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토끼가 도망친다 미도리의 책장 1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시작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최근 몇 년간 일본 대중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그 동안 이름으로만 알았던 일본 추리작가들의 작품이 속속 국내에 소개되어 짧은 시간에 많은 작품들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작가의 경우는 너무나 많은 작품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바람에 초기에 느꼈던 신선함이 식상함으로 변하기도 하고, 개중에는 범작도 많이 끼여 있어 작가의 이름으로 만으로 작품을 선택하기에 충분했던 초기에 비해 최근에는 작품 선별에 신중해졌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일본에서의 작품 이력과는 관계없이 국내에 소개된 기준으로 최근 가장 기대되는 작가이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그 이름만으로 미스터리의 필이 팍 꽂히는 작가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좋아하여 "아리스"라는 필명을 지었다는 것은 충분히 추리작가다운 작명법이라 생각되는데, 이 이름을 영어로 표기할 때도 그대로 "Alice"로 쓴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그 엽기성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사진 속에서 미소 짓고 있는 중년 사내와 이웃집에 사는 소녀 "Alice"의 이미지가 도저히 겹쳐지지 않는다.    

그는 "일본의 엘러리 퀸"이라는 별명을 지닌 신본격 추리작가이다. 만만치 않은 이력을 자랑하는 일본 추리문단에서 80년대 이후 "신본격"을 표방한 일군의 작가들과 그들에 의해 창작된 일련의 작품들의 장르적 특성에 대해서는 이제 국내에서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다소 기계적인 트릭과 무리한 반전에 집착한 나머지, 하나의 문학작품으로서 갖추어야 할 다른 부분들이 취약한 측면은 있지만, 이들은 가장 미스터리의 본령에 충실한 작품 세계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10여년전 국내에 잠시 소개되었다가 곧 절판되어 버린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가 오랫동안 국내 미스터리 매니아 사이에서 신화처럼 떠돈 사례에서 알 수 있 듯이 신본격 장르의 작품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국내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아리스 시리즈"가 출간되기를 기다린 독자 중 하나이다. 그의 데뷰작이라는 "월광게임"을 읽은 후 아야츠지 유키토의 데뷰작 "십각관의 살인"과의 유사성과 차별성에 대해 떠올린 이런 저런 생각을 정리하여 서평을 쓸까 하다 결국 그만두었는데, 아무튼 작품의 질적이나 양적 측면에서 신본격의 기수라고 생각되는 이들의 작품이 국내에 더 소개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노리츠키 린타로"의 작품도 보고 싶다. 

이 작품은 이른바 "작가 아리스"시리즈에 해당하는 4편의 단편을 모은 작품집이다. 그는 작가와 동명의 캐릭터인 아리스가 등장하는 일련의 시리즈를 발표하였는데, 에이토대학 추리소설연구회의 부장 "에가미 지로"가 탐정이고 아리스가 그의 귀여운 후배로 등장하는 "학생 시리즈"와 임상범죄학자이자 에이토대학 조교수인 "히무라 히데오"와 그의 절친한 친구인 소설가 아리스가 등장하는 "작가 시리즈"가 그것이다. 작가와 동명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시리즈는 그가 좋아한다는 "엘러리 퀸"의 예에서 볼 수 있다. 다만, 엘러리 퀸이 탐정인 반면에 "아리스"는 탐정이 아니라, 코난 도일의 홈즈 시리즈에 등장하는 "와트슨"같은 캐릭터인 점이 다르다.

첫 번째 작품 "부재의 증명"은 쌍둥이 형제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알리바이 깨기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목격자도 있고 살해 동기도 충분한 유력한 용의자에게 확실한 알리바이가 존재하고 있는 불가사의한 사건이지만, 불가능을 제거하고 나면 가능만 남는 것이 논리적 귀결이다.
두 번째 작품 "지하실의 처형"은 피해자를 살해할 의도가 없는 상태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에 대한 수수께끼이다. "누가 죽였을까?" 보다도 "도대체 왜 죽였을까?"가 궁금한 이야기이다.
세 번째 작품 "비할 바 없이 성스러운 순간"은 엘러리 퀸의 "X의 비극" 속에 나오는 유명한 말을 제목으로 삼았다. X의 비극과 같이 "다잉 메시지"를 중요한 작품 모티브로 삼고 있다.
네 번째 작품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는 어느 극단의 여배우를 괴롭히는 스토커를 극단 동료들이 힘을 합해 혼내 주는 과정에 스토커가 근처 초등학교 토끼 사육장에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이다.

"히무라"가 처음 등장한 것은 "46번째 밀실"이라는 작품이었고,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는 에이토 대학 사회학부에서 대학원으로 진학한 학생이었으나 작품에 거듭 등장하면서 나이를 먹어 현재는 사회학과 조교수로 승급한 상태라고 한다. 그는 경찰의 요청으로 여러 난해한 사건들을 해결하지만 앞에 나서서 주목을 받는 일은 극도로 꺼리는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 작품집에서는 이 같은 히무라의 독특한 캐릭터를 잘 느낄 수는 없었다. 좀 더 많은 작품들이 국내에 소개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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