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앞에서 제시한 데이터를 통해 우리는 포스트니코프가 각양각색의 가구들의 경제 상태에 “엄청난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자신의 견해를 완벽히 입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다양성은 농민들의 재산 상태와 그들이 경작하는 땅의 크기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집단에서의 농업의 성격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다양성”과 “차이”란 단어는 그러한 현상을 완전히 설명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한 농부가 한 마리의 가축을 소유하고 있고 또 다른 농부는 열 마리를 가지고 있다고 할 때, 우리는 그걸 가리켜 차이라 부른다. 그러나 또 어떤 농부가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분여지 외에 오로지 이윤을 뽑아낼 목적을 가지고 수십 데샤티나의 토지를 임차한다고 할 때, 즉 가족을 먹여 살리는 데 필요한 토지를 임차할 다른 누군가의 기회를 빼앗아간다고 할 때, 분명 우리는 훨씬 더 큰 무언가에 봉착하게 된다. 우리는 그런 것을 가리켜 “갈등”(323쪽) 또는 “경제적 이해관계의 충돌”(XXXII쪽)이라 부르곤 한다. 포스트니코프는 이런 단어들을 사용하면서도 그 중요성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으며, 그렇다고 그런 단어들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가난의 늪에 빠진 주민들의 분여지를 빌리고 더 이상 자신의 농장을 꾸려나갈 수 없게 된 농민을 노동자로 고용하는 것은 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착취다.
오늘날 농민층 사이의 깊어진 경제적 갈등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그들이 소유한 재산에 따라 농민들을 몇 개의 계층으로 나누는 데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만약 앞에서 언급한 다양성이 단순한 양적인 차이에 해당한다면 그런 구분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어떤 농민 집단은 상업적인 이윤을 목적으로 농사를 지어 엄청난 현금 수입을 얻는 반면 또 다른 집단은 농업만으로는 가족의 기본적인 요구조차 충족시킬 수 없다면, 상위 농민 집단들이 하위 집단들의 몰락을 토대로 하여 자신들의 농업을 개선시킨다면, 부유한 농민들이 상당한 규모의 노동력을 고용하는 데 비해 가난한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노동력을 팔아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이러한 현상은 의심할 나위 없이 질적인 차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때 우리의 임무는 농사 자체의 성격상 차이에 따라(즉 기술이 아닌 경제 질서에서 비롯된 농사의 특성에 따라) 농민층을 분류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포스트니코프는 그러한 차이들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따라서 그가 “주민들을 집단별로 더욱 일반화시켜 구분할”(110쪽) 필요성을 인정하고 실제 그런 구분을 시도하고 있지만, 곧 알게 되듯이 이러한 시도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포스트니코프는 “주민들을 경제 집단별로 더욱 일반화시켜 구분하기 위해, 비록 모든 지역에서 단일한 경제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건 아니지만 농민들 스스로가 그렇게 구분하고 젬스트보 통계학자들이 모든 군에서 목격했던 것과도 더 잘 일치하는 다른 기준을 채택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농민들이 소유한 농사용 가축의 수에 좌우되는 농장 운영 자립도에 따른 구분법이다”(110쪽)라고 말한다.
“현재로서는 남부 러시아 지역의 농민들을 경제 자립도와 농사 방식에 따라 다음과 같이 크게 세 집단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1. 완전한 한 조로 구성된, 즉 쟁기나 그 외 다른 농기구를 끌기에 충분한 가축을 소유하고, 다른 농민들을 고용하거나 그들과 같이 한데 어울려서 일할(yoking)²³ 필요 없이 자신이 소유한 가축들로 자기 땅을 경작할 수 있는 농가. 쟁기나 조파기를 사용할 때 두세 쌍 이상의 가축을 동원하기 때문에 최소 두세 명의 성인 노동력과 한 명의 시간제 노동자가 필요하다.
2. 가축이 충분치 않은 농민, 즉 독자적으로 밭을 갈기엔 보유한 가축만으로는 부족해서 서로 도와가며 밭일을 하는 요커(yoker)들. 이들은 가축을 한두 쌍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한두 명의 성인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다. 단단하고 거친 땅에서 쟁기질을 하려면 세 쌍의 가축이 필요한데, 이 경우엔 설사 두 쌍의 가축을 소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서로 도와가며 일을 해줄 농민들이 언제나 필요하다.
3. ‘뚜벅이들’, 즉 가축이 전혀 없거나 한 마리(황소는 보통 짝을 이뤄 키우고 멍에를 채우기 때문에 대개는 말을 뜻한다)만 갖고 있는 농가. 이들은 다른 농민들에게서 가축을 빌려 일을 하거나, 자신들의 땅을 임대해주고 수확의 일부를 가져갈 뿐 직접 땅을 경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농사용 가축의 수와 그것들을 동원하는 방식같이 농민 생활에 있어 기본적인 경제적 기준에 따라 농민들을 분류하는 것은 대개 다름 아닌 농민 자신이다. 그러나 앞서 열거한 각각의 분리된 집단의 경계 내에서와 집단별 구분에서 상당히 많은 변형된 형태들이 존재한다.”(121쪽)
전체 가구 수에서 이들 집단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다음과 같다.(125쪽)
| I | II | III | |
| 보유 가축으로 작업 | 요킹 기반으로 작업 | 빌린 가축으로 작업 | 재배지 없음 |
베르단스크 군 | 37 | 44.6 | 11.7 | 6.7 |
메리토폴 군 | 32.7 | 46.8 | 13 | 7.5 |
드네프르 군 | 43 | 34.8 | 13.2 | 9 |
이 표와 나란히 저자는 각 군별로 가축의 분포 현황을 보여주기 위해 그들이 소유한 농사용 가축의 수에 따른 가구 분류를 제시하고 있다.
| 전체 가구 수에서 차지하는 비율 | | | |
| 농사용 가축(가구당) | | | |
| 4마리 이상 | 2~3마리 | 1마리 | 없음 |
베르단스크 군 | 36.2 | 41.6 | 7.2 | 15 |
메리토폴 군 | 34.4 | 44.7 | 5.3 | 15.6 |
드네프르 군 | 44.3 | 36.6 | 5.1 | 14 |
결과적으로 타우리다 소재 군들에서 농사용 가축들은 네 마리 이상이 완전한 한 조를 이루고 있다.
포스트니코프가 행한 것과 같은 이런 분류법은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데, 무엇보다도 각각의 세 집단들 내에 뚜렷한 차이가 목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남부 러시아에서는 한 조로 구성된 가축을 소유한 가구 집단 내에서 상당한 다양성이 뚜렷이 관찰된다. 많은 수의 가축을 보유한 잘사는 농민들과 더불어 적은 수의 가축들을 가진 가난한 농민들도 존재하는 것이다. 전자는 다시 완전한 작업조를 이룬 가축들(6~8마리 이상)을 보유한 사람들과 완전한 한 조보다 적은 수(4~6마리)를 보유한 사람들로 나뉠 수 있다. …… ‘뚜벅이’의 범주에 속한 가구들도 잘사는 정도에 있어서는 상당한 편차를 나타낸다”(124쪽)고 말한다.
포스트니코프가 채택한 분류법에 있어서 또 다른 애로점은 이미 지적했던 바와 같이 젬스트보 통계가 보유 가축 수가 아니라 경작 면적에 따라 주민들을 분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다양한 집단들의 재산 상태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으려면 경작 면적에 따른 분류법이 활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포스트니코프는 또한 주민들을 세 집단, 즉 경작 면적이 10데샤티나 미만이거나 아예 없는 소규모 경작자들과 10~25데샤티나의 중간 규모 경작자, 그리고 가구당 25데샤티나 이상인 대규모 경작자들로 나누고 있다. 그는 첫 번째 집단을 가리켜 “가난한” 집단, 두 번째를 중간층, 세 번째를 잘사는 집단이라 부르고 있는데, 그 각각의 규모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체적으로 (이주민들을 제외한) 타우리다 농민들 중에서 대규모 경작자들은 전체 가구 숫자의 약 6분의 1을 차지하고, 중간 규모 경작자들은 약 40퍼센트인 반면, 소규모 또는 경작지가 전혀 없는 가구는 40퍼센트를 약간 상회한다. 타우리다 소재 군들의 전체 인구(이민자들을 포함한)를 놓고 보면 대규모 경작자들은 약 20퍼센, 중간 규모 경작자들은 40퍼센트, 소규모 또는 경작지 미보유 가구 역시 약 4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112쪽)
그러므로 독일 이민자들을 포함시킨다 하더라도 집단별 분포 변화는 아주 미세할 뿐이며, 그래서 군 전체의 전반적인 통계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문제 될 게 없다.
이제 우리는 이들 집단 각각의 경제적 상황을 가능한 정확하게 묘사해 농민층 사이의 경제적 갈등의 정도와 원인들을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포스트니코프는 스스로 이런 임무를 설정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그가 인용한 데이터가 아주 넓게 분산돼 있고, 각 집단들에 대한 전반적인 관찰이 충분히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타우리다 소재 군 인구의 5분의 2가 속해 있는 가난한 농민들 집단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이 집단이 소유한 (농업에서 주요한 생산수단인) 농사용 가축의 수는 그들이 실제로 얼마나 가난한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다. 타우리다 주 세 개 군들에 있는 총 263,589마리의 농사용 가축들 중에서 이들 최하위 집단이 소유한 가축은 전체의 17퍼센트인 43,625마리로, 평균보다 2와 3분의 1배 더 적다.(117쪽) 가축을 아예 소유하고 있지 않은 가구의 비율에 관한 데이터는 위에서 제시된 바 있다(최하위 집단을 셋으로 세분화하면 각각 80퍼센트, 48퍼센트, 12퍼센트다). 이러한 데이터를 기초로 포스트니코프는 “가축을 전혀 소유하고 있지 않은 가구의 비율은 경작지가 없거나 가구당 10데샤티나 미만인 집단들 내에서만 상당히 높게 나타난다”(135쪽)는 결론에 이른다. 이 집단의 경작 면적은 가축의 수에 상응하는데, 이들은 (3개 군에서) 전체 962,933데샤티나의 경작지 중에서 146,114데샤티나, 즉 15퍼센트만을 경작하고 있다. 물론 빌린 토지를 추가할 경우 경작 면적은 174,496데샤티나로 증가하지만, 다른 집단들의 경작 면적도 최하위 집단보다 더 큰 비율로 증가하기 때문에 최하위 집단이 경작하는 면적은 전체의 12퍼센트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달리 말해, 인구의 8분의 3이 넘는 사람들이 경작하는 면적이 8분의 1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저자가 표준이라 여기는(즉 가족의 필요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기준이 중간 규모 경작자라는 점을 기억해볼 때, 평균보다 3와 3분의 1배 더 적은 면적을 경작하는 이 집단이 자신들의 정당한 몫을 얼마나 빼앗기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집단의 농업이 아주 열악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타우리다 소재군 인구의 33~39퍼센트가——따라서 최하위 집단의 압도적인 다수가——땅을 갈 만한 농기구를 전혀 갖고 있지 못한 현실을 이미 들여다본 바 있다. 이렇게 농기구가 부족하다 보니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땅을 포기하고 자신들의 분여지를 임대해줄 수밖에 없다. 포스트니코프는 그런 임대인들이(그들의 농장은 의심할 나위 없이 이미 완전히 황폐해진 상태다) 인구의 약 3분의 1, 다시 말해 가난한 집단의 상당수를 차지한다고 추산하고 있다. 말이 난 김에 이렇게 분여지들을 “팔아치우는”(농민들이 흔히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행위는 젬스트보 통계 곳곳에 반영되어 있고, 또 대규모로 행해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이러한 사실에 주목해온 정기간행 학술지들은 이미 그에 대한 해결책을 어렵사리 내놓은 바 있는데, 바로 분여지를 양도할 수 없게 하자는 것이었다. 포스트니코프는 그런 조치들을 내놓는 사람들이 정부 당국의 결정이 지닌 힘을 관료적으로 맹신하고 있다며 그 조치의 효과에 대해 아주 지당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는 “땅의 임대를 금지하는 것만으로 현재 농민 생활의 경제 구조상 아주 깊이 뿌리박혀 있는 문제를 제거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자신의 농장을 운영할 농기구나 수단이 전혀 없는 농민은 사실상 자신의 분여지를 활용할 수 없기에,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다른 농민들에게 분여지를 임대해줄 수밖에 없다. 땅의 임대를 직접적으로 금지하게 되면 농민은 그 땅을 남몰래 임대해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통제가 불가능해질뿐더러 다른 선택지가 없는 그들이 현재보다 더 불리한 조건에 임대해줄 가능성이 아주 크다. 게다가 밀린 세금을 대신해 압류된 분여지들이 마을법원²⁴을 통해 점점 더 임대될 것이고, 그런 상황은 가난한 농민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140쪽)고 말한다.
이렇듯 가난한 집단의 구성원 전체에서는 경제적인 수준이 절대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이 목격되었다. 포스트니코프는 “최하위 집단에서는 가축을 빌려서 얼마 되지도 않는 땅을 경작하는 가구든 아무것도 경작하지 못하는 가구든, 경제적 상황에서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후자의 경우는 한 동네 사람들에게 자신의 땅 전체를 임대해주었고, 전자의 경우는 일부만을 임대해주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인 것이다. 그러나 둘 다 모두 고향에서 계속 살며 한 동네 사람들에게 고용돼 일꾼 역할을 하거나 주로 농사일을 거드는 외부 일자리에 종사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따라서 얼마 되지도 않는 땅을 경작하는 가구든 아무것도 경작하지 못하는 가구든 두 범주의 농민들은 하나로 묶어서 검토해야 할 것이다. 농장 일에 사용할 가축이나 농기구가 없어 농장을 잃고 대부분 이미 몰락했거나 몰락하기 직전인 농민 계급에 속하는 이들로서 말이다”(135쪽)라고 말한다.
그는 계속하여 “농장도 없고 땅을 경작하지도 않는 가구들은 대부분 이미 몰락한 이들이고, 자신의 땅을 임대해주고 약간의 땅을 부쳐먹는 사람들은 장차 그렇게 될 후보군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자신의 주장을 이어나간다. “심각한 흉년이 들거나 불이 난다거나 말을 잃어버리는 등의 예기치 못한 곤경에 처할 때마다 그들 중 일부는 농장에서 날품을 파는 일꾼이나 농사를 짓지 못하는 농민의 부류로 내몰리게 된다. 이유가 무엇이든 농사에 필요한 가축을 잃어버린 가구는 몰락을 향한 첫걸음을 떼게 되는 것이다. 빌린 가축으로 땅을 일구는 경우에는 너무 불안정하고 체계성이 부족해 대개 작황이 떨어지게 된다. 그런 농민은 마을의 대부조합에서도 대출이 거부되고 동네 사람들에게도 돈을 꿀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각주를 통해 “타우리다 소재 군들에는 국영은행으로부터 빌린 자금으로 운영되는 대부조합들이 큰 마을마다 우후죽순으로 들어서 있다. 그러나 그들로부터 돈을 빌릴 수 있는 건 부유하고 잘사는 농가들뿐”이라 덧붙인다. “만약 그가 대출을 받으려 하면, 보통 ‘번창한’ 농민들보다 더 안 좋은 조건이 따라붙는다. ‘갚을 방법이 없는데 뭘 믿고 돈을 빌려주겠어?’ 하는 식인 것이다. 그리고 빚을 지게 되면 첫 번째로 찾아오는 불행이 바로 자신의 땅을 빼앗긴다는 것이다. 특히 세금이 밀려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139쪽)
가난한 집단에 속한 농민들의 농업이 어느 정도까지 몰락했는지는 그들이 어떻게 자신의 농장을 운영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저자가 답변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그는 가구당 10데샤티나 미만을 경작하는 농장들의 경우에는 “농사 환경을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떠한 정해진 체계로도 설명할 수 없다”(278쪽)고 말한다.
그러나 방금 인용된 최하위 집단의 농업 특징에 관한 설명은 그들의 수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여전히 허술하다. 틀림없이 긍정적인 특징이 있을 텐데도 오로지 부정적인 성격만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이 집단의 농민들을 독립적인 농사꾼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이야기만을 들어왔을 뿐이다. 그들의 농장이 완전히 쇠퇴해가고 있고, 경작 면적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며, 마구잡이로 유지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통계학자들은 바크무트 군을 설명하면서 “작물의 씨를 뿌릴 때 일정한 체계를 보여주는 건 종자가 궁하지 않은 번창하고 잘사는 농민들밖에 없다. 가난한 농민들은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렇게나 아무데나 뿌린다”(278쪽)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하위 집단을 아우르는 이러한 농민 대중의 존재(타우리다 소재 3개 군에서 3만 가구와 남녀 합해 20만 명이 넘는)는 결코 우연일 수는 없다. 자신의 농장에서 생산한 결과물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과연 그들은 어떻게 삶을 영위하는 걸까? 주되게는 바로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다. 앞서 우리는 이들 농민 집단이 농장 날품팔이와 외부에서의 벌이로 살아간다는 포스트니코프의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그러나 남부 러시아에는 수공업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들의 수입은 대부분 농업, 즉 사실상 농장에 고용된 결과로 얻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밑바닥 농민들 살림살이의 주요한 특징이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점이라는 사실을 보다 구체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젬스트보 통계에서 분류한 범주에 따라 이 집단을 면밀히 살펴보고록 하자. 먼저 농장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가구들의 경우에는 더 이상 덧붙일 필요가 없겠다. 그들은 그야말로 농장 노동자들일 뿐이다. 가구당 5데샤티나 미만(평균 3.5데샤티나)의 경작 면적을 가진 두 번째 범주의 경작자들은, 앞서 경작지를 농장 서비스, 사료, 식량, 상업 구역으로 나눈다고 했을 때 그 정도 크기의 경작 면적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포스트니코프는 “가구당 5데샤티나 미만의 경작 면적을 보유한 첫 번째 집단은 시장이나 상업 구역이 전혀 없기 때문에 농장 노동자로 일하거나 다른 수단으로 얻는 외부 수입의 도움으로 겨우 생존할 수 있다”(319쪽)고 말한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가구당 5~10데샤티나의 경작 면적을 보유한 농민들이 남는다. 그들에 대한 질문은 이렇다. 이들에게 독립적인 농업과 이른바 “소득” 사이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엄밀한 대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이 집단에 속한 농민들과 관련된 전형적인 농민 예산 몇 가지를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포스트니코프는 예산 데이터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그런 자료를 모으기가 극히 어렵고, 많은 경우 통계학자들의 권한을 벗어난다”(107쪽)고 지적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견해에 동의하기가 아주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모스크바의 통계학자들은 몇 가지 아주 흥미롭고도 구체적인 예산 자료들을 수집해왔기 때문이다(『모스크바 주 통계 보고서』 중 Ⅵ권과 Ⅶ권의 경제통계 항목 참조). 그리고 저자 스스로도 지적하고 있듯이 보로네시 주의 몇 개 군들에서는 예산 자료를 심지어 가구 단위로 수집해왔다.
그럼에도 포스트니코프 자신이 제시하고 있는 예산 자료가 아주 불충분하다는 점은 너무나 애석한 일이다. 그는 독일에서 이민 온 농민 7명과 러시아 농민 단 한 명의 예산을 인용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대규모 경작자들(가장 경작 규모가 작은 러시아 농민의 경우에도 39와 2분의 1데샤티나를 경작하고 있다)로서, 그 집단의 살림살이는 젬스트보 통계에 담긴 사실들로부터도 충분히 명확하게 알 수 있다. 포스트니코프는 “수많은 농민들의 예산을 수집하기 위해 돌아다녔지만 구할 수 없었다”고 스스로 유감의 뜻을 밝히면서, “이들 예산을 정확히 평가하는 것은 전체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타우리다 사람들은 살림살이 정보를 제공하는 데 아주 협조적이었지만, 자신들의 수입과 지출이 정확히 얼마인지 스스로도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농민들은 전체적인 지출 금액이나 가장 큰 수입과 지출 항목들을 아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으나, 세세한 금액들은 거의 어김없이 기억하지 못했다”(288쪽)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가 했던 것처럼 젬스트보 가구별 인구조사에서 이미 충분히 명확하게 해명된 경제적 상황에 대한 “약 90개의 서술과 하나의 평가”를 수집할 게 아니라, 설사 사소한 세부 내역들이 빠져 있더라도 몇 개나마 예산을 수집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예산이 빠진 상황에서 우리가 그 집단의 경제적 성격을 판단하기 위해 검토할 수 있는 데이터는 단 두 종류뿐이다. 첫째는 평균적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필요한 포스트니코프의 가구당 경작 면적 추산이고, 둘째는 경작 면적을 네 구역으로 나눈 데이터와 지역 농민들의 (가구당 연간) 평균 현금 지출에 관한 데이터다.
한 가족의 식량과 종자, 그리고 사료를 충당하는 데 요구되는 경작 면적에 관한 구체적인 추산을 토대로, 포스트니코프는 다음과 같은 최종 결론에 다다란다.
“평균적인 가족 수를 거느린 농가가 보통의 복지 수준을 누리고 농사로만 살아가면서도 적자 없이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맞추려면, 평균 수확량을 고려할 때 가구당 6과 2분의 1명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4데샤티나, 3마리의 농사용 말을 먹이기 위해 4와 2분의 1데샤티나, 종자를 들여오기 위해 1과 2분의 1데샤티나, 판매용 곡물 생산을 위해 6~8데샤티나, 이렇게 모두 합쳐 16~18데샤티나가 필요하다. …… 타우리다 주민들은 평균적으로 가구당 약 18데샤티나의 경작 면적을 가지고 있지만, 세 개 군 주민의 40퍼센트는 가구당 10데샤티나 미만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다면, 그 이유는 오로지 외부에 고용되고 자신의 토지 일부를 임대해줌으로써 수입 중 일부를 충당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경제적 입지는 비정상적이고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데, 대다수의 경우 어려운 시기가 찾아왔을 때 그걸 헤쳐나갈 만큼의 예비 자금을 모아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272쪽)
조사 대상 집단에서는 가구당 평균 경작 면적이 요구 면적(17데샤티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8데샤티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집단에 속한 농민들이 자신들 수입의 가장 큰 부분을 “고용”, 즉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얻는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또 다른 계산법이 있다. 앞서 인용한 경작지 분할에 관한 포스트니코프의 데이터에 따르면, 8데샤티나의 경작 면적 중에서 0.48데샤티나는 종자를 위한 땅일 테고, 3데샤티나는 사료(이 집단에서는 가구당 3마리가 아니라 2마리의 농사용 가축을 보유하고 있다), 3.576데샤티나는 가족이 먹을 식량을 위한 땅(그 크기 역시 평균보다 아래인 약 5.5명분으로, 6.5명분에 못 미친다)에 해당될 것이다. 그래서 상업 구역으로 남는 면적은 1데샤티나 미만(0.944데샤티나)으로, 저자는 거기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을 30루블로 추정한다. 그러나 타우리다 주민 한 사람이 필수적으로 지출하는 현금은 그보다 훨씬 더 많다. 저자는 농민들 스스로도 흔히 이런 식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예산보다는 현금 지출 금액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훨씬 더 쉽다고 말한다. 이 계산법을 통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평균적인 규모의 가족, 즉 일하는 남편과 아내, 4명의 어린 자녀들로 구성된 가족의 경우, 그들이 자신의 토지를 경작하고(대략 20데샤티나) 임차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필수적인 현금 지출은 타우리다 사람들이 추산하듯이 연간 200~250루블에 달한다. 그리고 아무리 모든 걸 아낀다 하더라도 소가족이 지출해야 하는 최소한의 현금은 150~180루블이라 여겨진다. 연소득이 이 금액에 못 미치면 상당히 부족한 것으로 여겨져, 일하는 남편과 아내는 농장에서 먹고 자면서 일한 대가로 일 년에 120루블을 버는 대신 가축이나 농기구 따위를 유지하는 비용을 아끼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 게다가 한 동네 사람들에게 땅을 임대해줘 ‘추가 소득’도 얻을 수 있다.”(289쪽) 검토 대상인 집단이 평균 이하이기 때문에, 우리는 평균이 아닌 최소한도의 현금 지출과 “고용”을 통해 얻어지는 금액의 최소치를 상정할 것이다. 이 계산법에 따르면, 검토 대상 집단의 농민은 스스로 농사를 지어서 총 117.5루블(30+87.5)²⁵을 얻고,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120루블을 벌어들인다. 여기에서 볼 때 우리는 이 집단의 농민들이 독자적으로 농사를 짓는 것만으로는 최소한도 지출의 절반 미만을 충당할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하위 집단의 모든 세부 그룹들의 경제적 특징을 검토해본 결과, 우리는 농민들 대다수가 작은 규모의 땅뙈기를 경작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주된 생계 밑천은 자신들의 노동력을 팔아서 나온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 집단의 농민들은 모두 독립적인 농민이라기보다는 고용된 노동자들인 것이다.
포스트니코프는 하위 집단 농민들의 이러한 경제적 특징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고, 그들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짓는 것과 외부 고용의 관계 역시도 해명하지 않았다. 그의 연구에서 이것은 커다란 결함이다. 그 결과 그는 하위 집단의 농민들이 그렇지 않아도 얼마 되지 않는 자신의 땅을 포기한 채 그걸 남에게 빌려주는 이상한 현상에 대해 얼핏 보기에도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그 바람에 하위 집단 농민들이 소유한 생산수단(즉 땅과 농기구)이 양적으로 평균치에 훨씬 못 미친다는 중요한 사실이 그들의 농업의 일반적인 특징과 연결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우리가 봐왔던 것처럼 생산수단의 평균적인 수량이 가족의 필수적인 요구를 겨우 충족시킬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가난한 농민들은 자신들의 정당한 몫을 빼앗기고 있는 현실에서 출발해 다른 사람 소유의 생산수단에다 자신들의 노동력을 적용해야 하는, 즉 스스로를 팔아야 하는 상황에 필연적으로 이르게 된다.
이제 다음으로 두 번째 집단, 즉 마찬가지로 인구의 40퍼센트를 차지하는 중간 집단으로 눈을 돌려보자. 가구당 10~25데샤티나의 경작 면적을 가진 농민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중간”이라는 단어는 이 집단 구성원들에게 전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표현이지만, 그들의 생산수단이 평균에 다소 못 미친다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다시 말해 가구당 경작 면적은 전체 농민 평균인 17데샤티나보다 약간 작은 16.4데샤티나고, 가구당 보유 가축 역시 전체 평균인 7.6마리에 못 미치는 7.3마리(농사용 가축은 전체 평균 3.1마리보다 약간 많은 3.2마리)이며, 가구당 총 경작지(분여지와 구입하거나 빌린 토지)도 군 평균인 20~21데샤티나에 미달하는 17~18데샤티나였던 것이다. 포스트니코프가 제시한 기준으로 가구당 경작 면적을 비교해보면, 이 집단이 자기 소유 토지에서 농사를 지어 생산하는 양은 겨우 생계를 유지할 정도에 불과하다.
이 모든 사실에 비춰볼 때, 이 집단의 농업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농사를 지어서 필요한 경비를 모두 충당하고, 이윤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이들 농민 집단의 농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한 불안정성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평균 16데샤티나의 경작 면적은 겉보기에는 충분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 10~16데샤티나를 경작하는 농민들은 농사를 지어서 필요한 경비를 모두 충당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외부 고용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서 인용한 포스트니코프의 대략적인 추산으로부터 우리는 이 집단이 2,846명의 노동력을 고용하는 반면, 그보다 543명 더 많은 3,389명의 노동력을 외부로 유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집단에 속한 농가의 약 절반은 결핍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집단의 가구당 농사용 가축의 수는 3.2마리인 반면, 앞서 살펴봤듯이 가축들이 한 조를 이루려면 모두 4마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 집단의 농가들 중 상당수가 자신의 땅을 경작하기에는 보유한 가축이 부족해서 다른 농민들과의 협업(yoking)에 의존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이 집단에 속한 요커들은 전체의 절반 가까이에 이른다. 이런 결론은 한 조를 이룬 가축을 보유한 가구의 비율 약 40퍼센트 가운데 20퍼센트는 부유한 상위 집단에 속하고 나머지 20퍼센트는 중간 집단에 속하기 때문에 중간 집단의 절반 가량은 한 조를 이룬 가축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로 이어진다. 포스트니코프는 이 집단에서 요커들의 정확한 숫자가 얼마인지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젬스트보 통계 초록으로 눈길을 돌려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데이터를 발견하게 된다.
| 10~25데샤티나 경작 집단 총계 | 보유 가축 이용 | 요킹 이용 | 빌린 가축 이용 | 기타 수단 |
메리토폴 군 | | | | | |
가구 수 | 13,789 | 4,218 | 9,201 | 321 | 49+ |
데샤티나 | 226,389.21 | 79,776.55 | 141,483.26 | 4,405.8 | 773.3 |
드네프르 군 | | | | | |
가구 수 | 8,234 | 4,029 | 9,835 | 320 | 50 |
데샤티나 | 137,343.75 | 71,125.22 | 61,159.05 | 4,352.5 | 707.25 |
따라서 두 개 군의 중간 집단에서 자신의 가축을 동원해 자기 땅을 경작하는 농가는 소수일 뿐이다. 메리토폴 군에서는 가구의 3분의 1 미만, 드네프르 군에서는 절반 미만인 것이다. 그러므로 세 개 군을 다 합쳐 위에서 추산한 요커들의 숫자(절반)는 전혀 부풀려지지 않은 수치로, 오히려 너무 낮은 편에 속한다. 물론 농부가 자신의 가축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은 그 자체로 농업의 불안정성을 나타내주는 지표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 한 예로서 요킹 시스템에 대한 포스트니코프의 서술을 인용해보도록 하자. 불행히도 그는 이런 현상에 거의 주목하지 않았는데, 경제적으로나 생활 풍습의 관점에서 볼 때도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말 세 마리를 한 번에 같이 마구에다 채워 끄는 힘이 한 마리가 끄는 힘의 세 배가 되지 않는다는 역학 법칙 덕분에 요킹을 기반으로 일하는 농민들의 표준적인 작업 면적은 (자신의 가축을 가지고 일하는 농민들보다) 더 낮다. 요크를 주선하는 사람들은 마을 건너편에 살 수도 있다(그들은 대개 친척들이다). 게다가 두 가구에 속한 땅뙈기의 수는(가끔 세 가구가 하나의 요크로 묶이기도 한다) 한 가구의 땅뙈기의 두 배. 이 모두는 한 구역에서 다른 구역으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증가시킨다.” 각주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토지가 분할되면, 각 농가는 자신의 구성원들 몫으로 특정한 밭에서 서로 붙어 있는 땅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소규모 농가는 그만큼 받는 땅이 적어지는 것이다. 타우리다 주에서의 요킹 상황은 아주 다양하다. 요커 중 한 사람이 조파기를 갖고 있으면 그는 추가로 쟁기로 갈아진 땅을 얻는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10데샤티나를 받는다면, 그 사람은 11데샤티나를 받는 식이다. 또는 조파기를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이 그걸 사용하는 동안에는 수리 비용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 방식도 있다. 그와 비슷하게, 요크에 동원되는 가축의 수가 같지 않은 경우 추가로 쟁기질을 할 수 있는 날을 하루 더 부여받는 등의 방식도 있다. 카멘카 마을에서는 조파기를 소유한 사람이 봄철에 현금으로 3~6루블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요커들 사이의 다툼은 아주 빈번하다.” “합의가 이뤄지는 데도 얼마간의 시간이 걸리고, 작업이 끝나기 전에 요커들이 떨어져나가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간혹 요커들은 써레질에 동원할 말들이 충분치 못해, 파종 말의 마구를 풀러 그 쪽에 데려다 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말은 물을 먹이러 데려가고 나머지 말들이 써레질을 하기도 한다. 유즈쿠이 마을에서는 요커들이 종종 하루에 1데샤티나도 갈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는 정상 속도의 절반에 불과하다.”(233쪽)
가축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농기구가 부족한 문제도 있다. 서로 다른 집단별로 가구당 농기구의 숫자를 나타낸 앞의 표를 통해 우리는 모든 군의 중간 집단에서 가구당 쟁기질에 쓸 농기구를 적어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실상 그 집단 내에서조차 농기구의 분포는 전혀 균등하지 않다. 안타깝게도 포스트니코프는 이 주제에 대한 데이터는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젬스트보 초록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겠다. 드네프르 군에서는 8,227가구 중 1,808가구가 쟁기질 도구를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았고, 농기구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가구가 전체의 21.9퍼센트에 달했다. 메리토폴 군에서는 13,789가구 중 2,954가구가 그러했고, 역시 농기구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가구의 비율은 21.4퍼센트였다. 쟁기질에 쓸 도구를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은 농가들은 경제적 상황에 있어 하위 집단에 근접하고, 하나 이상의 도구를 가진 농가들은 상위 집단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에는 전혀 의심할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쟁기를 갖고 있지 않은 농가의 수는 드네프르 군에서 32.5퍼센트, 메리토폴에서 65.5퍼센트로 훨씬 더 높다. 마지막으로, 이 집단의 농민들이 보유한 수확기계(손으로 수확할 노동력이 부족하고 기다란 면적 체계²⁸ 때문에 곡식을 처리하는 데 몇 달이 걸리기도 하는 남부 러시아 농업에서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의 수는 턱없이 부족해서, 드네프르 군에는 수확기계가 20대(400가구당 1대), 메리토폴 군에는 178.5대(700가구당 1대)에 불과했다.
포스트니코프는 이 집단의 전반적인 농업 시스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농사용 가축을 네 마리 미만으로 보유한 가구들은 자신의 밭에 씨를 뿌리고 경작하기 위해 어김없이 요크를 한다. 이 범주의 농가들은 일하는 구성원이 두 명 아니면 한 명이다. 그런 농민들의 작업 능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는 농장의 규모가 작고 농기구가 부족한데다 요크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요커들은 대부분 날이 세 개 달린 작은 조파기를 쓰기 때문에 작업 속도도 더 느리다. 그런 농민들이 이웃들로부터 기계를 빌려서 추수를 하려면, 이웃들이 먼저 자신의 작물을 베고 난 후에야 가능하다. 손으로 추수하는 건 시간이 더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날품팔이 인력을 고용해야 하고 비용도 더 많이 든다. 일손이 하나밖에 없는 농민들은 집안에 급한 일이 생기거나 사회적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경우에는 일에 지장을 받기도 한다. 그런 농민들이 멀리 떨어진 밭에 일하러 나갈 경우에는 쟁기질과 파종이 끝날 때까지 한 주 내내 밭에 머물러야 하는데, 집에 있는 가족들의 안부를 확인하러 마을에 자주 오가다 보면 또 그만큼 작업이 지체된다.”(278쪽) 타우리다 주 세 개 군 전체에서 서로 다른 집단별로 가족당 일하는 구성원들의 수를 나타내주는 포스트니코프의 다음의 표(143쪽)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렇게 가족 중에서 일손이 하나밖에 없는 농민들은 검토 대상 집단에서 다수를 차지한다.
| 100가구당 | | | |
| 남성 노동력 없음 | 1명 | 2명 | 3명 이상 |
무경작 | 19 | 67 | 11 | 3 |
5데샤티나 미만 | 9 | 77.6 | 11.7 | 1.7 |
5~10데샤티나 | 4.2 | 74.8 | 17.7 | 3.3 |
10~25데샤티나 | 1.7 | 59 | 29 | 10.3 |
25~50데샤티나 | 1.2 | 40 | 35.7 | 23.1 |
50데샤티나 이상 | 0.9 | 25 | 34.3 | 39.8 |
평균 | 4.3 | 60.6 | 24.6 | 10.5 |
이 표를 통해 우리는 중간 집단 농가들의 5분의 3 가량이 가족 중 일하는 구성원이 한 명이거나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간 집단과 상위 집단 간의 관계 및 그들 농장의 전체적인 안정성을 입증하기 위해 농민들의 처분에 맡겨진 모든 토지, 그 중에서도 특히 경작 면적이 이 집단들 사이에서 어떻게 분포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드네프르 군 통계 보고서』의 데이터를 인용해보도록 하자. 거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표를 발견한다.
농민 집단 | 전체 가구 중 비율 (%) | 분여지 (데샤티나) | 분여지 % | 구매 토지 (데샤티나) | 구매 토지 % | 임차지 (데샤티나) | 임차지 % | 대여지 (데샤티나) | 사용 중인 전체 토지 (데샤티나) | 사용 중인 전체 토지 % | 파종 면적 (데샤티나) | 파종 면적 % |
가난한 집단 | 39.9 | 56,444.95 | 25.5 | 2,003.25 | 6 | 7,838.75 | 6 | 21,551.25 | 44,735.7 | 12.4 | 38,439.25 | 11 |
중간 집단 | 41.7 | 102,793.7 | 46.5 | 5,376 | 16 | 48,397.75 | 35 | 8,311 | 148,256.45 | 41.2 | 137,343.75 | 43 |
부유한 집단 | 18.4 | 61,844.25 | 28 | 26,530.75 | 78 | 81,645.95 | 59 | 3,039.25 | 166,981.7 | 46.4 | 150,614.45 | 46 |
합계 | 100 | 221,082.9 | 100 | 33,910 | 100 | 137,882.45 | 100 | 32,901.5 | 359,737.85 | 100 | 326,397.45 | 100 |
이 표는 중간 집단이 전체 가운데 46.5퍼센트로 다른 집단들보다 경작 가능한 분여지를 더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준다. 농민들은 자신들의 분여지가 불충분해 어쩔 수 없이 임차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그들이 경작하는 면적은 대체로 50퍼센트 이상 증가했다. 중간 집단이 관리하는 토지의 양도 절대적으로는 증가했지만, 상대적으로 보면 전체 면적의 41.2퍼센트와 경작 면적의 43퍼센트로 감소했다. 물론 맨 윗자리는 상위 집단의 차지였다. 따라서 하위 집단뿐만 아니라 중간 집단 역시 상위 집단이 자신들의 땅을 빼앗아간다는 직접적인 압박을 느끼고 있다.
이런 모든 설명들을 통해 우리는 중간 집단의 경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서술할 수 있겠다. 이 집단은 스스로 경작하는 땅에서 거둬들인 수익으로만 살아가는 농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땅의 면적은 지역 농민 전체가 경작하는 평균 면적과 거의 동일하고(또는 다소 작고), 가족의 필수적인 요구를 거의 충족시키지 못한다. 가축과 농기구가 부족하고 그 분배도 불공평해 이 집단의 농업은 불안정하고 위태로울 수밖에 없고, 특히 하위 집단과 중간 집단을 쥐어짜는 상위 집단의 위협적인 경향을 지켜볼 때 더욱 그렇다.
이제 부유한 농민층을 구성하는 상위 집단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타우리다 소재 군들에서 이들은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며, 가구당 25데샤티나 이상의 경작 면적을 보유하고 있다. 이 집단이 농사용 가축과 농기구, 분여지 및 그 외 토지에 있어서 다른 집단보다 실제로 어느 정도나 더 부유한지에 관한 사실관계들은 이미 앞에서 충분히 인용된 바 있다. 그리고 이 집단의 농민들이 중간 집단 농민들보다 얼마나 더 잘사는지를 보여주려면 작물 면적에 관한 다음의 데이터만 인용해도 충분하다. 드네프르 군에서 부유한 집단은 가구당 41.3데샤티나의 경작 면적을 보유한 반면, 군 평균은 17.8데샤티나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일반적으로 말해——대규모 경작자들이 훨씬 더 번창한——이러한 양상은 포스트니코프가 충분히 제기한 바 있지만, 실제로 그는 훨씬 더 중요한 또 다른 질문에는 사실상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지역의 전체 농업 생산에서 이 집단의 농업이 어떤 역할을 차지하고 있고, 상위 집단의 번영을 위해 다른 집단들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고 있느냐 하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이 집단은 수적으로는 아주 적은 수다. 남부에서 가장 잘사는 지역인 타우리다 주에서 이들은 인구의 단 2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이 지역 경제 전반에 미치는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³¹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 잘사는 소수가 전체 농산물 생산에 있어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타우리다 소재 3개 군에 있는 총 1,439,267데샤티나의 경작 면적 중에서 절반이 넘는 724,678데샤티나가 부유한 농민들의 수중에 있다. 물론 이 수치는 상위 집단이 얼마나 득세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표현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앞서 인용한 포스트니코프의 서술에서도 나타나듯이, 적절한 방식으로 농장을 꾸려가지 못하는 가난한 농민들과 중간층 농민들보다 잘사는 농민들이 훨씬 더 많은 수확량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된 곡물 생산자들은 바로 상위 집단 농민들이며, 그래서 (극히 중요하지만 종종 무시되는 사실인데) 농업에 대한 모든 다양한 설명과 농업 개선에 관한 담론 따위는 주로, 그리고 대부분(심지어 가끔은 오로지) 잘사는 소수와 연관되는 이야기들이다. 한 예로, 개량된 농기구의 분포에 관한 데이터를 예로 들어보자.
포스트니코프는 타우리다 농민들의 농기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그들이 가진 농기구는 거의 예외 없이 독일 이민자들의 것들과 동일하지만, 다양성이 떨어지고 간혹 질도 낮아서 가격이 더 싸다. 한 군데 예외는 드네프르 군에서 인구밀도가 높지 않은 남서부 지역으로, 이곳에서는 원시적인 소러시아 농기구들과 무거운 나무 쟁기, 그리고 나무 끝에 철을 두른 조파기가 여전히 널리 쓰인다. 나머지 타우리다 소재 군들에서는 농민들이 철로 만든 개량형 쟁기를 사용하는 모습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철제 쟁기와 나란히, 조파기가 농민들이 사용하는 유일한 쟁기도구로서 땅을 경작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모습도 쉽게 눈에 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조파기는 철제 쟁기와 나란히 사용된다. …… 써레는 어디서든 철제 갈퀴가 달린 나무로 만들어져 있고, 말 두 마리가 끄는 10피트짜리 써레와 한 마리가 끄는 7피트짜리 두 종류가 있다. …… 조파기는 날이 3개, 4개, 5개 달린 도구다. …… 조파기 앞에는 종종 작은 파종기가 달려 있고, 바퀴로 굴러간다. 파종기는 조파기가 이랑을 채우는 동안 씨앗을 심는다. 흔히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땅을 일굴 때 농민들이 사용하는 농기구 중에는 씨앗을 파종한 뒤 땅을 고르는 목제 굴림대도 있다. 수확기계는 특히 최근 10년간 농민들 사이에 널리 보급된 농기구다. 잘사는 마을에서는 거의 절반에 이르는 농가들이 이걸 소유하고 있다. …… 풀 베는 기계는 농민들 사이에서 수확기계보다는 훨씬 덜 보급되어 있다. …… 말이 끄는 써레와 탈곡기도 마찬가지로 드물다. 키질 하는 기계인 풍구의 사용은 보편화돼 있다. …… 물건을 운반할 목적으로는 독일식 사륜마차와 마자라³²가 사용된다. 이 수레들은 이제 상당수 러시아 마을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 탈곡을 할 때 돌로 된 날을 갖춘 다양한 크기의 굴림대들을 사용하는 것도 보편화되어 있다.”(213~5쪽)
이런 농기구들이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젬스트보 통계 초록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타우리가 통계학자들은 쟁기와 조파기, 수확기, 운송수단들(마차와 마자라)만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나온 데이터가 완전히 정확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메리토폴과 드네프르 군의 데이터를 합쳐보면 총 46,522개의 쟁기 중에서 상위 집단 경작자들이 소유한 개수는 42.9퍼센트인 19,987개다. 그리고 마차는 59,478대 중 23,747대로 39.9퍼센트, 수확기는 3,061대 중 2,841대로 92.8퍼센트다.
이미 인용된 데이터만 보더라도, 상위 집단 농민들의 노동생산성이 하위와 중간 집단보다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렇다면 이제 대규모 경작자들의 구체적인 경제적 특징을 결정해주는 기술의 특성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에 대해 포스트니코프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농업의 시스템과 성격을 결정짓는 건 주로 농민들이 소유하고 이용하는 토지의 규모다. 불행히도 서로에 대한 의존도에 관해서는 여태껏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농민 농업을 조사하는 사람들이 시골의 모든 집단의 주민들이 똑같은 유형을 나타내고 있다는 생각을 심심찮게 품어왔기 때문이다. 농사 시스템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 나는 타우리가 소재 군들을 방문하면서 확인할 수 있었던 서로 다른 농민 집단 간의 농사 기술의 특성들을 간략하게 요약하는 데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요크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가축으로 작업을 하는 농가들은 네댓 마리 이상의 농사용 가축을 보유하고 있다.³³ 하지만 그들의 경제적 상황은 아주 다양하다. 날이 네 개 달린 조파기는 한 조에 네 마리의 가축이 필요하고, 다섯 개 달린 농기구는 다섯 마리가 필요하다. 쟁기질을 할 때는 그 뒤에서 써레질을 같이 해줘야 하는데, 여분의 말이 없는 농민은 쟁기질을 하면서 바로 써레질을 할 수가 없고 쟁기질을 다 마친 후에야 그게 가능하다. 이는 이미 미세하게 말라버린 흙이 씨앗을 덮어버려 발아에 불리한 환경이 조성된다는 걸 의미한다. 만약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쟁기질을 하려면 물과 사료를 실어 날라야 하고, 역시 여분의 말이 없는 경우에는 작업이 지체된다. 이렇게 작업용 가축을 완전히 갖추지 못하면 언제나 시간을 손해 보고 파종이 늦어지는 결과가 빚어지는 것이다. 다수의 농사용 가축과 여러 날을 갖춘 파종기가 있다면, 농민들은 밭을 더 빨리 갈 수 있게 돼 가장 유리한 날씨를 활용할 수 있고 씨앗이 촉촉한 흙으로 덮일 수 있게 할 수 있다. 따라서 봄 파종 시 기술상의 이점을 가진 사람들은 다름 아닌 예닐곱 마리의 농사용 가축을 ‘제대로 갖춘’ 농민인 것이다. 일곱 마리의 말이 있으면 다섯 개의 날이 있는 조파기와 두 개의 써레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쉬지 않고 작업을 할 수 있다’고 농민들은 말한다.”
“추수 직후가 되면 농민들의 형편 차이가 훨씬 더 중요해진다. 특히 풍년이 들수록 농장에는 최대한도의 노동력이 요구된다. 여섯 마리의 농사용 가축을 보유한 농민은 곡식을 쌓아둘 필요 없이 실어 나르는 대로 바로 탈곡할 수 있기에, 당연히 시간과 인력을 절약할 수 있다.”(277쪽)
대규모 경작자의 살림살이에 대한 설명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이들 경작자 집단의 농업이 포스트니코프의 표현대로 “상업적인” 사업이라는 점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제시한 상업 부문의 크기를 나타내는 데이터는 저자의 서술이 옳다는 걸 완벽하게 증명하고 있는데, 경작 면적이 클수록 시장에 내다팔 농산물을 생산하는 상업 부문의 비중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25~50데샤티나의 경작 면적을 가진 농장은 전체 면적 가운데 52퍼센트가 상업 구역이고, 50데샤티나가 넘는 농장은 상업 구역의 비율이 61퍼센트에 달했다. 여기에다 근거를 하나 더 제시하자면, 현금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을 들 수 있겠다. 잘사는 집단에서는 그 중 가장 적은 수입을 벌어들이는 농가——가구당 574루블——도 필수적인 현금 지출(200~250루블)보다 현금 수입이 두 배 이상 더 많았고, 따라서 농장을 늘리거나 개량하는 데 필요한 잉여 자금을 축적할 수 있었다. “가구당 경작 면적이 50데샤티나가 넘는 더욱더 부유한 농민들의 경우에는 축산업의 한 분야인 털 굵은 양의 번식조차도 시장 지향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188쪽)고 포스트니코프는 설명한다.
이제 포스트니코프가 충분히 다루지 않았던(사실상 아예 건드리지 않았던) 또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보자. 그것은 바로 소수 농민들의 경제적 성공이 다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질문이다. 의심할 나위 없이 그 영향은 완전히 부정적인 것이었다. 앞서 인용된 데이터(특히 토지 임차에 관한 데이터)는 이를 충분히 입증하고 있는데, 그래서 여기서는 단순히 요약해보는 정도로만 다뤄보겠다. 타우리가 주 세 개 군에서 농민들은 (미분여지와 분여지를 합쳐) 총 476,334데샤티나의 토지를 빌렸는데, 그 중 5분의 3(63퍼센트) 이상인 298,727데샤티나가 부유한 집단에게 돌아갔다. 반면 가난한 집단의 몫으로 돌아간 건 단 6퍼센트에 불과했고, 중간 집단의 몫은 31퍼센트였다. 여기서 임대된 토지를 가장——유일하지는 않을지라도——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들이 다름 아닌 하위 두 집단이라는 사실을 명심한다면(앞서 제시된 드네프르 군에서의 농민 집단별 토지 분포에 관한 데이터에서는 상위 집단의 경우 분여지만으로도 “보통” 규모의 파종 면적으로 거의 충분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부유한 농민들의 경작지가 상업적으로 확대되면서 그들이 토지 부족으로 얼마나 고통받아야 하는지가 명확해질 것이다.
앞서 분여지의 임대 분포에 관한 데이터가 제시된 바 있는데, 이를 통해 정확히 동일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농민 집단들에게 있어 분여지의 임대차가 지니는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포스트니코프의 책 Ⅳ장에 나와 있는 이러한 임대차 유형에 관한 서술을 인용해보도록 하겠다. 거기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분여지는 이제 남부 러시아 농민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투기의 대상이다. 토지는 차용증에 대출을 위한 보증으로 사용되고, 타우리가 농민들 사이에 그런 차용증들은 아주 널리 돌아다니고 있으며, 토지에서 얻는 수익금은 채무가 해결될 때까지 대출업자에게 돌아간다. 그런 토지는 1~2년 또는 그보다 더 긴 8~11년 동안 임대되거나 ‘팔려간다.’ 그리고 분여지를 그렇게 임대할 때는 읍이나 마을 관공서에 공식적으로 등록해야 한다. 일요일이나 공휴일이면, 나는 큰 마을들마다 많은 수의 군중들이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관공서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목격하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유를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다과가 차려진 가운데 분여지들이 ‘팔려가고’, 그런 ‘매각 사실’이 마을 당국의 장부에 기록되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 분여지의 ‘매각’은 각 가구마다 등재된 사람 수에 따라 토지가 분할되고 근본적인 토지 재분배가 이뤄지지 않는 마을과, 가구당 실제 구성원 숫자에 따라 토지가 분할되고 정기적인 토지 재분배가 이뤄지는 마을 모두에서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서만 보통 거래가 다음 재분배 날짜 전까지 짧은 기간 동안 이뤄지고 있으며, 이들 마을에서 재분배 날짜는 최근 대부분 지역사회의 토지 재분배 결정에 따라 미리 정해져왔다. 근래 남부 러시아 마을들에서의 이러한 분여지 거래는 이곳, 특히 타우리가 군들에서 수적으로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부유한 지역 농민들의 사활이 걸린 이해관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여담이지만, 이는 부유한 타우리가 농민들이 막대한 면적의 토지를 경작하게 된 주된 배경 중 하나이며, 그들에게 상당한 경제적 이점을 안겨주었다. 최근 부유한 농민들이 대부분 값싸고 게다가 근처에 위치해 있는 토지의 임차를 가로막을지도 모를 그 어떤 생활상의 변화에 대해서도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140쪽)
그는 계속 말을 이어, 메리토폴 군 농정위원회³⁵가 분여지를 임대하는 각각의 사례마다 마을 의회의 승인을 받을 것을 요구한 사실과 농민들이 이 명령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사실, 그리고 “그 명령이 가져온 유일한 효과는 토지 거래 내역들이 아마도 비공식적으로는 여전히 기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을법원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뿐”(140쪽)이라는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한편 부유한 농민들은 막대한 규모의 토지를 임차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토지를 구매하는 유일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드네프르 군에서 그들은 전체 매각 토지의 78퍼센트를 사들였고, 메리토폴 군에서는 총 48,099데샤티나의 매각 토지 중 88퍼센트에 해당하는 42,737데샤티나를 구매했다.
마지막으로, 신용을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도 이 집단 농민들이었다. 남부의 마을 대부조합에 관해 이미 인용된 저자의 서술을 보충하는 의미에서, 그들에 대한 다음의 묘사를 인용해보도록 하겠다.
“오늘날 나라 이곳저곳에 세워진——특히 타우리가 주 마을들에 무수히 많이 들어선——마을 대부조합들은 주로 부유한 농민들을 지원하고 있고, 또 대부분 그렇다고 인식된다. 나는 대부조합들이 운영되고 있는 타우리가 주 마을들에서 농민들이 간혹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아, 드디어 우리가 유대인들을 몰아내고야 말았어요!’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죄다 부유한 농민들이었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농민들은 보증인을 구할 수가 없어 대출을 받지 못한다.”(368쪽) 이와 같은 신용 독점 현상이 놀라울 것은 전혀 없다. 신용 거래는 구매할 때의 대금 지불을 연기한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지불 수단을 가진 사람들만이 대금을 치를 수 있고, 남부 러시아 농민 중에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은 잘사는 소수밖에는 없다.
생산 활동의 과실을 따먹는 데 있어서 여타의 모든 집단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과실을 가져가는 이 집단의 경제적 상황에 대한 서술을 마무리하기 위해, 그들이 임금노동력에 “상당한 수준으로” 의존하고 있고, 그러한 노동력을 공급해주는 건 필연적으로 하층 집단 구성원들이라는 사실만을 기억하기 바란다. 이 점에 관해 농업에 고용된 임금노동자의 수가 정확히 얼마인지를 계산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문제라는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젬스트보 통계도 아직까지 그 난제를 극복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농업에서는 일 년 내내 노동력이 항상 꾸준히 필요한 게 아니라 특정한 계절에만 그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에, 상시적으로 고용된 노동자들을 신고받는다 하더라도 임금노동자들의 착취 수준을 확인하는 건 결코 불가능하며, 계절 노동자들(흔히 일용직 노동자들)의 숫자를 계산하는 것도 굉장히 어렵다. 각 집단별 임금노동자들의 수를 대충이나마 추산하기 위해 포스트니코프는 부유한 집단의 노동 기준을 노동력이 있는 가족 한 사람당 15데샤티나로 설정하고 있다.³⁶ 그리고 포스트니코프가 경작 면적의 실제 규모를 구체적으로 검토한 그의 책 Ⅶ장을 통해 우리는 오직 기계로 수확이 이뤄질 때에만 이러한 기준이 달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수확기계의 수는 부유한 집단에서조차 그다지 많지 않으므로——예를 들어 드네프르 군에서는 열 가구당 하나 꼴이다——기계 소유주들이 자신의 수확 일을 끝낸 다음에 기계를 대여해준다는 저자의 주장을 기억한다 할지라도 농민 대다수는 기계 없이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일용직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상위 집단에서의 임금노동자 고용은 저자가 추산한 것보다 규모가 더 클 수밖에 없고, 이 집단 농민들이 벌어들이는 많은 화폐 수입은 주로(전부는 아닐지라도) 정치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자본소득이라 할 수 있다.
세 번째 집단에 관한 설명을 요약해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평균적인 수량의 생산수단보다 상당 수준을 더 보유했기에 그만큼 노동생산성이 더 높은 부유층 농민들은 지역에서 농업 생산의 주축이며 나머지 집단들에 비해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 집단의 농업은 상업적인 성격을 띠며, 대부분 임금노동자의 착취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남부 러시아의 농민 농업에 관한 포스트니코프의 책에 담겨 있는 자료들을 체계화함으로써 이 지역의 세 주민 집단들의 경제적 상황에 있어서의 정치경제학적인 차이를 간략히 살펴보았다. 나의 견해로는 농민들을 이렇게 집단별로 나누지 않고서는 농민 농업에 관한 연구가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볼 때)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번 연구가 증명해주고 있다고 본다. 이미 지적했던 바와 같이 포스트니코프도 이 사실을 인식하고 있으며, 그래서 그런 시도를 하지 않은 젬스트보 통계학자들을 책망하기까지 했다. 풍부한 통계들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내놓은 개요들이 “불명확”하며, “그들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않는다”(Ⅻ쪽)는 것이다. 그러나 포스트니코프는 젬스트보 통계학자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그 스스로가 농민들을 “명확”한 집단으로 체계적으로 분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지적이 옳다는 사실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다양한 농가들 사이에 양적으로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³⁷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부유함의 정도”가 아닌 그들 농업의 사회적·경제적인 성격에 따라 농민들을 집단별로 나누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다. 따라서 머지않아 젬스트보 통계학자들도 그런 시도를 해주기를 희망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바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