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8. 30. 


소비에트를 기리며

 

소비에트를 선언한지 100년이 또 흘러갔다. 언젠가 여유가 생겨 자유롭게 이동한다면 독일과 러시아를 한 번은 꼭 방문해보고 싶다. 다른 시간대였다면, 대학교를 바로 졸업하고, 대학원도 다녀보거나, 교수가 되어 전공을 심화한 연구원으로 가르치는 일도 했겠다. 그래도 한 헤겔주의자 교수에게 논리를 배울 수 있었던 건 제법 큰 영광이었지만, 전직은 소수 공산주의자로 인도됐다. 지도 교수는 무정부주의자였다. 인생이란 참 희한한 일이다. 인생의 스승이란 늘 언제나 열려 있지만, 진리 앞에서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비슷한 또래에서 쉽게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만나볼 수 있다. 서로 잡지에도 기고할 정도로, 주로 대학원에서 역사를 전공한다고 익히 들었다. 어느덧 작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독특하게도, 시골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지만, 마르크스주의라는 비판의 길을 결심했다. 그저 역사를 가르치는 일이라면 또 어떤 사람일지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전공을 잇기에는 독일 관념론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알아버렸다.4월 테제이후 반동이라는 단어의 결과로 찾아오는 충격이라는 변화로부터도, 깨진 구슬로 산산조각난 운명 같은 소비에트의 유산을 마지못해 잇고 있다.

 

체제 아래에 묶여버린 한 서민주의자는 공산주의를 마무리하고 싶은 갈망 때문에 우리를 저버렸다. 한 여성주의자는 분명 함께하겠다고 말했지만 등을 돌렸다. 한 경제주의자는 하다못해 아는 척하면서 탁상에 앉아 소비에트를 추억만 했다. 그래도 크게 신경 쓰지 말자고 말했다. 잘못된 선택은 돌이킬 수도 없기 때문이다. 동지에게는 가야 할 길이 멀고도 험한 미지의 길이라 미리 조언했다. 우리를 포기시키는 게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선택을 진정으로 포기할 때, 비로소 변증법이라는 눈으로 유물론 앞에 서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렇다. 정답이란 자신의 길로 가더라도 신경을 끄는 일이다. 우리는 각자 해낸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 최후의 발악을 얌전히 지켜보는 중이다. 그리고 조직한다.

 

레닌주의라는 또 다른 기억으로,

 

위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를 위한 해방을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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