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전 러시아적 정치 신문 "계획"
B. 끄리첸스키는 우리가 "이론을 실천으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생기 없는 교조로 만들어 버렸다."(『노동자의 대의』 제10호 30쪽)라고 비난하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불꽃』이 범한 가장 큰 실책은 전체 당 조직 '계획'이다." (「무엇으로부터 시작할 것인가?」를 이르는 말이다.) 마르티노프도 그에게 맞장구치면서 이렇게 공언한다. "완전무결하고 빛나는 사상의 선전에 비해 지루한 일상 투쟁의 단계적 진전이 갖는 의미를 축소하는『불꽃』의 경향은…… 제4호에 게재한「무엇으로부터 시작할 것인가?」에서 제안한 당 조직 계획으로 대미를 장식했다."(같은 책 61쪽.) 마침내 아주 최근에는 이 "계획"(따옴표는 이 단어를 비꼬는 태도를 표현한 것이다.)에 격분한 사람들 편에 L. 나제주진도 합류했으니, 그는 우리가 지금 막 입수한『혁명 전야』라는 소책자(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혁명적 사회주의자 그룹" 자유가 간행한 것)에서 "지금, 전 러시아적 신문으로부터 실천법 뿐이 나오는 조직에 관해 말하는 것은 탁상공론적인 사고와 활동을 번식시키는"(126쪽) 것이며 "머물근성"의 발현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테러주의자가 "지루한 일상 투쟁의 단계적 진전"을 옹호하는 자들과 연대했다는 것, 이는 정치와 조직에 관한 앞의 장들에서 우리가 그 친밀성의 뿌리를 추적한 연후에는 이미 놀라운 일일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나제주진이, 오직 그 혼자만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의 사상적 흐름을 탐구하고 본질적으로 이에 대응하려 노력했다는 사실을 지적해야만 한다. 반면에 『노동자의 대의』는 핵심적인 것은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극히 무례한 데마고그와 같은 언동을 쏟아내는 것으로 문제를 혼란시키려고만 했다. 따라서 아무리 불쾌하더라도 이 아우게이아스 왕의 마구간을 청소하는 데 우선 시간을 할애해야만 한다.[75]
1. 「무엇으로부터 시작할 것인가?」라는 글 때문에 분개한 사람은 누구인가?
『노동자의 대의』가 우리에게 퍼부은 한 다발의 표현과 외침을 인용해 보자. "당 조직을 창건할 수 있는 것은 신문이 아니다. 실은 그 반대다." …… "당 위에 군림하고, 당의 통제 밖에 있으며, 독자적인 임무 대행자들의 망을 가지고 당으로부터 독립해 있는 신문" …… "『불꽃』은 어떻게 자신이 속해 있는 당에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사회민주주의 조직을 망각할 수 있는가?"
"견고한 (굳건한) 원칙과 그에 상응하는 계획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당 계획의 수행을 강제하는 당의 실질 투쟁의 최고 조정자들이다." …… "그 계획은 살아 있는 조직, 우리의 생사를 건 조직들을 그림자의 왕국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것은 임무 대행자들의 환상적인 망에 생명을 불어넣었으면 한다." …… "만일 『불꽃』의 계획이 실행에 옮겨진다면, 지금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우리 러시아사회민주주의노동자당의 발자취는 일소되고 말 것이다." …… "선전 기관지가 실천적 혁명 투쟁 전체의 전제주의적 입법자, 통제 불능의 입법자가 될 것이다." …… "우리 당은 당이 권위주의적인 편집국에 완전히 종속되는 것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기타 등등.
이 인용문들의 내용과 어조에서 독자 여러분이 느낄 수 있듯이 『노동자의 대의』는 분개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의 대의』가 분개한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당 조직들과 위원회들을 위해서이니, 마치 『불꽃』이 그것들을 그림자의 왕국으로 몰아넣고 그 발자취를 일소해 버렸으면 한다는 듯 말이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한번 생각해 보라!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무엇으로부터 시작할 것인가?」가 나온 것은 1901년 5월이었는데, 『노동자의 대의』의 글들은 1901년 9월에 나왔다. 그리고 지금은 벌써 1902년 1월 중순이다. 이 5개월 동안(9월까지, 그리고 9월 이후) 단 하나의 위원회나 단 하나의 당 조직도 이 계획에 반대하는 형식적인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이 계획이 위원회와 당 조직들을 그림자의 왕국으로 몰아넣었으면 하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이 기간 동안 『불꽃』, 여러 지역 간행물, 지역적이지 않은 간행물 등에는 러시아 각지에서 보내 온 수십 수백 건의 소식이 실렸다. 그림자의 왕국으로 몰려날 뻔했던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또 분개하지도 않았는데, 제삼자가 분개하는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단 말인가?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은 여러 위원회들과 다른 조직들이 "민주주의" 게임이 아니라 현실적인 과업으로 바빴기 때문이다. 위원회들은 「무엇으로부터 시작할 것인가?」를 읽고 나서 그 글이 "모든 분파가 조직 건설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일정한 계획을 정돈하려는" 시도임을 알았다. 그들은 조직 건설의 필요성과 그 건설 계획의 올바름을 확신하지 않는 한 이 "모든 분파" 가운데 어느 하나도 "건설에 착수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불꽃』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사람들의 불순함에 대해서도 "분개할" 생각을 당연히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문제가 시급하고도 중요하므로 우리는 이 계획의 윤곽을 동지들 앞에 감히 제안하는 바이다. 이 계획은 지금 발간을 준비 중인 소책자에서 상세히 개진될 것이다." 라고 말한 사람들의 불순함에 대해서 그랬다는 말이다. 이 문제에 성실하게 임한다면, 다음과 같은 사실, 즉 만일 동지들이 그 계획을 받아들인다면 그들은 "종속" 되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공동 과업을 위해서 그 계획이 필요함을 확신하기 때문에 그것을 실천하게 될 것이며 만일 그들이 계획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윤곽"(얼마나 거만한 단어인가?)은 그저 윤곽으로 남을 뿐이라는 사실을 과연 이해하지 못할 수가 있다 말인가? 동지들에게 계획을 "힐뜯으며" 거부하라고 권할 뿐만 아니라, 윤곽을 작성한 사람들이 "입법" 능력이 있는 "최고 조정자들"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즉 그들이 계획의 윤곽을 제안할 능력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혁명 과업의 경험이 일천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공격하도록 부추기는 식으로 계획의 윤곽에 대항해 싸우기까지 한다면, 이것이 과연 데마고그가 아니고 무엇인가? 지역 활동가들을 더 폭넓은 관점, 임무, 계획 등의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끌어올리려 시도한다고 이를 반대한다면, 그것도 이 관점이 옳지 않다는 견지에서 뿐만이 아니라 "끌어올리고" "싶어 한다"라는 것에 "분개"해서도 반대한다면, 과연 우리 당이 발전하고 전진할 수 있겠는가? 사실, 나제주진 역시 우리의 계획을 "힐뜯었"지만, 그는 정치적 관점의 원시성이나 순진함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그런 데마고그의 차원으로까지 타락하지는 않았다. 그는 "당 위에 군림하는 감독권"에 대한 비판을 애초부터 단호히 거부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제주진에게는 계획에 대한 그의 비판의 핵심을 잡아 답변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하지만, 『노동자의 대의』에게는 오직 경멸로 답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전제주의 정치"니 "종속"이니 외칠 정도로 스스로를 비하하고 있는 필자들을 경멸한다고 해서, 그들이 독자들에게 선사하고 있는 혼란을 풀어 줄 의무가 우리에게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우리는 "광범위한 민주주의"에 관해 횡행하는 이 문구들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모든 사람에게 일목요연하게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위원회를 망각하고 있다느니, 위원회를 그림자의 왕국으로 몰아넣으려 한다느니 등등의 말로 우리를 비난한다. 우리가 보안 조건 때문에 위원회와 우리의 실제적 관계에 관해서 독자들에게 아무런 사실적인 설명을 할 수 없다면, 어떻게 이 비난에 답해야 하는가? 신랄하고 자극적인 한 다발의 비난을 퍼부어 대는 사람들이 우리의 선두에 서 있는 것은 그들이 혁명가의 의무, 즉 지금 가지고 있거나 맺으며 하거나 맺고 있는 관계들을 철저히 숨겨야 하는 의무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들이 그만큼 뻔뻔스럽기 때문이다. 분명 우리가 이런 사람들과 "민주주의"의 무대에서 경쟁하는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당의 모든 과업을 알지 못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그런 독자들에게 우리의 의무를 다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 존재하거나 진행 중에 있는 일이 아니라 과거에 있었던, 또 과거를 말하듯 말해도 되는 아주 작은 부분들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다.
분트[53]는 우리가 "참칭자"라는 암시를 흘리고, 국외의 "동맹"은 당의 발자취를 일소하려 시도한다며 우리를 비난한다. 원하는 대로 하시게나, 신사 양반들. 우리가 네 가지 과거지사를 공개한다면 당신들은 매우 흥겨워 할 것이다.[77]
첫째* 사실. 우리 당의 형성에 직접적으로 참여했고 창당대회에 대표를 파견하기도 했던 투쟁동맹의 한 조직의 조직원들이『불꽃』그룹의 조직원 일부와 전체 운동의 요구를 충족시킬 노동자 특별 도서관을 건립하기로 합의한다. 노동자 도서관 건립은 성공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것을 위해 집필된 소책자들인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임무』[51]와 『새 공장법』은 우회로와 제삼자를 거쳐 국외로 보내지고 그곳에서 출판된다.
둘째 사실. 분트 중앙위원회 위원들이 『불꽃』 그룹의 조직원 한 사람에게 "문헌 연구실" — 그때 분트가 표현했던 바대로 하자면 — 을 조직하자고 제안한다. 더욱이 그들은 만일 이 일이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 운동이 크게 퇴보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그 협상의 결과가 『러시아 노동자의 대의』라는 소책자다.
셋째 사실. 분트 중앙위원회는 어떤 지방 도시를 통해 『불꽃』 조직원 한 사람에게 복간되는 『노동자 신문』의 편집부를 책임져 달라고 제안하고, 당연히 동의를 받는다. 이 제안은 그 후 변경된다. 편집부가 새롭게 구성되므로 기고자가 되어 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물론 그 동지는 이 또한 동의한다. 다음과 같은 기사들이 도착한다. (우리는 이를 보관해 놓을 수 있었다.) 베른슈타인주의에 대해, 그리고 합법 저술 및 『노동자의 사상』의 변절에 대해 직접적으로 항의하고 있는 「우리의 강령」, 「우리의 당면 임무」("모든 지역 그룹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규칙적으로 발행되는 당 기관지의 조직", 만연해 있는 "수공업성"의 결함에 대해 말한 글), 「긴급한 문제」(공동의 기관지 조직 작업에 앞서 지역 그룹들의 활동을 우선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반박을 분석하고, "혁명 조직"의 일차적 중요성과 "조직, 규율, 보안 기술을 완벽한 수준으로 올려놓을" 필요성을 주장한 글). 『노동자 신문』 복간 제안은 실현되지 못하고, 이 기사들은 출간되지 않는다.
넷째 사실. 우리 당의 제2차 정기 당대회 조직위원회의 한 성원이 『불꽃』 그룹의 조직원에게 대회의 일정을 알리고, 복간되는 『노동자 신문』의 편집 책임을 이 그룹에 맡긴다. 후에 조직위원회도, 분트 중앙위원회도 이 성원의 사전 — 말하자면 — 작업을 재가한다. 『불꽃』 그룹은 대회 장소와 일시를 통고받는다. 하지만 『불꽃』은 (몇 가지 이유 때문에, 대회가 과연 열릴 것인지, 그래서 이 대회에 대표를 파견해야 할지를 확신하지 못하여) 대회에 보내는 서면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 보고서에는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것과 같은 완전한 혼란의 시기에는 중앙위원회의 선출 하나만으로는 조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생각, 보안이 확연히 결여된 상태에서는 침탈의 가능성이 그 무엇보다 높으며 새로이 신속하고 완전한 침탈이 있을 경우에는 위대한 당 창건 사상이 훼손될 위험이 있다는 생각, 이런 까닭에 모든 위원회와 다른 모든 조직에게 혁신적인 공동의 기관지를 지원할 것을 요청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 공동의 기관지가 모든 위원회를 사실적인 관계로 실제로 묶어 줄 것이며 전체 운동의 지도부를 실제로 준비할 것이며, 이렇게 위원회에 의해 창출된 그룹이 성장하고 강화되기만 하면 각 위원회들과 당은 이 그룹을 쉽게 중앙위원회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생각 등이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일련의 침탈로 대회는 성사되지 못하고, 보안 문제를 다룬 보고서는 몇몇 동지들과 한 위원회의 전권 위원들만 읽은 후에 사장된다.
이제 독자들에게는 분트측의 참칭에 대한 암시나, 우리가 위원회들을 그림자의 왕국으로 몰아넣고 당 조직을 한 신문의 사상을 유포하는 조직으로 "대체하라" 한다는 『노동자의 대의』의 논거가 보이는 태도의 성격을 스스로 판단하기 바란다. 우리는 여러 위원회들의 수차례에 걸친 요청에 따라, 일정한 공동 작업의 계획을 승인해야 할 필요성을 바로 그 위원회들에게 보고해 왔다. 바로 당 조직을 위해, 이번에도 역시 당의 (사실상의) 재건을 주도하고 있던 당내 영향력 있는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던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우리는 『노동자의 사상』에 보낸 글과 당대회 보고서에서 이 계획을 개진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당의 중앙기관지를 공식적으로 부활시키기 위해 당 조직과 우리가 함께 기울인 두 차례에 걸친 시도가 실패로 끝난 후에야, 세 번째 시도에서 동지들이 어떤 의심스러운 가정이 아니라 경험의 일정한 결과물들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우리의 직접적 의무는 비공식적 기관지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현재 이 경험의 몇몇 결과들은 이미 모든 사람의 눈앞에 펼쳐져 있다. 따라서 모든 동지는 우리가 자신의 의무를 올바르게 이해했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가 어떤 예를 통해서는 "전국적" 문제에서 자신들이 보인 일관성 없음을 증명하고 다른 예를 통해서는 무원칙한 동요는 허용될 수 없음을 증명했다는 사실에 화가 나서 최근의 과거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미혹하려 애쓰는 사람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해야 할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2. 신문이 집단적 조직가일 수 있는가?
「무엇으로부터 시작할 것인가?」라는 글의 모든 핵심은 바로, 이 문제를 제기하고 그렇다는 답을 내렸다는 점이다. 우리가 아는 한, 이 문제를 본질적으로 분석하고 그렇지 않다는 점을 입증하려고 시도한 유일한 사람이 나제주진이다. 그의 논거 전체를 여기 옮겨 보겠다.
…… 우리는 『불꽃』(제4호)이 전 러시아적 신문의 필요성이라는 문제를 제기해 주어 무척 기쁘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문제 제기가 「무엇으로부터 시작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진행되는 데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이는 의심할 바 없이 매우 중요한 여러 가지 일 중 하나지만, 그러한 신문이나 다중다양한 대중용 유인물들과 산더미처럼 쌓인 성명서 등으로는 혁명적 시기를 위한 전투조직의 초석을 다질 수 없다. 각 지역에 강력한 정치 조직을 건설하는 일에 착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조직이 없다. 우리가 주로 지적인 노동자들 사이에서 활동했던 반면, 대중들 거의 대부분은 경제투쟁만을 수행해 왔다. 만일 각 지역에 강력한 정치 조직들이 양성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탁월하게 조직된 전 러시아적 신문이라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타지 않는 가시나무 떨기, 스스로 타들어 가도 다 타지 못하고 아무것도 태울 수 없는 가시나무 떨기가 그것이 아니겠는가! 『불꽃』은 그런 일을 중심으로, 그런 일을 위한 활동에 사람들이 모이고 조직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구체적인 일들을 중심으로 모이고 조직되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훨씬 다가가기 가까울 것이다! 지역신문들을 광범위하게 발간하는 것, 시위를 대비해 노동자의 힘을 비축하는 것, 실업자들을 대상으로 지역 조직이 상시적으로 활동하는 것(그들에게 집요하게 전단을 돌리고, 그들을 집회나 정부에 대한 반격에 나오도록 촉구하는 등등) 등이 이러한 일에 해당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도록 해야 한다. 각 지역에서의 생생한 정치 활동을 시작해야 하며, 이러한 실질적인 기반 위에서 통합이 필요하게 될 때 그것은 인위적인 서류상의 통합이 아니게 될 것이다. 이처럼 지역 활동들을 전 러시아적 과업으로 통합하는 일을 하나의 신문이 해낼 수는 없는 것 아닌가!(『혁명 전야』54쪽.)
우리는 달변인 이 장광설에서 필자가 우리의 계획을 잘못 평가하고 있는 지점, 『불꽃』에 대립되는 그의 그릇된 관점 전반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부분들을 강조해 놓았다. 각 지역에 강력한 정치 조직들이 양성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탁월한 전 러시아적 신문이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은 전적으로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전 러시아적 신문 외에는 강력한 정치 조직들을 양성할 다른 수단이 없다는 것이 사태의 핵심이다. 윗글의 필자는 『불꽃』이 "계획"의 서술로 넘어가기 전에 가장 핵심적으로 선언한 것을 보지 못했다. 모든 세력을 통합하여 명세만이 아니라 실제로 운동을 지도할 능력이 있는 혁명 조직, 말하자면 "결정적인 전투에 적합한 군사력을 배가시키고 강화하기 위하여 모든 폭동과 항의를 활용하면서 그러한 폭동과 항의들을 언제라도 지원할 준비를 항상 갖추고 있는 조직을 건설하자고 촉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것이다. 『불꽃』은 그 말에 이어, 하지만 2~3월을 겪은 지금은 모두 이러한 점에 원칙적으로는 찬성할 것이라고 썼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문제를 원칙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다양한 세력들 모두가 지금 바로 건설에 착수할 수 있도록 일정한 건설 계획을 즉각 제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천적인 결정으로부터 우리를 또다시 뒤로, 즉 원칙적으로 올바르고 논쟁의 여지없이 원대한, 그러나 활동하는 광범위한 대중에게는 그야말로 부족하고 이해할 수 없는 진리인 "강력한 정치 조직들을 양성하자"라는 말로 잡아당기는 사람들이 있다니! 존경하는 필자 양반, 문제의 핵심은 그 점이 아니오. 바로 어떻게 그것을 양성하고 완성해야 하나나, 그것이 문제란 말이오!
"우리가 주로 지적인 노동자들 사이에서 활동했던 반면, 대중들 거의 대부분은 경제투쟁만을 수행해 왔다."라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이런 형식의 주장은 지적인 노동자와 "대중"을 근본적으로 대립시키는 오류로 빗나가기 십상이지만, 『자유』로서는 이러한 대립이 아무렇지도 않다. 최근 몇 년 동안 러시아에서 지적인 노동자들 역시 "거의 대부분은 경제투쟁만을 수행해 왔다." 이것이 하나의 측면이다. 다른 측면은 우리가 지적인 노동자 및 지식인 출신의 정치투쟁 지도자들이 양성되도록 돕지 않는 한, 대중은 결코 정치투쟁을 수행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그러한 지도자들이 양성되는 것은 우리의 정치생활의 모든 측면, 다양한 계기로 벌어지는 다양한 계급의 갖가지 항의와 투쟁의 시도를 일상적이며 체계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정치 조직의 양성"을 논하는 동시에 정치 신문을 "서류상의" 일이라며 "각 지역에서의 생생한 정치 활동"에 대립시키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사실 『불꽃』은 실업자 운동, 농민 폭동, 지방의원들의 불만, "미쳐 날뛰는 짜르의 주구들에 대한 주민의 분노" 등등을 지지하기 위한 "전투적 준비 태세"를 조직하려는 "계획"의 하위 범주로 신문 "계획"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 점을 거의 대다수의 지역 조직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 여기서 지적하고 있는 "생생한 정치 활동"의 전망 가운데 많은 것을 단 하나의 조직도 실제로 한 번도 구현한 적이 없다는 것, 시의회의 지식인들 사이에 증가하고 있는 불만과 저항에 주의를 기울이려 시도한 것이 나제주진("하느님, 이 신문은 시 의원들의 신문이 아니라 말입니까?" 『전야』129쪽)에게도, "경제주의자들"(『불꽃』제12호 편지)에게도, 그리고 수많은 실천가에게도 곤혹스런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 따위는 운동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누구나가 다 상세히 알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사람들이 이 모든 점을 생각하도록 각성시키고, 적극적인 투쟁과 민심의 동요가 터져 나오는 실낱같은 빛이라도 모조리 끌어모아 종합할 수 있도록 그들을 각성시키는 것 뿐이다. 사회민주주의적 임무가 펼히지는 우리 시대에 "생생한 정치 활동"은 오로지 생생한 정치 선동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 그것은 정기적으로 배포되고 자주 발간되는 전 러시아적 신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불꽃』의 "계획"이 "먹물 근성"의 발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계획의 핵심 자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며, 지금 시기에 가장 적합한 수단으로 제기되는 것을 목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우리가 제출한 계획을 일목요연하게 보여 준 두 가지 비교에 관해서 생각해 보려고 노력한 적도 없다. 『불꽃』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 러시아적 정치 신문의 발간은 하나의 주요한 줄이 되어야 하며, 그 줄로 우리는 이 조직(즉 갖가지 저항과 폭발을 언제라도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는 혁명 조직)을 흔들림 없이 발전시키고, 심화시키고, 확대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번 말씀해 보시라. 석공이 그 예를 찾을 수 없는 대규모 건설을 위해 여러 지점에 초석을 깔 때, 각각의 돌은 물론이고 앞에 놓인 돌과 뒤에 놓을 돌을 연결하여 포괄적이고 최종적인 선을 그릴 돌조각들까지도 제자리를 찾아 서도록 하고 또한 전체 작업의 최종 목표를 지시하는 올바른 포석 지점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줄을 긋는 것은 "서류상의" 일이 아니라 말인가? 그런데 우리가 바로 우리 당의 생애서 이런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에게는 돌도 있고 석공도 있지만,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고 종사할 수 있는 줄, 바로 그것이 없다. 우리가 그 줄을 그음으로써 통제하려 한다고 마음대로 소리치게 내버려 두자. 신사 양반들, 우리가 통제를 원했다면 몇몇 동지들이 우리에게 권했듯이 『불꽃』 제1호 대신에 『노동자 신문』 제3호를 냈을 것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사건들이 있은 후에 우리에게는 그렇게 할 충분한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리는 온갖 사이비 사회민주주의자들과 비타협적인 투쟁을 수행하기 위한 자유로운 손을 갖고 싶었다. 우리는 우리의 줄이 올바르게 그어진다면 그 줄이 공식적인 신문이 그은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올바르기 때문에 존중되기를 원했다.
"지역 활동을 중앙 기관들로 통합시키는 문제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통합을 위해서는 여러 요소가 동질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이 동질성 자체는 어떤 통일자만이 창출할 수 있을 뿐인데, 이러한 통일자로 될 수 있는 것은 지금은 동질성을 조금도 갖고 있지 않은 강력한 지역 조직들의 성과물이다." 이것이 나제주진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다. 이는 강력한 정치 조직을 양성해야 한다는 것만큼이나 존경할 만하고 논쟁의 여지가 없는 진실이다. 또한 그만큼 무의한 진실이다. 정치생활 전체가 끝없는 고리로 연결된 끝없는 사슬이기 때문에, 문제라는 문제는 모두 "악순환에 빠져 있다." 정치가의 모든 기술의 핵심은 현 시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한 고리, 손에서 미끄러져 나가지 않을 수 있는 고리, 틀어쥔 사람이 사슬 전체를 거머쥘 수 있는 가능성을 가장 많이 보장해 주는 바로 그러한 고리를 찾아내고 그것을 굳게 틀어쥘 줄 아는 능력이다. 만일 우리에게 줄이 없어도 필요한 바로 그 지점에 돌을 놓을 수 있을 만큼 장단이 잘 맞게 된 노련한 석공 한 부대가 있다면(추상적으로 말하자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우리는 다른 고리에 매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단이 잘 맞는 노련한 석공이 우리에게는 아직 없다는 것, 어느 곳을 봐도 돌들이 함부로 쓸데없이 놓여 있다는 것, 돌들이 전체적인 줄을 따라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돌이 아니고 모래라도 되는 양 적들이 휩쓸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띄엄띄엄 흩어져 있다는 것이 비극의 핵심이다.
또 하나의 비교. "신문은 집단적인 선전가, 집단적인 선동가일 뿐만 아니라 집단적인 조직가이기도 하다. 이 마지막 측면에서 볼 때, 신문은 세워지는 건물을 둘러싸고 세워 놓는 비계에 비교될 수 있으니, 그 비계에 의해 건물의 윤곽이 드러나고, 각각의 건축가들 사이의 소통이 용이해지며, 작업이 분배되며, 조직적 노력에 의해 달성된 공동의 성과를 쉽게 평가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어떻게 탁상공론가가 자기 역할을 과대평가하는 것과 비슷하단 말인가? 비계는 주거를 위해서는 전혀 불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비계는 나쁜 목재로 만들어지고 단기간만 세워지며, 건물이 대강이라도 완공되기만 하면 불쏘시개로 아궁이에 던져진다. 혁명 조직의 건설에 관해 말하자면, 경험이 입증하는 바는 때로는 비계 없이도 조직을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 70년대를 한번 생각해 보라. 그러나 지금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물을 비계 없이 올린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다.
나제주진은 이에 동의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불꽃』은 그런 일을 중심으로 그런 일을 위한 활동에 사람들이 모이고 조직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구체적인 일들을 중심으로 모이고 조직되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훨씬 다가가기 가까울 것이다!" 물론 그럴 것이다. "더 구체적인 일들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훨씬 가까울 것이다……" 러시아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우물에 침 뱉지 말라. — 그 물로 갈증을 풀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침 뱉은 우물물도 마다 않고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의 위대한 합법적 "맑스주의 비판자들"과 비합법적 『노동자의 사상』 추종자들이 더 구체적인 일이라는 미명 아래 어떤 추악한 일인들 뜻을 맞추지 못하겠는가! "더 구체적인 일들을 중심으로 훨씬 가깝게"라는 관습적인 논거로 정당화되어 온 우리의 소심함과 협소함과 창발성 결여로 인해 우리의 운동이 얼마나 짓눌려 왔던가! 더욱이 "탁상공론가"인 사람들을 특히 혹독하게 단죄하고, 아무것이나 다 "경제주의"라고 부르는 약점이 있다며 『불꽃』을 비난하며(자신의 재치를 과시하면서), 자신은 정통주의자와 비판자라는 이 이분법을 초월해 훨씬 높은 곳에서 있다고 생각하는 나제주진은 — 자신이 특히 "생활"에 민감하다고 여기면서도 — 자기 스스로도 분노하고 있는 협소함을 자신의 논거로 지지해 주고 있다는 사실, 자신이 침으로 범벅이 된 우물물을 죄다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분노에 찬 사람이 키도 없이 꽃도 달지 않고 70년대의 혁명가들처럼 "자생적으로" 내달리며 "자극적 테러", "농민의 테러", "경종 울리기" 등등의 꼬무니를 쫓아간다면, 협소함에 대한 가장 진실한 격분으로도, 협소함에 굴종하고 있는 사람들을 끌어올리려는 가장 뜨거운 바람으로도 아직은 불충분하다. 나제주진이 생각할 때, 모이고 조직되는 중심으로서 "훨씬 가까울" 것이라고 하는 그 "더 구체적인" 일이라는 것들을 한번 보라. 1) 지역신문들, 2) 시위 준비, 3) 실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 등이 그것이다. 언뜻 보기에도 이 모든 일은 뭐라도 말하기 위해, 정말 우연히, 되는 대로 주위 모든 것들임이 확연하다. 왜냐하면 이런 일들을 아무리 들여다보라도 "모으고 조직하기에" 특별히 적합한 어떤 것을 그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황당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제주진 스스로도 두 쪽 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할 때가 왔다. 각 지역에서는 극히 빈곤한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 말이다. 각 위원회들은 그들이 해낼 수 있는 일의 심분의 일도 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우리에게 있는 통합의 중심 조직들은 서로 감투나 나눠 갖고 있는 허구적 기구이며, 혁명적 관료주의에 물들어 있다. 이런 현상은 강력한 지역 조직들이 성장하기 전까지는 계속될 것이다." 몇몇 과장된 표현이 있긴 하지만, 이 말 속에 많은 쓰디쓴 진실이 들어 있는 건 틀림없다. 나제주진은 지역 조직의 테두리에 갇혀 있는 활동가들의 준비 부족 상태에서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활동가들의 협소한 시야와 그들 활동의 협소한 규모가 각 지역에서의 빈곤한 활동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정말 모른단 말인가? 『자유』에 실린 조직에 관한 기사의 필자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광범위한 지역신문들로 활동을 옮겨 간 것(1898년부터)과 나란히 "경제주의"와 "수공업성"이 특히 강화되었다는 사실을 정말 있었단 말인가? 설령 "광범위한 지역신문들"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발간하는 것이 가능하다 할지라도(우리는 앞서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런 것이 불가능함을 보여 준 바 있다.), 그 경우에도 지역신문들이 전제주의에 대한 공동의 공격과 통일된 투쟁의 지도를 위해 혁명가들의 모든 역량을 "모으고 조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신문의 "모으는" 기능, 즉 조직가로서의 의의만을 다루고 있음을 잊지 말라. 그렇다면 우리는 나제주진이 제기한 역설적 문제를 산개성을 옹호하는 그 자신에게 되돌려 이렇게 제기할 수 있다. "어쨌거나 우리는 20만 명의 혁명적 조직가들을 유산으로 물려받지 않았던가?" 더 나아가 "시위 준비"는 『불꽃』의 계획과 대립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계획이 바로 가장 광범위한 시위를 여러 목표들 가운데 하나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실천적 수단을 채택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제주진은 또다시 혼란에 빠져 있다. "모이고 조직된" 군대만이 시위(지금까지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는 완전히 자생적으로 일어나곤 했던)를 "준비할" 수 있는 것인데, 우리에게는 모으고 조직할 능력이 그야말로 없다는 사실을 그는 간과한 것이다. "실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 또다시 똑같은 혼란이다. 왜냐하면 이것 역시 군대를 동원하기 위한 계획이 아니라 동원된 군대의 전투행위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제주진이 우리의 산개성과 "20만 명의 역량"의 부족함이 낳은 해악을 어느 정도까지 과소평가하고 있는지는 아래의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수많은 사람(나제주진을 포함하여)이 실업자 관련 자료가 빈약하고 농촌 생활의 가장 진부한 현상들에 관한 통신문들은 우발적인 것들이라며 『불꽃』을 질책했다. 이 질책은 정당한 것이다. 하지만 『불꽃』은 이 질책에서 "죄없는 죄인"이다. 우리는 농촌에도 걸치는 "줄을 그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농촌에는 석공이 그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진부한 사실일망정 그런 것을 알려 주는 사람 누구라도 우리는 격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농촌의 협력자 수를 배가시켜, 결국은 정말 두드러진 사실들을 우리 모두가 골라낼 수 있도록 가르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서 말이다. 그러나 우리를 가르칠 자료는 너무 적어서, 러시아 전역과 관련하여 그런 자료를 종합하지 않는다면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물론 나제주진처럼 선동가적 자질과 부랑아의 삶에 대한 지식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실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선동으로 운동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새로운 일을 아직 만들어 낼 줄 모르는 대중 속의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모범이 되고 교훈이 될 수 있도록 자기 활동 하나하나를 러시아의 모든 동지에게 알려 주려 부심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재능을 땅속에 묻어 두는 것이 될 것이다.
지금은 모든 사람이 결연하게 통합의 중요성과 "모으고 조직하는 일"의 필요성을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무엇으로부터 시작하고 어떻게 이러한 통합을 이루어 내야 하는지에 관한 뚜렷한 개념이라고는 전혀 없는 상태다. 만일 우리가 한 도시의 개별적인 — 그러나 각 지구의 — 서클들을 "통합한다면", 이를 위한 공동의 기관들, 말하자면 동맹이라는 공동의 명칭 하나만이 아니라 지역별로 안배되고 전체 시 활동의 전문성을 고려한 실제적인 공동 작업, 자료·경험·역량 등의 교환, 직무의 분배 등이 필요하다는 점에 아마도 모두 동의할 것이다. 견고한 비밀 기구를 한 지구의 "자원들"(물론 인적·물적 자원들)로 유지한다면 수지가 맞지 않는 일(상업적 표현을 사용해도 된다면)이며 그러한 좁은 무대에서는 전문가들의 재능을 충분히 발전시킬 수 없다는 점에는 어떤 사람이라도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 도시가 통합된 경우에도 똑같은 말을 적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민주주의당 운동의 역사상 개별 지역 같은 무대 역시 너무나 좁은 공간이었고 지금도 역시 그렇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서 정치 선동과 조직 작업의 예를 들면서 이 점을 상세하게 입증한 바 있다. 우리가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일,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무대를 확장하고 정기적인 공동의 활동을 기반으로 하여 도시들 사이의 실제적인 관계를 창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산개성에 짓눌려 있어서, "굴속에 갇힌 듯 들어앉아서"(『불꽃』에 보낸 한 편지의 필자가 쓴 표현을 빌리자면)[79] 개명 천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누구에게서 배울 것인지, 어떻게 경험을 쌓을 것인지, 폭넓은 활동을 하고자 하는 욕구를 어떻게 충족시킬지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종다양한 형태의 활동이 낳은 결과를 총괄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 사람들이 혁명에 이르는 수없이 많은 모든 길을 따라 지치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자극하는, 유일하고 정기적인 전 러시아적 계획인 공동의 신문을 기반으로 하여야만 이러한 실제적인 관계 창출을 시작할 수 있다고 계속해서 주장하는 바이다. 말로만 통합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각각의 지역 서클들은 공동의 사업을 위한 적극적인 활동에 자기 역량의 가령 1/4를 바로 지금부터 할당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신문은 곧 그런 지역 서클들에게 이 사업의 일반적 윤곽, 규모, 성격을 제시할 것이며,* 전 러시아적 활동 전체에서 어떤 공백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지, 선동이 행해지지 않는 곳은 어디인지, 관계가 약한 곳은 어디인지, 또 거대한 전체 기구 가운데 해당 서클이 수선해야 할 바퀴는 어떤 것인지 또는 바퀴를 교환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등등을 지적해 줄 것이다. 아직 활동을 못해 보고 할 일을 찾기만 하고 있는 서클이 있다면, 이제 그런 서클은 "산업"의 발전 상태 및 해당 산업의 생산수단의 전반적 상태를 알지 못하는 조그만 개발 작업장의 수공업자로서가 아니라 전제주의에 대한 혁명적 공격 일체를 반영하는 광범위한 계획의 참여자로서 활동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바퀴의 완성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공동의 과업에 묶여 일하는 개체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망은 더욱 조밀해지고, 피할 수 없는 침탈이 전체 대오에 야기하는 혼란은 더욱 적어질 것이다.
신문을 배포하는 하나의 기능만으로도(그 신문이 신문이라는 이름에 값한다면, 즉 정기적으로, 그것도 무게 있는 잡지들처럼 한 달에 한 번씩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 달에 네 번 정도 나온다면) 실제적인 관계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지금은 혁명 과업에 필요한 것들에 관한 각 도시들의 의사소통이 무척 드물고, 어찌 되었든 항상 예외적이다. 하지만 신문이 있다면, 이러한 의사소통이 하나의 규칙이 되어 신문의 배포뿐만 아니라 (그보다 훨씬 중요하게는) 경험·자료·역량·자원 등의 교환을 보장할 것이다. 조직 활동의 규모는 금방 몇 배로 확대되고, 한 지역의 성공은 사람들이 더 높은 수준의 개선을 향해 나아가도록 부단히 고무하고, 저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활동 중인 동지가 이미 획득한 경험을 활용하려는 욕구를 복돋아 줄 것이다. 지역 활동은 지금보다 훨씬 풍부해지고 다양한 방면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러시아 전역에서 수집되는 정치 폭로 및 경제 폭로는 모든 직종의 노동자, 모든 발전 단계의 노동자에게 지적 자양분을 제공하고 참으로 다양한 문제들, 그것도 합법 신문의 암시, 사람들의 이야기, "뻔뻔스러운" 정부 발표 등을 통해 물 위에 떠오른 문제들에 대한 강독과 토론을 위한 기회와 자료를 제공할 것이다. 폭발적 사건과 시위 하나하나가 러시아 전역에서 모든 측면에 걸쳐 검토되고 평가될 것이며, 이로 인해 다른 사람들보다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욕구,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해내려는 (우리 사회주의자들이 "경쟁"이나 겨루기를 모두 다 일반적으로 배격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욕구, 처음에는 어찌어찌하여 자생적으로 이루어진 일을 의식적으로 준비하려는 욕구, 공격 계획을 변경하기 위해 해당 지역이나 해당 시기의 유리한 조건을 이용하려는 욕구가 생겨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지역 활동이 이처럼 활기를 띠면 지역신문의 한 호 한 호가 나오거나 시위가 있을 때마다 모든 사람을 총동원하고 모든 역량이 필사적으로 "초죽음이 되도록" 긴장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한편으로는 경찰이 어떤 지역에서 "뿌리"를 찾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뿌리"까지 도달하는 것이 훨씬 어려워질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은 정기적인 공동 활동을 통해 해당 시기의 공격력을 전체 군대의 어떤 부대의 주어진 상황에 맞게 편성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지금은 십중팔구 공격이 자생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러한 편성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문건들뿐만 아니라 혁명 역량도 다른 지역으로부터 더 쉽게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이런 역량이 대부분의 경우에는 협소한 지역 활동 속에서 신음하고 있지만, 위와 같이 되면 어느 정도 능력이 있는 선동가나 조직가를 나라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보낼 수 있는 계기와 가능성이 항상적으로 생길 것이다. 당의 경비로 당사업상의 짧은 여행을 하는 것을 비롯하여 당이 전적으로 생계를 부양하는 상황, 직업적 혁명가가 되고 진정한 정치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는 상황에 사람들은 익숙해질 것이다.
모든 또는 상당수의 지역 위원회, 지역 그룹, 서클이 적극적으로 공동의 대의에 복무하도록 하는 일을 우리가 실제로 해낼 수 있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러시아 전역에 정기적으로 수만 부씩 배포되는 주간 신문을 발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신문은 계급투쟁과 국민적 분노의 불꽃 하나하나를 큰 불로 일구어 내는 거대한 풀무의 작은 부분이 될 것이다. 아직 그 자체로는 소박하기만 하고 작은 규모이지만 정기적이고 공동의 — 그 말의 완전한 의미에서 — 과업인 이 일을 중심으로, 시련을 겪은 전사들의 상비군이 체계적으로 선발되고 훈련될 것이다. 이러한 공동의 조직 건설 현장의 발판과 비계 위로, 우리의 혁명가들 가운데서는 젤랴보프 같은 사회민주주의당 당원들이, 우리의 노동자들 가운데서는 러시아의 베벨 같은 이들이 올라서서 나아갈 것이다. 이들은 동원된 군대의 선두에 서서, 러시아의 치욕과 저주를 징벌하는 길로 전체 인민이 떨쳐 일어나게 할 것이다.
우리가 꿈꾸어야 할 것이 바로 이런 일 아닌가!
"꿈꾸어야 한다!" 이 말을 쓰고 나니 흠칫하다. "통합 대회"에 내가 앉아 있고 맞은편에 『노동자의 대의』의 편집진들과 동료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다. 마르티노프 동지가 일어나 위험적으로 내게 말한다. "당신에게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당 위원회의 사전 조회 없이 독립적인 편집국이 꿈꿀 권리가 있습니다?" 이어서 끄리첸스키 동지가 일어나서 (이미 오래전에 플레하노프 동지를 심화시켰던 마르티노프 동지를 철학적으로 심화시키면서) 더더욱 위험적으로 덧붙인다. "나는 좀 더 나아가서, 맑스주의자가 도대체 꿈꿀 권리가 있느냐고 묻겠습니다. 맑스에 따르면 인류는 언제나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과제들을 제기한다는 것, 전술은 당과 함께 성장하는 임무의 성장 과정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면 말입니다."
이 준열한 질문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나는 등골이 서늘해져서 어디 숨을 곳을 찾고만 싶은 기분이다. 피사레프의 등 뒤로 숨어 보자.
피사레프는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라는 문제를 두고 다음과 같이 썼다. "같은 괴리라 해도 천차만별이다. 나의 꿈은 사건의 자연스러운 진행을 앞지를 수도 있다. 또는 완전히 빗나가서 사건의 그 어떤 자연스러운 진행도 이를 수 없는 곳으로 갈 수도 있다. 첫째 경우에 꿈은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일하는 사람의 정력을 지탱시키고 증대시킬 것이다. 그러한 꿈에는 노동력을 왜곡하거나 마비시킬 요소가 전혀 없다. 심지어 완전히 그 반대이다. 만일 사람이 이런 식으로 꿈꿀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박탈당하고 있다면, 종종 앞서 나가 자신의 손으로 이제 막 빚어지고 있는 창조물 자체를 완결된 통일적 상태로 정신적으로 인식할 수 없다면, 그렇게 된다면 예술·과학·실천적 생활 등의 영역에서 광범위하고도 힘든 일을 인간이 계획하고 끝까지 추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각성제가 어떤 것이 있을지, 나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꿈꾸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꿈을 진지하게 믿는다면, 삶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자신이 관찰한 바를 자신의 공중누각과 비교해 본다면, 그러니까 자신의 공상을 실현하기 위해 성실히 활동한다면, 아무런 해악도 끼치지 않는다. 꿈과 삶 사이에 조금이라도 만나는 지점에 있다면 모든 것이 순조로울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운동에는 이러한 종류의 꿈꾸기가 너무 적다. 이 점에 누구보다 더 많은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좀스러움과 "구체적인 일"에 대한 자신의 "친밀함"을 자랑하는 합법적 비판의 대표자들과 비합법적 "꽁무니주의"의 대표자들이다.
3. 우리에게는 어떠한 유형의 조직이 필요한가?
이제까지 서술한 것으로부터 독자들은 우리의 "계획으로서의 전술"의 핵심이 즉각적인 돌격 촉구를 거부하는 것, "적의 요세를 제대로 포위할 것"을 요구하는 것, 또는 상비군을 모으고 조직하고 동원하는 데 모든 노력을 경주할 것을 요구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노동자의 대의』가 "경제주의"에서 돌격을 외치는 방향으로 도약한 것(1901년 4월에 배포된 『노동자의 대의』의 「전단」제6호)을 우리가 비웃자, 당연하게도 『노동자의 대의』는 우리가 "공론주의"이고 혁명적 의무를 이해하지 못하고 조심스러움을 촉구한다는 따위 비난으로 우리를 공격했다. 물론 아무런 원칙도 없고 심오하기 짝이 없는 "과정으로서의 전술"로 요리조리 빠져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이러한 비난에 우리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안정적인 강령과 전술의 원칙을 철저히 경멸하는 나제주진이 이러한 비난을 반복한 점에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놀라지 않았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나제주진은 트카초프를 열심히 흉내 내어 "혁명적 순수 계몽주의"를 힐난하며 "인민의 경종을 올릴 것"과 "혁명 전야의 특수한 관점"을 외쳐 대면서 있는 힘을 다해 역사가 반복되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는 역사적 사건의 원본이 비극이면 그 복사본은 소극적일 뿐이라는 유명한 경구를 잊고 있음이 분명하다.[81] 트카초프의 설교에 의해 준비되었던, "공포용"이자 실제로 공포를 불러일으켰던 테러를 매개로 실행되었던 권력 장악을 위한 시도는 장대한 것이었지만, 소(小)트카초프의 "자극적" 테러는 그저 우스팽스런 것이다. 특히 중간층의 조직화라는 사상이 그것에 덧붙여질 때 더욱 그러하다.
나제주진은 말한다. "『불꽃』이 머물 근성이라는 자신의 틀을 깨고 나온다면, 이런 것들(『불꽃』제7호에 실린 노동자의 편지와 같은 현상들)이 이제 곧 '돌격'이 시작될 징후라는 사실, 따라서 지금(sic[원문 그대로!]) 전 러시아적 신문으로부터 실천뿐만 아니라 조직에 관해 말하는 것은 탁상공론적인 사고와 활동을 번식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얼마나 상상도 할 수 없는 혼란인지 한번 보라. 한편으로는 지역신문들과 같은 "더 구체적인 일"을 중심으로 "훨씬 가깝게" 모일 것이라는 견해와 나란히 "중간층의 조직화"와 자극적 테러를 놓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 러시아적 조직에 관해 "지금" 논하는 것은 탁상공론적인 사고를 번식시키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좀 더 직설적이고 간단히 말하자면 "지금"은 이미 늦었다고 하다니! 그렇다면 존경하는 나제주진 씨, "지역신문들을 광범위하게 발행하는 것" — 그것은 늦은 게 아닌지요? 이것과 『불꽃』의 다음과 같은 관점과 전술, 즉 자극적 테러는 쓸데없는 것거리이며 이른바 중간층의 조직과 광범위한 지역신문 발간에 관해 논하는 것은 "경제주의"에 문을 활짝 열어 놓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비교해 보라. 단일한 전 러시아적 혁명가 조직을 논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종이 위에서의 돌격이 아닌 진정한 공격이 시작될 때까지는 늦은 것이 아니다. 나제주진은 계속해서 말한다.
물론, 조직에 관한 한 우리 상황은 극히 어둡다. 우리 전투력의 주요 부분이 의용병과 반란군이라고 말하는 『불꽃』은 지극히 옳다. …… 당신들이 우리 역량의 상태를 냉정히 판단하고 있는 것은 좋다. 그러나 군중이 결코 우리 편이 아니며, 따라서 그들은 언제 군사행동이 개시되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묻지 않고 '폭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점은 여기서 왜 잊고 있는가. …… 군중 스스로가 자생적 파괴력을 앞세워 진격하게 될 때, 전부 우리가 모으기는 했으나 매우 체계적인 조직을 도입하는 결실을 맺지 못했던 '상비군'을 그들이 깔아뭉개고 일소할 수도 있는 것이다.(강조는 내가 한 것.)
놀라운 논리로군! "군중이 우리 편이 아니"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지금 "돌격"을 외친다는 것은 어리석고도 무례한 일이란다. 돌격은 상비군의 공격이지 군중의 자생적 폭발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군중이 상비군을 깔아뭉개고 일소할 수도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상비군에 매우 체계적인 조직을 도입하는" 활동을 통해 자생적 고양을 반드시 "따라잡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러한 조직성을 도입하는 데 "결실을 맺으면 맺을수록", 상비군이 군중에 의해 깔아뭉개지는 것이 아니라 군중의 선두에서 나가게 될 것이 더욱 확실해지기 때문이란다. 나제주진이 혼란에 빠진 것은 체계적으로 조직되는 이 군대가 군중으로부터 유리된 어떤 일에 복무하는 것인 양 생각하기 때문인데, 사실 이 군대는 전면적이고 포괄적인 정치 선동, 즉 군중의 자생적 파괴력과 혁명가 조직의 의식적 파괴력을 접근시키고 하나로 융합시키는 활동에 철저히 복무한다. 사실, 당신들, 신사 양반들은 두통거리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유그룹이야말로 테러를 강령에 도입함으로써 테러주의자의 조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조직은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우리 편이 아니며, 유감스럽게도 언제, 그리고 어떻게 군사행동을 개시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묻지 않거나 묻는 일이 드문 군중과 우리의 군대가 가까워지는 것을 실제로 차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제주진은 계속『불꽃』을 위협한다. "우리는 청천벽력 같이 우리를 덮친 오늘날의 사태들을 못 보고 넘겼던 것처럼 혁명 자체를 못 보고 넘기게 될 것이다." 이 문구는, 앞서 인용한 구절과 관련해 볼 때,『자유』가 만들어 낸 특수한 "혁명 전야의 관점"이 얼마나 불합리한가를 한눈에 보여 준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이 특수한 "관점"이란 "지금"은 토론하고 준비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만일 그렇다면 "먹물 근성"의 철천지원수여, 무엇 때문에 132쪽에 달하여 "이론"과 전술 문제에 관하여" 글을 썼던 말인가? 당신들은 "그들을 때려눕혀라!"라는 간략한 호소를 담은 13만 2천 장의 전단을 발행하는 것이 "혁명 전야의 관점"에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는가?
『불꽃』이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전 국민적 정치 선동을 강령, 전술, 조직 활동 등의 중심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야말로 혁명을 못 보고 넘길 위험이 가장 적다. 러시아 전역에 걸쳐 전 러시아적 신문으로부터 뻗어 나오는 조직의 실을 엮어 가는 데 전념하고 있는 사람들은 봄의 사태[57]를 못 보고 넘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그 사태들을 예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에게 심어 주었다. 이들은 『불꽃』 제13호와 14호에 게재된 일련의 시위[82]도 못 보고 넘기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이들은 군중의 자생적 고양을 지원하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임을 생생히 인식하면서, 그와 동시에 신문을 통해 러시아의 모든 동지가 이 시위들에 관해 알고 그 경험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도우며 그 시위들에 참가하였다. 이들은 살아 있는 한 혁명을 못 보고 넘기지 않을 것이며, 혁명은 우리에게 숙련되게 선동할 능력, 모든 항의를(사회민주주의적인 방식으로) 지원할 줄 아는 능력, 자생적 운동을 적들의 합정과 벗들의 오류로부터 보호하면서 방향을 잡아 갈 줄 아는 능력을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그리고 최대한 요구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공동의 신문을 위한 공동 활동을 매개로 전 러시아적 신문을 중심으로 한 조직 계획을 우리가 주장하지 않을 수 없는 마지막 이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러한 조직만이 사회민주주의 전투조직에 필수적인 유연성, 즉 그야말로 다양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투쟁 조건에 즉각적으로 적응할 줄 아는 능력, "한편으로는 적이 하나의 지점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을 때 자신의 역량을 압도하는 적과의 공개 전투를 피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적들이 민첩하지 못함을 이용하여 그들이 거의 예상치 못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적들을 공격할 줄 아는 능력"을 보장할 것이다. 한순간의 폭발과 가두 투쟁만을, 또는 "지루한 일상 투쟁의 단계적 진전"만을 기대하면서 당 조직을 건설한다면, 이는 중대한 오류이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일상적인 활동을 수행하고 모든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폭발의 시기가 소강 시기로 바뀌는 것을 사전에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만일 그것이 가능한 경우에도 조직을 개혁하는 데 이러한 예측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전제주의 국가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놀라울 정도로 급작스럽게 일어나기 때문이며, 때로는 짜르의 아니차르[83]가 한 번의 야습 습격을 단행하는 것으로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혁명 그 자체를 (나제주진 등이 다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듯이) 일회적인 행동의 형태로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 그것은 어느 정도의 강력한 소강상태와 어느 정도의 강력한 폭발이 여러 번 빠르게 교차하는 형태로 일어난다. 그러므로 우리 당 조직 활동의 주요 내용과 이 활동의 초점은 강력한 폭발의 시기와 완전한 소강의 시기에 모두 다 필요한 것이며, 또 가능한 그런 것이 되어야 한다. 즉 러시아 전역에 걸쳐 생활의 모든 측면을 조명해 주는, 가장 광범위한 대중을 향한 통일된 정치 선동 활동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매우 자주 발견되는 전 러시아적 신문 없이는 오늘날의 러시아에서 그러한 활동을 생각할 수 없다. 이 신문을 중심으로 저절로 형성되는 조직, 신문의 협력자들(광의의 의미에서 신문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의 조직이 이른바 모든 일, 즉 최악의 혁명적 "탄압"의 시기에 당의 명예, 권위, 계승성을 지켜 나가는 것에서 부터 전 국민적인 무장봉기를 준비하고 그 시기를 정하고 봉기를 수행하는 일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일을 할 준비를 갖출 것이다.
사실, 러시아에서 매우 자주 일어나는 일 — 하나 혹은 몇몇 지역에서 완전한 침탈이 이루어지는 것 — 을 생각해 보라. 모든 지역 조직에 하나의 정기적인 공동 사업이 없을 경우, 그러한 침탈은 종종 수개월 동안의 활동 중단 사태를 야기한다. 이와 반대로 모든 지역 조직에 공동의 사업이 있다면, 아무리 강력한 침탈이 있더라도 두세 명의 정력적인 사람들이 몇 주일 활동하는 것으로도, 지금 매우 빠르게 생겨나고 있는 — 잘 알다시피 — 새로운 청년 서클들을 전제의 중앙과 충분히 연결시켜 줄 수가 있다. 또한 침탈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이 공동 사업을 모든 사람이 보게 되는 경우에는, 새로운 서클들이 더욱 빨리 생겨나 이 사업과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인민 봉기를 생각해 보라. 현재 모든 사람은 우리가 봉기를 생각해야 하고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봉기 준비를 위해 중앙위원회가 모든 지역에 임무 대행자*를 임명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에게 중앙위원회가 있다 해도, 오늘날 러시아 조건에서는 그와 같은 임명으로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공동의 신문을 발간하고 배포하는 활동을 통해 저절로 형성되는 임무 대행자 망은 봉기를 호소하는 슬로건을 "앉아서 기다리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봉기가 일어날 경우에 가장 높은 성공 가능성을 보장하는 바로 그런 규칙적인 활동을 할 것이다. 그러한 활동이야말로 실로 광범위한 노동자 대중과 전제주의에 불만을 가진 모든 계층의 관계를 강화시킬 것이므로, 이는 봉기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또한 바로 그러한 활동을 통해 전반적인 정치 상황을 올바르게 평가할 능력, 따라서 봉기의 적기를 선택할 능력을 배양할 수 있다. 바로 그러한 활동을 통해, 모든 지역 조직은 러시아 전체를 뒤흔드는 똑같은 정치적 문제들, 사건들, 사태들에 동시에 반응할 수 있도록, 또 이러한 "사건들"에 가능한 한 정력적으로, 가능한 한 합목적적이고 통일된 형태로 대응할 수 있도록 양성될 수 있다. 사실 봉기란 본질적으로 정부에 대한 전체 인민의 가장 정력적이고 가장 통일적이며 가장 합목적적인 "응답"이다. 끝으로 그러한 활동이야말로 항상적인 동시에 가장 비밀스러운 관계, 당의 실질적 통일을 창출하는 관계를 만들도록 러시아 각지의 모든 혁명 조직을 양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관계가 없다면, 봉기 계획을 집단적으로 토론하고 엄격한 비밀 속에 유지되어야 할 봉기 전야에 필요한 준비 조치들을 채택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한마디로 "전 러시아적 정치 신문 계획"은 교조주의와 먹물 근성에 물든 탁상공론가의 산물(이 계획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처럼)이 아니며, 그와는 반대로 절박한 일상 활동을 한순간도 망각하지 않으면서 지금 바로 봉기를 준비하고 모든 측면에서 봉기를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실천적인 계획이다.
결론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의 역사는 세 시기로 명확히 나뉜다.
첫째 시기는 대략 1884년부터 1894년에 이르는 10년 동안을 포괄한다. 이는 사회민주주의당의 이론과 강령이 생성되어 공고해지는 기간이었다. 러시아에서 이 새로운 경향의 추종자들은 손꼽아 헤아릴 정도였다. 사회민주주의당은 노동자운동 없이 존재하였고, 정당으로서는 태내의 발전 과정을 겪고 있었다.
둘째 시기는 1894년부터 1898년까지의 3~4년에 해당한다. 사회민주주의당이 하나의 사회운동으로서, 인민대중의 고양으로서, 하나의 정당으로서 세상에 등장한다. 이는 유년기이자 사춘기였다. 지식인들이 예외없이 인민주의에 맞선 투쟁에 몰두하고 노동자 속으로 들어가는데 몰두하는 현상이 전염병처럼 급속히 퍼져가고, 노동자들은 전반적으로 파업에 전념한다. 운동은 거대한 성과를 낳는다.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35세" 미만의 새파랑게 젊은 사람들이며, 미하일롭스키 씨에게는 이 나이가 자연스러운 한계로 여겨졌다. 젊었기 때문에 이들은 실천 활동을 위한 준비가 부족한 채로 있었고, 놀랄 만큼 빠르게 무대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그들의 활동 반경은 대부분 무척 광범위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인민의 의지' 추종자로서 혁명적 사고를 시작했던 사람들이었다. 거의 모두 청년기의 초반을 테러의 영웅들을 열광적으로 숭배하며 보냈다. 이러한 영웅적 전통에 대한 매혹적인 인상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투쟁이 필요했고, 어쨌거나 '인민의 의지' 신봉자로 남기를 원했던 사람들, 젊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커다란 존경을 받고 있던 사람들과 단절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 투쟁은 학습하고 모든 경향의 비합법 저술을 읽고 합법적 인민주의의 문제를 열심히 연구하도록 강제했다. 이러한 투쟁 속에서 양성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선명한 불빛으로 자신들을 밝혀 주는 맑스주의 이론과 전제주의 타도의 임무를 "한순간도" 잊지 않으면서 노동자운동으로 나아갔다. 1898년 봄의 당 창건은 이 시기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가장 극명한 과업이었으며, 동시에 최후의 과업이었다.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셋째 시기는 1897년에 준비되어 1898년에(1898년 이후?) 둘째 시기를 최종적으로 마감하며 등장한다. 이는 분열, 해체, 동요의 시기이다. 사춘기에는 으레 목소리가 변한다. 이처럼 이 시기의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도 목소리가 변하기 시작했으며 위선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 한편으로는 스트루베, 프로코포비치, 불가코프, 베르자예프 등의 저작들을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V. I - n, R. M., 끄리첸스키, 마르티노프 등의 저작들을 통해. 하지만 뿔뿔이 흩어져 퇴보의 길을 간 것은 지도자들뿐이었다. 운동 자체는 계속해서 성장하여 엄청나게 전진하였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은 새로운 노동자층을 포섭하였으며 러시아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그와 동시에 그 투쟁은 학생과 다른 주민 계층들 사이에서 민주주의 정신이 되살아나는 데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지도자들의 의식성은 고양되는 자생성의 힘과 규모 앞에 굴복하였다. 사회민주주의자들 가운데서는 이제 또 다른 맥이, 즉 "합법적" 맑스주의 문헌 하나로만 양성된 활동가의 맥이 지배적이 되었는데, 대중의 자생성이 그들에게 더 많은 의식성을 요구하면 할수록 합법적 서적은 더욱더 불충분한 것이 되었다. 지도자들은 이론적인 측면("비판의 자유")과 실천적인 측면("수공업성") 모두에서 뒤처졌을 뿐만 아니라, 온갖 허풍스런 논거들을 동원하여 자신의 후진성을 옹호하려 애썼다. Credo 강령이 실행되기 시작하였으나,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수공업성"이 비(非)사회민주주의적인 경향을 부활시키게 되자 더욱 그러했다.
여기서 독자들이 내가 『노동자의 대의』 같은 것을 지나치게 세세하게 다루었다고 나를 질책한다면, 나는 『노동자의 대의』가 이 셋째 시기의 "정신"을 그 무엇보다 극명히 반영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획득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답하겠다. * 일관성 있는 R. M.이 아니라 바로 변덕스러운 끄리쳅스키와 마르티노프 등이 분열, 동요, "비판"·"경제주의"·테러주의 따위에 양보할 때에 등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었다. "절대자"를 숭배하는 자가 보여 준 실천에 대한 장엄한 경멸이 이 시기의 특징이 아니라, 이른바 완전한 이론적 무사태평과 보잘것없는 실천주의의 결합이 이 시기의 특징이다. 이 시기의 영웅들은 "위대한 말들"을 직설적으로 부정하기보다는 그 말들을 비속화하는 데 전념했다. 과학적 사회주의는 더 이상 전일적인 혁명 이론이 아니라 각종의 새로운 독일 교과서에서 얻은 빈약한 내용물을 "자유롭게" 뒤섞어 놓은 잡탕이 되어 버렸다. "계급투쟁"이라는 슬로건은 더욱더 광범위하고 더욱더 정력적인 활동을 향해 전진하도록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투쟁은 정치투쟁과 불가분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므로 진정제로 작용하였다. 당의 이념은 전투적 혁명가 조직의 창설을 촉구하는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혁명적 관료주의"와 "민주주의"의 형식을 갖고 노는 어린애 장난 같은 것을 정당화해 왔다.
언제 셋째 시기가 종결되고 넷째 시기(어쨌든 벌써 많은 징후들이 이 시기를 예언하고 있다.)가 시작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역사의 영역으로부터 여기 현재의 영역으로, 부분적으로는 미래의 영역으로 옮겨 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넷째 시기가 전투적 맑스주의를 공고히 할 것임을,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이 강건해지고 성인이 되어 위기로부터 벗어날 것임을, 기회주의자들의 후위를 "대체하여" 가장 혁명적인 계급의 진정한 전위 부대가 나서게 될 것임을 굳게 믿고 있다.
이러한 "대체"를 촉구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앞서 서술한 것들을 총괄하며,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간략한 답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시기를 청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