維新 체제의 복고적 모순
최근 언론과 대중 매체에서 ‘박정희’와 유신 체제가 끊임없이 재호출되는 현상은 단순한 상업적 언론의 부추김이나 과거에 대한 향수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위기 국면마다 자본가 계급과 국가 권력이 기득권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가동하는 ‘정치적·이념적 복고’이자 반동적 계급 동원의 일환이다. 해방 이후 이승만 정부에서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진 헌정사는 제국 자본과 국내 독점 자본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한 계급적 재편의 역사였다. 군사 쿠데타 세력이 내세운 '민주주의'나 민족 부흥'이라는 수사는 본질적으로 민중의 계급 의식을 마비시키기 위한 이념적 착시일 뿐이며, 그 실체는 자본주의적 노동 착취 체제를 국가 폭력으로 강제한 반동적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수립이었다. 10·26 사태 당시 김재규의 증언 등에서 드러난 유신 체제의 모순은 독재자의 개인적 비극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저항과 자본 축적 한계가 결합하며 폭발한 체제 자체의 내적 균열을 보여주는 계급적 사건이었다.
상암동 박정희 대통령 기념 도서관이나 대구 박정희 동상 건립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 속에서도 이러한 독재 우상화 시설들이 철거되지 않고 유지되는 배경에는, 산업화 이후 완성된 자본과 언론, 그리고 국가 기구의 유기적 결탁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고(故) 김수행 교수가 저서 『박정희 체제의 성립과 전개 및 몰락』에서 분석했듯, ‘한국의 후발 자본주의는 독점 자본 (재벌)에게 과도한 잉여 가치 수탈권을 부여’하고 ‘노동자의 기본권을 법적·물리적으로 압살하는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었다. 일제 강점기 식민지 군사 기구의 일원이었던 ‘다카키 마사오’가 해방 후 이름과 탈을 바꾸어 신식민지 국가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한 역사적 궤적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자체가 지녔던 부르주아적 한계와 식민지적 연장선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유신 체제는 결국 자본의 원시적 축적과 가혹한 잉여 가치 착취를 국가 기구의 총구로 보증한 부르주아 독재의 정점이었다.
최근 박정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남한 사회를 운영하는 게임이나 문화 매체가 등장하는 현상은 자본주의 국가 기구가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자본 매체는 역사적 독재와 국가 폭력을 하나의 '효율적 경영'이나 '놀이'로 희화화·상품화하여 자본주의적 통치 체제를 ‘자연화’한다. 박정희 사후 전두환으로 이어진 계엄과 비상 사태의 연쇄는 민주주의의 일시적 정지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조직적 저항을 억누르고 자본의 안정적 축적 조건을 재조성하기 위해 부르주아지가 국가의 폭력 장치를 비상 동원한 결정적 순간들이었다.
한국 사회가 여전히 특정 인물에 대한 성역화와 정파적 이해관계에 갇혀 ‘반공주의’라는 이념적 무기로 노동 운동을 ‘불순 세력’으로 매도하고 국가 폭력을 정당화해 온 교육관을 주입한 것 역시, 자본가 계급의 지배를 영속화하기 위한 체제 재정비 수단이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쿠데타 전범들의 유산이 한국 민주주의 역사와 왜곡되게 병존하는 현상은 단순한 역사적 비극이 아니라, 일제 군국주의를 거쳐 한국 부르주아지가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위해 독재와 파시즘적 잔재를 결코 포기할 수 없음을 증명하는 체제적 모순이다. 따라서 이 날조된 역사관에 대해서는 단순한 도덕적 비판이 아닌, 그 뒤에 숨은 자본주의적 수탈 구조와 극우적 책동의 계급적 본질을 폭로하고 해체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