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자본주의 체제는 소비보다 불필요한 상품의 세계가 범람한다. 동지들이 성년으로 자라나는 동안, 이 체제 내의 억압은 탄생부터 교육에 이르기까지 강제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38선을 목전에 두고도 상봉조차 가로막는 자본주의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역사의 교훈이 국가의 유산을 지탱하는 후손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세대는 오히려 사회주의 투쟁 과정에서 삭제되어 온 사회적 인물들의 노고야말로 진정한 민족 해방이자, 부르주아 국가 질서에 대한 전복적 노력성이었음을 직시하게 되었다. 저들은 군대를 주무르는 막강한 자본과 생사여탈을 쥐락펴락하는 권력의 위력으로, 사회 최하층에 있는 우리 프롤레타리아트를 지금 이 순간에도 짓눌러 대고 있다. 전 지구적으로 자본주의가 고착화된 이후, 우리 사회 역시 파국의 절정을 맞이하고 있다. 오랜 기간 부르주아지의 승리를 자부해 온 국가는 이제 시대 교체조차 도모하기 힘들 만큼 노쇠해졌다.

 

흔히 어떤 시대든 그 뒤에는 희망의 불꽃이 오리라 기대하곤 한다. 그러나 그 희망조차 지배 질서에 의해 언제든 꺼질 수 있는 지배 도구로 전락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흔히 인간의 정신적 가치를 쉽게 숭고하다말하지만, 그 사회적 비용을 냉정히 따져보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가 불균등하게 전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본인이 자본 소비에 몰두해 있는 상태라면 이러한 구조를 간파하기란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작동시키고 있는지 구조적 관점에서 먼저 살피는 일이다. 국가의 정책이 민중의 삶을 포장하여 지배 도구로 악용하는지, 혹은 민중을 사회적 폐기물로 전락시키고 있는지를 냉철히 분석해야 한다.

 

이 모든 투쟁의 기초는 결국 프롤레타리아트의 교육관에서 시작된다. 마르크스주의를 올바르게 학습하고, 이를 조직적 실천과 투쟁 과정에 적용하는 일, 그리고 기존 국가 질서가 언제든 부르주아지의 도구로 쓰일 수 있음을 자각하는 일이야말로 핵심이다. 이러한 자각이 있을 때 비로소 언론 매체의 선동이나 익명이 유포하는 불합리한 가설, 터무니없는 주장에 휘둘리지 않는 비판적 의식과 계급적 자각을 갖추게 된다.

 

이 파국의 절정을 돌파하는 길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사회적 투쟁이 비로소 역사의 주체로 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틀 자체를 포기할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 삶과 사회의 주인은 노동자 민중 자신이지, 체제의 산물에 불과한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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