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17.
구조주의 비판
필자에게 구조주의 비판은 초기 연구 과제였으며, 이를 국내 문제로 풀어내고자 했다. 특히 마르크스주의 실천의 모순에 대한 고민은, 프랑스 구조주의 비판에서 마르크스주의적 실천으로의 구체적 이행으로부터 비판적 본질에 도달하는 경로를 확보한다. 비판적 대상은 마르크스주의 진영 내부에서도 충분한 논쟁의 여지를 남긴 인물들이다. 특히 헝가리 출신의 루카치와 코제크가 주목된다. 이들은 프랑스 공산당 내에서 진행된 마르쿠제와 알튀세르 간의 논쟁과 비슷하게, 마르크스주의적 구조주의 철학자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비판적 독해 문제가 야기된다. 벤야민 역시 이러한 독해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면, 영국 공산당 내 에릭 홉스봄의 역사주의에 영향을 받은 이들이라면, 그들 모두의 작업이 구조주의적 동기를 내포했다는 점은 피할 수 없다. 더불어,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원전에 충실했는지에 대한 자기 비판적 의문을 제기한다.
루카치 비판의 핵심은, 그가 반영론의 중심에서 자의적·경험적 해석을 중시했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필자가 이들의 저작으로부터 마르크스주의를 일부 습득했음을 인정하더라도, 철학적 마르크스주의가 비평적 함의로만 제한될 때, 본질적인 실천의 문제를 간과한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러한 실천적 통일성의 측면에서 루카치의 한계는 명백하다. 이는 여러 국가의 공산당 내부 문제를 역사적으로 고찰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업이다.
알튀세르 이전의 마르쿠제 등도 경우에 따라, 수정주의 마르크스주의로 비칠 수 있는 만큼, 반영론자들에 대한 당내의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 이는 레닌이『좌익 공산주의』에서 ‘좌파주의적 소양이 특정 이념으로 퇴색됐다는’ 지적과 함께 개시된다. 이 지적은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고찰하는 데 유효하다고 본다. 궁극적인 목적은 구조주의의 한계를 짚어내고, 그들이 놓친 마르크스주의 저작의 중심을 오히려 연구하는 데 있다. 이는 기존 구조주의의 영향을 받은 인물들이 지금도 시도하는 맑스와 엥겔스 간의 오해와는 매우 다르다는 점을 제기하고자 한다. 때에 따라, 이는 칸트주의의 편향된 인식적 모순과도 일치한다. 이 글의 핵심을 열면 이렇다.
‘맑스주의란 과연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