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갈등 및 유가족 지원 체계에 대한 진단 (2024. 05. 22.) 


1. 대출금 상환을 향한 결단과 장벽

· 아버지의 채무를 전액 변제하기 전까지는 고인의 묘역을 다시 방문하지 않겠다고 정했다. 빚을 청산하는 것만이 유족으로서 과제를 끝내는 길이라는 무거운 책임의 발로이다.

· 가족 내 갈등: 자산보다 부채가 압도적인 현실에서, 어머니에게 이제는 돈을 버는 노동 행위 자체를 완전히 중단하고 싶다는 심경을 토로하다 결국 갈등을 빚었다. 뼈를 갈아 넣어도 채무 상환으로 귀결되는 노동의 굴레에 지쳤다.

2. 행정 기관과의 마찰 및 국가 복지 체계 진단

· 지자체 행정의 한계: 자동차 상속 이전 등 법적 절차 이행 과정에서 '차고지 증명 등록' 문제로 담당 공무원과 크게 다투었다. 고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발생한 복잡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경직된 관료제적 태도를 마주해야 했다. 

· 유가족 복지 정책의 부실함: 막상 유가족이 되었으나 국가나 지자체의 사후 지원 정책에 대해 선제적으로 안내해 주는 주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결국 유족이 모든 정보와 지원책을 직접 발굴하고 찾아내야만 했다.

· 관료 행정의 비효율성: 어렵게 찾아낸 지원책마저도 집행이 지연되거나 지극히 형식적이고 방대한 제출 서류만을 요구할 뿐이었다. 행정이 업무를 이토록 미루고 방치했기에, 정작 주거지나 사업장의 오염된 환경이 부패해가는 동안 실질적으로 신속하게 처리된 정산·수습 업무는 단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에 직면했다.

3. 체제에 대한 환멸과 채무 이행 

· 국가 권력에 대한 환멸: 유족의 고통을 방치하고 관료적 형식주의에만 매몰된 부패한 국가 기관 및 그 구성원들과는 더 이상 상존하고 싶지 않다는 깊은 정서적 거부감이 들었다. 이러한 모순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더 이상 무지하고 무식한 상태로 피동적으로 살 수 없다는 지적 자각에 이르렀다.

· 채무 이행: 국가의 제도적 구제나 자비에 기대지 않고, 금융 체제가 요구하는 대출금은 본인이 어떤 노동이나 일을 해서라도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변제해 내겠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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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일정 및 고인에 대한 역사적·개인적 회고 기록 (2024. 05. 21.) 


1. 주요 행정 및 의료 일정


·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대출 관련 조정을 위한 전문 상담 진행. 

· 원스톱폐업지원센터: 고인 사업장의 폐업 정리 및 '희망리턴패키지' 관련 절차 확인. 

· 법률 상담: 법무법인으로 한정승인 및 상속 절차 상담. 

· 의료 일정: 5월 29일 치과 진료 예약


2. 종합소득세 신고의 현실적 제약


· 세무 행정의 한계: 고인의 사업장 관련 종합소득세 신고를 시도했으나, 세무 용어가 난해하고 세액을 산출하는 셈법이 복잡하여 추후 재진행하기로 보류했다. 과거에는 아버지와 함께 협력하여 처리했던 업무였기에, 온전히 홀로 감당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그 부재와 힘에 부치는 현실을 다시금 체감했다.


3. 고인과의 추억과 신체적 공통점


· 식생활과 동거의 기억: 아버지는 요리에 서투르셨다. 본인이 요리를 배운 이후로는 주로 간장계란밥이나 기존에 있던 반찬들로 식사를 해결했고, 삼겹살을 자주 구워 먹었다. 당시 아버지는 기존 가정과 떨어져 따로 살림을 차린 상태였고 본인 역시 노동에 시달려 심신이 벅찼기에, 아버지와 한 공간에 함께 머무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다소 부담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 체질적 유전성 진단: 아버지와 본인은 둘 다 자주 복통을 겪었는데, 이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 때문이었다. 이 질환은 유전적 요인이 강하므로, 직계 친척들 중 관련 소화불량을 겪는 이가 있다면 스스로도 체질을 의심해 보고 식사를 천천히 하는 등 관리가 필요하다. 


· 기호품의 변화와 다짐: 아버지는 과거 신문 중 <중앙일보>를 주로 읽으셨으나 본질적으로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으로 대변되는 보수 언론 체제에 강한 거부감을 지니고 싫어하셨다. 흡연의 경우 과거에는 '디스 플러스'를 피우시다가 제주도에 정착한 이후로는 주로 '카멜 블루'를 태우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본인은 담배를 완전히 끊겠다고 거듭 다짐하게 되었다.


4. 마지막 여정과 정치·역사적 배경 회고


· 봉하마을로의 마지막 여행: 돌아보면 아버지와의 마지막 여행은 본인이 군대에 첫 입대하기 전 방문했던 봉하마을이었다. 대전으로 이동하던 중 휴게소에 들렀다가 우연히 이정표를 보고 본인이 먼저 제안하여 방문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판매하던 쌀 아이스크림이 매우 맛있었으며, 가족 모두가 함께 참배를 올렸다. 막상 동행한 아버지는 그곳에서 매우 밝은 표정을 지으셨다. 아버지는 과거 변호사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가장 안타까운 분"이라는 소회를 남기셨다.


· 흡역에 얽힌 기억: 아버지는 아파트 베란다나 건물 밑에서 담배를 자주 태우셨다. 어릴 적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실 때면 어머니가 아이가 연기를 맡는다며 그만 피우라고 자주 질책하셨다. 매캐한 담배 연기를 맡으며 고인의 폐 건강을 염려하곤 했는데, 그 잔소리를 곁에서 들으시던 할머니께서 되려 아버지 옆에서 함께 맞담배를 피우시기도 하여 할 말을 잃었던 기억이 난다. 


· 가족의 이념적 지형 진단: 아버지는 86 운동권 세대였으나 정작 스스로를 운동권 출신이라 명명하는 것은 강하게 부정하셨다. 친척들의 경우 대체로 NL (민족해방) 계열이 많았고, YMCA나 YWCA 등 기독교 사회 운동 진영에서 활동한 분들도 다수 계셨다. 대학 시절 주사파(주체사상파)의 노선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던 분들이 많았으며, 이러한 가계 구조 내에서 아버지는 유일하게 PD(민중민주) 계열적 시각을 지니고 계셨다. 당시 사회적 기준으로는 출세가 우선이었기에 자녀 셋을 모두 명문 대학에 진학시킨 고인의 가정을 두고 주변에서는 '성공한 케이스'라 부르기도 했다.


· 학벌주의에 대한 태도: 아버지는 명문대 출신이셨고 본인은 어릴 적 그 학벌에 대해 막연한 경외감을 품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는 본인의 출신 대학을 언급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셨다. 사회적 지식인을 속되게 이르는 '학삐리'라는 표현을 배운 이후로, 본인은 아버지 앞에서 대학 출신 성분을 단 한 번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학벌이나 출세주의적 가치관에 크게 오염되지 않았으며, 아버지는 본인에게 교과 위주의 공부를 가르치면서도 성적을 올리라는 압박은 단 한 번도 가하지 않으셨다.


5. 시대의 잔영


· 과거의 흔적: 과거 운영하던 식당 공간에는 동네의 옛 빨치산 (파르티잔) 활동가 출신으로 추정되는 노인분들이 은밀하게 식사를 하러 오시곤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이념의 역사를 마주한 유족으로서 딱히 무어라 말을 얹을 수 없어, 그저 반찬만큼은 푸짐하게 담아 대접해 드렸던 기억이 깊이 각인되어 있다. 세계사적으로 이란 대통령이 탑승한 헬기가 추락하여 실종 (사망)했다는 비보를 접하며, 인간의 명줄이란 참 알 수 없으며 헬기라는 운송 수단이 지닌 위험성에 대해서도 사유하게 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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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 정밀 확인 및 구조적 기록 (2024. 05. 20.)


1. 법률 및 행정 준비 서류


· 상담 진행: 법무사 및 담당 사무장과 연락하여 농협 대출금 건별 현황을 명확히 확인하고 향후 변제 및 상환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사업장 폐업 신고 절차를 병행했다.


· 구비 서류 목록: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초본(상세 내역 포함), 인감증명서 및 인감도장. 


2. 농협 대출금 및 채무 세부 내역


· 일반자금대출: 200,000,000원 (대출 기간: 2017. 09. 15. ~ 2024. 09. 06.)

· 가계일반대출: 25,000,000원

· 기타 대출 대금: 3,690,000원

· 추가 가계일반대출: 20,000,000원 (대출 기간: 2019. 09. 23. ~ 2024. 09. 23.)

· 일반자금대출: 14,336,796원 (대출 기간: 2021. 02. 23. ~ 2026. 02. 20.)

· 추가 자금: 10,000,000원

· 일반자금대출: 7,092,465원 (대출 기간: 2021. 02. 23. ~ 2026. 02. 20.)


3. 정산 및 확인이 필요한 공과금·지출 항목


· 농협 대출금 원리금

· 자동차세 및 자동차 과태료

· 건강보험료 및 국민연금

· 보금자리(관련 비용)

· 자연드림(결제 대금)


4. 독서 기록 


· 독서 현황: 루이 아라공의 저작 읽기를 드디어 끝냈다. 내일부터는 마야코프스키 작품을 읽기 시작한다.


· 기기 수리: 아이패드 수리를 완료했다. 과거 본점에서 새로 구입하라고 권유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으나, 굳이 새로 살 필요가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여전히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5. 사후 심경 변화 및 진로에 대한 고민


· 심리적 상태: 아버지의 임종에 대한 충격은 점차 아물어가고 있다. 그러나 눈앞에 놓인 대출금 규모가 참으로 막막하여 당장 일자리를 찾아봐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과거에는 큰일이 닥치면 감정부터 흔들렸으나, 요즘에는 본인도 모르게 감정적 동요가 줄어들고 현상을 대하는 태도가 분석적으로 변했다. 주위의 시선에도 많이 둔해졌는데, 이는 오직 어머니를 먼저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에 집중하면서 나타난 변화 같다. 점점 감정이 무뎌지는 본인 모습이 마치 시든 꽃을 보는 듯한 기분도 든다. 


· 주변의 도움과 관계에 대한 회의: 어머니와 연락이 닿은 친척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인의 진로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계시며, 본인이 온전한 내 일을 찾을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조언을 주고 계신다. 주변 분들 대부분이 알게 모르게 본인 걱정을 많이 해주고 계신다. 본인에게는 타인에게 신세를 끼친다는 것 자체가 참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본인은 별것 아닌 일에도 심각해지는 성격인데다 심한 강박증까지 더해져 있어, 스스로 끊임없이 절제하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앞으로 도대체 누구를 만나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할지 크나큰 의문이 든다.    


6. 사회적 시각


· 산책: 어머니와 호텔 근처 마트를 찾다가 결국 찾지 못해 주변을 돌며 산책을 하게 되었다. 편의점에 우유를 사러 갔을 때 수학여행을 온 학생 무리와 마주쳤다. 오랜만에 본 학생들의 얼굴은 참 순해 보였다. 물론 겉모습만 보고 인간의 속내를 다 알 수는 없으며 드세 보이는 아이들도 잘 눈에 띄지 않았지만, 그 순간 수학여행을 통제하고 운영하는 노동자들도 참 고생이 많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 노동과 진로에 대한 사유: 오직 돈만 바라보고 일했던 노동의 결말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확실한지 목격했기에, 앞으로는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다시 생각해보고 진로를 신중하게 고민할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하지만 본인 명의와 대출금 압박 앞에서 과연 온전하게 고민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허락될지는 잘 모르겠다. 삶이란 참 괴로움(苦)이며 전쟁 같은 실성이라는 어머니의 말에 깊이 동의한다. 본인 삶 역시 지금까지 괴로움 외에는 크게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7. 주체성 진단 


· 영화 관람: 호텔 방에서 어머니와 영화 <지옥 만세>를 관람했다. 매우 잘 만든 영화였다. 인간은 삶이 고되고 힘들 때 어딘가 기대고 싶은 존재를 찾기 마련이다. 그러나 교회나 맹목적인 집단에 자신을 내맡기고 기댄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무서운 일이다. 오히려 외부의 교리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주체적으로 생각할 줄 알아야, 타인과 서로를 온전하게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사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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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출 정산 및 채무 압박에 따른 심경 회고 (2024. 05. 19.)


1. 당일 주요 처리 사항 및 이동


· 비용 정산: 특수 청소 업체에 최종 대금 1,000,000원 입금 완료. 

· 지명 기록: 강정마을, 새연교. 


2. 생계 유지를 위한 구직 고민과 현실적 제약


· 구직 활동: 대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플랫폼으로 일자리를 탐색했다. 이전에 고려했던 물류센터나 배달 대행업체 외에도, 차라리 유통·물류 기업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경제적 한계: 물가가 상승한 것에 비해 최저시금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는 사회적 지적을 체감했다. 이자 포함 원금 상환액인 450,000,000원이라는 거액을 어떻게 모아야 할지 홀로 고민해 보았으나 현실적인 방안을 찾기 어려웠다. 어렵게 일을 해서 돈을 벌더라도 결국 은행의 빚을 갚는 데 모두 지불해야 하기에, 과연 스스로 돈을 모으는 것 자체가 가능할지조차 불투명한 실정이다.


3. 금융 기관의 채무 압박과 체제에 대한 비판


· 채무 독촉의 고통: 전에는 농협으로부터 직접적인 대출 상환 압박을 전화로 받기도 했으며, 주택 압류 딱지가 자동차에 부착되는 일까지 겪었다. 이처럼 한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은행의 실상은 본질적으로 대부업체나 브로커와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  금융 체계에 대한 회의: 은행은 표면적으로 돈을 빌려주고 맡기는 공공의 역할을 하는 듯하지만, 실체는 공갈과 협박을 일삼는 범죄 단체와 다를 바 없다는 회의감이 들었다. 언론조차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고 간접적인 살인을 유도하는 구조 속에서, 드라마에서나 보던 비극이 실제 삶에 벌어지니 마음이 극도로 위태로웠고 불안감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 채무의 무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고 있지만, 45,000,000원이라는 내 몸값에 상응하는 거대한 빚 앞에서 본인 역시 죽음의 문턱을 들어서서 걷고 있었던 것과 다름없었다.


4. 노동 현실과 사회 구조에 대한 진단


· 노동의 허무함: 가게 일이나 식당 일도 마찬가지였다. 온 힘을 다해 뼈를 갈아 넣듯 일해도 결국 대출금을 갚는 데만 쓰였을 뿐, 남은 재산은 전혀 없고 경제적으로 손해만 보는 실성의 연속이다. 이 참담한 죽음과 빛의 궤도에 대해 어디에 가서,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겠는가.


· 구제 없는 고립: 돈 앞에 결국 굴복하고 만 아버지를 보며 '본인은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도, 현재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기에 이 모든 것은 오롯이 본인의 불안이자 본인 명의의 대출이라는 냉혹한 사실로만 맴돌 뿐이다. 당장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 사회의 모순: 막대한 액수의 빚을 갚는 것이 오직 그것을 떠안은 개인의 몫이라고들 하지만, 구조를 잘 모르는 이들이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아야 했던 이들을 과연 정치인들이 구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지 의문이 든다. 본인 명의로 귀속된 대출과 아버지로부터 불가피하게 대물림된 자산의 현실 속에서, 결국 이 세상은 부자들만 잘 사는 세상일 뿐이라는 환멸이 든다.


5. 고인의 원망


· 생각의 단순화: 현실의 압박 속에서 복잡한 해석들을 모두 걷어내고 나니, 오직 '돈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을 만큼 마음이 단순해졌다. 어쩌면 본인이 너무 순진한 것일지도 모른다.


· 솔직한 심경 고백: 그러나 마음 깊은 곳 속으로는, 유족에게 재산은 전혀 남기지 못한 채 오직 막대한 빚만을 대물림하고 떠난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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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임종 당시 상황과 장례 여정 기록 (2024. 05. 18.)


1. 임종 발견 및 초기 현장 수습 (2024. 05. 03.)


· 사망 확인: 2024년 5월 3일, 아버지가 주위에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하신 상태로 첫 발견되었다. 


· 신고 및 초동 조치: 발견 직후 13시 50분에 관련 사실을 보고 및 연락했고, 블로그에도 글을 남겼다. 이후 경찰 담당관들과 접촉이 시작되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은 본인에게 주변 연락처와 인적 사항, 그리고 고인과의 관계를 확인했다. 곧이어 과학수사대, 형사팀, 검찰 관계자까지 현장에 도착했다. 


· 유족 연락: 육지에 있던 어머니와 연락이 닿았으나, 내려오는 비행기 표가 부족해 겨우 예매할 수 있었다. 비통한 상황 속에서도 사실을 최대한 잘 전달하기 위해 차분함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친척들에게도 즉시 연락을 취했다.


2. 병원 이송 및 장례 절차 논의


· 지인의 도움: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고인과의 관계들이 정리되기 시작했고, 육지에 있는 어머니를 대신해, 어머니의 지인이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 굶고 있던 본인을 안심시키기 위해 지인이 챙겨온 물과 빵을 주었고,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빵을 씹어 삼켰다. 이동하는 동안 감정에 휩쓸리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했다. 


· 안치 및 장례 준비: 병원에 도착하여 검찰진단서(검시필증)를 발급받고 사망신고서를 접수했다. 장의사가 도착해 아버지의 시신을 장례를 치를 의료 병원으로 이송 및 안치했다. 장의사는 본인에게 침착하게 대처하도록 안내해주었으며, 지인이 귀가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해왔다. 처음 겪는 장례 절차였기에 구체적인 방법은 가족 및 친척들과 상의하여 결정하기로 했다.


· 사업장 정리: 사업장으로 돌아와 본인이 읽던 책들을 친척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 다락방으로 전부 옮겼다. 기존에 써두었던 글이 적힌 종이들도 모두 치웠다. 이후 붓과 먹물로 사업장 앞에 아버지를 애도하는 한자 '상(喪)' 자 두 글자를 써서 걸어두었다.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간 한문이라 정확히 무엇을 썼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3. 장례식 진행 및 운구 여정


· 장례 방향 결정: 어머니와 큰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좌절감 속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마치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두 분이 도착한 후 장의사와 연락이 닿아 삼일장을 치르기로 합의했다. 


· 장지 결정: 장지의 경우 처음에 본인은 근처를 제의했으나, 친지가 없는 섬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신 산소로 아버지를 모시는 것이 맞다는 의견으로 모아졌다. 아버지가 생전에 섬 생활을 따분해하셨기에 울산 산소로 모시는 것이 바른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결정을 내린 후 셋이서 간단히 식사를 마쳤으며, 발 벗고 나서준 큰아버지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소식을 듣고 크게 놀란 어머니는 오히려 본인이 진정시켜야 했다.


· 장례식 진행: 며칠 후 곧바로 장례를 치렀다. 하루 동안 치러진 장례식은 보기에 초라해 보일 수 있었지만, 정해진 예산 한도 내에서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찾아온 조문객들의 안부를 묻고 맞절을 도왔으나, 친척들을 볼 면목은 없었다. 상복으로 양복을 입어보아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분들이 직접 찾아와 자리를 지켜주어 깊은 감사를 느꼈다.


· 영결 및 운구: 아버지의 시신과 얼굴을 총 두 번 확인했다. 두 번째 확인할 때는 아버지와 인연이 있던 사람들과 함께 모여 합창가를 불렀다. 어머니와 본인은 무신론자였지만 아버지를 위해 기도를 올렸다. 평소 친척들과 왕래가 적어 소식이 뜸했기에, 이러한 비보를 전하게 되어 마음이 매우 숙연했다. 형제를 잃은 친척들의 슬픔도 이해할 수 있었다.


4. 울산 장지 이동 및 해산


· 이동 과정: 날씨가 우중충하고 장마가 심해 배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이동 중에는 물론, 화장장에 도착해 화장을 진행할 때도 비가 심하게 내렸다. 화장을 마친 후 고인과 친분이 있던 이들이 합류했다. 제주시 선착장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비가 그쳤고, 시장에서 친척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 울산 도착 및 해산: 일정을 지체하지 않기 위해 다들 발 빠르게 움직였다. 중간에 선착장을 놓칠 뻔하여 택시를 타고 이동한 덕분에 무사히 배를 타고 울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배에 사촌도 함께 탑승해 외롭지 않았으며, 흔들리는 배 안에서의 여정은 마치 장날처럼 북적였다. 울산에 도착하자 고인의 친척들이 모두 모여 묘소 자리를 함께 지켜주었다. 


· 귀가 동선: 매장을 마친 후 울산역에서 부산역으로 이동했다. 부산 고속도로는 생각보다 차량 정체가 심하고 교통이 불편했다. 원래 부산에 들릴 일은 없었으나 우연히 거쳐 가게 되었고, 대구역을 거쳐 서울로 가는 KTX 열차에 탑승했다. 이때부터 친척들은 '각개전투'하듯 각자 따로 이동하기 시작했으며, 간단한 식사와 함께 아버지의 연애 시절 추억을 잠깐 나누는 것으로 전체 일정을 마무리했다.


5. 사후 회고 및 심경 변화 


· 아버지에 대한 이해: 아버지는 형제들 사이에서도 중심을 지키려고 노력하셨다. 그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기에, 늘 자식에게는 침묵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 사유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어머니는 본인에게 아버지를 반면교사로 삼아보라고 조언하며 "아버지는 너무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그제야 비로소 아버지의 삶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게 되었으며, 당시 까마득했을 아버지의 심정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 억눌린 감정의 자각: 누군가에게는 이 사건이 평생의 안줏거리처럼 가볍게 이야기될지 모르지만, 실제 유족에게는 누구에게도 차마 말하기 힘든 고통스러운 심정이다. 어머니는 그동안 본인이 너무 참고 살아왔으며, 고인과의 관계마저 차단된 채 겪었던 일들은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고 위로해주었다. 너무나 치열하게 이 상황을 겪어냈기에 본인조차도 감당하기 힘들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타인에게 함부로 털어놓지 못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내면에 억눌려진 감정이 생겨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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