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정치의 후퇴와 조직적 투쟁의 부재
이재명 정부 지지율이 최근 36.8~38% 수준으로 하락하고 부정 평가가 56%로 과반을 넘어섰다. 이는 정부 지지율의 하락이 개혁주의 정치 성향을 띠던 민주 진영 지지층의 지속적인 이탈을 나타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향신문》이 ETF 정책의 실패와 이에 대한 통령 정부의 전적인 책임을 지적한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아울러 이란 전쟁 당시 호르무즈 파병설과 관련해 정부는 공식적으로 파병을 일축했으나, 한국 정부의 이름으로 막대한 군 장비 수출이 미국의 지원 목록에 등록되었다. 주식 시장의 우려에서 시작된 개혁주의 정치인의 이러한 행보는 점차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재명 정부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며 노사 협조 방안을 수립했으나, 그 결과는 ‘선택 근로제 확대’, ‘기간제 연장 보장’, ‘노란봉투법 개정안’ 등 노동 정책의 후퇴로 나타났다. 노동계가 이를 임시방편으로 지지하는 와중에도, 대중교통 공공 임금 협상 투쟁이 격화되고 지도부의 ‘숙의’나 ‘합의’가 ‘사적 대화’ 수준에 비밀리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개혁주의 성과의 명확한 한계를 보여준다. 이는 정부 초기에 공무원 노동자들을 강하게 압박했던 조치의 결과이기도 하다.
국민의힘이 이재명 정부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배경 역시 여기에 있다. 국민의힘이 정부의 전쟁 불관여·불개입 기조 속에서 국회 진입에 실패한 후 차기 정권 잡기와 당의 부흥을 모색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을지라도, 민주당의 영향력 아래 부르주아지가 가담한 개혁주의 성과가 어떠한 양상을 띠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민주주의적 개혁의 한계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재명 정부는 민주주의적 노선의 중심을 유지하려 시도하지만, 부르주아 질서에 통합된 정부 기조가 여전히 ‘국민성’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이러한 국민성은 1948년 헌정 수립 이후 부르주아 질서하에 통합되어 온 대한민국 국민성의 역사적 한계와 일치한다. 최근 촛불혁명이나 빛의혁명으로 포장된 민주 시민 사회가 보여준 계몽 의식은, 모순적으로 개혁주의가 지닌 한계로 인해 기존 정치 질서로 복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최근 용혜인 의원의 15일 교체 파동에서 드러난 인사권 행사나, 정부의 수령금에 의존하며 은퇴 시기만을 모색하는 모습 등은 이 정부의 개혁주의가 무용지물이며 혁명성조차 상실했음을 증명한다. 이것이 민주 정부가 지향하는 방향이라면, 이재명 정권의 노선은 옥중에서 재판받는 정치범들의 한계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
이번 지방 선거 과정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가 불거졌을 때조차 정부는 사태 수습을 선관위에 미루었으며 재선거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나 발언을 내놓지 않았다. 청년층 과반이 무당층으로 돌아서며 ‘정치 고아’ 현상이 심화되는 상황은 공산당에 대한 체계적인 시각과 정치적 노력이 부재한 가운데 한국 정치의 방향성이 실종되었음을 반증한다. 이재명 정부 특유의 개혁주의적 기조는 청년층에게 대책 없는 판단 유보와 ‘김어준 현상’에 기반한 지지를 유도했으나, 결과적으로 최소한의 ‘합의’조차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들의 좌파적 정책 역시 트럼프 관세 협상 등 미국의 원조에 의존한 결과 경제 성장률 하락을 초래했고, 투기적 주식 시장의 불안전성을 증명하는 사례만을 남겼다. 이 모든 책임은 이재명 정부에 있다. 한국 부르주아지는 이러한 현실을 ‘중산층 서민 정책’이라는 명목으로 포장하며 동일한 기만을 반복하고 있다. 자본 질서에 편입된 기성 정치인들의 본모습은 이처럼 기만적이며, 그 결과가 초래할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공산당 선언』에서 우려했던, 조직적 투쟁이 부재한 자본주의 사회의 실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