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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문학에 취하다 - 문학작품으로 본 옛 그림 감상법
고연희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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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시화전을 떠올리게 된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우리나라 선인들의 그림은 타인의 시들의 일부에서 전문, 혹은 약간 자신만의 해석이나 유희적인 의도에서 변형된 시들이 함께 그림을 이루기도 하고 한명의 문인이 시와 그림을 하나로 묶고 있기도 하다. 그림을 그린 선비나 화가들의 가치관과 당대의 세계관이 함께하는 책 속의 그림들 속에서 그들은 등장인물이 되기도 하고 관찰하거나, 이미지를 상상하여 구축해 가기도 한다. 저자의 시 원문 해석과 덧붙이는 설명 등 풍부한 사료와 함께 그림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혹은 인물 설명들 덕분인지 16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의 옛 그림들이 더 빛나 보인다.
나는 고그림에 완전한 무지의 상태였고 그나마 기억 속에 있는 우리 옛 그림이란, 학창시절의 교과서에서 본 게 전부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색바랜 종이 위의 정적이고 평면적인 옛 그림이라면 저자의 이름과 그들이 자주 쓰던 소재, 혹은 시험에 나올 법한 서체의 종류와 대표 인물들이나 외고,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감상의 포인트 정도를 생각한다면 특히 오래전 그려진 수묵화에서는 내러티브가 가장 강조된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었던 듯 하다.
하지만 우리가 시를 해석할 때는 그렇지 않다. 그 비유적 표현에 감탄하고, 소리를 문자로 옮기는 저자의 표현력과 운율 등에도 눈을 돌린다. 그렇다면 시와 함께하는 그림에서 이 또한 읽지 못할 게 무어란 말인가.
저자는 우리의 적극적인 관심밖에 있었던 시화의 그림과 시를 함께 읽기의 즐거움을 깨닫게 한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과 공을 들인 자료조사와 집필기간이 들었을 이 책을 만나면 또 한명의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학자 한명을 발견하게 된 데 기쁨을 느낄 것이다. 나도 모르게 주변에 책을 보여주며 소개하고플 정도로 감탄하게 된 데는 그만큼 우리가 고문학과 우리의 옛 그림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을 반증하는 듯도 하다. 또 고시들을 읽으며 그림과 함께 배우는 듯한 기분은 그림을 참고로 하는 쉽게 읽을 수 있는 고문학 입문서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어느 학문이건 입문자들을 위한 그림책들처럼 말이다. 고문학이 눈 앞에서 그림으로 펼쳐지며 한자로 씌여진 문자의 표현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서구예술에서는 카툰이나 플럭서스의 일련의 작업, 그리고 지금 거의 모든 디자인 등이 문자와 함께 하는 그림이라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있는데 우리의 옛 예술에 이렇게 문자와 함께 하는 독특하고 운치있는 예술장르가 있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글자와 의미의 배치를 생각해볼 수 있는 모더니즘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여러 미술작품들을 생각해보면 우리의 옛 그림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문학적 표현과 서체, 화체가 모두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평면예술은 말그대로 시적이면서도 지금 스토리텔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무엇보다 꿈과 현실이 어우러진 자연과 삶들로 아름다움을 이루고 있었다.
내가 특별히 감동했던 책 안의 작품들은 강세황의 ‘괴석’, 이재관의 ‘오수도’ 등 여러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옛 그림과 싯구들이었다. ‘괴석’의 경우에는 돌덩이 가에 숨겨진 여린 꽃의 선때문이었는지, 움직이지 않지만 왠지 힘이 들어간 바위의 형상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림의 힘이 ‘변치 않는다’는 시 속의 내용과 함께 그대로 전달되어 위로가 되었고, ‘오수도’는 그림 당시의 선비들의 서재에 대한 로망처럼 책에 대한 애정이 들어있는 책배게와 ‘현실의 그림자’라는 창문과 책상과 선반 사이의 작은 틈으로 갈 수 있는 숙수념의 세계가 내게는 굉장한 매력이었다. 현실을 도피하기 보다는 숙수념의 세계로 가는 명상과 오수를 즐길 수 있는 당시의 선비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삶의 태도가 느껴지기도 하고 현재 우리의 삶에 필요한 상상력과 건강한 여유를 위해서도 귀기울일만한 그림 속 이야기가 아닐까.
무엇보다 움직이지 않는 이미지에서 소리를 느끼려고 애써본 경험이 거의 없는 이들에게는 조선시대의 옛 그림에 관한 이야기에 귀가 솔깃할 것이다. 구양수의 ‘추성부’를 그린 김홍도의 ‘추성부도’가 그렇다. 구양수의 한자와 중국어 발음을 생각한 소리의 시적표현에도 감탄하게 되지만 김홍도의 그림을 다시금 영상으로 상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림 속 가을바람과 고즈넉한 낙엽 떨어지는 소리며 풀벌레 소리며 나무 사이를 흐르는 바람소리가 약간은 차다싶은 가을공기와 함께 느껴진다. 시와 함께 하였기 때문에 그림 또한 시각적이거나 촉각적인 심상만이 아닌 부분까지를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우리 옛 그림, 아니 모든 그림을 대할 때 후각적이고 청각적인 부분까지를 읽어내려고 감각을 더욱 열 수 있을 듯 하다. 새가 날면 퍼덕이는 날개짓 소리와 새의 울음소리가, 물 흐르는 풍경에서는 물 떨어지는 소리가, 음식과 사람의 표정에서 후각과 미각을 예상하고 심플한 네러티브에서 그치지 않은 스토리텔링으로 나아갈 것만 같다.
이야기를 담은 그림들도 그저 기록이 아닌 캐릭터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세심하게 살피고 있는 저자의 연구와 칸만화를 연상하게 하는 연속화면 식의 회화 표현들의 소개만으로도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는 다양한 고미술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조금은 따분한 박물관의 죽은 미술로 여겼던 우리 옛 미술을 시적 표현의 문자와 그림이라는 하나의 독특한 예술장르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 가장 큰 변화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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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욱 | 구본준 (지은이) | 마티 | 2011-02-18 

어쩌면 꿈과 같은 이야기일수도 있고, 어쩌면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듯 하다. 이 둘을 모두 충족시켜주면 더할나위 없을테고 말이다. 사실은 실용적인 면보다 꼼꼼한 두 남자가 들려주는 사는 시공간으로서의 집이야기가 너무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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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 히키 (지은이) | 박대정 (옮긴이) | 마음산책 | 2011-02-25 

어쩌면 히키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는 고전적인, 혹은 예술탄생의 근본에 더 가까이 있는 기준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아름다움은 결코 시각적인 것에서 그치지 않고 끝없는 의미생산으로 주관적인 미의 기준을 가진다고 생각하는데 히키의 아름다움에 대한 담론은 이에 대해 과연 전복적일지, 또 다른 회귀의 주장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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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R. 리퍼드 | 로런스 앨러웨이 | 낸시 마머 | 니컬러스 캘러스 (지은이) | 정상희 (옮긴이) | 시공아트(시공사) | 2011-02-25 

팝 아트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미술평론가들이 들려주는 팝 아트 이야기. 팝 아트의 역사나 작품들 뿐 아니라 팝 아트의 넓은 의미와 미술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사유를 불러일으킬 것 같은 책. 일상과 예술에 대한 영감을 많이 줄 독서가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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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정신>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예술의 정신
로버트 헨리 지음, 이종인 옮김 / 즐거운상상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조언들일뿐 아니라 예술을 보는 이들에게도 열린 시각을 권유하고, 행복하기 위한 삶의 태도에 대한 조언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독자층은 예술가를 꿈꾸고 있는 이들, 특히 한국에서 입시미술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목이 지시하고 있는 예술의 정신은 공식적으로 들어맞는, 기술적으로 매끈한 작품이기보다는 감성교류적인 의미와 표현에 있다고 생각하는 저자의 주장은 다소 공식적인 입시미술에서 예술가의 영혼을 성장시켜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 책은 본문에서도 직접적으로 언급된 바와 같이 기본적으로 예술을 ‘확장된 언어’로 보는 저자의 예술관을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열린 시각, 다른 시각, 기록이 아닌 의식적인 선택, 감정과 자신만의 색 등 창작을 앞두고 우선시 해야 할 것들을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으며 창작에 임할때는 유연한 감수성, 독창성, 집중력 등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명백하게 감동은 기술에서 오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실기이론과 구상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보다는 인생과 철학, 경험을 강조한다. 드로잉을 하는 회화 입문자들에게 드로잉에 앞서, 혹은 드로잉을 배우고 연습하면서도 피사체와의 교감을 우선시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행동으로도 보여지는데 대규모 단체의 일치성보다는 소규모 구성으로 개성유지가 중요하다고 주장한 바와 같이 저자 본인 또한 여덟명의 소규모 그룹을 이끌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예술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의 작품이 너무도 궁금해진다. 미술계에서는 교육으로도, 작품활동으로도 권위자로 알려진 그의 이름이 사실 내게는 조금 생소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기 위해 여기저기 뒤적여 보았다.(이 책에서는 만날 수 없음) 인물화에 크게 감동을 받은 기억이 별로 없었던 나는 인물화가 화가보다 모델의 캐릭터에 순간적으로 몰입하게 창작할 수 있다는 데 놀랐다. 화풍보다는 모델의 캐릭터가 뚜렷하게 하나의 표정에서 느껴졌다. 그렇다고 착하고 사납다는 정형화된 동화속 인물의 구사도 아니다.

개인에 따라 소감들이 다르겠고 말로 어떻게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으니 역사 속의 실제 살아있었던 인물들이라는 느낌이 가장 먼저 났다고만 해두자. 나는 저자가 사실주의적 화가였다고 해서 그에 대한 선입견을 가졌었던 것 같다. 사실주의적 그림에 대한 오해도 분명 있었는데 극사실주의 회화와의 혼돈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적 표현을 우선시하고 표면적 리얼리티만을 중시했을 것이라는 예상은 인물화를 많이 그렸던 로버트 헨리의 작품들을 보고서는 달리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그림에는 모델의 캐릭터성과 순간의 모델의 감정을 잘 드러내고 있어서 그의 집중력이 남달라서 사진과 같은 기록의 의미를 가진 초상이 아닌 인물화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고 있다. 삶과 역사성, 여자와 아이들을 주로 그린 그림 안의 모델들은 모두 다른 배경과 환경와 감정상태들을 가졌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실주의에서의 표면적 리얼리티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도 없을뿐더러 로버트 헨리와 같이 그 또한 ‘재현’은 ‘재현’이었을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저자의 이 글들과 그림을 연결하면서 화가의 시선과 감정의 재현 또한 사실적 표현의 옷을 입은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의 예술관람에서는 분명 프레임 밖에 관람객과 겹쳐지는 위치의 예술가를 매번 의식하고 느낄 수 있을 듯 하다.


이 책은 주로 19세기의 유럽회화 뿐 아니라 중국, 일본의 19세기 초반 작품들을 예로 들고 있다. 이 책은 1923년에 발간된 책으로 저자가 예로 들고 있는 예술가들과 작품들이 1500년대~ 1800년대 작들인지라 평소에 접하기 어려웠던 당시의 예술들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이렇게 예시로 제시된 그림들은 저자의 1923년 출판시에도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출판을 거듭하고 번역과 국내출판을 하면서 그림의 예시는 등장하게 되었을 것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또 다른 생각을 하게 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여러 예술가와 작품제목이 등장하지만 그림에 대한 정보적 지식을 중요시하고 있지 않은 저자의 태도는 뚜렷하게 느껴질 것이다. 예로 언급되는 예술가들과 작품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보기 힘들다. 주로 모델, 화가의 심리와 움직임의 표현과 프레임의 구성, 삶의 재현과 캐릭터성 등에 관심이 있었던 저자이지만 그림에서 화가의 의도까지를 말해버리지는 않는 것이다. 화가가 모델과 그리고 자연에서 순간의 느낌을 포착해내고 그 감정을 그리는 내내 집중하여 기억하고, 프레임에 담는 것에서 나오는 아름다움, 그 교감과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이 잘 전달되길 바라지만 그 뿐, 과학적으로 드로잉 기술과 붓질(스트로크)의 섬세함, 구도의 완벽한 안정성을 관객이 이해하기를 바라지는 않는 듯 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저자가 예술해석에 있어서는 열린 가능성을 두는 것을 중요시 했을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불친절하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의미를 가르쳐줘버리는 정보성 예술도서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알려줘버리지 않는 전시와 도서야말로 독자 혹은 관람객과의 교감을 자극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알아내려는 해석경향이 있고 정보성 예술도서에 익숙하다. 미술관에만 가 보아도 도슨트의 친절한 설명으로 우리는 작가의 의도를 상상할 여지를 상당부분 잃는다. 이는 정답에 접근하고자 하는 우리교육의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예술가가 피사체를 접하고 창작하면서 어떤 감정과 생각을 했는지... , 어떤 경험(공감각적 체험)이었는지 보는 이의 경험과 결합해 그 경험을 상상해내는 것이 예술관람의 즐거움이 아니던가. 다소 불친절하게 예술작품들을 만나볼 필요성을 느낀다. 충분히 교감하고 사유한 후 정보를 얻고 보다 풍부한 해석을 해보는 것도 늦지 않다.


저자는 언어이건 물질이건 그 자체로는 아름답지 않으며 판단과 표현으로만 의미가 발생한다고 믿는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처럼 말이다) 로버트 헨리의 말에서 조금 더 나아가 회화도 마찬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로버트 헨리의 저작이 이어졌다면 이러한 관람의 태도 또한 분명 언급되었을 듯 하다. 저자의 자연과 화가의 교감에 대한 언급을 생각해 볼 때, 나아가 작품을 탄생시킨 예술가의 작품은 예술가의 손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과 만나서 그 교감이 형성될 때 비로소 예술이 된다. 마치 꽃이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에게 자문을 구한 이들(제자)에게 보내는 비평의 서신은 감동이다. 난관에 봉착한 이들에게 꿈을 잃지 않게 격려하고 사조들과 타협하지 않게끔 애정어린 충고와 그가 생각하는 예술의 정신을 강조한다. 이 서신들이 분명 제자들의 주머니 사정을 돕지는 않았을테지만 역사가 평가할 작품활동과 예술가로서의 긍지를 잘 다독여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선생 자신의 업적을 위해서라도 당장 인정받을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제자를 원하고 가르치는 데 있어서도 그렇게 유도할 수 있었을 법도 한데 로버트 헨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가 강조한 예술의 정신에 부합하는 일치적 실천을 보여줌으로써 아마도 그는 더욱 존경받았을 것이다. 그가 학생들에게 비현실적인 꿈만을 강요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선생으로서 저자는 스스로 미술계의 일률적인 비평과 수상시스템을 비난하여 미술이론과 미술계를 압박하는 등 진정 학생들과 고매한 정신을 지키는 예술가들을 옹호하는 실천을 도모한 것이다. 
 

포스트 모던 시대의 예술작품을 생각해보면 부유하는 표면적인 재현들마저 의미를 가질 수 있을텐데 의문을 품으면서 그의 이야기가 지금으로서는 시대착오적 교육이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잠시 들지도 모른다. 그저 한명의 독자로서 나는 선행해 읽었던 ‘미술은 똑똑하다’에서 공부했던 당시의 미술이론들과 아카데미 미술에 대한 이해가 더 풍부해진 듯 해서 뿌듯하고 ‘우리는 왜 예술작품을 원하는가. 그리고 왜 표현의 욕구를 가지는가’를 생각했을 때 저자의 이야기는 가장 근본적으로 예술이 추구해야 할 제목 그대로 ‘예술의 정신’에 대해 백번 옳은 말을 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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