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4. 16.


스탈린주의라는 왜곡에 대해서

 

국내에서는 구 소련 아래에서 스탈린주의를 암묵적으로 따르는 이론을 많이 접할 수 있다. 현대적으로는 역사에 있어서 마르크스주의도 많은 변모 과정들을 거쳐왔다. 일부 스탈린주의를 따른 사람들 가운데로는 경도된 페미니즘으로 치우치면서부터, 좌익 공산주의에 대한 논리를 두둔하거나 많이 수용해왔다는 점이다. 정작 마르크스주의 우익과도 결탁한 좌익 논리를 숨긴 채로 멕시코에서 스탈린주의에게 죽임을 당했던 트로츠키를 비방하고, 은폐하고자 했다. 오히려 막무가내로 수정해서 역사 왜곡으로 고치고는 무임승차한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스탈린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은 학자나, 좌익 관점들에 대해서는 보다 '특수하게' 다루고자 한다. 그러므로 참된 노동자들이라면 지배계급들에 대한 논의에만 치중된 정치관에 대해서도 역사적 왜곡들을 일국적으로나, 또는 다양해서 많거나, 잡다하고, 연속적이라 수정된 구성체에 대해서는 앞으로 매우 비판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왜 한국 전쟁이 아니라 내전인가.

 

 

- 스탈린 반동 정권.

 

- 후퇴하는 소련 경제.

 

- 스탈린주의와 아류들.

 

- 제국주의 내전.

 

 

스탈린 정권에서는 레닌 사후로부터, 소련 공산당과 한반도를 둘러싼 한국 전쟁 간의 긴장, 그리고 미국과 대륙 간의 서열 대결과 내전 구도 양상, 제국 간 침략 전쟁으로 인한 소련 경제 퇴보와 후퇴, 그리고 반동화된 소련, 독일과 평화 협정 체결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 권력에 대한 대의 배신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스탈린식 변증법 유물론 논리에서 모순과 오류도 진단할 수 있다. 스탈린과 독소 전쟁을 중심으로 자료를 조사하고 설명을 도출할 수 있다. 그리고 공산권 국가라는 북한에서 한국 전쟁을 중점으로 둔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 전쟁을 단순 침략 전쟁이 아니라 국가 대항전이었고, 또한 제국주의 아래에서 진행된 내전으로 본다. 그리고 한국도 임시정부를 저버리고, 이승만 독단 정치로 나갔으므로. 오히려 미군과 같이 친일 행적과 다름 없는 미화된 부르주아 독재 국가이자 파시스트를 지지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발을 감행한 쪽은 오히려 유럽 파시스트와 제국주의로 편승한 미군정과 남한이다. 그들은 아직도 김구와 같은 민족 운동가를 암살하고는 미화된 정부를 예찬하고, 또한 애국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갈수록 매우 오래된 선입견과 편견을 믿음으로 고수한 주관적인 사례로만 드러날 뿐이다. 그리고 제국주의와 투쟁하던 다른 나라들에서도 큰 피해와 손실을 보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는 레닌 사후 소비에트에 대해 더욱 묻고자 한다. 스탈린이 활동했던 시기는 20세기였던 1900-1950년이다.

 

1. 스탈린 집권 시기에는 역사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고, 제국주의 세계 속에서 전쟁은 어떻게 펼쳐졌는가. 레닌 사후로 소비에트는 어떤 상태였는가. 스탈린 전집과 선집도 있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번역된 주요한 저작으로는 무엇이 있는가. 그리고 스탈린 저작들 가운데에서는 주로 어떠한 문제를 다루었고, 또한 중요한 부분들은 무엇이 있을까. 스탈린에 대한 대표 저작으로는 <레닌주의 기초와 여러 문제>, <사적 유물론, 변증법 유물론, 마르크스주의 언어학>이 있다. 그렇다면 <레닌주의 기초와 여러 문제>는 어떤 문제를 안고 있고, 스탈린은 무엇을 주로 지적했는가. <사적 유물론, 변증법 유물론, 마르크스주의 언어학>에서 주요한 논점은 무엇인가.

 

2. 스탈린주의자들로는 누가 있는가. 그리고 어떠한 철학과 논리를 배경으로 구사하고 있는가. 스탈린은 어떤 특징을 소지하고 있는가. 스탈린에 대해서는 어떤 주장을 내세울 수 있을까. 스탈린 주변 관계는 어떠했으며, 주로 같은 시기에 혁명가들은 스탈린에 대해 어떻게 봤는가. 그리고 코민테른과 제2인터내셔널에 대한 관계는 어땠는가. 트로츠키에 대해 너무나 많은 의식을 해왔고, 동지가 아닌 주적이라고 바라봤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소련을 반동 국가로 만들었다. 스탈린은 소비에트 정권을 탈취했고, 민족 간 전쟁으로 맞섰다. 마르크스는 노동 계급들에게 국가는 없다고 했지만, 스탈린은 레닌을 추종하기만 했지 정작 마르크스를 잘 배우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3. 레닌은 분트 문제를 어떻게 보았고, 스탈린과 달랐는가. 룩셈부르크, 그람시, 트로츠키도 소련 경제에 대해서는 어떠한 평가를 내렸는가. 스탈린은 <마르크스주의와 민족 문제>에서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 스탈린은 볼셰비키를 저버렸다. 스탈린은 왜 당시 자국 지배자들과 민족 간 전쟁으로부터 협상하고자 했는가. 스탈린은 왜 레닌을 추종했을까. 그리고 스탈린은 어떻게 레닌에 대한 대의를 저버렸는가. 스탈린은 트로츠키를 암살했다. 스탈린과 트로츠키는 소비에트 경제를 어떻게 보았는가. 그렇다면 소비에트 후임으로는 누가 있었을까. 그리고 어쩌다 소비에트는 왜 붕괴했는가.

 

4. 스탈린 집권 뒤로 소련 공산당은 어떻게 붕괴했고, 해체됐는가. 스탈린주의로부터 미화된 혁명가들에 대한 초상. 그리고 현실사회주의 붕괴에도 기여했던 반동적 그늘. 그리고 허황된 논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간과하기 쉬운 점이란, 우리는 트로츠키주의 미명 아래에서 레닌을 계승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억측이라고 밝힌다. 왜냐하면 역사란 소련에서도 마찬가지로 권력 계승에 대한 문제로 일단락할 수도 없고, 또한 무산 혁명에 대한 기여도 있기 때문이다.

 

5. 그러나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시각들도 매우 변증법으로는 체계적이지도 못하고, 협소하게 볼 소지가 다분하게 있어 보인다. 그리고 모든 국가를 공산권에 대한 비판에만 몰두한 나머지 내부 투쟁을 까먹고는 부르주아 국가로 한정하거나 지배계급으로 오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자국인들은 프롤레타리아트 국가를 이룩하고자 투쟁하고 있고, 또 더욱 새로운 조직으로 결사를 벌인다는 점을 잊을 수는 없다. 따라서 모든 편집된 그러한 저작들만으로 레닌마저 수정하고, 반동화하는 일에 대해서는 무산 혁명으로 비판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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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6.


프랑스 운동이라는 실패한 유산

 


프랑스에서 일어난 68 운동은 과연 혁명이었는가. 어째서 재벌 철학과 함께했는가.

 


구조주의

 

만개한 유럽 마르크스주의라고 불리던 기회주의이자, 수정주의 조류들도 식는다. 여태까지 부르주아라는 재벌로부터 전개한 민주주의가 우월하다고 선전하고, 또한 선동하고자 여러 논쟁들과 논의를 죄다 구조주의로 뒤바꾼다. 부르주아에게 공산주의도 실제로는 무산 계급 없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아류이다. 유럽 모든 학계에서는 이와 같은 관념 철학이라는 망령이란 바로 부르주아 지식인들, 재벌과 자본가를 위해 그리고 은밀하게 자본주의를 또한 옹호하고 결탁한 마르크스주의를 벗삼아서 말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전과 같이 힘 없는 중간 계급이라는 무산 혁명을 주도한다고 장담한다면 큰 오산이다. 제멋대로 해석하는 부르주아 재벌들에게 민주주의란 사회 구조와 체제를 따라 자본가를 고용하거나, 개량하고 개혁해서 변혁한다고 아직도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마르크스와 소련에 대한 전방위적인 해석으로만 치장해서 부르주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본주의를 추상적으로만 안다. 물론 그들만이 쓰는 용어로 온갖 외국어를 뒤섞고 쉽게 풀이하지도 못한 채로 뒤얽히고, 슬쩍 바꾸고 고치기만 해서는 마르크스를 실천해서 꾸준하게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노력이란 다름 아닌 머릿 속으로만 드러난 관념적인 헛수고일 뿐이라는 점이고, 또한 거짓말이라는 점을 이제는 알아야만 하겠다.

 


정신분석학

 

심리학은 퇴보했다. 그리고 부르주아 가운데 학자들도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모든 학문 영역에서는 프로이트, 라캉으로부터 새롭지도 아니고, 유물론도 아니고, 아주 낡고 오래된 자본주의를 복잡하게 비꼬아서 비평으로 방관해서 해석하고 보존하는 부르주아 이론이다. 재벌 학자들이 말하는 마르크스주의란 훨씬 고전적이고, 자본주의로부터 고정된 체제나 사회 구조로 보거나 주관적으로 해석해서 파악한다. 그리고 정작 마르크스라는 주어를 빠진 채로 방관하는 객체와 똑같다. 그렇다고 꾸준하게 투쟁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러한 안일한 태도로부터 부르주아 심리를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이란 무산 혁명에 있어서는 방관에 불과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아직도 프로이트, 라캉이라는 망령 속에서, 그리고 마르크스 유물론을 관념론으로 해석하고야 마는 어리석은 무리들도 이익 집단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에서는 심리학마저 부르주아를 위해 기능한다.

 


후기주의 규탄

 

여기서 후기주의란 포스트모더니즘과 같다. 그렇다면 왜 후기주의인가. 바로 부르주아 종말론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직도 부르주아 간 전쟁이 일어나서 핵전쟁이 발발하면, 인류가 종말을 맞이한다는 전쟁 소설을 쓰고 있다. 그리고 상상하는 허구가 꼭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전제 아래에서 전 인류 사회는 끝날거라 봤다. 그러나 그 역시 허구였다. 왜냐하면 재벌이라는 엄연한 부르주아지 계급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본가들도 곧바로 프롤레타리아트 종말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고, 또한 파시스트, 반공주의에서 똑같은 논리를 겉으로도 보여준다. 그들이 말하는 좌우익 평화란 노동자와 자본가들에 대한 화해이자 곧 융화였고. 자본주의에서 작동하는 기계적 사고란 바로 부르주아 사고의 일부이다. 그렇다면 왜 남한 사람들은 아직도 재벌 철학에 매달리는가. 바로 마르크스를 죽은 개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서유럽, 일본, 심지어 미국에서도, 수입된 마르크스주의는 기괴하게, 변형됐다. 바로 후기 마르크스주의 때문이다. 그리고 일부 국제주의라는 '흐름'에서도 그러한 전통들은 마르크스 저작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계급적 관계를 잘 고찰해보지도 않는다. 일부는 식민지 영국관을 추종하거나 기반해서 마르크스주의 이론들을 그대로 수입했다. 그래서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론으부터가 아닌,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보다 철저하고, 꼼꼼한 검토와 국내 변증법으로 비판하고 종합한다. 따라서 무산 계급들은 언제나 먼저다. 그래서 정치경제학이라는 논의와도 무관할 수 없다. 필자도 주로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여러 논의를 제안하고자 한다. 수입된 기회주의 조류는 혁명이라 칭하는 수정주의, 교조주의, 심지어는 배외주의와도 같다. 따라서 맞서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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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5. 


개론

 

파시스트에 관한 연구와 자전적 <투쟁>이 담긴 한계를 분명하게 짚는다.

 

참고인.

 

조르주 소렐, <폭력에 대한 성찰>, <진보의 환상>

구스타브 헤르베, <반애국주의>

무솔리니, <나의 자서전>

히틀러, <나의 투쟁>

칼 슈미트, <헌법과 정치>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미시마 유키오, <미시마 유키오 대 전공투>

이광수, <무정>

 

파시스트 연구 자료

 

- 식민지 근대화론

 

국내

 

김장수, <19세기 독일 통합과 제국의 탄생>, <비스마르크>

김기흥, <히틀러와 장애인>

 

카차 호이어, <피와 철>

윌리엄 L. 샤이러, <제3제국사>

디트릭 올로, <독일 현대사>

스테판 로란트, <철과 피와 제국>

루시 휴스핼릿, <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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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2. 14


여성주의

 

공산주의를 위한 토론에서 부르주아 자본가들은 어떻게 구조화됐는가.

 

부르주아 의제로부터 수정주의는 현대에도 잔존하는가.

 

2. 페미니즘은 왜 부상할 수 있었고, 그리고 실질적으로 노동 여성들에게 유익한가.

 

3. 법안 요구안들, 임신중절권, 낙태 폐지, 건강법, 차별금지법 등은 과연

민주주의 요구를 내용으로 삼는가. 그리고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 기능을

더욱 공고화하게 한 또 다른 원인이자 원흉은 아니던가.

 

4. 마르크스주의를 일부 여성 운동가들도 어떻게 오염하도록 하고, 훼손하는가.

그리고 매우 작위적이거나, 인위적이었는가.

 

5. 해당 이론들도, 어떠한 점에서 반동적일 수 있다고 보는가.

맞다면 학술가들은 왜 그러한 논의를 민주주의라고 착각하는가.

좌우파를 비롯한 진보적이라고 불리는 의제들도

때로는 커다란 의미로는 매우 반동적일 수 있음을 시사하지는 않는가.

왜냐하면 체제 전환에만 몰두하느라,

경제학 분석을 부정하고는 변화로부터 맞서기를 부정하는가.

그리고 오히려 왜 수정주의는 교조주의적인가.

 

- 여성 의회주의도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 기원>을 두고는 가부장제 비판으로만

해석했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노동 계급에 대한 문제도 가볍게 여기거나,

놓치고는 말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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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8. 19.


2012년도, 정치경제학 대담. 김수행론 및 대학가에 활성화된 중상주의 비판.

 

한국 정치경제학사에 대한 대공황 고찰.

 

김수행의 속류경제학 비판을 중심으로. 자유로운 개인들의 해체. ‘사회화’된 개인들의 모임.

자료조사.

 

1998년에는 IMF 외환공황이 있었다. 1980년대에는 한국사회에서는 변혁운동을 중심으로, 주도세력들로 이뤄졌었는데, 이들은 주로 운동권들이었다. 한국에서는 주로 대학가를 중심으로 지배층 학자들도 있었다.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를 이론으로만 다뤘고, 현대 자본주의를 분석했다. 2000년대에도 세계대공황은 발생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생산수단, 교환수단으로부터 현대 지배계급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부정하고, 지가반성들도 뒤떨어졌다.

 

미국에서는 윌스트리트 점령 운동도 있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부터 자산시장으로부터 자유시장경제는 붕괴됐고, 금융시장은 신용위기나 해외 주택 투기들로 외환시장과 유출된 위기, 국가부채 위기, 실물은행 위축, 금융체제 붕괴, 자본주의를 체제라는 역사적 자취로 볼 때 1873년에도, 경제대불황은 있었고, 1929년에는 세계대공황도 발생했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고르바초프와 소련 체제는 막을 내렸고, 한국 대학가 세대들도, 암울하게 전개될 자본주의 발전을 두고 논의했다. 2007-2009년 금융시장에 따른 세계위기, 심화된 주택 투기로 인한 미국과 세계 금융시장 붕괴들도 발생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자본가들은 유령회사를 인수해서, 투기한 사건들도 있었다. 2008년에는 세계경제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학자들은 유로존 위기와 정부정책들만 비판했지, 실제로 제국주의와 전쟁에 따른 위협들, 아프가니스탄, 걸프전 참전에 대한 논의를 깡끄리 무시했다. 참된 마르크스주의자라면 자본주의를 단지 체제결함으로 인한 개혁적 비일관성으로 몰거나, 지적할게 아니라, 체제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모순들을 분석하고, 나름대로 연구해야만 한다. 학자들은 마르크스 경제학을 적용했지만 그들의 논리는 정작 실제로 속류경제학과 중상주의를 비판적으로 지지했을 따름이다.

 

한국에서 공황론을 연구한 사람으로는, 정성진, 김성구가 있다. 정성진은 이윤율 저하 위기 이론을 2012년 세계대공황에 적용했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세계시장공황론도 주장했다. 한국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대공황에 대한 쟁점들도 논의했었다. 김성구는 국가자본주의를 지지했다.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를 비판했고, 금융위기와 주기적 과잉생산 결합·중첩 여러 국가에서 나타나는 대규모 구제금융은 실제로는 ‘손실의 사회화’ - ‘사회화의 손실’로 국가독점자본주의 아래에서 나타나고, 국가개입론을 펼친다. 대공황, 축적, 금융, 노동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각론을박’을 벌였는데, 대공황에 대한 기계론적 사고관을 가진 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주로 미시적·거시적인 관점에서만 대공황을 살펴봤다. 한국에서 전희상은 가치이론을 연구했다. 조복현: 거시경제의 균형소득, 결정 및 성장, 성장의 내적 불안전성과 마르크스 거시경제에 대한 논의 체계화, 총수요의 구성요소들과 결정요인들 가운데 투자의 중요성 강조, 주식투기, 산업자본가와 금융자본가의 분배대립이 투자에 미치는 영향, 거시경제와 투자이론의 확장. 김명록: 파생금융상품들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해석. 마르크스는 가공자본도 논의했다. 파생금융상품의 특징도 있고, 대공황에도 적용될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는 금융업계에 있어 파생상품들도 생산했다. 정상준: 임금노동과 화폐교환에 따른 소득분재는 왜 악화되고, 대공황에도 원인을 제공했었다. 실증경제들은 주로 미국경제지에서 발견될 수 있다. 과소소비론적 경향에 따른 공황론들의 근거에 모순을 발견한다. 분배를 강조하는 공황론은 정치적으로, 개혁주의다. -복지 부재, 포퓰리즘 및 사회복지제도의 명암. 세계자본주의는 불균등한 발전을 이뤘고, 세계대공황은 여러 국가들에서도 ‘지역연구’와 대응했다. 미국, 유로존, 스웨덴, 러시아, 한국이었다. 장시복: 2008년 9월 중순 이전 미국 금융시장 붕괴직전 단계와 정부의 불안정 해소에 따른 유출된 경제적 공급장치의 되, 자산 매입은 비관행적인 통화정책 관련된다. 연준 대차대조표상 사유재산 축적, 부채 증가, 구성변화에 따른 모순. 미국에게는 딜레마도 있다. 유승경: 과도한 복지지출에 따른 재정문제가 아닌 유로존의 제도적 결함, 신정완(자유주의): 스웨덴 복지국가 논의: 1990년대 금융위기 통화주의적 거시경제정책, 고조세, 고복지 ‘통화주의적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확립했고, 세계대공황에도 대응했다. 스웨덴은 공황을 극복했는가. 신정완은 복지국가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공황을 무시한다! 김계환: 소련 부정함. 러시아에서 1990년대 신자유주의 개혁 반발, 2000년대 중반에는 국가가 부활했고 산어정책을 대비하게했다. 이후 진행된 국가의 부활, 산업정책 대비, 러시아는 전쟁을 일으켰다. 안현호, 박도영, 류동민: 반동경제학. ‘궁핍화 테제’(?!), 박정희 이후 신자유주의적 체제 전개과정, ‘양극화 성장체제’ 박정희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기반을 마련했고(?!), 신자유주의 정책들도,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 최진배는 중상주의에 따른 서민금융기관, 신용협동조합를 내걸었다, 경제적 민주주의, 계급적으로도, 매우 지배계급을 지지하고, 속물적인 태도를 내보인다.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복지와 평화는 성장동력이 된다. 성장체제 구축. 김공회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연구했다. 자본주의에서 국가경제적 의의를 밝혔고, 복지국가의 성격을 분석했다. 복지국가는 자본의 재생산을 쉽게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 봉사한다. 무상급식은 보편적 복지, 완전한 복지라고 생각함. 물질적 근거도 있다. 자본가 내부의 이해관계 대립, 노동력 재생산 비용의 사회화와 비용에 따른 싸움들. 이강국: 세계불균형 문제만 다룬다. 주류경제학, 비주류경제학을 구분함. 신자유주의 성장체제의 모순에서 세계불균형의 근본원인을 찾는다. 주류경제학, 금융개혁에 대한 평가, 계급역관계 안에서 노동 대응 문제, ‘월스트리트 점령하기’ 정치운동성격, 대안과 구체적 실현방안, 이윤율 저하 법칙, 과소소비 이론, 금융위기론, 신자유주의와 국가독점자본주의, 주기적 과잉생산공황, 마르크스주의 위기론, 국가개입주의는 이론적 공백이다. 상품경제로 인한 자본주의경제 위기.

 

 

2007년에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발생했고, 세계경제위기도 대두됐다.

2012년 초 주요한 경제에측기관들은 세계경제는 회복된다고 전망했었다. 그러나 IMF는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012년 기준으로, 3.6%에서 3.5%로, 2013년은 4.1%에서 3.9%로 하향조정했었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올해 한국 GDP 성장률은 1/4분기 0.9%, 2/4분기 0.3%로 성장했고 3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었고, 2/4분기에는 수출과 투자는 각각 1/4%, 7%로 감소했었다. 한국은행은 GDP 성장률 전망치를 2012년의 경우 기존의 3.5%에서 3.0%로, 2013년에는 기존의 4.2%에서 3.8%로 대폭 하향 조정했지만, 상당수 경제에측기관들은 2% 미만으로 전망했었다.

 

한국경제는 2007년에서 2009년까지 글로벌 경제위기 국면에서 수출의존도가 매우 높았고, 세계경제의 방향은 더욱 결정적이었다. 한국에서는 1,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 주택가격 하락에 따른 ‘집 없는 사람’들도 급증했고, 민간소비 감소는 국내시장에서 출구를 찾기도 어려워졌다. 2009년 한국경제는 바닥을 쳤고, 또 내려간다. 세계경제는 침체에 빠졌고, 2007년 위기는 단순하게 반복되는 위기가 아니라, 1970년대부터 시작된 자본주의 체제에서 발생한 장기불황, 거대한 위기를 맞는 최종적 폭발이라는 국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2010년 뒤로는 주요한 자본주의 국가들도 강행했던 긴축정책들에 따른 총수요의 감소는 다시금 경제회복이라는 발목을 잡거나, 긴축정책들에 대한 모순들도 증명한다.

 

한국에서도 지배계급들은 재정적자와 국가채무의 누적을 핑계로 됐었고, 긴축정책을 이동했고, 미국에서 발생한 ‘리먼 사태’ 뒤로는 위축됐었던 금융자본들에 대한 권력들도 회복됐다.

 

세계경제위기를 뒤로, 케인즈주의는 부활했고, 주요한 자본주의 국가들에 타격을 가했다.

한국에 있어서는 취약한 금융들이나, 정부 위기 대처 국면에서는 적자재정 지출, ‘금융주도 축적체제’로 전환하기를 주장했거나, 일부 스탈린주의자들도, 자본주의를 위기론으로 일축했고,

교조화했었다. 과소소비론과 불균형설에 따른 절충된 출동이었을 뿐이다. 일부 케인즈주의자들은 공황에 대한 불완전한 성격을 특징으로, 과소소비론, 불균형론, 이윤율 저하론과 다퉜다.

 

주로 김성구, 채만수를 비롯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에서는 과소소비론만을 두고 공황론을 분석하기만 했다. 또한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수용했다. 당대에 스탈린식 소련 정책의 일부였던,

교육정책들과도 일치했다.

 

바란과 스위지는 1966년에 <독점자본>을 수용했다. 또한, 독점자본주의 아래에서는 독점가격이라는 아래로 경직됐기 때문에 기술혁명도 진전되어, 노동생산으로 올라오면, 생산비는 저하하면서 ‘잉여가치’는 증가하고 정체 경향으로 나타난다. 판매노력, 군비지출, 제국주의 팽창으로 흡수된다고 지적한다. 1980년대에는 한국에서도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따른 반노동 공세 아래에서 노동계급들에 대한 실질임금 상승에도 제약을 걸었었다. 곧, 주택담보대출이나 가계부채들도 생겨났고, 소비지출은 증가했지만, 독점자본을 강화하게 되면서부터, ‘독점금융자본’으로 진화됐다. 레즈닉과 울프도, 독점자본주의를 수용했다.

 

김성구, 채만수는 마르크스 공황론을 이윤율 저하 위기론이 아닌 주기적 과잉생산 공황론(산업순환론)으로 단순화한다. 2007년에도 발생했던 위기들도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른 위기가 아니라 주기적으로 초과된 생산으로 인한 공황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일부 케인즈주의자들이나, 폴라니주의자들은 자본주의에 따른 위기를 부정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지하면서, “국가의 귀환”을 처방으로 내세웠었다. 그로스만, 마틱, 야폐는 마르크스주의를 근본적으로만 해석한다.

 

사상논쟁은 극우적 사고가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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