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선언』 녹음본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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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 『러시아에서 자본주의 발전』이 집필되고 발표되던 시기 (1896년~1899년)는 레닌의 혁명가 생애에서 체포, 투옥, 그리고 시베리아 유배로 이어진 고난의 시기이자,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서 거대한 이론적 성취를 이뤄낸 결정적 전환기였다.


1895년 말~1897년 초에는 체포와 상트페테르부르크 감옥 생활로, 노동자 해방 투쟁 맹우에서 활동한 레닌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마르크스주의 노동자 운동을 조직하다가 1895년 말 차르 체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년이 넘는 엄격한 옥중 생활 동안, 레닌은 가족들의 도움 (누이들과 어머니를 통한 도서 반입)을 받아 러시아 경제 통계와 자료를 수집하며 『러시아 자본주의 발전』의 구상을 다지고 집필을 시작했다.


1897년~1900년까지는 시베리아 슈셴스코예 유배와 집필에 몰두한 시기로, 1897년 초, 레닌은 동시베리아의 오지인 슈셴스코예 마을로 3년간의 유배 처분을 받아 이송되었다. 유배지에는 동료이자 마르크스주의 활동가였던 나데즈다 크룹스카야가 합류했고, 두 사람은 1898년에 유배지에서 결혼했다. 크룹스카야는 레닌의 든든한 동반자이자 비서로서 연구 활동을 도왔다. 차르 당국의 감시 속에서도 레닌은 젬스트보 (지방 자치회) 통계 보고서, 공장 통계, 농업 조사 등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며 1898년 10월에 『러시아 자본주의 발전』 초고를 완성했다.


1899년 봄에 책으로 합법적으로 출판되면서 유배 생활이 끝나갈 무렵인 1899년 3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본인의 이름이 아닌 필명 (“블라디미르 일린”)으로 이 책을 합법적으로 출판하는 데 성공했다. 이 책은 당시 러시아 사회를 지배하던 인민주의자들 (보론초프, 미하일롭스키 등)의 주장, 즉 “러시아는 서구와 달리 자본주의를 거치지 않고 농민 공동체 (미르)를 통해 곧바로 사회주의로 갈 수 있다”는 환상을 철저한 통계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으로 박살 낸 역작이었다.


이처럼 레닌은 물리적으로는 고립된 유배지와 감옥에 갇혀 있었으나, 이념저으로는 러시아 경제 전반에 자본주의가 이미 깊숙이 뿌리내렸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성장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증명하여, 향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을 이끌고 볼셰비키 혁명을 준비하는 이론적 토대를 완성했다.


 

제1장 인민주의 오류



자본주의 발전의 전체 과정은 사회적 분업에 기초한다. 자연 경제 사회가 동질적이고 자급자족적인 단위였다면, 상품 경제는 제조업이 원자재 산업 및 농업으로부터 분리되고 산업 부문이 세분화되는 전문화 과정을 거친다.


인민주의자들은 모든 상품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이러한 사회적 분업을 ‘인위적인 조치의 결과’로 왜곡하여 이해했다. 자본주의 발전은 불변 자본 (생산 수단)을 증가시키는 반면 가변 자본 (노동력)의 상대적 감소를 초래하며, 농업 부문에서 비농업 인구로의 이동을 가속화한다. 인민주의자들은 소규모 생산자가 몰락하고 파산하면 구매력이 약화되어 국내 시장이 위축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레닌은 생산 수단을 상실한 생산자가 노동력 판매자 (임금 노동자)가 되는 과정에서, 그 생산 수단이 다른 사람의 수중에 들어가 자본으로 전화된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자본가 계급은 새로운 도구, 원자재, 소비재 등에 대한 거대한 수요를 창출하므로 국내 시장은 오히려 확대된다.


애덤 스미스와 훗날의 인민주의자들 (불가코프 등)은 상품 가격 및 연간 총생산물에서 불변 자본 (생산 수단 가치)을 누락하고, 이를 임금·이윤·지대라는 수입 (소득)으로만 분해하여 고찰하는 오류를 범했다.


마르크스의 사회적 재생산 공식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의 총생산물은 불변 자본 (c) + 가변 자본 (v) + 초과 가치 (m)으로 구성된다. 생산은 크게 생산 수단 생산 부문 (제Ⅰ부문)과 소비재 생산 부문 (제Ⅱ부문)으로 나뉘며, 단순 재생산과 축적 과정에서 이들 부문 간의 교환과 (균형)이 이루어진다.


자본주의적 축적의 본질은 개인 소비의 발달보다 생산적 소비 (불변 자본의 증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생산의 (무한한) 확장 추진력과 제한된 구매력 (과소 소비) 사이의 모순 속에서 경제 위기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인민주의자들은 국내 시장의 협소함과 자본주의의 과소 소비 성향 때문에 초과 가치나 잉여 생산물을 실현하려면 반드시 해외 시장 (외국 시장)에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레닌은 대외 무역은 자본주의 발전의 결과이자 유통의 한 형태일 뿐이며, 초과 가치 실현의 절대적 전제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자본주의는 각 산업 부문의 불균등한 발전과 겅쟁을 통해 국내외로 시장을 개척하며, 오래된 고립적 경제 단위를 파괴하고 세계를 하나의 경제 단위로 연결하는 역사적 과업을 수행한다.


이러한 소비와 분배 중심의 한계로 프루동, 로드베르투스, 베른슈타인, 불가코프 등 부르주아 개량주의자들과 인민주의자들은 새산력과 자본의 재생산 구조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지 못하고, 단순한 분배와 소비 문제, 과소소비론, 혹은 부유층의 소비 증가를 통한 위기 해소 가능성 등에 매몰되었다.


국내 시장의 발전은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의 발전 정도와 정확히 일치한다. 직접 생산자가 자본가와 임금 노동자로 분리되는 과정 자체가 국내 시장을 창출하는 근본 동력이다.



제2장 농민층 분화 요인과 젬스트보 통계 및 인구 조사


 

러시아 각 지역의 젬스트보 통계 조사는 남부 및 중부 러시아 농촌 사회가 동질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이미 자본주의적 상품 경제와 화폐 관계에 의해 내부적으로 분화되었음을 보여주는 객관적 증거를 제공한다.


인민주의 경제학자들 (카리셰프, 포스트니코프 등)은 명백한 통계적 수치 속에서도 ‘평균 농민’이라는 허구적 범주와 ‘할당 분류’ 방식을 고수하며 농민층 분화를 부정하고 공동체적 유대와 균등론을 주장하는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


노보로시아 (남러시아) 구베르니아 (포스티니코프 자료)


타우리다 지역 등에서 부농 (가구의 1/5)은 경작 면적의 절반 이상을 집중시키고 상업적 농업 (환금작물 재배 및 대평양 양 사육 등)을 주도한 반면, 빈농들은 토지와 쟁기 등 생산 수단을 상실했다. 부농은 가족 노동력을 초과하는 경작 면적으로 인해 다수의 농촌 임금 노동자 (일용직·정규직)를 고용했다. 반면 빈농은 생계를 위해 노동력을 판매하고 토지를 임대해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적 국내 시장이 창출되었다. 농민 부유층은 상인 자본 및 고리대금업과 결합하여 토지를 담보로 투기를 벌였으며, 이는 전통적 공동체 해체와 농민의 몰락을 가속화했다.


사마라 구베르니아 (노보우젠스크·니콜라예프스키 지역)


상층 농민은 철제 쟁기, 증기 탈곡기 등 개량 농기구의 대부분 (81.9%)을 독점하며 대규모 자본주의적 농경과 가축 사육을 결합한 반면, 빈농층은 농기구가 전무하고 가축조차 없어 생계형 일용직으로 전락했다. 매수 토지의 9/10과 임대 토지의 대다수가 소수의 농민 자본가 (상위 계급) 수중에 집중되었으나, 인민주의자들은 이를 외면하고 평균적 수치만 강조했다.

 

사라토프 구베르니아 (카미신 지역 등)


카미신 지역의 부농 (인구의 1/3)은 작물 재배 면적의 53.3%와 막대한 가축을 소유했다. 통계학자들이 ‘산업 고용’이나 ‘할당 분류’라는 무차별적 범주를 사용하여 고용주와 임금 노동자, 부농과 빈농을 하나의 평균값으로 묶어버림으로써 농민층 분화의 실상을 가리고 자본주의적 현실을 왜곡했다고 레닌은 비판했다.

 

페름 구베르니아 (크라스노우핌스크·예카테린부르크 지역)


상위 농민층으로 갈수록 게절적 일용직뿐만 아니라 정규직 농장 노동자 고용이 체계적으로 확립되어 자본주의적 농업 경영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보론초프 등 인민주의자들이 주장한 ‘농민 전체의 농기구 개선’과 달리, 개량 농기구와 비료 사용은 철저하게 상층 부농들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오렐 구베르니아 (옐츠·트르부체프스크 지역)


대마 재배 등 상업적 농업이 발달한 이 지역에서도 부농들은 빈농들로부터 비료를 매입하고 토지를 대규모로 임대·집중시켰다.


오렐 지역 역시 토지 포기 및 노동력 매각에 따른 ‘농촌 무산층’과 토지 매수·임대 및 고용 노동을 결합한 ‘농촌 부르주아’라는 두 가지 정반대의 유형으로 명확하게 분화되었다.


인민주의 경제학자들 (카리셰프, 보론초프, 포스트니코프의 비판적 한계 등)은 통계 자료를 다룰 때 ‘할당 분류’와 ‘평균값’이라는 허구적 지표를 사용하여, 부농에 의한 빈농 수탈과 자본주의적 분화라는 본질을 의도적이거나 무지하게 은폐했다. 젬스트보 통계의 세부 자료를 과학적으로 재조사하면, 러시아 농촌 공동체 (미르) 내부에서 이미 소규모 생산자가 몰락하여 임금 노동자와 자본가 (농민 부르주아)로 나뉘는 자본주의적 분화가 예외 없이 관철되고 있음을 명백히 증명할 수 있다.

 

보로네즈 구베르니아 (자돈스크, 젬랸스크 등 4개 군)


통계 자료가 방대했음에도 여러 부류를 일괄적으로 묶은 ‘중립 집단 (평균값)’ 산정 방식으로 인해 농민층 분화의 실상이 흐려지는 한계가 있었다. 산업 종사자 및 외부 노동자의 대다수는 농장 노동자, 짐꾼, 비숙련 노동자 등 ‘농촌 무산층’이었으며, 농업이 아닌 산업 (외부 고용)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수적으로는 매우 적지만, 곡물 판매 위주, 농장 노동자 고용, 개량 농기구 및 상업·산업 시설소유를 독점하며 자본주의적 발전을 주도했다.

 

니즈니노브고로드 구베르니아 (크냐진, 마카라예브, 바질 지역)


법적 배정지 소유 규모와 실제 토지 소유·경작 면적은 큰 괴리가 있었으며, 부농들은 매입 토지와 임대 토지를 집중시켜 실질적 지배력을 확대했다. 비료 (분뇨) 사용량에 따라 호밀 수확량이 극단적으로 갈렸으며, 부농들이 자본을 투입해 농업 생산성을 크게 높인 반면 빈농들은 소외되었다.

 

기타 주별 검토 (노브고로드, 체르니고프, 예니세이, 폴타바 등)


노브고로드·체르니고프 등에서는 가축 보유량에 따른 분석 결과, 상위 집단으로 갈수록 매입·임대 토지와 산업용 건물의 소유가 집중되었고, 하위 집단 (가축 없는 농민)은 토지를 떠나 임금 노동자로 전락했다.


시베리아 (예니세이 등)에서는 ‘할당지’라는 법적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가축이 없는 다수의 빈농과 5마리 이상을 소유한 부유층 (경작지의 73% 소유) 간의 자본주의적 분화와 임금 노동 의존 관계가 동일하게 나타났다.


트레리 등의 왜곡으로는 일부 인민주의 성향의 통계학자들 (비흘라예프 등)은 평등주의적 환상에 사로잡혀 공동체 내부의 차별화 과정을 부정하고 자연 경제와 인민 생산을 맹신하는 오류를 범했다.


지역별·구베르니아별 절대적 수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체 가구의 상위 20% (부농)와 하위 50% (빈농)을 기준으로 재분류하는 표준화된 분석 방식을 적용했다.


농민 분화의 보편적 법칙으로 법적 평등인 배정지와 달리, 매수 및 임대 토지는 철저하게 상위 20%의 부농 수중에 집중되었다. 부농층은 임금 노동자 (정규직·일용직)을 고용하고 개량 농기구와 상업·산업 시설을 독점한 반면, 빈농층은 토지를 상실하고 노동력을 판매하는 무산층 (프롤레타리아트)으로 전락했다.


인민주의자들과 카리셰프 등은 젬스트보 통계의 명백한 수치 속에서도 ‘평균’과 ‘할당 평등’이라는 허구를 내세워 자본주의적 분화 과정을 은폐하려 했으나, 실제 통계는 러시아 농촌 사회가 이미 자본주의적 상품 경제와 계급 분화의 길에 들어섰음을 명백히 증명하고 있다.


러시아 전역을 포괄하는 통일된 농업 인구 조사가 부재한 상황에서, 중앙 통계 위원회가 실시한 ‘군마 인구 조사 (1888년, 1891년, 1893~1894년 등)’는 러시아 농민층의 분화 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 핵심적인 전국적 자료를 제공한다. 유럽 러시아의 통계를 결합해 보면, 전체 가구의 약 22% (약 220만 가구)인 상위 부유층이 전체 가구의 56.3%를 소유한 반면, 가축이 전혀 없는 가구 (280만 가구)를 포함한 다수의 빈농층은 극심한 빈곤 상태에 놓여 있었다.


1888~1900년을 비교했을 때, 수탈의 심화는 시기가 지날수록 가구 수는 약 100만 가구 증가했으나 가축 수는 오히려 감소했으며, 가축이 없는 빈농 가구 비율이 27.3%에서 29.2%로 급증하여 농민에 대한 수탈과 몰락이 가속화되었음을 보여준다.


통계학자들이 흔히 제시하는 ‘평균 농민 예산’은 극단적인 빈곤층과 부유층의 현실을 은폐하는 허구에 불과하며, 실제 예산은 농장 규모와 가축 보유량에 따라 극단적으로 갈린다.


무마농 및 일마농 (하층)은 농업 소득이 미미하고 생계의 상당 부분을 임금 노동 (고용 노동)에 의존하며, 현금 적자와 생계 위기에 시달렸다. 이들의 생활 수준은 일반 농촌 임금 노동자보다도 못하거나 그 최저선에 머물렀다.


농촌 기업가 (상층)은 수백 루블에 달하는 순소득을 올리며, 농장 지출과 생산적 소비 (개량 농기구, 고용 노동, 상업·산업 시설 투자)가 전체 지출의 과반을 차지했다.


이에 따라 국내 시장의 이중적 창출이 지적되며, 무마층 (농촌 무산층)은 토지와 생산 수단을 상실하고 임금 노동자로 전락하면서 주로 소비재 시장을 창출한다.


부농 (농촌 부르주아)은 농업과 상업·산업을 결합하며 대규모 생산 수단과 투자를 확대하며 주로 생산 수단 시장을 창출한다.


이 과정 전반이 자본주의 발전과 국내 시장 형성의 역사적 필연성임을 레닌은 강조한다.


사브리나 등 일부 통계학자들은 마르크스주의 용어를 왜곡·남용하고 ‘평균 수요 법칙’이나 단순 평균화 방식을 적용하여 농촌 무산층과 부유층의 계급적 격차를 지워버리는 오류를 범했다.


마을 공동체 내에서 세금과 공과금은 할당지 면적을 기준으로 일률적으로 부과되었으나, 실제 경제 능력이 파괴된 빈농들에게 세금 부감이 가중되어 이들의 몰락을 더욱 부채질했다.


현대 러시아 농민들은 낙후된 조건 속에서도 이미 시장 (개인 소비, 세금 납부 등)에 깊이 예속되어 있었다. 촌락 공동체 (미르) 내부에는 경쟁, 독점, 소수 생산 집중, 다수의 무산 계급화, 착취 등 자본주의의 모든 모순이 그대로 내재되어 있었다. 인민주의자들의 주장과 달리, 러시아의 촌락 공동체는 자본주의의 대척점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가장 깊고 단단한 경제적 토대였다.


기존의 가부장적인 농민층은 단순한 재산 불평등에 그치지 않고 완전히 해체되었으며, 농촌 주민들은 자본주의적 상품 경제를 지배하는 새로운 계급 유형으로 재편되었다. 이를 레닌은 ‘농민화’로 규정했다.


마르크스, 『자본』 제Ⅲ권에 나오는 노동 지대, 현물 지대, 화폐 지대의 역사적 단계를 거치면서 직접 생산자들 내부의 경제적 격차가 벌어지고 착취 수단이 싹트게 된다. 현물 지대가 화폐 지대로 전환되면서 종속 농민들은 토지와 자유를 매수당하고, 돈을 위해 고용된 무산 일용직 노동 계급이 형성된다. 부농들은 이를 바탕으로 자본가로 변모하며, 자본주의적 발전은 시골 전역으로 확산된다.


이에 따라 농민 분화로 창출되는 두 개의 새로운 계급이 출현한다.


농촌 부르주아지 (농민 상층, 가구의 1/5 이내)는 상업적 농업을 경영하는 자영농, 상업 및 산업 시설의 소유주 등으로 구성된다. 이들의 특징은 가족 노동력을 초과하는 대규모 경작을 위해 농장 노동자와 일용직 노동자를 상시 고용하며, 고리대금과 상인 자본, 토지 매수 및 임대를 통해 농촌 경제를 장악한다. 수적으로는 소수이나 생산 수단과 생산물 총량에서 현대 농촌의 주인을 자처하며, 주로 생산 수단 시장 (생산적 소비)을 확대한다.


농촌 무산층 (농민 하층, 전체 농가의 40~50% 이상)은 토지를 전혀 소유하지 못한 빈농뿐만 아니라, 척박한 소규모 토지만 보유한 채 생계를 위해 노동력을 판매해야 하는 토지 소유 임금 노동자 (일용직, 미숙련·건설 노동자 등)가 전형적인 대표자로 구성된다. 이들의 특징은 극도로 낮은 생활 수준과 현금 적자에 시달리며, 주로 소비재 시장 (개인적 소비)을 형성한다.


인민주의자들은 러시아 마을 공동체의 ‘공동체 정신’과 유럽식 자본주의 농업 (발트해 연안의 오스트제 체계 등)을 대립시키나, 실제 오스트제 지역의 농장 노동자들도 토지 소유자와 임금 노동을 겸용하고 있어 경제적 실질은 러시아 농민과 다를 바 없다. 상인 자본과 고리대금은 낡은 생산 양식을 해체하는 전제가 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산업 자본으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독립적 발달이 과도할 경우 농업 생산의 발전을 지연시킨다. 그러나 쿨락 (고리대금업자)과 진취적인 부농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자본 축적 과정에서 한 뿌리에서 나오는 경제적 현상이다.


전근대적 잔재인 노동 용역 (부역 경제)은 초기 자본주의적 분화를 지연시키는 요인이었으나, 이러한 봉건적 예속과 속박이 청산될수록 농민층의 양극화와 계급 분화는 더욱 가속화된다.


 

제3장 지주 부역 경제


 

농노제 시대의 경제 체제는 영지의 토지가 영주 토지와 농민 토지 (할당지)로 나뉘며, 농민들은 자신들의 생계 수단과 노동 도구로 할당지를 경작하는 동시에, 동일한 도구로 지주의 토지를 무상으로 경작 (초과 노동)하는 구조였다.


코르베 경제는 생산자에게 토지를 제공하는 기반 위에 성립하며 농민에 대한 인신적·개인적 의존 (강제력)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반면 자본주의 경제는 생산자로부터 토지를 박탈하는 기반 위에 성립한다. 코르베 경제와 그에 따르는 개인적 의존 및 무지는 농업을 빈곤과 타락, 기술적 정체 상태에 머물게 했다.


1861년 개혁으로 농민 농장은 지주 농장과 분리되고 토지를 매입했으나, 자본주의적 고용 노동에 필요한 조건이 완전히 성숙하지 않았다. 또한 지주들은 숲, 초원, 수경 시설 등 농민 자립에 필수적인 토지 (차단된 토지)를 계속 장악하고 있었다.


경제적 압력 외에 신체적 처벌, 집단 책임 등의 구속력이 잔존하는 속에서, 지주들이 농민의 도구와 가축을 이용해 토지를 경작시키고 그 대가로 토지 임대나 빚을 상환하게 하는 노동 용역 체계가 자본주의 체제와 혼합된 과도기적 형태로 지배하게 되었다. 순수 러시아 구베르니아에서는 노동 용역 제도가 우세했던 반면, 유럽 러시아 전체로는 자본주의적 지주 농업 제도가 점차 확대되는 등 상반된 체제가 얽혀 심오한 갈등과 파산을 초래했다.


이러한 노동 용역 제도는 일자리 고용, 데시아틴 고용, 반작물 임대, 법적 벌금 노역 등 제반 명칭 (오트라보키, 스코프시나 등)으로 불리며 밭 경작, 수확, 가금류 배달 등 농촌 생활 전반을 포괄했다. 노동 용역에 기반한 임금은 자본주의적 자유 고용에 비해 훨씬 저렴했으며, 농민들이 지주에게 개인적으로 종속되는 상태를 강제했다. 오랜 노예 생활의 잔재로 인해 농민들은 생산력 저하와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다.


인민주의자들은 노동 용역이나 반작물 임대 같은 전근대적 예속 형태를 마치 빈곤층을 돕는 유익한 제도인 것처럼 미화했으나, 이는 실질적으로 농민을 파멸시키고 농장 노동자 (무산층)로 전락시키는 수단일 뿐이었다.


지주 부역 경제에서 자본주의 경제로의 이행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전근대적 속박과 자본주의적 요소가 결합된 과도기를 거쳤다. 이러한 봉건적 잔재 (노동 용역, 고리대금, 예속)가 청산되고 상품 경제와 화폐 관계가 확고해질수록 농민층의 계급 분화와 자본주의적 발전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상품 경제와 상업적 농업의 성장은 자연 경제와 불변 기술에 기반한 노동 용역 체제와 본질적으로 상충하며 이를 훼손한다. 노동 용역에는 소작농 (가축과 농기구를 소유한 중농)이 수행하는 ‘순환 경작’ 등의 노동 영역과 농기구가 없는 농촌 무산층 (빈농)이 수행하는 수확, 풀베기, 탈곡 등의 노동 용역이 있다. 흉작과 가축 수의 급감, 그리고 농민층의 극심한 분화로 인해 중농층이 몰락하면서 노동 용역의 기초가 무너졌다.


중농들은 파산하여 노동 용역을 수행하기 어려워졌고, 무산층 (빈농)은 지주에게 속박되기보다 더 유리한 조건과 현금 임금을 찾아 도시나 광산, 외부 고용 시장으로 이탈했다. 이로 인해 지주들은 기존의 노동 용역 체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인민주의자들은 노동 용역 체제를 이상화하거나 영속시키려 했으나, 실제로는 자본주의적 발전과 농민층 분화로 인해 노동 용역의 뿌리가 약화되고 자본주의적 고용 노동으로 대체되는 것이 역사적 필연이었다.


개혁 이후 농업 기계 생산과 사용은 1860년대 도입 시기의 실패를 거쳐, 1870년대 말~1880년대의 점진적 증가, 1885년 이후 관세 부과와 위기를 거쳐, 1890년대 초부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초기 서부 외곽 지역 중심에서 1890년대에는 남러시아 대평원 및 러시아 본토 지역으로 자본주의적 농업 및 기계화의 중심지가 확대되었다.


철제 쟁기, 수확기, 탈곡기 등의 생산과 판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지주뿐만 아니라 ‘농민 부르주아 (부농)’층에서도 개량 농기구를 광범위하게 구입·사용했다. 특히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증기 발전기와 증기 탈곡기가 대거 도입되어 상업적 대규모 농업 경영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곡물 가격 하락과 경쟁 격화는 지주와 부농들로 하여금 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높이도록 강제했으며, 이는 구식 수작업과 노동 용역을 몰아내고 자본주의적 기계 농업을 확산시키는 주된 동력이 되었다.


개혁 이후 농기계 생산과 활용은 1860년대 도입 시기의 실패, 1870~80년대의 점진적 증가를 거쳐, 1890년대 초부터 비약적인 생산 및 보급 확대 단계로 진입했다. 철제 쟁기와 수확기, 탈곡기 등의 국내 생산과 수입이 급증했으며, 특히 남부 대평원 지역을 중심으로 증기 발전기와 증기 탈곡기가 대거 도입되어 상업적 대규모 농업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곡물 가격의 지속적인 하락과 경쟁 격화는 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자본주의적 압력으로 작용했으며, 이는 구식 수작업과 노동 용역을 몰아내는 결정적 동력이 되었다.


인구가 밀집하고 노동 용역이 지배적이던 중앙 흑토 지대 등 북부·서부 지역에서, 상업적 곡물 농업이 발달한 남부 및 동부 외곽 지역 (베사라비아, 헤르손, 타우리다, 돈 지역 등)으로 매년 수백만 명의 농업 이주 노동자가 유입되었다. 이는 농촌 무산층으로 전락한 빈농들이 생계를 위해 고향을 떠나 자본주의적 임금 노동 시장으로 흡수되는 과정이었다.


젬스트보 통계 및 루드네브 등의 연구에 따르면, 유럽 러시아의 농업 노동자 수는 약 350만 명에 달했으며, 취업 연령 남성의 약 20%가 부농과 지주를 위한 임금 노동을 주된 작업으로 삼고 있었다. 남부 및 남동부 지역에서는 수천 명의 노동자와 고용주가 모이는 거대한 노동 시장 (카호브카 등)이 형성되었다. 전근대적 속박 관계가 점차 사라지고, 오직 노동력을 사고파는 ‘무정한 현금 지불’과 자유 경쟁에 기반한 자본주의적 고용 관계가 지배적이 되었다.


기계의 도입과 보급은 대규모 농장을 노동자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시켜 주었으나, 동시에 이주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임금을 지속적으로 하락시켜 농업적 노동 예비군 (과잉 인구)를 창출했다. 수확기와 증기 탈곡기 등의 도입은 노동 강도를 극단적으로 높였으며, 야간 작업의 상시화와 함께 수많은 산재 부상과 직업병 (정신적 트라우마 등)을 야기했다. 기계 사용은 성인 남성 노동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여성 및 아동 노동 (14세 미만 소년·소녀 노동자 포함)으로 대체하는 경향을 가속화했다.


인민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의 이주 현상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노동 용역 체제를 이상화하며 자본주의적 발전을 외면했으나, 실제 농민들은 전근대적 속박보다 차라리 ‘순수한’ 자본주의적 고용 관계와 이동의 자유를 더 선호했다.



제4장 상업 농업 발전과 농산물 가공과 농업 위기


 

개혁 이후 인구의 상업·산업 부문 전환과 이주로 인해 농업 인구 비율은 감소했으나, 농업 노동 생산력이 향상되면서 곡물 및 감자 생산량이 크게 증가하고 상업 농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헤르손, 타우리다, 사마라, 사라토프 등 남동부 외곽 지역과 노보로시야 대평원 지역이 새로운 곡물 생산의 중심지로 부상하며 기존의 중앙 흑토 지방을 밀어냈다. 이 지역들은 풍부한 자유 토지를 바탕으로 대규모 자본주의적 농경과 해외 수출용 밀 생산을 주도했으며, 임금 노동자와 대규모 기계 (수확기, 증기 탈곡기 등)를 전면적으로 활용했다. 인민주의자들은 곡물 가격 하락과 상업 농업의 발전을 외면하고 자연 경제의 정체성을 옹호했으나, 실제로는 시장 경제와 자본주의적 전문화가 러시아 농업 전반을 깊숙이 재편하고 있었다.


발트해 연안, 서부 구베르니아, 북부 산업 지역 및 일부 중부 지역을 중심으로 분뇨 생산만을 위한 가축 사육에서 우유·버터·치즈 등 상업적 유제품 생산을 위한 낙농업으로 급격히 전환되었다. 아르텔 (협동조합)과 자본주의적 공장화가 전개되면서 야로슬라블, 볼로그다 등지에서 치즈 제조와 버터 생산이 상업적 성격을 띠며 발전했고, 원심 분리기 등 최신 기계와 순수 배양 기술이 도입되면서 생산이 집중되었다. 통합 낙농업과 소농의 종속으로 인해 대도시 인근의 대규모 유제품 시설은 공공업체와 계약을 맺고 품질 기준을 강제하며 소규모 농가들을 자본주의적 시장에 종속시켰다. 상인 자본과 목축업자들은 파산 직전의 농민들로부터 가축을 헐값에 사들이는 방식으로 소농들을 완전히 예속시키고 이들의 삶을 황폐화했다.


낙농업과 상업적 축산의 발달은 기존의 삼포제 윤작을 폐지하고 사료용 풀 재배와 다포제 토지 제도를 도입하는 등 지주 농업의 합리화와 기업가적 경영으로의 전환을 이끌었다. 산업 구베르니아와 낙농 지역의 농업 노동 수요는 연중으로 점차 고르게 분포되는 경향을 보였으나, 농업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과 위생 조건은 공업 노동자들보다 훨씬 열악했다. 기계의 도입과 자본주의적 착취는 노동 강도를 극단적으로 높였으며, 직업병, 산재 부상, 그리고 성인 남성 노동을 저렴한 여성 및 아동 노동으로 대체하는 경향을 심화시켰다.


상업적 낙농업과 축산업의 발전은 농업 기술 향상, 풀 재배 도입, 개량 농기구 보급 등 농업 생산력의 발전을 가져왔으나, 동시에 빈농들의 식량 사정 악화, 새로운 유형의 수탈과 예속, 그리고 농민층의 극심한 몰락을 동반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구베르니아 등 비흑토 낙농 지역에서도 소를 전혀 키우지 않거나 1마리만 소유한 하층 농민 (절반 이상)은 낙농업의 혜택에서 소외된 채 영양실조와 빈곤에 시달렸으며, 3마리 이상을 소유한 상위 부농층이 낙농업 수익의 대부분을 독점했다. 부농들은 클로버 등 풀 재배를 확대하고 토지 사유화를 추구하며 임금 노동자를 고용해 자본주의적 축산을 주도한 반면, 다수의 빈농들은 가난 속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하거나 굶주림에 시달렸다.


포스코프, 트베리, 블라디미르 등 흑토 지대가 아닌 지역을 중심으로 상업적 아마 재배가 급격히 확대되었으며, 이는 농민들의 주요 화폐 수입원이자 시장 경제 의존도를 높이는 핵심 요인이었다. 아마 재배는 투기적 성격을 띠며 발전했고, 프스코프 등의 지역에서는 높은 토지 임대료와 구매자 (상인)들에 대한 절대적 의존으로 인해 농민 대중이 절망적인 예속 상태에 빠졌다. 초기에는 상인 자본과 고리대금업이 농민을 지배했으나, 기계 (스카처 등)와 개량 종자 세척기 도입, 건조실·압착기 운영 등이 확산되면서 상인 자본은 점차 산업적·자본주의적 성격으로 대체되었고, 농민층 내부에서도 농촌 부르주아의 형성과 노동 용역의 자본주의적 전환이 가속화되었다.


개혁 이후 감자 증류를 중심으로 증류 산업이 급속히 발전했으며, 증류소의 대다수는 지주 영지 및 농업과 직접 연관되어 있었다. 감자 재배 면적과 수확량의 폭발적 증가는 3포제에서 다포제 순환으로의 전환을 이끌었으며, 노동 집약적인 뿌리작물 재배는 농촌 일용직 노동자에 대한 수요를 크게 증가시켰다.


사탕무 재배와 제당업은 대규모 자본주의적 기업 (주로 귀족 지주 영지)에 집중되었으며, 경작 면적과 가공량이 수배 이상 급증했다. 사탕무 밭의 경작과 수확에는 막대한 농업 임금 노동 (특히 여성과 아동 노동)이 투입되었으나, 노동자들의 숙소와 위생 조건은 극도로 열악하여 전전염병과 질병이 만연했다.


전분 제조, 식물성 기름 압착 (해바라기씨 등), 상업적 담배 재배 등은 농민 부르주아지 (부농)의 성장을 촉진하는 한편, 상인 자본과 고리대금업의 지배 속에서 빈농층의 파산과 무산화 (프롤레타리아화)를 가속화했다.


철도의 부설은 도시와 산업 중심지로의 농산물 운송을 촉진하며 과일, 채소, 멜론 등의 상업적 재배 (교외 농업)를 급격히 발전시켰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로스토프 (포레치예) 등 대도시 주변의 채소·온실 재배 지역에서는 토지 소유와 임대의 불평등이 심화되었고, 부농 (농촌 부르주아)들이 대규모 틀과 온실을 운영하며 수많은 임금 노동자를 착취했다. 교외 농업은 가부장적 농민을 자본의 힘과 일반 상품 생산 법칙에 온전히 예속시키는 산업가 (자본가적 소생산자)로 변모시켰으며, 도시와 산업의 성장은 온 마을을 교외와 같은 상품 공급처로 전환시켰다.


사유지뿐만 아니라 소농 경제에 이르기까지 농업은 단순한 자급자족적 자연 경제에서 벗어나 상업적·기업가적 성격으로 전환되었다. 농업의 전문화와 상업화는 농산물 교환, 제조업 생산물에 대한 수요 급증, 농기계 및 생산 수단 시장의 확대, 그리고 정규직 및 일용직 농업 노동력 시장을 전면적으로 창출했다. 자본주의는 전근대적 노동 용역과 개인적 종속 관계를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이를 비인격적인 화폐 지불 및 고용 노동 관계로 대체하여, 분산되어 있던 농업을 사회적 규모의 생산으로 전환시켰다.


인민주의자들은 농업 위기와 곡물 가격 하락을 근거로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 역할을 부정하려 했으나, 엥겔스의 분석대로 현재의 위기는 세계 시장 경쟁과 자본주의적 생산의 무한한 확대로 인해 오히려 구시대적 독점과 봉건적 잔재를 해체하는 과정이다. 인민주의자들은 농업 노동의 계절적 불균형 (겨울철 실업)을 근거로 자본주의가 농민을 파멸시킨다고 ‘겨울철 해방론’을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해당 이론은 허구성을 띠며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산업과 농업 간의 이동성이 높아지며, 겨울철 실업과 예속은 자본주의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전근대적 노동 용역과 불충분한 자본주의적 발전에 기인한다. 인민주의자들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을 인용하여 소농 경제를 미화하고 자본주의의 진보적 역할을 부인하려 했으나, 마르크스는 소농 소유가 고립, 무지, 그리고 인간력의 거대한 낭비를 초래하는 반면, 자본주의는 과학적 농업과 농업의 사회화를 이룩한 위대한 역사적 업적임을 명백히 밝혔다.


토지 소유의 법적 형태 (마을 공동체 등) 자체는 자본주의 발전에 절대적 장애물이 아니며, 진정한 문제는 공동체의 신분적 고립, 높은 세금, 그리고 농민의 이동 및 정착의 자유를 박탈하는 중세적 과거의 잔재들이다.



제5장 산업 자본주의



원자재를 생산하는 농민 가족이 직접 가공하는 가내 산업은 자연 경제의 필수적 잔재로, 러시아 산업이 농업과 불가분하게 결합되어 있던 초기 형태였다. 가부장적 농업에서 분리된 첫 산업 형태는 소비자 주문에 따라 제품을 생산하는 수공업 (장인) 생산이었다. 이들은 주로 고객의 주문에 따라 무두질, 부츠 제작, 대장간 작업 등을 수행하며 농업을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장인들의 노동 생산물은 시장에 유통되지 않고 농민의 자연 경제 테두리 안에 머물렀으며, 아직 본격적인 상품 생산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장인의 생산물이 시장에 등장하고 전문 상인 (매수자)이 개입하면서, 수공업자는 점차 시장을 위해 생산하는 소규모 상품 생산자로 전화되었다. 시장이 확대되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소규모 산업가들은 치명적인 경쟁을 피하기 위해 기술적 발명과 노하우를 비밀로 유지하고 독점적 지위를 지키려 했다.


중앙 지방의 발전된 장인들이 경쟁과 공장제 발달을 피해 남부 등 새로운 외곽 지역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소규모 산업의 토대를 마련했다. 러시아 중부 등지에서 새로운 소규모 산업이 형성되어 주변 마을로 확산되었으며, 이는 자본이 무역에서 산업으로 이동하는 과정과 맞물려 전국적인 자본주의 관계를 확산시켰다.


모스크바 및 페름 지역의 수공예 인구 조사 분석 결과, 소규모 상품 생산자들은 평등하지 않고 내부적으로 극심하게 분화되어 있었다. 하위 등급은 가족 노동에 의존하며 영세한 규모를 유지하는 소규모 생산자였으며, 상위 등급 (소부르주아지)는 다수의 임금 노동자를 고용하고, 높은 노동 생산성과 개량된 도구를 바탕으로 대규모 자본주의적 작업작으로 발전한 계급이다. 소규모 산업이 초기에는 가족 노동에 기반했으나,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타인의 손으로 일하게 시키는’ 착취적 자본주의적 협업 관계로 전환되었다. 생산 시설의 규모가 커질수록 노동 생산성 (노동자 1인당 생산량)이 향상되고 기술적 우위를 점하게 되며, 이는 소규모 영세 사업자들의 몰락과 임금 노동자 (농촌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의 형성을 가속화하는 근본 동력이 되었다.


소규모 상품 생산자들이 다수의 노동자를 한 자본가의 지휘 아래 동일한 노동 장소에소 고용하여 대규모로 생산을 조직할 때 비로소 자본주의적 생산이 시작된다. 이는 개별 노동자의 숙련도 차이를 해소하고 생산 비용을 절감하며 안전성을 부여한다. 이에 따라 자본주의적 협업의 시작이 되며, 상품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분산된 소규모 생산자들은 대규모 도매 시장에 직접 접근하기 어려워지고, 이 틈을 타 상인 자본 (매수자)이 유통을 장악하게 된다. 상인 자본은 고리대금과 결합하여 생산자들을 철저히 예속시키고 착취한다. 매수자들이 단순히 완제품을 매입하는 것을 넘어 원자재를 공급하고 가공을 지시하는 단계로 나아가면서, 상인 자본은 산업 자본으로 전환되고 자본주의적 가내 산업이 형성된다.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서는 산업가와 농민이 거의 구분되지 않으나, 사업 규모가 커질수록 부유한 산업가 (부농·소부르주아)는 농업 노동자를 고용하고 농업 방식을 개선하는 반면, 빈농은 파산하여 임금 노동자로 전락한다. 인민주의자들은 공업 농업의 결합이 ‘인민 생산’의 정상적 형태라고 주장했으나, 실제 역사적 과정에서 이는 자연 경제의 잔재이거나 자본주의적 발전 속에서 농민층 분화와 수탈을 매개하는 다양한 과도적 형태로 나타났다. 이러한 중세적 장벽과 신분적 구분에 갇혀 있던 자본주의 이전의 농촌 경제는 자본주의의 침투와 경쟁, 그리고 상인 자본과 화폐 경제의 발전 속에서 산산조각이 나며 거대한 국가 시장 및 세계 시장으로 통합되었다.


 

제6장 공장제 수공업과 가내 공업


 

공장제 수공업 (매뉴팩처)은 다수의 노동자가 작업장에 모여 체계적인 분업을 수행하는 자본주의 초기 단계의 생산 형태이다. 제조업은 대규모 기계 산업으로 완전히 전환되기 전 단계로, 여전히 수작업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이로 인해 도시 수공예와 농촌의 가내 노동 (재택 공장 노동)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대자본이 원자재 구매와 전국적 시장 판매를 통제하면서 수많은 무산 노동자 대중을 지배하는 구조를 형성한다. 경제 문헌과 공식 통계는 가내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수공예 산업’으로, 작업장의 노동자를 ‘공장’으로 인위적으로 분리하여 과학적 현실을 왜곡했으나, 실제로는 단일한 자본주의적 제조 체계의 일부이다.


직조 및 섬유 산업


면직, 견직, 양모 등 직조 산업은 대자본가들이 원자재를 대량 구매하여 자체 작업장에서 가공하거나 수공예 농민들에게 가내 노동으로 배분하는 방식으로 조직되었다. 이바노프 (블라디미르) 같은 대규모 비농업 제조 중심지가 형성되었으며, 직조공들은 토지와 분리되어 자본가에게 완전히 예속된 프롤레타리아 인구로 전화되었다.


가축 및 축산물 가공 산업 (가죽·모피·신발)

 

보고로드스코예 (니즈니노브고로드), 킴리 (트베리), 사라풀 등지에서는 무두질, 신발 제작, 모피 가공 등이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적 제조업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대자본가들이 연쇄 무두질 공장과 대규모 작업장을 소유하고, 수많은 외부 노동자와 가내 노동자들을 지배하며 도시적 생활 양식을 지닌 숙련된 장인 및 노동자 인구를 배출했다.


금속 가공 및 기타 제조업 (파블로보·툴라 등)

 

자물쇠와 칼붙이 (파블로보), 사모바르 및 아코디언 (툴라), 단추 및 빗 제작 등은 엄격한 분업에 기반한 수작업 생산과 가내 노동이 결합된 대표적 제조업 형태였다.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 (14~18시간)과 물품 대금 지불 등 극심한 착취가 자행되었으며, 대자본의 지휘 아래 수많은 소규모 생산자와 가내 노동자들이 단일한 생산 기계의 부품처럼 포섭되었다.


제조업은 기계 대공업으로 완전히 전환되기 전 단계로 수작업 생산을 기반으로 하며, 분업의 발전과 확장이 매우 느리게 진행되어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동안 그 형태를 유지한다. 생산 과정을 가장 단순한 세부 작업으로 분할하는 분업은 향후 대규모 기계 생산을 도입하기 위한 필수적인 준비 단계이자, 숙련된 노동자를 양성하는 기초가 되었다. 제조업의 세부 분업은 높은 수준의 기술 (기교)을 발전시키는 한편, 노동자들의 신체를 기형적으로 만들고 (척추 굽음, 가슴 발달 저해 등) 극심한 착취와 불구 상태로 내몰았다.


지역적 분업과 공업·농업의 분리로 인해 원자재의 가용성과 운송 비용의 제약으로 인해 특정 지역이 특정 제품 생산을 전문화하는 영토적 노동 분업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제조업이 발전하면서 주민들이 농업을 완전히 포기하고 상업·산업적 성격에 정착한 비농업 중심지 (도시 및 산업 마을)가 형성되었다. 제조업은 소규모 수공업을 완전히 소멸시키지 못하고 주변 마을의 농민-공업가들을 포섭하며, 대규모 기계 산업으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성격을 지녔다.


제조업 단계에서는 대공장 소유주가 원자재 구매, 도매 판매뿐만 아니라 소주주와 가내 노동자들에게 자재를 유통하고 제품을 매입하는 상인 자본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자본가들은 작업장 건설 비용을 줄이고 시장 변화에 즉각 대응하기 위해 수많은 농촌 무산자들에게 가내 노동을 배분하였고, 이는 ‘발한 체계 (생체 체계)’, 식량 지급 체계, 채무 노예제 등 가장 가혹한 착취를 낳았다.


공식 통계와 인민주의자들이 ‘수공예 산업’으로 분류한 대다수의 영세 노동자들은 실제로는 자본가에게 완전히 종속된 200만 명 이상의 자본주의적 가내 노동자 및 임금 노동자 대중이었다.



제7장 대규모 기계 공업



마르크스가 지적했듯 대규모 기계 공업은 생산을 위한 기계 체계의 도입이라는 자본주의의 가장 높은 발전 단계에서 성립한다. 공장제 수공업에서 기계 공업으로의 전환은 수세기 동안 축적된 장인의 수작업 기술을 파괴하는 완전한 기술 혁명이다.


인민주의 경제학자들은 순진하게 자본주의를 단순히 공장 산업과 동일시하고, 공장 통계에만 의존하며 자본주의의 역사적 사명을 파악하려 했다. 그러나 초기 공식 공장 통계 (상무제조부 및 주지사 보고서 등)는 명확한 기준 없이 소규모 장인·수공예 시설, 제분소, 가내 노동자들까지 무분별하게 ‘공장’으로 합산하여 실제보다 수치를 심각하게 과장하거나 왜곡했다.


섬유 및 면직물 산업

 

면방적과 직조 분야에서는 동력 직기와 증기 동력의 도입 등 대규모 기계 생산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다. 다만 초기 통계는 가내 노동자와 공장 노동자를 혼재시켜 실제 대규모 기계 공장 노동자의 성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우랄 산맥은 농노제의 잔재 (토지 무상 임대 등을 통한 저임금 구조, 구식 내풍로 사용 등)가 자본주의 전성기까지 이어지면서 기술적 후진성과 침체에 빠졌다. 남부 광산 지역 (도네츠 문지 등)은 전통과 신분적 구분을 타파하고 세계 자본과 기계 설비를 적극 유입하여,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폭발적인 속도로 철강 및 석탄 생산을 증대시켰다. 바쿠 등 코카서스 지역의 석유 생산은 미국산을 대체하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자본주의 발전은 개인적 소비재보다도 생산 수단과 연료 같은 생산적 소비새 생산 부문에서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되었다.


1865년에서 1890년 사이 유럽 러시아의 공장 노동자 총 수는 약 50만 명에서 84만 명 이상으로 65% 증가했으며, 광부 수는 2배 이상 (107% 증가), 철도 노동자까지 포함할 경우 대규모 자본주의 기업의 노동자 수는 25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나 일반 인구 및 도시 인구 증가율을 크게 상회했다. 인민주의자들은 공식 공장 통계가 수공예 시설과 가내 노동자까지 무분별하게 포함하여 부풀려졌다는 점을 악용하거나, 전체 인구 대비 공장 노동자의 비율 (약 1% 등)만 강조하며 자본주의의 발전 가능성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성장을 의도적으로 축소·왜곡했다. 1897년 인구 조사를 바탕으로 분석할 때, 러시아 전체 인구는 농업 인구 (농민층 내부의 부농·중농·빈농/무산층 분화)와 상업·산업 인구 (대부르주아, 소부르주아, 그리고 다수의 프롤레타리아 및 준프롤레타리아트)로 확고하게 계급 분화가 이루어진 자본주의 사회였다.


증기 기관의 총 마력 용량은 16년 만에 3배로 증가했으며, 특히 상트페테르부르크·모스크바 외에 폴란드 (페트로코프)와 남부 (예카테리노슬라프) 등 신흥 산업 중심지가 급부상했다. 개인 소비재 생산보다 철도, 광업, 야금 등 생산적 소비재 (생산 수단)를 생산하는 산업이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전체 공장 수 대비 100명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한 대형 공장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1890년에는 전체 공장 노동자의 71%, 생산량의 57% 이상을 집중시켰다. 광업 부문에서는 100명 이상 고용 기업에 전체 광부의 84.5%가 집중되는 등 극심한 생산 집중 현상을 보였다.


도시뿐만 아니라 농촌 공장 중심지 (오레호보 주예보 등)로 산업이 빠르게 확산되었으며, 농촌 지역의 대규모 공장들은 고립된 외딴 지역까지 깊숙이 침투하여 농민들을 거대한 자본주의적 임금 노동자 대중으로 흡수했다. 이러한 연료 및 건설 산업의 자본주의화로 인해 목재 산업은 노예적 조건과 가혹한 착취 속에 최저 임금의 농촌 프롤레타리아트를 양산했고, 도시 및 철도 건설 호황에 따른 건설 산업은 100만 명 이상의 이주 건설 노동자층을 형성하며 새로운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의 발전을 가속화했다.


인민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노동자와 토지를 완전히 분리하지 못했다고 주장했으나, 모스크바 위생 통계 (데멘티예프의 조사) 등 실증적 자료에 따르면 수동 공장 노동자와 달리 기계화된 대규모 공장 노동자들은 토지 (농업)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고 정규직 공장 노동층을 형성했다. 대규모 기계 산업은 세대를 이어온 공장 계보를 지닌 무산 노동자 (프롤레타리아트)를 창출했으며, 대형 공장일수록 연중 가동 일수가 길어 (평균 연간 253일 이상) 이들을 전통적인 가부장적 농업 및 생활 전통으로부터 완전히 영구적으로 분리시켰다.


소규모 상품 생산 (농민 산업), 자본주의적 공장제 수공업 (매뉴팩처)), 대규모 공장 및 기계 산업은 서로 단절된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연관된 연속적인 발전 단계이다. 사바 모로조프 같은 대다수 거대 공장주들 역시 과거에는 가장 영세한 소규모 수공예인이었다.


기계 체계의 진화로는, 소규모 상품 생산은 태곳적부터 이어져 온 원시적 수작업 기술과 전통적 농민의 가공 방식을 유지한다. 공장제 수공업은 분업을 도입하여 기술적 변화를 가져오나, 여전히 수작업에 기반하여 발전 속도가 느리다. 대규모 기계 산업은 수작업 기술을 압도하고 과학을 체계적으로 적용하는 근본적인 기술 혁명을 일으킨다. 소규모 생산 단계에서는 대자본이나 프롤레타리아트가 미미하나, 제조업 단계에서 양극화가 진행되며, 대규모 기계 산업에 이르러 모든 저해 요인이 사라지고 자본주의적 모순이 극점에 달한다. 좁은 지역 시장을 상대로 하던 소규모 생산은 비교적 안정적이나 기술 정체를 수반한다. 반면 전국적·세계적 시장을 상대하는 공장제와 기계 공업은 호황과 불황의 순환 속에서 극심한 불안전성과 대규모 실업자 예비군을 창출한다.


소규모 산업가들은 농민적 외양을 유지하나, 제조업을 거쳐 대규모 기계 산업에 이르면 농업과 완전히 분리되어 전통적 삶의 방식과 단절된 정규직 공장 노동층 (프롤레타리아트)을 형성한다. (모스크바 위생 통계 등에서도 기계화된 공장일수록 토지로 돌아가는 비율이 급감함을 증명함) 대규모 기계 산업은 낡은 가부장적 고립을 파괴하고 전국적인 인구 이동성 (이주 노동)을 창출하며, 노동의 사회화에 따른 여성과 청소년의 사회적 생산 참가를 촉진한다.


국내 시장의 확대로 인해 생산 수단과 연료 등 생산적 소비재에 대한 수요와 개인 소비재 시장을 동시에 폭발적으로 확장시키며 인구를 농업에서 상업·산업 부문으로 전면적으로 전환시킨다.


 

제8장 국내 시장 형성


 

러시아의 철도 체계는 1865년에서 1890년 사이 7배 이상 증가했으며, 철도 운송량과 수상 운송량, 외항선 수용량 역시 비약적으로 폭증하여 전국적인 상품 유통과 국내 시장 형성의 물리적 기반을 다졌다. 도시 인구는 농촌 인구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증가했으며, 특히 5만 명 이상의 대규모 산업 중심지로 인구와 자본이 급격히 집중되었다. 중부 농업 지역의 과잉 인구가 남부·동부의 새로운 외각 지역으로 대거 이주 (식민화)하면서 새로운 농업 인구와 시장을 형성하는 동시에, 비농업 이주 노동자 (500만~600만 명 이상)가 급증하여 자본주의적 임금 노동 계급을 다수 배출했다.


농업, 공장, 광산, 철도, 건설, 목재 등 제반 부문에서 성인 남성 노동자의 절반 가량이 임금 노동에 종사하게 되었으며, 이들은 토지와 완전히 결합된 상태에서 점차 분리되어 자본주의적 실업 예비군 (상대적 초과 인구)을 구성했다. 중앙 농업 지역의 저임금 노동력이 자본주의적으로 발달한 남부·동부 외곽 지역과 대도시·산업 주(州)로 유입되면서 화폐 경제가 자연 경제를 대체하고, 농촌과 산업 전반에서 자본주의적 관계와 임금 노동 시장이 확고하게 뿌리내렸다. 중부 지역의 대형 공장들은 기존 시장의 한계를 넘어 남부 노보로시야, 북코카서스, 시베리아 등 신흥 식민지 지역으로 시장을 급속히 확장하며 세계 상품 유통 영역으로 편입시켰다.


이러한 수작업 생산을 압도하는 사회적 노동 생산력의 발전 (기계제 대공업 도입)으로 분산된 소규모 경제를 통합하고 전국적·세계적 규모로 노동을 집중시키는 노동의 사회화 (개인적 종속 관계 타파, 인구 이동성 창출, 산업 중심지 확대, 국민 사고방식의 변화)가 이뤄졌으며, 자본주의 발전은 호황과 불황, 부문 간 불균형 속에서 진행되며, 낡은 가부장적 제도를 파괴하는 동시에 극심한 사회적 모순과 노동자 계급에 대한 착취를 심화시켰다. 인민주의자들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객관적 발전 과정을 오해하고 왜곡하여 공상적이고 소부르주아적인 시각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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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 『러시아 자본주의 발전』은 레닌의 문체를 최대한 살리면서 가독성을 높였다. 초기 수작업으로 진행했던 기록을 그대로 보존했다. 기존 김진수 역본 (태백)에 비해 미진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원문의 결을 복원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수작업의 의의를 담은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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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체제와 반동적 범죄의 구조적 실태


자본주의 체제와 고도의 범죄율 사이에는 매우 높은 상관관계가 존재하며, 이는 과거 여러 혁명 이론적 저술에서도 입증된 바 있다. 특히 현대 사회에 이르러 발생하는 ‘묻지마 범죄 (이상동기 범죄)’는 세대를 막론하고 전방위적으로 출현한다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반동적 범죄의 실상은 가해자 개인의 비도덕적 일탈이나 심리적 이상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으며, 정치경제학적 구조 요인으로 접근할 때 비로소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정치적·경제적 변동이 극심해질수록 범죄 양상이 급격히 증폭하는 까닭은, 시장 경쟁 구도에서 밀려난 취약 고령층의 계급적 몰락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의 경우 66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이 40% 내외에 달하며, 2024년 경찰청 범죄 통계에서는 60세 이상 고령층 피의자 비중이 18.8%를 기록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20대 피의자 비중을 추월했다. 특히 최근 5년간 71세 이상 고령층의 절도 범죄가 약 68% 폭증한 지표는, 사회적 생산 기구에서 배제된 고령층이 생존을 위협받는 현실을 단적으로 입증한다.

 

자본주의 체제 내 계급 간 경쟁이 심화할수록 구조적 가장자리에 몰린 이들일수록 범죄 조건에 취약해진다는 점은 명백하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모순적으로 감옥을 선택하는 생계형 범죄나,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를 낳는 ‘묻지마 범죄’는 모두 이들의 경제적 취약성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나아가 정치적 변동 속에서 이들이 구조적 격차를 체제적 층위에서 자각하고 혁명적 동력으로 전환할 계급 의식 능력을 상실했다는 점을 드러낸다. 실업 상태에 처했거나 정년퇴직자, 혹은 장기간 노동 시장에서 이탈해 있는 ‘룸펜’ 상태의 집단에서 나타나는 범죄율 상승은 단순히 가해자가 일으킨 법적 불안정 상태로만 볼 수 없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 내 정치적 지형 및 기존 법적 조치의 한계를 드러내며, 부르주아적 국가 기구가 방관해 온 공권력과 경찰력 통제의 근본적 한계를 명확히 수렴한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정년퇴직이나 신체적 노화로 노동 생산성을 상실한 고령층은 ‘상대적 잉여 인구’로 전락한다. 부르주아 국가 기구의 부실한 제도적 안전 기구만을 제공함에 따라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의도적으로 법적 불안정 상태를 야기하기도 한다. 법무부 수용자 통계에 따르면 교도소 재소자 중 저소득층 및 무직자의 비율이 70% 이상을 차지하며, 65세 이상 수용자 수 역시 최근 10년 사이에 2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형벌 기구여야 할 교도소가 모순적으로 최소한의 의식주와 의료 보장을 제공받는 ‘대체 기구’로 전락했음을 보여주는 ‘빈곤의 사법화’ 현상이다.

 

한편, 장기 구직자나 실업자로 구성된 ‘룸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증가는 무동기 범죄의 직접적인 동인으로 작용한다. 자본주의 노동 시장에서 배제되어 파편화된 개인들은 공동체적 연대나 조직화의 기회를 잃고, 체제 모순을 자각하여 혁명적 동력으로 전환할 계급 의식을 상실하게 된다. 대검찰청과 경찰청의 이상동기 범죄 피의자 분석에서도 가해자의 70% 이상이 장기 무직이나 일용직 상태였으며, 극심한 사회적 고립에 처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매체로 인해 가중되는 상대적 박탈감과 사회적 배제 속에서, 체제 모순의 원인을 정확히 타격하지 못하는 이들의 분노는 불특정 다수나 무고한 대상을 향한 무차별적이고 반동적인 폭력의 형태로 일그러져 분출된다.

 

이와 같은 자본주의적 범죄 원리는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주요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동일하게 포착된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전체 형법범 중 65세 이상 비율이 20%를 상회하며, 출소 후 생계 수단이 없는 고령층이 식료품을 훔쳐 교도소로 재입소하는 생계형 절도 (만비키) 현상이 고착화되었다. 동시에 사회적 노동 시장에서 완전히 탈락한 장기 은둔·무직 계급이 자행하는 길거리 무차별 난동인 ‘토오리마’ 범죄가 지속적인 사회적 위협이 되고 있다. 미국 역시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적 계급 분화와 취약한 의료 보장 체계로 인해 노년층의 의료비 파산 및 생계형 범죄가 급증하고 있으며, 사회적 소외와 총기 유통이 결합하여 연간 수백 건의 무차별 대량 총기 난사라는 치명적인 형태로 발현되고 있다.

 

결국 현대 사회에서 분출하는 노인 범죄와 묻지마 범죄는 자본주의 체제 내의 정치적 지형과 국가 사법 기구가 지닌 근본적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국가 기구가 계급적 분화의 구조적 원인을 도외시한 채 경찰력 강화나 형벌 수위 상향과 같은 응징적 통제 조치에만 의존하는 것은 부르주아 기구의 방관이자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사회적 생산 기구에서 밀려난 잉여 인구와 룸펜 계급의 범죄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법적 통제에 머무르는 대신, 세대를 아울러 정치경제학적 비판적 층위에서 사회적 생존 보장 체계를 재건하고 계급적 배제와 분화를 해소하는 혁명적 변혁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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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와 민족 문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제기될 때, 그것은 결국 ‘국가’라는 틀로 포섭된다는 근본적 한계를 지닌다. 그러나 이 국가의 본질이란 추상적인 언어적 담론에서 벗어나는 순간, 특수한 문제에서 보편적인 문제로 변질되기 마련이다. 우리가 ‘한국인’이라 칭할 때의 국적은 사실상 민족의 일환으로 작용하는 한계를 지님과 동시에, 부르주아 국가인 ‘대한민국’으로 수렴된다는 한계를 함께 가진다. 마르크스주의가 투쟁해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다.

 

이와 관련하여 스탈린, 『마르크스주의와 민족 문제』는 이론적으로 참고할 만한 대목을 제시한다. 이는 사회민주주의적 한계를 직시하게 함과 동시에, 계급 투쟁적 관점에서 ‘민족 문제’가 정체성으로 고착화되는 순간을 포착해낸다. ‘한국인’에 대한 추상적 담론에 머무는 사회학자들의 편견 어린 시선과는 달리, 마르크스주의자는 적극적으로 국제주의를 지지하고 인터내셔널의 대의를 옹호하는 한에서만 자신의 당위성을 증명할 수 있다. 이는 당 내부의 사정에 기인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핵심은 부르주아 국가 체계로 포섭되는 현상에 맞서 노동자 국가의 방향성을 현실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라는 중대한 논의의 출발점이 된다는 데 있다.

 

이 문제는 비단 한국인의 정체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피식민지 및 제3세계의 민족의 경우에도 ‘민족 문제’로 발생하는 제반 분쟁에 대한 해석은, 결국 부르주아 질서로 포섭된 국적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단순히 ‘지지 표명’에 그쳐서는 안 되며, 현상의 전개가 ‘자본주의적 객관적 본질을 얼마나 포착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민족 문제는 단지 언어적 구상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현상과 결합된 사회·정치적 본질이라는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서 출발해야 옳다.

 

특히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오류가 중첩되어 폐쇄적인 사회배외주의로 낙오하거나 수정주의적 변절로 이어지는 경향이 다수 포착된다. 자본주의 국가 내 갈등이 심화되는 현 상황일수록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국제주의적 노력이 필수적이다. 여기서 스탈린, 『마르크스주의와 민족 문제』를 언급하는 이유는 강력한 국가 통제에 대한 원칙을 지지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국제주의적 비판점을 명확히 하여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탈피하고 전 노동 계급으로 합류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자본주의 국가에 종속된 노동 계급이라는 공허한 모순을 지적하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주체가 되는 국제 질서를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할 필요성을 증명하는 일이다.

 

‘국민성’과 ‘민족 자결권’을 다룰 때 주의해야 할 점은, 피억압 민족의 해방 투쟁에 대한 단편적인 지지 표명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민족 해방 운동은 혁명 투쟁의 진전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를 철저히 유념할수록 자국 내에서 발생하는 계급 분화 현상을 우선적으로 목격하고, 그 전개 과정을 파악·분석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는 관념론적 수사와 절연함과 동시에, 노동 계급의 실질적 단결을 위한 당면 과제에 집중함을 의미한다.

 

“자국의 민족 문제란 곧 프롤레타리아 국제 문제이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시사점이다. 국가 권력이 자행하는 노동 계급 탄압과 운동 저지, 그리고 과거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선진적 노력을 왜곡·폄하하는 시각에 대해서도 단호히 투쟁해야 한다.

 

현대의 ‘인민의 벗’들이 보여주는 ‘철학의 빈곤’은, 마르크스가 『철학의 빈곤』에서 비판했던 소부르주아적 경향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 결과 국가 내부에서의 관료주의적 타협, 그리고 농촌·농민 내부의 계급적 분화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전근대적 시각을 반복할 뿐이다. 독립과 민족 해방이라는 틀에 갇혀 노동 계급 투쟁의 전말을 직시하지 못하는 현대 ‘인민의 벗들’에 대한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반동적 계급 시각을 습관적으로 답습하는 부류를 끊어내지 못하고 방관하는 당파적 한계 극복을 위해서라도, 부르주아 경제의 실체를 국내 정세에 연관하여 깊이 분석해야 한다.

 

행동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이론적 분석을 소홀히 할 경우, 운동은 결국 관념론적 단상에 그치고 만다. 현대 사회로 진입할수록 산업 발달의 조건은 한층 선진화되었음에도 이론이 도리어 후퇴하는 이유는, 민족 문제를 여전히 부르주아 국가의 시각 내에 국한하여 해석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시각과 단호히 절연해야 한다. 

 

코민테른과 인터내셔널의 역사적 의의를 되짚지 못하는 자들, 자본주의 체제 내에 안주하며 전 인민의 노동 해방 투쟁을 방해하는 ‘문명자’들의 체제 타협적 습관이야말로 가장 노골적인 노동 계급에 대한 배반이자 질타이다. 이는 ‘타협주의’이자 ‘수정주의’에 고착된 체제 안주적 태도일 뿐이다.

 

인민을 대변한다는 명목의 공화국에서조차 민족성만을 강조한 채, 인터내셔널의 취지와 국제 노동 계급의 단결을 호도하고 실패한 역사를 되풀이하는 ‘어리석은 노인’들의 정치는 현대 ‘인민의 벗들’이 보여주는 노동 해방 각오조차 무기력한 ‘이빨 빠진 호랑이’에 불과하다. 이는 한국 인민 사회에서 ‘수령제’가 보여주는 또 다른 형태의 무산 계급 분단적 비극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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