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임종 당시 상황과 장례 여정 기록 (2024. 05. 18.)
1. 임종 발견 및 초기 현장 수습 (2024. 05. 03.)
· 사망 확인: 2024년 5월 3일, 아버지가 주위에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하신 상태로 첫 발견되었다.
· 신고 및 초동 조치: 발견 직후 13시 50분에 관련 사실을 보고 및 연락했고, 블로그에도 글을 남겼다. 이후 경찰 담당관들과 접촉이 시작되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은 본인에게 주변 연락처와 인적 사항, 그리고 고인과의 관계를 확인했다. 곧이어 과학수사대, 형사팀, 검찰 관계자까지 현장에 도착했다.
· 유족 연락: 육지에 있던 어머니와 연락이 닿았으나, 내려오는 비행기 표가 부족해 겨우 예매할 수 있었다. 비통한 상황 속에서도 사실을 최대한 잘 전달하기 위해 차분함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친척들에게도 즉시 연락을 취했다.
2. 병원 이송 및 장례 절차 논의
· 지인의 도움: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고인과의 관계들이 정리되기 시작했고, 육지에 있는 어머니를 대신해, 어머니의 지인이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 굶고 있던 본인을 안심시키기 위해 지인이 챙겨온 물과 빵을 주었고,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빵을 씹어 삼켰다. 이동하는 동안 감정에 휩쓸리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했다.
· 안치 및 장례 준비: 병원에 도착하여 검찰진단서(검시필증)를 발급받고 사망신고서를 접수했다. 장의사가 도착해 아버지의 시신을 장례를 치를 의료 병원으로 이송 및 안치했다. 장의사는 본인에게 침착하게 대처하도록 안내해주었으며, 지인이 귀가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해왔다. 처음 겪는 장례 절차였기에 구체적인 방법은 가족 및 친척들과 상의하여 결정하기로 했다.
· 사업장 정리: 사업장으로 돌아와 본인이 읽던 책들을 친척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 다락방으로 전부 옮겼다. 기존에 써두었던 글이 적힌 종이들도 모두 치웠다. 이후 붓과 먹물로 사업장 앞에 아버지를 애도하는 한자 '상(喪)' 자 두 글자를 써서 걸어두었다.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간 한문이라 정확히 무엇을 썼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3. 장례식 진행 및 운구 여정
· 장례 방향 결정: 어머니와 큰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좌절감 속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마치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두 분이 도착한 후 장의사와 연락이 닿아 삼일장을 치르기로 합의했다.
· 장지 결정: 장지의 경우 처음에 본인은 근처를 제의했으나, 친지가 없는 섬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신 산소로 아버지를 모시는 것이 맞다는 의견으로 모아졌다. 아버지가 생전에 섬 생활을 따분해하셨기에 울산 산소로 모시는 것이 바른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결정을 내린 후 셋이서 간단히 식사를 마쳤으며, 발 벗고 나서준 큰아버지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소식을 듣고 크게 놀란 어머니는 오히려 본인이 진정시켜야 했다.
· 장례식 진행: 며칠 후 곧바로 장례를 치렀다. 하루 동안 치러진 장례식은 보기에 초라해 보일 수 있었지만, 정해진 예산 한도 내에서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찾아온 조문객들의 안부를 묻고 맞절을 도왔으나, 친척들을 볼 면목은 없었다. 상복으로 양복을 입어보아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분들이 직접 찾아와 자리를 지켜주어 깊은 감사를 느꼈다.
· 영결 및 운구: 아버지의 시신과 얼굴을 총 두 번 확인했다. 두 번째 확인할 때는 아버지와 인연이 있던 사람들과 함께 모여 합창가를 불렀다. 어머니와 본인은 무신론자였지만 아버지를 위해 기도를 올렸다. 평소 친척들과 왕래가 적어 소식이 뜸했기에, 이러한 비보를 전하게 되어 마음이 매우 숙연했다. 형제를 잃은 친척들의 슬픔도 이해할 수 있었다.
4. 울산 장지 이동 및 해산
· 이동 과정: 날씨가 우중충하고 장마가 심해 배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이동 중에는 물론, 화장장에 도착해 화장을 진행할 때도 비가 심하게 내렸다. 화장을 마친 후 고인과 친분이 있던 이들이 합류했다. 제주시 선착장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비가 그쳤고, 시장에서 친척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 울산 도착 및 해산: 일정을 지체하지 않기 위해 다들 발 빠르게 움직였다. 중간에 선착장을 놓칠 뻔하여 택시를 타고 이동한 덕분에 무사히 배를 타고 울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배에 사촌도 함께 탑승해 외롭지 않았으며, 흔들리는 배 안에서의 여정은 마치 장날처럼 북적였다. 울산에 도착하자 고인의 친척들이 모두 모여 묘소 자리를 함께 지켜주었다.
· 귀가 동선: 매장을 마친 후 울산역에서 부산역으로 이동했다. 부산 고속도로는 생각보다 차량 정체가 심하고 교통이 불편했다. 원래 부산에 들릴 일은 없었으나 우연히 거쳐 가게 되었고, 대구역을 거쳐 서울로 가는 KTX 열차에 탑승했다. 이때부터 친척들은 '각개전투'하듯 각자 따로 이동하기 시작했으며, 간단한 식사와 함께 아버지의 연애 시절 추억을 잠깐 나누는 것으로 전체 일정을 마무리했다.
5. 사후 회고 및 심경 변화
· 아버지에 대한 이해: 아버지는 형제들 사이에서도 중심을 지키려고 노력하셨다. 그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기에, 늘 자식에게는 침묵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 사유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어머니는 본인에게 아버지를 반면교사로 삼아보라고 조언하며 "아버지는 너무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그제야 비로소 아버지의 삶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게 되었으며, 당시 까마득했을 아버지의 심정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 억눌린 감정의 자각: 누군가에게는 이 사건이 평생의 안줏거리처럼 가볍게 이야기될지 모르지만, 실제 유족에게는 누구에게도 차마 말하기 힘든 고통스러운 심정이다. 어머니는 그동안 본인이 너무 참고 살아왔으며, 고인과의 관계마저 차단된 채 겪었던 일들은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고 위로해주었다. 너무나 치열하게 이 상황을 겪어냈기에 본인조차도 감당하기 힘들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타인에게 함부로 털어놓지 못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내면에 억눌려진 감정이 생겨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