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 랩소디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소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가랑눈을 흩뿌려 놓은 듯 벗꽃이 활짝 핀 4월 어느 토요일 아침, 인적이 드문 어느 주택가 언던 위에서 한 남자가 스스로 죽을 궁리를 하며 차 안에 앉아 있다. 그의 이름은 "다테 히데요시"로 서른여덟살이나 먹도록 아직 집도 절도 없는 혼자 신세이다. 그나마 전과자인 자신을 받아 주었던 고마운 존재인 회사 사장마저 홧김에 폭행하고 회사차를 끌고 그대로 도망쳐 버린 참이다. 수중에 남은 돈은 236엔뿐이고, 대부업체에서 빌어 쓴 도박 빚 독촉에도 시달리고 있다. 어린 시절 술주정뱅이에 걸핏하면 손찌검을 해대는 의붓아버지를 구탁 하고 집을 뛰쳐나온 뒤부터 도시 밑바닥에서 말 그대로 빡빡 기어 온 그는 38년이나 살아 왔는데 고작 236엔 밖에 남지 않은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 보며 자살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자살을 결심하고 어떤 방법으로 죽을까 이리저리 궁리하고 있는 첫 장면부터가 심각함과는 거리가 멀고 경쾌하고 유머러스하게 진행된다. 이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어떠할 것인지는 소설의 도입부분만 보아도 확실히 감을 잡을 수 있다.

아무래도 아직 죽기는 싫은 그의 앞에 여섯 살짜리 철부지 소년이 나타난다. 한 눈에 보아도 부잣집 아이티가 나는 소년을 유괴하여 돈을 뜯어내자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번뜩하여, 그는 죽기를 단념하고 이것이 자기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며 인생을 건 도박을 결심한다. 그런데, "덴스케"라는 이름의 소년은 맹랑하게도 스스로 가출을 했다고 털어 놓는다. 다음주에 입학하는 사립초등학교 대신 동네 친구들이랑 같은 학교에 가고 싶고, 학원이랑 가라테 도장에 가는 대신 친구들이랑 더 놀고 싶은데, 아빠는 자신이 하는 말은 하나도 안 들어 주기 때문에 집을 나왔다는 것이다. 히데요시는 이 철부지를 속여 안심하게 만들고는 곧 덴스케의 집에 협박전화를 한다. 그리고, 교도소에서 주워들은 유괴수법을 떠 올리며 자기 딴에는 치밀하게 유괴 협박을 시작한다. 그런데, 평범한 부잣집 아들인 줄 알았던 덴스케가 유명한 야쿠자 두목의 아들이었다.

인생의 막장에 몰렸지만 여전히 덜 떨어진 듯한 유괴범과 집을 떠난 모험에 마냥 즐겁기만 한 철부지 소년은 서로를 인연의 끈으로 묶은 채 3일간의 한 바탕 좌충우돌 대소동을 벌인다. 하지만, 이 둘을 둘러싼 세계는 결코 순진하거나 어수룩한 세계가 아니다. 감히 두목의 아들을 유괴한 겁 모르는 애송이를 단번에 박살내기 위해 조직원들이 총출동하여 히데요시를 추적하고 게다가 실제로 덴스케의 납치를 계획하고 있었던 홍콩 마피아까지 사건의 냄새를 맡고 달려든다. 뒤 늦게 덴스케의 정체를 알게 된 히데요시는 유괴를 그만두고 덴스케를 풀어 주고 싶지만 이 것도 쉽지가 않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의 처지에 몰린 것이다.

첫 자살 장면에서 충분히 느꼈듯이 유괴이후 돈을 받아 내기 위한 과정이나 야쿠자 조직의 추적, 중국 마피아의 개입 등 하나의 작은 소동이 얽히고 얽혀 큰 사건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약간의 비약은 있었지만 큰 무리없이 자연스럽게 진행되기 때문에 시종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소설에 등장하는 비록 변변치 못하지만 인간적인 여러 인물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차갑지 않은 시선과 가족애에 대한 믿음도 나쁘지 않았다. 히데요시에게 있어 덴스케와 함께 한 3일간의 시간은 처음에는 현재의 자포자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도박이었지만, 결국은 그의 보잘 것 없고 갈 때까지 가 버린 막장 인생을 되 돌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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