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 Ⅴ
『이스크라』 편집국에 보내는 편지
레닌
논문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는 우리 당 생활의 극히 중요한, 그리고 현 정세 하에서는 아주 긴박한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에, 기관지의 지면을 기꺼이 개방한다는 편집국의 친절하고 호의적인 제안에 즉시 응하고 싶은 욕망을 눌러 두기는 아주 어렵다. 그것은 『이스크라』에 줄곧 관계해 왔던 사람에게는, 특히나 자신의 의견 발표가 1주일 정도 늦어진다면 의견 발표의 기회를 모두 상실할지도 모를 시기에는 더욱더 어렵다.
그래서 나는, 불가피하지는 않다고 해도 있을 수 있는 약간의 오해를 제거하기 위해 나의 의견을 기고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논문의 필자가 당의 통일을 수호하고 새로운 분열 — 특히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의견 차이에서 오는 분열 — 을 피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는 것은 아주 올바른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는 점이다. 지도자가 평화에호심과 온화한 태도, 양보심을 보여주는 것은 언제라도 높이 칭송받을 가치가 있으며, 현 정세 하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전의 경제주의자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의 비일관성’이라는 결함을 지닌 소그룹까지도, 당에서 파란한다든지 재령하는 것은 확실히 비합리적인 일일 것이다 — 그것이 대단히 비합리적인 까닭에, 필자가 재령에 찬성하지 않고, 재령을 주장하는 독단적이고 경직되고 바보스러운 소비개념치 같은 자들에게 짜증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우리는 완전히 이해한다. 우리는 그 이상까지도 생각한다. 우리에게 당 강령과 당 조직이 있다면, 우리는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 당 기관지의 지면을 기꺼이 개방해야 할 뿐 아니라, 일관성의 결여 때문에 수정주의의 어떤 도그 마를 옹호한다든지, 이러지러한 이유 때문에 자기들의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그룹으로 존속하겠다고 고집하는 그룹 — 또는 논문의 필자가 표현하든 소그 룹 — 에 대해서조차,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들의 의견 차이를 체계적 으로 서술할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만 한다.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에 대한 지나치게 가혹하고 경직된 소비자비치적 자세를 정당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 소그룹들에게 충분히 말할 수 있게 하고, 당 전체로 하여금 이들의 의견 차이의 중요성 내지 비중요성을 평가할 기회를 주며, 또한 비일관성이 어디서, 어떻게 게, 누구의 편에서 나타나고 있는가를 평가할 기회를 주려고 최대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 — 설령 그것이 중앙집권주의의 엄격한 형태와 규율에의 절대 복 중으로부터의 일정한 이탈을 수반한다 해도 — 가 있다는 것이 우리의 의견이다.
실제로 지금이야말로 써클적 분파주의의 전통을 정신하고 다음의 슬로건 을 — 대중에 의거한 당 내부에 — 단호히 내질어야 할 때이다. 더 많은 빛 을 — 당이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하자. 모든 의견 차이, 수정주의로의 복귀, 규율 위반 등을 평가하기 위한 모든, 완전히 모든 재료를 당에 제공하자! 당 활동가 전체의 자주적 판단에 더욱 신뢰를 두어야 한다! — 그들이, 그리고 그들만이 분열 경향을 가진 소그룹의 과도한 성급함을 고칠 수 있고, 그들의 느낌하고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끈질긴 작업으로 당 규율에 복종하려는 ‘선량한 의지’가 그러한 그룹에 갖들게 할 수 있고,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의 열정을 식힐 수 있고, 분열에 마음을 쏟고 있는 분자에 의해 파장된 의견 차이가 아주 평범한 것에 불과함을, 그들의 냉정함이라는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증명, 입증, 명시할 수 있다.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일반적으로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 그리고 특수하게는 분열을 피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무엇보다도 이렇게 답하고 싶다. 분열의 원인이 발생하고 증대하고 있음 을 당에 숨겨 두지 말자. 그러한 원인이 되고 있는 사정과 사건을 조금도 숨겨 두지 말자. 나아가 더 중요하게는, 그것들을 당에 숨기지 말 뿐만 아니라, 외부 의 공중에게도 가능한 한 숨기지 말자. ‘가능한 한’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비밀 유지의 필요성 숨겨 두어야만 할 것이 있음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 그 러나 우리의 분열에서 이런 종류의 사정은 별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광범한 공개성 — 이것이야말로 피할 수 있는 분열을 피하기 위해, 또 이미 피 할 수 없는 분열이라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장 올바르고 확실한 수단이 다.
현재의 당이 대중을 상대하고 있지 써클을 상대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로 부터 당에게 위임되고 있는 의무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해 보라. 이름만이 아니라 진정한 대중의 당으로 되기 위해서 우리는 좀더 광범한 대중을 당의 모든 문제에 참가시키고, 그들을 끊임없이 고조시켜 정치적 무관심에서 항의 와 투쟁으로, 일반적인 항의 정신에서 사회민주주의적 견해의 의식적인 수용 으로, 이 견해의 수용에서 이 운동에 대한 지지로, 지지에서 당에의 조작적 참 가로 인도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그 결정에 따라 대중에 대한 우리의 영향의 성격이 좌우될 그러한 문제를 광범위하게 공개하지 않고 이러한 결과를 달성 할 수 있을까? 사소한 의견 차이 때문에 우리 대열에 분열이 생긴다면 노동자 들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 결을 떠나 버릴 것이며, 우리는 군대 없는 사령부가 되고 말 것이다 — 논문의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이는 아주 올바른 견해이다. 따라서 노동자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또한 그들의 투쟁 경험과 프롤레터라이저 감각이 ‘지도자’인 우리에게 도 무인기를 가르치게 하기 위해서, 조직 노동자는 전당의 이익, 운동 전체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분열의 모든 잠재적 원인들(그러한 원인들은 모든 대중 적인 정당에서는 항상 발생하여 왔고 또 항상 거듭 생겨날 것이다)을 주시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이 원인들을 적절히 평가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국내 혹은 국외에서, ‘벽지’에서 일어난 사건까지도 평가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필자가 우리의 중앙기관들에 부여될 것도 많고 그들에게 요구될 것도 많을 것이라고 강조한 것은 아주 올바르다. 확실히 그대로이다. 그리고 바로 그 이 유 때문에, 전당이 중앙기관에 적합한 사람을 체계적으로, 지속적으로, 항상적 으로 훈련시켜야 하며, 당이 이 높은 부서의 후보자 모두의 모든 활동을 손금 보듯이 흰하게 봐야만 하고, 그들의 개인적 특성, 그들의 장점과 단점, 그들의 승리와 ‘패배’까지도 잘 알아 두어야 한다. 필자는 이러한 패배의 몇몇 원인에 대해 아주 풍부한 경험에 근거하여 아주 날카로운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의견은 아주 날카를기 때문에 전당이 이것을 활용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당의 이러저러한 ‘지도자’의 ‘패배’를, 그것이 설령 부분적인 패배라 해도, 전당이 항상 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어떤 정치가도 패배의 경험은 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라든가 대중의 ‘선량한 의지’의 획득에 대해 진지하게 논하려 한다면, 우리는 이 패배들이 써클이나 소그룹의 케게룩은 공기 속에 파분히지 않고 만인의 판단 앞에 놓이도록 전력을 다해야 한다. 이것은 얼핏 보아 당혹스럽게 보일지도 모른다. 개개의 지도자에게 그것이 ‘모욕적’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하지만 당혹스럽다는 잘못된 감정을 우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극복해야만 한다. 그것은 당과 노동자계급에 대한 우리 의 의무이다. 이러한 방법이, 그리고 이러한 방법만이, 영향력 있는 당 활동가 전체(한 써클이나 소그룹의 우연히 어울리게 된 사람들이 아니라)가 자신들의 지도자를 파악하고, 그들 각자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줄 것이다. 광범한 공개성만이 모든 편협한, 일면적인, 번덕스러운 편향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며, 그것만이 때때로 우매하고 우스꽝스러운 ‘소그룹’ 사이의 ‘인쟁’을 당의 자기 교육을 위한 유익하고 필수불가결한 재료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빛을, 더 많은 빛을! 우리에게는 대규모의 오케스트라가 필요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감상적인 바이올린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웅장한 더블베이스를 주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지휘봉을 맡기는 것처럼, 오케스트라 내부의 역할을 올바로 분담하기 위해서 경험을 쌓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의 경험에 만한 호소에 따라, 모든 의견에 대해 당 기관지와 모든 당 출판물의 지면을 기꺼이 개방하자. 즉,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의 ‘쨍쨍거리는 말다툼’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높게 들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너무 낮게 들리며 또 다른 사람에게는 너무 귀에 거슬리게 들릴 어떤 ‘음조’에 대해서라도 각자 판단하게 하자. 이러한 공개 토의를 계속함으로써만, 비로소 우리는 진정 조화로운 지도 부를 획득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이 주어져야만, 노동자들이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태는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 ‘사령부’는 사령부에 복종함과 동시에 사령부를 지도하는 군대의 선량하고 자각된 의지에 진정으로 의거하게 될 것이다!
『이스크라』 제53호(1903년 11월 25일)에 실림.
『이스크라』의 텍스트에 따라 인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