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기회주의라는 부당한 비난의 무고한 희생자들

 

규약에 대한 다음의 토론으로 넘어가기 전에, 중앙기관들의 인적 구성에 대한 우리 사이의 의견 차이를 밝히기 위해 대회 기간 중에 있었던 이스크라조직의 내부 회합을 언급해야겠다. 이 네 번의 회합 중 마지막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회합은 규약 제1조에 대한 표결 직후에 있었다. 따라서 이 회합에서 발생한이스크라조직의 분열은 시기상으로나 논리상으로 이후 투쟁의 서곡이 되었다.

 

이스크라조직은 조직위원회 사건 후 곧 내부 회합을 열기 시작했는데, 이 사건은 중앙위원으로 예상되는 후보자에 대한 토론의 계기가 되었다. 구속적 위임이 폐지되었기 때문에, 이들 회합은 순전히 협의적 성격을 가졌으며, 회합의 결정들은 누구에게도 구속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회합의 의의는 매우 컸다. 비밀 이름[비밀 활동상의 이름 편집자]이나이스크라조직 당의 실질적 동일을 이루었고,이스크라가 공식적으로 승인된 이유 중의 하나가 된 실제 운동의 지도를 행하였던 조직 의 내부 활동을 잘 모르는 대표들에게는 중앙위원회의 후보자 선출이 상당히 어려운 문제였다. 이미 본 바와 같이,이스크라파가 통일되어 있을 때에는 대회에서 5분의 3이라는 절대 다수를 충분히 확보하였고, 모든 대표들은 이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사실이스크라파 전원은,이스크라조직이 중앙위원회의 인적 구성에 대해 명확한 추천을 해 줄 것을 기대했다. 그리고이스크라조직의 누구도 중앙위원회의 구성을이스크라조직 내에서 사전 토의하는 것에 대해 전혀 반대하지 않았다. 그들 중 누구도, 조직위원회 위원 전원을 지지하지도가, 즉 조직위원회를 그대로 중앙위원회로 전환하도록, 또는 심지어 중앙위원의 후보자에 관해서 조직위원회 전원과 협의하지 않고 암시하는 사람마저 없었다. 이러한 사정은 매우 의미심장한 것이며, 이것을 염두에 두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지금, 이 사건 이후, 마르토프파는 조직위원회를 한 것 추천서우고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정치적 무정전을 수백 수천 번 증명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중앙기관들의 구성 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난 분열 때문에 마르토프가 아키모프 일파와 손을 잡기 전까지는, 대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조직위원회는 주로 대회 소집을 위한 위원회였고 이 위원회는 심지어 분트파마저 포함한 다양한 색채의 대표들로 신중하게 구성되 었다는 사실, 그리고 당의 조직적 통일을 창출하는 실제 작업은 전적으로 이 스크라조직에 의해 수행되었다는 사실, 즉 공평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대 회 의사록과 이스크라의 전역사로부터 쉽게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을 명확히 게 깨닫고 있었다(이스크라의 몇몇 조직위원들이, 참으로 우연히 검거 또는 어쩔 수 없는다른 이유 때문에 대회에 참석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대회에 참석한 이스크라조직 성원(35)의 명단은 파블 로비치 동지의 소책자에서 열거되었다(그의 2차 대회에 관한 편지, 13쪽을 보라).

 

이스크라조직 내에서의 격렬한 논쟁의 최후 귀결은 내가 이미 편집국 에 보내는 편지에서 언급했던 두 번의 투표였다. 첫 번째 투표: “마르토프가 지지했던 후보자들 중 한 명이 9표 반대 4, 기권 3표로 거부되었다.” 대회에 참석한 이스크라조직의 16명 전원의 일치된 합의 하에, 예상 후보자의 문 제가 토의되었고, 마르토프 동지가 제안한 후보자 중 1(현재 마르토프 동지 가 부지중에 말했듯이, 이는 스타인 동지였다 — 『게임 상태, 69)이 다수에 의해 부결되었다는 사실, 이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단순하고 자연스런 일이 아닌가. 요컨대, 우리가 당 대회에 모인 이유 중의 하나는 누구에게 지휘봉을 넘겨줄 것인가 하는 문제를 심의하고 결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안건 중 이 사항에 대해 가장 신중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 이 문제를 속물적 감상이후 루소프 동지가 참으로 정확히 표현했듯이 이 아니라 사업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결정하는 것은 당원으로서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의무였다. 물론 대회에서 후보자들을 심의할 때, 우리는 일정한 개인적 자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찬성 혹은 반대를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고, 비공식적이고 사사로운 회합에서는 특히 그러하였다. 자신이 추천한 후보자가 찬성받지 못했다고 해서 자신이 모욕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 며(연맹 의사록, 49), 간부들을 양심적이고 현명하게 선출해야 한다는 직접 적 임무의 일부를 이루는 사항에 대해 소동을 일으키고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나는 이미 연맹 대회에서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우리의 소수파에 관한 한 이 지적은 불 속에 기름을 뿌리는 적이 되었고 그들은 대회가 끝난 다음에 명예 훼손’(연맹 의사록 70)에 대해 떠들어대기 시작했으며, 스타인 동지가 이전의 조직위원회에서 주요한 인물이었다는 등, 또 그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근거 없는 비난을 받았다는 등의 이야기를 인 쇄물을 통해 널리 퍼뜨리기(계엄 상태, 69) 시작했다. 후보자에 대한 찬성 혹은 반대와 관련하여 명예 훼손을 부르는 것이 히스테리가 아니라 말인 가? 이스크라조직의 내부 회합에서도 그리고 최고 공식 회합인 대회에서 도 패배한 사람들이 동네방내 불명하면서 존경하는 못사람들에게 탈락된 후보 를 주요한 인물이라고 추천하기 시작하는 것, 분열을 일으키고 자주충원을 요구함으로써 자신들의 후보자들을 당해 강요하고자 하는 것이 뿐 아니라 일찍 름이 아니라 말인가? 우리들의 궁망내 나는 해외 명령 분위기 속에서 정치적 개념들이 너무나 흔한스럽게 되어 버려, 마르토프 동지는 더 이상 당직 의무 와 개인적·씨를적 충성을 구분하지 못한다! 원래 원칙상의 중요한 문제들을 심의하기 위해 대표들이 모이는 대회, 인사 문제를 공정하게 취급할 능력이 있으며 또 결정 투표를 하기 전에 후보자들에 대한 필요한 정보 일체를 요구 하고 수집할 능력이 있는(그리고 그렇게 할 의무가 있는) 운동의 대표자들이 모이는 대회, 지휘봉을 둘러싼 논쟁에 일정한 지위를 할당하는 것이 자연스럽 고 필수적인 대회, 오직 이러한 대회에서만 후보자 문제를 심의하고 결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필시 판로주의이고 형식주의라는 것이다. 지 금 우리를 사이에는 이러한 판로주의적이고 형식주의적인 입장 대신에 새로운 판례와 관습들이 도입되고 있다. 사람들은 대회 이후에, 이번 이바노비치가 정치적으로 매장당했더든가 이번 나키포로비치36)가 명예를 훼손당했다는 것에 대해 이러닝자리공 마을이며, 문필가들은 소책자에서 후보자들을 추천하는 반면 가슴을 치며 이것은 써클이 아니라 당이다……하고 위선적으로 주장 한다. 스캔들을 즐기는 독자라면, 마르토프 자신의 보증에 의하면 조직위원회 의 주요 인물은 누구누구이었다더라는 떠들썩한 뉴스에 열심히 탐닉할 것이 다. 다수결에 의해 거칠고 기계적으로 결정하는 대회 같은 형식적인 기관보다 이러한 독자 대중이 더 유능하게 문제를 심의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렇다. 우리의 진정한 당 활동가들이 청소해야 할, 해외 망명가들의 몰 사나운 입서름이라는 진짜 아우기아 왕의 마구간이 아직도 있다!

 

 

이스크라조직의 두 번째 투표: “10표 대 2, 기권 4표로 5명의 (중앙위 원 후보자) 명부가 채택되었던 바, 그 속에는 나의 제안으로 비이스크라파 분자의 지도자 1명과 이스크라소수파의 지도자 1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투표는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투표는, 우리가 당 내에서 비이 스크라파를 추방하거나 소외시키려 하였으며 다수파가 한 일이란 대회의[대표 의 - 편집자] 절반 중에서만 후보자를 내어 그 절반에 의해서 [당 중앙기관들 을 - 편집자] 선출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등등 이후의 - 뿐사나운 입서름 의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 이야기들이 완전한 거짓말이라는 것을 명백하 게, 반박의 여지 없이 입증하기 때문이다. 이 모두는 새롭고 거짓말이다. 내 가 인용했던 투표는, 우리가 비이스크라파를 당에서는 물론이고 중앙위원 에서조차 배제하지 않았으며 우리의 반대자들을 매우 실속 있는 소수파로 허 용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제의 요점은, 그들이 다수파가 되고 싶어했지만 이 소박한 희망이 실현되지 못하자 소동을 부리고 중앙기관들에 참가하기를 완전히 거부했다는 점이다. 연맹에서의 마르토프 동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사태가 그러했다는 것은 다음의 편지가 잘 보여준다. 이 편지는 이스크라조직의 소수파가 우리 이스크라다수파(그리고 7명이 퇴장한 이후, 대회의 다수파)에게 규약 제1조가 채택된 직후에 보낸 편지이다(지금 언급하고 있는 회합이 이스크라조직의 마지막 회합이었다. 이 회합 이후, 조직은 사실상 깨끗해진며 양 파는 자신이 옳다는 것을 다른 대표들에게 설득하려고 노력하였 다는 사실이 지적되어야 한다).

다음은 편지의 전문이다.

 

(이러저러한 날짜의)회합』『이스크라조직 다수파의 내부 회합편집자에 참석할 수 있기 바란다는 편집국 및 노동해방단 다수파(마르토프 일파편집자)의 요청에 대한 대표 소로킨과 사블리너(크루프스카야의 가명편집자)의 대답을 듣고, 또 이들 대표의 도움으로 이전 회합에서 우리들로부터 나왔다고 가정된 중앙위원 후보자의 명부가 낭독되었으며 이것이 우리의 정치적 입장 전체를 부당하게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그리고 다음의 세 가지 사실즉 첫째, 그 명부 는 그 진정한 출처가 어디지를 확인해 보려는 아무런 시도도 없이 그냥 우리의 것 으로 돌려지고 있다. 둘째, 이러한 사정은 이스크라편집국과 노동해방단 다수파 에 대해 공공연히 뒤집어봐야지고 있는 기회주의라는 비난과 틀림없이 관련되어 있다. 셋째, 우리들에게는 아주 분명한 바, 이 비난은 이스크라편집국의 구성을 바꾸고자 하는 명확한 계획과 관련되어 있다을 고려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즉 우리들을 회합에서 배제한 이유에 대한 설명이 만족스럽지 못 하며, 또한 우리들이 회합에 참석하는 것에 대해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우리들 에게 앞에서 언급한 부당한 비난을 반박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중앙위원 후보자 공동 명부에 대한 합의 가능성에 관해 말하자면, 우리는 합의의 기초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명부가 포포프, 트로츠키, 글레보프라고 선언한다. 나아가, 이 안은 타협안이라는 것을 강조해 두는 바, 왜냐하면 글레보프 동지의 포함은 오직 다수파의 희망에 대한 양보로뛰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대회에서 글레보프 동지가 했던 역할이 우리에게 분명해진 지금, 우리는 글레보프 동지가 중앙위원 후보자가 갖추어야 할 요건들을 충족시키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가 중앙위원 후보자에 관해 협상을 하는 것은 중앙기관지 편집국의 구성 문제와는 완전히 무관하다는 것을 강조해 둔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이 문제(편집국의 구성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협상도 할 용의가 없기 때문이다.

 

동지들을 대신하여 마르토프와 스타로베르(포트레소프의 가명 - 편집자)’

 

논쟁하고 있는 양 편의 기본과 논쟁 상태를 정확히 재현하고 있는 이 편지는 우리를 단순히 초기 분열의 해심으로 안내하며 그것의 참된 원인을 보여주고 있다. 이스크라조직의 소수파는 다수파에 동조하기를 거부하고 대회에서 선동할 자유를 택하였음(물론, 그들은 그렇게 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에도 불구하고, 다수파의 대표들에게 다수파의 내부 회합에 자신들이 참석하는 것을 허락하고 설득하려 했던 것이다! 당연히, 이 옷기는 요구는 우리의 회합에서(이 회합에서 편지는 물론 낭독되었다) 단지 조소와 어깨를 스펙해 보이는 반응만을 일으켰고, ‘기회주의라는 부당한 비난에 대한 히스테리에 가까운 비명은 박장대소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우선, 마르토프와 스타로베르의 비통한 불만들을 조목조목 검토해 보자.

 

그들은 그 명부가 부당하게 자신들의 것으로 돌려졌으며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이 잘못 표현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르토프 자신도 인정했듯이 (연맹 의사록 64), 나는 명부의 작성자가 그가 아니라는 그의 주장의 진실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대개 작성자의 문제는 이러한 경우에 관계가 없으며, 명부가 이스크라파의 누군가에 의해서 작성되었는 아니면 중간파의 어떤 대표 등등에 의해서 작성되었는 이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전적으로 현재의 소수파 성원들로 구성된 이 명부가 - 단순한 추측이나 가정으로 작성되었을 뿐이었다고 해도 - 대회에서 들었다는 점이다. 끝으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대회에서 마르토프 동지가 그러한 명부 - 지금은 그가 기쁨으로 환영해야 할 명부 - 를 필사적으로 자신과 분리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사람과 색채를 평가하는 데 불안정성의 예로서, 2, 3개월 사이 에 모욕적인 풍문이라는 울부짖음으로부터 모욕적이라고 여겨진 명부에 실록 던 바로 그 후보들을 당 중앙기관에 강요하려고 하는 정반대로의 전환만큼 더 두드러지게 좋은 예는 있을 수 없다!*

 

마르토프 동지는 연맹 대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치적으로 이 명부는 한편으로는 우리와 유즈니 라보치사이의,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와 분트 사이의 연합을 의미했고, 그것도 직접 협약이라는 의미에서의 연합을 의미했 다”(64). 이는 올바르지 않다. 왜냐하면, 첫째, 분트는 단 1명의 분트파도 포 함하지 않았던 명부에 협약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며, 둘째, 분트는 말할 것도 없고 유즈니 라보치그룹파도 직접 협약(마르토프는 이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은 문제가 되지 않았고 문제가 될 수도 없었다. 문제가 된 것은 협약 이 아니라 연합이었다. 요컨대, 마르토프 동기가 거래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대회 전반부 동안 그가 써왔던, 그리고 규약 제1조의 문제에서 그의 오류에 매달린 바로 그 반이스크라파와 동요 분자들이 마르토프 동지를 지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내가 인용했던 편지는 불만의 근원이 공공연하게 다구나 부당하게 기회주의라고 비난한 것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다. 불에 기름을 피부은 격인 이 비난’, 지금 마르토프 동기가 내가 편집국에 보내는 편지에서 상기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조심스럽게 피하고 있 는 이 비난은 두 종류이다. 첫째, 규약 제1조에 관한 토론 중에 플레하노프 는, 규약 제1조 문제는 모든 종류의 기회주의 대표자들을 우리들로부터 분리 시키는문제이며, 나의(레닌의 편집자) 초안은 그들이 당에 침입하는 것을 막아 내는 방벽이라는 그 이유만으로도 기회주의에 대한 모든 적대자의 찬성 투표를 받아야만 한다”(대회 의사록, 246)고 확실히 선언했다. 이 단호한 말 은 내가 이 말을 약간 부드럽게 가라앉혔음에도 불구하고(250) 파문 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는 투소프 동지(247), 트로츠키 동지(248), 아키모프 동지(253)의 연설 속에서 뚜렷이 표현되었다. 우리들의 의회로비에서 플레하노프의 명제는 활발히 논평되었고, 1조에 대한 끌없는 논쟁 속에서 수천 가지로 변형되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친애하는 동지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그 진가에 근거하여 옹호하는 대신에 우습게도 감정이 상해서 기회주의라는 부당한 비난에 대하여 편지로써 불만을 늘어놓았다!

 

모든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논쟁한다는 신선한 바람을 견디어 낼 수 없는 그들의 협소한 셰를 근성과 당원으로서의 놀라운 미숙함은 여기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이는 싸우거나 아니면 화해하라는 속담에서 표현되듯이러시아인에게 매우 친숙한 심리이다. 이 사람들은 친밀하고 아늑한 작은 셰를 이라는 온실 속의 온돌에 너무 익숙해 있기 때문에, 어떤 이가 자유롭고 공개적인 활동 무대에서 자신의 책임 하에 거리낌없이 이야기하자마자 거의 줄도 해 버렸다. 기회주의라고 비난한다니!도대체 누구에게? 노동해방단을, 더 구나 그 다수파를 기회주의라고 비난한다니이보다 무서운 일을 생각할 수 있을까? 이 지을 수 없는 모욕 때문에 당을 쪼갤 것인가 아니면 온실의 연속성을 회복시킴으로써 이 집안의 불화를 감출 것인가의 양자택일이 지금 검토하고 있는 편지에 매우 명확히 나타나 있다. 지식인적 개인주의와 셰를 근성은 당 앞에서 공개적으로 발언하라는 요구와 충돌해 버린 것이다. 이러한 불합리, 이러한 콜사나운 입씨름, ‘기회주의라는 부당한 비난에 대한 이러한 불만이 독일의 당 내부에서도 일어난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독일의 당은 프롤레타리아적인 조직과 규율 덕분에 오래 전에 이러한 지식인적 나약성과 결별하였다. 예를 들면, 리프크네이트에 대해 누구라도 최대의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그가(베벨과 함께) 농업 문제에서 악명 높은 기회주의자 풀마르와 그 일파에 가담하였을 때, 1895년 대회38)에서 기회주의자라고 공공연하게 비난 받았다하고 불만을 터뜨렸다면 독일에서는 그 누구라도 조소를 보냈을 것이 다. 리프크네이트의 이름은, 그가 비교적 작고 특수한 문제에 대해서 우연히 기회주의로 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노동운동의 역사와 떼어놓을 수 없게 묶여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투쟁의 신발함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 악셀로드 동지의 이름은 모든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에 존경을 불러일으키며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악셀로드 동지가 우리 당의 제2차 대회에서 우연히 기회주의적 사상을 옹호했고 또 연맹의 제2차 대회에서 남은 무정부주의적 잡동사니를 우연히 드러내 보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는 것이다. ‘싸우든가 아니면 화해하라는 논리를 가진 가장 편협한 셰를 근성만이 노동해방단의 다수파를 기회주의라고 부당하게 비난했다는 것을 이유로 히스테리와 콜사나운 입씨름과 당의 분열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 무서운 비난의 또 다른 종류는 앞에서 첫 번째로 들었던 종류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마르토프 동지는 연맹 대회에서[63] 이 사건의 한 측면을 피하고 감추려고 헛되며 예를 썼다). 이것은 사실, 규약 제1조와 관련하여 나타나기 시작했던 반이스크라및 동요 분자와 마르토프 동지의 그 연합과 관계가 있다. 물론 마르토프 동지와 반이스크라파 사이에는 어떠한 협약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도 없었으며 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 점에 대해 서는 누구도 마르토프를 의심하지 않았다. 단지 공포에 떨고 있는 그에게만, 자신이 의심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그의 오류는 확실하게 기회주의로 기술이었던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더욱 단단하고 결속된다수파를 형성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지금은 7명의 대표가 우연히대회에서 퇴장했다는 이유만으로 소수파가 되어 버렸지만). 우리는 물론 제1조의 심의가 끝난 직후에 대회에서도(앞에서 인용했던 파블로비치의 언급을 보라 대회 의사록 225), 그리고 이스크라조직 내에서도(내가 기억하기로는 플레하노프가 이 점을 특별히 지적하였다) 연합을 역시 공개적으로 지적하였다. 이것은 1895년에 클라라 제트킨이 베벨과 리프크네이트를 향해서 “Es tut mir in der Seele weh, dass ich dich in der Gesellschaft seh”(“당신 [베벨]이 저런 무리들[폴마르 일파]과 한패라는 것이 나에게는 고통이다)”39) 하고 말한 것과 문자 그대로 똑같은 지적이고 똑같은 조소이다. 베벨과 리프크네이트가 기회주의라는 부당한 비난에 불만을 터트리는 신경질적인 편지를 키우는 것이 제트킨에게 보내지 않은 것은 확실히 이상하다.

 

중앙위원회 후보자 명부와 관련하여, 이 편지는 마르토프 동지가 연맹에서 우리와 협의하기를 최종적으로 거부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정치투쟁에서 구두로 된 말을 기록에 의하지 않고 기억에 의해 재현하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예이다. 실제, ‘소수파소수파로부터 2명을, ‘다수파로부터 1(적절히 말하자면, 타협할 목적으로 그리고 오로지 양보로서)을 취하자는 최후통집을 다수파에게 내밀 정도로 겪은했다. 이것은 터무니없는 것이지만 사실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다수파는 대회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 자들의 대표자를 뽑아서 바로 그 절반에 의해서 선출되게 했다는 취지로 돌아다니고 있는 소문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사실은 정면대이다. 마르토프파는 유일한 양보로서 3명 중 1명을 우리에게 제시했으며, 결국 우리가 이 유일한 양보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그들은 모든 자리를 자신들의 후보자들로 채우고자 하였다! 내부 회합에서 우리는 마르토프파의 겸손함에 조소를 보내고 우리의 명부 글레 보프, 트라빈스키(이후에 중앙위원으로 선출된다)[크루지자노프스키의 가명 편집자], 포포프 를 작성했다. 우리는 다시 포포프를 바실리에프 동지(이후에 중앙위원으로 선출된다)[벤그니크의 가명 편집자]로 교체했는데(역시 24명의 내부 회합에서), 그것은 단지 포포프 동지가 우리가 만든 명부에 포함되기를 처음에는 사적인 대화에서, 다음에는 대화에서 공개적으로 거절(338)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사태의 진상이다.

 

겸손한 소수파는 다수파가 되기를 겸손하게 희망하였다. 이 겸손한 희망이 이루어지지 않자, ‘소수파는 기꺼이 모든 것을 거부하였고 소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다수파비타협성에 대해 독단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회에서의 자유로운 선동이라는 활동 무대에서 소동을 일으키면서 소수파다수파에게 우스랑스러운 최후통침을 내놓았던 것이다. 우리의 영웅들은 패배를 맛보고 난 후 눈물을 흘리며 게임 상태에 대해 울부짖기 시작했다. Voila tout[이것뿐이다 편집자].

 

우리가 편집국의 구성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는 무서운 비난도 우리들은 역시 미소로 받아들였다(24명의 내부 회합에서). 3인조를 먼저 선출해서 편집국을 재구성하고자 했던 계획은, 대회 초기부터 심지어 대회 이전부터 모든 사람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대회에서의 편집국 선출 문제에 대해 서술할 때 이 문제에 대해 더욱 상세히 설명하였다). 이 계획의 정당성이 소수파와 반이 스크라파의 연합으로 훌륭히 입증된 후에 소수파가 이 계획에 대해 겁을 먹었다는 것은 별로 늘림지 않았다. 그것은 당연했다. 물론 우리는, 대회에서 한 번의 싸움도 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소수파가 되어야 한다는 제안을 심각하게 생각할 수는 없었다. 또한 기회주의라는 부당한 비난운운할 정도로 믿을 수 없는 격분 상태에 다다른 사람이 쓴 이 편지 전체를 심각하게 생각할 수도 없었다. 우리는 당직 의무에 대한 그들의 분별력이 울분을 터트리고자하는 그들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이내 이겨 나갈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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