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성향을 막론하고, 당 내 특정 집단이 저지르는 마르크스에 대한 노골적인 왜곡은 엄중히 다루어져야 한다. 이는 공산당이 추구하는 이론적 모범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자 훼손이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 내 매체들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평생에 걸쳐 규명한 ‘자본주의 분석과 세계 부르주아 질서에 대한 통렬한 반박’을 두고 ‘실패한 사상’이라는 딱지를 붙여 자신들의 이론적 궤변을 정당화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체제적 모순을 깊이 파악하지 못한 채, 자본주의의 수혜를 누리는 지식인층 학자들과 손잡고 마르크스의 ‘단편성’에만 집착하는 태도는 그들이 정치적 기득권과의 타협이 케케묵은 수준에 도달했음을 폭로할 뿐이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재해석’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소시민적 연대나 노조 민주화 등을 합리화하고, 기존 정권과의 일시적 타협을 도모하고 있다. 급기야 마르크스의 과학적 분석과 당시 러시아 노동자들의 역사적 경향마저 ‘실패’로 단정 짓는 논리적 파단을 저지르고 있다. 그러나 운동권에서 사회주의 운동으로 나아가는 것은 당 내 투쟁이자 공산당의 확실한 일보 전진을 의미한다. 마르크스라는 대의명분 아래 그의 평생에 걸친 연구가 정확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공산당 선언』을 주의 깊게 읽은 독자라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국제노동자협회에서 제시했던 선언의 참뜻을 알 것이다. 즉 “당의 전진을 가로막는 반동적 경향”에 맞서 엄중히 투쟁하고 “부르주아적 이상에 대한 반박”을 전개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결코 안일하고 귀찮은 일이 아니며, “끈질기고 집요하게” 걸어가야 할 길이다. 이러한 반동적 경향들은 늘 ‘전통적 색채’나 ‘진보적 수사’를 들먹이며 자신들을 합리화해 왔으며, 자본주의 체제와 국가가 발전함에 따라 더욱 노골적으로 논변을 ‘수정’하고 ‘변질’시켜 왔다. 따라서 독자라면 원전이 갖는 중요성을 끊임없이 자문하고, 이를 실천하는 데 게을러져서는 안 된다. 


엥겔스는 마르크스 추모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마르크스는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당당한 자부심으로 그의 평생의 과업을 돌아볼 수 있는 한 그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엥겔스,『제2인터내셔널 폐막 연설』 中

 

단순히 마르크스를 입맛대로 요약하여 재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남긴 평생의 유산과 노고를 되새기는 실천이야말로 우리 당이 추구해야 할 가장 정확한 노선이자 선구적인 조직 투쟁의 결집이다.

 

만국의 부르주아지를 심판하자! 그들의 녹슨 사슬은 ‘현대화’로 둔갑한 전근대적 자본의 비참한 결말일 뿐이다. 공산당의 전진에는 오늘날 계급 투쟁의 역사가 함께하고 있으며, 이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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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제적 파산은 단계상 충분히 예정된 것이지만, 그것을 대비한 중도 보수층의 집결 역시 몰락의 국면이 예고된다." 


자본이라는 구체제의 숨결이 지도자 개인을 거두어 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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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지도 제도와 노동 시장의 구조적 모순


한국의 대표적인 취업 지원 제도인 국민취업지원제도와 공공 고용 서비스는 청년과 구직자들에게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는 사회적 측면에도, 실질적 취업 연계의 부족과 형식적 운영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감사원 검사 결과》와 《한국고용정보원》 등의 실태 조사에 따르면, 참여자의 30%~40% 이상이 고용복지플러스센터 등의 상담 프로그램이 단순 수당 수급 조건을 채우기 위한 형식적 절차에 그치며 실질적인 구직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수당 지원 등 경제적 만족도는 높은 반면, 일자리 프로그램이나 알선 서비스에 대해서는 희망 직종과 무관한 단순 사무 및 행정 알선에 불과하다는 부정적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로 제도 종료 후 6개월 이내 취업률은 50%대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1년 이상 고용 유지율은 50% 안팎으로 떨어져 단기 및 전전형 취업이 반복되고 있다. 아울러 국비 지원 직업 훈련 수료자 중 훈련 분야와 실제 취업 직종이 일치하는 직무 연계율은 30%에서 40%대에 불과해, 양적 확대에 비해 질적 불균형이 심각한 상황이다.

 

이러한 형식적 한계는 단순한 행정적 미숙함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 체제와 고용 제도가 결합하는 방식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이며, 전 세대에 걸친 노동자 박탈 현상으로 고착화되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취업 지원 제도는 개별 노동자의 장기적 역량 개발보다 ‘몇 명을 시장에 재배치했는가’라는 수치적 실적에 집중하며, 구직자를 저임금 및 단기 노동력을 공급하는 상품화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또한 수당 지급에 엄격한 구직 활동 조건을 걸어두어 구직자를 주체적인 노동자가 아닌 행정 절차의 통제 대상으로 취급한다. 이로 인해 청년층은 양질의 노동 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채 단순 보조직을 전전하며 역량 축적 기회를 박탈당하고, 중장년층은 평생 쌓아온 경력과 존엄성을 부정당한 채 하위 노동 시장으로 강제 이동하는 이중 하향 취업을 겪으며, 노년층은 죽을 때까지 저임금 노동을 지속해야만 하는 생존형 노동 박탈로 이어지는 전 세대적 고용 불안정을 겪게 된다.

 

제도가 형식적이고 관료적인 양상을 띠는 원인은 운용하는 행정 체계의 내적 구조와 자본주의적 시장 질서 속에서 목표가 왜곡된 결과에 기인한다.

 

첫째, 고용센터와 민간 위탁 기관의 성과 평가가 단기적 취업률 숫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여, 상담원과 기관은 구직자의 작성이나 일자리의 질을 고민하기보다 채용이 쉽고 퇴사율이 높은 일자리에 우선 알선하게 된다.

 

둘째, 신공공관리론에 따라 고용 서비스를 민간에 대거 위탁하면서 최저가 입찰과 영리성 추구가 도입되었고, 이로 인해 개별 맞춤 상담 대신 서류 양식 채우기나 형식적 전화 상담 등 최소한의 요식 행위가 구조화되었다.

 

셋째, 상담원 1인이 수십에서 백여 명의 구직자를 담당하는 과중한 업무로드 속에서, 상담원들은 진정성 있는 진로 설계를 포기하고 수당 지급 기준 검토나 부정수급 방지 서류 확인 같은 형식적 행정 처리자로 전락했다.

 

넷째, “구직자가 수당만 받고 일하지 않을 것”이라는 도덕적 해이가 작동하면서, 제도의 중심축이 역량 강화 지원이 아닌 구직 활동 증명을 요구하는 감시 및 통제 행정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관료화와 형식화는 단기적 행정 예산 낭비만이 아니라 노동 시장 전체에 심각한 장기적 해악을 끼치고 있다. 우선 구직자들이 하위 노동 시장에 갇히는 고착화 현상이 발생하여 사회 전반의 소득 양극화가 심화된다. 특히 급변하는 고용 조건 속에서 기업들은 신입에게마저 ‘즉시 전력감이 되는 중고 신입’이나 다름없는 연차별 실무 경력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으나, 형식적 취업 지원 제도는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구직자들을 단기 알선과 부실한 훈련에 머물게 하여 심각한 경력 단절을 유발하고 있다.

 

이처럼 체계적인 경력 형성이 차단된 노동자들이 다시 노동 시장에 유입될 때, 기업들은 오히려 이들에게 더욱 까다롭고 과도한 경력직 수준의 ‘스펙과 요건’을 들이밀며 진입 장벽을 높이고 있어, 구직자들은 일자리를 구할수록 오히려 더 깊은 미숙련화와 고용 불안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또한 높은 퇴직률과 재실업의 무한 반복 속에서 국가 전체의 노동력과 노동 생산성이 저하되며, 청년층의 경우 제도에 대한 불신이 학습된 무력감으로 이어져 구직을 포기하고 비경제 활동 인구로 돌아서는 역효과를 낳는다. 자본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 보조금과 제도를 활용한 저비용 노동력 돌려막기에 안주하게 만들어 근로 조건 개선과 기술 혁신 등 체질 개선 유인을 완전히 상쇄시키며, 결과적으로 현행 취업 지원 제도는 노동자의 삶과 숙련을 보장하지 못한 채 자본의 유연화 요구만을 나타내면서 노동 시장의 양극화와 노동 생산성 하락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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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의 재입북 현상

  

남한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 약 34,000여 명 중 다시 북한으로 되돌아가는 재입북 인원의 비율은 약 0.09%로 공식 파악 기준 30여 명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재입북 대신 영국, 캐나다, 유럽 등 제3국으로 재이주하는 탈남 인원이나 거주지가 불분명한 이들이 최근 5년간 2,000여 명에 달한다는 점은, 북한으로 직접 복귀하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에 안착하지 못하고 이탈하는 비율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임을 보여준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로 진입한 인원이 북한 체제로 되돌아가는 것은 일반적인 국가 간 이동 경로와 달라 매우 특수하게 평가된다.

 

이러한 재입북 현상은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의 구조적 적응 실패와 상대적 박탈감에서 비롯된다. 경제적 빈곤을 피해 남한으로 왔으나 높은 기술 요구 수준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최저임금 직군에 고착되거나 극심한 경제적 고립을 겪는 경우가 많다. 자본주의의 유연성과 신용 중심 구조에 익숙지 않아 사기를 당하거나 채무 압박에 시달리는 등 사회적 안전망에서 탈락할 때, 이들은 재입북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하게 된다. 여기에 북한 국가보위성이 잔류 가족의 안위를 담보로 재입북을 종용하거나 복귀 시 처벌 없이 주택과 직장을 제공하겠다는 선전을 활용하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 홀로 탈북했다는 중압감과 북에 남겨진 가족이 받을 처벌에 대한 죄책감이 재입북 결정의 주요 동기로 작용하는 것이다. 북한 정권은 이들을 즉각 관영 매체에 출연시켜 남한을 비하하고 주민들에게 탈북의 무용성을 압박하는 내부 단속 기제로 활용된다. 이는 현재 입국 후 2~3년에 집중된 단기 지원책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내며, 남북 채제 경쟁에서의 파급력을 고려할 때 탈북자 개인의 부적응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지원 체계의 정밀화가 시급함을 시사한다.

 

탈북민이 겪는 핵심 어려움은 노동 시장 진입 장벽과 고용 불안정이다. 직업교육훈련 이수율은 90% 이상으로 높으나 실제 교육 분야 취업률은 절반 수준에 불과하며, 경력과 기술의 연결성 부재로 제조·단순노무·서비스업 등 저임금 직종 진입률이 높다. 탈북민의 평균 근속 기간은 38개월 안팎으로 전체 국민 평균인 76개월의 절반 수준에 머물고 실업률 역시 일반 국민 대비 2배 이상 높다. 남한의 조직 문화, 직장 내 소통 방식 차이, 신용 및 근로 계약 체계 이해 부족이 주요 이직과 퇴직의 원인으로 작동한다.

 

언어적 차이와 사회적 차별 역시 큰 장벽이다. 표준국어대사전과 조선말대사전 비교 시 전문어의 약 66%, 일반어의 38%에 달하는 차이가 존재하여 행정, 금융, IT 용어에 주로 쓰이는 외래어 적응에 고충을 겪는다. 실제로 탈북민 3명 중 2명에 해당하는 66.7%가 말투와 생활 방식 차이로 인한 차별과 무시를 겪었다고 응답했으며, 이는 정체성을 숨기거나 관계를 축소하여 사회적 고립을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또한 신용카드, 대출, 투자, 보험 등 복잡한 자본주의 금융 구조에 쉽게 노출되면서 금융 지식 부재로 인한 보이스피싱, 명의 대여, 사기 투자, 과도한 채무 발생 등 경제적 사각지대에 내몰리기도 한다. 탈북 과정의 위험과 탈남·중국 체류 시의 불안, 북한 잔류 가족에 대한 죄책감으로 우울증과 불안 장애 수치가 매우 높으며, 전체 탈북민 가구의 33% 이상을 차지하는 1인 가구는 정서적 안전망을 제공할 친인척이 없어 고독사 위험과 정서적 위기에 취약하게 노출되어 있다.

 

남한 사회의 월북에 대한 특수 현상


남한 정부는 『북한이탈주민법』에 따라 하나원 교육, 초기 정착금, 주택 알선, 거주지 보호 담당관 및 하나센터 운영 등 제도를 가동 중이지만 구조적 한계가 명확하다. 주요 정착 지원이 입국 후 1~3년 초기에만 집중되어 있어, 실제 금융 및 행정 사기를 당하거나 무력감이 찾아오는 3~5년 차 이후에는 사회적 안전망이 현저히 약화된다. 현장 전담 인력의 과부하도 심각하여 지자체 및 경찰의 거주지 보호 담당관 1인이 담당하는 탈북민 수가 300명을 넘어서는 지역이 많으며, 이로 인해 밀착 관리가 어렵고 정기 전화나 단순 방문 수준의 행정 확인에 그치는 실정이다. 연령, 학력, 북한 내 직업, 심리 상태와 무관하게 일률적인 교육과 훈련이 제공되며, 장애인, 노인, 탈북 청소년,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 등 세부 집단별 특수성을 고려한 세분화된 지원책도 부재한다. 아울러 초기 기초생활수급비 지급 기준과 취업에 따른 수급 타락 기준 간의 격차는, 취업 시 당장의 생계 지원이 끊길 것을 우려해 저임금 임시직이나 비공식 노동에 안주하게 만드는 제도적 모순을 낳고 있다.

 

반면, 남한 출신 국민의 월북은 군사분계선이나 해상에서 직접 월북, 또는 제3국을 거친 월북으로 나뉜다. 이는 연간 0건에서 1건 수준으로 극히 드문 특수 사건이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라난 남한 국민이 스스로 북한으로 넘어가는 행위는 일반적인 국가 간 이동 기준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현상이다.

 

남한 국민의 월북은 주로 현실 도피 기제로 작동한다. 월북자의 상당수는 신용불량, 거액의 채무, 범죄 수사 피의자, 정신질환, 극심한 가난 등 남한 사회에서 법적·경제적·사회적으로 절벽 끝에 내몰린 이들이다. 남한의 사회적 안전망에서 완전히 소외된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의 대안으로 북한으로 가면 처벌이나 채무를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릇된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일부는 과거 북한 선전 매체를 접하고 북한이 의료와 주거를 무료로 제공하는 사회주의 낙원이라는 현실과 다른 환상을 품고 월북을 감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북한 정권은 이들을 체제 우위 선전 도구로 일시 활용한 뒤 선전 가치가 떨어지면 감금, 고문, 수용소 수용을 하거나 억류 후 방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한 출신 국민이 철책이나 해상에서 월북에 성공하는 사건은 국군의 경계 태세 및 감시 장비의 허점을 드러내어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유발하고 내부 안보 책임론 등 정치적 논쟁으로 확대된다. 헌법상 북한 주민도 국민으로 간주되지만 월북은 남한 국가보안법상 탈출·잠입에 해당하여 엄중한 처벌 대상이 되며, 북한에 억류된 국민의 인권 박탈 문제와 함께 정부가 생사와 안전을 확인하거나 송환받기 까다로운 외교·안보적 난제를 발생시킨다.

 

결과적으로 남한 국민의 월북은 자본주의 사회의 극단적 소외자가 선택하는 현실 도피이자 북한 체제에 대한 정보 부재가 낳은 비극이며, 군 경계 체제와 사회적 안전망을 제고하게 만드는 특수한 사건이다. 반면 탈북민의 재입북은 자본주의적 구조에 대한 적응 실패와 잔류 가족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 결합된 복합적 이탈 현상이다. 두 현상 모두 남한 사회의 제도적 사각지대와 안보 체계의 한계를 드러내는 경고 신호이다. 특히 탈북민의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부적응으로 치부하는 남한 언론의 자극적 보도 방식과, 이들을 자본주의 체제로 포섭하는 데 그친 채 실질적인 사회적 제도를 보장하지 못하는 현실은 한국 자본주의 정치·경제 제도의 구조적 결함을 극명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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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정당의 입지 면에서 현대의 정치적 지형은 여전히 공산 진영에 불리한 점이 많다. 다만 최근 유럽에서는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이 감지되고 있다. 독일의 경우 기독교민주연합 (기민련)보다 사회민주당 (사민당)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독일 사민당은 스파르타쿠스단 계열이나 타국 공산당의 역사와 비교할 때 이념적 성격이 독자적이며, 반군국주의적 입장을 명확히 표명해 온 역사를 지닌다. 하지만 이러한 유럽 내 자본주의 비판 노력에도, 자본가 정당의 의석수와 비교하면 공산당의 영향력이 점차 퇴조하고 있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주목해야 할 점은, 최근 독일 내 공산 진영이 보여주는 새로운 전진과 세력 재편의 움직임이다. 기존 자본주의 체제 및 중도화된 사민주의에 실망한 대중 표심이 주거권 국유화, 에너지 공공성 확보, 무분별한 군비 증강 반대 등 선명한 계급적 요구를 내건 혁명적 정파들로 결집하고 있다. 자본가 정당의 압도적인 의석수와 자본의 왜곡 속에서도, 노동자 민중의 실질적 삶의 위기를 파고드는 이들의 정당 지지율 반등은 공산주의적 가치와 반자본주의 투쟁이 여전히 강력한 대중적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진영 학계의 논리와는 달리, 공산당의 존재 의의와 실천적 비판가들의 관점에서 볼 때 현대 자본주의 체제가 오직 ‘민주주의적 기틀’ 위에서만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의 역사적 의의 역시 자본주의 발전보다 선진적인 과제를 수행하는 데 있으며,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반동성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당내 투쟁 노선과 내부적 비판이 끊임없이 병행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현재 사회주의 정권 전반에서 제기되는 ‘우익화 논란’은, 사회 혁명적 요소가 당내 투쟁 노선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득표율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단순히 빈약한 자본의 문제에 그치지 않으며, 실질적인 ‘투쟁 전선’의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제국주의 및 자본주의 국가 내 공산당은 거대 자본의 투여 없이는 당내 투쟁을 공론화하기 어렵고, 대중적 인지도 또한 빈약해지기 쉽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노력은 단지 ‘득표율 제고’라는 목표를 넘어서야 하며, 기득권 논리에 편승한 대중주의적 시각 대신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제기해야 한다.

 

최근 미국 내에서도 사회주의 정당의 정치적 지분과 의석 확보에 대한 요구가 점차 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단기적 일탈로만 볼 수는 없다. 이는 기존의 양대 정당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에서 방황하는 대중과 중산층 몰락 현상이 전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 즉 과도한 착취 구조와 맞물려 나타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미국 내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진영의 전진은 보수적인 양당제의 견고한 벽을 뚫고 지방 의회와 연방 정치 영역 모두에서 가시적인 정치적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청년층과 세입자, 산별 노동자들을 중심축으로 한 미국 사회주의자들의 세력 확장과 자본주의 핵심부 내 공산주의·사회주의 조직들의 선거적·운동적 결합은, 신자유주의적 착취에 신음하는 대중에게도 기존의 양당 구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급적 요구를 열망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전 세계의 사회주의적 요구는, 그동안 혁명적 투쟁성을 상실하고 타협해 온 기존 공산 진영을 비판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진정한 혁명적 공산당의 존재를 다시금 요청하고 있다. 그리스뿐만 아니라 독일과 미국 등 자본주의 중심부 국가들에서 관측되는 공산·사회주의 진영의 전진을 단순한 의석 확보에서 실질적인 프롤레타리아트 혁명 동력으로 전환시키는 것, 끊임없는 당내 비판과 조직적·혁명적 투쟁성을 갖추는 것, 이것이야말로 현대 사회주의 정당이 추진해야 할 최선이자 최고의 투쟁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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