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그림자와 함께 시속 3Km
최갑수 지음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그는 시인이다. 첫 번째 시집 서문에서 "나는 부랑자이거나 방랑자이어야 했다"라고 내밀한 심경을 고백하였던 그는 몇 년 후 세상 곳곳을 떠도는 방랑자가 되었다. 무엇이 이국의 낯선 풍경 속으로 시인을 몰아 내었을까? 책의 후기에서 시인은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세상과 불화했다. 밥에 대해서, 밥을 먹어야 하는 치욕과 밥을 벌어야 하는 숭고함 사이에서 안절부절했다. 그런 나를 위로하고 싶었다. 끊임없이 뒤로 밀리는 스스로 인생을 동경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여행은 그러기 위해 내가 택한 수단이었다. 지평선 너머로 길게 꼬리를 끌며 사라지는 밤의 열차를 떠올리며 나는 잠시나마 평온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방랑자의 삶을 자처한 그가 머무르고 잠시 스쳐 지나간 이방의 풍경에 대한 기록이다. 영국,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터키, 베트남, 태국, 일본, 중국, 말레이시아, 라오스 등 10개 나라의 풍경과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인의 언어로 짤막하게 기록하고 직접 찍은 사진을 더했다.

이 책은 가슴으로 읽히는 책이다. 여정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시인이 서있는 풍경이 어느 곳이지, 어디로 가는 중인지, 무엇을 위해 서있는지 알 수가 없다. 가령, 이국의 이름 모를 길을 걷다 불현듯 나타난 어느 모퉁이를 돌면서 시인이 기록한 글을 읽으며 독자들은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를 더듬는다.   

"모퉁이를 좋아한다. 마음에 드는 모퉁이를 만나면 괜히 어슬렁거린다. 모퉁이를 돌면 내가 간절히 사랑 했던, 잊고 있었던, 찾고 싶었던, 만지고 싶었던 당신과 부딪힐 것 같다. 모퉁이, 당신과 나의 삶이 기 적처럼 겹치는 곳"

이처럼 이 책은 길 위에서, 기차 안에서, 바람 아래에서, 모텔 베란다에서, 늦은 밤의 어두운 카페에서, 눈 내린 자작나무 숲에서, 수도원의 종소리 아래에서 끊임없이 메모한 방랑자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기록은 "산문"이기 보다는 시이다.  

"죽은 자들이 가득한 이 조그만 도시에서 밤 하늘을 봅니다. 맥주를 마십니다. 케코바에서 적은 문장은 이것입니다. 모든 별들이 내게로 향하고 있음"

우리는 떠남을 두려워 하면서도 떠남을 생각한다. 떠도는 삶에 대한 동경이 아직도 DVA 속에 흔적처럼 남겨져 있다. 혼자 떠나는 여행길에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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