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1 - 상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밀레니엄 (아르테)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아르테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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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흥미로운 소설만큼이나 지은이 "스티그 라르손"의 생애도 드라마틱하다. 장르문학 마니아, 사회당의 열혈 활동가, 독립언론사 기자였던 그는 40대 후반에 노후보장 차원에서 이 소설을 집필하였으나 출판을 보지 못하고 심장마비로 급사하였다. 자신이 쓴 원고를 출판사에게 건넨 뒤 불과 12일 만에 사무실로 가던 중 마침 고장이 난 엘리베이터 대신 7층 계단을 오르다 심장마비로 쓰러져 사무실 책상에서 사망한 것이다. 그의 마지막 말은 "난 일해야 된다고!"였다고 한다. 32년간을 동고동락한 실제 부부였지만 테러 위협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던 평생의 동지이자 반려자였던 "에바 가브리엘손"은 "밀레니엄 3부작에는 스티그가 어린 시절을 통해 얻은 가치들, 사회참여, 각 개인은 자신의 내부에서 스스로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힘을 발견할 수 있다는 신념이 담겨 있어요"라고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말했다. 2005년에서 2007년에 걸쳐 출간된 밀레니엄 3부작은 방대한 스케일과 뛰어난 작품성으로 유럽 전역에서 뜨거운 화제를 낳았고, 판매부수로 나타난 이 작품의 인기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즉 스웨덴에서만 약 300만부가 팔렸는데, 이는 스웨덴 인구 91만명의 31%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이다. 현재까지 유럽 12개국에서 번역되어 900만부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주인공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는 탐사보도 전문 시사경제지 "밀레니엄"의 기자이다. 어느 날, 재벌 "베네르스트룀"에 대한 폭로성 기사를 싣게 되는데 이로 인해 소송에 휘말려 들게 된다. 그런데 법원의 판결은 그에게 불리하게 내려져 실형 선고에다 거액의 배상금까지 물어야 되는 일생일대의 위기에 몰리고 말았다. 며칠 뒤, 뜻하지 않게 또 다른 대재벌 전직 회장인 "헨리크 반예르"로 부터 파격적인 제안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베네르스트룀의 명백한 범죄 사실의 증거를 미카엘에게 제공하는 대신 그에게 과거의 어떤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 달라는 것이다. 그것은 회장의 손녀 "하리에트 반예르" 실종사건이다. 40년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고 수많은 인원이 동원되었지만 생사조차 밝혀 내지 못했던 그 사건을 경찰도 탐정도 아닌 미카엘이 재조사 하게 된 것이다. 한편, 스웨덴의 대재벌의 전직회장인 헨리크 반예르에게는 매년 자신의 생일인 11월 1일, 해마다 다른 꽃이 유리 액자에 담긴 압화(押花)로 발신인이 표시되지 않은 채 배달된다. 40여 년 전 실종된 손녀 하리에트가 그의 생일 선물로 만들어 주었던 것과 동일한 방식의 이 압화는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배달되었는데 이것은 회장에게는 더 할 수 없는 고문이자 살아 생전에 꼭 풀어야 할 천추의 한이었다. 어쩔 수없이 시작한 일이지만 사건을 추적할수록 자신도 모르게 이 사건에 빠져 드는 미카엘은 기자 특유의 직감과 예리함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 나가게 된다.

장르문학의 마니아였던 지은이의 이력처럼 이 소설에는 무수한 복선과 트릭, 함정, 반전 등 추리소설의 다양한 장치들이 정교하게 짜여져 있다. 다소 심하다고 할 정도로 찬사 위주의 평으로 채워져 있어 약간 망설이기도 했는데,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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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토끼가 도망친다 미도리의 책장 1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시작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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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최근 몇 년간 일본 대중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그 동안 이름으로만 알았던 일본 추리작가들의 작품이 속속 국내에 소개되어 짧은 시간에 많은 작품들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작가의 경우는 너무나 많은 작품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바람에 초기에 느꼈던 신선함이 식상함으로 변하기도 하고, 개중에는 범작도 많이 끼여 있어 작가의 이름으로 만으로 작품을 선택하기에 충분했던 초기에 비해 최근에는 작품 선별에 신중해졌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일본에서의 작품 이력과는 관계없이 국내에 소개된 기준으로 최근 가장 기대되는 작가이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그 이름만으로 미스터리의 필이 팍 꽂히는 작가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좋아하여 "아리스"라는 필명을 지었다는 것은 충분히 추리작가다운 작명법이라 생각되는데, 이 이름을 영어로 표기할 때도 그대로 "Alice"로 쓴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그 엽기성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사진 속에서 미소 짓고 있는 중년 사내와 이웃집에 사는 소녀 "Alice"의 이미지가 도저히 겹쳐지지 않는다.    

그는 "일본의 엘러리 퀸"이라는 별명을 지닌 신본격 추리작가이다. 만만치 않은 이력을 자랑하는 일본 추리문단에서 80년대 이후 "신본격"을 표방한 일군의 작가들과 그들에 의해 창작된 일련의 작품들의 장르적 특성에 대해서는 이제 국내에서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다소 기계적인 트릭과 무리한 반전에 집착한 나머지, 하나의 문학작품으로서 갖추어야 할 다른 부분들이 취약한 측면은 있지만, 이들은 가장 미스터리의 본령에 충실한 작품 세계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10여년전 국내에 잠시 소개되었다가 곧 절판되어 버린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가 오랫동안 국내 미스터리 매니아 사이에서 신화처럼 떠돈 사례에서 알 수 있 듯이 신본격 장르의 작품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국내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아리스 시리즈"가 출간되기를 기다린 독자 중 하나이다. 그의 데뷰작이라는 "월광게임"을 읽은 후 아야츠지 유키토의 데뷰작 "십각관의 살인"과의 유사성과 차별성에 대해 떠올린 이런 저런 생각을 정리하여 서평을 쓸까 하다 결국 그만두었는데, 아무튼 작품의 질적이나 양적 측면에서 신본격의 기수라고 생각되는 이들의 작품이 국내에 더 소개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노리츠키 린타로"의 작품도 보고 싶다. 

이 작품은 이른바 "작가 아리스"시리즈에 해당하는 4편의 단편을 모은 작품집이다. 그는 작가와 동명의 캐릭터인 아리스가 등장하는 일련의 시리즈를 발표하였는데, 에이토대학 추리소설연구회의 부장 "에가미 지로"가 탐정이고 아리스가 그의 귀여운 후배로 등장하는 "학생 시리즈"와 임상범죄학자이자 에이토대학 조교수인 "히무라 히데오"와 그의 절친한 친구인 소설가 아리스가 등장하는 "작가 시리즈"가 그것이다. 작가와 동명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시리즈는 그가 좋아한다는 "엘러리 퀸"의 예에서 볼 수 있다. 다만, 엘러리 퀸이 탐정인 반면에 "아리스"는 탐정이 아니라, 코난 도일의 홈즈 시리즈에 등장하는 "와트슨"같은 캐릭터인 점이 다르다.

첫 번째 작품 "부재의 증명"은 쌍둥이 형제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알리바이 깨기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목격자도 있고 살해 동기도 충분한 유력한 용의자에게 확실한 알리바이가 존재하고 있는 불가사의한 사건이지만, 불가능을 제거하고 나면 가능만 남는 것이 논리적 귀결이다.
두 번째 작품 "지하실의 처형"은 피해자를 살해할 의도가 없는 상태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에 대한 수수께끼이다. "누가 죽였을까?" 보다도 "도대체 왜 죽였을까?"가 궁금한 이야기이다.
세 번째 작품 "비할 바 없이 성스러운 순간"은 엘러리 퀸의 "X의 비극" 속에 나오는 유명한 말을 제목으로 삼았다. X의 비극과 같이 "다잉 메시지"를 중요한 작품 모티브로 삼고 있다.
네 번째 작품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는 어느 극단의 여배우를 괴롭히는 스토커를 극단 동료들이 힘을 합해 혼내 주는 과정에 스토커가 근처 초등학교 토끼 사육장에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이다.

"히무라"가 처음 등장한 것은 "46번째 밀실"이라는 작품이었고,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는 에이토 대학 사회학부에서 대학원으로 진학한 학생이었으나 작품에 거듭 등장하면서 나이를 먹어 현재는 사회학과 조교수로 승급한 상태라고 한다. 그는 경찰의 요청으로 여러 난해한 사건들을 해결하지만 앞에 나서서 주목을 받는 일은 극도로 꺼리는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 작품집에서는 이 같은 히무라의 독특한 캐릭터를 잘 느낄 수는 없었다. 좀 더 많은 작품들이 국내에 소개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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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괴 랩소디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소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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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눈을 흩뿌려 놓은 듯 벗꽃이 활짝 핀 4월 어느 토요일 아침, 인적이 드문 어느 주택가 언던 위에서 한 남자가 스스로 죽을 궁리를 하며 차 안에 앉아 있다. 그의 이름은 "다테 히데요시"로 서른여덟살이나 먹도록 아직 집도 절도 없는 혼자 신세이다. 그나마 전과자인 자신을 받아 주었던 고마운 존재인 회사 사장마저 홧김에 폭행하고 회사차를 끌고 그대로 도망쳐 버린 참이다. 수중에 남은 돈은 236엔뿐이고, 대부업체에서 빌어 쓴 도박 빚 독촉에도 시달리고 있다. 어린 시절 술주정뱅이에 걸핏하면 손찌검을 해대는 의붓아버지를 구탁 하고 집을 뛰쳐나온 뒤부터 도시 밑바닥에서 말 그대로 빡빡 기어 온 그는 38년이나 살아 왔는데 고작 236엔 밖에 남지 않은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 보며 자살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자살을 결심하고 어떤 방법으로 죽을까 이리저리 궁리하고 있는 첫 장면부터가 심각함과는 거리가 멀고 경쾌하고 유머러스하게 진행된다. 이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어떠할 것인지는 소설의 도입부분만 보아도 확실히 감을 잡을 수 있다.

아무래도 아직 죽기는 싫은 그의 앞에 여섯 살짜리 철부지 소년이 나타난다. 한 눈에 보아도 부잣집 아이티가 나는 소년을 유괴하여 돈을 뜯어내자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번뜩하여, 그는 죽기를 단념하고 이것이 자기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며 인생을 건 도박을 결심한다. 그런데, "덴스케"라는 이름의 소년은 맹랑하게도 스스로 가출을 했다고 털어 놓는다. 다음주에 입학하는 사립초등학교 대신 동네 친구들이랑 같은 학교에 가고 싶고, 학원이랑 가라테 도장에 가는 대신 친구들이랑 더 놀고 싶은데, 아빠는 자신이 하는 말은 하나도 안 들어 주기 때문에 집을 나왔다는 것이다. 히데요시는 이 철부지를 속여 안심하게 만들고는 곧 덴스케의 집에 협박전화를 한다. 그리고, 교도소에서 주워들은 유괴수법을 떠 올리며 자기 딴에는 치밀하게 유괴 협박을 시작한다. 그런데, 평범한 부잣집 아들인 줄 알았던 덴스케가 유명한 야쿠자 두목의 아들이었다.

인생의 막장에 몰렸지만 여전히 덜 떨어진 듯한 유괴범과 집을 떠난 모험에 마냥 즐겁기만 한 철부지 소년은 서로를 인연의 끈으로 묶은 채 3일간의 한 바탕 좌충우돌 대소동을 벌인다. 하지만, 이 둘을 둘러싼 세계는 결코 순진하거나 어수룩한 세계가 아니다. 감히 두목의 아들을 유괴한 겁 모르는 애송이를 단번에 박살내기 위해 조직원들이 총출동하여 히데요시를 추적하고 게다가 실제로 덴스케의 납치를 계획하고 있었던 홍콩 마피아까지 사건의 냄새를 맡고 달려든다. 뒤 늦게 덴스케의 정체를 알게 된 히데요시는 유괴를 그만두고 덴스케를 풀어 주고 싶지만 이 것도 쉽지가 않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의 처지에 몰린 것이다.

첫 자살 장면에서 충분히 느꼈듯이 유괴이후 돈을 받아 내기 위한 과정이나 야쿠자 조직의 추적, 중국 마피아의 개입 등 하나의 작은 소동이 얽히고 얽혀 큰 사건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약간의 비약은 있었지만 큰 무리없이 자연스럽게 진행되기 때문에 시종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소설에 등장하는 비록 변변치 못하지만 인간적인 여러 인물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차갑지 않은 시선과 가족애에 대한 믿음도 나쁘지 않았다. 히데요시에게 있어 덴스케와 함께 한 3일간의 시간은 처음에는 현재의 자포자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도박이었지만, 결국은 그의 보잘 것 없고 갈 때까지 가 버린 막장 인생을 되 돌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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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옷을 입은 여인
윌리엄 월키 콜린스 지음, 박노출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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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추리소설의 비조 "에드가 앨런 포우"가 1841년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을 발표한 이후 19세기 중반을 지나오면서 추리 장르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하다가, "코난 도일"이 1887년에 명탐정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장편 "진홍색의 연구"를 발표하고, 일련의 단편 시리즈를 발표하자 마침내 본격적인 추리 장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물론, "포우"이후 "도일"이전에도 많은 작가들이 추리 장르의 작품들이 발표하였으나, 국내에는 "윌리엄 윌키 콜린스"의 장편 "월장석"과 "르콕탐정"이 등장하는 "에밀 가보리오"의 작품 정도만 소개되는데 그쳤었다.

그러던 차에 "윌리엄 윌키 콜린스"가 1860년, 그의 나이 36세 때 발표한 그의 첫 번째 장편 추리소설인 "흰 옷을 입은 여인"이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보석을 둘러 싼 음모와 복수를 그린 "월장석"과 함께 영국 최초의 추리소설로 꼽힌다. 후에 시인 T.S 앨리어트는 이 작품을 가리켜 "영국 최초의 가장 위대한 추리소설"이라고 평가하였고 작가 "찰스 디킨스"와 "코난 도일" 역시 이 작품을 극찬한 바 있는 추리소설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유명한 작품이다.

가난한 그림교사인 "하트라이트"는 자신이 수채화를 가르치는 "로라"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녀에게 는 이미 약혼자가 있었다. 결국, 둘은 각각 결혼과 해외의 폐허도시 발굴 원정대에 참여하는 것으로 가슴 아픈 이별을 하게된다. 이후, 해외 원정대에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돌아온 하트라이트는 로라가 죽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고, 옛 사랑의 무덤을 찾는다. 그런데, 그 곳에서 살아 있는 로라와 만나게 되고, 그녀의 결혼에 얽힌 놀랍고도 잔인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어느 밤 그가 우연히 만났던 흰 옷을 입은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들의 복수가 시작된다.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사실, 재미로만 따진다면 "고전"으로 높이 평가받는 작품이라 하더라도 최근 발표된 화제작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예스럽고 지루한 문체와 묘사는 책읽기의 인내를 요하는 경우가 많고, 긴박하게 전개되는 속도감이 주는 재미도 덜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량도 만만치 않은 이 소설을 읽은 이유는 "고전 걸작"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추리소설을 읽다 보니, 이 장르에 대한 애정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알게 모르게 추리 장르에 대한 이런 저런 지식도 늘게 되어, 지식으로는 알지만 작품으로는 접해 보지 못한 "고전"이나 거장들의 미소개작에 대한 환상 비슷한 감정이 자연스럽게 생기기 마련이다. 오랫동안 읽어보기를 소망해 온 그런 작품들을 실제 기회가 되어 읽게 되면 때로는 실망감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마음 속에 담아 둔 작품 목록들이 실제로 출간되면 반드시 읽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도 바로 그런 작품이다. 읽고 난 후 개인적인 느낌은 작품 발표 시대를 생각하면 놀라운 작품이라고 아니 할 수 없고, 만족스러운 책읽기였다.

미로처럼 얽혀 있지만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 보면 퍼즐처럼 맞추어지는 기막힌 구성의 묘미, 상상할 수 없는 기발한 트릭이나 현란한 반전이 주는 짜릿함 등 추리 장르가 독자에게 선사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는 후대의 추리 걸작들은 바로 이러한 "고전"들이 있었기 때문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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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그림자와 함께 시속 3Km
최갑수 지음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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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인이다. 첫 번째 시집 서문에서 "나는 부랑자이거나 방랑자이어야 했다"라고 내밀한 심경을 고백하였던 그는 몇 년 후 세상 곳곳을 떠도는 방랑자가 되었다. 무엇이 이국의 낯선 풍경 속으로 시인을 몰아 내었을까? 책의 후기에서 시인은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세상과 불화했다. 밥에 대해서, 밥을 먹어야 하는 치욕과 밥을 벌어야 하는 숭고함 사이에서 안절부절했다. 그런 나를 위로하고 싶었다. 끊임없이 뒤로 밀리는 스스로 인생을 동경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여행은 그러기 위해 내가 택한 수단이었다. 지평선 너머로 길게 꼬리를 끌며 사라지는 밤의 열차를 떠올리며 나는 잠시나마 평온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방랑자의 삶을 자처한 그가 머무르고 잠시 스쳐 지나간 이방의 풍경에 대한 기록이다. 영국,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터키, 베트남, 태국, 일본, 중국, 말레이시아, 라오스 등 10개 나라의 풍경과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인의 언어로 짤막하게 기록하고 직접 찍은 사진을 더했다.

이 책은 가슴으로 읽히는 책이다. 여정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시인이 서있는 풍경이 어느 곳이지, 어디로 가는 중인지, 무엇을 위해 서있는지 알 수가 없다. 가령, 이국의 이름 모를 길을 걷다 불현듯 나타난 어느 모퉁이를 돌면서 시인이 기록한 글을 읽으며 독자들은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를 더듬는다.   

"모퉁이를 좋아한다. 마음에 드는 모퉁이를 만나면 괜히 어슬렁거린다. 모퉁이를 돌면 내가 간절히 사랑 했던, 잊고 있었던, 찾고 싶었던, 만지고 싶었던 당신과 부딪힐 것 같다. 모퉁이, 당신과 나의 삶이 기 적처럼 겹치는 곳"

이처럼 이 책은 길 위에서, 기차 안에서, 바람 아래에서, 모텔 베란다에서, 늦은 밤의 어두운 카페에서, 눈 내린 자작나무 숲에서, 수도원의 종소리 아래에서 끊임없이 메모한 방랑자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기록은 "산문"이기 보다는 시이다.  

"죽은 자들이 가득한 이 조그만 도시에서 밤 하늘을 봅니다. 맥주를 마십니다. 케코바에서 적은 문장은 이것입니다. 모든 별들이 내게로 향하고 있음"

우리는 떠남을 두려워 하면서도 떠남을 생각한다. 떠도는 삶에 대한 동경이 아직도 DVA 속에 흔적처럼 남겨져 있다. 혼자 떠나는 여행길에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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