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29.


트로츠키주의와 그 한계



국제주의 경향과 연속성 비판

 

트로츠키주의 이전에 트로츠키는 그의 생애와 함께 굵직한 족적을 남긴 것은 사실이다. 의문의 죽음을 둘러싼 해명의 여부는 충분히 설명되었기 때문에, 단순히 역사적 고찰은 더 이상 논의에 있어 그 진행을 비극으로만 몰고 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한 가지 제기해야 할 사안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당사자들이 해명할 부분이란 바로 트로츠키의 생애와는 별개로, 그의 사상이 결과적으로 구 소련 내에서도 충분한 영향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그의 최후 저작으로 잘 알려진 스탈린 전기파시스트 투쟁과 관련된 많은 논쟁을 담은 역사 서적을 그는 꾸준하게 출판했다. 소련의 치열한 내부 투쟁에서 밀려났기 때문에 트로츠키는 멕시코로 이주하면서, 그곳에서 혁명적인 성향의 부르주아지들과 교제했다는 점은 사실이다. 중요한 점은, 멕시코에서 활동하면서 그가 아메리카, 특히 미국의 혁명을 기대하여 주도했다는 점인데, 그는 국제 혁명의 연속 선상에서 여러 민족들과의 민주적 결합을 기대했다. 트로츠키에게는 이와 관련된 대표적 저작이 두 권 존재한다. 첫째는, 연속 혁명과 전략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고, 둘째는, 배반 당한 혁명으로 잘 알려진 트로츠키의 소련 내 경제 문제를 비판한 중요한 문건이다. 물론 이는 당시의 소련 사회와 비교했을 때를 전제해야 하므로, 트로츠키 자신이 소련 사회에 대한 주관이 깃든 서술상의 한계를 보인다. 또한 그의 행적에서 교제와 관련된 인물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오해 삼을 행동을 보였다.  

 

물론 당시의 레닌 사후로 일어난 소련 당내의 내부 투쟁를 둘러싼 해석이란 실질적으로 그당시의 입장이 되지 않고서는 함부로 다룰 수는 없다. 당대 역사의 정황은 독일이 파시스트의 힘을 빌려 진격 중이었다는 사실이고, 파시스트가 유럽 전역을 광범위하게 휩쓸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 역시 제국주의와의 전쟁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트로츠키는 무려 초기에 소련 국방부 장관 정도의 지위를 이르게 역임했기 때문에 인민 권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그의 실적은 이미 소련 당내에서도 충분히 인정받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는 도피하고 말았다. 소련 내 대숙청 과정에서 오해를 부른 여러 논쟁을 남겼기 때문에 단편적인 정치적 판단이 실수라는 평가를 내릴 수도 있겠지만, 소련 역사의 정립이 이 사안에서 중요한 점은 아니다. 또 다른 이유란 바로 트로츠키주의의 영향력과 국제주의의 결합, 그리고 후대의 토니 클리프, 크리스 하먼, 알렉스 캘리니코스 등 영국사관에 여전히 고취된 범유럽적 사고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일부 부르주아적 추종 태도를 과감하게 버리지 못한 자들이 혼재된 자유주의에 대한 의식을 더욱 고취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들만의 수정된 세계관으로 자리잡은 칸트주의에 대한 옹호를 숨긴다. 이것이야말로 부르주아적 경향이라 부른다

 

그들은 범민주적인 토대를 건설하기 위해 사회주의 운동을 곧바로 국제 민주주의 경향으로 흡수시켰으며, 기회에 따라 현재에 발생하고 있는 여러 정치적 사안들에 대한 날 선 비판을 가하고 있음에도, 실질적으로 정책적 타협주의를 옹호하는 성향만 내비칠 따름이다. 전반적으로, 맑스주의에 대한 재해석을 중시하는 신경향을 추구하여 오히려 배타적인 국내 인식을 더욱 강화시켰다. 트로츠키 역시 실제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 프롤레타리아트 민주주의와 같다는 카우츠키의 오래된 정치적 편견과 의견을 답습한 부분 역시 존재한다. 이러한 연속관들이 모여 칸트주의의 일부를 구성한다는 점 역시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우리가 정당을 건설함에 있어 이것이 실질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정당 내의 구성원들은 비로소 어떠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합당한 강령마저 생략하고는, 그저 소모적인 연대 의식 고취나 시민 단체에 대한 호소로만 그치고 말거나, 공식 석상 전반의 회의론이 자리잡은 지금의 경향에 대해서도 이질적인 추종 세력을 낳게 했다는 점에서 그 위세에 비하면, 일부는 동의할 수 있으나, 전반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 역시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경과를 지켜볼 수 있는 기회는 물론 영광이지만, 그 결과는 더욱 처참하다. 이 경과란 바로 레닌의 계승자를 둘러싼 존재가 다름아닌 트로츠키였다는 식의 논리에 편승하고, 현재 발부되는스탈린주의와의 투쟁에 대한 편역 역시 큰 오류를 안고 있다. 이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듯이, 두 사이의 문제는 당내의 정립 과정에 있어서는 새로운 문제 의식을 일으켰지만, 그것이 경향으로 자리잡은 한 그러한 오류야말로 바로잡고 검토해야 함을 전제하며, 그리고 앞선 시도와 기초적 학습 구조의 재생산만을 반복하는 현재의 자본주의 구조 내에 뚜렷한 한계를 보이는 조직 구성에 대해서도, 지금의 정당 건설에 대한 중요성을 심화하는 것 역시, 자본논의에서도 중요한 지점이다그러나 그러한 지적마저 생략하고는 곧바로 혁명적 연속선상의 일부가 자본주의적 지속성 내로 흡수될 수 있음을 배제하고 만다. 이를 두고 자본이 잘못됐다고 과연 지적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의 심각한 낙관론이 지니고 있는 기대의 오류를 내재한다. 그렇다면 그것이 과연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더욱 조악한 책임이라면, 19911226일 부로 구 소련의 역대 서기장들이 그 취지와는 반대로, 모두가 우려했던 소련을 결국 지켜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