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시 노동자 투쟁

 

많은 농민들은 도시 노동자의 불안과 동요를 들었다. 어떤 농민은 중요한 도시나 공장에서 경찰 공무원으로부터, 지방 반란이라고 부르는 봉기를 보았다. 다른 농민은 여기에 참가해서 관리로부터 농촌으로 쫓겨난 노동자를 알고 있다. 또 다른 농민은 노동자 투쟁에 대한 노동자 유인물과 소책자를 손에 넣었다. 어떤 농민은 다만 도시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경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었다. 이전에는 학생들만이 봉기를 일으켰다. 그러나 현재에는 모든 대도시에서도 수 많은 노동자들이 일어나고 있다. 노동자들은 가장 부지런히 노동자들의 주인, 공장주, 자본가들과 싸운다. 노동자 파업을 일으키고, 공장에서 모두 일제히 일을 쉬면서 임금을 더 달라고 요구하고, 하루 10시간이 아니라, 8시간만 노동시키라고 요구 한다. 노동자는 생활 개선을 요구한다. 노동자들은 작업장이 더 잘 설비되고, 기계에 노동자를 보호하는 특수 장치를 설치해서 산업 재해를 예방하고, 노동자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고, 병자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노동자 살림집은 강아지 굴이 아닌, 사람이 충분히 살 수 있는 집이 되어야만 한다고 희망한다.

 

그러나 경찰은 노동자 투쟁에 간섭한다. 경찰은 노동자를 체포하고, 노동자들을 감옥에다 집어넣고는, 고향이나 시베리아, 저 멀리까지 쫓아버린다. 정부는 법률로부터 노동자 파업과 집회를 금지시킨다. 노동자는 관리나 정부와 투쟁한다. 노동자들은 말한다. 수 백만 노동 대중은 이미 충분히 참아왔고, 자기 자신도 가난뱅이인 채로 지내면서, 부자를 위해 실컷 벌었고, 실컷 착취시켜 왔다고. 그래서 모든 노동자를 일대 노동 동맹(노동당)에 단결시켜서 공동으로, 보다 좋은 생활을 쟁취하고자 한다. 새롭고 보다 좋은 사회 조직을 쟁취하고자 한다. 새롭고 보다 좋은 사회에서는 부자도 가난뱅이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노동에 참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움큼이나 가진 부자들이 아니라, 노동하는 모든 사람들이 공동 노동에 따른 성과를 차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계와 기타 설비에 따른 개선은 모든 사람들의 노동을 쉽게 하려는 까닭이지, 수 많은 민중을 희생시켜, 몇몇 사람을 부자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새롭고 보다 좋은 사회는 사회주의 사회라고 불리우며, 사회에 대한 학설을 사회주의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보다는 좋은 사회를 건설하고자 싸우는 노동 동맹은 사회민주당이라고 불리운다. 이런 정당은 러시아와 터키를 제외하고는, 모든 국가에서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또 우리나라 노동자도 소양을 갖춘 사람으로부터 성립된 사회주의자와 공동해서, 사회민주노동당이라고 불리우는 정당을 만들어냈다. 정부는 사회민주노동당을 박해한다. 그러나 당은 모든 탄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관지와 소책자를 발행하고, 비밀 동맹을 만들기까지 해서, 은밀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노동자는 비밀 모임을 열 뿐만이 아니라, 떼를 지어, 거리로 나타나서 '하루 8시간 노동 만세!', '해방 만세!', '사회주의 만세!'라고 쓴 깃발을 휘날린다. 정부는 이런 까닭에도 기를 쓰고, 노동자를 박해한다. 정부는 그들을 총으로 다스리고자, 군대까지 움직인다. 군대는 야로슬라블, 페테르스부르크, 리가, 돈 강가 로스토프, 여러 곳에서 노동자를 쏴 죽였다. 그러나 노동자는 더욱 굴복하지도 않는다. 노동자 투쟁은 이어진다. 노동자는 말한다. 

 

'어떠한 박해도, 감옥도, 추방도, 주검도, 두렵하게 하지는 못하리. 행동은 정당하다. 수천만, 수억 민중을 압제와 가난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싸운다. 노동자는 더욱 자신을 자각해간다. 사회민주주의 수는 모든 국가에서도 재빠르게 늘어간다. 어떠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이겨낸다.'

 

가난한 농민 여러분에게, 사회민주주의자란 과연 어떤 사람인가.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무엇을 바라는가. 민중을 위한 행복을 쟁취하고자 하는 사회민주주의자를 원조하고자, 농촌에서도 어떻게 행동해야만 하는가를 똑똑히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2. 사회민주주의자는 무엇을 요구하는가.

 

사회민주주의자는 무엇보다 먼저 정치적 자유를 얻고자 노력한다. 정치적 자유는 새롭고 보다 좋은 사회주의 사회 조직 투쟁에서도 모든 노동자를 널리 공공연하게 단결하고자 필요하다. 먼저 농민 해방과 농노제를 비교해보자. 농노제 아래에서 농민은 지주 허락 없이는 결혼을 못했으나, 현재에는 아무 허락 없이도 자유롭게 결혼할 수 있다. 농노제 아래에서는 농민 촌장이 지정한 날에는 자기 주인을 위해 억지로 일하지 않으면 안 됐다. 현재에는 어떤 주인 밑에서든 어느 날에 얼마만큼 품삯으로 일할까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농노제 아래에서 농민은 주인 허락 없이 마을에서 다른 데로 나갈 수도 없었다. 현재에는 공동체에서 허락하고 세금이 밀린 게 없고, 여행권을 받아 도지사, 지방 경찰 서장이 이사하기를 금하지 않는다면, 어디로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 어디로든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는 완전한 자유, 곧 이동에 따른 완전한 자유를 아직까지 농민은 갖지 못하고 있고, 여전히 절반은 농노적 상태에 있다는 걸 의미한다. 무엇 때문에 농민이 절반은 농노적 상태에 놓여 있는지 또는 어떻게 그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농노제 아래에서 농민은 주인 허락 없이는 재산을 가질 수 없었고, 토지를 살 수도 없었다. 현재 농민은 재산을 소유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공동체에서 나가는 완전한 자유, 자기 토지를 마음대로 처분하는 완전한 자유는 현재에도 갖고 있지는 못하다. 농노제 아래에서 농민은 지주에게 체형도 받았다. 농민은 비록 체형에서 해방되지 못했지만, 자기 지주에게 벌 받는 일은 없다. 여기서 자유란 시민적 자유, 가정 상 자유, 개인 상 자유, 재산 상 자유라고 불리운다. 농민과 노동자는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가정 생활을 해나가고, 개인적인 일을 하고, 자기 노동을 처리하고 자기 재산을 처분하는 자유를 가진다. 그러나 국내 노동자도, 모든 인민도 자기들의 일반 인민 문제를 처리할 자유를 갖고 있지는 않다. 모든 인민은 농민이 지주 밑에 매여 있으며 관리 아래에서도 매우 예속적이다. 민중은 관리를 택할 권리도 가지지 못하고, 국가 전체를 위한 법률을 제정하는 대표자를 뽑을 선거권조차 갖고 있지 않다. 인민은 국가적 문제를 의논하고자, 회의를 열 권리조차 갖고 있지 않다. 동의 없이 위에서 군림하고 있는 관리는 오래 전부터 농민 동의 없이 촌장을 임명하듯이, 신문이나 서적 출판을 간섭한다. 국가 전체 문제에 대해서도 모든 사람 앞에서 모든 사람을 위해 말할 수도 없다. 농민이 지주 노예였듯이, 인민은 여전히 관리 노예로만 남아 있다. 농민이 농노제 아래에서는 시민적 자유를 갖지 못하듯이, 인민은 여전히 정치적 자유를 가지지 못한다. 정치적 자유란, 자신들의 일반 인민적·국가적 문제를 처리하는 인민 자유를 뜻한다. 정치적 자유란 국회에 자신들의 대표자를 선거하는 인민 권리를 의미한다. 모든 법률은 심의한 뒤 반포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한 모든 세금은 인민 자신이 선거한 의회에서만 결정되어야만 한다. 정치적 자유란 인민 자신이 모든 관리를 택하고, 모든 국가적 문제를 심의하고자, 집회를 열고 아무런 허가도 없이 마음대로 신문이나 서적을 발행하는 권리를 의미한다. 모든 다른 유럽 인민은 오래 전부터 이미 정치적 자유를 쟁취했다. 오직 터키와 러시아에서만 인민은 술탄 군주의 정부와 차르 황제의 전제 정부 아래에서 정치적인 노예 상태에 있다. 황제에 따른 전제 정치란 황제로부터 무제한적인 전제 권력으로부터, 모든 법률을 제정하고, 앞잡이가 된 모든 관리를 임명하는 걸 말한다. 그러나 황제가 모든 법률, 모든 관리를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황제로부터 국가에서 무엇이 시행되고 있는가도 알 수 없다. 황제는 다만 많은 사람들의 가장 지위 높고, 가장 이름난 관리 의사를 승인할 뿐이다. 한 사람의 인간이 아무리 스스로를 희망해도, 큰 나라를 지배할 수는 없다. 황제가 국가를 통치하고 있는 게 아니라, 한 인간의 전제 정치에 대해서는 오직 말로만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한줌 가장 돈 많고, 가장 이름난 관리들이 국가를 통치한다. 황제는 다만 이 소수 사람들에게 이로운 일만 알고 있다. 황제는 한줌 궁정 귀족 의사에 반대되는 일에는 무엇도 할 수 없다. 황제는 자신이 지주고, 귀족이다. 황제는 어릴 때부터 오직 이름난 사람들 사이에서만 생활한다. 그들은 차르를 교육하고, 교도한다. 전 인민에 대해 황제는 오직 유명한 귀족, 돈 많은 지주, 궁정에 가까운 가장 돈 많은 상인 가운데 소수가 아는 사실만 안다. 어느 군청에서도 여러분은 황제의 초상을 그린 그림을 볼 수 있다. 황제는 즉위식에 참석한 마을 노인들에게,

 

'귀족 회장 말을 잘 들어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니콜라이 2세도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곧 황제 자신이 귀족 원조를 얻지 않고는, 귀족 중개를 거치지 않고는 국가를 다스릴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있다. 농민은 귀족에게 순종하라고 말하는 황제 말을 머릿 속에 새겨두지 않으면 안 된다. 황제 지배를 가장 좋은 지배같이 꾸미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인민에게 어떤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다른 국가에서는 선거 제도가 시행된다. 거기서는 부자들이 뽑힌다. 그런데 부자들은 불공평하게 통치하고, 가난한 사람을 괴롭힌다. 그러나 선거 제도가 시행되지 않고, 전제 군주 황제가 모든 일을 지배한다. 황제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보다도 위대하다. 황제는 모든 가난한 사람에게도 부자에게도 똑같이 공정하다.

 

이런 언사는 거짓말이다. 누구나 제도가 공정하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고 있다. 누구라도, 한낱 노동자, 날품팔이 농민이라도 '원로원'에 들어갈 수 있는지쯤은 알고 있다. 그런데 모든 다른 유럽 제국에서는 공장 노동자와 호미를 맨 농업 노동자가 국회로 들어갔다. 그래서 모든 인민 앞에서 노동자의 괴로운 생활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고, 노동자의 보다 좋은 생할을 위해 결합과 투쟁을 권고한다. 그러나 아무도 국민 대표의 연설을 중지시킬 수 없고, 경관이더라도 그들에게 손을 댈 수 없다. 대표자 제도조차 없다. 그저 부자나 유명한 사람들이 통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 가운데 가장 악질분자들이 통치한다. 궁정에서 보다 교묘하게 비방하고, 보다 재치 있게 알랑거리고, 남 흉을 보고, 굽실거리고, 아첨하는 무리들이 정치를 쥔다. 정치는 비밀리에 진행되어, 인민은 어떤 법률이 준비되는지, 어떤 전쟁이 일어나는지, 어떤 세금이 부과되는지, 어떤 관리가 무슨 까닭으로 포상을 받는지, 누가 바뀌는지 알 수 없고, 알 도리도 없다.

 

국내처럼 관리들이 많은 국가도 없다. 관리들은 어두운 수풀같이 투표권 없는 인민 위에 군림한다. 한낱 노동자는 결코 수풀에 다다를 수 없고, 결코 진리에 다다를 수도 없다. 수뢰·약탈·폭압이라는 죄목으로 관리에게 고발해도, 억울한 소송은 하나도 발표되지도 않는다. 곧 윗사람들이 주책이 없는 까닭에, 억울한 하소연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한 사람 소리는 결코 전 국민 귀에 미치지도 못하고, 어두운 밀림 속으로 사라지고는, 경찰 고문실 안에서 질식해버리고 만다. 인민으로부터 선출되지도 아니하고, 인민에게 책임 질 의무도 없는 관리 떼는 두꺼운 거미줄을 펼쳐놓는다. 사람들은 파리 같이 둥우리 속에서 손발을 벌벌 떤다. 황제의 전제 정치는 관리의 전제 정치다. 황제의 전제 정치는 인민 관리로부터, 특히 경찰로부터 농노적 예속이다. 황제의 전제 정치는 경찰의 전제 정치이다. 이런 이유로 노동자는 거리로 나와, 그들의 깃발에 '전제 정치 타도하라!', '정치적 자유 만세!'라고 쓴다.

 

이런 까닭에 수천만 가난한 농민 대중이 도시 노동자의 전투적 외침을 지지하고, 공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시 노동자와 같이 시골 노동자와 무산 농민은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적의 위협이나, 폭압에도 결코 놀라지 않으며, 첫 패배에도 마음 쓰지 말고, 모든 인민 자유 획득에 따른 결정적 투쟁에 나서서, 먼저 인민 대표자 소집을 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민 자신으로 하여금, 전 국가에서 이들의 의원을 선출시키자. 그리고 의원으로 하여금 최고 회의를 만들도록 하라. 그래서 회의에서 국가에서 대의 제도를 창립하고, 관리와 경관에 대한 농노적 예속으로부터, 인민을 해방하고, 인민에게 언론·집회·결사 자유를 보장하자.

 

사회민주주의자는 먼저 이상을 요구한다. 최초 요구인 정치적 자유에 따른 요구이다. 정치적 자유, 국회 선거에 따른 자유, 집회에 따른 자유, 출판에 따른 자유가 고통 속에 있는 인민을 가난과 압박으로부터 곧바로 해방시키는 건 아님을 알고 있다. 도시와 농촌에 따른 가난한 사람을 곧바로 부자를 위한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수단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노동 인민은 자신 이외에 누구에게도 도움 받을 수 없다. 노동자, 스스로 자신을 해방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를 가난에서 해방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을 해방하기 위해서 노동자는 모든 지방에서, 전 국가에서 하나의 동맹으로, 하나의 당으로 결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전제적인 경찰 정부가 일체의 집회, 일체의 노동 신문, 노동자 대표에 따른 모든 선거를 금지한다면, 수백만 노동자는 함께 결합할 수 없다. 결합하기 위해서는 모든 동맹을 결성할 권리를 가져야만 하고, 정치적 자유를 지녀야만 한다.

 

정치적 자유가 노동 인민을 곧바로 가난으로부터 해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노동자에게는 가난으로부터 싸우는 무기를 준다. 노동자 자신의 단결 이외에, 가난과 싸울 다른 수단은 없고, 또 있을 수도 없다. 정치적 자유가 없다면 수 많은 인민이 단결할 수도 없다. 국민이 제 손으로 정치적 자유를 쟁취한 유럽, 여러 국가에서 노동자는 벌써 오래 전부터 단결해갔다. 토지도, 재산도 갖지 못하고는 일생을 다른 사람 아래에서 고용살이를 하고, 지내는 노동자를 유럽, 모든 곳에서는 프롤레타리아라고 부른다. 몇년 전에 노동하는 인민 결합을 촉구하는 부르짖음이 있었다.

 

"만국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이 말은 최근에도, 전 세계에서 널리 퍼졌다. 이 말은 수 많은 노동자 집회에서도 거듭 부르짖어 왔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말을 모든 국어로 씌어진 수 많은 사회민주주의 소책자와 신문 가운데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수 많은 노동자들을 하나의 동맹, 하나의 정당으로 연합한다는 건 오랜 시간, 인내심, 꾸준함, 용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다. 노동자는 가난 때문에 지치고, 자본가나 지주에 대한 끊임 없는 고역으로 우둔해져간다. 노동자들은 왜 자신들이 영구적으로 가난하고, 어떻게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할 시간조차 거의 갖지도 못한다. 노동자 단결은 여러 가지로도 방해된다. 곧 정치적 자유가 없는 국가에서는 직접적인 광포한 탄압 또는 사회주의 학설을 선전하는 노동자를 일터에 고용하기를 거절한다든지, 또는 최후에는 기만이나, 매수로부터 방해한다. 그러나 어떤 폭압도, 어떤 박해도, 전 노동 대중을 가난과 압박으로부터 해방하는 위대한 사업을 위해 싸우는 노동자·무산자 운동을 막아낼 수는 없다. 사회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노동자 수효는 끊임 없이 늘어간다.

 

이웃 나라 독일에서는 대의 제도가 갖춰졌다. 이전에는 독일에도 무제한적인 절대·전제적 군주 정치가 존재했다. 그런데 독일인은 무력으로 전제 정치를 타파하고, 자신의 손으로 정치적 자유를 쟁취했다. 독일에서는 법률이 한줌 관리로부터 발표된 게 아니라, 국민 대표 집회에서나, 의회에서 또는 제국 의회로부터 제정됐다. 성년이 된 모든 남자는 의회에서 대표를 선거한다. 그런 까닭에 사회민주당원에게 얼마나 투표됐는가를 계산할 수 있다. 1887년에는 전체 투표 1/10은 사회민주당원에게 투표됐다. 독일 제국의회로부터 1891년 시행된 사회민주당 투표 수는 약 3배로 늘었다. 전체 투표 수 1/4 이상이 이미 사회민주당에게 던져진 셈이었다. 200만 이상 성인 남자는 사회민주당 대의원을 의회로 보냈다. 아직 독일에서는 사회주의가 농촌 노동자들에게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으나, 농촌 지방으로 확대된다. 그래서 날품팔이와 무산 빈농 대중이 도시 형제와 서로 손을 잡으며, 독일 노동자는 승리를 얻고, 노동자의 가난도 압박도 존재하지 않는 질서를 세울 수 있다.

 

사회 질서 아래에서, 왜 거대한 국민 대중에 따른 가난이 생기는가를 똑바로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부유한 도시가 발달하고, 화려한 상점과 가옥이 건설되고, 철도가 부설되고, 공업과 농업에서 모든 기계에 따른 개선이 실시된다. 그런데 수백만 인민은 변함 없이 가난으로부터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오직 가족을 부양하고자, 자신의 일생을 바치고만 있다. 뿐만이 아니라, 실업자는 더욱 증가하고, 전혀 아무 일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 도시에서나, 농촌에서나, 더욱 더 증가해간다. 농촌에서는 굶주리고, 도시 실업자는 떠돌이와 룸펜 무리를 증가시키고는, 교외 오막살이나, 모스크바 피트로 시장에 있는 무서운 빈민굴이나, 지하실에서 짐승 같은 생활을 지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부는 더욱 늘어나고, 사치는 더욱 더 심해져만 가는데,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모든 부를 만들어 내는 수 많은 사람들은 정작 늘 가난에 시달린다. 무슨 까닭일까. 농민은 굶주린 채로 죽어가고, 노동자는 직업이 없어서 거리를 방황한다. 그런데도 상인들은 국내로부터 외국에다 수백만 푸드 밀을 수출한다. 상품을 둘 곳도 없으며, 팔 곳도 없어서 공장마저 쉰다.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

 

먼저 막대한 토지, 공장, 제작소, 기계, 건물, 기선 등이 소수 부자 사유로 있기 때문이다. 토지, 공장, 제작소에는 수 많은 인민들이 노동하지만, 그것은 또 수 많은 부자·지주·상인·공장주들에게 소속된다. 부자들을 위해 인민이 고용되어 품삯을 위해, 고작 빵부스러기를 위해 노동한다. 약간의 노동자 생활비 이상으로 만든 건 모드 부자 손으로 들어가고, 그들의 이윤, '수입'을 이룬다. 기계와 노동 개량으로부터, 모든 이익은 토지 소유자, 자본가 품 속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수 많은 부를 축적한다. 그러나 노동자에게는 이 부에서 아주 약간 남은 것만 주어진다. 노동하는 사람들은 노동하고자 한데 모인다. 규모가 큰 농장이나, 대공장에서는 수백 명 또는 수천 명 노동자들이 함께 모인다. 대단히 여러 가지, 기계를 사용해서 노동하기 때문에, 일의 능률도 더욱 높아진다. 한 사람 노동자는 예전에는 아무런 기계또 쓰지 않고 일하는 수십 명 노동자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생산한다. 그러나 노동에 따른 능률성과 생산성을 이용하는 건, 모든 노동자들이 아니라, 다만 소수 대지주·상인·공장주뿐이다. 지주와 상인은 인민에게 일을 주고 빈민에게는 날품을 준다. 가까운 공장 또는 농장이 지방 농민을 부양한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노동자가 그의 노동으로부터 스스로 노동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부양한다. 그런데 지주 토지와 공장 또는 철도에서 일하는 걸 허락받는 대가로 노동자를 아주 약간 생활비를 받고 자신이 생산한 걸 모두 소유자에게 무료로 넘기고 있다. 곧 실제로 지주나 상인이 노동자에게 자신의 노동 대부분을 무료로 소비해서, 노동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부양하고 있다.

 

더욱 상세하게 이야기해보자면, 모든 근대적 국가에서 인민의 가난은, 노동자가 판매를 위해 시장을 목표로 하고, 일체 물품을 만들기 때문에 생긴다. 공장주와 제조업자, 지주와 붕농은 판매를 하고, 돈을 받고자 여러 제조품을 생산하고, 가축을 기르고, 곡식을 심고 수확한다. 돈이 도처에서 주요한 힘이 된다. 인간 노동에서 모든 생산물을 돈과 교환된다. 필요한 건 무엇이든지 돈으로 살 수 있다. 곧 무산 대중으로 하여금, 돈 가진 사람을 위해 노동한다. 예전에는 토지가 주요한 힘이었다. 특히 농노제 아래에서 그러했다. 토지를 가진 사람은 힘과 권력을 가졌었다. 그러나 지금에는 돈, 곧 자본이 주요한 힘이 된다. 토지는 돈으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돈 없이는 토지를 충분히 이용할 수도 없다. 세금 내는 것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쟁기나 다른 기구를 살 수도 없으며, 가축과 의복, 다른 모든 도시의 상품도 살 수 없다. 거의 모든 지주들이 돈을 목적으로 은행에 자기네 토지를 담보로 넣었다. 돈을 얻고자 정부는 전 세계 부자와 은행가에게 빚을 내고, 빚 때문에 1년에 수억 루블의 이자를 낸다. 돈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지금도 서로 무서운 싸움을 벌인다. 누구든지 더 싸게 사고, 더 비싸게 팔려고 애쓴다. 누구든지 남에게 뒤지지 않게 상품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팔고, 값을 내리고, 유리한 판매 시장 또는 유리한 주문을 다른 사람에게 숨기려고 애쓴다. 소자본가, 소장인, 소농민 등은 공통 싸움에서 돈 때문에 누구보다 더 곤란에 빠진다. 그들은 늘 돈 많은 상인이나 돈 많은 농민에게도 뒤떨어진다. 그들에게는 조그만 저축도 없다. 그날마다 먹고 산다. 재정 곤란이나, 불행한 일이 닥쳐올 때마다, 그들은 가정 집기를 전당포에다 잡히거나, 최후에는 아주 헐값으로다가 밭갈이에 쓰는 가축을 팔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로는 한 번 부농이나, 고리대금업자 손에 떨어지면 그뿐으로, 그 손에서 벗어나는 일은 매우 드물고, 대부분은 몰락해간다.


매년 수 많은 소농과 소수공업자가 그의 집을 다 버리고는 거의 무료 단체로 토지를 넘기고는 임금 노동자, 농업 노동자, 미숙련 노동자, 무산자가 되고 만다. 그런데 부자는 이 돈을 위해 투쟁에서부터 더욱 더 부자가 되고, 번창해간다. 부자는 수백만, 수억 루블을 은행에다 예금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돈뿐만이 아니라, 은행에 예금한 남의 돈으로도 이익을 본다. 소자본가는 은행이나 저축 은행에 예금한 수십 루블이나 수백 루블에 대해 1루블 당 3,4카페이카 이자를 받지만, 부자는 이 수십 루블의 돈으로부터 수백만 루블의 돈을 만들고, 수백만 루블의 돈으로부터 자기 거래를 확대해서, 1루블 당 10카페이카나 20카페이카씩 벌어들였다.

 

그러므로 금융업에서 지금 상태를 아래로부터 위까지 고치고는 사회주의 기구를 만들 때, 곧 대지주에게 그들의 토지를, 공장주에게서 그들의 공장과 경영을, 은행주에게 그들의 화폐 자본을 몰수할 때, 그들의 사유 재산을 폐기해서, 전국 노동 민중 손으로 놓여지게 될 때, 비로소 민중의 가난은 끝날 수 있다고, 사회민주주의 노동자는 말한다. 노동자 노동은 남의 노동으로 사는 돈 많은 사람이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노동자 자신과 그들이 뽑은 대표자들이 처리한다. 공동 노동에 따른 결과와 모든 개선 및 기계 장점을 모든 노동자도 이용한다. 부도 더욱 빠르게 증가하는 데, 왜냐하면, 노동자가 스스로를 위해 자본가를 위할 때보다, 더 열심히 노동할 수 있고, 노동일을 더욱 줄이고, 노동자 생계가 더욱 좋아져 모든 생활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 상태를 개선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오랫동안 꾸준한 싸움이 필요하다. 모든 부자, 모든 자본가, 모든 부르주아지는 모든 힘을 다해, 재산을 지킨다. 모든 유산 계급 및 부자 계급을 수호하고자, 관리와 군대가 일어선다. 정부 자신이 유산 계급 손에 쥐어져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남의 노동으로 사는 모든 사람에게 대항하는 싸움에서 한 사람같이 단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자는 자신과 모든 무산자를 하나의 노동 계급으로, 하나의 무산 계급으로, 단결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싸움은 노동 계급에게는 결코 쉽지도 않다. 반드시 노동자 승리로 끝난다. 왜냐하면, 부르주아 혹은 남의 노동으로 사는 사람들은 모든 민중에게는 매우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 계급은 모든 민중 절대 다수다. 노동자 대 자본가는 다수 대 소수를 말한다. 노동자는 위대한 투쟁을 위해 하나의 사회민주노동당으로 연합해간다. 경찰 눈을 피하며, 비밀리에 연합하는 일이 아무리 곤란하더라도, 역시 연합은 공고히 되고 발전된다. 인민이 정치적 자유를 자기 손으로 쟁취할 때, 노동 계급을 연합하는 사업인 사회주의 사업은 독일 노동자 사이에서도 진행되고 있으며,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된다.


3. 부유와 가난, 농촌에서 재산 소유자와 노동자

 

사회민주주의자는 인민을 가난으로부터 해방하고자 모든 부유한 계급과 싸운다. 그런데 농촌에서 가난 또한 도시에 못지 않다. 농촌 가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일일이 말하지는 않겠다. 농촌에 거주해 본 일이 있는 모든 노동자와 농민은 농촌 가난·굶주림·거덜에 대해 대단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민은 왜 가난하고, 굶주리고, 거덜나고 있는가. 또 어떤 방법으로 궁핍으로부터 빠져나갈 수 있는가를 알지 못한다. 알기 위해서는 먼저 왜 도시나 농촌에 모든 궁핍과 빈곤이 생기는지를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무산 농민과 농촌 노동자는 도시 노동자와 단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건 알았다. 그러나 불충분하다. 더구나 농촌에서 어떤 사람들이 부자나 재산 소유자 쪽에 서고, 어떤 사람들이 노동자나 사회민주주의자 쪽에 서는가를 알아야만 된다. 지주에 못지않게 자본을 모으고, 남 노동으로 생활할 수 있는 농민이 얼마나 많은가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을 명백하게 구명하지 않으면, 빈곤에 대한 어떤 설명도 쓸모가 없게 된다. 농촌에서는 누가 서로 연합하고, 또 도시 노동자와 연합하는가. 연합이 확실한 동맹이 되고자, 지주 이외에 동료인 부농이 농민을 속이지 못하도록 하고자,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농촌 빈민은 잘 알지 못한다. 사실을 구명하고자, 지금 농촌 지주 힘은 어떠하고, 또 부농 힘은 어떠한가를 살펴봐야만 한다.

 

지주부터 보자면, 그들의 힘은 먼저 그들의 사유 토지에 따른 수량으로부터 판단할 수 있다. 특히 러시아 토지 전체 면적은 국유지를 제외하고는, 농민 분유지와 사유지를 합하면 약 24000만 데샤티나에 달한다. 농민, 1000만 호 이상 수중에 있는 24000만 데샤티나 가운데 13000만 데샤티나 분유지가 포함됐다. 개인적 사유자 수중에서는, 50만 이하 가족 수중에는 1900만 데샤티나 토지가 있다. 소수점 이하를 떼버리고 계산해보면, 농민 한 가족에게는 13데샤티나밖에 안 되지만, 사유자 한 가족은 218데샤티니이다. 토지 분배에 따른 불공평은 훨씬 더 심각하다. 1900만 데샤티나에 따른 사유지 가운데 700만 데샤티나에 따른 왕궁 토지, 차르 황제 가족의 사유지가 있다. 황제는 그의 가족과 더불어 대지주 가운데 첫 번째를 차지한다. 황제는 러시아에서도 가장 큰 지주이다. 한 가족이 50만 농민 가족보다 더 많은 토지를 갖고 있다. 더욱이나, 교회와 수도원에는 약 600만 데샤티나 토지가 있다. 목회자들은 농민에게 무욕과 절제를 설교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정당한 방법과 부정한 방법으로부터, 막대한 토지를 손에 넣는다. 다음에 약 200만 데샤티나 토지는 도시와 상인 거주지 소유가 되어 있고, 같은 수량에 따른 토지가 각종 상공업 단체와 회사 소유로 된다. 9200만 데샤티나 토지인 91,605,845데샤티나지만, 끝자리 수는 떼어버리고, 50만 이하인 481,358데샤티나는 토지 소유자 가족에게 귀속됐다. 가족 수 절반은 모두 작은 토지 사유자다. 각자는 10데샤티나 이하 토지를 가진 데 불과하다. 토지를 전부 합해봐도, 100만 데샤티나 이하다. 그런데 16000 세대 가족은 각각 1000데샤티나 이상 토지를 갖는다. 토지를 전부 합치면 6500만 데샤티나다. 얼마나 막대한 토지가 대지주 손 안에 집중됐는가는 1000데샤티나 이하 924데샤티나인 소수 가족이 각자 1만 데샤티나 이상 토지를 영유하고 있고, 그들 토지를 전부 합치면, 2700만 데샤티나에 달한다. 1천 세대 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만큼 토지를 200만 세대 농민 가족이 소유한다. 수천 명 부자들이 이런 막대한 토지를 소유하는 동안에 더 수 많은 인민이 가난하고, 굶주릴 수밖에는 없고, 또 영구적으로 가난하고, 굶주리게 되리라는 걸 깨닫게 된다. 황제 권력도, 정부 자신도 그때까지는 대지주에 따라 의도대로 일하리라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빈농이 자신이 지주 계급과 꾸준하고, 필사적인 투쟁을 위해 단결해서, 하나의 계급으로 연합하기까지는 누구로부터 또 어디로부터도 원조를 기대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주의할 점은, 러시아에서는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교양 있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 수는 국가가 훨씬 많은 토지를 갖고 있다. 따라서 지주 계급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있다. 같은 견해를 가진 충고자들은 농민에게 이미 현재에 러시아 영토, 곧 모든 토지 대부분은 국가에게 귀속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오류가 있으며, 그들로부터 러시아에서는 15000만 데샤티나의 토지가 국고에 소속됐다는 말을 들었다. 실상도 그러했다. 그러나 그들은 15000만 데샤티나가 거의 전부 극북 지방, 아르항겔스크, 베르호얀스크, 오브도르스크 지방 볼모지거나, 삼림이라는 점을 잊고 있다. 국고에는 경영 상 전혀 쓸데없는 토지는 400만 데샤티나 이하인데, 유용한 관유지, 특히 사마라 지방에서는 대단히 저렴한 값으로 부자에게 임대된다. 부자는 이런 토지를 수 천, 수 만 데샤티나씩 얻고는, 다시 농민에게 3배나 비싸게 빌려준다. 국고에 토지를 많이 가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농민에 대한 악질적인 충고자들이다. 실제로 많은 좋은 토지는 황제를 포함한 대토지 사유자 손에 있고, 대지주는 국고를 자기 수중에 장악하고 있다. 빈농인 결합하고, 결합으로부터 위력을 보이지 않는 한, 그때까지 국고는 늘 지주 계급의 충실한 하인으로 남아 있는다. 또 이전에는 오직 귀족만이 지주였다는 점을 잊어서도 안 된다. 물론 귀족은 지금도 많은 토지를 가지고 있다. 1877-1878년에는 115000명 귀족이 7300만 데샤티나 토지를 가지고 있었다. 여전히 화폐 자본이 주요한 힘이 된다. 상인과 돈 많은 농민이 대단히 많은 토지를 구매한 1863-1892, 30년 간에 귀족들은 6억 루블 이상 되는 금액의 토지를 잃었다고 추측된다. 곧 사는 토지보다 파는 토지 쪽이 더 많았다. 그런데도 상인과 유명한 시민은 25000만 루블에 해당하는 상당한 액수의 토지를 얻었다. 농민, 카자흐족과 그 외 시골 백성은 3억 루블이나 되는 토지를 샀다. 매년 평균 러시아 전체 농민은 1000만 루블 상당으로 토지를 사유하고자 사들였다. 그러므로 여러 종류 농민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가난하고 굶주리고, 다른 사람은 돈을 많이 가진다. 부농은 지주 쪽으로 가까워지고, 노동자에 맞서 부자 쪽으로 간다. 이런 부농은 더욱 더 늘어만 간다. 도시 노동자와 결합하고자 하는 빈농은 이 점을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부농이 많이 있는지, 그들의 힘은 어느 정도인지, 이 힘과 싸우고자 어떤 동맹이 필요한가를 구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농민에 대한 악질적인 충고자에 대해 환기시켰는 데, 악질적인 충고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려고 든다.

 

'곧 농민은 이미 동맹을 가지고 있다. 동맹은 공동체다. 공동체는 큰 힘이다. 공동체로부터 단결은 농민을 긴밀하게 묶어놓았다. 공동체에 가입한 농민 조직에 따른 연합 및 동맹은 방대하다.'

 

정당하지도 않다. 꿈 같은 이야기이다. 선량한 사람이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역시 꿈 같은 이야기다. 이런 동화에 귀를 기울인다면, 빈농의 도시 노동자와 동맹이라는 사업을 파괴할 뿐이다. 개별적으로는 농촌 거주자로 하여금 주위를 살펴보게 하라. 과연 공동체의 단결, 혹은 공동체가 모든 부자, 곧 남의 노동으로부터 생활하고 있는 모든 사람과 투쟁을 위한 빈농 동맹과도 비슷한가. 아니다. 비슷하지도 않고, 또 비슷할 턱도 없다. 각 농촌에, 각 공동체에 많은 농업 노동자와 가난한 농민이 있고, 스스로 농업 노동자를 고용해서 영구하게 토지를 경작하는 부농도 있다. 부농은 힘이 있는 까닭에 같은 공동체 구성원이면서도 공동체를 지도한다. 그러나 과연 부농이 가입하고, 지도하고 있는 동맹이 꼭 필요하던가. 꼭 그렇지 않다. 부농과 투쟁하고자 동맹이 필요하다. 곧 공동체로부터 동맹은 전혀 소용없다. 자유의지 동맹, 도시 노동자와 단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아는 사람들만으로 이뤄진 동맹이 필요하다. 그러나 공동체는 자유의지 동맹이 아니고, 정부가 만든 동맹이다. 공동체는 부농을 위해 일하며, 서로 협력해서 부농과 투쟁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가입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 의사대로 공동체에 가입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부모가 토지에 살고 있고, 지주 아래로부터 노동하고 있기 때문이며, 자신들의 장관이 공동체에 명부를 두게 한 까닭이다. 빈농은 공동체에서 자유로이 나갈 수 없다. 경찰 통제로부터 다른 군에 명부를 둔 사람은 자유롭게 가입시키지도 않는다. 동맹을 위해서는 이 점이야말로, 절실하게 요구된다. 다른 사람의 노동으로부터 살고 있는 모든 사람과 투쟁을 위해 일하는 사람과 가난한 농민만으로 이뤄진 자유의사 동맹이 필요하다.

 

공동체가 힘이 된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갔다. 그리고 그 시대는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농민 간 농업 노동자와 품삯을 벌고자, 전국에서 방랑하는 노동자가 거의 없던 시대에도, 부농이 거의 존재하지 않던 시대에도, 농노 소유자인 주인만이 모든 살마을 압박하고 있던 시대에도, 공동체는 힘이 됐다. 그러나 지금은 화폐가 주요한 힘이다. 돈을 위해 동일한 공동체 구성원들은 날쌘 짐승같이 서로 싸우기 바쁘다. 돈을 가지고 있던 농민들은 다른 지주보다도 더 심하게 자기 공동체 구성원을 압박하고, 약탈한다. 공동체 동맹이 필요한 게 아니라, 돈과 권력, 자본 권력에 크게 맞설 수 있는 동맹이, 여러 가지 단체에 소속하는 모든 농촌 노동자와 빈농 동맹, 지주와 부농에 대한 투쟁을 위해 도시 노동자와 모든 농촌 빈민 동맹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지주 힘을 이제는 알았다. 이번에는 돈 많은 농민은 얼마나 있는가. 그들의 힘은 또 어떠한가.

 

지주 힘에 대해서는 그들 소유지의 크기, 그들이 가진 토지의 수량으로부터 판단한다. 지주는 자유롭게 자기 토지를 처분하고, 자유롭게 그것을 사든지, 팔든지 한다. 그들의 힘은, 그들이 가진 토지의 수량으로부터 매우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농민은 자유롭게 자기 토지를 처분할 권리를 가지지는 못했다. 자신들의 공동체에 얽매인, 절반 농노로, 크게 뒤떨어졌다. 돈 많은 농민 힘은 분유지 수량에 따라서만 판단할 건 아니다. 돈 많은 농민은 자신의 분유지로부터 돈이 많은 게 아니다. 영구적으로 자기 소유로 사거나, 임대차로부터 기한을 한정해서 사거나 한다. 그들은 지주로부터, 자기 동료인 농민으로부터, 토지를 내버리는 자로부터, 너무나 가난해서 분유지를 양도하는 자로부터 토지를 산다. 그러므로 가지고 있는 말의 수효도에 따라, 부농·중농·빈농을 구별하는 게 가장 확실하다. 말을 많이 가지고 있는 농민은 대부분 부농이다. 그가 많은 경작용 가축을 치고 있다면, 그가 많은 농경지를 가지고 있고, 분유지 이외 토지를 소유하고, 예금을 갖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유럽 쪽 러시아에서는 많은 말을 가진 농민이 얼마나 있을까. 물론 여기서는 어림수로만 짐작해서 설명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각 지방마다 매우 큰 차이가 있다. 가령 도회지 부근에는 몇 마리 말만 가진 부농도 자주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유리한 체소원예업에 종사하고, 어떤 사람은 말을 많이 기르지 않고, 소를 많이 쳐서 우유를 판다. 러시아에서는 토지로 이익을 보지 않고, 상업으로 이익을 보는 농민이 도처에 있다. 곧 버터 제조소, 밀 제분소 등 공장을 세운다. 농촌에 살고 있는 자는 누구나 자기 마을이나, 군에서 부농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빈농에게 있어 어떤 자가 그의 동지고, 어떤 자가 그의 적인지를 보다 정확하기 알기 위해서는 부농이 얼마나 있고, 그들의 힘이 어떠한가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말의 숫자로는 부농이 많은가, 빈농이 많은가를 조사해 보자. 이미 러시아에서도 전체 농가 호수가 약 1000만 가구에 달한다. 그들이 갖고 있는 말의 총 수는 약 1500만 필이다. 14년 전에는, 17000만 필이었지만 감소됐다. 어림수로 계산해보면, 10가구 당 15필 말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적은 사람에게 말이 매우 많고, 대다수에게는 말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말을 갖지 못한 농민은 300만 이상이고, 350만 가구 농가는 1필의 말밖에는 없다. 모든 사람들은 완전히 몰락한 농민이거나, 무산 농민이다. 가난한 농민이라고 부를 수 있다. 1000만 가구 가운데 650만 가구를 차지한다. 2/3에 상당한다. 경작용 가축 2필을 가진 중농이 있다. 중농은 약 200만 가구가 있고, 400만 필의 말을 갖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2필 이상 경작용 가축을 갖고 있는 부농이 있다. 150만 가구이고, 750만 필의 말을 소유한다. 해당 사실로는 말의 절반이 대략 전체 1/6 가구 사람들에게도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부농의 힘에 대해 충분히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수효 면에서나, 그들은 매우 적다. 여러 공동체와 군에서도, 그들은 100가구 당 10가구, 20가구 정도다. 그러나 소수 농가는 가장 부유하다. 그래서 그들은 전체로도 그 밖의 농민 전체가 소유하고 있는 수량과 동일한 말을 소유한다. 또 그들이 소유한 경작지도 모든 농민 경작지의 거의 절반이다. 농민은 자기 가족에게 필요한 수량보다 훨씬 더 많은 곡식을 수확한다.

 

그들은 곡식을 매우 많이 판다. 곡식은 그들이 먹고자 필요한 게 아니고, 더 많이 팔고자, 돈을 모고자 필요하다. 이런 농민은 돈을 저축할 수 있다. 그들은 우체국이나 은행에다 예금한다. 그들은 사유하고자 토지를 산다. 얼마나 많은 토지가 전체 매년 농민에게 매수되는가를 이제는 알았다. 토지 대부분은 많지도 않은 부농 수중으로 들어만 간다. 빈농은 토지를 살 생각은 꿈에도 하지도 못하고, 어떻게 먹고 지낼지를 걱정한다. 그런 까닭에 일반적으로 모든 은행, 특히 농민 은행은 모든 농민 토지 획득을 조성하는 게 아니라, 다만 극소수 부농만 토지 획득을 조성시킨다. 그러므로 농민에 대한 악질적인 충고자들은 농민 토지 매수로부터 마치 토지가 자본으로부터 노동으로 흘러가고 있듯이 말하는 데 이는 거짓말이다. 노동으로부터, 일하는 무산자에게로 토지는 결코 흘러갈 수 없다. 토지를 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분의 돈을 갖고 있지 않은 빈농에게는 흘러가지 않는다. 토지는 다만 돈을 가진 부농에게만, 자본에게만, 곧 빈농이 도시 노동자와 동맹해서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에게만 흘러간다.

 

부농은 영구적으로 토지를 살 뿐만이 아니라, 토지를 몇 년 기한을 두어 임차한다. 곧 토지를 빌린다. 그들은 큰 구획에 따른 토지를 차입해서, 토지를 빈농으로부터 탈취시킨다. 폴타바 지방 일부에서는, 얼마만큼 토지를 부농이 차지했는지를 계산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매 가구 30데샤티나 이상 차지한 사람은 매우 희소했고, 15가구 당 2가구로 비례했다. 그러나 부농은 모든 임차지 절반을 자기 손아귀에다 넣어버렸다. 그래서 부농 한 명 당, 임차지는 75데샤티나였다. 타우리드 지방에서는 농민이 공동체로부터 국고에서 차입한 토지 가운데 어느 정도 토지를 부농이 탈취했는가라는 게 계산됐다. 따라서 전체 가구에서 1/5에 해당하는 부농이 전체 임차지에서 3/4를 수중에다 넣었다. 도처에서 돈만 있으면 토지는 분배되는데, 돈은 다만 소수 부농에게로 들어간다. 더욱 자세하게는, 농민 자신도 많은 토지를 양도한다. 그들은 분유지를 내버리고 있다. 가축이 없고, 종자가 없고, 농업을 경양할 수단이 없는 까닭에, 돈 없이는 토지가 있어도 어쩔 수 없다. 노보체스카 지방에서는 부농 3가구 가운데 1가구 또는 2가구는 분유지를 자기 소유로 하든지, 다른 공동체 소유로 해서 손에 넣는다. 그러나 말이 없는 사람과 말이 1필밖에 없는 사람은 분유지를 양도한다. 타우리드 지방에서는 농가 가구에 따른 1/3이 분유지를 양도했다. 따라서 농민 전체 분유지에서 1/425만 데샤티나가 양도됐다. 그리고 25만 데샤티나 가운데 15만 데샤티나, 3/5는 부농 손에 들어갔다. 여기에서도 빈농에게 공동체 동맹이 적당한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농촌 공동체에서는 돈 가진 자가 힘을 가진다. 따라서 모든 공동체로부터 규합한 빈농 동맹이 필요하다.

 

토지 구입에서 마찬가지로, 쟁기와 수확기와 다른 모든 개량 도구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논의도 농민을 속인다. 농업 창고와 조합이 설립된다. 그리고 개량된 농구는 농민 상태를 개량한다고 떠벌린다. 한낱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개량된 농구는 다만 부농 손에만 들어가고, 빈농이 입수할 여지는 전혀 없다. 빈농에게는 쟁기나 수확기는 둘째 문제고, 겨우 살아가는 게 더 먼저다. 모든 농민에 대한 원조는 부농에 대한 원조일 뿐이다. 토지도, 가축도, 저축도 못 가진 빈농 대중에게는 개량 농구가 값싸진다고 하더라도, 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마라 지방, 한 군에서는 부농과 빈농이 소유한 모든 농구가 계산됐다. 결과로는, 가구 1/5, 곧 가장 부유한 농민 일부가 모든 개량 농구에서 거의 3/4를 가지고 있었고, 가구 절반에 해당하는 빈농은 모두 합해서 1/30을 가지는 데 불과했다. 말 없는 농민과 말을 1필밖에 못 가진 농민은 해당 지역 28000의 전체 가구 중에서, 1만 가구를 차지했다. 1만 가구가 소유한 개량 농구는 전체 군, 전체 농가가 소유한 5,724개 개량 농구 가운데 총 7개에 지나지 않았다. 전체 농민을 원조하듯이 말하는 농업 경영에 따른 개량, 쟁기와 수확기 보급에서 농민 차지다. 농업 개량에 따른 개선을 설교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기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최후로 부농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는 부농이 농업 노동자와 일용직 노동자를 고용한다는 점이다. 지주와 마찬가지로 부농도 남의 힘으로 살고 있고 또 부유하다. 왜냐하면 농민 대중이 몰락하고, 궁핍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주와 마찬가지로 될 수 있는 대로 자기가 고용하는 농업 노동자에 따른 노동을 착취하고, 될 수 있는 대로는 적게 품삯을 주려고 힘쓴다. 수백만 농민이 전혀 몰락하지 않고, 할 수 없이 남에게 일감을 구하지도 않고, 자기 노동력을 팔지도 않는다면, 부농은 존재할 수 없고, 농업 경영을 할 수 없다. 그런 경우 어디에서도 내버린 분유지를 얻을 수 없고, 또 어디에서도 농업 노동자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전체 러시아에서는 150만 가구의 부농이 100만 가구를 밑돌지 않는 농업 노동자와 일용직 노동자를 고용한다. 유산 계급과 무산 계급, 경영주와 노동자,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간 대규모 투쟁에서 부농이 노동 계급에 맞서 유산자 쪽에 서는 건 당연해진다.

 

부농 상태와 힘을 알았다. 그렇다면 빈농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가. 이미 막대한 수효, 곧 전체 농민 가구에서 약 2/3이 빈농 범주에 속한다고 했다. 먼저 말을 가지지 못한 농가가 결코 300만 가구를 밑돌지 않았다. 더욱 많아져 350만 가구에 달했다. 또한 기근이 있는 해마다 1만 가구의 경영이 몰락해 간다. 인구는 증가하고, 생활은 더욱 곤란해진다. 그러나 모든 좋은 토지는 이미 지주와 부농 손에 떨어져버렸다. 그러므로 해마다 인민은 더욱 많이 몰락해서, 도시로 나와 공장에 들어가거나, 농업 노동자 무리에 들어가 숙련되지 못한 노동자가 된다. 무마 농민은 완전한 무산자가 되버린다. 바로 프롤레타리아다. 무산자는 토지로부터 농업 경영에 따라 겨우 연명해서 생활하는 게 아니라, 임금 노동으로부터 생활하게 된다. 도시 노동자의 실제 형편이다. 무마 농민에게 토지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 무마 농가 절반은 자기 분유지를 남에게 빌리든지, 때로는 대가 없이 공동체에다 양도시킨다. 왜냐하면 무마 농가에서는 토지를 경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마 농민은 1데샤티나 또는 많으면 2데샤티나를 경작한다. 무마 농민은 늘 곡식을 구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자신이 수확한 곡식만으로는 결코 먹고 지낼 수 없기 때문이다. 전체 러시아에서 약 350만에 달하는 1필의 말을 가진 농민도 조금 생활이 나을 뿐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이미 중류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과 말 1필을 가진 부농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외나 각 지방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라, 국내 전체에 대해 말하고 있다.

 

1필을 소유한 농민 전체를 취해본다면, 농민 전체는 가난한 농민들이고, 가난한 사람들이다. 1필을 가진 농민이 농업 지방에서 3, 4데샤티나 드물게 5데샤티나를 경작하는 일까지 있다. 그렇지만 자신이 수확한 곡식만으로 지내지는 못한다. 풍년에도 무마 농민보다 더 나은 생활을 못 한다. 따라서 영구하게 배불리 먹지 못하고, 굶주린다. 농업 경영은 매우 쇠퇴 상태에 빠지고, 가축은 여위고, 가축 사료는 불충분해서 토지 관리는 좋지 못하기까지 하다. 힘도 없다. 1필을 가진 농민은 자신의 농업 경영 전체에 가축 사육 이외에 약간만 돈을 쓸 뿐이다. 우오로네지 지방에서는 1년에 20루블 이하를 쓰고 있다. 부유한 사람은 10배나 더 많이 쓴다. 1년에 20루블은 토치 차용에도, 가축 구입에도, 쟁기와 기타 기구 수선에도 방목하는 사람들에게도, 그 외 일체에 대한 비용이다. 과연 농업 경영일까. 물론 아니다. 과로고, 고역이고, 빈곤이다. 1필을 가진 농민 가운데 자신의 분유지를 양도한 사람도 있는데, 그것이 적지 않다는 건 명백하다. 가난한 사람이 토지에서 얻는 이익은 극히 적다. 돈이 없으면 토지에서 돈을 벌기는커녕 자신의 먹거리조차 손에 들어오지 못한다. 게다가 식료와 의복, 농업 경영, 세금 등 모든 일 때문에 돈도 필요해진다. 우오로네지 지방에서는 일마 농민으로부터 징수하는 세금은 보통 1년에 18루블이었다. 그런데 모든 비용을 모두 합해도, 1년에 75루블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토지 구입이라든지, 개량 농구라든지, 농업 은행에 대해 말할 때면 그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빈농은 이런 일을 행한다는 걸 전혀 생각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빈농은 무엇으로부터 돈을 얻는가. 오직 품삯밖에는 없다. 일마 농민은 무마 농민과 마찬가지로 품삯으로만 날마다 살아갈 뿐이다. 그러면 품삯은 무엇을 뜻하는가. 다른 사람에게로 노동, 고용된 노동을 뜻한다. 일마 농민 절반은 경영주를 중지하고 고용꾼, 프롤레타리아가 된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이런 농민은 절반 프롤레타리아라고 불리운다. 사실상 도시 노동자 형제다. 도시 노동자는 모든 경영자에게 모든 수단으로부터 수탈 당하고 있으므로, 마찬가지로 모든 부농, 모든 소유자에 대한 투쟁을 위해 협력하고, 사회민주주의와 단결하는, 이외에는 도망칠 길도, 다른 구제 방법조차도 없다. 철도 부설을 위해 누가 일하는가. 청부인은 누구를 수탈하는가. 누가 나무를 베고, 재목을 강으로 띄워 보내는가. 누가 농업 노동자로 일하는가. 누가 일용직 노동자로 되고 있는가. 누가 도시와 부두에서 미숙련 노동을 하고 있는가. 그는 바로 빈농이다. 그들은 모두 말을 갖지도 못한 농민과 말 1필밖에는 없는 농민이다. 그러한 노동은 모두 농촌 프롤레타리아와 절반인 프롤레타리아가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사람들이 참 많다. 해마다 러시아 전체 카프카스, 시베리아를 제외하고는 800, 때로는 900만 여행권이 나온다. 이름만 농민이지, 실제로는 고용꾼이다. 모두 도시 노동자와 하나의 동맹에 연합되지 않으면 안 되고, 농촌에 비추는 빛과 앎을 비추는 빛은 모두 이 동맹을 북돋고 공고하게 한다.

 

품삯에 대해서도 잊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모든 관리와 사물을 관리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곧 일반 농민에게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토지와 품삯이다. 인민을 원조하려면, 농촌에서 보다 많은 부업을 일으키고, 보다 많은 품삯을 줄 필요가 있다. 이런 언사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가난한 농민에게 품삯은 곧 고용 노동이다. 농민에게 품삯을 주는 건 농민을 고용 노동자로 전화시키는 걸 의미한다. 물론 원조는 좋은 일이다. 부농에게는 자본을 필요로 하는 다른 품삯이 있다. 물레방앗간, 다른 건물 축조, 탈곡기 구입, 장사 등이다. 그러나 부자 날품일과 빈농 고용 노동을 혼동한다는 건, 빈농을 속이는 일이다. 물론 기만은 부자에게 이익이다. 모든 품삯이 모든 농민에게 적당하고, 또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건, 그들에게 이익일 뿐이다. 그러나 가난한 농민에게 참된 선행을 베풀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들에게 모든 참을 말하고, 또 참말만 말해야만 한다.

 

다음으로는 중농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이미 전체 러시아에서는 2필의 경작용 가축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을 대체로 중농으로 보고, 이런 중농 가구로는 1000만 가구 가운데, 200만 가구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중농은 부농과 프롤레타리아 중간에 서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중농이라고 불리운다. 그들의 생활도 중류다. 곧 풍년에는 자기 경영만으로 어쨌든 지나가지만, 궁핍은 늘 그들의 등 뒤에 서 있다. 그들에게는 저축이 전혀 없든지, 매우 적다. 그러므로 그들의 경영도 불안정하다. 그들은 손에 돈을 넣기가 어렵다. 자기 겅영으로부터 필요한 돈을 모으는 건 샛별 따기처럼 힘들다. 날품팔이를 하러 간다는 건, 농업 경영을 포기한다는 걸 의미하고, 따라서 농업 경영은 등한시 되기가 쉽다. 많은 중농도 역시나 날품일 없이는 한시도 지낼 수 없다. 곧 고용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궁핍으로 인해, 중농은 지주의 노예가 되고, 할 수 없이 빚을 진다. 더군다나 중농은 빚을 지지 않을 수 없다. 그들에게는 부농같이 확실한 수입마저 없다. 그러므로 한 번 빚을 지게 되면, 자신의 몸에 굴레를 채운다. 완전히 몰락하지 않는 한, 빚에서 발을 뺄 수 없다. 중농은 지주에게 품을 팔러 가장 많이 간다. 왜냐하면 지주가 돈을 빌려줄 때는, 2필 말을 갖고 있고, 농영 경영에 따른 설비가 상당히 정돈되어 몰락하지 않은 농민을 대상으로 하므로, 중농이 그걸 피해 나가기는 곤란하다. 단절된 토지, 임차, 겨울 동안 빚을 갚고자 지주에 대한 자신을 노예로 만든다. 지주와 부농 이외에, 돈 많은 마을 사람도 중농을 압박한다. 그들은 늘 중농에게서 토지를 빼앗고, 결코 중농을 압박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중농은 이와 같이 생활한다. 그들은 물고기도, 새도 아니다. 그들은 진정한 경영주도, 진정한 노동자도 아니다. 모든 중농은 경영주가 되고자 하고, 토지 소유주가 되려고만 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희망대로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농업 노동자 또는 일용직 노동자를 두고 자신은 남의 노동으로부터 돈을 벌어서, 남의 덕으로부터 부농이 되려고 힘쓰는 중농은 극히 적다. 대다수 중농은 사람을 두기는커녕 자신이 고용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이기 때문이다. 부농과 빈농 사이, 토지 소유자와 노동자 사이에서 투쟁이 시작된 곳에서는 어디서나, 중농은 중간에 붕떠서 어디로 갈지를 결정하지 못한다. 부농은 그들을 자신의 쪽으로 불러서 말한다.

 

"너도 같은 경영주고, 토지 소유주다. 너는 맨몸뚱이 노동자와 손 잡을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러나 노동자는 말한다.

 

"부농은 너를 속이고, 또 약탈해간다. 따라서 너에게는 모든 부농과 투쟁에서 우리 원조 이외에 따로 구조될 방법이 없다."

 

중농 논쟁에서 사회민주주의자인 노동자는 노동대중 해방을 위해 싸우는 모든 국가에서도 진행된다. 국내 논쟁은 지금 막 시작됐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을 잘 조사해서, 부농이 어떤 기만으로부터, 중농을 끌어당기고 있고, 어째서 부농의 기만을 폭로하고, 중농으로부터 참된 동지를 찾을 수 있도록 원조해야만 하는가를 분명하게 알아아먄 한다. 사회민주주의자인 노동자가 곧 참된 길로 나선다면, 독일 노동자 동지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농촌 노동자와 공고하게 동맹을 조직할 수 있고, 노역자의 모든 적으로부터 승리에도 꽤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


4. 중농은 어디로.

 

모든 토지 소유자와 부르주아지는 농업 경영 개선, 값싼 쟁기, 농업 은행, 목초 파종 실행, 가축과 비료에 따른 염가 판매 등을 위해 모든 수단을 취하기를 중농에게 약속하고, 또 동시에 농민을 모든 농업 동맹, 곧 경영 개선 목적으로 모든 경영주 사이에 맺은 동맹을 가맹시키면서부터 중농을 자기 쪽으로 만들고자 힘쓴다. 이런 방법으로 부르주아지는 중농을 노동 동맹,더 나아가 소농, 프롤레타리아와, 동맹에서 떼어버리려고 힘쓰고, 부르주아지와 노동자, 프롤레타리아 투쟁에서 그들을 부농, 부르주아지 쪽에 서게 하려고 힘쓴다. 사회민주당원인 노동자는 말한다. 농업 경영 개선은 좋은 일이다. 값싼 쟁기를 사는 건 전혀 나쁜 일이 아니다. 상인은 바보가 아닌 다음에서야, 누구나 구매자를 끌고자 저렴하게 팔려고 힘쓴다. 그러나 빈농이나 중농에게, 농업 경영 개선과 쟁기에 따른 염가 판매가 궁핍에서 모면하도록 하고, 부자 도움을 받지 않고, 독립하는 데 기여한다는 말은 기만에 불과하다. 이런 개선과 싼값, 그리고 물건을 저렴하게 판매하고, 유리하게 파는 동맹과 협동조합이라는 회사에서는 부농이 훨씬 더 많은 이익을 본다. 부농은 더욱 힘세고, 더욱 더 혹독하게, 빈농과 중농을 압박시킨다. 부농이 부유하게 되는 한, 자기 수중 토지, 가축, 농기구, 금전 대부분을 쥐고 있을 때까지 빈농뿐만이 아니라, 중농도 궁핍을 면할 수는 없다. 한두 사람 중농만 경영 개선과 회사 도움으로부터 부농 대열에 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모든 인민과 중농도 더욱 궁핍이라는 구렁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모든 중농이 넉넉하게 살고자 한다면 부농 자체를 내쫓는 게 필요하다. 도시 노동자와 지방 빈농과 동맹만이 그들을 내쫓을 수 있다. 부르주아지는 중농에 대해 소농에 대해서까지 말한다.

 

'우리는 너에게 싼 토지와 쟁기를 판다. 너는 우리에게 네 영혼을 팔아라. 그러고서 너는 모든 부농에 대한 투쟁을 거절하라.'

 

사회민주당원인 노동자는 다음으로 응답한다.

 

'정말로 저렴하게 팔려면, 왜 돈이 있는 사람이 사서는 안 되는가. 장사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영혼만큼은 결코 팔 수 없다.'

 

모든 부르주아지에 대해 도시 노동자와 공동으로 싸우기를 거절한다는 건, 영구적으로 빈곤과 궁핍 속에 머문다는 걸 뜻한다. 물건이 저렴해지면서부터 부농은 보다 이익을 더욱 더 많이 번다. 그러나 공장에서 일하는 돈 없는 사람은 부르주아지에게서 돈을 받지도 못한다. 부르주아지는 쓸데없는 여물통을 목에 걸고 다니듯이, 아무 소용 없는 회사 간판을 둘러메고 다닌다. '사회혁명당원'이라고 스스로 칭하는 사람들까지도 부르주아지의 엉덩이 뒤에서 농민에게 가장 필요한 건 회사라고 부르짖는다.

 

국내에서도 모든 회사를 일으키는 운동이 시작됐다. 그러나 그리 많지는 않았다. 정치적 자유가 없는 동안에는 적다. 그런데 독일 농민 사이에서는 모든 종류로 된 회사가 매우 많다. 그러나 이러한 회사에서는 누구를 제일 많이 원조하는지를 보라. 모든 독일에서는 14만 농가가 우유와 유제품 판매 때문에, 조합에도 가맹한다. 그리고 14만의 농가에서는 110만 필의 소를 친다. 모든 독일 빈농 수는 400만에 이르렀다. 그들 중에 겨우 4만 명만이 조합에 든다. 다시 말해, 빈농 100명 당 한 사람 비율로 회사를 이용한다. 4만 비농이 소유한 소의 수효는 겨우 10만 필에 불과했다. 또 중농은 100만 명에 달하며, 그 중에는 5만이, 5/100이 회사에 참가한다.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소의 수효는 20만 필이다. 돈 많은 농가, 지주와 부농을 합치면 100만의 1/3이다. 그 중 100명 당 17, 5만 명이 회사에 또 참가한다. 그들이 소유한 소의 수효는 80만 필에 달한다.

 

회사에서는 누구를 더 많이 원조하는가를 알 수 있다. 싸게 사고, 유리하게 팔고자, 모든 비슷한 동맹으로부터 중농을 구제한다고 부르짖는 사람들은 명백히 농민을 우롱한다. 부르주아지는 빈농과 중농을 자기 쪽으로 이끄는 사회민주주의자 손에서도 매우 저렴하게 탈취하기를 바란다. 러시아에서도 버터제조조합, 집합적인 조합이 설립됐다. 상호 조합(알르체르)와 공동체(미르)로부터 동맹, 협동 조합 등이야말로, 일반 사람들에게 필요하다고 부르짖는 사람들 또한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상호 조합과 협동 조합과 공동체에 따른 토지 임차가 누구 손에 들어가는지를 보라. 러시아에서는 100가구 가운데 20가구를 밑돌지 않은 수효가 전혀 소를 갖지도 못했었다. 30가구는 소 1필씩을 갖는다. 이들은 심한 궁핍에 못 견디어 우유를 판다. 아이들에게 먹일 우유마저 남지를 않는다. 아이들은 궁핍해서, 파리같이 죽어 넘어진다. 그런데도 돈 많은 농민은 3, 4필 또는 그 이상의 소를 갖는다. 그리고 부농은 모든 소의 절반을 가진다. 버터제조조합이 누구 이익이 되는가. 먼저 지주와 농촌 부르주아지 이익이 명백하게 된다. 또한 중농과 빈농이 그들을 추종한다는 점, 모든 노동자에 따른 모든 부르주아지에 대한 투쟁을 궁핍에서 모면하는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자신의 처지에서 기어 올라가서 부농 대열이 되고자 하는 중농의 희망은 지주와 농촌 부르주아지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점은 명백해진다.

 

부르주아지에 따른 모든 앞잡이는 자기들이야말로, 빈농 쪽이고, 친구라고 속이고는 이러한 희망을 지지하고, 고취시킨다. 그래서 마음이 순박한 사람들은 양의 가죽 속에 이리가 있다는 걸 알지 못하고, 빈농과 중농에게 이익을 가져온다고 생각하면서, 부르주아지의 기만을 되풀이한다. 서적이나 연설 가운데 다음과 같다.

 

'소농 경영은 가장 편리하고, 가장 이익이 높다. 소농 경영은 발달했다. 그리고 모든 양전이 부르주아지에게 점령되고, 모든 돈도 그들 수중에 쥐어 있는데, 빈농은 압박만 받아 평생 동안 약간의 토지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소농에게는 많은 돈을 쓸 곳이 없다고, 감언이설을 좋아하는 그들은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농과 중농은 대농보다 절약 정신이 강하고, 보다 부지런하고, 간편하게 생활한다. 그들은 가축 때문에 목초를 사는 대신, 짚으로 태워버린다. 비싼 기계를 사는 대신,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기계 대신 긴 시간 일한다. 부자는 물건의 수선을 남에게 맡기지만, 그들이 쉬는 날에는 스스로 도끼를 잡고, 목수 일을 하므로, 대농보다 모든 일에 싸게 먹힌다. 그들은 경작용 비싼 말, 황소를 기르는 대신에, 젖소를 부린다. 독일에서는 젖소로 경작한다. 중농과 소농이 부저린히 일하며, 간편한 생활을 하고, 방종에 흐르지도 않고, 사회주의 일을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 경영만 생각한다는 건 얼마나 칭찬할 일인가. 부르주아지에게 파업을 일으키는 노동자에게 이끌리지도 않고, 부자 뒤에만 붙어서 착한 인간이 되고자, 기회를 늘 기다린다. 만일 모두가 이와 같이 열심히 또 근면하고, 간소하게 생활하고, 술을 마시지 않고, 보다 많이 돈을 저축하고, 사치스러운 옷을 입지도 않고, 아이를 너무 낳지도 않도록 한다면, 모두 잘 생활할 수 있고, 괴롭거나, 궁핍도 맛보지 않을 수 있다.'

 

부르주아지는 중농에게 달콤한 말을 속삭인다. 그리고 달콤한 말을 믿고, 스스로 되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달콤한 언사는 기만이고, 농민을 조롱한다. 중농과 소농으로 하여금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게 시키고, 빵 하나 때문에 애쓰고, 한 푼 지출까지도 단념시키는 이 궁핍, 이 혹독한 궁핍을 달콤한 언사로 속살거리는 무리들은 값싸고, 유리한 경영이라고 부른다. 물론 3년 동안 한 벌 바지를 입고, 여름에는 구두 없이 걷고, 호미를 새끼줄로 동여매어 쓰고, 젖소에게는 지붕에서 빼낸 썩은 짚을 먹이는 데 비교하면, '보다 싸고, 보다 이익이 있을 뿐이다.' 부르주아나 부농으로 하여금 '싸고, 유리한 경영을 담당하도록 한다면' 곧바로 자신의 달콤한 언사를 잊어버린다. 소농 경영을 칭찬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대로 농민에게 이익을 주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손해만 준다.

 

제비뽑기가 인민을 기만하듯이, 그들은 달콤한 언사로 일반 사람을 속인다. 제비뽑기란 무엇인가. 자신이 50루블짜리 소 1필을 가졌을 때, 이 소를 제비뽑기에 부치면, 1루블짜리 패를 모든 사람에게 판다. 물론 1루블로 소를 얻을 수도 있다. 인민은 이 달콤한 말에 걸려든다. 1루블의 은화가 모이면 100루블이 모였을 때, 제비를 조사해서 소가 맞은 패를 찾아낸다. 그러면 다른 패는 모두 빈 패가 된다. 그렇다면 이 소는 인민에게 싼값인 셈인가. 아니다. 매우 비싸다. 왜냐하면 가격의 2배의 돈이 지출되고, 제비를 만든 사람과 소를 얻은 사람은 조금도 힘을 들이지도 않고 이익을 보았고, 돈을 잃은 99명분의 이익을 보았다. 제베가 인민에게 이익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인민을 기만하는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회사, 농업 경영 상에 따른 모든 개선, 모든 은행, 그 외의 방법으로부터 괴롭고, 궁핍에서 해방을 약속하는 사람은 농민을 기만하는 사람이다. 제비로 한 사람이 이익을 보고, 다른 사람이 손해를 보는 일은 여기서도 일어난다. 중농 한 사람이 곤궁을 면해서, 부농의 동료로 들어간다. 그러나 99명의 동료는 궁핍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더욱 더 파산해서 한 평생을 계속 괴롭게 당해야만 한다. 각 지방 주민이 궁핍을 잊어버렸는가. 그리고 일생 동안 이 궁핍에서 벗어나지도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파산해서 마을을 떠난 사람은 얼마나 있는가. 앞서 본 바와 같이, 모든 러시아에서도 중농 경영에 따른 수효가 200만 이하는 아니다. 저렴하게 사고, 유리하게 팔기 위한 동맹 수효가 지금보다 10배 많아졌을 때, 어떻게 될까. 10만의 중농이 부농으로 올라간다면 너무나 많다. 무엇을 뜻하는가. 100명의 중농 가운데 5명이 부자가 됐다는 걸 뜻한다. 나머지 95명은 어찌되는가. 그들은 여전히 괴로운 생활을 하고, 훨씬 혹심해진다. 빈농은 더욱 더 파산한다.

 

부르주아지에게 필요한 건, 중농과 소능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자신의 쪽으로 끌어들여, 그들로 하여금 부르주아지와의 투쟁 없이도 궁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게 하고, 자신의 근면과 저축에 모든 걸 걸도록 하고, 농촌과 도시 노동자와 동맹을 더욱 불신하도록 만든다. 부르주아지는 온 힘을 다해 일반 사람이 걸려든 믿음과 희망을 지지하고자 힘쓰고, 모든 달콤한 언사를 써가며, 그를 잠들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모든 감언이설의 기만을 폭로하고자 할 때는, 그들에게는 세 가지 질문을 제출하면 충분하다.

 

1). 모든 러시아에서 24000만 데샤티나의 경작지 가운데 1억 데샤티나가 토지 소유자에게 소유되고 있을 때, 노동하고 있는 인민은 가난과 궁핍에서 해방될 수 있는가. 16천의 대토지 소유자의 손에 6500만 데샤티나의 토지가 쥐어지고 있는 때에도.

 

2). 150만 가구의 1000만 가구의 모든 농가 가운데 부농이 농민의 모든 경지와 말, 가축 절반, 또한 농민 곡식과 저축액보다 훨씬 많은 걸 자신의 수중에 쥐고 있을 때, 노동하고 있는 인민은 괴로움과 가난에서 해방될 수 있는가. 농민 부르주아지가 빈농과 중농을 압박하고, 농업 노동자와 날품 노동자의 노동을 착취해서, 더욱 더 부유해가고 있을 때, 농가 600만 가구가 늘 굶주리면서 모든 고용 노동으로부터 약간의 빵 조각을 얻고 있는 파산한 빈농인 때에도.

 

3). 돈이 주요한 힘이 되고, 돈이 모든 것, 곧 공장도, 토지도, 고용 노동자·고용 노예로 인간 자체도 살 수 있을 때, 노동하고 있는 인민은 괴로움과 가난에서도 해방될 수 있는가. 돈이 없으면 생활할 수 없고, 농업 경영도 할 수 없는 때에도. 소경영주와 빈농이 돈을 얻고자, 대경영주와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에도. 수 많은 지주·상인·공장주·은행가들이 자신의 수중에 수억 루블을 쥐고, 그 이외에도 수십억 루블의 돈이 모여 있는 모든 은행을 지배하고 있는 때에도.

 

소농 경영이나, 회사의 이익에 대해 아무리 미사여구를 나열해봐도, 이 질문을 결코 회피할 수는 없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하나다. 노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진정한 회사, 그것은 모든 부르주아지와 투쟁하고자 농촌 빈농과 도시에서 사회민주주의자인 노동자와 동맹이다. 동맹이 급속도록 확대하고, 공고하게 될수록 중농은 더욱 빨리 부르주아지의 약속의 모든 허위를 이해하고, 우리 쪽이 된다.

 

부르주아지는 이 점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달콤한 언사 이외에도 사회민주주의자에 관한 온갖 비방을 퍼뜨리고 다닌다

그들은 말한다.

 

'사회민주주의자는 중농과 소농으로부터 사유권을 박탈한다.'

 

거짓말이다. 사회민주주의자는 오직 소유자로부터만, 남의 노동으로 먹고 사는 사람으로부터만 소유권을 몰수한다. 사회민주주의자는 소농과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은 중농으로부터는 그들의 소유권을 결코 몰수하지도 않는다. 사회민주주의자는 가장 자각하고, 단결된 도시 노동자뿐만이 아니라, 농촌 노동자, 작은 수공업자와 농민까지 포함해서, 그들이 노동자를 사용하지 않고, 부자에게 끌리지도 않고, 부르주아지 쪽으로 가지도 않는다면 모든 노동 대중 이익을 보호하자고 내세운다. 아직도 부르주아지 지배를 뒤엎지 못한 현재에도 일반적이며, 또 부르주아지 투쟁을 쉽게 할 수 있는, 노동자와 농민 생활에서 일체 개선을 위해 투쟁한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자는 농민을 기만하지 않는다. 농민에게 모든 참만 말한다. 부르주아지가 지배하고 있는 동안에는 어떤 개선도 결코 인민을 괴로움과 가난에서 해방하지 못함을 미리 앞서 정직하게 말한다. 사회민주주의자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를 모든 인민에게 알리고자, 사회민주주의자는 스스로 강령을 만들었다. 강령이란, 당이 무엇을 쟁취하는가. 무엇 때문에 싸우는가 하는 모든 점에 대해 간단하게, 명료하게, 정확하게 선언해야만 한다. 사회민주당은, 모든 인민이 이를 알고 있고, 또 이를 보고자 부르주아지의 압박으로부터 노동하고 있는 모든 인민 해방을 위해 참으로 투쟁하기를 바라고 있고, 이런 투쟁을 위해 누구와 단결해야만 하는지, 또 어떻게 이 투쟁을 지도할 수 있을지를 정당하게 깨달은 사람들만이 당에 가입할 수 있도록, 명료하고, 정확한 강령을 내건 유일한 당이다. 그 밖에도 사회민주주의자는 노동하고 있는 인민의 괴로움가 가난이 어디에서 생기는가. 왜 노동자 동맹은 더욱 더 확대되고, 더욱 더 강대하게 되는가를 강령 속에 정직하게, 공공연하게, 정확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있다. 우리 생활은 비참하다. 혁명을 일으키라고 부르짖기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그런 건 큰소리로 장담하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큰 이익은 못 된다. 노동하고 있는 인민은 왜 자신들이 가난하고, 궁핍에서 해방을 위해 자신들이 누구와 단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똑똑하게 깨달아야만 한다.

 

사회민주주의자는 무엇을 바라고 있고, 또 노동하고 있는 인민의 괴로움과 궁핍은 왜 생기는지, 빈농은 누구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이미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들 투쟁으로부터, 현재 어떤 개선을, 곧 노동자와 농민 생활에서 어떤 개선을 쟁취할 수 있는지를 말하도록 하자.



5. 사회민주주의자는 모든 인민과 노동자를 위해 어떤 개선을 쟁취하는가.

 

사회민주주의자는 일체의 약탈, 압박, 부정으로부터 모든 노동 대중을 해방하고자 싸운다. 그러나 해방되기 위해서는 노동 계급은 먼저 연합해야만 한다. 그리고 연합하기 위해서는 결사의 자유 및 권리를 가져야만 한다. 또 정치적 자유를 가져야만 한다. 전체적인 지배가 인민 관리와 경찰의 예속이라는 건 이미 말했다. 그러므로 정치적 자유는 궁정에 출입할 수 있는 모든 고관, 귀족, 졸부 등 소수들 말고도 모든 국민에게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노동자와 농민에게 가장 필요하다. 부자는 관리와 경찰 횡포와 부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부자는 고위층에다 탄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경찰·관리가 가난한 사람에게 일삼는 부정한 짓을 부자에게 그러는 일은 훨씬 드물다. 노동자와 농민이 경찰이나 관리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전혀 없다. 또 누구에게 탄원한다고 해도, 탄원할 사람이 없다. 또 재판을 하더라도 자신의 힘이 미치지도 못한다. 노동자와 농민은, 국가에 선거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동안에, 대표자 인민 회의가 존재하지 않는 동안에는, 경찰과 관리의 질책과 횡포, 모욕적인 행위로부터 결코 도망칠 수도 없다. 오직 이런 대표자 인민 회의만이 인민을 관리로부터 예속 상태에서 해방할 수 있다. 모든 자각한 농민은 황제 정부에서 무엇보다 먼저 중요한 대표자 인민 회의 소집을 요구하고 있는 사회민주주의를 지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분의 구별 없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 구별 없이, 모든 사람들이 대표자를 뽑아야만 한다. 선거는 관리 간섭 없이 자유로워야만 한다. 선거를 감시하는 임무를 위임받는 일반인이 맡겨야지, 마을 경찰이나, 젬스트보 장관이어서도 안 된다. 선거가 실시되면 모든 국민에게 선출된 대표자는 모든 국민적인 가난을 심의할 수 있고, 국내에서 보다 좋은 제도를 세울 수 있다.

 

사회민주주의자는 재판을 하지 않고, 경찰이 아무나 투옥해서는 안 된다고 요구한다. 관리의 불법 감금 행위는 엄중하게 처벌해야만 한다. 관리의 자의적인 행위를 중지시키고자, 인민은 스스로 관리를 선출하고, 개개인이 관리에 대한 탄원을 직접 재판소에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갖도록 해야만 한다. 그런데 마을 경관을 자치청 젬스트보에게 또한 자치청 장관을 지사에게 고소하면 어찌 되는가. 물론 자치청 장관은 마을 경관을 옹호하고, 현 지사는 장관을 옹호해서, 도리어 탄원자가 혼날 뿐이다. 탄원자를 감옥에 집어넣든지, 시베리아와 같이 멀리 유형 보내든지 한다. 국내에서도 다른 모든 국가에서도 그러하듯이, 모든 사람들은 인민 집회나 인민 재판소에 탄원을 제출하고, 자신의 가난을 자유롭게 말하고, 또는 신문을 발행할 수 있는 때에 비로소 관리에게 징벌이 가해진다.

 

인민은 오늘날까지도 관리에 대해 농노적인 예속 상태에 묶여 있다. 관리의 허가 없이는 국민은 집회를 개최하지도, 책과 신문을 인쇄하지도 못한다. 과연 농노적인 예속 상태가 아닌가. 자유롭게 집회를 열지도 못하고, 자유롭게 책을 인쇄하지도 못한다면, 어떻게 관리와 부자에게 정의를 요구할 수 있을까. 물론 정당한 책의 인쇄도 모든 관리는 금지시킨다. 그리고 인민의 가난에 대한 정당한 말도 그들은 모두 금지시킨다. 따라서 사회민주당은 이런 서적을 비밀리에라도 인쇄하고, 배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책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런 걸 무서워하지 않고, 더욱 많은 서적을 발행하고, 인민에게 올바른 책을 읽도록 더욱 더 배포한다. 따라서 어떤 감옥도, 어떤 박해도, 인민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저지하지는 못한다.

 

사회민주주의자는 신분 제도가 폐지되고, 국가의 모든 시민이 평등권을 갖도록 요구한다. 러시아에서는 세금을 바치지 않는 신분과 세금을 바치는 신분이 존재한다. 특권이 있는 신분과 특권이 없는 신분이 존재하고, 흰 뼈와 검은 뼈가 존재한다. 천한 인민에게는 아직도 태형이 남아 있다. 어떤 국가에서도 노동자와 농민에게 이와 같이 냉대하지는 않다. 러시아 이외의 어떤 국가에서도 여러 가지 신분을 위해, 여러 가지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민이 일어나서 일반 사람들에게도 귀족이 가진 모든 권리를 달라고 요구해야만 한다. 농노제 폐지 뒤로 40년이 지난 현재에도 아직까지도 태형이 시행되고, 납공하는 신분이 존재한다는 건 치욕스럽다. 사회민주주의자는 인민을 위해 완전한 이동의 자유, 부업의 자유를 요구한다. 이동의 자유란 무엇을 뜻하는가. 농민이 스스로 가고 싶은 데로 마음대로 가는 권리, 가고 싶은 곳으로 이전하는 권리, 누구의 허가도 받지 않고, 어떤 촌락이나 도시라도 선택할 권리를 말한다. 또한 여행권이 폐지되고, 어떤 촌장이나 군장도 농민의 자유로운 거주와 노동을 방해하지는 못한다는 걸 뜻한다. 일반 사람은 자유롭게 도시에 갈 수도 없고, 자유롭게 새로운 토지에 이주하지도 못할 만큼 아직까지도 관리에게 예속된다. 정부 대신은 현 지사에게 농민의 자유로운 이주를 허락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현 지사는 일반 사람이 어디로 가는지 일반 사람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의 생각에 일반 사람은 어린애일 뿐이다. 장관 없이는 움직일 수조차 없다. 과연 농노적 예속이 아니던가. 모든 자신의 재산을 방탕하게 낭비하는 귀족이 분별력 있는 경영주와 경작인을 지배하고 있다는 건 과연 인민에 대한 모욕이 아니던가.

 

당시에 농무부 장관이던, 엘모로프, 흉작과 인민 기근이라는 책이 있었다. 이 책에는 '지주 여러분이 노동자의 손을 필요로 할 때에는 그 장소에서는 농민을 이주시켜서는 안 된다.'고 명백하게 말했었다. 장관은 또 일반 사람은 이런 말을 듣지 않을 거고, 듣더라도 그걸 이해하지는 못할 거라고 거침없이 말했었고, 또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는 말했었다.

 

'지주들이 값싼 임금 노동자를 필요로 할 시기에 왜 인민을 내놓는가. 인민이 더 괴롭게 생활할수록 지주에게는 더 유리하고, 그들의 가난이 클수록, 그들은 더 싸게 고용되고, 모든 압제를 더 온순하게 참고 견딘다. 이전에는 촌장이 귀족의 이익의 뒷배를 봐줬으나, 현재에는 자치청 장관과 지사가 그걸 봐준다. 이전에는 촌장이 마구간에서 농민을 구타했으나, 현재 농민은 군청에서 태형을 받는다.'

 

사회민주주의자는 상비군이 폐지되어야만 하고, 대신에 국민군이 조직되어야만 하며, 모든 인민이 무장하기를 요구한다. 상비군이란 인민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할, 인민을 사살하고자 준비된 군대다. 병사는 수년 간 비인간적으로 교육되지 않았다면, 과연 그가 자신의 형제를, 노동자와 농민을 사살할 수 있을까. 적의 공격에서도 국가를 방위하는 데 있어, 상비군은 전혀 필요 없다. 그 역할은 국민군으로도 충분하다. 국가의 각 시민이 무장한다면, 국내로는 어떤 적도 무서울 게 없다. 그리고 국민은 군국주의에 따른 속박에서도 벗어난다. 정부는 군비를 위해 매년 수억 루블을 쓴다. 돈은 모두 인민에게 거둔다. 그런 까닭에 세금은 매우 높고, 생활은 더욱 괴롭다. 군국주의는 관리 권력과 국민에 대한 경찰 권력을 강화시킨다. 군국주의는 다른 인민을, 특히 중국 영토를 약탈하고자 필요해진다. 이런 까닭에 인민 부담은 더욱 무거워진다. 더군다나 새로운 세금이 부과될 경우에는 더 괴롭다. 모든 인민 무장으로부터 상비군을 폐지하는 건 모든 노동자와 농민에 따른 막대한 부담을 가볍게 한다.

 

인민에 대한 막대한 부담에 따른 경감은 사회민주주의로부터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간접세 폐지로부터 실현된다. 간접세는 토지, 농업 경영에서 징수되는 게 아니고, 상품 가격에 덧붙여져 있다. 간접세는 상품 구입 시 인민에게 간접적으로 받아들이는 세금이다. 국고는 인민에게 설탕, 보트카, 석유, 성냥, 그 외 모든 소비품에 대해 과세한다. 세금은 상인 또는 공장이나, 국고에다 바치며, 물론 자신의 돈에서 바치는 게 아니라, 그 물건을 산 사람이 그에게 내준 돈으로 바친다. 세금 때문에 보트카, 설탕, 석유, 성냥 가격은 올라간다. 그리고 각각의 구매자는 보드카 1, 설탕 1푼트에 대해 상품 가격뿐만이 아니라, 그에 대한 세금도 지출한다. 여러분이 1푼트 설탕에 대해 14카페이카를 줬을 때, 그 중에서 4페이카는 세금이다. 설탕 제조업자는 이 세금을 이미 국고에다 바친다. 그리고 국고에 바친 만큼 금액을 각각의 구매자에게 징수한다. 간접세는 소비품에 부과하는 세금이고, 사는 사람은 상품을 원래 가격보다 비싼 가격을 무는 형식이다. 어떤 사람은 이에 대해,

 

'간접세는 가장 정당한 세금이다. 왜냐하면 산 사람이 자신의 산 물건에 대해 그만큼 바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당하지 않다. 간접세는 가장 부당한 세금이다. 왜냐하면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이 지출하는 게 더 괴롭기 때문이다. 부자는 농민이나, 노동자보다 10배나 더 많은 수입을 얻는다. 아니 100배나 더 많은 수입이 있다. 그러나 과연 부자가 설탕을 100배나 더 많이 살 필요가 있을까. 보드카나 성냥을 10배나 더 많이 살 필요가 있을까. 또 석유는 어떠한가. 물론 그렇지 않다. 부유한 가정은 석유, 보드카, 설탕을 가난한 사람보다 2배 혹은 기껏해야 3배 분량을 사는 데 불과하다. 그러나 이 점은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적은 비례의 금액을 세금 형식으로 자신의 수입에서 지출하고 있다는 걸 뜻한다.

 

빈농 수입을 1년에 200루블이라고 가정했을 때, 간접세가 붙어 가격이 높아진 60루블 상당의 상품을 산다고 하자. 60루블 가운데 20루블은 세금이 된다. 가난한 사람은 자신이 빌린, 1루블에 대해 10카페이카를 간접세 형식으로 지출한다. 그런데 부농 수입은 1000루블이고, 세금이 부과한 상품을 150루블만 산다고 했을 때, 세금은 150루블에 맞추어, 50루블이 지출된다. 그러므로 부농은 자신의 수입 가운데 1루블에 대해 간접세 형식으로 겨우 5카페이카밖에 지출하지 않는다. 부자일수록, 자신의 수입에서 지출하는 간접세 액수가 더욱 작아진다. 그러므로 간접세는 가장 부당한 세금이다. 간접세는 가난한 사람에게 부과될 세금이다. 농민과 노동자는 모든 인구에서 95%를 차지하고, 전체 간접세에서 9/10 혹은 8/10을 지출한다. 그런데 노동자와 농민은 모든 수입에서 4/10 이하를 받는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자는 간접세 폐지와 수입 및 상속에 대한 누진세 설치를 요구한다. 이 방식은 수입이 많을수록, 누진적으로 더 많은 세금을 내는 방식이다. 1천 루블 수입이 있는 사람에게는, 1루블에 1카페이카씩, 2천 루블 수입이 있는 사람에게는 1루블에 2카페이카씩, 이하는 여기에 준하도록 과세한다. 가정 적은 수입, 400루블 이하의 수입을 얻는 사람으로는 전혀 과세하지 않도록 한다. 가장 큰 부자가 가장 막대한 세금을 지출하도록 한다. 소득세 혹은 누진 소득세는 간접세보다 훨씬 정당하다. 사회민주주의자는 간접세 폐지와 누진 소득세 실시를 획득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모든 토지 소유자, 모든 부르주아지는 이를 원치도 않고, 반대한다는 건 명확한 사실이다. 오직 빈농과 도시 노동자에 따른 공고한 동맹만이 부르주아지로부터 세제 개선을 쟁취할 수 있다.

 

모든 인민, 빈농에 대해 중대한 개선은 아동 무상교육제도이다. 사회민주주의자는 무상교육제도를 요구한다. 농촌에서는 도시에서보다 학교 수효가 훨씬 적다. 어디서나 부자 계급, 부르주아지만이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받는다. 모든 아동의 의무·무상 교육만이 인민으로 하여금 문맹 상태에서 어느 정도 해방할 수 있다. 빈농은 특히 문맹으로 어려움을 겪고, 교육을 더욱 더 필요로 한다. 물론 참된 자유로운 교육을 필요로 하는데, 관리나 승려가 원하는 자유 교육은 아니다. 사회민주주의자는 각 개인이 어떤 종교든지, 마음대로 믿을 수 있는 완전한 권리를 얻기를 요구한다. 다만 유럽 각국 가운데 터키와 러시아에서만 다른 인종에 대해 수치스러운 법률, 이교도·분리파·유태인에 대한 부당한 법률이 남아 있다. 이런 법률은 직접 어떤 신앙을 금지하든지, 그것의 선전을 금지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믿는 자의 권리를 일부 박탈한다. 모든 법률은 가장 부당하고, 폭력적이고, 수치스럽다. 각 개인은 자신이 원하는 종교를 믿을 자유뿐만이 아니라, 좋아하는 종교를 선전하고, 그 신앙을 변경하는 완전한 자유를 가져야만 한다. 어떤 관리라도, 어떤 신앙에 대해 타인에게 질문할 권리를 가져선 안 된다. 문제는 양심의 문제다. 누구라도 문제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 어느 곳에서든, 신앙 또는 교회는 있을 수 없다. 모든 신앙, 모든 교회는 법률 앞에 평등해먄 한다. 여러 가지 종파의 승려에 대해서, 그 종교에 속한 사람들이 생활 자료를 주어도 좋지만, 국가는 국고의 돈으로는 어떤 종교라도 보호해서는 안 된다. 어떤 승려에게도, 어떤 그리스 정교도에게도, 어떤 분파에게도, 어떤 이교도에게도, 그 밖의 어떤 자에게도 생활비를 주어선 안 된다. 사회민주주의자는 이 모든 점에 대해 크게 맞선다. 앞서 말한 수단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아무런 법규의 절차도 없이 적용되고 있는 동안에는, 인민은 신앙에 대한 수치스러운 경찰의 압박에 못지않게, 수치스러운 어떤 종교에 대한 경찰의 특별 대우로부터 해방되지 않는다.

 

사회민주주의자는 모든 인민을, 특히 빈농을 위해 어떤 개선을 쟁취하고자는 하는지를 살펴봤다. 이제 사회민주주의자는 노동자를 위해, 공장이나, 도시 노동자만이 아니라, 농촌 노동자를 위해 어떤 개선을 쟁취하는지를 살펴보자. 공장 노동자는 비좁은 곳에서 겨우 생활한다. 대공장에서 노동한다. 교양 있는 가문 출신인 사회민주주의자 원조를 이용하는 건 더욱 쉽다. 따라서 도시 노동자는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도 훨씬 먼저 경영주와 투쟁을 개시해서, 현저한 개선을 쟁취하고, 공장법 제정도 쟁취했다. 사회민주주의자는 모든 인민을 위해, 도시와 농촌 가정에서 주인을 위해 일하는 수공업자를 위해서도, 소경영자를 위해서도, 수공업자 밑에서 일하는 고용 노동자를 위해서도, 목수, 석공 등 건축 노동자 및 목재 노동자를 위해서도, 미숙련 노동자를 위해서도, 더불어 농촌 노동자를 위해서도 투쟁을 지속한다. 모든 노동자들은 지금도 전국에서 확대되어, 연합하기 시작했다. 공장 노동자를 뒤쫓아 원조를 얻어, 보다 좋은 생활 조건을 획득하고자, 보다 짧은 노동 시간을 위해, 보다 높은 임금을 위해 연합을 개시했다.

 

사회민주당은 생활 개선을 위한 투쟁에 있어 모든 노동자를 지지하고, 가장 튼튼하고, 가장 믿음직한 노동자를 공고한 동맹에 조직하고자 원조하고, 소책자와 안내서를 배포하고, 초보적인 사람들을 위해 경험 있는 노동자를 파견하고, 그 외에도 일반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대해 모두 원조하기를 자신의 임무로 삼는다. 정치적 자유를 획득할 때, 대표자 인민 회의에서도 자신의 쪽인 사람, 노동자 대표자, 사회민주주의자는 출석한다. 다른 국가에서도 자기 쪽 동지와 마찬가지로 노동자에게 유리한 법률 발표를 요구한다. 사회민주당은 노동자를 위해 쟁취하려고 하는 모든 개선을 열거하지는 않겠다. 개선은 강령 가운데 충분히 열거했고, 국내 노동자 사업에서도 상세하게 설명했다. 개선 항목 가운데 중대한 점을 충분하게 들어보자.

 

- 노동 시간은 1주일에 8시간 이상이어서는 안 된다.

 

- 1주일에 하루는 휴식을 위해 늘 노동에서 해방되지 않으면 안 된다.

 

- 잔업 및 야간 업무는 완전히 금지해야만 한다.

 

- 아동은 16세까지 무상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 16세까지 고용 노동은 허락되지 않는다.

 

- 신체에 유해한 사업에서 부녀자는 일해서는 안 된다.

 

- 노동할 때 모든 상해에 대해서는 고용주가 배상해야만 한다.

이를테면 탈곡기를 다루다가, 입은 상해에 대해 임금을 지출할 경우, 모든 고용주는 늘 1주일 분 임금을 지급해야만 한다.

 

- 농촌에서 고용된 경우 품삯을 2개월에 한 번만, 3개월에 한 번만 지불받아서는 안 된다.

노동자에게는 일주일에 한 번 정확히 지불받는 게 매우 중대하다.

그때에는 반드시 현금을 받고, 물품으로 받아서는 안 된다.

 

- 고용주는 물품을 줄 경우, 3배나 비싼 가격으로 모든 나쁜 물품을 강요한다. 무법을 막고자, 무조건 법률로부터 물품에 따른 품삯 지불을 금지시킨다.

 

- 정년을 넘은 노동자는 국가로부터 연금을 받아야만 한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모든 계급, 모든 국가를 부양하고 있으므로,

노동자들은 관리가 받는 것보다도, 더 많은 연금을 충분히 받을 권리가 있다.

 

- 경영주는 자신의 지위를 악용해서, 노동자를 위해 만든 규약을 파기하지 않도록, 공장에 대해서만 아니라, 대규모 농장에 대해서도, 일반적으로 고용 노동자를 사용하는 모든 기업에 대해서도, 감독관이 임명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감독관에는 관리, 경찰에 근무하는 사람은 임명되어선 안 되고, 또 장관이나 지사로부터 임명되어서도 안 된다. 감독관은 노동자로부터 선출한 사람이어먄 한다.

 

- 노동자로부터 자유롭게 스스로 뽑은 노동자 의뢰인에게는 국고에서 급료를 지불한다.

 

- 노동자로부터 뽑힌 대표자는 노동자 주택이 잘 설비되는지, 경영주가 노동자를 토굴이나, 토막에 거주시키는 건 아닌지, 노동자 휴식에 관한 규정도 잘 시행되고 있는지를 감시해야만 한다.

 

- 정치적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 한, 경찰은 전권을 휘둘러, 인민을 무책임하게 다루는 한, 노동자들로부터 선출된 어떤 대표자라고 하더라도, 아무 이익을 줄 수 없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 모든 사람에게 있어 경찰은 재판도 없이, 노동자의 대표자를 체포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말하고, 법률 위반을 폭로하고, 노동자로 하여금 연합하도록 호소하고 있는 노동자들까지도 체포한다. 그러나 정치적 자유를 획득할 때에는 노동자 대표자는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준다.

 

- 모든 공장주, 지주, 청부인, 부농과 같은 고용주에 대해 자신의 임의대로 어떤 노동 임금 삭감이라도, 불합격품에 대한 삭감, 벌금 형식으로부터 삭감 등등을 금지시켜야만 한다. 고용주가 함부로 노동 임금을 삭감하는 건 위법이고, 또 강제다. 어떤 형식의 삭감이든, 경영주는 노동자 임금을 함부로 내려서도 안 된다.

 

- 고용주는 자신 스스로를 재판해서는 안 된다. 고용주는 공공 재판에 고소해야만 한다. 그리고 재판은 노동자 대표와 경영주 대표를 절반씩 뽑아 실시해야만 한다. 이런 재판만이 노동자에 대한 경영주에 따른 모든 불만족과 경영주에 대한 노동자 불평·불만을 정당하게 심의한다.

 

사회민주주의자는 이상과 같은 개선을 모든 노동 계급을 위해 쟁취하고자 한다. 각 소유지에서도 노동자, 각 농장에서도 노동자, 각 청부인 아래에서 노동자는 신용할 수 있는 사람과 협력해서, 어떤 개선을 획득할 필요가 있고, 어떤 요구를 제기할 수 있을지를, 심의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사회민주당 위원회는 전국 모든 노동자에 대해 자신의 요구를 정확하고, 또 분명하게 결정하도록 돕고, 요구로부터 노동자·경영주·관리에게 알리는 안내서를 인쇄하기를 원조한다. 노동자는 한 사람같이 협력해서, 자신의 요구를 위해 일어선다면, 경영주는 분명 양보하고, 타협한다. 도시 노동자들은 이미 해당 방법으로부터 많은 개선을 쟁취했다. 현재 장인·수공업자·농촌 노동자도 자신의 요구를 위해 조직하기 시작했고, 싸움을 개시한다. 정치적 자유를 얻지 못한 시기에는 투쟁을 은밀하게, 모든 소책자 안내서 제작과 노동자 단결을 금지하고 있는 경찰을 따돌리고, 몰래 해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적 자유를 쟁취할 때에는, 투쟁을 한층 더 확대해서, 모든 사람들 앞에 공공연하게 수행하고, 전국 모든 노동 대중과 연합해서, 더 긴밀하게 연합하면서부터, 폭압으로부터도 자신을 방위해나갈 수 있다. 많은 노동자는 사회민주노동당과 연합할수록, 힘은 보다 굳세게 되어 모든 압박에서도, 모든 고용 노동에서도, 부르주아를 위한 모든 노동에서도, 노동 게급에 따른 완전한 해방을 보다 빠르게 성취할 수 있다.

 

따라서 이미 사회민주노동당이 노동자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농민을 위해서도, 개선을 쟁취하고자 있음을 밝혔다. 다음은 당에서는 모든 농민을 위해 어떤 개선을 획득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6. 사회민주주의자는 모든 농민을 위해 어떤 개선을 쟁취하는가.

 

모든 노역자의 완전한 해방을 위해 가난한 농민은 도시 노동자와 동맹해서 모든 부르주아지, 그 중에서는 부농에 대해서도 투쟁을 감행해야만 한다. 부농은 자신이 고용하는 농촌 노동자에 대해 보다 싸게 지출하고, 보다 오랫동안, 보다 가혹하게 일하도록 노력한다. 가난한 농민은 부유한 농민을 제외한 특수한 자신들의 동맹을 결성해야만 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부농과 빈농을 모두 포함한 모든 농민이 많은 점에서는, 여전히 농노의 처지로 뒤떨어져 있다. 모두 열등하고, 천하고 납공하는 신분을 이루고 있다. 모두 경찰 관리와 자치청 장관에게 예속된다. 모두 절단된 토지, 용수지, 경지, 초원, 지주 때문에 농노 시대와 똑같은 방법으로 노동한다. 모든 농민은 새로운 농노 상태에서 해방되기를 원한다. 모든 사람은 지주를 미워한다. 지주야말로, 지금까지 농민으로 하여금 부역 제도 아래에서 혹사시켰고, 토지, 경지, 용수지, 초원에서도 고역을 시키고, 가축이 경지를 밟아서 생긴 손해 때문에 사역을 시키고, 경의를 표하고자 수확기에는 부녀자를 내도록 만들었다. 빈농은 모든 고역 때문에 부농보다 더 많은 해를 입는다. 부농은 지주를 위한 노동에서도 해방된다. 그럼에도 지주는 역시 부농을 매우 압박한다. 그래서 부농은 빈농과 함께 한 상태에 놓여 있는 지방과 관구가 국내에서 많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모든 전국 노동자와 빈농은 두 손으로, 두 길에서, 한 손으로는 모든 노동자와 동맹해서 모든 부르주아지에 대한 투쟁을, 다른 한 손으로는 모든 농민과 동맹을 맺어, 농촌에서 관리와 투쟁하고, 농노제를 강제하는 지주와 투쟁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빈농은 부농에게 분리해서 자신의 특수한 동맹을 결성하지 않는다면, 부농은 빈농을 속이고, 배척하며 스스로 지주 쪽으로 간다. 그리고 토지를 갖지 않은 농민을 그대로 내버려둘 뿐만이 아니라, 그에게 단결하는 자유를 주지도 않는다. 빈농이 부농과 함께 농노적 노예 상태에서 대항하지 않는다면, 빈농은 현 상태에서도 꼼짝 못하고, 도시 노동자와 단결하는 완전한 자유를 얻지도 못한다. 가난한 농민은 맨 처음에 지주를 공격해서, 최악의 가장 유해한 부역 제도에 따른 노예 상태만이라도 폐지시켜야만 한다. 이 점에서는 다수 부농과 부르주아지까지도 함께 빈농 쪽에 선다. 왜냐하면 지주의 거만함은 모든 사람을 싫증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주 권력을 축소시키자마자, 부농은 곧 가변을 벗어던지고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발톱을 편다. 그러나 이 발톱은 물건을 수집하는 발톱이고, 이미 많이 모아들였다. 그러므로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고, 강고하고, 파괴하기 어려운 동맹을 도시 노동자와 함께 조직하자.

 

도시 노동자는 지주의 나쁜 습관을 타파하기를 원조하고, 부농을 진압한다. 가난한 농민은 도시 노동자와 동맹 없이는 결코 모든 노예 상태와 모든 궁핍과 빈곤으로부터도 벗어나지 못한다. 도시 노동자 이외에는 어떤 사람도 가난한 농민을 원조할 수 없고, 자신을 믿는 이외에 어떤 사람에게도 맡길 수는 없다. 그러나 보다 빠르게 획득할 수 있는 위대한 투쟁이라는 첫 걸음에서 곧바로 획득할 수 있는 개선도 있다. 다른 국가에서는 오래 전에 소멸한 관리의 예속 상태가, 부역적·농노적인 노예 상태가 모든 전국 농민에게도 지금 곧 벗어날 수 있는 노예 상태가 국내에서도 많이 현존한다.

 

그렇다면 사회민주노동당은 모든 전국 농민을 적어도 최악의 농노적인 노예 상태에서도 해방하고자, 모든 부르주아지와 투쟁에서 가난한 농민의 손을 자유롭게 하고자, 먼저 어떤 개선을 쟁취할 수 있는가. 사회민주당에 따른 최초 요구로는 '납공할 의무가 있는' 농민에게 부과된 모든 배상금에 따른 지출, 모든 임대료 및 그 외 일체 부담을 폐지한다. 전국 황제의 귀족 위원회·귀족 정부는 농민을 농노적인 예속에서 해방했을 때, 농민에게 자신들의 사유 토지를, 더욱 농민이 예로부터 경작하고 있던 토지를 사도록 만들었다. 바로 약탈이다. 귀족 위원회는 황제 정부의 원조로부터 직접 농민을 약탈했다. 약간의 절단된 분유지를 받기를 바라지 않은 농민에게 대해서는 군사적 집행 처분 할 목적으로, 강제적인 재판 규정을 실시하고자, 황제 정부는 여러 지방에 군대를 파견했다. 군대 원조, 박해, 사살 없이는 귀족 위원회는 농노 해방 당시에도 농민을 약탈할 수는 결코 없었다. 지주와 귀족 위원회는 농민을 어떻게 기만하고, 약탈했는지를 농민을 늘 생각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현재에도 농민을 위한 새로운 법률이 심의될 때에는, 여전히 황제 정부가 늘 지주와 귀족 위원회를 임명했기 때문이다. 황제는 1903226일자 선언을 발표했다. 그 속에서 황제는 농민에 관한 법률 수정과 개선을 약속했다. 그러나 누가 수정했는가. 누가 개선하는가. 그것은 다시 귀족이 한다. 또 관리가 한다. 농민 생활 개선을 위해 농민 위원회가 창립되지 않는 동안에도 농민은 늘 기만된다. 지주, 자치청 장관, 모든 관리는 이미 충분히 농민을 혹독하게 부렸다. 자치청 장관과 지사라고 부르는 모든 관리로부터, 모든 방탕한 귀족 자식의 예속은 충분하다. 농민은 스스로 자신의 사업을 수행하고, 스스로 새로운 법률을 심사하고, 실행하는 자유를 요구해야만 한다. 농민은 자유롭게 선거된 농민 위원회를 요구해야만 한다. 이걸 쟁취하지 않는다면 귀족 관리는 늘 기만하고, 약탈해간다. 농부 스스로 자신을 해방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손에 잡고자 연합하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이라도 관리 앞잡이로부터 해방하지도 않는다.

 

사회민주주의자는 배상금 지출, 임대료 지출, 그 외 일체 부담에 따른 완전하고, 즉각적인 철폐를 요구하고 있으며, 배상금에 따른 납입금을 인민에게 반환해주기를 요구한다. 모든 전국 농민은 귀족 위원회로부터 농노제에서 해방된 그때부터도, 수억 루블에 따른 돈을 지출한다. 농민은 돈을 도로 달라고 요구해야만 한다. 정부로부터 대지주 귀족에게 특별세를 부과시키자. 수도원과 제후가 영유하는 토지, 황제 가족으로부터 땅을 반환시키자. 대표자 인민 위원회로부터 농민 이익이 되도록 돈을 처분시키자. 국내에서도 농민에 대한 멸시, 농민에 대한 박해, 굶주려 죽는 수백만 농민의 무서운 사망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다. 귀족 위원회는 아직까지도 농민을 약탈했으므로, 농노 해방부터 매년 옛 농노 후계자에게 낡은 납공을 강요하고, 배상금과 임대료를 착취해 온 까닭에 국내 농민은 지금도 굶어 죽고 있다. 약탈하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책임을 지도록 하자. 굶어 죽게 된 사람에게 참된 원조를 주고자 귀족과 대지주에게 돈을 징수하자. 굶어 죽는 농민에게 자선이나 약간의 선물도 필요 없다. 굶어 죽는 농민에게 매년 지주와 국가에게 바치고 있는 돈을 반환하도록 요구하자. 대표자 인민 위원회와 농민 위원회는 참 원조로부터 굶어 죽는 사람에게 충분하게 줄 수 있다.

 

사회민주노동당은 연대 제도와 토지 처분에 관해 농민을 압박하는 모든 법률에 따른 즉각적인 완전한 폐지를 요구한다. 1903226일에 있었던, 황제 선언은 연대제에 따른 철폐를 약속한다. 이미 철폐에 관한 법률이 발표됐지만, 불충분하다. 그 외에 농민 토지 처분에 관해 농민을 압박하는 모든 법률에 따른 즉각적인 철폐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농민은 연대 제도가 철폐될지라도, 완전히 자유롭게 되지 못하고, 절반은 농노인 상태로 여전히 남게 된다. 농민은 자신의 토지를 처분하는 완전한 자유, 누구에게도 상의하지 않고, 토지를 양도하고, 마음에 맞는 사람에게 팔아 넘기는 완전한 자유를 얻어야만 한다. 모든 귀족·상인·시민은 자유롭게 토지를 처분할 수 있으나, 농민은 그렇지도 못하다. 농민은 갓난애다. 유모처럼 감시하고자 농민에게는 자치청 장관을 붙여둘 필요가 있다. 농민에게는 자신의 분유지 팔기를 금지해야만 한다. 그런 와중에도 분유지를 신용하는 바도 있어서, 농민에게 선을 희망하면서도, 농민에게는 토지를 팔기를 금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인민파와 사회혁명당원은 부화뇌동해서 국내 농민을 약간 노예 상태로 남겨두고는 토지를 팔지 않도록 하는 쪽이 좋다는 걸 인정해버린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자는 말한다. 한낱 허례허식이다. 그건 한낱 말뿐이다. 달콤한 언사에 지나지도 않는다. 사회주의를 쟁취할 때에는, 노동 계급이 부르주아지를 정복할 때에는 모든 토지가 공유되고, 누구라도 토지를 팔 권리는 없어진다. 그러나 그때까지 어떻게 할 건가. 귀족과 상인은 팔 수 있지만, 많은 농민은 팔 수 없다. 귀족과 상인은 자유지만, 농민은 절반인 농노 상태에 있다. 농민은 또 장관에게 허가를 얻어야만 한다. 따라서 달콤한 언사로 가려진 하나의 기만에 불과하다. 귀족과 상인에게 토지를 판다는 걸 허락되고 있는 이상, 그때까지 농민은 자신의 토지를 파는 완전한 권리와 귀족, 상인과 마찬가지로 매우 자유롭게 토지를 처분하는 완전한 권리를 가져야만 한다. 노동 계급이 모든 부르주아지를 정복할 때에는, 노동 계급은 대지주에게서 토지를 몰수한다. 노동하는 사람들은 함께 협력해서, 경작하고, 토지 경영자로는 자유롭게 위임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고, 노동을 경감하고자 모든 기계를 소유하고, 교대로 매일 8시간 때로는 6시간 노동을 하고자, 노동 계급은 대농장에서 협동조합 농업경영을 수립한다. 이전과 같이는 혼자서 경영하기를 바라는 소농은 시장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팔고자, 경작하는 게 아니고, 노동 조합에 따른 빵, 고기, 채소를 제공하는 데 비해 노동자는 무료로 소농에게 농구, 가축, 비료, 의복, 그 외 필요한 모든 걸 제공한다. 금전 때문에도 대경영주와 소경영주 사이에서 투쟁이 생기지 않는다. 남을 위해 일하는 고용 노동은 없어지고, 모든 노동자는 스스로를 위해 일한다. 노동 상 모든 개선과 기계는 노동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동을 경감하고, 생활을 개선하고자 이용된다. 그렇지만 모든 사려 깊은 사람들은, 사회주의가 단번에 실현되는 건 결코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모든 부르주아지와, 모든 사람들과, 모든 정부와 필사적인 투쟁을 감행해야만 한다. 또한 모든 전국에 걸친 모든 도시 노동자와 가난한 농민을 견고한 강철 같은 동맹으로 단결해야만 한다. 위대한 사업이다. 사업을 위해 전 생애를 바쳐도 아깝지 않을 만큼. 그러나 아직은 사회주의를 획득하지 못한 동안에는 대경영주는 늘 금전을 위해 소경영주와 투쟁한다. 과연 대농은 자유롭게 토지를 팔아도 좋으나, 소농은 토지를 팔면 안 되는가. 다시 한 번 되풀이하자. 농민은 갓난애도 아니다. 농민은 누구에게도 지배시키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농민은 매우 제한 없이 귀족과 상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권리를 손에 넣어야만 한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도 있다.

 

"농민 토지는 자신의 것이 아니고, 공동의 것이다. 그러므로 각자는 사회적인 토지를 파는 걸 결코 허락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건 또 하나의 기만이다. 귀족과 상인에게도 농민 같은 단체가 존재하지 않는가. 귀족과 상인은 짝이 되어 함께 토지와 공장을 그리고, 무엇이든 마음에 드는 걸 사지 않는가. 어찌해서 귀족 단체에는 아무런 압박도 가하지 않고, 농민에게는 모든 경찰에 따른 먹지도 못한 걸 제한과 금지를 하려고 기회를 노리는가. 결코 농민은 관리에게 선행을 받은 일이 없다. 다만 구타와 연공과 치욕을 받았을 뿐이다. 농민들은 스스로 모든 일을 스스로 손으로 하지 않는 동안, 완전한 평등에 따른 권리와 완전한 자유를 쟁취하지 않는 동안에는 결코 지위에 따른 개선을 기대할 수는 없다. 아무도 방해할 수는 없다. 자진해서 어떤 구성의, 어떤 형식의 단체라도 조직하는 데 동의하고 있고, 자유롭게 어떤 단체 계약에도 서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어떤 관리라도 농민에 따른 사회적인 문제에 간섭할 게 아니고, 누구라도 농민을 영리하게 만들려고도 않고, 농민을 위해 압박과 금지를 생각하게 해서는 안 된다.

 

사회민주주의자는 또 하나 농민을 위해 중대한 개선을 쟁취하고자 힘쓴다. 농민 귀족의 노예 상태, 농노적인 노예 상태를 즉시 제한하려고 힘쓰고 있다. 세상에 궁핍이 존재하고 있는 동안에는, 궁핍이 제거되지 않은 동안에는, 토지와 공장이 부르주아지 손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에서 주요한 힘이 돈인 동안에는, 사회주의 사회가 건설되지 않는 동안에는, 모든 노예 상태가 제거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은 사회주의가 시행되지 않은 다른 여러 국가에서도 볼 수 없는 특히 나쁜 노예 상태가 국내 농촌에서도 많이 남아 있다. 모든 지주에게는 이익이지만, 모든 농민을 압박하고, 지금 당장에라도 폐지해야만 하고, 또 폐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농노적인 노예 상태가 국내에서도 많이 잔존한다. 그렇다면 어떤 노예 상태를 농노적인 노예 상태라고 부르는가. 모든 농촌 주민은 지주 토지가 농민 토지와 나란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농노해방기에는 농민으로부터 필요한 토지, 경지, 방목지, , 그리고 용수지를 전달했다. 농민은 절단된 토지와 경지, 용수지 없이는 아무런 일을 할 수 없다. 좋거나, 싫거나 불문하고 지주에게 청해서 가축에게 물을 먹이든지, 경지를 달라고 해야만 한다. 그런데도 지주는 자신의 경영을 스스로 하지도 않고, 또 한 푼도 쓰지 않으며, 농민을 혹사시킨다. 농민은 절단된 토지로부터 지주에게 돈을 받지도 않고 노동한다. 자신의 말을 갖고, 지주 토지를 경작하고, 곡식과 벌판 풀을 모으고, 지주를 위해 곡식을 거두고, 어떤 곳에서는 지주 토지에다 자신의 비료를 뿌려주며, 지주의 집에는 옷감과 계란과 그 밖의 모든 음식을 가져다 준다. 농노제 시대와 똑같다. 농노 시대에 농민은 지주 세습지에 거주해서, 해당 지주를 위해 노동하며, 귀족 위원회 손에서 해방된 때에도 농민 손에서 떠난 동일한 토지 때문에 다만 지주를 위해 노동한다. 부역 제도와 완전히 틀리지 않는다. 어떤 지방에서는 농민 자신은 노동을 주인을 위한 노동, 또는 '판쉬나'라고 부른다. 바로 농노적인 노예 상태이다.

 

지주와 귀족 위원회는 농노해방 때에도 이전과 같이 농민을 사역시킬 수 있도록 고의로 농민 분유지를 절단해서, 쐐기처럼 지주 토지를 사이에 넣거나, 농민에게서 닭을 몰수해서 못 기르게 한다거나, 고의로 나쁜 토지에 이전시키거나, 용수지로 가는 길을 지주 토지로 막아버렸다. 농민들로 하여금 고난의 그물 속에 붙잡히도록, 이전과 같이 맨손인 채로 포로가 되도록 고의로 꾸며놓았다. 농촌은 국내에도 얼마나 있는가. 농민이 인근 지주 포로가 되어, 농노 시대와 똑같이 포로 상태에 놓여 있는 곳도 무수하다. 농촌에서는 빈농이나 부농이나, 모두 손 발이 묶여 지주 손에 결박된다. 따라서 빈농은 부농보다 훨씬 더 괴로운 생활을 한다. 부농은 자신의 토지를 소유하고, 주인을 위한 노동에 자신을 대신해서 농업 노동자를 보낸다. 반면에, 빈농은 몸둘 곳도 전혀 없고, 지주는 결박하려고 새끼를 꼰다. 농노 상태에 있는 빈농에게는 흔히 탄식할 시간도 없다. 지주에 대한 노동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다. 모든 빈농과 도시 노동자와 하나의 동맹, 하나의 당에 자유롭게 연합한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곧 단숨에 농노 상태를 폐지할 방법은 과연 없을까. 사회민주당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 두 가지 방법을 농민에게 제공한다. 그러나 모든 농노 상태에서 모든 가난한 농민을 구원한다는 건 오직 사회주의뿐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되풀이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대체로 부자가 힘을 가지고 있으면, 그들은 늘 어떻게 해서든지 빈농을 압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농노 상태를 한 걸음에 결코 폐지할 수 없다. 그러나 빈농과 중농, 부농까지도 압박하는 가장 나쁘고 가장 추한 농노적인 노예 상태를 굳세게 배격해서, 곧 농민을 위해 현실 개선을 쟁취할 수 있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1. 농촌에서 농업 노동자와 가장 가난한 농민, 부농과 지주로부터 신입받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자유롭게 선출된 재판소 설치다.

 

2. 자유롭게 선출된 농민 위원회다. 농민 위원회는 부역 제도 폐지와 농노제 잔재 폐지를 위해 모든 방법을 심의하고, 채택할 권리를 가질 뿐 아니라, 절단된 토지를 압수해서 농민에게 반환하는 권리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자세하게 살펴보자면, 신임을 받은 사람들은 자유롭게 선출된 재판소는 노예 상태에 관한 농민 호소를 모두 심사한다. 재판소는, 지주가 농민 궁핍을 이용해서 너무 비싸게 토지 차지료를 결정한다면, 인하하는 권리를 가진다. 재판소는 농민을 법 이외에도 지출에서 권하는 권리를 가진다. 지주가 여름 노동 절반 액수로부터 겨울에 농민을 고용했다면 재판소는 사건을 심사해서, 정당한 품삯을 사정한다. 물론 관리로 구성되지 않고, 자유롭게 선출된 신임받는 사람들로부터 구성된 농촌 농업 노동자와 가난한 농민으로부터 선출된 사람 수효는 반드시 부농과 지주로부터 선출된 사람 수효보다 적어서도 안 된다. 재판소는 또 노동자와 경영주 간 모든 사건도 해결한다. 노동자와 모든 가난한 농민은 재판소에서 보다 쉽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상호 간 연합을 성취해서, 어떤 사람들을 신용할 수 있고, 진실로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 쪽이 될 수 있는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또 하나 방법은 더욱 중대하다. 각 군에 따른 농업 노동자·빈농·중농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선출된 자유로운 농민 위원회다. 어느 사람이라도 어떤 노예 상태가 압박하는지는 농민 자신보다도 잘 알 수는 없다. 또한 농노적인 노예 상태로부터 생활해 온 지주 죄악을 농민 자신보다 더 잘 폭로할 수는 없다. 농민 위원회는 절단됐던 토지, 초원, 경지, 그 밖의 것이 어떻게 부정한 방법으로 농민 손에서 떠나갔는가를 심의한다. 그래서 토지를 그저 압수할 건가 또는 대지주로 하여금 토지를 구입한 사람에게 배상시킬지를 심의한다. 농민 위원회는 적어도 다수 귀족 지주 위원회가 몰아넣은 고난의 그물로부터 농민들을 해방한다. 농민 위원회는 관리 간섭에서 농민을 구원하고, 농민 자신이 자신의 일을 처리하기를 원하고, 또 처리할 수 있다. 그리고 농민과 궁핍을 상의하고, 참된 가난한 농민 쪽이 되어, 도시 노동자와 동맹을 위해 일어설 수 있는 사람들을 조사하는 등 원조한다. 농민 위원회는 벽촌에서 농민이 자신의 발로 일어서서,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운명을 쥐기 위한 첫걸음이 된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자인 노동자는 농민에게 경고한다.

 

- 어떤 귀족 위원회, 어떤 관리 위원회도 신용하지 말라.

 

- 대표자 전체 인민 회의를 요구하라.

 

- 농민 위원회 창립을 요구하라.

 

- 모든 서적과 신문을 인쇄하는 완전한 자유를 요구하라.

 

모든 사람은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고, 대표자 모든 인민 위원회, 농민 위원회, 신문지상에서 자신의 의견과 희망을 진술하는 권리를 가질 경우, 누가 노동자 쪽이 되고, 누가 부르주아지 쪽이 되는가는 매우 빠르게 알려진다. 매우 많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자신의 진짜 의견을 숨기고 있던 몇몇은 고의로 속였다. 그러나 앞의 경우에는 모든 사람들이 이 사실을 생각하고, 숨길 필요도 없게 되며, 모든 문제를 빠르게 알아갈 수 있다. 이미 부르주아지가 자신의 쪽으로 부농을 끌어당기고 있다. 농노제 노예 상태를 보다 빠르게 폐지할수록, 그 정도가 크면 클수록, 농민이 참된 자유를 보다 많이 획득할수록, 가난한 농민은 더욱 빠르게 서로 연합하고, 부농도 더욱 빠르게 모든 부르주아지와 결합해간다. 그리고 마음대로 결합시키도록 하자. 부농이 결합으로부터 더 강력하게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으나,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같이 연합하면 된다. 동맹으로부터, 가난한 농민과 도시 노동자 동맹은 더욱 헤아릴 수 없을만큼 다수이고, 상대 쪽 10만 명 동맹에 비해 수천 만 명의 동맹이 된다.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쪽으로 중농과 소농을 끌어들이고자 노력한다. 기만하려고 애쓰고, 충동질하고, 분리시키고, 각 개인을 부농으로 만들겠다고 큰소리친다. 부르주아지가 어떤 수단으로, 어떤 기만책으로 중농을 충동질하는지를 이미 말했다. 그러므로 가난한 농민에게 눈을 열어주고, 부르주아지에 대한 도시 노동자와 가난한 농민에게 있어 특수한 동맹을 공고하게 해야만 한다. 농촌 각 주민으로 하여금, 자신의 주위를 잘 살피도록 하자. 부농이 얼마나 자주 영주와 지주에 대해 반대말을 하고 있는지를. 인민에 대한 압박을 호소하고, 영주 토지가 황폐하게 내러벼졌다고 얼마나 죽는 소리를 해대는가. 농민이 토지를 압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떠들어대기를 또 얼마나 즐기는가.

 

부농이 말하는 걸 믿을 수 있는가. 아니다. 빈농들은 인민을 위해 토지를 바라고 있다. 빈농은 이미 토지를 매입하든지, 임차해서 손에 넣었다. 그러나 아직 충분하지는 못하다. 지주에 대항해서 빈농은 오랫동안 부농과 함께 걸어 나갈 수는 없다. 다만 지주에 대항한 첫 단계에서만 부농과 함께할 수 있을 뿐이며, 다음 단계에서는 다른 길을 걷는다. 따라서 처음 한 걸음 뒤에 밟는 중요한 걸음은 분명하게 구별한다. 농촌에서 첫 걸음은 농민의 완전한 해방으로부터 농민이 얻을 완전한 권리와 절단지 반환을 위한 농민 위원회 설치다. 그리고 농촌과 도시에서 밟아야 할 마지막 걸음은 모든 토지와 공장을 모든 지주와 부르주아지로부터 몰수해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해간다. 처음과 마지막 걸음 사이에서 적지 않은 투쟁을 치루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첫 걸음과 마지막 걸음을 혼동하는 사람은 투쟁을 방해하는 사람이며, 자신으로는 알지도 못하고, 빈농의 눈을 가리고 마는 사람이다. 가난한 농민은 처음 한 걸음을 모든 농민과 함께 밟고 나간다. 일부 부농은 퇴각을 시작하고, 100명의 농민 가운데 한 사람은 어떤 노예 상태라도 달갑게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대한 인민 큰 덩어리는 하나를 위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평등권은 모든 농민에게 필요해진다. 지주로부터 노예 상태는 모든 사람의 수족을 결박시킨다. 그러나 마지막 걸음을 모든 농민이 함께 걸어가는 일은 결코 없다. 같은 시기에 모든 부농은 농업 노동자에게 반항하고, 또 일어선다. 거기서 먼저 빈농과 사회민주주의자인 도시 노동자와 공고한 동맹이 필요하다. 농민에게 처음과 마지막 걸음을 함께 밟고, 나갈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농민을 기만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농민 자신 간에 일어나는 위대한 투쟁을 잊어버린다.

 

사회민주주의자는 농민에게 주지육림 같은 이상향을 약속하는 게 아니다. 사회민주주의자는 먼저 모든 노동 계급에 따른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투쟁을 위해, 폭 넓은 모든 국민적 투쟁을 위해서도 완전한 자유를 요구한다. 사회민주주의자는 적지만, 확실한 첫 걸음을 지시한다. 일부 사람들은, 노예 상태 제한과 절단지 반환을 위해 농민 위원회를 창설하려는 요구가 장애와 장벽이 된다고만 생각한다. 그 이상 더 나아가지도 말라고 말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사회민주주의가 희망하는 데 있어 대단히 곡해하고 있다. 노예 상태 개선과 절단지 반환을 위해 농민 위원회를 설립하려는 요구는 장애도 아니다. 요구는 하나의 문이다. 보다 멀리, 넓게 열린 길을 따라 가장 끝까지 가려면, 국내에서도 모든 노역자 대중을 완전하게 해방시키는 데까지 나아가려면, 먼저 이 문에 들어가야만 한다. 농민은 이 문을 빠져 나가지 않고서는, 암흑 속에서, 노예 상태 속에서만 남아 있다. 완전한 권리나, 참된 자유 없이 농민은 자신들 안에서 노동자 동무가 누구고, 적이 누구인가를 철저하게 구분하지도 못한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자는 문을 가리키고, 먼저 모든 공동체, 모든 인민은 문으로 몰려와서, 타파해야만 한다고 말해야만 한다. 그러나 자신을 인민파라거나, 사회혁명당이라고 일컫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도 농민에게 선행하기를 바라고, 떠들고, 부르짖고, 손을 휘두르며 원조를 희망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 문을 보지 않는다. 농민에게 자신의 토지를 자유롭게 지배할 권리를 전혀 줄 필요가 없다고 말할 때마다, 그들은 얼마나 눈이 먼 자들이던가. 그들은 때때로 농민에게 '선행을 하라'는 등 농노 소유자와 같은 말을 한다. 동무로부터는 원조를 많이 얻지도 못한다. 자신이 파괴하지 안흐면 안 될 최초의 문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면, 농민에게 아무리 선행하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도시뿐만 아니라, 농촌 지주, 공동체 내부 부농에 대항해서 자유로운 국민적인 투쟁 길로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도 모른다면, 아무리 사회주의를 위해 노력한들 무엇을 획득할 수 있는가. 따라서 사회민주주의자는 꾸준하게 가장 가까운 최초 관문을 지시한다. 현재 모든 종류로부터 선량한 희망을 말하고, 참된 길을 지시하고, 어떻게든 처음 한 걸음을 밟고 나가는가를 분명하게 깨닫도록 하는 건 곤란하지 않다. 국내 농민은 노예 상태에 떨어져 있어 그로 인해 고생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40년 간이나, 농민의 동지들이 직접 글로 쓰기도 하고, 연설하기도 했다. 지주가 모든 절단지를 빌미로 해서 얼마나 불법적으로 농민을 약탈하고, 혹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국내 사회민주주의자가 나타나기 오래 전부터 농민 모든 동지로부터 많은 책도 씌어졌다. 농민을 곧 구제해야만 하고, 노예 상태에서 미약하게나마 해방해야만 한다는 건 모든 정직한 사람들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경찰과 정부 관리까지도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첫 걸음을 내딛는가. 그리고 먼저 어떤 문을 파괴할 지에 달려 있다.

 

해당 문제에 대해 여러 사람들은 특히 농민에게 선행하기를 원하는 사람 가운데 두 가지 다른 해답을 준다. 모든 농촌 프롤레타리아는 두 가지 해답을 분명하게 깨달아야만 하고, 스스로 확정적인, 강고한 의견을 갖도록 노력한다. 인민파와 사회혁명당원은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먼저 농민 사이에서 모든 종류의 협동조합을 발달시켜야만 한다. 공동체 동맹을 공고하게 한다. 각자 농민에게 자신의 토지를 자유롭게 처분할 권리를 줄 필요는 없다. 공동체로 하여금 권력을 더 많이 갖도록 하자. 국내 모든 토지를 영구하게 공동체 토지로 만들자. 토지가 보다 쉽게 자본에서 노동에 이전되도록 토지 구매에 관한 모든 걸 농민에게 경감하도록 해야만 한다."

 

사회민주주의자는 다른 해답을 내린다.

 

"농민은 먼저 귀족과 상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권리를 예외 없이 쟁취한다. 농민은 자신의 토지를 자유롭게 처분하는 완전한 자유를 가진다. 가장 더러운 노예 상태를 절멸시키고자, 절단지 반환을 위해 농민 위원회를 창설해야만 한다. 공동체 동맹이 필요한 게 아니고, 모든 국내에서 가지각색 농민을 모아놓은 가난한 농민 동맹, 도시 노동자와 농촌 프롤레타리아 동맹이 필요하다. 모든 종류의 협동조합과 공동체 토지 구매는 늘 부농에게만 많은 이익을 주고, 중농을 기만해간다."

 

국내 정부는 농민에 대한 억압을 완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국내 정부는 대단하지도 않은 완화로 그때만을 모면하고, 모든 일을 관리시켜 처리한다. 귀족 위원회는 농민들을 기만하듯이, 관리 위원회도 농민들을 속였기 때문에 농민들은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농민은 자유로운 농민 위원회 선거를 요구해야만 한다. 문제는 관리로부터 예속 완화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농민 자신이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운명을 움켜쥔다는 점에 있다. 처음에 다만 첫 걸음을 내딛도록 하자. 처음에는 다만 가장 나쁜 노예 상태에서 해방하자. 적어도 농민들에게도 자신의 힘을 느끼게 하고, 자유롭게 상의하도록 하여 연합하자. 양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절단된 토지가 흔히 가장 불법적인 농노적 노예 상태에 쓸모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양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장 초보적이고, 가장 정당한 요구가 바로 농민으로 하여금 모든 농노적인 노예 상태 폐지를 위해 관리가 참가하지 않은 농민 위원회를 자유롭게 선출하도록 하자는 걸 안다. 자유로운 농민 위원회에서 사회민주주의자는 모든 힘을 다해, 농촌 프롤레타리아와 도시 프롤레타리아의 특수한 동맹을 공고하게 한다. 사회민주주의자는 농촌 프롤레타리아의 이익을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고, 될 수 있는 대로 빠르게 첫 걸음을 내딛고, 결속해서, 두 걸음, 세 걸음을 내딛으며, 프롤레타리아에 따른 완전한 승리를 쟁취할 때까지 원조한다. 내일 두 번째 걸음을 내딛는 데 있어, 어떤 요구를 내걸을 건지를 지금 당장 말할 수 있는가. 아니다. 결코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부농과 모든 협동조합에 종사하는 많은 교양인들은 내일 어떤 태도를 취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음 날 지주와 결합하지 못하고, 지주 권력을 끝까지 타도할지도 모른다. 훌륭한 일이다. 사회민주주의자에게는 좋은 일이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자는 도시와 농촌 프롤레타리아에게 모든 토지를 지주로부터 압수해서, 자유로운 인민 국가에게 양도하기를 요구하도록 충고한다. 사회민주주의자는 농촌 프롤레타리아가 기만당하지 않도록, 프롤레타리아의 완전한 자유 쟁취라는 종국적인 투쟁을 위해 보다 잘 결합하도록 주의 깊게 살핀다.

 

그러나 다른 양상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다. 정반대의 사태가 일어나리라 예상하는 건 그럴듯할지도 모른다. 부농과 많은 교양인들은 열악한 노예 상태가 일단 완화되고, 배제되자마자, 내일이라도 지주와 결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농촌 프롤레타리아에 반대해서, 모든 농촌 부르주아지는 일어선다. 지주만을 투쟁 대상으로 삼는 건 참으로 우스꽝스럽다. 모든 부르주아지와 싸우고, 먼저 투쟁을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자유와 활동 여지를 요구하고, 투쟁을 용이하도록 하고자, 노동자에 따른 생활고 경감을 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쨌든 가장 중요하고도, 당연한 임무는 농촌 프롤레타리아와 절반인 프롤레타리아, 도시 프롤레타리아 동맹을 공고하도록 한다. 동맹을 위해 인민의 완전한 정치적 자유와 농민의 완전한 평등과 농노적 노예 상태 폐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동맹이 결성되고, 공고하게 될 때에 부르주아지가 중농을 충동질해 온 모든 기만을 보다 쉽게 폭로할 수 있다. 모든 부르주아지에게, 정부의 모든 힘에 대항해서 쉽고 재빠르게 두 걸음, 세 걸음, 그리고 마지막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틀림없이 승리 길로 나아가 속히 모든 노동 대중에 따른 완전한 해방을 쟁취한다.


7. 농촌에서 계급 투쟁

 

계급 투쟁이란 무엇인가. 인민 일부분에 따른 다른 부분에 대한 투쟁이고, 압박 당하는 권리 없는 노역자 대중에 따른 특권 소유자·압박자·기생자에 대한 투쟁이고, 고용 노동자·프롤레타리아 토지 소유자 또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투쟁이다. 국내 농촌에서는 위대한 투쟁이 계속 진행됐고, 지금도 진행된다. 모든 사람들은 투쟁을 인정하지만, 그 의의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농노제가 존재했을 때, 모든 노동 대중은 황제 정부를 방위하고, 보호하고, 지지하고 있던 자신들의 압박자·지주 계급과 싸운다. 농민은 연합할 수도 없었다. 농민은 그 당시에 암흑 세계에 짓눌리고 있었다. 농민은 도시 노동자와 형제 관계에 있지도 못하고, 원조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농민은 할수 있는 한 힘 닿는 데까지 싸웠다. 농민은 정부 박해와 사형 집행·태형을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농노제는 신의 성전으로부터 채용되고, 신으로부터 교지된다.'

 

모든 힘을 다해 설교한 승려를 농민은 믿지 않았다. 농민은 여러 곳에서 봉기하고, 정부는 농민 총 봉기를 두려워해서 양보했다. 농노제는 폐지됐으나, 완전히 폐지된 건 아니었다. 농민은 권리가 전혀 없는 하등 납공 의무만 있는 비천한 신분으로 남겨졌다. 그러므로 농민은 아직도 계속해서 동요한다. 농민은 완전하고, 참된 자유를 찾아가고 있다. 농노제 폐지 뒤로 새로운 계급 투쟁,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간 투쟁이 벌어진다. 부는 더욱 커지고, 철도가 부설되고, 큰 공장이 건설되고, 도시는 더욱 더 인구가 늘어가고, 보다 더 화려해진다. 그러나 소수 사람들은 모든 부를 자신의 손아귀에 쥐고, 인민은 더욱 가난하게 되어, 파산하고, 굶주리고, 남의 밑으로 고용 노동을 하러 떠난다. 도시 노동자는 모든 가난한 사람에게 모든 부자에 대한 새로운 위대한 투쟁을 시작한다. 도시 노동자는 사회민주당 아래에 연합해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가서 위대한 종국적인 투쟁을 준비하고, 모든 인민을 위해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면서, 꾸준하게 굳게 협력하고, 자신의 투쟁을 감행한다. 드디어 농민은 견디지 못한다. 1902년 봄 폴타바, 하르코프 및 기타 여러 지방에서도 농민들은 분개했다. 농민들은 지주에게 몰려가서 지주 곡창을 열어젖히고, 전 재산을 스스로 분배하고, 농민이 씨 뿌리고 거두었고, 또한 지주가 집어간 곡식을 굶주린 사람들에게 주고, 토지를 새롭게 분배하도록 요구했다. 농민은 극도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보다 좋은 토지를 찾아갔다. 농민은 투쟁하지 않고, 굶어 죽기보다는 압제자와 투쟁으로 죽는 쪽이 더 낫다고 결심했다. 그렇지만 농민은 보다 좋은 토지를 쟁취하지는 못했었다


황제 정부는 농민들을 일반 폭동자, 약탈자라고 선고했다. 황제 정부는 적을 대하듯이 군대를 보냈다. 그래서 농민은 패했다. 농민들은 총에 맞아죽고, 짐승같이 몸을 찢기고, 죽을 정도로 얻어맞았다. 황제 정부는 농민들을, 아무리 터키인이라도 결코 자신의 적인 기독교도로부터 그럴 정도로 잔인하게 하지는 않을 만큼 학대했다. 황제의 사자인 지사는 실제로 사형 집행인같이 누구보다 많이 혹독하게 폭동을 자행했다. 병사는 농민의 처와 딸에게 능욕을 가했다. 모든 걸 다한 뒤에 농민을 관리 재판으로부터 판결하고, 농민에게는 지주를 위해 80만 루블을 내도록 했다. 수치스럽고, 비밀스러운 고문 재판에서 변호인은, 황제 사자, 오보렌스크 지사, 그 외 황제 종복이 어떻게 농민을 학대하고, 괴롭혔는지를 말하는 건 허락되지도 않았다. 농민은 옳은 사업을 위해 싸웠다. 국내 노동 계급은 황제의 종복들로부터 총에 맞거나, 얻어맞아 죽은 수난자들을 회고하며, 늘 존경한다. 이 수난자들은 노동 대중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싸운 전사였다. 농민은 참패했다. 그러나 더욱 일어난다. 최초의 패배로부터 의기가 꺾이지는 않는다. 자각한 노동자는 도시와 농촌에 따른 노동 대중에게 농민 투쟁에 대해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알도록 하고, 보다 희망 있는 새로웉 투쟁을 분비하고자 전력을 다한다. 계급 의식을 가진 노동자는 농민이 패배하고, 농민 봉기가 진압된 이유는 무엇이고, 황제와 황제 부하에게 농민과 노동자가 승리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하는지를 농민에게 분명히 보여주고자 모든 힘을 다하여 애쓴다. 농민 봉기가 진압된 이유는 무지하고, 의식 없는 대중 봉기, 곧 일정하고, 명백한 정치적 요구, 국가 기구를 바꾸라는 요구가 없는 봉기였기 때문이다. 또한 농민 봉기는 준비가 없는 까닭에 진압됐다. 그리고 농민 봉기는 농촌 프롤레타리아가 도시 프롤레타리아와 연합하지 못한 까닭에 진압됐다. 최초 농민 봉기가 실패한 세 가지 원인이다.

 

봉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목적 의식을 가지고, 준비를 잘 갖추고, 모든 국내를 장악하고, 또 도시 노동자와 동맹을 맺어야만 한다. 그리고 도시 노동자 투쟁에서 한 걸음, 한 걸음은, 사회민주주의 책자와 신문 하나 하나는, 농촌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계급 의식이 있는 노동자 연설 한 마디, 한 마디는 봉기를 자주 일어나도록 하고, 승리로 끝마칠 수 있도록 가까이 오도록 한다. 농민은 더욱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말 없이 또 반항 없이 죽기를 원하지는 않기 때문에, 스스로 봉기해갔다. 농민들은 모든 약탈과 압박과 고통을 너무나도 심하게 받아왔기 때문에, 또 황제의 은총에 대한 나쁜 평판의 진상을 전혀 의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굶주린 사람들, 일생 동안 남을 위해 노동한 사람들, 씨 뿌리고 또 거둬들인 사람들, 그러나 지금 지주 곡식 창고 옆에서 굶어 죽게 된 사람들, 곡식을 분배하는 게 정당하고 믿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부자, 곧 지주와 부르주아지들이 보다 좋은 토지와 공장을 움켜쥐고, 인민을 노동시키고 있다는 점을 농민은 잊어버리고 만다. 농민은 부자 계급의 옹호를 위해 승려가 설교할 뿐만이 아니라, 많은 관리와 병사를 가진 황제 정부도 또한 황제의 옹호를 위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잊어버리고 만다. 황제 정부는 이 점을 농민에게 깨닫도록 한다. 황제 정부는 짐승같이 참혹하게 국가 권력이 무엇이고, 누구에게 도움을 주고, 누구를 옹호하는지를 농민에게 알린다.

 

다만 될 수 있는 대로, 교훈을 농민에게 상기시키면 된다. 농민들은 국가 기구 전환이 왜 필요하고, 정치적 자유가 왜 필요한지를 쉽게 깨달을 수 있다. 매우 많은 국민은 이 점을 깨달으며, 매우 무식하지 않은, 사려 깊은 모든 농민이 무엇보다 먼저 쟁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 가지 중요한 요구를 안다면, 농민 봉기는 계획 없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첫째 요구는, 전제적 지배를 탈피하고, 국내에서도 인민 지배 확립을 위해 대표자 모든 인민 회의를 소집한다.

 

둘째 요구는, 모든 사람들과 각 분야 살마에게 도서와 신문을 인쇄할 완전한 자유를 갖도록 한다.

 

셋째 요구는, 농민과 다른 신분과 완전한 평등을 법률로 인정하고, 최우선으로 모든 농노적인 노예 상태 폐지를 위해 선거로부터 농민 위원회를 건설한다.

 

세 가지는 사회민주주의자에게 중요하고, 기본적인 요구다. 그리고 요구를 깨닫고, 인민 자유를 위한 투쟁을 어디서부터 시작할지를 깨닫는 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농민은 요구를 깨달을 때, 비로소 빠르게 장구하고, 꾸준하고, 굳세게 투쟁을 준비하고, 또 혼자가 아니라 도시 노동자, 사회민주주의자와 함께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금방 깨닫는다. 자각한 농민 개개인과 노동자 개개인으로 하여금, 곁에서 가장 총명하고, 가장 장래성 있고, 가장 용감한 동지들을 모으도록 하자. 모든 사람들은 어떤 투쟁을 수행하고, 무엇을 요구할지를 깨닫고자, 사회민주주의자는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설명하도록 노력하게 하자. 자각한 사회민주주의자로부터 서서히 주의 깊게, 그러나 꾸준하게 자신의 학설을 농민에게 가르치고,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소책자를 읽도록 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모임에서부터 소책자를 설명하도록 하자. 그러나 서적으로부터 사회민주주의 학설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말고, 주위에서 생기고 있는 모든 압박과 부정을, 각각의 실례로부터 겨를을 포착하고,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민주주의 학설은 모든 압박에 대한 투쟁, 모든 약탈에 대한 투쟁, 모든 부정에 대한 투쟁에 대한 학설이다. 오로지 압박 원인을 알고, 자신의 전 생애에 있어 어떤 경우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싸우는 사람만이 참된 사회민주주의자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가. 자각한 사회민주주의자는 자신의 도시와 농촌에서 함께 모여, 모든 노동 계급에게 이익을 가져오고자 어떻게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 결정해야만 한다.

 

한 두 가지 경우로는, 사회민주주의자인 노동자가 자신의 농촌에 찾아왔을 때, 모든 농촌은 거미줄에 걸린 파리와 같이 인근에 사는 지주에게 손발이 잡혀 일생을 노예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노예 상태에서 어디로도 도망갈 곳도 없다. 가장 총명하고, 사려 깊으며, 장래성 있는 농민을 선택해서, 농민에게 왜 노예 상태에 빠져 있는가를 설명하고, 또한 지주가 어떻게 농민을 기만해서, 귀족 위원회에서 어떻게 농민을 착취하는지를 폭로하고, 부자의 힘과 황제 정부의 지지를 널리 알리고, 더 나아가 사회민주주의자인 노동자 요구에 대해 말해야만 한다. 농민이 지극히 간단한 모든 기구를 이해할 경우에는 지주에게 일제히 공격할지, 아니면 최초의 중요한 요구, 도시에서는 노동자가 자신의 요구를 공장주에게 제출할 지를 협력해서 잘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주로부터 큰 촌락이나, 몇몇 마을이 노예 상태에 놓여 있다면,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부근 사회민주당 위원회에서 안내문을 입수하는 게 가장 좋다. 사회민주당 위원회는 안내문 내용 안에서 처음부터 농민은 어떤 노예 상태로 고통을 받는가. 제일 먼저 무엇을 요구하는가. 구체적으로 말하면, 토지 임차료를 더 저렴하게 하고, 겨울철 고용 때에도 실제 가격으로 계산하고, 절반 가격으로 계산하지 말고, 가축이 밭을 밟거나, 곡식을 먹을 때 생긴 손해에 대해 배상을 요구하지도 말고, 다른 여러 가지 요구에 대해 압박하지도 말기를 적어놓는다. 안내문으로부터 문자를 읽을 줄 알게 된 농민은 문제를 잘 깨닫고 나서부터, 문제를 읽을 줄 모르는 농민에게 내용을 잘 설명해준다. 그렇게 되면 농민은, 사회민주주의는 같은 쪽이 되어 일어서고, 또 사회민주주의자는 모든 약탈을 배격한다는 걸 분명하게 알아간다. 농민은 결속해서 일어선다면, 어떠한 경감이 아무리 적더라도, 경감임을 틀림없다는 걸 알고, 쟁취할 수 있는가 하고, 모든 국가에서 어떠한 큰 경감을 사회민주주의자인 도시 노동자와 위대한 공동 투쟁으로부터 쟁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깨닫는다. 농민은 더욱 열심히 투쟁을 준비해가고, 장래성 있는 투사를 어떻게 찾아내고, 자신의 요구를 위해 어떻게 협력하고 일어서는지를 배우게 된다. 도시 노동자가 하고 있듯이, 파업을 일으키는 데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실제로 농촌에서는 더욱 곤란하지만, 때때로 실행할 수는 있다. 다른 여러 국가에서는 지주와 돈 많은 농민은 다수의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농번기에 노동 대중이 성공적으로 파업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 빈농이 파업을 준비하고, 모든 사람은 일반적인 요구에 대해 이미 오래 전부터 동의하고, 요구가 안내서 안에서 설명되든지, 또는 모임에서 충분히 토론된 경우에는 모든 사람들이 결속해서, 일어선다. 따라서 지주는 양보하거나, 약간의 약탈로부터 겨우 생활을 유지한다. 파업의 결속을 굳게 하고, 원기 왕성한 시기에 일어난다면, 지주와 군대를 가진 관청이더라도, 어떠한 수단으로든 기만하기는 곤란해진다. 시일이 경과해서, 지주에게 파산이 닥쳐올 때에 지주는 속이 수그러든다. 물론 새 사업이다. 새 사업은 처음에는 잘 되지 않는다. 도시 노동자도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단결된 투쟁을 하지는 못했다. 또 협력해서 어떤 요구를 제출할지를 알지 못하고, 단순히 기계를 부수고, 공장을 파괴했을 뿐이다. 노동자는 결속해서 일어선다고 하더라도, 먼저 한 걸음 내디디면, 힘든 상태 경감 이상은 쟁취하지 못하더라도, 인민은 협력적 공격에 익숙해져서, 더욱 더 결정적인 투쟁을 준비한다는 걸 깨닫는다. 따라서 농민은 가장 흉포한 약탈자에게 어떻게 공격을 가하고, 결속해서 경감을 어떤 방법으로 요구하고, 어떻게 자유를 위한 위대한 투쟁을 서서히, 억세게 전국적으로 준비해야 하는가를 깨닫는다. 자각한 노동자와 농민 수효는 더욱 늘어가고, 농촌 사회민주주의자 동맹은 더욱 더 강고해서, 지주로부터 노예 상태, 승려로부터 납공 경찰의 포학, 경찰의 압박이 있을 때마다 더욱 더 인민의 눈을 뜨고, 인민을 결속한 맞서는 힘에 대해 국가 제도를 변혁하는 게 필연적이라는 사상에도 익숙해진다.

 

소책자 맨 처음에는 도시 노동자는 길거리, 광장으로 나가서 모든 사람 앞에 공공연하게 자유를 요구하고,

 

'전제 정부를 타도하라!'

 

라고 깃대에 쓰고, 또한 구호를 부르짖는다고 말했었다. 도시 노동자 대중은 다만 길거리에서 부르짖고, 행진하기 위해서만 아니라, 위대한 결정적인 투쟁을 위해 일어서는 날이, 노동자는 한 사람같이

 

"우리는 투쟁이라는 파도 속에서 죽든지, 그렇지 않으면 자유를 획득한다."

 

라고 부르짖는 날이, 투쟁이라는 파도 속에 죽고 넘어질 100명을 대신해서, 새로운 보다 더 확고한 1000명의 투사는 일어서는 날이 속히 다가온다. 농민도 모든 국내 도처에서부터 일어나서, 도시 노동자를 원조하고, 농민과 노동자 자유를 위해 최후까지 싸운다. 어떤 황제 쪽 연대도 대항할 수 없다. 승리는 노동 대중 머리 위에 온다. 그리고 노동 계급은 모든 노역자를 속박으로부터, 해방하고자 드넓은 길을 걸어 나간다. 노동 계급은 사회주의 쟁취를 위한 투쟁에서 자유를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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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1905년, 러시아에서도 큰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바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요구가 급격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단순한 정치적 요구는 여전히 개혁 군주라고 평가받는 차르 황제로부터 인민들은 통제되고, 검열됐다는 점을 상기해보는 사람들은 드물다. 그러나 부르주아지의 역사는 투쟁의 요구가 절실한 사람들을 쉽게 제거하고, 삭제해버린다. 과연 조선이라고 다르던가. 조선 황제는 더 큰 자본에 편승한 일본 제국주의 세력과 타협해갔고, 조선의 기나긴 역사를 제국주의의 부상에 힘입도록 타국에게 굴복시켜갔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시키고, 또 본질을 훼손시키는 수정주의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가난한 농민에게」는 당시 정부의 재정 상태와 가난한 인민과 농민들의 처지를 알 수 있는 가장 절박한 요구를 담아낸 역작이다. 지방에서부터 착취된 농민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조차 없었고, 의회에는 노동자와 민중을 대표할 대표자마저 없었다. 특히 유럽에서는 의회 제도가 정착되면서부터, 독일에서는 제한적인 투표권만으로도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국회로 진출시켰다. 그에 따라, 의회 제도에서는 노동자와 민중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저마다 국회에서도 발언권을 얻을 수 있었고, 또한 이에 따른 사람들의 요구들도 증가함에 따라 모두가 의회로부터 정치를 제안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게 됐다. 물론 농노제는 폐지됐고, 8시간 노동 제도는 보장됐다. 그러나 제한적인 국회의 정치적 자유는 여전히 소수의 자본가 수중에서만 작동하고 있다. 곧 인민 다수가 제안하고 있는 정치적인 의제를 더욱 축소시키고 있다는 말이다.  


여전히 부르주아지들과도 같은 유산 계급들은 이마저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여, 자본주의를 더욱 빠르게 가속화시키고, 노동 계급과 무산 계급들에게 더욱 노동이라는 무거운 짐들을 부과하고 있다. 임금으로 먹고 사는 노동자를 착취하면서, 또 다시 무산자로 만들어버린다. 쓸모가 없어지면, 다시 자본의 노예로 삼는다. 역사는 노동 계급과 무산 계급들에게는 노동이라는 무거운 무게를 이들의 가족들에게도 꾸준하게, 그리고 지금도 더욱 가중시킨다. 도시 노동자는 자신의 살림을 잃어가지만, 농촌 사회는 각종 개발 및 재난로 인해 더욱 취약해졌다. 그렇다면 토지 제도는 어떠한가. 여전히 소수 독점과 축적된 재산을 이제는 더욱 부풀리고자, 더욱 더 자본가는 더 넓은 토지를 챙기면서 독점으로 소유하고 있고, 그들의 어린 자녀들에게 이전시키며, 노동자들과 무산자들의 거주지마저 괴롭히고 있다. 이를 두고 과연 더 좋은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의문이 생겨나게 된 지점이다. 


이 책은 1903년에 쓰였고, 국내에서 처음 번역된 건 1946년 정도이다. 100년이 넘는 기간이 흘러버렸다. 그러나 여전히 계급의 논리는 지워지지도 않고, 더욱 더 강해지고, 유효해진다. 8.15이 다가오고, 또 기념하는 지금도, 또 국가적으로, 정부 차원에서는 많은 발전과 눈 부신 도약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온통 거짓말과 술수일 뿐이다. 가난한 인민들의 삶의 형태는 비슷해졌고, 또 그림자 속에 갇혀, 숨 죽인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은 산재로 죽어가거나, 그마저도 없는 무산자들은 삶을 버틸 수 없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렇다면 계급 투쟁이라는 존재 자체가 아예 사라져버렸다는 말인가. 


독자 여러분들에게, 아무도 대변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무려 100년이 지난, 「가난한 농민들에게」는 과연 그저 먼 과거의 책일 뿐인가. 아니면, 적어도 여전히 유효한 부분이 있는가. 그러나 세상이 좋아졌다고 느낀다면, 이제는 선택할 수도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 책이 남기는 교훈은 어쩌면 더 이상 먼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더욱 임박하고 있는 계급 투쟁으로부터 전투를 치르고, 희생된 노동자와 무산자들에게도 앞날을 준비 하는 데 있어 더욱 필요하고, 또 의미 있는 일이다. 자본의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늘 재산을 지킬 준비를 마치는 자본가가 우리의 삶을 충분히 보장해주는가. 또 과연 안전하던가. 그렇지도 않다면, 우리 외침은 끝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이 말은 굶주린 짐승과도 같이 더 큰 한 방을 노리는 자본주의 앞에서는 도무지 끝날 수 없다. 

 

"만국 무산자들이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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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제국주의의 역사적 위치

 

우리는 지금까지 제국주의의 경제적 본질이 독점자본주의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제국주의의 역사적 위치는 바로 이 본질에 의해 규정된다. 왜냐하면 자유경쟁을 토대로 해서 바로 그 자유경쟁으로부터 성장한 독점이란, 자본주의 체제에서 보다 높은 사회·경제 체제로 이행하는 과도적 형태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히 지금 살펴보고 있는 시대를 특징짓는 독점의 네 가지 유형 또는 독점자본주의의 네 가지 주요 양태들을 유심히 보아야 한다.

 

첫째, 독점은 매우 높은 발전 단계에 도달한 생산의 집중으로부터 성장했다. 그것은 자본가들의 독점적인 연합인 카르텔, 신디케이트, 트러스트들이다. 우리는 이것들이 현대의 경제생활에서 얼마나 거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이미 살펴보았다. 20세기 초에 이 독점조직들은 선진국들에서 완벽하게 패권을 차지했다. 카르텔로 가는 최초의 걸음을 먼저 내디뎠던 것은 보호관세율이 높은 나라들(독일, 미국)이었지만, 자유무역 체제인 영국도 그보다 조금 늦었을 뿐 생산의 집중에서 독점조직들이 탄생한다는 기본 현상을 똑같이 보여주었다.

 

둘째, 독점은 가장 중요한 원료산지들, 그것도 특히 자본주의 사회의 기초산업이자 카르텔화가 가장 많이 진전된 산업들인 석탄산업과 철강산업의 원료산지들에 대한 약탈을 강화시켰다. 가장 중요한 원료산지들에 대한 독점적인 소유는 대자본의 힘을 무섭게 증대시켰으며, 카르텔화된 산업들과 카르텔화되지 않은 산업들 사이의 모순을 격화시켰다.

 

셋째, 독점은 은행들로부터 성장했다. 은행은 공손한 중개업체에서 금융자본의 독점자본가로 변신했다. 가장 선진적인 자본주의 국가들 어디에서나 세 개에서 다섯 개 정도의 가장 큰 은행들이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의 '인적 융합'을 실현시키고, 전국의 자본과 화폐소득의 대부분을 이루는 수십억의 돈에 대한 처리권을 자신들의 수중에 집중시키고 있다. 현대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경제기관과 정치기관에 예외 없이 종속관계의 촘촘한 그물망을 처놓은 금융과두제야말로 독점의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다.

 

넷째, 독점은 식민정책으로부터 성장했다. 금융자본은 식민정책의 많은 '오래된' 동기들에 대한 원료산지 확보·자본수출·교역을 유리하게 하고 이권과 독점이윤을 높이기 위한 세력권 확장의 동기를 부여하고, 궁극적으로 경제성 있는 영토 일반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을 추가했다. 1876년에 그랬던 것처럼, 유럽 열강들이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10분의 1을 그 식민지로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을 때는 식민정책은 토지를 비독점적으로, 말하자면 '선착순'으로 차지하는 방식으로 펼쳐질 수 있었다. 하지만 (1910년 무렵) 아프리카의 10분의 9가 정복되고 전세계가 분할되었을 때, 독점적인 식민지 보유의 시대가, 따라서 세계의 분할과 재분할을 위한 특히 침예한 투쟁의 시대가 오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독점자본주의가 자본주의의 모든 모순들을 어느 정도로 격화시켰는가는 이미 알려진 대로다. 물가상승과 카르텔의 강압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이러한 모순들의 격화는 세계 금융자본의 최종적인 승리와 함께 시작된 역사적 이행기의 가장 강력한 추진력이다.

 

독점, 과두제, 자유가 아닌 지배를 향한 열망, 가장 부유하고 힘센 한 줌도 안 되는 민족들이 점점 더 많은 약소민족들을 착취하는 것 모두가, 제국주의를 기생적 자본주의 또는 부패하고 있는 자본주의로 규정하게 하는 현저한 특징들을 발생시켰다. '금리생활자 국가', 고리대금업자 국가의 형성이 제국주의의 경향을 가운데 하나로서 점점 더 뚜렷하게 나타나며 그 나라의 부르주아는 점점 더 자본수출과 '이자놀이'로 생활하게 된다. 이러한 부패 경향이 자본주의의 급속한 발전을 방해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개별 산업분야들, 개별 부르주아 계층들, 개별 국가들에서 이러한 경향들이 다양한 정도의 차이를 두고 드러나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자본주의는 전보다 훨씬 더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지만, 이 발전은 일반적으로 더욱 불균등하게 이루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이러한 불균등성은 자본력이 가장 강한 나라들(영국)의 부패에서 특히 잘 나타나고 있다.

 

독일의 급속한 경제적 발전에 관해서 독일의 대은행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저술가 리서는 이렇게 말한다. "이전 시대(1848~70)의 그리 느리지 않았던 진보와 이 시대(1870~1905)에 독일 경제 전체 및 특히 은행이 진보하는 속도의 관계는 거의, 지나간 옛 좋은 시절의 우편마차의 속도와 오늘날의 자동차의 속도한가롭게 걷고 있는 보행자에게도, 자동차에 타고 있는 사람 자신에게도 위험할 정도의의 관계와 같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성장한 금융자본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빠르게 성장했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좀 더 '평온한' 식민지 보유로 넘어가고 싶어하기 마련인데, 그것은 단지 평화롭지만은 않은 수단을 통해 더욱 부유한 국민들로부터 빼앗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지난 수십 년간 독일보다 훨씬 급속히 경제가 성장했고, 바로 그 때문에 최근 미국 자본주의의 기생적 특징들이 특히 명백하게 드러났다. 다른 한편으로 공화국인 미국의 부르주아와 군주국인 일본이나 독일의 부르주아를 비교해보면, 그 가장 큰 정치적인 차이점이 제국주의 시대에는 극히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는 그런 차이점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모든 경우에 문제가 되는 것은 일정하게 기생적인 특성을 가진 부르주아이기 때문이다.

 

많은 산업분야들 가운데 한 분야, 많은 나라들 가운데 한 나라의 자본가들이 높은 독점이윤을 획득한 결과 그들은 노동자의 특정 계층을 매수할 수 있는 경제적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비록 일시적이고 매우 소수에 불과할지라도 그 층을 나머지 모든 노동자들에 맞서 해당 산업과 국가의 부르주아 편으로 끌어당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 분할로 인해 제국주의 국민들 사이의 대립이 격화된 것은 이러한 지향을 강화한다. 이렇게 해서 제국주의와 기회주의의 유착이 만들어진다. 이 유착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빨리, 명확하게 영국에서 나타났는데, 그것은 몇몇 제국주의적인 발전의 특징들이 여기에서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빠르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몇몇 저술가들, 예를 들어 L. 마르토프는 제국주의와 노동운동 내 기회주의가 유착되어 있다는 사실을오늘날에는 매우 뚜렷하게 눈에 띄는 사실을피하고 싶은 나머지 다음과 같은 종류의 (카우츠키와 위스망스(Huysmans)²⁴⁵ 등의) '공식적 낙관주의'에 근거한 주장을 펼친다. 만일 기회주의를 강화시키는 것이 선진자본주의라면, 또는 기회주의로 기우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 바로 가장 임금이 높은 노동자들이라면,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대의는 절망적이 될 것이다. 이런 '낙관주의'가 뜻하는 바에 대해 현혹되면 안 된다. 그것은 기회주의에 있어서 낙관주의이고, 기회주의를 은폐하는데 유용한 낙관주의인 것이다. 사실 기회주의의 발전이 특별히 빠르고, 특별히 추악하다는 것이 결코 그것에게 굳건한 승리를 보장해주지는 않는 다. 건강한 육체에서 악성 종양의 빠른 성장은 단지 종양이 터져서 그로부터 육체가 해방되는 시기를 앞당길 뿐이다. 이 점에서 가장 위험한 자들은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이 기회주의에 대한 투쟁과 긴밀하게 결합되지 않는다면 공허한 거짓 문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이다.

 

제국주의의 경제적 본질에 관해서 지금까지 이 글에서 서술한 모든 것으로부터, 제국주의는 이행기의 자본주의,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사멸하고 있는 자본주의로 규정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에 관해서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최근의 자본주의를 묘사할 때 '연결⁴⁶이나 '고립성의 배제' 등과 같은 단어를 흔히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교훈적이다. 예를 들어 은행은 "기능이나 발전 과정에 있어서 순수한 사적 경영 기업은 아니며, 갈수록 사경영의 규제 영역을 넘어 성장하고 있다⁴⁷와 같은 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문장을 썼던 바로 그 리서는 대단히 진지한 얼굴로 '사회화'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의 '예언''실현되지 않았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연결'이라는 단어는 대체 무엇을 보여주는가? 그것은 우리의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과정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포착한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그 관찰자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것은 피상적이고, 우연적이며, 혼란스러운 것을 그대로 모사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관찰자가 소재에 압도되어 그것의 의미와 중요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지분 소유권 및 사적소유자들의 관계들은 '우연히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연결의 배후에 있는 것, 그 토대를 이루는 것은 바로 변화하고 있는 사회적 생산관계다. 대기업이 거대기업이 되고, 대량의 수치를 정밀하게 계산해서 수천만 주민에게 필요한 원료를 3분의 24분의 3, 아니 전부를 계획적으로 조직하게 될 때, 그 원료를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방법으로 수백 또는 수천 베르스타²⁴⁸ 떨어져 있는 적재적소의 생산지점에 수송할 수 있을 때, 수많은 종류의 완제품이 제조되기까지 이런 일련의 하나의 중심부에서 관리될 때, 그러하여 예를 들어 미국의 석유 트러스트가 미국이나 독일에 석유를 공급하고 판매할 때처럼 제조된 생산물을 단일한 계획에 따라 수천만, 수억 소비자들에게 분배할 수 있게 될 때가 바로 단순한 '연결'이 아니라 생산의 사회화가 이루어진 때다. 이때가 되면 사적 경제나 사적 소유의 관계들은 더 이상 그 내용에 어울리지 않는 껍데기, 제때 인위적으로 제거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부패해버리고 마는 껍데기, (최악의 경우에 기회주의라는 종양의 치료가 지연된다면) 오랫동안 부패한 상태로 머물러 있을 수도 있지만 역시 결국 저절로 떨어져 나가고 마는 껍데기가 되는 것이다.

 

독일 제국주의를 열광적으로 숭배하는 슐체-게베르니츠는 이렇게 외치고 있다.

 

"독일 은행을 관리하는 일이 한 다스 정도의 사람들에게 맡겨졌다면, 그들의 활동은 오늘날 국민 복지를 주관하는 장관들 대다수의 활동보다도 중요하다." (여기에서 은행가, 장관, 실업가, 금리생활자들을 서로 연결하는 '연결'은 새까맣게 잊혀져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발전 경향을 끝까지 파고들어보자. 전국의 화폐자본은 은행들로 모이고, 은행들은 스스로 카르텔로 결합하며, 전국의 투자자본은 유가증권의 형태가 된다. 이때 바로 생시몽(Saint-Simon)²⁴⁹의 다음과 같은 천재적인 예견이 실현되는 것이다. '경제관계들이 통일된 규제 없이 전개된다는 사실에서 유해한 오늘날 생산의 무정부 상태는, 생산의 조직화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생산은 서로 독립되어 있는 타인들의 경제적 욕구를 알지 못하는 고립된 기업가들이 아니라, 특정 공공기관의 감독을 받게 된다. 보다 높은 관점으로 사회경제의 광범위한 영역을 조망할 수 있는 중앙의 관리위원회가 전체 사회에 유의하게 사회경제를 규제하고, 생산수단을 적임자들에게 배분하여 위임하며, 특히 생산과 소비가 늘 조화를 이루도록 관리할 것이다. 그런데 이미 경제활동의 일정한 조직화가 그 기능의 일부로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는 기관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은행이다. 우리가 생시몽의 이 말을 완전히 실현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에 있다. 이것은 마르크스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지만, 형태만 조금 다를 뿐인 마르크스주의다."²⁵⁰

 

이는 마르크스에 대한 '멋진 반박'이지만, 마르크스의 정확한 과학적 분석으로부터, 비록 천재적이긴 하지만 단지 추측에 지나지 않는 생시몽의 추측으로 퇴보한 것이다. 그리고 추측은 추측일 뿐이라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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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제국주의 비판

 

우리는 제국주의 비판이라는 것을 그 단어의 넓은 의미에서, 즉 사회의 여러 계급들이 자신들의 일반적인 이데올로기의 연장선상에서 제국주의 정책에 취하는 태도로 이해한다.

 

한편에서는 몇몇의 손에 집중된 거대 규모의 금융자본이 대단히 광범위하고 촘촘한 관계 및 유착의 그물망을 펼쳐 줌소자본가뿐 아니라 가장 영세한 자본가와 소자영업자 대중들까지 자신에게 종속시키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를 분할하고 다른 나라들을 지배하기 위해 다른 국민국가의 금융자본가 집단들과 벌이는 투쟁이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모든 유산계급을 예외 없이 제국주의의 편으로 넘어가게 만든다. 그것의 전망에 대한 '총체적인' 열광, 제국주의에 대한 광기 어린 옹호, 그것에 대한 가능한 모든 미화 등이 바로 이 시대의 상징이다.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는 노동자계급에게도 스며들고 있다. 중국의 만리장성도 노동자계급을 다른 계급과 떨어뜨려놓지는 못한다. 독일의 이른바 '사회민주주의' 당의 현 지도자들에게 붙여진 '사회제국주의자'란 이름은 너무나도 안성맞춤인데, 다시 말해 그들은 입으로는 사회주의자, 행동으로는 제국주의자인 것이다. 홉슨은 이미 1902년에, 영국에는 기회주의적인 '페이비언 협회'²¹에 속한 '페이비언 제국주의자들'이 존재한다고 말한 바 있다.²¹

 

부르주아 학자와 평론가들은 대개 약간은 위장한 모습으로 제국주의 옹호자로 등장한다. 이들은 제국주의의 완전한 지배와 그 깊은 근원들을 은폐하고, 세론들과 지엽적인 문제들을 전면에 내세우려 애쓰며, 본질적인 문제로부터 트러스트나 은행에 대한 경찰의 감독 등과 같은 전혀 부질없는 '개혁'안들로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려고 노력한다. 제국주의의 근본적인 속성들을 개혁한다는 생각이 어리석다는 것을 감히 인정할만큼 뻔뻔하고 노골적인 제국주의자는 훨씬 드물게 나타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세계경제논총²¹이라는 간행물을 통해 독일 제국주의자들은 식민지, 당연한 일이지만 특히 독일 식민지가 아닌 곳에서의 민족해방운동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그들은 인도에서의 동요와 저항들, 나탈(남아프리카)²¹과 네덜란드령 동인도²¹에서의 운동 등을 언급한다. 그 중 한 사람은 외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의 여러 민족 대표들이 1910628~30일에 개최한 종속국·종속인종 대회에 대한 영문 보고서²¹를 읽고 평론을 쓰면서, 이 대회에서 발표된 연설들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이들은 제국주의와 투쟁해야 한다, 지배국들은 종속민족의 자치권을 인정해야 한다, 국제재판소는 강대국과 약소민족 간에 체결된 조약의 집행을 감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대회²²는 이러한 순박한 소망들을 표현하는 것에서 더 멀리 나아가지 않는다. 제국주의가 현재 형태의 자본주의와 땔 수 없이 결합돼 있다는 인식은 전혀 흔적도 보이지 않으며, 따라서(!!) 일부 특별히 추악한 지나친 행위들에 대한 반대에 국한되지 않는 한 제국주의와의 직접적인 투쟁은 가망이 없다는 인식도 마찬가지로 찾기 어렵다."²²¹ 제국주의의 토대들을 개량주의적으로 수정한다는 것은 기만이며 "순박한 희망"이기 때문에, 억압받는 민족의 부르주아적 대표자들이 "더 멀리" 나아가지 않기 때문에, 따라서 억압하는 민족의 부르주아 대표자들은 제국주의 앞에 "과학성"이라는 허울로 위장된 굴종으로 "더 멀리" 뒷걸음질 친다. 이 또한 '논리'가 아닌가!

 

제국주의의 토대들을 개량주의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제국주의가 낳은 모순들이 더욱 침예해지고 심화되는 쪽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 완화되는 쪽으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들은 제국주의 비판의 근본 문제들이다.

 

제국주의의 정치적 특성은 금융과두제의 억압 및 자유경쟁의 소멸과 결합되어 모든 면에서 반동화가 나타나고 민족의 억압이 강화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20세기 초의 거의 모든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제국주의에 대한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적인 반대파가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카우츠키 및 광범위하고 국제적인 카우츠키주의 조류가 마르크스주의와 단절한 지점은 카우츠키가 소부르주아적·개량주의적이며 경제적으로는 근본적으로 반동적인 이 반대파와 자신을 구별할 생각도 능력도 없다는 것 뿐 아니라 오히려 이 반대파와 실천적으로 융합했다는 바로 그 사실에 있다.

 

1898년 스페인과의 제국주의 전쟁은 미국에서 '반제국주의자'라는 반대파를 탄생시켰다. 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최후의 모히칸족²²²들은 이 전쟁을 '범죄'로 규정하고, 다른 나라의 영토를 합병하는 것은 위헌으로 간주했으며, 필리핀 국민들의 지도자 아기날도²²³(처음에는 그에게 조국의 해방을 약속했다가, 나중에 미국 군대를 상륙시켜 필리핀을 합병했다)에게 저지른 행위를 '배외주의자들의 배신 행위'라고 선언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링컨의 말을 인용했다. "백인이 자기 자신을 통치할 때, 그것은 자치다. 하지만 백인이 자기 자신과 함께 다른 사람들도 통치할 때, 그것은 이미 자치가 아니다. 그것은 폭정이다."²²하지만 모든 비판들은 제국주의가 트러스트들과, 즉 자본주의의 토대들과 땔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두려워하고, 대규모 자본주의와 그 발전이 낳은 세력들에 가담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한 "순박한 희망"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제국주의 비판에서 홉슨의 기본적인 입장도 이와 대동소이하다. 홉슨은 '제국주의의 필연성'을 부정하고 주민들의 '소비력을 높일(자본주의하에서!) 필요성을 호소하며 카우츠키를 예견하게 했다. 소부르주아적 관점에서 제국주의, 지나치게 강력해진 은행, 금융과두제 등을 비판하고 있는 인물들로는 우리가 몇 차례 인용한 바 있는 아가트, A. 란스부르크, L. 에쉬베게가 있으며, 프랑스 저술가로는 1900년에 나온영국과 제국주의L'Angleterre et l'impérialisme라는 성의 없는 책을 쓴 빅토르 베라르(Victor Bérard)²²가 있다. 이들 모두는 마르크스주의를 전혀 참칭하지 않으면서도 제국주의에 대비하여 자유경쟁과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갈등과 전쟁을 유발할 바그다드 철도선 계획을 비난하며, 평화라는 "순박한 희망"을 표명하는 등의 일을 하고 있다. 국제 유가증권 통계학자 A. 네이마르크에 이르러서는 '국제' 유가증권의 가치를 수천 억 프랑으로 계산하고, 1912년에 이렇게 외쳤다. "평화가 깨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 이런 엄청난 금액에도 불구하고 감히 전쟁을 시작하리라고?"²²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이런 순박함은 놀라울 게 없다. 게다가 그렇게 순박하게 보이면서 제국주의 시대의 평화를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들에게 유리하다. 하지만 카우츠키가 1914, 1915, 1916년에 그와 똑같은 부르주아 개량주의의 입장에서 서서 평화에 대해 (제국주의자, 사이비 사회주의자, 사회평화주의자들)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고 단언했을 때, 그의 마르크스주의에는 대체 무엇이 남아 있었는가? 제국주의의 모순들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해부 대신, 그 모순들을 회피하고 변명하려 드는 개량주의적인 "순박한 희망"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 카우츠키가 제국주의에 대해 가하는 경제학적 비판의 전형적인 사례 하나를 가져와보자. 그는 1872년과 1912년의 이집트에 대한 영국의 수출입 수치를 끌어온다. 그 수출입은 영국의 전체 수출입보다 적게 성장했다는 사실이 판명된다. 그러하여 카우츠키는 이렇게 추리한다. "영국이 이집트를 군사적으로 점령하지 않았다면 오직 경제적 요인의 힘만으로 이집트와 그 나라의 무역²²이 그만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가정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러한 [자본의] 팽창 열망은" "제국주의의 폭력적 방법들이 아니라 평화적인 민주주의에 의해 가장 잘 촉진된다."²²

 

카우츠키의 러시아인 똘마니(이자 러시아의 사회배외주의 옹호자) 스펙타토르(Spectator)²²씨가 몇백 번이나 되풀이해서 노래하고 있는 이런 주장이야말로 제국주의에 대한 카우츠키 식 비판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주장을 더욱 상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힐퍼딩의 글귀를 인용해보자. 카우츠키는 19154월을 비롯해 몇 차례나 걸쳐 이 인용문의 결론에 "모든 사회주의 이론가들이 만장일치로 동의했다"고 공언한 바 있다.

 

힐퍼딩은 이렇게 썼다. "프롤레타리아가 선진 자본주의 정책에 대해 자유무역과 국가 배척시대의 옛날 정책으로 대항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금융자본의 경제정책인 제국주의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대응이 자유무역일 수는 없으며 오직 사회주의일 뿐이다. 프롤레타리아 정책의 목표는 자유경쟁의 재건이라는 이제는 반동적인 이상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타도에 의한 경쟁의 완전한 지양이다.“

 

카우츠키는 이 금융자본의 시대에 "반동적인 이상", "평화적인 민주주의", "오직 경제적 요인의 힘만"을 옹호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와 완전히 단절했다. 왜냐하면 그런 이상은 객관적으로 보면 독점자본주의를 독점적이지 않은 자본주의로 되돌리자는 것이며, 개량주의적 기반이기 때문이다.

 

군사점령이 없었다면, 제국주의가 없었다면, 금융자본이 없었다면 이집트(또는 다른 식민지나 반식민지)와의 무역은 더욱 강하게 "성장했을 것이다." 이건 무슨 뜻인가? 만약 독점이 일반이, 그리고 금융자본에 의한 '유착'이나 억압(다시 말해 역시 독점), 또 일부 국가들의 독점적인 식민지 소유가 자유경쟁을 제한하지 않았다면 자본주의가 더 빠르게 발전했을 것이라는 뜻인가?

 

카우츠키의 주장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없으나, "의미"야말로 무의미한 것이다. 그것이 옳다고, 즉 독점이 전혀 없었다면 자유경쟁이 자본주의와 무역을 더 빠르게 발전시켰을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나 무역과 자본주의가 더 빠르게 발전할수록 독점을 낳는 생산과 자본의 집중도 더 강해진다. 그리고 독점은 이미 탄생했다. 바로 자유경쟁 속에서! 만일 독점이 지금에 와서 발전을 지연시키고 있다 해도 여전히 자유경쟁을 지지하는 논거가 되진 못한다. 자유경쟁은 독점을 낳은 후에는 더 이상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카우츠키의 주장을 어떻게 돌려보아도 그 속에는 반동성과 부르주아적인 개량주의 외에 아무것도 없다.

 

스펙타토르가 말하는 것처럼 영국 식민지들과 영국의 무역이 현재 다른 나라들과 무역보다 느리게 성장하고 있다고 이 논리를 바꿔 말한다 해도, 이 역시 카우츠키를 구원하진 못한다. 왜냐하면 영국을 타도한 것 역시 단지 다른 나라들(미국·독일)의 독점이고, 또 제국주의일 뿐이기 때문이다. 카르텔이 수출할 수 있는 생산물들만을 보호하기 위한 새롭고 독특한 형태의 보호관세를 낳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엥겔스는 자본론3권에서 이를 언급했다.²³¹) 여기에서 '혈압 수출', 영국 사람들이 말하는 '덤핑'제도 역시 카르텔과 금융자본의 특징이라는 사실 또한 잘 알려져 있다. 카르텔은 국내에서 그 생산물을 높은 독점가격으로 판매하는 반면, 해외에서는 경쟁자들을 몰락시키고 자기의 생산을 최대한 확장하는 등을 위해 혈압에 물건을 팔아치운다. 만약 독일이 영국보다 영국 식민지와 무역을 더 빠르게 발전시키고 있다면 그것은 독일 제국주의가 영국 제국주의보다 더 젊고 더 강력하며 더 조직적이고 뛰어나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 결코 자유무역의 '우월함'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무역이 보호무역과, 식민지의 종속상태와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제국주의가 다른 제국주의와, 한 독점조직이 다른 독점조직과, 한 금융자본이 다른 금융자본과 싸우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 제국주의에 대해 독일 제국주의가 지닌 우월함은 식민지 국경선이나 보호관세라는 장벽보다 더 강력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로부터 자유무역과 '평화적인 민주주의'를 비롯하는 '논거'를 끌고 오는 것은 진부한 일인데다, 제국주의의 기본 특성과 특징들을 망각하고, 마르크스주의를 소시민적인 개량주의로 바꿔치기하는 것이다.

 

카우츠키와 똑같이 제국주의를 소시민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부르주아 경제학자 A. 란스부르크가 무역통계 수치를 훨씬 과학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그는 임의로 고른 한 나라와 식민지들만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한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와 (1) 그것에 금융적으로 종속된, 즉 그로부터 돈을 빌린 나라들에 대한 수출과 (2) 금융적으로 독립된 나라들에 대한 수출을 비교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국가 1889 1908 증가율

 

독일에 금융적으로 종속된 나라들 루마니아 48.2 70.8 + 47%

포르투갈 19.0 32.8 + 73%

아르헨티나 60.7 147.0 + 143%

브라질 48.7 84.5 + 73%

칠레 28.3 52.4 + 85%

터키 29.9 64.0 + 114%

합계 234.8 451.5 +92%

 

독일에 금융적으로 종속되지 않은 나라들 영국 651.8 997.4 + 53%

프랑스 210.2 437.9 + 108%

벨기에 137.2 322.8 + 135%

스위스 177.4 401.1 + 127%

오스트레일리아 21.2 64.5 + 205%

네덜란드령 동인도 8.8 40.7 + 363%

합계 1,206.6 2,264.4 + 87%

 

란스부르크는 합계를 내지 않았는데, 그런 까닭에 기묘하게도 만일 이 수치들이 뭔가 증명하는 게 있다면 자기 자신의 주장에 상반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금융적으로 종속된 나라들로의 수출은 금융적으로 종속되어 있지 않은 나라들로의 수출보다 많은 일지만 그래도 더 빨리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만일'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는데, 란스부르크의 통계도 결코 완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수출과 차관의 연관성을 추적하면서 란스부르크는 이렇게 적었다.

 

"1890~1년 독일 은행들은 루마니아에 차관을 제공하기로 했는데, 그것은 이미 몇 년 전에 선불로 지급을 끝낸 것이었다. 차관은 주로 독일에서 철도 자재를 구입하는 데 사용되었다. 1891년 루마니아로 독일이 수출한 금액은 5,500만 마르크였다. 다음해 그것은 3,940만 마르크로 떨어졌고, 그 수준에서 오르락내리락하다가 1900년에는 2,540만 마르크까지 떨어졌다. 최근 몇 년 동안에 와서야 새로운 차관 두 개를 받은 덕분에 1891년 수준을 회복했다.

 

포르투갈로의 독일의 수출은 1888~9년의 차관의 결과 2,110만 마르크(1890)로 증가했다. 그리고는 그후 2년간 1,620만 마르크와 740만 마르크로 떨어졌고, 1903년에야 간신히 원래의 수준에 도달했다.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무역수치는 더욱 명확하다. 1888년과 1890년의 차관의 결과 아르헨티나로의 독일의 수출은 1889년에 6,070만 마르크에 달했다. 2년 뒤의 수출은 그 3분의 1도 안 되는 1,860만 마르크에 불과했다. 1901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1889년의 최고점을 넘어섰지만, 이는 새로운 국제와 지방체 발행, 발전소 건설을 위한 자금 조달과 기타 신용 제공에 결부된 것이었다.

 

칠레에 대한 수출은 1889년의 차관의 결과, 4,520만 마르크(1892)로 증가했지만, 1년 뒤엔 2,250만 마르크로 떨어졌다.

 

1906년 독일 은행들로부터 새로운 차관을 제공받기로 한 뒤 수출은 4,870만 마르크(1902)로 증가했지만 1908년에 또 다시 5,240만 마르크로 떨어졌다."²³²

 

란스부르크는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익살스러운 도덕을 끄집어낸다. 차관과 연관된 수출이 얼마나 허약하고 불균형한 것인가, 국내 산업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조화롭게' 발전시키는 대신 자본을 해외로 수출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 일인가, 크루프 사가 대외차관을 얻어내려고 수백만이나 되는 뇌물을 쓰고 있다니 얼마나 '비싼' 것인가 등. 하지만 사실들은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수출의 증대는 부르주아 도덕 따위는 야랑곳하지 않고 일거양득의 이득을 거두는, 즉 첫째로 차관 자체에서 이익을 챙기고, 둘째로 그것이 크루프 사의 제품이나 철강 신디케이트의 철도 자재 등을 구입하는 데 사용될 때 같은 차관에서 또 이익을 챙기는 금융자본의 사기 술책들과 직결되어 있다고 말이다.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나는 란스부르크의 통계가 결코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반드시 인용했어야 했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카우츠키와 스펙타토르의 통계보다 과학적이기 때문이고, 란스부르크가 이 문제에 대해 올바른 접근법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 등에서 금융자본의 중요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수출과 금융가들의 술책과 연관성, 수출과 특히 카르텔 생산물의 판로와 연관성 등을 하나씩 따로 구분해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단순히 식민지들 일반과 식민지 아닌 곳들을, 하나의 제국주의와 다른 제국주의를, 하나의 반식민지 또는 식민지(이집트)와 나머지 모든 나라들을 비교하는 것은 바로 그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고 은폐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국주의에 대한 카우츠키의 이론적 비판은 마르크스주의와는 전혀 무관하며, 단지 기회주의 및 사회배외주의에 대해 화해와 통일을 주장하는 설교의 서론으로나 쓰고 있을 뿐인데, 왜냐하면 이 비판이 제국주의의 그 가장 깊고 근본적인 모순들을 회피하고 은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독점들 및 그것과 나란히 존재하는 자유경쟁 사이의 모순, 금융자본의 거대한 '영업 활동'(및 막대한 이윤)과 자유시장에서의 '정직한' 거래 사이의 모순, 한편에 있는 카르텔 및 트러스트들과 다른 한편에 있는 카르텔화되지 않은 산업들 사이의 모순 등을 말이다.

 

카우츠키가 창조한 저 악명 높은 '초제국주의' 이론도 완전히 똑같은 반동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해 그가 1915년에 한 주장을 홉슨의 1902년 주장과 비교해보라.

 

카우츠키: "현재의 제국주의 정책이 새로운 초제국주의 정책으로 교체되고, 국민적인 금융자본들이 서로 경쟁을 일삼는 자리에 세계를 공동으로 착취하는 금융자본의 국제연합이 들어설 가능성은 없는가? 어쨌든 이러한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를 생각할 수는 있는 일이다. 그것이 실현될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하기 위한 충분한 전제조건들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²³³

 

홉슨: "이렇게 각개가 미개한 속령들을 종자로 거느리는 몇몇 거대 연방제국들에 펼쳐진 기독교권역(Christendom)은 많은 사람들의 눈에 현 추세의 가장 합당한 발전이자, 국제제국주의(inter-Imperialism)라는 확실한 토대 위에서 영구적인 평화에 대한 최선의 희망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카우츠키가 초제국주의(ultra-imperialism)라고 불렀던 것을 홉슨은 그보다 13년 전에 국제제국주의(inter-imperialism)라고 불렀던 것이다. 한 라틴어 접두사를 다른 라틴어 접두사로 바꾼 것에 의해 새로운 현학적인 단어를 창조한 것을 빼면 카우츠키가 이룩한 '과학적' 사고의 진보란 홉슨이 본질적으로 영국 사제들의 위선이라고 기술한 것을 마르크스주의라고 참칭한 데 있을 뿐이다. 보어 전쟁 이후 이 지체 높으신 분들에게 남아프리카의 전장들에서 많은 사망자들을 잃은데다, 영국 금융가들에게 더 높은 이윤을 보장해주기 위해 인상된 세금까지 부담했던 영국 소시민과 노동자들을 위로하는 더 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제국주의가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며, 영구적인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국제(또는 초)제국주의가 머지않았다는 것보다 더 좋은 위로가 어디에 있을 수 있겠는가? 영국의 사제들이나 상냥한 카우츠키의 선한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그의 '이론'이 지닌 객관적인, 즉 현실적인 사회적 의미는 단 하나밖에 없다. 대중의 관심을 현 시대의 침예한 모순들과 침예한 문제들로부터 돌려 뭔가 새로운 것처럼 보이는 미래의 '초제국주의'라는 거짓 전망으로 향하게 함으로써 대중에게 자본주의 아래에서도 영구적인 평화가 가능하다는 희망으로 가장 반동적인 위안을 주는 것. 카우츠키의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있는 것은 오직 대중에 대한 기만뿐이다.

 

익히 알려져 있는 반박의 여지가 없는 사실들하고만 비교해봐도, 카우츠키가 독일 노동자(및 모든 나라의 노동자)에게 주입하려 해쓰는 전망이 얼마나 거짓된 것인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인도, 인도차이나, 중국을 예로 들어보자. 6~7억 인구를 가진 이 세 식민지·반식민지 나라들²³이 영국, 프랑스, 일본, 미국 등 몇몇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금융자본에게 착취당하고 있음을 잘 알려져 있다. 이 제국주의 국가들이 방금 거론된 아시아 국가들에서 영토, 이익, 세력권을 지키거나 확대하기 위해서로 편을 갈라 동맹을 맺는다고 가정해보자. 그것은 '국제제국주의' 또는 '초제국주의' 동맹이 될 것이다. 그럼 이번에는 모든 제국주의 열강들이 앞서 말한 아시아 지역들의 '평화적인' 분할을 위해 동맹을 맺는다고 가정해보자. 이것은 '국제적으로 연합한 금융자본'의 동맹일 것이다. 이러한 동맹의 실패들은 20세기 역사에서도, 예를 들면 중국에 대한 열강들의 태도에서 나타나고 있다.²³묻건대, 자본주의가 그대로 유지되는 조건(다시 말해 카우츠키가 전제로 삼고 있는 바로 그런 조건)에서 이런 동맹들이 일시적이지 않을 것이라든가, 그것들이 모든 종류의, 모든 가능한 형태의 마찰·분쟁·투쟁들을 제거할 것이라고 상정하는 것이 과연 '생각할 수' 있는 일인가?

 

이렇게 물었을 때 그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하에서 세력권·이익·식민지 등을 분할하는 데 있어 분할 참가국들의 국력, 즉 전반적인 경제력·재정력·군사력 등을 고려하는 것 외에 다른 근거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분할 참가국들의 국력은 불균등하게 변화한다. 자본주의하에서 개개의 기업·트러스트·산업부문·국가들이 균등하게 발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반세기 전 독일의 자본주의적 국력은 당시 영국과 비교해보면 독일이 비참할 정도로 미미했다. 러시아와 비교할 때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10년이나 20년 후 제국주의 열강의 세력관계가 여전히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생각할 수' 있는 일인가? 결코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영국의 사제들이나 독일의 '마르크스주의자' 카우츠키의 진부한 소시민적 환상 속이 아닌, 자본주의의 현실 속에 있는 '국제제국주의' 또는 '초제국주의' 동맹은그 동맹들이 어떠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즉 어떤 제국주의 연합에 대한 다른 제국주의 연합이라는 형태는, 모든 제국주의 열강의 전반적 동맹이라는 형태는불가피하게 전쟁과 전쟁 사이의 '참은 휴지기'에 불과하다. 평화적인 동맹이 전쟁을 준비하고 전쟁에서 다시 평화적인 동맹이 성장하며 양자가 서로에게 원인이 되는 바, 세계 경제와 세계 정치의 제국주의적 유착과 상호관계라는 같은 토양에서 평화적인 투쟁과 비평화적인 투쟁의 형태가 교대로 발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총명하기 짝이 없는 카우츠키는 노동자를 달래고 그들을 부르주아지의 편으로 넘어간 사회배외주의자들과 화해시키기 위해 단일한 사슬의 한 고리를 다른 고리로부터 떼어내는 것을 한다. 즉 중국의 '평정'을 위해 모든 열강들이 맺은 오늘의 평화적인 (그리고 초제국주의적인, 아니 초초제국주의적인) 동맹(의화단 봉기에 대한 진압²³을 기억하라)을 내일의 평화적이지 않은 분쟁에서 떼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쟁은 예를 들어 터키 등의 분할을 위한 모레의 '평화적인' 전반적인 동맹을 준비한다. 제국주의 평화의 시기들과 제국주의 전쟁의 시기들 사이의 생생한 연관성을 보여주는 대신 카우츠키는 노동자들에게 생기 없는 추상을 제시하여 그들의 생기 없는 지도자들과 화해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미국인 힐(Hill)²³유럽의 국제적 발전에서 외교의 역사 A History of the Diplomacy in the International Development of Europe라는 저서의 서문에서 현대 외교사의 시기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있다. (1) 혁명의 시기 (2) 입헌 운동의 시기 (3) 오늘날의 "상업 제국주의" 시기.²³그리고 어떤 저술가는 1870년 이후 영국이 취한 '세계 정책'의 역사를 네 시기로 나눈다. (1) 1차 아시아 시기(러시아가 중앙아시아에서 인도로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한 투쟁) (2) 아프리카 시기(대략 1885~1907): 아프리카 분할을 둘러싼 프랑스와의 투쟁(프랑스와 전쟁 직전까지 31898년 파쇼다 사건²³) (3) 2차 아시아 시기(러시아에 대항한 일본과의 조약²⁴⁰) (4) '유럽' 시기(주로 독일과 대립¹ 이미 1905년에 '은행가' 리서는 "정치적 전초전이 금융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다"라고 쓰면서,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금융자본이 어떻게 그 나라들의 정치적 동맹을 준비했는지, 페르시아 때문에 독일과 영국의 투쟁이 어떻게 전개되었고, 중국에 대한 차관 때문에 모든 유럽 자본들의 투쟁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등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제국주의 분쟁들과 땔 수 없이 결부돼 있는 '초제국주의' 평화 동맹의 생생한 현실인 것이다.

 

필연적으로 제국주의에 대한 미화로 변질될 수밖에 없는 제국주의의 가장 깊은 모순들에 대한 카우츠키의 은폐는 제국주의의 정치적 특성들에 대한 이 저자 자신의 비판에도 흠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제국주의는 금융자본과 독점의 시대이며, 그것은 어디에서나 자유가 아니라 지배를 열망한다. 어떤 정치 체제에서나 모든 면에서 반동화가 나타나고 정치 영역에서 모순들이 극단적으로 격화되는 것은 바로 그런 경향들의 결과다. 특히 격화되는 것은 민족역압과 합병에 대한, 곧 민족의 자주성을 침해하려는 열망이다(왜냐하면 합병은 바로 민족자결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힐퍼딩은 제국주의와 격화되는 민족역압 간의 연관성을 올바르게 지적하고 있다. "새로 개방된 나라들에서는 자본주의의 수입이 여러 가지 모순을 심화시키며, (민족의식을 자각하게 된) 국민들 사이에 침입자에 대한 저항을 증대시키는데, 이 저항은 외국자본에 해로운 정책의 형태를 쉽게 취할 수 있다. 구래의 사회관계는 완전히 변혁되고, 수천 년간 '역사 없는 민족'을 묶어놓은 농업의 속박은 타파되며, 이들 민족이 자본주의적인 소용돌이 안으로 편입되어간다. 자본주의 자체가 점차 피정복 민족에게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제공한다. 이들은 경제적·문화적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한때는 유럽 민족들의 최고의 승고한 목표였던 통일된 민족국가를 자신의 목표로 삼게 된다. 이 민족자주 운동은 유럽 자본의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유망한 착취 지역에서 유럽 자본을 위협하게 되며, 유럽 자본은 권력수단을 끊임없이 확대하는 것에 의해서만 지배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우리는 새로 개방된 나라들뿐 아니라 오래된 나라들에서도 제국주의는 합병으로, 민족역압의 강화로, 따라서 저항의 격화로 나아간다는 점을 덧붙여야만 한다. 카우츠키는 제국주의에 의한 정치적 반동에 반대하면서도 제국주의 시대에 기회주의자들과 화합이 불가능하다는 특히 중요해진 문제는 불분명하게 남겨두고 있다. 그는 합병에 반대하면서도 기회주의자들에게 전혀 불쾌감을 주지 않을, 그들이 받아들이기 가장 쉬운 형태로 반대한다. 그는 독일 청중에게 직접 호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당면 문제, 예를 들면 알자스-로렌²⁴⁴은 독일이 합병한 땅이라는 점은 얼버무려버린다. 카우츠키의 이런 '사고의 편협성'을 가늠하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만약 어떤 일본인이 미국인들의 필리핀 합병을 비난한다고 가정해보자. 분명, 그것이 필리핀을 합병하려는 자기 자신의 욕망에서가 아니라 모든 합병에 대한 증오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일본인의 합병 반대 '투쟁'은 그가 일본의 조선 합병에 반대하여 들고 일어설 경우에만, 일본으로부터 조선이 분리할 자유를 요구하는 경우에만 비로소 성실하고 정치적으로 정치한 것으로 고려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제국주의에 대한 카우츠키의 이론적 분석과 제국주의에 대한 경제적·정치적 비판은 가장 근본적인 모순들을 은폐하고 완화하려는 마르크스주의와는 절대로 화해할 수 없는 정신과 유럽 노동운동에서 무너져내리고 있는 기회주의와 화합을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유지하려는 열망으로 시종일관 점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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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기생성과 부패

 

이제 제국주의의 또 하나의 매우 중요한 측면을 살펴볼 터데, 이것은 지금까지 대부분의 논의들에서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이다. 마르크스주의자 힐퍼딩의 결점 가운데 하나가 이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홉슨보다 한 걸음 뒤쳐졌다는 것이다. 그 측면은 바로 제국주의의 특성인 기생성이다.

 

우리가 앞에서 본 것처럼 제국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경제적 토대는 독점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독점인즉, 다시 말해 자본주의로부터 자라나와 자본주의의 일반적 환경인 상품생산과 경쟁 속에 존재하며, 이 일반적인 환경과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모순관계에 있는 독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다른 모든 독점과 마찬가지로 필연적으로 정체되고 부패하는 경향을 낳는다. 가령 잠시 동안이라도 독점가격이 설정되면 기술의 진보를 비롯해 모든 진보, 발전 운동을 자극하는 동기들은 어느 정도 사라지며, 더 나아가서는 기술의 진보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킬 수도 있는 경제적 가능성까지 나타난다. 그런 예로, 미국에서 오웬스(Owens)¹²라는 사람이 병 제조 기계를 발명했던 사건을 들 수 있다. 그 기계는 병 생산에 혁명을 불러올 수 있을 만큼 획기적인 것이었으나, 독일의 병 제조업체 카르텔은 오웬스의 특허를 사서 묵히며, 그 기계가 상용화되는 것을 막았다. 물론 자본주의에서, 독점이 경쟁을 세계 시장에서 완전히, 아주 오랫동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덧붙여 말하자면 초제국주의 이론이 엉터리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술개선의 도입을 통해 생산비를 낮추고 이윤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변화를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독점의 고유한 특성인 정체되고 부패하는 경향은 계속 작용하며, 개별 산업분야나 개별 국가들에서 일정 시기 동안 우위를 점한다.

 

특히 광대하고 풍요롭거나, 입지가 좋은 식민지들에 대한 독점적인 보유도 이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게다가 제국주의란 몇몇 나라들에 화폐자본이 대량으로 축적되는 것이고, 그 금액은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유가증권으로 천억~1,500억에 달한다. 그 결과 금리생활자, , '이자놀이'로 생활하는 사람들, 어떠한 기업에도 전혀 참가하지 않는 사람들, 빈둥대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계급,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계층이 이례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제국주의의 가장 본질적인 경제적 기초 중 하나인 자본수출은 금리생활자층의 생산으로부터의 이 완전한 단절을 한층 더 강화시키고, 몇몇 해외 나라들과 식민지의 노동을 착취하는 것에 의해서 생활하는 나라 전체에 기생성이라는 각인을 새긴다.

 

홉슨은 이렇게 썼다. "1893년에 영국이 해외에 투자한 자본은 영국 본토의 전체 부의 약 15퍼센트에 해당한다."¹³ 1915년에 이르러 이 자본이 약 두 배 반으로 증대했다는 것을 상기하라. 홉슨은 다시 말하고 있다. "납세자에게는 값비싼 희생을 치르게 하는 반면, 제조업자와 무역업자에게는 별로 대단치도 않은 가치를 주는 침략적 제국주의는 …… 자기 자본을 투자할 곳을 찾는 자본가들(영어로 이 개념은 인베스터, 즉 투자가, 금리생활자라는 한 단어로 표현된다)에게는 커다란 이익의 원천이 된다. …… 영국이 외국 및 식민지 전체와의 교역 곧 수출입 무역으로부터 얻는 연간 수수료 소득은 기펜(Giffen) ¹⁹⁴에 의하면 1899년의 경우에 총 무역 거래액 8억 파운드의 2.5퍼센트인 1,800만 파운드(17천만 루블)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 금액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영국의 침략적 제국주의를 설명해줄 수 없다.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9천만에서 1억 파운드의 소득, '투자된' 자본에서 나오는 소득, 금리소득자의 소득이다.

 

세계 최고의 '상업' 국가에서 금리생활자의 소득이 외국무역에서 얻는 소득의 다섯 배에 이른다! 여기에 제국주의와 제국주의적 기생성의 본질이 있다.

 

그래서 금리생활자국가(Rentnerstaat) 또는 고리대국가라는 개념이 제국주의에 대한 경제학 문헌들에서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세계는 한 줌밖에 안 되는 고리대국가들과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채무자 국가들로 나뉘었다. 슐체-게베르니츠는 이렇게 쓰고 있다. "해외투자에서 우선순위는 정치적으로 종속되어 있거나 동맹관계에 있는 나라들에 주어진다. 영국은 이집트, 일본, 중국, 남아메리카에 돈을 빌려준다. 그 나라 함대는 여기서 비상 시 집달리 역할을 한다. 정치적 힘은 채무자의 반란에서 영국을 보호한다."¹⁹⁵ 자르토리우스 폰 발터스하우젠(Sartorius von Waltershausen)¹⁹⁶해외투자의 국민경제 체계 Das Volkswirtschaftliche System라는 저작에서 네덜란드를 "금리생활 국가"의 표본으로 제시하고 지금은 영국과 프랑스도 그렇게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⁹⁷ 실더는 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스위스 등 다섯 개 공업 국가들은 "명확한 채권국"이라고 생각한다. 네덜란드를 여기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단지 이 나라가 "공업적으로 덜 발전⁹⁸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메리카대륙에 대해서만 채권국이다.

 

슐체-게베르니츠는 이렇게 쓰고 있다. "영국은 점차 공업국에서 채권국으로 바뀌고 있다. 공업 생산 및 공산품 수출의 절대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국민경제 전체에서 이자, 배당금, 증권발행, 중개수수료, 투기에서 나오는 소득이 차지하는 상대적인 중요성이 증대하고 있다. 내 생각으로는 이러한 사실이야말로 제국주의적 호황의 경제적 토대다. 채권자와 채무자의 유착관계는 구매자와 판매자의 관계보다 더 오래 지속된다."¹⁹⁹

 

독일에 대해서는 베를린의 잡지 디 방크의 발행인인 A. 란스부르크가 1911금리생활국가 독일Germany-a Rentier State란 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독일 사람들은 프랑스인들에게 나타나는 금리생활자화 경향을 곧잘 비웃지만, 이때 잊고 있는 것은 중간계급에 관한 한 독일의 상황도 프랑스와 같 수록 비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²⁰⁰

 

금리생활자 국가는 부패하고 있는 기생적인 자본주의 국가다. 그리고 이런 사정은 일반적으로 그 나라의 전체 사회·정치 정세에, 또 특히 노동운동 내의 두 가지 기본 경향에 반영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을 가능한 한 명확히 보여주기 위해서 증인으로 누구보다도 '신뢰할 수 있는' 홉슨에게 말하도록 해 보자. 이는 홉슨이 '마르크스주의 정통'을 선호한다는 혐의를 누구에게도 받지 않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영국인이라 식민지와 금융자본, 제국주의에 대한 경험이 가장 풍부한 이 나라의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홉슨은 보어 전쟁의 생생한 인상을 기초로 하여 제국주의와 '금융업자'의 이해의 유착, 청부와 납입 등으로부터의 그들의 이윤의 증대를 서술하면서 이렇게 썼다. "이처럼 명백한 기생적 정책을 지휘하고 있는 자들은 자본가들이지만, 한편에서는 그와 똑같은 동기가 특수한 노동자 층에서도 작용되고 있다. 여러 도시들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산업은 정부의 고용이나 하청에 의존하고 있다. 금속공업이나 조선공업의 중심지에서 제국주의가 추진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사실에 기인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 저서의 견해에 따르면, 다음의 두 가지 상황이 오래된 제국의 힘을 약화시켰다. (1) "경제적인 기생성"(2) 종속민족들로 이루어진 군대 편성이다. "첫째로 경제적 기생의 습관이 있는데, 지배 국가는 이것에 의해 자국의 지배계급을 부유하게 만드는 한편, 하층계급을 매수하여 순종시키기 위해서 그 영토, 식민지 및 속령을 이용해왔다." 내가 여기에 덧붙이고자 하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그런 매수가 경제적으로 가능하려면 높은 독점이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상황에 대해서 홉슨은 이렇게 쓰고 있다. "제국주의의 맹목성을 나타내는 가장 이상한 징후 중의 하나는 영국, 프랑스, 그리고 기타 제국주의 국가들이 거리낌 없는 무관심 속에서 이 같은 위험한 의존 정책에 착수했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영국이 가장 앞서가고 있다. 우리가 인도제국을 얻기 위해 써왔던 대부분의 전투는 원주민들에 의해 치러진 것이다. 인도의 경우 대규모의 상비군은 호남의 이집트에서처럼 영국인 지휘관들의 지휘 아래 있었다. 우리가 아프리카 영토와 관련하여 벌였던 전투는 그 남부 지방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우리를 위해 원주민들이 치러낸 것이다."

 

중국 분할의 전망은 홉슨에게 다음과 같은 경제적 평가를 내리게 한다. "그때²¹에는 서유럽의 보다 많은 부분이, 남부잉글랜드의 시골 지역, 리비에라, 이탈리아와 스위스의 관광 지역이나 저택 지역이 이미 보인 바 있는 외양이나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즉 극동으로부터 배당금이나 연금을 빼내오는 부유한 귀족의 소집단과, 이보다는 약간 큰 집단으로서 그에 따르는 전문직의 종자와 상인, 그리고 운송업 및 보다 소모되기 쉬운 상품생산의 최종 단계에 종사하는 개인적인 하인과 노동자의 대집단이 그것이다. 주요한 기간산업은 모조리 사라지고 주요 식량과 공업제품은 아시아와 아프리카로부터 공물로 유입될 것이다." "우리는, 서구 여러 국가들의 보다 큰 동맹, 세계 문명의 대의를 촉진하기는커녕 서양의 기생주의라는 거대한 위험을 불러들일 수도 있는 유럽열강의 연방화, 그 상층계급은 아시아와 아프리카로부터 막대한 공물을 끌어들여 그것을 가지고 길들여진 가신들의 대군이 가신들은 더 이상 농업이나 제조업 같은 주요 산업에 종사하지 않고 새로운 금융귀족 정치의 지배 아래서 계속 개인적인 직무나 사소한 산업상의 직무를 수행한다을 부양하는 일군의 선진공업국까지가 생겨날 가능성을 이제까지 예견해보았다. 고려의 가치도 없는 이론"(전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을 탐색하려 드는 사람들로 하여금, 오늘날 이미 이 상태에 떨어져 있는 남부잉글랜드 여러 지역의 경제적·사회적 상태를 검토하게 하자. 또 그들로 하여금 금융업자·투자가 및 정계와 실업계 중진으로 이루어지는 비슷한 집단의 경제적 지배에 중국을 종속시킴으로써 그런 제도의 거창한 확장이 실현될 수도 있다는 데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하자. 그 집단은 유럽에서 소비하기 위해, 세계사상 최대인 잠재적 이윤의 저수지에서 이윤을 빨아내려고 하고 있다. 상황이 너무나 복잡하고 세계 세력의 움직임을 예측하기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이런 해석이나 다른 어떤 단 하나의 해석도 그다지 개연성이 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오늘날 서유럽의 제국주의를 지배하는 세력은 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거기에 대처하거나 그것을 전환시키지 않는 한 그것은 대략 이러한 결말을 향해 나갈 것이다."²²

 

저자는 전적으로 옳다. 만일 제국주의 세력들이 저항에 부딪히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그러한 상황으로 이끌려갈 것이다. 현재의 제국주의적인 정세에서 '유럽합중국³의 의미가 여기서 올바르게 평가되고 있다. 다만 노동운동 내에서도 대다수의 나라들에서 지금 일시적으로 승리를 거두고 있는 기회주의자들이 바로 이 방향으로 체계적이고 부단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점을 덧붙여두어야 할 것이다. 제국주의란 세계 분할과 단지 중국에 대해서만은 아닌 착취를 의미하고, 한 줌밖에 안되는 가장 부유한 나라들을 위한 높은 독점이윤을 의미하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상층부를 매수할 수 있는 경제적 가능성을 창출하여, 그로부터 기회주의자를 키우고 형성시키고 강화시킨다. 단지 제국주의 일반에, 특히 기회주의에 대항하고 있는 세력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인데, 사회자유주의자 홉슨의 눈에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하다.

 

과거에는 제국주의를 옹호한다는 이유로 당에서 제명됐지만, 지금이라면 독일의 이른바 '사회민주'당의 수뇌가 될 수도 있을 법한 독일의 기회주의자 게르하르트 힐데브란트(Gerhard Hildebrand)²⁰⁴는 홉슨을 훌륭하게 보완하여, 아프리카 흑인들에 대항하기 위한, '대이슬람 운동'에 대항하기 위한, '강력한 육해군'을 유지하기 위한, '중국과 일본의 연합'에 대항하기 위한…… '공동' 행동을 목적으로 하는 (러시아를 제외한) 서유럽합중국을 건설하자고 주장하고 있다⁰⁵

 

슐체-게베르니츠의 책에 나오는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서술도 우리에게 그와 같은 기생성의 특징을 보여준다. 영국의 국민소득은 1865년과 98년 사이에 거의 두 배가 됐는데, 같은 시기에 '해외로부터' 얻는 소득은 아홉 배로 뛰었다. 제국주의의 "업적""니그로에게 근면의 습관을 가르친 것"(강제성 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이라면, 제국주의의 "위험""유럽이 고된 육체노동을 -처음에는 농업노동과 광산노동을, 다음에는 보다 거친 공업노동을 -피부가 검은 인종의 어깨에 떠넘기고 자신은 금리생활자의 역할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로 인해 아마도 피부가 붉은 인종과 검은 인종이 경제적 해방과 그에 이은 정치적 해방을 준비하게 되리라는 것⁰⁶이다.

 

영국에서는 경작에 이용되지 않고 부자들의 스포츠와 오락에 사용되는 토지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사냥 및 여타 유흥을 위한 가장 귀족적인 장소인 스코틀랜드는 "그곳의 과거와 카네기 씨(미국의 억만장자)가 그곳을 먹여 살린다"고 회자되고 있다. 영국은 매년 경마와 여우사냥에 1,400만 파운드(13천만 루블)를 소비한다. 영국의 금리생활자는 거의 100만 명에 이른다. 반대로 생산에 고용된 인구의 비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1851 17.9 4.1 23%

1901 32.5 4.9 15%

단위 : 100만 명

 

한편 '20세기 초 영국 제국주의'를 연구한 이 부르주아 학자는 영국의 노동자계급에 대해 이야기할 때 노동자의 '상층''진짜 프롤레타리아 하층'을 체계적으로 구분해야 했다. 이 노동자 상층은 대부분 협동조합과 노동조합, 스포츠단체와 수많은 종교단체의 구성원들이다. 선거권이 허용되는 것은 이 층까지이며, 영국에서 선거권은 '여전히 진짜 프롤레타리아 하층'을 배제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제한돼 있다!!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를 미화하기 위해 사람들은 보통 프롤레타리아트의 소수를 이루고 있을 뿐인 이 상층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실업 문제는 주로 런던의 문제이거나 정치인들이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⁰⁷ 프롤레타리아트 하층의 문제일 뿐이다……."²⁰⁸ 여기에서 이 저자는 이렇게 말했어야 한다. 부르주아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의 기회주의자들도 이 층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고.

 

지금 서술하고 있는 일련의 현상들과 관련한 제국주의의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여러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 떠나는 이민은 줄어들고, 임금이 낮고 뒤처진 나라들로부터 그 나라들로 들어가는 이주민(노동자의 유입과 일반 주민의 이주)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에서 떠나는 이민은 홉슨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1884년 이래 감소하고 있다. 1884년에 242천 명이었던 외국으로의 이민자는 1900년에는 169천 명이었다. 독일을 떠나는 이민자들은 1881~90년의 10년간 가장 많은 1453천 명에 달했지만, 그후 20년 동안은 각 10년간 544천 명과 341천 명으로 줄어들었다. 대신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러시아 등에서 독일로 들어간 노동자의 수가 증가했다. 1907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독일에는 1342,294명의 외국인이 있었는데, 그 중 공업노동자는 44800, 농업노동자는 257,329명 있었다⁰⁹ 프랑스에서는 광업노동자들이 '대부분' 폴란드인, 이탈리아인, 스페인인²¹등의 외국인이었다. 미국에서는 동유럽과 남유럽에서 온 이주민들이 가장 임금이 낮은 직업을 갖고 있었고, 감독으로 승진한 사람과 가장 보수가 좋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미국인 노동자들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²¹¹ 제국주의는 노동자의 사이에도 특권을 가진 부류를 분리해서 그들을 프롤레타리아트의 광범위한 대중으로부터 갈라놓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노동자를 분열시키고, 그들 가운데 기회주의를 강화시키며, 노동운동을 일시적으로 부패시킨다는 제국주의의 경향은 영국에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무렵보다 훨씬 전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특별히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된 것은 제국주의의 두 가지 큰 특징이 영국에서는 19세기 중반 경부터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특징이란 광대한 식민지 영토와 세계 시장에서의 독점적인 지위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노동운동에서 기회주의와 영국 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특징이 가진 이러한 관련성을 수십 년에 걸쳐 체계적으로 연구했다. 예를 들면 엥겔스는 1858107일 마르크스에게 이렇게 썼다. "영국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사실상 갈수록 부르주아화하고 있으며, 그 결과 모든 국민들 가운데 가장 부르주아적인 이 국민은 결국에는 부르주아와 함께 부르주아적인 귀족과 부르주아적인 프롤레타리아트를 가지는 데까지 가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네. 전세계를 착취하고 있는 국민에게 있어서 이는 분명히 어느 정도는 당연한 일일세." 그로부터 거의 4반세기가 지난 후인 1881811일자의 편지에서 엥겔스는 "부르주아에게 몸을 팔거나, 적어도 그들에게서 돈을 받고 있는 패거리들의 지도를 받아들이고 있는 최악인 영국노동조합"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또 카우츠키에게 보낸 1882912일자 편지에서 엥겔스는 이렇게 썼다. "당신이 내게 질문한 것은 이렇습니다. 영국의 노동자들은 식민정책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데, 그것은 그들이 정책 일반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똑같습니다. 여기에는 정말이지 노동자 당이라는 것은 없고 보수당과 자유급진당만 있으며, 노동자들은 영국의 세계 시장 독점과 식민지 독점으로 함께 속편하게 먹고살고 있습니다."²¹²(엥겔스는 1892년에 출간된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The Condition of the Working Class in England2판 서문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을 적었다.)

 

여기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 원인은 (1) 이 나라에 의한 전세계의 착취, (2) 세계 시장에서 이 나라의 독점적 지위, (3) 그것의 식민지 독점이다. 결과는 (1) 영국 프롤레타리아트 일부의 부르주아화, (2) 프롤레타리아트의 일부가 부르주아에게 몸을 팔거나 적어도 그들에게서 돈을 받고 있는 자들의 지도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초의 제국주의는 한 줌밖에 안 되는 나라들에 의한 세계의 분할을 완성했으며, 이제 이 나라들은 각기 1858년의 영국에 버금가는 '전세계'의 조각들을 (초과이윤을 뽑아내고 있다는 의미에서) 착취하고 있다. 각국은 트러스트, 카르텔, 금융자본, 채무자에 대한 채권자의 관계 덕택으로 세계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 본 것처럼, 전세계 식민지 영토 7,500만 평방킬로미터 가운데 6,500만 평방킬로미터, 86퍼센트는 여섯 강대국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고, 그 중 6,100만 평방킬로미터, 81퍼센트는 강대국 세 나라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다.)

 

현 정세의 특징은 노동운동의 일반적·근본적인 이익과 기회주의 사이의 적대성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그러한 경제적·정치적 조건들에 있다. 제국주의는 작은 싹에서 지배적인 체제로 성장했다. 자본주의 독점조직들이 국민경제와 정치의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세계의 분할은 완성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영국의 전일적인 독점 대신, 우리는 그 독점에 참가하려는 소수 제국주의 열강들의 투쟁을 목격하고 있는데, 이야말로 20세기 초엽 전체를 특징짓고 있는 것이다. 이제 기회주의는 19세기 후반기 동안 영국에서 승리한 것과 같이 수십 년 동안이나 한 나라의 노동운동에서 완전한 승자로 나타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여러 나라들에서 완전히 성숙하고, 무르익고, 썩어버린 나머지, 사회배외주의라는 부르주아 정치와 완전히 합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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