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1. 03.

 

체 게바라, 시대의 초상

 

어떤 사상가는 그를 두고 '전인'이라 칭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이 인물은 본래 의사를 지망했으나, 아메리카 전역에 걸친 식민 지배의 본질과 바티스타 정권의 부패를 목격한 후 혁명의 길에 투신했다. 결과적으로 바티스타 정권은 몰락했고, 미국은 그를 체포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으나 존 F. 케네디는 지상의 양식과 만찬을 즐겼고, 그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미온적이었다. 그가 UN과 의회 투쟁에서 선언했던 내용들을 상기할 때, 그는 미국 사회 전반에 대한 강한 혐오를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아메리카의 부르주아 의회가 아닌 노동자와 인민 곁에 서는 길을 택했다. 그는 천식을 앓았음에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 혁명의 유령이 되었으며, 카스트로와의 이견이 존재할 때조차 인민을 위한 헌신이라는 목적 아래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에 묵묵히 매진했다

 

오늘날 제국주의 국가들조차 이 과거의 인물에게 존경을 표하곤 한다. 그러나 인물을 물신화하여 숭배하는 현상 이면에는, 사회 체제가 부패하는 한 어떠한 청렴한 사상가일지라도 그 순수성이 오염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작동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는 국제 사회와 전 세계 인민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반공주의가 만연한 시기에 장기 집권 창출에 기여했다는 사실이나, 마오주의적 유격 전술이 정권 수립 이후 제국주의 세력의 새로운 부상과 자본주의적 기술 발전의 위력을 간과했다. 실제로 카스트로의 장기 집권은 남미의 상징이 되었으나, 동시에 쿠바 경제가 미국의 압력을 견제할 물질적 토대를 갖추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는 단순히 국가 권력을 탈취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의 주체성을 탈환하고자 자본을 탐독했다. 필자는 그의평전이나 일기보다 게릴라전에서 더 많은 의미를 배운다. 모순적으로, 제국주의 군대 또한 유격전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교본으로 여전히 그의 저술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부족한 물자와 열악한 매복 조건 속에서도 정부군을 신속히 소탕했다. 국방력 증진에 매몰된 현대 국가들과 달리, 그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고 인민의 힘을 한데 모아 쿠바를 해방할 수 있었다. 혁명의 전리품을 탐하는 이들과 달리 그는 지도부에 머물길 원치 않았으나, 카스트로의 권유로 경제부 수장직을 맡아 그 자리에서도 인민들과 함께했다.

 

이와 같이 20세기의 진정한 인민 지도자는 카스트로가 아닌 체 게바라였다고 평가해도 무방하다. 현재 공산 국가들의 몰락이 제국주의의 악랄한 부상과 같이하고 있다면, 그러한 퇴행적 현상은 단호히 부정되어야 한다. 그는 바티스타 정권이 파괴한 경제를 복구하기 위해 지식인들의 자문을 구했지만, 그는 사상가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우리가 남미 경제의 실상을 논하기 전에 직시해야 할 사실은, 인민을 위해 헌신한 이들에게 바쳐야 할 경의는 단순한 사상적 동의가 아닌 '변혁적 실천' 그 자체에 있다는 점이다. 이는 온갖 잡동사니 같은 상품과 계급의 논리가 범람하고, 제국주의 국가들의 공세가 거세지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도, 우리가 침묵을 깨고 물질적 투쟁을 실질적으로 준비해야 함을 시사한다.  

 

'제국주의자들 중 온건주의자는 두려움이 많은 사람 또는, 어떤 형태의 배신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을 가리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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