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18.


정부 형태 재판부 선고 보고

 

판사에 따른 여러 판결들을 따로 추심해봤다. 이번에도 검찰계 사법부에서도, 오판을 내렸다는 결론을 내린다. 쉬운 말로, 그들은 선을 넘었다고 정의내릴 수 있다. 국가법으로도 고발 조치는 상식이지만, 내부는 썩었으므로. 그래도 정보를 신고해본다. 법조계도 눈치만 봤지. 정작 한 마디도 말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부르주아 역대 정부는 또 실패했다.

 

여러 문헌들이나, 사전들에서도 서술이나 정의에 대해서는 정리해서 서술한다. 그러나 같은 의문을 품어볼 수는 있다. 더욱 개인적으로 명쾌하거나, 확정 서술에 대해서는 충분히 객관적이지도 못한 채로, 또는 깊게 알아보지 않은 채로 적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도 대체로 모든 주어진 사실들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어볼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그저 그대로 있는 정보만 받아들인다면, 글쓴이로는 계급으로 치중된 오류를 가진 채로 막연하게 또 다시 적을 수 있다. 작은 예시로는 필자는 <레닌은 회상하며>를 읽고, 더 알아보고자, 레닌 생애에 대한 백과사전을 참조해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해당 백화사전은 체계적이지도 못했고, 생략된 부분들도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여러 저작들이나, 자료를 세부적으로 더 조사할 필요를 있다고 봤다. 설령 인공 지능이 발달해서 자료에 대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한다고 한다고 해서 꼭 정확한 정보를 전달한 건 아니라고 본다. 여러 논쟁들도 있지만 인공 지능은 단지 지식을 넓혀나갈 뿐이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스스로도 찾고자, 아는 정보를 잘 적용해서 내세울 줄 알 때 비로소 정보를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간과하고는 국내 언론 기자들은 주어진 정보로만 추론하는 법만 배웠다. 그러나 맨 먼저 훈련을 받는 의문을 품는 법을 잘 모른다. 왜냐하면 한 의문에서도 생겨난 질문이란 보다 참된 사실을 잘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보도 전체로 보아도, 좋은 기사를 찾기란 더욱 힘들어진다. 왜냐하면 해답을 고르는 추리만 해왔지. 정작 의문을 다룰 수 있는 올바른 추론마저 생략해왔기 때문이다. 바로 같은 의문을 생략해버렸기 때문에. 정부와 사법부의 사례에서도 보이듯, 오판을 내리고는 말았다. 순서 상으로도 정의 내리지도 못했으므로. 많은 논쟁마저 불러왔다. 여러 정부에 대해서는 정작 풀지도 못하는 문제를 엉키도록 해놨기 때문에 따로 할 말마저 없어진다. 부르주아 권력으로는 법이라는 기득권에 대한 울타리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또 지겹도록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식한 정치인들은 어수선하게만 법망을 꾸리는 동안에도, 남 뒤처리를 하느라. 똥을 치우는 노동 사무관들에게도, 국내로는 같은 본보기는 하나 더 있다. 바로 그토록 피하고, 부정하고 싶어하던 군부 독재 시절 때다. 한국 정치인들에게 바치는 납세라는 품위 유지비마저 아까울 정도이다.

 

자본 주가와 노동 생산에 대한 관계

 

여러 성비에 대한 노동 임금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고, 또 그러한 지적들도 취약한 문제를 안고 있으므로, 우리는 주로 재벌 기업들에 대한 자본가 구도에 대해서 비판하고자 한다. 여기서 층위를 다루지는 않고자 한다. 왜냐하면 층위는 계급 구도를 무력화하게 만들거나, 혹은 당면한 민주 문제나, 단편적인 운동 요구로만 그치기 때문이다. 여러 매체에서도 보이는 정보들에 대해서는 우선 모두 틀렸다는 전제로부터 새롭게 자본주의에 대한 물음에서부터 작업을 더욱 개시하고자 한다. 수정주의는 특히 노동 임금에 대한 결정이 주가 조작으로부터 결부됐다는 식으로 접근하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더욱 심화됐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들은 국방부 지출을 늘리고자, 여러 위원회 설립을 추가로 건설하고자 하거나, 아니면 세금 지출에 대해서 다른 곳에서 끌어다모으는 방식으로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역대 정부들에 대해서도 부르주아적인 시각을 가진 채로, 교육을 받거나, 교정되어 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모든 정부들의 결정들은, 노동 계급들과는 동일할 수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된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는 혁명 정부를 추구한다. 또한 지배 권력에 대한 일시적인 도전이 아니라 매우 장기적인, 그러니까 길고 꾸준한 프롤레타리아트 혁명 정부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기나긴 선거 제도로부터, 너무나 많은 시간들을 기다려오기도 했다. 여러 경제적인 분위기에 따라 일시적으로는 성장세를 보이다가도, 정작 노동계급들에 대한 생활과는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증명하는 건, 바로 혁명에 대한 연구가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르크스, <자본론>을 적용해야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꼭 필수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본 주가가 떨어지고 있다고 보고, 경제 사정들도 매우 힘들어졌다고 판단한하고 있다. 노동 생산에 비해서,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인원들도 턱 없이 줄어들었고, 그에 반해서, 그렇다고 혁명에 참가할 수 있는 구성원들도 매우 소수라는 점에서, 우리는 최대한으로, 정부에 대해 폭로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우리에게 여러 경제적인 동향이나, 시사적인 방향이란,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와 연계해서, 또 노동계급들에 대한 의식을 무산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혁명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다는 한에서 제기한다. 자본주의는 붕괴하도록 만들 수 있다면, 그리고 힘쓸 수 있다면, 닿는 한 부수는 쪽이 더욱 옳다.


그리고 현행법으로 제어한다면, 무력으로도 사용할 줄 알아야만 한다고 보는 쪽이다. 그러므로 일반 매체에서만 제기하는 여러 미약한 논쟁들은 힘도 약하고, 또 없다고 보기 때문에, 우리는 실천할 수 지식을 연구할 수 있는 지역 혁명가들에게 의존한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갈등이나 혼란으로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만 만드는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라는 본질을 파악하고 또 꾸준하게 제기해야만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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