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자본주의의 특수한 단계로서의 제국주의

 

이쯤에서 제국주의에 대해 앞에서 말한 것들을 모아 총괄해보도록 하자.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일반이 가진 기본 특성들이 발전한 것이자, 그 직접적인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그 발전 단계의 아주 높은 특정 단계에 이르렀을 때에만 자본주의적 제국주의가 된다. 이 단계에 이르면 자본주의의 몇몇 기본 특성들이 각각 자신의 대립물로 전화하기 시작하며, 자본주의로부터 더 높은 사회·경제체제로 넘어가는 이행기의 특징들이 모든 면에서 형성되고 드러나게 된다. 경제면에서 보면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적 독점이 자본주의적 자유경쟁을 대체한다는 것이다. 자유경쟁은 자본주의 및 상품생산 일반의 기본 특성이며, 독점은 자유경쟁의 직접적인 대립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눈으로 자유경쟁이 독점으로 전화하는 과정을 지켜보지 않았는가. 자유경쟁은 대규모 생산을 창출하여 소규모 생산을 몰아내고, 대규모 생산을 더더욱 거대한 규모의 생산으로 대체했으며, 생산과 자본의 집중을 초래하여 그로부터 독점이, 다른 말로는 카르텔·신디케이트·트러스트 및 그것들과 융합하여 수십억을 움직이는 십여 개 은행들의 자본이 자라나와 계속 성장할 수 있게 했다. 이러는 동시에 자유경쟁에서 자라나온 독점은 자유경쟁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위에 그것과 나란히 존재하면서, 일련의 특별히 침예하고 격렬한 모순·마찰·갈등들을 만들어낸다. 독점은 자본주의에서 더욱 높은 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인 것이다.

 

만약 제국주의를 최대한 간단하게 정의해야 한다면, 제국주의는 독점 단계의 자본주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정의는 가장 중요한 것을 함축하고 있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금융자본이란 산업가 독점연합의 자본과 융합한 소수의 거대 독점 은행들의 은행자본이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 세계 분할이란 아직 어떤 자본주의 강대국도 점령하지 않은 지역으로 아무 방해 없이 확장할 수 있었던 식민정책에서 이미 완전히 분할된 세계 영토를 독점적으로 보유하려는 식민정책으로의 이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간단한 정의는, 요점을 간추리고 있어서 편리하긴 하지만, 정의해야 하는 현상의 매우 중요한 특징들을 그것들로부터 연역해내야 하므로 역시나 불충분하다. 따라서 모든 정의는 제한적이고 상대적이며, 그것의 발전으로부터 연쇄되어 발생하는 모든 현상을 다 포괄할 수는 없음을 기억하면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기본 양태¹⁷⁷를 포함하는 제국주의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할 것이다.

 

(1) 독점을 창출하여 그것이 경제생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정도로 높은 발전 단계에 도달한 생산과 자본의 집중 (2)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융합, 그리고 이 '금융자본'을 기초로 한 금융과두제의 탄생 (3) 상품수출과 구별되는 자본 수출이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획득 (4) 세계를 분할하는 자본가들의 국제적인 독점연합들 형성 (5) 거대 자본주의 열강들에 의해 지구의 영토적 분할 완료. 요약하자면 제국주의란 독점과 금융자본의 지배가 형성되고, 자본수출이 중요한 의미를 획득하며, 국제 트러스트들에 의한 세계 분할이 시작되고, 가장 큰 자본주의 나라들에 의해 지구의 모든 영토 분할이 완료된 발전 단계에 도달한 자본주의다.

 

만약 기본적이고 순수한 경제적 의미(앞에서 내린 정의는 그것에 한정되어 있다)뿐 아니라, 이 단계의 자본주의가 자본주의 일반에 대해 갖는 역사적 위치라든가 노동운동 내부의 두 개의 주요한 경향과 제국주의의 관계를 고려한다면, 제국주의를 어떻게 다르게 정의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정의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는 뒤에서 보게 될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는 앞에서처럼 해석된 제국주의는 의심할 여지 없이 자본주의 발전의 특수한 단계라는 것을 유념하면 된다. 제국주의에 대해 가능한 한 좀 더 근거가 있는 개념을 독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나는, 최근의 자본주의 경제에서 반박의 여지 없이 확증된 사실들을 마지못해 인정하고 있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논설을 되도록 많이 인용하려고 했다. 은행자본 등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성장했는지, 양에서 질로의 전화, 즉 발전한 자본주의의 제국주의로의 이행이 과연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볼 수 있도록 자세한 통계수치들을 인용한 것도 같은 목적을 위한 것이다. 자연과 사회의 모든 경계가 제한적이고 유동적이라는 것, 따라서 예컨대 제국주의가 '최종' 확립된 것이 어느 해 또는 몇 십 년대인가를 두고 논쟁하는 것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라는 것은 따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제국주의의 정의에 관해서, 무엇보다 먼저 이른바 제2인터내셔널 시대, 1889년부터 1914년까지 25년 동안 가장 중요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였던 K. 카우츠키와 논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제시한 제국주의의 정의에 표현된 기본 사상을 카우츠키는 1915년에, 아니 이미 191411월에 매우 단호하게 반대하며 다음과 같은 점들을 언급했다. 제국주의는 경제의 '국면'이나 단계가 아니라 정책, 즉 금융자본이 '선호하는' 특정 정책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 제국주의를 '현대 자본주의'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 만약 제국주의를 카르텔, 보호정책, 금융업자의 지배, 식민정책 같은 '현대 자본주의의 모든 현상'으로 이해한다면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에 필연적인가라는 문제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동어반복'이 돼버릴 텐데 그렇게 되면 '제국주의는 당연히 자본주의에 절실히 필요한 것'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 등. 카우츠키의 이러한 생각은 앞에서 내가 서술한 사상의 핵심 내용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이다(왜냐하면 오랫동안 유사한 사상을 펼쳐온 독일 마르크스주의자 진영에서의 반론은 카우츠키가 마르크스주의 내 특정 조류의 반론으로서 일찍부터 알고 있던 것이기 때문이다⁷⁸). 그런 그의 사상은 그가 제국주의에 대해 내린 정의를 인용할 때 보다 정확히 드러날 것이다.

 

카우츠키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제국주의는 고도로 발전한 산업자본주의의 산물이다. 그것은 거기에 어떤 민족이 살고 있는가와 관계 없이, 더 넓은 농업 지역(강조는 카우츠키)을 정복하고 합병하려는 모든 산업자본주의 민족의 열망에 존재한다."¹⁷⁹⁸⁰

 

이런 정의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데, 왜냐하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정의이기 때문이다. 이 정의는 제멋대로 민족 문제만을(그 자체로도, 제국주의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분리해서, 다른 민족을 합병하려는 나라들의 산업자본에만 제멋대로 연관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똑같이 제멋대로 농업 지역의 합병만을 부각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제국주의는 합병을 원한다. 카우츠키가 내린 정의의 정치적 부분이 귀결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이것은 옳지만 대단히 불완전한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제국주의는 정치적으로 압제와 반동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은 카우츠키 본인이 자신의 정의에 포함시킨 문제의 경제적 측면이다. 카우츠키의 정의가 지닌 오류는 한눈에 번쩍 들어온다. 제국주의의 특징은 산업자본이 아니라 바로 금융자본이다. 프랑스에서 1880년대부터 합병(식민)정책이 극단적으로 강화된 것이 산업자본이 약화되고 금융자본이 굉장히 급속하게 발전한 것과 관련이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제국주의는 농업 지역뿐 아니라 가장 공업화된 지역도 합병하려고 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데(벨기에에 대한 독일의 욕망, 로렌 지역에 대한 프랑스의 욕망), 이는 첫째로 이미 세계 분할이 완결된 탓에 재분할할 때는 모든 종류의 땅에 손을 뻗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헤게모니를 추구하는 여러 강대국들의 경쟁이야말로 제국주의의 본질적 특성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직접적으로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 경쟁국을 약화시키고 경쟁국의 헤게모니를 파괴하기 위해서 영토를 장악하려고 한다(독일에게는 벨기에가 영국에 대한 거점으로, 영국에게는 바그다드가 독일에 대한 거점으로 특별히 중요하다).

 

카우츠키는 여러 차례 되풀이해서 영국을 예로 들고 있는데, 아마도 카우츠키 자신이 말하는 의미에서의 제국주의라는 단어의 순수한 정치적 의미를 영국인들이 규정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국인 홉슨을 데려와서 1902년에 출판된 그의 저서제국주의론을 읽어보기로 하자.

 

"새로운 제국주의가 종래의 제국주의와 다른 점은 첫째는 성장하는 단일 제국의 야망 대신 각각 정치적 확장과 상업적 이득에 대한 똑같은 탐욕 때문에 경쟁하는 여러 제국들의 이론과 실천이 나타난다는 것이고, 둘째는 상업상의 이익보다 금융 또는 투자상의 이익이 우위에 선다는 것이다."¹¹

 

우리는 카우츠키가 영국을 일반적인 예로 든 것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것을 보았다(그는 고작 영국의 속류 제국주의자나 제국주의의 공공연한 옹호자를 인용할 수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카우츠키가 여전히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사회자유주의자 홉슨에 비해서도 뒤처져 있음을 확인한다. 홉슨은 현대 제국주의의 두 가지 '역사적으로 구체적인'(카우츠키는 자신의 정의를 가지고 역사적 구체성을 우롱하고 있다!) 특성들, (1) 몇몇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쟁, (2) 상인에 대한 금융가들의 우위를 더 올바르게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만일 공업국이 농업국을 합병하는 것이 주로 문제라면, 그 경우에는 상인의 역할이 가장 부각되어야 할 것이다.

 

카우츠키의 정의는 부정확할 뿐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모든 면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론 및 마르크스주의 실천과 단절한 견해들의 총체에 하나의 토대로 기능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룰 것이다. 카우츠키가 제기한 용어상의 논쟁, 자본주의의 이 가장 새로운 단계를 제국주의라고 부를 것인가, 금융자본 단계라고 부를 것인가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마음대로 불러라. 아무래도 상관없다. 문제의 본질은 카우츠키가 합병을 금융자본이 '선호하는' 정책으로 설명하고, 합병 정책에다가 금융자본이라는 똑같은 토대 위에서 언뜻 보기에 가능할 것 같은 다른 부르주아 정책을 대립시키는 데 있다. 그 결과 경제에서 독점과 정치에서 독점적이지 않고 강압적이지 않고 침략적이지 않은 행동 방식이 양립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바로 이 금융자본 시대에 완성된, 가장 큰 자본주의 나라들 사이에 경쟁이 보이는 독특한 현 모습의 토대가 되는 지구의 영토 분할이 제국주의적이지 않은 정책들과 양립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하여 가장 새로운 자본주의 단계의 가장 근본적인 모순들의 심각성을 폭로하는 대신 그것을 흐리고 무디게 만들고 마르크스주의 대신 부르주아 개량주의로 귀결되는 것이다.

 

카우츠키는 독일에서 합병과 제국주의를 옹호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인 쿠노(Cunow)¹²와 논쟁한다. 쿠노는 조잡하고도 뻔뻔하게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제국주의는 오늘날의 자본주의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필연적이며 진보적이다. 따라서 제국주의는 진보적이며, 그러므로 그 앞에 납작 엎드려 찬양해야 한다! 이런 논리는 1894~5년에 나로드니키¹³가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비난하던 조롱, 즉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러시아에서 자본주의를 필연적이고 진보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선술집이나 개업해서 자본주의를 보급하는 데 애써야 할 것이라던 조롱과 비슷하다⁸⁴ 카우츠키는 쿠노를 반박한다. 맞다. 제국주의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자체가 아니라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취할 수 있는 여러 정책들 가운데 한 형태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 정책과 투쟁할 수 있고 투쟁해야 한다. 즉 제국주의나 합병 등과 투쟁할 수 있고 투쟁해야 한다.

 

이 반론은 아주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제국주의와의 화해를 이야기하는 더욱 교묘하고 더욱 은밀한(따라서 더욱 위험한) 설교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트러스트 및 은행의 경제적 토대를 건드리지 않는 트러스트 및 은행의 정책과의 '투쟁'은 부르주아 개량주의와 평화주의로, 선량하고 순진한 희망들의 표현으로 귀결될 뿐이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모순들을 철저하게 폭로하는 대신 회피하고, 그 모순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잊어버리는 것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주의와 아무 공통점이 없는 카우츠키의 이론이다. 그리고 이런 '이론'이 쿠노 부류들과 뭉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옹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카우츠키는 "순수하게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가 또 하나의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카르텔 정책이 대외정책으로 확장되는 초제국주의 단계로 말이다⁸⁵라고 쓰고 있다. 이는 곧 제국주의를 초월한,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기들끼리 싸우지 않고 전세계적으로 단합하는 단계, 자본주의 아래에서 전쟁이 중식되는 단계, "국제적으로 연합한 금융자본이 세계를 공동으로 착취⁸⁶하는 단계다.

 

'초제국주의 이론'이 마르크스주의와 얼마나 결정적으로, 돌이킬 수 없이 단절하고 있는지 상세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는 그것을 나중에 천천히 다뤄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이 책의 전체 계획에 따라 이 문제에 관련된 정확한 경제수치에 주의를 돌릴 필요가 있다. "순수하게 경제적인 관점"에서 "초제국주의"는 가능한 것일까, 초허튼 소리에 불과한 것일까?

 

만일 순수하게 경제적인 관점이라는 것을 "순수"한 추상으로 이해한다면,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런 명제밖에 없을 것이다. 독점으로 발전이 진행되고 있으며, 따라서 전세계적 독점, 단일한 전세계적 트러스트로 발전이 진행되고 있다. 이 명제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식량을 실험실 내에서 생산하는 방향으로 '발전이 진행되고 있다'는 말과 마찬가지로 아무 내용이 없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초제국주의 '이론''초농업 이론'만큼이나 엉터리다.

 

만일 20세기 초에 들어맞는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시대로서 금융자본의 시대의 "순수하게 경제적인" 사정에 대해서 말한다면, "초제국주의"라는 죽은 추상(현존하는 모순들의 심각성으로부터 사람들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려는 지극히 반동적인 목적에 기여하는 것)에 대한 가장 좋은 대답은 현대 세계 경제의 구체적인 경제 현실을 그것에 대치시키는 것이다. 초제국주의에 대한 카우츠키의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잡담은, 특히 금융자본의 지배는 실제로는 세계 경제 내부의 불균등성과 모순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인데도 그것들을 약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근본으로부터 잘못된, 그리고 제국주의의 옹호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사상을 고취하고 있다⁸⁷

 

R. 칼버(Calwer)¹⁸⁸는 소책자세계경제입문Einführung in die Weltwirtschaft¹⁸⁹에서 19세기와 20세기의 경계 무렵에서 세계 경제 내부의 상호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관념을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주요한 경제수치를 총괄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전세계를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주요 경제권'으로 나누고 있다.

 

(1) 중앙유럽권(러시아와 영국을 제외한 전유럽), (2) 영국권, (3) 러시아권, (4) 동아시아권, (5) 아메리카권. 식민지는 그것이 속한 국가의 '권역'에 포함시키고 있지만, 어느 권역에도 속하지 않는 소수의 나라, 예를 들면 아시아의 페르시아·아프가니스탄·아라비아, 아프리카의 모로코·아비시니아 등은 '제외되어 있다.'

 

이들 지역에 대해 그가 제시한 경제수치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세계 주요 경제권 면적 (100만 평방킬로미터) 인구 (100만 명) 철도 (천 킬로미터) 상선 (100만 톤) 수출입 합계 (억 마르크) 석탄 채굴량 (100만 톤) 선철 생산량 (100만 톤) 면방적업의 방추 수 (100만 개)

(1) 중앙유럽권 27.6 *(23.6) 388 (146) 204 8 410 251 15 26

(2) 영국권 28.9 *(28.6) 398 (355) 140 11 250 249 9 51

(3) 러시아권 22 131 63 1 30 16 3 7

(4) 동아시아권 12 389 8 1 20 8 0.02 2

(5) 아메리카권 30 148 379 6 140 245 14 19

*괄호 안 숫자는 식민지의 면적과 인구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교통·무역·공업이 매우 발달한) 세 권역, 즉 중앙유럽권, 영국권, 아메리카권을 보자. 이 권역들에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세 나라, 독일, 영국, 미국이 있다. 이 나라들 사이의 제국주의적인 경쟁과 투쟁은 독일이 가진 권역이 보장되었고 식민지도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중앙유럽'이 완성되는 것은 미래의 일이며, 그것은 필사적인 투쟁 속에서 탄생할 것이다. 당분간 전유럽의 특징은 정치적 분열 상태다. 그에 비해 영국권과 아메리카권에서는 정치적 집중이 매우 많이 진전되었지만, 광대한 식민지를 갖고 있는 영국과 별로 일 없는 식민지밖에 갖고 있지 못한 미국 사이에 커다란 불균형이 있다. 그런가 하면 식민지들에게서의 자본주의 발전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아메리카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은 점점 더 격화되고 있다.

 

다른 두 개의 권력은 자본주의 발전이 미약한 지역으로 러시아권과 동아시아권이다. 러시아권의 인구밀도는 매우 낮고, 동아시아권은 매우 높다. 앞의 지역은 정치적 집중도가 높지만, 뒤의 지역은 낮다. 중국의 분할은 이제 겨우 시작됐을 뿐이며, 중국을 둘러싼 일본, 미국 등의 투쟁은 점점 더 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 곧 경제적·정치적 조건들이 이처럼 굉장히 다양하고, 가지각색의 국가들이 성장 속도 등에서 극히 불균형하며,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에 격렬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현실을 '평화로운' 초제국주의라는 카우츠키의 어리석은 이야기와 대비해보라. 이는 겉면은 소시민이 무서운 현실에서 몸을 숨기려는 반동적인 시도가 아닐까? 카우츠키에게는 '초제국주의'의 맹아로 생각되는(실험실에서 제조된 알약을 초농업의 맹아라고 선언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제 카르텔은 세계의 분할하고 재분할하는 실제 사례, 즉 평화로운 분할에서 평화롭지 않은 분할로 이행하거나 그 반대로 이행하는 실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예를 들어 국제 철도 신디케이트와 국제 해운 트러스트에 독일이 참여할 경우, 세계를 평화롭게 분할하고 있었던 아메리카 등지의 금융자본은 변화하고 있는 새로운 세력관계에 근거해서 전혀 평화롭지 않은 방법으로 당장 세계를 재분할하지 않겠는가?

 

금융자본과 트러스트는 세계 경제의 다양한 부분들 사이에 나타나는 성장 속도의 차이를 좁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넓히고 있다. 그런데 세력관계가 변화하는 경우, 자본주의 시대에 힘이 아니면 무엇으로 모순의 해결이 가능할 것인가? 우리는 세계 경제 전체에서 자본주의와 금융자본의 성장 속도의 차이에 관한 매우 정확한 수치를 철도 통계에서 찾아낼 수 있다⁹⁰ 제국주의가 발전한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철도의 길이는 아래와 같이 변화했다.

 

철도 단위 : 천 킬로미터

1890 1913 증가량

유럽 224 346 +122

미국 268 411 +143

모든 식민지 82 210 +128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독립국과 반독립국 43 137 +94

합계 617 1,104

 

따라서 철도의 발전은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식민지와 독립국(및 반독립국)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모두들 알다시피 네다섯 개의 가장 큰 자본주의 국가들의 금융자본이 이 지역에서 전면적으로 군림하고 지배하고 있다. 식민지와 아시아, 아메리카 등지의 나라들에서 20만 킬로미터의 새로운 철도, 그것은 400억 마르크 이상의 새로운 자본의 투입이 특별히 유리한 조건으로 이루어지고, 수익이 특별히 보장되고, 제강공장에 이익이 많은 주문이 들어가는 등의 일을 의미한다.

 

자본주의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곳은 식민지들과 대양 너머의 여러 나라들이다. 그 나라들 중에서 새로운 제국주의 열강들(예를 들면 일본)이 등장하고 있다. 세계 제국주의의 투쟁이 격렬해지고 있다. 금융자본이 식민지들과 대양 너머의 특히 수익성이 높은 기업들로부터 획득하는 공물은 늘어나고 있다. '노획물'의 분배에서 극히 큰 부분이 생산력 발전 속도에서 항상 선두에 있지는 못한 나라들의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가장 큰 강대국들의 철도 길이는 식민지까지 포함했을 때 다음과 같다.

 

1890 1913 증가

미국 268 413 145

대영제국 107 208 101

러시아 32 78 46

독일 43 68 25

프랑스 41 63 22

5대 강국 합계 491 830 339

 

이처럼 전체 철도 길이의 약 80퍼센트가 최대 열강 다섯 나라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이 철도들에서 소유의 집중, 금융자본의 집중은 훨씬 더 엄청나게 두드러진다. 왜냐하면 영국과 프랑스의 이른바 백만장자들이 아메리카, 러시아 및 다른 나라 철도들의 주식과 회사채들을 굉장히 많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식민지 덕분에 '그것의' 철도망을 십만 킬로미터나 늘릴 수 있었는데, 이는 독일의 증가량의 네 배에 이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시기에 독일의 생산력은, 특히 석탄산업과 철강산업에 있어서 프랑스와 러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영국에 대해서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발전했다. 1892년 영국의 선철 생산량이 680만 톤인 데 비해 독일은 490만 톤에 불과했지만, 1912년에는 이미 영국의 900만 톤에 대해 1,760만 톤을 생산하여 영국보다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¹ 분명, 자본주의라는 토대 위에서 한쪽의 생산력 발전 및 자본 축적과, 다른 쪽의 금융자본을 위한 식민지 및 '세력권'의 분할 사이에 존재하는 불균형을 없애는 데 있어서 전쟁 외의 다른 어떤 수단이 있을 수 있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6

 

열강들 사이의 세계 분할

 

지리학자 A. 주판(Supan)¹⁵⁵'유럽 식민지의 영토 확장'에 대한 책에서 19세기 말에 이루어진 이 확장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요약한다⁵⁶

 

1876 1900 증가율

 

아프리카 10.8% 90.4% +79.6%

폴리네시아 56.8% 98.9% +42.1%

아시아 51.5% 56.6% +5.1%

오스트레일리아 100.0% 100.0%

아메리카 27.5% 27.2% -0.3%

 

그는 "따라서 이 시기의 특징은 아프리카와 폴리네시아의 분할이다"라고 결론짓는다. 하지만 아시아나 아메리카에도, 그 어느 나라에 속하지 않은 무주공산의 땅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주판의 결론을 확대하여 이 시기의 특징은 지구의 최종적인 분할이라고 말해야 마땅할 것이다. 이 최종적이란 것은 재분할이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니라(그렇기는 커녕 재분할은 가능한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다) 자본주의 나라들의 식민 정책이 지구상의 미점령지에 대한 장악을 완성했다는 의미다. 세계는 처음으로 완전히 분할되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오직 재분할만 가능할 뿐이다. 다시 말해 주인이 없는 상태에서 '주인'에게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소유자'에게서 다른 '소유자'에게로 넘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전세계 식민화 정책의 시대라는 독특한 시대를 겪고 있는 것인데, 이는 '자본주의 발전의 최근 단계', 즉 금융자본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시대와 그 이전 시대의 차이, 그리고 현 시기의 상황을 되도록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실제 수치자료들을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경우 무엇보다 사실에 관련해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즉 식민화 정책의 강화, 식민지를 얻기 위한 투쟁의 격화가 과연 꼭 금융자본의 시대에 나타난 것인가, 그리고 지금 이 측면에서 정확히 어떻게 세계가 분할돼 있는가 하는 것이다.

 

미국의 저술가 모리스(Morris)는 식민화의 역사에 관한 책에서 19세기의 여러 시기에 있어 영국·프랑스·독일의 식민지 보유 규모에 관한 통계 수치를 개괄해보려고 시도했다⁵⁷ 그가 얻은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식민지 점유 영국 프랑스 독일

연도 면적 (100만 평방마일) 인구 (100만 명) 면적 (100만 평방마일) 인구 (100만 명) 면적 (100만 평방마일) 인구 (100만 명)

1815~30 ? 126.4 0.02 0.5

1860 2.5 145.1 0.2 3.4

1880 7.7 267.9 0.7 7.5

1899 9.3 309.0 3.7 56.4 1.0 14.7

 

영국에서 식민지 정복이 가장 활발하게 확대된 시기는 1860~80년대였으며, 19세기 마지막 20년에도 몹시 왕성했다.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식민지 확대의 시기가 그 마지막 20년이었다. 우리가 앞서 보았던 대로 독점 이전의 자본주의, 자유경쟁이 지배하고 있던 자본주의의 발전이 절정에 달렸던 시기는 1860년대와 70년대다. 우리는 지금 바로 그 시기 직후에 식민지 정복의 엄청난 '고양'이 시작되고, 세계 영토를 분할하기 위한 투쟁이 극도로 격화된 것을 보고 있다. 따라서 독점자본주의의 단계로의, 금융자본으로의 자본주의의 이행이 세계의 분할을 위한 투쟁의 격화와 연관돼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홉슨은 자본주의에 대해 쓴 저서에서 1884~1900년의 시기를 주요한 유럽 국가들의 맹렬한 '팽창'(영토 확장)의 시대로 특별히 구분하고 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영국은 이 시기에 5,700만 인구를 가진 370만 평방마일을, 프랑스는 3,650만 인구를 가진 360만 평방마일을, 독일은 1,470만 인구를 가진 100만 평방마일을, 벨기에는 3,000만 인구를 가진 90만 평방마일을, 포르투갈은 900만 인구를 가진 80만 평방마일을 획득했다. 19세기 말, 특히 1880년대 이후에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차지하기에 여념이 없었음은 외교사와 대외정책사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영국에서 자유경쟁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인 1840~60년대에는 그 나라의 지도적인 부르주아 정치가들이 식민정책을 반대했다. 그들은 식민지를 해방시키고, 영국에서 식민지를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 필연적이며 자신들에게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M. 비어(Beer)¹⁵⁹1898년에 발표한 '현대 영국 제국주의Modern British Imperialism'¹⁶⁰에서 일반적으로 제국주의에 대한 지향을 갖고 있는 디즈레일리(Disraeli)¹¹ 같은 영국 정치가조차 "식민지는 우리의 목에 매달린 '맷돌'"이라고 말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19세기 말에는 공공연하게 제국주의를 천명하며 가장 뻔뻔스럽게 제국주의적 정책을 실행한 세실 로즈(Cecil Rhodes)¹²와 조지프 체임벌린(Joseph Chamberlain)¹³이 영국의 시대적 영웅이었다!

 

이미 그 당시에 영국 부르주아의 지도적 정치가들이 현대 제국주의의, 이른바 순수한 경제적 뿌리와 사회적·정치적 뿌리의 연관성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체임벌린은 제국주의가 "진실하고 현명하며 경제적인 정책"이라고 주장하면서, 영국이 지금 세계 시장에서 독일, 미국, 벨기에의 도전을 받고 있음을 지적했다. 구원은 독점에 있다. 자본가들은 그렇게 말하며 카르텔과 신디케이트와 트러스트를 만들었다. 구원은 독점에 있다. 부르주아지 정치 우두머리들도 앵무새처럼 그 말을 따라 하며 지구상의 아직 분할되지 않은 부분을 강점하기 위해 서둘렀다. 세실 로즈는 친구인 언론인 스테드(Stead)¹⁶⁴가 말한 바에 따르면 1895년에 자신의 제국주의 사상에 대해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어제 런던의 이스트엔드(노동자 구역)에 가서 실업자들의 집회에 가보았다. 거기서 '빵을! 빵을!'이라고 외치는 난폭한 연설을 듣고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광경을 곱곱이 생각해보면서 나는 지금까지보다 더 제국주의의 중요성을 확신하게 되었네. …… 가슴에 품은 나의 이상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네. 그러니까 영국의 4천만 국민을 피비린내 나는 내란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 식민정치가는 과잉인구를 이주시키고, 공장과 광산에서 생산되는 상품의 새로운 시장을 획득하기 위해 새로운 영토를 손에 넣지 않으면 안 된다 말일세. 내가 늘 말하는 것처럼 제국이란 빵과 버터의¹⁶⁵ 문제라네. 내란이 일어나길 바라는 게 아니라면 여러분은 제국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거야."¹⁶⁶

 

이것이 백만장자이자 금융왕, 그리고 보어 전쟁의 장본인인 세실 로즈가 1895년에 한 말이다. 그런데 그의 제국주의 옹호는 사실 조잡하고 파렴치한 것에 불과하지만, 본질에 있어서 마술로프(Maslov), 쥐데쿰(Albert Südekum), 포트레소프(Potresov), 다비트(David),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 등의 '이론'과 다를 바 없다. 세실 로즈는 조금 더 정직한 사회배외주의자였던 것이다……

 

세계의 영토 분할과 그와 관련한 최근 수십 년의 변화를 될 수 있는 한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 앞서 언급한 책에서 주판이 세계 모든 열강의 식민지 영유 문제에 대해 제시한 총괄적인 자료를 이용하겠다. 주판은 1876년과 1900년을 택하고 있지만, 내가 선택한 해는 1876년과 1914년이다. 1876년은 매우 적절하게 선택된 시점이다. 왜냐하면, 대체로 확실히 이 무렵 독점 이전의 단계에 서유럽 자본주의 발전이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14년에 대해서는 주판의 수치 대신 휘브너(Hübner)의 지리통계표에서 새로운 수치들을 인용하겠다⁶⁸

 

주판은 식민지만을 다루고 있지만, 우리는세계 분할의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비식민지 국가들과 반식민지 국가들에 대한 수치를 간단하게 덧붙이는 것이 유의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반식민지 범주에 넣은 것은 페르시아, 중국, 터키로, 이 중 맨 앞의 나라는 이미 거의 완전히 식민지가 되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나라는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해서 다음과 같은 표가 나온다.

 

1876 1914 1914 1914

식민지 식민지 본국 총계

면적 인구 면적 인구 면적 인구 면적 인구

영국 22.5 251.9 33.5 393.5 0.3 46.5 33.8 440.0

러시아 17.0 15.9 17.4 33.2 5.4 136.2 22.8 169.4

프랑스 0.9 6.0 10.6 55.5 0.5 39.6 11.1 95.1

독일 2.9 12.3 0.5 64.9 3.4 77.2

미국 0.3 9.7 9.4 97.0 9.7 106.7

일본 0.3 19.2 0.4 53.0 0.7 72.2

6대 열강합계 40.4 273.8 65.0 523.4 16.5 437.2 81.5 960.6

 

나머지 강국들(벨기에, 네덜란드 등)의 식민지 9.9 45.3

반식민지(페르시아, 중국, 터키) 14.5

361.2

나머지 나라들 28.0 289.9

세계 전체 133.9 1,657.0

 

우리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어떻게 세계 분할이 '완성'되었는지를 여기서 명확히 보고 있다. 식민지 영토는 1876년 이후 거대한 규모로 확장되었다. 6대 열강의 경우에는 4천만 평방킬로미터에서 6,500만 평방킬로미터로 1.5배 이상 확장되었다. 증가 면적은 2,500만 평방킬로미터로 이는 본국 면적(1,650만 평방킬로미터)1.5배다. 열강들 셋은 1876년에는 식민지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고, 프랑스 또한 거의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1904년경 이 네 나라 열강들은 합쳐서 1,400만 평방킬로미터 면적의 식민지를 갖고 있었다. 이는 유럽 면적의 약 1.5배였고, 그 영토에 거주하는 인구는 거의 1억 명에 달했다. 식민지가 확장될 때 그것은 대단히 불균등하게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프랑스와 독일, 일본을 비교하면, 이들은 면적과 인구에서 별 차이가 없는데도, 프랑스가 나머지 두 나라를 합친 것보다 (그 면적에서) 거의 세 배나 되는 식민지를 획득한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금융자본의 규모에서도, 프랑스는 지금 우리가 살피고 있는 시기의 초기에는 독일과 일본의 금융자본을 합한 것보다 아마 몇 배 많은 금융자본을 보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식민지 영토의 규모에는 전적으로 경제적인 조건 외에, 그것을 기초로 한 지리적 조건 등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수십 년 사이에 대규모 산업과 교역과 금융자본의 압박 아래 각 나라의 경제조건과 생활조건이 평준화되는 세계의 평준화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었지만, 그럼에도 아직 적지 않은 차이들이 남아 있다. 그래서 앞에서 언급한 6개국 안에서도 한편으로는 비상하게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젊은 자본주의 국가들(미국, 독일, 일본)이 보이는가 하면, 최근에는 앞에 말한 나라들보다 훨씬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자본주의 발전이 오래된 나라들(프랑스, 영국)도 있고, 경제적으로 제일 뒤처져 있어 최근의 자본주의적 제국주의가 전()자본주의적 관계의 조밀한 그물망과 얽혀 있는 나라(러시아)도 있다.

 

앞의 표에는 열강의 식민지 점유와 함께, 차후 일어날 식민지 '재분할'의 가장 확실한 대상인 작은 나라들의 작은 식민지들도 나와 있다. 이 작은 나라들이 대부분 자신의 식민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예를 들어 강대국들 사이에 노획물의 분배에 관한 협정을 방해하는 이해의 대립과 알력 등이 존재하는 덕분이다. '반식민지' 국가에 대해 말하자면 이 나라들은 자연과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는 과도적 형태의 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금융자본은 온갖 경제관계와 온갖 국제관계에 있어서 지극히 큰, 결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세력이기 때문에, 완전한 정치적 독립을 누리고 있는 국가들까지 종속시키는 능력이 있고, 실제로도 종속시키고 있다. 우리는 곧 뒤에서 그 실례를 살펴볼 것이다. 하지만 종속된 나라들에게서 민족의 정치적 독립까지 뺏는 종속 형태가 금융자본에게 가장 큰 '편리함'과 가장 큰 이득을 준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반식민지는 이런 측면에서 '중간 단계'의 전형적인 형태다. 나머지 세계가 이미 분할돼버린 금융자본의 시대에 이들 반()종속 국가들을 정복하기 위한 투쟁이 특히 격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식민정책과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최근 단계 전에도 존재했고, 자본주의 전에도 존재했다. 노예제에 기초를 둔 로마는 식민정책을 수행하고 제국주의를 실현했다. 그러나 여러 경제적 사회구성체들의 근본적 차이를 잊거나 뒤로 밀어놓고 제국주의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논의는 필연적으로 "대로마제국과 대영제국"을 비교한다거나 하는 공허한 잡담과 허풍이 될 수밖에 없다⁶⁹ 자본주의의 예전 단계들의 자본주의적 식민정책도 금융자본의 식민정책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최근 자본주의의 기본적 특징은 거대기업가들의 독점연합에 의한 지배라는 것이다. 이러한 독점조직들은 모든 원료산지를 한 손에 장악하고 있을 때 가장 견고하다. 그리고 국제적인 자본가 연합이 경쟁자들에게서 모든 경쟁의 가능성을 빼앗기 위해서, 예를 들어 철광산과 유전 등을 매점하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가는 이미 우리가 본 그대로다. 식민지를 보유하는 것만이 경쟁 상대와의 투쟁에서 나타나는 온갖 우연경쟁자가 국가전매법으로 자신을 보호하려고 할지 모른다는 우연까지 포함해서에 대해 독점의 성공을 완벽하게 보장한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원료의 부족이 심하게 느껴질수록, 또 전세계적으로 경쟁과 원료산지에 대한 추구가 격화될수록 식민지 획득을 위한 투쟁은 그만큼 필사적이 된다.

 

쉴더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어쩌면 역설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도시공업 인구의 증가는 어느 정도 가까운 장래에 식료품 부족 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공업원료의 부족 때문에 억제될지도 모른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목재의 부족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에 목재가격은 더욱더 올라가고 있다. 피혁공업과 섬유공업의 원료도 마찬가지다. "공업가 단체들은 세계 경제 전체의 범위에서 농업과 공업의 균형을 만들어내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 예로서 1904년 이래 존재하고 있는, 몇몇 가장 중요한 공업국에서 면방적업 단체들의 국제적 연합과 1910년에 이것을 본따 설립된 유럽의 아마방적업 단체들의 연합을 들 수 있다."¹⁷⁰

 

물론 부르주아적 개량주의자들은, 특히 그 중에서 오늘날 카우츠키주의자들은 이러한 사실들에 대한 인식을 약화시키려고 시도하면서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하고 있다. 즉 원료는 '비싸고 위험한' 식민정책 없이도 자유시장에서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 원료의 제공은 농업의 전반적 상황에 대한 '단순한' 개선을 통해 두드러지게 증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들은 제국주의에 대한 옹호와 미화로 바뀐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최근 자본주의의 주요한 특징, 즉 독점에 대한 망각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시장은 더욱더 과거의 것이 되고 있으며, 독점적인 신디케이트들과 트러스트들은 나날이 자유시장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그리고 농업 상황의 '단순한 개선은 결국 대중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고, 임금을 올리고, 이윤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식민지를 정복하는 대신 대중의 형편을 배려할 수 있는 트러스트들이란 달콤한 개량주의자들의 환상 속 말고 대체 그 어디에 존재하는가?

 

금융자본에게는 이미 개발된 원료산지만이 아니라 잠재적인 산지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최근에는 기술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서, 오늘은 쓸모가 없는 땅이라도 새로운 방법이 발견된다면(이를 위해 대은행은 기술자와 농업학자 등으로 구성된 특별 탐험대를 조직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많은 자본이 투입된다면 내일은 쓸모 있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광물자원의 탐사, 이런저런 원료의 새로운 가공법과 이용법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금융자본은 필연적으로 경제성 있는 영토, 나아가 영토 일반을 확장하려는 경향을 띨 수밖에 없다. 트러스트들이 (현재가 아닌) 미래의 '잠재적인' 이윤과 독점이 가져올 미래의 성과를 고려하여 그들의 자산을 두세 배로 평가해서 자본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금융자본도 일반적으로 잠재적인 원료산지를 고려하여 어떤 땅이든, 어디 있는 땅이든, 어떻게 해서든 되도록 많은 땅을 정복하려고 하면서, 아직 분할되지 않은 세계의 마지막 땅 한 조각을 위한, 또는 이미 분할된 땅의 재분할을 위한 광기 어린 투쟁에서 뒤쳐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영국의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식민지인 이집트에서 면화 생산을 발전시키려고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1904년에 이미 이집트의 경작 가능 면적 230만 헥타르 중에서 60만 헥타르, 4분의 1 이상이 면화 재배지였다. 러시아의 자본가들 또한 자신들의 식민지 투르키스탄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더 쉽게 해외의 경쟁 상대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고, 더 쉽게 원료산지를 독점할 수 있으며, '결합된' 생산을 가지고 면화의 생산과 가공의 모든 단계를 한 손에 집중시킨 보다 경제적이고 이윤이 높은 섬유 트러스트를 더 쉽게 설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수출의 이익 역시 식민지 정복을 부채질한다. 왜냐하면 식민지 시장에서는 독점적 방법에 의해 경쟁 상대를 배제하고 공급을 확보하며 '유착관계'를 단단히 다지는 등의 일이 더 쉽기(아니, 때로는 거기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금융자본의 기초 위에 성장하는 경제 외적인 상부구조, 즉 금융자본의 정책과 이념은 식민지 정복의 열망을 강화한다. "금융자본은 자유가 아니라 지배를 원한다"고 힐퍼딩은 올바르게 서술하고 있다. 또 프랑스의 부르주아 저술가는 앞에서 인용한 세실 로즈의 이상¹¹, 말하자면 발전적으로 보완해서, 현대의 식민정책의 경제적 원인에 사회적 원인들을 덧붙여야 한다고 쓰고 있다. "생활이 복잡해지고, 생활난이 증대하고, 그것이 노동대중뿐 아니라 중간계급도 짓누르게 되기 때문에 모든 오래된 문명국가들에서 '불안, 분노, 증오'가 축적되고, 그것이 사회의 평온을 위협하고 있다. 어떤 일정한 계급적 궤도에서 뽑아져나오는 에너지는 탈출구를 찾아야만 한다. 국내에서 폭발하지 않도록, 그 에너지가 해외로 발산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¹²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정책을 논함에 있어, 금융자본과 그에 조응하는 국제정책이것이 바로 세계의 경제·정치적 분할을 위한 열강들의 투쟁으로 이어진다이 국가적 종속의 일련의 과도적 형태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식민지 보유국과 식민지라는 이 두 개의 기본적인 국가집단들뿐 아니라, 정치적·형식적으로는 독립국으로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금융상·외교상으로 종속의 그룹에 엮매어 있는 각양각색의 종속국들도 이 시대에 전형적인 것이다. 이 형태들 중 하나인 반식민지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지적했다. 또 다른 형태의 예로 아르헨티나를 들 수 있다.

 

슐체-게베르니츠는 영국 제국주의에 대해 쓴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남아메리카, 특히 아르헨티나는 거의 영국의 상업 식민지라고 불려도 될 정도로 런던에 금융적으로 종속되어 있다."¹³ 실더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재 오스트리아-헝가리 영사의 1909년도 보고서들을 근거로 하여 영국이 아르헨티나에 투자하고 있는 자본이 875천만 프랑이라고 산정했다. 이를 통해 영국의 금융자본(과 그것의 충실한 '친구'인 외교)이 아르헨티나의 부르주아, 그 나라의 모든 경제생활과 정치생활의 지도층과 얼마나 굳건한 유착관계를 맺었을지를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면서 금융적·외교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조금 다른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예는 포르투갈이다. 포르투갈은 독립된 주권국가지만 사실은 스페인의 왕위계승 전쟁(1701~14) 이후 200년 넘게 계속 영국의 보호를 받고 있다. 영국은 경쟁자인 스페인이나 프랑스와의 투쟁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포르투갈 및 그 식민지 영토를 방어해주었다. 영국은 그 대가로 통상에서 특혜를 받았다. 포르투갈이나 포르투갈의 식민지에 상품을 수출할 때, 그리고 자본을 수출할 때는 특히 더 유리한 조건으로 포르투갈의 항구, , 해저 전선 등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⁷⁴ 이런 종류의 관계는 예전에도 개개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에 언제나 존재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시대에 와서 그것은 보편적인 체제가 되어 '세계 분할'의 관계들의 총체에 일부가 되고 세계 금융자본의 활동들의 사슬고리로 전환되고 있다.

 

세계 분할이라는 문제를 끝내기 위해서는 역시 다음의 내용에 유의해야 한다. 미국-스페인 전쟁 이후의 미국 문헌과 보어 전쟁 이후의 영국 문헌만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에 걸쳐 이 문제를 완전히 공공연하게, 그리고 명백하게 제시했던 것은 아니고, 또 누구보다도 '시기에 맞서' '영국 제국주의'를 뒤쫓고 있던 독일의 문헌들만이 이 사실을 체계적으로 평가한 것도 아니다. 프랑스의 부르주아 문헌들에서도 이 문제는 부르주아적 견지에서 생각될 수 있는 한 충분히 명확하고 광범위하게 제시되고 있다. 역사가 드리오(Driault)¹⁷⁵를 인용해 보자. 그는 19세기 말의 정치 문제와 사회 문제Les Problèmes politiques et sociaux à la fin du XIXe siècle라는 저서의 "열강과 세계의 분할"이라는 장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열강들은 중국을 제외한 지구상의 모든 자유로운 지역들을 정복했다. 이미 몇 차례 분쟁들과 세력 변화들이 일어났지만, 임박한 미래에 더욱 무서운 폭발이 예상되고 있다. 왜냐하면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아무것도 확보하지 못한 국민은 결코 자신의 몫을 받을 수 없을 것이며, 다음 세기(20세기)의 본질적인 현상들 가운데 하나가 될 지구에 대한 대대적인 착취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유럽 전체와 아메리카가 최근 식민지 확장의 열병에, 19세기 말의 가장 현저한 특징인 '제국주의'라는 열병에 휩싸인 이유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렇게 덧붙인다. "이러한 세계 분할에 있어, 지구의 보물과 거대한 시장을 얻기 위해 열렬한 경쟁을 하는 데 있어, 19세기에 형성된 제국들의 세력관계가 그들 제국을 건설한 민족들이 유럽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유럽에서 우위에 있는 강대국들, 유럽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나라들이라고 해서 전세계적으로도 지배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식민지의 규모, 즉 아직 평가되지 않은 부의 가능성이 유럽 국가들의 세력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식민지 문제 또는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 '제국주의'는 유럽 자체의 정치적 조건들을 이미 변화시켰으며, 앞으로 더욱더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5

 

자본가 연합들 사이의 세계 분할

 

카르텔, 신디케이트, 트러스트 같은 독점자본가의 연합들은 먼저 국내 시장을 자기들끼리 분할하며 자국 생산을 거의 완전하게 장악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아래에서 국내시장은 피할 수 없이 해외시장과 연결된다. 자본주의는 이미 오래전에 세계 시장을 창출했다. 그러나 자본수출이 증가하고, 가장 큰 독점연합들이 외국 및 식민지의 연결 관계와 그들의 '세력권'이 백방으로 확장됨에 따라, 사태는 '자연스럽게' 이들 사이의 세계적 협정으로, 국제 카르텔의 형성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자본과 생산의 세계적 집중의 새로운 단계, 이전 단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단계다. 이런 초거대 독점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살펴보자.

 

전기산업은 최근의 기술발전에,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자본주의에 가장 전형적인 산업이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자본주의 국가들 가운데 가장 선진적인 두 나라, 즉 미국과 독일에서 가장 발전했다. 독일에서는 1900년의 공황이 이 분야에서 집중의 증가에 특히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당시 이미 산업과 충분히 유착해 있던 은행들은 이 공황기 동안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큰 기업들이 그것들을 흡수하는 과정을 극도로 촉진하고 심화시켰다. 아이델스는 이렇게 썼다. "은행들은 가장 절박하게 자금이 필요한 기업들로부터 도움의 손길을 거두었다. 처음에는 거짓말 같은 호경기를 조성했던 은행들은 다음 순간, 자신들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지 않은 회사들을 절망적인 파멸로 몰아갔다."¹⁴⁰

 

그 결과 집중은 1900년 이후 엄청나게 진전했다. 1900년 이전 전기산업에는 7~8개의 '그룹'들이 있었다. 이 그룹들은 각기 몇 개의 회사들(모두 합쳐 28개였다)로 이루어져 있었고, 각자 2~11개 은행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1908~12년에 이 모든 그룹들은 둘 또는 하나로 합쳐졌다. 이 과정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 전기산업 분야의 그룹들 |

 

1900년 이전

 

펠텐 운트 기욤 라마이어 A.E.G. 연합 지멘스 운트 할스케 슈케르트 베르크만 쿠머

펠텐 운트 라마이어 A.E.G. (G.E.C.) 지멘스 운트 할스케 베르크만 1900년 파산

1908년경 A.E.G.(G.E.C.) 지멘스 운트 할스케-슈케르트

(1908년 이래로 긴밀한 '협조')

 

이런 식으로 성장한 유명한 A.E.G.(G.E.C.)('지주'제도를 통해) 175~200개의 회사를 지배하며, 총액 약 15억 마르크의 자본을 자유롭게 운용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직영 해외 대리점만 10개 이상의 나라들에 34개를 가지고 있으며, 그 가운데 12개는 주식회사다. 이미 1904년에 독일 전기산업이 해외에 투자한 자본은 23,300만 마르크이고, 그 중 6,200만 마르크는 러시아에 투자되어 있다고 추산되었다. A.E.G.가 거대한 '결합' 기업이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 속한 제조업체만 16개를 헤아리며, 전선과 절연기구에서 자동차와 항공기에 이르는 다종다양한 생산품을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에서 벌어지는 집중은 미국에서 벌어지는 집중과정의 한 부분이기도 했다. 사태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G.E.C.(제너럴일렉트릭컴퍼니)

 

미국

 

톰슨 휴스턴 사가 유럽에 회사를 설립

 

에디슨 사가 유럽에 프랑스 에디슨 사를 설립. 이 회사가 독일 회사에 특허권을 양도

 

독일

 

유니온 전기회사 (Union Elektrizitäts-Gesellschaft)

 

G.E.C.(A.E.G.)

 

이렇게 해서 두 개의 전기 '열강'이 등장했다. 하이니히(Heinig)¹¹'전기 트러스트의 진로 Der Weg des Elektrotrusts'라는 논문에서 "이들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있는 다른 전기 회사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이 두 '트러스트' 기업들의 거래액 및 규모에 대해서는 아래의 숫자들이 완벽하게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개념을 제공한다.

 

연도 거래액 (백만 마르크) 종업원 수 순이익 (백만 마르크)

미국 G.E.C. 1907 252 28,000 35.4

1910 298 32,000 45.6

독일 G.E.C. 1907 216 30,700 14.5

1911 362 60,800 21.7

 

그리고 1907년에는 미국과 독일의 트러스트들 사이에 세계의 분할에 관한 협정이 맺어졌다. 경쟁은 종식되었다. 미국의 G.E.C.(제너럴일렉트릭컴퍼니)는 미국과 캐나다를 '얻었고', 독일의 G.E.C.(A.E.G.)는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네덜란드, 덴마크, 스위스, 터키, 발칸을 '할당받았다.' 새로운 산업부문들 및 형식적으로 아직 분할되지 않은 '새로운' 나라들에 침투하는 '자회사'들에 관해서는 특별 협정물론 비밀협정이 맺어졌다. 발명과 실험의 상호 교류도 규정되었다²

 

수십억의 자본을 운용하며 세계 구석구석에 자신의 '지점', 대표부, 대리점, 연락 등을 가진, 이런 사실상 단일한 세계적인 트러스트와 경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는 자명하다. 그러나 두 개의 강대한 트러스트들에 의한 세계의 분할도 만일 세력 관계가불균등한 발전, 전쟁, 파산 등의 결과로변한다면 당연히 재분할을 피하지 못한다.

 

이러한 재분할 시도, 재분할을 위한 투쟁의 매우 교훈적인 실례는 석유산업이 보여주고 있다.

 

아이델스는 1905년에 이렇게 썼다. "세계 석유시장은 지금까지 두 개의 큰 금융그룹에 의해, 즉 미국의 록펠러의 '석유 트러스트(스탠더드 석유회사)'와 러시아 바쿠의 석유를 지배하는 로스차일드와 노벨¹³에 의해 분할되어 있다. 이 두 그룹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다섯 개의 적이 이들의 독점적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¹⁴⁴ (1) 미국 유전의 고갈 (2) 바쿠의 만타세프 사¹⁴⁵와의 경쟁 (3) 오스트리아의 유전들 (4) 루마니아의 유전들 (5) 해외, 특히 네덜란드 식민지의 유전들(엄청나게 부유하며 또 영국 자본과 관련된 회사들이 새뮤얼 사와 셀 사) 그것이다. 마지막 세 기업군들은 거대한 도이체방크를 필두로 한 독일의 대은행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 은행들은 '자신의'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예를 들면 루마니아에서 석유산업을 독자적이고 계획적으로 발전시켰다. 루마니아의 석유산업에는 1907년에 외국자본이 18,500만 프랑 있었고, 그 중 독일 자본은 7,400만 프랑으로 추정되었다⁴⁶

 

경제문헌들이 '세계 분할'을 위한 투쟁이라고 정확하게 부른 투쟁이 시작됐다. 한편에서 록펠러의 '석유 트러스트'는 모든 것을 손에 넣기를 바라며 바로 네덜란드 내에 '자회사'를 설립해서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유전을 사들이고, 이렇게 해서 그 주요한 적인 영국-네덜란드의 셸 트러스트에 압박을 가하려고 생각했다. 다른 편에서 도이체방크를 비롯한 베를린의 은행들은 루마니아를 '자신들 편으로' '유지하고' 록펠러에 맞서 러시아와 연합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록펠러는 엄청나게 더 큰 자본과 더불어 석유를 수송해서 소비자에게 보내주는 훌륭한 조직도 갖고 있었다. 이 투쟁은 도이체방크의 완전한 패배로 끝날 수밖에 없었으며, 실제로 1907년에 그렇게 끝났다. 도이체방크에게는 수백만의 손실을 입고 '석유사업'에서 손을 뗄 것인가, 아니면 굴복할 것인가, 양자택일의 길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은 후자를 선택했고, 도이체방크에게 극히 불리한 협정이 '석유 트러스트'와 체결되었다. 이 협정에 따라 도이체방크는 '미국 측의 이익에 해를 입히는 것은 어떤 것도 시도하지 않는다'는 의무를 지게 되었다. 하지만 독일에서 석유에 대한 국가전매법이 제정되는 경우 이 협정은 효력을 잃는다고 규정되었다.

 

이로부터 '석유 희극'이 시작되었다. 독일의 금융왕 가운데 한 명으로 도이체방크의 이사로 있는 폰 그빈너(Von Gwinner)¹⁴⁷는 자신의 개인비서 슈타우스를 통해서 석유전매를 위한 선동을 시작했다. 베를린 최대 은행의 거대한 기구 전체와 모든 광범위한 '관련자'들이 동원되고, 신문은 미국의 트러스트의 '속박'에 반대하는 '애국적인' 주장을 외쳤다. 제국의회는 1911315일 거의 만장일치로 석유전매법안을 작성할 것을 정부에 요청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정부는 이 '인기 있는' 발상을 덥석 받아들였다. 그러하여 미국 측 협정당사자를 기만하고, 국가전매를 통해 자신들의 사업을 재건하려는 도이체방크의 도박은 성공할 것처럼 보였다. 독일의 석유왕들은 러시아의 제당업자의 이윤에도 뒤떨어지지 않을 엄청난 이윤에 미리 기뻐하고 있었다……. 하지만 첫째, 독일의 대은행들이 노획물의 분배를 놓고 자기들끼리 다투기 시작하여, 베를린할인은행은 도이체방크의 탐욕스러운 관심을 폭로했다. 둘째, 정부가 록펠러와 싸움에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이는 록펠러를 도외시하고서 독일이 석유를 손에 넣을 수 있을지가 (루마니아의 생산량은 크지 않았다.) 몹시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세 번째, 마침 그때 독일의 전쟁 준비를 위해 수십억에 이르는 1913년도 예산이 가결되었다. 이렇게 해서 전매법안은 연기되었다. 록펠러의 '석유 트러스트'는 당분간 투쟁의 승리자가 되었다.

 

베를린의 디 방크는 이에 대해 독일은 전력의 전매를 실시하고, 수력을 이용해서 값싼 전기를 만들어내지 않고서는 석유 트러스트와 싸울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 잡지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전력의 전매는 전력생산자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 때에야 실시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전기산업에 대붕괴가 다시 임박해올 때, 그리고 오늘날 전기산업의 민간 '콘체른'이 곳곳에 건설하고 있는 거대하고 값비싼 발전소들이그것을 위해 이 '콘체른'은 지금까지 도시와 국가 등으로부터 얼마간 부분적인 독점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지만어느 새 유리하게 영업할 수 없을 때 실행될 것이다. 그때는 수력을 이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영으로는 수력에서 값싼 전력을 얻을 수 없으며, 수력은 다시 '국가가 통제하는 민간독점'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민간산업은 이미 많은 거래계약을 체결하고 있어서, 거액의 보상금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 질산업 전매도 그랬고, 석유 전매도 그랬으며, 전력 전매도 그러할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름다운 원리에 눈이 떠 있는 우리의 국가사회주의자들도 마침내 다음의 것을 이해해야 할 때일 것이다. 즉 독일에서 전매는 소비자에게 이익을 갖다 준다든가, 또는 국가에 기업자 이득의 일부라도 전해주든가 하는 목적을 가진 것도, 그런 결과를 가져왔던 것도 결코 아니었고, 그것은, 파산에 처한 사적 기업을 국가의 부담으로 구제하는 데 기여했을 뿐이었다."¹⁴⁸

 

독일의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이와 같은 귀중한 고백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금융자본의 시대에 민간독점과 국가독점이 하나로 얽혀 있다는 것, 양자가 실제로는 세계 분할을 위해 가장 큰 독점가들끼리 벌이는 제국주의적 투쟁의 개개의 고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보게 된다.

 

해운업에도 집중의 거대한 성장은 세계 분할로 인도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두 개의 거대회사, 함부르크-아메리카와 노르트도이치로이트가 두드러진다⁴⁹ 두 회사도 각기 2억 마르크의 자본(주식과 회사채)과 가격이 18,500~18,900만 마르크인 기선을 가지고 있다. 한편, 미국에서는 190311, 이른바 모건 트러스트로 알려진 국제상선회사가, 미국과 영국의 해운회사 9개가 합병하여 12천만 달러(48천만 마르크)의 자본을 가지고 설립되었다. 이미 1903년에 독일의 거대회사와 이 미국과 영국의 트러스트는 이윤의 분배에 관련하여 세계 분할에 대한 협정을 맺었다. 독일 회사는 영국과 미국 사이의 운송 업무에서 경쟁을 포기했다. 어떤 항구가 어떤 회사에 '할당되는가'가 엄밀히 규정되고, 공동통제위원회 등이 설치되었다. 이 협정은 20년 기한으로 체결되었지만, 전시에는 무효가 된다는 용의주도한 조건이 붙어 있었다⁵⁰

 

국제 철도 카르텔의 형성사 또한 매우 교훈적이다. 영국, 벨기에, 독일의 철도 제조업자들이 이 산업의 매우 심각한 침체기였던 1884년에 이미 처음으로 이러한 카르텔의 설립을 시도했다. 이들은 협정에 참가한 나라들의 국내시장에서는 경쟁하지 않을 것과, 영국 66퍼센트, 독일 27퍼센트, 벨기에 7퍼센트의 비율로 해외시장을 분할하기로 합의했다. 인도는 전부 영국의 것으로 돌아갔다. 협정에 참가하지 않은 영국의 한 회사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대항하고, 그 비용은 총 매출액에서 일정한 비율에 따라 조달했다. 그러나 1886년 두 영국 회사가 이 연합에서 탈퇴하면서 트러스트는 붕괴되었다. 특기할 것은 그 뒤에 이어진 산업의 호황기 동안에는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1904년 초에 독일에서 철강 신디케이트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190411월에는 영국 53.5퍼센트, 독일 27.83퍼센트, 벨기에 17.67퍼센트의 비율로 국제 철도 카르텔이 부활했다. 뒤이어 프랑스가 첫해, 둘째 해, 셋째 해에 100퍼센트를 초과하는 4.8퍼센트, 5.8퍼센트, 6.4퍼센트의 비율로 협정에 참가하지 않은 104.8퍼센트 등이 되었다. 1905년 미국의 US 스틸 코퍼레이션이, 그 다음에는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이 이 협정에 참가했다. 포겔슈타인은 1910년에 이렇게 썼다. "현 시점에서 지구의 분할은 완료되었고, 거대 소비자들, 특히 국영철도들은 그들의 이익을 보장받지 못하고 세계가 분할됐기 때문에 이제 유우스의 천상에서 시인처럼 살 수 있는 것이다."¹¹ 또 국제 아연 신디케이트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이것은 1909년에 설립되어 독일, 벨기에, 프랑스, 스페인, 영국 등 5개국의 공장집단들 사이에 생산량을 꼼꼼하게 할당했다. 그리고 국제 화학 트러스트는, 리프만의 말에 따르면, "독일의 모든 폭약 제조업자들 사이에 아주 현대적인 긴밀한 동맹이 있어, 이 제조업자들은 나중에 자신들을 본따 조직된 프랑스와 미국의 폭약 제조업자들과 함께, 말하자면 자기들끼리 전세계를 분할했다."¹²

 

리프만은 독일이 참여하는 국제 카르텔들의 수가 1897년에는 모두 40개 정도였으나 1910년경에 이미 100개에 이르렀다고 추산했다. 몇몇 부르주아 저술가들(예를 들어 1909년만 해도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을 취하던 K. 카우츠키도 이제는 마르크스주의를 완전히 배신하고 이 무리에 가담했다³)은 국제 카르텔이야말로 자본의 국제화의 가장 눈에 띄는 표현들 가운데 하나이며 자본주의 아래에서 국민들 사이의 평화를 기대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이 견해는 이론적으로는 완전히 터무니없는 것이며, 실천적으로는 최악의 기회주의를 옹호하는 궤변이자 부정적인 방식이다. 국제 카르텔들은 지금 자본주의 독점체가 어느 정도까지 성장했는지를, 그리고 어떤 목표를 위해 자본가 조합들이 서로 투쟁하는지를 보여준다. 후자의 상황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만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¹⁵⁴의 역사적·경제적 의미를 우리에게 명확하게 규명해주는데, 왜냐하면 투쟁의 형태는 다양한, 비교적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원인들에 따라 변할 수 있고,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지만, 투쟁의 본질, 즉 그것의 계급적 내용은 계급들이 존재하는 한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경제적인 투쟁의 본질(세계 분할)을 모호하게 남겨두고, 이 투쟁의 이런저런 형태를 강조하는 것은, 예를 들면 카우츠키가 자신의 이론적 논의에서 본질적으로 그쪽 편으로 넘어가버린 독일 부르주아의 이익이 되는 일이다. (카우츠키에 대해서는 뒤에서 이야기하겠다.) 카우츠키가 저지르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실수인 것이다. 물론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독일 부르주아가 아니라 전세계의 부르주아다. 자본가들이 세계를 나눠먹는 것은 특별히 나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집중이 도달한 단계가 이윤 획득을 위해 그들을 선택의 여지 없이 그 길에 세우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들은 세계를 '자본에 비례해서', '힘에 따라서' 나눠 먹는데, 상품생산과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다른 분할 방식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힘은 경제적·정치적 발전에 따라 변화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문제가 힘의 변화에 따라 해결되고 있는지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것이 '순수하게' 경제적인 변화인가, 아니면 경제 외적인 (예를 들면 군사적인) 변화인가 라는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최근의 자본주의 시대에 대한 기본적인 견해를 조금도 변화시킬 수는 없다. 자본가 연합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투쟁과 협약의 본질 문제를, 투쟁과 협약의 형태 문제(오늘은 평화, 내일은 전쟁, 모레는 다시 평화 식으로)로 슬쩍 뒤바꾸는 것은 궤변가의 역할로 전락했음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의 최근 단계의 시대는 세계의 경제적인 분할을 기초로 자본가 연합들 사이에 어떤 관계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이와 함께 세계의 영토적 분할, 식민지를 얻기 위한 투쟁, '경제적 영토를 얻기 위한 투쟁'을 기초로 정치적 동맹들, 국가들 사이에 어떤 관계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4

 

자본수출

 

자유경쟁이 완전히 지배적이었던 예전의 자본주의에서는 상품수출이 전형적인 것이었다. 이제 독점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최근 단계에서는 자본수출이 전형적인 존재다.

 

자본주의란 노동력 자체가 상품이 되는, 상품생산의 가장 높은 발전 단계다. 국내에서의 교환은 물론이고 국제적인 교환이 증대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고유하고 두드러진 특징이다. 개별 기업, 개별 산업부문, 개별 국가의 발전에서 드러나는 불균등성과 불규칙성은 자본주의에서는 불가피한 것이다. 가장 먼저 자본주의 국가가 된 영국은 19세기 중반에 자유무역을 채택하여 자신이 '세계의 공장', 즉 모든 나라에 공산품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겠다고 선언했다. 다른 나라들은 공산품을 공급받기 위해 영국에 원료를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나라들이 '보호' 관세를 통해 자기 방어를 하면서 독립적인 자본주의 국가로 발전함에 따라, 19세기 마지막 4반세기 무렵 영국의 이러한 독점은 무너졌다. 20세기에 접어들었을 때 우리는 새로운 종류의 독점이 형성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첫째, 자본주의가 발달한 모든 나라에서 자본가들의 독점적인 동맹이 형성되었다. 둘째, 엄청난 규모로 자본이 축적된 소수의 가장 부유한 나라들이 독점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선진 국가에 막대한 '과잉자본'이 발생했다.

 

만약 자본주의가 현재 어디서든 공업에 비해 형편없이 뒤쳐져 있는 농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면, 아울러 정도의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도처에서 반봉건 상태로 거지처럼 사는 주민대중의 생활수준을 높일 수 있다면, 자본의 과잉에 대해 할 말은 없을 것이다. 이런 '논리'는 자본주의에 대한 소부르주아적인 비판자들이 끊임없이 들고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아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발전의 불균등성이나 기아에 허덕이는 대중의 생활수준이나 모두 이 생산양식의 근본적인, 피할 길 없는 조건이자 전제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자본주의로 남아 있는 한에서는 과잉 자본은 그 나라 대중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면 자본가들의 이윤이 감소할 것이기 때문에 자본을 해외, 즉 후진국들에 수출함으로써 이윤을 증대시키기 위해 사용된다. 이 후진국들에서는 이윤이 높은 것이 보통이다. 자본은 부족하고 토지가격은 상대적으로 낮은데다 임금이 낮고 원료가 싸기 때문이다. 자본수출의 가능성은 많은 후진국들이 이미 세계 자본주의의 순환 속에 끌려 들어와 있으며, 그곳의 주요한 철도 노선들이 개통되거나 부설되기 시작했고, 공업발전의 기본 조건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등의 사실에 의해 창출되었다. 자본수출의 필연성은 몇몇 나라들에서 자본주의가 '지나치게 성숙'해서 자본에게 (낙후된 농업과 대중의 빈곤이라는 조건 때문에) '수익성 좋은' 투자 대상이 있는 분야가 부족하다는 사실에 의해 창출되었다.

 

다음은 주요 3개국이 해외로 투자한 자본의 규모에 관한 대략적인 수치다.

 

연도 영국 프랑스 독일

1862 36

1872 150 100(1869)

1882 220 150(1880) ?

1893 420 200(1890) ?

1902 620 270~370 125

1914 750~1,000 600 440

 

이 표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자본의 수출이 커다란 발전을 이룬 것은 역시나 20세기 초의 일이다. 전쟁 전 이 3대 주요 국가의 해외 투자액은 1,750~2천억 프랑에 이르렀다. 이 금액에서 나오는 수익은 적게 잡아 연이자 5퍼센트로 해도 1년에 80~100억 프랑에 이를 것이 틀림없다. 이야말로 세계 대다수의 민족과 국가들에 대한 제국주의적 압박과 착취의 견고한 토대이자, 한 줌의 부유한 국가들이 지니는 자본주의적 기생성의 견고한 토대인 것이다!

 

해외에 투자되는 이러한 자본이 여러 나라들에 어떻게 분포되어 있고, 또 어디에 투자되고 있는가, 이 문제들에 대해서는 대략적인 답변을 할 수 없지만 그것으로도 어느 정도 현대 제국주의의 전반적인 상호관계와 관련성을 밝힐 수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 합계

유럽 40 230 180 450

아메리카 370 40 100 510

아시아, 아프리카, 호주 290 80 70 440

합계 700 350 350 1,400

 

영국이 1위를 차지한 것은 식민지 영토 때문으로 영국의 식민지는 아시아 등지는 말할 것도 없고 아메리카(예를 들어 캐나다)에도 매우 광대하게 존재한다. 거액의 자본수출은 여기서 무엇보다 광대한 식민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제국주의에 있어서 식민지가 가지는 중요성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서술할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이 나라의 해외 자본 투자는 주로 유럽에, 그 중에서도 특히 러시아에 (최소한 100억 프랑 이상)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그 대부분은 산업 기업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대부분 대부 자본, 즉 국가 차관이다. 영국의 식민지 제국주의와 구별해서 프랑스는 고리대 제국주의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독일의 경우는 제3의 형태다. 식민지는 크지 않고, 독일이 해외에 투자하고 있는 자본은 유럽과 아메리카에 아주 균등하게 분포되고 있다.

 

자본수출은 자본이 유입되는 나라의 자본주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고 그 발전을 눈에 띄게 촉진한다. 그러므로 자본수출이 어느 정도 자본수출국의 발전을 조금 정체시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대신 전세계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을 더욱 확대, 심화시킨다.

 

자본수출국들은 어떤 '이익'을 획득할 가능성을 거의 언제나 손에 넣을 수 있는데, 그 이익의 성격은 금융자본 및 독점의 시대가 지닌 특성을 조명해준다. 예를 들면 베를린에서 발행되는 잡지 디 방크191310월에 다음과 같이 썼다.

 

"국제 자본시장에서는 얼마 전부터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¹³¹의 희곡에서 나왔을 법한 희극이 상연되고 있다. 스페인에서 발칸까지, 러시아부터 아르헨티나, 브라질, 중국에 이르는 수많은 나라들이 차관을 요구하며때로는 정말 끈질기게공공연하게 또는 은밀하게 대규모 화폐 시장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화폐 시장의 현재 상황이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닌데다 정치적 전망도 밝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화폐 시장도 이웃 나라가 자기 나라를 제치고 차관에 웃해서, 그러면서 어떤 반대급부를 확보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에 감히 차관 요청을 거부하기 어려워하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국제 거래에서는 거의 항상 통상조약에 있어 양보든, 석탄보급소든, 항만 건설이든, 유리한 이권이든, 대포의 주문이든 무언가가가 채권자에게 이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¹³²

 

금융자본은 독점의 시대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독점은 가는 곳마다 독점의 원리를 전파한다. 유리한 거래를 위해 공개된 시장에서의 경쟁 대신 '연고'를 이용한다. 차관의 일부를 채권국의 생산물, 특히 군수품, 선박 등을 구입하는 데 지출하는 것을 차관 조건으로 삼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관행이다. 프랑스는 최근 20년간(1890~1910) 아주 빈번하게 이 수단에 호소했다. 이처럼 자본수출은 상품수출을 촉진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그때, 특히 큰 기업들 사이의 거래는 실더가 '완곡하게' 표현한 것처럼¹³³ "매수와 종이 한 장 차이"뿐이다. 독일의 크루프, 프랑스의 슈네데르, 영국의 암스트롱¹³등은 거대은행 및 정부와 밀접하게 유착돼 있어, 차관 계약을 체결하는 데 있어 쉽사리 '무시'할 수 없는 대표적인 회사들이다.

 

1905916일 러시아와의 통상조약에서 프랑스는 차관을 제공할 때 러시아를 '압박'해서 1917년까지가 기한인 몇 가지 양보를 얻어냈다. 1911819일 일본과의 통상조약¹³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의 관세전쟁¹³1906년부터 1911년까지 오직 7개월간의 중단 기간을 제외하고는 계속되었는데, 그것은 부분적으로 세르비아에 군수품을 공급하는 일로 오스트리아와 프랑스가 경쟁하면서 벌어졌던 것이었다. 폴 데사넬(Paul Deschanel)¹³19121월 하원의회에서, 프랑스 회사들이 1908년부터 1911년까지 세르비아에 4,500만 프랑의 군수품자를 납품했다고 밝혔다.

 

상파울로(브라질) 주재 오스트리아-헝가리 영사의 보고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브라질 철도 건설은 대부분 프랑스, 벨기에, 영국, 독일의 자본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 나라들은 철도 건설과 관련된 금융거래를 통해 건설자재 공급권이 자기 나라에 주어지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금융자본은 문자 그대로 세계의 모든 나라들에 자신의 그물망을 펼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식민지에 설립된 은행들과 그 지점들이다. 독일 제국주의자들은 이런 점에서 특히 '' 하고 있는 '오래된' 식민지 보유국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영국은 1904년에 지점 2,279개를 거느린 식민지 은행 50(1910년에는 5,449개의 지점을 거느린 72개 은행)를 가지고 있었고, 프랑스는 지점 136개를 거느린 은행 20개를, 네덜란드는 지점 68개를 거느린 은행을 16개를 가지고 있었지만, 독일은 "다 합쳐봤자" 지점 70개를 거느린 은행 13개밖에 없었다.¹³미국의 자본가들은 그들 나름대로 영국과 독일의 자본가들을 부러워하고 있다. 미국 자본가들은 1915년에 이렇게 푸념했다. "남아메리카에서는 독일 은행 다섯 개가 지점 40개를 두고 있다. …… 영국과 독일은 최근 25년 사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에 약 40억 달러를 투자했다. 그 결과 영국과 독일은 그 세 나라 총 무역액의 6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¹³

 

자본수출국들은 은유적인 의미에서 자기들끼리 세계를 분할했다. 하지만 금융자본은 세계의 실질적인 분할을 가져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3

 

금융자본과 금융과두제

 

힐퍼딩은 이렇게 쓰고 있다. "산업의 자본 가운데 그것을 사용하는 산업가들의 것이 아닌 부분이 끊임없이 증대하고 있다. 산업가들은 이 자본의 소유자들을 대표하는 은행을 통해서만 이 자본을 사용할 수 있다. 한편 은행은 자기가 가진 자본의 점점 더 큰 부분을 산업에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되며, 이러하여 성격상 점점 더 산업자본가가 되어간다. 이러한 방식으로 현실적으로 산업자본으로 전환되는 은행자본, 즉 화폐 형태의 자본을 나는 금융자본이라고 부른다." 금융자본이란 "은행에 맡겨져 있으면서 산업가가 사용하는 자본"이다.⁹⁴

 

이 정의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를 지적하지 않기 때문에 불완전한 정의다. 그것은 바로 생산과 자본의 집중은 독점으로 나아가고 있거나, 이미 독점에 도달했을 정도로 현저하게 진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힐퍼딩의 저술 전체는 전반적으로 자본주의적 독점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 정의를 내린 장 앞의 두 장은 특히 더 그러하다.

 

생산의 집중, 그로부터 성장한 독점조직들⁹⁵, 은행과 산업의 융합 또는 유착, 그것은 금융자본의 발생사인 동시에 금융자본이란 개념의 내용인 것이다.

 

우리는 이제 자본주의적 독점조직들의 '경영'⁹⁶이 상품생산과 사적소유라는 일반적인 환경에서 어떻게 필연적으로 금융과두제의 지배가 되는가에 대한 기술로 넘어가야 한다. 유념해야 할 것은 리서, 슐체-게베르니츠, 리프만 등과 같은 독일아니, 단지 독일에서만이 아닌부르주아 학문의 대표자들은 최다 제국주의와 금융자본의 응호자라는 점이다. 이자들은 과두제가 형성되는 '역학'과 수법, 그것의 '정당하거나 부당한' 소득의 규모, 과두제와 의회의 유착관계 등을 파헤치기는 커녕 그것을 윤색하고 미화한다. 이자들은 거드름 피우는 애매모호한 문구들을 통해, 은행 이사들의 '책임감'에 호소하고 프로이센 관리들의 '의무의식'을 치켜세우는 것을 통해, '감독''규제'에 관한 전혀 중요하지 않은 법안들을 미주알고주알 진지하게 분석하거나, 예를 들면 리프만 교수가 도달한 다음과 같은 '과학적' 정의처럼 시시한 이론적 유희를 통해 그 '빌어먹을 문제들'을 회피한다. "상업이란 재화를 모으고, 보관해서, 그것을 사람이 사용하도록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생업활동이다."⁹⁷ (강조는 그 교수의 저서 그대로) 그렇다면 상업은 교환을 아직 몰랐던 원시인에게도 존재했고, 사회주의 사회에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금융과두제의 무시무시한 지배라는 무시무시한 사실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즉 미국, 프랑스, 독일에서도 부르주아적 관점에서 있으면서도 금융과두제를 대체로 올바르게 묘사하고물론 소시민적인 관점이긴 하지만그것을 비판하고 있는 문헌들이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앞에서 이미 얼마간 서술한 '지주제도'. 이 제도에 아마도 누구보다도 빨리 눈을 뜬 독일의 경제학자 하이만은 사태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경영자는 본사(말 그대로 '모회사')를 통제하고, 그 회사는 다시 그것에 의존하는 회사('자회사')를 지배하며, 자회사는 다른 종속회사('손자회사')를 지배한다. 이렇게 해서 그다지 크지 않은 자본을 갖고서도 거대한 생산부문들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자본의 50퍼센트를 가지고 주식회사를 언제나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면, 경영자는 100만 마르크의 자본만 갖고도 '손자회사'에서 800만 마르크의 자본을 통제할 수 있다. 이런 '연쇄관계'가 더욱 확대된다면, 100만 마르크로 1,600만 마르크, 3,200만 마르크 등을 통제할 수도 있는 것이다."⁹⁸

 

실제로 경험이 보여주는 바로 주식의 40퍼센트만 소유하면 충분히 주식회사의 사업을 운영할 수 있다.⁹⁹ 흩뿌리져 있는 소주주의 상당수는 실제로 주주총회에 참가하는 등의 일을 결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식 소유의 '민주화'라는 것에서 부르주아적인 궤변가와 기회주의적인 '열치기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자본의 민주화', 소규모 생산의 역할과 중요성의 증대 등을 기대하고(또는 기대하는 척하고) 있지만, 이 주식 소유의 '민주화'는 사실 금융과두제의 위력을 증대시키는 방법의 하나인 것이다. 덧붙이자면, 더 선진적이거나 더 오래되어 '경험이 풍부한' 여러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더 작은 액면의 주식을 법률로 허용하고 있는 것이 그런 까닭이다. 독일에서는 액면이 천 마르크 이하인 주식을 발행하는 것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독일 금융계의 거두들은 법적으로 1파운드(20 마르크, 10루블)짜리 주식도 발행할 수 있는 영국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독일의 거대산업가로 '금융왕' 중 한 명인 지멘스(Siemens)¹⁰⁰190067일 제국의회에서 "1파운드 주식은 영국 제국주의의 기초¹라고 말했다. 이 장사꾼이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로 여겨지고 있는, 제국주의란 특정 민족의 사악한 특성이라고 생각하는 어느 무례한 저술가¹²보다 제국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더 깊이 있고 더 '마르크스주의적인' 관점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주제도'는 독점가들의 권력을 엄청나게 증대시키는 데 복무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처벌당할 위험 없이 교묘하고 더러운 방법으로 대중을 갈취할 수 있게 한다. 왜냐하면 형식적으로 '모회사'의 경영자들은 '독립적'이라고 여겨지는 '자회사'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지만, 자회사를 통해서 모든 것을 ''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잡지 디 방크19145월호에 실린 사례 한 가지를 보자.

 

"카셀에 있는 스프링용 강철 제조 주식회사는 수년 전에는 독일에서 가장 수익이 높은 기업 중 하나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부실한 경영으로 인해 배당율이 15퍼센트에서 0으로 곤두박질했다. 이 회사의 경영진이 주주들의 허락도 받지 않고, '자회사' 중 하나인, 명목상 자본금이 수십만 마르크밖에 되지 않는 하시아유한회사에 600만 마르크를 대부해주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밝혀졌다. '모회사'의 주식자본의 거의 세 배 액수인 이 대부는 모회사의 대차대조표에 전혀 기재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은폐가 법적으로는 완전히 적법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 비밀은 만 2년이 되도록 밝혀지지 않았다. 이것은 상법의 어떤 규정에도 저촉되지 않았다. 책임자로서 이 허위 대차대조표에 서명한 감독이사회 회장은 당시 카셀상공회의소의 회장이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주주들은 한참 후, 그 대부가 실패[이 글을 쓴 사람은 실패라는 단어에 인용부호를 달았어야 마땅하다]한 것이 확실해져서야 그 사실을 알았고, 사정을 미리 알았던 사람들이 벌써부터 스프링용 강철 제조 주식회사의 주식을 팔아치우고 있었기 때문에 주식 가격은 거의 100퍼센트까지 떨어져 있었다."

 

"주식회사에서는 매우 흔한 대차대조표의 눈속임 곡예의 이 전형적인 실례는 주식회사들의 이사회가 개인 기업가보다 훨씬 가볍게 위험한 일을 시작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해준다. 현대의 대차대조표 작성 기술은 이사회가 그 위험을 일반 주주들에게 은폐할 가능성을 제공할 뿐 아니라, 실험이 실패한 경우에는 주요 당사자가 적당한 시기에 그 주식을 매각하여 피해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제공한다. 반면 개인 기업가는 자신이 하는 일의 전부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많은 주식회사의 대차대조표는 위에 씌여 있는 글자를 먼저 지워야만 그 아래에 있는 글의 의미를 해독할 수 있는 중세 시대의 복기지(palimpsest)와 비슷하다."(복기지란 먼저 쓴 글씨를 덮칠해서 지우고 그 위에 다른 글씨를 쓴 양피지다.)

 

"대차대조표의 진짜 의미를 볼 수 없게 하는 수단으로 가장 간단해서 가장 자주 이용되는 방법이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합병함으로써 단일한 사업을 몇 개 부분으로 분할하는 것이다. 이 제도의 이점은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다양한 목적들에 있어서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에, 이 제도를 이용하지 않는 대회사는 오늘날 극히 예외적일 정도다."¹³

 

글쓴이는 가장 광범위하게 이 제도를 이용하고 있는 거대독점회사의 예로 저 유명한 알게마이네 엘렉트리치테츠 게젤샤프트¹⁰⁴(이 회사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 것이다)를 들고 있다. 1912년에 이 회사는 175~200개의 회사에 출자하여, 당연히 이들을 지배하면서 전체적으로 약 15억 마르크의 자본을 통제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⁰⁵

 

선의를 지닌즉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미화하려고 하는 선의를 지닌대학교수와 관리들이 대중의 주의를 그쪽으로 돌리려 하는 규제법규, 대차대조표 공개, 일정 양식에 따른 대차대조표 작성, 감시기구 설립 등은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적소유는 신성한 것이며, 누군가가 주식을 사고 팔고 교환하고 담보를 잡히는 등의 일은 그가 누구라 해도 금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 대은행에서 '지주제도'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는 E. 아가트(Agahd)가 제시하고 있는 자료를 보고 판단할 수 있다. 그는 러시아-중국 은행의 직원으로 15년 동안 근무한 사람으로 19145월에 대은행과 세계 시장 Großbanken und Weltmarkt¹⁰⁶이라는 별로 적합하지 않은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저자는 러시아의 대은행들을 두 개의 주요 그룹으로 분류한다. (a) '지주제도'하에서 활동하고 있는 은행과, (b) '독립 (이때의 '독립'은 외국 은행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뜻으로 자의적으로 해석되고 있다)해 있는' 은행으로 나누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출자'와 지배에 참여하고 있는 외국 대은행들의 국적에 따라, 첫 번째 그룹을 세 개의 하위 그룹, (1) 독일의 출자, (2) 영국의 출자, (3) 프랑스의 출자로 나누고 있다. 또 저자는 은행의 자본을 (상업과 공업에) '생산적'으로 투자된 것과 (증권업무와 금융업무에) '투기적'으로 투자된 것으로 구분한다. 그는 태생적인 소부르주아적·개량주의적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유지한 채로도 두 번째 형태에서 첫 번째 형태를 분리하여 두 번째 것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제시한 수치는 다음과 같다.

 

<도표 참조>

 

이 수치에 따르면, 이 대은행들의 '운전'자본¹⁰⁷을 구성하는 약 40억 루블 중 4분의 3 이상, 30억 루블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외국 은행, 주로 파리의 은행(유명한 은행 트리오, 즉 파리은행연합, 파리-네덜란드 은행, 소시에테제네랄)과 베를린의 은행(특히 도이체방크와 베를린할인은행)의 사실상의 '자회사'에 불과한 은행들이다. 러시아의 2대 대은행인 러시아은행(러시아 외국무역은행)과 국제은행(페테르부르크국제상업은행)1906년과 1912년 사이에 자본금을 4,400만 루블에서 9,800만 루블로, 적립금을 1,500만 루블에서 3,900만 루블로 증가시켰는데, "4분의 3이 독일 자본이다." 앞의 은행은 베를린의 도이체방크 콘체른에 속해 있고, 후자는 베를린의 베를린할인은행 콘체른에 속해 있다. 선량한 아가트는 베를린의 은행들이 주식의 대부분을 갖고 있고, 그로 인해 러시아의 주주들이 무력하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다. 자본을 수출한 나라들이 단물을 빨아먹고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예를 들어 베를린의 도이체방크는 시베리아상업은행의 주식을 베를린으로 갖고 가서 1년간 금고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가, 그 뒤 100193의 비율, 액면가의 거의 2배 가까운 상장가로 팔아 약 600만 루블의 이득을 '벌어들였다.' 이런 이득을 힐퍼딩은 "창업자 이득(promoter's profits)"¹⁰⁸이라고 불렀다.

 

이 저자는 페테르부르크 대은행들의 전체 '자금력'80억 루블이 넘는 823,500만 루블, 거의 82.5억 루블로 산정하고 있는데, 그렇게 하면서 그는 외국 은행의 '출자', 더 정확히 말하면 지배를 프랑스 은행들 55퍼센트, 영국 은행들 10퍼센트, 독일 은행들 35퍼센트로 나누고 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총액 823,500만 루블 중 368,700만 루블, 40퍼센트 이상이 신디케이트들, 즉 프로두골과 프로디메트¹⁰⁹ 및 석유·야금·시멘트산업 신디케이트들의 수중에 있다. 자본주의적 독점조직들의 형성으로 인한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융합은 러시아에서도 이렇게 엄청난 진전을 이루었다.¹¹

 

몇몇의 손에 집중되어 사실상 독점을 이루고 있는 금융자본은 창업, 유가증권 발행, 국채 등을 통해 갈수록 불어나고 있는 막대한 이윤을 획득하면서, 금융과두제의 지배를 강화하고, 독점가의 배를 채울 공물을 사회 전체로부터 걷어들인다. 힐퍼딩은 여기서, 미국 트러스트들의 '경영'¹¹¹ 방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들 가운데 하나를 제시한다. 1887년에 헨리 하브마이어¹¹²15개의 작은 회사들을 결합하여 자본총액이 650만 달러에 이르는 설탕 트러스트를 설립했다. 그런데 이 트러스트의 자본은 미국식 표현으로 '물을 먹여'¹¹³ 5천만 달러로 부풀려져 공표되었다. '과대자본화'는 유나이티드스테이츠 철강이 장래의 독점이윤을 계산에 넣어 미리 최대한의 철광산을 사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래의 독점이윤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실제로 이 설탕 트러스트는 독점가격을 설정해서, 일곱 배나 '물을 먹인' 자본에 대해 10퍼센트의 배당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이윤을 얻었다. 트러스트를 설립할 당시 실제로 투입한 자본금의 약 70퍼센트를 배당금으로 지불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09년에 이 트러스트의 자본금은 9천만 달러였다. 22년 만에 자본금이 열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금융과두제'의 지배는(프랑스의 금융과두제에 반대한다Contre l'oligarchie financière en France는 퀴시스(Lysis)¹¹가 쓴 유명한 책의 제목이다. 1908년에 5판이 나왔다.) 아주 조금 다른 형태를 취했다. 거대은행 네 개가 유가증권 발행에 있어 상대적 독점이 아니라 '절대적 독점'을 누리고 있다. 이는 사실상 '대은행들의 트러스트'. 그리고 독점은 증권발행을 통해 독점이윤을 보장한다. 차관이 발생하면, 차관을 받는 나라가 총액의 90퍼센트 이상을 가져갈 수 없는 것이 보통이고, 10퍼센트는 은행 등 중개자의 수중에 떨어진다. 4억 프랑의 러시아-청나라 차관에서 은행이 얻은 이윤은 8퍼센트나 되었으며, 8억 프랑의 러시아 공채(1904)에서는 10퍼센트, 6,250만 프랑의 모로코 공채(1904)에서 18.75퍼센트였다. 소규모 고리대자본에서 발전을 시작한 자본주의는 거대한 고리대자본으로서 그 발전을 마치는 것이다. 퀴시스는 "프랑스인은 유럽의 고리대금업자"라고 말한다. 경제생활의 모든 조건이 이러한 자본주의의 변질 때문에 심각한 변화를 겪고 있다. 인구, 공업, 상업, 해운업의 정체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는 고리대금업으로 부유해질 수 있다. "800만 프랑의 자본을 대표하는 50명이 4개 은행에 예치된 20억 프랑을 통제할 수 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지주'제도 역시 똑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거대은행의 하나인 소시에테제네란이 '자회사'인 이집트제당회사의 회사채 64천 장을 발행했다. 발행가격은 액면가의 150퍼센트였다. 다시 말해 은행은 1루블당 50코페이카를 버는 것이다. 하지만 이 회사의 배당금은 가공의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대중'9천만 프랑에서 1억 프랑의 손실을 입었다. 게다가 "소시에테제네랄의 이사들 중 한 사람은 제당회사의 중역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가 "프랑스 공화국은 금융군주국이다"라든지, "금융과두제가 완전히 지배하고 있으며, 그것은 신문과 정부도 지배하고 있다"¹¹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금융자본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인 유가증권 발행에서 생기는 이상하게 높은 수익성은 금융과두제의 발전과 강화에서 특별히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다. 독일의 디 방크"국내에 외국채권의 인수와 유통에 필적할 정도로 수익을 가져다주는 사업 분야는 없다"고 쓰고 있다.

 

"유가증권 발행 사업만큼 높은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은행 업무도 없다." 독일 경제German Economist의 자료에 따르면 산업기업의 증권 발행을 통해 얻은 연평균 이윤은 다음과 같다.

 

 

1895 38.6% 1898 67.7%

1896 36.1% 1899 66.9%

1897 66.7% 1900 55.2%

 

"1891년부터 1900년까지 10년 동안 독일에서 산업증권을 발행해서 얻은 수익만 10억 마르크 이상이다."¹¹

 

산업의 호황기에는 금융자본이 엄청나게 높은 이윤을 얻고, 불황기가 되면 건실하지 못한 작은 기업들이 쓰러진다. 대은행은 이렇게 쓰러지는 기업들을 혈값으로 사들이거나, 벌이가 좋은 '구조조정(Sanierungen)', '구조재편(Reorganisation)' 작업에 참여한다. 부실기업을 '구조조정'할 때 "주식자본은 감가되는데, 더 작아진 자본에 대해 수익이 분배되면서 적정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또는 만일 이윤이 전혀 없는 경우라면 새로운 자본이 조달되어 가치가 낮게 평가된 기존 자본¹¹과 합쳐져 이제 충분한 이윤을 낳게 된다." 힐퍼딩은 여기에 이렇게 덧붙인다. "이러한 구조조정이나 구조재편은 은행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첫째는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궁지에 몰린 회사를 자신에게 종속시키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¹¹

 

예를 들어보자. 도르트문트의 유니온광업주식회사는 1872년에 설립되었다. 4천만 마르크의 주식자본이 발행되었고, 첫해 12퍼센트의 배당이 들어오자 상장가격은 170퍼센트까지 뛰었다. 금융자본은 약 2,800만 마르크의 용돈을 벌어들이며 실속을 챙겼다. 이 회사의 설립에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은 독일 최대의 은행인 베를린할인은행이었는데, 그 자본금은 가볍게 3억 마르크에 도달했다. 이후 유니온의 배당금은 점차 줄어들어 0으로 떨어졌다. 주주들은 자본을 '감자'하는 것에, 즉 자본의 전부를 잃지 않기 위해 일부를 잃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몇 차례의 '구조조정'을 한 결과, 유니온사의 장부에서는 30년간 7,300만 마르크가 넘는 돈이 사라졌다. "현재 이 회사 최초의 주주들은 주식 액면가의 겨우 5퍼센트만을 가지고 있다."¹²하지만 은행은 '구조조정' 때마다 계속 돈을 '벌어들였다.'

 

급격하게 발전하는 대도시 근교에 대한 땅투기도 금융자본에게는 굉장한 돈벌이가 되는 사업이다. 은행들의 독점은 여기서 토지소득의 독점 및 교통노선의 독점과 결합된다. 왜냐하면 토지가격의 상승, 땅을 수익성 있게 분양할 수 있는 가능성 등은 무엇보다 도심에 접근하는 교통의 편의성에 달려 있는데, 이 교통노선들은 지주제도 및 이사직의 분배를 통해 바로 그 은행들과 유착돼 있는 대회사들의 관리하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디 방크의 기고자이자, 토지 매매와 저당 등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독일의 저술가 L. 에쉬베게가 "수렁"이라고 부른 일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보스바우운트크나우어 같은 건설회사들이 '건설하며 거대한' 도이체방크에서 1억 마르크의 돈을 끌어다가 도시 근교의 땅에 광기 어린 투기를 하다 파산물론 은행은 이 과정에서 '지주'제도를 통해, 즉 배후에서 은밀히 움직였다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1,200만 마르크의 손실만 보고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부실한 건설사들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고, '정직한' 베를린 경찰이나 행정관청으로부터 토지에 관한 정보나 시의회의 건축허가증 등을 받을 수 없었던 소자산가들과 노동자들은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¹²¹

 

유럽의 대학교수나 선량한 부르주아들이 위선적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개탄하고 있는 '미국식 윤리'는 금융자본 시대에는 문자 그대로 어느 나라에서나 모든 대도시의 윤리가 돼버렸다.

 

1914년 초, 베를린에서 운수업 트러스트, 즉 베를린의 세 운송업체인 고가철도, 시가전차, 버스회사 사이의 '이익공동체'가 형성될 것 같다는 소문이 들렸다. 디 방크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러한 계획이 있는 것은 버스회사의 주식이 반 이상 다른 두 운수업체들에게 넘어갔다는 것이 밝혀졌을 때부터 알려져 있었다. …… 이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은 운수업을 통합함으로써 비용을 절약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으며, 그렇게 절약된 금액의 일부는 결국 공중의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그 말을 그대로 믿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형성되려 하고 있는 이 운수업 트러스트의 배후에는 몇 개의 은행들이 도사리고 있으며,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자신들이 독점하고 있는 운송수단을 토지매매의 이익에 종속시킬 수 있기 때문에 문제는 복잡하다. 이와 같은 추정이 타당하다는 것을 납득하기 위해서는 이미 고가철도회사가 설립될 때부터 그 설립을 장려했던 한 대은행의 이익이 개입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다시 말해, 이 운수업체의 이익은 토지매매의 이익과 따로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이 철도의 동부선은 나중에 철도 건설이 확정됐을 때 이 은행이 그 자신과 몇몇 관련자들에게 엄청난 이익을 남기며 매각했던 토지를 지나갈 예정이었다.“

 

일단 독점이 형성되어 수십억의 돈을 움직이게 되면, 그것은 절대적인 필연성을 가지고 정치체제나 다른 어떤 '세부적인 것들'이 어떻게 관계 없이 사회생활의 모든 면으로 침투해 들어간다. 독일의 경제문헌들은 프랑스의 파나마 스캔들¹²³이나 미국의 정치부패를 비꼬아 이야기하면서 프로이센 관리의 성실함을 맹목적으로 찬미하곤 한다. 하지만 실은 부르주아 문헌들조차 독일 은행업에 대해 논할 때면 순수한 은행업무의 범위를 훨씬 벗어난 이야기들을 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관료들이 은행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은행을 향한 행진"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실정이다.

 

"마음속으로 베를린 가의 폭신한 의자를 동경하고 있는 정부 관료의 청렴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¹²(베를린 가는 베를린에 있는 거리인데, 그곳에 도이체방크가 있다.) 디 방크의 발행인 알프레트 란스부르크는 1909년에 비잔틴주의의 경제적 의의The Economic Significance of Byzantinism라는 글을 썼는데, 이 글은 내친김에 빌헬름 2세의 팔레스타인 여행과 "이 여행의 직접적인 결과로 나타난 바그다드 철도 건설, 즉 우리의 모든 정치적 실책들을 합친 것보다도 훨씬 더 '포위'에 책임이 있는 저 저주해야 마땅한 '독일 기업가 정신의 대사업'"¹²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포위'라는 것은 독일을 고립시키고, 제국주의적인 반독일동맹의 올가미로 독일을 에워싸려고 한 에드워드 7¹²의 정책이다). 이미 우리가 언급한 적 있는 같은 잡지의 기고자 에쉬베게는 1911년에 금권정치와 관료 Plutocracy and Bureaucracy라는 글을 써서, 글의 제목에 걸맞은 사례의 하나로 푈커(Völker)라는 독일 관료의 사건을 폭로했다. 그 남자는 카르텔 위원회의 위원으로 아주 열성적으로 활동했고, 얼마 뒤 최대의 카르텔인 철도 신디케이트에서 높은 급여를 받는 자리를 차지했다. 결코 우연이 아닌 그와 유사한 일들이 몇 차례나 벌어졌기 때문에, 이 부르주아 저술가는 "독일 헌법에 보장된 경제적 자유는 경제생활의 수많은 분야에서 이미 내용 없는 빈말이 되었다"라거나, 현재와 같은 금권정치 아래에서는 "가장 광범위한 정치적 자유조차 우리들이 자유롭지 못한 국민으로 전락하는 것에서 우리들을 구원할 수 없다"¹²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한 가지 예를 드는 것으로 그치겠다. 지금으로부터 수년 전에 모든 신문들은, 신용국장이었던 다비도프(Davydov)가 몇 년에 걸쳐 100만 루블 이상의 급여를 받는다는 계약 조건으로 관직을 떠나 대은행에 이직했다고 보도했다. 신용국이란 "국가의 모든 신용기관의 활동을 조정"하는 임무를 갖고 있으며, 수도와 은행들에게 8~10억 루블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관청이다.¹²

 

자본의 소유가 자본의 생산적 투자와 분리되는 것, 화폐자본이 산업자본 또는 생산자본과 분리되는 것, 화폐자본에서 나오는 소득으로만 생활하는 금리생활자가 기업가나 자본 운용에 직접적으로 종사하는 사람들과 분리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일반적 특성이다. 제국주의 또는 금융자본의 지배는 이런 분리가 상당한 정도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가장 높은 단계다.

 

금융자본이 다른 모든 형태의 자본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금리생활자와 금융과두제가 지배적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금융상의 ''을 가진 소수의 국가가 다른 모든 국가 위에 우뚝 솟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이 어느 정도로 진행되어 있는지는 증권발행, 모든 종류의 유가증권 발행에 대한 통계자료를 보고 판단할 수 있다.

 

A. 네이마르크(Neymarck)국제통계협회 회보 Bulletin of the International Statistical Institute¹²에 전세계의 증권발행에 대한 매우 상세하고 완전한 비교 자료를 발표했다. 이 자료는 그 뒤 몇 차례나 경제학 문헌에 부분적으로 인용되었다. 다음의 표는 40년간의 통계다.

 

| 10년 주기별 증권발행액 |

 

연도 발행액

1871~1880 761

1881~1890 645

1891~1900 1,004

1901~1910 1,978

 

1870년대에 세계적으로 증권발행 총액이 높았던 것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과 그에 이은 독일의 회사 창업 봄으로 인해 관련된 공채발행이 활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체로 19세기의 마지막 30년 동안에는 증가 속도가 그다지 빠르지는 않았고, 20세기의 첫 10년 동안 뚜렷한 증가세를 나타내기 시작해서 발행고가 거의 두 배로 늘었다. 그러므로 20세기 초는, 앞에서 언급했던 독점조직들(카르텔, 신디케이트, 트러스트)의 성장이라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금융자본이 성장했다는 점에 있어서도 전환기라 할 수 있다.

 

단위: 억 프랑

영국 1,420

미국 1,320

프랑스 1,100

독일 950

러시아 310

오스트리아-헝가리 240

이탈리아 140

일본 120

네덜란드 125

벨기에 75

스페인 75

스위스 62.5

덴마크 37.5

스웨덴, 노르웨이, 루마니아 등 25

합계 6,000

 

1910년 전세계 유가증권 총액을 네이마르크는 대략 8,150억 프랑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는 중복 계산됐을 법한 액수를 어림잡아 빼서, 이 액수를 5,750~6천억 프랑으로 잡았다. 이를 국가별로 나타낸 것이 앞의 표다(총액을 6천억 프랑으로 했을 때).

 

이 표에서는 각각 천억~1,500억 프랑의 유가증권을 갖고 있는 네 개의 부유한 자본주의 나라들이 두드러져 보인다. 이 네 나라 중 두 나라 영국과 프랑스는 가장 오래된 자본주의 나라이자, 나중에 보겠지만 가장 많은 식민지를 가진 나라들이다. 그리고 다른 둘인 미국과 독일은 발전 속도 및 자본주의적 독점이 산업에 확산되는 정도에 있어 가장 앞서 달리고 있는 자본주의 나라들이다. 이 네 나라들은 모두 합쳐 4,790억 프랑, 즉 전세계 금융자본의 거의 80퍼센트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의 거의 모든 나머지 나라들은, 국제적 은행가이자 세계 금융자본의 네 '기둥'인 저 국가들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채무국·조공을 바치는 나라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금융자본에 대한 종속과 유착의 국제적인 그물망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 자본수출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상세히 고찰하는 것은 특히 중요한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