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군국주의의 방법과 효과.
당면한 임무.
이제 우리는 당면한 방법과 효과에 대한 특수한 검토를 마치고 프로이센 독일의 모범적인 방식을 위해 들러붙고자 한다. 관료적인 수학자 자본주의적 군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최악의 형태를. 국가를 넘어선 국가를.
현재의 군국주의가 사실일지라도 자본주의적 사회의 징후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견고해진다.
군국주의를 끝내기 위해선 유용한 군대를 유연하고 효과적인 부대로 바꿔야한다. 반대로 그것은 아주 높은 가능성을 군사적 기술과는 반대로 기계가 아닌 사람으로 구성된 살아있는 메카니즘으로 제시하기 때문에 올바른 “정신”으로 채워져야한다.
첫 번째 측면은 재정적으로 해결된다. 이후에 논의하겠지만 우리는 이제 두 번째 측면에 몰두할 것이다.
그것의 내용은 세 가지이다. 군국주의는 군사적 정신에서 생산하려는 것을 보고, 우선적으로 활발한 군대로부터 예약하고 예비군들이 중요해진다. 동원되고 지원되는 마침내, 주민계급들은 환경을 제공한다. 주민계급들은 양육하고 군국주의와 반군국주의에 부합되기 위해 고용된다.
군사 교육학에서 병사들의 훈련.
진실한 군인정신은 애국정신이라고도 하며 프로이센-독일은 “왕에 대한 충성심”의 한마디로 세계적인 명령을 따라 모든 적들의 국가를 침략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 정신은 멍청하고 저능한 대중적인 지도를 필요하도록 한다. 이익관계에서 “존재적 명령”으로 직접적으로 교류한다. 폰 아이넴의 국가의 장관들의 가입은 충실한 왕의 군대를 제공한다. 군대는 나쁜 말로 누구의 생각을 묻지 않으며 덜 올바른지도 묻지 않는다. 독일 군국주의의 대표를 완전하게 아래로부터 말한다. 하지만 군국주의는 악마와 심해에 있다. 무기의 기술은 전략적이고 텍티컬하며 현재의 위대한 군인의 지식인1)과 그러므로 군인은 더욱 지능적이고 캐테리스 파리버스2) 또한 그러하다. 이러한 이유로 홀로 군국주의는 거의 멍청한 대중들에겐 훌륭하진 않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멍청한 대중을 사용하지 않으며 또한, 경제적 기능은 대중들에게 공연하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프롤레타리아로부터 온다. 이 명령은 착취할 수 있으며 더욱 큰 가능성의 이익을 필연적인 삶의 위험을 커지게 한다. 자본주의는 강제한다. 자본주의는 비극적인 운명을 시스템적으로 어마어마한 노예들을 매우 지능적으로, 자본주의는 가득차게한다는 것을 안다. 고유한 죽음과 해체를 야기하면서도 모든 시도들은 능숙한 책략과 교활한 조직으로부터 교회와 학교로부터 자본주의의 함선을 조종하기 위해 지능적인 스킬라 괴물의 적은 착취를 만든다. 다른 매우 위험하거나 프롤레타리아 자신으로부터 짐승이 부담하기에 적합하지 않고 교육의 카라디브스로부터 필수적인 자본주의의 파괴를 계급의식으로 증가한다. 모든 부분들과 혁명과 학대받는 모든 시도들은 실패할 것만 같다.
동엘비아 지역의 농부들은 크로체의 기록에 따르면 대부분 쓸모없는 노동자들이었지만 최고의 융커들이긴 했었다. 명령에 따르는 대규모의 군국주의에 기여했다. 그럼에도 이 유형들은 군국주의에서도 낮은 지능을 가졌다.
“최고의 병사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다.”라고 한 사람은 자주 말했다. 세계적인 병영 아래에
군인정신을 주입하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준다.3) 단순히 노예로서 맹목적인 복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실용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군국주의는 “총 쏘는 기계”4)를 생산하기 위해 간접적으로 남성의 의지를 강제한다. 도덕적이거나 심리적인 영향을 강제하거나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의지를 생산하며, 속이거나, 강제한다. “평화에 땀을 흘릴수록 전시에 피를 덜 흘린다.”는 격언은 여기에 적용해볼 수 있다. 외부의 적에 대한 군국주의가 요구하는 기능의 진정한 “정신”은 완고한 쇼비니즘과 편협하거나 이기적이며, 둘째로 국내의 적과 관련해서 모든 진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심지어 증오한다. 위협적인 사업이나 시도를 지배계급 하에서 권력을 장악하고자 한다. 군국주의는 계급적 관계인 쇼비니즘에 매우 반대하는 사람들과 이러계급적 관계에서 모든 것이 진보하는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영향에서 군인들의 생각과 감정을 이끄는 통로이다, 기존 사회 질서의 몰락이 초래될 때까지 유일한 합리적인 목표로 나타나야 하며 그리고 비록 규칙적이긴 하지만, 징병의 연령대에 젊은 군인들은 프롤레타리아라는 사실을 무시할 순 없다. 이들은 독립적이거나 정치적 통찰력에 있어 동시대의 부르주아보다 뛰어나고 계급 의식이 확고하진 않다.
체제는 군인들에게 도덕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파렴치하거나 교활하다. 사회적인 계급에 따라 분류하는 대신에 지배계급에 의해 연령을 분류하고, 체제는 노년의 “계급”에 있는 사고와 감정을 20~22세의 프롤레타리아로 구성해서 특수한 계급으로 형성하고자 한다.
우선 제복을 입은 프롤레타리아들은 무자비하게도 그들의 가족들과 동지들에게 단절되어 있다. 그들의 고향을 잊게하고 독일에선 효율적으로 병영5)에 가두는 것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들은 수도원 생활에 대응하는 예수회 생활을 방불케한다.
다음은 이 격리를 지속하고자 하는 시도를 가능하게 한다. 군대와 기술적 관점에서 장기복무의 필요성이 없을 경우 격리를 연장하려는 경향에는 재정적인 난관을 1892년에 2년 동안의 독일의 상황6)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장기복무에 할당된 시간을 활용하는 것은 문제며, 훈련받은 사람들의 정신적인 관점에도 영향을 미친다.
교회의 사례에서도, 모든 사람들의 약점과 감각은 군사교육에 수용된다. 열망과 허영심을 자극하고 군복은 최고의 제복을 수여하고, 병사들의 명예는 특히 위엄있게 미화된다. 군인계급들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존경과 찬사를 받으며 칭송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많은 특권을 부여받는다.7) 그리고 군인계급들이 끌어들일 하층민들의 거친 취향을 따라 제복을 재단하고 장식하면서 과시한다. 순수한 군사적 목적과는 다르게 군인계급들은 카니발 의상처럼 작은 장식들로도 제복을 다듬는다. 모든 종류의 반짝이는 구별된 장식들과 좋은 촬영을 위한 줄무늬들은 매력적으로 방탕하게 제복을 꾸미려는 과시욕과 뛰어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에 대한 욕망처럼 저급한 본능이다. 그리고 군인들의 고통에는 반짝이는 장식들과 화려한 군악대들과 함께 진정된다. 아이들, 얼간이, 하녀, 프롤레타리아의 잔재들 사이에서 “웅장한 군대”를 자랑스러워 한다. 한때 행진을 본 적이 있는 수상한 대중들과 베를린의 왕궁 친위병들의 행진을 본 적이 있다면 꽤 이해할 것이다. 특정 민간인들에게서 느껴지는 제복에 대한 호감은 군대 내에서 미개한 요소들에 대한 강한 유혹을 끈다.
이러한 모든 수단들은 현저한 지적단계와 사회적 위치에서 더욱 효과적이다.
단순히 판단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최상의 제복을 입은 미국의 흑인8)들과 동프러시아 노예들이 싸구려 군장신구들로 사람을 유혹하기란 쉽다. 그러나 그들의 군사적 위상과 민간인적 삶의 단계는 상이하다. 그러므로 이 수단들은 유능한 산업적 프롤레타리아들에게 군국주의에서 계획되고 지정한 비극적 모순에도 좋든 나쁘든 필수적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적어도 당분간은 군국주의에 유연한 소재를 제공한다. 그럼에도 군국주의에선 정신적으로 동의하면서 보존할 수 있는 수단을 동원한다. 이를테면 카이저의 생일을 축하하는 연대축제가 있다.
중독된 상태로 병사들에게 모든 걸 주입할 때, 영혼은 죽고, 타오르는 공상들과 감정은 체계적으로 권력의 수단으로 이용된다. 병사들은 군국주의에 적합하게 자신을 맞추며 왜곡되고 미숙한 세상들로 채워나가기 시작한다. 본성적으로 군국주의 교육은 모든 유능한 산업 프롤레타리아를 양성하는데 적합하지 못한 능력을 갖거나,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군국주의 교육을 가르친다. 병사들에게 군국주의와 적합하지 못한 교육을 가르치는 건 궁수가 쏜 화살에 튕겨진 화살과 닮아있다. 이 사례는 막스 로네즈와 우편들에서 이익을 위한 경쟁에 제빠른 리버트 장군에게 전달되었다. 반사회적이고 반민주적인 교육에 의존하고 가혹한 훈련, 병영에서의 생활, 장교9)와 부사관10)들의 제복을 신성하게 바꾸며, 병영생활의 많은 부서에선 모든 사고를 근무 중이거나 비번일 때조차도 짐쇠에 물려서 병사를 규율에 복종하게 한다. 탄력적으로 복종하는 모든 병사의 의지는 가장 부러지기 쉬운 척추를 구부리고, 당기고, 뒤틀려서11), 탄력적이고 필수적인 생산을 제공한다.
1892년 1월에 독일의회는 비록 편견 없이 거부되긴 했지만 열성적으로 “종교”정신을 부합하고자 요청했다.
정신적 훈련은 군사적 억압과 노예제도를 완성하기 위해 예전된 군사적 교육으로 특별한 대상을 분명하게 조직한다.
명령과 종교적 비방은 당근과 채찍이 따른다. 채찍은 오직 베일에 감춰진채로 해를 가하며
“항복문서”의 체계12)와 고급화된 전망13)으로 성공적으로 고용된 군대의 영구적인 장식용으로 채워진 대형을 위한 미끼로서 당근을 겸한다. “장교”14)나 부사관에 의뢰하지 않거나, 민간인의 삶에 대비하는 증서15)와 매우 교활하고 위험한 배치로 군국주의는 공적인 삶도 오염시키며, 후에 보겠지만 가장 선두에서 규율의 체계16)에서 군국주의에 따른 위협을 전쟁범죄와 최소한의 반대야당을 군사적 정신으로 무장하게 하고 군사적 정의는 준-중세적인 절차에 따라 잔혹하고 상스럽게 처벌하기 위해 최소한의 불복종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과도할 정도로 헌신적인 상급자들은 종속된 부하들에게 최소한 벌을 주고 자기보호의 권리마저도 훔쳐가도록 부하들에게 반복적으로 학습하게 한다. 군국주의에 투쟁할 수 없도록 유익하지도 선동적이지도 못하게, 군사적 논문들과 군사적 범죄 사례를 정독하지 못하게 하고선
여기에 혹사된 군인들의 사례를 후에 기회가 된다면 언급하도록 하겠다. 학대는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지만 군국주의에선 강압적인 징계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병사들을 야생짐승들로 길들이고자 하며 집합하고, 아첨하고, 억압하고, 투옥하고, 손질하고,
때려서 감각을 죽여버린다. 밀알이 섞여서 군대를 강력한 조직으로 공격할 수 있게 하고
벽과 벽으로 방벽을 쌓아 혁명의 유입을 가로막는다.17)
“1년 자원봉사자들”. 예비역 장교들에게 계획된 부르주아의 자식인 “1년 자원봉사자들”은 반군사적이고혁명적 경향에 의심을 부른다. 그러므로 장교들은 막사에서도 떨어져서 그들의 고향에서 떨어져 병영에 갇히거나, 교육을 받고 교회에 나가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심지어 가혹한 훈련에서도 예외이며 규율의 법적 범위에서도 자유롭고 군사형법에서도 가볍게 예외로 풀어주는 건 당연한다. 예비역장교들이 병사들을 학대하고 “문화”적인 모든 것에 강력하게 증오를 품을 수 있음에도 예비역장교를 훈련하는데 사용되는 기구나 설비들은 강력한 증거를 제공한다. 군사적 규율에서 조직 속의 개인들은 독립성을 상실한다. 군대에서 각 개인들은, 노예선박선의 범죄자와 같이 모든 독립적인 행위를 한심하게 제한하도록 쇠사슬로 묶어낸다. 수천년에 걸친 압도적인 권력은 독립적인 행위를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힘을 방해한다. 모든 강력한 조직의 구성원들은 강력한 원칙들과 명령에 노출된 상태로 특별한 종류의 최면술로 지배한다. 군중들을 최면에 사로잡힌 것처럼 속이고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계몽되고 단호한 군국주의 반대자들과 상대들을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포박해버린다.
병사들에게 갈등과 난관을 교육하는 영역에서 군국주의는 두 가지 사실을 보인다.
교육과 장비가 적용된 군사훈련은 더욱 건방지고 증가하는 단계에서 병사들의 독립을 제어한다. 병사들은 자본의 감시자로 독립조차 요구할 수가 없다. 어떤 요구들도 할 수 없다는 사실로 인해 자살로 죽음을 선택할 자유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단순히 전쟁은 병사와 외부의 적들과 싸울 수 있는 노예들과 기계를 필요로한다. 장비와 무장도 제외할 수 없다. 밝은 제복과 반짝이는 부대마크, 전투모와 표식깃발, 행진훈련, 기마병의 공격, 자국의 적들과 싸우는 계급적인 정신에 필요한 찌꺼기들이 필요하며 외부의 적과의 전쟁에선 치명적이거나 사용할 수 없게 된다.18) 모든 군국주의를 옹호하는 순진한 비평가19)들은 군사훈련의 기준에서 숨막히는 비극적인 전투를 무시하고 많은 측면에서 과장되게 묘사된다.
군국주의의 내부에 존재하는 자기모순은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향이 있으며 국내외의 정치적관계와 어느 쪽이 우위를 차지하는데에 따라서도 이익관계는 두 가지가 상반된다. 이 사실에서 정신을 속이는 세균들을 전파하며 군국주의는 스스로를 파괴해나간다.
무장된 혁명은 자국의 적들과 투쟁할 때 단순히 군사기술적인 성격의 끔찍한 측면을 가정하여 장식된 노예들과 기계들이 혁명을 억압할 수 없게 한다. 그러면서 소수에 의한 강압적인 지배의 마지막 기간에는 자본가들의 과두정치는 타격을 입을 것이다.
왜곡되고 혼란스러운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에서 일반적으로 군사정신의 수단을 아는 건 매우 중요하다. 군사정신에서 일어나는 순수한 군국주의의 오염을 제외하고 모든 공공생활에서 일어나는 전반적인 모든 작용을 동시에 오염시키며 자본주의에 순종하도록 한다. 군국주의는 손쉽게 경제, 사회와 정치에서 프롤레타리아를 노예상태로 생산하고 착취한다. 또한 군국주의는 해방을 위한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을 늦추는데 상당하게 일조한다. 우리는 이를 반드시 돌려낼 것이다.
준 공식적이고 준 군사적인 조직과 평범한 사람들의 집단
군국주의는 방대한 규모로 현역군을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를테면 평범한 사람들을 군사적 관활권(사법)으로 광범위하게 확장하고 예비역 장교와 지휘관들에게도 적용되는20) 군사법정의 지배체제의 수단들은 무제한적인 권한으로 평범한 사람들에게 침범하려한다. 여기서 특징은 통제위원회에 출두하도록 소집된 사람들을 군사적 관할권에 복종하게한다. 군당국은 군 통제위원회가 앉아서 공개적으로 종일 법을 위반하면서도 관할권을 주장한다. 이에 대한 근거들은 조금도 없으며 통제위원회는 군복을 입은 젊은이들의 국방모임과 준-공식적이고, 준-관료적인 경영을 하는 군대 모임들이 속하며 우둔하거나 포식적인 잔치를 벌인다. 이 군국주의 활동 영역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군대의 계급정신을 민간인들의 생활에도 도입하고 이를 영구화하려는 예비군 장교들의 활동이다. 더 나은 민간인과 관련해선 더 큰 해악을 끼친다. 국가 및 공공 행정부의 공무원들뿐만 아니라 처벌하고 교육적인 체제21)의 공무원들도 거의 예외 없이 군대 규율, 군인 정신, 전체적으로 군국주의적 생활적 개념에 복종한다. 모든 어색한 반대운동들을 꼭 가로막는 건 아니다. 민간관료(행정)은 복종하고 부관과 하급관리들에게 동일한 “병역입영자”22)를 연계하여 확보한다. 그러므로 계급정의의 계급교육의 나무들은 군국주의의 하늘로 높이 자라는 반면23) 민주적고 자치적인 나무들은 철저히 가지치기하도록 규정한다. 우리는 현역 장교와 예비역 장교들이 문서작성에 관여하는 일은 명시적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다. 매우 교훈적인 가드케 사건과 더불어서 군국주의는 정신을 정복하고 손에 닿는 모든 걸 중앙적인 부서를 통제하기 위해 분투한다는 건 가장 강력한 증거이며 합법적이거나 불법적인 수단으로 영향력의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장하려는 경향과 만족할 줄 모르는 과격한 성향을 확장해나가며 법적이거나 불법적인 수단들을 동원하여 권력을 열망한다.
민간인들에게 미치는 군사적인 다른 영향.
군국주의자들의 확장에 대한 열망에서 중요한 결실에는 심지어 예비군 장교들이 저지른 활동조차도 "병역입영제"라는 비참한 체제다. 순수한 국가적 목적과는 별개로 “병역입영제” 체제는
충실하고 열성적인 대리인들과 국가 및 지방행정부의 분파인 군국주의 정신의 옹호자들을 모든 국가에 전파하고자 한다. 동시에 관료기구의 신뢰와 준비24)를 기꺼이 자본주의에 “똑바로” 고정하도록 “국가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사고”를 다수의 국민들에겐 특별한 “교육적 필요”로 전달한다. “민간인 생활의 지급증명서”의 “교육적 목적”은 부사관들의 보험료에 대한 논의에선 훌륭하게도 만장일치와 대담함으로 인정되었다. 1891년 2월 독일 제국의회에선 카프리비 제국총리와 지배계급 대표들에 의해 대중교육의 국가를 이상적으로 유지하게 했으며 운 좋게도, 이전의 소지자였던 상등병이 떠나야했던 이후에 우회적으로 부사관들에게 체계화되었다.
그러나 교육의 결과는 너무나 빈약하다. 군국주의자들에게 가난한 마귀인 하급관리의 자리를 차지한 "병역예정자"들은 악마는 매우 열악한 봉급 받는다. 장기적로도 독일에서 아직 임관되지 못한 장교들도 프로이센의 왕25)을 위해 일하기란 불가능할 정도다. 이는 혁명을 매수하려는 끊임없는 문제다.
군인들의 군사적 열정이 생산되고 유지되고, 군복과 장식에 꾸며진 과시와 동시에 군국주의의 범위 밖에 있는 주민들과 군대를 모집하는 계층들의 영향을 미치거나 그 비용을 감당하고 자국의 적들에게 굴복할 "위기"에 처한 수단들을 추가로 언급해야겠다. 1906년 가을 프로이센을 방문한 영국의 전쟁 장관 할데인은 이것을 재빨리 알아차렸고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군국주의를 성취하고 귀중한 현상에는 군대에 손쉽게 다가가고 전쟁을 준비하는 국가는 냉정함과 충성심을 배운다.”26)
군국주의는 그 정신을 전파하기 위해 상당히 다른 방식의 수단을 지닌다. 군국주의는 소비자와 생산자의 수용과 전략적 중대성이 큰 국가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군대에 존속하는 고용인들인 생산회사의 장인들과 상인들을 전체적으로 주최한다. 장비를 필요하는 요소를 생산하거나 수송하며 군대의 막사로 옮기거나 유지하며, 모든 군인이 사용하는 요소를 때로는 전체의 공적인 생활에서 깊은 인상을 준다. 특별하게 작은 국경수비대는 더욱 강력한 규칙 제국의 지배 하에서 귀족모임의 규칙으로 국가를 처음으로 주무르도록 돕는다. 국경수비대는 군국주의에도 영향을 끼치고 착취하도록 허용하며 경악스러운 열정과 귀를 막는다. 군국주의는 재반납하며, 열성적으로 지지한다. 자본가들은 선동하는데 제국주의가 흥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름들도 알만하다. 크룹, 스텀, 에크하르트, 로워, 워크맨, 티플스커치 노벨 권력반지가 있다. 크루프는 장갑판으로 수익을 얻고, 터펠스카르체는 뇌물로 수익을 얻고 팽창된 우르만의 운임 및 화물초과료와 100% 및 150%에 달하는 파우더 링의 순익은 독일 재무부의 100만 달러를 덜어주었던가?27) 특히 오스트리아에서 납품업자들의 사기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28) 각각의 유세에는 사기꾼들의 황금 수확을 의미한다. 비단 러시아만이 아니라 기생충으로 포장하기 위해 채취된 수단들이다.29) 위대한 귀족들은 군국주의에 가장 기독교인적인 포교로 인민을 약탈하며 군국주의에 보답한다. 귀족들은 군국주의에 거룩한 망령들인 “그들” 우르만과 의존하는 모든 것에 쏟아붓는다. 혁명에 맞서서 무자비하게 전쟁을 한다. 물론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물질적 흥미도 소규모의 방위공조회사의 대부분은 군대와 관련한다. 상비군 무역과 산업이 없는 국가들은 상비군을 보유한 국가들보다 덜 번영한다. 군사생산의 종사자들은 군대가 없어지더라도 경제적으로 더 나빠지진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 그들은 자신의 코끝 너머를 보지 못하고 군사주의적 영향에서 쉽게 굴복하고 반혁명은 큰 난관에 직면한다.
방대한 규모의 경제적으로 관계한 식량경리부, 유지공장, 의류 부서, 수리 창고, 무기 및 군수 공장, 조선소 고용주들은 군국주의에서 가장 신속하고 예외없이 그 직원들은 1904년 10월 31일, 독일 육군과 해군 행정부에서 국가의 직접 지배 하에 총 54,723명30)을 고용했으며 사회민주주의에 맞서 제국연합과 같은 반동적 애국 선동에 투입했다. 군국주의는 대부분 미끼의 수단인 냉혹한 방법으로 선전물의 표제, 장식들, 군인회관과 유사한 축회와 무리한 장려금, 심지어 노동조합을 비방하고 실제 병영 규율31)로 조직적으로 애국적인 애국주의자를 계발하고자 한다. 군사작업장에선 더욱 프롤레타리아를 계몽하고자 한다. 물론 노동계급에겐 적대적인 영향으로 인해 한계가 있으며 군사 행정부는 특히 “제국의” 선박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달성한 사회민주당의 성공에 대한 환상으로 여기며 환영하지 못한다.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사회민주당 투표가 계속 증가해야 한다면 (이를테면, 1903년 스판다우 선거에서 채택한 방해공작으로 군사작업장을 폐지하겠다는 모든 협박은 매우 순진하다. 군국주의는 노동계급에게 계속해서 근소한 임금을 지불하고 따라서 그들을 사회민주주의의 반열이 있는 한 계급의식의 발전을 방해할 힘은 없다. 국왕이 허가한 공장의 노동계급 가운데서 임금인상을 위한 잦은 운동과 군사행정부32)와 가진 무수한 투쟁을 기억하면 비관적일 수만은 없다.
방대한 철도, 우편 및 전보시설들은 전략적으로 자국에서 적과의 전쟁은 적의 진출에 맞서는 만큼이나 중요하다. 전략적 중요성의 이런 필수적인 요소들은 군사조직의 완전한 붕괴로 이어지는 파업에 의해 군국주의에 타격을 줄 수 있다. 군국주의에선 통신수단과 군국주의와 동맹한 생산적 관계인 철도 가판대, 역마차 공장와 관련한 공무원과 노동자 조직에게 군국주의 정신을 주입하려하고 그 시도가 얼마나 비도덕적인 방식으로 추구되는지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병역예정자”의 제도는 제외하고, 그 직원들은 독일의 주마다 달성된 군사법에 복종한다. 또한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33) 행정명령과 이탈리아, 네덜란드, 러시아에선34) 특수한 법적 수단으로 노동조합을 형성할 권리를 박탈하며 군국주의 국가에선 직원들의 정치적 위치와 피상적인 견해를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우리는 군국주의적 이익과는 별개로 자본주의 국가에서 통신수단의 직원들을 대체로 “국가에 대한 적대적인” 열망에 굴복하게하고 전반적인 이익이 있다는 사실은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의 분투는 장기적으론 실패하며 노동운동에 어려움을 줄 수도 있지만 사실상 통신수단의 직원들은 프롤레타리아의 위치에서 낮은 임금으로 지쳐있기 때문이다.
교활하고도 정치적으로 규제하는 군국주의
그러므로 군국주의는 먼저 차제적으론 군대에서 등장하고, 군대에서 제도로 나아가 군국주의 및 준군국주의 기관들의 조직에서 전반적인 사회로 침투한다(통제체제, 명예로운 법정, 글쓰기 활동 금지법, 예비군 장교 계급의 "민간인 생활 보증서", 관료기관의 군사화, 끔찍한 “ 병역입영제도”. 이외에도 젊은 남성들의 방위모임, 군사모임 등은 예비군 장교 계급 및 "예비군" 제도에서 유발해서 군사화되며 해를 가한다. 또한 군국주의는 군국주의적인 정신으로 사회의 모든 공공 및 사생활까지 물들인다. 교회, 학교, 저렴한 예술 성향, 언론, 부패한 작가들의 비열한 무리와 "우리의 영광스러운 전쟁군대"를 포위하여 사회적인 후광을 얻아 생활에 먹구름을 끼게하며 집요하고 교활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군국주의는 가톨릭 교회와 함께 가장 최악의 마키아벨리주의이며, 자본주의의 모든 마키아벨리주의 중에서 가장 교활하다.
코페닉의 장군를 언급한 적이 있는데 군국주의 교육 방법과 교리문답, 그 결과들은 시사점을 제시한다. 이 교리에서 가장 탁월한 지적은 한 부르주아 사회에선 전반적으로 장교의 제복을 신성하게 여긴다는 사실이다. 극 중에 재소자가 진행했던 시험은 6시간 동안 지속했는데, 그 시험에선 우리의 군대, 관료제도, 프로이센에 대한 충성이 시험대상으로 제시되었다. 모든 학생들이 그 시험에서 나아가 결과에서도 선생님들의 교육에서 핵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고 머리카락을 곤두설만큼 놀라게 한다. 게슬러의 모자도 이렇게 자기비하적이고 고분고분한 복종으로 불멸하는 장군의 모자만큼 따르진 못했을 것이며 이렇게나 신성한 트리어의 붉은 망토도 제복에 그렇게나 헌신적인 사람들은 없었을 것이다. 이 고전적인 풍자에서 큰 효과는 군국주의 교육학의 원리를 죽음으로 몬다는 사실이다. 군국주의는 세상의 조롱과 비웃음과 함께 법원에서도 꺼저야 한다면, 현재 부르주아 사회에서 마법사의 제자를 자처하는 군국주의는 일상에서 먹는 빵과 숨쉬는 공기만큼 아깝지가 않다. 자본주의에서 강력한 집행관인 군국주의는 서로를 사랑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두려워하고 증오한다. 이들은 서로에게 다양한 이유를 대며 필수적인 악으로 여긴다. 그래서 코페닉의 교훈에는 부르주아 사회에서 따를 수 없는 사회민주주의35)와 반군국주의을 손에 쥔 강력한 선전수단으로 남을 것이다. 이들이 군국주의의 문제를 심화할수록 더욱 번성하리라.
쾨페니크의 장군이 장군의 역할을 해낸 것은 구스타브 투크라는 1880년대에 두툼하고 먼지가 묻고 오래된 “사회적 의미에서 확장된 군사국가”라는 서적에서 군국주의는 “민족적이고 문명적인 사회주의”이며 모든 걸 태우고, 비추며 지배하는 태양을 중심으로 심장과 영혼으로 이뤄진 미래사회를 소개했다. 이 책이 소개한 사회는 하나의 군영으로 뒤바뀌며, 그 군영은 초등학교, 대학 및 애국심을 생산하는 공장이며, 군대는 일제히 파업을 파괴하는 조직으로 변모한다. 군국주의의 새천년에 열광적인 망상은 실제로는 조직적인 광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군국주의적 목적과 방법을 흐리게 하는 모든 사고에서 자유롭게하고 이를 극도로 사고한 조직적인 광기였다는 사실은 징후적인 의미를 지닌다.36)
적어도 한 가지 측면에선, 지배적 성격에서 군국주의는 현재에 계급제도의 법률, 관료주의, 경찰행정, 계급적 정의와 교황주의의 종류라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며 모든 계급정치에서 은밀하게 드러나는 최종 규제자이며, 자본가 계급만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에서 전략, 노동조합조직과 정치조직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걸 세부적으로 설명할 것이다.
참조.
1. 1891년 2월 27일 카프리비의 발언을 참보하라; 제국의회에서 당시 폰 칼텐보른 슈타카우 국방장관도 “새로운 무장, 훈련규정으로 인해 비위대장들에게 요구된 것이 크게 증가했다”고 언급한다.
2. 바이에른 주의 장군인 폰 자우어가 1988년 10월 말 뮌헨의 정치경제 학회에서 한 발언을 참조하자. - (베벨, 『상비군 부재』, 77쪽)
3. 이와 관련해서 1891년 2월 27일 독일의회에서 카프리비의 언급을 참조해보자.
4. 이런 "사격 자동화 장치"에 루크 하사는 비공인된 사람이 작동할 수 있으므로 위험을 초래할 수 있지만 부르주아지들의 비명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성한 존재, 즉 자본가적인 유사성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봉건적인 파벌에 대한 두려움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더벅머리 페터』의 사냥꾼처럼 고통스러워하며 "도와주세요, 착한 사람들아!"라고 외칠 것이다. 이에 부르주아들은 "독일군대의 규율은 병사들이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했군"이라고 헛소리한다. 라이프치히 일간지와 같은 신문이 코페닉 사례에서 기록했다. 물론, 부르주아지들도 절망적인 상황에서 군국주의라는 광기어린 파괴의 신의 자유로운 희생을 막지 못한다. 또 다른 비극적인 충돌이다!
5. 보건적인 측면에선 매우 심각한 문제며, 프랑스에서는 결핵과 매독으로 인한 인구 감염이 높은 수준으로 발생했다. 이를테면 프랑스에서는 독일 군대보다 결핵 환자가 5배에서 7배 더 많이 기록되었다. 한 사람은 프랑스 병영숙소는 사라져야 한다고 경고했으며, 몇십 년 후에는 프랑스의 인구 감소를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6. 슈펠(Schippel)의 소책자, P. 929 참조.
경찰은 앞선 군대, 특히 남용을 저지른 장교들에 대해선 무력한 상태임을 유념해야한다. 더 나아가 군사적 미학으로 지속적으로 거리를 막고 도로교통을 방해하는 군사행진의 특권에 주목해야 한다. 몇 년 전에 베를린에선 이런 조롱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거만이 극한에 이르렀으며 일반적인 위험으로까지 이어졌다. 화재 대응을 위해 출동하던 소방서 부대가 군사행진에 막혀 상황을 대처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행진은 소방대원들이 차지할만한 자리를 내주지 않았고, 고상한 군사적 행진이 방해받지 않도록 그대로 진행했다. 이러한 행동은 후에 비난받았다.
7. 경찰이 도움을 주지 못하는 국가에 기록에 따르면, 전문가로 위치된다. 군대에 앞서,
특수하게 관리자들은 초과하게 전념한다. 우리는 게다가 특권을 기록하고자 하며, 군사적 관리에 따르면 자주 길가에선 더욱 길이와 랭크가 닫게된다. 교통을 간섭하고, 감각과 근거들도 없이, 물론 퍼레이드는 군사적 미학에 전달도니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베를린에서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지나친 흥분을 본다. 한계와 흔한 위험을. 화력군단의 부분에선 화력은 멈추고, 군사적 기둥으로 멈춰지고, 행진한다. 고상한 집안을 교란하는 걸 제외하고, 아름답고 위엄있는 명령에 주며, 후에 반대하는 행위를 한다.
8. 『미국의 흑인 병사들』, 1906년, P.638번, 베를린에 Lokalanzeiger의 논문을 참조하라.
9. 참으로 의심쩍은 성자들! 1903년의 11월의 빌제 사건, 폴바흐와 같은 "작은 요새" 사건, 도박과 샴페인 마시기에 관한 규칙, 장교들의 결투 - 장교 명예에는 훌륭한 꽃들인 브뤼에즈비츠의 살인(1896년 10월), 후에 일어난 총격사건(아렌베르그, 13쪽과 이어지는), 하름로스와 루스트랏 사건, 사진적으로 생활을 사진처럼 정확하게 묘사하는 빌제와 바이어라인 소설, 슐리히트의(반디신 백작) "일류 남자들", 예스코 폰 푸트캄어, 마지막으로, 이 소설에서 프린스 아렌베르그 스캔들을 상기해보면 된다. 프랑스의 ‘작은 요새’ 도시인 베르당은 1906년 가을에 꽤 호응을 얻었다. 물론, 군복을 신성시하는 사람들에겐 이 모든 건 재미있고 사랑스러운 약점이겠지만, 여전히도 기독교적 믿음을 굳게 고수한다.
다시 우리에겐 눈부신 최고의 국제적 연대의 선언이 여기에 있다. 영국 근위병 장교들은 서로를 채찍질하는 했다는 건 흥미로운 사례이다! 『청년 사회주의, 1903년 3월』
10. 이 부사관은 “신의 대표자”이다.
11. 가장 강력한 증거는 군인들의 자살 통계자료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역시나 국제적인 문제다. 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독일에선 1901년에 3700명 중 한 명이 자살을 했고, 오스트리아에선 약 920명 중에 한 명이 자살을 했다. 오스트리아 제10군단에서는 1901년에 80명의 군인과 12명의 장교가 자살했으며, 127명이 자상을 입거나 학대를 당한 결과로 정신을 잃고 군인의 효력을 잃었다. 동일 기간에는 같은 군단에서 400명이 탈영했으며, 725명은 고역 노동이나 엄격한 감금을 받았다! 이는 분명하게 민족 간의 투쟁으로도 악화한다.
12. 법에서 정한 기간보다 오래 복무하는데 서명한 독일 군인을 “말뚝”박은 사람이라 불린다. “말뚝”에는 추가 2년 복무를 약속하는 계약서에 서명하고 100마르크 (£5)의 보너스를 받는다. 이는 부사관이나 간부가 되기에 적합한 병사들을 선택한다.
13. 1891년 독일에서 도입했으며 (최대 1000 마르크). 이전에는 작은 지역에서만 있었고, 비정기적인 수당 지급으로 제국 내에선 선례를 확립했다. 또한 다른 국가에서도 유행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프랑스에선 계좌가 훨씬 크다(최대 4000 프랑). 부사관 학교도 여기에 속한다. - Vogel von Falkenstein의 1891년 3월 2일 제국의회 연설 참조.
1891년 2월 27일 카프리비의 제국의회 연설에는 아름다운 자본가이자 군국주의자의 고백으로, 그의 두려움과 욕망, 희망과 목표, 그리고 그 목표를 추구하는 방법들이 담겼다. 이 연설은 마음의 창문을 열어주며, 그의 가장 깊은 비밀까지도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연설은 “(반)사회주의법을 재도입하지 않을 조건도 내걸었는데 사회민주주의를 기반에 대항하거나 그에 대항하는 대비책을 내야한다.”는 진술로 시작한다. 이 조치 중에 하나는 부사관들에게 “민간인 예비 증명서”와 함께 보험료를 지급하는 것이었다. 카프리비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14. “프로이센에선 더 나은 교육을 받기 때문에 부사관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증가하고 있다. 책임을 지는 장교들은 부하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낄 때만이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다. 만약 지금 규율을 집행하는게 어렵다면, 우리는 사회민주주의에 맞서 싸우기가 한층 어려워질 것이다. 이싸움은 단순히 총을 쏘거나 찌르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나의 기억인 1848년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 당시엔 오랜 기간의 교육으로 생각이 표면화되기 전이었기에 부사관들은 매우 좋은 군인들이 사회민주주의를 상대해야 하는 지금보다 조건이었다. “우측에선 옳소, 옳소”라고 한다. 그리고 극단적인 경우로 우리는 적과 싸우는 것보다 사회민주주의들과의 싸움에 훨씬 더 나은 비위원장들이 필요하다. 적들에게 군대는 애국심과 고귀한 감정들로 자신을 희생을 감내하도록 유도할 수 있지만 거리의 싸움으로 일어나는 모든 건 군대의 존엄성을 높일 순 없다. 군인들은 언제나 자국 국민들과 맞선다고 느낄 것이다. 비위원장들이 우리가 그들을 키우려고 노력해야만 우리의 우월성을 유지해야한다. 연합국 정부는 부사관 계급의 수준을 높이기를 바라며 그는 또한 비위원장들을 “국가와 끈적하게 연결된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는 동시에 엘리트 병사들의 심리를 잘 묘사한 발언이었다.
15. “민간인 생활 증명서”는 군 당국이 부여하는 문서다. 군 당국에서 해당 인물은 현역에서 일정 기간을 복무한 사실을 증명한다. 규정된 규정에 따라 제국 및 연맹 당국에서도 민간 일자리를 제공받는 자격을 부여한다.
16. 어중간한 식단, 침대와 조명, 누적된 피로로 억류된 것 외에도 미개한 처벌의 영역에서
“구속”이라 불러진다. 오스트리아 군인들을 “구부러진 자세를 핀으로 고정하고” 벨기에 군인들은 국제적으로 동원된 해군 군함과 지하감옥에선 “채찍”이 사용된 것으로 잘 알려졌다.
프랑스에선 훈련상으로 제외된 프랑스 군인들에게 끔찍한 고문기구들을 “정치범”에게도 사용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02년에 출판된 “현대적인 사회주의자들 연합”이란 “백니스 군대들”의 소책자에 담긴 삽화를 참조하면 엄지 고문기구, 수갑 및 포박을 사용했으며, 조지 다르엔 브리타뉴에서 비밀리에 언급한 북아프리카에선 군사적 징계기관을 총칭하는 “비리비”가 있다. 프랑스 외인부대와 징계회사, 교도소, 고문 노동을 담당하는 회사인 de discipline, penitencieurs 및 traveux forces의 희생자들에 대해서는(데이쿠미그, "Neue Zeit", 99-100, 페이지 365 및 페이지 369)과 같이 1906년 12월 8일과 10일의 회의실 토론에선 현재에는 “비리비”를 적극적으로 규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영국의 수류탄 투척병 장교들은 높이 평가할만한 민주적 열정으로 서로에게 가하는 징계적 비난 (Jeunse Socialiste, 1903년 3월)에 대한 열의는 언급될 가치는 있다.
17. 군사적인 시각에서 이 모든 교육 방법들의 결과는 다른 곳에서 논의되었다. 여기선 부르주아뿐만이 아니라 무정부주의자, 준-무정부주의자들도 군대에 대한 반대로 인해서 지나친 분노의 외침을 보인 도덕적인 결과에 대해 주목하고자 한다. 안토니 프랑스의 “군대는 범죄를 위한 학교이다.”라는 지적이나, 리히트 교수는 “음주, 경범죄, 위선들은 바람직한 군대 생활의 부분이다”라고 지적했다. "manuel du soldat"에 따르면 병역기간은 “잔혹한 악행을 수습하는 과정이며”, “난폭한 행위의 교실”이며, “도덕적으로 비겁하고, 순종적이고, 노예적인 공포”를 초래한다고 전해진다. 사실, 한 군사 축제는 “국가를 유지하는” 의미로 당연하게도 취기에 취해지는 걸 쉽게 상상할 수 있다. 1906년 12월 1일의 Leipziger Volkszeitung은 목사 César가 “술에 취한 난투”라 불리는 군사모임의 축제를 언급한다. 보건적으로도 결코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프랑스 군대에 대해서는 기록의 p.25를 참조하라. 민주주의 국가인 영국과 미국의 상비군들의 위생 상태도 매우 열악하다. 1906-07년에는 죽은 인원들은 독일보다 훨씬 많았으며 L. M. O'Reilly 군의 의사 총장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군대는 7.13 및 6.18 명 중 1명이 기질염과 알코올 중독으로 전 세계 어느 곳보다 더 만연하다.
18. 자국의 적과 투쟁을 언급할 땐, 자연스럽지만 “해외의 적을 상대하는 군국주의”에 맞서는 국제 연대의 정신과의 투쟁들도 포함한다.
19. 관련 자료로 장교가 직접 쓴 예나 코스트노블 “사회민주주의와 군대”와 베벨의 “상비군을 대신하는 시민군”에서 46쪽 이후에 소개된 자료들, 그리고 “사회민주당 유권자를 위한 안내서”(1903)의 33쪽 이후에 소개된 자료가 있다.
20. 이와 관련해서 유명한 Gaedke 사건을 참고해보자, 프러시아의 항소법원은 군국주의의 놀라운 야망을 합법적으로 인정해 세간에 알려졌다.
21. 의사들 중에서도 다수가 이런 압력을 받는다. 이에 대한 결과론 1894년 1월 17일자 Vorwaerts 신문의 주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압력에는 예비 군의관뿐만이 아니라 전문적인 기관에도 영향을 미치고, 이로부터 비군인 의사들에게도 압력을 가한다.
22. “병역 입영자”들은 독일에서 장기간 복무하거나 군에서 퇴역한 사람들이 민간인으로서 직업적으로 일할 권리를 획득하는 걸 말한다. 그들이 특정 직업에서 일할 수 있는 “민간 생활 보증서”를 얻으며, 해당 직업적으론 “병역 입영자”가 전체의 50%를 차지한다. 이들은 민간인들보다 우선권을 가진다.
23. 지능적인 신발장수이자 죄수였던 볼트와 대담한 쾰펜닉의 “대장”의 모험담은 자유당들에게 경고를 받았다.
24. 이 단어는 문자 그대로와 비유적인 의미에서 모두 적용한다! - p. 48쪽을 참조하라.
25. 독일에는 이런 공무원들의 조합인 “독일 군 취업 예비자 연합”이 존재한다.
26. 1906년 Lokalanzeiger, No. 496을 참조하라.
27. 프로이스터(Feuchter)의 “파우더링”, 1896, p. 25~30 참조
28. “군대생활의 즐거움”(“Lustig ist’s Soldatenleben”). p. 51 세부항목
29. 동아시아 전쟁과 관련해선 대부분의 패잔병들이 마지막 남은 곳은, 1906년 말에 큰 충격을 주었던 그루코-리드발스(Gurko-Lidvalls)의 일가가 있던 곳이다.
30. 해군 행정기관, 18,939명; 프러시아 육군 행정
31. 1906년 겨울 포젠(Posen)에서 발생한 무기 도난 사건의 경우에, 스판다우(Spandau)의 공장 노동자로 피고인은 계속해서 "장교로" 어느 정도 자신의 상급자이자 도둑이었던 포페(Poppe) 중위의 명령을 따라야 했다고 진술했다. 이는 그들은 훈련을 받았고 포페는 피고인이 소속했던 공장에서 일하지도 않았다. 진품 장교복은 코페닉(Koepenick) 대위의 불법 복장과 마찬가지로 민간인들 사이에선 그의 미심쩍은 일에 도움을 주었다.
32. 스판다우 공장에서 발생한 고난은 매년 제국의회(Reichstag)에서 논의되고 잘 알려졌다. 베를린 군단의 의류 부서에 관한 내용으론 1906년 8월 25일에 출판된 슈니더(Schneider) 전문지를 참조하면 된다. 프랑스 해군 공장인 브레스트(Brest), 로리앙(Lorient), 셰르부르(Cherbourg), 로쉬포(Rochefort), 툴롱(Toulon)의 내용은 1905년 11월 11일 자의 템스 누보(Temps Nouveaur) 신문을 참조하면 된다. 현재 1906년 12월, 툴롱 해군 공장의 공장 노동자들 사이에선 강력한 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어떻게 끝날지도 예측할 수 없다.
33. 프랑스 정부는 이런 조치들을 공식적으로 정당화하려고 템스 누보(Temps Nouveaur) 신문 등의 반군국주의 선전에 주목했다.
34. 1905년 12월 2일 법률과 관련한 라이프치히 대중신문(Leipziger Volkszeitung), 1906년 12월 14일자를 참조해보자.
35. 미궁 속에서 크로이차이퉁(Kreuzzeitung)이 꼼지락거리는 걸 보는 건 즐겁다. 절망적인 처지에서 그들은 사회민주주의가 난관에 빠졌다는 걸 주장하며 그 관점을 바꾸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즉, 쾨페닉(Koepenick) 공격에 혁명 발생할 경우에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계획한 건 세상에 너무 일찍 드러내었고, 이제 그 계획들은 실패할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들을 촉발하는 건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하며, 이러한 계획들은 자본주의 질서 아래에선 절대로 실패할 수 없으며, 크로이차이퉁(Kreuzzeitung) 기사들은 그런 절망적인 노력으로 손가락을 움직일 일이 없을거란 건 착각이다. “부디 감사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군대에 의지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말은 쾨페닉(Koepenick)에서 용감하게 일어난 일 직후에 우리 부르주아 속물자들이 안심의 한숨을 쉬던 정직한 탄식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