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할 것인가

 

당내 투쟁은 당에게 힘과 생명력을 줍니다. 분명하게 드러난 경계에 대한 당의 모호함과 둔감함은 당이 취약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당은 자정함으로써 강화됩니다.”

 

1852624, 라살레가 맑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서문

 

필자의 당초 계획대로라면, 이 소책자는 무엇으로부터 시작 할 것인가?(불꽃4, 19015)에서 피력했던 사상을 상세히 발전시키기 위해 써야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먼저 우리는 그때 했던 (그리고 수많은 개인적 문의와 편지에 대한 답변으로 반복해 드렸던) 약속을 뒤늦게 실행하는 데 대해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 일이 이처럼 늦어진 까닭의 하나는 지난해 (1901) 6월에 있었던 모든 국외 사회민주주의 조직의 통합 시도였다.[1] 당연히 이 시도의 결과를 끝까지 기다려야 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성공했을 경우, 어쩌면 불꽃의 조직적 견해를 몇몇 다른 각도의 관점에서 서술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경우든 그것이 성공했다면,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당 안에 두 가지 경향이 존속하는 상황은 매우 빨리 종결되었을 것이다. 독자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이 시도는 실패로 끝났으며, 우리가 뒤에 증명해 보일 것처럼, 노동자의 대의가 제10호에 경제주의로 돌아선 이후에 그 시도는 그렇게 종결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불분명하며 딱히 규정된 바 없는, 그 대신에 더욱 확고해지고 다양한 형태로 부활할 수 있는 그러한 경향에 맞서 단호한 투쟁에 돌입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졌다. 이에 따라 책자의 애초 계획은 일부 변경되었으며 상당히 확대되었다.

 

이 책자의 주요 주제는 무엇으로부터 시작할 것인가?에서 제기했던 세 가지 문제가 되어야 했다. 우리의 정치 선동의 성격과 주요 내용, 우리의 조직적 임무, 전러시아적인 전투조직을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건설하는 계획 등에 관한 문제가 그것이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문제들에 관심을 가져 왔기에, 실패한 일이긴 하지만 노동자 신문을 복잡하게 했던 시도의 일환으로(5장을 보라.) 바로 그 신문에서도 이 문제들을 제기하려 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소책자에서 이 세 가지 문제만을 분석하는 데 그치고 논쟁에 매달리지 않으면서 혹은 논쟁에 거의 치우치지 않으면서 우리의 관점을 가능한 한 긍정적인 형태로 서술하려 했던 애초의 예정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완전히 실현 불가능해졌다. 우선, “경제주의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190112불꽃12호의 경제주의 옹호자들과의 대담이라는 글에서 밝힌 것처럼 경제주의라는 단어를 넓은 의미로 사용하겠는데, 그 글은 독자들 앞에 놓인 이 책자의 개요를 보여 주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가지 문제의 해결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들이 부분적인 것에서의 견해차라기보다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 안에 있는 두 경향의 근본적인 대립으로 보아야 훨씬 잘 설명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관점을 불꽃에 실제로 관철시키는 것에 대해 경제주의자들이 보이는 당혹감은 우리가 빈번히 문자 그대로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다는 점, 따라서 ab ovo(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어떤 결론에도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 근본적인 모든 사항에 관한 우리와 모든 경제주의자의 입장 차이를 수많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가능한 한 대중적으로 체계적으로 설명하려 시도해야 한다는 점 등을 명백히 보여 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 같은 설명을 시도하기로 했다. 그럴 경우에 이 소책자의 분량이 현저히 늘어나고 종결이 더디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또한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무엇으로부터 시작할 것인가?”에서 했던 약속을 결코 이행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작업이 늦어진 데 대한 사과에 덧붙여 나는 이 책자의 문학적 퇴고가 매우 부족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드리겠다. 나는 극도로 시급히, 그것도 온갖 다른 일 때문에 작업을 중단해 가면서, 이 글을 써야만 했다.

 

위에 지적한 세 가지 문제를 분석하는 것이 여전히 이 책자의 주요 주제를 이루고 있긴 하지만, 나는 더 일반적인 다음의 두 가지 문제로부터 글을 시작해야만 했다. “비판의 자유와 같은 순수하고도 당연한슬로건이 왜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전투 신호인가? 왜 우리는 자생적 대중운동과 관계된 사회민주주의당의 역할이라는 기본적인 문제에서조차 합일점에 이를 수 없는가? 다음으로, 정치 선동의 성격과 내용에 대한 견해의 서술은 노동조합주의 정치와 사회민주주의 정치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으로 바뀌었으며, 조직적 과제에 대한 견해의 서술은 경제주의자들을 만족시키는 수공업성과 우리의 견지에서 필수적인 혁명가 조직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 다음으로, 전러시아적 정치 신문 계획을 반대했던 견해들의 근거가 없어진 만큼, 무엇으로부터 시작할 것인가?”에서 제기했던 문제, 즉 우리가 어떻게 우리에게 필요한 조직의 건설에 여러 방면에서 동시적으로 착수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본질적으로 답하는 사람들이 적어진 만큼, 나는 더욱더 강력히 이 계획을 주장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경제주의자들과의 결정적인 결렬을 피하기 위해 그러나 결렬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는 사실, 노동자의 대의는 일관된 경제주의를 보여 주었다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의 역사의 온전한 한 시기를 특징짓는 동요와 혼란을 무엇보다 완전히, 무엇보다 극명히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역사적원하신다면 의미를 획득하였다는 사실, 따라서 언뜻 보기에는 지나치게 세세한 것 같은 노동자의 대의와의 논쟁이 중요성을 갖는 것은 우리가 이 시기를 완전히 청산하지 않는 한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 등을 이 책자의 결론부에서 보여 주고자 한다.

 

19022

레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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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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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를 지나다


장기간 백수에서 미취업 노동자로 겨우 벗어났다. 그동안 하청 노동자로 동종 업계에 몸담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지금도 그렇다. 취업이라는 주어진 기간 동안 과거 가장 열악한 현장에 남아 일하며 배운 것이 있다면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일하는 사람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사용자의 미흡한 태도에 있었다. 가장 미천한 곳에서도,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업계 비밀을 숨기기에 급급했고, 자신의 직위가 곧 존엄으로 여기며 직장이 주는 안전에 안주하고 마는 태도를 가진 이들도 참 많았다. 의외로 현장의 손님이자 청중과 관객들은 객체로 방문함에도 직장 내 모습을 가장 잘 이해하는 존재들이다. 객체는 주체가 될 수 있고, 주체가 객체로 상호 작용한다. 가까운 현장의 백수가 노동자가 되기에도 세대를 이어 기나긴 암흑 시절이 과연 당연한 것인지는 지금도 체감하고 있다.


한 동료가 이전의 직장에 대해 내게 말했다. "이곳은 일하기에는 더 이상 적합한 곳이 아닌 것 같아요." 맞는 말이다. 이전의 직장들은 모두 그러한 곳들 뿐이었다. 그 동료와도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내가 또는 당신이 여기에 존재함은, 단순히 눈 앞에 사물이 존재하는 것 이상으로 본질을 거치는 일이다. 여기에도 수많은 투쟁의 순간들이 깃들어 있다. 예전에 잠깐 읽은 『쇳밥일지』처럼 산업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는 분들에게 직장의 상실 또는 실직이 주는 의미를 온전히 파악하기란 어려울 수 있다. 물론 그들은 같은 노동자 출신임에도, 자신들이 일하는 그때까지는, 직장이 주는 돈벌이에 쉽게 안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생존 투쟁의 과정이며 반복되는 업무와 일거리가 꾸준하게 들어오는 이상, 최선을 다해도 부족한 설명 하나 없는 비체계적인 구조가 여전히 노동자를 위협하고 억압한다는 말이다.


불안이 감도는 기나긴 시절이다. 누구처럼 일찍 결혼에 성공하여 꽃 피운 '화양연화'가 아닐지도 모른다. 백수의 공백기에는 끊임없는 잠적만이 남는다. 마음의 불꽃은 일그러진 채 잠식되어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혹자는 "일할 수 있음은 큰 다행"이라 말한다. 예전에는 '죽음'을 주로 직시했고, 그것은 늘 생존과 직결된 부분이었다. 최근에 면접관들은 당돌함에 코웃음을 쳤지만 정작 그들이 간과한 사람의 존중은 없었고 자신들의 경력을 과시한 결과로 나타났다. 이들이 놓친 것을 본다. 사람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인재가 아닌가 싶다. 비록 백수임에도 자신의 건강과 성장, 그리고 용기마저 꾸준하게 노력해야 한다. 어느 누구의 인생도 헛된 일은 없다. 그 실패에 대해 누군가가 함부로 단정할 때에도, 세계는 또다시 나아갈 것이며, 지금의 후퇴에 설레발보다는 더 나은 한 걸음을 위한 전 일보가 된다. 치열한 생존의 전장 속에서도 인간은 성인이 된다. 이는 마치 폭격기를 뚫고 공중전까지 치른 후, 겨우 살아남은 이가 남기는 최후의 전보와도 같다. 결국 겪어보지 않은 이상 알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이 '백해무익'하더라도 꾸준히 알고자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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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시하는 문헌들에서 혁명에 대한 선전의 중요성을 또다시 실감한다. 

이는 어떻게 하면 혁명적 조직력을 갖출 수 있는가라는 국내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일찍이 해당 문헌들을 '청산'시킨 장본인들이 당 건설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정치가 퇴보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렇다고 방치할 수는 없다.


현재의 교훈을 비추어 보더라도 장래의 선전에서 해당 문헌들은 매우 중대한 역할을 담당한다. 

물론 방문 독자들도 이를 직·간접적으로 참고하시여 충분히 실천할 수 있다. 

선전의 중요성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상황의 절박성으로 인해 우리에게는 낙담할 시간조차 아깝다. 

특히 레닌주의와 볼셰비키에 대한 현대적 비판은 더욱 부당하다.

이러한 이론들은 지금까지 '민주적 열망'에 보탬이 된 것으로 간주했으나, 

실질적으로는 전 계급, 특히 주체인 취약한 노동자들에게 올바로 보급되는 일이다. 


계급 투쟁의 승산을 파악하기 이전에, 이론 투쟁의 역할은 선봉적 혁명을 개시는 오늘날의 과제이자 임무이다.

그럼에도 이 점에서는 예전보다 더 나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보는 바이다. 

이보다 못할 수는 없으므로,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임한 일에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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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고위직 공직자가 대본만 읽어도 수령하는 월급은 '국가가 무상으로 주는 용돈'이나 다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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