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관계와 제도의 진실

 

주위에서 이혼이나 파혼을 겪으며 불행해진 이들을 자주 목격한다. 결혼 생활이란 사랑으로 이어지는 소설이나 예술 작품처럼 언제나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반대로, 가정의 화합을 강조하거나, 개인주의를 장려하는 담론 뒤에는 여전히 일종의 검열과 억압이 존재한다. 타인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때로 자신에게 불행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특히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이조차 어른이 되어 사랑을 나눠주어야 할 때, 정작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가라는 의구심에 사로잡히곤 한다. 이는 비단 특정 성별만의 문제는 아니다.

 

파혼을 자유로 여겨 이혼을 방조하는 태도가 한 가정의 처참한 몰락을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가부장제의 무게 때문일까, 아니면 결혼이라는 제도의 구조적 결함 때문일까. 반려 동물과 반려자의 차이가 단지 반응의 여부에 불과하다고 여길 만큼 관계가 메마른 사회에서, 자녀의 본연한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이 자본이라는 제도적 질서에 있음을 우리는 직시하게 된다.

 

한 사람을 진정으로 알아가는 과정은 이러한 '불편한 관계' 속에서 시작된다. 이 흔들리는 부실한 관계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일이 가장 어렵다. '좋은 관계'만을 유지하려는 이들의 가장 큰 함정은 여기에 있다. 좋은 관계에 대한 강박에 갇혀 자신의 희생을 정당화하고, 그것을 높은 도덕심으로 착각하고 만다.

 

이에 대해 그럼에도 선()은 좋은 것이라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이라 부르는 것들의 이면을 차분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터무니없거나 불우한 가정사가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관계의 선악은 가정의 자유가 정치·법과 같은 상부 구조에 가로막힐 때 결정되며, 우리는 이 억압된 제도적 질서를 수용하며 스스로 정상적이라 믿는다. 부실한 가정 교육조차 받지 못한 이들이 자본 체제 속에서 다시 가정을 꾸려야 하는 모순, 이 모순이 바로 현대 결혼 제도의 진실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비혼주의자가 역설적으로 가장 안정된 가정을 꿈꾸는 모순을 목격하게 된다.

 

심리적 착각이 아닌 사회 구조를 이해할 때, 인간은 비로소 세상을 바라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된다.

 

당신의 행복은 우리의 기쁨이지만, 동시에 당신의 불행은 우리의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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