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농민층 분화 요인

 

2-1. 젬스트보 통계 조사 및 분석

 

2-1-1. 노보로시아 젬스트보 통계

 

통계 도표 참조.

 

V. 포스트니코프는 남러시아 농민 농업에서 타우리다 지역, 헤르손 및 예카테리노슬라프 지역 통계를 수집했었다. 타우리다 지역에서는 젬스트보 통계학자들은 농작물 재배 면적에 따라 농민 가구를 분류했다. 조밀한 농업과 곡물 지배가 우세한 지역에서 각 집단의 경제 사정을 판단했다. 먼저 농작물 재배 면적 분포가 불균등하다는 점이다. 전체 가구 2/5 가운데 전체 인구 3/10을 구성하며, 전체 농작물 재배 면적으로는 약 1/8을 소유한다. 전체 가구 수에서 2/5를 차지하는 중농들은 농사 소득으로 평균 지출을 충당한다. 가구의 1/5은 부농들이며, 경작 면적 절반 이상을 자신들의 수중으로 집중시키고 있다. 가구 당 작물 면적은 농업의 상업적 성격이 매우 뚜렷하다는 점이다.

 

상업적 농업 범위를 계산해봤을 때, 농장의 총 작물 면적에서 식량 면적, 사료 면적, 농장 추가 제공 면적을 분리해서 생산물이 판매되는 시장 또는 상업 지역 규모에 도달한다. 당시로는 작물 재배 면적에서 11.8% 만이 시장용으로 수확량을 내는 반면에, 작물 재배 면적이 36.5% - 52% - 61%로 꾸준하게 증가하면서부터, 부농은 상업적인 경작에도 종사하며, 연간 574-1500 루블에 따른 총 수입을 확보했다.

 

자본주의 농업 아래에서 부농이 경작하는 면적은 가족 노동을 기준으로 삼아도, 초과하기 때문에 여기서도 노동자를 고용해야만 한다. 타우리다 구베르니아, 북부 3개 군에서 부농은 14,000명 이상의 농촌 노동자를 고용한다. 반면에, 빈농들은 노동력을 제공하거나, 판매한다5-10 데시아틴 정도 적은 면적을 가진 집단(그룹)에서는 토지 경작으로부터 얻은 소득이 가구 당 현금으로 약 30루블에 불과하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다뤄지는 국내 시장 창출은 상업적이고, 기업적인 농업 생산물로 상품으로 전환되며, 빈농이 판매하는 노동력에 따라서 상품으로 전환된다.

 

부농들은 배정지를 잘 제공 받을 수 있음에도, 구매한 토지와 대부분을 자신의 수중으로 쥐고 있으며, 소규모 토지 소유자와 자본주의적인 농부로 전락하게 된다. 17-44데시(1,700 - 1,600) 정도되는 토지를 임대할 때는 현지 가격으로 약 70-160루블 비용이 든다. 상업적인 거래에 따라서 곧 토지는 상품이 된다. 가축과 농기구 부문에서 부농은 빈농이나, 중농보다도 훨씬 더 나은 농기구를 갖출 수 있다. 농민에 대해 즐겨 사용하는 평균 수치마저 허구적이고, 농민 부르주아지들의 상업적인 경작은 상업적인 가축 사육, 특히 대평야(대초원) 지역에서는 거친 털을 가진 양의 사육을 수반하게 된다. 총 수확 및 제초 기계(3,061) 가운데 2,84191.8% 정도가 전체 가구 수에서 1/5은 부농층에 속한다. 부농들은 평균보다도 뛰어난 농장 규모, 풍부한 농기구를 공급받으며, 안정적인 재정 자원 등을 사용할 수 있다농장 규모가 커질수록 농산물 생산 비용은 생산 단위 당으로 감소한다. 농민 집단에서 많은 작물 면적은 고용 노동자, 가축, 농기구 등으로 계산한다. 농장 규모와 농민이 경작하는 면적이 커지면서, 농업에서는 매우 중요한 지출 항목으로는 노동력 유지에 대한 지출이 감소하거나, 넓은 면적일수록, 경작 면적율이 비교적 작은 집단 간 지출 작물 간에서도 거의 절반으로 떨어진다. 더 큰 생산력을 가질수록, 당연하지만 대농장은 안정적이며, 노보로시야 뿐만이 아니라, 러시아 중부 지방에서도 해당한다.

 

작물 재배에서도 상품 생산이 깊이 침투해서 관여하게 되며, 농업인들 사이에서도 경쟁은 심화되고, 토지 및 경제적인 자립에 대한 투쟁도 치열하다. 따라서 부농들로부터 중농 및 빈농들이 축출된다. 농업 기술 발전에 따라 농업 체계, 밭 경작 쳬계가 나타나게 되는데, 곡물 재배 및 조방적 경작 같은 경우로는 단순 경작 면적이 확대되거나, 단위 경적 면적 당 노동자, 가축 등의 수가 감소하지만, 축산 도륙, 작물 재배 산업에서는 더욱 집약적인 농업 기술을 도입해서, 단위 경작 면적 당 더 많은 노동자들이 작물 뿌리 재배, 가축 확보, 사료용 풀 재배 등으로 나타난다.

 

부농은 임금 노동을 고용하면서부터 타우리다 구베르니아에서는 세 군에 대한 자료가 존재한다. 전체 농민, 농장 수에서 노동자를 고용하는 농장 비율을 취할 때 토지 경작으로부터 고용 노동에 의존하는 농민 전체와 비교해보면 미미하다는 점이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100명 중 2-3, 최대 5명 정도만, 농민 자본주의 모습이 나타났다. 농장 고용 노동자들의 토지 수로나, 농민 농장 총 수와 비교해봐도, 차라리 러시아 산업 부문에서 자본주의를 '제거'할 수도 있다. 임금 노동자 부문에서 산업에 종사하는 가족은 러시아 산업 부문에서 종사하는 전체 가족 수 대비 (%)로 표기한다. 노동자를 고용하는 농장 수를 구하고자 한다면, 단순 노동력 판매에 의존하지 않고, 농업에만 의존하는 농장 수와 비교하는 쪽이 더 낫다. 왜냐하면 러시아에서는 소농 비중이 크게 차지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를 고용하는 농장 비율로는 전체 생산량에서도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판매용 곡물을 대량 생산하는 부농층에서는 34-36% 정도의 매우 높은 수준으로 나타난다. 경작에서 나타나는 여러 특수성이 아니라, 전체 경작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농노, 정규직, 일용직 고용이 농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소작농에 따른 경제적인 지위 간에는 큰 차이는 없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마을 농장 노동자, 외부 활동에 따른 농업에 종사하기 때문이다. '드네프르 지역(위예즈드)’에서는 소농층 가구 전체의 40%를 차지했으며, 경운기와 같은 생산 수단을 갖지 않은 기구로는 전체 가구 수에서 39%를 차지했다


농촌 지역에서 무산자들은, 노동력 판매 외에도, 할당지를 임대해서 소득을 벌 수밖에는 없었다. 1884-1886년 사이에서 타우리다 구베르니아 세 군에서는 임대 토지가 전체 농민 경작지에서 25%에 달했다. 중산층 지식인들에게 임대된 토지를 제외하고는, 1/3이 토지를 임대했으며, 농촌 무산자들의 토지는 정작 농민 부르주아 계급들이 임대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할당 토지들은 남부 러시아 농민들 사이에서도 폭 넓은 투기가 목적이다. 토지는 약속된 어음(구권) 관계로부터 대출 담보로 주로 사용하며 때로는 더 장기적이기도 했다. 농민 부유층들은 상인 자본과 고리대금업자를 대표하는 자본가들이었다. 따라서 '쿨라크'과도 같은 고리대금업자는 '진취적인' 농민이 아니었다. 농민 부유층으로부터 상인 자본, 산업 자본에 대한 실마리를 가졌었다. 자본의 모습이 이뤄지게 되면서, 주변 환경과 문화에 따라서도 달라졌다.

 

가구 당 10-25데소, 평균 16.4데소 정도에 소득을 가졌었던 중산층들을 살펴보자. 과도기적이고, 191루블 정도의 수입을 농업에서 얻었으며, 평균 타우리디안 사람들의 200-250루블이 되는 연간 지출보다는 다소 낮았다. 가계당 평균 3.2마리 정도 가축을 길렀으며, 당시로는 4마리 정도가 필요했었다. 중산층 농장은 매우 불안정하기도 해서, 멍에 인력을 고용하고 투입해서, 토지를 경작했다. 따라서 생산성이 매우 낮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116가구 정도가 쟁기 도구마저 없었고, 고용하는 일보다는 노동을 제공하는 일이 더 잦았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구베르니아에서는 배정지에 따른 분배는 매우 균등했었지만, 상층에서 하층을 몰아내는 일이 잦았다. 강제 소유 토지에서 자유 토지를 매수하거나, 임대 토지로 넘어가면 토지의 집중도는 농민이 사용하던 총 토지 분배가 배정지 분배와는 상당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충산층은 후순위로 밀려나며, 배정지(46%), 사용 토지(41%)이며, 부층은 보유 토지를 확대해서, 배정지(28%), 사용 토지(41%), 빈층들은 배정지(25%), 사용 토지(12%)로 경작에서 밀려난다.

 

소농층에서도 할당지 역할은 감소하게 된다. 토지 임대로부터 전체 농경지 면적으로는 토지 매입 및 임대가 우세하다. 토지에 발이 묶인 농민들은, 토지 소유권에 따른 세금 부과 등으로부터 자본주의가 농업에 더욱 침투하면서 파괴됐다. 토지 임대에서는 농민층 분열 문제가 두드러진다. 토지 임대에 의존하는 비율로는, 36-68%, 40-70%, 30-66%로 나타났으며, 가구 당 임대 토지는 크기가 작았다. 탐보프 통계에 따르면, 작은 구역을 소유한 농민은 큰 구역을 소유한 농민보다도 더 많은 토지를 임대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평균 수치로는 토지를 임차하는 사람들은 56%, 토지 부유층에게 집중된 임대 토지 과점 현상을 어느 정도는 해소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임대 가구 당 평균 임대 토지 면적을 계산한다는 건 터무니 없을 뿐이다. 임차 가구 당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 가구 당으로 계산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카리셰프는 비할당 토지 임대에서 농민들을 모아 15루블이라는 가격에, 2데시아틴을 받았었고, 파산 직전에서 적정 토지 면적까지 더해져서 48데시아틴을 받았으며, 데시아틴 당 3.55루블이라는 비교적 낮은 가격에 토지를 도매로부터 매수했었다. 전체 마을 공동체 수치로도, 할당 농민들로 분류해보면, 공동체 자체에 대한 보다 정확한 지적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임대 토지는 농민 부유층 계급들의 수중에서 개인 임대로만 국한됐지만, 마을 공동체에서는 임대에 적용되지 않을 거라 여긴다면 큰 오산이다. 임대 토지 역시나 자본에 따라 분배되며, 농민 딥단 관계로는 공동체에 따른 토지 임대를 하는 곳에서도 늘 일정했다. 카리셰프는 공동체와 개인 간 '임대 갈등'을 나타냈었지만, 오히려 공동체 임대는 노동 원칙, 공동체 구성원 간 균등한 임대 토지에 따른 분배 원칙이 특징이다. 대부분의 인민주의자들도 이와 같이 주장했으며, 오류가 더 많았다. 당시에 카리셰프는 젬스트보 통계 조사 결과를 요약하라는 임무를 맡았었지만, 소규모 부유층 농민 집단의 수중으로, 임대 토지가 집중됐다는 젬스트보 통계를 신중하게 다루지는 않았었다. 마찬가지로 타우리다 구베르니아에서는 농민 공동체로부터 임대하던 국유 토지를 분배했으며, 노동 원칙, 균등 분배 원칙에 대한 청사진이었다.

 

남부 러시아 농민 농업에 따른 젬스트보 통계 자료로는 농민의 완전한 분화 요인, 농민 부르주아지들이 시골에서 완전한 지배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마을 공동체에서도 기업가 농민들은 늘 최고의 토지를 차지할 수 있었다. 따라서 카리셰프 뿐만이 아니라, 포스트니코프의 작업은 중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작업은 도시 지식인들이 농민 공동체를 통합적이고, 동질적인 경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뿐이었다. 이론이 전무하던 저자는 통계를 전혀 처리하거나, 평가하지도 못했으며, 그저 '조치'만으로 통계를 바라만 보거나, 농업, 수공예, 공장 공동체를 제한, 명령, 관찰 등만 하면서 계획을 지어냈다. 인민주의자들은 포스트니코프 작업에서 첫 긍정적인 점을 대놓고 무시했으며, 두 번째 부분에만 집중했다. 정작 당시에 포스티니코프는 러시아 자본주의 도입을 비난했었지만, 남부 러시아 농촌 지역에서도 자본주의 관계가 만연했었지만, 널리 퍼졌다는 자료를 피하기만 했었다.

 

노보로시아 자료에서는 주로 타우리다 구베르니아 북부 본토 3개 군, 베르됭스크, 멜리토폴, 드네프르, 또는 후자군이다. 포스티니코프는 실제 토지에서 얻을 수 있는 금전적인 수입 규모 간 차이를 해명했다. 동일한 계산으로부터, 수확량, 판매되는 곡물 간의 가격을 가정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부농이 더 나은 수확량과 곡물을 확보했으며, 더 큰 이윤으로 판매했다. 그렇다면 토지를 경작하지 않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상당 규모의 토지를 보유할 수 있는 까닭은 왜일까. 바로 상인, 산업 시설 소유주 등도 포함되기 때문이다.다름 아닌 멜리토폴 지역에서 발생한 통계적인 수익률을 확인해보면 된다. 젬스트보 통계로는 농민 농장 규모가 클수록, 주어진 경작지에서 사용된 도구, 노동자 및 짐을 끄는 가축 수가 줄어든다. 흑토 지대에서는 농부 말 당 경작지가 5-7-8데살이지만, 3포지 윤작 방식에 따르면 7-10데살이었다. 러시아 지역 인구 일부에서 말 소유 감소는 짐 끄는 가축 수, 경작지 사이에서 일정한 비율로 반복됐다. 따라서 농민 몰락으로 농업 발전을 일으켰다. 사회 경제적으로도, 자본주의 농업이 발전할 수 있는 까닭이다. 더불어 가금류, 경작지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정한 비율의 반복도 농기구를 취득한 지주, 대규모 농작물의 재배자, 농민 부유층들로부터 달성된다. 일례를 들자면 영국은 농업 자본주의가 전형적이다. 농부의 40.8%는 고용 노동력을 전혀 고용하지 않는다. 68.1%2명 이하의 노동자를 고용했다. 82%4명 이하의 노동자를 고용한다. 이주, 거주 노동자를 비롯한, 농업 무산층에서 대중들은 일당으로 고용된다. 자신들은 수 많은 마을 은행과 대출저축조합에 의존한다. 번영하는 농민에게는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하며, 경제적으로 취약한 농민들은 보증인을 찾을 수도 없고, 심지어 대출마저 받을 수 없었다.

 

멜리토폴 지역에서는 집단에 속한 13,789 가구 가운데 4,218 가구만이 자신의 가축으로 땅을 경작했었고, 나머지 9,201 가구는 멍에를 졌다. 드네프르 지역에서는 8,234 가구 가운데 4,029가구가 자신들의 가축으로 땅을 경작했고, 3,825가구는 멍에를 졌다. 농민층은 분열됐으며, 농민 부유층들로부터 농장 협동의 원칙들마저 정작 흔들리고 점은 은폐했다. 집단 별 토지 사용 수치로는, 할당 토지, 임대 토지, 매입 토지를 합산하고는, 임대 토지를 계산에서 제외해버렸다. 멜리토폴, 베르됭스크 지방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고, 포스트니코프는 부유층들의 상업적인 농업 및 토지 수요를 언급하면서, 불법화가 만연했던 농민 상을 지적했었다. 베르너, 타우리다 구베르니아 편람(1889)에서는 전체 농민의 할당 규모에 따라 분류했으며, 1-2명 노동자, 2-3마리 짐수레 가축을 가진 농민 집단을 주로 채택했었다. 따라서 집단 범위 안에서 할당 규모가 커질수록, 임대 가구 수도 증가했으며, 임대 토지 양이 감소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는 점이다. 같은 수의 가축을 가진 농민만을 고려하며, 극단적인 집단은 제외된다. 가축 수가 같다면 경작지 면적도 같으며, 할당량이 적을수록 임대 토지 면적도 커질 수밖에는 없다. 따라서 문제는 가축, 농기구 등 수가 다른 기구에서 임대 토지에서 어떤 식으로 분배할 수 있을지에 대한지가 관건이다. 그러나 노보러시아 지역에서는 농업, 농민 분화가 다른 지역보다 더 두드러진다는 점이 특수성 때문만은 아니다. 농촌 소부르주아지들은 대부르주아지들에게 늘 위협을 받았으며, 농업 분야에서도, 자본가들은 노동 생산력을 더욱 늘리고자 하기 때문이다. 18880년대 인구 조사를 주로 과세 목적으로 시행했으며, 젬스트보 통계학자들은 통계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 오히려 매우 편향적이었고, 잘못 분류했었다. 수집된 세부 사항들이 있었음에도, 포스트니코프, 남부 러시아 농민 농업이라는 자료를 자세히 조사해봤을 때, 1861년에 들어서야 러시아에서는 농노제가 폐지됐고농민 공동체에서는 주기적으로 농민들에게 배정지가 재분배됐다.

 

2-1-2. 사마라 구베르니아, 젬스트보 통계

 

사마라 구베르니아, 노보우젠스크 지역, 28,276세대 토지 소유 가구, 남녀로는 모두 164,146명이다. 이곳에서 농업 생산 집중도는 높았다. 공동 자본가는 전체 가구에서 1/4, 10마리 이상 가축을 기르는 가구 수로는 농지 면적에서 36.5%를 소유한다. 빈농, 중농을 합한 75.3%와 맞먹는 수치이다. 가구 당 15.9개의 농지라는 평균 수치는 거짓이다. 빈층에서는 자영농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개량된 농기계가 빈농에게는 전무하며, 중농은 미미한 숫자만 가지고 있었다. 가축 밀도도 농지 면적 밀도보다 높다. 부농들은 대규모 자본주의적인 농경과 가축 사육을 결합시켰다. 일반 농민들은 토지를 소유한 농노이자, 일용직 노동자이며, 이들의 주요 생계 수단은 노동력 판매이다. 지주들은 가끔 노동자들을 농장에 묶어둔 채로 임금을 삭감시켜 한 두마리 가축으로 지불하기도 한다. 농민 집단은 농장 규모뿐만이 아니라, 농사 방식도 매우 다르며, 상층 농민 가운데 40-60(%)의 많은 비율로 철제 쟁기, 가축(), 증기 탈곡기, 풍차, 추구시 등과 같은 개량 농기구를 공급받는다. 상층에서는 전체 개량 농기구의 81.9%, 중층은 38.2%를 보유한다. 나머지 개량 농기구에서 17%, 빈층은 37.1%를 보유한다.

 

따라서 총 5,724개 농기구 가운데 7개 정도다. 가축을 적게 보유한 농민일수록 부농보다 전혀 다른 농업 경제 체계로 운영해야만 한다. 빈농들은 매일 쉬지 않고 밀을 파종하고자, 쟁기질도 여러 번 반복한다. 따라서 부농과 빈농 사이에는 곡물량에 따른 곡물질도 빈농들이 훨씬 떨어지며, 부농만이 비교적 수확량이 더 많다. 그렇다면 농민 부유층은 어떻게 형성될까. 집단별 소유 및 사용 토지 수치에서 제공되는데, 76가구 구역에서는 농민은 총 57.128데스의 매수 토지, 304,514데스 정도된 임대 토지를 소유한다. 이 중에서 177,789데스는 5,602가구가 임대하는 비할당 토지이다. 다른 마을 공동체에서 임대받은 할당 토지 가운데 47,494데스는 3,129가구를 소유하며, 마을 공동체로부터 임대받은 할당 토지 가운데 79,231데스는 7,092가구가 소유했었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매수 및 임대 토지가 매우 집중됐다. 총 매수 토지에서 9/10은 부유한 가구 수중이 1.8%였다. 모든 임대 토지 가운데 69.7%는 농민 자본가 수중에서 86.6%는 농민 상위 계층 수중에 있었다. 할당 토지 임대 및 수치를 비교해봐도, 토지는 농민 부유층의 수중으로 전반적으로 넘어갔다.

 

토지가 상품으로 전환되면, 토지 도매 구매 가격은 비교적 저렴해지며, 임대된 비할당 토지에서도 1데시아틴 가격을 결정하면, 하위 집단에서는 상위 집단으로 일정한 수치를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인민주의자들은 임대 토지 집중도는 무시했으며, 특히 카리셰프는 <수확과 곡물 가격이 러시아 국민 경제의 특정 측면에 미치는 영향>에서 곡물 가격이 하락하며, 수확량이 증가하면 임대료가 상승하고, 기업가적인 임차인들은 수요를 줄이게 되고, 소비 경제 대표들은 임대료를 인상해야만 한다고 자의적으로 결론지었다. 왜냐하면 농민 부유층에서 곡물 가격이 하락했음에도, 임대료를 인상하려 들었기 때문이며, 수확량이 증가하면 가격 하락을 상쇄했다. 농업에서는 기계 사용에 따른 농민 부유층 수중으로 집중되고 있었다. 카리셰프 역시나, 농민 분화 연구가 아닌 평균 농민으로 산정해서 자의적이고, 부정확한 전제를 제시했었다부농들은 전체 농업 생산량에서도 약 2/3를 차지했으며, 주로 곡물 판매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판매용 곡물을 생산하지만, 이에 따른 어려운 형편의 농민들은 정작 추가 곡물을 더욱 구매하거나, 노동력을 판매한다.

 

인민주의자들의 주장과 국내 시장 형성 과정에 대한 여러 자료를 비교해보자. 농민들이 번영할수록, 공장도 번창한다는 주장에는 부의 사회적 형태에 대한 관심이 전무하다. 여기서 말하는 부란 생산물과 생산 수단, 노동력을 상품으로 전환할 때 창출된다. 인민주의자들은 곡물 판매에서 농민 농부 그 자신이 생산한다는 생각으로, 곡물을 운송하면서도 철도 건설에서 농민들을 희생시켜야만 한다고 내세운다. 자본가들이 공동체 구성원이면서도 바로 농민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동 토지 소유권이 지배하는 지역에서는 자본주의 원칙에 기반한 농업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공동체적 유대감은 이전부터 벌써 무너진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자본주의 농업이 발전했으며, 그들이 말하는 공동체 유대감이란 노동자를 고용하는 대규모 작물 재배 농장에 완전히 적응했기 때문이다. 농민 집단 간 관계에서도 니콜라예프스키 지역에서도 완전히 비슷하게 나타났다.

 

인구의 13.7%의 부유한 가구에서는 10마리 이상의 가축을 소유했으며, 7.4%가 전체 가축의 27.6%와 임대 토지 42.6%를 소유했었지만, 인구의 19.7%를 차지하는 빈곤 가구와 같은 가축이 아예 없거나, 한 마리만 소유한 29%는 가축의 7.2%와 임대 토지 3%만 소유했다. <사마라 구베르니아 통합 보고서>에서도 농민 처지에 대한 설명은 잘 나타나 있다.

 

서부 구베르니아에서는 토지가 부족한 농민들이 이주하거나, 농업 생산 분야에서도 토지에 대한 투기꾼들이 등장해서, 인구가 증가했다. 그러나 토지 형태가 해마다 복잡해지면서부터가치가 상승했으며, 토지는 상품화되어 엄청난 부와 많은 사람에게 파멸을 초래했다. 남부 상인과 농민 소유 농자, 일부 경작지에서는 3,000-6,000 데시아틴을 경작하기도 드문 일이다일부 수로만 데시아틴에 따른 국유지를 임대하고는 8-10-15,000데시아틴의 땅을 경작한다. 사마라 구베르니아 농업 무산층 존재와 성장은 비교적 최근이었으며, 판매용 곡물 생산 증가임대료 상승, 미개척지와 목초지 경작, 산림 개간 등이 있었다. 구베르니아 전체 무토지 가축 수로는 총 21,624 가구였으며, 비농업 가구로는 토지를 분배 받은 가구를 기준으로, 33,772가구였다. 무마 가구와 말 한 마리를 기르는 가구로는 모두 110,60가구였으며, 남녀 총 60만 명, 가구 당 5명과 소수 사람으로 계산된다. 법적으로는 공유지를 소유하더라도, 무산층으로 간주될 수는 있다. 실제로 일용직 노동자, 쟁기질꾼, 양치기, 추수꾼 등 대농장에서 1/2-1 데시아틴 정도를 경작하는 비슷한 노동자들도 있다. 가족들은 거처로 남아 먹을 것을 마련하고자 할당량을 정한다. 가축을 보유하지도 않거나, 가축 한 마리를 소유한 농민도 무산층에 속할 수 있다. 분류표 지적에 따라 포스트니코프도 같은 결론을 내렸었고, 농민 최하층에서는 사회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적도 있었다.

 

사마라구베르니아 통계 수익률(놀보우센스크 지역, 사마라, 1890), (니콜라예프스키 지역, 1889)에서도 비슷한 자료가 있으며, 사마라 구베르니아 종합 수익률에서는 토지 할당 규모로만 불만족스럽게 분류해놨다. 여기에서 농민 대중은 낡은 농기구를 개량된 농기구로 교체하려는 운동이 있었다는 잘못된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이는 젬스트보 보고서에서만 총 수치를 가져왔으며, 정작 어떻게 농기구를 분배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품 곡물 생산 비용을 낮추고자, 기계를 사용하던 자본주의 농부에 따른 발전은 조사원의 펜 한 자루에서부터 농민 대중 발전으로 변환되어 표기됐을 뿐이었다. 또한 기계는 부농이 구입해서 모든 농민들이 사용하도록 분배됐다는 말도 안 되는 논평을 작성했다. 노동력 판매는 통계학자들이 농업 산업이라고 불렀으며, 산업에서 정규직 및 일용직 노동자는 사마라 구베르니아 종합 수익 목록에서 산업 목록 부분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당시에 농업 산업에 종사하던 남성들은 14,063명 가운데 농노 및 일용직 노동자(목동, 쟁기질꾼)이었다. 특히 노보우젠스크 지역 종합 보고서표에 따르면 지역 공동체 60%는 토지를 재분할했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공동체의 13.8%만 그렇게 했다.

 

2-1-3. 사라토브 구베르니아

 

흑토 지대의 중심이자 기름진 토양을 가진 곳은 사라토브 구베르니아였다. 카미신 지역에서는 농민들의 가축 보유 현황을 비교적 확실하게 분류할 수 있었다. 해당 지역에서는 40,157 가구, 남녀 인구 263,135명이었으며 작물 재배 면적은 435,945 데시아틴이었다. 평균 가구 당 10.8데시아틴 정도였다. 작물 재배 멱전은 대작물 재배자들의 수중으로 집중됐으며, 가구의 1/5에 불과한 전체 인구의 1/3인 부농은 전체 작물 재배 면적에서 53.3%로 절반 이상을 보유했었으며, 농업의 상업적 성격으로는 면적의 크기에 따라 가구 당 평균 27.6데시로 나타났따. 부농은 가구 당 14.6마리 정도의 상당 수 가축을 소유하고 있었다.


해당 지역에 있었던 농민의 가축 총 수, 3/5가 농민 부르주아 수중에 집중됐다. 도시 주위로는 최하층인 농촌 무산층은 박살난 수준이었다. 대부분의 인구 1/3을 차지한 가구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전체 농경지에서 1/8에 불과했으며, 전체 가축 수로도 훨씬 적은 11.8%를 차지하는 수준이었다. 주로 텃밭 소유 농장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 산업 노동자 등이 분포했었다.

 

경작 면적의 집중과 농업에서 상업적 성격이 강화되면서부터 농업은 자본주의적인 농업으로 전환됐다. 하위층에서는 노동력을 판매했고, 상위층에서는 구매했다. P.N.스크보르초프는 젬스트보 통계에 대해 '산업고용'이라는 지나치게 폭 넓은 의미를 부여한다고 지적했었다. 농민들이 할당지 밖에서 종사하는 모든 종류의 직업 가운데에는 산업이라는 범주가 속해진다. 공장주, 노동자, 제분소, 과일 농장주, 일용직 노동자, 정규직 농장 노동자, 매수인, 상인, 비숙련 노동자, 목재상, 목재공, 건설업자, 건설 노동자, 자유업 종사자, 사무원, 거지 등도 모두 산업가들이었다. 이러한 '할당지'에 따라서 농민들의 직업과 외부 산업에 따른 무차별적으로 할당되어 기존의 전통적이면서도, 공식적인 관점들의 잔재들에만 머물렀다. 농노제 아래에서는 시대착오적인 생각도 가졌었다. 젬스트보 통계에서 나타났던 거짓된 평균 농민에 대한 말과 농민들에 대한 차별화를 조장했으며, 그것을 연구할 수 있는 여지마저 완전하게 배제해버렸기 때문에, 그러한 차별화가 잔존될 수 있었고, 유지될 수 있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외부적인 작업에 의존하는 농민들이 많은 곳에서도, 특히 카미신 지역이 사르핀카 산업으로 유명했다. 농민 농업에서 가계부에 따른 수익 처리는 농민 산업이 경제 유형으로 분류되지 않는 한, 거론된 산업가들 중에서 고용주와 임금 노동자가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만족할 수는 없었다.


경제 통계마저 만족스럽지는 못했으며, 차별마저 없는 최소한의 경제적 유형이었다. 더욱 자세한 분류로는 임금 노동자를 고용하는 자영업자, 또는 고용하지 않는 자영업자, 상인, 매수인, 가게 주인, 장인, 고객 맞춤 담당 산업가 등이었다. 더불어 산업을 노동력 판매로 간주하기 위해 농민 산업가들 대부분은 대체로 임금 노동자들이었다. 임금 노동자를 구분할 수 있다면, 상층에서 산업가의 비율도 줄어들 수 있었다.

 

하리조메노프는 임금 노동자와 관련한 자료를 제시했으며, 수확, 풀베기, 일용직 노동을 위한 단기 고용은 이미 널리 퍼졌다. 또한 농장의 강점과 약점을 판단할 수 있는 특징적인 기준과 잘못된 주장의 성격마저 드러났다. 당시에 서유럽이나, 러시아 현실을 고려해봤을 때도, 일용직 노동자 고용은 농촌 부유층들로부터 매우 전형적인 특징이었다. 임대 토지 부문에서도 농민 부유층들의 수중으로 집중됐다. 이를테면 사라토프 통계청에서 제시했었떤 통합 표에서는 토지를 임대한 농민 수가 아닌, 임대된 토지 수만을 보여줬으며, 임대 가구 당이 아니라, 기존 가구에서 임대된 토지 양으로만 파악했었다. 따라서 부농일수록 토지를 더 많이 임대했다. 할당지도 더 잘 갖춰졌으며, 부유층에서도 대부분은 중농들을 몰아내어, 농촌에서 할당지 역할은 양극단으로 감소했다. 카리셰프도 추가적으로 토지 임대를 자세하게 조사했다. 카리셰프는 토지 임대가 임차인 번영에 의존하며, 다른 조건이 동일했을 때, 임대할 수 있는 토지를 둘러싼 경쟁들은 부유층들에게 더 유리하다고 결론 내렸으며, 비교적 부유한 가구일수록, 덜 부유한 가구는 뒷전으로 밀어낸다고 지적했다. 또한 임대 토지가 할당 규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할당 분류가 부정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토지 임대는 토지가 제대로 공급되거나, 제공되지 않는 집단에서 더 많이 이용했다. 반대로 토지가 잘 공급되거나, 제공되는 집단에서는 더 많은 토지를 임대할 수 있도록 허가해줬었다. 경제적 힘에 따른다면, 부농들에게는 할당 토지가 더욱 잘 제공됐지만, 임대할 수 있는 토지를 차지할수록, 통계에서도 나타났다. 가계의 번용도는 토지 임대에서 결정적이었으며, 토지 할당 및 임대 조건 변화로부터 요인들도 변화했으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카리셰프는 산업적인 번영의 이와 같은 영향력을 충분히 조사했었지만, 일관된 관점을 고수하지는 않았으며, 부정확하게 기술했었다.

 

임차인에게도 토지 공급 정도는 토지 임대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었기 때문이다. 카리셰프 조사는 일방적이었으며, 부농들이 임대하던 토지 점유하는 방식을 전체적으로 평가하지 못했었다. 카리셰프는 비할당 임대 연구에서 임차인 농장을 더 이상 고려하지 않았으며, 토지 임대에 대한 젬스트보 통계를 요약하는데만 그쳤었다. 더군다나 공식적인 연구 방법으로는 토지 임대와 상업적 성격에 따른 '번영'을 문제를 바라보지도, 해결하지도 못했었다. 카미산 지역에서는 동일한 자료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토지 임대료에서 절대 수치만 재현시키고는 한 가구당 평균적인 임대 토지 면적만 계산했었다. 부농들의 수중에서 토지 임대료는 집중됐고, 토지 임대료에 따른 산업적인 특성, 최하층 농민들에 따라 상관되는 토지 임대의 성격을 모두 간과했었다. 따라서 카리셰프는 젬스트보 통계가 인민주의 토지 개념을 반박하면서도, 부농들로부터 빈농들이 추출된다고 지적했었지만, 모든 측면에서 제대로 연구하지도 못했으며, 부정확한 설명과 노동 원칙만 반복했다. 농민들 사이에서는 경제적 불화로 나타나는 갈등이 이었으며, 인민주의자들에게는 그저 이단일 뿐이었다. 카리셰프는 그들을 반박했고, 교정해갔다.


N. 카블로코프는 토지 임대에 대한 많은 형태를 논했었는데, '농민은 자신들의 경작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만큼 충분한 토지를 가지고 나서는, 어떠한 토지도 임대하지는 않는다고평가했었다. 상업 작물 재배에도 종사하는 부농들은 토지를 임대할 수 있도록 점유하는 과정 속에서 기업가적인 활동이 전무하다고 부인했었다. 인민 생산론은 단지 증명되지도 않았지만법적으로는 규정된 이론일 뿐이었으며, 흐발른스크 지역에서는 젬스트보 통계표를 발췌해서, 가축 수가 동일하다면, 할당량이 적을수록 부족분을 임대로 보충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농민들이 가축 소유에서 동일한 조건 아래 가계에서도 충분한 일꾼들이 있다면, 할당 받는 토지가 적을수록, 임대 받는 토지가 더욱 많아지게 된다. 그러나 동일한 가축을 소유한 경우로는, 가계가 소유한 토지가 적을수록 더 많은 임대료를 받는다는 건 자명한다. 왜냐하면 산업적인 번영을 평등하게 취급하기 때문이다. 충분한 토지를 가진 농민은 토지를 빌리지 않는다는 주장에는 어떤 식으로든 증명되지도 않았으며, 젬스트보 통계로부터 인용한 수치로만 무지를 드러낼 뿐이다. 농민들이 소유한 배정 토지 양을 비교했을 때, 가난한 사람들이 토지를 임대해서, 산업적인 번영으로부터 임대할 수 있는 토지를 빼앗는 역할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주로 부농들에게 임대된다. 카미신 지역에서도 임대 토지 분배는 짐 수레 가축 수에 따른 농민들을 골라내서, 일정한 배정에 따라 배분하고, 일하는 사람 수에 따라서도, 하위 구분으로 또 분배하기 때문에, 농민들이 적은 토지를 가질수록, 더 많이 임대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 부농 집단의 소멸로 이어진다는 인민주의자들의 주장은 터무니가 없다.

 

L. 마레스, 수확과 곡물가격에 따르면 가구 당 농민들이 임대받은 토지를 계산했다. 그러나 인민주의자들의 '평균'에 대한 아주 작은 사례일 뿐이었다. 다른 멜리토폴 지역에서도 임대 가구 당 임대 토지 양에 따라, 일하는 남성들이 더 이상 없는 가구에서는 1.6데시(dess), 일하는 남성 한 명이 있던 가구는, 4.4데시, 두 명이 있는 가구는 8.3데시였으며, 세 명이 있는 가구에서는 14데시라고 표기했었지만, 정작 대략 1인당 임대 토지 분포도는 거의 동일했다마레스는 V. 포스트니코프 저작과 젬스트보 초록에서, 경제적인 역량이 다른 가구 집단에 따른 임대 토지에서 실제 분배는 살펴볼 필요가 없다고 소홀하게 생각했었다. 이를테면 남성 노동자가 한 명인 가구 집단에서는 임대 가구 당 임대 토지 평균 수치로부터 4.4데시, 5-10데시를 경작했으며, 2-3마리 가축을 기르는 가구 집단에서는 4-50데시 이상의 토지를 경작했으며, 4마리 이상 가축을 기르는 가구 집단에서는 38데시를 합산했었다. 멜라토폴 지역, 빈부격차에 따른 소득 산정을 더한 합계를 추가한 항목 수로 나누면, 비교적 '균등한 분배'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작 멜리토폴 지역에서는 전체 가구 21%, 25데시 이상의 작물을 재배하는 전체 농민의 29.5%로 부유층들에 해당하는 농민들은 토지 할당과 매입 토지를 제공받았으며, 전체 임대 경작지로는 66.3%를 차지했다. 반면에 전체 가구 40%, 10데시 이하 작물을 재배하던 전체 농민의 30.1%였던 빈곤층들은 토지 할당과 매입 토지를 제공받았음에도전체 임대 경작지에 따른 토지 비율이 5.6%에 그쳤다. 1인당 균등 분배 기준이었지만 이와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마레스는 농민 토지 임대에 대한 모든 계산을 할당 토지를 제공받는 임대 가구가 주로 열악한 두 집단에 속하며, 임대 인구 가운데 1인당 임대 토지가 균등하다고만 결론 내렸으며, 토지 임대에서 농민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비교적 좋은 환경을 누리는 집단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섣부르게 판단했다. 그러므로 마레스의 주장에는 허점과 모순이 상당하다. 경제 생활 면에서는 불평등을 다루면서도, 할당 토지가 아닌 가구 분류를 위한 경제 지표 통계만을 사용했고, 인민주의자들의 근거 없는 주장을 오히려 똑같이 지적하고 말았다.

 

카미신 지역을 예시로 들자면, 사라토프 현과 다른 지역을 비교해보자. 농민 집단 간 비율은 대부분 모든 지역에서도 동일했으며, 중산층과 부유층이 섞여있었던 볼스크, 쿠즈네츠크, 발라쇼프, 세르도프스크와 같은 자료에서도 충분히 분석할 수 있었다. 부농들이 빈농들을 몰아내는 모습은 도처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는데, 특히 카미신 지역에서는 부농들이 다른 지역보다 재산과 수가 더 많았다. 구베르니아에 따른 5개 위예즈드 지역에서 가구 비율은 가축 보유량에 따라 가축이 없는 가구는 25.3%, 가축 한 마리의 가구는 25.5%, 가축이 두 마리 있는 가구는 20%, 가축이 세 마리 있는 가구는 10.8%, 가축이 네 마리 이상인 가구로는 18.4%였다. 반면에, 카미신 지역에서는 부유층들의 비율이 더 컸고, 중산층과 합쳤을 때도, 가축 2마리 이상이 있는 가구는 카시민 지역에서는 부농들이 훨씬 더 부유했다. 해당 지역은 토지와 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에, 등록된 남성 1인 당 7.1데시를 할당받았으며, 주베르니아에 따른 5.3데시와 비교해봤을 때, 비교적 높은 편이었다. 따라서 농민의 토지가 많을수록 농촌 지역 사회에서도, 농민 부유층 수에 따라 부를 더 많이 가져갈 수 있었다.

 

사라토프 주 자료에서는, 농민 가구 분류를 다룰 필요가 있다. 할당에 따른 분류를 일절 거부하며, 가축, 경작 면적에 따른 경제력 분류만을 사용한다. 젬스트보 통계에서는 이미 할당 분류가 만연했었고, 이를 옹호하는 주장들도 많았다. 농업 농민들을 자세하게 연구하려면, 토지 분류가 필수다. 러시아 생활에서도 근본적인 특징으로, 할당 토지 소유권에서 비자유적인 성격, 법적인 강제력으로부터 평등주의 성격을 띠며, 할당 토지 매매는 극도로 제한되기 때문에, 농업 사회에서 농민 분화는 법적인 제약에서 벗어난다. 농민을 할당 분류로 묶게 되면, 부농과 빈농을 구분하지 못하며, 이렇게 해서 얻은 평균값은, 농촌 사회에서도 존재하는 무산층과 부유층의 차별화를 순전한 거짓말로 더욱 모호하게 만들 뿐이다. 사라토프 통계학자들은 무의미한 할당 분류를 채택했으며, 계산의 오류를 범했다. 카미신 지역에서 비배정 농민 범주를 보더라도, 작물 아래 면적을 무시하고는 빈층의 범주로 할당시켰다. 작물 아래에서 평균 면적은 가구 당 2.9데시였지만, 평균에 관한 도출로는 대규모 작물 재배자 기준으로, 5마리 이상 가축을 기르던 집단에서 가구 당 18데시로, 가구 집단으로는 전체 범주로는 약 1/8을 이뤘지만, 작물 아래 범주 면적에서는 약 절반만을 소유했으며, 가구 당 0.2데시를 가진 가난한 무마 농민과 합쳐졌다. 농장 노동자를 고용하던 가구에서도 범주는 모두 77개였으며, 2.5%였다. 그러나 77개 가운데 60개는 가구 당 경작 면적인 18데시인 최상위 집단에 속했다. 그리고 같은 집단에서, 농장 노동자를 고용하던 가구로는 24.5%를 차지하게 됐다. 따라서 농민들의 구분을 더욱 모호하게 만들면서, 재산 없는 농민마저 실제하는 현실보다 더 좋게 묘사해서는 속임수를 쓰고 만다. 여기에다 부농까지 더하고는 평균값에다 그대로 적용시키고는 반대로, 부농들은 힘이 약하다고만 묘사해버린다. 대규모 텃밭을 가진 농민 범주가 대다수 부농층 뿐만이 아니라, 빈농층까지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할당 분류에서 가축 수, 경작 면적 등에 따른 경제적 힘의 지표로는 텃밭의 규모가 증가하면서부터, 늘 규칙적이라고 주장했었지만, 텃밭은 농민층 복지에서 주요한 요인이었고, 농민들은 대규모 토지 소유주에 따른 지역에서도 늘 농민 부유층들이 대다수였으며, 결론적으로, 이렇게 합산한 통계값과 분포로는 전체 농민층에서도 토지 소유 규모에 따른 '평균값'이 의도적으로 높아진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와 같이 농촌 부유층과 농촌 무산층이 결합해서 계산한 방식으로 합당하다고 추론할 수 있는 근거는 전무하다는 점이다.

 

특히 농가 통계를 쳬계화할 때는 특정 지역 구획에 따른 분류로만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 경제 통계는 반드시 농장 규모와 유형을 기준으로 측정하고, 분류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유형을 구분하는 지표로 지역적인 조건들과 농업 형태에 따라서도 현실적으로 적용해야만 한다. '' 단위로 곡물 농사를 다룰 경우로는, 작물 재배 면적이나, 가마우지 수에 따라서 분류를 제한하며, 다른 조건으로는 산업 작물 재배 면적, 농산물에 따른 기술적 가공, 뿌리 작물 재배 또는 가축 사료용 식물 재배, 낙농업, 채소 재배 등을 고려한다. 농업과 산업 활동을 대규모로 결합하는 경우로는, 농업의 규모와 유형, 산업의 규모와 유형을 따로 구분해서 결합한다. 농가 소득을 산정하는 방법은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 젬스트보 통계에서도 다룰 수 있는 본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계()보고서의 완성도와 수집 기법은 당시로도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했었지만, 막대한 분량의 자료 정보가 불만족스럽게 요약되어, 손실되고 말았다. 조사자는 단지 젬스트보 통계 자료를, 마을 공동체(미르), 볼로스트, 농민 유형, 배정 규모 등을 다루는 평균 수치로만 활용할 제약이 뒷따른다. 따라서 농민 통계로부터 측정된 할당 분류에 따른 평균값의 결과는 완전히 거짓이다.

 

- 구베르니아에서 다른 4개 지역에서 보유한 가축 분류도 역시나 중산층과 부농들을 통합시켰다. 사라토프 구베르니아 통계수익(1888)도 참조해보면서, 농민 범주에 따른 통합 표에 따라 사라토프 통계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모든 가구 주는 배당 규모에 따른 6개 규모로 분류하고, 구분해서, 각 범주를 가축 수에 따라 6개 집단들로 다시 분류하고는각 집단에서 가족 내 일하는 사람 수에 따라 4개의 하위 부문으로 구분했었다. 요약된 통계와 자료는 범주에 대해서만 해당하여 제공하므로, 집산된 집단 자료를 직접 계산했다. 그리고 가계()를 경제적 힘(능력)이나, 농장 규모에 따라 분류할 때는 비교적 부유하고, 유복한 환경의 농민층일수록, 대가족이 많다는 점에도 유의했었다. 농민 부유층이 더 많은 토지를 할당 받았기 때문에 대가족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관 관계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점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비교적 부유하고, 유복한 환경의 농민층에서는 토지 분할을 미약하게 하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유층과 대가족의 상관 관계에 따른 중요도를 과장하는 건 아니다. 대부분 부유층 농민들에서는 고용 노동을 이용했다. 인민주의자들의 가족협동조합이란 다름 아닌 자본주의 협동조합의 기반이 된 다른 이름들이었기 때문에, '가공'에 따른 가가호별 인구조사 수집에서는 농민 산업자료가 당시 러시아에서 매우 포괄적이고, 자세했다. 더불어 군 단위로 임대했던 경작지 총량은 61,638데시로,

총 할당 경작지(377,305데시), 1/6이었다. 관련 자료로는 카미신 지역 통계학자들의 보고서, 사라토프 통계서사라토프에서 결합 수익률 및 평가 수익률도 참조하자.

 

- V.V. 보론초프 뿐만이 아니라, V. 포스트니코프도 1885년 이후의 잡지 기사나, 새로운 유형의 젬스트보 통계 간행물에서도, 경제적 힘에 따른 분류와 자료를 할당 분류로 계산했었으며, 많은 집단에서 농민 마을(미르)과 같은 마을 공동체 조사마저 농민 경제를 자세하게 살펴보지 않았으며, 농민층 분화 요인에 대한 사실조차, 그리고 농민의 많은 집단들에 대해서도

살펴보지를 않았었다. 이를테면 포트나토브(Fortunatov)의 젬스트보 인구 조사 기법 가운데, 사라토브 합산 신고서 및 통계 신고서, (Perm) 지역 통계자료 조사를 참조해보자.

 

- 당시에 봉건적이던 러시아에서는 특히 남성 연구 가운데 도시 중산층과 농민층에서는 인두세를 부과받았다. 또한 '특별 인구 조사'로 특수하게 기록됐고, 당시에 러시아에서는 1718년부터 이뤄졌으며, 마지막 등록은 열 번째로, 1857-1859년 사이에 이뤄졌다. 여러지역에서는 '미르' 안에서도 토지 재분배는 등록 목록에 기록된 토지를 기준으로 실시했다.

 

2-1-4. 페름(Perm) 구베르니아에 대한 젬스트보 통계

 

페름 주에서 크라스노우핌스크 지역을 사례로 들자면, 해당 지역의 분류는 농업 규모에 따라 좌우된다. 당시에, 크라스노우핌스크 지역에서는 농업 부문은 총 23,574가구(세대)였으며, 남녀 인구로는 129,439명이었다. 농경지 면적은 상당히 작았으며, 집단 간 비율은 동일했다. 소수 부유한 농민 집단으로부터 소유한 농경지와 가축 집중도는 동일했으며, 소유한 토지는 실제 경제적으로 상요되는 토지 비율로 따져보자면, 주베르니아와 동일했다. 부농들은 토지를 공급받았으며, 임대 토지를 똑같이 빼앗고는, 빈민들에게서 부농 할당지를 임대 형태로 이전시켜서, 할당지의 역할이 농촌 양극화에 따라 서로 다르게 두 가지 방향으로 축소되는 일도 일어났다. 농민들의 최상층, 임대 토지를 대부분 소유한 경우로는 인민주의 경제학자들의 토지 임대에 관한 반대 견해와는 달리, 매우 산업적이고, 기업적인 성격을 띠었다. 해당 지역과 관련해서는, 사라토프 통계학자들은 일용직 노동자 고용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농장의 강점과 약점을 나타낸 특징적인 지표가 아니라는 견해를 반박했었다. 오히려 농민 부르주아, 부유층들의 특징이었다.

 

모든 형태로 형성되는 일용직 고용에서는 부농들이 가족 내에서도 매우 잘 일할 수 있었음에도, 경제력이 상승하면서, 노동자를 고용하는 농민 비율도 증가했다. 따라서 가족협동이 자본주의적인 협동에서도 기반이 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일용직 노동자를 고용하는 농장 수로는 계절 노동자를 고용하는 농장 수에서 평균 2.5배임을 알 수 있었다. 비록 수확을 위한 일용직 노동자 고용일 뿐이며, 통계학자들은 일용직 노동자를 고용하는 농장의 총 수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상위 3개 집단 가운데, 7,679 가구 가운데 2,190 가구만이 농장 노동자를 고용했었지만, 부농이 대다수였던 4,017가구에서는 수확을 위해 일용직 노동자를 고용했었다. 일용직 노동자들의 고용은 페름 지역 내에서만 국한되지는 않았으며, 부농 집단에서는 전체 소유주 2-6%, 9%가 농장 노동자를 고용했었다. 부유층 농민 가구 대다수는 어떠한 형태로든, 노동자를 고용했다. 정규직 농장 노동자와 일용직 노동자 집단을 형성한다는 건 부농이 존재하는 데 있어 필수였기 때문이다. 더불어 일용직 노동자를 고용하는 농장 수와 정규직 농장 노동자를 고용하는 수의 비율이 하위 농민 집단에서 상위 농민 집단으로 갈수록 줄어들었다당시에 러시아에서는 하위 집단에서 일용직 노동자를 고용하는 농장 수가 정규직 농장 노동자를 고용하는 농장 수보다 몇 배나 더 많았다. 반대로, 상위 집단에서는 정규직 농장 노동자를 고용하는 농장 수가 일용직 노동자를 고용하는 농민 수보다 더 많은 경우도 있었다. 상위 집단 농민층에서는 노동자를 고용하는 농장, 임금 노동에서 정규직 고용에 기반한 농장이 형성될 수 있었다. 임금 노동은 계절에 따라서 더욱 균등하게 분배됐으며, 더 많은 비용과 번거로운 일로 인해 일용직 노동자 고용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됐다.

 

부농과 중농이 결합된 엘라부 지역에서는 고용 노동에 대한 수익을 살펴볼 수 있었다. 빈농과 부농이 사용한 농업 체계와 방법은 근본적으로 매우 달랐다. 왜냐하면 부농들은 대부분 농민 소유 가축을 손아귀에 쥐고 있었으며, 농장 개선 면에서도 노동력을 투자할 기회가 더 많았다. V.V. 보론초프, 농민 농업에서 발전 추세에서도 소개된 바에 따르면, 당시 러시아에서는 대대적이던 농민 개혁 뒤로, 농민들은 가축들이 없는 가구 집단들을 알아서 만들었으며, 토양에다 거름을 주는 관행을 도입해서, 당시로는 농민들의 효율을 높일 수 있었다. 여기서 말했던 발전 추세란 단지 농촌 사회에서 부유층들의 발전만을 나타냈을 뿐이었다. 개량된 농기구 분포도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났으며, 페름 통계 표에서도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러나 페름 통계는 농업 부문 전체에서 산정한 건 아니었던지라, 23,574 가구 가운데 15,076 가구로부터 해당하는 제 3,4,5 구역에 대해서만 수집된 한계를 보였다. 개량된 농기구로는 풍로기 1,049, 종자 선별기 225, 탈곡기는 354대로, 1,628대였다. 농민들은 모두 농기구를 사용한다던 바실리 보로초프의 인민주의적인 주장을 잘 보여주는 예시일 뿐이었다.

 

다음의 산업 자료에서는 두 가지 주요한 산업 유형을 추출했다.

 

1) 농민들의 농촌 부유층으로 상업 및 산업 시설을 소유한 전환.

 

2) 농민들의 농촌 무산층으로 노동력 판매, 농업 산업 분야 진출.

 

또한 정반대되는 산업가 유형들도 따로 추출할 수 있었다.

 

농작물 재배 면적에 따른 분포도와 노동자 고용을 보여주는 통계 자료를 비교할 때는 농민층들의 차별화가 곧 자본주의를 위한 국내 시장을 창출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많은 유형의 직업들에서는 단지 산업이나, 고용이라는 이름만으로 묶고는, 농업과 산업의 결합을 획일적이고, 동일한 본질로 묘사해서는 얼마나 자본주의를 배제시키면서,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 예카테린부르크 지역 통계 자료에서도 비슷한 지역 내에서 59,709가구에서 토지가 없는 가구 수 14,601가구와, 목초지만 있는 가구 수 15,679가구, 할당량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가구 수 1,612가구를 빼고 남은 27,817가구에 자료는 다음과 같다. 토지를 경작하지 않거나, 거의 경작하지도 않는 최대 5데시 가운데 20,000가구는 총 124,000데시 가운데 41,000데시, 1/3미만이었다. 반면에, 10데시 이상 경작하는 부유층 가구 수 2,859가구는 49,751-53,000데시를 경작했다. 총 임대 농지 55,000데시 중 47,000데시를 포함했을 때, 67,000데시 가운데 임대 토지 비율이다. 예카테린부르크 지역에서도 두 가지 상반된 유형 산업으로, 농장 노동자를 고용하는 가구 분포도로는 크라스노우핌스크 지역에서 차별화 지수 분포도와 매우 비슷하게 나타났다.

 

- 페름 지역, 크라스노우핌스크 지역(카잔, 1894) 자료, 예카테리부르크 지역 자료, 카테린부르크 지역 통계 수익률, 예카테린부르크 젬스트보 통계(1891)을 참조해보자.

 

- 구베르니아 농민들로 모아진 모든 집단에서 소유한 총 할당 토지는 410,428데시로, 가구 당 평균 17.5데시이다. 다음 농민들은 경작지 53,882데시와 초원 597,180데시를 임대해서, 651,062데시이다. 경작지 임대가구로는 8,903가구, 초원 임대 가구로는 9,167가구로, 경작지 할당 토지는 50,548데시(농민 8,553), 초원 7,186데시(농민 2,180)을 임대해서, 57,734데시였다.

 

- 당시에 러시아 농업 산업은 마지막 세 지역으로 국한된다. 상업 및 산업 시설은 총 692개였으며, 물레방아 132, 기름 공장 16, 역청(아스팔트) 및 타르 공장 97, 대장간 등 283, 상점 및 주점 등 164개였다.

 

2-1-5. 오렐(Orel) 구베르니아 젬스트보 통계

 

옐츠(Yelets), 투르크셰브스크(Trubchevsk) 지역 집단 간에 일반적인 관계는 동일했다. 임대 토지는 부유층 수중으로 집중됐고, 빈농으로부터 토지가 양도되는 등, 고용 노동, 산업, 농업에서도 발전 추세와 관련한 집단 관계도 엇비슷했다. 오렐 구에서도 농민들은 두 가지 정반대 유형으로 분화됐다. 토지 포기 및 노동력 매각에 따른 농촌 무산층과 토지 매수, 상당한 규모 임대, 할당지 임대, 농업 방법 개선, 정규직 농장 노동자 및 일용직 노동자 고용, 상업 및 산업 기업과 농업의 결합 등에 따른 농촌 부유층으로 분화됐다. 농민들의 농업 규모는 훨씬 작았으며, 그 중에서 대규모 작물 지배자가 훨씬 적었으며, 위예즈드 지역으로 판단했을 때, 농민 분화는 더 미약했다. 농민층 가운데에서는 농촌 무산층으로 전환됐으며, 농촌 부르주아 집단을 생성한다는 점을 볼 수 있다. 이는 시골 모습에서도 훨씬 두드러진다. 농업 농민들로 한정된 차별화에 따라, 폭 넓게 가족의 40%가 산업으로 발전했다. 산업가로는 대다수 임금 노동자 외에도, 소수 상인, 매수자, 기업가, 자영주 등이 포함된다. 농민들의 차별화는 시장과 밀접하게 관련됐었지만, 지역 농업 측면에서 조사한 자료는 없었다. 상업적인 시장에서 경작은 판매용 곡물 생산을 위한 경작 면적 확장이 아닌, 대마 생산을 위해 개발됐다. 상업적인 활동들이 매우 많은 작물과 관련해서, 많은 집단 사이에서는 농업을 특정할 수 있는 측면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트르부체프스크 지역 회보>에 따르면, 금전적인 소득에 따른 대마 재배는 농민 소득에서도 주요한 원천이었으며, 마을과 다른 많은 곳에서 농민들은 주로 대마 재배에 주의를 기울였다. 모든 비료는 대마밭으로 쓰였다. 대마를 담보로 대출이 이뤄졌으며, 부채를 대마로 갚았다. 대마밭에 비료를 주고자, 부농들은 빈농들에게서 비료를 샀다. 대마밭은 마을 공동체 안팎에서도 임대됐으며, 대마 가공은 앞서 언급한 주요 산업 시설들의 일부로 채워졌다. 지역 농업에서도 주요한 상업 생산물에 대한 자료를 전혀 제공하지도 않는 차별화된 그림은 너무나 분명하지만, 불완전할 뿐이다. 트루브쳬프스크 지역에 대한 통계 자료에서는 교회 마을 공동체에 대한 자료는 포함되지 않는다. 토지 임대에 대한 공동 자료를 수집해서, 배정된 토지와 배정되지 않은 임대 토지를 합산했다. 배정된 토지 전체를 임대하는 가구 수로부터 대략적으로 제시된 임대된 토지 양으로 결정했었다.

 

따라서 얻은 수치로는 각 집단에서 사용 중이던 토지 양은배정된 토지 + 구매된 토지 + 임대된 토지 - 임대한 토지)를 결정하는 기초였다. 여기서도 부농들은 빈농들보다 가축 한 마리 당 두 배나 많은 분뇨를 얻는다고 명시했다. 가구 당 7.4마리 가축이 있는 경우에, 가축 당 391푸드, 가구 당 2.8마리 가축이 있는 경우 가축 당 208푸드였다. 같은 결론이 할당 분류로부터 도출됐으며, 실제로도 농민층들에게 차별화에 대한 깊이를 더욱 모호하게 만들었다. 빈농들은 주로 짚과 분뇨를 연료로 사용한다거나, 판매해야만 했다. 오직 농민 부르주아만이 가축 한 마리 당 일반적인 분노 양인 400푸드를 확보했다. V.V.보론초프는 말 소유 감소에 따른 가축 수, 분뇨 양 사이에서도 일반적인 비율로 충분히 회복시킬 수 있다고만 내세웠다.

 

 

2-1-6. 보로네즈(Voronezh) 구베르니아 젬스트보 통계

 

보로네즈 주는 매우 완전한 자료와 풍부한 분류를 명시했다. 여러 군에서도 가축, 가족 노동자, 산업 노동자, 농장 노동자에 따른 세부적인 부류가 있었다. (위예즈드)에 따른 많은 분류가 제시됐었지만, 농장 노동자를 제공하는 농장 집단에서는 농산 무산층 전체를 포괄하지 않았다. 일용직 노동자, 미숙련 노동자, 공장 노동자, 건설 노동자, 하인 등 노동력을 제공하는 농장은 포함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농장 노동자는 농민들이 제공하는 임금 노동자의 일부일 뿐이었다. 농장 노동자를 고용하는 농장을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불완전했다. 중립 집단에서는 각 지역에 따른 수만 가지를 묶어내서, 가축을 소유하지 않은 수 천 명의 농민, 가축을 많이 소유한 농민들, 토지를 임대하는 농민, 경작자와 비경작자, 임금 노동자, 소수 고용주 등을 합산해서 계산했다. 전체 중립 집단에서도 일반적인 평균값으로는 토지 없는 가구 수, 3-4데시를 소유한 가구를 합산해서 얻어냈다. 가구 당 배정지와 구입한 토지 전체 및 25-50데시아틴 이상의 배정지를 소유하거나, 몇 십-백 데시아틴의 토지를 추가로 구매하는 가구 수에 따른 가족 당 0.8-2.7마리 가축을 보유한 가구, 12-21마리 가축을 보유한 가구를 합산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합산된 평균값만으로는 농민들의 차별화 요인을 설명할 수는 없었으며, 농경 규모에 따른 근접한 분로로는 역마차를 채택했다. 관련된 네 가지 보고서에서 젬랸스크, 자돈스크, 니즈네데비츠크, 코로토야크 군이 있었으며, 주로 자돈스크를 채택했다. 다른 군들에 대해서는 매매 토지 및 임대에 대한 별도의 보고서가 아예 없었다. 따로 조사한 자돈스크 지역에서는 15,704가구, 남녀 인구는 106,288, 배정 토지는 135,656데시, 매수 토지는 2,882데시, 임대된 토지는 24,046데시, 임대한 토지는 6.482였다. 집단 간 관계로는 시내권(구베르니아), 군 단위(위예즈드) 두 곳에서 비슷하게 나타났는데, 매수 토지와 임대 토지를 집중했으며, 토지를 임대하는 빈농으로부터 임대 토지를 임대 농민, 부농에게 이전시켰지만, 정작 부농의 중요성은 훨씬 작았으며, 소작농 규모 또한 미미했기 때문에, 지역 농민들은 토지를 경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산업가에 속한다는 의문이 생겼다.

 

개량된 도구에 따른 반대 유형으로는 노동력 판매, 상업 및 산업 기업들의 분포도로부터 검토한 자료와 동일했다. 산업에 종사하던 가구에서 큰 비율로부터, 곡물 판매 농장보다도 곡물 구매가 우세했었으며, 산업에서 얻는 현금 소득은 농업 분야에서 얻을 수 있는 현금 소득보다도 우세했다. 이와 같은 근거에서 군 단위의 위예즈드를 농업이 아닌 산업으로 간주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다. 젬랸스크, 자돈스크, 니즈네데비츠크, 코로토야크 군, 농민 토지 소유권에 대한 평가 수익(1899), 해당 보고서에서는 현지 및 자택을 떠나 노동하는 산업가들의 총 22개 거래 목록이 포함됐다. 할당 집단으로 분류했으며, 각 거래에 따른 수입 규모를 파악할 수는 있었다. 해당 목록에서부터, 농촌 산업에서도 압도적 다수가 고용 노동을 제공했다. 자돈스크 지역에서는 산업가 24,134명 가운데 14,135명은 농장 노동자, 짐꾼, 양치기, 비숙련 노동자였으며, 1,813명은 건설 노동자였고, 298명은 도시, 공장 및 기타 노동자로, 446명은 개인 서비스업에 종사했으며, 301명은 노숙자(거지) 등이었다.

 

산업가의 압도적 다수는 농촌 무산층이었고, 토지를 소유한 임금 노동자로는 농촌 및 산업 고용주들에게 노동력을 판매했다. 구베르니아에서는 특정 위예즈드에서, 농민 집단 간 비유로 살펴보자면, 비교적 거대한 농경지를 가진 토지는 풍부한 대초원 지역이었으며, 소규모 농민 농장만을 가진, 토지가 매우 부족한 지역에서도 차별화된 모습이 전형적으로,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농업 조건에 따른 극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농민 상위와 하위 집단 간 비율이 동일했다. 각 지역을 비교했을 때, 어떤 지역에서는 농민들 사이에서 농촌 기업가가 형성된다거나, 다른 지역에서는 농촌 무산층들이 형성됐다. 다른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러시아에서 일어난 농민층 차별화 과정에 따라 농촌 무산층이 농촌 기업가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수로 소규모 경작자를 포괄하고 있었다. 수적으로 적은 상위 농민 집단에서는 정반대 양상을 보였는데, 구매보다 곡물 판매가 우세했으며, 토지에서는 현금 소득을 얻는다거나, 높은 비율로는 농민들은 농장 노동자를 고용해서, 개량된 농기구를 소유했었고, 상업 및 산업 시설을 소유했다. 농민 부유층들은 규모가 작았어도, 전형적인 특징 때문에 자본주의 상업 및 농업이 발전할 수 있었다.

 

젬스트보 통계에서 산업이라는 용어란 여섯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4개 군 총 92,889명의 산업가 가운데 59,277명이 차지하는 농업 산업, 압도적 다수로는 임금 노동자였으며, 과일 재배자, 채소 재배자, 양봉가, 마부 등과 같은 농장 소유주, 20,784명을 차지하는 장인 및 수공예 분야에서 장인들 가운데에는 매우 많은 임금 노동자, 건설 노동자 등이 8,000명 이상으로 추산됐다. 하인들은 1,737명이었으며, 상인 및 대기업 산업가는 7,104명으로 산업가 집단에서 특히 구분됐다. 2,881명의 자유업 종사와 노숙자(거지) 이외에도, 부랑자, 헌병, 매춘부, 경찰관 등 1090명과 도시, 공장 및 기타 노동자 1,106, 지역 산업가 71,112, 이주 산업가 21,77명으로 남성 85,255, 여성 7,634명이었고, 소득 분포도는 전반적으로 매우 많았다.

 

일례로 자돈스크 지역에서는 8,580명 정도의 비숙련 노동자는 234,677루블을 벌었지만, 647명의 상업 및 대기업 산업가는 71,799루블을 벌었다. 이와 같은 많은 집단들을 단지 '산업'으로 묶어버린다면, 큰 혼란을 초래하지만, 인민주의자들과, 젬스트보 통계학자들은 거리낌 없이 이를 모두 합산해버렸다.

 

 

2-1-7. 니즈니노브고로드 구베르니아 젬스트보 통계

 

니즈니노브고로드 구베르니아에서는 3개 지역, 크냐진(Knyaginin), 마카라예브(Makaryev), 바질(Vasil)에 따른 젬스트보 호별 인구 조사 결과에서 농민 농장에 따른 할당금 보유 및 자신들의 마을에서 거주하는 농민에게, 보유한 가축 가축에 따라서도 다섯 가지로 나뉘었다. 세 개의 위예즈드 지역을 합산해보면, 52,260 가구와 남녀 294,798명을 포함해서, 433,593데시의 배정지, 51,960데시의 매수 토지, 86,007데시의 임대 토지라는 모든 종류의 임대지, 배정 및 비배정지, 경작지 및 초원지를 포함한 19,274데시의 임대 토지가 있었다. 부농들은 배정지를 더 잘 갖추고 있어서, 상층의 배정지 비율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보다도 더 컸으며, 매입한 토지를 집중시키면서도, 전체 9.6%에 해당하는 부유한 가구는 매입한 토지의 46.2%를 소유했었지만, 가구의 2/3인 빈농들은 1/4도 소유하지 못했었다. 따라서 임대 토지를 집중시키서, 빈농들로부터 임대받은 배정지를 모을 수 있었다. 농민들은 사용 토지에서 실제 토지 분배는 배정지 분배와도 매우 달랐다는 점이다. 가축을 보유하지 못한 농민들은 법으로부터 보장된 배정지보다도 더 적은 토지를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두 마리를 기르던 농민들은 토지 소유량을 10-30%(8.1-9.4데시, 10.5-13.8데시)로 늘렸지만, 부농들은 토지 소유량을 1.5-2배나 가량 더 늘렸다. 두 집단에서 토지 규모 분배 차이는 미미했었지만, 실제로는 경작 규모 면에서는 큰 차이를 보였다.

 

정물(Tablishments)

 

작물이 자란 면적으로 평가해볼 때, 실제로 소유한 토지 양은 훨씬 더 컸고, 할당된 크기도 마찬가지였다. 할당 소유권에 따른 분류는 전적으로 무의미했고, 할당 소유권에 따른 평등은 법적인 허구였다. 농민들 간 농업과 산업 결합들은, 부농들이 상업 및 농노를 고용하는 가구들에서 높은 비율로 자본주의 농업을 상업 및 산업 사업과 결합시켰지만, 빈농들은 노동력 판매 및 외부 고용을 미미한 규모로부터 작물 재배와 결합했다. 이들은 토지를 소유한 농장 노동자와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했다. 외부 고용 가구 비율로는 비례적으로 감소하지 않는 건 니즈니고로브 농민들의 고용과 산업이 매우 많았기 때문이다. 농업 노동자, 비숙련 노동자, 건설 및 조선 노동자 등 외에도, 산업가들에는 비교적 많은 수로 수공예인, 산업 작업장 소유주상인, 매수인 등도 포함됐다. 따라서 많은 유형을 이와 같은 산업가로 묶는다면 분명하게 왜곡시킬 수밖에는 없다. 외부 소득이 있는 가구에 대한 자료에서도 많은 농민 집단에서 경작 차이에 대해 니즈니고로드 주에서 토지에 따른 비료를 할당 할 때, 쟁기질된 토지에서 생산된 정도를 결정하는 주요한 조건이다. 평균 호밀 수확량은 사용하는 분뇨량에 따라 비례해서 증가하기 때문에, 전체 배정지 4/4를 기준으로, 100데시 당 300-500 수에 따른 분량의 분뇨를 사용했을 때, 호밀 수확량은 데시당 47.1메라에 달하며, 1,500수레 분량 이상이면, 62.7메라에 달한다. 따라서 농업 생산 규모에 따른 두 집단 간 차이로는 작물 재배 면적 차이보다도 훨씬 크게 나타나며, 니즈니노브고로드 통계학자들은 일반적인 농민 밭에서 생산물을 연구했었지만, 정작 빈농들과 부농들의 밭에서 수확되는 생산물들을 따로 연구하지는 않았었다.

 

- 무마 농민 가구당 할당량은 100을 기준으로, 상위 집단 할당량은 159, 206, 259, 321과 같은 수치로 표기된다. 각 집단에서도 실제 소유한 토지 수치는 100, 214, 314, 477, 786으로,

농작물 재배 면적에 대한 각 집단 수치는 100, 231, 378, 568, 873 정도이다. 자세한 사항은 니즈니노브고로드 농민 산업은 플로토니코프, <니즈니노브고로드 수공예 산업>, 고바토브(Govatov) 및 세묘노브(Semyonov) 지역(Uyezed)에서 젬스트보 통계를 참조하자.

 

2-1-8. 기타 주별 젬스트보 통계 검토

 

농민 분화 과정을 연구할 때는 <젬스트보 호별 인구 조사 통계>를 사용했다. 해당 통계는 다소 폭 넓은 지역을 포괄했으며, 매우 중요한 분화 지표에 대한 충분하고도, 자세한 자료로 제공했으며, 경제적 역량에 따른 농민 집단들을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처리했다. 7개 구베르니아 지역 조건에 부합할 수 있었던, 젬스트보 통계 자료들도 참고했다. 보다 완전하게 자료를 전달하고자, 비슷한 종류로는 호별 인구 조사를 기반으로 한 불완전한 통계 자료를 먼저 살펴보자.

 

1888년도에는 노브고로드 구베르니아에서 데미안스크 위예즈드에 대한 가축 수에 따른 집단화된 농대 농장에 대한 지표가 있다. 토지 임대 및 데시아틴 단위로 된 장기 임대(리스)에 대한 추가적인 자료는 없었지만, 다른 구베르니아와 비교해봤을 때, 부농과 빈농 사이 관계는 비슷했다. 적어도 가축을 세 마리 이상 기를 수 있는 최하위 집단 가구에서, 최상위 집단으로 갈수록 더 많은 가축을 소유한 농장들이 평균 이상의 배정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정작 토지를 매입 및 임대하는 농장 비율은 날로 증가해갔다. 세 마리 이상 가축을 소유한 가구로는 전체 가구에서 10.7%, 인구로 따져보자면 16.1%였으며, 모든 배정지에서는 18.3%, 매입지에서는 43.4%, 임대지에서는 26.2%, 임대지 호밀과 귀리와 같은 재배 면적 단위로 파악할 수 있었다. 전체 산업용 건물은 29.4%를 소유했었지만, 가축이 아예 없다거나, 적어도 한 마리의 가축만을 소유한 가구로는 전체 인구에서 40.1%, 배정지에서 33.2%, 매입지에서 13.8%, 임대지에서 20.8%, 산업용 건물로는 28.8%만을 소유했었다. 따라서 부농들은 토지를 수집하고 있었으며, 상업 및 산업에서 무역을 농업과 결합했었지만, 빈농들은 정작 토지를 버리고 살아남고자, 임금 노동자로 전락했다. 산업 종사자 비율로는 최하층에서 상층으로 오를수록 감소했다. 무마 농민들은 26.6%에서, 세 마리 이상 가축을 소유한 농민으로는 7.8%로 감소했따. 해당 자료들은 불완전했으며, 농민 분화에 대한 요약본으로는 제외할 수밖에는 없었다.

 

체르니코프 구베르니아에서 코젤레츠 지역에 대한 일부 자료를 생략했다. 왜냐하면 젬스트보 위원회, 체르니고프 통계부, <농지 평가를 위한 자료>(1882)에서 가마우지 수는 흑토 구역에 있는 지역만으로 총 8,717가구로 분류됐다. 반면에 가마우지가 없는 가구율은 36.8%와 인구 28.8%를 이루는 가구로는 자신들의 토지와 배정지 21%와 임대 토지를 7% 소유했었지만, 8,717가구는 임대하는 총 토지가 63%를 차지했다. 반면에, 네 마리 이상 가축을 소유한 가구 14.3%는 전체 인구에서 17.3%였고, 자가 및 배정 토지 33.4%, 임대 토지 32.1%를 소유했으므로, 임대 토지율은 불과 7%였다. 더불어 나머지 한-세 마리 가축을 보유한 가구로는 작은 집단으로밖에는 세분화되지 않았다.

 

이르쿠츠크, 예니세이 구베르니아 농촌 인구에서 토지 이용 및 가정 생활 조사를 위한 자료(이르쿠츠크, 1893)에서는 예니세이 구베르니아 네 지역에 있는 농민과 정착 농민들에 대한 짐마 수 분류 통계가 있다. 부유한 시베리아인들과 정착민들의 관계로는 부유한 마을 공동체 구성원과 가축이 한 마리도 없는 구성원들과도 동일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정착민과 기존의 농민들을 결합하여, 기존의 농민들을 노동력 역할을 하도록 제공했었기에, 이들이 필수적이었으며, 상류층과 하류층들의 익숙한 특징을 볼 수 있었다. 가구 가운데 39.4%는 가축이 전혀 없었으며, -두마리만 있는 하위 집단은 전체 인구에서도 24%를 구성했으며, 전체 경작지에서 6.2%와 전체 가죽에서도 7.1%만을 소유했었지만, 다섯 마리 이상을 소유한 가구는 36.4%로 전체 인구에서도, 51.2%를 이뤘으며, 경작지 73%와 전체 가축에서 74.5%를 소유했다. 가축이 다섯-열마리 이상이던 집단에서는 가구 당 15-36마리를 길렀으며, 임금 노동에서도 폭 넓게 의존했고, 농장 30-70%를 고용했다. 가구 당 아예 없거나, 네 마리 이하를 기르는 하위 3개 집단에서는 노동력을 제공했다. 농장 20-30-59%는 토지 임대 및 장기 임대(리스)에 대한 자료로부터 부유층 수중으로 임대지가 집중된다는 규칙에서 유일한 예외였으며, 규칙을 증명하는 분류에서도 예외 대상이었다. 핵심은 시베리아에서는 이와 같은 규칙을 만들어낸 조건들이 전무했다는 점이다. 토지를 강제적이고, 평등하도록 만들 수 있는 '할당지'조차 없었으며, 토지에 대해 확립할 수 없는 '사유재산'마저 없었다. 심지어 부농들은 토지를 구매하거나, 임대하지도 않았으며, 토지를 점유하고만 있었을 뿐이었다. 토지 임대 및 장기 임대로는 이웃 간 교환 성격을 띠었고, 집단 통계 자료에서도 일관되지 않았다.

 

폴타바 구베르니아에서 세 위예즈드에 대해서는 경작지 면적 분포를 대략적으로 파악했다.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데시아틴 경작에 따른 농장 수와 각 구역에서 가구 수 단위로 표시된 범위 내에서 평균 경작지 면적을 곱하면, 마을 주민들만 총 76,932가구 추산할 수 있는 통계를 얻을 수 있다. 362,298 데시아틴 경작지를 보유한 가구로는 31,001가구(40.8%), 경작지를 전혀 경작하지는 않거나, 가구 당 최대 3데시아틴까지 경작했으며, 36,040데시아틴(9.9%)가 경작지였다. 19,017(25%)는 가구 당 6데시아틴 이상을 경작했으며, 경작지는 209,195데시아틴(57.8%)였다. 폴타바 구베르니아, 콘스탄티노그라드, 호롤 및 피리아틴 지역, 경제 통계 수익률에 따르면 작물 재배 면적 분포도는 기본적으로 더 작은 면적을 가졌으며, 타우리다 구베르니아와 비슷했다. 불균형한 분포로 인해 매수 및 임대 토지는 소수의 수중으로 집중됐다.

 

통계에 따른 가계를 경제적 능력에 따라 분류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완전한 통계 자료마저 없었으며, 콘스탄티노그라드 지역에서는 자료를 제한하거나, 한정할 수 밖에는 없었다. 농촌 사회 계급에서 농업에 관한 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임대 토지를 세 가지 범주로 나뉠 수 있다. 임차인 당 면적으로는,

 

1.10데시 이하.

 

2. 10-30데시.

 

3. 30데시 이상이다.

 

칼루가 구베르니아에서는 8.626가구였으며, 구베르니아에서는 총 농민 가구 수에서 대략 1/20이었다. 곡물 파종에 대해서는 매우 단편적이고, 불완전했다. 가구에서 21.6%, 인구로는 30.6%를 차지하는 가구로는 전체 마필로 보자면, 36.6%, 경작지로는 45.1%, 총 농업 소득으로는 43.1%를 소유했었다. 이와 같은 수치로는 매매 토지가 부농들에게 집중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트베리 구베르니아 통계 자료가 풍부했음에도, 호별 인구 조사는 매우 미흡했었다.


왜냐하면 가구를 경제적 능력에 따라 분류하지도 않았으며, 비흘라예프는 이러한 결함으로부터 트베리 구베르니아 통계 자료(1897)에서 농민층 간 차별화를 더욱 부정했었고, 더 큰 평등을 추진력을 감지해서는 인민 생산과 자연 경제만을 찬미했었다. 비흘라예프는 농민 집단에서 정확한 자료를 인용하지도 않았으며, '계층화'에 따른 매우 위험하고도, 근거 없는 주장만을 펼쳤을 뿐, 마을 공동체 안에서도 차별화가 진행 중이라는 기본적인 진실마저 명확하게 나타나지도 않았고, 그저 계층화에 대해서만 거론하고는 마을 공동체나, 볼로츠(Volots)에 따라서 분류하는 걸 터무니 없는 일이라고 내세우기만 했다. 농지 임대와 차용에 따른 현지에 수집된 자료로는 '초보적인' 형태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특수하게 다룰 필요는 없었다. 임대와 차용에서도 고립된 사례가 발생했으며, 우연한 성격으로, 예니세이 구베르니아 경제 생활에서는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예니세이 구베르니아에서는 옛 농민들이 소유한 424,624데시의 경작할 수 있는 연약지 가운데 417,086데시가 수용된 가족 토지가 있었다. 2,686데시 임대지에서는 2,639데시 임대지와 거의 같았으며, 총 수용 토지로는 1%도 미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비흘라예프는 트베리 구베르니아 농민에 대한 토지 매수가 지주 규모를 균등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봤다. 증거로는 할당 규모에 따른 마을 공동체 집단에서 살펴봤는데, 소규모 할당 공동체가 토지를 매입한 가구 배율보다 더 높았기 때문이었다. 비흘라예프는 소규모 할당 공동체에서 보유한 구성원들이 토지를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민주의자들의 같은 결론을 검토할 필요는 없었다. 카리셰프는 러시아의 부(1898)에서 비흘라예프가 국가 경제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서 아주 잘 파악하고 있다고 추켜세웠지만, 그가 너무나 낙관주의적이고, 평등을 향한 추진력으로 인해, 그러한 주장마저 설득력은 없었고, 내용과 근거마저 없었다는 점이다. 수용된 가족 토지에서도, 시베리아에서는 주로 부농들이 수용한 토지로부터, 토지를 선물로 '증여', '매각', 심지어 가족들에게 '상속'시키는 등 자신들 마음대로, 자의적으로 사용했다.

 

2-1-9. 농민 분화 요인에 대한 상기된 젬스트보 통계 요약

 

농민층 분화에 따른 통계 자료를 비교하거나, 결합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수치를 취해서 집단화시켜서, 집산할 수는 없다. 전체 지역에 따른 완전한 통계 자료와 동일하게 분류하는 방법을 요구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상위 집단과 하위 집단 간의 관계를, 토지, 가축, 도구 등 소유물과 관련해서 비교해본다거나, 병치할 수 있다는 유리한 이점이 있다. 가구에서 10%는 농경지 30%를 소유한다는 점에서 알 수 있는 관계로부터 절대적인 수치에 따른 차이를 없애므로, 모든 지역에서는 비슷한 관계를 비교할 수 있게 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가구 10%도 더 많거나, 적어서도 안 된다. 또한 다른 지역, 지방에서 구베르니아 지역 규모는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각 지역에 따라 동일한 비율 가구가 포함될 수 있도록, 이러한 집단을 구분해야만 한다. 부농 가구를 위한 가구 20%, 빈농을 위한 가구 50%를 미리 차지하기로 합의했다. 상위 집단에서 가구 20%를 차지하는 집단을 두고, 하위 집단에서는 가구의 50%를 차지하는 집단을 둔다.

 

예시로는, 5개 집단에 따른 가구 분류로부터 30%, 25%, 20%, 15%, 10%(S=100%)이다.

 

하위 집단에서는, 첫 집단과 두 번째 조직에서 4/5를 취하여 (30+(25x4)/5=50%)이고, 상위 집단에서는 마지막 집단과 마지막 두 번째 집단에서 2/3을 취해서 10+(15x2)/3 = 20%)이다. 작물, 동물, 도구 등 면적에 대한 백분율은 다음과 같인 산정되어, 결정할 수 있다. 가구 당 백분율에 해당하는 작물 면적으로는, 15%, 20%, 20%, 21% 24% 순이고, (S=100%),

 

가구에서 20%인 최상위 집단에서 작물 재배 면적은 (24+(21x2)/3=38%)를 차지하며, 가구에서 50%인 최하위 집단은 작물 재배 면적 (15+(20x4)/5=(31%) 정도를 차지하게 된다. 따라서 농민에 따른 최하위층과 최상위층 간 실제 관계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으며, 수치적인 분할이 요구된다. 이와 같은 방식에 따르면, 4-5-6-7, 다른 갈래로 분산된 집단을 대신해서, 더욱 명확하게 정의된 지수가 포함된 3개로 된 보다 큰 집단을 구해낼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분포가 많은 지역과 조건 속에서 차별화된 농민들에 대한 자료를 비교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각 집단 간 상호 관계를 판단하고자, 차별화 문제에 대해서는 가구 수, 농민 인구에 따른 남녀 인원, 배정된 토지 면적, 매입 토지, 임대 토지, 집단이 소유하거나, 사용한 총 토지 수(배정지+매입지+임대한 토지-임대된 토지), 작물 재배 면적, 가축 수, 고용 가구 수, 농장 노동자 고용 가구 수, 상업 및 산업 시설 수, 개량 농업 도구 등이며, 여기서 토지 임대 및 고용은 농장 쇠퇴와 몰락을 따라, 농민이 노동자로 전환됨을 말하기 때문에, '부정적'이다. 다른 모든 자료들은 농장 확장과 농민들에게, 농촌 기업과로 전환됨을 말한다. 이와 같은 지점에서 농장 집단에 대해 구베르니아에서, 전체 배분율을 계산했으며, 상위 집단 가구 가운데 20%는 농작물, 가축 등을 지배하는 면적(%)를 차지하며, 하위 집단 가구 가운데 50%는 농작물, 가축 등을 재배하는 면적(%)를 차지하게 된다. 7개 구베르니아에서 21개 군 자료를 포괄하는 표를 제시하자면, 해당 군에서는 총 558,570개 농가가 있었으며, 남녀 인구로는 3,523,418명이었다.

 

- 타우리다 구베르니아에서는 임대 토지 수익을 베르됭스크, 드네프르 두 지역이 관련됐었다.

 

- 같은 주에서 개량된 농기구 범주로는 수확기가 포함됐다.

 

- 사마라 구베르니아에서 두 군은 임대 토지 비율 대신에, 농가가 아닌 가구로부터 임대 배정 비율을 사용했다.

 

- 오렐 구베르니아에서는 임대 토지 면적 및 총 사용 토지 면적은 대략적으로 결정됐으며, 보로네시 구베르니아 4개 군에서도 동일했다.

 

- 오렐 구베르니아에서는 개선된 장비 수익은 옐레츠 지역에서만 존재했다.

 

- 보로네시 구에서는 일자리를 가진 가구 수 대신에, 자도느크, 코로토야크, 니즈네데비츠크 3개 군에서, 농장 노동자를 제공하는 가구 수를 사용했었다.

 

- 보로네시 주에서는 개량형 장비에 대한 반환은 젬랸스크와 자돈스크 두 군에서만 해당됐다.

 

- 니즈니노브고로드 주에서는, 일반적인 산업 종사 가구 대신에, 외부 고용에 종사하는 가구를 대상으로 삼았다.

 

- 일부 군(위예즈드) 단위의 지역에서는, 상업 및 산업 시설 수를 대신해서, 상업 및 산업 시설 가구 수로 계산했었다.

 

- 통계적 반환은 여러 개, 고용 열을 제공하면서도, 고용을 위한 일, 노동력 판매를 매우 정확하게 나타낸 고용으로 골라냈다.

 

- 할 수 있는 한 모든 임대 토지를 차지했는데, 배정지와 비배정지, 경작지와 초원지 모두 차지됐다.

 

- 노보우젠스크 지역에서 농가 농민과 독일인을 제외하고, 크라스노우핌스크 지역에서는 농업 부문만 고려됐으며, 예카데린부르크 지역에서는 토지 없는 농민과 목초지 지분만 소유한 농민을 제외됐고, 크냐기닌 지역에서는 볼쇼예 무라시키나 산업 마을 역시나 제외됐다. 부분적인 판단과 자료적인 특성으로 인해 농민층 분화 요인은 표와 도표로 나타난 것보다도 실제로는 더 두드러졌다.

 

- 이러한 모든 점들을 고려해봤을 때, 결합된 표에서는 매우 많은 지역에서, 상위 농민 집단과 하위 농민 집단 관계가 완전히 비슷했으며, 표에서도 백분율로 표시했다. 전체 가구에서 백분율을 나타내는 열에서, 지주 확대, 가축 수 증가 등과 같은 경제적 힘의 지수을 타나낸 곡선도 있다. 표에서는 상단 수평선에서, 각 끊어진 곡선까지 거리는 총합에 따른 빈곤 집단의 점유율로 보여진다. 결합된 자료에서, 전반적인 특성을 평균 곡선으로 그렸다. 백분율로 산술 평균을 계산해서 도출했는데, 곡선은 붉은 색으로 표기했다. 평균 곡선은 당시 러시아 농민들의 전형적인 분화를 보여준다. 주어진 미분에 따른 열별 차트로 살펴보자면, 가구 비율에서 열은 상위 및 하위 집단에서 속하는 인구 비율이다. 부농 가족 규모는 균등했지만, 빈농들의 가족 규모는 평균 이하였다. 비교 단위로는 개인이 아닌, 가계, 가족을 취해서 잘못 계산됐기 때문이다. 부유한 가족의 지출은 가족 규모에 따라 더욱 커지면서 늘어났지만, 대가족 가구에서 지출 규모는 건물, 가정 용품, 가정 필요 사항 등에 따라서 줄어들었다. 대가족 경제적 이점으로는 특히 엥겔하르트(Engelhardt), 지역 서신(Letters From the Countryside)에서, 트리로고브(Trirogov)마을 공동체와 인두세(Poll Tax)(1882)에서도 강조했었다. 따라서 개인을 비교 단위로만 삼거나, 감소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건, 대가족과 소가족 모두에게 '개인' 상태를 오히려 인위적이고, 거짓으로 파악하게 만들었다. 덧붙여서, 부농 집단에서는 인구 1인 당 계산에서 도출된 것보다도 훨씬 더 큰 농업 생산 몫을 수중에 쥐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했다.

 

 

- 다음 열에서는 배정지를 가리키며, 배정지에서는 법적인 지위에 따라, 배정지 분배가 매우 크게 균등하다는 점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빈민들은 부농들로부터 축출됐다. 어디에서나 상위층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몫보다도, 배정지에서 다소 더 많은 몫을 차지했었지만, 하층에서는 다소 적은 몫을 차지했었다. 마을 공동체에서는 농민 부르주아 이익에 봉사하는 경향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토지 보유량과 비교해보자면, 배정지 분배 불평등은 미미했다. 배정지 분배는 실제 토지 및 농장 재산 분배를 전혀 보여주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매수 토지 열에서는 토지가 부유층 수중에 있었으며, 가구 1/5은 농민 소유 매수 토지에서 6-7/10을 소유했었지만, 가구에서 절반을 차지하던 빈농들은 최대 15%를 차지했다. 따라서 농민들에게 많은 토지를 저렴하게 매입할 수 있다는 인민주의자들의 야단법석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임대 토지에서 가구의 1/5은 임대 토지 총량에서 1/5-8를 차지하는 부유층 수중으로 집중됐다. 게다가 더 저렴한 가격으로 토지를 임대했다. 농민 부르주아지는 임대할 수 있는 토지를 강탈하면서, 농민 임대가 생산물을 판매할 목적으로 토지를 매수하는 산업적인 성격을 지녔다. 그러나 토지 임대가 부족하다는 점을 전혀 부정하지는 않았다. 토지에 매달리는 가난한 사람들은 임대로부터 완전하게 다른 성격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가구 절반은 임대 토지 총량에서 1/1-2를 차지했으며, 대부분 농민들이었다. 농민 농업에서 토지 임대에 따른 모순은, 토지 임대에 대한 열, 음수 지수 가운데 비교해봤을 때, 더욱 드러났다. 정반대로도, 토지 주요 임대인들은 하층 가구에서 절반이 임대된 토지에서 7-8/10을 차지하는 사람들이었으며, 법적인 금지 및 제한에도 불구하고, 고용주 농부 수중으로 넘어간 토지를 처분하고자 애썼다. 따라서 농민들이 토지를 임대한다거나, 임대된다는 말은, 부르주아지가 임대하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임대된다고 말할 수 있다. 매수, 임대, 장기 임대(리스) 토지에서 할당 관계로는 집단에서 실제로 소유한 토지 열에서 결정했다. 농민들이 처분할 수 있는 모든 경우에 따라 총 토지의 실제 분배로는 할당 평등과는 무관했으며, 가구 중 20%는 총 토지에서 30%-50%를 차지했었지만, 50%20-30%를 차지했다. 작물 재배 면적 분배로는 하위 집단들이 상위 집단으로부터 두드러지게 밀려났으며, 가난한 농민들은 토지를 경제적으로 활용할 수도 없어서 포기하고 만다. 총 소유 토지, 작물 재배 면적 모두에서 토지 매수, 임대로는 일반 경제 체계로부터 밀려났다. 특히 작물 재배 면적에서는 농민 경제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했으며, 나머지 농민 전체가 차지하는 면적과도 같은 양으로부터, 농작물 재배 면적들을 수중으로 집중시켰다.


농민들 사이에서는 가마우지, 가축 수에 따른 농경지 면적을 결정했다. 상업 및 산업 시설에서도 총 수로는 농민들에게는 많은 집단 점유율을 보여준다. 가구에 따른 비교적 유복한 집단인 1/5은 이와 같은 시설로부터 약 절반 가량을 수중으로 집중시킬 수 있었지만, 가구의 절반인 가난한 집단은 약 1/5를 차지했다. 농민들은 부르주아지로부터 전환된 산업에서도 매우 부유한 농부 수중으로 집중됐다. 따라서 부농들은 농업에서 토지 매수, 임대, 노동자 고용, 도구 개량 등, 산업 시설, 상업 및 고리 대금업에다, 자본을 투자했다. 상인 자본과 기업 자본은 밀접하게 연결됐으며, 주변 조건에 따라서도, 자본 형태 가운데 어떤 게 우세한지가 결정됐다.

 

음수 지수 가운데 고용 가구 자료에서는 산업을 특징 짓기도 했었지만, 정반대로는 농민이 무산층으로 전환됐다. 산업 분야에서는 가난한 사람들 수증으로 집중됐다. 가구로는 50%를 이뤘지만, 고용한 전체 가구로는 60-90%를 차지하는 반면에, 부유한 집단에서는 산업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미미했다. 산업가 범주에서 주인과 노동자 사이에서는 보다 정확한 구분을 그을 수는 없었다는 점에서, 고용 자료와 상업 및 산업 시설에 대한 자료를 비교해봤을 때, 두 유형에서 산업은 서로 완전하게 반대됐으며, 이와 같은 유형들마저 관습적으로 묶어내서 큰 혼란만 야기했다. 농장 노동자를 고용한 가구는 부유한 농민 집단에게 모든 경우에서도 집중됐다. 가구의 20%는 노동자를 고용하는 농장 총 수에서 5-7/10을 차지했다. 대가족이었음에도, 보충할 농업 노동층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동자를 고용하는 농장 수를 농업 노동자 농장을 포함한 총 농민 농장 수와 터무니 없이 비교했었다. 오히려 노동자를 고용하는 농장 수를 농민 가구에서 1/5와 비교하는 게 더 정확했었다. 부유한 소수 민족들은 농장 전체에서도 약 3/5, 2/3을 차지한다. 농민 가운데에서도 기업가가 노동자를 고용하느 비율로는 필요로부터 나타난 고용, 가족 내에서 일할 사람이 부족했기 때문에, 고용 비율을 훨씬 초과했따. 가구에서 50%를 차지하던 가난하고, 소규모 가족 농민들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전체 농장 수에서 약 1/10에 불과했따. 필요에 따라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고용하지 않는 상인, 산업가들은 빈곤층에 포함됐다. 개량된 농기구 분포도에서도 V.V. 보론초프에 따르면, 농민 농업에서 발전 추세를 정했었다. 농기구에서 매우 공정한 분포로는 사마라 구베르니아에서, 노보우젠스크 지역으로부터, 전체 가구에서 1/5를 차지하는 부유한 가구가 100개의 농기구 가운데 73개를 소유했었지만, 가구 절반을 차지하는 빈곤 가구는 100개 농기구 가운데, 3개만을 가졌었다. 여러 지역에서도 농민 분화 정도를 비교해봤다. 표에서 두 유형 지역과 관련해서 더욱 명확하게 나타났다. 타우리다, 사마라, 사라토프, 페름 주에서는 농업 농민 분화가 오렐, 보로네시, 니즈니노브고로드 주 보다도 현저히 심했었다. 처음 네 개 구베르니아 곡선은 붉은색 평균선 아래로 나타났던 반면에, 마지막 세 개 구베르니아 곡선은 평균선보다 위에 있었다. 따라서 부유한 소수 민족 수중에서는 농업이 덜 집중됐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첫 유형 지역에서는 토지가 매우 풍부해서, 엄격한 농업에 종사했으며, 페름 주에서는 군(위예즈드) 단위의 농업 지역이 채택되면서, 조업이 이뤄졌다. 조업의 특성으로부터, 농업에서는 농민 분화가 보다 쉽고, 명확하게 드러났다. 두 번째 유형지에서는 반대로, 자료에서는 나타내지 않는 상업 농업 발전, 오렐 구베르니아에서는 대마 파종이 이뤄졌다. 산업 부문에서는 자돈스크, 보로네시 구베르니아에서 행해진 고용 노동과 니즈니노브고로드 구베르니아에서 이뤄진 비농업 직종 모두 나타났다. 두 가지 상태는 농업, 농민 분화에서도 매우 중요했다. 고용 노동에서는 각 지여게 따른 많은 상업, 농업 형태와 농업 발전에 대해서 농업 발전에 대해서 언급할 수 있었으며, 비농업 직종에서는 산업 역할들이 명백해졌다. 특정 지역에서는 농민들 대부분이 농장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 산업 임금 노동자이거나, 토지 소유 경우로는, 농업 농민에 따른 차별화는 매우 미약했다. 그러나 적절한 생각으로는 농촌 무산층에서 전형적인 대표자들을 농민 부유층들에서 젆여적인 대표자들과 비교했다. 잡일을 찾아서 남쪽으로 향하는 농민들은 폭 넓은 토지를 경작하던 타우리다 농민들과 비교됐다. 칼루가, 니즈니노브고로드, 야로슬라블 목수들은 우유 등을 판매하고자, 젖소를 키우던 야로슬라블, 모스크바 지역에서 채소 재배자 농부들과도 비교됐다. 따라서 한 지역에서 농민들 대부분은 제조업에서 종사했으며, 할당된 토지는 생계 수단에서도 일부만을 제공했으며, 농업 농민들에게 있어서는 분화된 자료가 산업에 종사하는 농민 분화층 요인에 대한 자료로도 보완될 수 있어야만 했다.

 

약간의 오차를 수반한 방법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제보다 미분값이 작게 나타났다. 상위 집단에서는 평균값을 추가했으며, 다음 집단에서는 상위 구성원을 추가하지는 않았다.


하위 집단에서는 평균값을 추가했으며, 다음 집단에서는 하위 구성원을 추가하지는 않았다. 집단이 커질수록, 집단 수가 줄어들수록, 오차 범위는 분명하게 커질 수 밖에는 없었다.


다음 구획(섹션)에서는 취한 집단 비율이 가구 당 가축 수에 따라서 나뉘어진 러시아 농민들에게 해당하는 전체 집단 비율과도 매우 가깝다. 다루고 있는 자료만으로는 절대적인 수치가 아니라, 농민 상층과 하층 간 관계였다. 따라서 농장 노동자를 고용하는 가구 수 또는 고용한 가구 수를 주어진 집단에서는 가구 수에 대한 백분율이 아니라, 군 단위 지역(위예즈드)에서 농장 노동자를 고용한 가구 수 또는 고용한 가 수에서 총 수에 따른 백분율로 간주한다. 각 집단에서 임금 노동을 고용하는 정도 또는 노동력 판매에 의존하는 정도가 아니라, 임금 노동 고용, 노동력 판매에 따른 고용 참가와 관련해서, 상층과 하층 간 관계일 뿐이다. 농민 분화 요인을 연구하고자, 분배에 따른 분류만으로는, 도표에서도 쓸모 없었으며, 카리셰프는 임대에 있어서도 산업적 특성은 없이, 젬스트보 통계와 모순됐고, W. 로쳬(W.Roscher) 등에서 차용했었던 지대 이론을 내세웠다. 서유럽 자본주의로부터 농부들의 열망과 필요한 농민 토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장기 임대(리스), 소작인이 임금, 이자, 투자 자본 상환, 고용주 이익 등을 충당하고자, 적절한 임대료를 '과학적'이라고 얼버무리면서 제공했다. 카리셰프 역시나 인민주의자들의 처방이었던, '회피'했으며 자본주의 농업 이론을 자연스럽게 내세웠다. 근본적인 모순을 더욱 부각시키면서, 인민주의자들의 모든 편견과, 시스몽디와 같은 소부르주아, 고전적인 이론가들에게 공감을 표하면서도, 다른 쪽으로는 토지 임대가 농민층 분화 요인에 대한 추진력을 부여했으며, 상층이 빈민층을 몰아내도록, 농업 관계 발전에서도 임금 노동에 따른 농업으로 이어지게 했다. 전체 시설 따른 약 1/5도 과장된 수치였으며, 파종하지도 않고, 가축을 보유하지도 않았던 농민, 적어도 한 마리는 기른 농민들의 범주에서도, 농업 노동자, 비숙련 노동자 등은 농사를 짓지 않던 사람들인 상인, 장인 등과 함께 포함시켰다. 오렐, 보로네시 등과 같은 중부 흑토 주에서는 토지 빈곤, 과중한 세금, 노동 서비스 제도로 인한 폭 넓은 보급으로부터, 농민 차별화는 실제로도 훨씬 더 미약했으며, 모든 상태에서도, 차별화를 지연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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