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호가 바뀐 뒤로도 87년 체제의 양당적 대립은 계속되었고, 이 시기 한국의 공화국은 분단 체제를 더욱 고착화했다. 조선의 붕당 정치와 일제의 악습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 수립된 현행 정부의 국가적 기조는, 사실상 헌정 질서라는 명목하에 분단을 정당화하고 야기한 셈이다. 독일의 경우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동독의 사회주의적 가치가 현재 독일의 경제적 현실과 모순을 빚고 있으나, 과거의 정치가 퇴색할 때 혁명의 성과 또한 그 내용을 달리하며 변화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언급한 “소비에트를 기억하지 않는 자는 심장이 없고, 그것으로 돌아가려 하는 자는 뇌가 없다”라는 발언의 모순은, 소비에트를 어기고 인민적 독재의 영역으로 나아간 최후를 반복할 뿐임을 증명한다. 이러한 구체제적 정치의 기반은 조선의 정치적 유산에서도 동일한 형태로 드러난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구공화국 시대를 지나 혁명의 시기를 목도하고 있음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단순한 흡수 통일이라는 무력화를 내세울 때, ‘이산가족’의 비극은 조선 체제의 유산이 불러온 경제적 비극과도 밀접하다.

 

한국의 의회 정치는 두 조선 국가 모두를 양면적으로만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역설에 착지한다. 이러한 구도하에서 집권 세력은 현상 유지를 반복하며 정부의 반동성을 강화했고, 국민 전반에 짙은 폐쇄성과 취약한 개량적 획일화를 낳았으며, 자유 경쟁의 미덕을 자본주의적 지배 수단으로 이용해 왔다.

 

87년 체제는 사실상 유신의 잔재가 남긴 이념적 대립과 반공주의가 결합하여, 체제의 자유가 ‘자본의 제도’로 수용되는 고질적인 독점 문제를 양산했다. 특히 노동 제도의 한계 역시 구시대적 조선 정치의 그림자 아래 자행된 토지 개발, 그리고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발생했다. 이는 고립된 지역 노동 인민에 대한 체계적 계급화와, 이를 층위적으로 분류했을 때 드러나는 소득 산정의 평균적 모순을 잘 보여준다. 물론 한국에서 군주제는 폐지되었으나, 의회의 기능은 여전히 조선 체제의 구시대적 틀에 갇혀 제한적이다. 그 구습이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유포되었든 아니든, 분단된 두 국가 모두 조선 체제의 고질적인 악습만을 반복하며 역사적 반동성의 최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자명하다.

 

서로를 비난하기에 앞서, 과거의 체제를 청산하지 못한 노동 제도와 그 주도권이 각국의 부르주아적 대표자들에게 돌아가 국가 기구를 안주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이 구조는 충분히 ‘배반적’이다.

 

차기에 부상할 집권 세력에게 더 이상의 권력적 정당성은 없다. ‘구원은 독점에 있다’는 말에 대해 ‘독점은 제국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기’라던 레닌의 지적대로, 제국주의적 독점과 자본에 기댄 구시대적 정치의 여파가 인민을 더욱 옥죄게 왔음을 다시 한번 증명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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