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문득, 혹은 자주 글을 남깁니다. 마치 생전에 제대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이처럼 무심결에, 어쩌면 어렴풋이 어울리는 만남이겠지요. 인생사가 유독 불우한 이들에게는 밤이 더 자주 깊어지나 봅니다

 

저는 이제 사업을 정리하고 다시 서울에서 생계 노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업을 정리하면서 사진과 연락처도 정리했습니다. 답장 없는 편지를 쓰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생소한 이름처럼 부득이하게 본명을 남깁니다. 제가 기억하는 순간은 아주 짧은 한때였고, 지금쯤 당신은 대학을 졸업해 어엿한 성인으로 살아가고 있겠지요. 각자가 1인분을 해내기 위해, 치열하게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현실 속에서 당신과의 인연 역시 좋은 기억으로 남음과 동시에 조금씩 멀어지고 있습니다.

 

제 과거를 당신과 함께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당신이라는 이름은 늘 마음 한 켠에 남아있지만, 저라는 존재는 가장 가까이 있던 지영 씨가 더 잘 알고 계시겠지요. 유쾌한 사람이면 좋았을 텐데, 제 열정이 너무 과해 오히려 지영 씨에게 부담만 준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제 아버지를 기억해 주시는 당신이지만, 생각해 보면 조금 더 조용한 곳에서 따로 만났어야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그때의 저는 너무 어렸고, 이미 지나간 일들을 돌아보거나 숨을 고를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젠 동료들과도 조금씩 가까워지는 중입니다. 서슬 퍼런 살기도 꺾이는 순간이 오더군요. 예전처럼 몸이 제빠르게 움직이지는 않지만, 예비군도 끝나고 지긋지긋한 빚도 탕감하여 조금씩 갚아나가고 있습니다. 주변 지인들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와중에도 정신을 다잡으며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중입니다

 

지영 씨도 새로운 인연을 이어가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 소식을 조금 보텁니다. 여름의 온기 탓인지 피부가 진물러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최근 한강 공원에 갈 일이 있었는데, 손을 잡고 재미나게 담소를 나누는 연인들이 보이더군요. 저 사람들은 뭐가 그리 재미있어서 저렇게 희희덕거릴까 싶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자가용이 있던 시절, 누군가를 바래다주던 길에서 소소한 즐거움이 떠오릅니다. 조금 더 잘 알려지지 않는 장소를 찾아가거나, 여유가 조금만 더 있었다면 지영 씨 얼굴이 발개지도록 술을 마시는 모습도 볼 수 있었겠지요.

 

이제는 제법 상관없는 일입니다. 계절의 봄은 매번 찾아오지만, 마음에도 봄이 올까 싶을 때가 많습니다. 외출할 일도 별로 없는 저는 그저 일에 묻혀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요. 겨울이 오더라도 환절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전공과 관련해, 가방 속에 손목이 편한 마우스를 볼 때면 아직도 넌지시 웃음이 나오곤 합니다.

 


2026. 09. 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