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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자, 아얀 히르시 알리
아얀 히르시 알리 지음, 추선영 옮김 / 알마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단자.
이 단어에서 심한 배신감을 느낀다. 이단자를 향한 배신감이 아니라 이단자이게 한 그들에게로 향한 배신감이다. 규범, 인습, 굴레로부터 자신들로부터의 어떠한 반대와 항거도 용납하지 않는 인간들이 만들어 낸, 지독한 형벌이자 낙인이다. 생물의 진화는 살아남기위한 필사의 노력이다.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진화와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단, 저항일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분명 살아남기 위한, 살아남은 사람의 이야기다. 그래서 저항적인 애원이며, 간절하지만 마땅한 요구다. 누군가는 그를 버렸고 이단자라 했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를 받아들이고 이해해야한다. 우리는 어쩌면, 같은 부류인지도 모르겠다. 진흙탕 정치판으로부터, 주말 정기모임으로부터, 신실한 종교인이라는 평판으루부터, 딸같은 며느리란 허울로부터, 이단자이고 싶고, 때론 그렇게 취급당한다. 어떠한 이유로든 우리는 ’이단’의 멍에를 안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소말리아란 나라는 익숙한 듯, 낯설다. 굶주림과 질병이 만연하고 잦은 싸움으로 피폐해진 나라로서는 익숙하고, 그 밖에는 낯설다. 낯설다기보다는 관심이 크게 쏠리지 않은 탓에 정보가 거의 없다. 대개의 이슬람권 나라들에 대한 관심도 박하다. 아얀, 그녀가 말하는 소말리아에서의 삶은, 특히 여자로서의 삶은 혹독하다. 인권을 말하기 이전에 살아남는 것도 버거운, 오직 순종만을 강요받고 생각과 의지, 자유와는 무척이나 먼 나라다. 그렇다고 나는 이러한 문화에 대해, 환경적 결핍에 대해 내려다보는 시선을 보내려는게 아니다.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진실, 정의를 존중한다. 그래서 이 책은, 그녀가 겪었던 소말리아와 문화권에 대한 지탄에 앞서, 한 인간이 선택하고 견뎌야 했던 시간들의 이해와 포용의 시선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념, 신앙을 비롯한, 믿음을 기초로 하는 모든 것들에는 고집스런 강경함이 부정이나 의문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도 그러하거니와 집단에서는 특히나 그렇다. 신념이나 신앙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나 신앙의 절대성에 비춘다면, 신앙 (구체적으로 자신이 믿는 신)을 부인하느니, 죽음을 선택한 많은 순교자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그 믿음에 대한 정당한 부정과 도전, 포기는 더욱 어려운 선택이다. 아얀이 보고 배우며, 혹은 강요받은 이슬람이라고해서 기독교관점에서 포기되거나 무시될만한 것이 아님은 당연하다. 아얀에게 신앙을 거부하는 것과 자신의 나라의 모든 악습이나 여자에게 행해지는 비 인륜적 행태를 거부하고 세상에 드러내는 일이 쉽지 않은 선택임에 분명하다. 죽음과도 같은 용기며, 진정한 신념이다.
"사람들은 <복종>이 영화 치고는 지나치게 공격적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복종>에 담긴 이슬람 비판은
분명 이슬람교도들에게는 견뎌내기 어려울 만큼 큰 고통일 수 있다. 그렇다면
새장에 갇힌 이슬람 여성들의 고통은 얼마나 클지 생각해보라." p.615
성경은 잘 모르지만, 이런 부분을 간혹 들어 기억한다. ’죄 없는 사람이 그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 고대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 죽이는 형벌에 가담한 무리에게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요즘에도 인용되곤 한다. 이슬람의, 소말리아의 여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누가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지랴. 진의가 제대로 짚어진 인용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도저도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안다. 아얀의 호소에 귀 기울이지 않는것이, 그녀를 이단자로 치부하는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