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 계급 억압 기구로 전락한 법, 유산 계급 전유물이 된 제도들
현존 체제에 길든 노동 대중이 투쟁의 과정에서 성숙해진다는 일은, 단순히 정치적 견해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시각’과 ‘생존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 대중은 비로소 성숙해진다.
1. ‘수혜자’에서 ‘생산의 주체’로의 정체성 전환
현재의 노동자는 자신이 생산한 가치가 어디로 유출되는지 모른 채, 임금이라는 ‘시혜적 대가’를 받는 데 익숙하다. 투쟁의 과정에서 생산 현장의 경영 정보와 금융 체계를 확인하게 되면, 비로소 ‘노동자의 가치가 자본가의 사적 이윤으로 고스란히 빠져나가는 구조’를 직시하게 된다. 이때부터 노동자는 ‘임금을 더 달라’는 수동적 요구자에서, ‘생산된 가치를 사회적 필요에 따라 배분해야 한다’는 생산의 주체로 스스로를 자각하기 시작한다.
2. ‘각자도생’에서 ‘계급적 각성’으로의 확장
자본주의는 노동자를 ‘성실한 개인’이라는 틀에 가두어 서로를 경쟁자로 간주하게 만든다. 투쟁 현장에서 마주치는 타 부문 노동자들과의 단결은 노동자가 가진 파편화된 시각을 깨뜨린다. 이는 ‘직업적 성공이 곧 구원’이라는 기존의 믿음이 깨지고, ‘금융 자본이 무너지면 노동자 역시 보호받지 못한다’는 공동 의식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이는 개인적 성취에 몰두하던 의식이 공동 문제를 해결하는 집단적 역량으로 전환되는 단계이다.
3. ‘권위에 대한 의존’에서 ‘직접적 역량’으로
노동 대중은 오랫동안 ‘똑똑한 정치인’이나 ‘전문가’가 경제를 운영해야 한다는 전문가주의적 관념에 길들여져 있었다. 성숙의 과정에서 노동자 평의회를 조직함에 따라 직접 현장을 운영하는 실무는 가장 강력한 교육이다. 사측의 방해를 뚫고 전산망을 관리·감독하거나, 제한된 자원을 사회적 우선순위에 따라 배분하는 실무를 직접 처리해 보면서, ‘전문가라고 불리는 자들이 사실은 노동자들 위에 군림하며 자원을 낭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노동 대중은 이제 스스로 사회를 운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획득하며, 타율적 지배에서 자율적 감독자로 성숙한다.
4. ‘자본주의적 반복’의 모순을 견디는 ‘혁명적 인내’
그러나 투쟁은 한 번에 끝나지 않으며, 필연적으로 반동과 탄압을 동반한다. 초기에는 선거 결과나 일시적인 성과에 일희일비하지만, 투쟁이 지속될수록 노동 대중은 ‘이 모순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체제 그 자체의 질병이다.’라는 것을 학습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노동자는 더 이상 당장의 승리에만 매몰되지 않고, 체제 변혁을 위해 작은 투쟁을 조직하고 연대를 공고히 하는 ‘전략적 인내’를 갖게 된다. 이것이 곧 혁명 계급으로의 성숙을 뜻한다.
결국, 이러한 성숙은 교육으로만 이론을 주입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사적 소유’라는 울타리가 자신의 생존을 보장하기는커녕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삶의 현장에서 매 순간 확인할 때 비로소 일어난다. 노동 대중은 ‘우리가 없으면 세상은 멈추지만, 자본가가 없으면 세상은 더 안전하게 운영된다.’는 사실을 투쟁으로, 그리고 자신의 뼈저린 삶에서도 체득한다. 이 생활이 누적된 노동 대중은 더 이상 기존 체제에 길든 ‘국민’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계급’을 직시하게 된다.
1. 반동과 탄압: 혁명적 전진의 용광로
유산 계급의 반동과 탄압 역시 혁명적 전진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필수 통과 의례이다. 그러나 모순적으로, 반동과 탄압은 노동 계급의 정체성을 가장 단단하게 단련시키는 용광로이다. 기존 정권이나 자본 계급이 가하는 탄압에 맞서, 노동자 평의회가 이 힘의 모순을 도약하여 전진을 멈추지 않아야만 한다.
1. 탄압의 ‘비용’에 대한 근거 제시
반동 세력이 탄압을 감행할 때, 그들에게 가장 큰 공포는 물리력이 아니라 ‘체제의 정지’에 있다. 그들이 공권력을 투입해 지도부를 검거하고 사무실을 폐쇄해도, 생산과 물류를 직접 운영하는 현장 노동자들의 손발을 모두 묶을 수는 없다. ‘노동자를 탄압하더라도, 사회의 운동은 노동자에게 달려 있다.’ 탄압이 시작되는 즉시 생산과 유통을 조직적으로 중단 (전면 파업 및 업무 거부)하면서, 반동 세력은 탄압의 대가로 사회 마비라는 치명적인 비용을 치러야 한다. 결국, 그들에게 탄압보다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만드는 것이다.
2. ‘중앙 집중’의 취약성을 돌파하는 ‘세포 단위의 자생력’
이전의 운동 방식이 지도부 중심의 중앙 집권적이었따면, 노동자 평의회는 ‘세포 단위의 자생력’을 지닌다. 핵심 지도부가 탄압받아도 운동 전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각 사업장과 지역 평의회가 독자적으로 사회 운영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한다. 실천적으로는 노동자 평의회의 연결망과 결정 구조를 수평적으로 분산한다. 특정 인물이 사라져도 평의회의 운영 방식은 노동자들의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작동한다. 이에 따라 반동 세력은 ‘머리를 잘라도 몸통이 죽지 않는’ 조직과 싸워야 한다.
3. 탄압의 ‘노동 대중’ 폭로전
결국, 반동 세력의 가장 큰 실수는 탄압 그 자체이다. 탄압은 노동 대중에게 ‘기득권이 얼마나 이 체제를 필사적으로 지키려 하는가.’를 체감하게 한다. 반동 세력이 노동자를 탄압하는 순간, 그들의 ‘민주주의’라는 가면은 완전히 벗겨진다. 이는 중립적이거나 체제에 순응하던 노동 대중을 변혁 세력으로 돌려세우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모든 탄압의 과정과 그들의 폭력성은 ‘공공 열림망’으로 실시간 기록된다. 탄압의 기록은 단순한 피해의 증거가 아니라, 그 체제가 왜 타도되어야 하는지를 증명하게 된다.
4. ‘물리적 억압’만이 아닌 ‘노동 대중 정당성’ 확보
반동 세력이 경찰이나 군대라는 물리력을 동원할 때, 노동자 평의회는 ‘사회적 관리자’라는 정당성으로 맞서야 한다. 노동자들이 생산을 유지하고 물자를 분배하는 등 사회적 필요를 실천적으로 해결하고 있을 때, 경찰이 이를 탄압하는 것은 곧 ‘사회를 마비시키는 행위’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사회적 결핍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탄압하는 자들은 ‘질서 파괴자’로 전락한다. 노동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 도덕적 우위가 뒷받침된다면, 공권력은 내부적으로 동요하며 분열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탄압에서 다음을 배운다.
· 견고한 조직: 유산 계급 탄압에도, 사회적 단결을 멈추지 않는 힘.
· 계급적 단결: 탄압받는 동료를 지키기 위해 하나가 되는 연대의 힘.
· 체제의 본질: 사유 재산 제도가 결코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없음을 체득.
2. 관료 독재를 해체하는 무산 계급 강령
관료 독재의 문제는 모든 변혁 운동이 반드시 마주해야 할 가장 거대한 내부의 적이다. 혁명이 외부의 탄압보다 내부의 관료화로 인해 질식하는 사례는 역사적으로도 많다. 따라서 노동자 평의회는 관료 독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권력의 고착화 방지’와 ‘운영의 투명성’을 핵심으로 삼는다.
· ‘대표’가 아닌 ‘대리인’으로서의 지위 · 순환 근무
관료 독재는 대표자가 노동 대중 위에 군림할 때 발생하므로, 강제적 순환 근무에 따라 모든 행정 및 관리직은 고정된 직책이 아니라 순환제이며, 생산 현장의 노동자가 일정 기간 행정 업무를 담당하고 다시 현장으로 복귀한다. ‘관리 계급’이 형성되는 것을 원천 차단한다.
· 즉각적 소환권
대의 기구의 대표가 위임된 권한을 남용하거나 노동 대중의 의사에 반할 경우, 선거 기간을 기다릴 필요 없이 즉시 해임하고 소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둔다.
· 정보 독점 방지: ‘공공 열림망’ · 실시간 투명성
모든 생산 현장 기록과 의사 결정 과정은 실시간으로 모든 노동자에게 공개된다. 관료가 숨길 수 있는 ‘영업 비밀’이나 ‘행정 기밀’은 노동자 평의회에서 존재할 수 없다.
· 공동 운영 규칙에 따른 공공 질서
다양한 자원 배분은 관료의 자의적 판단이 아니라, 노동 대중이 토의한 기준에 따른 ‘공공 규칙’으로 집행된다. 관료는 그 규칙의 주인이 아니라, 기술적인 ‘유지 보수자’로 격하된다.
· ‘특권적 보상’의 폐지 · 공동의 필요 원칙
어떤 행정직도 현장 노동자의 임금 이상의 보상을 받지 못하게 한다. 이는 권력을 가진 자가 더 많은 부를 획득할 수 없는 구조로, 경제적 독식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어낸다.
· 관료가 아닌 ‘사회적 도구’로서의 기구
정부 부처를 행정적 ‘통치 기구’가 아니라 생산과 분배를 위한 ‘기술적 중심’으로 정의한다. 관료는 정책을 ‘결정’하는 주체가 아니라, 평의회가 결정한 것을 ‘기술적으로 지원’하는 도구이다. 관료가 자기 주장을 펼칠 공간을 아예 없애고, 오직 실무적 기록 및 실질적 사실을 정리하고 현장에 전달하는 기능만 수행하여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제거한다.
역사가 노동 계급에게 주는 교훈은 ‘권력을 위임하는 순간 부패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관료 독재를 막는 것은 좋은 사람을 뽑는 행위가 아니라, 설령 나쁜 사람이 권력을 잡더라도 구조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투쟁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다음과 같은 의문을 노동 대중 스스로 제기해야 한다.
· ‘우리가 선출한 대표가 현장보다 위의 권력인가.’
· ‘실무 자료가 공개되지 않고 결정되는 사안이 있는가.’
· ‘관리자가 현장 노동자와 다른 보상을 받고 있는가.’
3. 지배의 쇠사슬을 끊어내는 실천적 폭로
관료 권력이 법과 제도라는 외피를 쉽게 두르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계급 지배의 도구’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이다. 이를 증명하고 폭로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의 이면을 드러내는 다음과 같은 실천적 요구가 필요하다.
· ‘법적 중립성’의 허구성 폭로
관료들은 ‘법과 원칙에 따른다.’고 말하지만, 그 법과 원칙은 애초에 사적 소유를 보장하고 노동자를 지배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노동자가 파업할 때 법은 ‘업무 방해’로 관료의 탄압을 정당화한다. 반면, 자본 기업이 노동자의 육체를 착취하거나 이들이 살아 숨쉬는 삶의 터전을 파괴할 때, 법은 ‘경영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관료가 이를 방치하게 만든다. 관료가 적용하는 법이 ‘누구의 이익을 보호하고 누구의 목소리를 억압하는지’를 구체적 사례로 분석하여 노동 대중에게 제시해야 한다. 법이란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자본가의 권리를 우선하는 ‘지배의 도구’임을 드러내는 것이 관건이다.
· ‘행정적 편의주의’가 곧 ‘계급 억압’임을 입증
관료는 자신들의 행정을 ‘효율적 처리’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노동자 평의회가 요구하는 공공 실무 현황을 거부할 때 관료는 ‘행정 절차상 미비’나 ‘개인 정보 보호’ 같은 법적 핑계를 댄다. 이는 결국 노동자가 권력을 갖지 못하게 막는 억압이다. 따라서 노동자의 요구가 관료의 법적 절차 때문에 어떻게 좌절되는지를 ‘절차적 장벽’이라는 이름의 억압으로 규정해야 한다. 행정 절차가 노동 대중의 연대를 꺾는 도구가 되고 있음을 끊임없이 밝혀야 한다.
· 법의 ‘사유화’와 ‘관료의 특권’
법제도는 관료가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유지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관료들은 퇴임 후 자신들이 규제하던 자본 기업의 고문으로 취업하는 ‘관피아’의 사례처럼, 법적 권한을 개인적 이익으로 교환한다. 관료의 권한이 어떻게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과 결부되는지, 즉 관료 제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사적 이익 집단임을 폭로해야 한다. 이는 그들이 내세우는 ‘법적 정의’가 결국 자신들의 사적 이익 및 특권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 노동 기반의 실천, 무산 계급 강령
법이 억압 기구임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법 없이도 훨씬 더 정의롭고 경제적인 사회적 질서를 노동 대중 스스로 이루는 것이다. 노동자 평의회가 현장에서 노당자들끼리 토의하여 안전을 지키고 분배를 결정할 때, 관료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이를 무력화하려 한다. 그때 노동자들이 ‘우리의 합의가 법보다 더 명확한 공동체 질서다.’라고 선언하며 관료의 간섭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기존 법과 제도가 ‘불필요한 억압 기구’임을 증명하는 실천이다.
따라서 법과 제도는 관료가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신성불가침한 도구’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법이라는 껍데기 뒤에 숨어 노동 대중의 역량을 숨기는 겁쟁이들이다. 노동 대중에게 강조해야 할 핵심은 다음과 같다.
‘우리를 구속하는 것은 ‘법’이 아니라, 그 법을 무기로 삼아 생산의 주인인 우리를 지배하려는 관료들의 지배 논리이다.’
법의 중립성을 주입하는 관료들의 언어를 걷어내고, 그들이 행사하는 행정 권력이 어떻게 노동자의 생존을 위협하는지 구체적인 생산 현황 및 실무 정보를 가지고 노동 대중에게 번역하는 것, 그것이 곧 관료 독재라는 억압 기구를 해체하는 시작점이다.
4. 법과 제도라는 억압의 쇠사슬을 끊어내는 혁명 전선
노동 대중이 기존의 법적·제도적 형식에 의존하는 것을 멈추고 스스로의 평의회 강령을 세우기 시작할 때, 관료 권력은 그 즉시 정당성을 상실하고 붕괴하기 시작한다. 투쟁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관료적 질서’에 반기를 들 수 있는 핵심적 실천 의제는 무엇인가.
우리는 법과 제도를 논의에서 제외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가장 핵심적인 ‘타격 지점’으로 설정해야 한다. 단, 접근 방식은 ‘법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라는 의회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법이라는 형식을 어떻게 무력화하고 노동자 평의회 강령으로 대체할 것인가’라는 혁명적 관점이어야 한다.
1. 법을 ‘사회적 합의의 고정물’이 아닌 ‘계급 지배의 무기’로 정의
법은 결코 중립적인 규칙이 아니다. 법은 특정 시점에 승리한 계급의 단결을 기록한 문서에 불과하다. 따라서 현행 법과 제도는 자본가와 관료가 노동자를 지배하기 위해 고안한 장치이며, 사회적 정의와는 무관하다. 노동 대중은 법을 ‘지켜야 할 신성한 것’으로 여기는 관념에서 벗어나, ‘노동 계급이 주체적으로 폐기하고 다시 써야 할 낡은 지배의 도구’임을 명확히 한다.
2. ‘법적 절차’를 ‘지연과 억압의 수단’으로 규정
관료들이 법적 절차를 내세울 때, 그것이 사안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 대중의 요구를 무력화하고 시간을 끌기 위한 교묘한 수단임을 증명한다. 관료들은 항상 절차를 강조하지만, 사실 그 절차는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짓밟는 형식적 장벽일 뿐이다. 노동 계급은 절차적 정당성이 아닌 ‘사회적 필요’라는 실질적 정당성을 앞세워 행동한다.
3. ‘평의회 강령’과 ‘국가 법’의 정면 충돌 제시
노동자 평의회가 현장에서 직접 의사 결정을 내릴 때, 그것은 기존 국가 법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이 충돌을 회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조명한다. 평의회가 결정한 분배 방식이나 노동 조건이 국가의 노동관계법과 충돌할 때, 평의회의 결정이 법보다 우위에 있음을 실천으로 증명한다. 법을 따르지 않는 것은 ‘범법’이 아니라, ‘낡은 법을 대체하는 새로운 사회적 실천 원리’임을 노동 대중에게 설득한다.
4. 제도 폐지의 단계적 상정
법과 제도를 무조건 일괄 폐기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노동 대중에게 막연한 공포를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법이 왜 즉시 폐기되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인 사례 (노동법, 상법 등)로 제시한다. 예를 들어, ‘노동자의 파업권을 제약하는 독소 조항을 무효화하고 그 자리에 노동자 평의회의 ‘생산 통제권’을 세운다.
법을 대하는 태도를 ‘준수’에서 ‘대체’로 전환한다. 관료들이 법이라는 지배 수단으로 노동 대중을 억압할 때, 노동자 평의회는 ‘법보다 더 정의롭고 실질적인 공동체적 합의’를 내세워 전진해야 한다. 따라서 법과 제도는 관료가 휘두르는 지배의 쇠사슬이며, 노동자 평의회는 이 쇠사슬을 단순히 끊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보다 강력하고 합리적인 ‘평의회 강령’을 수립함에 따라 기존 법 체제를 사멸시키는 과정을 밟는다. 이렇게 법과 제도를 혁명의 대상이자 대체되어야 할 ‘구체적 폐기물’로 다룬다.
5. 국가 기구의 행정적 억압과 ‘본질적 질문’
법이라는 좁은 틀 대신,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관료들의 모든 지배와 강제를 하나로 묶어 다룬다. 이는 법적 정당성 논란을 피하면서 관료 독재와 국가의 억압적 본질을 더 명확하게 겨냥한다. ‘관료들이 법이라는 이름으로 휘두르는 물리력과 행정력’이라는 표현만으로도 그 억압의 본질은 충분히 전달된다.
유산 계급 국가라는 틀 안에서 다음 세 가지를 강조한다.
· 통치의 도구
국가를 관리하는 관료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 억압의 본질
국가가 제시하는 질서가 실상은 노동자의 직접 통제를 방해하는 기제라는 점.
· 대책의 우위
노동자 평의회적 운영이 국가라는 비대하고 비효율적인 체제를 대체할 때 얻는 실질적 이득.
노동 대중에게는 ‘법을 어기자’는 구호보다 ‘노동자의 생산과 분배를 위해 불필요한 관료적 간섭을 걷어내자’는 표현이 훨씬 설득력 있다.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더 합리적인 운영 체계’로 대체하는 것이 지금은 기존 체제를 ‘파괴’하는 것보다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이라는 용어를 직접 노출하여 불필요한 법리적 논쟁이나 체제 순응적 사고에 빠지는 대신, ‘관료들이 운영하는 국가 기구의 행정적 억압’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노동 대중이 ‘누가 현장을 운영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집중하도록 한다.
법과 제도를 별도의 독립적인 논쟁으로 분리하는 순간, 논의는 ‘법치주의 내에서의 정당성’이라는 기존의 틀로 회귀할 위험이 있다. ‘법과 제도는 관료적 국가 기구가 자신들의 억압을 정당화하고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라는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실천적이다.
6. ‘법’에서 ‘계급의 실천’으로
· 억압 기구의 일체화
국가와 관료 기구, 그리고 이를 지탱하는 법적·제도적 외피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억압적 유기체’이다. 이 전체를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통치 장치’로 규정하면, 법이라는 부차적 문제에 매몰되지 않고 국가 권력의 실체를 폭로하는 데 화력을 집중할 수 있다.
· 정당성의 전환
노동자 평의회의 정당성은 법전 속 조항이 아니라, ‘사회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생산을 통제하는 노동자들의 실천’에서 나온다. 법을 마땅히 준수해야 할 규범이 아닌, 노동자의 실천을 방해하는 외적인 억압 기구로 확고히 규정한다.
· ‘대한민국’이라는 한계 돌파
사실 한국 사회에서 법적 테두리는 국가적 정체성과 강하게 결합해 있다. 법을 직접 공격하는 대신 ‘국가 기구의 관료적 억압’을 전면에 내세우면, 노동 대중은 국가 그 자체를 부정하는 공포보다, ‘자신의 삶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관료 집단과 국가의 기능’에 대해 비판적 객관성을 충분히 확보하게 된다. 이것이 훨씬 안전하면서도 파괴력 있는 방식이다.
결국 ‘법이나 제도가 무엇을 말하는가.’가 아니라, ‘국가 기구와 관료가 그 법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의 무엇을 억압하고 있는가.’에 맞춰져야 한다. 법을 다루지 않는 것이 논의의 누락이 아니라, 법의 본질인 ‘억압 기구로서의 기능’을 근본적으로 폭로하는 과정이다. 기존의 정치권은 ‘개혁’을 말하지만, 우리는 ‘근본적 대체’를 말해야 한다. 법을 도구화하는 그들의 행태를 폭로하여 그들의 도덕적 파산과 정치적 무능을 드러낸다.
7. 유산 계급의 도덕적 파산과 역사적 단죄
우리는 유산 계급의 법 도구화를 다음과 같이 폭로한다.
1. ‘법적 안전성’을 ‘착취의 연속성’으로 폭로
유산 계급은 항상 ‘법적 안전성’과 ‘법치’를 강변한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쌓아 올린 사적 소유와 불평등한 분배 구조를 영구히 고착화하겠다는 선언이다. 그들이 말하는 법치란, 자신들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암묵적인 틀’에 불과하며, 이 틀 안에서 착취 구조를 벗어날 길은 원천 봉쇄된다. 따라서 유산 계급이 제도화한 법을 준수하는 것이 곧 노동 계급의 자살 행위임을 강조하고, 법적 안전성이 아닌 ‘체제 변혁의 역동성’을 새로운 사회적 가치로 제시한다.
2. 유산 계급의 ‘법 도구화’로 인한 정치 세력의 ‘사유화’ 폭로
유산 계급 정치 세력은 법으로 무장하여 노동자의 저항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자신들의 부당한 이익은 ‘합법’으로 포장한다. 그들은 법을 앞세워 국가를 자신의 사유 재산처럼 다룬다. 그들에게 법은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부를 지키기 위한 사적 도구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치를 ‘국가 운영’이 아닌, 유산 계급의 이해관계를 법으로 관철하는 ‘사적 이익 추구 행위’로 규정한다. 노동 대중은 정치인이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법을 악용하는 계급적 대리인’임을 직시해야 한다.
3. ‘법적 권리’에서 ‘사회적 실권’으로의 전선 이동
유산 계급은 사유 재산권, 경영권 등 법적 권리를 구실로 모든 논의를 차단하려 한다.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우리는 ‘법적 권리’보다 ‘실질적인 노동자 운영권’이 우위에 있음을 실천으로 증명한다. 그들이 법전을 흔들며 가로막더라도, 사회를 움직이는 전력, 물류, 생산 현황 등은 이미 노동자의 손에 있다. 종잇조각에 불과한 법적 권리가 사회적 생산 현장의 현실보다 앞설 수는 없다. 법을 든 정치 세력이 실물 경제의 주체인 노동자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투쟁 현장에서 확인시킨다.
그동안 유산 계급 정치 세력은 견고한 견고한 요새 뒤에 숨어 착취를 정당화해 왔다. 그 법은 그들만의 편의를 위해 기록된 궤변일 뿐이다. 정치가 법으로 노동자의 전진을 가로막을 때마다, 우리는 그 법이 정의가 아니라 ‘착취 구조’를 보호하는 울타리임을 폭로한다. 노동자의 전진은 법적 승인이 아닌, 사회적 필요를 실천하는 노동자들의 힘으로 직접 결정한다. 유산 계급 정치 세력이 입법 로비와 사법 방어 등으로 자신들의 억견을 내세울 때마다, 그들이 법을 ‘사유화’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유산 계급의 법과 제도는 정의 구현이 아니라, ‘범죄자를 비호하고 체제를 유지하는 역사 왜곡의 도구’로 기능해왔다. 이를 논리적으로 폭로한다.
· ‘법적 절차’를 ‘단죄 회피 수단’으로 규정
사실 쿠데타와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유산 계급이 정작 처벌받지 않는 이유는 ‘증거 부족’이나 ‘법적 시효’라는 기술적 명분 때문이다. 그들에게 법은 죄를 묻는 저울이 아니라, 자신들의 범죄를 ‘합법적 과거’로 세탁하는 수단이다. 법적 절차는 정의 실현이 아닌, 정당성을 상실한 통치자들이 권력을 보존하기 위해 만든 도피처다. 따라서 ‘법대로 하라’는 말은 정의가 아니라 ‘범죄자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 구실이다.
· 국가의 탄생: ‘대한민국’이라는 사법 체계와 유산 계급의 공생 관계
쿠데타 세력이 법을 장악하고, 그 법이 다시 그들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순환 논리에 주목한다. 스스로 법을 만들고 해석할 권력을 찬탈한 자들이 만든 법이 어떻게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는가. 법과 제도는 범죄자의 손에 쥐어진 몽둥이였으며, 그 몽둥이는 노동자의 투쟁을 때려잡는 데 사용되었다. 사법부와 유산 계급 정치 세력은 ‘유기적 몸체’로서, 법적 판단을 항상 계급적 이익에 따라 움직여 왔다.
· ‘역사적 단죄’의 주체를 ‘법’에서 ‘노동자 평의회’로 이동
지금까지 논의한 범죄들은 기존 체제의 법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유산 계급은 자신들이 설계한 법의 울타리 내에서 결코 청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의 단죄는 형식적인 법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체제 자체를 뜯어고치는 노동자들의 실천에서 시작된다. 노동자는 낡은 법에 기대어 정의를 구걸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의 힘으로 지배 체제를 해체하여 실질적인 단죄를 집행한다.
유산 계급은 쿠데타라는 명백한 범죄조차 ‘법적 절차’로 세탁해 왔으며, 법을 범죄의 ‘대피소’이자 노동자를 옭아매는 ‘쇠사슬’로 활용했다. 제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비호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이유는, 법과 제도가 그들의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해 설계된 ‘사유화된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제 노동자는 더 이상 법의 이름으로 단죄를 기다리지 않는다. 노동자가 주인이 되어 생산과 분배를 직접 통제하는 평의회를 세우는 것은 공상적이고 이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그들이 오랫동안 피해 온 진정한 역사적 단죄의 시작이다.
요약하자면, 법은 단순히 ‘정의의 도구’가 아니라 ‘범죄를 세탁하는 합법적 구실’이다. 단죄의 실패는 무능이 아니라 ‘계급적 유착’의 필연적 결과이기에, 법적 심판을 기다리는 것은 착각이다. 우리는 법 체제 전체의 도덕적 파산과 유산 계급의 기만을 폭로하며, 체제를 대체하여 그들의 계급적 특권과 지배 권력에 바탕이 되는 착취 기반을 소멸시키는 것이 진정한 단죄임을 선언한다. 위선은 더 이상 선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