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불꽃』과 『노동자의 대의』의 통합 시도
우리에게 남은 일은 『불꽃』이 『노동자의 대의』에 대한 조직적 관계에서 채택하여 일관되게 수행해 온 전술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이 전술은 이미 『불꽃』 제1호에 실린 「국외러시아사회민주주의자동맹의 분열」이라는 글에 충분히 표현되어 있다. 처음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관점, 즉 우리 당의 제1차 당대회에서 당의 국외 대표로 승인되었던 진짜 국외러시아사회민주주의자동맹이 두 개로 분열된 결과로 당의 대표권이라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으며[9], 분열된 동맹의 양측에서 각각 한 명씩 모두 두 명을 파리 국제 대회에서 상설적인 국제사회주의사무국[85]의 러시아 대표로 선출한 것으로는 그 문제가 임시적으로 또한 조건부로 해결되었을 뿐이라는 관점을 지지하였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노동자의 대의』가 틀렸다고 선언했으며, 원칙적인 측면에서 노동해방그룹[31]을 단호히 지지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분열의 세부적인 면은 파고들지 않기로 하고, 순수한 실천 활동 영역에서 동맹이 공헌한 바를 지적했다.
이처럼 우리의 입장은 어느 정도까지는 관망이었다. 우리는 대다수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에 지배적이었던 견해에 양보하였는데, 그 견해란 동맹이 수차례에 걸쳐 원칙적으로 노동해방그룹에 동의한다고 선언하였고 이론과 전술의 근본적인 문제들에서 독자적인 입장을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주의"의 가장 단호한 적들이라도 동맹과 제휴하여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취한 입장이 옳았음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의해 간접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불꽃』의 창간호가 발간된 것(1900년 12월)과 거의 동시에 동맹으로부터 세 사람이 떨어져 나와서 이른바 '발기인그룹'을 만들어 1) 『불꽃』조직의 국외 지부 2) 혁명조직 '사회민주주의자' 3) 동맹 등에 대해 화해를 위한 협상 수행의 중재자가 되겠다고 제안했다. 앞의 두 조직은 즉각 동의했지만 세 번째 조직은 거부했다. 사실, 작년의 "통합" 대회[1]에서 한 연사가 이 사실을 언급했을 때 동맹 집행부의 한 위원은 그들이 거부한 것은 순전히 발기인그룹의 구성이 못마땅했기 때문일 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해명을 여기에 소개해야 할 의무가 있는 입장에서, 나는 그것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동맹은 두 조직이 협상에 동의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다른 중재자를 통해서나 아니면 직접 이 조직들과 접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01년 봄, 『여명』(제1호, 4월)과 『불꽃』(제4호, 5월) 모두 『노동자의 대의』와의 직접적인 논쟁에 나섰다. 『불꽃』은 특히 『노동자의 대의』가 4월 특집호에서, 그러니까 이미 봄 사태[57]가 일어난 이후에, 테러와 "유혈" 사태에 몰두하는 것에 동요하는 태도를 드러내 보인 「역사적 전환」이라는 글을 공격했다. 이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동맹은 새로운 "조정자"그룹[87]의 중재 아래 화해 협상을 재개할 것에 동의했다. 6월, 앞서 거명한 세 조직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예비 회의가 열려 세부적인 "원칙 협정"에 기초한 협약의 초안이 작성되었다. 동맹은 이 원칙 협정을 소책자 『두 대회』에 게재하였고, 연맹은 소책자 『'통합' 대회 문서』에 실은 바 있다.
이 원칙 협정(이는 6월 회의 결의라 불리는 경우가 더 많다.) 의 내용을 보면, 우리가 기회주의 일반, 특별하게는 러시아 기회주의가 발현되는 온갖 형태를 가장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을 통합의 필수 조건으로 내세웠음을 명백히 알 수 있다. 그 제1조는 다음과 같이 공표하고 있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에 기회주의를 도입하려는 온갖 시도 — 이른바 '경제주의', 베른슈타인주의, 밀레랑주의 등등으로 표현된 온갖 시도 — 를 거부한다." "사회민주주의 활동의 범주에는…… 혁명적 맑스주의의 모든 적에 대한 사상투쟁이 포함된다."(제4조 제3항.) "조직 및 선동 활동의 모든 분야에서 사회민주주의당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당면 임무, 즉 전제주의의 타도를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제5조 제1항.) "…… 자본에 대한 임금노동의 일상적 투쟁만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닌 선동."(제5조 제2항.) "순수한 경제투쟁과 부분적인 정치적 요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단계를…… 인정하지 않으며……"(제5조 3항.) "…… 운동의 낮은 형태의 협소성과…… 원시성을…… 원칙으로 격상시키는 경향을 비판하는 것이 운동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제5조 4항.) 완전히 제삼자라 할지라도 이 결의들을 어느 정도 꼼꼼히 읽어 보았다면, 정식화된 문구들 자체만 보아도 이 결의가 기회주의자들, "경제주의자들", 한순간이라도 전제주의 타도의 임무를 잊은 사람들, 단계론을 인정하고 협소성을 원칙으로 격상시킨 사람들 등에 반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노동해방그룹[31], 『여명』, 『불꽃』 등이 『노동자의 대의』와 벌인 논쟁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결의가 『노동자의 대의』가 빠져들었던 오류를 조목조목 배격하고 있음을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합" 대회에서 동맹의 한 성원이 『노동자의 대의』 제10호의 기사들은 동맹의 새로운 "역사적 전환"에 의해 유발된 것이 아니라 결의의 지나친 "추상성" 때문에 쓰인 것이라고 밝히자, 한 연사가 정당하게도 이를 한껏 비웃었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결의는 추상적이지 않을뿐더러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구체적이다. 그 결의가 '누구를 불잡았는지'는 언뜻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을 정도다."
이 마지막 표현이 대회에서 특징적인 사건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끄리첸스키가 "불잡았다"라는 말을 불잡고 늘어지며, 그것이 우리 측의 악질적인("덧을 놓으려는") 의도를 드러낸 실언이라고 단정하고, 비장한 어조로 "도대체, 누구를, 여기서 누구를 불잡았단 말인가?"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플레하노프가 비웃으며 "정말, 그게 누구지?"라고 물었다. 끄리첸스키는 이렇게 대답했다. "눈치 없는 플레하노프 동지를 내가 도와드리지. 내가 설명하겠소. 여기서 불잡은 건『노동자의 대의』편집국이오. (모두 폭소를 터뜨린다.) 그렇지만 우리는 불잡히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소!" (원쪽에서 "당신들로선 그게 더 나쁘 거요!"라고 지적하는 소리가 들린다.) 다른 한편으로는 "투쟁"그룹(조정자 그룹)의 한 성원이 동맹이 결의안을 수정하려는데 반대하고 우리의 연사를 변호하려 하면서, "불잡았다"라는 표현은 논쟁의 열기 때문에 무심코 나온 말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내 입장을 말해 보자면, 그러한 "변호"가 그 표현을 사용한 연사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누구를 불잡았다"라는 말이 농담이긴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주 신중히 생각한 끝에 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항상『노동자의 대의』가 무원칙하게 흔들리고 동요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따라서 당연히『노동자의 대의』가 앞으로는 더 이상 동요하지 못하도록 불잡으려 노력해야만 했던 것이다. 악질적인 의도는 여기서 문제의 핵심이 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원칙의 흔들림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끄리첸스키 자신과 동맹 집행부의 다른 한 위원이 6월 결의에 서명할 정도로, 무척 동지적으로* 동맹을 "불잡을" 수 있었다.
『노동자의 대의』 제10호의 글들(우리 동지들은 대회에 도착해서, 회의가 시작되기 몇 시간 전에야 거우 그것을 보게 되었다.)은 여름과 가을 사이에 동맹 내부에서 새로운 전환이 일어났음을 명확히 보여 주었다. "경제주의자들"이 또다시 상충부를 차지했으며, 온갖 "아주 가벼운 바람"에도 순종적인 편집진은 "가장 이름을 멀친 베른슈타인주의자들"과 "비판의 자유"를 또 다시 옹호하고, "자생성"을 옹호하고, 우리의 정치적 영향력을 (영향력 자체를 더 복합적으로 만든다는 구실로) "축소하는 이론"을 마르티노프의 입을 빌려 설교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어떤 정식으로도 기회주의자를 포착하기는 어렵다고 한 바르부스의 적확한 표현이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기회주의자는 어떤 정식이든 쉽게 서명하고 또 쉽게 버린다. 왜냐하면 기회주의의 본질이란 바로 어떤 일정하고 확실한 원칙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회주의자들은 오늘은 기회주의를 도입하려는 온갖 시도를 배격하고, 온갖 협소함을 배격하며, "한순간도 전제주의 타도를 잊지 않으며, 자본에 대한 임금노동의 일상적 투쟁만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닌 선동"을 수행하겠다고 당당하게 약속한다. 그러나 내일이면 그들은 표현법을 바꾸고 자생성 옹호니, 지루한 일상 투쟁의 단계적 진전이니, 가시적인 결과들을 약속하는 요구의 찬양이니 하는 형태로 낡은 일에 다시 매달린다. 제10호에서 동맹은 "회의 초안의 일반적 원칙들로부터 이단적으로 이탈한 그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두 대회』26쪽)라고 계속 주장함으로써, 자신이 의견차이의 핵심을 이해할 능력이 전혀 없거나 아니면 그럴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노동자의 대의』제10호가 나온 이후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은 하나도 없었다. 그것은 동맹이 과연 편집국과 연대하고 또 이 글들과 연대하고 있는지 여부를 확실히 하기 위한 전체적인 토론을 시작하는 일이었다. 동맹은 이 일 때문에 우리에게 특히 불만을 품고, 우리가 동맹 내에 불화를 조성하려 한다고, 또 남의 일에 끼어들고 있다고 우리를 비난한다. 이러한 비난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주 가벼운 바람에도 "방향을 바꾸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편집국하에서는 모든 것이 그야말로 바람의 방향에 달려 있는데, 우리는 조직 통합을 위해 모인 성원들만으로 구성된 비공개 회의에서 그 방향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동맹의 이름으로 제출된 6월 결의 수정안은 협정을 기대하는 마지막 희망마저도 우리에게서 앗아 가 버렸다. 이 수정안은 "경제주의"로 새로이 전환했음과 동맹의 대다수가 『노동자의 대의』와 연대하고 있음을 문서상으로 증명해 준 것이다. 기회주의의 발현 범주에서 "이른바 경제주의"가 삭제되었고(이 두 단어의 의미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 그런 것이 동기라면 널리 유포되어 있는 오류의 본질을 더 정확히 규정할 필요성만 더 분명해짐에도 불구하고), "밀레랑주의"도 삭제되었다(비록 끄리첸스키가 『노동자의 대의』 제2~3호 83~84쪽에서, 그리고 『전진』에서 더 직설적으로 그것을 옹호했을망정*). 6월 결의가 사회민주주의당의 임무, 즉 "모든 형태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억압에 맞선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이 나타나는 온갖 발현을 지도한다."라는 임무를 분명히 적시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 모든 발현에 계획성과 통일성을 도입할 것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동맹은 "경제투쟁은 대중운동의 강력한 자극제이다."라는 전혀 쓸데없는 문구를 여기에 추가했다. (이 말들은 그 자체로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협소한 "경제주의"가 존재하는 한, 잘못된 해석의 단서를 제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뿐 아니라, "한순간이라도"라는 말을 삭제하고 "경제투쟁은 적극적인 정치투쟁으로 대중을 끌어들이기 위해 가장 널리 적용될 수 있는 수단이다."라는 말을 추가함으로써, 6월 결의 속의 "정치"를 전적으로 축소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수정안이 제출된 이후 우리 측 모든 연사가 한 사람씩 연이어 발언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또다시 "경제주의"로 방향을 틀고 동요의 자유를 보장하는 사람들과 이후에 계속 협상을 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을 깨달았던 것이다.
"동맹이 생겨날 협정의 영구성, 즉 『노동자의 대의』의 독자적인 면모와 자율성 유지를 위해 sine qua non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건으로 간주한 것, 바로 그것을 『불꽃』은 협정의 걸림돌로 여겼다."(『두 대회』25쪽.) 이 말은 매우 부정확하다. 우리는 한 번도 『노동자의 대의』의 자율성을 침해한 적이 없다.『면모의 독자성』에 관해 말하자면, 그 말이 이론과 전술의 원칙적 문제들에서의 "면모의 독자성"을 의미하는 한, 우리는 실제로 『노동자의 대의』의 면모의 독자성을 절대적으로 배격하였다. 6월 결의는 바로 그러한 면모의 독자성을 절대적으로 배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왜냐하면 실천에서 "면모의 독자성"이라는 것은 언제나 — 거듭 말하지만 — 갖가지 동요를 의미하고, 우리에게 만연해 있는 당 관계에서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분열이 그러한 동요에 의해 유지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노동자의 대의』제10호와 「수정안」은 바로 이런 면모의 독자성을 유지하려는 바람을 명백히 보여 준 것이며, 그러한 바람은 당연히, 그리고 필연적으로 분열과 전쟁 선포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독자적 면모"라는 말이 『노동자의 대의』가 일정한 문필 기능에 집중한다는 의미라면, 우리 모두는 『노동자의 대의』의 "독자적 면모"를 승인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러한 기능들을 올바르게 분화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 나온다. 1) 학술 잡지 2) 정치 신문 3) 대중적 문집과 대중적 소책자. 이러한 분화에 동의할 때에만, 6월 결의를 거스르는 오류들을 최종적으로 청산하기를 『노동자의 대의』가 진심으로 원하고 있음이 증명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분화만이 온갖 분열의 가능성을 제거하고, 협정의 영구성을 실제로 보장하고, 동시에 우리 운동의 새로운 고양과 새로운 성공의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혁명적 경향과 기회주의적 경향의 최종적인 분열은 어떤 "조직상의" 상황으로 인해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기회주의의 독자적 면모를 공고히 하고 끄리첸스키와 마르티노프 같은 자들의 논리로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기회주의자들의 바람으로 인해 야기되는 것이라는 점을 이제는 단 한 사람의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도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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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정정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141쪽[90]에서 언급한 발기인그룹이 나에게 국외 사회민주주의 조직의 화해 시도에 그 그룹이 참여한 것을 서술한 부분을 다음과 같이 정정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그룹의 세 명의 성원 가운데 한 명만이 1900년 말에 동맹을 탈퇴했으며, 나머지 두 명은 동맹으로부터 『불꽃』의 국외 조직 및 '혁명조직사회민주주의자'와 회의를 하겠다는 동의를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확신한 1901년 이후에야 탈퇴하였는데, 그 회의는 발기인그룹이 제안한 것이었다. 동맹의 집행부는 이 제안을 처음부터 거부하였다. 그들이 제시한 거부의 동기는 중재자인 발기인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의 '자격 미달'이었다. 그리하여 동맹은 『불꽃』의 국외 조직과 직접 접촉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동맹의 집행부가 발기인그룹에게 통보한 내용은 동맹 내부의 분열에 대해 언급한 글이 게재된 『불꽃』 창간호가 나온 이후에 동맹은 이 결정을 번복했으며 『불꽃』과 접촉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있는 후, 동맹이 회의를 거부한 것은 순전히 발기인그룹의 최종 구성이 불만스러웠기 때문이라고 동맹의 집행부의 한 위원이 말한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실, 작년 6월에 동맹 집행부가 회의에 동의한 것 역시 분명치가 않다. 왜냐하면 『불꽃』 창간호의 기사가 여전히 영향력이 있었던 데다가, 6월 회의가 열리기 전에 나온 『여명』의 창간호와 『불꽃』 제4호에서 동맹에 대한 『불꽃』의 '부정적인' 태도가 더욱더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