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1. 20. 


한국 혁명



독재의 시간: 무산 계급에게 독재란 무엇인가.

 

통상적으로 현대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독재'라는 언어는 절대 권력을 한 개인에게 위임하는 전제 정치나 군주제와 동일시되며 무조건적인 부정의 대상으로만 인식된다. 사전적으로는 독재는 '통치자의 독단으로 행하는 정치'로 규정되며, 이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비판마저 결여된 모소불위의 권력에 대한 공포는 타당하며, 선거마다 권리 행사의 부담을 감지하는 현대 시민들에게 독재와 민주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대척점인 개념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사회를 단일한 시민의 집합이 아닌 계급적 구도 및 관계 속에서 파악한다면, 이러한 보편적 인식의 한계와 언젠가 마주하게 된다. 현대 자본주의 역시 똑같이 표방하는 민주주의가 과연 노동자 계급에게 실질적인 권력을 부여했는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동안 무산 계급은 민주적 권력을 정당하게 행사한다는 착각 속에 머물렀다. 민주화 운동의 역사나 독립 투쟁의 성과를 기리는 행위가 국가적 수준에서는 유의미할지라도, 정작 그 주체였던 노동 계급이 마주한 실질적인 현실은 '민주'라는 개념이 지닌 고질적인 한계 역시 드러낸다.

 

레닌, 국가와 혁명에서 강조된 '독재'의 개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노동 계급에게 요구한 것은 단순한 지식 계급의 정권 교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노동 계급이 비로소 정치적 주체로 실현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였다. 이는 소수 독재자의 횡포가 아니라, 대의제라는 허울 뒤에 숨은 자본가 계급의 모순을 타파하고,일보전진 이보후퇴에서 설명된 기나긴 의회 투쟁의 시간 속에서 겨우 부상한 노동 계급의 직접 통치권을 주장한 바로 그 순간에 탄생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이러한 진정한 의미마저 단기간의 한계로만 평가하는 것 같다

 

당면한 현실이라면 자본주의와 결합된 민주주의 체제는 더 이상 '영원한 평화'마저 약속하지 못하고 있다. 자본의 논리와 정치적 수사 속에서 체제의 근본적인 이행마저 외면당하고 있으며, 인구 감소라는 통계 수치보다 더 시급한 노동자들의 죽음은 방치되고 있다. 이른바 독재자로 명명된 이들이 인민을 대변하지 못한 채 좌절하여 자본가에게 굴복하는 현상은 혁명의 조건이 상실된 시대의 비극을 온전히 보여준다. 1917년 볼셰비키가 역사적 무대에 등장한 이후로도 노동 계급은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온전한 주체가 되어본 적이 없었다. 지금도 그 운명을 수용할 노동자에게도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내포한 정치적 본질, 곧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갖는 기만을 폭로하고, 동시에 노동자의 직접 통치를 지향하는 그 가치는 시간만 바뀌었지 형태의 본질이 고스란히 유지되는 시대의 보수성 앞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의미를 지닌다. 이 유효성 앞에서 그동안의자본읽기가 왜 실천적 실패로 귀결되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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