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적 정


모든 인간은 고립된 생활이 계속되면 불안감이 생긴다. 정치도 그렇다. 정치가 고립무원을 자처할수록 특권적 소수가 지배하는 권력은 더욱 자신의 관성으로 안주할 수밖에 없게 된다. 열매가 자라기 위해 가지를 치지도 못하고, 목만 길어지고 마는 이 기형적인 정치적 구조가 닫힌 상태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정쟁의 불씨가 대립을 부추기는 것처럼, 그들의 극단적인 수사들은 지금의 지배권을 행사하는 자들이 보여주는 부적절한 정치적 언사와 행보에서도 확인된다. 그들의 말과 몸이 불일치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선거 사태에 대한 여론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동안, 정부가 내부적으로 국민의 불안을 책동하고 마는 것은, 처음에 그들이 부동산 대책에 대한 '개혁의 바람'을 불어넣었으면서, 똑같이 거센 역풍을 맞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들만의 정치는 세계 곳곳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청년 세대에 대한 '극우화'에 대한 우려를 부추긴다거나, 노년 세대의 장래가 불안함에 따라 발생하는 개인적 사고들에는 모두 동일한 '생계 위협 문제'가 달려 있다. 그들의 독단적인 정치는 무모하다. 자신들의 편익을 위해 그것을 이용하여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막힌 하천의 용수를 개방하자는 주장에도, 그들은 정쟁의 씨앗을 부추기고 자신들의 우세한 집단이 더 정당함을 내세울 뿐이다. 이 지점에서도 소수의 정치가 더 이상 배제된 다수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권력이란 단지 '더 많이 가진 자'에 있음은 어떤 논박으로도 부족하고, 더 많은 힘을 좌지우지하는 자들의 수중에서 결정되고 마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도 발언과 연설의 기회가 늘상 주어진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소외된 연설을 할 시간도, 자신의 생활과 관련하여 목소리를 내거나 이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 하나 없다. 하물며, 있더라도 잔잔한 움직임에 그치고 마는 것은, 그러한 힘이 이제는 다수를 억압하기 위해 더 존재하고 있다. 그러한 정쟁이 낳은 씨앗은 '대통합 시대'를 열겠다는 어느 분의 포부와는 달리, 그 속에 휘몰아치는 소용돌이에 빠져들어 그들과 똑같은 괴물이 된 정치권 인사들을 볼 수 있다. 본래 있던 하천을 공사로 포장하는 것도, 그들만의 결정권으로 쉽게 판단한 정치이다. 그것을 막을 수 있는 투쟁마저 거부한 정치권 인사들은 자신들이 이제는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져있음을 인지하지도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언제나 피억압 계급은 생계의 위협을 안으며 지배자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된다. 적어도, 그러한 세력화 정쟁, 그리고 소수의 정치는 이제 막을 내려야 할 시간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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