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체제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어떻게 생산되는가


맑스는 『자본』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프롤레타리아트가 끊임없이 생산됨'을 지적했으며, 이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설명하는 적절한 사례가 된다. 특히 식민지를 거친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더욱 취약한 구조적 모순에 직면한다.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그 실체는 소수 대자본가 사회의 고질적인 ‘자본의 절약과 낭비’, 그리고 방치되어 내몰린 룸펜 프롤레타리아트의 양산과 무관하지 않다. 자본주의 체제는 국가가 아무리 견고한 법적 형식을 내재화하더라도, 무한한 자본 경쟁에서의 탈락, 사회 진입의 원자화 (소외 현상), 농촌 인구 감소에 따른 노동 생산력 저하로 인해 필연적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엥겔스 역시 이러한 상관관계가 자본주의 및 부르주아 사회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밝혀낸 바 있다. 빈약한 생산 수단을 점유한 소자본가는 필연적으로 '사업 운명의 실패'를 겪으며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할 운명에 처한다. 이는 ‘정권 교체와 같은 정치적 과정’과는 별도의 노동자가 수행해야 할 과제이며, 자본주의 체제가 이러한 구조적 실상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점은 그 자체가 지닌 내재적 모순을 증명한다.

 

한국의 경제학계는 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채, 경제 불황기에 대한 그릇된 진단과 정부 정책 중심의 시각에 매몰되어 발전했다. 바로 이것이 부르주아 경제학이 자본주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속적인 생산 현상을 해명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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