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현재성: 혁명과 운동
대중은 달력의 시간을 살지만, 역사적 시간의 층위에서 현대는 여전히 과거의 잔재에 머물러 있다. 강대국 간의 패권 경쟁은 그 체제의 불안정성을 실증하며, 이는 제국주의적 모순이 심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라울 카스트로를 단순한 국가 통치자가 아닌 역사의 산증인으로 조명할 때, 그가 남미 혁명 과정에서 보여준 실천적 노고와 성취는 관념적 논의에 그치는 세력들과는 질적으로 상이하다. 여전히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국가적 장벽과 엄격한 여권 심사는 세계 지배 질서가 자본의 축적과 억압을 위해 얼마나 공고하게 유지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표지이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국제 노동 계급 단결은 무산 계급 국제주의의 원칙에 따라 실천적 과제로 남는다.
폐쇄적인 국가 체제 아래 있는 민중은 물리적·사회적 감옥에 갇힌 채 임금 노동이라는 착취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의 시간은 군대의 시간처럼 정체되어 있다. 그러나 이른바 민주주의 국가의 노동자들 또한 거대한 자본주의적 생산 구조의 틀 내에 매여 있기는 마찬가지다. 지배 계급은 이제 젊은 후보자들을 전면에 내세워 체제의 재편을 꾀하지만, 이는 자본주의 체제 내부의 모순이 한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전조일 뿐이다. 이 반복적인 착취 구조 속에서도 노동자가 계급적 의식을 자각하고 최소한의 실천적 연대를 이루어내는 일은, 자본의 억압을 돌파하기 위한 필수적인 토대가 된다.
현상의 표면화는 단지 인간 지각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으며, 이는 객관적 법칙의 필연적 전개이다. 문명의 발달 과정에서 퇴화와 진화가 충돌하는 순환적 구조 속에서도, 역사적 운동은 결국 물질적 조건의 성숙에 따라 필연적인 방향으로 전진한다. 우리가 혁명이라 부르는 혁명 운동은 극히 희박한 확률 속에서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 이는 절박한 모순이 극한에 달했을 때 실천하는 노동 계급이 성취해내는 결실이다. 책상 위의 이론은 관념적 사유에 머물 뿐이지만, 실천적 단결은 체제적 압박과 적대 세력의 비난에 맞서 계급적 주체성을 확립한다. 그들은 노동 계급을 끊임없이 타자화하며 고립을 강요하지만, 단결은 그러한 기제를 돌파하는 과정이다. 이는 투쟁의 현장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결국 사람은 그 어려운 일을 감행하면서도 스스로를 성취한다. 제아무리 비난을 가하더라도 상관없다. 그 성취가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면서도, 가장 보람 있는 일임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혁명이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모순이 극대화된 물질적 조건 속에서 필연적으로 탄생하는 희박한 확률의 역사적 도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