 다룬 것이다. 그 외에 페테르부르크에서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다른 여러 도시들에서 들어온 투고들(예를 들어, 야로슬라블 주 노동자들의 유혈 격전[42])에 관한 글이 실려 있었다. 이처럼 1890년대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이 "최초의 경험" —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 은 협소한 지역신문, 더 나아가 "경제주의" 성격의 신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파업 투쟁을 전제주의에 반대하는 혁명운동에 결합하고, 반동적 반(反)문명주의 정치에 억눌려 온 모든 사람에게서 사회민주주의당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낼 것을 지향한 신문이었다. 이 시기 운동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같은 신문이 수도의 노동자들과 혁명적 지식인들에게서 전적인 공감을 얻어내어 광범위하게 배포되었으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이 계획의 실패는, 당시의 사회민주주의자들로서는 혁명의 경험과 실제적 준비가 부족했던 까닭에 그 시기의 절박한 요구를 충족시킬 힘이 없었다는 점을 보여 줄 뿐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노동자 소식지』, 그리고 특히 『노동자 신문』과 1898년 봄에 러시아사회민주주의노동자당이 작성한 「선언」[43]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 같은 훈련 부족을 당시 활동가들의 과오로 치부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운동의 경험을 활용하고 이 경험에서 실천적 교훈을 얻으려면, 이러저러한 부족한 점들의 의미와 그 원인들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1895년에서 1898년 사이에 활동했던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일부(어쩌면 다수)가 그 당시에도, 즉 "자생적" 운동이 막 시작되고 있던 시기에도 매우 광범위한 강령과 투쟁 전술을 내세우는 것이 가능하다는 지극히 정당한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⁴ 대다수 혁명가들의 준비 부족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어서 그 어떤 특별한 우려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임무 설정이 올바르고 이 임무를 실행하려는 시도를 거듭할 만큼의 정열이 있었다면, 일시적 실패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혁명 경험과 조직가적 수완은 획득 가능한 것이다. 필요한 품성을 자신에게서 계발하려는 열정만 있다면 말이다! 결점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혁명 과업에서는 절반의 개조를 이루어 낸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러한 인식이 흐려지기 시작했을 때(위에 거명한 그물의 활동가들에게는 이 같은 인식이 생생히 살아 있었다.), 자신의 결점을 미덕의 차원으로 끌어올릴 태세로 자신의 자생성에 굴종하기와 맹종하기에 이론적 근거까지 부여하려 시도한 사람들 — 심지어 사회민주주의당의 기관지들까지도 — 이 등장했을 때, 대단치 않았던 불행은 그야말로 재앙이 되어 버렸다. 이 같은 경향을 총괄해야 할 때가 왔으나, 그 경향을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협소한 "경제주의"라는 개념 때문에 그 내용은 매우 불분명하게 특징지어지고 있다.

 

2. 자생성에 굴종하기. 『노동자의 사상』

 

이 같은 자생성이 어떻게 문헌상에 드러나고 있는가 하는 문제로 넘어가기 전에 (앞서 언급한 소식통이 우리에게 전한) 다음의 특징적인 사실을 짚어 보겠다. 그 사실은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의 이후의 두 경향의 반목이 페테르부르크에서 활동했던 동지들 사이에서 어떻게 발생하여 증대되어 갔는지를 어느 정도 분명히 비춰 주고 있다. 1897년 초, 유형에 처해지기 전에 바네예프와 그의 몇몇 동지들은 어떤 사적인 모임에 참석해야 했다.[44] 그 모임에는 노동자계급해방투쟁동맹의 "노장" 회원들과 "소장" 회원들이 모여 있었다. 논의는 주로 조직 문제, 특히 『"노동자의" 소식』 제9~10호(46쪽)에 완결된 형태로 실린 『노동자 상호 부금 규약』에 관해 이루어졌다. "노장파"(당시 페테르부르크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이들을 농담으로 "12월단원"[45]이라고 불렀다.)와 (나중에 『노동자의 사상』에 밀접하게 관여하게 된) 몇몇의 "소장파" 사이에 금방 첨예한 견해차가 드러났고 격렬한 논쟁이 불붙었다. "소장파"는 게재된 규약의 주요 원칙들을 옹호했다. "노장파"는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투쟁동맹을 혁명가 조직이자, 학습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전 서클들이나 다양한 노동자 상호 부금 등이 종속되는 조직으로 굳건히 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논쟁 당사자들은 이 같은 견해차 속에서 분열이 시작되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와는 반대로 그들은 이를 우연적이고 일회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사실은 "노장" 사회민주주의자들과의 투쟁으로 "경제주의"의 발생과 확산이 러시아에서도 일어나고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점을 현재의 "경제주의자들"은 종종 잊고 있다.) 이 투쟁의 많은 부분이 "문서의 형태로" 남아 있지 않은 유일한 까닭은 활동가 그룹의 성원들이 계승 방안을 전혀 마련해 놓지 못한 채 빈기지 않으리만큼 자주 바뀌었고, 따라서 견해차 역시 어떠한 문서로도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사상』이 등장함으로써 "경제주의"는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그것은 단번에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여러 도시에서 새로운 경향의 성공과 실패가 극히 우연적이었다는 사실, 또 이 "새로운" 경향의 지지자들과 반대자들 모두가 이 특수한 경향이 현실적인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몇몇 인물들의 준비 부족을 표현한 것인지를 너무나 오랫동안 문자 그대로 전혀 판단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려면, 수많은 러시아 서클의 짧은 수명과 그 활동 조건을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는 경험한 사람만이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사판으로 나온 『노동자의 사상』의 처음 몇 호는 거의 대다수 사회민주주의자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그 창간호의 사설을 인용하는 것은 오로지 그 사설이 V. I.의 글(「"노동자의" 소식」제9~10호 47쪽 이하)에 재수록된 덕분이다. 물론 그 글은 우리가 앞서 언급한 신문 및 신문 기획 안과는 확연히 다른 이 새 신문을 열심히 — 이성적이라 볼 수 없을 만큼 열심히 — 칭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 그런데 이 사설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만큼 뚜렷하게 그것은 『노동자의 사상』과 "경제주의" 일반의 정신 전체를 드러냈던 것이다.

 

사설은 푸른 소매의 손[46]이 노동자운동의 발전을 막을 수는 없음을 지적한 후,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노동자운동의 이러한 강인한 생명력은 노동자들이 지도자들의 손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탈취하여 마침내 스스로 그것을 움켜쥐게 되는 까닭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기본 테제가 이후 상세히 전개되고 있다. 실제로는 지도자들(즉 사회민주주의자들, 투쟁동맹의 조직가들)이 경찰에 의해 노동자들의 손에서 탈취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 그런데 사태는 마치 노동자들이 이 지도자들과 투쟁하여 그들의 압제로부터 해방된 것처럼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이들은 혁명 조직을 강고히 하고 정치 활동을 확대하고,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는 대신에, 노동조합주의 투쟁만 하라고, 뒤로 가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항상 정치적 이상을 잊지 않으려 애쓰기 때문에 운동의 경제적 기초가 흐려지고 있다."라고 천명했으며, 노동자운동의 좌우명은 "경제적 지위를 위한 투쟁"(!), 아니면 더 좋게 말해서 "노동자를 위한 노동자"라고 천명하였다. 이들은 파업기금이 "수백 개의 다른 조직들보다 운동을 위해 소중하다."라고 선언하였다.(1897년 10월에 나온 이 주장을 1897년 초의 "12월단원들"과 "소장파" 사이의 논쟁과 비교해 보라.) 기타 등등. "'크림층' 노동자들이 아니라 '평균적' 노동자들과 대중을 중요시해야 한다." "정치는 언제나 경제를 충실히 쫓아가는 것이다"* 등과 같은 말들이 유행어가 되어, 대부분의 경우에 합법적으로 나온 문구들을 통해 맑스주의를 단편적으로만 접한 채 운동에 이끌리고 있는 수많은 청년에게는 물리칠 수 없는 영향력을 획득했다.

 

이는 자생성 — V. V. 씨의 "사상"을 되풀이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자생성, 1루블에 1코페이카를 더하는 것이 사회주의니 정치니 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고 가까운 것이라는 논거와 "무슨 미래의 세대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자기 자식들을 위해 투쟁한다는 것을 알고 투쟁해야" 한다(『노동자의 사상』 제1호 사설)는 논거에 굴복한 노동자들의 자생성 — 이 의식성을 완전히 눌러 압도한 것이었다. 이와 유사한 문구들은 서유럽의 부르주아, 즉 사회주의를 중오하며 영국의 노동조합주의를 자국의 토양에 이식시키는 일을 해 온 서유럽의 부르주아, 노동자들에게 순수한 노동조합 투쟁[*]만이 훗날의 사회주의 따위를 내세운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과 자식들을 위한 투쟁이라고 말하는 서유럽의 부르주아가 언제나 즐겨 써 온 무기였다. 이제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 안의 V. V. 씨 같은 자들"이 이 부르주아적 문구들을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현재의 견해차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데 매우 유용한 세 가지 상황을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우리가 지적한 바 있는 자생성이 의식성을 압도한 과정 역시 자생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말장난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아아! 이것이 쓰디쓴 진실이다. 그 과정은 완전히 대립되는 두 견해가 공개적으로 투쟁하고 그리하여 한 견해가 다른 하나를 물리쳐 승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수의 "노장" 혁명가들을 헌병이 "탈취"해 가고 점점 더 많은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 안의 V. V. 씨 같은" "소장파"가 전면에 나섬으로써 이루어졌다. 운동의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느껴 본 사람 — 오늘날의 러시아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 이러한 누구나 상황이 바로 이러하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이 잘 알려진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우리가 특별히 주장하는 것은, 또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기 위해 우리가 "노장파"와 "소장파" 사이의 1897년 초 논쟁에 관한 자료와 『노동자의 대의』 창간호에 관한 자료를 인용하는 것은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광범위한 대중(혹은 이제 막 청년이 된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중에 이 문제를 다시 다룰 것이다.

 

둘째, "경제주의"가 드러난 최초의 문헌에서 이미 우리는 너무나 독특한, 그리고 현재의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에 나타나고 있는 견해차를 전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특징적인 현상을 볼 수 있다. "순수한 노동자운동"을 지지하고 프롤레타리아트 운동과의 가장 긴밀하고 가장 "유기적인"(『노동자의 대의』의 표현) 관계를 지지하는 자들, 비(非)노동자 지식인(사회주의적 지식인이라 할지라도)이라면 다 반대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응호하기 위해 부르주아적 "순수한 노동조합주의자들"의 논거에 의거하지 않을 수 없다는 현상이 그것이다. 『노동자의 사상』이 창간 때부터 Credo의 강령을 실행하는 데 —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 매진했음이 우리에게 이를 보여 주고 있다. 이는 노동자운동의 자생성에 굴종하고 "의식적 요소", 즉 사회민주주의당의 역할을 축소하는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 당사자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아무 상관없이 — 그 자체로 노동자에 대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을 강화함을 의미한다는 것 — 『노동자의 대의』는 이를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 을 보여 주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과대평가", 의식적 요소가 행하는 역할의 과대평가** 등을 말하는 자들은 모두, 노동자들이 "지도자들의 손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탈취"하기만 한다면 순수한 노동자운동은 스스로 자신의 독자적인 이데올로기를 마련할 수 있으며 마련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이는 커다란 오류이다. 앞서 말한 것을 보충하기 위해 카우츠키의 다음과 같은 매우 정당하고도 중요한 말을 인용하겠다. 이것은 오스트리아사회민주주의당의 새 강령 초안과 관련하여 그가 한 말이다.**

 

우리의 수정주의적 비판가들의 다수는 맑스가 마치 경제 발전과 계급투쟁은 사회주의적 생산 조건을 창출할 뿐만 아니라 그 필연성에 대한 의식(카우츠키가 강조한 것)까지도 직접적으로 발생시킨다고 주장한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면서 이 비판가들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나라, 즉 영국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 이러한 의식으로부터 멀리 있다며 이의를 제기한다. 강령 초안에 근거하면, 위와 같이 반박을 당한 이 굉장한 정통 맑스주의 관점을 오스트리아당 강령을 작성한 위원회 역시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강령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자본주의 발전이 프롤레타리아트를 증대시키면 증대시킬수록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와 투쟁할 가능성을 얻게 되고, 얻게 않을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주의의 가능성과 필연성을 의식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보자면, 사회주의의 의식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의 필연적이고 직접적인 결과인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그릇된 것이다. 물론 학설로서의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경제 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또한 그런 경제 관계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가 낳은 대중의 빈곤과 비참함에 반대하는 투쟁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와 계급투쟁은 나란히 발생하는 것이지 하나가 다른 하나를 낳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전제 조건 아래에서 생겨난다. 현대의 사회주의 의식은 깊이 있는 과학적 지식에 근거해서만 생겨날 수 있다. 실로 현대의 경제학은 현대의 기술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적 생산의 조건이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들이 아무리 원하여도 양자 중 어떤 것도 창출하지 못한다. 둘은 모두 현대의 사회 과정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과학의 담지자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부르주아 지식인(카우츠키가 강조한 것)이다. 현대 사회주의는 이 계급의 개별 구성원들의 머릿속에서 생겨났으며, 그들에 의해 지적으로 탁월한 노동자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사정이 허락되는 곳에서 노동자들은 이 사상을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에 도입했다. 이처럼 사회주의적 의식은 von Außen(외부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에 도입된 것이지 그 투쟁으로부터 urwüchsig(자생적으로) 자라 나온 것이 아니다. 이에 걸맞게 이전의 하인펠트 강령은 사회민주주의당의 과제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자신의 처지에 대한 의식과 자신의 임무에 대한 의식을 도입하는(문자 그대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채워 넣는) 것이라고 너무도 정당하게 말한 바 있다. 이 의식이 계급투쟁으로부터 저절로 생겨난다면 이렇게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새 강령은 옛 강령의 이 명제를 떼어 내서 그것을 위에 인용한 명제에 써야 맞추었다. 그런데 이것이 사상의 흐름을 완전히 끊어 놓았다……

 

노동자 대중 자신이 그들 운동의 진행 속에서 마련해 낸 독자적인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성립할 수 없다면, * 문제는 오직 다음과 같을 뿐이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나 아니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냐. 여기에 중도는 없다. (인류는 "제삼의"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고안해 낸 적이 없으며, 또한 계급 모순으로 찢겨진 사회에서는 계급 외적 또는 계급을 초월한 이데올로기라는 것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축소시키는 것, 그로부터 멀어지려는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 자체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킴을 의미한다. 자생성에 관해 말들이 많다. 하지만 노동자운동의 자생적 발전은 바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노동자운동을 종속시키는 길이며 Credo의 강령을 따라 나아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생적 노동자운동이란 노동조합주의, 즉 Nur-Gewerkschaftlerei(순수 조합주의)이며, 노동조합주의란 바로 노동자들이 부르주아지의 이념적 노예가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임무, 사회민주주의당의 임무는 자생성과 투쟁하는 것, 즉 부르주아지의 보호 아래로 들어가려는 노동조합주의의 자생적 지향에서 노동자운동을 끌어내어 그것을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의 품 안으로 끌어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불꽃』 제12호에 실린 "경제주의자들의" 편지의 필자들이 쓴 글, 즉 가장 뛰어난 이데올로그들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물질적 요소들과 물질적 환경의 상호작용에 의해 규정되고 있는 길에서 노동자운동을 끌어 내릴 수는 없다고 쓴 글은 바로 이런 까닭에 사회주의를 거부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이 필자들이 문필 및 사회 활동의 무대에 나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해야 하는 것처럼 자신들이 말하고 있는 바를 끝까지 일관되게 그리고 의연하게 숙고할 능력이 있다면, 그들은 "불필요한 양손으로 빈 가슴에 팔짱을 끼는 것"밖에는, 그래서…… 그래서 노동자운동을 "최소 저항 노선", 즉 부르주아적 노동조합주의 노선으로 끌고 가는 스트루베 씨와 프로코포비치 씨, 아니면 노동자운동을 성직자 및 헌병 "이데올로기"로 끌고 가는 주바토프 씨 등에게 활동의 장을 제공하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을 것이다.

 

독일의 예를 기억해 보자. 라살레가 독일 노동자운동에 바친 역사적 공로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노동자운동이 (슐체-델리치와 그 비슷한 무리들의 호감 어린 참여 아래) 자생적으로 지향해 온 점진적인 노동조합주의와 협동조합주의의 길에서 이 운동을 끌어냈다는 것이다.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생적 요소의 과소평가, 과정으로서의 전술, 환경과 요소들의 상호 관계 등등에 관한 논의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 어떤 것이 필요하다. 자생성에 대한 결연한 투쟁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오로지 오랜 세월에 걸친 그러한 투쟁의 결과로, 예를 들자면 베를린의 근로 인민이 점진주의자들의 버팀목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훌륭한 보루로 바뀌는 폐거를 이룬 것이다. 그런데 이 투쟁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결코 끝나지 않고 있다. (독일 운동의 역사를 프로코포비치 식으로, 그 철학을 스트루베 식으로 배우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비추어질지 모르겠지만.)[48] 이렇게 표현해도 좋다면, 지금 독일의 노동자계급은 몇 가지 이데올로기로 분열되어 있다. 일부 노동자는 가톨릭 노동자 단체와 군주주의적 노동자 단체에 흡수되었고, 다른 일부는 영국 노동조합주의의 부르주아적 숭배자들이 만든 히르쉬-동커연맹[49]에 가입해 있다. 또 다른 일부는 사회민주주의 단체에 결합하였다. 마지막이 나머지 다른 것들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크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 이데올로기가 이러한 지배권을 획득해 내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른 모든 이데올로기와 지칠 줄 모르는 투쟁을 해 나갈 때에만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은 묻는다. 하지만 자생적 운동, 즉 최소 저항 노선을 따르는 운동이 도대체 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지배로 이어진단 말인가? 간단한 이유에서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있어 온 것이며, 더 포괄적으로 발전해 왔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유포 수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⁴ 그러므로 한 나라의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가 짧으면 짧을수록, 비(非)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려는 모든 시도에 반대하는 투쟁을 더욱 열정적으로 해야 하며, 노동자들에게 "의식적 요소"를 배격하라고 외치는 형편없는 조언자들에 맞서 더욱 단호하게 경고해야 한다. "경제주의자들의" 편지의 필자들은『노동자의 대의』와 한목소리로, 운동 유아기의 고유한 성격인 편협성을 쓴소리하게 비난한다. 우리는 이에 대해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 운동은 실제로 유아기에 있다. 따라서 조속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생성에 굴종하여 운동의 성장을 억제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 운동의 편협성이 필요하다. 이미 오래전에 투쟁의 온갖 결정적인 국면을 경험한 노련한 사람들을 어설프게 흉내 내는 것보다 더 우습고 해로운 일이 있겠는가!

 

셋째, 『노동자의 사상』 창간호는 "경제주의"라는 명칭(물론 우리는 이 말을 거부할 생각이 없는데, 어쨌거나 이 별칭은 이미 확립된 것이기 때문이다.)이 새로운 경향의 본질을 정확하게 전달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노동자의 사상』이 정치투쟁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의 사상』 제1호에 게재된 상호 부금 규약에도 정부에 대한 투쟁에 관한 언급이 있다. 하지만 『노동자의 사상』은 "정치는 언제나 경제를 충실히 따라간다."라고만 생각한다. (다른 한편, 『노동자의 대의』는 그 강령에서 "러시아의 경우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경제투쟁이 정치투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라고 강변하면서 이 명제를 변형시키고 있다.) 만일 정치라는 말을 사회민주주의 정치로 이해한다면, 『노동자의 사상』과 『노동자의 대의』의 이 명제들은 완전히 잘못되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은 매우 빈번히 부르주아적인, 교권주의적인, 혹은 기타 등등의 정치와 연관되어(비록 불가분의 관계는 아닐지라도) 일어난다. 만일 정치라는 말을 노동조합주의 정치로 이해한다면, 즉 모든 노동자의 처지에서 생기는 불행을 막아 주기는 하지만 그러한 처지를 없애 주지는 못하는, 즉 자본에 대한 노동의 예속을 소멸시키지 못하는 이러저러한 조치들을 국가로부터 얻어 내려는 노동자들의 일반적인 지향으로 이해한다면, 그렇다면 『노동자의 대의』의 명제들은 올바르다. 실제로 이 같은 지향은 사회주의를 적대시하는 영국의 노동조합주의자들이나 가톨릭 노동자들, "주바토프주의" 노동자들, 기타 등등을 막론하고 이들 모두에게 공통적인 것이다. 정치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이처럼 우리는 『노동자의 사상』이 정치투쟁을 부정한다기보다는 정치의 자생성에, 그 무의식성에 굴종하고 있음을 본다. 『노동자의 사상』은 노동자운동 자체로부터 자생적으로 자라 나오는 정치투쟁(더 정확하게는, 노동자들의 정치적 원망과 요구)은 충분히 인정하면서, 현재 러시아의 조건과 사회주의의 일반적인 과제에 상응하는 특수한 사회민주주의 정치를 독자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전적으로 거부한다. 우리는 아래에서 『노동자의 대의』의 오류 역시 이와 마찬가지임을 보여 주겠다.

 

3. 자기해방그룹과 『노동자의 대의』

 

별로 알려져 있지도 않고 또 지금은 거의 잊혀 버린 『노동자의 사상』 창간호의 사설을 우리가 이렇게 상세히 분석한 까닭은 그 글이 후에 수많은 작은 지류를 이루며 세상에 쏟아져 나온 하나의 일반적인 흐름을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극명하게, 그리고 일찍이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V. I.가 『노동자의 사상』 창간호와 그 사설에 열렬한 찬사를 보내며 그 사설이 "거침없이, 그리고 열정적으로"(『"노동자의" 소식』 제9~10호 49쪽) 쓰였다고 한 것은 지극히 온당하신 말씀이었다. 자신의 의견에 대한 확신이 있고 자신이 뭔가 새로운 것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열정적으로" 글을 쓰며, 자신의 견해가 극명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글을 쓴다. 앙다리를 걸치는 데 익숙한 사람, "열정"이라곤 없는 사람들만이 어제는 『노동자의 사상』의 열정을 칭찬했다가 오늘은 반대편을 "논쟁에 열정적"이라고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노동자의 사상』의 『별책 부록』은 검토하지 않을 것이며(뒤에 우리는 다양한 문제들에 관하여 "경제주의자들"의 사상을 가장 일관되게 표현하고 있는 이 글을 인용하게 될 것이다.), 다만 『노동자자기해방그룹의 호소』(1899년 3월에 나왔고, 1899년 7월 런던의 『전야』 제7호에 재수록)를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겠다. "노동자의 러시아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겨우 주위를 둘러보고 먼저 눈에 들어온 투쟁 수단들을 본능적으로 거머쥐려 하고 있다." 이 「호소」의 필자들은 이렇게 매우 정당하게 말하면서도, 『노동자의 사상』과 마찬가지로 이로부터 잘못된 결론을 내린다. 그들은 본능이란 무의식성(자생성)이며 그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사실, "먼저 눈에 들어온" 투쟁 수단들은 현대사회에서는 항상 노동조합주의 투쟁 수단들이며 "먼저 눈에 들어온" 이데올로기는 부르주아(조합주의)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이 필자들 역시 정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 대신에 V. V. 씨를 쫓아 정치는 상부구조이며, 따라서 "정치 선동은 경제투쟁을 위한 선동의 상부구조여야 하고 이 투쟁의 토양 위에서 자라 나와 그것을 쫓아가야 한다."라고 (오직 그렇게만!) 말할 뿐이다.

 

『노동자의 대의』는 아예 곧바로 "경제주의자들"을 "옹호"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창간호(제1호 141~142쪽)에서 『노동자의 대의』는 악셀로트가 유명한 소책자*를 통해 "경제주의자들"에 대해 경고한 사실을 거론하면서 "악셀로트가 어떤 젊은 동지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라는 식으로 새빨간 거짓말을 했으며, 그 후에 이 거짓말을 둘러싸고 악셀로트 및 플레하노프와 논쟁이 불붙자, "당혹감을 표현하는 형식으로, 국외의 모든 소장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이 부당한 비난(악셀로트가 "경제주의자들"을 소견이 좁다고 비판한 것)으로부터 방어해 주고 싶었다."라고 인정해야만 했다. 사실 악셀로트의 그 같은 비난은 극히 정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노동자의 대의』도 그 비난이 편집국원인 V. I.를 거명한 것이라는 사실을 훤히 알고 있었다. 덧붙여 지적하자면, 앞서 언급한 논쟁에서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임무』라는 나의 소책자[51]를 해석한 부분은 악셀로트가 전적으로 옳았으며 『노동자의 대의』는 완전히 틀렸다. 그 소책자는 『노동자의 사상』이 아직 등장하기 전인 1897년에 쓴 것인데, 그때 나는 앞서 그 성격을 규정한 바 있는 페테르부르크 투쟁동맹의 최초의 경향이 지배적이라고 생각했으며 그것은 정당한 것이었다. 최소한 1898년 중반까지는 이 경향이 실제로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1897~1898년에 페테르부르크에서 "경제주의" 관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써야 했던 그런 관점을 서술한 소책자를 "경제주의"의 존재와 그 위험성을 반박하는 근거로 인용한 권리가 『노동자의 대의』에게는 조금도 없다.

 

하지만 『노동자의 대의』는 "경제주의자들"을 "옹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자신도 끊임없이 그들이 범한 주요한 혼란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 같은 방향 상실은 『노동자의 대의』 강령의 다음 테제를 두 가지 의미로 이해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최근 몇 년간 발생한 대중적 노동자운동(『노동자의 대의』가 강조한 것)을 동맹의 저술 활동의 성격 및 임무를 주로 규정하게 될(내가 강조한 것) 러시아 상황의 극히 중요한 현상으로 본다." 대중운동이 극히 중요한 현상이라는 데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이 대중운동에 의한 "임무 규정"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점이다. 이는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이 운동의 자생성에 굴종한다는, 즉 있는 그대로의 노동자운동에 단순히 봉사하는 수준으로 사회민주주의당의 역할을 귀착시킨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노동자의 대의』, 자기해방그룹, 그리고 그 밖의 "경제주의자들"의 이해가 그러하다.) 다른 하나는 대중운동이 우리 앞에 새로운 이론적, 정치적, 조직적 임무, 즉 대중운동이 발생하기 전까지의 시기에 우리가 충족시킬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임무를 제기하고 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노동자의 대의』는 바로 이 첫째 방식의 이해에 경도되어 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왜냐하면 『노동자의 대의』는 새로운 임무에 관해서는 아무런 명확한 언급도 하지 않으면서, 대중운동이 우리에게 제기한 임무를 분명히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해야 할 필요성을 마치 이 "대중운동"이 면제해 주기라도 하는 양 항상 말해 왔기 때문이다. 이를 입증하려면 『노동자의 대의』가 전제주의 타도를 대중적 노동자운동의 첫째 과제로 내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그 과제를 눈앞의 정치적 요구를 (대중운동의 이름으로) 얻어내기 위한 투쟁이라는 임무로 격하시키겠다는 사실(『답변』25쪽)을 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노동자의 대의』의 편집자인 끄리첸스키가 제7호에 쓴 글 — 「러시아 운동의 경제투쟁과 정치투쟁」—, 똑같은 오류들을 반복하고 있는 그 글[*]은 제처 두고 『노동자의 대의』 제10호로 직접 넘어가자. 물론, 우리는 끄리첸스키와 마르티노프가 『여명』과 『불꽃』에 반대한 문구 하나하나를 톺아 살피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관심이 있는 부분은 『노동자의 대의』 제10호가 취한 원칙적인 입장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동자의 대의』가 아래의 문구들 사이에서 "극단적인 모순"을 보았다고 한 그 희한한 발견도 분석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민주주의당은 사전에 미리 고안해 낸 정치투쟁의 계획이나 방법으로 자신의 손을 묶지도, 활동의 폭을 제한하지도 않는다. 사회민주주의당은 당의 현재 역량에 상응하는 한, 모든 투쟁 수단을 인정한다. ……"(『불꽃』 제1호)라는 문구와 "어떤 상황, 어떤 시기에도 정치투쟁에서 경험을 쌓은 강고한 조직이 없다면, 견고한 원칙들에 의해 조명되어 흔들림 없이 실행되는 체계적인 활동 계획 — 그것만을 전술이라고 칭할 수 있다. — 을 말할 수 없다."(『불꽃』 제4호)라는 문구가 그것이다.

 

전술에 관해 말하자면, 모든 투쟁 수단, 계획, 방법 등의 — 그것이 합목적적이기만 하다면 — 원칙적인 인정과 당면한 정치적 시기에 흔들림 없이 실행되는 계획에 따라야 한다는 요구를 혼동하는 것은 모든 치료법의 의학적 인정과 현재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하나의 특정한 치료법을 고수해야 한다는 요구를 혼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제는 『노동자의 대의』가 우리가 자생성에 굴종하기라고 부른 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이 병에 대한 그 어떤 "치료법"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까닭에 『노동자의 대의』는 "계획으로서의 전술은 맑스주의의 기본 정신에 어긋난다." (제10호 18쪽)라거나 전술이란 "당과 함께 성장하는 당 임무의 성장 과정" (『노동자의 대의』11쪽)이라는 굉장한 발견을 해내게 된 것이다. 뒤의 이 격언은 『노동자의 대의』가 보여 준 "경향"의 무너지지 않을 기념비이자 유명한 격언이 될 가능성을 죄다 가지고 있다.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기관지는 다음과 같은 답을 준다. "운동은 운동의 출발점과 이후의 지점들간의 거리가 변해 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 비교할 바 없이 예리한 통찰력은 단지 하나의 희한한 일이 아니라 (만일 그랬다면 이것을 특별히 검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전일적인 한 경향의 강령이다. 그것은 R. M.이 (『노동자의 사상』의 『별책 부록』에서) 표현했던 바로 그 강령, 즉 가능한 투쟁이 바람직한 것이며 현 시기에 진행되고 있는 투쟁이 바로 가능한 것이라는 강령이다. 이것이야말로 자생성에 수동적으로 순응해 가는 끝없는 기회주의의 경향인 것이다.

 

"계획으로서의 전술은 맑스주의의 기본 정신에 어긋난다!" 이는 맑스주의를 모독하는 것이며, 인민주의자들이 우리와 싸울 때 우리에게 했던 것같이 맑스주의를 희화화하는 것이다. 이는 의식적인 활동가들의 활력과 창발성을 그야말로 격하시키는 것이다. 맑스주의는 그와는 반대로, 사회민주주의당에게 넓디넓은 전망을 열어 보이고,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길로 "자생적으로" 일어서고 있는 수백만의 강력한 힘을 통제(이렇게 표현해도 좋다면)하면서, 사회민주주의당의 활력과 창발성에 엄청난 자극을 주지 않는가! 국제적인 사회민주주의당의 역사 전체는 계획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계획들은 어떤 이의 선견지명과 정치적, 조직적 안목의 올바름을 증명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의 근시안과 정치적 오류들을 드러내 보이기도 하면서, 여러 정치 지도자들이 제기해 왔던 것이다. 독일이 거대한 역사적 굴곡 — 제국의 형성, 제국의회의 개원, 일반 선거법의 제정 — 을 겪을 때, 리프크네히트는 사회민주주의 정치와 과업의 일정한 계획을 갖고 있었다. 슈바이처에게는 다른 계획이 있었다. 사회주의자특별법이 독일의 사회주의자들을 엄습했을 때 폭력과 테러에 단순히 호소하려 했던 모스트와 하셀만에게는 그들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슈람과 회히베르크, 그리고 (부분적으로) 베른슈타인에게는 또 다른 계획이 있었다. 그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비이성적인 과격함과 혁명성으로 이 법을 자초했으므로 이제는 모범적인 행동으로 용서를 받아야 한다고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했다. 비합법 기관지를 준비하고 이를 발간해 낸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계획이 있었다.[52]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를 두고 발생한 투쟁이 종식되고 많은 세월이 흘러, 선택된 길의 적합성을 역사가 최종적으로 판정한 뒤에 과거를 돌아보면서, 당과 함께 성장하는 당 임무의 성장이라는 교훈을 뇌까리며 통찰력을 과시하는 것은 물론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비판가들"과 "경제주의자들"이 사회민주주의당을 노동조합주의의 수준으로 격하시키고 있으며 테러리스트들이 과거의 오류를 되풀이하는 "계획으로서의 전술"을 수용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이 혼란의 한 해, [*] 바로 그러한 시기에 이처럼 대단한 통찰력에 갇히는 것은 자신에게 "빈곤 증명서"를 발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많은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가 바로 활력과 창발성의 부족, "폭 넓은 정치 선전, 선동, 조직화" [**]의 부족, 보다 폭 넓은 혁명 과업의 설정이라는 "계획"의 부족 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 바로 그러한 시기에 "계획으로서의 전술은 맑스주의의 기본 정신에 어긋난다."라고 말하는 것은 맑스주의를 이론적으로 속류화하는 것일 뿐더러, 실천적으로 당을 후퇴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혁명적 사회민주주의당의 임무는" — 『노동자의 대의』가 우리에게 훈시한다. — "의식적 활동을 통해 객관적인 발전을 단지 촉진시키는 것일 뿐이지 그 발전을 폐기하거나 주관적인 계획으로 그것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불꽃』은 이론으로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실천에서는, 전술에 대한 교조주의적 관점 덕분에, 맑스주의가 의식적인 혁명 활동에 정당하게 부여한 커다란 의의가 발전의 객관적 또는 자생적 요소들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쪽으로 그들을 끌고 간다." (18쪽.)

 

또다시 일단의 패거리를 거느린 V. V. 씨에게 어울리는 대단한 이론적 혼란이다. 우리는 우리의 철학자에게 묻고 싶다. 주관적인 계획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객관적인 발전을 "과소평가한다"라면, 그것은 어떻게 나타납니다? 분명 그것은 이러한 객관적 발전이 특정 계급, 계층, 그룹들, 특정 민족들, 민족 그룹들 등등을 생성하거나 강화하고 죽이거나 약화시킨다는 사실, 그것으로 이러저러한 국제적인 정치 세력들과 혁명 정당의 입지 등을 제약한다는 사실을 그가 간과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의 잘못은 자생적 요소를 과소평가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의식적 요소를 과소평가한 데 있는 것이다. 그에게는 객관적 발전을 올바로 이해할 만한 "의식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생성과 의식성의 "상대적(『노동자의 대의』가 강조한 것) 중요성에 대한 평가"라는 말 하나만 보아도 "의식성"이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음이 드러난다. 만일 그 유명한 "발전의 자생적 요소"가 인간이 의식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요소를 그릇되게 평가하는 것은 "의식적 요소를 과소평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반면에 만일 그 요소가 의식될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들을 알지 못하고, 따라서 그것들에 관해 말할 수도 없다. 대체 끄리첸스키 씨는 무엇에 관해 말하고 있는가? 만일 그가 『불꽃』의 "주관적인 계획"이 오류임을 발견한다면(그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천명하고 있다.), 그는 이 계획이 도대체 어떤 객관적인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지를 밝히고, 『불꽃』이 간과하고 있는 것에서 보이는 의식성 부족, "의식적 요소에 대한 과소평가"를 그의 언어로 비판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만일 주관적인 계획이란 것을 못마땅해하는 그가 "자생적 요소에 대한 과소평가"(!!)를 들먹거리는 것 말고는 다른 논거를 갖고 있지 않다면, 이로써 그가 증명해 보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즉 자신이 1) 이론적으로는, 별도표에게 충분히 비웃음을 당한 카레예프나 미하일롭스키 식으로 맑스주의를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과 2) 실천적으로는, 우리의 합법적 맑스주의자들을 베른슈타인주의에, 그리고 우리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경제주의"에 경도시킨 바로 그 "발전의 자생적 요소"에 너무나 만족스러워한다는 사실뿐이다. 또 어떻게 해서라도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을 "자생적" 발전의 길에서 끌어 내리려 결의한 사람들에 대해 그가 "격분"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더 나아가 이제 아주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자연과학이 그 어떤 성과를 거둔다 해도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방식대로 번식하게 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회과학이 그 어떤 성과를 거둔다 해도, 그리고 의식적인 투사들이 아무리 증가한다 해도, 앞으로도 새로운 사회질서의 출현은 주로 자생적 폭발의 결과일 것이다."(19쪽.) 선조들의 지혜로운 말씀 중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머리가 모자라 아이를 못 낳는 사람은 없는 법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최신 사회주의자들"(나르치스 투벨릴로프 식의)은 이와 비슷한 명언을 말씀하신다. 누구나 새로운 사회질서의 출현에 참여할 만큼의 머리는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도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참여를 위해서는 "경제주의"가 횡행할 때면 "경제주의"에, 테러주의가 발생하면 테러주의에 항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노동자의 대의』는 테러에 경도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 것이 너무도 중요했던 올 봄에, 자신으로서는 "새로운" 이 문제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반년이 지난 지금, 이 문제가 더 이상 그처럼 절박한 문제가 아닌 바로 이 시점에 다음과 같은 성명을 우리 앞에 치켜들고 있는 것이다. "테러 분위기의 고양에 대항하는 것은 사회민주주의당의 임무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고 우리는 생각한다."(『노동자의 대의』제10호 23쪽.) 그리고 대회 결의안을 내세운다. "대회는 체계적이고 공격적인 테러는 시의적절하지 않다고 본다."(『두 대회』18쪽.) 이 얼마나 분명하고 조리 있는 말인가! 우리는 대항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의적절하지 않다고 천명한다. 게다가 비체계적이고 방어적인 테러는 "결의안"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한다. 이런 결의안이 무척 안전하며 오류를 범할 우려가 전혀 없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는 마치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 위하여 말한 사람은 실언할 염려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그런 결의안의 작성을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운동의 꼬무니를 붙잡을 줄 알면 되는 것이다. 『노동자의 대의』가 테러 문제를 새로운 문제라고 천명한 것을 『불꽃』이 조소하자, 『노동자의 대의』는 화가 나서 "15년도 더 전에 한 망명 작가 그룹이 제출한 전술적 문제에 대한 결정을 당 조직에 강요하려는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요구"(24쪽)라며 『불꽃』을 비난했다. 결정의 올바름을 대중에게, 조직에, 당에 확신시키기 위해 사전에 문제에 관한 이론적인 결정을 하다니 도대체 이 얼마나 의식적 요소를 과대평가하는 것이며 권위를 내세우는 거드름이란 말인가! 어느 누구에게 그 무엇도 "강제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아는 일을 반복하고, "전환"이 있을 때마다 "경제주의"에도, 테러주의에도 굴종하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겠는가. 『노동자의 대의』는 『불꽃』과 『여명』이 "무형의 혼돈상태를 떠도는 혼령처럼 운동에 대항하여 자신의 강령을 내세우고 있다."(29쪽.)라고 비난하면서, 세속의 현명함이라는 저 위대한 유혼을 일반화시키기까지 한다. 자생적 운동의 위를 떠들뿐만 아니라 그 운동을 "자신의 강령"으로까지 끌어올리는 "혼령"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회민주주의당의 역할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운동의 꼬무니에서 질질 끌려다니는 것이 그 역할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최상의 경우라면 운동에 전혀 무익할 뿐이며, 최악의 경우라면 그 해악은 무척 큰 것이다. "노동자의" "대의"라는 것이 이같은 "과정으로서의 전술"을 좋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원칙으로까지 격상시키고 있다. 따라서 그 노선은 기회주의라기보다는 (꼬무니라는 단어에서 나온) 꼬무니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그리고 항상 운동의 꼬무니를 따라가기로 굳게 결의한 사람들은 영원히, 그리고 절대로 "발전의 자생적 요소를 과소평가할" 염려가 없다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당 안의 "새로운 경향"의 기본적인 오류란 자생성에 굴종한 것, 그리고 대중의 자생성이 우리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많은 의식성을 요구하고 있음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대중이 자생적으로 고양되면 될수록, 운동이 더욱 널리 퍼져 나가면 나갈수록, 사회민주주의의 이론적, 정치적, 조직적 활동에서 더 많은 의식성에 대한 요구는 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급속히 커진다.

 

러시아에서 대중은 젊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그 같은 엄청난 과제를 실행할 준비를 미쳐 다하지 못할 만큼 그렇게 빠르게 자생적으로 고양되었다. (그리고 그 성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준비 부족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비극, 모든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의 비극이다. 대중의 고양은 시작된 곳에서 그치는 것이 아닐 뿐더러 새로운 지역과 새로운 계층을 잠식해 가면서 끊임없이 (노동자운동의 영향으로 운동에 참여하는 청년층과 지식층 전반에서 뿐만 아니라 농민층에서도 민심이 들끓었다.), 그리고 성과를 계승하면서 진행되고 확대되었다. 혁명가들은 "이론"에서도, 활동에서도 이러한 대중의 고양에 뒤쳐졌으며, 전체 운동을 지도할 수 있는, 중단되지 않고 계승되는 조직을 건설하지 못했다.

 

제1장에서는 『노동자의 대의』가 우리의 이론적 과제를 과소평가하고 "비판의 자유"라는 유행어를 "자생적으로" 되풀이하고 있음을 확인한 바 있다. 이 유행어를 반복하는 자들에게는 독일과 러시아에서 보이는 기회주의자 "비판가들"과 혁명가들의 극단적인 입장 대립을 이해할 "의식성"이 부족했던 것이다.

 

다음의 장들에서는, 사회민주주의당의 정치적 임무와 조직활동에서 이 같은 자생성에 굴종하기가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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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교조주의와 “비판의 자유”

 

1. “비판의 자유”란 무엇을 뜻하는가?

 

“비판의 자유” — 이것은 분명, 어떤 나라에서건 사회주의자들과 민주주의자들 사이의 논쟁에서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이 시대에 가장 유행하는 슬로건이다. 언뜻 보기에는, 논쟁 당사자들 중 한편이 비판의 자유를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거론하는 것보다 더 이상한 일을 생각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학문과 학술 연구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다수 유럽 국가의 헌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진보적 정당들 가운데서 정말 흘러나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건 뭔가 아니야!” — 어디서나 반복되는 이 현대적 슬로건을 들어 보았음에도 논쟁 당사자들 사이의 반목의 본질을 아직 심도 깊게 포착하지는 못한 제삼자라면 누구나 이렇게 중얼거릴 것이다. “별명이 그렇듯이, 이 슬로건은 사용됨으로써 정당화되고 거의 보통명사가 되어가는 상투어들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군.”

 

실제로, 현대의 국제적인* 사회민주주의당 안에는 두 가지 경향이 형성되어 왔으며, 그것들 사이의 투쟁은 때로 거세게 타올라 활활 타는 불꽃으로 터져 나오기도 하고, 때로 사그라져서 암시적인 “휴전협정”의 재 속에서 희미하게 가물거리기도 한다. 이는 어느 누구에게도 비밀이 아니다. “낡은, 교조적” 맑스주의에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새로운” 경향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베른슈타인은 너무도 분명하게 말했고, 밀레랑은 보여 주었다.

 

사회민주주의당은 사회 혁명의 정당에서 민주주의적인 사회 개혁의 정당으로 탈바꿈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 베른슈타인은 매우 정연하게 합의된 “새로운” 논거와 사고들로 완전무장을 하여 이 같은 정치적 요구를 내세웠다. 사회주의에 과학적 근거를 부여하고 역사의 유물론적 이해라는 관점에서 사회주의의 필연성과 불가피성을 입증할 가능성은 부정되었다. 점증하는 빈곤, 프롤레타리아트화, 자본주의 모순의 심화 등의 사실은 부정되었다. “궁극 목표”라는 개념 자체는 파산선고를 당했으며, 프롤레타리아독재라는 사상은 말할 것도 없이 반박을 당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원칙적인 대립은 부정되었다. 계급투쟁 이론은 다수의 의지에 의해 통치되는 엄격한 민주주의 사회에는 마치 적용될 수 없는 것인 양 부정되었다.

 

이처럼, 혁명적 사회민주주의당에서 부르주아적 사회개량주의로 단호하게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는 그에 못지않게 맑스주의의 모든 기본 사상에 대한 부르주아적 비판으로의 단호한 전환을 수반했다. 그런데 이러한 최근의 비판은 이미 오래전부터 맑스주의에 반대하여 정치 연단에서, 대학 강단에서, 수많은 소책자와 학자들의 논문에서도 행해져 온 것이다. 또한 교육 받은 계급의 모든 청소년이 수십 년 동안 체계적으로 이 같은 비판의 토양에서 성장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민주주의당 안의 “새로운 비판적” 경향이 유피테르의 머리에서 나온 미네르바처럼 단번에 너무나 완전한 형태를 띤 것[7]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 내용으로 보아, 이 경향은 발전되어 모양을 갖추어 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부르주아 문헌에서 콘바로 사회주의 문헌으로 옮겨진 것이다.

 

더 나아가 보자. 베른슈타인의 이론적 비판과 그의 정치적 열망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직 명확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프랑스인들은 “새로운 방법”을 일목요연하게 드러내느라 고심했다. 프랑스는 이번에도 “계급투쟁이 그 어느 곳보다 더 중국에까지 철저히 진행되었던 나라”(엥겔스의 「밥스의 저작 『브뤼비르 18일』에 부치는 서문」에 나오는 표현) [8]라는 오랜 명성에 값하였다. 프랑스의 사회주의자들은 이론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민주주의적으로 보다 많이 발전된 프랑스의 정치적 조건들로 인해 그들은 베른슈타인주의의 온갖 결과들을 드러내며 금방 “실천적 베른슈타인주의”로 옮겨 갈 수 있었다. 밀레랑은 이러한 실천적 베른슈타인주의의 훌륭한 모범을 보여 주었다. 베른슈타인과 풀마르가 그토록 열렬히 밀레랑을 응호하고 칭찬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사실, 만약 사회민주주의당이 그 본질상 그저 개혁 정당이며 또 공개적으로 이를 인정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면, 사회주의자는 부르주아 내각에 입각할 권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언제나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기도 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그 본질상 계급 지배의 폐지를 의미한다면, 사회주의자인 장관이 계급 협력에 관한 말들로 부르주아지 세계 전체를 매혹시켜서는 안 될 이유가 있는가? 민주주의적 계급 협력의 진정한 성격을 수도 없이 보여 준 헌병들의 노동자 학살이 있은 후라도 그가 내각에 남아 있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프랑스의 사회주의자들이 지금 교수대, 체적, 유형의 영웅이라고 칭하는 싸르를 환영하는 자리에 그가 개인적으로 참석해서는 안 될 이유가 있는가? 그런데 사회주의에 대한 이러한 한없는 경멸과 제 얼굴에 침 뻗기에 대한 대가로 우리에게 승리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기반인 노동자 대중의 사회주의적 의식을 타락시키는 것에 대한 대가가 고작 보잘것없는 개혁, 부르주아 정부에게서 얻어 낼 수 있는 것도 그보다는 더 많을 정도로 보잘것없는 개혁의 요란한 계획안들이란 말인가!

 

일부러 자신의 눈을 감아 버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회주의 내의 새로운 “비판적” 경향이 기회주의의 새로운 변종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몸에 걸친 빛나는 제복이나 스스로 갖다 붙인 효과적인 명칭을 보고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는가와 실제 무엇을 선동하는가를 보고 사람들을 판단한다면, “비판의 자유”란 사회민주주의당 안의 기회주의 경향의 자유, 사회민주주의당을 민주주의적 개혁 정당으로 바꾸어 놓을 자유, 사회주의에 부르주아적 사상과 부르주아적 요소를 도입할 자유라는 것이 명백해질 것이다.

 

자유 — 위대한 말이다. 하지만 산업의 자유라는 지발 아래 극렬한 약탈 전쟁이 벌어졌으며, 노동의 자유라는 지발 아래 노동자들이 수탈당했다. 이와 똑같은 내적 기만이 감춰져 있는 말이 현재 사용되고 있다. “비판의 자유”가 그것이다. 자신들이 과학을 진일보시켰다고 정말로 확신하는 사람들이라면, 낡은 견해와 새로운 견해가 병존할 자유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낡은 견해를 새로운 것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다. 그런데 “비판의 자유 만세!”라는 현재의 외침을 듣노라면,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우화가 자꾸만 떠오른다.

 

우리는 가파르고 험난한 길을 서로의 손을 굳게 잡고 한 덩어리로 똘똘 뭉쳐서 걸어가고 있다. 사방에서 적들이 우리를 에위싸고 있으며, 거의 언제나 우리는 그들의 포화 속을 걸어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바로 옆에 있는 높으로 발을 헛디디며 빠지지 않고 적들과 싸우기 위해 단결하였다. 그 높에 사는 사람들은 애초부터 우리를 비난해 왔다. 우리가 특별한 그룹으로 분리해 나와서 타협의 길이 아닌 투쟁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 가운데 몇몇이 이렇게 외치기 시작한다. "저 높으로 갑시다!" 우리가 그들에게 수모를 주기 시작하자, 그들은 이렇게 반박하고 나선다. "당신들은 얼마나 뒤떨어진 사람들인가! 그리고 당신들은 어찌 그리 철면피처럼 더 나은 길로 가자고 호소할 자유를 우리에게서 박탈하는가!" 아, 그렇군요, 신사 양반들, 당신들에게는 호소할 자유가 있지요. 그뿐만 아니라 그곳이 높이라 할지라도 가고 싶은 대로 갈 자유도 있소. 우리는 당신들의 진정한 자리가 바로 그 높이라는 것도 깨닫고 있고, 당신들이 그리로 이주하도록 힘껏 도와줄 준비도 되어 있소. 그러나 그때 우리의 손을 놓아만 주시지요. 우리를 불잡지 마시고, 자유라는 위대한 말을 더럽히지 마시오. 우리에게도 우리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자유"가 있을 뿐만 아니라 높으로 향하는 사람들과도 싸울 자유가 있기 때문이오!


2. "비판의 자유"의 새로운 응호자들

 

여기 이 슬로건("비판의 자유")은 아주 최근에 국외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동맹[9]의 기관지인 『노동자의 대의』(제10호)에서 엄중히 제기된 바 있다. 이론적 가정이 아닌 정치적 요구로서, 한 문제에 대한 답변으로서 제기된 것이다. "국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회민주주의 조직들의 통합은 과연 가능한가?"라는 문제에 대해 "강고한 통합을 위해서는 비판의 자유가 필수적이다."(36쪽)라는 답변으로.

 

이 같은 입장 천명으로부터 너무도 명확한 두 가지 결론이 도출된다. 1) 『노동자의 대의』는 국제적인 사회민주주의당 전반의 기회주의적 경향을 옹호하고 있다. 2) 『노동자의 대의』는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당 안에 있는 기회주의의 자유를 요구하고 있다. 이 결론들을 살펴보자.

 

『노동자의 대의』는 국제적인 사회민주주의당 진영의 산악파와 지롱드파[10] 사이의 분열을 예언하는 『불꽃』과 『여명』의 경향을 "특히" 못마땅해 한다. "우리 생각에는" — 『노동자의 대의』의 편집장인 끄리첸스키는 이렇게 쓰고 있다. — "사회민주주의 대오 내에서 거론되는 산악파와 지롱드파에 관한 말들은 맑스주의자의 펜을 빌린 이상하고도 피상적인 유비(類比)이다. 산악파와 지롱드파는, 이데올로그 역사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서로 다른 기질이나 지적 경향을 대표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계급이나 계층 – 한쪽은 프롤레타리아트와 소시민, 다른 한쪽은 중간 부르주아지 – 을 대표했다. 그런데 현대 사회주의 운동에는 계급적 이해관계의 충돌은 없다. 현대 사회주의 운동 안에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베른슈타인주의자들을 포함해 온갖(강조는 끄리첸스키가 한 것) 다양한 형태가 있을지라도, 현대 사회주의 운동은 전체가 하나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이해관계와 그들의 정치적, 경제적 해방을 위한 계급투쟁이라는 기반 위에 서 있다."(32~33쪽.)

 

대담한 주장이다! 끄리첸스키는 이미 오래전부터 암암리에 알려진 사실, 즉 최근 몇 년 동안 사회주의 운동에 "학자"층이 광범위하게 참여한 것이야말로 베른슈타인주의를 그렇게 빨리 확산시킬 수 있도록 한 원인이라는 사실을 듣지도 못했던 말인가? 그리고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점이다. 우리의 저자는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베른슈타인주의자들"도 정치적, 경제적 해방을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이라는 기반 위에 서 있다는 자신의 견해를 무엇으로 입증하고 있는가? 알려진 바 없다.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베른슈타인주의자들에 대한 단호한 옹호는 그 어떤 논거로도, 사고로도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 저자는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베른슈타인주의자들이 자신들 스스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을 반복하기만 한다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바로 그 경향의 대표자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에 근거하여 전체 경향을 판단하는 것보다 더 "피상적인"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 뒤에 이어지는 서로 다른, 심지어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두 가지 당 발전의 길과 유형에 관한 다음과 같은 "훈계"(『노동자의 대의』34~35쪽)보다 더 피상적인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보시오, 독일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비판의 완전한 자유를 인정하고 있지만 프랑스인들은 그렇지 않으니, 프랑스인들의 예야말로 '편협함의 해악'을 전부 보여 주고 있지 않소."라는 훈계 말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답할 뿐이다. 끄리첸스키의 예야말로, 문자 그대로 "일로바이스키 식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사람이 종종 자신을 맑스주의자로 부른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고 말이다. 그에게는 독일의 사회주의정당의 단결과 프랑스의 사회주의정당의 분열을 설명하기 위해 두 나라 역사의 특수성에 천착하고 군사적 반(反)전제주의와 공화제적 의회주의라는 각각의 조건을 대비시키는 것, 꼬뮌[14]과 사회주의자특별법[15]으로 생긴 각각의 결과들을 분석하고 경제생활과 경제의 발전을 비교하는 것, "독일의 사회민주주의당의 전례 없는 성장"이 사회주의 역사에서 이론적 오류(될베르거, 뒤링*, 강단 사회주의자들[17])뿐만 아니라 전술적 오류(라살레)와도 정력적으로 투쟁하는 과정을 수반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 따위는 전혀 필요치 않다. 이런 것은 모두 쓸데없다! 프랑스인들은 인내심이 없어서 서로 말다툼질이고 독일인들은 좋은 친구들이어서 단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번 보라. 베른슈타인주의자들을 옹호하는 논리를 전적으로 반박하는 사실이 이 비할 데 없이 심오한 사상을 방패로 "기각되고 있다." 베른슈타인주의자들이 과연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이라는 기반 위에서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오직 역사적 경험에 의해서만 최종적으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따라서 프랑스의 예야말로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프랑스는 베른슈타인주의자들이 독일 동료들(또한 부분적으로는 러시아의 기회주의자들: 『노동자의 대의』 제2~3호 83~84쪽 참조)의 뜨거운 격려 속에 스스로 자신의 발로 서려고 시도했던 유일한 나라이다. 프랑스인들의 "비타협성"을 거론하는 것 — 그 "역사적(노즈드료프[18]식 의미에서)" 의의는 차치하고라도 — 은 매우 불쾌한 사실들을 성냐서 내뱉는 욕설로 뭉개 보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물론, 우리는 끄리첸스키와 다른 수많은 "비판의 자유" 옹호자에게 독일인들을 선사할 생각도 전혀 없다. 만일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베른슈타인주의자들"이 독일의 당의 대오 안에서 아직 용인되고 있다면, 그것은 베른슈타인의 "수정안"을 단호히 배격한 하노버 결의와 (그 전반에 흐르는 외교성에도 불구하고) 베른슈타인에 대한 직접 경고를 포함하고 있는 뤼베크 결의[19]에 독일인들이 복종하는 한에서다. 독일의 당의 이해관계라는 관점에서 볼 때, 외교성이 얼마만큼 적절했냐에 관해서는, 즉 이 경우에는 나쁜 평화가 좋은 싸움보다 더 나은 것인가 하는 점에 관해서는 논쟁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베른슈타인주의를 배격하는 그 두 가지 방법의 합목적성을 평가하는 데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독일의 당이 두 번이나 베른슈타인주의를 배격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독일인들의 예가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베른슈타인주의자들도 정치적, 경제적 해방을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이라는 기반 위에서 있다."라는 데제를 확인시킨다고 생각하는 것은 만인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뿐이 아니다. 우리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노동자의 대의』는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 앞에 "비판의 자유"라는 요구를 들고 베른슈타인주의를 옹호하며 나서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부당하게 우리의 "비판가들"과 베른슈타인주의자들을 모욕했다고 확신하게 됐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사람들을? 누가? 어디서? 언제 모욕했다는 것인가? 무엇이 부당했던 말인가? 이에 관해서 『노동자의 대의』는 단 한 번도 그 어떤 러시아 비판가나 베른슈타인주의자도 거론하지 않은 채 침묵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두 가지 가능한 가정 가운데 하나를 취할 수밖에 없다. 하나는 부당하게 모욕을 당한 측이 남이 아닌 『노동자의 대의』 자신이라는 것이다. (이는 제10호에 실린 두 편의 글에서 『여명』과 『불꽃』이 『노동자의 대의』에 가한 모욕만이 언급되고 있는 데서 확인되는 바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베른슈타인주의와의 일체의 연대를 그렇게도 완강하게 항상 거부해 왔던 『노동자의 대의』가 자신을 옹호하려 할 때마다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베른슈타인주의자들"과 비판의 자유를 변호하는 말을 한마디씩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 이상한 일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가? 다른 하나는 어떤 제삼자가 부당하게 모욕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그들이 누구인지 침묵해야 하는가?

 

이처럼, 우리는 『노동자의 대의』가 그 탄생 순간부터 열중해 왔던(우리는 나중에 이를 보여 줄 것이다.) 숨바꼭질을 계속 하고 있음을 본다. 그렇다면 이제, 그지없이 훌륭한 "비판의 자유"가 처음으로 이처럼 실제로 적용되고 있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 보자. 그런데 사실, 비판의 자유는 지금 비판의 전무 상태, 나아가 독자적 판단의 전무 상태로 귀착되어 있다. 러시아의 베른슈타인주의에 관해서는 마치 숨겨야 될 질병(스타로베르의 적확한 표현대로[21])인 것처럼 입을 다물고 있는 바로 그 『노동자의 대의』가 이 질병의 치료를 위해 질병의 독일적 변종에 대한 최신의 독일식 처방을 그대로 베끼라고 제안하다니! 비판의 자유이기는 커녕 노예의, 아니 그보다 더 나쁜 원숭이의 모방이 아닌가! 현대의 국제적인 기회주의의 동일한 사회적, 정치적 내용은 민족적 특수성에 맞게 이러저러하게 변형되어 나타나고 있다. 어떤 나라에서는 기회주의자 그룹이 오래전부터 특별한 깃발 아래 진군해 왔다. 다른 나라에서는 기회주의자들이 실천적으로 급진적 사회주의자들의 정책을 수행하면서 이론은 무시해 왔다. 또 다른 나라에서는 혁명적 정당의 몇몇 당원들이 기회주의 진영으로 옮겨 가서, 원칙과 새 전술을 위한 공개 투쟁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눈에 띄지 않게, — 이렇게 표현해도 괜찮다면 — 징계 받지 않을 정도로 자기 당을 타락시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 애쓰고 있다. 또 어떤 나라에서는 그 같은 이탈자들이 정치적 노예제의 압흑 속에서 "합법" 활동과 "비합법" 활동의 너무나 독특한 상호 관계를 유지하며 똑같은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기타 등등. 러시아의 베른슈타인주의가 과연 어떤 것으로 발현되었는지,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분석하지도 않은 채,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통합 조건으로 베른슈타인주의와 "비판의 자유"를 말하려 달려드는 것, 그것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 위해 말하기 시작하는 것과 같다.

 

비록 단 몇 구절일지라도, 『노동자의 대의』가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혹은 어쩌면 이해하지도 못했던 것)을 우리가 바로 말해 보자.

 

3. 러시아에서의 비판

 

지금 우리가 검토하고 있는 문제에서 러시아의 주요한 특수성이란 자생적인 노동자운동과 선진적인 사회 여론의 맑스주의로의 전환이라는 두 가지의 시작 자체가 명백히 이질적인 요소들이 공동의 적(낡은 사회관과 정치관)과 투쟁하기 위해 공동의 깃발 아래 결합되면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금 "합법적 맑스주의"의 밀월 시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매우 독창적인 현상이었다. 1880년대, 또는 1890년대 초반에는 이 같은 현상의 가능성 자체를 누구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언론이 전적으로 예속 상태에 있는 전제주의 국가에서, 정치적 불만과 저항이 조금도 자라지 못하도록 탄압했던 극단적인 정치적 반동의 시대에, 이솝의 언어를 빌리기는 했지만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적인 혁명적 맑스주의 이론이 느닷없이 검열을 통과한 서적으로 진로를 열었다. 정부는 (혁명적인) '인민의 의지'의 이론만을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는 데 익숙해 있었으므로, 언제나 그렇듯 그 이론의 내적 발전을 눈치채지 못하고는 '인민의 의지'에 반대하는 경향이라면 어떤 것이건 혼쾌히 받아들였다. 정부가 불현 듯 사태를 깨달아 검열관과 헌병의 중부대가 새로운 적을 찾아내 덮칠 때까지는 상당한(우리 러시아식 셈으로) 시간이 흘렀다. 그러는 동안 한 권 두 권 맑스주의 서적들이 나왔으며, 맑스주의 잡지와 신문들이 창간되었고, 모두 맑스주의자가 되어 맑스주의자들을 치켜세우고 그들의 비위를 맞췄으며, 출판인들은 뜻밖에도 날개 돋친 듯 팔리는 맑스주의 서적들에 열광했다. 이 같은 중독된 분위기에 휩싸인 초보 맑스주의자 가운데에 "거드름을 피워 대는 문필가……"[22]가 한둘이 아니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제는 이 시기에 관해 마치 과거를 이야기하듯 차분히 말할 수 있다. 우리 문필계의 지면에서 맑스주의가 잠시 꽃을 피웠던 것은 과격파와 온건파의 연합으로 인한 현상이었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에게도 비밀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온건파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이었다. (이후 그들의 "비판적" 발전으로 명백히 증명된) 이 결론을 몇몇 사람들은 "연합"이 온전했던 시기에 이미 생각한 바 있다.

 

하지만 만일 그렇다면, 이후의 "분란"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미래의 "비판가들"과 이러한 연합에 들어갔던 바로 그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사태를 지나치게 직선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서 종종 이 같은 질문과 이를 긍정하는 답변을 듣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완전히 틀렸다.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그런 사람들과의 일시적 연합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나 하는 일이다. 그 어떤 정당도 그런 연합 없이 존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합법적 맑스주의자들과의 결합은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이 맺은 일종의 최초의 실질적 정치 연합이었다. 이 연합 덕분에 놀라울 정도로 빨리 인민주의에 승리할 수 있었으며, 맑스주의 사상(통속화된 형태이긴 했지만)을 엄청난 규모로 폭 넓게 보급할 수 있었다. 게다가 연합이 아무런 "조건" 없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 증거는 1895년에 검열관이 불태워 없앤 맑스주의 저작집 『러시아의 경제 발전에 관련된 자료들』이다. 합법적 맑스주의자들과의 문필 협정을 정치 연합에 비교할 수 있다면, 그 책은 정치 조약에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연합이 결렬된 것은 "연합 당사자들"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이었기 때문에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이 경향의 대표자들은 사회민주주의 당의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연합 세력이다. 러시아의 현재 상황은 일차적으로 민주주의적 과제들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연합의 필수 조건은 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와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의 적대적 대립성을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자계급에게 폭로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보장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다수 합법적 맑스주의자가 의지해 마지않던 베른슈타인주의와 "비판적" 경향은 사회주의자들에게서 이러한 기회를 박탈하였다. 그들은 맑스주의를 비속화하고, 사회적 모순을 무마하는 이론을 선전하고, 사회혁명과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사상을 불합리한 것이라 공표하고, 노동자운동과 계급투쟁을 보잘것없는 점진적 개혁을 위한 "현실적" 투쟁 및 협소한 노동조합주의로 끌고 가는 등의 일을 함으로써 사회주의적 의식을 타락시켰다. 이는 전적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진영이 사회주의의 독립권을 부정한 것과 마찬가지며, 따라서 그 존재권을 부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실천적으로 이는 시작 단계에 있는 노동자운동을 자유주의자들의 부속물로 전락시키려 함을 의미한다.

 

당연히 이러한 조건하에서는 결렬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이 결렬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널리 보급된 "합법적" 문헌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간단히 축출되었음을 의미했다는 데에 러시아의 "독특한" 특수성이 있었다. 이제 그 자리는 "예전에 맑스주의자였던 사람들"로 강화되었다. 그들은 "비판의 깃발 아래" 떨쳐 일어섰고 맑스주의를 "분쇄"할 독점권을 획득했다. "교조주의 반대"라는 함성이 들린다. 그리고 (지금은 『노동자의 대의』가 되풀이하고 있는) "비판의 자유 만세"는 금방 유행어가 되었으며 헌병과 검열관들도 이 유행에는 대항해 내지 못했다. 이를 잘 보여 주는 것은 유명해진(헤로스트라투스[24] 식으로 유명해진) 베른슈타인의 책 세 권이 러시아어판으로 출간된 예와 주바토프가 베른슈타인, 프로코포비치 씨 등의 책을 추천한 예다(『불꽃』 제10호). 이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그 자체로도 힘든데다 순전히 외부의 걸림돌 때문에 믿을 수 없을 만큼 더 어려워진 과제, 즉 새로운 흐름과의 투쟁이라는 과제를 집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 흐름은 문필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비판"으로의 전환에 뒤이어 사회민주주의 실천가들이 "경제주의"에 호응하여 끌려들게 되는 과정이 나타난 것이다.

 

합법적 비판과 비합법적 "경제주의"의 관계 및 상호 의존성이 어떻게 발생하여 성장해 왔는가 하는 흥미로운 문제는 별도의 글의 소재가 될 만한 것이다. 우리로서는 여기서 이런 관계가 확실히 존재함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악명 높은 Credo[25]가 그처럼 정당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이 관계를 솔직하게 공식화하고 "경제주의"의 기본적인 정치적 경향을 다음과 같이 무심코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즉 노동자들은 경제투쟁(더 정확하게는 노동조합주의 투쟁이라고 해야 할 것인데, 노동조합주의 투쟁은 특유의 노동자 정치까지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을 하게 하고, 맑스주의 지식인은 정치"투쟁"을 위해 자유주의자들과 결합하게 하자는 것이 그것이다. "인민 속에서의" 노동조합주의 활동은 첫째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고, 합법적 비판은 둘째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이 같은 언명은 "경제주의"를 겨냥하는 너무나 훌륭한 무기였기 때문에, 만일 Credo가 없었다면 그것을 만들어 내기라도 해야 했을 것이다.

 

Credo는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저자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쩌면 오히려 그들의 의지에 반해 공개되었을 뿐이다. 적어도, 새 "강령"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데 일조한 이 글의 필자인 나는 연설자가 적어 놓은 그들 견해의 개요가 복사본으로 유포되어 Credo라는 꼬리표를 얻고 심지어 항의문과 함께 인쇄된 것과 관련해 항변과 비난을 들어야만 했으니 말이다! 우리가 이 에피소드를 거론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 "경제주의"의 매우 흥미로운 성격을 드러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공개에 대한 공포증 말이다. 이것은 Credo의 몇몇 필자들만이 아닌 바로 "경제주의" 일반의 성격이다. "경제주의"의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솔직한 지지자인 『노동자의 사상』, (『바데메쿱』[27]에 "경제주의자" 자료들이 공개된 것에 격분한) 『노동자의 대의』, 2년 전 자신의 Profession de foi[28]가 그에 대한 반박문과 함께 공개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 했던 키예프 위원회**, 그리고 그 밖에도 수많은 "경제주의"의 개별적 대표자가 공개에 대한 공포증을 보여 온 바 있다.

 

비판의 자유를 지지하는 자들이 드러내는 이 비판에 대한 공포증은 교활하기 때문이라고만 설명될 수는 없는 것이다. (분명, 비록 어떤 때는 교활함이 없을 리 없겠지만 말이다. 아직 제대로 자라지도 못한 새로운 경향의 맹아를 반대파가 공격할 수 있도록 세상에 내놓는 것은 앞뒤를 생각하지 못한 처사가 아닌가!) 그런 것이 아니라, 대다수 "경제주의자"는 이론적 논쟁, 분과 간의 이견, 광범위한 정치 문제들, 혁명가들을 조직하기 위한 계획 등을 그 어떤 것인 것만으로는 "경제주의"의 본질상 필연적으로) 악의를 품고 바라본다. "이런 건 모두 국외로 넘겨 버려야 하는 건데!" — 상당히 일관된 "경제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이 한번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이 말로써 매우 널리 유포되어 있는 (또한 이번에도 역시 순전히 노동조합주의적인) 관점을 표현한 것이니, 이는 『불꽃』 제12호에 실린 편지의 필자들이 『노동자의 대의』 제10호와 합창으로 다음과 같이, 즉 우리의 일은 여기 우리 땅에서의 노동자운동과 노동자 조직이며 나머지 다른 일은 공론가들이 고안해 낸 것이자 "이데올로기의 과대평가"라고 피력했던 것과 같다.

 

이제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온다. 러시아의 베른슈타인주의와 러시아의 "비판"의 이런 특수성을 고려할 때,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회주의에 대항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임무는 어떤 것이어야 했는가? 첫째, 합법적 맑스주의의 시대에 겨우 시작되기만 하였다가 이제 다시 비합법 활동에 처해진 이론 작업을 재개하기 위해 부심했어야 했다. 그러한 작업 없이 운동의 성공적인 성장은 불가능했다. 둘째, 사람들의 머리를 극히 타락시켜 놓은 합법적 "비판"과 투쟁하기 위해 적극 나섰어야 했다. 셋째,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의 강령과 전술을 펼히하려는 온갖 시도들을 폭로하고 반박하면서 실천 운동에서의 혼란과 우왕좌왕을 막기 위해 적극 나섰어야 했다.

 

『노동자의 대의』가 이 중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뒤에 우리는 그야말로 다양한 측면에서 이 자명한 진실을 상세히 밝혀야 할 것이다. 지금 여기서는 러시아의 "경제주의" 및 우리 조국의 비판이 지니고 있는 특수성과 "비판의 자유"라는 요구 사이에 어떤 놀라운 모순이 있는지를 보여 주고자 할 뿐이다. 실제 국외러시아사회민주주의자동맹이 『노동자의 대의』의 관점을 확인해 준 결의안의 본문을 쭉 훑어보라.

 

사회민주주의당의 사상의 가일층 발전을 위해 우리는 당 문헌에 사회민주주의당의 이론에 대한 비판의 자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인정한다. 비판이 사회민주주의당 이론의 계급적, 혁명적 성격에 반하는 쪽으로 나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두 대회』10쪽.)[29]

 

그 근거로 든 것을 보자. 결의안의 "첫 부분은 베른슈타인주의에 관한 뤼베크 당대회 결의안과 일치한다."…… 정신이 단순하신 "동맹원들"은 이 같은 모방으로 자신들이 어떤 testimonium paupertatis[빈곤 증명서]에 서명을 했는지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지경이다! "그러나…… 둘째 부분은 비판의 자유를 뤼베크 당대회보다 훨씬 협소하게 제한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외동맹의 결의는 러시아의 베른슈타인주의를 반대하여 제출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뤼베크를 들먹이는 것은 완전히 황당한 일 아닌가! 하지만 결의안이 "비판의 자유를 협소하게 제한하고 있다."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독일인들은 하노버 결의안을 통해 베른슈타인이 제출한 바로 그 수정안들을 조목조목 기각했으며, 뤼베크 결의안에서는 본문에 베른슈타인을 거명하며 그에게 개인적으로 경고한 바 있다. 그런데 우리의 "자유로운" 모방자들은 러시아 특유의 "비판"과 러시아 특유의 "경제주의"가 그 어떤 것으로 발현되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내비치지 않는다. 이 문제에는 침묵을 지키면서 이론의 계급적, 혁명적 성격에 대해 앙상한 강변을 늘어놓는 것은 잘못 해석될 여지를 훨씬 더 많이 남길 뿐이다. 특히, 동맹이 "이른바 경제주의"(『두 대회』8쪽 1항)를 기회주의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말이 나온 김에 짚어 봤을 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한 기회주의자들의 태도가 독일과 러시아에서 극과 극처럼 상반된다는 점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독일에서는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기존의 것을 유지하려 한다. 기존의 것이란, 모두가 다 알고 있으며 수십 년간의 경험으로 세세한 것까지 다 해명된 오래된 강령과 전술이다. 수정안을 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바로 "비판가들"인데, 이들은 별 불일 없는 소수파이고 그들의 수정주의적 지향은 너무나 소심하기 때문에, 다수파가 이 "신종"을 그저 무미건조하게 거부할 뿐 그 이상은 아닌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 러시아에서는 비판가들과 "경제주의자들"이 기존의 것을 지키려 한다. "비판가들"은 자신들을 계속 맑스주의자로 간주해 주고 자신들이 온갖 의미에서 다 행사해 온 그 "비판의 자유"를 보장해 주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그들은 당적 관계라는 것을 단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고, 게다가 비록 권고로나마 비판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공인된 당 기관이 우리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경제주의자들"은 혁명가들이 "현재의 운동의 완전한 권리"(『노동자의 대의』제10호 25쪽)를, 즉 존재하고 있는 것의 존재 "적법성"을 인정해 주기를 바란다. 그들은 "이데올로그들"이 "물질적 요소들과 물질적 환경의 상호작용에 의해 규정되고 있는"(『불꽃』제12호에 게재된 『편지』) 그 길에서 운동을 "끌어내리려"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은 "현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벌일 수 있는 유일한 투쟁"인 그 투쟁을 바람직한 것으로 인정해 주기를, "그들이 현시점에서 실제로 하고 있는"(『노동자의 사상』의 『별쇄 부록』[30] 25쪽) 그 투쟁을 가능한 것으로 인정해 주기를 바란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는 자생성, 즉 "현시점"에 있는 것에 대한 이 같은 숭배가 불만스럽다. 우리는 최근 몇 년간을 지배해 온 전술의 수정을 요구한다. 우리는 "통합하기에 앞서, 그리고 통합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단호하고 결정적으로 경계를 그어야 한다."(『불꽃』창간 성명에서)고 천명한다. 한마디로, 독일인들은 수정을 거부하면서 기존의 것에 머물러 있으며, 우리는 기존의 것을 숭배하거나 그것과 타협하는 것을 거부하며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의 "자유로운" 독일 결의안 모방자들은 이 같은 "작은" 차이를 깨닫지도 못하고 있다!

 

4. 이론투쟁의 중요성에 관한 엥겔스의 글

 

"교조주의와 공론주의", "당의 경직화 — 사상을 폭력적으로 옮아낸 데 대한 불가피한 형벌" — "비판의 자유"의 열렬한 수호자들이 『노동자의 대의』에서 기사도적으로 무장하여 싸우는 적들이 바로 이것이다. — 우리는 이 문제가 일정에 올라 무척 기쁘다. 다만 거기에 다른 문제 하나를 추가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면 재판관은 누구인가?

 

우리 앞에는 문건 출판을 알리는 두 개의 선언문이 있다. 하나는 「러시아사회민주주의자동맹의 정기 기관지 『노동자의 대의』의 강령」(『노동자의 대의』제1호 가운데 별쇄본)이고, 또 하나는 「노동해방그룹의 출판 재개 선언」[31]이다. 둘 다 1899년에 나온 것인데, 그때는 이미 "맑스주의의 위기"가 도마에 오른 지 오래였던 때이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여러분이 맑스주의의 위기가 언급되는 현상에 대한 지적과 새 기관지가 그 문제에 관해 취하려는 입장을 분명하게 피력한 부분들을 첫째 문건에서 찾아내려 한다면 그것은 헛수고일 것이다. 이 강령이나 1901년 동맹의 제3차 대회[32]에서 채택한 강령 보완문(『두 대회』15~18쪽) 어디에도 당면한 이론적 활동과 그 절박한 과제들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 모든 사회민주주의자가 이론적 문제로 동요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기간 내내 『노동자의 대의』 편집진은 그것을 완전히 제쳐 두고 있었다.

 

이와는 반대로, 둘째 선언문은 무엇보다 먼저 최근 몇 년 동안 이론에 대한 관심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프롤레타리아혁명운동의 이론적 측면에 예리한 관심을 가질 것"을 강력히 요구하며, 우리 운동 내의 "베른슈타인주의 및 기타 반혁명적 경향을 가차 없이 비판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기존에 발행된 『여명』의 각 호를 보면 이 같은 강령이 어떻게 실행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사상의 경직화 등등에 반대하는 목청 높은 문구들이 이론적 사상 발전과 관련된 무기력과 무사태평을 은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예는 (이미 오래전에 독일의 맑스주의자들도 지적한 바 있는) 범유럽적인 현상, 즉 특히 저 악명 높은 비판의 자유란 한 이론을 다른 이론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전일적이고 깊이 있는 이론 일체로부터 벗어날 자유이며 절충주의와 무원칙성을 의미한다는 것을 특히 일목요연하게 보여 준다. 우리 운동의 실상을 어느 정도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맑스주의의 폭 넓은 보급이 일정 정도 이론적 수준의 저하를 수반한 상황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론적으로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심지어 이론에 전적으로 무지한 상당수 사람이 운동의 실천적 중요성과 그 실천적 성공을 위해 운동에 가담했다. 따라서 『노동자의 대의』가 "현실 운동의 한 걸음 한 걸음이 한 다스의 강령들보다 중요하다."[33]는 맑스의 금언을 의기양양하게 내세울 때 그것이 얼마나 박자를 못 맞추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이론적 혼란의 시대에 이 말을 되풀이하는 것은 장례 행렬이 지나갈 때 축하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34] 앞서 인용된 맑스의 말은 고타 강령에 관한 그의 편지에서 따온 것인데, 이 편지에서 그는 원칙을 정식화하는 데 절충주의가 허용되는 것을 신랄하게 질책하고 있다.[35] 맑스는 당의 지도자들에게, 연합의 필요성이 이미 존재하는 것이라면 운동의 실천적 목표를 충족시키기 위해 협약을 체결하되 원칙을 거래하거나 이론적 "양보"를 해서는 안 된다고 쓰고 있다. 맑스의 생각은 이러한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는 그의 이름으로 이론의 중요성을 약화시키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혁명 이론이 없다면 혁명 운동도 있을 수 없다. 실천 활동의 가장 협소한 형태에 매몰되는 것이 기회주의의 최신 유행 설교와 서로 열쌈안고 있는 시기에, 이러한 생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당에서 이론의 중요성은 사람들이 자주 잊고 있는 또 다른 세 가지 상황에 의해 더욱 커지고 있다. 첫째, 우리 당은 이제 겨우 자리를 잡고 제 면모를 갖춰 가고 있으며, 운동을 올바른 길에서 끌어 내릴 위험이 있는 다른 경향의 혁명사상들과 결산조차도 하지 못한 상태라는 점이다. 결산은커녕 오히려 가장 최근에는 비(非)사회민주주의적 혁명 경향이 현저히 활기를 띠게 되었다. (악셀로드는 이미 오래전에 "경제주의자"들에게 이를 예언한 바 있다[36]). 이 같은 상황에서는 언뜻 보기에는 "별것 아닌" 실수가 실로 통달할 만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근시안적인 사람들만이 분파들의 논쟁이나 색조의 엄격한 구별을 시기에 맞지 않는다거나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향후 오랜 기간에 걸친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의 미래는 어떠한 "색조"를 굳혀 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둘째, 사회민주주의 운동은 본질적으로 국제적인 운동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민족적 쇼비니즘과 투쟁해야 한다는 것만이 아니다. 이는 또한 청년기의 나라에서 시작되고 있는 운동은 다른 여러 나라의 경험을 체험할 때에만 성공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러한 체험을 위해서는 단순히 그 경험이 어떤 것인지 안다는가, 최신의 결의안들을 그저 베껴 쓴다는가 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이를 위해서는 그 경험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독자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현대의 노동자운동이 얼마나 거대하게 성장하여 그 가지를 뻗어 왔는지를 상상해 보기만 해도, 이 같은 과제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풍부한 이론적 역량과 정치적 (또한 혁명적) 경험을 쌓아야 하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셋째,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의 국민적 과제는 전 세계 그 어떤 사회주의정당도 직면해 본 적이 없던 성격의 것이다. 전제주의의 압제로부터 전 인민을 해방시켜야 할 이 과제가 우리에게 맡긴 정치적, 조직적 의무에 관해서는 뒤에 서술하도록 하겠다. 지금은 한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그것은 선진적 이론으로 지도되는 당만이 전위투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고자 하는 독자들이라면, 게르젠, 벨린스키, 체르니셰프스키 같은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의 선구자들과 70년대의 빛나는 혁명가들을 그려 보면 될 것이다. 아니면, 지금 러시아 문학이 획득하고 있는 전 세계적 중요성을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아니면 또……, 그러나 이것만 해도 충분하지 않은가!

 

사회민주주의 운동에서 이론의 중요성이라는 문제에 관해 엥겔스가 1874년에 한 말을 인용해 보자. 엥겔스는 — 우리가 흔히 그러하듯 — 사회민주주의 투쟁의 커다란 형태로 두 가지 (정치투쟁, 경제투쟁)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 즉 그 둘과 나란히 이론투쟁도 인정하고 있다. 실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강력해진 독일 노동자운동에 바친 그의 조언은 현재의 여러 문제와 논쟁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교훈적인 까닭에, 지금까지 그보다 더 위대한 책을 찾기 힘든 『독일 농민 전쟁』이라는 소책자[*]의 서문을 길게 인용하더라도 독자들이 불평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독일의 노동자들은 그 밖의 유럽 노동자들에 비해 두 가지 점에서 본질적 이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그들은 유럽에서 가장 이론적인 민족에 속하며, 독일의 이른바 '배웠다는 사람들'이 완전히 잃어버린 이론적 감각을 보존하고 있다. 독일 철학, 특히 헤겔 철학이 선행되지 않았다면, 독일의 과학적 사회주의 — 지금까지 존재한 단 하나의 과학적 사회주의 — 는 결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자들 사이에 이론적 감각이 없었다면, 이 과학적 사회주의는 결코 오늘날의 상황처럼 노동자들의 살과 피로 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영국 노동자운동이 개별 노동조합의 그 모든 출중한 조직 상태에도 불구하고 신속히 전진하지 못하게 만든 근본적 원인들 가운데 하나인 이론에 대한 무관심과 비교해 본다면, 또 다른 한편으로 프루동주의가 프랑스인들과 벨기에인들 사이에 그 원래적 형태로 야기했고 바쿠닌이 에스파냐인들과 이탈리아인들 사이에 더욱 희화화된 형태로 야기했던 비행 및 혼란과 비교해 본다면,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장점인가를 잘 알 수 있다.

 

둘째 이점은 독일인들이 시간상 마지막으로 노동자운동에 뛰어든 편에 속한다는 데 있다. 독일의 이론적 사회주의가 생시몽, 푸리에, 오언의 어깨 위에, 즉 그 모든 공상과 그 모든 유토피아주의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대의 가장 뛰어난 두뇌에 속하고 수많은 천재적 예견을 내놓은 사람들이며 그 예견들이 옳았다는 것이 오늘날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는 그 세 사람의 어깨 위에 자신이 서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듯이, 독일의 실천적 노동자운동은 자신이 영국과 프랑스의 운동의 어깨 위에서 발전하였고, 이 운동들이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경험들을 간단히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당시에는 거의 불가피했던 오류들을 오늘날 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영국의 노동조합들과 프랑스의 정치적 노동자 투쟁들이 선행하지 않았다라면, 특히 파리코뮌[14]이 던진 엄청난 충격이 없었다라면, 우리는 오늘날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독일 노동자들이 보기 드문 분별력을 가지고서 자신들의 처지에서 나오는 이점들을 이용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노동자운동이 성립된 이래 처음으로, 투쟁은 그 세 가지 측면 — 이론적 측면, 정치적 측면, 실제적-경제적(자본가에 대한 저항) 측면 — 에 걸쳐서 단일한 음조와 연관을 유지하면서 계획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이 집중적 공격에 바로 독일의 운동이 가지고 있는 강력함과 불패의 힘이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독일의 운동이 점하고 있는 이러한 유리한 지위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의 운동의 섬나라라는 특수성과 프랑스의 운동에 가해진 폭력적인 진압 때문에, 현재 독일의 노동자들은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전위에 서 있다. 사건들이 독일 노동자들의 이 명예로운 지위를 얼마나 오랫동안 용인할지는 미리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지위를 점하고 있는 한, 아마도 독일의 노동자들은 응당 그 지위에 속하는 직분을 이행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쟁과 선동의 모든 영역에서 두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지도자들의 의무로 되는 것이 있으니, 모든 이론적 문제에 대해 더욱더 이해를 높여야 하고, 낡은 세계관에 속하는 전래의 공문구의 영향에서 더욱더 자신을 해방시켜야 하며, 또한 사회주의는 과학으로 된 이래 과학처럼 추진되기를, 즉 연구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늘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한다. 이렇게 획득되어 점점 더 명확해져 가는 인식을 더욱 열심히 노동자 대중 속에 보급하여 당 조직과 노동조합 조직 사이의 연결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 독일의 노동자들이 이렇게 나아간다 하더라도, 그들이 반드시 운동의 선두에 서서 진군하라는 법은 없지만 — 어떤 한 민족의 노동자들이 선두에서 서서 진군하는 것은 결코 운동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 —, 그렇게 나아간다면 그들은 전투의 대열에서 명예로운 자리를 점하게 될 것이다. 또한 예기치 않은 중대한 시련이나 큰 사건들이 일어나서 그들에게 더 큰 용기, 더 큰 결의와 실행력을 요구하게 된다면 그들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37]

 

엥겔스의 말은 예언이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사회주의자특별법[15]이라는 예기치 않은 중대한 시련이 독일의 노동자들을 덮쳤다. 독일 노동자들은 실제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이를 맞았으며 승리로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었다.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 앞에는 이보다 더한, 가능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시련이 놓여 있다. 피볼과의 투쟁이 그들 앞에 놓여 있으나, 입힌 국가의 특별법이라는 것은 이 피볼에 비하면 그야말로 소인증 환자에 불과하다. 이제 역사는 우리에게 당면 임무를 제기했다. 그것은 다른 어떤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당면 임무보다도 혁명적인 것이다. 이 임무를 실행한다면, 즉 유럽 반동의 가장 강고한 보루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 반동(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의 가장 강고한 보루이기도 한 것을 파괴한다면,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세계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가 될 것이다. 또한, 우리가 70년대 우리의 선각자들과 같은 헌신적인 결의와 열정으로 그보다 천만 배 더 넓고 깊은 우리 운동을 고무할 수 있다면, 우리의 선각자들, 70년대의 혁명운동가들이 이미 얻은 바 있는 그 영예로운 칭호를 우리가 획득하리라 기대해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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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것인가

 

“당내 투쟁은 당에게 힘과 생명력을 줍니다. 분명하게 드러난 경계에 대한 당의 모호함과 둔감함은 당이 취약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당은 자정함으로써 강화됩니다.”

 

— 1852년 6월 24일, 라살레가 맑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

 

서문

 

필자의 당초 계획대로라면, 이 소책자는 「무엇으로부터 시작 할 것인가?」(『불꽃』 제4호, 1901년 5월)에서 피력했던 사상을 상세히 발전시키기 위해 써야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먼저 우리는 그때 했던 (그리고 수많은 개인적 문의와 편지에 대한 답변으로 반복해 드렸던) 약속을 뒤늦게 실행하는 데 대해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 일이 이처럼 늦어진 까닭의 하나는 지난해 (1901년) 6월에 있었던 모든 국외 사회민주주의 조직의 통합 시도였다.[1] 당연히 이 시도의 결과를 끝까지 기다려야 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성공했을 경우, 어쩌면 『불꽃』의 조직적 견해를 몇몇 다른 각도의 관점에서 서술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경우든 그것이 성공했다면,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당 안에 두 가지 경향이 존속하는 상황은 매우 빨리 종결되었을 것이다. 독자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이 시도는 실패로 끝났으며, 우리가 뒤에 증명해 보일 것처럼, 『노동자의 대의』가 제10호에 경제주의로 돌아선 이후에 그 시도는 그렇게 종결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불분명하며 딱히 규정된 바 없는, 그 대신에 더욱 확고해지고 다양한 형태로 부활할 수 있는 그러한 경향에 맞서 단호한 투쟁에 돌입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졌다. 이에 따라 책자의 애초 계획은 일부 변경되었으며 상당히 확대되었다.

 

이 책자의 주요 주제는 「무엇으로부터 시작할 것인가?」에서 제기했던 세 가지 문제가 되어야 했다. 우리의 정치 선동의 성격과 주요 내용, 우리의 조직적 임무, 전러시아적인 전투조직을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건설하는 계획 등에 관한 문제가 그것이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문제들에 관심을 가져 왔기에, 실패한 일이긴 하지만 『노동자 신문』을 복잡하게 했던 시도의 일환으로(제5장을 보라.) 바로 그 신문에서도 이 문제들을 제기하려 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소책자에서 이 세 가지 문제만을 분석하는 데 그치고 논쟁에 매달리지 않으면서 혹은 논쟁에 거의 치우치지 않으면서 우리의 관점을 가능한 한 긍정적인 형태로 서술하려 했던 애초의 예정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완전히 실현 불가능해졌다. 우선, “경제주의”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1901년 12월 『불꽃』 제12호의 「경제주의 옹호자들과의 대담」이라는 글에서 밝힌 것처럼 “경제주의”라는 단어를 넓은 의미로 사용하겠는데, 그 글은 독자들 앞에 놓인 이 책자의 개요를 보여 주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가지 문제의 해결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들이 부분적인 것에서의 견해차라기보다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 안에 있는 두 경향의 근본적인 대립으로 보아야 훨씬 잘 설명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관점을 『불꽃』에 실제로 관철시키는 것에 대해 “경제주의자들”이 보이는 당혹감은 우리가 빈번히 문자 그대로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다는 점, 따라서 ab ovo(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어떤 결론에도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 근본적인 모든 사항에 관한 우리와 모든 “경제주의자”의 입장 차이를 수많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가능한 한 대중적으로 체계적으로 “설명”하려 시도해야 한다는 점 등을 명백히 보여 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 같은 “설명”을 시도하기로 했다. 그럴 경우에 이 소책자의 분량이 현저히 늘어나고 종결이 더디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또한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무엇으로부터 시작할 것인가?”에서 했던 약속을 결코 이행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작업이 늦어진 데 대한 사과에 덧붙여 나는 이 책자의 문학적 퇴고가 매우 부족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드리겠다. 나는 극도로 시급히, 그것도 온갖 다른 일 때문에 작업을 중단해 가면서, 이 글을 써야만 했다.

 

위에 지적한 세 가지 문제를 분석하는 것이 여전히 이 책자의 주요 주제를 이루고 있긴 하지만, 나는 더 일반적인 다음의 두 가지 문제로부터 글을 시작해야만 했다. “비판의 자유”와 같은 “순수”하고도 “당연한” 슬로건이 왜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전투 신호인가? 왜 우리는 자생적 대중운동과 관계된 사회민주주의당의 역할이라는 기본적인 문제에서조차 합일점에 이를 수 없는가? 다음으로, 정치 선동의 성격과 내용에 대한 견해의 서술은 노동조합주의 정치와 사회민주주의 정치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으로 바뀌었으며, 조직적 과제에 대한 견해의 서술은 “경제주의자들”을 만족시키는 수공업성과 우리의 견지에서 필수적인 혁명가 조직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 다음으로, 전러시아적 정치 신문 “계획”을 반대했던 견해들의 근거가 없어진 만큼, 또 “무엇으로부터 시작할 것인가?”에서 제기했던 문제, 즉 우리가 어떻게 우리에게 필요한 조직의 건설에 여러 방면에서 동시적으로 착수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본질적으로 답하는 사람들이 적어진 만큼, 나는 더욱더 강력히 이 계획을 주장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경제주의자들”과의 결정적인 결렬을 피하기 위해 — 그러나 결렬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는 사실, 『노동자의 대의』는 일관된 “경제주의”를 보여 주었다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의 역사의 온전한 한 시기를 특징짓는 동요와 혼란을 무엇보다 완전히, 무엇보다 극명히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역사적” — 원하신다면 — 의미를 획득하였다는 사실, 따라서 언뜻 보기에는 지나치게 세세한 것 같은 『노동자의 대의』와의 논쟁이 중요성을 갖는 것은 우리가 이 시기를 완전히 청산하지 않는 한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 등을 이 책자의 결론부에서 보여 주고자 한다.

 

1902년 2월

레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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