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이자 낳는 자본에서는 자본 관계가 피상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이자 낳는 자본에 이르러 자본 관계는 가장 피상적이고 물신적인 형태에 도달한다. 이 단계에서 자본은 화폐가 직접 화폐를 낳는 M-M´의 형식을 취하며, 가치 증식을 매개하는 생산 과정이나 유통의 흔적은 완전히 소거된다. 상업 자본의 M-C-M´ 운동이 비록 유통 영역에 국한되어 양도 이윤으로 나타날지라도, 자본의 일반적 형태를 유지하며 이윤을 사회적 관계의 산물로 암시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반면 이자 낳는 자본에서는 가치 증식이 화폐라는 사물 자체의 속성인 것처럼 현상된다. 결과적으로 자본이 노동을 착취하여 가치를 창출한다는 사회적 실체는 은폐되고, 화폐가 스스로를 증식시킨다는 극단적인 물신성이 완성된다.

 

상업 자본의 형태는 구매와 판매라는 대립하는 두 국면의 통일이자 운동 과정을 표현하지만, 이자 낳는 자본의 형태인 M-M´에서는 이러한 매개 과정이 소거된다. 예컨대 1,000의 자본이 5%의 이자율로 대부될 경우, 1년 뒤 자본 가치는 원금 C과 이자 Ci의 합인 1,050이 된다. 여기서 자본은 단순한 양적 수치가 아니라 양적 관계로 규정되며, 이는 자기 증식하는 가치로의 자본과 그 원천인 원금 사이의 상관관계를 의미한다. 이처럼 자본이 직접적으로 가치를 증식시킨다는 관념은 자기 자본 또는 차입 자본으로 기능하는 모든 능동적 자본가들에게 공통된 현상으로 나타난다.

 

이자 낳는 자본의 형태인 M-M´은 자본의 일반 공식인 M-C-M´이 양 끝단 M-M´ (M+ΔM)으로 축소된 결과물이며, 이는 화폐가 스스로 더 많은 화폐를 낳는 가치 증식의 과정을 극단적으로 생략하여 보여준다. 본래 완성된 형태의 자본은 생산과 유통 과정의 유기적 총체로부터 일정 기간 잉여 가치를 창출하지만, 이자 낳는 자본에서는 이러한 매개 단계가 완전히 소거된 채 직접적인 증식만이 부각된다. 이로부터 자본은 이자를 스스로 창출하는 자생적 원천으로 규정되며, 가치, 화폐, 상품 같은 단순한 사물 자체가 자본의 속성을 내포한 것처럼 현상하는 물신적 성격이 완성된다.

 

총 재생산 과정의 결과물인 잉여 가치가 사물 자체에 내재하는 속성으로 현상한다. 화폐 소유자가 이를 단순한 유통 수단으로 지출할 것인지, 또는 자본으로 대부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소유자의 주관적 의사에 달려 있다. 이로부터 이자 낳는 자본은 스스로를 증식시키는 가치, 곧 화폐가 화폐를 낳는 자동적 물신의 순수한 형태로 완성되며, 이 과정에서 자본은 자신의 발생 기원을 완전히 은폐한다. 여기서 사회적 관계는 화폐라는 사물 자체의 자기 관계로 고착된다. 결과적으로 자본으로의 현실적 전환 과정은 소거되고, 내용이 결여된 전환의 형식만이 외적으로 나타날 뿐이다.

 

이 단계에서 화폐의 사용 가치는 노동력과 마찬가지로 본래의 가치를 상회하는 더 큰 가치를 창출하는 역능으로 규정된다. 화폐는 그 자체로 이미 잠재적인 자기 증식 가치가 되며, 이러한 속성은 대부라는 고유한 상품 판매 형식에서 발현된다. 이로부터 이자를 낳는 가치 창출의 힘은 배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은 화폐 고유의 자연적 속성으로 고착된다. 화폐 대부자는 자신의 화폐를 이자를 산출하는 사물로 매각하며, 현실의 기능 자본 역시 기능적 수행이 아닌 자본 그 자체, 곧 화폐 자본의 속성으로부터 이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현상한다.

 

여기에서는 자본 관계의 왜곡이 더욱 심화된다. 이자는 본래 기능 자본가가 노동자로부터 착취한 잉여 가치의 일부에 불과함에도, 자본 고유의 본원적인 과실로 현상하며 이윤은 기업가 이득이라는 명목하에 재생산 과정의 부속물로 전락한다. 이로부터 자본의 물신적 형태와 그 관념은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M-M´의 형식은 생산 관계를 극단적으로 전도하고 사물화하며, 자본의 재생산 과정에 선행하는 무개념적이고 단순화된 자본의 형태를 드러낸다. 자본 물신화의 정점은 화폐나 상품이 재생산 과정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가치를 증식시키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물신적 주장으로 귀결된다.

 

자본을 가치 창출의 독립적 원천으로 규정하려는 속류 경제학에 있어 M-M´ 형식은 이론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토대가 된다. 이 형식 내에서는 이윤의 근원적 원천이 비가시화되며,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의 결과물이 과정 자체로부터 분리되어 자립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자본은 화폐 자본의 형상을 취하면서 비로소 상품화되며, 이러한 자본의 자기 증식성은 이자율이라는 고유한 가격 형식에서 표출된다.

 

이자 낳는 자본, 특히 그 직접적 형태인 화폐 자본에서 자본은 M-M´이라는 순수한 물신적 주체이자 거래되는 사물로 완성된다.

 

첫째, 자본이 화폐의 형태로 존재하면서 자본의 모든 특수성과 실물적 요소가 소거되기 때문이다. 화폐 형태 내에서는 상품 간의 사용 가치 간 구별은 물론, 생산 조건에 따른 산업 자본 간의 차이마저 무화된다. 재생산 과정에서 화폐가 일시적 통과 국면에 불과한 것과 달리, 화폐 시장에서의 자본은 언제나 자립적인 교환 가치인 화폐 형태로 잔존한다.

 

둘째, 자본이 창출하는 잉여 가치 역시 화폐 형태로 나타나며, 이는 자본 고유의 속성으로 오인된다. 식물의 성장이 나무의 자연적 속성이듯, 화폐를 증식시키는 역능 또한 화폐 자본에 내재한 본질적 속성으로 현상하는 것이다.

 

이자 낳는 자본에서 자본 운동은 극도로 단축되며 모든 매개 과정은 생략된다. 이에 따라 자본 1,000은 그 자체로 존재하다가도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1,100으로 전환되는 사물로 묘사된다. 이는 포도주가 저장고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용 가치를 높이는 과정과 비슷하다. 이 단계에서 자본은 사물 그 자체로 자본의 지위를 획득하며, 화폐는 스스로 증식하려는 역동적 속성을 지닌 존재로 변모한다.

 

화폐가 대부되거나 재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순간, 그것이 물리적으로 어디에 위치하든 또는 시간의 경과와 무관하게 이자는 끊임없이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모든 자본의 가치 표현물인 이자 낳는 화폐 자본은, 부의 화폐적 축적을 갈망하는 화폐 퇴장자의 물신적 소망을 현실화한다.

 

사물로의 화폐 자본이 스스로 이자를 산출한다는 점에 대해 루터는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이는 그가 고리대를 비판한 소박한 근거가 되었다. 루터는 대부자가 대출 상환의 지연으로 채무 이행에 차질을 빚거나 투자 기회를 상실하여 실질적인 손실을 본 경우에만 이자 청구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당시의 고리대 관행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대부자들은 발생하지도 않은 가공적 손해, 곧 지불 불능이나 수익 기회 상실에 따른 보상을 모든 대부에 관습적으로 적용하면서, 화폐 100이 자연적으로 두 배의 이자를 낳는 것처럼 합리화한다. 이는 증명되지 않은 불확실한 우연을 필연적인 것으로 둔갑시켜 타인의 자산을 갈취하는 행위이며, 법률가들이 지적하듯 실재하지 않는 가공의 손해를 근거로 한 명백한 고리대다. 이러한 방식은 결국 세계 질서를 파멸로 몰아넣을 것이다. 실질적인 불행으로 인한 보상은 정당할 수 있으나, 상업적 대부의 실상은 이와 반대로 가난한 이웃을 희생시켜 위험과 노동 없이 부를 축적하려는 탐욕에 불과하다. 화폐를 대부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근심이나 위험 없이 안락한 처소에 앉아 타인의 노동에서 자산을 증식하려는 행태는 정당화될 수 없다.’ (루터, 1540)

 

자본이 재생산 과정에서 스스로를 증식시키며, 고유한 속성인 이른바 스콜라 철학자들이 언급한 숨은 자질에 따라 존속·팽창한다는 관념은 프라이스의 허황된 구상으로 이어진다. 가히 연금술적 공상을 방불케 하는 이 착상은 윌리엄 피트로부터 국채 상각 기금 법안의 재정적 지주로 채택되기에 이른다.

 

복리로 운용되는 화폐의 증식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가속화되며, 예수가 탄생한 해에 5% 복리로 대부된 1페니가 현재에 이르러서는 지구 15,000만 개를 채울 순금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니게 되었을 것이다. 반면, 단리로 운용되었을 경우 그 가치가 7실링 4.5펜스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어, 정부 재정 개선의 해법을 복리 운용에서 찾는다.’

 

나아가 프라이스는 그의 저서연금 지불에 관한 고찰(1772)에서 더욱더 허황된 논리를 전개한다.

 

서기 원년 예루살렘 사원에서 6%의 복리로 대부된 1실링은 현재 토성 궤도의 지름과 맞먹는 거대한 구체 형태의 태양계 전체를 순금으로 가득 채운 것보다 더 큰 금액으로 증대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는 결코 재정난에 빠질 수 없다. 국가는 최소의 저축만으로도 국가의 이해관계가 요구하는 짧은 기간 안에 최대의 부채를 상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13,14)

 

그는 저서 연금 지불에 관한 고찰(1772)에서 6% 복리로 대부된 1실링이 태양계 전체를 순금으로 채울 만큼의 거액으로 증대했을 것이라는 더욱 극단적인 주장을 펼친다. 이를 근거로 국가는 최소한의 저축만으로도 단기간에 막대한 부채를 상환할 수 있으므로, 결코 재정 위기에 직면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이는 영국 국채 운용의 허구적 속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론적 실례라 할 수 있다.

 

이는 영국 국채에 대한 얼마나 훌륭한 이론적 안내서인가!’

 

프라이스는 기하급수가 산출하는 방대한 수치에 현혹되었을 뿐이다. 그는 자본의 재생산 과정과 노동 조건을 완전히 배제한 채, 자본을 스스로 증식하는 자동 기관이자 단순한 수적 체계로 오인하였다. 이는 맬더스 (1798)가 인구 증가를 기하급수적 원리로만 파악한 것과 일치하며, 결과적으로 프라이스는 s=c(1+i)n이라는 수식에서 자본의 발전 법칙을 도출하였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었다. 여기서 s는 원금과 복리의 합계, c는 투하 자본, i는 이자율, n은 가치 증식의 기간을 의미하며, 이 공식은 자본을 현실적 생산 관계로부터 고립된 추상적 숫자로 치환시킨다.

 

피트는 프라이스의 이론을 국가 재정 정책에 적극적으로 입안하였다. 1786년 영국 하원은 공익 실현을 위해 1,000,000파운의 재원 확보를 결의하였으며, 피트는 확보된 자금을 복리 방식으로 축적하면서 국채를 소멸시키려 하였다. 그는 이를 위해 인민에 대한 과세를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간주하였다. 하원의 결의에 따라 기초된 피트의 법안은 만기 종신 연금을 포함한 기금이 매년 증액되어 4,000,000파운드에 도달할 때까지’ 250,000파운드씩 축적할 것을 명시하였다 (조지 3세 제26(1786)의 법률 제31).

 

피트는 1792년 국채 상각 기금 증액을 제안하는 연설에서 영국의 상업적 패권 요인으로 기계와 신용 등을 언급하며, 그중에서도 축적가장 폭넓고 항구적인 원인으로 지목하였다. 그는 애덤 스미스로부터 체계화된 이 원리가 연간 이윤의 일부를 저축하여 원금을 증대시키고, 이를 재투자하여 지속적인 이윤을 창출하면서 달성된다.’고 보았다.

 

결국 피트는 프라이스의 이론적 지원하에 애덤 스미스의 축적론을 채무 축적에 기반한 인민적 부의 증대라는 치부론으로 변질시켰으며, 채무 상환을 위해 다시 차입을 반복하는 맹목적인 부채 증식의 굴레에 도달하게 되었다. (CW 33: 223-224)

 

이미 근대 은행업의 선구자인 차일드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100파운드의 자산이 10%의 복리 하에 70년이 경과하면 102,400파운드에 도달한다.’ (1754: 115. 1669년 집필)

 

이는 복리의 가공할 증식력을 강조하였다.

 

프라이스 박사의 이러한 관념이 근대 경제학 전반에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어 있음은 이코노미스트(1851719일자) 지의 기술에서도 확인된다.

 

저축된 자본은 복리 증식을 매개로 모든 부를 잠식하면서, 세계의 모든 수입원이 이미 자본의 이자로 귀속되었으며 현행 지대 역시 이전 토지에 투하된 자본에 대한 이자 지불에 불과하다.’

 

결국 이자 낳는 자본의 논리 체계 안에서 생산되는 모든 부는 자본의 소유로 간주되며, 자본이 지금까지 수취한 성과는 그 끝없는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선차적 할부금에 지나지 않는다. 인류가 제공하는 모든 잉여 노동이 자본의 내재적 법칙에 따라 자본에 귀속된다는 이러한 발상은, 자본을 인간의 희생을 요구하는 잔혹한 신 몰록과 같은 존재로 형상화한다.

 

끝으로, ‘낭만주의적뮐러 (1809: 147-149)의 횡성수설을 살펴본다.

 

프라이스 박사가 주장하는 복리의 거대한 증식이나 인간의 자기 가속적 힘은 수 세기에 걸친 분열 없고 중단 없는 질서를 전제한다. 그러나 자본이 독립적인 분야들로 분할될 때마다 힘의 축적은 원점에서 재시작된다. 자연은 힘의 누진적 성장을 개별 노동자 (!)의 평균 노동 기간인 20-25년 단위로 제한하였다. 이 기간이 지나면 노동자는 자본을 새로운 노동자나 자손에게 이전해야 하며, 수혜자들은 자본을 운용하는 법을 새로이 습득해야만 이자를 창출할 수 있다. 더욱이 축적된 거액의 자본은 즉각적으로 노동 확대에 투입되지 않고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축적되다가, 대부의 형태로 다른 개인·노동자·은행 또는 국가에 이전된다. 차입자는 해당 자본을 실제로 운용하여 복리를 창출하면서 대부자에게 단리를 지불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생산과 절약의 법칙이 인간의 힘을 증대시키더라도, 소비와 낭비의 법칙이 이에 반작용하는 것이다.’

 

이 기술에는 가장 어리석은 망상이 집약되어 있다. 노동자와 자본가, 노동력의 가치와 자본의 이자 사이의 조잡한 몰이해는 차지하더라도, 복리의 취득 원리를 단지 자본이 대부되어 복리를 가져온다는 순환 논리로 설명할 뿐이다. 이러한 방식은 낭만파 특유의 전형성을 보여준다. 사물의 피상적 외관에서 도출한 속류적 편견들을 현학적 표현으로 포장하여 숭고한 진리인 양 격상시키는 것이 그 본질이다.

 

자본의 축적 과정은 자본으로 재전환되어 새로운 잉여 노동을 흡수하는 데 기여하는 이윤 (잉여 가치)의 일부를 이자로 규정할 때만 비로소 복리의 축적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의 축적 원리는 다음의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해 제약된다.

 

첫째, 모든 우연적 변수를 배제하더라도 기존 자본의 상당 부분은 재생산 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지속적으로 가치가 하락한다. 상품 가치를 결정하는 척도는 최초 생산에 투입된 노동 시간이 아니라 재생산에 소요되는 노동 시간이며, 이는 사회적 노동 생산성이 발달함에 따라 끊임없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 생산력이 고도화된 단계에서 모든 자본은 장기적인 축적 과정의 산물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단기적인 재생산 주기의 결과물로 나타난다.

 

둘째, 권 제3편에서 논증한 바와 같이, 자본 축적의 확대와 사회적 노동 생산성의 증대는 가변 자본에 대비한 불변 자본의 상대적 비중을 높이며, 이는 결국 이윤율의 저하를 초래한다. 1명의 노동자가 처리하는 불변 자본의 양이 10배로 증가했을 때 종전과 동일한 이윤율을 유지하려면 잉여 노동 시간 또한 10배로 늘어나야 한다. 그러나 노동 시간 전체, 심지어 하루 24시간을 모두 자본이 점유하더라도 이윤율의 하락을 저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윤율이 불변할 것이라는 전제는 프라이스의 기하급수적 성장론 및 복리로부터 모든 부를 잠식한다는 자본에 대한 일반적 오인의 근거가 된다.

 

잉여 가치와 잉여 노동의 등가성은 자본 축적에 질적 한계를 설정한다. 그 한계는 총 노동일의 범위, 그리고 노동력을 동시에 착취할 수 있는 규모를 규정하는 생산력과 인구의 가용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잉여 가치가 이자라는 무개념적 형태로 파악될 경우, 그 한계는 오직 양적인 수치로 매몰되며 온갖 물신적 망상이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

 

그런데 이자 낳는 자본에 이르러 자본 물신의 관념은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이 관념 하에서 화폐 형태로 고정된 축적 노동의 생산물은, 내재된 물신적 속성에 기대어 기하급수적으로 잉여 가치를 창출하는 독자적 자동 기관으로 격상된다. 그 결과 자본은 이코노미스트의 기술처럼 세계의 모든 부를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정당한 이자로 간주해 온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이전 노동의 생산물이 그 자체로 잠재적인 살아있는 잉여 노동을 이미 내포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전 노동 생산물의 가치가 유지되고 재생산되는 실체적 근거는 그것이 살아있는 노동과 결합하는 데 있으며, 이전 노동이 살아있는 잉여 노동에 대해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 또한 이전 노동이 살아있는 노동과 대립하며 독립적 우위를 점하는 특수한 사회적 관계, 곧 자본 관계가 지속될 때만 성립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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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이자와 기업가 이득

 

이자는 이윤, 곧 잉여 가치 중 기능 자본가 (산업가 또는 상인)가 차입 자본의 소유자인 대부자에게 지불해야 하는 부분에 불과하다. 이는 이자의 초기 발생 형태이자 현실적인 본질이다. 기능 자본가가 전적으로 자기 자본만을 운용한다면 이윤의 분할은 발생하지 않으며, 창출된 모든 이윤은 자본가 개인에게 귀속된다.

 

자본 소유자가 재생산 과정에서 자기 자본을 직접 사용하는 한, 이들은 이자율 결정을 위한 경쟁 체제에 귀속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이자라는 범주가 이자율의 확정을 전제로 하며, 본질적으로 산업 자본의 독자적인 운동 외부에서 규정되는 영역임을 시사한다.

 

이자율은 일정 기간 화폐 자본을 사용하는 대가로 대부자가 수취하고자 하며 차입자가 지불하고자 하는 금액의 비율로 정의된다. 자본 소유자가 자신의 자본을 직접 재생산 과정에 투입할 경우, 그는 이자율 결정 원리에 참여하는 대부자의 범주에서 제외된다.’ (투크, 1838, : 355-356)

 

결국 이자라는 범주는 자본가가 화폐 자본가와 산업 자본가로 기능적으로 분리되면서 비로소 성립하며, 이윤의 일부가 이자로 전환되는 근거가 된다. 따라서 이자율은 이들 두 자본가 집단 사이의 경쟁 관계로부터만 결정적 형태를 갖추게 된다.

 

자본이 재생산 과정에서 기능하는 한, 비록 그것이 산업 자본가 자신의 소유로 대부자에게 상환할 의무가 없더라도, 자본가가 개인적 수입으로 처분할 수 있는 영역은 이윤에 국한될 뿐 자본 그 자체는 아니다. 자본으로 기능하는 자본은 재생산 과정에 고착되어 있으며, 소유권의 존부와 무관하게 노동 착취를 위한 자본으로 운용되는 동안에는 다른 용도로 전용될 수 없다. 이는 화폐 자본가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 자본이 대부되어 화폐 자본으로 기능하며 이윤의 일부인 이자를 발생시키는 과정에 있는 한, 자본가는 그 원금에 대한 임의적인 처분권을 행사할 수 없다.

 

자본가가 자본을 수년에 걸쳐 대부하고 원금 상환 없이 이자만을 수취하는 경우, 자본의 구속성은 명확히 드러난다. 설령 원금을 상환 받더라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해당 자본이 이자 낳는 자본으로 지속해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다시 대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본이 소유자의 수중에 머무는 동안에는 이자가 발생하지 않으므로, 자본으로의 기능을 상실하며, 반대로, 이자를 창출하며 자본으로 기능하는 동안에는 소유자의 수중을 떠나 있게 된다. 이 지점에서 자본의 영구적 대부 경향성이 도출된다.

 

따라서 보상케트의 주장 (1842: 73)을 비판한 투크의 견해는 타당성을 결여한다. 보상케트는,

   

이자율이 1% 수준으로 하락할 경우, 차입 자본이 자기 자본과 실질적으로 동등한 지위를 갖게 된다.’

 

이것에 대해 투크는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이러한 이자율, 또는 그보다 더 낮은 이자율로 차입한 자본이 자기 자본과 실질적으로 동등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납득하기 어렵다. 해당 분야의 부차적인 논점들에 정통한 현명한 저자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이는 진지하게 고찰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다. 그는 상환이라는 조건이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거나, 또는 그 사안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투크, 1844: 80)

 

이에 대해 투크는 상환 의무라는 전제 조건을 간과한 기이한 발상이라며 이를 일축했으나, 이는 자본이 기능하는 동안 소유권과 처분권이 분리되는 본질적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처사이다.

   

이자율이 영 (0)에 수렴할수록 차입 자본을 운용하는 산업 자본가는 자기 자본을 소유한 자본가와 실질적으로 대등한 지위를 점하게 된다. 양자 모두 동일한 평균 이윤을 획득하며, 각자의 자본은 이윤 창출이라는 본연의 목적에 따라 자본으로 기능한다. 상환 조건의 존재 여부는 이러한 기능적 측면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이자율이 1%와 같이 저리에 머물 경우, 화폐 자본이 자본으로의 성격을 유지하려면 산업 및 상업 자본가 계급에게 현행 이율로 지속해서 대부되어야 하며, 이는 차입 자본과 자기 자본 사이의 경제적 구분을 불분명하게 만든다.

 

결국 기능 자본가로 두 집단의 실질적 차이는 이자 지불 여부에 따른 수익 배분 방식, 곧 전체 이윤 p을 점유하느냐 또는 이자를 제외한 잔여 이윤 (p-i)을 점유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자 (i)가 영에 가까워질수록 양자의 수익 구조는 상호 근접하게 된다. 한쪽은 자본을 상환하고 재차 차입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다른 쪽은 생산 과정에 자본을 지속해서 재투입하며 처분권의 제약을 받는다는 점에서도 일치한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 남는 유일한 차이는 자본의 법적 소유권 유무라는 자명한 사실뿐이다.

 

이윤의 양적인 분할, 곧 순이윤과 이자로의 구분이 어떻게 질적인 분할로 고착화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는 차입 자본 없이 전적으로 자기 자본만을 운용하는 자본가조차 총이윤의 일부를 이자라는 특수한 범주로 분류하여 별도 계상하는 현상의 근거를 묻는 것이다. 나아가 차입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자본이 스스로를 이자 낳는 자본으로 규정하며, 이로부터 발생하는 순이윤을 가져오는 기능 자본과 자기 자신을 분리하여 파악하게 되는 연유에 대한 고찰이 요구된다.

 

이윤의 우연적이고 양적인 분할이 모두 질적인 범주적 분할로 이전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복수의 산업 자본가가 결합하여 단일 사업을 경영하며 법적 협약에 따라 이윤을 배분하는 경우와, 단독 자본가가 사업을 영위하는 경우를 전제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 자신의 이윤을 개인 이윤과 존재하지 않는 동업자를 회사 이윤으로 명목상 분리하여 계상하지 않는다. , 양적 분할이 질적 분할로 전환되는 현상은 발생하지 않는다. 이처럼 이윤의 분할은 소유 주체가 복수의 법적 인격으로 구성될 때에만 실재하며, 단일 소유 구조하에서는 범주적 분리가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제기된 문제에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이자 형성의 실증적 출발점에 주목해야 한다. , 화폐 자본가와 산업 자본가가 단순히 법률적으로 독립된 인격체만이 아니라, 재생산 과정 내에서 상이한 역할을 수행하는 주체로 대립한다는 전제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는 동일한 자본이 각 주체의 수중에서 실질적으로 이중의 상이한 운동을 전개함을 의미한다. 한쪽은 자본을 대부하는 기능에 국한되는 반면, 다른 쪽은 이를 생산 과정에 투입하여 운용하는 기능만을 담당하면서 양자의 현실적 대립 구도가 형성된다.

 

차입 자본을 운용하는 기능 자본가 (산업·상업 자본가)에게 총이윤은 대부자에게 지급할 이자와 이를 초과하여 자본가에게 귀속되는 몫이라는 두 부분으로 분할된다. 일반적 이윤율과 이자율이 주어져 있다면, 자본가의 최종 수입은 이 두 지표의 상관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특히 개별 사례에서 총이윤의 현실적 가치량이 평균 이윤에서 크게 이탈하더라도, 기능 자본가의 몫을 규정하는 결정적 변수는 이자이다. 이자는 특별한 법률적 계약이 없는 한 일반적 이윤율에 따라 확정되며, 생산 과정의 결과물인 총이윤이 실현되기 이전 단계에서 이미 확정된 수치로 전제되기 때문이다.

 

자본의 본질적 생산물은 잉여 가치이며, 구체적으로는 이윤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차입 자본을 운용하는 자본가에게 실질적인 수익은 총이윤이 아니라 이자를 공제하고 남은 잔여 부분에 국한된다. 따라서 이 이윤 부분은 그에게 현실적으로 기능하는 자본의 직접적인 생산물로 파악되며, 이는 자본의 인격화로 그가 수행하는 기능적 역할에 부합하는 실체적 사실이 된다.

 

자본이 기능한다는 것은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산업이나 상업에 투입되어 자본가가 해당 부문에서 요구되는 제반 활동을 수행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대부자에게 지급되는 이자에 대비되는 총이윤의 잔여분은 필연적으로 산업 이윤 또는 상업 이윤의 형식을 취하게 되며, 이를 포괄하는 개념인 기업가 이득의 형태로 정착된다.

 

총이윤이 평균 이윤과 일치할 경우 기업가 이득의 크기는 전적으로 이자율에 따라 규정된다. 반면, 총이윤이 평균 이윤과 불일치될 때, 양자에서 이자를 공제한 후 발생하는 차액은 일시적 변동을 야기하는 제반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

 

어느 특정 생산 부문의 이윤율이 일반 이윤율에서 벗어나거나, 개별 자본가의 수익이 해당 부문의 평균치를 상회 또는 하회하는 경우를 모두 포괄한다. 이윤율은 생산 과정 내의 잉여 가치뿐만 아니라 생산 수단의 매입 가격, 생산성 향상, 불변 자본의 절약 등 여러 요인에 의존하며, 유통 과정에서의 시장 상황과 자본가의 역량, 곧 구매 및 판매 시점의 전략적 판단에 기반한 잉여 가치 취득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총이윤의 양적 분할은 질적 분할로 이전된다. 특히 이 분할의 실질적 양태가 자본의 구체적 활용 방식 및 기능 자본으로 창출한 성과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점은, 양적 구분을 질적 규정성으로 전환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기능 자본가가 자본 소유자가 아님을 전제할 때, 자본 소유권은 기능 자본가와 대립하는 대부자 (화폐 자본가)에게 대표된다. 이에 따라 기능 자본가가 지급하는 이자는 총이윤 중 자본 소유 그 자체에 귀속되는 몫으로 규정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능동적 자본가에게 돌아가는 몫은 그가 재생산 과정에서 수행하는 활동, 특히 산업이나 상업의 기업가로 발휘하는 기능으로부터 발생하는 기업가 이득으로 나타난다. , 기능 자본가의 관점에서 이자는 재생산 과정과 분리된 채 노동이나 기능 없이 획득되는 자본 소유의 단순한 과실로 파악된다. 반면, 기업가 이득은 자본가가 자본을 운용하며 수행하는 기능적 활동의 직접적인 성과로 간주된다. 화폐 자본가가 생산 과정에 관여하지 않음에 따라, 자본의 운동과 그에 따른 성과는 온전히 기능 자본가 자신의 주체적 활동에 따른 결실로 형상화된다.

 

총이윤이 이자와 기업가 이득으로 질적으로 분할되는 현상은 자본가들의 주관적 견해만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다. 이자는 생산 과정과 무관한 자본 소유 그 자체의 과실로 대부자의 수중에 귀속되는 반면, 기업가 이득은 실제 재생산 과정에서 자본을 운용하는 기능적 활동의 과실로 기능 자본가의 수중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 이자는 생산 과정 외부에서 자본 소유를 대표하는 화폐 자본가에게 귀속되고, 기업가 이득은 소유권과 분리되어 생산 현장에서 자본을 인격화하는 기능 자본가에게 수취된다는 실체적 분배 구조가 이러한 질적 규정성을 뒷받침한다.

   

동일한 자본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이윤에 대해 서로 다른 법적 권리를 지닌 두 주체 사이의 양적 분할은, 화폐 자본가와 산업 자본가의 대립에서 질적 분할로 고착된다. 이로부터 이윤의 한 부분은 자본 소유 그 자체에 귀속되는 과실인 이자로 규정되며, 다른 부분은 자본의 기능적 운용에 따른 고유한 결실인 기업가 이득으로 형상화된다. , 전자는 자본 소유권의 단순한 과실로, 후자는 재생산 과정 내에서 능동적으로 기능하는 자본 또는 자본가의 주체적 활동이 낳은 성과로 파악된다.

 

이처럼 총이윤의 두 구성 요소가 본질적으로 상이한 원천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자립화하고 화석화되는 현상은 자본가 계급 전체와 자본 일반의 규정성으로 확립된다. 따라서 이러한 질적 분할의 논리는 능동적 자본가가 운용하는 자본의 차입 여부나, 화폐 자본가의 직접적인 자본 사용 여부와 무관하게 자본주의적 분배 구조 전반에 관철된다.

 

개별 자본의 이윤과 자본 간 균등화에 기반한 평균 이윤은 각각 특수한 법칙에 따라 결정되는 이자와 기업가 이득이라는 질적으로 상이하고 상호 독립적인 두 부분으로 분할된다. 자기 자본을 운용하는 자본가 역시 차입 자본가와 마찬가지로 총이윤을 자본 소유자로 수취하는 이자와 능동적 기능 자본가로 획득하는 기업가 이득으로 구분한다.

 

따라서 이러한 질적 분할에 있어 자본가가 실제로 이윤을 타인과 분배하는지 여부는 본질적 변수가 되지 않는다. 자본 사용자는 자기 자본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자본의 단순 소유자와 자본의 사용자라는 두 인격으로 분열된다. 자본 그 자체 또한 이윤 범주와의 상관관계 속에서 생산 과정 외부에 존재하는 이자 낳는 자본 소유와 생산 과정 내부에서 기업가 이득을 창출하는 과정 중의 자본으로 이원화된다.

 

이자는 단순히 타인의 자본을 운용할 때 발생하는 생산 외적 분할에 그치지 않는다. 산업 자본가가 자기 자본으로 활동하는 경우에도 그의 이윤은 이자와 기업가 이득으로 분할된다. 이로부터 양적 분할은 질적 분할로 이전되며, 이러한 분할은 자본의 실질적 소유 여부라는 개별적 사정과 무관하게 관철된다. , 이 분할은 서로 다른 인격에게 배분되는 이윤의 몫만이 아니라, 이윤의 두 가지 질적 범주를 형성한다. 이는 자본에 대한 상이한 관계, 곧 자본의 소유기능이라는 서로 다른 자격에 대응하는 필연적 규정성으로 확립된다.

 

총이윤의 분화가 질적 성격을 획득하고 자본가 계급 전반에 관철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객관적 근거에 기인한다.

 

첫째, 대다수 산업 자본가가 자기 자본과 차입 자본을 다양한 비율로 배합하여 운용하며, 그 비율 또한 시기에 따라 부단히 변동한다는 실증적 사실 때문이다.

 

둘째, 이자가 독자적인 범주로 확립됨에 따라 총이윤의 잔여분이 필연적으로 기업가 이득이라는 대립적 형태를 취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윤의 분화에 관한 연구는 본질적으로 총이윤의 일부가 어떻게 이자로 자립화하고 고착되는가에 관한 연구로 귀착된다. 역사적으로 이자 낳는 자본과 그 생산물인 이자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 성립 이전부터 완성된 형태로 존재해 왔으며, 이로 인해 통속적 관념 속에서 화폐 자본은 진정한 의미의 자본으로 간주되어 왔다. 특히 대부 자본이 생산적 활용 여부와 무관하게 이자를 발생시킨다는 사실은 이 자본 형태의 독립성을 강화하였고, 18세기 중엽 매시와 흄에게 이자가 총이윤의 일부임이 밝혀지기 전까지 이자는 화폐 그 자체에서 비롯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셋째, 화폐 자본가 계급이 산업 자본가와 대비되는 특수한 자본가 집단으로 실재하며, 화폐 자본과 이자가 각각 독립된 자본 종류와 잉여 가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질적 관점에서 이자는 재생산 과정 외부에 머무는 자본 소유권이 생산 과정과 분리되어 스스로 창출하는 잉여 가치로 규정된다.

 

양적 관점에서 이윤 중 이자 부분은 산업 및 상업 자본이 아닌 화폐 자본에 대응하는 것으로 파악되며, 이자율은 이러한 관계를 고착시킨다. 이자율은 일반 이윤율에 의존함에도 독립적으로 결정될 뿐만 아니라, 파악하기 난해한 이윤율과 달리 시장 가격처럼 항상 명백히 주어진 크기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모든 자본이 산업 자본가의 수중에만 있다면 이자와 이자율은 성립할 수 없으나, 총이윤의 양적 분할이 취하는 독립적 형식이 이러한 질적 분할을 야기한다. 산업 자본가는 화폐 자본가와 비교할 때 이자율에 따라 확정된 평균 이자를 초과하는 기업가 이득으로만 구별된다.

 

반면, 자기 자본으로 사업하는 산업 자본가는 이자를 타인에게 지불하지 않고 스스로 수취한다는 점에서만 화폐 자본가적 성격을 지닌 채 일반 산업 자본가와 구별될 뿐이다. 결론적으로 산업 자본가에게 총이윤 중 이자를 제외한 부분은 기업가 이득으로 규정되며, 이자 그 자체는 자본의 생산적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자본 소유권 자체가 창출하는 잉여 가치로 실체화된다.

 

개별 자본가의 관점에서 자본을 이자 낳는 자본으로 대부할 것인지, 또는 직접 생산적 자본 (산업·상업 자본)으로 운용할 것인지 선택하는 문제는 전략적 판단이다. 그러나 자본이 생산 과정과 무관하게 본연적으로 이자를 낳는다는 관념을 사회적 총자본에 일반화하여 이를 이윤의 근거로 삼는 속류 경제학적 견해는 명백한 오류이다.

 

화폐로 존재하는 극히 일부를 제외한 총자본이 생산 수단의 형태를 띠고 있음을 고려할 때, 이를 구매하여 가치를 증식시키는 주체 없이 총자본이 화폐 자본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발상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자본주의적 생산, 곧 잉여 가치의 창출 과정 없이도 자본이 이자를 낳을 수 있다는 관념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기초를 부정하는 논리적 모순이다.

 

대다수 자본가가 자본을 화폐 자본으로만 운용하려 한다면, 화폐 자본의 과잉 공급으로 인한 이자율 폭락이 발생할 것이며, 결국 이자 수입만으로 생계 유지가 곤란해진 자본가들은 다시 산업 자본가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개별 자본가의 관점에서는 이자와 기업가 이득의 취득이 엄격히 분리된다. 따라서 자기 자본을 운용하는 자본가라 할지라도 총이윤 중 평균 이자에 해당하는 몫을 생산 과정과 분리된 자본 그 자체의 과실로 간주하며, 이를 초과하는 잔여분을 기업가 이득으로 규정하게 된다.

 

넷째, (엥겔스: 원고 공백).

 

이처럼 기능 자본가가 대부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이자는, 차입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자본이 창출한 이윤 중 특정 부분이 이자라는 이름으로 분리된 독립적 형태를 취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이윤에 대해 서로 다른 법적 권리를 가진 주체들 사이의 단순한 양적 분배는 자본과 이윤의 본질적 성격에서 기인하는 듯한 질적 분할로 고착된다. 일단 이윤의 일부가 이자라는 범주로 확정되면, 평균 이윤과 이자의 차액은 필연적으로 이자에 대립하는 기업가 이득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이 두 범주는 잉여 가치라는 단일한 원천과의 연계성보다는 상호 대립적인 관계 속에서 정의된다. , 이윤의 한 부분이 이자로 정립되면서 비로소 다른 부분이 기업가 이득으로의 고유한 형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 언급되는 이윤은 항상 평균 이윤을 의미한다. 개별 이윤이나 특정 생산 분야의 이윤이 평균 이윤에서 이탈하는 현상, 곧 경쟁이나 기타 제반 사정에 따른 이윤 및 잉여 가치 분배의 변동은 본 고찰의 본질적 논점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자는 람지가 규정한 순이윤이 되며, 이는 재생산 과정 외부에 존재하는 대부자나 자기 자본을 직접 운용하는 소유자 모두에게 자본 소유 그 자체에서 비롯되는 결실로 파악된다. 자기 자본을 사용하는 자본가에게 자본 소유가 순이윤 (이자)을 안겨 주는 이유는 그가 기능 자본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본을 이자 낳는 자본으로 기능 자본가인 자기 자신에게 대부하는 화폐 자본가의 지위를 겸하기 때문이다.

 

화폐와 가치 일반이 자본으로 전환되는 것이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의 필연적 결과이듯, 화폐가 자본으로 실재하는 것은 해당 과정의 항구적 전제이다. 화폐가 생산 수단으로 전환될 수 있는 잠재력에서 미지불 노동을 지배하며, 이로부터 상품의 생산 및 유통 과정을 화폐 소유자를 위한 잉여 가치 창출 과정으로 변모시킨다.

 

결국 이자는 현실의 생산 과정에서 생산 수단의 형상을 취한 가치 일반 (사회적 형태의 대상화된 노동)이 자립적인 위력을 지닌 채 살아있는 노동력과 대립하여 미지불 노동을 탈취하는 수단이 됨을 표상한다. 또한 가치가 이러한 지배력을 획득하는 근거는 그것이 노동자와 대립하는 타인의 소유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자라는 구체적 형태 안에서 임금 노동에 대한 이러한 직접적 대립 구도는 은폐된다.

 

이자 낳는 자본이 대립물로 전제하는 대상은 임금 노동자가 아니라 기능하는 자본가이기 때문이다. 대부 자본가와 직접 마주하는 주체는 재생산 과정의 실체적 집행자인 기능 자본가이지, 생산 수단을 결여한 임금 노동자가 아니다. , 이자 낳는 자본은 기능으로의 자본에 대립하는 소유로의 자본을 의미한다. 자본은 기능하지 않는 한 노동자를 착취할 수 없으며, 따라서 노동과 직접적으로 대립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업가 이득은 임금 노동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이자와 대립할 뿐이다.

 

그 근거는 첫째, 평균 이윤이 고정된 상태에서 기업가 이득률을 결정하는 변수는 임금이 아니라 이자율이기 때문이다. 기업가 이득률은 이자율과 반비례 관계를 형성하며 그 고저가 결정된다.

 

둘째, 기능 자본가는 기업가 이득의 근거를 자본 소유권이 아닌 자본의 기능, 곧 비활동적 재산으로의 자본과 대비되는 동태적 운용에서 도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립 구도는 차입 자본을 운용하여 이자와 기업가 이득의 수취 주체가 분리될 때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기업가 이득은 재생산 과정에서의 자본 기능, 곧 산업 및 상업 자본의 제반 기능을 매개하는 자본가의 작업과 활동의 결과물이다.

 

자본주의적 생산 체제에서 기능 자본의 대표자는 생산과 유통 과정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며, 생산적 노동을 착취하기 위해 직접적이든 대리인을 거쳐서든 구체적인 노력을 투여해야 한다. 따라서 자본가에게 기업가 이득은 소유권과 무관한, 비소유자이자 노동자로 수행한 기능적 활동의 결실로 파악된다.

 

이로 인해 자본가의 의식 속에는 기업가 이득이 임금 노동과 대립하는 타인의 미지불 노동이라는 본질이 소멸하고, 대신 그것이 감독 임금이라는 관념이 들어선다. 이는 자신의 노동이 전문 노동이며, 스스로에게 지급하는 고액 임금이라는 논리로 정당화된다. 자본가의 본질적 기능이 미지불 노동을 가장 경제적인 조건에서 생산하여 잉여 가치를 창출하는 데 있다는 사실은 망각된다. 이러한 망각은 자본가가 아무런 기능을 수행하지 않아도 소유자로 이자를 수취하는 현상과, 자본을 소유하지 않아도 기능 수행에서 기업가 이득을 얻는 현격한 차이에서 비롯된다. 이윤을 구성하는 두 부분의 외견상 차이로 인해, 양자 모두 노동자의 미지불 노동에서 유래한 잉여 가치의 파생물일 뿐이라는 본질적 성격은 철저히 은폐된다.

 

재생산 과정에서 기능 자본가는 임금 노동자에 대립하여 타인의 소유물인 자본을 대변하며, 화폐 자본가는 이러한 기능 자본가를 매개로 하여 노동 착취에 가담한다. 능동적 자본가가 노동자에 대립하는 생산 수단의 대표자로만 자신의 기능, 곧 노동력을 예속시키고 생산 수단을 자본으로 가동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본질적 사실은 재생산 과정 내부의 자본 기능과 생산 과정 외부의 단순한 자본 소유 사이의 대립 구도로 인해 은폐된다. 이로부터 자본의 기능적 운용이 지닌 착취적 성격은 망각되고, 자본의 소유와 기능 사이의 관계만이 표면화된다.

 

사실상 이윤 또는 잉여 가치가 이자와 기업가 이득으로 분할되어 취하는 형태는 노동과의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나타내지 않는다. 노동과의 본질적 연관성은 노동과 이윤, 곧 이자와 기업가 이득의 총체인 잉여 가치 전체 사이에서만 성립하기 때문이다. 이윤의 분할 비율과 그 근거가 되는 권리 관계는 이미 이윤이 창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자본가가 운용 자본의 실질적 소유자로 이윤 전부를 점유하든, 또는 그 일부를 법적 소유자인 제3자에게 지급하든, 이는 노동자와의 관계에서는 무의미한 사정이다.

 

그럼에도 두 자본가 주체 간의 이윤 분배 사유는, 분배 이전의 이윤 또는 잉여 가치 그 자체가 존재하게 된 근본 원인으로 치환된다. 이자와 기업가 이득이 상호 대립할 뿐 노동과 대립하지 않는다는 외적 현상으로 인해, 이윤과 잉여 가치의 원천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이 두 부분의 대립적 형식 속으로 매몰된다. , 이윤이 자본 고유의 속성인 이자와 자본가의 노동인 기업가 이득의 합이라는 왜곡된 견해가 도출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윤은 분할이 논의되기 이전, 생산 과정에서 이미 창출되어 존재하는 실체이다.

 

이자 낳는 자본의 실체는 대부된 화폐가 현실적으로 자본으로 전환되어 이자의 원천인 초과분을 생산할 때 비로소 입증된다. 그러나 이것이 생산 과정과 독립적으로 이자를 창출하는 자본 고유의 잠재적 속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노동력이 노동 과정에서 실현될 때 비로소 가치를 창출하지만, 가치 창출이라는 속성 자체는 노동 과정의 결과가 아닌 전제로 이미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것과 같다. 노동력이 가치 창출 능력을 지닌 상품으로 거래되듯, 자본 또한 잉여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잠재적 유용성을 지닌 특수한 상품으로 취급된다.

 

차입자가 대부 받은 자본을 실제로 자본으로 운용하여 잉여 가치를 생산할 것인지, 또는 비생산적인 개인적 목적으로 소비할 것인지는 차입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차입자가 지불하는 대가는 자본이라는 상품에 잠재력으로 내재해 있는 잉여 가치 창출 능력에 대한 보상이다. , 이자는 자본이 기능 자본으로 전화하기 이전부터 이미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가치 증식력에 대한 지불인 것이다. (CW 32: 487-489)

 

 

 기업가 이득의 본질적 성격은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하에서 타인의 노동을 지배하는 자본의 특수한 사회적 속성이 확립됨에 따라, 이자는 이러한 원리 속에서 자본이 창출하는 잉여 가치의 고유한 몫으로 규정된다. 이에 대비되는 잉여 가치의 잔여분인 기업가 이득은 필연적으로 자본 그 자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자라는 형태로 이미 외화된 자본의 사회적 속성과 분리된 별도의 생산 과정에서 기인하는 것처럼 인식된다. 그러나 생산 과정이 자본이라는 규정성에서 분리될 경우, 이는 단지 추상적인 노동 과정 일반으로 수렴된다. 그 결과, 자본 소유자와 대비되는 산업 자본가는 기능 자본의 인격화로가 아니라 자본과는 무관한 직무 수행자, 곧 노동 과정 일반을 담당하는 단순한 노동자이자 임금 노동자의 형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자가 체현하는 실질적 의미는 노동 조건이 자본으로 존재한다는 사실, 곧 생산 수단이 노동에 대해 사회적으로 대립하며 노동을 지배하는 개별적 권력으로 실체화되었음을 뜻한다. 이자는 타인 노동의 생산물을 사유화하는 수단으로 자본 소유 그 자체를 표상한다. 그러나 이자는 이러한 자본의 본질을 생산 과정 외부에서 규정되는 속성으로 나타내며, 이를 생산 과정 내의 특수한 자본주의적 규정성과 무관한 것처럼 드러낸다.

 

특히 이자는 자본의 성격을 노동과의 직접적인 대립 구도로 표현하지 않고, 오히려 노동과는 무관한 자본가와 자본가 사이의 관계로만 형상화한다. 이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실질적 관계를 외면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규정이다. 따라서 자본의 대립적 성격이 독립적인 형식을 획득한 특수한 이윤 형태인 이자 속에서, 자본과 노동 사이의 근원적 대립은 완전히 소거된다. 이자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가 아닌, 오직 두 자본가 사이의 분배 관계로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자 형태의 정립은 모순적으로 이윤의 잔여 부분에 기업가 이득또는 감독 임금이라는 질적 형식를 부여한다. 자본가로 수행해야 하는 특수한 기능, 곧 노동자와 구별되고 대립하는 자본가 고유의 역할이 이 지점에서 단순한 노동 기능으로 전치된다.

 

자본가가 잉여 가치를 획득하는 근거가 자본가로의 기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라는 자격과는 무관하게 그 역시 노동을 수행하기 때문이라는 논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잉여 가치의 이 부분은 노동 착취의 산물이 아니라, 자본가가 투여한 노동의 정당한 등가물로 오인된다.

 

자본의 소외된 성격과 노동에 대한 대립적 속성이 현실적 착취 과정 외부의 이자 낳는 자본으로 고착됨에 따라, 실제 착취 과정은 단순한 노동 과정으로 변모한다. 여기에서 기능 자본가는 일반 노동자와 종류만 다른 노동을 수행하는 주체로 인식되며, 착취하는 노동과 착취되는 노동은 노동이라는 동일한 층위에서 질적으로 등치된다.

 

결국 자본의 사회적 형태적 속성은 이자에 위임되어 중립적인 현상으로 고착되는 한편, 자본의 경제적 기능은 기업가 이득으로 수렴되면서 그 특수한 자본주의적 성격이 완전히 소거된다.

 

자본가의 의식 속에서는 잉여 가치의 분할을 결정하는 보상 근거들 (2편 제123)이 왜곡되어, 이윤 발생의 본질적 원인이자 주관적 정당화의 근거로 전치된다. 이는 평균 이윤의 균등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과 부합한다.

 

기업가 이득이 감독 노동의 임금이라는 관념은 기업가 이득과 이자 사이의 대립 구도에서 파생되나, 이는 실증적인 현상 속에서 더욱 공고해진다. , 이윤의 일부가 실제 임금의 형태로 분리되거나, 반대로, 임금의 일부가 자본주의적 생산의 필수적인 이윤 구성 요소로 간주되는 사정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러한 양태는 애덤 스미스 (국부론1편 제6)가 이미 파악한 바와 같이, 분업이 고도로 발달한 부문에서 경영자에게 지급되는 관리 임금을 매개로 순수한 형태로 드러난다. 여기서 경영자의 임금은 이윤 전체나 기업가 이득과는 독립적으로 실재하며, 이들 범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별개의 항으로 나타난다. (CW 32: 495-496)

 

감독 및 관리 (지휘) 노동은 직접적 생산 과정이 고립된 개인의 노동이 아닌 결합된 사회적 과정의 형태를 취하는 곳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며, 이는 이중적 성격을 지닌다.

 

한편으로, 다수의 개인이 협력하는 모든 노동에서 과정의 통일성과 상호 관련성을 유지하는 기능은 필수적이다. 이는 관현악단의 지휘자와 같이 부분적 노동이 아닌 작업장 전체의 활동을 관장하는 지휘 주체에 위임되며, 어떠한 결합된 생산 방식에서도 수행되어야만 하는 생산적 노동에 해당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감독 노동은 직접적 생산자인 노동자와 생산 수단 소유자 사이의 대립에 기초하는 모든 생산 양식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이 대립이 심화될수록 감독 기능의 비중 또한 확대되며, 이는 노예제에서 극단에 이르고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도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자본주의하에서의 생산 과정은 동시에 자본가에 따른 노동력의 소비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는 전제 국가의 통치 행위가 공동체의 성격에서 기인하는 공동 사업의 수행과 정부와 인민 간의 대립에서 기인하는 특수한 억압 기능이라는 두 측면을 동시에 포괄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노예 제도 시기의 고대 저술가들은 감독 노동의 두 측면, 곧 기술적 편성과 사회적 억압을 이론적으로 결합하여 파악하였으며,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을 절대적이고 자연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근대 경제학자들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특히 근대적 노예 제도의 옹호자들은 감독 노동의 필요성을 미국 남부 노예 제도의 정당화 근거로 활용하였는데, 이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감독 노동을 근거로 임금 노동 제도의 필연성과 정당성을 변호하는 논리 구조와 일치한다.

 

카토 (고대 로마의 정치가) 시대 농장 관리인:

 

카토 시대 농장 조직의 정점에는 출납과 매매를 관장하는 노예 신분의 농장 관리인이 존재했다. 그는 주인의 지시를 수행함을 물론, 주인 부재 시에는 여타 노예들에 대한 명령권과 처벌권을 행사했다. 관리인은 일반 노예보다 폭넓은 자유를 누렸으며, 마고의 저술은 관리인에게 혼인과 가정을 허용하고 사유 화폐 소유를 권고했다. 카토 역시 관리인과 여성 관리인의 결합을 장려했다. 오직 관리인만이 성실한 품행을 전제로 해방의 전망을 가졌던 반면, 다른 노예들은 집단적 공동 세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관리인을 포함한 모든 노예는 주인의 비용으로 정기적으로 고정된 양의 생필품을 지급받아 생활했다. 배급량은 노동 강도를 기준으로 책정되었기에, 일반 노예보다 노동 강도가 적은 관리인은 오히려 더 적은 양의 배급을 받기도 했다.’ (몸젠, 1856, : 809-810)

 

아리스토텔레스:

 

주인 (자본가)은 단순히 노예를 획득하는 능력 (노동력 구매력을 갖춘 자본 소유)이 아니라 노예를 실제로 사용하는 행위 (생산 과정에서 임금 노동자를 운용하는 것)로부터 자신의 지위를 실증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은 결코 고귀하거나 위대한 성격의 것이 아니다. 노예가 수행해야 할 과업이 무엇이든 주인은 그저 명령하는 법만 익히면 족하기 때문이다. 주인이 직접 감독 업무에 투여될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되면 관리인이 이 소임을 대행하며, 주인은 그 여가를 국가 정치나 철학적 사색에 할애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정치학, 권 제7)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와 경제를 막론하고 지배란 지배자에게 군림하는 기능을 부과하며, 특히 경제적 영역에서 지배자는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소비하는 방안을 체득해야 함을 직시하고 있다. 그는 감독 노동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며, 주인이 일정 수준의 부를 축적하여 경제적 여유를 확보하는 즉시 감독이라는 수고스러운 영예를 관리인에게 위임하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관리 및 감독 노동이 사회적 결합 노동 일반의 필요가 아닌, 생산 수단 소유자와 노동력 소유자 사이의 길항 관계에서 비롯되는 한, 직접적 생산자 (피지배자)에 대한 예속은 종종 그 관계 자체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오용된다.

 

이 경우 타인의 미지불 노동을 착취하고 취득하는 행위는 자본 소유자가 마땅히 수취해야 할 임금으로 둔갑한다. 이러한 논리의 극치는 18591219일 뉴욕 집회에서 미국 노예 제도 옹호론자인 변호사 오코너가 행한 남부에 정의를이라는 구호 아래 행한 연설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면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여러분, 흑인을 노예 상태로 운명 지운 것은 다름 아닌 자연입니다. 자연은 그에게 강인한 체력과 노동할 힘을 부여했으나, 정작 그 힘을 다스릴 지능과 일하려는 의지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청중의 박수) 흑인에게는 그 무엇도 주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노동할 의지를 거두어간 자연은 그 대신 그 의지를 강제할 주인을 예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흑인에게 적합한 풍토 속에서 그 자신은 물론 그를 다스리는 주인을 위해 스스로를 유용한 종으로 변모시킬 주인을 점지한 것입니다. 흑인을 자연이 정한 질서 속에 머물게 하는 것, 곧 자신을 관리할 주인을 대면하게 하는 것은 결코 불의가 아닙니다. 그에게 노동을 강제하고 그 과정에서 그를 관리하며 그 자신과 사회에 유용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 주인이 투여한 노동과 재능에 대하여, 주인으로 하여금 정당한 보상을 거두게 하는 것은 결코 흑인의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가 아님을 단언하는 바입니다.’

 

[뉴욕 데일리 트리뷴18591220일자

 

오코너는 청중의 열렬한 지지 속에서 흑인의 노예 상태를 자연적 질서로 규정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자연은 흑인에게 강인한 체력과 노동 능력을 부여했으나, 이를 관리할 지능과 노동할 의지는 결핍시켰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 의지를 갖추지 못한 흑인에게는 그 의지를 강제할 주인이 필연적으로 요구되며, 이는 흑인을 스스로와 사회에 유용한 존재로 만드는 자연적 섭리라고 강변하였다. 그는 흑인에게 관리자를 배정하는 것이 결코 불의가 아니며, 오히려 흑인에게 노동을 강제하여 그를 관리하는 주인의 노동과 재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지불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정당한 질서라고 선언하였다. , 노예의 노동에 기반한 주인의 이윤 획득을 관리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으로 치환하여 정당화한 것이다.

 

임금 노동자 역시 노예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노동시키고 관리할 주인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러한 지배와 예속의 관계가 전제되면, 임금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 외에도 자신을 지배·감독하는 노동에 대한 보상, 감독 임금을 창출하도록 강요받는 상황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로 수용된다. 이는 관리자의 노동과 재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된다.

 

감독 및 관리 노동이 자본의 대립적 성격인 노동 지배에서 기인하며, 계급 대립에 기초한 모든 생산 양식에 공통되는 한,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이 노동은 결합된 사회적 노동이 요구하는 기술적·생산적 기능들과 불가분하게 고착된다.

 

고대 그리스의 에피트로포스나 봉건제하 프랑스의 레지쇠르와 같은 관리인의 임금은, 사업 규모가 확대되어 관리직을 별도로 둘 수 있게 되는 즉시 이윤으로부터 분리되어 전문 노동에 대한 임금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비록 현대의 산업 자본가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주인처럼 곧바로 국가 사무나 철학에 전념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닐지라도, 이윤의 분할 구조는 동일한 궤적을 그린다.

 

앤드루 유어가 이미 지적했듯이, ‘현대 산업 제도의 실질적인 동력은 자본 소유자인 산업 자본가가 아니라 실무를 담당하는 산업 경영자에게 있다. 사업의 상업적 측면에 관련된 제반 사항은 이미 제4편에서 규명된 바와 같이, 자본의 소유와 기능이 분리되는 필연적 과정을 뒷받침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감독 노동을 자본 소유로부터 완전히 분리하면서 자본가가 이 기능을 직접 수행할 필요가 없는 구조를 확립하였다. 관현악단의 지휘자가 반드시 악기의 소유자일 필요가 없으며, 단원들의 임금 지급 사무가 지휘자 본연의 기능에 속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협동조합 공장은 자본가가 생산의 기능자로 불필요해졌음을 실증하며, 이는 자본가가 대토지 소유자를 불필요한 존재로 간주하는 논리와 동일한 궤적을 그린다.

 

자본가의 노동이 단순히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에서 기인하는 타인 노동의 착취 기능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적 결합 노동과 협업을 편성하는 일반적 필요에서 발생하는 한, 그 노동은 본질적으로 자본이라는 규정과 무관하다. 이는 자본주의적 외피를 벗어던지는 즉시 명백해지며, 이러한 노동을 반드시 자본가의 기능이라 주장하는 것은 자본주의 내부에서 발전한 형태들을 그 대립적 성격으로부터 분리할 줄 모르는 속류 경제학의 한계를 드러낼 뿐이다. (CW 32: 497-498, 504)

 

산업 자본가는 화폐 자본가에 비견될 때는 노동자로 간주될 수 있으나, 이는 타인 노동의 착취자로 수행하는 노동에 불과하다. 그가 이 노동의 대가로 요구하는 소위 임금은 실상 타인 노동을 취득한 양과 등치된다.

 

비록 그가 착취를 위해 수고를 투여하더라도, 그의 수취액은 착취의 강도에 직결될 뿐 관리인에게 위임할 수 있는 관리 노동의 크기에 결정되지 않는다. 이는 공황 이후 이전의 공장주들이 채권자 등의 새로운 소유주 밑에서 낮은 임금을 받는 관리인으로 전락하여 자신의 옛 공장을 감독하는 영국의 사례들에서 여실히 입증된다.

 

관리 임금은 상업 및 산업 관리인 모두에게 기업가 이득과 완전히 분리된 형태로 나타나며, 이는 노동자 협동조합이나 자본주의적 주식회사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된다. 다른 생산 양식에서 이러한 분리가 우연적 현상에 머물렀다면, 여기서는 항상적인 체제적 성격을 띤다. 특히 협동조합 공장에서는 관리인이 노동자에게 고용되어 노동자에 대립하는 자본의 대리인이 아닌 만큼, 감독 노동이 지녔던 기존의 대립적 성격이 소멸한다.

 

신용 제도와 함께 발달한 주식회사는 관리 노동이라는 기능을 자기 자본이나 차입 자본과 같은 자본 소유로부터 철저히 분리시키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부르주아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이전 봉건적 토지 소유의 부속물이었던 사법 및 행정 기능이 토지 소유로부터 독립된 것과 비슷한 과정이다.

 

결국 한편으로는 기능 자본가가 단순한 소유자인 화폐 자본가와 대립하고, 신용의 발달로 화폐 자본이 은행에 집중되어 직접적 소유자가 아닌 대출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성격을 띠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 소유와 무관한 단순 관리인이 기능 자본가의 모든 실질적 업무를 수행하게 되면서, 생산 과정에는 오직 기능자만이 남게 된다. 이로부터 자본가는 생산 과정에서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없는 불필요한 인물로 소거된다.

 

영국 협동조합 공장들의 재무제표에 따르면, 이들 공장은 개인 기업보다 높은 이자를 지불하고도 관리인의 임금을 제외한 이윤이 평균 이윤을 상회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높은 이윤의 핵심 동력은 불변 자본의 효율적 운용에 따른 비용 절감에 있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평균 이윤 (= 이자 + 기업가 이득)이 실질적으로 관리 임금과는 무관한 독립적 크기로 산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 이윤 총액이 평균 이윤을 상회함에 따라 기업가 이득 또한 여타 부문보다 높게 형성되었다.

 

이와 동일한 현상은 주식회사 은행과 같은 자본주의적 기업 구조에서도 확인된다. 1863년 런던 앤드 웨스트민스터 은행은 연 30%의 배당률을 기록했으며, 유니언 은행 등은 15%의 배당을 실시했다. 이 경우 총이윤에서는 관리인의 봉급뿐만 아니라 예금주에게 지급되는 이자까지 공제된다. 이러한 높은 이윤율은 납입 자본 대비 예금 자산의 압도적인 비중으로 설명된다. 예컨대 1863년 런던 앤드 웨스트민스터 은행의 납입 자본은 1,000,000파운드였으나 예금액은 14,540,275파운드에 달했으며, 유니언 은행 역시 600,000파운드의 자본금으로 12,384,173파운드의 예금을 운용하며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다.

 

기업가 이득과 감독 임금 사이의 전도는 본래 이윤 중 이자를 초과하는 부분 (기업가 이득)이 이자와 대립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발생하였다. 이러한 전도는 이윤을 잉여 가치, 곧 미지불 노동의 산물이 아닌 자본가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으로 합리화하려는 변호론적 의도로 인해 더욱 심화되었다. 이에 대응하여 사회주의자들은 이윤을 이론적 주장과 부합하도록 실제 감독 임금 수준으로 축소하라는 요구를 제기하였으며, (CW 32: 497) 이는 자본의 이론적 합리화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이러한 전개는 두 가지 측면에서 가속화되었다.

 

첫째, 산업 및 상업 경영자 집단이 폭넓게 형성됨에 따라 감독 임금이 기타 임금과 마찬가지로 객관적인 시장 가격을 형성하게 되었다.

 

둘째, 교육과 훈련의 보편화로 특수 노동력의 생산비가 하락하면서 감독 임금 역시 일반 전문 노동의 임금처럼 하향 평준화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자 측의 협동조합과 자본가 측의 주식회사 제도가 발달함에 따라, 기업가 이득과 관리 임금을 등치시키려던 최후의 근거마저 소멸하였다. 이로부터 이윤은 이론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본질, 곧 아무런 등가물도 지불되지 않은 채 실현된 미지불 노동이자 순수한 잉여 가치임이 실증되었다.

 

결과적으로 기능 자본가는 현실적인 노동 착취자이며, 그 착취의 결실은 자본의 차입 및 동원 방식에 따라 이자와 기업가 이득으로 분할될 뿐이라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게 되었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물적 토대 위에서는 주식회사의 등장은 관리 임금을 매개로 한 새로운 형태의 기만을 수반한다. 실무를 담당하는 현실적인 관리자 상부에 포진한 수많은 이사진과 감사진에게 있어, 관리와 감독이라는 명분은 사실상 주주들의 자산을 잠식하여 사익을 취하기 위한 단순한 구실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실증적인 사례는 1845년 발간된 시티(런던의 금융 중심가)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은행가나 상인이 8-9개에 달하는 기업의 중역을 겸임하며 벌어들이는 수익은 막대한 수준이다. 일례로 커티스라는 인물이 파산했을 당시 파산 재판소에 제출된 대차 대조표에는 중역직 수임료로만 매년 800-900파운드의 수입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가 잉글랜드 은행과 동인도 회사의 중역을 지냈다는 이력만으로도, 개별 주식회사들은 그를 중역으로 영입하는 것을 대단한 자산적 가치로 간주한 결과였다.’ (81, 82)

 

이런 기업의 중역들이 주간 회의에 참석하는 대가로 받는 보수는 최소 1기니 (21실링)에 달했다. 파산 재판소의 심리 기록에 따르면, 이른바 감독 임금이라 불리는 보상의 크기는 명목상의 중역들이 현실적으로 수행하는 실질적 감독 업무의 양과 철저히 반비례하는 양상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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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이윤의 분할. 이자율. ‘자연적이자율 

 

본 장의 분석 대상은 이후 고찰할 제반 신용 현상들과 마찬가지로 상세한 연구는 후술한다. 대부자와 차입자 간의 경쟁 및 그 결과로 발생하는 화폐 시장의 단기적 변동은 논의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산업 순환에 따른 이자율의 변동 양상은 산업 순환 자체에 대한 서술을 전제로 하기에 여기서는 다루지 않으며, 세계 시장 수준에서 전개되는 이자율 균등화 경향도 같은 이유로 제외된다. 본 논의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자 낳는 자본이 취하는 독립적인 형태와, 이윤으로부터 이자가 분리되어 자립화되는 과정뿐이다.

 

이자는 이윤의 일부분으로 기능 자본가가 화폐 자본가에게 지불하는 대가이기에, 최대 한도는 총이윤 그 자체가 된다. 이 경우 기능 자본가의 귀속분은 전무하게 된다. 특수한 예외를 제외하면 이자의 실질적 상한은 총이윤에서 감독 임금을 차감한 잔액으로 규정될 수 있다. 반면, 이자의 최소 한도는 가변적이며 특정 지점으로 고정되지 않으나, 다양한 반작용 요인들로 인해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하게 된다.

 

이자율은 근본적으로 (1) 이윤율과, (2) 그 이윤이 대부자와 차입자 사이에 분할되는 비율에 따라 결정된다.’

 

[이코노미스트. 1853122].

 

이자가 차입 자본을 매개로 창출한 이윤의 일부인 한, 이자는 필연적으로 이윤의 크기에 규제될 수밖에 없다.’ (매시, 1750: 49)

 

먼저 총이윤과 이자 사이의 분할 비율이 고정되어 있다고 전제하면, 이자의 절대량은 총이윤의 변동, 곧 일반적 이윤율의 추이에 정비례한다. 가령 평균 이윤율이 20%이고 분할 비율이 1/4이라면 이자율은 5%가 되며, 이윤율이 16%로 하락하면 이자율 또한 4%로 산출된다. 설령 이윤율이 20%인 상태에서 이자율이 8%로 상승하더라도, 산업 자본가는 이윤율 16%·이자율 4%인 상황과 동일한 12%의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이자율 상승폭이 6%7%에 그친다면 산업 자본가는 이윤의 더 큰 몫 (14% 또는 13%)을 점유하게 된다.

 

이자가 평균 이윤의 고정된 비율을 점유한다고 전제할 때, 일반적 이윤율이 상승할수록 총이윤과 이자 사이의 절대적 차액은 확대되며, 이에 따라 기능 자본가에게 귀속되는 몫도 비례하여 증가한다. 반대로, 이윤율이 하락하면 해당 차액과 기능 자본가의 몫은 축소된다.

 

이자가 총이윤의 1/5 (20%)로 고정된 경우를 전제하면 다음과 같은 상관관계가 성립한다.

 

· 총이윤: 10, 이자 (1/5): 2, 기업가 이윤 (차액): 8

· 총이윤: 20, 이자 (1/5): 4, 기업가 이윤 (차액): 16

· 총이윤: 25, 이자 (1/5): 5, 기업가 이윤 (차액): 20

· 총이윤: 30, 이자 (1/5): 6, 기업가 이윤 (차액): 24

· 총이윤: 35, 이자 (1/5): 7, 기업가 이윤 (차액): 28


이처럼 4%, 5%, 6%, 7% 등 서로 다른 이자율은 각기 다른 이윤율 수준에서 총이윤의 동일한 비율적 점유분을 나타낼 뿐이다. 따라서 이자가 총이윤 내에서 불변의 비중을 유지한다면, 일반적 이윤율의 고저에 따라 산업 이윤 (총이윤과 이자의 차액)의 규모 역시 결정된다.

 

기타의 제반 조건이 불변이며 총이윤과 이자 사이의 분할 비율이 일정하다는 전제하에, 기능 자본가는 자신의 이윤율 수준에 정비례하여 이자를 지불할 의사와 능력을 갖게 된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달에 따라 이윤율의 일반적 수준은 하락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자율이 이윤율의 실질적 수준을 나타내는 한 국가별 이자율의 고저는 해당국의 산업 발달 수준에 반비례하게 된다. 다만 이러한 상관관계가 반드시 필연적인 것은 아님을 향후 논의에서 밝힐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자는 총이윤, 보다 엄밀하게는 일반적 이윤율에 따라 규제되며, 이러한 규제 원리는 이자의 평균 수준을 결정하는 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평균 이윤율은 궁극적으로 이자의 최대 한도를 결정하는 지표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자가 평균 이윤과 관계를 맺는 구체적 양상은 다음과 같다. 이윤이라는 하나의 주어진 총량이 두 부분으로 분할될 때, 우선적인 관건은 분할 대상인 전체의 크기이며, 이는 평균 이윤율에 따라 결정된다. 일반적 이윤율, 100의 자본량에 대하여 할당되는 이윤의 크기가 주어지면, 이자의 수준은 차입 자본을 운용하는 기능 자본가에게 귀속되는 잔여 이윤의 크기와 반비례하여 변동한다.

 

이때 분할 대상인 이윤의 총량, 곧 미지불 노동에 기초한 가치 생산물의 크기를 결정하는 제반 사정은 두 자본가 집단 사이의 이윤 분할 비율을 규정하는 사정들과는 본질적으로 상이하다. 나아가 이러한 결정 요인들은 때로 서로 상반된 방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근대 산업이 거치는 국면적 순환, 곧 불황·회복·번영·과잉 생산·파국·침체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고찰하면 이자율의 변동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저금리는 번영기나 고이윤 시기에 나타나는 반면, 이자율의 상승은 번영이 임계점에 도달하여 붕괴하기 직전에 나타난다. 나아가 이자율이 극단적인 고리대 수준의 정점에 도달한 시점은 공황기와 일치한다.

 

실례로 1842년 봄 4.5%였던 이자율은 현저한 번영기에 진입한 1843년 봄과 여름 사이 2%로 하락하였으며, 동년 9월에는 1.5%까지 저하되었다 (길바트, 1849: 166). 그러나 이후 발생한 1847년의 공황기에는 이자율이 8% 이상으로 급등하며 최고조에 달했다.

 

저금리가 경기 침체와 결합하거나, 완만한 이자율의 상승이 경기 회복과 동행하는 현상 또한 확인된다.

 

이자율이 정점에 도달하는 시점은 지불 수단 확보를 위해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며 화폐를 차입해야 하는 공황기다. 이때 이자율 상승의 반작용으로 유가 증권 가격은 급락한다.

 

따라서 공황기는 가용 화폐 자본을 보유한 이들에게 이자 낳는 증권들을 저가에 매입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증권들은 사태가 진정되고 이자율이 하락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평균 가격에 수렴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윤율의 변동과 무관하게 이자율이 하락하는 경향도 존재하며, 이는 크게 두 가지 요인에서 기인한다.

 

첫째, ‘자본이 전적으로 생산적 투자 목적으로만 차입된다고 전제하더라도, 이자율은 총 이윤율의 변동 없이 독자적으로 운동한다. 국가의 부가 축적됨에 따라 축적된 재원의 이자 수익만으로 생활하는 금리 생활자 계급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은퇴 후 이자 소득에 의존하는 인구의 증가는 부유한 국가일수록 현저하며, 이들이 소유한 자본이 사회적 생산 자본 총량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빈곤한 지역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이러한 대부자 계급의 양적 팽창은 자본 공급을 확대하여 이자율 하락을 유도한다.’ (람지, 1846: 201-202)

 

둘째, 신용 제도의 비약적 발달은 이윤율 저하를 가속화한다. 산업가와 상인은 은행 체계를 매개로 사회 전 계급의 화폐적 축적물을 장악하며, 산재한 저축들은 은행을 매개로 대규모 화폐 자본으로 집적된다. 이처럼 집중된 자본이 대부 시장에 공급되면서 이자율의 하락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해당 기제에 관한 상세한 분석은 후술될 논의에서 다루기로 한다.

 

람지는 이자율의 결정 기제에 관해 다음과 같이 논증한다.

 

이자율은 선차적으로 총 이윤율에 의존하며, 후차적으로는 총이윤이 자본의 이윤 (이자)과 기업의 이윤 (기업가 이득)으로 분할되는 비율에 따라 규정된다. 이 분할 비율은 자본의 대부자와 차입자 사이의 경쟁 상태에 달려있다.’ (람지, 1846: 206-207)

 

이러한 시장 경쟁은 예상되는 총 이윤율의 영향을 받으나, 결코 그것으로 인해 전적으로 규제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첫째, 생산적 투자 이외의 목적으로 자본을 차입하는 수요가 실재하기 때문이다.

 

둘째, 대부 자본의 총량은 총이윤의 변동과 무관하게 해당 국가의 부의 축적 정도에 따라 독자적으로 변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균 이자율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계산 과정이 요구된다. 우선 주요한 산업 순환의 전 과정에 걸쳐 변동하는 이자율의 산술적 평균을 산출해야 하며, 아울러 자본이 비교적 장기간 대부되는 특정 투자 부문에서의 이자율을 정밀하게 측정해야 한다.

 

한 국가에서 지배적인 평균 이자율은 부단히 변동하는 시장 이윤율과 구별되나, 이를 결정하는 고정된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학계에서 논의되는 자연적 이윤율이나 자연적 임금률과 같은 의미에서의 자연적 이자율이란 성립할 수 없다. 매시 (1750: 46)가 지적했듯,

 

이윤 중 차입자와 대부자의 몫을 배분하는 정당한 비율은 오직 당사자 간의 사회적 합의에 따라서만 결정될 뿐이다.’

 

평균 이윤율이 주어져 있을 때, 수요와 공급의 일치라는 공식은 이자율 결졍에 있어 실질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통상 이 공식은 경쟁으로부터 독립되어 경쟁을 규정하는 기본 법칙이나 그 한계치를 규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특히 현실의 경쟁 양상이나 그 현상에 매몰된 이들에게는, 비록 피상적일지라도 경쟁의 이면에 존재하는 경제 관계의 내부적 연관성을 파악하게 하는 분석적 준거를 제공한다.

 

수요와 공급의 공식은 경쟁에 따른 변동을 추적하여 그 변동의 한계치에 도달하기 위한 분석 수단이다. 그러나 평균 이자율의 결정 과정은 이와 수준을 달리한다. 평균적인 경쟁 조건이나 대부자와 차입자 사이의 역학 관계가 왜 자본에 대해 3%, 4%, 5%와 같은 특정 이윤을 부여하는지, 또는 총이윤의 20%50%라는 특정한 비율을 할당하게 만드는지에 대해서는 객관적 근거가 전무하다. 이처럼 경쟁 자체가 결정적인 동인으로 작용하는 영역에서 결과값은 본래 우연적이며 순전히 임의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우연적 결과를 필연적인 법칙으로 고착시켜 설명하려는 시도는 학문적 독단에 불과하다.

 

은행법 및 상업 공황에 관한 1857-1858년의 의회 보고서에서 드러난 가장 비논리적인 지점은 잉글랜드 은행 이사진, 런던과 지방의 은행업자들, 그리고 전문적인 이론가들이 보인 태도이다. 이들은 대부 자본의 가격은 공급에 따라 변동한다.’거나 고금리와 낮은 이윤율은 영구히 공존할 수 없다.’는 식의 지극히 원론적 명제만을 반복하며, 정작 현실에서 나타난 이자율의 구체적 기제에 대해서는 실효성 있는 분석을 제시하지 못한 채 공허한 담론만을 양산하였다.

 

관습과 법률적 전통은 경쟁 기제와 마찬가지로, 평균 이자율이 현실적 수치로 확립되는 과정에 깊이 개입한다. 특히 이자는 각종 법률적 소송 사건에서 사전에 전제되어야 할 지표로 기능한다. 평균 이자율의 한계를 일반 법칙으로부터 도출할 수 없는 근거는 이자의 본질적 성격에 있다.

 

이자는 평균 이윤의 일부분에 불과하며, 동일한 자본이 대부자에게는 대부 자본으로, 기능 자본가에게는 산업 또는 상업 자본이라는 이중적 자격으로 나타날 뿐이다. 자본은 실질적으로 단 한 번 기능하며 단일한 이윤을 창출한다. 생산 과정 내에서 자본은 대부 자본으로의 성격을 띠지 않는다. 따라서 이 이윤에 대한 청구권을 가진 두 당사자 간의 분배 방식은 합명 회사의 수익 배분과 마찬가지로 순전히 기술적이며 실무적인, 임의적인 영역에 속한다.

 

잉여 가치가 임금과 분할되어 이윤율을 결정하는 경우에는 노동력과 자본이라는 본질적으로 상이한 두 요소가 개입하여 상호 간의 한계를 설정한다. 이는 노동력과 자본의 질적 구별에서 비롯된 가치 생산물의 양적 분할이다. 잉여 가치가 지대와 이윤으로 분할되는 경우에도 이와 비슷한 논리가 적용된다. 그러나 이자의 경우 이러한 질적 대립은 전제되지 않는다. 도리어 동일한 잉여 가치가 순전히 양적으로 분할되는 과정으로부터 질적인 구별이 파생되는 역전된 양상을 띤다.

 

이상의 논의로부터 자연적이자율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 이윤율과 달리 평균 이자율 (또는 중간 이자율)은 일반 법칙만으로 그 한계가 확정될 수 없는데, 이는 이자율의 결정이 서로 다른 자격으로 자본을 점유하는 두 주체 사이의 총이윤 분할 문제에 귀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자율은, 그것이 평균적 수준이든 개별 시점의 시장 이자율이든, 일반적 이윤율과는 판이하게 언제나 하나의 균일하고 명확한 수치로 표출된다.

 

이자율과 이윤율의 상관관계는 상품의 시장 가격과 가치 사이의 관계와 비슷한 양상을 띤다. 이자율이 이윤율에 따라 규정되는 한, 이는 개별 자본가의 초과 이윤이나 특정 산업 분야의 특수한 이윤율이 아닌, 언제나 일반적 이윤율을 매개로 한다. 따라서 일반적 이윤율은 비록 불완전하고 간접적인 형태일지라도, 평균 이자율이라는 실증적 수치로부터 객관적 실재로 부상한다.

 

물론 개별 거래에서의 이자율은 차입자의 담보 수준이나 대부 기간의 장단에 따라 차등적으로 적용된다. 그러나 특정 담보 조건과 대부 기간이 설정된 상황에서의 이자율은 주어진 시점에 단일한 수치로 수렴한다. 이러한 개별적 변동성은 이자율이 지닌 고정적이고 균일한 성격, 곧 시장에서 명확한 크기로 나타나는 특성을 본질적으로 훼손하지 않는다.

 

평균 이자율은 어느 국가에서나 비교적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찰할 때 불변의 크기로 수렴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개별 산업 분야의 특수한 이윤율이 끊임없이 변동함에도, 부문 간의 변동이 상호 상쇄되면서 일반적 이윤율 자체가 장기에 걸쳐서만 완만하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반적 이윤율의 상대적 안전성은 평균적 또는 통상적 이자율이 지니는 대체로 불변적인 성격에 그대로 나타난다.

 

끊임없이 변동하는 시장 이자율은 상품의 시장 가격과 마찬가지로 특정 시점에는 고정된 수치로 나타난다. 이는 화폐 시장에서 대부 가용 자본 총량이 기능 자본과 대립하며, 대부 자본의 공급과 수요 사이의 상관관계가 당대의 시장 이자율을 즉각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특히 신용 제도의 발달과 자본의 집중이 심화될수록 대부 자본은 더욱 강력한 사회적 성격을 띠게 되며, 화폐 시장에 대규모로 동시 유입됨에 따라 이러한 결정 기제는 한층 명확해진다.

 

반면, 일반적 이윤율은 개별 산업 분야 간 이윤율 균등화 운동이라는 하나의 경향성으로만 존재한다.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은 이윤이 평균 이하인 부문에서 자본을 점진적으로 철수시켜 평균 이상의 부문에 투입하거나, 추가 자본의 배분 비율을 재편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일반적 이윤율은 각 부문에 대한 자본의 유입과 유출이라는 끊임없는 변동 과정일 뿐, 이자율 결정에서와 같이 대부 자본 총량이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동시에 작용하는 집단적 기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이자 낳는 자본은 일반 상품과는 본질적으로 수준을 달리하는 범주이나, 시장 내에서는 특수한 상품의 형태를 띤다. 이자는 이 특수 상품의 가격으로, 여타 상품의 시장 가격과 마찬가지로 매 순간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확정된다. 따라서 이자율은 부단히 변동함에도, 특정 시점에는 고정되고 균일한 수치로 관측된다. 이때 화폐 자본가는 대부 자본이라는 상품의 공급자로, 기능 자본가는 수요자로 대립한다.

 

수요와 공급에 따른 이자율의 확정 기제는 일반적 이윤율의 형성을 이끄는 균등화 과정과는 구별된다. 특정 분야의 상품 가격이 생산 가격으로부터 이탈할 경우, 균등화는 자본의 유입과 유출에 따른 생산 규모의 재편, 곧 시장 공급량의 증감을 거쳐 수행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상품의 평균 시장 가격이 생산 가격으로 수렴되면서 특수 이윤율과 일반 이윤율 사이의 격차는 소멸한다. 이 과정에서는 산업 자본이나 상업 자본은 이자 낳는 자본처럼 구매자에게 상품으로 직접 제시되지 않는다. , 평균 이윤율은 시장 가격의 변동과 생산 가격으로의 균등화 과정 속에서 간접적으로 구현될 뿐, 직접적인 수치로 확정되어 나타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일반적 이윤율을 결정하는 요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총자본이 창출하는 잉여 가치의 총량이다.

 

둘째, 총자본 가치에 대한 해당 잉여 가치의 비율이다.

 

셋째, 각 생산 분야에 투입된 자본들이 자본 규모에 비례하여 잉여 가치를 균등하게 배분받으려는 경쟁 기제다.

 

결론적으로 일반적 이윤율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매개 없이 결정되는 시장 이자율에 비해 훨씬 복잡한 경로를 거쳐 형성된다. 따라서 이자율과 달리 일반적 이윤율은 용이하게 파악되는 기정사실이 아니다. 각 생산 분야의 특수한 이윤율은 본래 불확정적이며 현실에서는 균일성보다 차별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일반적 이윤율은 오직 이윤의 최저 한도로만 암시될 뿐, 가시적으로 직접 확인되는 구체적 형태로 표출되지 않는다.

 

이자율과 이윤율의 차별성을 강조함에 있어, 지금까지 이자율 확정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두 가지 핵심 사정은 배제되어 있었다.

 

첫째, 이자 낳는 자본은 역사적으로 여타 자본 형태보다 선행하여 존재해 왔으며, 이에 따라 전통적으로 계승된 일반적 이자율이 기성사실로 실재한다는 점이다.

 

둘째, 세계 시장이 특정 국가의 생산 조건과는 독립적으로 이자율 확정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력은 이윤율에 미치는 영향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점이다.

 

평균 이윤은 직접적으로 주어진 통계가 아니라, 상충하는 경향들이 균등화 과정을 거쳐 도달하게 되는 최종적 결과물에 불과하다. 반면, 이자율은 특정 지역 내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수치로 매일 확정되며, 산업 및 상업 자본의 운영 계산에서 필수적인 전제이자 비용 요소로 기능한다. 자본 1002%, 3%, 4%, 5%의 수익을 낳는다는 명제는 화폐액이 지닌 보편적 속성으로 간주된다. 증권 거래소의 보고서는 일기 예보가 기압이나 기온을 표시하는 것보다 훨씬 정밀하게 화폐 시장 내 대부 자본 일반에 적용되는 이자율의 상태를 명시하고 있다.

 

화폐 시장의 주체는 대부자와 차입자라는 이항 대립으로 수렴하며, 모든 상품은 화폐라는 단일한 형태로 수렴한다. 이 과정에서 자본이 특정 생산 및 유통 분야에 투하되면서 획득했던 구체적이고 특수한 형태들은 소멸한다. 자본은 오직 독립된 가치 표현물인 화폐로, 무차별적이고 동질적인 형태로 실재할 뿐이다.

 

따라서 개별 산업 분야 간의 특수한 경쟁 양상은 화폐 시장에서 소거된다. 모든 경제 부문은 화폐 차입자라는 단일한 범주로 통합되어 화폐 자본과 대면하며, 자본 역시 차입 주체의 구체적인 자본 운용 방식이나 특수한 사용처에 구애받지 않고 오직 자본 일반으로 기능한다.

 

화폐 시장에서 자본은 수요와 공급 양 측면 모두에서 현실적인 계급의 공동 자본으로 부상한다. 그런데 산업 자본이 개별 분야 간의 운동과 경쟁을 매개로 하여서만 공동 자본으로의 성격을 드러내는 것과 대조적이다. 화폐 시장의 화폐 자본은 구체적인 사용 방식과 무관하게, 각 생산 부문의 필요에 따라 자본가 계급 사이에 배분되는 보편적 요소의 형태를 취한다.

 

나아가 대공업의 비약적 발달에 따라 화폐 자본은 더 이상 개별 자본가의 파편화된 소유물로 시장에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현실적 생산 공정과 분리된 채, 은행업자의 통제하에 놓인 고도로 집중되고 조직된 집합체로 사회적 자본을 대표한다. 결과적으로 수요 측면에서는 자본가 계급 전체가 대부 자본과 대면하며, 공급 측면에서는 자본이 거대한 단일 대부 자본의 총체로 현시된다.

 

이상은 확정적인 이윤율과 대비하여 일반적인 이윤율이 모호한 양상을 띠게 되는 주요한 원인들이다. 이자율은 부단히 변동함에도, 차입자에게는 언제나 고정된 기정사실로 작용한다. 이는 이자율의 변동이 모든 차입자에게 균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은 화폐 가치 자체가 변동하더라도 모든 상품에 대해 동일한 척도로 기능하는 것, 또는 상품의 시장 가격이 매일 변동할지라도 당일의 시장 보고서에 확정된 수치로 기록될 수 있는 것과 일치한다.

 

이처럼 이자율은 화폐의 가격으로 규칙적으로 공표되고 기록된다. 화폐 형태를 취한 자본 자체가 하나의 상품으로 공급되기에, 그 가격의 확정 방식 또한 여타 상품과 마찬가지로 시장 가격의 결정 원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자율은 특정 화폐량에 대한 구체적 비율로, 언제나 양적으로 규정된 일반적 이자율의 형태로 명확히 현시된다.

 

반면, 이윤율은 동일한 산업 분야 내에서도 개별 자본의 생산 조건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날 수 있으며, 이는 상품의 시장 가격이 동일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개별 자본의 이윤율을 결정하는 본질적 요인은 시장 가격 그 자체가 아니라, 시장 가격과 비용 가격 사이의 편차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분산된 개별 이윤율들은 선차적으로 동일 분야 내부에서, 후차적으로는 서로 다른 산업 분야 간의 끊임없는 이동과 변동 과정을 거쳐서만 비로소 균등화될 수 있다.


 

 신용의 특수한 형태에 관한 고찰에 따르면, 화폐가 구매 수단이 아닌 지불 수단으로 기능할 때 상품의 양도와 가치 실현 사이에는 시차가 발생한다.

 

첫째, 상품이 재판매된 이후에 비로소 지불이 완료되는 구조 내에서는 구매가 판매를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판매 행위로부터 구매가 사후적으로 실현된다. , 판매가 구매를 완결 짓는 수단적 지위를 갖게 된다.

 

둘째, 채무 증서나 어음 등이 채권자에 대한 직접적인 지불 수단으로 활용된다.

 

셋째, 이러한 채무 증서들 간의 상쇄 기제가 화폐의 기능을 대체하며 유통을 매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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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이윤이 이자와 기업가 이득으로 분할이자 낳는 자본

 

75. 이자 낳는 자본

 

일반적 또는 평균 이윤율이 제2편에서 처음 고찰되었을 당시그것은 아직 완성된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이윤율의 균등화가 서로 다른 생산 부문에 투하된 산업 자본 사이의 평준화 과정으로만 서술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제4편에서 상업 자본의 참여와 상업 이윤이 논의되면서 이러한 한계가 보완되었고결과적으로 일반적 이윤율과 평균 이윤은 보다 엄밀하게 규정되었다따라서 향후 분석에서 언급되는 일반적 이윤율이나 평균 이윤은 산업 자본과 상업 자본 모두를 포괄하는 완성된 형태의 평균율을 의미한다.

 

자본이 생산 부문의 산업 자본으로 투하되든 유통 부문의 상업 자본으로 투하되든자본은 그 규모에 비례하여 동일한 연간 평균 이윤을 획득하므로이 단계에서는 산업 이윤과 상업 이윤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 아래에서 화폐곧 상품이나 화폐의 형태로 존재하는 가치액은 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이러한 전환을 매개로 화폐는 고정적 가치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를 증식시키는 가치로 변모하며 이윤을 창출한다화폐는 자본가로 하여금 노동자로부터 미지불 노동잉여 생산물잉여 가치를 착취 및 사유화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 된다이로 인해 화폐는 본연의 사용 가치 외에 자본으로 기능한다는 추가적인 사용 가치를 획득하며이때의 사용 가치는 곧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되어 생산하는 이윤 그 자체에 있다이처럼 이윤을 생산하는 잠재적 자본으로의 속성을 가지면서화폐는 특수한 종류의 상품곧 자본 그 자체가 상품이 되는 지위에 있게 된다.

 

연간 평균 이윤율이 20%라고 전제할 때, 100의 가치를 지닌 기계를 평균적인 조건에서 자본으로 운용한다면 20의 이윤이 창출된다따라서 100의 화폐를 처분할 수 있는 주체는 이를 120으로 증식시킬 수 있는 잠재적 자본을 보유한 셈이다이 자본가가 100의 가치를 타인에게 대여하여 실제로 자본으로 기능하게 된다면,

 

차입자는 아무런 등가 지불 없이 20의 이윤곧 잉여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권능을 이전받게 된다이때 차입자가 연말에 생산된 이윤 중 일부인 5를 자본 소유자에게 지급한다면이는 100이라는 자본의 사용 가치곧 이윤을 창출하는 기능에 대한 대가가 된다이처럼 이윤 중 기능 자본가가 점유하지 않고 자본 소유자에게 귀속시키는 부분을 이자라 하며이는 곧 자본 소유권에 근거하여 지불되는 이윤의 특수한 명칭이다. 100의 가치를 소유한 주체에게 자본이 창출하는 이윤의 일부분인 이자를 수취할 권능이 부여됨은 명백하다소유자가 이 100을 타인에게 대여하지 않는다면차입자는 이윤을 창출하거나 해당 가치를 매개로 자본가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길바트와 같이 자연적 정의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주 55). 생산 당사자 간 거래의 공정성은 해당 거래가 특정 생산 관계로부터 도출되는 필연적 결과인지 여부에 달려 있다거래의 법률적 형태곧 당사자들의 자발적 의지나 국가가 강제하는 계약의 형식은 경제적 거래를 표현하는 외피에 불과할 뿐거래의 실질적 내용을 규정하지 못한다.

 

거래의 내용이 당대 생산 양식에 부합하면 공정한 것이며그와 모순되면 불공정한 것이 된다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 하에서 노예를 부리는 것이나 상품의 품질을 기만하는 행위는 해당 체제의 원리와 배치되기에 부공정한 것으로 간주된다.

 

100의 가치가 20의 이윤을 창출하는 것은 그것이 산업 자본이든 상업 자본이든 자본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이러한 자본 기능의 필수적 전제는 화폐가 자본으로 지출되어야 한다는 점이며이는 산업 자본의 경우 또는 생산 수단의 구매로상업 자본의 경우 상품의 구매로 나타난다그러나 지출 행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화폐의 현존이 요구된다.

 

소유자 A가 해당 화폐를 개인적으로 소비하거나 퇴장 화폐로 보유한다면기능 자본가 B는 이를 자본으로 운용할 수 없다. B가 지출하는 자본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A의 소유이므로, A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동의 없이는 지출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결과적으로 100을 최초의 자본으로 투입하는 주체는 A이며, B의 자본가적 기능은 A가 해당 화폐를 자본으로 지출하고 그 운용권을 B에게 양도하면서 비로소 실현된다.

 

이자 낳는 자본의 독특한 유통 과정을 먼저 고찰한 후자본이 상품으로 완전히 양도되지 않고 대부되는 특수한 판매 방식을 분석해야 한다.

 

분석의 출발점은 A가 B에게 화폐를 대부하는 행위다이 대부는 담보의 유무와 상관없이 성립하나상품이나 유가 증권 이외의 물적 담보를 설정하는 방식은 보다 고전적인 형태에 속한다여기서는 이러한 특수 형태를 제외한 일반적인 이자 낳는 자본의 형식을 다룬다.

 

B의 수중으로 이전된 화폐는 현실적인 자본으로 전환되어 M-C-M´의 순환 과정을 거친다이후 이 화폐는 다시 A에게 M´, 곧 M+ΔM (ΔM은 이자를 의미함)의 형태로 복귀한다분석을 위해 자본이 B의 수중에 장기간 체류하며 이자가 정기적으로 분할 지급되는 경우는 당분간 논외로 한다.

 

이자 낳는 자본의 운동 형식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M-M-C-M-M´

 

이 과정에서 특징적으로 중복되어 나타나는 요소는 다음과 같다.

 

(1) 화폐가 자본으로 지출되는 단계

 

(2) 증식된 자본 (M´ 또는 M+ΔM)으로 화폐가 환류되는 단계

 

상업 자본의 운동식인 M-C-M´에서는 동일한 상품의 소유권이 두 번 이상 이전되며상인 간의 거래가 개입될 경우 그 횟수는 더욱 늘어난다그러나 이러한 상품의 위치 변화는 최종 소비 단계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 반복되더라도본질적으로는 해당 상품의 형태 변화곧 개별적인 구매와 판매 행위를 나타낼 뿐이다.

 

한편상품 유통의 기본 형식인 C-M-C에서는 동일한 화폐의 위치 변화가 두 번 발생하며이는 상품이 먼저 화폐로 전환된 후 다시 다른 상품으로 변모하는 완전한 형태 변화 과정을 보여준다.

 

이와 대조적으로이자 낳는 자본에서 나타나는 화폐 M의 첫 번째 위치 변화는 상품 형태 변화나 자본 재생산의 계기에 해당하지 않는다화폐의 이동이 그러한 경제적 계기로 의미를 갖는 시점은기능 자본가 B가 수취한 화폐를 자본으로 지출하여 상업을 경영하거나 생산 자본으로 전환할 때분이다따라서 A로부터 B에게로 향하는 M의 초기 위치 변화는일정한 법률적 형식과 규정에 따라 이루어지는 자본의 단순한 이전 또는 양도에 불과하다.

 

자본으로의 화폐가 두 번 지출되는 과정 (그 첫 번째는 A로부터 B로의 단순한 이전이다)에 대응하여화폐의 환류 또한 이중적으로 발생한다화폐는 우선적으로 운동 과정을 마치고 M´ 또는 M+ΔM의 형태로 기능 자본가 B에게 환류한다이후 B는 실현된 자본 가치에 이윤의 일부인 이자 (ΔM)를 더하여 이를 다시 A에게 인도한다이때 ΔM은 전체 이윤이 아닌 그 일부인 이자에 국한된다. B에게 화폐가 환류하는 것은 소유의 화폐를 기능 자본으로 지출한 결과이며따라서 환류의 완결을 위해서는 B가 이를 소유주인 A에게 반환해야 한다.

 

나아가 B는 원금뿐만 아니라 자본 운용을 매개로 획득한 이윤의 일부를 이자 명목으로 지불해야 한다이는 A가 B에게 화폐를 제공한 본질적 목적이해당 가치가 운동 과정에서 스스로를 보존할 뿐만 아니라 소유자를 위해 잉여 가치를 창출하는 자본으로 기능하게 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해당 화폐는 자본으로 기능하는 동안에만 B의 수중에 머물며정해진 기한에 환류하면서 자본으로의 기능적 임무를 종료한다따라서 기능이 종료된 자본인 화폐는 법률상 소유주인 A에게 복귀되어야 한다결과적으로 A는 이자를 수취하는 대부 자본가의 지위를, B는 이윤을 획득하는 산업 또는 상업 자본가의 지위를 점하게 된다.

 

자본이 상품으로 등장한다는 사실곧 자본으로의 화폐가 상품이 된다는 점으로부터 이 상품 (상품으로의 자본)에 고유한 대부라는 형식에 유래한다이러한 대부 형식은 일반적인 거래의 판매’ 형식을 대신하여 나타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구별이 요구된다.

 

권 제1장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자본은 유통 과정에서 상품 자본과 화폐 자본의 형태로 기능한다그러나 이 두 형태에서의 자본은 유통의 특정 단계에 있는 자본일 뿐그 자체가 상품으로의 자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생산 자본이 상품 자본으로 전환되면이는 즉시 시장에 출하되어 상품으로 판매되어야 한다이 단계에서 상품 자본은 단순히 상품으로 기능하며자본가는 판매자의 지위를구매자는 구매자의 지위를 가질 뿐이다상품 형태의 생산물은 판매를 매개로 유통 과정에서 가치를 실현하고화폐 형태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때 상품이 소비자의 생활 수단으로 구매되든 자본가의 생산 수단으로 구매되든그 용도는 유통 행위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유통 과정 내에서 상품 자본은 본질적으로 상품으로 기능할 뿐 자본 그 자체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이를 단순한 상품과 구별하여 상품 자본이라 칭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해당 상품은 이미 잉여 가치를 포함하고 있으며따라서 가치 실현 과정이 곧 잉여 가치의 실현 과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러한 속성이 상품 자본이 일정한 가격을 지닌 생산물곧 상품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2) 상품 자본이 상품으로 기능하는 것은 자본 재생산 과정의 한 국면을 형성한다상품으로의 운동은 자본으로의 총 운동에 포함된 부분 운동이다상품의 운동이 자본의 운동으로 규정되는 것은 판매 행위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해당 판매가 자본의 자격으로 수행되는 전체 순환 과정과 유기적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화폐 자본으로의 자본 또한 현실적으로는 단순히 화폐곧 상품 (생산 요소)의 구매 수단으로 작용할 뿐이다이 화폐가 화폐 자본이라는 자본의 한 형태로 규정되는 것은 화폐로 수행하는 개별적인 구매 행위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해당 행위가 자본의 총 운동과 유기적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화폐로 수행하는 이 구매 행위가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을 개시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에 화폐 자본으로의 성격을 획득한다.

 

재생산 과정에서 상품 자본과 화폐 자본이 현실적으로 기능하는 한전자는 오로지 상품으로후자는 오로지 화폐로 작용한다형태 변화의 개별 국면들을 분리하여 고찰할 때자본가는 구매자에게 상품을 자본으로 판매하는 것이 아니며생산 수단의 판매자에게 화폐를 자본으로 이전하는 것도 아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자본가는 상품을 단순한 상품으로 판매하고화폐를 단순한 화폐이자 상품의 구매 수단으로 지출할 뿐이다다만 자본가 개인의 관점에서만 그 상품과 화폐가 자본을 대표하는 것으로 간주될 따름이다.

 

유통 과정에서 자본이 자본으로의 성격을 획득하는 것은 오로지 전체 순환 과정과의 유기적 연관 속에서만 실현되며이는 출발점이 곧 복귀점으로 나타나는 구도곧 화폐 자본의 순환 M-M´ 또는 상품 자본의 순환 C-C´의 관계에서 구체화된다. (반면 생산 과정에서 자본이 자본으로 등장하는 근거는 노동의 자본에 대한 실질적 종속과 그에 따른 잉여 가치의 생산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복귀점에 이르면 중간의 매개 과정은 사상되고결과물인 M´ 또는 M+ΔM만이 남게 된다이때 은 그것이 화폐 형태든 상품이나 생산 요소의 형태든 관계없이최초에 투하된 화폐액과 이를 초과하여 실현된 잉여 가치의 합산으로 나타난다.

 

자본이 가치 증식을 실현한 복귀점에 도달하여 정지해 있는 한그것은 유통 과정에 진입한 상태가 아니라 유통에서 이탈한 전체 과정의 결과물로 간주된다이 실현된 자본이 재차 지출될 때도 제3자에게 자본으로 양도되는 것이 아니라단순한 상품으로 판매되거나 상품 구매를 위한 단순한 화폐로 지불될 뿐이다.

 

자본은 유통 과정 내에서 결코 자본 자체로 현현하지 않으며 오직 상품이나 화폐의 형태로만 나타나는데이것이 타자와의 관계에서 자본이 취하는 유일한 존재 방식이다유통되는 상품과 화폐가 자본으로 규정되는 근거는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의 현실적 교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관적으로는 자본가 자신에 대해 가지는 관념적 관계에 기인하며객관적으로는 해당 가치물들이 재생산 과정의 필수적 요소라는 사실에 근거한다자본이 현실적으로 운동하는 자본으로 실재하는 영역은 유통 과정이 아니라노동력의 착취가 이루어지는 생산 과정뿐이다.

 

그런데 이자 낳는 자본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며바로 이 점이 해당 자본의 특수성을 규정한다화폐를 이자 낳는 자본으로 가치 증식시키려는 화폐 소유자는 그 화폐를 타인에게 양도하여 유통에 투입하면서그것을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해서도 기능하는 자본이라는 상품으로 전환한다이때 화폐는 이전되는 순간부터 이미 자본으로의 성격을 지닌다잉여 가치나 이윤을 창출하는 사용 가치를 내포한 가치물로운동 과정에서 스스로를 보존하고 기능을 완수한 후에는 최초의 지출자인 화폐 소유자에게 복귀할 것을 전제로 이전된다다시 말해해당 가치는 소유자의 손을 영구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간 소유권으로부터 기능 자본가의 점유로 일시적으로 옮겨갈 뿐이다따라서 이는 단순한 매매나 지불이 아닌 대부의 형식을 취하게 된다요컨 이자 낳는 자본은 첫째일정 기간 후 출발점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조건과 둘째잉여 가치를 생산하는 자본 특유의 사용 가치를 실현한 뒤 증식된 자본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조건하에서만 양도되는 것이다.

 

자본으로 대부되는 상품은 그 속성에 따라 고정 자본 또는 유동 자본의 형식을 취한다화폐는 두 형태 모두로 대부될 수 있는데예컨대 화폐가 연금 형태로 상환되어 이자와 함께 원금의 일부가 지속적으로 환류한다면 이는 고정 자본으로 대부된 경우에 해당한다.

 

가옥선박기계 등과 같은 특정 상품들은 그 사용 가치의 물리적 성질상 오직 고정 자본의 형태로만 대부될 수 있다그러나 모든 대부 자본은 그 구체적 형태나 상환 방식의 차이에도 본질적으로 화폐 자본의 특수한 표현 형태에 불과하다대부의 대상은 언제나 확정된 화폐액이며이 가치액을 기초로 이자가 산출되기 때문이다.

 

대부 대상이 화폐나 유동 자본이 아닐 경우그것은 고정 자본의 가치 회수 방식에 따라 상환된다대부자는 주기적으로 이자와 더불어 고정 자본의 마멸분에 해당하는 가치액을 수취하며대부 기한이 종료되면 소비되지 않은 잔여 부분은 현물 형태로 복귀한다 (가옥의 임대). 반면대부 자본이 유동 자본의 성격을 띤다면이는 유동 자본 특유의 일반적인 환류 방식에 따라 대부자에게 일시에 복귀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자본의 환류 방식은 자본이 재생산되는 현실적 순환 운동과 개별 자본의 특수한 성격에 따라 규정된다다만 대부 자본의 경우자본의 양도 곧 선대가 대부의 형식을 취하므로그 환류는 상환의 형태를 띠게 된다.

 

본 장에서는 순수한 화폐 자본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상품 형태를 비롯한 여타의 대부 자본은 화폐 자본의 대부 원리로부터 충분히 추론되기 때문이다.

 

대부된 자본은 이중의 환류 과정을 거친다우선 재생산 과정의 결과로 기능 자본가에게 우선적으로 환류하며이후 화폐 자본가인 대부자에게 다시 이전되면서 진정한 소유자에 대한 상환이자 법률적 출발점으로의 최종적 복귀가 이루어진다이 과정은 M-M-C-M´-M´의 운동식으로 정식화된다.

 

현실의 유통 과정에서 자본은 항시 상품 또는 화폐의 형태로 현현하며자본의 운동은 일련의 구매와 판매 행위곧 상품의 형태 변화 과정으로 구체화된다그러나 재생산 과정 전체를 포괄적으로 고찰할 때 양상은 달라진다.

 

화폐에서 출발할 경우투하된 일정 가치액은 특정 기간이 경과한 후 증식분과 함께 복귀한다상품에서 출발하는 경우 역시 상품 가치를 화폐적 표현으로 간주하므로이와 동일한 논리가 적용된다결과적으로 대부된 화폐액은 일정한 순환 운동 과정을 거치며 스스로를 보존하고 증식시킨 뒤잉여 가치가 부가된 상태로 환류하게 된다.

 

그런데 자본으로 대부되는 화폐는 스스로를 보존하고 증식시키는 가치액으로 이전되며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증식분과 함께 환류하여 동일한 과정을 반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이 화폐액은 일반적인 유통 수단처럼 단순한 화폐나 상품으로 지출되는 것이 아니다화폐의 형태로 대부될 때 상품과 교환되는 것이 아니며상품의 형태로 대부될 때 역시 화폐를 대가로 판매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자본’ 그 자체로 양도된다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을 하나의 총체로 파악할 때자본은 스스로 화폐를 낳는 화폐 (M-M´)라는 자기 관계적 성격을 띠게 된다대부 자본의 경우 이러한 가치 증식의 힘이 매개적 중간 운동 없이 화폐 고유의 속성이자 능력인 것처럼 내재화되어 나타나며화폐가 화폐 자본으로 대부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증식 능력 때문이다.

 

프루동은 화폐 자본의 기능과 관련하여 기묘한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바스티아와 프루동무료 신용바스티아와 프루동의 논쟁, 1850). (CW 32: 529-530; CW 29: 219-221) 프루동에 따르면 대부는 판매의 형식을 띠지 않는다는 점에서 도덕적 결함을 지닌다이자를 수취하는 대부 행위는 판매 대상에 대한 소유권을 종국적으로 포기하지 않으면서도동일한 물건을 반복해서 판매하여 그 가격을 지속적으로 취득하는 기만적인 능력’ (9)이라는 것이다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대부 자본이 생산적 기여 없이 부를 축적하는 부당한 권능이라고 비판하였다.

 

대부의 대상인 화폐나 가옥 등은 일반적인 매매와 달리 소유권의 영구적 이전을 수반하지 않는다프루동이 간과한 지점은 화폐가 이자 낳는 자본으로 양도될 때그에 대응하는 즉각적인 등가가 지불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통상적인 매매 행위에서는 교환 과정이 일어날 때 대상물의 소유권이 이전되지만가치 그 자체가 소멸하거나 완전히 인도되는 것은 아니다.

 

판매의 경우 상품의 소유권은 넘겨지나 그 가치는 화폐나 어음지불 청구권 등 다른 형태로 판매자에게 복귀한다구매 역시 화폐가 인도되지만그 가치는 상품이라는 구체적 형태로 대체될 뿐이다따라서 산업 자본가는 잉여 가치를 제외한 재생산 과정 전체를 거치며 동일한 양의 가치를 수중에 보유하며단지 그 가치가 취하는 형태만을 변화시킬 따름이다.

 

물품의 교환이 진행되는 한가치의 총량에는 변동이 발생하지 않으며 자본가는 본래의 가치를 동일하게 유지한다자본가가 잉여 가치를 창출하는 단계에서는 교환이 개입하지 않으며교환이 이루어지는 시점에 잉여 가치는 이미 상품 내에 체화되어 있다개별적 교환 행위가 아닌 자본의 총 순환 과정인 M-C-M´을 고찰하면투하된 일정 가치액에 잉여 가치 (또는 이윤)가 부가되어 유통 영역으로부터 끊임없이 회수되는 양상을 띠게 된다단순한 교환 행위만으로는 이러한 증식의 매개 과정이 포착되지 않는다대부 화폐 자본가가 수취하는 이자는 바로 M이 자본으로 겪는 이러한 순환 과정에 근거하며그 과정의 결과로 도출되는 것이다.

 

프루동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자 제조업자가 상품 가치만큼의 등가물만을 수취하는 것과 달리대부 자본가는 원금을 온전히 돌려받으면서도 투하 가치를 초과하는 이자를 획득한다.’ (69)

 

여기서 모자 제조업자는 대부 자본가와 대비되는 생산적 자본가 (산업·상업 자본가)를 대표한다그러나 프루동은 생산적 자본가가 상품을 가치대로 판매하면서도 어떻게 투하 자본을 초과하는 이윤을 얻는지에 대한 근본적 비밀을 해명하지 못했다.

 

가령 모자 100개의 생산 가격 (또는 가치)이 115이고이윤율이 15%라고 전제하자모자 제조업자는 생산 비용으로 100을 지출하고 상품을 가치인 115에 판매하면서 15의 이윤을 실현한다그는 자기 자본을 운용했다면 15의 이윤을 전액 독점하겠지만자본을 차입했다면 이 중 5를 이자로 지불해야 할 것이다이러한 이자 지불은 상품의 가치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이미 상품 속에 구현된 잉여 가치가 자본가들 사이에서 분배되는 방식만을 결정할 뿐이다따라서 자본에 대한 이자가 임금에 추가되어 상품 가격을 구성하기 때문에 노동자가 자신의 생산물을 구매할 수 없다는 프루동의 주장은 경제적 논거가 희박하다.

 

상업의 영역에서 자본에 대한 이자가 노동자의 임금에 추가되어 상품 가격을 형성하는 한노동자가 자신이 생산한 결과물을 스스로 되사는 것은 무망하다따라서 이자가 생활 조건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노동을 하며 살아간다는 원칙은 그 자체로 모순을 내포한다.’ (105)

 

상품의 가치는 이자 지불 여부에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프루동은 자본 일반의 운동을 이자 낳는 자본의 특수한 운동에 매몰시켜 파악하면서 자본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다.

 

화폐 자본이 교환 시마다 이자를 수반하여 출발점으로 복귀하므로대부가 항구적 이윤의 원천이 된다.’ (154)

 

그의 서술은자본의 총체적 순환과 잉여 가치 창출의 원리를 결여한 편향된 시각임을 드러낸다.

 

이자 낳는 자본의 특수한 운동에서 프루동이 해명하지 못한 지점은 구매가격대상물의 양도라는 범주들과 그 과정에서 잉여 가치가 취하는 직접적인 형태다자본 자체가 하나의 상품이 되면서 판매가 대부로 전환되고가격이 이윤의 분배분인 이자로 변모하는 현상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자본이 출발점으로 복귀하는 현상은 자본 총 순환의 일반적 특징일 뿐이자 낳는 자본만의 고유한 속성은 아니다이자 낳는 자본을 특수하게 규정하는 것은 매개적인 순환 과정이 사상된 채 나타나는 복귀의 피상적 형태다대부 자본가는 등가를 수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본을 산업 자본가에게 이전한다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자본의 현실적인 순환 과정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산업 자본가가 수행할 순환을 예비하는 단계에 불과하다화폐의 이러한 초기 위치 변화는 구매나 판매와 같은 형태 변화의 어떠한 행위도 표현하지 않는다여기서는 교환이 발생하거나 등가가 지불되지 않으므로소유권의 영구적 이전 또한 일어나지 않는다따라서 화폐가 산업 자본가로부터 대부 자본가에게 환류하는 것은 자본이 최초에 양도되었던 행위를 보충하고 완결 짓는 절차일 뿐이다.

 

자본은 화폐 형태로 투하되어 순환 과정을 거친 후 다시 화폐 형태로 산업 자본가에게 환류한다그러나 해당 자본은 투하 시점에 산업 자본가의 소유가 아니었으므로복귀 시점에도 그의 소유가 될 수 없다자본이 재생산 과정을 통과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소유권이 산업 자본가에게 이전되지 않기 때문이다따라서 그는 해당 자본을 대부자에게 반환해야 한다.

 

자본을 대부자로부터 차입자에게 이전하는 최초의 행위는 하나의 법률적 거래이며이는 자본의 현실적 재생산 과정과는 무관하게 단지 그 과정을 개시하는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환류한 자본을 다시 차입자로부터 대부자에게 이전하는 상환 행위는 이러한 최초의 법률적 거래를 완결 짓는 보충적 거래에 해당한다첫 번째 거래가 현실적 순환의 성립시킨다면두 번째 거래는 현실적 순환이 종료된 이후에 이루어지는 후속적 조치다.

 

결과적으로 대부 자본의 출발과 복귀곧 양도와 상환은 법률적 거래를 매개로 한 임의적 운동으로 나타나며이 자본의 현실적 운동 전후에 발생할 뿐 그 운동 자체와는 직접적인 연관을 맺지 않는다자본이 당초부터 산업 자본가의 소유여서 오직 그에게만 환류한다고 전제하더라도자본이 수행하는 현실적 운동의 원리에는 아무런 변화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입 단계인 첫 번째 행위에서 대부자는 자본을 차입자에게 양도하며종결 단계인 두 번째 보충적 행위에서 차입자는 해당 자본을 대부자에게 반환한다이자를 배제하고 대부자와 차입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대부 자본의 운동만을 고찰할 때비록 자본의 현실적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기간에 따른 두 행위 사이에 시차가 존재하더라도 이는 운동 전체를 포괄하는 일련의 과정이 된다이처럼 상환을 전제로 자본을 인도하는 일련의 운동은 화폐나 상품을 조건부로 양도하는 대부와 차입의 일반적 운동 형식을 규정한다.

 

자본 일반의 특징적 운동인 가치의 복귀곧 투하된 화폐가 자본가에게 되돌아오는 과정은 이자 낳는 자본에 이르러 그 실질적 내용을 형성하는 현실적 운동과는 분리된 채 극도로 피상적인 형태를 취하게 된다화폐 소유자 A가 화폐를 양도할 때그것은 단순한 통화가 아닌 자본으로 이전되지만 이 단계에서는 가치 증식을 위한 어떠한 실질적 변화도 일어나지 않으며 오직 점유의 주체만이 교체될 뿐이다화폐가 생산적 자본으로 현실화되는 것은 오직 차입자 B의 수중에서만 수행되는 과정이다그러나 A의 관점에서는 화폐를 B에게 넘겨주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 이미 자본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된다.

 

생산 및 유통 과정을 거친 자본의 현실적 환류는 오직 B에게서만 체현되나, A에게 발생하는 환류는 최초의 양도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형식적인 상환의 형태로 나타난다일정 기간 화폐를 대부하고 이후 이자 (잉여 가치)와 함께 이를 회수하는 것이것이 이자 낳는 자본 고유의 운동 형식을 구성하는 전부다대부된 화폐가 자본으로 수행하는 현실적 운동은 대부자와 차입자 사이의 법률적 거래 범위 밖에 존재하는 활동이다따라서 이 거래 자체에는 자본의 실질적인 운동 과정이 소멸되어 보이지 않으며증식의 원리 또한 직접적으로 포함되지 않는다.

 

특수한 종류의 상품으로 자본은 그에 고유한 양도 방식을 지닌다이에 따라 자본의 복귀 또한 일련의 경제적 과정이 완결된 결과로가 아니라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의 특수한 법률상 계약에 따른 귀결로 나타난다.

 

본래 환류 기간은 재생산 과정의 실제 경과에 종속되지만이자 낳는 자본의 경우 자본의 복귀는 대부자와 차입자 간의 단순한 계약에 의존하는 것처럼 나타난다결과적으로 이 거래의 관점에서는 자본의 환류가 생산 과정에서 규정된 결과물이 아니라대부 자본이 단 한 번도 화폐 형태를 상실하지 않은 채 이동하는 것처럼 가시화된다.

 

물론 이러한 법률적 거래들은 궁극적으로 현실적인 재생산상의 환류에 규정된다그러나 거래 행위 자체에서는 이 연관성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으며현실적으로도 반드시 재생산과 일치하여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현실적 환류가 지연될 경우차입자는 대부자에 대한 채무를 이행하기 위해 별도의 재원을 마련해야만 한다이처럼 일정액 A로 인도되어 특정 기간이 지난 후그 시간적 간격 외에는 어떠한 매개 과정도 없이 A + 1/xA라는 금액으로 복귀하는 화폐의 형태는 현실적인 자본 운동이 극도로 단순화되고 왜곡된불합리한 표현 형태에 불과하다.

 

현실적 자본 운동에서 복귀는 유통 과정의 일환으로 나타난다투하된 화폐는 생산 수단으로 전환되고생산 과정은 이를 다시 상품으로 변모시키며최종적인 상품 판매로부터 가치는 화폐 형태로 재전환된다이 과정을 거쳐 화폐는 최초에 자본을 투하한 자본가의 수중으로 복귀하게 된다그러나 이자 낳는 자본의 경우복귀는 인도와 마찬가지로 자본 소유자와 제2의 인물 사이에서 체결된 법률상 거래의 결과로만 나타난다여기서는 오직 자본의 인도와 상환이라는 행위만이 가시화될 뿐이며그 사이를 매개하는 모든 생산적·유통적 과정은 사상되어 있다.

 

현실적 자본 운동에서 화폐는 투하 주체에게 다시 복귀하는 속성을 지니며, M-C-M´은 이러한 자본 운동의 내재적 형식을 구성한다이에 따라 화폐 소유자는 화폐를 단순한 통화가 아닌 자본으로 대부할 수 있는데이는 해당 가치액이 출발점으로 환류하는 속성뿐만 아니라 운동 과정에서 스스로를 보존하고 증식시키는 속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결과적으로 화폐 소유자가 화폐를 자본으로 양도할 수 있는 근거는그것이 자본으로 기능한 이후 반드시 최초의 출발점으로 환류한다는 전제에 있다.

 

차입자가 일정 기간 후 화폐를 상환할 수 있는 것은 해당 화폐가 재생산 과정을 거쳐 차입자 자신에게 우선적으로 환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폐를 자본으로 대부한다는 것곧 일정 기간 뒤 상환을 조건으로 양도한다는 것은 화폐가 실제로 자본으로 기능하여 그 출발점으로 환류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화폐가 자본으로 수행하는 현실적 순환 운동은 곧 차입자가 대부자에게 화폐를 반환해야 한다는 법률적 거래의 실질적 근거가 된다.

 

차입자가 해당 화폐를 실제로 자본으로 운용하는지의 여부는 차입자 개인의 문제일 뿐대부자는 이를 본질적으로 자본으로 대부하는 것이다자본으로의 화폐는 화폐 형태를 취해 출발점으로 복귀하기까지의 화폐 자본 순환 과정을 포괄하는 제반 기능들을 수행해야만 한다.

 

가치액이 화폐 또는 상품으로 기능하는 유통 행위인 M-C와 C-M´은 자본 총 운동의 매개적 과정이자 단순한 국면에 불과하다자본으로 가치액은 총 운동 M-M´을 수행하며특정 형태의 가치액으로 투하되었다가 다시 가치액의 형태로 복귀한다.

 

화폐 대부자는 화폐를 상품 구매에 지출하지 않으며가치액이 상품 형태로 존재하더라도 이를 화폐와 교환하여 판매하지 않는다그는 가치액을 M-M´, 곧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다시 출발점으로 환류하는 자본으로 투하한다.

 

이처럼 대부라는 형식은 가치를 단순한 화폐나 상품이 아닌 자본’ 그 자체로 양도하기에 적합한 방식이다구매나 판매가 아닌 대부의 형식을 취하면서 자본은 그 고유한 운동성을 유지하며 이전된다다만 이러한 대부 행위가 반드시 자본주의적 재생산 과정과 결부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며귀족의 사치적 소비를 위한 대부와 같이 재생산과 무관한 거래의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다.

 

 

지금까지 대부 자본이 소유자와 산업 자본가 사이에서 수행하는 운동을 고찰한 데 이어이제 이자의 본질을 규명해야 한다.

 

대부자는 자신의 화폐를 자본으로 지출한다그가 타인에게 양도하는 가치액은 자본의 성격을 지니기에 본래의 소유자에게 환류한다그러나 단순한 복귀만으로는 대부된 가치액이 자본으로 환류했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며이는 단순한 원금의 상환에 그칠 수 있다.

 

해당 가치액이 진정한 의미에서 자본으로 환류하기 위해서는 운동 과정에서 스스로를 보존할 뿐만 아니라 증식시켜야 하며최종적으로는 M+ΔM, 곧 잉여 가치가 부가된 상태로 복귀해야 한다여기서 ΔM은 이자를 의미하며이는 평균 이윤 중 기능 자본가의 수중에 잔류하지 않고 화폐 자본가에게 귀속되는 몫을 형성한다.

 

화폐 자본가로부터 화폐가 자본으로 이전된다는 것은해당 화폐가 반드시 M+ΔM의 형태로 그에게 반환되어야 함을 전제한다자본 원금은 장기간의 대부 기간이 종료되는 시점에 비로소 상환되고그 중간 과정에서는 오직 이자만이 정기적으로 환류하는 특수한 형태에 대해서는 추후 별도로 고찰하기로 한다.

 

여기서 화폐 자본가가 차입자인 산업 자본가에게 실질적으로 인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규명해야 한다화폐의 대부를 단순한 통화의 이동이 아닌 자본으로의 이전곧 상품으로의 자본 양도를 규정짓는 결정적 계기는 바로 화폐를 이전하는 이 행위 자체에 내재해 있다.

 

화폐 대부자가 자본을 상품으로 대부하거나자신이 소유한 상품을 자본의 자격으로 타인에게 이전하는 행위는 오직 이 양도를 매개로만 구체화된다.

 

통상적인 판매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인도되는 것은 무엇인가그것은 판매되는 상품의 가치가 아니다가치는 단지 그 형태를 변화시킬 뿐이기 때문이다가치는 화폐의 형태로 판매자에게 현실적으로 이전되기 전 이미 상품 내에 가격이라는 관념적 형태로 존재하며교환 과정에서 동일한 가치와 가치량은 상품 형태에서 화폐 형태로 그 외피만을 바꾼다따라서 판매자가 현실적으로 양도하여 구매자의 개인적 또는 생산적 소비로 이전되는 대상은 상품의 사용 가치이자사용 가치로의 상품 그 자체다.

 

화폐 자본가가 대부 기간 동안 차입자인 생산적 자본가에게 인도하는 사용 가치는 다음과 같다그것은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되어 기능하면서그 운동 과정 중에 최초의 가치를 보존할 뿐만 아니라 일정한 잉여 가치곧 평균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는 잠재력에서 비롯되는 사용 가치다일반적인 상품의 경우 사용 가치의 소비는 상품 실체의 소멸을 의미하며그에 따라 체화된 가치 역시 소멸한다이와 대조적으로, ‘자본이라는 특수한 상품은 그 사용 가치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가치와 사용 가치가 유지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증대되는 고유한 속성을 지닌다.

 

화폐 자본가는 평균 이윤을 창출하는 능력인 자본으로의 사용 가치를 일정 기간 산업 자본가에게 양도하며해당 기간 대부 자본에 대한 실질적인 처분권을 이전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부되는 화폐는 산업 자본가와 관계 맺는 노동력과 비슷한 성격을 띤다다만 산업 자본가가 노동력에 대해서는 그 가치를 직접 지불하는 반면대부 자본에 대해서는 원금을 상환할 뿐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산업 자본가에게 노동력의 사용 가치란노동력 그 자체가 보유한 가치나 구입 비용보다 더 많은 가치 (이윤)를 소비 과정에서 생산해 낸다는 점에 있다이 가치 초과분이 노동력의 실질적인 사용 가치를 형성한다이와 마찬가지로 대부되는 화폐 자본의 사용 가치 역시 가치를 창출하고 스스로를 증식시키는 고유한 능력에 근거한다.

 

화폐 자본가가 인도하는 대상은 실질적인 사용 가치를 내포하고 있으며이러한 관점에서 그가 이전하는 것은 하나의 상품으로 기능한다이는 여타의 상품과 두 가지 측면에서 일치한다.

 

첫째가치가 일방의 수중에서 타방의 수중으로 이전된다는 점이다다만 일반적인 상품 교환에서는 구매자와 판매자 양방이 동일한 가치량을 견지한 채 그 형태만을 교환하는 반면대부의 경우에는 화폐 자본가만이 가치를 건네주며 장래의 상환을 매개로 해당 가치를 보존한다는 차이가 있다대부 행위에서는 일방이 가치를 제공하고 타방은 이를 수취할 뿐이다.

 

둘째일방이 현실적 사용 가치를 양도하고 타방은 이를 수용하여 소비한다는 점이다그러나 일반 상품과 달리 자본이라는 상품의 사용 가치는 그 자체가 가치 증식력에 근거한다화폐를 자본으로 운용하면서 발생하는최초 가치액을 상회하는 초과분인 이윤이 곧 대부 자본의 사용 가치를 구성하는 실체다.

 

대부되는 화폐의 사용 가치는 그것이 자본으로 기능하며 평균적인 조건하에서 평균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렇다면 산업 자본가가 이에 대해 지불하는 비용곧 대부 자본의 가격은 무엇으로 규정되는가.

 

매시의 지적대로,

 

차입자가 자본의 사용에 대한 대가인 이자로 지불하는 것은 해당 자본으로부터 생산할 수 있는 이윤의 일부분이다.’

 

일반적인 상품의 구매자가 상품의 사용 가치를 획득하는 대가로 그 가치를 지불하듯화폐 차입자 또한 자본으로의 사용 가치를 구매한다그러나 차입자가 지불하는 대상은 여타 상품과 달리 화폐 자체의 가치나 가격이 아니다대부자와 차입자의 거래에서는 일반적인 매매에서 발생하는 가치의 형태 변화곧 가치가 화폐에서 상품으로 또는 그 반대로 전환되는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

 

투하된 가치와 회수되는 가치 사이의 동일성은 여기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관철된다가치액으로의 화폐는 즉각적인 등가물 없이 양도된 후 일정 기간이 지나 상환되는 형식을 취한다대부자는 가치가 차입자에게 이전된 이후에도 해당 가치에 대한 법률적 소유권을 여전히 유지한다.

 

단순한 상품 교환에서 화폐는 항상 구매자의 수중에 있으나대부의 경우 화폐는 판매자 (대부자)의 측에 위치한다판매자는 화폐를 일정 기간 포기하는 주체이며자본의 구매자 (차입자)는 그 화폐를 상품으로 수취하는 주체가 된다이러한 거래가 성립하는 근거는 오직 해당 화폐가 자본으로 기능하며 그에 따라 투하된다는 사실에 있다.

 

차입자가 화폐를 차입하는 목적은 그것을 자본곧 스스로를 증식시키는 가치로 운용하기 위함이다그러나 대부되는 화폐는 모든 자본이 투하되는 최초의 시점에서 그러하듯아직은 잠재적 자본의 상태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그것은 현실적 생산 과정에서 사용되면서 비로소 가치를 증식시키고 자본으로 실현된다.

 

그런데 차입자는 실현된 자본곧 원금에 잉여 가치 (이자)가 부가된 M+ΔM의 형태로 이를 상환해야 한다이때 이자는 차입자가 실현한 이윤의 일부여야 하며그 전액이 될 수는 없다대부 자본이 차입자에게 지니는 사용 가치는 그에게 이윤을 창출해 주는 데 있으며이윤 전액을 이자로 지불해야 한다면 대부자는 실질적인 사용 가치를 제공하지 않은 셈이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이윤 전체가 차입자에게 귀속될 수도 없다이윤 전부를 차입자가 독점한다면 그는 사용 가치의 양도에 대한 대가를 전혀 지불하지 않는 것이며대부된 화폐를 자본으로 상환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화폐로 되돌려주는 것에 불과하게 된다화폐가 실현된 자본으로 기능했다는 증거는 오직 M+ΔM의 형태를 취하면서만 증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자와 차입자는 동일한 화폐액을 자본으로 지출하나해당 화폐액이 실질적인 자본으로 기능하는 국면은 오직 차입자의 수중에 머무는 시기뿐이다동일한 화폐 자산이 두 주체에게 자본으로 이중 존재한다고 하여 발생 이윤이 두 배로 증폭되는 것은 아니다이 단일한 화폐액이 양자 모두에게 자본으로 기능할 수 있는 근거는 오직 창출된 이윤의 분할에 있으며이때 대부자에게 귀속되는 몫을 이자라 칭한다.

 

본 논의의 전제에 따르면거래 전반은 화폐 자본가와 기능 자본가 (산업 또는 상업 자본가)라는 두 부류의 자본가 사이에서 전개된다.

 

여기서 핵심은 자본 자체가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된다는 사실이다따라서 본 거래에서 나타나는 제반 관계는 단순 상품의 관점에서 재생산 과정 내에서 상품 자본으로 기능한는 일반적 자본의 관점에서는 불합리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판매와 구매가 아닌 대부와 차입이라는 형식을 취하는 것은 자본이라는 상품이 지닌 특수성에서 기인하며지불 대가가 상품의 가격이 아닌 이자로 규정되는 것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이자를 화폐 자본의 가격이라 정의한다면이는 가격의 불합리한 형태이자 상품 가격의 본질적 개념과 완전히 모순되는 것이다이 경우 가격은 특정 사용 가치를 제공받는 대가로 지불하는 일정 화폐액을 지칭하는 순수하게 추상적인 형식으로 전락하며사용 가치의 가치를 화폐로 표현한다는 가격 본연의 개념적 규정을 상실하게 된다.

 

이자를 자본의 가격이라 칭하는 것은 본래 극히 불합리한 표현이다이 논리를 따르면 하나의 상품이 본연의 가치와 더불어그 가치와는 별개인 또 다른 가격을 동시에 갖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본래 가격이란 가치의 화폐적 표현에 불과함에도 말이다화폐 자본은 본질적으로 일정한 화폐액이거나특정 상품량의 가치가 화폐로 평가된 수치에 지나지 않는다.

 

상품이 자본으로 대부될 때 그 실체는 면화와 같은 물신적 형태가 아니라그 이면에 가치로 존재하는 일정한 화폐액이다따라서 자본의 가격은 토렌즈의 견해 (주 59)와 달리 통화그 자체가 아닐지라도결국 화폐액으로의 자본과 결부된다.

 

그렇다면 특정 가치액이 자신의 화폐적 표현인 본래의 가격 외에 어떻게 또 다른 가격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가격이란 결국 상품의 사용 가치와 구별되는 가치 그 자체를 의미하며시장 가격과 가치의 편차 역시 질적 차이가 아닌 양적 변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따라서 가치와 질적으로 구별되는 별개의 가격이 존재한다는 설정은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불합리한 모순에 해당한다.

 

자본은 가치 증식에 있어 자신의 실재성을 입증하며이러한 증식의 정도는 자본이 현실화되는 양적 지표가 된다자본으로부터 창출되는 잉여 가치나 이윤그리고 이윤율과 이윤량은 반드시 투하된 자본 가치와의 대비 속에서만 산출된다.

 

이자 낳는 자본 역시 그 증식의 폭은 총이윤 중 자신에게 귀속되는 몫인 이자액을 투하 자본의 가치와 비교하면서만 측정된다따라서 일반적인 가격이 상품의 가치를 표상한다면이자는 화폐 자본의 가치 증식력을 표상하며 대부자에게 지불되는 일종의 가격 형식을 취하게 된다.

 

이러한 지점은 화폐를 매개로 하는 단순 교환 관계곧 구매와 판매의 논리를 대부 관계에 직접 전용하려는 시도 (프루동의 방식 등)가 얼마나 비논리적인지를 여실히 드러낸다대부의 기본 전제는 화폐가 그 자체로 자본으로 기능하며따라서 잠재적 자본이라는 특수한 성격을 지닌 채 제3자에게 양도될 수 있다는 사실에 있기 때문이다.

 

자본이 하나의 상품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것이 시장에서 매매의 대상으로 제공되고화폐가 지닌 자본으로의 사용 가치가 실제로 양도되는 과정에 기인한다자본의 사용 가치는 이윤을 창출하는 능력에 있다.

 

따라서 자본으로 화폐 (또는 상품)가 지니는 가치는 화폐 그 자체의 가치량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그것이 소유자를 위해 생산할 수 있는 잉여 가치의 양에 따라 규정된다자본의 생산물은 이윤이다.

 

화폐가 단순 화폐로 지출되느냐 또는 자본으로 투하되느냐의 차이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 하에서 화폐를 사용하는 방식에 따른 차이에 불과하다화폐나 상품은 노동력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 이미 잠재적 자본의 성격을 띠는데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화폐는 언제든지 생산 요소들로 전환될 수 있으며이미 그 자체로 이러한 요소들의 추상적 표현이자 가치적 실체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둘째부의 소재적 요소들은 잠재적으로 이미 자본이라는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이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토대 위에서 해당 요소들을 자본으로 변모시키는 보완적 대립물인 임금 노동이 상시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소재적 부가 지닌 대립적인 사회적 성격곧 부가 임금 노동과 대립한다는 사실은 생산 과정을 도외시하더라도 자본 소유권 그 자체에 이미 나타난다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의 필연적 결과이자 지속적인 전제인 자본 소유권은 생산 과정과 분리되어 고찰되더라도 다음과 같은 본질을 드러낸다.

 

화폐와 상품은 그 자체로 잠재적·잠세적 자본의 성격을 지니며따라서 자본으로 매매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이러한 잠재적 자본의 형태 속에서 부는 타인의 노동에 대한 지휘권과 그 노동 성과를 취득할 수 있는 청구권을 확보하며결과적으로 스스로 증식하는 가치로 존재하게 된다여기서 타인의 노동을 영유하는 근거와 수단은 오직 이러한 사회적 관계에 기인할 뿐이며자본가가 등가물로 제공하는 어떠한 노동과도 무관하다는 점이 명확해진다.

 

이윤이 이자와 기업가 이득으로 분할되는 과정이 수요와 공급곧 경쟁을 거치며 규제된다는 점은 자본을 하나의 상품처럼 보이게 한다그러나 여기서 나타나는 차이점은 닮은 점만큼이나 극명하다일반 상품의 경우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면 시장 가격은 생산 가격과 수렴하며이는 가격이 경쟁과 무관하게 자본주의적 생산의 내재적 법칙에 기인하여 규제됨을 의미한다.

 

수요와 공급의 변동은 생산 가격으로부터의 일시적 이탈만을 설명할 뿐이며이러한 편차는 상쇄되어 평균 시장 가격은 생산 가격과 일치하게 된다수급이 상쇄되면 외적인 힘은 소멸하고 가격 결정의 일반 법칙이 관철된다이는 임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수급이 일치할 때 임금은 노동력의 가치와 등가를 이룬다.

 

반면화폐 자본에 대한 이자의 경우에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이자율의 결정에서는 경쟁이 법칙으로부터의 이탈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경쟁에 따라 강제되는 분할의 법칙 그 자체 외에는 어떠한 내재적 법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후술하겠지만 이자율에는 이른바 자연적인’ 이자율이 존재하지 않는다대개 자연적 이자율은 자유 경쟁을 거치며 확정되는 비율을 의미할 뿐이며그 자체로는 어떠한 자연적 한계도 갖지 않는다경쟁이 단지 편차와 변동만을 결정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경쟁하는 힘들이 길항을 이룰 때조차 어떠한 내재적 결정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면결정 대상인 이자율은 그 자체로 자의적이고 무원칙한 성격을 띠게 된다이에 관한 상세한 논의는 다음 장에서 다룬다.

 

이자 낳는 자본의 운동은 모든 과정이 지극히 피상적인 형태로 발현된다자본의 투하는 대부자로부터 차입자에게로 향하는 단순한 권리 이전으로 재현되며실현된 자본의 환류 또한 차입자가 대부자에게 원금과 이자를 되돌려주는 역방향의 상환 행위로만 나타난다이윤율이 개별 회전의 이윤뿐 아니라 회전 기간의 길이에 따라서도 규정되며결과적으로 일정 기간 생산된 총이윤에 따라 결정된다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내재적 법칙 역시 여기서는 은폐된다이자 낳는 자본의 관계에서는 이러한 생산적 역동성이 사라지고특정 기간의 경과에 따라 일정액의 이자가 대부자에게 지불된다는 단편적 형식만이 남게 된다.

 

낭만주의 경제학자 뮐러 (1809: 138)는 사물의 내적 연관에 대한 특유의 천박한 식견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일반적인 물건의 가격 결정에는 시간이 개입하지 않으나이자의 결정에서는 시간이 주된 요인이다.’

 

그러나 그는 생산 시간과 유통 시간이 상품 가격 형성에 근본적으로 관여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바로 이 시간적 요소들에 따라 자본의 일정한 회전 기간에 따른 이윤율이 결정되며이렇게 도출된 기간당 이윤에 근거하여 이자율 또한 확정되는 것이다뮐러의 소위 안목이라는 것은 언제나 그러하듯 현상의 표면에 쌓인 먼지만을 보고는그 먼지가 심오하고 중대한 실체라도 되는 양 거만하게 강변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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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상인 자본의 역사적 고찰

 

상업 자본과 화폐 거래 자본에 따라 화폐가 축적되는 특수한 형태는 차후 별도로 고찰될 것이다.

 

이미 전개된 논의로부터 명백해진 사실은, 상품 거래 자본이나 화폐 거래 자본의 형태를 띠는 상인 자본을 광업, 농업, 축산업, 제조업, 운수업 등과 같은 산업 자본의 한 종류로 간주하는 것만큼 부당한 것은 없다는 점이다. 언급된 분야들은 사회적 분업의 산물로 산업 자본이 투하되는 특수한 영역들이며, 그 자체로 산업 자본의 분과를 형성한다.

 

반면, 상인 자본은 생산 과정 외부에서 유통 영역의 특수한 기능을 담당하며 독립화된 자본 형태이다. 따라서 이를 산업 자본의 병렬적 구성 요소로 파악하는 것은 자본의 순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각 형태의 기능적 차이와 역사적 특수성을 간과하는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산업 자본이 재생산 과정의 유통 국면에서 상품 자본 및 화폐 자본으로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상인 자본을 산업 자본의 일종으로 파악하는 조잡한 견해는 지양되어야 마땅하다. 오히려 상품 거래 자본과 화폐 거래 자본의 실체는 산업 자본의 생산적 형태와 유통적 형태 사이의 구별이 자립성을 회득한 결과로 이해되어야 한다.

 

, 산업 자본이 유통 영역에서 일시적으로 취하는 특수한 형태와 기능이 본체로부터 분리되어 유통 영역에 고착되면서, 자본의 특정 부분에 귀속된 독립적인 형태와 기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산업 자본의 유통적 전환 형태인 상인 자본과, 생산 분야의 소재적 성격에 따른 산업 자본 내의 부문별 구별 (광업, 농업, 제조업 등)은 근본적으로 층위를 달리하는 별개의 범주이다.

 

경제학자들이 통상적으로 형태의 구별을 경시하며 실천적 측면에만 천착한다는 점 외에도, 속류 경제학자들이 범하는 혼동에는 두 가지 결정적인 사유가 존재한다.

 

첫째, 그들은 상업 이윤의 본질과 그 특수성을 체계적으로 해명할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둘째,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토대 위에서 발생하는 상품 자본 및 화폐 자본, 그리고 나아가 상품 거래 자본과 화폐 거래 자본이라는 형태를 보편적인 생산 과정 자체에서 도출하려는 변호론적 의도 때문이다.

 

상업 자본 및 화폐 거래 자본과 곡물 재배업 사이의 구별이 곡물 재배와 축산업, 제조업 사이의 소재적 구별과 하등 다를 바 없다면, 생산 일반과 자본주의적 생산은 완전히 동일시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축산업이 쇠고기 소비를, 제조업이 의류 소비를 매개하는 것이 항구적인 필연성을 갖듯, 사회적 생산물의 분배 또한 상인과 은행가의 주도하에 영구히 매개되어야 한다는 논리적 귀결에 도달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혼동은 자본주의적 형태의 특수성을 영원불변한 자연적 현상으로 고착시키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스미스와 리카도 같은 고전파 경제학자들 또한 산업 자본을 자본의 기본 형태로 규정하고, 유통 자본 (화폐 자본과 상품 자본)을 자본 재생산 과정의 일시적 국면으로만 파악했기에 상인 자본의 독자적 성격에 대해서는 혼란을 겪었다. 산업 자본 분석을 토대로 도출된 가치 형성 및 이윤에 관한 명제들은 상인 자본에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들은 상인 자본을 별도의 범주로 다루기보다 산업 자본의 특수한 일종으로만 간주하며 그 본질을 간과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리카도가 대외 무역론에서 시도했듯이 (CW 32: 70-72), 그들은 상인 자본을 구체적으로 다룰 때조차 그것이 어떠한 가치나 잉여 가치도 창출하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대외 무역에 적용되는 이러한 논리는 국내 상업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타당하다.

 

 

 지금까지 상인 자본에 대한 고찰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라는 구체적 범위 내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상업과 상인 자본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보다 선행하며, 사실상 자본이 독립적 실체로 존재하게 된 가장 오래된 역사적 형태를 취한다.

 

화폐 거래업 및 이에 투하된 자본의 발달은 대규모 상업과 상품 거래 자본의 존재를 전제로 하므로, 본 논의에서는 상품 거래 자본에 집중하기로 한다.

 

상업 자본은 전적으로 유통 영역 내에 존재하며 그 기능 또한 상품 교환의 매개에 국한된다. 따라서 상업 자본은 원시적 물물 교환을 제외하면 상품 및 화폐의 단순 유통이라는 조건만으로도 성립한다. , 단순 유통 그 자체가 상업 자본의 존립 기반이 된다. 유통되는 생산물이 어떠한 생산 양식 (원시 공동체, 노예제, 소농민 및 소부르주아적 생산, 자본주의적 생산)에 기반하든, 그 생산물의 상품적 성격은 변하지 않으며 유통 과정 및 그에 따른 형태 변화를 필연적으로 거치게 된다.

 

상업 자본을 매개로 하는 양단 (상품들)은 화폐 운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상업 자본에 기여된 전제로 작용한다. 필수적인 조건은 이 양단이 상품으로 실재해야 한다는 점이며, 생산 체계가 전면적인 상품 생산인지 또는 자급자족 후의 잉여분 출하인지의 여부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상업 자본은 단지 기여된 전제 조건으로의 상품 운동을 매개할 뿐이다.

 

생산물이 상업적 체계에 포섭되어 상인의 수중에 머무는 범위는 생산 양식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나며, 그 범위는 생산물이 직접적 생활 수단이 아닌 오로지 상품으로만 생산되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 하에서 최대치에 도달한다.

 

반면, 모든 생산 양식에서 상업은 교환에 투입될 잉여 생산물의 생산을 촉진하는데, 이는 생산물 소유자의 향락을 증대시키거나 화폐 축적을 추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업은 생산활동에 점진적으로 교환 가치를 지향하는 생산이라는 성격을 부여한다. (CW 29: 233-234, 480-481)

 

상품의 형태 변화와 그 운동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을 지닌다.

 

첫째, 소재적 측면에서 상품은 다른 상품들과 상호 교환된다.

 

둘째, 형태적 측면에서 상품은 화폐로 전환 (판매)되고, 다시 화폐는 상품으로 전환 (구매)된다.

 

상업 자본의 본질적 기능은 바로 이러한 판매와 구매를 수단으로 한 상품 교환의 매개로 수렴된다. 이때의 교환은 단순히 직접 생산자들 사이의 거래에 국한되지 않는다. 노예제, 농노제, 또는 아시아적 생산 양식 (아시아적 공동체)의 공납 관계에서 생산물의 소유자이자 판매자는 노예주, 봉건 영주, 또는 국가 (417, ‘동양의 전제 군주)가 된다.

 

상인은 유통을 매개하는 주체로 상품 소유자들을 대리하여 대규모 매매를 수행하며, 이로부터 판매와 구매는 상인의 수중에 집중된다. 결과적으로 매매 행위는 구매자로 상인이 갖는 직접적인 필요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독립적인 유통 기능을 수행하기에 이른다.

 

상인이 매개하는 상품 교환의 사회적 조직 형태와 무관하게, 상인의 자산은 항시 화폐 자산의 형태로 존재하며 그 화폐는 자본으로 기능한다.

 

이 자본의 취하는 운동 형식은 언제나 M-C-M´이며, 교환 가치의 자립적 형태인 화폐가 출발점이자 증식 그 자체가 독자적 목적이 된다. 생산 과정에서 분리되어 비생산자를 거쳐 수행되는 상품 교환 및 그 매개 활동은 부의 일반적 사회적 형태인 교환 가치를 증대시키는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여기서 추진 동기와 규정적 목적은 화폐 MM+ΔM으로 전환하는 데 있으며, 이를 매개하는 M-C (구매)C-M´ (판매)M으로 변환시키기 위한 과도적 계기로만 나타난다. 따라서 상업 자본의 특징적 운동인 M-C-M´은 사용 가치의 교환을 궁극적 목적으로 하는 생산자 간의 상품 거래 형식인 C-M-C와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생산력이 저발달 상태에 머물수록 화폐 재산은 상인의 수중에 더욱 집중되며, 이는 상인 재산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형태로 드러난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하에서 자본이 생산 과정 자체를 지배하고 생산에 전면적으로 변형된 특수한 형태를 부여하게 되면, 상업 자본은 단지 체계 내에서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분화된 자본으로 나타날 뿐이다. 그러나 이전의 모든 생산 양식에서는 상업 자본이 자본의 기능을 가장 전형적으로 대표한다. 이러한 경향은 생산이 직접적인 생산자의 생활 수단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자급자족적 성격을 띨수록 더욱 뚜렷하게 발현된다.

 

따라서 자본이 생산 과정을 실질적으로 포섭하기 이전, 상업 자본이 자본의 선구적 역사 형태로 등장하는 현상은 필연적이다. 상업 자본의 존립과 일정 수준의 발달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 성립을 위한 역사적 전제 조건으로 작용한다.

 

첫째, 상업 자본은 화폐 재산의 집적을 이루는 토대이다.

 

둘째,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은 개별 수요자가 아닌 불특성 다수를 위한 대량 판매를 전제하며, 이에 따라 개인적 필요가 아닌 사회적 수요를 자신의 구매 행위로 집중시키는 상인의 존재를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나아가 상업 자본의 팽창은 생산 활동에 교환 가치 창출이라는 성격을 점진적으로 부여하며, 생산물을 상품으로 전환시킨다. 다만 상업 자본의 발달 그 자체만으로는 특정 생산 양식에서 다른 생산 양식으로의 이행을 완결적으로 설명하기에 불충분하며, 이에 관한 구체적인 분석은 후술될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 체계 내부에서 상업 자본은 이전의 독립적 지위에서 격하되어 자본 투하 일반의 특수한 계기로 포섭되며, 이윤율의 균등화 과정에서 그 이윤율 또한 일반적 평균 수준으로 수렴한다. 이 단계에서 상업 자본은 생산 자본인 산업 자본의 보조적 대리인으로 기능하는 데 머문다.

 

따라서 상업 자본의 발달과 함께 형성되었던 특수한 사회적 지배력은 더 이상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며, 오히려 상업 자본이 여전히 우세를 점하는 지역은 전근대적이고 낙후된 사회 상태가 지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은 일국 내에서도 명확히 드러나는데, 예컨대 순수 상업 도시는 공업 도시에 비해 이전의 경제적 구조와 훨씬 더 비슷하다.

 

자본이 상업 자본의 형태로 독립적·우세하게 발달한다는 것은 생산 과정이 아직 자본에 포섭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며, 이는 자본과 무관한 사회적 생산 형태 위에서 자본이 발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상업 자본의 독립적 발달 정도는 사회의 일반적인 경제적 발전 수준과 반비례 관계를 형성한다.

 

독립적인 상업적 부가 자본의 지배적 형태로 군림할 때, 유통 과정은 교환의 주체인 생산자들로부터 분리되어 독자적인 독립성을 획득한다. 이때 생산물은 상업이라는 매개를 거치면서 비로소 상품으로 전환되며, 상품의 운동이 상업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업이 생산물을 상품으로 규정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 자본은 유통 과정 내에서 비로소 자본으로 등장하며, 화폐가 자본으로 발전하고 생산물이 교환 가치와 상품, 화폐로 전회하는 공간 역시 유통 영역에 국한된다. 자본은 유통을 매개로 다양한 생산 분야를 직접 지배하기 이전에, 유통 과정 내에서 먼저 형성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화폐 및 상품 유통은 여전히 사용 가치 생산에 치중하는 다양한 조직의 생산 영역들을 매개할 수 있다. 이처럼 유통 과정이 독립성을 유지하며 제3자를 매개로 생산 영역들이 연결되는 현상은 두 가지 사실을 증명한다.

 

첫째, 유통이 생산을 지배하지 못한 채 생산을 기여된 전제로만 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생산 과정이 아직 유통을 자신의 유기적 요소로 흡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반면,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하에서는 양태가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생산 과정은 전적으로 유통에 기반하며, 유통은 생산의 단순한 계기이자 통과 국면으로 전락한다. , 유통은 상품으로 생산된 생산물의 가치 실현과, 마찬가지로 상품으로 확보되는 생산 요소들의 보충 과정에 불과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유통에서 직접 발생했던 자본 형태인 상업 자본은 이제 전체 재생산 운동 과정 속에서 순환하는 자본의 특수한 형태 중 하나로 포섭된다. (CW 33: 14-15)

 

상업 자본의 독립적 발달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 수준과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법칙은 베네치아, 제노바, 네덜란드 등이 수행한 중개 무역의 역사에서 극명하게 입증된다. 이들 국가가 점유한 거대한 이윤은 자국 생산물의 수출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미발달한 공동체들 사이의 생산물 교환을 매개하며 양측 생산국을 동시에 수탈하면서 획득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상업 자본이 매개 대상인 양단의 생산 영역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외재하는, 상업 자본의 가장 순수한 형태를 목격하게 된다.

 

중개 무역은 상업 자본 형성의 중추적 원천 중 하나이나, 이러한 독점적 지배력은 수탈 대상이었던 국민들의 경제적 발전에 따라 필연적으로 쇠퇴한다. 중개 무역의 기반인 타국의 미발달 상태가 해소됨에 따라, 중개 무역의 쇠퇴는 단순히 특정 상업 분야의 위축만이 아니라, 순수 상업 국민의 지배력 상실과 그들의 상업적 부 일반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점진적 발전에 따라 상업 자본이 산업 자본에 종속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특수한 형태에 불과하다. 한편, 상업 자본이 생산을 직접적으로 지배하는 국면에서 나타나는 활동 양식과 형태에 관해서는 식민지 무역 일반 (이른바 식민 제도), 특히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운영 방식이 전형적인 실례를 제공한다.

 

상업 자본의 운동 형식은 M-C-M´이므로, 상인의 이윤은 우선적으로 유통 과정 내부의 행위인 구매와 판매를 거쳐 획득되며, 최종 행위인 판매 단계에서 실현된다. 따라서 상인의 이윤은 전형적인 양도 이윤의 성격을 띤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생산물이 그 가치대로 판매되는 등가 교환의 원칙이 지켜지는 한, 순수하고 독립적인 상업 이윤의 존립은 언뜻 성립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는 상업의 원칙은 근본적으로 등가물 간의 교환을 부정한다. 이 과정에서 가치 개념이 개입되는 지점은 오직 모든 상품이 가치이자 화폐로, 질적으로 사회적 노동을 체현하고 있다는 사실에 국한된다. 그러나 개별 상품의 가치량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생산물 간의 양적 교환 비율은 초기에는 전적으로 우연적이다. 생산물이 상품의 형태를 획득하는 근거는 그것이 교환된다는 점, 곧 공통된 제3의 요소인 가치를 표현한다는 점에 있다. 지속적인 교환과 교환을 목적으로 하는 규칙적인 재생산은 이러한 초기 우연성을 점차 제거해 나간다.

 

다만, 이 과정에서 불확실성이 소거되는 이득은 우선적으로 생산자나 소비자가 아닌 매개자인 상인에게 귀속된다. 상인은 화폐 가격을 비교하고 그 차액을 취득하는 독자적인 운동을 거쳐, 파편화된 교환들 사이에서 실질적인 등가 관계를 확립하는 주체로 기능한다.

 

초기 단계의 상업 자본은 자신이 직접 지배하지 않는 양 끝단 사이에서, 그리고 자신이 창출하지 않은 전제 조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매개 운동에 불과하다.

 

단순 상품 유통 형태인 C-M-C에서 화폐가 가치 척도와 유통 수단만이 아니라 상품 및 부의 절대적 형태인 퇴장 화폐로 고착되고, 그 결과 화폐의 유지와 증식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업 자본의 유통 형태인 M-C-M´에서 화폐와 퇴장 화폐는 단순한 양도 행위로부터 유지되고 증식되는 자본으로 발달한다. , 생산 과정과 무관하게 유통 영역 내에서의 가치 증식이 상업 자본의 본질적 운동 법칙으로 확립되는 것이다. (CW 33: 9-10)

 

고대의 상업 민족들은 세계들 사이의 틈새에 존재하는 에피쿠로스의 신들처럼, 또는 폴란드 사회의 균열 지점에 거주하던 유태인들처럼 외부적 존재로 존립하였다. 초기 독립을 구가하며 고도의 번영을 누린 상업 도시와 상업 민족들의 교환 활동은 순수한 중개 무역의 형태를 띠었으며, 이는 그들이 매개한 생산 민족들의 경제적 미발달 상태를 물적 토대로 삼고 있다.

 

자본주의 이전의 역사적 단계들에서는 상업이 산업을 압도하며 지배력을 행사하였으나, 근대 사회에 이르러서는 그 주도권이 역전된다. 공동체 간의 상업 활동은 필연적으로 해당 공동체 내부 구조에 일정 수준 이상의 반작용을 미친다. 상업은 향락과 생활 유지의 수단이 생산물의 직접적인 소비보다 판매 행위에 의존하게 하면서, 생산 과정을 교환 가치 창출에 점진적으로 종속시킨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업은 기존의 낡은 사회적 관계를 해체하고 화폐 유통을 촉진한다. 이제 상업은 단순히 생산의 잉여분만을 장악하는 데 머물지 않고, 생산 과정 자체에 침투하여 생산 분야 전반을 상업 자본에 의존적인 상태로 재편한다. 다만, 이러한 상업의 분해 작용이 초래하는 구체적인 결과는 생산을 수행하는 공동체 고유의 성격과 그 내부 조직의 견고함에 따라 결정된다. (CW 33: 20)

 

상업 자본이 저개발 공동체 간의 생산물 교환을 매개하는 국면에서, 상업 이윤은 기만과 사취의 형태를 띨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그로부터 발생한다. 상업 자본은 각국의 생산 가격 차액을 취득하면서 상품 가치의 균등화에 기여하기도 하지만, 미발달한 생산 양식하에서는 잉여 생산물의 대부분을 독점적으로 취득한다. 이는,

 

첫째, 해당 공동체의 생산이 여전히 사용 가치 창출에 집중되어 있어 생산물의 가치에 입각한 판매가 부차적 사안에 머무는 상황에서 상업 자본이 유통 독점권을 장악하기 때문이다.

 

둘째, 상인이 주요 거래 대상인 노예주, 봉건 영주, 전제 국가 (: 동양의 전제 군주)와 같은 향락적 부의 소유자들을 기망하여 그들의 자산을 잠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업 자본은 지배적 위치를 점하는 곳마다 약탈 제도를 대변하게 된다. 실제로 상업 자본의 발달사는 고대와 근대를 막론하고 폭력적 약탈, 해적 행위, 노예 납치 및 인신 매매, 식민 정복 등과 결부되어 있다. 예컨대 카르타고와 로마를 비롯하여 베네치아, 포르투갈, 네덜란드의 역사적 사례는 이러한 상업 자본의 약탈적 본질을 명확히 입증한다.

 

상업 및 상업 자본의 발달은 예외 없이 교환 가치 지향적 생산을 촉진하며, 그 범위를 확장·다양화하면서 생산에 세계적 성격을 부여하고 화폐를 세계 화폐로 진화시킨다. 이에 따라 상업은 사용 가치 생산에 치중하던 기존의 다양한 생산 조직을 해체하는 작용을 수행한다. 그러나 상업이 기존의 생산 양식을 해체하는 심도와 범위는 우선적으로 해당 생산 양식 고유의 견고성과 내부 구조에 규정된다. 또한, 해체 과정의 결과물로 어떠한 새로운 생산 양식이 등장하는가 하는 문제 역시 상업 자본의 역랑이 아니라, 해체되는 기존 생산 양식의 역사적 성격에 따라 결정된다.

 

일례로 고대 세계에서 상업의 팽창과 상업 자본의 발달은 항시 노예 경제를 귀결시켰으며, 때로는 가부장적 노예제를 잉여 가치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노예제로 변모시키기도 하였다. 반면, 근대 세계에서 상업 자본의 발달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성립으로 이어졌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역사적 결과는 상업 자본의 발달 정도와는 구별되는 별개의 사회 경제적 조건들에 따라 규정되는 것이다.

 

공업이 농업으로부터 분리되어 진정한 도시적 생산의 형태를 갖추게 되면, 그 생산물은 태생적으로 상품의 성격을 띠며 따라서 그 유통과 판매는 필연적으로 상업의 매개를 요구한다. 상업이 도시의 발달에 기반하고, 도시의 존립 또한 상업의 기능에 의존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산업적 발전이 상업적 팽창과 반드시 병행되는가 하는 문제는 역사적 조건에 따라 양상을 달리한다.

 

가령 고대 로마 공화정 후기에는 상업 자본이 유례없이 고도로 발달했음에도 수공업적 토대는 정체되어 있었던 반면, 코린트를 비롯한 그리스 도시들에서는 상업의 진흥이 숙련된 수공업의 발달을 직접적으로 견인하였다. 또한 상업 정신과 상업 자본의 발흥은 반드시 도시화의 산물이거나 그 전제 조건인 것만은 아니며, 오히려 정착 생활을 하지 않는 유목 민족의 경제 구조 내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하는 특수한 사례도 빈번히 확인된다.

 

16세기와 17세기 지리상의 팽창 (신항로 개척 등) 병행하여 발생한 상업의 대혁명이 상업 자본의 비약적 발전을 추동하고, 봉건적 생산 양식에서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으로의 이행을 가속화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자본주의 성립에 관한 일정한 오류와 왜곡된 견해를 야기하기도 하였다. 세계 시장의 급격한 팽창, 유통 상품량의 비약적 증대, 아시아의 산물과 아메리카의 귀금속을 선점하려는 유럽 열강 간의 각축, 그리고 식민 제도 등은 기존 생산 체계를 구속하던 봉건적 굴레를 타파하는 데 근본적으로 기여하였다.

 

근대적 생산 양식의 초기 단계인 공장제 수공업 (매뉴팩처)은 그 성립을 위한 제반 조건이 이미 중세에 형성된 지역에서만 발달하였다. 이는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의 역사적 대비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단행된 상업의 급격한 팽창과 세계 시장의 창출이 낡은 생산 양식의 몰락과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나, 이러한 상업적 성취는 기만적으로 이미 존재하던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토대 위에서 달성된 것이다.

 

(물론) 세계 시장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존립 기초를 형성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산 규모를 부단히 확장하려는 이 생산 양식의 내재적 필연성은 세계 시장의 지속적인 확대를 강요한다. 결과적으로 상업이 산업을 변혁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이 상업을 끊임없이 재편하고 변혁하게 된다. 나아가 상업적 패권 또한 이제는 대공업을 수행할 수 있는 물적 조건의 우열에 따라 결정되기에 이른다.

 

영국과 네덜란드의 사례 비교는 상업 자본이 산업 자본에 종속되어 가는 과정을 극명히 보여준다. 지배적 상업국이었던 네덜란드의 몰락사는 곧 상업 자본의 위상이 산업 자본에 밀려나는 역사와 일치한다. 한편, 전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지닌 내부적 견고함과 조직력이 상업의 분해 작용에 대항하여 구축한 장벽은 인도와 중국에 대한 영국의 무역사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인도와 중국의 경제 구조는 소규모 농업과 가내 공업의 결합이라는 폭넓은 기초 위에 형성되어 있으며, 인도에서는 토지의 공동 소유에 기반한 촌락 공동체 형식이 그 견고함을 더했다. 영국은 지배자이자 지대 취득자로 직접적인 정치·경제적 권력을 동원하여 이러한 소규모 경제 공동체를 분쇄하고자 기도하였다.

 

영국의 상업이 인도의 생산 양식에 혁명적 영향을 미쳤다면, 이는 저렴한 영국산 면제품을 앞세워 농공 결합의 핵심축이었던 전통 방적업과 직포업을 파멸시키면서 공동체의 물적 토대를 해체시킨 지점에 국한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공동체의 해체 과정은 지극히 점진적으로만 진행되었다.

 

그런데 직접적 정치 권력의 뒷받침이 부재했던 중국에서는 상업에 따른 분해 작용이 더욱 미미하게 나타났다. 농업과 가공업의 직접적 결합에서 달성된 시간의 효율적 운용과 비용 절약은 대공업 생산물에 대해 매우 완강한 저항력을 발휘하였다. 대공업 제품의 가격에는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부대 비용이 포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영국의 상업 활동과 대조적으로 러시아의 상업은 아시아적 생산 양식의 경제적 기초에 하등의 변화도 주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봉건적 생산 양식으로부터의 이행은 서로 다른 두 가지 경로를 따라 전개된다.

 

첫 번째 경로는 생산자가 직접 상인 겸 자본가로 변모하여 농촌의 자연 경제 및 중세 도시의 길드 체제에 예속된 수공업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방식이다. 이는 기존의 생산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참으로 혁명적인 길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경로는 상인이 유통 영역만이 아니라, 생산 과정 자체를 직접 장악하는 방식이다. 이 경로는 역사적으로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디딤돌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으나 (예컨대 17세기 영국 직물 상인이 독립적이었던 직포공들을 포섭하여 원료를 공급하고 제품을 독점 구매한 사례), 그 자체만으로는 낡은 생산 양식을 전면적으로 타도하지 못한다. 오히려 낡은 생산 양식을 자신의 존립 전제로 삼아 보존하고 유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실례로 19세기 중엽까지 프랑스의 비단 공업이나 영국의 양말·레이스 공업 제조업자들은 명목상 제조자에 불과했을 뿐, 실질적으로는 상인의 지위에 머물러 있었다. 이들은 직포공들로 하여금 전통적인 분산 작업 방식을 지속하게 하면서, 오직 상업적 매개로만 생산자들을 통제하고 수탈하는 데 그쳤다.

 

직포공들은 실질적으로 상인을 위해 노동하는 종속적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이행 방식은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으로의 발전을 저해하며, 결과적으로 자본주의가 고도화됨에 따라 점차 소멸한다. 이 방식은 생산 양식의 근본적인 변혁을 수반하지 않은 채 직접적 생산자들의 처지만을 악화시킬 뿐이다.

 

이들은 자본에 직접 포섭된 노동자들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 속에서 단순 임금 노동자이자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하며, 그들의 잉여 노동은 낡은 생산 양식의 토대 위에서 고스란히 상인에게 수탈당한다. 형태는 다소 변형되었으나, 부분적으로 수공업 방식이 잔존하는 런던의 가구 제조업에서도 이와 동일한 착취 관계가 확인된다.

 

이러한 현상은 런던 동부의 타워 함레츠 지구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가구 생산 공정 전반이 매우 세분화되어 있어, 특정 기업은 의자만을, 다른 기업은 식탁이나 옷장만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식이다. 이들 기업은 대개 한 명의 장인과 소수의 직인으로 구성되어 수공업적으로 운영되나, 그 생산 규모는 개별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기에는 너무 비대하다.

 

실질적인 구매자는 가구점의 소유주들이다. 장인은 매주 토요일 가구점들을 돌며 자신의 생산물을 판매하는데, 이때의 가격 협상은 전당포에서 물품을 담보로 대출금을 흥정하는 것과 흡사한 양상을 띤다. 장인들은 다음 주의 원료 구입과 임금 지불을 위해 당장 화폐를 확보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으며, 이러한 판매의 강제성은 상인의 수탈을 더욱 심화시킨다.

 

이러한 구조하에서 장인은 실질적으로 상인과 노동자 사이를 매개하는 중간자에 불과하며, 잉여 가치의 대부분을 독점하는 상인이 진정한 의미의 자본가로 군림한다. 이와 비슷한 현상은 이전에 수공업이나 농촌의 부업 형태로 영위되던 분야들이 공장제 수공업 (매뉴책처)로 이행하는 과정 전반에서 나타난다.

 

대공업으로의 이행은 소규모 소유자 경영 업체의 기술적 발전 수준에 규정되는데, 특히 수공업적 공정에 기계를 도입하기 시작한 지점에서 가속화된다. 최근 영국의 양말 제조업 사례에서 보이듯, 기계의 동력이 인력에서 증기로 전환되는 과정은 이러한 기술적 변혁의 핵심을 이룬다.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크게 세 가지 경로를 취한다.

 

첫째, 상인이 직접 산업가로 변모하는 형태다. 이는 상업적 기반 위에 공업이 성립하는 경우로, 특히 상인이 원료와 노동력 모두를 외부에서 확보하는 사치품 공업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15세기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에서 이탈리아로 도입된 사치품 공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둘째, 상인이 소규모 수공업자 (장인)를 중개자로 삼거나 독립적 생산자로부터 직접 상품을 매입하는 형태다. 이 과정에서 상인은 생산자의 명목상 독립성을 보장하고 기존의 생산 방식을 보존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유통 영역에서 그들을 예속시킨다.

 

셋째, 산업가가 스스로 상인의 기능을 겸하며 시장을 겨냥해 직접 대규모 생산을 전개하는 형태다.

 

중세의 상인은 폽페 (1807: 70)가 지적한 바와 같이, 길드나 농민이 생산한 상품을 단순히 운송하고 매개하는주체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이행기를 거치며 상인은 직접 산업가로 변모하거나, 최소한 수공업자와 농촌 소생산자들을 자신의 장악하에 두어 노동하게 하는 지배적 위치를 점하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자 자체가 상인으로 진화한다. 이전에 직포 장인이 상인으로부터 소량의 양모를 공급받아 단순 가공을 수행하던 종속적 관계에서 벗어나, 이제는 스스로 원료인 양모나 면사를 구매하고 완성된 직물을 상업 영역에 유통시킨다. 이 단계에서 생산 요소들은 생산자가 직접 구매한 상품으로 생산 과정에 투입된다.

 

결과적으로 직포 장인은 더 이상 특정 개인이나 한정된 고객을 위해 생산하지 않고, 상업 세계 전체를 교환 대상으로 삼아 생산을 전개한다. 생산자 자신이 상인의 기능을 체화함에 따라, 독립적이었던 상업 자본은 이제 생산 과정에 부속된 유통 영역만을 담당할 뿐이다.

 

초기 단계에서 상업은 길드 공업, 농촌 가내 공업, 봉건적 농업을 자본주의적 사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필수적 전제 조건으로 작용하였다. 상업은 생산물을 위한 시장을 창출하고 새로운 상품 등가물을 도입하며, 생산에 필요한 원재료와 보조 재료를 공급하면서 생산물을 상품의 단계로 발전시켰다. 이 과정에서 국내외 시장을 겨냥할 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의 자원에 기반을 둔 새로운 생산 분야들이 개척되었다.

 

그러나 공장제 수공업 (매뉴팩처)이 일정 수준 강화되고 대공업 단계에 이르면, 제조업은 스스로 생산한 상품으로 시장을 정복하며 자생적인 시장을 창출하기에 이른다. 이 시점부터 상업은 산업 생산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며, 시장의 지속적인 확장은 산업 생산의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된다.

 

기하급수적으로 증대하는 대량 생산은 기존 시장의 수용력을 초과하며 끊임없이 그 장벽을 돌파하고 영역을 확장하려 한다. 이때 대량 생산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은 현재의 수요만을 대변하는 상업이 아니라, 가동되는 자본의 규모와 노동 생산력의 발전 정도다.

 

산업 자본가는 상시로 세계 시장과 대면하며, 자신의 생산 비용을 국내 시장 가격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시장 가격과 끊임없이 비교하게 된다. 이전에 이러한 비교 분석이 전적으로 상인의 고유 업무였기에 상업 자본이 산업 자본에 대해 우월적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었으나, 대공업의 발달은 이러한 역학 관계를 근본적으로 역전시킨다. (CW 32: 465-466)

 

근대적 생산 양식에 관한 최초의 이론적 연구인 중상주의는 필연적으로 상업 자본의 운동 내에서 자립화된 유통 과정의 피상적 현상들에 매몰되었으며, 그 결과 현상의 외면만을 파악하는 데 그쳤다. 이러한 한계는 선차적으로 상업 자본이 자본 일반의 역사적 형태 중 최초로 독립성을 확보한 존재였다는 점, 후차적으로는 봉건적 생산의 변혁기와 근대적 생산의 태동기에 상업 자본이 행사한 압도적인 영향력에서 기인한다.

 

근대 경제학이 진정한 과학적 토대를 구축하기 시작한 시점은 이론적 고찰의 중심축이 유통 과정에서 생산 과정으로 이전될 때 비로소 도래한다. 한편, 이자 낳는 자본 역시 상업 자본만큼이나 오래된 자본의 형태임에도, 중상주의가 왜 이를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공격적인 태도를 견지했는가에 대해서는 후술될 논의에서 명확히 밝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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