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울 수 없는 국가: 정치가 담을 수 없는 일
국민 주권이라는 명칭에도, 국가가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분은 이미 그 허구성이 드러나고 있다. 오늘날 민주 국가의 시민들조차 국가를 논할 때 여전히 전근대적인 통치 철학이나 추상적 국가 관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본의 통치하에서 계급은 자신의 '주인'을 섬기는 법을 먼저 체득하게 되며, 국가는 강제적 주입의 결과이자 지배 계급의 전유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가에 대한 답을 제안할 수 있지만, 우선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국가에도 유지 비용이 든다. 그러나 국가 유지 비용은 이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지만, 국가는 이를 제어할 역량을 상실했다. 여기서 기술은 단순한 기계적 숙달에서 인간의 능동적 활동을 의미하나, 사람들은 고정된 위치에서 주어진 일만을 반복하며 스스로를 제한해 왔다.
과거 학교라는 공간에서도 '잘하는 벗'들이 체육 시간과 교실을 지배하며 사적 경쟁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이는 '일그러진 영웅' 속 모습처럼 자신들만의 권력 체계를 구축했다. 국가는 군대를 조직하고 사회를 지배하며 이와 같은 구조를 전 사회적으로 재생산한다. '관념적 산물'에 불과한 국가가 절대적 권력으로 군림하며 전쟁을 일으키고 전근대적 사고를 답습해 온 동안, 대중의 요구는 철저히 묵살되었다.
국가의 안녕을 묻는다. 선거만이 최선이라 말하는 이들조차 주체성을 상실하고 기계와 자본의 논리에 매몰된 사이, 국가는 소외된 이들의 요구를 결코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희생을 방관한 대가는 고스란히 돌아오고 있으며,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의 과거가 현재의 부채로 되살아나고 있다. 국가는 법으로 무장했지만, 정작 그 반향조차 수용하지 못하는 무능을 보였다. 계급적 위치가 집중된 곳, 즉 지배 계급의 자본을 지키기 위해 결국 모두가 사람을 잃어버린 지금, 국가는 좌초된 선박처럼 침몰하고 있다.
국적은 남을지언정, 국가는 가장 밑바닥에서 헌신한 이들의 노력을 방치했다. 이제 우리는 국가를 자처하며 유산 계급의 국가, 나아가 국가와 계급 자체가 흩어지고 사라질 필연적 과정을 맞이하고 있다. 국가는 본래의 일을 하지 않으며 자신의 세계관을 부정한다. 이로 인해 국가는 스스로를 파괴하여 자신의 존재 의의를 증명해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놓여 있다. 이 세계관의 붕괴를 외면할 수는 없다. 우리의 요구가 국가를 딛고 설 때, 정치는 소수의 일이 아닌 모두가 비로소 참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