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군국주의의 방법과 효과.

 


당면한 임무.

 

이제 우리는 당면한 방법과 효과에 대한 특수한 검토를 마치고 프로이센 독일의 모범적인 방식을 위해 들러붙고자 한다. 관료적인 수학자 자본주의적 군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최악의 형태를. 국가를 넘어선 국가를.

 

현재의 군국주의가 사실일지라도 자본주의적 사회의 징후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견고해진다.

 

군국주의를 끝내기 위해선 유용한 군대를 유연하고 효과적인 부대로 바꿔야한다. 반대로 그것은 아주 높은 가능성을 군사적 기술과는 반대로 기계가 아닌 사람으로 구성된 살아있는 메카니즘으로 제시하기 때문에 올바른 “정신”으로 채워져야한다.

 

첫 번째 측면은 재정적으로 해결된다. 이후에 논의하겠지만 우리는 이제 두 번째 측면에 몰두할 것이다.

 

그것의 내용은 세 가지이다. 군국주의는 군사적 정신에서 생산하려는 것을 보고, 우선적으로 활발한 군대로부터 예약하고 예비군들이 중요해진다. 동원되고 지원되는 마침내, 주민계급들은 환경을 제공한다. 주민계급들은 양육하고 군국주의와 반군국주의에 부합되기 위해 고용된다.

 

군사 교육학에서 병사들의 훈련.

 

진실한 군인정신은 애국정신이라고도 하며 프로이센-독일은 “왕에 대한 충성심”의 한마디로 세계적인 명령을 따라 모든 적들의 국가를 침략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 정신은 멍청하고 저능한 대중적인 지도를 필요하도록 한다. 이익관계에서 “존재적 명령”으로 직접적으로 교류한다. 폰 아이넴의 국가의 장관들의 가입은 충실한 왕의 군대를 제공한다. 군대는 나쁜 말로 누구의 생각을 묻지 않으며 덜 올바른지도 묻지 않는다. 독일 군국주의의 대표를 완전하게 아래로부터 말한다. 하지만 군국주의는 악마와 심해에 있다. 무기의 기술은 전략적이고 텍티컬하며 현재의 위대한 군인의 지식인1)과 그러므로 군인은 더욱 지능적이고 캐테리스 파리버스2) 또한 그러하다. 이러한 이유로 홀로 군국주의는 거의 멍청한 대중들에겐 훌륭하진 않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멍청한 대중을 사용하지 않으며 또한, 경제적 기능은 대중들에게 공연하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프롤레타리아로부터 온다. 이 명령은 착취할 수 있으며 더욱 큰 가능성의 이익을 필연적인 삶의 위험을 커지게 한다. 자본주의는 강제한다. 자본주의는 비극적인 운명을 시스템적으로 어마어마한 노예들을 매우 지능적으로, 자본주의는 가득차게한다는 것을 안다. 고유한 죽음과 해체를 야기하면서도 모든 시도들은 능숙한 책략과 교활한 조직으로부터 교회와 학교로부터 자본주의의 함선을 조종하기 위해 지능적인 스킬라 괴물의 적은 착취를 만든다. 다른 매우 위험하거나 프롤레타리아 자신으로부터 짐승이 부담하기에 적합하지 않고 교육의 카라디브스로부터 필수적인 자본주의의 파괴를 계급의식으로 증가한다. 모든 부분들과 혁명과 학대받는 모든 시도들은 실패할 것만 같다.

 

동엘비아 지역의 농부들은 크로체의 기록에 따르면 대부분 쓸모없는 노동자들이었지만 최고의 융커들이긴 했었다. 명령에 따르는 대규모의 군국주의에 기여했다. 그럼에도 이 유형들은 군국주의에서도 낮은 지능을 가졌다.

 

“최고의 병사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다.”라고 한 사람은 자주 말했다. 세계적인 병영 아래에

군인정신을 주입하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준다.3) 단순히 노예로서 맹목적인 복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실용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군국주의는 “총 쏘는 기계”4)를 생산하기 위해 간접적으로 남성의 의지를 강제한다. 도덕적이거나 심리적인 영향을 강제하거나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의지를 생산하며, 속이거나, 강제한다. “평화에 땀을 흘릴수록 전시에 피를 덜 흘린다.”는 격언은 여기에 적용해볼 수 있다. 외부의 적에 대한 군국주의가 요구하는 기능의 진정한 “정신”은 완고한 쇼비니즘과 편협하거나 이기적이며, 둘째로 국내의 적과 관련해서 모든 진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심지어 증오한다. 위협적인 사업이나 시도를 지배계급 하에서 권력을 장악하고자 한다. 군국주의는 계급적 관계인 쇼비니즘에 매우 반대하는 사람들과 이러계급적 관계에서 모든 것이 진보하는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영향에서 군인들의 생각과 감정을 이끄는 통로이다, 기존 사회 질서의 몰락이 초래될 때까지 유일한 합리적인 목표로 나타나야 하며 그리고 비록 규칙적이긴 하지만, 징병의 연령대에 젊은 군인들은 프롤레타리아라는 사실을 무시할 순 없다. 이들은 독립적이거나 정치적 통찰력에 있어 동시대의 부르주아보다 뛰어나고 계급 의식이 확고하진 않다.

 

체제는 군인들에게 도덕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파렴치하거나 교활하다. 사회적인 계급에 따라 분류하는 대신에 지배계급에 의해 연령을 분류하고, 체제는 노년의 “계급”에 있는 사고와 감정을 20~22세의 프롤레타리아로 구성해서 특수한 계급으로 형성하고자 한다.

 

우선 제복을 입은 프롤레타리아들은 무자비하게도 그들의 가족들과 동지들에게 단절되어 있다. 그들의 고향을 잊게하고 독일에선 효율적으로 병영5)에 가두는 것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들은 수도원 생활에 대응하는 예수회 생활을 방불케한다.

 

다음은 이 격리를 지속하고자 하는 시도를 가능하게 한다. 군대와 기술적 관점에서 장기복무의 필요성이 없을 경우 격리를 연장하려는 경향에는 재정적인 난관을 1892년에 2년 동안의 독일의 상황6)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장기복무에 할당된 시간을 활용하는 것은 문제며, 훈련받은 사람들의 정신적인 관점에도 영향을 미친다.

 

교회의 사례에서도, 모든 사람들의 약점과 감각은 군사교육에 수용된다. 열망과 허영심을 자극하고 군복은 최고의 제복을 수여하고, 병사들의 명예는 특히 위엄있게 미화된다. 군인계급들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존경과 찬사를 받으며 칭송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많은 특권을 부여받는다.7) 그리고 군인계급들이 끌어들일 하층민들의 거친 취향을 따라 제복을 재단하고 장식하면서 과시한다. 순수한 군사적 목적과는 다르게 군인계급들은 카니발 의상처럼 작은 장식들로도 제복을 다듬는다. 모든 종류의 반짝이는 구별된 장식들과 좋은 촬영을 위한 줄무늬들은 매력적으로 방탕하게 제복을 꾸미려는 과시욕과 뛰어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에 대한 욕망처럼 저급한 본능이다. 그리고 군인들의 고통에는 반짝이는 장식들과 화려한 군악대들과 함께 진정된다. 아이들, 얼간이, 하녀, 프롤레타리아의 잔재들 사이에서 “웅장한 군대”를 자랑스러워 한다. 한때 행진을 본 적이 있는 수상한 대중들과 베를린의 왕궁 친위병들의 행진을 본 적이 있다면 꽤 이해할 것이다. 특정 민간인들에게서 느껴지는 제복에 대한 호감은 군대 내에서 미개한 요소들에 대한 강한 유혹을 끈다.

 

이러한 모든 수단들은 현저한 지적단계와 사회적 위치에서 더욱 효과적이다.

 

단순히 판단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최상의 제복을 입은 미국의 흑인8)들과 동프러시아 노예들이 싸구려 군장신구들로 사람을 유혹하기란 쉽다. 그러나 그들의 군사적 위상과 민간인적 삶의 단계는 상이하다. 그러므로 이 수단들은 유능한 산업적 프롤레타리아들에게 군국주의에서 계획되고 지정한 비극적 모순에도 좋든 나쁘든 필수적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적어도 당분간은 군국주의에 유연한 소재를 제공한다. 그럼에도 군국주의에선 정신적으로 동의하면서 보존할 수 있는 수단을 동원한다. 이를테면 카이저의 생일을 축하하는 연대축제가 있다.

 

중독된 상태로 병사들에게 모든 걸 주입할 때, 영혼은 죽고, 타오르는 공상들과 감정은 체계적으로 권력의 수단으로 이용된다. 병사들은 군국주의에 적합하게 자신을 맞추며 왜곡되고 미숙한 세상들로 채워나가기 시작한다. 본성적으로 군국주의 교육은 모든 유능한 산업 프롤레타리아를 양성하는데 적합하지 못한 능력을 갖거나,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군국주의 교육을 가르친다. 병사들에게 군국주의와 적합하지 못한 교육을 가르치는 건 궁수가 쏜 화살에 튕겨진 화살과 닮아있다. 이 사례는 막스 로네즈와 우편들에서 이익을 위한 경쟁에 제빠른 리버트 장군에게 전달되었다. 반사회적이고 반민주적인 교육에 의존하고 가혹한 훈련, 병영에서의 생활, 장교9)와 부사관10)들의 제복을 신성하게 바꾸며, 병영생활의 많은 부서에선 모든 사고를 근무 중이거나 비번일 때조차도 짐쇠에 물려서 병사를 규율에 복종하게 한다. 탄력적으로 복종하는 모든 병사의 의지는 가장 부러지기 쉬운 척추를 구부리고, 당기고, 뒤틀려서11), 탄력적이고 필수적인 생산을 제공한다.

 

1892년 1월에 독일의회는 비록 편견 없이 거부되긴 했지만 열성적으로 “종교”정신을 부합하고자 요청했다.

 

정신적 훈련은 군사적 억압과 노예제도를 완성하기 위해 예전된 군사적 교육으로 특별한 대상을 분명하게 조직한다.

 

명령과 종교적 비방은 당근과 채찍이 따른다. 채찍은 오직 베일에 감춰진채로 해를 가하며

“항복문서”의 체계12)와 고급화된 전망13)으로 성공적으로 고용된 군대의 영구적인 장식용으로 채워진 대형을 위한 미끼로서 당근을 겸한다. “장교”14)나 부사관에 의뢰하지 않거나, 민간인의 삶에 대비하는 증서15)와 매우 교활하고 위험한 배치로 군국주의는 공적인 삶도 오염시키며, 후에 보겠지만 가장 선두에서 규율의 체계16)에서 군국주의에 따른 위협을 전쟁범죄와 최소한의 반대야당을 군사적 정신으로 무장하게 하고 군사적 정의는 준-중세적인 절차에 따라 잔혹하고 상스럽게 처벌하기 위해 최소한의 불복종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과도할 정도로 헌신적인 상급자들은 종속된 부하들에게 최소한 벌을 주고 자기보호의 권리마저도 훔쳐가도록 부하들에게 반복적으로 학습하게 한다. 군국주의에 투쟁할 수 없도록 유익하지도 선동적이지도 못하게, 군사적 논문들과 군사적 범죄 사례를 정독하지 못하게 하고선

 

여기에 혹사된 군인들의 사례를 후에 기회가 된다면 언급하도록 하겠다. 학대는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지만 군국주의에선 강압적인 징계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병사들을 야생짐승들로 길들이고자 하며 집합하고, 아첨하고, 억압하고, 투옥하고, 손질하고,

때려서 감각을 죽여버린다. 밀알이 섞여서 군대를 강력한 조직으로 공격할 수 있게 하고

벽과 벽으로 방벽을 쌓아 혁명의 유입을 가로막는다.17)

 

“1년 자원봉사자들”. 예비역 장교들에게 계획된 부르주아의 자식인 “1년 자원봉사자들”은 반군사적이고혁명적 경향에 의심을 부른다. 그러므로 장교들은 막사에서도 떨어져서 그들의 고향에서 떨어져 병영에 갇히거나, 교육을 받고 교회에 나가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심지어 가혹한 훈련에서도 예외이며 규율의 법적 범위에서도 자유롭고 군사형법에서도 가볍게 예외로 풀어주는 건 당연한다. 예비역장교들이 병사들을 학대하고 “문화”적인 모든 것에 강력하게 증오를 품을 수 있음에도 예비역장교를 훈련하는데 사용되는 기구나 설비들은 강력한 증거를 제공한다. 군사적 규율에서 조직 속의 개인들은 독립성을 상실한다. 군대에서 각 개인들은, 노예선박선의 범죄자와 같이 모든 독립적인 행위를 한심하게 제한하도록 쇠사슬로 묶어낸다. 수천년에 걸친 압도적인 권력은 독립적인 행위를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힘을 방해한다. 모든 강력한 조직의 구성원들은 강력한 원칙들과 명령에 노출된 상태로 특별한 종류의 최면술로 지배한다. 군중들을 최면에 사로잡힌 것처럼 속이고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계몽되고 단호한 군국주의 반대자들과 상대들을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포박해버린다.

 

병사들에게 갈등과 난관을 교육하는 영역에서 군국주의는 두 가지 사실을 보인다.

교육과 장비가 적용된 군사훈련은 더욱 건방지고 증가하는 단계에서 병사들의 독립을 제어한다. 병사들은 자본의 감시자로 독립조차 요구할 수가 없다. 어떤 요구들도 할 수 없다는 사실로 인해 자살로 죽음을 선택할 자유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단순히 전쟁은 병사와 외부의 적들과 싸울 수 있는 노예들과 기계를 필요로한다. 장비와 무장도 제외할 수 없다. 밝은 제복과 반짝이는 부대마크, 전투모와 표식깃발, 행진훈련, 기마병의 공격, 자국의 적들과 싸우는 계급적인 정신에 필요한 찌꺼기들이 필요하며 외부의 적과의 전쟁에선 치명적이거나 사용할 수 없게 된다.18) 모든 군국주의를 옹호하는 순진한 비평가19)들은 군사훈련의 기준에서 숨막히는 비극적인 전투를 무시하고 많은 측면에서 과장되게 묘사된다.

 

군국주의의 내부에 존재하는 자기모순은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향이 있으며 국내외의 정치적관계와 어느 쪽이 우위를 차지하는데에 따라서도 이익관계는 두 가지가 상반된다. 이 사실에서 정신을 속이는 세균들을 전파하며 군국주의는 스스로를 파괴해나간다.

 

무장된 혁명은 자국의 적들과 투쟁할 때 단순히 군사기술적인 성격의 끔찍한 측면을 가정하여 장식된 노예들과 기계들이 혁명을 억압할 수 없게 한다. 그러면서 소수에 의한 강압적인 지배의 마지막 기간에는 자본가들의 과두정치는 타격을 입을 것이다.

 

왜곡되고 혼란스러운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에서 일반적으로 군사정신의 수단을 아는 건 매우 중요하다. 군사정신에서 일어나는 순수한 군국주의의 오염을 제외하고 모든 공공생활에서 일어나는 전반적인 모든 작용을 동시에 오염시키며 자본주의에 순종하도록 한다. 군국주의는 손쉽게 경제, 사회와 정치에서 프롤레타리아를 노예상태로 생산하고 착취한다. 또한 군국주의는 해방을 위한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을 늦추는데 상당하게 일조한다. 우리는 이를 반드시 돌려낼 것이다.

 

준 공식적이고 준 군사적인 조직과 평범한 사람들의 집단

 

군국주의는 방대한 규모로 현역군을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를테면 평범한 사람들을 군사적 관활권(사법)으로 광범위하게 확장하고 예비역 장교와 지휘관들에게도 적용되는20) 군사법정의 지배체제의 수단들은 무제한적인 권한으로 평범한 사람들에게 침범하려한다. 여기서 특징은 통제위원회에 출두하도록 소집된 사람들을 군사적 관할권에 복종하게한다. 군당국은 군 통제위원회가 앉아서 공개적으로 종일 법을 위반하면서도 관할권을 주장한다. 이에 대한 근거들은 조금도 없으며 통제위원회는 군복을 입은 젊은이들의 국방모임과 준-공식적이고, 준-관료적인 경영을 하는 군대 모임들이 속하며 우둔하거나 포식적인 잔치를 벌인다. 이 군국주의 활동 영역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군대의 계급정신을 민간인들의 생활에도 도입하고 이를 영구화하려는 예비군 장교들의 활동이다. 더 나은 민간인과 관련해선 더 큰 해악을 끼친다. 국가 및 공공 행정부의 공무원들뿐만 아니라 처벌하고 교육적인 체제21)의 공무원들도 거의 예외 없이 군대 규율, 군인 정신, 전체적으로 군국주의적 생활적 개념에 복종한다. 모든 어색한 반대운동들을 꼭 가로막는 건 아니다. 민간관료(행정)은 복종하고 부관과 하급관리들에게 동일한 “병역입영자”22)를 연계하여 확보한다. 그러므로 계급정의의 계급교육의 나무들은 군국주의의 하늘로 높이 자라는 반면23) 민주적고 자치적인 나무들은 철저히 가지치기하도록 규정한다. 우리는 현역 장교와 예비역 장교들이 문서작성에 관여하는 일은 명시적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다. 매우 교훈적인 가드케 사건과 더불어서 군국주의는 정신을 정복하고 손에 닿는 모든 걸 중앙적인 부서를 통제하기 위해 분투한다는 건 가장 강력한 증거이며 합법적이거나 불법적인 수단으로 영향력의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장하려는 경향과 만족할 줄 모르는 과격한 성향을 확장해나가며 법적이거나 불법적인 수단들을 동원하여 권력을 열망한다.

 

민간인들에게 미치는 군사적인 다른 영향.

 

군국주의자들의 확장에 대한 열망에서 중요한 결실에는 심지어 예비군 장교들이 저지른 활동조차도 "병역입영제"라는 비참한 체제다. 순수한 국가적 목적과는 별개로 “병역입영제” 체제는

충실하고 열성적인 대리인들과 국가 및 지방행정부의 분파인 군국주의 정신의 옹호자들을 모든 국가에 전파하고자 한다. 동시에 관료기구의 신뢰와 준비24)를 기꺼이 자본주의에 “똑바로” 고정하도록 “국가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사고”를 다수의 국민들에겐 특별한 “교육적 필요”로 전달한다. “민간인 생활의 지급증명서”의 “교육적 목적”은 부사관들의 보험료에 대한 논의에선 훌륭하게도 만장일치와 대담함으로 인정되었다. 1891년 2월 독일 제국의회에선 카프리비 제국총리와 지배계급 대표들에 의해 대중교육의 국가를 이상적으로 유지하게 했으며 운 좋게도, 이전의 소지자였던 상등병이 떠나야했던 이후에 우회적으로 부사관들에게 체계화되었다.

 

그러나 교육의 결과는 너무나 빈약하다. 군국주의자들에게 가난한 마귀인 하급관리의 자리를 차지한 "병역예정자"들은 악마는 매우 열악한 봉급 받는다. 장기적로도 독일에서 아직 임관되지 못한 장교들도 프로이센의 왕25)을 위해 일하기란 불가능할 정도다. 이는 혁명을 매수하려는 끊임없는 문제다.

 

군인들의 군사적 열정이 생산되고 유지되고, 군복과 장식에 꾸며진 과시와 동시에 군국주의의 범위 밖에 있는 주민들과 군대를 모집하는 계층들의 영향을 미치거나 그 비용을 감당하고 자국의 적들에게 굴복할 "위기"에 처한 수단들을 추가로 언급해야겠다. 1906년 가을 프로이센을 방문한 영국의 전쟁 장관 할데인은 이것을 재빨리 알아차렸고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군국주의를 성취하고 귀중한 현상에는 군대에 손쉽게 다가가고 전쟁을 준비하는 국가는 냉정함과 충성심을 배운다.”26)

 

군국주의는 그 정신을 전파하기 위해 상당히 다른 방식의 수단을 지닌다. 군국주의는 소비자와 생산자의 수용과 전략적 중대성이 큰 국가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군대에 존속하는 고용인들인 생산회사의 장인들과 상인들을 전체적으로 주최한다. 장비를 필요하는 요소를 생산하거나 수송하며 군대의 막사로 옮기거나 유지하며, 모든 군인이 사용하는 요소를 때로는 전체의 공적인 생활에서 깊은 인상을 준다. 특별하게 작은 국경수비대는 더욱 강력한 규칙 제국의 지배 하에서 귀족모임의 규칙으로 국가를 처음으로 주무르도록 돕는다. 국경수비대는 군국주의에도 영향을 끼치고 착취하도록 허용하며 경악스러운 열정과 귀를 막는다. 군국주의는 재반납하며, 열성적으로 지지한다. 자본가들은 선동하는데 제국주의가 흥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름들도 알만하다. 크룹, 스텀, 에크하르트, 로워, 워크맨, 티플스커치 노벨 권력반지가 있다. 크루프는 장갑판으로 수익을 얻고, 터펠스카르체는 뇌물로 수익을 얻고 팽창된 우르만의 운임 및 화물초과료와 100% 및 150%에 달하는 파우더 링의 순익은 독일 재무부의 100만 달러를 덜어주었던가?27) 특히 오스트리아에서 납품업자들의 사기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28) 각각의 유세에는 사기꾼들의 황금 수확을 의미한다. 비단 러시아만이 아니라 기생충으로 포장하기 위해 채취된 수단들이다.29) 위대한 귀족들은 군국주의에 가장 기독교인적인 포교로 인민을 약탈하며 군국주의에 보답한다. 귀족들은 군국주의에 거룩한 망령들인 “그들” 우르만과 의존하는 모든 것에 쏟아붓는다. 혁명에 맞서서 무자비하게 전쟁을 한다. 물론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물질적 흥미도 소규모의 방위공조회사의 대부분은 군대와 관련한다. 상비군 무역과 산업이 없는 국가들은 상비군을 보유한 국가들보다 덜 번영한다. 군사생산의 종사자들은 군대가 없어지더라도 경제적으로 더 나빠지진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 그들은 자신의 코끝 너머를 보지 못하고 군사주의적 영향에서 쉽게 굴복하고 반혁명은 큰 난관에 직면한다.

 

방대한 규모의 경제적으로 관계한 식량경리부, 유지공장, 의류 부서, 수리 창고, 무기 및 군수 공장, 조선소 고용주들은 군국주의에서 가장 신속하고 예외없이 그 직원들은 1904년 10월 31일, 독일 육군과 해군 행정부에서 국가의 직접 지배 하에 총 54,723명30)을 고용했으며 사회민주주의에 맞서 제국연합과 같은 반동적 애국 선동에 투입했다. 군국주의는 대부분 미끼의 수단인 냉혹한 방법으로 선전물의 표제, 장식들, 군인회관과 유사한 축회와 무리한 장려금, 심지어 노동조합을 비방하고 실제 병영 규율31)로 조직적으로 애국적인 애국주의자를 계발하고자 한다. 군사작업장에선 더욱 프롤레타리아를 계몽하고자 한다. 물론 노동계급에겐 적대적인 영향으로 인해 한계가 있으며 군사 행정부는 특히 “제국의” 선박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달성한 사회민주당의 성공에 대한 환상으로 여기며 환영하지 못한다.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사회민주당 투표가 계속 증가해야 한다면 (이를테면, 1903년 스판다우 선거에서 채택한 방해공작으로 군사작업장을 폐지하겠다는 모든 협박은 매우 순진하다. 군국주의는 노동계급에게 계속해서 근소한 임금을 지불하고 따라서 그들을 사회민주주의의 반열이 있는 한 계급의식의 발전을 방해할 힘은 없다. 국왕이 허가한 공장의 노동계급 가운데서 임금인상을 위한 잦은 운동과 군사행정부32)와 가진 무수한 투쟁을 기억하면 비관적일 수만은 없다.

 

방대한 철도, 우편 및 전보시설들은 전략적으로 자국에서 적과의 전쟁은 적의 진출에 맞서는 만큼이나 중요하다. 전략적 중요성의 이런 필수적인 요소들은 군사조직의 완전한 붕괴로 이어지는 파업에 의해 군국주의에 타격을 줄 수 있다. 군국주의에선 통신수단과 군국주의와 동맹한 생산적 관계인 철도 가판대, 역마차 공장와 관련한 공무원과 노동자 조직에게 군국주의 정신을 주입하려하고 그 시도가 얼마나 비도덕적인 방식으로 추구되는지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병역예정자”의 제도는 제외하고, 그 직원들은 독일의 주마다 달성된 군사법에 복종한다. 또한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33) 행정명령과 이탈리아, 네덜란드, 러시아에선34) 특수한 법적 수단으로 노동조합을 형성할 권리를 박탈하며 군국주의 국가에선 직원들의 정치적 위치와 피상적인 견해를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우리는 군국주의적 이익과는 별개로 자본주의 국가에서 통신수단의 직원들을 대체로 “국가에 대한 적대적인” 열망에 굴복하게하고 전반적인 이익이 있다는 사실은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의 분투는 장기적으론 실패하며 노동운동에 어려움을 줄 수도 있지만 사실상 통신수단의 직원들은 프롤레타리아의 위치에서 낮은 임금으로 지쳐있기 때문이다.

 

교활하고도 정치적으로 규제하는 군국주의

 

그러므로 군국주의는 먼저 차제적으론 군대에서 등장하고, 군대에서 제도로 나아가 군국주의 및 준군국주의 기관들의 조직에서 전반적인 사회로 침투한다(통제체제, 명예로운 법정, 글쓰기 활동 금지법, 예비군 장교 계급의 "민간인 생활 보증서", 관료기관의 군사화, 끔찍한 “ 병역입영제도”. 이외에도 젊은 남성들의 방위모임, 군사모임 등은 예비군 장교 계급 및 "예비군" 제도에서 유발해서 군사화되며 해를 가한다. 또한 군국주의는 군국주의적인 정신으로 사회의 모든 공공 및 사생활까지 물들인다. 교회, 학교, 저렴한 예술 성향, 언론, 부패한 작가들의 비열한 무리와 "우리의 영광스러운 전쟁군대"를 포위하여 사회적인 후광을 얻아 생활에 먹구름을 끼게하며 집요하고 교활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군국주의는 가톨릭 교회와 함께 가장 최악의 마키아벨리주의이며, 자본주의의 모든 마키아벨리주의 중에서 가장 교활하다.

 

코페닉의 장군를 언급한 적이 있는데 군국주의 교육 방법과 교리문답, 그 결과들은 시사점을 제시한다. 이 교리에서 가장 탁월한 지적은 한 부르주아 사회에선 전반적으로 장교의 제복을 신성하게 여긴다는 사실이다. 극 중에 재소자가 진행했던 시험은 6시간 동안 지속했는데, 그 시험에선 우리의 군대, 관료제도, 프로이센에 대한 충성이 시험대상으로 제시되었다. 모든 학생들이 그 시험에서 나아가 결과에서도 선생님들의 교육에서 핵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고 머리카락을 곤두설만큼 놀라게 한다. 게슬러의 모자도 이렇게 자기비하적이고 고분고분한 복종으로 불멸하는 장군의 모자만큼 따르진 못했을 것이며 이렇게나 신성한 트리어의 붉은 망토도 제복에 그렇게나 헌신적인 사람들은 없었을 것이다. 이 고전적인 풍자에서 큰 효과는 군국주의 교육학의 원리를 죽음으로 몬다는 사실이다. 군국주의는 세상의 조롱과 비웃음과 함께 법원에서도 꺼저야 한다면, 현재 부르주아 사회에서 마법사의 제자를 자처하는 군국주의는 일상에서 먹는 빵과 숨쉬는 공기만큼 아깝지가 않다. 자본주의에서 강력한 집행관인 군국주의는 서로를 사랑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두려워하고 증오한다. 이들은 서로에게 다양한 이유를 대며 필수적인 악으로 여긴다. 그래서 코페닉의 교훈에는 부르주아 사회에서 따를 수 없는 사회민주주의35)와 반군국주의을 손에 쥔 강력한 선전수단으로 남을 것이다. 이들이 군국주의의 문제를 심화할수록 더욱 번성하리라.

 

쾨페니크의 장군이 장군의 역할을 해낸 것은 구스타브 투크라는 1880년대에 두툼하고 먼지가 묻고 오래된 “사회적 의미에서 확장된 군사국가”라는 서적에서 군국주의는 “민족적이고 문명적인 사회주의”이며 모든 걸 태우고, 비추며 지배하는 태양을 중심으로 심장과 영혼으로 이뤄진 미래사회를 소개했다. 이 책이 소개한 사회는 하나의 군영으로 뒤바뀌며, 그 군영은 초등학교, 대학 및 애국심을 생산하는 공장이며, 군대는 일제히 파업을 파괴하는 조직으로 변모한다. 군국주의의 새천년에 열광적인 망상은 실제로는 조직적인 광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군국주의적 목적과 방법을 흐리게 하는 모든 사고에서 자유롭게하고 이를 극도로 사고한 조직적인 광기였다는 사실은 징후적인 의미를 지닌다.36)

 

적어도 한 가지 측면에선, 지배적 성격에서 군국주의는 현재에 계급제도의 법률, 관료주의, 경찰행정, 계급적 정의와 교황주의의 종류라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며 모든 계급정치에서 은밀하게 드러나는 최종 규제자이며, 자본가 계급만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에서 전략, 노동조합조직과 정치조직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걸 세부적으로 설명할 것이다.

 

참조.

 

1. 1891년 2월 27일 카프리비의 발언을 참보하라; 제국의회에서 당시 폰 칼텐보른 슈타카우 국방장관도 “새로운 무장, 훈련규정으로 인해 비위대장들에게 요구된 것이 크게 증가했다”고 언급한다.

 

2. 바이에른 주의 장군인 폰 자우어가 1988년 10월 말 뮌헨의 정치경제 학회에서 한 발언을 참조하자. - (베벨, 『상비군 부재』, 77쪽)

 

3. 이와 관련해서 1891년 2월 27일 독일의회에서 카프리비의 언급을 참조해보자.

 

4. 이런 "사격 자동화 장치"에 루크 하사는 비공인된 사람이 작동할 수 있으므로 위험을 초래할 수 있지만 부르주아지들의 비명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성한 존재, 즉 자본가적인 유사성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봉건적인 파벌에 대한 두려움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더벅머리 페터』의 사냥꾼처럼 고통스러워하며 "도와주세요, 착한 사람들아!"라고 외칠 것이다. 이에 부르주아들은 "독일군대의 규율은 병사들이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했군"이라고 헛소리한다. 라이프치히 일간지와 같은 신문이 코페닉 사례에서 기록했다. 물론, 부르주아지들도 절망적인 상황에서 군국주의라는 광기어린 파괴의 신의 자유로운 희생을 막지 못한다. 또 다른 비극적인 충돌이다!

 

5. 보건적인 측면에선 매우 심각한 문제며, 프랑스에서는 결핵과 매독으로 인한 인구 감염이 높은 수준으로 발생했다. 이를테면 프랑스에서는 독일 군대보다 결핵 환자가 5배에서 7배 더 많이 기록되었다. 한 사람은 프랑스 병영숙소는 사라져야 한다고 경고했으며, 몇십 년 후에는 프랑스의 인구 감소를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6. 슈펠(Schippel)의 소책자, P. 929 참조.

 

경찰은 앞선 군대, 특히 남용을 저지른 장교들에 대해선 무력한 상태임을 유념해야한다. 더 나아가 군사적 미학으로 지속적으로 거리를 막고 도로교통을 방해하는 군사행진의 특권에 주목해야 한다. 몇 년 전에 베를린에선 이런 조롱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거만이 극한에 이르렀으며 일반적인 위험으로까지 이어졌다. 화재 대응을 위해 출동하던 소방서 부대가 군사행진에 막혀 상황을 대처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행진은 소방대원들이 차지할만한 자리를 내주지 않았고, 고상한 군사적 행진이 방해받지 않도록 그대로 진행했다. 이러한 행동은 후에 비난받았다.

 

7. 경찰이 도움을 주지 못하는 국가에 기록에 따르면, 전문가로 위치된다. 군대에 앞서,

특수하게 관리자들은 초과하게 전념한다. 우리는 게다가 특권을 기록하고자 하며, 군사적 관리에 따르면 자주 길가에선 더욱 길이와 랭크가 닫게된다. 교통을 간섭하고, 감각과 근거들도 없이, 물론 퍼레이드는 군사적 미학에 전달도니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베를린에서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지나친 흥분을 본다. 한계와 흔한 위험을. 화력군단의 부분에선 화력은 멈추고, 군사적 기둥으로 멈춰지고, 행진한다. 고상한 집안을 교란하는 걸 제외하고, 아름답고 위엄있는 명령에 주며, 후에 반대하는 행위를 한다.

 

8. 『미국의 흑인 병사들』, 1906년, P.638번, 베를린에 Lokalanzeiger의 논문을 참조하라.

 

9. 참으로 의심쩍은 성자들! 1903년의 11월의 빌제 사건, 폴바흐와 같은 "작은 요새" 사건, 도박과 샴페인 마시기에 관한 규칙, 장교들의 결투 - 장교 명예에는 훌륭한 꽃들인 브뤼에즈비츠의 살인(1896년 10월), 후에 일어난 총격사건(아렌베르그, 13쪽과 이어지는), 하름로스와 루스트랏 사건, 사진적으로 생활을 사진처럼 정확하게 묘사하는 빌제와 바이어라인 소설, 슐리히트의(반디신 백작) "일류 남자들", 예스코 폰 푸트캄어, 마지막으로, 이 소설에서 프린스 아렌베르그 스캔들을 상기해보면 된다. 프랑스의 ‘작은 요새’ 도시인 베르당은 1906년 가을에 꽤 호응을 얻었다. 물론, 군복을 신성시하는 사람들에겐 이 모든 건 재미있고 사랑스러운 약점이겠지만, 여전히도 기독교적 믿음을 굳게 고수한다.

 

다시 우리에겐 눈부신 최고의 국제적 연대의 선언이 여기에 있다. 영국 근위병 장교들은 서로를 채찍질하는 했다는 건 흥미로운 사례이다! 『청년 사회주의, 1903년 3월』

 

10. 이 부사관은 “신의 대표자”이다.

 

11. 가장 강력한 증거는 군인들의 자살 통계자료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역시나 국제적인 문제다. 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독일에선 1901년에 3700명 중 한 명이 자살을 했고, 오스트리아에선 약 920명 중에 한 명이 자살을 했다. 오스트리아 제10군단에서는 1901년에 80명의 군인과 12명의 장교가 자살했으며, 127명이 자상을 입거나 학대를 당한 결과로 정신을 잃고 군인의 효력을 잃었다. 동일 기간에는 같은 군단에서 400명이 탈영했으며, 725명은 고역 노동이나 엄격한 감금을 받았다! 이는 분명하게 민족 간의 투쟁으로도 악화한다.

 

12. 법에서 정한 기간보다 오래 복무하는데 서명한 독일 군인을 “말뚝”박은 사람이라 불린다. “말뚝”에는 추가 2년 복무를 약속하는 계약서에 서명하고 100마르크 (£5)의 보너스를 받는다. 이는 부사관이나 간부가 되기에 적합한 병사들을 선택한다.

 

13. 1891년 독일에서 도입했으며 (최대 1000 마르크). 이전에는 작은 지역에서만 있었고, 비정기적인 수당 지급으로 제국 내에선 선례를 확립했다. 또한 다른 국가에서도 유행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프랑스에선 계좌가 훨씬 크다(최대 4000 프랑). 부사관 학교도 여기에 속한다. - Vogel von Falkenstein의 1891년 3월 2일 제국의회 연설 참조.

 

1891년 2월 27일 카프리비의 제국의회 연설에는 아름다운 자본가이자 군국주의자의 고백으로, 그의 두려움과 욕망, 희망과 목표, 그리고 그 목표를 추구하는 방법들이 담겼다. 이 연설은 마음의 창문을 열어주며, 그의 가장 깊은 비밀까지도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연설은 “(반)사회주의법을 재도입하지 않을 조건도 내걸었는데 사회민주주의를 기반에 대항하거나 그에 대항하는 대비책을 내야한다.”는 진술로 시작한다. 이 조치 중에 하나는 부사관들에게 “민간인 예비 증명서”와 함께 보험료를 지급하는 것이었다. 카프리비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14. “프로이센에선 더 나은 교육을 받기 때문에 부사관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증가하고 있다. 책임을 지는 장교들은 부하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낄 때만이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다. 만약 지금 규율을 집행하는게 어렵다면, 우리는 사회민주주의에 맞서 싸우기가 한층 어려워질 것이다. 이싸움은 단순히 총을 쏘거나 찌르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나의 기억인 1848년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 당시엔 오랜 기간의 교육으로 생각이 표면화되기 전이었기에 부사관들은 매우 좋은 군인들이 사회민주주의를 상대해야 하는 지금보다 조건이었다. “우측에선 옳소, 옳소”라고 한다. 그리고 극단적인 경우로 우리는 적과 싸우는 것보다 사회민주주의들과의 싸움에 훨씬 더 나은 비위원장들이 필요하다. 적들에게 군대는 애국심과 고귀한 감정들로 자신을 희생을 감내하도록 유도할 수 있지만 거리의 싸움으로 일어나는 모든 건 군대의 존엄성을 높일 순 없다. 군인들은 언제나 자국 국민들과 맞선다고 느낄 것이다. 비위원장들이 우리가 그들을 키우려고 노력해야만 우리의 우월성을 유지해야한다. 연합국 정부는 부사관 계급의 수준을 높이기를 바라며 그는 또한 비위원장들을 “국가와 끈적하게 연결된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는 동시에 엘리트 병사들의 심리를 잘 묘사한 발언이었다.

 

15. “민간인 생활 증명서”는 군 당국이 부여하는 문서다. 군 당국에서 해당 인물은 현역에서 일정 기간을 복무한 사실을 증명한다. 규정된 규정에 따라 제국 및 연맹 당국에서도 민간 일자리를 제공받는 자격을 부여한다.

 

16. 어중간한 식단, 침대와 조명, 누적된 피로로 억류된 것 외에도 미개한 처벌의 영역에서

“구속”이라 불러진다. 오스트리아 군인들을 “구부러진 자세를 핀으로 고정하고” 벨기에 군인들은 국제적으로 동원된 해군 군함과 지하감옥에선 “채찍”이 사용된 것으로 잘 알려졌다.

프랑스에선 훈련상으로 제외된 프랑스 군인들에게 끔찍한 고문기구들을 “정치범”에게도 사용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02년에 출판된 “현대적인 사회주의자들 연합”이란 “백니스 군대들”의 소책자에 담긴 삽화를 참조하면 엄지 고문기구, 수갑 및 포박을 사용했으며, 조지 다르엔 브리타뉴에서 비밀리에 언급한 북아프리카에선 군사적 징계기관을 총칭하는 “비리비”가 있다. 프랑스 외인부대와 징계회사, 교도소, 고문 노동을 담당하는 회사인 de discipline, penitencieurs 및 traveux forces의 희생자들에 대해서는(데이쿠미그, "Neue Zeit", 99-100, 페이지 365 및 페이지 369)과 같이 1906년 12월 8일과 10일의 회의실 토론에선 현재에는 “비리비”를 적극적으로 규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영국의 수류탄 투척병 장교들은 높이 평가할만한 민주적 열정으로 서로에게 가하는 징계적 비난 (Jeunse Socialiste, 1903년 3월)에 대한 열의는 언급될 가치는 있다.

 

17. 군사적인 시각에서 이 모든 교육 방법들의 결과는 다른 곳에서 논의되었다. 여기선 부르주아뿐만이 아니라 무정부주의자, 준-무정부주의자들도 군대에 대한 반대로 인해서 지나친 분노의 외침을 보인 도덕적인 결과에 대해 주목하고자 한다. 안토니 프랑스의 “군대는 범죄를 위한 학교이다.”라는 지적이나, 리히트 교수는 “음주, 경범죄, 위선들은 바람직한 군대 생활의 부분이다”라고 지적했다. "manuel du soldat"에 따르면 병역기간은 “잔혹한 악행을 수습하는 과정이며”, “난폭한 행위의 교실”이며, “도덕적으로 비겁하고, 순종적이고, 노예적인 공포”를 초래한다고 전해진다. 사실, 한 군사 축제는 “국가를 유지하는” 의미로 당연하게도 취기에 취해지는 걸 쉽게 상상할 수 있다. 1906년 12월 1일의 Leipziger Volkszeitung은 목사 César가 “술에 취한 난투”라 불리는 군사모임의 축제를 언급한다. 보건적으로도 결코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프랑스 군대에 대해서는 기록의 p.25를 참조하라. 민주주의 국가인 영국과 미국의 상비군들의 위생 상태도 매우 열악하다. 1906-07년에는 죽은 인원들은 독일보다 훨씬 많았으며 L. M. O'Reilly 군의 의사 총장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군대는 7.13 및 6.18 명 중 1명이 기질염과 알코올 중독으로 전 세계 어느 곳보다 더 만연하다.


18. 자국의 적과 투쟁을 언급할 땐, 자연스럽지만 “해외의 적을 상대하는 군국주의”에 맞서는 국제 연대의 정신과의 투쟁들도 포함한다.

 

19. 관련 자료로 장교가 직접 쓴 예나 코스트노블 “사회민주주의와 군대”와 베벨의 “상비군을 대신하는 시민군”에서 46쪽 이후에 소개된 자료들, 그리고 “사회민주당 유권자를 위한 안내서”(1903)의 33쪽 이후에 소개된 자료가 있다.

 

20. 이와 관련해서 유명한 Gaedke 사건을 참고해보자, 프러시아의 항소법원은 군국주의의 놀라운 야망을 합법적으로 인정해 세간에 알려졌다.

 

21. 의사들 중에서도 다수가 이런 압력을 받는다. 이에 대한 결과론 1894년 1월 17일자 Vorwaerts 신문의 주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압력에는 예비 군의관뿐만이 아니라 전문적인 기관에도 영향을 미치고, 이로부터 비군인 의사들에게도 압력을 가한다.

 

22. “병역 입영자”들은 독일에서 장기간 복무하거나 군에서 퇴역한 사람들이 민간인으로서 직업적으로 일할 권리를 획득하는 걸 말한다. 그들이 특정 직업에서 일할 수 있는 “민간 생활 보증서”를 얻으며, 해당 직업적으론 “병역 입영자”가 전체의 50%를 차지한다. 이들은 민간인들보다 우선권을 가진다.

 

23. 지능적인 신발장수이자 죄수였던 볼트와 대담한 쾰펜닉의 “대장”의 모험담은 자유당들에게 경고를 받았다.

 

24. 이 단어는 문자 그대로와 비유적인 의미에서 모두 적용한다! - p. 48쪽을 참조하라.

 

25. 독일에는 이런 공무원들의 조합인 “독일 군 취업 예비자 연합”이 존재한다.

 

26. 1906년 Lokalanzeiger, No. 496을 참조하라.

 

27. 프로이스터(Feuchter)의 “파우더링”, 1896, p. 25~30 참조

 

28. “군대생활의 즐거움”(“Lustig ist’s Soldatenleben”). p. 51 세부항목

 

29. 동아시아 전쟁과 관련해선 대부분의 패잔병들이 마지막 남은 곳은, 1906년 말에 큰 충격을 주었던 그루코-리드발스(Gurko-Lidvalls)의 일가가 있던 곳이다.

 

30. 해군 행정기관, 18,939명; 프러시아 육군 행정

 

31. 1906년 겨울 포젠(Posen)에서 발생한 무기 도난 사건의 경우에, 스판다우(Spandau)의 공장 노동자로 피고인은 계속해서 "장교로" 어느 정도 자신의 상급자이자 도둑이었던 포페(Poppe) 중위의 명령을 따라야 했다고 진술했다. 이는 그들은 훈련을 받았고 포페는 피고인이 소속했던 공장에서 일하지도 않았다. 진품 장교복은 코페닉(Koepenick) 대위의 불법 복장과 마찬가지로 민간인들 사이에선 그의 미심쩍은 일에 도움을 주었다.

 

32. 스판다우 공장에서 발생한 고난은 매년 제국의회(Reichstag)에서 논의되고 잘 알려졌다. 베를린 군단의 의류 부서에 관한 내용으론 1906년 8월 25일에 출판된 슈니더(Schneider) 전문지를 참조하면 된다. 프랑스 해군 공장인 브레스트(Brest), 로리앙(Lorient), 셰르부르(Cherbourg), 로쉬포(Rochefort), 툴롱(Toulon)의 내용은 1905년 11월 11일 자의 템스 누보(Temps Nouveaur) 신문을 참조하면 된다. 현재 1906년 12월, 툴롱 해군 공장의 공장 노동자들 사이에선 강력한 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어떻게 끝날지도 예측할 수 없다.

 

33. 프랑스 정부는 이런 조치들을 공식적으로 정당화하려고 템스 누보(Temps Nouveaur) 신문 등의 반군국주의 선전에 주목했다.

 

34. 1905년 12월 2일 법률과 관련한 라이프치히 대중신문(Leipziger Volkszeitung), 1906년 12월 14일자를 참조해보자.

 

35. 미궁 속에서 크로이차이퉁(Kreuzzeitung)이 꼼지락거리는 걸 보는 건 즐겁다. 절망적인 처지에서 그들은 사회민주주의가 난관에 빠졌다는 걸 주장하며 그 관점을 바꾸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즉, 쾨페닉(Koepenick) 공격에 혁명 발생할 경우에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계획한 건 세상에 너무 일찍 드러내었고, 이제 그 계획들은 실패할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들을 촉발하는 건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하며, 이러한 계획들은 자본주의 질서 아래에선 절대로 실패할 수 없으며, 크로이차이퉁(Kreuzzeitung) 기사들은 그런 절망적인 노력으로 손가락을 움직일 일이 없을거란 건 착각이다. “부디 감사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군대에 의지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말은 쾨페닉(Koepenick)에서 용감하게 일어난 일 직후에 우리 부르주아 속물자들이 안심의 한숨을 쉬던 정직한 탄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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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자본주의적 군국주의

 

서문

 

군국주의에서 특수한 자본가란 없다. 게다가, 적절하고 필수적인 자본주의적인 체제가 최종적인 모든 계급사회의 체제에선 적합하고 필수적이다. 자본주의는 다른 계급사회의 체제와 마찬가지로 군국주의를 위한 군국주의를 특수한 종류로 개발한다.1) 군국주의의 본질은 사회제도의 종류에 따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끝나거나 분산의 합일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를 수 있으며 개별적으로 끝난다. 이것은 군사조직을 비출 뿐만 아니라 군국주의에 따른 다른 결과에서도 군국주의가 임무를 수행할 때도 분명해진다.

 

일반적으로 군복무에 기반한 군대는 자본주의적 발전 단계에서 가장 적합하다. 비록 국민들로 구성된 군대이지만 인민군은 아니고 국민들에 대항하는 군대이거나 더욱 더 목적을 염두해두고 형성되며 주로 상비군이나 민병대로 나타난다.

 

상비군은 자본주의에서 단독적으로 특수한 특징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2) 가장 발전하고 심지어는 일반적인 형태이기도 하다. 이것은 나중에 언급하겠다.

 

“해외의 적에 맞서는” 군국주의, 해군주의와 식민지적 군국주의. 전쟁의 가능성과 군비축소.

 

사회에서 자본주의적 질서의 군대들만이 아니라 다른 계급사회의 체제에서도 이중의 목적을 돕는다. 우선적으로 해외를 타격할 필연적인 국가기관이며 외부로부터의 위험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간단하게 군대는 필연적으로 국제적인 문제에 사용하거나 군사적 용어로 “외부의 적에 맞선다.”

 

근래의 발전에서 이러한 군대의 수단은 폐지하지 않는다. 타당하게 자본주의적 전쟁이라는 몰트케의 말을 빌리자면 “신의 세계가 명령한 근거”3)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유럽은 전쟁의 원인을 처분하려는 경향이 있다. 유럽에서 전쟁이 발생할 원인이 점차 덜해질 것임에도 불구하고 알자스 로랭의 열망으로 조직된 프랑스의 삼인방인 클레망소, 알자스 로랭, 피카르트는 동부유럽의 문제에 있는 범이슬람주의에도 불구하고 현재 러시아의 혁명에서 일어나고 있는 혁명에도 불구하고 반면에 문명화된 국가를 추구하려는 상업적이고 정치적인 목표가 확장될 수 있는 결과4)를 발생할 큰 위험을 얻는다. 이러한 마찰의 원인은 첫째로 동부 유럽의 문제와 범이슬람주의의 결정에서 내려진다. 세계정책 특히 식민지 정책의 결과로 부엘로는 독일의회의 보류 없이 1906년 11월 14일에 승인된 5개의 세계정책5)은 같은 시기에 일어날 무수한 물리적 충돌6)이 일어날 가능성을 내포한다. 해군주의와 식민지적 군국주의라는 두 가지의 다른 종류의 군국주의를 선두에서 강하게 주장했다. 우리 독일인들은 발전의 두 가지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해군주의, 또는 해군적인 군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쌍둥이 형제이다. 상륙할 수 있는 모든 역겹고 악의적인 특성이 이 후자에 있다. 현재의 군국주의보다 더 높은 수준의 세계전쟁에 대한 국제적인 위험의 원인할 뿐만 아니라 결과이기도 하다.

 

경건한 사람들과 기만자들이 우리를 설득하려고 할 때 이를테면 독일과 영국 사이의 긴장7)은 그저 언쟁, 적의적인 신문기자들의 선동, 외교적인 공연에서 나쁜 음악가들의 자랑 연설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더 잘 안다. 우리는 세계시장에서 영국과 독일이 언제나 경제적으로 발전한 필연적인 긴장관계인 무제한적인 자본주의적 발전과 국제적인 경쟁이라는 직접적인 결과라는 것을 안다. 쿠바를 둘러싼 스페인과 미국의 전쟁, 이탈리아의 아비시니아 전쟁, 영국의 트란스발 전쟁, 청일전쟁, 중국 강대국들의 모험, 러일전쟁은 특수한 조건과 정세가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론 팽창전쟁이라는 특징을 소유하한다. 티베트에서 러시아 백인의 페르시아와 아프카니스탄의 긴장관계를 1906년의 미국과 일본의 불일치와 마침내 1906년 12월 8일의8) 프랑스와 스페인의 협정으로부터 장엄한 기록의 모로코에서 일어난 물리적 충돌과 함께 우리는 자본주의적 정책의 팽창과 식민지 정책이 세계평화의 조직이라는 무수한 함정을 둔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전선에선 대부분 다양한 손을 거쳐가며 함정은 매우 쉽고 예측할 수 없는 폭발을 일으킨다.9) 세계를 분할하려는 분명한 시기가 오며 식민지적 소유의 모든 가능성들은 독점화를 진행할 것이다. 국가 사이의 식민지적 경쟁의 예선은 제한적이지만 카르텔과 트러스트 간의 자본가들 사이에서 사적 경쟁으로 성취될 수 있으며 우리는 인내를 가져야한다. 중국의 경제적이고 민족적인 자각은 단독적으로 먼 미래로 연기될 것이다.

 

군비축소로 계획된 모든 혐의들은 멍청하고, 빈말이고, 거짓된 시도일 뿐이며 이들은 헤이그 소동의 명예로운 작가로 황제의 도장을 얻을 것이다.

 

최근들어서 허황된 군비축소의 혐의들은 영국의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터져나왔다. 할데인 전쟁 장관은 이 의도된 혐의의 옹호자였고 군대의 축소에 대한 그의 반대를 노골적으로 전달했으며 군국주의의 선동가로 입증되었다.10) 같은 시기에 백인 프랑스의 군사적 협정은 수면 위로 올렸고 같은 시간대에 두 번째 스웨덴에서 평화회담이 준비되어 해군을 증가시켰다. 미국11)과 일본은 전쟁예산을 늘렸다. 프랑스의 클레망소 부처에선 강한 육군과 해군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2억 8천만 12백만 달러(10,400,000 파운드)를 부담할 것을 요구했다.12) 함부르크의 나크리히테는 군사적인 군비확충이 국가의 신뢰로 오직 구원될 수 있음을 독일의 계급지배에 대한 국가적 정신의 진수였다. 그리고 독일의 국민들은 정부에 호의적이었다 게다가 전쟁비용의 증가를 요구했다.13) 이후에 자유당들조차도 열렬하게 지지했다.14)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헤이그 법정의 중재원이던 데스트루넬 드 콩스탕이 언급한 순진한 말을 측정할 수 있다.15) 최근 기사에 따르면 군비확충의 제한에는 정치적 몽상가에게 군비축소를 위한 여름을 지내기 위해 단 한 마리의 제비도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그를 위한 제비들은 차고넘쳤다. 상당히 흥미로우며 이와는 대조적으로 노골적으로 무자비한 열강들과 회담에 참가했다. 두 번째 회담의 의제로 거론된 유용한 제안을 철회하고 군비축소의 문제에 대항했다.

 

군사적 영역에서 자본주의의 세 번째 분파인 식민지의 군국주의에 한 마디하겠다. 식민지 군대는 즉 상비된 식민지 군사들은 아마도 식민지의 민병대가 아니라 독일의 남서아프리카에서

계획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민병대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대부분은 자주적인 영국의 식민지이며 영국을 위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다른 문명화된 국가에서도 중요성은 증가한다. 영국의 식민지 군대의 경우에는 식민지 “국가의 적”으로 억압하는 일을 수행하거나 식민지의 출신인지를 확인해서 감시하거나 이를테면 점령된 식민지의 외부적 적인 러시아에 맞서는 군대이다. 식민지를 소유한 여타의 국가에선 특히 미국과 독일에선16) 대부분 16세기에 독점적이었고 식민지 군대와 주요한 과업을 “수비적인 파견대”, “외국인 군단”17)이라는 명칭 아래에 불행한 원주민을 농노와 자본주의의 노예로 이용했다. 그들이 조국을 방어하기를 바랄 때 대외의 정복자들과 착취자들은 무자비하게 쏴죽이고, 칼로 토막내거나 굶겨 죽이는 것은 군대의 의무였다. 식민지 군대는 유럽인구18)의 찌꺼기들과 연관해서 자본주의적 국가 중에서도 가장 야만적이고 가히 끔찍할 정도로 도구로만 취급했다. 열대적 광기를 타고나 열성적으로 저지르지 않은 범죄가 거의 없을 정도다.19) 워먼스, 포트비엘스키스, 레스트, 웰란스, 피터스, 아렌버그의 회사들. 독일에 관한 증거이자 목격했다. 우리는 식민지의 정책을 인식하는 결실을 얻었다.20) 식민지 정책은 기독교와 문명을 전파하기 위해 가려지거나 국가적 명예를 옹호하기 위해 식민지와 자본가의 이익과 관계하고 낙원을 동경하면서 착취하고 기만했다. 무방비한 살인과 강간은 소유물을 불태우고 재산을 강탈하고 털었으며21) 따라서 기독교와 문명에 조롱과 수치를 데려왔다. 인도와 통킹, 콩고, 독일령의 남서부 아프리카, 필리핀에선 피자로와 코르테즈의 주역들도 퇴색하게 했을 정도다.

 

프롤레타리아와 전쟁.

 

해외에서 적에 대항하는 군국주의의 기능을 국가기능이라 할 때 자본주의에서 지배되거나 학대받는 민족의 의지와 복지에 일치하는 이해관계를 의미하진 않는다.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겐 이 정책에서 요구할만한 이점이 없다. 사실은 해외의 적들과 대항한 군국주의를 필요로하는 이익관계에 대해 대부분을 투쟁하고 반대한다. 이 정책은 직간접적으로 자본주의에서 착취계급의 이익관계에 복무한다. 난폭하거나 혼란스러운 생산적인 세계와 무분별하고 살인적인 자본주의 경쟁을 많거나 저개발민족을 향해 모든 문명의 의무를 굴복하거나 짓밟으며많거나 적게는 포장하려는 재주의 방식으로 애쓴다. 현실적으론 전쟁의 복잡한 문제를 상기해보면 제정신이 아닌 위험에서 우리 문화의 전반적인 구조를 구해낼 수 없다는 것에 이른다.

 

프롤레타리아는 마찬가지로 우리의 날인 산업적 호황을 대단히 환영한다. 하지만 평화로운 경제적 호황은 무장된 손이 없으며 군국주의와 해군주의가 없고 우리의 주먹과 삼지창도 없으며 식민지에서 경제정책의 야만성도 없이 합리적인 기반 위에서 국가를 수행하고 국제협약에 따라 의무와 문화적 관계가 조화를 이룬다면 말이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우리의 세계정책이 자국의 지배계급에게 닥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곤경을 폭력의 수단으로 광범위한 규모의 혼동스럽고 어설프게 승리하려는 정책이라는 것을 안다. 한마디로 보나파르트주의자의 정책은

기만을 시도하고 방황으로 안내한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노동자의 적들이 온건한 쇼비니즘의 불에다가 스프를 조리하며 옹호한다는 것과 이미 1887년에 비스마르크가 일으킨 부도덕한 전쟁의 공포는 적절하게 가장 위험한 반동적인 이익관계를 증가시켰다. 최근에 공개된22) 고위 인사들의 작은 계획에는 “승리한 군대가 자국으로 귀환하는 후에” 소란스럽고 애국적인 분위기에 있는 동안 독일국민들에게 독일의회의 선거권을 박탈하려는 목적을 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이 정책으로 경제적 호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고 특히 식민지의 정칙에서 모든 이익을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세습적 적인 자본주의에서 고용계급의 주머니로만 흘러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지배계급의 임금노동자들에게 무거운 생의 희생을 강요한다는 것을 안다.23) 장애인들을 위한 비참한 생활보조금과 보상하기 위한 소유물과 참전용사의 자금을 도우며, 나뒹구는 장기기관과 전쟁이 치러진 후에 차여진 모든 것들. 프롤레타리아는 모든 전쟁에서 야만적이고 비열한 전쟁에 참가하려는 사람들에게 만연하고 문화가 수년 간 후퇴한다는 것을 안다.24)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싸우는 조국이 조국이 아니며 모든 국가에서 오직 하나의 진정한 적인 억압하고 착취한 자본주의 계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모든 국익관계가 오직 국제적인 공동의 이해관계에 우선한다는 것을 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전쟁에 고용될 정도로 자신의 형제와 동지들과 투쟁을 이끌 것이며 따라서 소유한 이익관계와 반하여 투쟁할 것이다. 계급의식을 가진 프롤레타리아는 군대의 국제적 위험과 전체적인 자본주의의 팽창정책에는 극도로 무관심하지만 왜 그런지 분명하게 적대적인 입장을 가지면서 왜 그러한지 분명하게 안다. 투쟁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이다. 군국주의의 치아와 손톱인 계급과 이 과제를 더욱 인식하게 된다. 이것은 국제회의에서 보여준다. 프랑코 독일전쟁이 발발했을 때 독일과 프랑스 사회주의자 사이에서 우애의 징후들과 쿠바전쟁이 발발했을 때 스페인과 미국의 사회주의 사이의 우애의 징후들, 1904년 동아시아 전쟁이 발발했을 때 러시아와 일본 사회주의들 사이의 우애의 징후들. 1905년의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스웨덴-노르웨이의 전쟁에서 총파업을 선언하기로 결정했고, 독일사회민주당이 870루피의 전쟁공제에 대해 취한 의회적인 태도는 모로코에서 증명되었다. 또한 러시아의 개입을 향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태도에서도 증명되었다.

 

“자국의 적”에 맞서는 군국주의의 성격과 과업.

 

군국주의는 외로부터의 적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계급모순이 더욱 확실해지고

다가오며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이 성장함에 따라 군국주의에서 외부형태와 내부성격은 더욱 분명해진다.25) 이 과업은 사회의 지배적인 질서를 유지한다. 군국주의의 임무는 자본주의와 해방을 위한 계급투쟁의 반동을 지지한다. 군국주의는 여기서 계급투쟁의 단순한 도구로 분명해지고 지배계급의 손에 쥐어진 도구로 분명해진다. 군국주의는 필연적으로 계급의식의 발전을 지연한다. 치안과 정의로운 법정, 학교, 교회 함께 조력하면서 무엇보다도 소수를 위한 안전을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다수인 사람들의 계몽된 의지, 국가의 지배와 착취에서의 해방을 방해한다.

 

우리는 보다 덜도 더도 아닌 어느 것도 원하지 않는 현대의 군국주의와 맞선다. 살해자 적과 압제자의 앞잡이가 되는 무기의 순환에 정면으로 사회조직에서 나이에 따른 계급을 구분하려는 모든 인위적인 수단에서 노동자에게 감히 사람 대 사람으로 맞서서 강요에 대한 도전으로 맞선다. 동지, 친구, 부모, 형제, 자매와 아이들에게 그들이 소유한 과거와 미래를 어두운 먹구름을 끼게하는 강요에서 현대의 군국주의는 민주적이며 전제적이기를 원한다. 계몽적이고 기계적인 동시에 민족주의적이면서 국가에 적대적이기를 원한다. 군국주의는 민족주의와 심지어는 그 종교와도 맞선다.26) 직접적으로 독일을 예로 들자면 폴란드27), 알자스, 덴마크의 군국주의에 고용된 비-프롤레타리아 계급 가운데 맞선다.28) 물리적 충돌로 다수가 변화하기에 적합한 현상29)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할 수 있는 프로이센 독일의 군국주의는 자라서 기이한 꽃이 되었다.

독일에서 절반은 전제주의자 봉건적인 관료주의의 조건으로 프로이센 독일의 군국주의는

자본주의적 군국주의의 모든 종류에서 나쁘고 위험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군국주의의

모범적인 모델은 현재 상태, 형태에서 군국주의의 체계성과 효과들이다.

 

비스마르크의 말을 빌리자면 아마 누구도 프로이센의 중위를 흉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누구도 독일의 군국주의를 흉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국가 내에서 국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를 넘어선 국가가 된 프로이센 군국주의를 흉내낼 수 없었다.

 

참조

 

1. 베른슈타인이 1905년 6월 5일 사회주의자 지에서 현재의 군국주의 제도는 단지 상속한 유산일 뿐 그저 봉건적인 군주제에 가깝다고 말한 것은 틀렸다.

 

2. 러시아를 보라, 특수한 상황은 국내의 상황이 없어지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돕는 상황이 생겼다. 이를테면 고용된 군대들은 상비군들과 일반적인 군복무와 다른 형태로 기초한다. 15세기 이탈리아의 도시들에는 민병대가 있었다.

 

3. 1880년 12월에 블론츨리에게 보낸 잘 알려진 편지에서 그는 영구적 평화는 꿈이며 기분 좋은 것은 아니라고 했으며 전쟁은 운명적 세계의 지시를 전달한다고 했다. 전쟁은 숭고한 남성의 가치를 수면 위로 올렸으며 즉, 용기와 금욕, 한 사람의 의무에 대한 충실함과 한 사람의 생애서 위험에 따른 희생을 준비하게 했다. 세상에 전쟁이 없이는 유물론은 고여버렸다. 몇 주전에 몰티케는 다음과 같이 썼다. “각 전쟁은 국가적 재앙이다.” (전집, pp.193.200) 1841년에 아우스버그의 알레그메의 차이퉁지에선 우리는 자주 일반적인 유럽의 평화에 대한 견해를 지지했고 매우 조롱했다.

 

4. 휴블러의 표에 따르면 세계 수출 무역의 총 가치는 1891년 75,224만 파운드 (3조 61,200만 파운드)에서 1905년 109,000만 파운드 (5조 450만 파운드)로 증가했다.

 

5. “오늘날 우리의 입장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해외의 목적과 이익관계”이라고 말했다.

 

6. 이 주제에 대한 몰트케의 견해는 매우 까다로웠다. 그에 의하면 내각전쟁은 과거의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는 정당 지도자들을 전쟁의 위험하고 범죄적인 도발자로 간주한다. 당 지도부와 증권거래소! 확실하지만 때때로 그는 통찰력이 있다.

 

7. “1910년의 침략”이라는 제목의 영국 국수주의의 기이한 출현이 특징이다.

8. 1906년 모로코 분쟁의 결과로 프랑스는 동부 국경의 확보를 위해 1억 파운드 (500만 파운드) 이상을 지출했다.

 

9. 1906년 12월 초 예산위원회의 토론을 보라. 함부르크의 해운 이익을 대변하는 부관인 셈러가 하메손의 방법으로 페르난도 포를 포획하려는 계획에 대해 논의했다. 그러나 그 계획은 결코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10. 1906년 11월 29일 크뢰즈자이퉁(Kreuzzeitung)이 "보편적인 군복무는 영국인들에게 전쟁의 심각성을 더 잘 이해하도록 교육시킬 것"이라는 이유로 후회하는 보편적 군복무를 당분간 반대한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 독일에서, Kreuzzeitung의 기사들의 희망에 따라, 전쟁과 평화에 대한 결정은 사람들에게 있는 동안, 사람들에게 생명과 재산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보편적인 군복무의 유일한 목적입니다. 전쟁의 심각성을 가장 덜 느끼는 사람들의 손 그들은 심지어 외국에 있는 민주주의를 볼 때 민주주의를 감상할 줄도 안다.

 

11. 루스벨트가 1906년 12월 4일에 보낸 지시를 보라.

 

12. 주로 모로코 분쟁에 의해 정당화된다.

 

13. 해군은 2,450만 파운드 (1,250,000 파운드), 육군은 5,100만 파운드 (2,500,000 파운드), 이자는 700만 파운드 (350,000 파운드)이며, 1906-7년 예산 대비 약 8,300만 파운드 (4,140,000 파운드)가 증가했습니다! 무제한적인 해군 군비의 향후 전망은 1906년 12월 21일 라이히스보텐에서 영감을 받은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게다가 막대한 식민지 전쟁 지출(중국 원정, 4억 5천 4백만 파운드(2천 4백 5십만 파운드), 동아프리카는 2백만 달러(10만 파운드)가 증가했다. 1906년 12월 13일, 지출 비준 요구는 이제 갈등과 국가 해체를 야기했다.

 

14. 이를테면 1906년 10월 27일의 베를린 타페블라트를 보라. 특히 1906년 12월 13일 아블라스에 의해 도입된 의심스러운 법안과 1907년 1월 25일 자유당의 선거 전쟁 외침이 있었다.

 

15. 1906년 10월 1일 라 리뷰 "실제로 달성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레뷰의 편집자가 언급한 군축운동은 그의 깊은 비밀로 남아있다.

 

16. 1906년 10월 Dernburg의 "Memorial"에 따르면, 그의 식민지 지출은 대차대조표에 그 사실을 은폐하려는 모든 시도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으로 군사적 성격을 띤다.

 

17. 1900년 12월 12일 이후, 프랑스는 정규적인 식민지 군대를 가지고 있으며, 가장 끔찍한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1906년 12월 7일 햄버거 특파원 (제621호), 페이지 30에 주목하라. 독일에서 그들은 그러한 군대를 소집하기 위해 바쁘다. 그들은 그 방향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18. 비데 페로즈, "인도차이나의 프랑스와 일본"; 파민, "군" 식민지"; E. 은둔의 "페트리오티즘과 식민지화"; Daumig's 슐라크토퍼 데 밀리타리스무스, 노이 자이트, 99/00, 페이지 365;

19. “아프리카의 전투” p. 369. 1906년 12월 3일 독일 제국의 로렌 부대표를 위한 추가 사항이다.

 

20. 징계제도는 또한 특히 심각한 형태의 잔혹성을 드러낸다. 프랑스 외인부대 및 바타일롱 다프리크 대미그 L.C.를 보라.

 

21. 이 위선적이고 부끄러운 망토는 이제 벗어났다, 모든 것들과 함께. 희망할 만한 냉소주의. 월간지 다이에 지비(G.B. 독일 코오롱엔 (1906년 10월): "우리는 식민지에 있는 사람들의 기독교인을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지 우리를 위해 일하도록 되어 있을 뿐입니다. 인간성에 대한 이 어리석은 수군거림은 그야말로 우스꽝스럽다. 독일인의 감정은 피터스 같은 사람을 빼앗아갔다. 또한 하인리히 하르테르는 1906년 12월 21일 "사절단의 의무는 있는 그대로의 조건에 적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중앙당과 정부 사이의 식민지 정책에 관한 논쟁의 핵심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것만으로도 상인 더른부르크가 (가톨릭) 센터가 소위 세컨더리 정부에 대한 맹렬한 공격을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도, 신성한 "알렉산더스의 대답"은 외국에도 적합하다. 크뢰즈자이퉁 (9월 29일, 1906년)은 미국에 다음과 같이 설교한다: "인디언의 모든 부족의 몰살은 너무 비인간적이고 비기독교적이어서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성을 찾을 수 없다. "존재하느냐 마느냐"의 경우, 이웃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은 식민지가 기독교인들을 소유한다는 개념에 따라 "전체 부족들을 절멸"할 수도 있다.

 

21. 11월 28일 독일 국가 회의에서 기억에 남는 토론을 참조. 1906년 12월 4일, “농양”이 완화되었다.

 

22. 1906년 11월 3일 햄버거 나크리히텐을 참조.

 

23. 전쟁에서 인간의 삶의 손실 1799-1904에서(떨어져 러일 전쟁에서)에 대해 15수백만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24. 몰트케(Moltke), 페이지 9, 각주 *, 그리고 완전한 작품들, 제288장에서는 전쟁이 도덕성과 효율의 수준을 높이고, 특히 도덕적인 에너지를 유발하도록 되어 있다.

 

25. 내부 질서를 강화해야 하는 과제는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계급 사회의 모든 시스템에서 군국주의의 몫으로 떨어진다.

 

26. 1906년 12월 분쟁 동안 문화를 위한 프랑스의 투쟁 참조.

 

27. 1903년 Upper Silesia에서 일어난 선거 폭동 참조.

 

28. 푸흐스뮬을 참조.

 

29. 자세한 내용은 자세한 내용은 챕터 ⅴ, 파트 vide에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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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군국주의

 

공동발의

 

군국주의의 본질과 의미에 대하여

 

군국주의는 우리 시대의 가장 빈번한 전쟁이며 번잡하고 혼란스럽고 다면적인 현상을 의미하며 동시에 그것의 기원과 성격의 방법과 여파를 아는 건 흥미롭고 중요하다. 군국주의는 계급조직 사회의 생활에도 뿌리박힌 현상이다. 아직은 개별국가와 지역의 특수한 자연적,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상황을 다각도의 형태로 드러나는 사회적 제도와 비슷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군국주의는 대부분에 사회적 제도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증후이다. 왜냐하면 군국주의는 가장 강하고 대부분 자기보호 본능을 가진 계급에게 민족적, 문화적, 독점적으로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군국주의의 역사는 인간의 진화와 강력한 권력의 역사를 중심으로 온전한 의미를 드러내며

쓰여진다. 자본주의적인 군국주의의 정밀한 분석은 자본주의에서 가장 은폐된 경찰의 근원을

해부하는 걸 의미한다. 군국주의의 역사는 동시대에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인 역사에 전반적인 국가와 민족 사이의 문화적인 갈등관계와 개별국가와 국가단위 내에서 계급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런 역사를 시도하는 건 의문의 여지도 없지만 분명하다.

 

사회적 관계에 대한 힘의 기원과 기반

 

모든 힘의 사회적 관계에서 결정적인 지점은 마지막 수단이고 사회적 힘으로 보기에 물질적 힘은 우선적이며 한 사람만의 힘1)으로 드러나진 않는다. 게다가 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동등하며 순전히 수칙적인 비율로 누가 다수인지로 결정한다. 수칙적인 비율은 단순하게 이익관계가 모순되는 사람들이 속한 모임들의 수칙과 일치하진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특수한 한 사람의 근원적인 관계까지 정확하게 아는 건 아니기 때문에 계급의식에서 지적이고 도덕적인 발전과 광범위하고 집중적인 단계를 중심으로 결정한다. 그리고 지적이고 도덕적인 단계는 개별적인 이익집단인 계급으로 결정하지만 반면에 정치적, 사회적 지위는 강력한 반응을 보이더라도 다양한 결과와 권력관계의 표출을 대변한다.

 

경제적 우위는 직접적으로 복잡한 수칙적인 비율을 대신할 수 있도록 돕는다. 왜냐하면 경제적 압력은 지적이고 도덕적인 단계의 수준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계급적 이익관계의 인식에서도 암묵적으로 완전하게 계급적 원칙에 거의 순응하고 행동하도록 생산하는 경향이 있다. 지배계급의 정치적 조직이 지배적인 이익집단에게 유리한 수칙적 원칙을 “수정”하고자 증가하는 힘을 빌려준다는 건 알려진 모든 기관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경찰, 사법기관, 학교와 교회도 여기에 포함되며 기관들은 정치적 기구로 세워지고 행정적 능력으로 고용한다. 처음에 두 가지는 주로 협박과 폭력으로 위협해서 작동한다. 학교는 주로 핵심에 도달할 수 있는 계급의식에 대한 모든 과정을 저지하고자 한다. 교회는 악을 드러내는데 눈이 먼 사람들에게 가장 효과적이고 미래의 삶에 대한 그들의 즐거운 욕망과 지옥이 있는 고문실로 협박하면서 경각심을 준다. 그러나 습득한 수치적인 비율도 절대적으로 힘의 관계로 결정하진 않는다. 무장한 사람의 손에 있는 무기는 빈번하게 신체능력을 증가하게 한다. 무장기술은 결과적으로 외부적인 무장과 전략을 포함하여 공을 들여서 이 힘을 증가시킬 수 있는지에 따라 개발에 의존하고자 한다. 지적이고 경제적인 우위는 한 집단의 이익관계에선 순전히 무기를 소지한 신체적인 우월성이나 더 나은 무기를 가진 우월한 계급으로 둔갑한다. 그러므로 계급의식이 강한 다수파가 계급의식이 강한 소수파를 완전히 지배할 수도 있다. 계급적인 분열이 일어나서 경제적 지위를 결정하더라도 계급에 따른 권력의 정치적 관계는 한 사람이 차지하는 경제적 지위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둘째로는 무수한 지적이고, 도덕적이고, 물리적인 수단을 처리하는 경제적으로 지배적인 계급에게 규제된다. 그렇다고 이 모든 행사하는 힘의 집중이 계급의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이 구조는 의존하지 않는 위치에 의해 세워지기 때문에 위치는 다수를 구성할 수 있는 한 계급에게 강제한다. 자연의 명령이 조화를 이룬다면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계급은 소수의 집단을 구성할 수도 있다. 계급투쟁이나 변화에 대한 정치적 힘의 수단도 없이 전자는 국가에 의존하며 남는다.2) 그래서 계급투쟁은 오직 한 계급의 관계에서 희생과 혁명적 실천을 준비하고 수용하며 계급의식을 발전하기 위한 투쟁일 수 있다. 이 투쟁의 중요성은 계급의식을 세우거나 억압하는데 있어 자연적이고 지적인 힘의 수단을 차지하는 물리적 힘의 증대를 포착한다는 걸 의미한다.

 

이 모든 것에서부터 사람들은 무기의 기술이 사회적 투쟁에서 중요한 기능으로 무엇을 하고있는지도 파악해볼 수 있다. 경제적 요구를 할 수 없는 소수파가 적어도 이 기간 동안에는 “가장 집중된 정치적 행위”인 군사작전으로부터 다수파와 전투하고 유지할 수 있다. 지배할 수 있는 위치를 유지할 수 있는지도 이 기술에 달려있다. 계급의 분열을 떠나서 힘의 관계에서 발전은 현실적으로 모든 무기기술의 발전과 연관되어 있다. 모든 사람들, 심지어 최하층에 있는 사람들도 다수의 원칙과 민주주의가 지켜지기 어려운 조건 아래에선 기본적으로 동등하게 좋은 무기를 생산하며 그 사회는 일정한 정치적 형태를 보일 것이다.

 

앞서말한 위의 주장이 옳다면 계급에서 경제적 분열이 일어난 경우에만 해당한다. 발전의 자연발생적인 과정은 경제와 기술개발의 결과로 나타난 계급으로 나누는게 방어술과 전략을 포함해서 무장기술의 개선과 평행하게 진행할 수 있다. 따라서 무기생산은 더욱 전문화된 직업이 된다. 게다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와 경제적 우위를 좌우하는 건 계급지배이기 때문에 무장기술의 개선은 지속적으로 무기상품3)을 생산하면서 더욱 구체적이고 비싸지게 된다. 무기생산은 점차 경제적으로 지배적인 계급이 독점하면서 민주주의의 물리적 기반은 제거된다. 그렇다면 핵심은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한때 정치적인 권력의 수단으로 소유해본 계급이 발생할 수 있으며 경제적 우위를 상실한 후에도 적어도 한동안은 정치적 지배를 유지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지적에 연연해할 필요는 없다. 권력의 정치적 관계에서 형태와 성격만이 무기기술을 결정하는 건 아니며 계급투쟁의 형태와 성격도 마찬가지다.

 

모든 민간인들이 동등하게 무장하고 그들의 무기를 책임지는 것으로는 민주주의의 지배를 영구적으로 보존하기에 충분하진 않다. 한 스위스의 사건이 보여주듯이 무기를 균등하게 분배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분배에는 다수파로부터 떨어져 소수파가 되려고 하거나 소수파가 타격을 위해 잘 조직될 위험성을 제거하지 않는다. 전체 인구는 무기생산이 민중들의 손에 있을 때만이 영구적이고 동등할 수 있다.

 

무장기술이 할 수 있는 민주화의 역할에서 불워리턴은 주목할 공상적 정치체제를 “다가온 경쟁”에서 분명하게 묘사했다. 그의 저작 중에선 알려진 작품은 아니다. 이 책에서 불워리턴은 모든 민간인들이 쉽게 전기와 유사하고 신비한 힘을 이용하거나 옮기면서 작은 막대기를 수단으로 어느 시점에서 성취할 수 있는 가장 처참한 결과를 가져올 기술의 높은 발전을 전제한다. 그리고 자연의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인간의 지배가 실제로 쉬운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예상해볼 수도 있지만 비록 먼 미래에는 학살의 기술을 응용하는 걸 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를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의 전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기술적 진보는 어느 정도에선 금권정치에 의해 착취되는 대신에 무기를 제작하는 방법을 가져오며 다시 어느 정도 민주주의의 광범위한 기반에서 소유가 될 것이다.

 

군국주의의 역사에서 드러난 몇 가지 항목.

 

계급으로 분열하지 않았다고 알려진 하위 문화권에선 무기는 지배를 돕는 방어수단만이 아니라 작업도구이기도 하다. 돌과 막대기, 창과 화살촉, 활 이외에도 무기와 도구는 원시적 성격으론 언제든 쉽게 구할 수 있다. 남편과 아내 사이의 가장 원시적인 분업을 제외하고는 기록적으로 훌륭한 노동의 분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적어도 남성과 여성 중에 한 성의 구성원들이 동등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고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인 힘의 관계가 아직은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힘의 관계를 지원하고자 무기를 사용할 순 없었다. 설령 힘의 관계가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무기를 사용하기 위한 수단으러 사용하진 않았다. 힘의 관계는 원시적인 기술과 함께 오직 민주적인 힘의 관계에서만 할 수 있었다.

 

하위 문화권에서 무기가 공동체에도 사용한다면 기껏해야 개인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지만

계급이 분열하거나 힘의 기술이 더 크게 개선될 때 그들이 의도하는대로 상황은 달라진다. 하층 농업의 원시적 공산주의와 함께 여성이 지배하는 구조에 있는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가 없었으므로 평균적인 환경에서는 계급지배의 정치적 관계를 알 순 없었다. 일반적으로 군국주의는 의도를 감춘다. 군국주의의 외부적인 요인에는 전쟁을 준비하도록 강요하고 임시적인 군사적 전제주의를 생산했으며 유목민들 사이에서는 이전부터 지배하던 계급으로 분열했기 때문에 빈번하게 일어난다. 개인적이고 계급의 위치에 따라서만 분할된 순전히 무력적인 조직으로만 상응하는 그리스와 로마의 군대조직을 상기해본다면 계급적 지위에 따라 무장의 질이 좌우되었다. 게다가 기사들의 봉건적 군대도 상기해볼 때 대지주의 병사들은 질 나쁘게 무장하고 도보로 다녔으며 패트리스 라로크에 따르면 전투에 직접 충돌하는 전투원보다 대부분 전투부대의 지원을 담당했다. 당시에는 하층민들의 무장을 허용하진 않았고 일정한 도움을 주긴 했지만 실제론 국가가 최소한의 안전도 개인에게 보장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외부의 적을 보호하거나 가능한 공격에 대비해서 사람들은 무장할 필요성을 있었고 국가와 민족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사회의 개별적인 계급의 무장에서 차별화는 힘의 기술을 가능하게하며 힘의 관계를 유지하고 단련하는데 고용된다. 이 물음의 측면에서 로마의 노예전쟁은 기억해둘만하다.

 

이 물음에 독일의 농민 전쟁과 독일의 도시전쟁도 중요하고 불을 지핀다. 14세기에 독일의 도시전쟁의 결과로 인해 직접적으로 불리했던 근거가 첫째로는 교회의 봉건군들의 군사적 기술이 우월했기 때문이다. 14세기에 도시전쟁에서 전투했던 부대는 성공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1525년의 농민전쟁의 기간과 대조적으로 화기의 기술이 유난히 낙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도시의 거대한 경제적 결과로 인해 사회적 중심지가 지역적으로 제한되어서 좁은 범위 내에서만 밀집할 수 있었으며 상충적인 관계에선 상당한 혼란이 없었던 대표적인 사례였다. 게다가 처음부터 마을을 건설하는 기술로부터 소도시와 요새는 봉건귀족, 교회, 황제와 같은 중요한 전략적 위치를 점령했으며 부대의 군사적 요소(방어시설)였다. 마지막으로 무기의 생산은 마을들이 담당했으며 시민들은 기술적 준비에 있어 모두 우월했기 때문에 기사들의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다.4)

중요한 시각을 잃어선 안 된다. 같은 지역에서 함께 살거나 다른 계급 사이에서 소수적으로 산한 사회의 다양한 계급이 수행하는 중요한 부분을 간과해선 안 된다. 농민전쟁과 도시전쟁의 조사는 자세한 사실을 보여준다. 계급분산이 분산과 일치할 때 지역적으로 계급투쟁은 더 쉽다. 이 상황은 계급의식이 발전하는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관점에서 계급의식을 군사조직으로 연관하는데 도움을 주며 무기의 생산과 공급을 돕는다. 이러한 지역적으로 유리한 계급조직은 부르주아 혁명5)의 좋은 본보기였다. 프롤레타리아의 혁명6)은 대부분 거의 부재했다.

 

또한 현재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고용된 군대에서 군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힘은 물리적 힘으로 둔갑하며 메피스토의 사악한 격언에 따르면 “만일 내가 여섯 마리의 종마를 지불할 능력이 있다면 과연 그들의 기운을 받을 자격이 없겠는가?” “24개의 다리를 가진 것처럼 멀리 갈 수 있으며 바른 구실을 하는 사람이리라.” 그리고 또 다른 격언에 따르면, “나누고 지배하라!” 이 두 가지의 격언은 소위 말하는 엘리트 부대에도 적용할 수 있다. 반면에, 이탈리아인이던 콘도티에리는 프레토리안이 그랬듯이 무기, 군사작전과 전략적 기술을 소유한 자에 의한 정치적 권력에 무엇이 달렸는지 두드러진 방식으로 설명한다. 고용된 군인은 왕의 왕관에 뻔뻔하게 매수된 후에 그들과 공놀이를 했고 국가에서 최고 권력자의 타고난 후계자7)가 되었다. 우리는 열광과 전쟁이 나폴레옹과 그의 장군들, 불랑제들에서 군사적 권력으로 개인의 손에서 침략에 대한 명분을 준비하면서 반복되는 이 현상을 현재에서도 본다.

 

해방운동에서 독일전쟁의 역사는 군사조직과 전반적인 군국주의의 형성에서 외부에 대한 정치적 상황의 영향력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가르친다. 프랑스혁명에 대항했던 1806년의 연합전쟁에서 프리드리히 대왕의 봉건적인 상비군들은 프랑스의 시민군들에게 격파되었다. 전쟁이 너무나 비참하게 끝났기에 무력한 독일의 정부는 다음과 같은 차선에 직면했다. 코르시카 정부에게 끊임없이 시달리거나, 전반적인 지원제도에 시민군과 자신의 무기들로 정복자를 물리치거나 존속하려는 욕망과 대중의 충동적인 자극은 대중을 후자에 합류하도록 강제했다. 독일에선 민주화의 위대한 시기가 시작했고 프로이센의 특수한 압력에는 국내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긴장을 완화시키고 돈과 자유를 갈망할 수 있는 투사를 원했다. 남성의 가치가 증가했다. 가치생산자로서 사회적 자질을 가진 장래의 세금납부자들과 물리적 힘과 지능을 타고난 신체적 자질이 있는 남성에겐 일반적인 곤경에 처했을 때마다 결단력을 습득할 수 있었고 열광적인 능력을 겸비하면서 환율이 증가할 수 있었다. 반면에 계급 차별화의 영향력은 낮아졌다. 군사주간지의 전문용어로 “프로이센 국민”들은 타국의 오랜 통치기간 동안에 그들의 모든 불만을 잊어버리는 법을 학습할 수 있었다. 흔한 사례로 재정과 군사적 문제는 대변혁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난관은 제거되었다. 전성기에 재정적으로 중요한 산업과 무역은 프로이센-독일의 하찮은 관료주의적 정신이 수용하는 한에서 위탁될 수 있었다. 적어도 정치적 자유를 도입하거나 약속했다. 사람들은 일어섰고, 폭풍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보편적인 제도 아래에서 해방전쟁 기간에 라인강 너머에 샤른호르스트의 그나이제나우 군대가 “세습의 적”을 몰아냈다. 그들은 대혁명의 프랑스를 약화시키고 그의 긴장된 세계를 경멸하게 할만한 제도를 구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적 조직은 아니었지만 샤른호르스트의 그나이제나우는 그 뜻을 세웠다. 독일 국민이던 흑인들은 의무를 다한 후에 합스부르크 가문으로부터

적절한 호의를 얻을 수 있었다. 칼스루에 결의안에는 레이프직의 민족전투를 이끌었으며 신뢰할 수 없고 저주받은 메트르니히 정권의 부질없고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인 제거되지 않고 반동적인 모든 악마들이 풀려난 후에 억압으로부터 해방운동의 전쟁에서 민주적 군대는 폐지되었다. 높은 수준의 문화를 이룩한 독일의 영토에선 군대가 무르익었을진 모르지만 동쪽의 엘빈의 보루시아인들의 몹시 현저한 문화적 무게는 갑작스럽게 민주적 군대와 충돌했고 가까이에서 민중들의 위대한 봉기들의 영광에 가까울 수 있었다. 군사조직에 대한 추상적인 검토는 사회적 분단 뿐만 아니라 무기의 기술이 발전한 정도가 마침내 군대의 구성과 규모에도 좌우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이를테면 대혁명적 운동에서 사용된 소형화기의 발전은 전쟁의 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사실 중에 하나였다.

 

참조

 

1. 그리고 물론 체력과 불가분한 관계인 지적인 능력도 남성에게 최대한의 체력 사용과 신체적 발전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실, 어느 정도는 체력의 한계를 요구한다. 이러한 신체적 힘으로 정복한 크기가 사회적 현상으로 얼마나 존재했는가는 경제적인 지위에 속하는 집단들과 관계한다. 이를테면 광범위한 규모와 균형적인 거래관계 사이에서 개인적인 집단의 관계가 발생할 때 권력의 사회적 관계를 결정할 수 있다. 더 중요한 측면은 후반부에 논의해볼 것이다.

 

2. 사회적 생산에서 인간의 생활은 인간의 의지에 의존하지 않는 분명하고 필연적인 관계인

생산적인 물질적 힘의 진화와 생산관계에서 분명한 단계로 부합할 수 있다. - 마르크스

 

3. 모든 종류의 군수품과 무기들 외에도 전기장치, 요새, 무장하기 위한 장비들, 군사통신체계(말, 무기, 이동수단, 도로와 교량의 건설, 내해상의 선박, 철도, 자동차, 전보, 무선 전신술)등과 망원경, 비행선, 사진, 그리고 군견도 상기해보자.

 

4. 또한 15세기 이탈리아의 발전이 여기서 중요한 관계를 보여주며 더욱 구체적으로 조사해볼 수 있도록 유도하며 핵심적인 구상을 확인해볼 수 있다.

 

5. 러시아의 초기 단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수한 성격으론 1905년 12월에 광범위하게 일어난 무장봉기이다. 주목할만한 드러난 강인함에는 대부분의 마을주민들이 도화선으로 소수의 혁명가들과 협력해서 도시 게릴라전의 전술은 모스크바에서 아주 훌륭하게 발전했으며 획기적일 것이다.

 

6. 그래도 공장에서 함께 일하고, 노동자 계급의 숙소에서 함께 생활하는 건 고려해야한다.


7. 버크하르트(Burckhardt), p. 22. 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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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몇 주 전에 그렌츠보테(Grenzbote)에선 1892년 10월에 비스마르크와 오토 케멜 박사와의 대화를 보도했다. 비스마르크 특유의 냉소와 함께 입헌주의라는 가면을 벗긴 “세기적인 영웅”에 대한 대화였다. 그 사이에 비스마르크는 말했다.

 

“중세시대 로마에선 법 밖에 있는 사람들은 범법자로 간주해서 추방했어.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정치적 권리를 무시하고 이를 비슷하게 취급했지. 내가 보기엔 이보다 심했어. 사회민주주의의 문제에는 군사적인 문제가 있지. 현재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부사관들을 성공적으로 설득하기 위해 분투해. 함부르크에 있는 대다수의 군대는 이미 사회민주당원들로 구성되었어. 왜냐하면 주민들은 오직 지역부대에서만 가입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야. 어느날 이러한 군인들이 발포를 거부한다고 가정해볼까. 그들의 아버지와 형제가 황제의 복무자라면 어떨까? 함부르크와 싸우려고 우리는 하노버와 메클레부르크에서 부대를 소집할까? 그렇다면 우리는 파리코뮌과 다를게 없어. 황제는 두려웠어. 그는 언젠가 “살육왕자”라는 별명으로 자신의 할아버지와 똑같이 “피가 발목 위로 넘치듯이” 지배하기를 바라진 않았어. 그때 내가 말했지. 폐하께선 힘겨운 길을 걸으셔야 합니다. 뒷걸음질 칠수록 심연은 더 깊어질 뿐입니다.”

 

전반적인 물음을 요약하자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문제에는 군사적인 문제가 있다.” 귀족이던 폰 마소(Von Massow)가 흘린 고통의 외침,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오직 병사들의 총검과 대포에 달려있다.”1)보다 깊이 드러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물음에는 군사적인 문제가 있다.” 이는 현재에도 선동가들이 부를 수 있고 선율로 삼을 곡조다. 만일 알렉산드리아인2)들에게 전했던 비스마르크와 푸트카메르(Puttkamer)가 벌인 경솔한 행동이 아무 눈에도 띄지 않는다면 함부르크의 보도 소식과 순종적인 젊은 융커였던 폰 올덴부르크 야누샤우(Von Oldenburg Januschau)는 연말에 호헨로헤델브뤼크(HohenloheDelbrück)에서 상류층 법원 판사인 쿨레르만(Kulemann)에게 비스마르크의 비정한 말에 한술 더 뜬다.

 

사회민주주의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일 정도로 군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국내의 적은 해외의 적보다 위험하며 민족의 영혼을 독살하고 우리가 일어나기도 전에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우리의 행동을 저지하고자 한다. 1907년 교차로(Kreuz zeitung)에 따르면 ‘민족주의의 깃발이 휘날리며’ 진행한 선거싸움에선 계급적인 이익관계가 국익보다 우선하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이 선거싸움은 선거권과 노동조합 조직의 권리에 대한 위협을 고조하고 ‘보나파르트적인 검’으로 위협했으며 새해 전날 부친 편지에서 부엘로 왕자(Prince Buelow)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지도자들을 위협하고자 이들의 주위를 서성였다. 계급투쟁의 기치 아래로3) 전개해서 싸운 가장 치열한 선거였다. 눈을 감고 귀도 들을 수 없는 사람만이 폭풍을 모는 호통을 치며 서약에 거부할 수 있었다.

 

따라서 ‘자국의 적’과 투쟁하는 사안은 매우 중요해졌다.

 

1907년의 혼란스러운 선거는 민족주의 문제와 식민지 문제, 강경한 애국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항하며 치러졌다. 이 모든 걸 보여줬음에도 이 선거는 비열한 애국사업자들의 거짓되고 애국적인 위선에 맞서 독일 사람의 저항력이 작았는지도 보여준다. 지배계급의 정부들도 이용할 수 있는 허황적인 민중선전 조직이 무엇인지도 우리에게 가르쳤다. 1907년 선거는 노동자 계급에게 이들이 힘에 있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관계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도록 눈을 뜨게 했다. 노동자 계급은 추악한 ‘승리의 비결’에서 해방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1907년 선거는 노동자 계급의 운동을 올바른 요구로 나아갈 수 있도록 더욱 깊어졌으며 민족적 행동에 대한 대중의 심리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확실히 우리가 소위 말하는 패배의 원인은 다수들이었고 실제로 패배는 아니었으며 오히려 승자들이 패배한 사람들보다 더 당황했다.

 

군국주의는 사회민주주의의 진입을 방해하는 특수한 함정들을 설치했으며 노동자계급에게 오염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를테면 그들은 정부의 테러주의에 휘둘리는 국가노동자들과 하위직 공무원들이다. 이는 반군국주의에 대해 청년들에게 최전선에서 질문해볼 수 있도록 지도할 것이며 독일의 노동자 운동은 이후로도 확실하게 이들의 지적에도 주목할 것이다.

 

다음의 책자는 1906년 11월 28일, 독일에 청년사회주의자 조합의 저자로부터 읽은 신문사의 논설을 확대했다. 이 논설은 기본적으로 새로운 걸 주장하진 않는다. 단지 이미 알려진 자료들의 모음집일 뿐이다. 그렇다고 주제를 소모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전 세계의 흩어지고 단절한 자료를 최대한 수집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반군국주의와 젊은 사회주의 운동에서 중요한 국가들에 대해 적지만 언급해볼 수 있도록 한 벨기에의 드만 동지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 만일 실수를 발견해서 정보의 출처가 신뢰성이 낮다는 이유로 자료의 숙달에 난관을 겪는다면 감안해주기를 바란다. 군국주의의 범위에서 현재의 많은 것들도 빠르게 변화한다. 이를테면 프랑스와 영국의 군사개혁을 더욱 언급하는 건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이 책은 반군국주의자들과 젊은 사회주의 노동계급의 운동에 더욱 진실하다. 이 책은 해방을 위한 노동자계급에 대한 근래의 지침이다. 때때로 차질을 빚기도 하지만 어디에서나 빠르게 발전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보게 되어 기쁘다. 이 책자가 출판한 이후로 나는 핀란드 젊은 사회주의조합이 타마스포에서 1906년 12월 9일과 10일에 첫 회의를 열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이 조합의 특수한 목적은 젊은 노동자들이 계급의식을 훈련하는 곳 외에도 모든 방면에서 군국주의와도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리의 작업에 이론적인 원리를 충분하게 조사하지 않고 역사적 깊이가 부족하다고 불평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나는 이 책자의 정치적 목적이 반군국주의 사상을 전파하고자 한다는 걸 지적하고자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쌓여만 가는 무수한 사항들에 청년 사회주의 운동과 반군국주의의 역사에 관해선 하찮게 보일 수도 있고 불만할 수도 있다. 이 불만이 정당할 순 있다. 저자는 상부적으로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볼 수 있도록 가정했고 하위적인 운동의 조합에 발전을 전술적 원칙과 방법으로 응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반군국주의적 시위와 반대운동에서 주된 곤경을 제시하는 건 세부적일 뿐이라는 걸 고려했으면 한다.

 

박사. 칼 리프크네히트

 

1907, 1월 11일, 베를린

 

1. 독일 아렌츠 주간지 1896년 11월 중순 사회민주당 연대서신 참조

2. 황제는 알렉산더 대대 신병들에게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에게 총을 쏘라고 호소하는 연설을 했다.

 

3. 1907년 2월 5일 저녁에 두 번째 투표가 실시했을 때 베를린 수비대는 실탄과 함께 행군준비를 마쳤다. 1903년 6월 25일, 스판다우에서 개척자들이 슈왈더 거리에서 선거결과에 열광한 노동자들을 “정신차리게” 하고자 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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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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