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 병합과 강제 징집을 둘러싼 동유럽 및 중동 문제, 그리고 이에 따른 선진국의 확전 우려와 경제적 피해는 역사적으로 지속적인 불안을 조성해 왔다. 이러한 불안과 확전 우려는 언론의 과장 보도와 매체 노출로 증폭되는데, 이는 국가의 통제력을 강화하고 국민의 맹목적 추종을 이끌어내기 위한 지배 기구(정부)의 계획된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최근 동유럽과 중동의 분쟁은 제국주의 세력에 직접 맞서는 대결 구도로 전환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란혁명수비대(IRGC)는 이번 미 선거 결과를 두고 “미국의 패배이자 정치적 여파의 결과”라고 일축했는데, 당의 노선에서도 이러한 진단에는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미국이 주도하는 고도화된 자본주의 체제가 과연 단순한 확전 양상에 그칠 것인가는 의문이다. 대통령제든 부르주아 의회 제도든, 자본주의 국가는 피식민지에 대한 영토 소유와 식민지적 병합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수렴된다.
엥겔스 역시 『자본』 후기에서 세실 로즈의 식민지 정책을 언급하며, 제국주의적 확장이 곧 프롤레타리아트의 대량 양산과 직결된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이는 유럽 전역을 휩쓴 산업화의 진행과도 정확히 부합한다. 국가 간 전쟁과 확전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는 경제적 불신을 낳고, 나아가 국가 권력에 대한 투쟁을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미국과 같은 양당제 선거 제도에서는 전쟁 긴급권 발동이 아닌 부분적 파병에 대해서조차 민중 대다수의 동의가 표출되지 않는다는 점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대의제 민주주의가 ‘인민의 동의’로 기능한다는 관념은 착각이다. 양당 제도는 권력의 안전성을 보장하기보다는, 선진국과 후진국 모두에게 경제적 해악을 미칠 뿐이다. 자본과 노동 제도의 근본적 모순을 안고 있는 한, 전쟁의 전비와 부담은 구조적으로 후발국과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된다. 나아가 분단 체제에 종속되어 폐쇄적인 사회배외주의에 매몰되는 현상은 계급적·혁명적 단결을 와해시킨다는 점에서 지배 계급의 논리와 다름없는 모순을 드러낸다.
한편, 중동 분쟁(이란·팔레스타인 문제)은 사우디, 이스라엘, 이집트 등 석유 자본을 독점해 온 기업들과 자원 원조에 의존하는 자본주의 공장 가동에 타격을 입힌다는 점에서 체제 균열의 효과를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정세가 노동 인민의 계급적 각성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전쟁이 초래하는 고물가와 경제적 부담은 오롯이 민중의 몫으로 남게 된다.
한국 사회 역시 과장된 확전 공포와 구질서의 자본주의 정치 제도가 유지되는 한, 그 피해는 항상 소득의 최하층인 노동자와 농민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확전의 과장이 끼친 해악은 단순히 인종적·종교적 탄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배 계급의 막대한 전비 지출과 자본 소유의 모순으로 직결되는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