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時事)에서는 연일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말하면서도, 정작 번듯한 직장 하나 구하는 건 참으로 어렵다. 중소기업의 인력 부족이나 대기업의 막강한 대우를 떠들지만, 그럴듯한 직장을 구한다는 건 오래전부터 하늘의 별 따기였다. 결국 'T.O'라 불리는, 자리가 남는 극소수의 공간에서 어떻게든 자리를 구해야만 하며, 정작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려는 사람들도 그 남는 자리마저 얻지 못하면 곧바로 타인에게 빌붙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기 때문이다. 노동자라는 이름을 가졌으나 정당한 임금을 받지도 못한 채, 그저 봉사나 다름없는 생활을 영위하다가는 생활비 고갈과 함께 목숨마저 위태로운 극단적인 상황들을 여러 번 겪어야 했다. 이번에도 또다시 그와 똑같은 생활이 반복된다면, 그건 정말 지긋지긋할 뿐이다.


과거 가게에서 일했을 때는 그래도 직접 장사를 했고, 일정한 지출과 함께 수입도 존재했으나, 수입이 점차 줄어들면서부터는 결국 가게 일 모두를 접을 수밖에는 없었다. 비록 영세할지라도 조금이나마 장사를 할 때는, 이웃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한다는 나름의 주체적인 보람과 가치를 품고 일했지만, 이제 그런 가게는 앞으로 내 삶에 다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앞으로 그런 온전한 공간에서 내가 다시 일할 수나 있을까 싶다. 사회는 늘 일자리 부족을 말하지만, 정작 일을 구하려는 당사자들에게는 얼마 남지 않은 자리마저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지옥이 펼쳐진다. 정말로 일을 통해 생활을 영위하고 주체적으로 진로를 고민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오랫동안 뼈를 묻고 일할 수 있는 터전이나 스스로 준비를 세워 주어진 일을 찾아볼 기회가 주어져야 마당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 어떤 조력도 없이, 개인이 직접 찾아보거나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방치된 상태나 다름없다.


노동자, 참으로 좋은 말이다. 그러나 서울로 이주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곧바로 다시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으니, 과연 내가 어디에 취직할 수 있을지, 그리고 당장 부족한 생활비로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의도의 번화한 회사원들도, 방송국의 화려한 회사원들도, 은행가의 엘리트 회사원들도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참으로 내가 온전히 소속되어야 할 노동의 공간은 과연 어디란 말인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오후에 규칙적으로 퇴근하는 평범한 삶의 궤도 속에서, 내가 오랫동안 이탈하지 않고 잘 일할 수나 있을지 의문이 앞선다.


체제의 모순이 덜했던 옛날이었으면, 이러한 한풀이를 직장에서 돌아와 다정한 애인에게나마 털어놓으며 위로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에서 그것은 말 그대로 아득한 로망일 뿐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양산한 너무나 많은 모순들을 몸소 직접 겪어내야 하는 한계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나라도 차라리 극단적인 선택을 택하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정작 나는 함부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는 비장한 자신감조차 없다. 이미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사람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결국 인간이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모순 그 자체라면, 나 역시 그저 어딘가에서 나에게 주어진 일자리를 필사적으로 찾을 뿐이다. 그러나 과연 그 정당한 자리를 찾을 수나 있을까. 그렇기에 지금으로서는 그저 '잘 모르겠다'라고 나지막이 독백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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