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회의 개시 — 조직위원회 사건
점점 더 뚜렷하게 드러나는 다양한 정치적 세력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대회에서의 토론과 표결을 분석하는 데 대회의 회의 순서를 따르는 것이 가장 편리한 방법이다. 그러나 밀접히 관련된 문제들 혹은 유사한 파벌 분합을 함께 고찰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 시간적 순서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공평을 기하기 위해서 중요한 투표 모두를 언급하도록 하겠다. 물론, 대회에서 시간을 엄청나게 차지한(부분적으로는 우리가 경험이 없었고 안건들을 본회의와 분과회의로 나누는 데 비능률적이었기 때문이며, 또 부분적으로는 의사진행 방해와 유사한 지체 행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소한 문제들에 대한 수많은 투표는 제외하겠다.
다양한 색채의 차이를 드러내기 시작한 논쟁을 야기했던 첫 번째 문제는 ‘당 내에서의 분트’의 지위라는 안건을 (대회의 ‘의사일정’에서) 첫머리에 둘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의사록 29~33쪽). 플레하노프, 마르토프, 트로츠키 그리고 나 자신이 옹호한 『이스크라』파의 입장에서 보면 이 점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 분트파가 당으로부터 퇴장한 사실은 우리의 견해가 옳았음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만일 분트가 우리와 같이 나아가기를 거부하고 당의 다수가 『이스크라』에 동조하여 지지하는 조직 원칙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믿게 만든’ 채로 단지 대회를 질질 끌게 되는 것은 (분트파가 실제로 대회를 질질 끌었던 것처럼) 무의미하고 쓸데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이미 문헌상에서 충분히 해명되어 있었고, 따라서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당원들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하여 자치(같은 길을 걷는 것)나 연방(같아서는 것)이나를 솔직하고 성실하게 선택하는 것뿐이었다.
자신들의 정책 일반에서 애매한 분트파는 여기서도 역시 애매한 태도로 문제를 연기하려고 하였다. 이들에게 아키모프 동지가 가세했는데, 그는 명백히 『라보체에 젤로』의 모든 추종자들을 대표하여 조직 문제에 대한 『이스크라』와의 의견 차이를 문제로 들고 나왔다(의사록 31쪽). 분트와 『라보체에 젤로』파를 마흐프 동지가 지지했다(그는 니콜라에프 위원회의 2표를 대표하고 있었는데, 이 위원회는 조금 전까지도 『이스크라』와의 연대를 표명했다). 마흐프 동지에게도 역시 이 문제가 전혀 분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민주적 체제나, 아니면 반대로[이 점에 주의하라]! 중앙집권제나 하는 문제”가 또 하나의 ‘금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이와 똑같이 현재 우리 ‘당’ 편집국의 대다수도 대회 때는 모르고 있다가 이제 이 ‘금소’를 깨달았다!
이리하여 『이스크라』파는 분트, 『라보체에 젤로』 그리고 마흐프의 반대를 받게 되었고, 이들은 합심하여 자신들이 갖고 있던 10표를 반대표로 던졌다 (의사록 33쪽). 30표가 찬성표였는데, 나중에 보게 되듯이 『이스크라』파의 표수는 이 숫자를 중심으로 자주 오르내렸다. 결국 11표가 기권이었는데, 이들은 투쟁 중인 ‘양 진영’의 어느 편에도 명백하게 가담하지 않았다. 분트의 규약 제2조)에 대한 투표를 했을 때(당에서 분트가 퇴장하도록 만든 것은 바로 이 제2조의 부결이었다)도 역시 찬성표와 기권표가 합하여 10표였다는 것과 또한 이 때의 기권자들이 3명의 『라보체에 젤로』파(브루케르, 마르티노프, 아키모프)와 마흐프 동지였다는 것은 흥미롭다(의사록 289쪽). 분트 문제를 의사일정에서 어느 순서에 들 것인가에 대한 표결에서 파벌 분립이 이루어진 것은 확실히 우연히 아니다. 명백히 이들 모든 동지들은 심의 순서라는 기술적인 문제에서 뿐만 아니라, 본질적인 점에서도 『이스크라』와 달랐다. 『라보체에 젤로』의 경우에는 본질상의 이 차이는 누구에게나 분명하였다. 반면에 마흐프 동지는 분트의 퇴장에 대해 행한 연설에서(의사록 289~290쪽) 자신의 태도를 비할 때 없이 잘 표현하였는 바, 이 연설은 자세히 언급할 필요가 있다. 마흐프 동지는 다음과 같이 발언하였다. 연방제를 거부하는 결의가 이루어진 이상,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내에서의 분트의 지위 문제는 나에게 더 이상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발전한 민족 조직에 관련한 실천적 정책의 문제가 되었다.” 그는 계속해서 “여기서 나는 우리의 표결이 가져올지도 모르는 모든 결과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따라서 제2조 전체에 대해 찬성 투표를 하려 했다.” 마흐프 동지는 ‘실천적 정책’의 정신을 놀라우리만큼 잘 이해하고 있구나. 원칙적으로 이미 연방제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실천에서는 연방제를 의미하는 내용의 조항을 규약에 포함시키는 것에 찬성하려 했다. 그리고 이 ‘실천적’ 동지는 자신의 심오한 원칙적 입장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러나 [저 유명한 쉬체드린의 ‘그러나’이다] 다른 모든 대회 참가자들이 거의 일치하여 투표한 이상, 내가 찬성 투표를 하는가 반대 투표를 하는가는 원칙[!!]상의 의의만을 가질 뿐 아무런 실천적 중요성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기권하는 것이 낫다고 여겼는데, 그것은 원칙적으로[신이여, 그러한 원칙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소서]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입장과 찬성 투표한 분트 대표들의 입장 사이의 차이를 나타내려는 의도였다. 거꾸로, 분트 대표들이 그들이 처음에 고집했던 대로 기권했다면 나는 찬성 투표를 했을 것이다.”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원칙적인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아니오’ 하면 ‘예’ 하고 고함쳐 보았자 실천적으로 소용이 없기 때문에 기권한다는 것이다.
분트 문제의 의사일정에서의 위치에 대한 표결 이후에, 보르바 그룹[10)]에 대한 문제가 대회에 등장했다. 이것 역시 극히 흥미로운 파벌 분립을 가져왔는데, 이는 대회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즉 중앙기관들의 인선 문제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었다. 대회의 구성을 결정하기 위해 임명된 위원회[자격심사위원회 — 편집자]는, 조직위원회의 두 차례의 결정(의사록 383쪽과 375쪽을 참조)과 이 위원회에서 행해진 조직위원회 대표들의 보고에 따라서 보르바 그룹의 초청을 반대한다고 선언했다.
조직위원회의 위원인 에고로프는 ‘보르바에 대한 문제’(보르바에 대한 것이지 그 그룹의 특별한 몇몇 성원에 대한 것이 아님을 주의하라)가 ‘그에게는 새로운 것’이라면서 휴회를 요구했다. 조직위원회가 두 차례나 결의했던 문제가 어떻게 해서 조직위원회 위원에게 새로운 것이었는지는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휴회 중에 조직위원회는 모임을 가졌는데(의사록 40쪽), 이 모임에는 대회에 참가하고 있던 조직위원들만이 참석하였다(7)이스크라. 조직을 대표하였던 몇몇 조직위원회 위원은 대회에 참가하지 않고 있었다. [대회가 속개되고 — 편집자] 보르바에 대한 토론이 시작되었다. [라보체에 켈로, 파는 찬성하는 발언을 하였고(마르티노프, 아키모프, 그리고 브루케르 — 36~38쪽), [『이스크라』파는(파블로비치[크라시코프의 가명 — 편집자], 소로킨[바우만의 가명 — 편집자]), 랑게[스토파니의 가명 — 편집자], 트로츠키, 마르토프 등등) 반대 발언을 했다. 또다시 대화는 이미 우리에게 낮은 분파로 나뉘어졌다. 보르바 문제를 들러낸 후쟁은 격렬하였으며, 마르토프 등지는 매우 상세하고도(38쪽) ‘전투적인’ 연설을 하였다. 거기서 그는 러시아 국내와 국외 그룹들의 ‘대표 선출권의 불평등’을 적절하게 지적하면서 국외 그룹에게 어떤 ‘특권’을 허용하는 것은 결코 ‘좋지’ 못할 것이며(이는 대화 이후에 발언된 사건들을 볼 때 오늘날 특히 교훈적인 금언이다!), 또한 “어떠한 원칙적 고려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분열로 특정지어졌던 당 내의 조직적 흐린”을 고무해서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당 대화의 ‘소수파’에게 주는 일격이다!). 『라보체에 셀로』의 추종자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발언 신청이 마감될 때까지 공공연하게 그리고 합리적 이유를 들어 보르바를 지지한 사람은 없었다(40쪽). 공정하게 말해서 아키모프와 그의 동료들은 적어도 자신들의 노선을 일바퀴지거나 감추지 않고 공공연하게 웅호하였으며 그들이 원하는 바를 솔직하게 말했다.
발언 신청이 마감된 후에, 즉 이미 그 문제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순서가 지나갔을 때 에고로프 등지는 “조직위원회에서 방금 채택된 결정을 청취할 것을 완정하게 요구했다.” 대표들이 이런 책동에 분노하고 또한 의장인 플레하노프가 “에고로프 등지가 자신의 요구를 고집하다니 놀랍다”고 당혹감을 표현한 것은 당연했다. 두 가지 중 하나여야 했을 것이다. 즉, 논쟁 중인 문제에 대해 대화 전체 성원 앞에서 공개적이고 확고한 입장을 취하든가, 혹은 일절 언급을 하지 않든가. 그러나 발언자를 마감할 것에 동의하고 나서 ‘논쟁에 대한 회담’인 것처럼 가정하여, 논쟁 중이었던 바로 그 주제에 대한 조직위원회의 새로운 결정을 대화에 제출하는 것은 배반 행위나 다름없었다!
식사 후에 대화가 속개되었을 때도 의장단은 여전히 당황해하고 있었고, 결국 ‘정규 절차’를 떠나 대화에서는 이례적인 경우에만 사용하는 최후의 수단, 즉 ‘동지적 설명’(comradely explanation)이라는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하였다. 조직위원회의 대표인 포포프가 위원회의 결정을 알려 주었는데, 그 결정은 파블로비치 한 사람이 반대하고 다른 모든 위원에 의해 채택된 것으로서(43쪽), 라이자노프를[개인 자격으로 — 편집자] 초청할 것을 대화에 권고하는 내용이었다.
파블로비치는 자신이 조직위원회 모임의 적법성을 부인했으며 계속 부인하고 있다고, 그리고 위원회의 새 결정은 “동 위원회의 이전 결정에 위배된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은 대파란을 불러일으켰다. 조직위원회의 위원이자 『유즈니 라보치』 그룹의 일원인 에고로프 동지는 문제의 실질적인 요점에 대한 대답을 회피하고 규율의 문제에 중점을 두려 하였다. 즉, 조직위원회가 파블로비치의 이의를 토론한 후 “대회에 파블로비치의 이견을 전하지 않는다”고 결정하였기 때문에 파블로비치 동지는 당의 규율을 위반하였다(!)는 것이다. 토론은 당 규율의 문제로 넘어갔다. 플레하노프는 대표들의 박수갑제를 받으며 “우리들 사이에 구속적 위임은 없다”고 에고로프 동지에게 깨우쳐 주었다(42쪽, 372쪽의 대회 규정 제7조: “대표들의 권한을 구속적 위임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 자신들의 권한을 행사하는 데 대표들은 절대적으로 자유롭고 독립적이다”를 참조하라). “대회는 최고의 당 기관이다.” 그러므로 결국 당 활동에 관한 어떠한 문제라도 대표가 대회에 직접 제기하는 것을 어떤 방법으로든 제한하려고 하는 사람이야말로 당 규율과 대회 규정을 위반하는 것이다. 이러한 여 논쟁점은 써를 근성이나 아니면 당 정신이나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로 귀착 되었다. 다양한 협의체나 써를들의 가상의 권리 또는 규약 때문에 대표들의 권리가 대회에서 제한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참된 당 공식 기구를 창립하는 마당에 대회의 면전에서 모든 하급 기관들과 낡은 그룹들이 완전히 — 명목상으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 헤산되어야 하는가? 여기서 독자들은 당을 실질적으로 복구한다는 목적을 가진 이번 대회의 바로 초기(제3회 회의)에서 벌어 진 이 논쟁이 원칙적 관점에서 얼마나 심대한 중요성을 갖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낡은 써를 및 소그룹들(『유즈니 라보치』 같은)과 재건되는 당 사이의 갈등이 이 논쟁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반『이스크라』 그룹들은 곧 그 정체를 드러냈다. 분트파의 아브람슨, 현 『이스크라』 편집국의 열렬한 동맹자인 마르티노프 동지, 그리고 우리의 절친한 마호프 동지는 모두, 파블로비치에 반대한 에고로프와 유즈니 그룹을 지지하고 나섰다. 오늘날 조직에서의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데 마르토프와 악셀로드에 결코 뒤지지 않는 마르티노프는, …… 상급 기관에 올리는 호소가 하급 기관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군대를 예로 들기조차 했다! 이렇게 ‘결속된’ 반『이스크라』적 반대파의 진정한 의도는, 대회에 참석하였거나 대회 이전의 당 내부 역사를 주의 깊게 추적해 온 모든 사람에게 매우 분명한 것이었다. 반대파의 임무(아마도 반대파의 모든 대표가 가 늘 이를 의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때때로 타성의 힘에 의해 추구되었을 임무)는 협소한 소그룹의 독립성, 개별성, 분파적 이해가 『이스크라』의 원칙에 기초하여 건설되어 가는 광범위한 당 속에 흡수되어 버리지 않도록 수호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아직 마르티노프와 손을 잡지 않았던 마르토프 동지도 다름아닌 바로 이러한 각도에서 문제에 접근하였다. 마르토프 동지는 “혁명가에게 당규율은 자신이 소속한 하급의 개별 그룹에 대한 의무에 우선한다는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정력적으로 또 매우 올바르게 써졌다. “하나의 통일된 당 내에서, 강제력을 갖는[마르토프의 강조] 그룹을 만드는 것은 결코 허용될 수 없다” — 그는 써를 근성의 옹호자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대회 끝부터, 또한 그 이후의 자기 자신의 정치적 행위가 바로 이 말들에 의해 규탄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강제력을 갖는 그룹을 만드는 것이 조직위원회의 경우에는 허용될 수 없으나 편집국의 경우에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마르토프는 자신이 중앙의 위치에서 바라볼 때에는 강제력을 갖는 그룹을 결연히 비난했지만, 중앙의 구성이 자신에게 만족스럽지 못하게 되는 순간 거꾸로 그것을 옹호한다.
흥미를 끄는 것은, 마르토프 동지가 자신의 연설에서 애고로프 동지의 ‘심대한 오류’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조직위원회가 보여주었던 정치적 동요에 대해서도 특별히 강조하였다는 점이다. “위원회[자격심사위원회 — 편집자]의 보고서[참여한편 조직위원회 위원들의 보고에 기초하여 작성된 — 43쪽, 클로프의 언급] 및 조직위원회 자신의 이진 권고에 배치되는[나의 강조] 권고안이 조직위원회의 이름을 빌려 제출되었다”고 그는 정당한 분노를 표명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전환’하기 전인 그 당시의 마르토프는 보르바를 리아자노프로 바쳤다고 해서 조직위원회의 행동이 보여준 전적인 모습과 비일관성이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있었다[당원들은 연맹 대회 의사록 57 쪽을 보면 마르토프가 전환한 후에는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 마르토프는 규율의 문제를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무독독하게 “변경[나의 강조]을 필요하게 만든 새로운 사정이 무엇이오?” 하고 조직위원회에게 물었다. 실제로 조직위원회는 스스로가 권고안을 써드린 서도 아키모르나 다른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공공연히 자신의 의견을 내세울 용기조차 없었다. [지금 — 편집자] 마르토프는 이 사실을 부정하고 있지만(연맹 의사록 56쪽), 그가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대회 의사록을 보는 누구에게나 분명할 것이다. 포로프는 조직위원회의 권고안을 제출하면서도 그 제안 이유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당 대회 의사록 41쪽). 에고로프는 문제를 규율의 문제로 바꾸었고, 본래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 전부였다. 즉 “조직위원회에 새로운 이유가 생겼을지도 모르며[그러나 그랬는지 어떻는지, 또 그 이유들이 무엇이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혹은 조직위원회가 누군가를 추천하는 것을 잊어버릴 수도 있었다 등[이 ‘등등’이란 표현은 이 발언자의 유일한 피난처였다. 왜냐하면 조직위원회가 자신이 대회 이전에 두 면, 위원회에서 한 번 토의했던 보르바 문제를 잊어버릴 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조직위원회가 이 결정을 채택하지 않은 것은 보르바 그룹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당의 활동이 시작되는 초기에 당의 장래 중앙조직의 앞길에 놓여 있는 불필요한 장애물을 제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라고. 이런 식의 이야기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유를 회피하는 것이다. 성실한 사회민주주의자라면 누구나(우리는 대회 참가자 누구에 대해서도 그 성실성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자신이 장애물로 여기는 것을 제거하는 데, 또한 자신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제거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유를 설명한다는 것은 사물을 보는 자신의 관점을 명백하게 표현하고 해설하는 것이지 누구에게나 뻔한 사실을 주위성기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들 역시 “보르바에 대한 자신들의 태도를 바꾸지” 않고선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을 것이다(왜냐하면 이전의 상반된 결정에서 조직위원회는 바로 정반대의 것을 ‘암초’라 여기고 그것을 제거하는 데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마르토프는 이러한 논리가 ‘정점을 회피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시시한 변명’이라고 매우 신할하게 정면으로 공격하면서, 조직위원회에 대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할지 무려워 말라”고 충고하였다. 이 말은 대회에서 매우 커다란 역할을 연출했던 정치적 색채——자주성의 결여, 소심성, 자기 노선의 부재, 사람들이 하는 말에 대해 두려워하는 태도, 명백한 양 진영 사이에서 끊임없는 동요, 자신의 신조를 당당히 이야기하지 못하는 태도, 즉 한 마디로 전형적인 ‘높지 근성’이라 할 수 있는 정치적 색채——의 본질적 성격을 완벽하게 특정짓고 있다.
동요하는 그룹의 이러한 정치적 무정견 때문에 결국 분트파의 유인을 제외하고는(53쪽) 어느 누구도 보트바 그룹 가운데 한 사람[단, 개인 자격으로 -편집자]을 초청하자는 결의안을 대회에 제출하지 못하였다. 유인의 결의안은 5표를 얻었는데 분명히 모두 분트파였을 것이다. 동요 분자들은 또다시 편을 바꾸었다! 중간파의 표 수가 대략 어느 정도의 크기였는가, 이 문제에 대한 콜초프의 결의안[보트바 그룹의 대표를 초청하는 것에 반대한 자격심사위원회 다수파의 결의안 -편집자]과 유인의 결의안[보트바 그룹의 대표를 초청하는 것에 찬성한 자격심사위원회 내 소수파의 대항 결의안 -편집자]의 표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스크라』과는 32표를 얻었고(47쪽), 분트파는 16표, 즉 반『이스크라』과의 8표에 마호프의 2표, 『유즈니 라보치』 그룹의 4표 그리고 다른 2표를 더한 표수를 얻었다(46쪽). 이러한 배분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음을 곧 증명해 보이겠다. 그러나 먼저 이 조직위원회 사건에 대한 마르토프의 현재 의견에 잠시 눈을 돌려 보자. 마르토프는 연맹에서, “파블로비치와 다른 사람들이 분노를 부재질하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회 의사록을 참조하기만 해도 즉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보트바와 조직위원회에 반대해서 가장 길고 가장 열매게 그리고 가장 날카롭게 연설한 사람은 마르토프 자신이었다. 파블로비치에게 ‘허물’을 뒤집어씌우려고 하는 것은 단지 그 자신의 동요를 입증할 뿐이다. 마르토프는 대회 이전에는 다름아닌 파블로비치가 일곱 번째 편집국원으로 선출되게끔 조력하였으며, 대회에서는 에고로프에 반대하여 파블로비치와 완전히 손을 잡았다(44쪽). 그러나 나중에 파블로비치의 손에 패배를 당하고 나자 ‘분노를 부재질했다’고 파블로비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옷기는 일이다.
마르토프는 『이스크라』(56호)에서, 갑을 초청할 것인가 울을 초청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중대한 의의가 부여되는 것에 대해 조소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소는 또다시 마르토프에게로 되돌려진다. 왜냐하면 중앙위원회나 중앙기관지에 갑을 초청할 것인가 울을 초청할 것인가 하는 ‘중대한’ 문제를 돌려받는 것의 발달이 된 것은 바로 이 조직위원회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자신이 소속한 ‘하급 그룹’(당에 대하여)에 관계되는가 다른 사람이 소속한 ‘하급 그룹’에 관계되는가에 따라서 다른 척도로 판단하는 것은 몰사나운 것이다. 이런 것이아말로 속물 근성이고 써클주의이지 당적 태도는 아니다. 마르토프가 연맹에서 한 연설(57쪽)과 대회에서 한 연설(44쪽)을 단순 비교하기만 해도 이 점은 충분히 입증된다. 마르토프는 연맹에서 특히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스 로를 ‘이스크라’과 부르면서도 동시에 ‘이스크라’과라는 것을 부끄럽게 여 기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니 이해할 수 없다.” 여기서 그는 ‘자처하는 바’와 ‘실제로 그러하다는 것’과의 차이, 즉 말과 행동의 차이를 기댐하게 몰이해하 고 있다. 마르토프 그 자신이 대회에서는 강제력을 갖는 파벌의 적대자임을 자처했지만, 대회 이후에는 실제 그 옹호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