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슈 하이라이트 Vol.06 태양계와 지구 과학이슈 하이라이트 6
과학동아 편집부 지음 / 동아엠앤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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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태양계와 지구

과학이슈 Highlight Vol.06 -

과학동아 편집부 著 / 동아엠앤비 刊 / 191 page

 






글쓴이 : 과학동아 편집부

펴낸곳 : (주)동아엠앤비

발행일 : 2023년 6월 10일 개정판 1쇄

도서가 : 18,000원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소속된 태양계의 행성들을 외우는 말이지요. 지금은 이중 마지막 명왕성이 2006년 행성의 기준이 수정될 때 왜행성으로 재분류되면서 태양계 행성에서 배제되었습니다만 아직도 태양계의 행성은 수금지화목토천해명, 9개로 알고 있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런데 왜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에서 제외된 건지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문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 이유 잘 모르고 있었구요. 최근 이와 관련된 책을 하나 입수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태양계와 지구>란 책으로 과학이슈 하이라이트 시리즈 중 하나였습니다. 광택지를 사용하였기에 수록된 사진들의 선명도가 매우 좋았답니다.


책을 집필한 이는 외부 필진 등 여러명이기에 필진들을 대표해서 과학동아 편집부라 기재되어 있습니다. 집필진에는 고등학교 선생님과 과학 교과서 집필진과 같은 교사분들과, 대학교 교수와 한국천문학회 전문연구원 등 천문학 전문가들, 작가와 아마추어 로켓전문가처럼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더랍니다. 대표 집필자는 모든 융합형 과학 교과서는 개정 과학 교육과정이 요구하는 내용과 학생들의 평균적인 성취 수준을 고려하여 집필 제작되기에 부족하고 제한적인 자료와 정보들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하면서 그러기에 과학이슈 하이라이트와 같은 책자를 통해 충분한 자료를 바탕으로 교과서를 뒷받침하는게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흐흠.. 그렇게까지 천문학에 관심을 가지는 학생들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책은 <펴내는 글>로 시작하여 <1. 태양계의 형성>, <2. 태양계 식구들>, <3. 위성과 소행성>, <4. 태양계 최후의 날>, <5. 제2의 태양계는 있을까>로 본문을 구성하고 있고 마지막으로 <해설>과 <필진 및 사진 출처>로 마무리 됩니다. 책 마지막 장에 나오는 사진 출처를 보니까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초상권과 저작권 문제가 생각나더군요. 요즘에는 지역 축제에 가면 초상권과 저작권에 대한 안내문이 축제현장에 꼭 걸려 있더라구요.








1부의 내용은 태양계와 태양계에 포함된 행성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고 2부는 태양계를 구성하는 8개의 행성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들이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그 오래 전 일어난 일을 지금에 와서 어떻게 정확히 알 수 있겠냐만은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태양과 행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왜 행성들은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지 등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답니다. 물론 세월이 가면 갈수록 새로운 이론과 법칙들이 나오면서 과거의 설명들이 뒤집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요. 대표적인 것이 지동설이지요. 태양계의 형성 내용 중 흥미로웠던건 태양과 행성이 동시에 생겼을까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관측 자료에 따르면 태양과 행성들의 나이는 대략 46억년 정도로 같다고 하는데요. 이로 인해 태양이 먼저 형성되고 그 이후 행성들이 만들어졌다는 비동시 생성론은 힘을 잃었다는군요.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어떠한 이론들로도 태양계의 기원을 설명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2부의 첫내용은 특이하게도 태양계 탐사선이었습니다. 여기엔 중국과 일본, 인도의 탐사선도 보여주고 있었는데요. 우리나라도 2023년 탐사선을 보낼 계획이라는데 아직 소식이 없네요.. 미국 NASA에서 1977년 발사한 보이저1호는 2013년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 공간에 진입해 인류 최초로 태양계를 벗어난 탐사선이 되었다 합니다. NASA의 달 탐사(아폴로 프로젝트)에 대해선 음모론이 지금까지도 횡행하고 있는데 보이저1호에 대해선 별다른 음모론이 없는거 같습니다.^^ 개인적으론 보이저호 하면 지구의 각종 정보와 메시지를 담았다는 LP판, 골든레코드가 생각나는데요. 외계생명체가 과연 이 레코드를 통해 지구인들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알 수 있을가 싶습니다. 태양계 탐사선 다음으로 이어지는 내용은 태양과 8개의 행성들 이야기입니다. 여러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참 많이 담겨져 있었고 8개 행성의 이야기들을 보여주다 보니 분량도 가장 많았습니다.


3부는 태양계 행성들에 부속된 위성과 여러 종류의 소행성과 혜성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여기에서 명왕성이 왜 퇴출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이 자세하게 나와 있었어요. 명왕성은 2006년 체코 프라하에서 개최된 국제천문연맹 총회장에서 압도적 다수의 지지를 받아 통과된 태양계 행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로 인해 행성의 자격을 박탈당하게 된 것이랍니다. 이외인 것은 그 이전까지는 행성에 대한 공식적인 정의를 내린 적이 없었다는군요. 17세기경 망원경이 발명된 이후 태양 주위를 도는 크고 둥근 천체는 모두 행성으로 간주했었답니다. 행성의 지위를 부여받으려면 3가지 특징이 있어야 한답니다. '1)태양 주위를 돌아야 한다. 2)충분히 큰 질량을 가져 자체 중력 때문에 둥글어야 한다. 3)자신의 궤도 영역에서 소위 '짱'으로 주변의 다른 천제들을 물리친 천체여야 한다.'가 그것으로 이를 만족하는 것은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만이고, 명왕성을 포함한 태양계 외곽의 카이퍼벨트에 있는 명왕성 보다 큰 얼음 천체들은 왜행성으로 분류되었다네요. 이 왜행성(Dwarf Planet)들은 모두 행성의 3가지 조건 모두 충족하지 못하는 것들이랍니다. 흐흠.. 시간이 지나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와 또 다른 행성의 정의가 채택된다면 태양계 행성의 수가 증감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4부에서는 태양계의 최후의 날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아주 머나먼 미래의 얘기이긴 하지만 솔직히 유쾌하진 않은 내용이었습니다. 더 이상 미래는 없다란 마지막이란게 원래 그런 느낌을 주니까요. 아무튼, 책에 따름 20억년이 지나면 더 뜨거워진 태양으로 인해 지구에서는 생명체가 살 수 없을거라 하고, 50억년이 지나면 태양은 중심에서 수소를 다 태우고 지금보다 훨씬 커진 적생거성이 되어 수성과 금성은 흡수할 것이고 지구도 그럴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고 하네요. 이와는 다르게 지구가 지금의 공전궤도 밖이나 심지어는 태양계 밖으로까지 밀려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고 합니다. 이래저래 미래의 지구는 더 뜨거워지고 커진 태양으로 인해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환경이 될 것이라는 것은 모두 인정한다고 하는군요..


5부에서는 제2의 태양계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5부 표지에는 스티븐 호킹박사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인류가 오래오래 이어가기 위해서는 지구와 유사한 다른 별로 떠나서 개척해야 한다고 했답니다. SF영화에서 많이 나오는 내용들과 일맥상통하는 말입니다만 최소한 지금의 기술 수준을 훨씬 뛰어 넘어 성간 여행이 가능한 시대가 되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아무튼 태양계의 행성과 위성, 왜행성 등에는 생명체가 발견되지 않은게 지금까지의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그 광활한 우주에 태양계와 같은 것이 헤아리기 어려울만큼 많은데 그중 지구와 같은 행성이 또 있진 않을까? 하는게 인류의 궁금증이기도 하죠. 전파신호의 미세한 변화를 통해 외계행성을 발견할 수 있는데 2010년까지 약 5백여개의 외계행성이 발견되었답니다. 이러한 외계행성들 중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는지 판단하는 기준은 행성의 온도인데 이는 별의 온도와 별로부터 떨어진 거리에 따라 결정된답니다. 책에는 이러한 여러가지 다양한 측정법들을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네요.


책은 이처럼 태양계와 지구를 포함한 행성들, 위성과 소행성들에 대한 다양하고 자세한 이야기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설 내용과 연관된 컬러풀한 사진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어서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부분이 참 많았구요. 하지만 사진에 부속된 글자 크기가 좀 작은 편이라 사진과 함께 글 읽는데 눈이 좀 피곤하더란게 아쉬운 부분이었어요. 그렇지만 본문부의 해설과 이야기들은 그동안 잘 몰랐던 태양계와 행성들에 대한 내용들을 자세히 알게 해주었답니다. 과연 집필진이 언급한 과학교과서를 뒷받침 할만한 책이라 여겨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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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자기 여행 : 규슈의 8대 조선 가마 - 개정증보판 일본 도자기 여행
조용준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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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일본 도자기 여행(규슈의 8대 조선 가마)


일본 도자기 속에 숨 쉬는 조선 사기장의 예술혼 -


조용준 著 / 퍼시픽도도 刊 / 599 page



 






지은이 : 조용준


발행처 : (주)퍼시픽 도도


발행일 : 2023년 4월 28일 개정증보 1쇄


도서가 : 22,000원






도자기는 도기(陶器)와 자기(磁器)를 합쳐 총칭하는 말로 도토나 점토에 장석, 석영을 섞어 성형하고 건조한 후 열을 가하여 경화시킨 제품을 말합니다. 이러한 도자기는 토기가 발전하여 도기와 자기로 발전되었다는데 이중 자기를 만들 수 있는 단계에까지 도달한 나라는 별로 없었으며 일찌기 양질의 자기를 만들어내었던 나라는 한국과 중국 정도라 하지요. 일본은 정유재란 당시 조선에서 수많은 도공과 사기장들을 납치해 간 이후에 제대로 된 자기생산이 시작되었다고 하구요.


얼마전 <일본 도자기 여행 ; 규슈의 8대 조선 가마>란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책은 일본 자기의 원류라 할 아리타를 시작으로 일본의 8대 가마지역을 탐방하면서 일본 자기의 역사와 문화, 사회적 측면을 고루 살펴 보여주고 있는데 그 내용들이 무척 흥미로우면서도 울분이 치솟게 하더군요. 한반도에 침략한 일제에 의해 끌려 간 수많은 우리 백성들이 귀환하지 못하고 일본에 정착해 살면서 극우 일본인들에게 혐한의 대상으로 핍박받고 살고 있다는 작금의 현실을 생각나게 하니까 말입니다.


언젠가 일본 자기 도공으로 심수관이란 분이 조명되던 것을 공중파 방송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정유재란 때 끌려간 도공 심당길이란 분의 14대손으로 4백여년 간 사쓰마도기 가업을 계승해오고 있는 분이죠. 책에서도 이 분에 대해 언급되고 있습니다만 놀랍게도 일본 자기의 시조는 심당길이 아니라 이삼평이란 분이라고 합니다. 이후 후손들이 보여주는 이삼평과 심당길의 도예가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구요.


저자는 일간지 기자와 시사잡지 편집장을 지낸 분입니다. 이채로운건 자기 책을 쓰기 위해 45세 되기 전 기자를 그만두었다는 점인데 이후로 유럽과 일본의 도자기 문화사 전반을 조사하여 정리한 책 6권을 출간하였다네요. 이번에 읽은 이 책은 규슈의 7대 조선가마를 개정증보하여 출간한 것으로 일본 왕실에서 사용한 아리타 자기를 국내 최초로 공개한 책이라 합니다. 이 외에도 한일교류사와 유럽의 독특한 문화사를 정리한 책들도 다수 집필 출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열정적인 분이라 여겨지네요.


책은 <프롤로그>로 시작되어 일본의 조선 8대 가마를 1~8장에 걸쳐 자세히 소개한 뒤 <에필로그>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차가 빨간색으로 되어 있어 글씨 알아보기가 참 어렵더군요. 이처럼 가독성이 떨어지는 부분은 향후 개정판 출간시 반영해야 될 것으로 보입니다. 본문은 1~8장은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도공들이 어떻게 자리잡고 어떻게 자기를 생산하게 되었으며 도예가로 성장하게 되었는지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타까운건 정유재란 이후 조선의 도예가들 대부분이 일본으로 끌려가 조선의 자기는 거의 명맥이 끊길 정도가 되었다는군요..









책의 앞뒤 표지 뒷면에는 일본여정 지도가 수록되어 있는데요. 조선 8대 가마가 있는 일본의 도시들인 히라도,사세보, 가라쓰, 후쿠오카, 구마모토, 아리타, 이마리, 가고시마를 지도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은 다도(茶道)가 거의 하나의 예식 수준으로까지 발달되었다지요. 근엄한 분위기 속에서 차를 음미하는 일본의 다도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할 정도입니다. 일본에 차가 전래된 시기는 나라시대이지만 차가 본격적으로 음용하게 된 것은 무로마치 시대 선종 승려들이 정신수양과 약용으로 마시기 시작한 것이라 합니다. 책에 따르면 지금의 일본의 다도는 센노 리큐라는 자가 다구 디자인과 다실 구조를 새로이 꾸미고 화합과 공경, 맑음과 고요의 선정 상태를 이루는 마음을 강조하는 등 여러 측면에서 차 문화에 혁신을 일으키면서 본격화되었다 합니다. 그러한 리큐는 조선의 찻사발을 최고의 예술품으로 평가하였다고 전해진다는데 아쉬운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분노를 사서 그의 명령으로 자결하게 되었다네요. 우리나라 제기용 사발이 일본의 국보로 지정될 정도라니 일본인들이 다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짐작이 갑니다. 사실 일본이 국보로 지정한 이도다완은 조선에서 만들어진 그릇으로 민가에서 사용하던 제기였는데 일본으로 넘어가서는 최고위 권력층의 다구로 사용되었 매우 귀한 귀중품으로 여겨졌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왜인들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조선을 침략할 당시 조선의 사기장들을 닥치는대로 끌고갔었다죠.


일본에서 자기, 백자가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정유재란(1598) 때 끌려간 이삼평이란 분이 1616년 사라카와에서 덴구타니 가마를 열고 백자를 구워낸 것이 최초라 합니다. 이삼평은 일본에 끌려온 뒤 가라쓰 부근에서 도기를 제작하다가 다쿠로 옮겨가게 되었고 조선의 자기처럼 만들 수 있는 흙을 찾아 찾아다니다가 아리타의 이즈미산에서 백자광을 발견하여 그 변두리에 가마를 열고 자기를 굽기 시작하였다 합니다. 이 덴구타니 가마는 도기가 아닌 자기를 전용으로 굽는 가마로 일본 최초의 자기 가마이기에 그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네요. 이렇게 이삼평이 가마를 연 뒤 아리타에는 수많은 사기장들이 집결하여 번영을 거듭했답니다. 어찌나 잘나갔는지 1637년에는 이 지역에서 싸구려 도기를 만드는 일본인 도공들을 쫓아내는 추방령이 발동되기까지 했다는군요. 그러나 이삼평 집안은 6대에 이르러 폐업하고 이후에는 농사만 지었답니다. 철도기관사로 40년 일했던 13대가 1975년 정년퇴직후 퇴직금을 털어 가마터를 세우고 가업을 다시 일으키고자 도예를 배우고 가업 계승의 기틀을 다져갔지만 80년대 일본경기의 침체로 겨우 명맥만 이어가고 현재에 이르렀다 합니다. 책에 나오는 이삼평 후손들 인터뷰 내용을 보면 현재 14대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데 현재의 후손들은 일본속담 '살다 보면 미야코(서울)'처럼 자신들은 조선인의 후예라기 보단 일본에 정착한 일본인이라 생각하는 듯 보이네요.


이삼평의 백자석 도광 발견은 사가현 영주에게 끌려간 김해 출신 조선인 도공 김태도와 그의 부인 백파선을 아리타로 불러들이게 되었답니다. 김태도와 백파선은 사가현 내 우치다산에서 커다란 가마를 운영했는데 이것이 우치다(구로무타) 가마의 원조가 되었다네요. 하지만 흙이 나빠 청화백자를 제작하는데 실패하게 되었고 김태도 사망후 백파선은 영주의 허가를 받아 아리타 히에코바로 사기장 일족 906명과 함께 옮겨 도자기 생산을 계속하였다 합니다. 13대 후손에 이르러 메이지유신으로 어용가마가 폐요되어 가마의 불을 껐다고 하구요. 이들을 모티브로 일본에서는 소설과 뮤지컬 등 다양한 문화작품들이 탄생하게 되었다네요. 음..


일본 자기가 유럽에 수출하게 된 것은 1620년대 중반 아리타에서 조선 사기장으로부터 백자 제조 기술을 전수받은 사카이다 가문이 1640년대 이마리 상인에게서 은화 10닢을 주고 여러 색채의 유약을 상회로 칠하는 중국의 에쓰케 기술을 배운 뒤 개량하여 생산한 가키에몬의 이로에 도자기가 시초랍니다. 여기서부터 일본의 자기는 조선과는 다른 자신들만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는군요. 유럽에 수출된 가키에몬 도자기는 유럽시장을 완전히 장악, 엄청난 수요가 창출되어 아리타 중심의 히젠 도자기 생산 시스템에 큰 영향을 주었고, 도자기 수출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척하게 됩니다. 이후 존왕양이를 주장하는 조슈번과 사쓰마번의 반막부세력들이 축적된 부를 근대무기 구입에 사용하여 전력을 강화하고 구데타를 일으키면서 막부와 쇼군은 천황에게 권력을 넘겨주게 되면서 새로운 체제인 메이지 유신이 성공하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일본의 무력 중심 정치쳬계가 시작되었고 이는 주변국가 도발과 침략, 세계대전의 발판이 되었답니다.


책은 일본 도자기에 대하여 6백여페이지에 걸쳐 수많은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의 8대 조선가마에 대해서도 최초 시작된 유래와 이후의 연혁에 이르기까지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죠. 덤으로 조선의 사기장들로부터 시작되어 발전되어진 일본 자기 사진들도 마음껏 감상할 수 있구요. 다만 일본 지역명이 서로 엇갈리는 등 헷갈리게 표현된게 간간히 나오는데 이해가 쉽질 않아 한번에 죽 읽어가는데 지장이 있었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일본 도자기 여행>을 읽고 나니 불현듯 저자가 예전에 집필했다는 <유럽 도자기 여행>의 내용도 궁금해지더군요. 언젠가 책 접할 기회가 오면 제대로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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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역사 다이제스트 100 New 다이제스트 100 시리즈 2
손주영.송경근 지음 / 가람기획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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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이집트 역사 다이제스트 100

- 7천년 이집트 역사를 100장면으로 -

손주영,송경근 共著 / 가람기획 刊 / 383 page

 






지은이 : 손주영, 송경근

펴낸곳 : 도서출판 가람기획

펴낸날 : 2023년 4월 28일 초판1쇄

도서가 : 20,000원




46억년전 지구가 생성된 이래 지구상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발생하고 소멸해 왔습니다. 그중 인류는 지금으로부터 약 4백만년 전에 비로소 출현하였다고 하지요. 물론 현재까지 발굴된 고고학적 성과와 연구 결과에 따라 추정된 것이기에 향후 또 어떻게 바뀌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만 아무튼, 인류 역사는 그렇게 이어져 왔다고 하죠.

인류 역사에 있어서 고대문명이라 하면 보통 4대문명을 말합니다. 최초로 국가가 등장한 곳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라고 합니다만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고대문명은 이집트문명이지요. 지금까지 7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속에서 나라(이집트)가 존속하고 있는데다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등 수많은 유물과 유적들이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 유물과 유적들을 직접 보고 접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게 아닌가 싶네요.


책은 2명의 저자가 같이 집필하였답니다. 두분 다 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이집트의 대학교에서 역사와 문명과를 졸업하고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한 공통점도 가지고 있는데요. 네이버 인물검색을 해보니 손주영 前교수는 외국어대 아랍어과 학과장 당시에 편입생이었던 故김선일을 가르친 교수라는 뉴스가 나오더군요.. 두분 다 중동지역에 대한 연구를 오랫동안 해오신 이슬람과 아랍 전문가란 걸 집필하신 저서와 논문으로도 확인할 수가 있었어요.


책은 <머리말>에서 이집트의 역사와 환경, 문화, 그리고 책 구성에 대한 개괄적 설명을 하면서 시작합니다. 이책의 핵심은 본문은 총 4장으로 <제1장. 고대 이집트 시대BC3000년~BC341년)>, <제2장. 그리스·로마 시대(BC332년~AD641년)>, <제3장. 이슬람 시대(641년~1798년)>, <제4장. 현대 이집트(1798년~현재)>까지 총 100개의 소주제를 가지고 이루어져 있고, 마지막으로 <이집트역사 연표>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책 마지막에 수록된 한눈에 살펴 볼 수 있고 알기 쉽게 구성된 '이집트역사 연표'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책 읽으면서 많이 찾아 보게 되더랍니다. 연표를 보닌 이집트 역사는 고대 왕조시대와 헬레니즘과 로마시대에 대해서는 많이 듣고 본 것 같은데 그 이후는 깜깜하더군요. 이슬람 시대를 거쳐 지금의 현대 이집트 시대를 맞이하였다는 책의 내용이 많이 생소했었답니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파티마 왕조나 아이유브 왕조, 맘루크 왕조가 있는데 처음엔 인도나 중동지역의 왕조인 줄 알았었다죠.ㅎㅎ







책에는 이집트 역사에 있어서 왕조에 따른 시대구분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내용이 없어서 알아보았습니다. 7천년이란 긴 역사만큼 시대 구분은 물론 왕조 또한 정말 많더군요.


이집트 왕조 시대 구분

1. 선왕조 시대(BC 3300 ~ BC 3150) - 상이집트/하이집트

2. 초기왕조 시대(BC 3150 ~ BC 2690) - 제1왕조 ~ 제2왕조

3. 고왕국 시대(BC 2686 ~ BC 2181) - 제3왕조 ~ 제6왕조

4. 제1중간기(BC 2181 ~ BC 2055) - 제7왕조 ~ 제11왕조

5. 중왕국 시대(BC 2055 ~ BC 1650) - 제11왕조 ~ 제14왕조

6. 제2중간기(BC 1650 ~ BC 1570) - 제15왕조 ~ 제17왕조

7. 신왕국 시대(BC 1550 ~ BC 1077) - 제18왕조 ~ 제20왕조

8. 제3중간기(BC 1077 ~ BC 664) - 제21왕조 ~ 제25왕조

9. 후기왕조 시대(BC 664 ~ BC 332) - 제26왕조 ~ 제31왕조

10. 그리스왕조 시대(BC 332 ~ BC 30) - 마케도니아왕조/프톨레마이오스왕조

11. 로마제국 속주 시대(BC 30 ~ AD 395)

12. 비잔틴 시대와 콥트 시대(395 ~ 640)

13. 아랍 시대(640 ~ 1517)

- 정통 칼리파/우마이야왕조/아바스왕조/파티마왕조/아이유브왕조/맘루크왕조

14. 오스만제국 지배 시대(1517 ~ 1798)

15. 프랑스 나폴레옹 정복 시대(1798 ~ 1801)

16. 근대왕조 시대(1801 ~ 1881) - 무함마드알리왕조/헤디브

17. 영국 보호령 시대(1882 ~ 1952)

18. 이집트 아랍 공화국 시대(1952 ~ )




1장은 고대 이집트 시대인 BC 3천년부터 BC341년까지의 역사적 흐름을 보여주는 장으로 고왕국시대, 중왕국시대, 신왕국시대로 대분하였고 왕조들 사이에서 국가가 쇠약해져 오랜 외부 침략의 시련을 겪게 되는 시기로 제1중간기, 제2중간기를 두었으며 그 시기들을 기준으로 주요 사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집트는 지금으로부터 6천년 전부터 북부 나일강 하류와 삼각주 일대를 일컫는 '하이집트'와 나일강 계곡의 나머지 남부지역을 지칭하는 '상이집트'라는 두 지역으로 나뉘어 발전해왔답니다. 이는 주민의 생업과 정치, 종교, 문화의 정서가 서로 다르 다르기에 그러했다는데 이 두 지역이 강력한 왕조에 의해 하나로 통일되면 번영된 문명시대를 열었었다 하네요.

프랑스 샹폴리옹이 로제타석을 근거로 처음 해독하였다는 이집트 문자가 상형문자란건 누구나 잘 아는 상식이죠. 하지만 고대 이집트 문자에는 한가지만 있는게 아니라 세가지가 있다는 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입니다. 그 세가지 문자는 히에로글리프(神聖文字), 히에라틱(神官文字), 데모틱(民衆文字)이라고 하는데요. 이중 히에로글리프는 수메르 문자와 같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로 선사시대 말기(BC 3천년경)부터 고안되어 쓰여졌답니다.

BC 3150경 최초로 통일된 이집트 왕국을 건설한 왕은 메네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메네스가 호루스의 왕 나르메르와 동일인이라 보는게 다수설이긴 하지만 아직도 많은 학자들이 나르메르 이전에 통일의 대업을 완성단계 직전까지 이끌었던 인물로 여겨지는 스콜피온과 나르메르가 혼합된 전설적인 인물로 간주하고 있다고도 하는군요. 여하튼, 메네스 치세때 행정과 군사, 경제, 종교 등 사회기반체제를 정비하여 제2왕조 말엽에는 완전히 체계가 잡힌 통일 왕국이 되었답니다.


2장은 그리스 · 로마 시대인 BC 332년부터 AD 641년까지 이집트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장으로 알렉산더가 이집트를 정복한 뒤 시작되는 마케도니 왕들의 시대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로마제국 통치시기, 비잔틴 통치시기로 분류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과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이 한판 붙었다는 이소수 전투는 마케도니아가 페르시아를 격파하게 되는 결정적 전투입니다. 이 전투 이후 알렉산더는 페르시아가 지배하고 있던 남쪽에 위치한 이집트까지 정복하여 BC 332년 이집트 파라오에 등극하게 되지요. 이집트를 정복한 알렉산더는 이집트 북부 나일강 서쪽 지류에서 50㎞쯤 떨여져 있는 곳에 알렉산드리아라는 신도시를 건설, 이집트의 새로운 수도로 정하고는 대정복 사업을 위해 다시 이집트를 떠났는데 알렉산더는 정복지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곳곳에 세웠다는군요.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그 유명한 이름이 변함없는 이어져 오고 있는 도시는 이집트에서 카이로 다음 가는 대도시인 알렉산드리아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인더스강 상류까지 쳐들어갔던 알렉산더는 오랜 기간 원정으로 약해진 탓에 바빌론으로 귀환하였지만 얼마 안되어 죽고 맙니다. 그의 사후 이집트는 알렉산더의 최측근 장수이자 가장 신뢰받던 친구였던 프톨레미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원정을 떠나기 전 프톨레미를 이집트 총독으로 임명하여 프톨레미는 BC 323년부터 이집트를 통치해왔다는데 여기서부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시작되었답니다. 프톨레미 12세까지 이어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카이사르가 이집트를 로마의 속주로 만들고자 하면서 위기에 빠집니다. 프롤레미12세의 딸 클레오파트라 7세는 카이사르를 유혹하여 협력을 얻어내 위기를 모면하지만 카이사르가 암살되면서 상황은 다시 악화되지요. 권력자로 급부상한 안토니우스를 새로운 파트너로 선택한 클레오파트라는 BC 31년 로마의 옥타비아누스 해군과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 연합함대간 벌어진 악티움 해전에서 패하면서 희망을 잃게되면서 자살을 선택하고 이집트는 로마제국의 통치시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로마제국의 속주가 된 이집트는 395년 로마제국이 서로마와 동로마로 분할되고 476년 서로마제국이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멸망하자 동로마(비잔틴)제국의 관할에 들어가게 되지요.


제3장은 이슬람 시대인 AD 641년부터 1798년까지 이집트가 아랍 이슬람군에게 정복되었던 시기를 보여주는 장으로 이슬람제국의 속주가 되었던 시기, 독립왕조를 형성한 툴룬 왕조, 이크 쉬드 왕조, 파티마 왕조, 아이유브 왕조, 맘루크국 시대, 오스만제국의 통치시기 일부 시기를 한데 묶어 다루고 있습니다.

7세기경 아랍지역은 무함마드가 창조한 이슬람이 세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제국이 탄생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이슬람제국입니다. 비잔틴제국의 지배를 받던 이집트는 640년부터 이슬람 제국의 침공을 받았는데 641년말 비잔틴제국과 이슬람제국의 종전 합의 조건에 따라 이슬람제국의 치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집트는 이때부터 이슬람화가 시작되었으며 642년에는 푸스타트라는 이집트의 새로운 수도가 건설되었답니다. 이슬람제국은 이집트 정복에 참여했던 대다수의 아랍군인들을 푸스타트에 정착시켜 이집트의 아랍 · 이슬람화를 가속시켰다 하구요.

이슬람제국은 무함마드 시대를 거쳐 칼리파 우스만 시대, 우마이야 조, 아바스 조로 이어집니다. 아바스 조가 쇠약해지던 9세기경부터는 칼리파 가문의 왕족들이 차지하던 이집트 총독직을 튀르크족 군벌세력들이 물려받기 시작하게 되었다는데요. 튀르크족 총독들은 권력을 유지하고 중앙정부에서 자신의 입지를 넓히기 위해 이집트에 가지 않고 대리인을 보내 통치했다고 합니다. 그중 868년 대리인으로 파견된 아흐마드 빈 툴룬이 이집트를 자신의 독립된 영지로 만들어가다가 자신의 아들에게 통치권을 물려주면서 툴룬 조라는 왕조가 형성되었다네요. 아바스 칼리파의 종주권은 인정하고 섬기지만 통치는 툴룬 왕조가 독립적으로 하는 독특한 지배구조가 구축된 것이죠.

수니파가 지배하던 아바스 왕조의 이슬람제국은 909년 시아파 계열의 이스마일파(7대 이맘)에서 이집트와 북부 아프리카를 근거지로 파티마 왕조를 세우면서 이베리아 반도를 통치하던 후우마이야 왕조, 중동지역을 통치하는 아바스 왕조로 삼분됩니다. 이로 인해 이집트는 아바스 왕조의 지배에서 파티마 왕조의 통치시대로 변하게 되구요. 이 파티마 왕조 시기에 현대 이집트 수도인 카이로가 건설되었고 이전의 수도였던 푸스타트는 1160년 십자군의 침입 당시 도시 전체를 파괴하여 폐허가 되었답니다.

파티마 왕조의 칼리파 알 아디드는 1169년 대리자로 쉬르쿠를 재상으로 임명했지만 두달 뒤에 죽자 쉬르쿠의 조카를 재상으로 임명합니다. 그가 바로 십자군전쟁으로 유럽에 널리 알려진 살라흐 알 딘 유스프 빈 알 아이 유브, 일명 살라딘이었죠. 1174년 쿠르드족 출신의 순니 무슬림이었던 살라딘은 주군의 명에 따라 예배를 드릴 때 파티마 조 칼리파의 이름 대신에 아바스 조 칼리파의 이름을 창도하여 이집트가 시아의 지배시대가 끝나고 순니의 통치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렸으며, 명목상의 주군이었던 누르 알 딘이 사망하자마자 독립하여 아이유브 왕조를 창시하였답니다. 살라딘은 예루살렘을 탈환했을 때 십자군들의 잔인한 살육과 약탈행위와는 달리 학살과 파괴를 철저히 금지시켰고 포로들이 몸값을 치루면 풀어주었으며 가난한 자는 몸값조차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기독교도들이 예루살렘의 주권이 그에게 있음을 인정하는 한 기독교도들이 이슬람교도들의 철저히 막았던거와는 달리 기독교도들의 예루살렘 순례를 전혀 막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무슬림은 물론 기독교인들에게도 존경을 받는 이상적인 군주의 전형이자 본받아야 할 인간상이었다는군요. 흐흠..

1250년 아이유브 왕조에 이어 약 250년간 존속한 맘루크 왕조는 말 그대로 맘루크들에 의해 세워진 왕조입니다. 맘루크(Mamluk)는 아랍어로 남자 노예를 뜻하는데 역사적으로는 튀르크인과 체르케스인, 스라브인 출신의 백인 노예를 말한답니다. 그들은 다수가 군인 용병으로 충당되었는데 무슬림 세계 여러 곳에서 이러한 맘루크 출신의 군인들이 군주가 되었다는군요. 하지만 이런 특수한 조건이기에 군주의 권한이 약하다보니 군주 지배기간이 평균 7년정도 밖에 안되었고 암살 또한 빈번했었답니다.

맘루크 통치 시기인 13세기 들어서는 몽골의 침입을 받게 됩니다. 이라크 지역을 정복한 몽골의 홀라구는 시리아와 이집트를 정복하고자 남진을 시작했는데 몽골의 대칸 몽케가 사망하면서 홀라구와 그의 주력군은 몽골로 되돌아가고자 회군하게 되어 위기를 벗어나게 되지요. 1260년 이집트의 지배자인 술탄 쿠투즈는 남아 있는 일부 몽골군과 벌어진 아인 잘루트 전투에서 승리하여 이슬람 세계는 몽골의 파괴와 정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답니다.

15세기부터 인도양 진출을 꿈꾸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발흥하면서 맘루크 왕조는 많은 전투를 하게 되는데 1509년 포르투갈 함대와 이슬람 맘루크 연합함대간 벌어진 다우전투에서 격파당하면서 중계무역으로 많은 이익을 안겨주었던 인도양에서의 주도권을 잃게 됩니다. 더우기 13세기 소부족에서 시작되어 1453년 건국된 오스만 제국에게 1516년 마르즈 다비끄 전투에서 우세한 포와 머스킷 소총으로 무장한 채 조직적으로 싸우는 오스만 제국군에게 이집트 맘루크군은 전멸당하고 카이로의 아바스 칼리파 알 무타와킬은 포로가 되어 이스탄불로 압송됩니다. 최강의 기병대라 불리던 맘루크 기병대도 경제·군사적으로 쇠락하면서 떠오르는 신흥강자 오스만제국의 상대가 되지 못했던 것인데 이로 인해 맘루크 왕조는 멸망하게 되지요.


제4장은 근현대 시기를 다루는 장으로 나폴레옹의 침입으로 시작됩니다. 여기에는 오스만제국 치하의 이집트에 대한 나폴레옹의 점령기, 오스만제국 종주권하에 세워진 무함마드 알리 가계의 통치기, 영국의 점령 보호 통치기, 독립선언 후의 무함마드 알리 왕조, 자유장교단의 혁명에 의해 수립된 이집트 아랍 공화국까지의 역사와 문화적 사건들을 담고 있습니다.

고 이때부터 1798년 나폴레옹이 침입하여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할 때까지 오스만 제국이 시리아와 이집트를 통치하게 되지요. 하지만 1801년 프랑스군이 철수하면서 다시 오스만 제국의 치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후 많은 군벌(맘루크)들이 득세하게 되는데 그중 1805년 근대 이집트의 아버지라 하는 무함마드 알리가 이집트 총독 자리에 오르면서 다른 맘루크 세력들을 일소하면서 그의 천하가 됩니다. 이후 1953년 자유장교단의 혁명에 의해 이집트 공화국이 성립될 때까지 무함마드 알리의 자손들에게 이집트의 지배권은 세습되었다 하구요. 그러나 오스만 술탄의 종주권을 인정해야 했고 무함마드 알리에게는 이집트에 대한 세습통치권만을 허용하는 그런 형식이었답니다.

1869년 수에즈운하 개통으로 프랑스와 영국 등 열강들의 수에즈 운하 경영권 다툼이 촉발되었고 최종적으로는 영국의 차지가 되었으며 이후 영국과 프랑스의 내정간섭은 점점 심화되었다는군요. 미국 남북전쟁의 종전으로 미국의 급격한 면화 수출 증대로 이집트의 주요 수출품목이었던 면화산업이 직격탄을 맞게 되고 외국 차관을 많이 받게 됩니다. 이러한 부채로 인해 외세의 개입이 점차 심화되어 갔고 이러한 상황은 군부 내의 민족세력과 진보세력을 자극하게 되었다는군요.

당시 이집트 총독이었던 케디브 이스마일이 유럽의 외회제도를 본떠 자문회의를 만들었는데 외세의 개입이 극심해져 감에 따라 민족주의 세력은 점차 강화되어 갔고 그들의 영향력과 발언권이 높아지면서 이집트의 정정은 점차 혼미해져 갔답니다. 1879년에 아흐마드 오라비 대령을 중심으로 일어난 군부와 민족주의 세력에 의해 천정과 의회선거가 치뤄졌고 민족주의 세력이 의회를 장악하면서 새로운 내각이 수립됩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영국은 1882년 군대를 파병하여 알렉산드리아를 무력 점령하고 델 알 카비르 전투에서 이집트군을 전멸시키고는 카이로에 진입하여 내각을 해산시키고 고문관을 보내 통치하게 하면서 이집트를 보호령화합니다. 1922년 비록 영국에 의해 일방적인 선언이긴 하지만 터키와 영국간 체결된 로잔조약에서 터키가 옛 오스만 제국 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하고 영국은 이집트에 대한 보호권을 첲례하면서 이집트는 영국에서 독립하게 됩니다. 1923년 이집트는 헌법을 공포하고 최초의 총선거를 실시해 국가체제의 근본과 틀을 정비하게 되구요. 이후 현대 이집트의 역사적 내용들은 생략하렵니다.


책은 위와 같은 역사적 흐름 외에도 이집트인의 시간과 달력, 내세관, 여인들의 생활상 등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도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파피루스 종이나 파로스등대, 사원과 모스크와 같은 이집트의 발명품과 건축물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구요.

본문중 3장과 4장은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롭게 읽었던 장이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잘 몰랐던 이집트의 이슬람 시대와 근현대 시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해주었기 때문이죠. 이집트의 긴 역사 중에서 이슬람 시대와 근현대사에 대해서는 대부분 알지 못했던 내용들이었는데 이집트가 왜 아랍의 리더국을 자임하는지, 그들이 왜 이스라엘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지 그 태생적 원인들을 들여다 볼 수 있었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랍과 중동, 이슬람의 역사에 대해 배웠거나 접했던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아마도 기독교와 서구 중심의 편향적이고 편협한 시각으로 구축된 역사관에 세뇌된 결과인 듯 싶은데요. 마치 헐리우드영화 엔딩장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성조기 휘날리는 장면처럼 팍스아메리카나를 선전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거 같군요.ㅋㅋㅋ 그들이 말하는 "USA가 실행하면 정의, USA에게 실행하면 테러"라는 그들의 이중적인 잣대를 보면 실소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 책은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지금의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역사는 물론 그들의 문화와 사회상까지 살펴볼 수 있게 100개의 소주제로 구성되어 있기에 이집트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한번 읽어볼만하다고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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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새롭게 경기도 -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도시로의 초대 경기별곡 3
운민 지음 / 작가와비평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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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경기별곡03 여기 새롭게 경기도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도시로의 초대 -

운민(이민주) 著 / 작가와비평 刊 / 314 page

 

 

 

 


지은이 : 운민(이민주)

펴낸곳 : 작가와비평

발행일 : 2023년 4월 10일 1판1쇄

도서가 : 17,000원

 

 

 


 

 

 

조선시대 이래 한반도는 팔도(八道)로 행정구역이 구분되어 왔습니다. 근대 이후 8도에서 더 분리되고 개편되면서 행정구역상으로는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팔도강산이란 말을 쓰고 있지요. 그만큼 팔도라는 지역구분이 우리에게 다양한 측면에서 영향을 끼치고 있는거 같습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8도에는, 북에서부터 살펴보면,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제주도는 전라도에 포함)가 있습니다. 한반도 지도를 살펴보면 이는 지형, 문화, 언어 등에서 많은 부분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죠. 아무튼, 지금은 팔도라는 말이 지역 구분을 뜻한다기 보다는 우리나라 전국을 칭하는 보통명사인 듯 합니다.

얼마전 출간된 경기별곡 시리즈를 읽게 되었습니다. 이번 출간된 시리즈 책자의 제목은 <여기 새롭게 만나는 경기도>였는데요. 수록된 내용들이 경기도에서 근래에 들어 신설되거나 분리/통합되어진 수도권 도시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수도권 도시들의 오래전 이야기는 익히 보고 들어봤지만 근래에 생겨난 도시들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게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죠. 저자가 풀어낸 이야기들이 무척 흥미로왔고 그곳에 한번 찾아가 보고 싶게 만들더랍니다.^^

저자는 한국여행작가협회 소속 작가로 활동중인 분으로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 폭넓은 지식과 이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들로 많은 이들에게 호응을 받고 있는 분입니다. 전작인 경기별곡② '멀고도 가까운 경기도'를 읽어보았기에 어떤 흐름과 형식으로 글을 풀어내갈지 예상을 했었는데 생각 외의 흐름으로 풀어나가더군요. 아무래도 최근에 일어난 현대도시 이야기이기에 그런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책은 <경기도로 떠나는 마지막 발걸음>이란 서문으로 시작되어 7지역 12도시의 이야기로 본문을 구성한 다음 <경기별곡 시리즈를 마무리 지으며>로 책은 마무리됩니다.

본문은 크게 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근래 형성된 도시들의 경우는 2개씩 묶어서 총 12개 도시들이 나오고 있지요. 그것은 <고양 - 경기 북부의 600년 고을>, <부천/의정부 - 해방 후 급변기에 형성된 동네에서 이제는 콘텐츠의 도시를 꿈꾸다>, <시흥/안산 - 죽음의 호수에서 생태도시로의 극적인 변화>, <양주/동두천 - 경기 북부의 너른 고을 양주와 현대사가 켜켜이 쌓여있는 동두천>, <광주 - 가는 곳마다 사연이 깃든 경기도의 너른 고을>, <구리/하남 - 경기도에서 가장 작은 구리, 가장 굵직한 문화유적을 가진 하남>, <광명/성남 - 사연 많은 도시, 미래를 고민하는 도시>로 되어 있구요.

 

 

 

 

 

제일 처음 등장하는 경기도의 도시는 고양시(高陽市)입니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일산은 잘 알아도 고양은 어디에 있는 곳인가 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아직은 도시 이미지가 희미한 곳입니다. 그 잘 알려진 일산 신도시는 고양시에 포함된 구(일산동구,일산서구)일 뿐, 독립된 군(郡)이나 시(市)가 아닙니다. 책에 따름 일산(一山)은 덕양구와 묶여 고양시로 경기북부를 이끌어가는 수부도시라고 하네요. 여기서 수부도시(首府都市)는 '수부'가 한 도 안에서 감영이 있던 곳을 말한다 하니 지금으로 보자면 수부도시는 도청소재지라고 보면 될 듯 합니다. 처음엔 이게 뭔말인가 싶어 여기저기 찾아봤는데 수부도시에 대한 설명은 없더군요. 책에는 고양의 많은 명소들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거주지에서 가까운 지역인지라 대부분 가본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와지볍씨 박물관이라던지 중남미문화원과 같은 특이한 명소들이 저의 눈길을 붙잡았고, 게다가 고양향교와 서삼릉과 같이 어릴 때부터 익히 들었지만 가까운 곳임에도 불구하고 여지껏 가보지 못했던 곳들에 매우 관심이 가더랍니다. 흐흠.. 좀 더 부지런해져야겠네요.^^

 

 

 

 

 

두번째 장에 등장하는 경기도 도시는 부천과 의정부입니다. 이 도시들의 공통점은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해방 후 형성되기 시작한 도시들로 지금은 수도권에서 내노라하는 거대도시로 성장한 곳들이죠. 첫 페이지에 나오는 사진을 보는 순간 얼마전 다녀왔던 의정부 미술도서관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건축물의 미적 감각은 물론 내부 인테리어까지 미래지향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더라는게 당시의 소감이었는데요. 책에서도 같은 분위기의 내용으로 가득했었습니다.

부천시(富川市)는 사실 몇년 전만 해도 부평과 헷갈려 했던, 저에게는 그러한 이미지의 도시였습니다. 197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시로 승격하게 되었다는 부천시는 서울의 왠만한 구보다도 작은 면적의 도시이긴 하지만 책을 보니 작지만 콘텐츠가 튼튼한 도시란 생각이 들더군요. 책을 보니 원미산 진달래축제 이야기가 나오던데 원미산이 부천시에 있었다는 걸 이때 알게 되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제일 먼저 떠올랐던게 우리나라 3대 영화제 중 하나라 일컬어지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였는데요. 책에는 그에 대한 내용이 없었습니다. 대신 부천시립박물관과 한국만화박물관, 부천아트벙커B39와 같은 박물관과 문화예술공간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득했어요. 그리고 아쉬웠던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는데요. 아인스월드와 야인시대 세트장이 지금은 문을 닫고 없어졌다고 하는 것이죠. 아인스월드 꼭 가보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부대찌게를 떠오르게 하는 수도권 북부의 도시 의정부시(議政府市)에는 부천처럼 많은 문화예술공간들이 있답니다. 특히 특화된 도서관들이 시선을 붙잡았지요. 최근 가보았던 의정부미술도서관에서는 방문 당시의 소회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고 의정부음악도서관과 백영수미술관, 고흐의 아를거리를 재현해 놓았다는 카페 아를의 이야기들은 읽다 말고 바로 달려가보고 싶게 만들 정도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도시는 시흥과 안산으로 이 도시들 역시 공통분모가 있었습니다. 바로 시화호를 인접하고 있는 도시라는 점이죠. 1994년 바다를 막은 시화방조제가 완공되면서 조성된 인공호수인 시화호는 한때 '죽음의 호수'라 불리며 우리나라 환경오염의 대명사로 여겨지기까지 했던 곳입니다. 개발 당시에는 바닷물을 빼낸 뒤 담수호로 만들어 인근 간척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할 목적이었지만 인근 도시의 인구 증가와 주택지와 산업단지에서 배출되는 하수들로 심각하게 오염되면서 사람들이 접근을 꺼리는 곳으로 전락하게 되었었죠.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 관련 기관들의 개선사업들로 수질개선이 진척되어 지금은 방조제 건설 이전의 수준으로 회복되었고 이러한 시화호의 생태 문화자원을 활용하여 시흥시와 안산시는 친환경 수변생태도시로 거듭나게 되었다죠. 이 장의 첫페이지에는 구봉도 해솔길의 낙조전망대 전경 사진이 나오는데요. 식구들 데리고 처음으로 이곳에 가본게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더랍니다..

책에 따름 지금의 시흥시(始興市)는 조선시대의 시흥과는 다른 지역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시흥이라 하면 서울 영등포구와 금천구 시흥동 일대를 말하는 것이라는군요. 시흥향교와 시흥행궁이 모두 서울 금천구에 있는 걸 봄 알 수 있답니다.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는 한때 영등포,금천,구로,동작,관악,과천,안양,의왕,양산,광명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지역이었지만 영등포가 서울에 편입되면서부터 시흥에 속해있던 많은 읍들이 빠져나가게 되었다네요. 현재의 경기도 시흥은 시화공단과 매립지가 가장 알려진 곳이지만 시흥갯골생태공원을 조성하는 등 생태관광도시라는 슬로건 아래 새롭게 거듭날 준비가 진행되고 있답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곳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연꽃을 재배하였다는 시흥 관곡지인데 책에서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관심이 가던 곳은 외곽순화도로 시흥구간에 들어서 있다는 시흥 하늘휴게소인데요. 도로 위 브릿지 형식으로 지어져 있는게 무척 이채롭게 보였기 때문이죠.

안산시(安山市)는 대부도로 많이 알려진 고장이죠. 그런데 실제로는 대부도가 화성시와 가깝고 안산시에서 가려면 시흥시를 거쳐가야만 한답니다. 뜻밖의 내용이었는데 여기엔 사연이 있다네요. 그것은 대부도가 원래 옹진군에 속해 있었는데 시화호 간척사업으로 육지와 연결되면서 행정구역을 새롭게 정하게 되었답니다. 그 정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시흥,안산,화성 중 어디에 속하게 할지 주민투표에 부쳐졌는데 투표 결과 그 당시 제일 번화했던 안산시가 선정되었다는군요. 지금은 노동집약적인 공장이 몰려 있는 시화공단과 반월공단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까운 안산시에 대략 10여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안산역 주변의 다문화마을특구에는 14개국 음식을 250여개의 식당에서 현지 그대로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가게들이 있으며, 길을 걷다 보면 각종 외국어 간판들로 인해 마치 외국에 온 듯한 기분이 들 정도라 합니다. 그리고 흥미로왔던 이야기 중에는 안산시 단원구의 단원이 김홍도의 호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 있었고, 가슴아픈 이야기도 있었는데 이는 일제시대부터 군부독재시절 때까지 형제복지원이나 삼청교육대처럼 운영되어 온, 우리에게 있어서 뼈아픈 역사의 흔적인 선감학원이 지금은 대부도와 이어져 있는 선감도에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선감학원 건물 뒤편에 컨테이너 2층건물로 초라하게 선감역사박물관이 있다고 합니다..

 

 

 

 

 

네번째 등장하는 경기도 도시는 양주와 동두천입니다. 이 두 도시는 서울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죠. 양주시(楊州市)는 고려때에는 12목의 하나로 불려질 정도로 오래 전부터 그 이름이 존재했던 고을입니. 책에서는 첫페이지에서부터 회암사지 정경 사진을 올려놓았고 비중도 상당했었어요. 이곳도 예전에 다녀왔던 곳이기에 당시의 기억을 소환하면서 읽었구요. 그러한 양주는 양주별산대놀이라는 경기도의 대표 가면극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답니다. 예전에는 노원,중랑,도봉,광진을 비롯해 의정부,남양주,동두천,구리를 아우르는 거대한 고장이었고 양주목이라 지정할 정도로 위상 높은 고을이었답니다. 고려 시대에는 지금의 경기도 일대를 광주와 양주의 두 글자를 따서 양광도라 불릴 정도로 대단했었다네요. 이외에도 양주시를 가로지르는 지금은 폐선된 교외선 이야기도 나옵니다. 서울역을 출발하여 가좌역을 지나 일영역과 장흥역을 지나던 교외선은 저에게 있어서 어릴 적 추억이 많이 어려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동두천시(東豆川市)는 경기도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로 해방 이후 진주하여 이곳에 주둔한 미군부대로 인해 성장한 도시이지요.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용산 미8군 클럽과 동두천 일대는 한국 록음악의 요람이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책에 따름 동두천에서 신중현이 국내 최초 Rock Band라 할 ADD4(애드포)를 결성했었다고 하네요. 이외에도 현미,패티김, 인순이,유현상 등도 있었다 합니다. 저자는 동두천을 상징하는 명소로 소요산을 들고 있는데 여기에는 원효대사가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은 후 소요산에 들어와 창건한 자재암이 이곳의 중심사찰이라고 합니다. 인근에는 원효굴과 원효폭포 등 원효 관련 명소들이 꽤 많다고도 하네요. 급관심이 가면서 언젠가 꼭 가봐야겠단 생각을 했답니다.^^

 

 

 

 

 

다섯번째로 이어지는 도시는 경기도 광주시입니다. 경기도 광주시(廣州市)는 예향의 도시 전라도 광주광역시(光州廣域市)와 한글이름은 같지만 한자가 다른 동명이시(同名異市)입니다. 경기도 중앙부에 자리하고 있는 광주시에는 청나라 홍타이지에게 항복했던 당시 인조가 피난했었던 남한산성이 자리하고 있지요. 책 역시 이곳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고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색적이었던 내용은 남한산성에 이어 곤지암을 얘기하면서 오컬트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것이었는데요. 영화로 보긴 했지만 곤지암에 현재는 철거된 곤지암 정신병원이 있었고 CNN에서 7대 괴기 장소로 선정했었다는 내용이었어요. 흐흠.. 전 곤지암하면 국밥이 먼저 떠오르던데 말이죠.. 이외에도 모대기업 회장에 의해 조성된 화담숲과 경안천습지생태공원, 광주분원 등 광주의 가볼만한 여러 곳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섯번째로 등장하는 도시는 구리와 하남입니다. 현재 서울 강남,송파,노원구보다도 작을 정도로 경기도에서 가장 작은 도시라 하는 구리시(九里市)는 1914년 조선총독부의 행정개편에 따라 구지면과 망우리면이 통합되면서 구리면이 처음 등장하게 되는 것이 그 시초랍니다. 처음에는 양주군에 속해 있었지만 해방 후 남양주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86년 구리시로 승격되어 지금에 이르렀다는군요. 길지 않은 역사를 가진 구리시지만 고구려와 신라가 대치하는 역사의 한복판에 있던 고장이랍니다. 아차산이 바로 그 증거로 발굴된 수많은 고구려의 보루와 산성, 유물과 유적들이 당시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지요. 이 외에도 조선왕조 최대의 분묘군인 동구릉이 바로 구리시에 자리하고 있답니다. 이름 그대로 9개의 왕릉이 있는 곳으로 추존왕을 포함한 7명의 왕과 10명의 왕후가 안장되어 있다지요.

햐남시(河南市)는 도시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강 남쪽, 한강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도시입니다. 원래 광주에 속해 있던 하남은 1989년 시로 승격되면서 백제의 옛 도성인 하남 위례성에서 그 이름을 차용했었다고 합니다. 아직은 그 역사적 실체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백제 초기의 수도 위례성에 대해서는 지금도 그 위치가 어디인지 의견이 분분하다는군요. 서울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이 유력하긴 하지만 하남의 이성산성이 위례성이라고 추정하는 학자들도 상당하다고 하네요. 하남에서 가장 알려진 곳은 미사리이죠. 80~90년대 미사리 라이브 카페촌으로 명성을 날리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상당수가 사라졌고 일부 명맥만 이어지고 있으며, 일대에 신도시가 조성되어 당시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게 현실입니다. 그러한 이곳에 신도시를 조성하면서 암사동 선사유적지 규모를 훌쩍 능가하는 미사리 선사유적이 발견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었구요.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경기도 도시는 광명과 성남입니다. 광명시(光明市)는 불과 몇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전라도에 있는 도시인 줄 알았답니다. 원래 광명 일대는 시흥군에 속해 있었는데 1963년 서울 도시 계획에 따라 광명시가지가 개발되었지만 1970년대 서울집중 억제 정책으로 인해 서울에 편입되지 못하고 남부의 소하읍과 묶어서 1981년 광명시로 승격하게 되었답니다. 광명시가 성장하게 된 계기는 2004년 KTX 고속철도역이 생기면서부터였다는데요. 광명역 주변에 신시가지를 개발하게 되면서 대형 쇼핑몰이 들어오게 되는 등 많은 성장이 있게 되었답니다. 광명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는 광명동굴을 빼놓을 수 없죠. 가학산 중턱에 폐광산으로 있던 곳을 시에서 2011년 관광지로 개발하였는데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찾아갈 수 있는 동굴관광지란 장점으로 이른바 대박을 터트리게 됩니다. 인상적인 것은 1회성 관광지가 아닌 지속적으로 찾아오게 하기 위하여 해마다 다양한 시설을 보강하고 개방구간 또한 계속 확대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한번 가보았는데 전국의 여느 인공동굴 관광지보다 차원이 다른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는게 감탄을 자아내게 했었죠.

성남시(城南市)도 명칭에서 도시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 지를 짐작하게 해주고 있는 곳으로 1943년 남한산성 남쪽에 위치한다고 성남이란 지명이 처음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1973년에서야 시로 승격된 성남시는 원래 광주에 포함된 지역으로 6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경기도에서 가장 한산한 곳이었다 하는군요. 1968년 '광주대단지사건'이라 불리는 서울의 무허가 빈민촌 정리계획에 따라 철거민들을 성남의 허허벌판에 텐트 한동 달랑 주고 강제이주시키면서 인구가 대거 유입되기 시작한 성남은 1989년 분당신도시 개발로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를 겪게 됩니다. 녹지비율이 경기도의 다른 도시보다 높은 분당 신도시는 경관이 아름다운 공원이 참 많죠. 시내 중심은 탄천이 흐르고 그 중간엔 분당천이 분당중앙공원을 거쳐 율동공원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남하면 떠오르는 시장, 모란시장이 있지요. 예전에는 식용 개고기를 파는 시장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떨쳤지만 지금은 많이 현대화되었고 지금도 5일장으로 그 역사를 이어가고 있답니다. 이외에도 분당신도시에 대구 김광석거리를 벤치마킹하여 조성된 신해철거리가 있습니다. 지금도 신해철 작업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그를 추모하는 수많은 팬들이 수없이 다녀가고 있다지요. 책은 2010년 조성되기 시작한 판교테크노밸리로 이야기의 끝을 맺습니다.

 

 

 

 

 

경기별곡 시리즈가 이것으로 끝맺음 한다니 아쉬운 마음이 드네요. 잘 알려진 명소보다는 덜 알려져 있지만 의미있는 곳들을 소개해주는 도서라 여겨져 매우 관심이 높았던 책이었으니까요. 앞으로도 이 출판사에서 이 저자가 책을 출간하게 되면 유심히 살펴봐야겠어요. 그리고 책을 참고해 주말에 어디를 찾아가볼지 고민 좀 해봐야겠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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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의 국보 -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숨은 명작 문화재
배한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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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무관(無冠)의 국보 


-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숨은 명작 문화재 -


배한철 著 / 매경출판(주) 刊 / 385 page










지은이 : 배한철


펴낸곳 : 매경출판(주)


펴낸날 : 2023년 2월 6일 초판1쇄


도서가 : 20,000원





현재 우리나라에 전해지고 있는 문화재는 얼마나 많을까요? 얼핏 생각해보면 국보와 보물만 하더라도 수천점은 될 듯 한게 유무형문화재 등까지 모두 합한다면 그야말로 수만점은 훌쩍 넘어서지 않을까 싶단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알아보니 의외이더군요. 2023년 2월 23일 기준으로 354점의 국보와 2351점의 보물, 540건의 사적, 131건의 명승, 476건의 천연기념물, 155건의 국가무형문화재, 308건의 국가민속문화재, 951건의 국가등록문화재, 4033건의 시도유형문화재, 603건의 시도무형문화재가 있다고 나온 것이죠. 그러니까 천연기념물, 무형문화재와 같은 것까지 모두 다 더해봐도 1만점이 안되는, 우리나라의 국가지정문화재는 불과 9,902점 밖에 안된다는게 현실이었습니다. 국가지정문화재가 의외로 그리 많지 않더라는 사실에 좀 놀라웠습니다. 왜 그 정도 밖에 없는 것일까요? 이러한 사실, 국가지정문화재가 왜 이 정도 밖에 없는건지를 알게 된 건 며칠 안 되었습니다. 그것은 <무관의 국보>란 제목의 책자를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나라에 존재하고 있는 미지정 문화재 중 많은 것들이 국공립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는게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이죠.



국보나 보물과 같이 국가지정문화재가 되기 위해서는 문화재를 소유한 국가기관이나 단체, 개인이 문화재 지정을 신청해야 하고, 문화재위원회가 그 신청내용을 심사하여 최종 결정한다고 합니다. 국가가 문화재를 지정하는 목적은 문화재청이 주기적으로 문화재의 보존 현황을 점검하여 훼손되거나 국외로 반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네요. 하지만 국립박물관과 같이 최첨단 보관시설을 갖추고 자체 전문가들이 소장 문화재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경우에는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가 국가지정문화재가 되면 문화재청의 통제와 간섭을 받게 되기에 관리 측면에서도 번거로움과 불편함이 많아지게 되어 기피하는 경향이 어느 정도 있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소장자가 외국기관이나 외국인인 경우에도 국가지정문화재가 될 수 없다고 하면서 겸재화첩이나 외규장각 의궤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문화재이지만 지금은 외국기관이 소장중인 문화재를 영구임대 형식으로 우리에게 보내준 것들 역시 국보나 보물이 될 수 없다고 하고, 당연한 말이겠지만 예술적 가치나 중요성에서 좀 떨어지는 것들도 지정문화재에서 선정되지 못한답니다.



아무튼, 이러한 문화재의 현실을 알게 해 준 <무관의 국보>. 이러한 내용은 '서문'과 본문 내용 곳곳에서 언급되고 있었는데 사실 그게 주 내용은 아닙니다. 도서제목처럼 국보나 보물과 같은 문화재로 지정되어야 마땅한 수준의 문화재들을 소개하는게 주 내용이죠. 저자는 35점의 문화재들을 선정하여 연혁은 물론 작품의 예술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문화재들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소개하는 무관의 국보 35점은 불상과 회화, 서예작품이 대다수였습니다.









저자는 경영학박사이면서도 문화재와 한국사에 매료되어 역사서와 고문을 탐독하였다 합니다. 현재는 한국사와 고미술, 고전을 주제로 다양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고, 여러 교양서적도 집필하였으며, 2021년부터는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으로도 활동중에 있답니다. 이름이 맥가이버를 더빙한 성우분과 비슷해서 혹시 형제나 친인척 아닐까 싶어 찾아봤는데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건 아니었어요.^^



책은 서문과 본문부 총 8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문은 앞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국보와 같은 국가지정문화재에 대한 설명과 함께 저자가 문화재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비지정인 채로 남아 있는 수많은 명작 유물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앞서 말한 바와 같구요. 본문부는 <1부. 기적처럼 우리에게 전해진 '숨겨진 국보'>, <2부. 시대의 정점에서 꽃피운 걸작>, <3부. 간절한 염원, 대작으로 거듭나다>, <4부. 시대의 거장, 불세출의 명작을 낳다>, <5부. 지존의 삶, 절대 군주의 자취>, <6부. 왕권강화의 소망을 담다>, <7부. 규방의 여인, 불굴의 예술혼을 꽃피우다>, <8부. 국보로 읽는 그 시절의 현장보고서>로 구성되어 꽤 많은 국보급 문화재들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용에는 비지정 문화재만 언급되는 것이 아니라 비교 설명을 위해 수많은 지정문화재들이 나오기도 하구요. 그런데 놀라운건 이게 비지정 문화재야? 하고 놀랄만큼 매우 유명한 작품들이 꽤 있더라는 것이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 국보 1호는 숭례문(남대문), 보물 1호는 흥인지문(동대문)이라는 사실이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국보와 보물, 유무형문화재 등 국가지정문화재에 일련번호가 사라지고 없어졌습니다. 2022년경부터 문화재 지정번호가 없어지고 지금은 국보 숭례문, 보물 흥인지문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답니다. 책을 보니 여기에도 사연이 있어서 그 내용이 서문에서 언급되고 있는데요. 그것은 국보1호 숭례문이 2008년 방화로 전소되고 다시 신축한 일이 그 시작이랍니다. 숭례문을 재건한 후에 역사적 가치가 떨어진 신축 숭계문이 과연 '국보 1호'로서의 자격이 있냐는 논란이 불거져 한동안 시끌시끌했었다죠. 그 결과 관계법령이 개정되면서 국가지정 문화재 선정시 부여되는 일련번호 자체가 폐지되었다 합니다. 흐흠..



본문에 나오는 비지정 문화재들의 면면들을 살펴보니 크게 불교문화재와 왕족(귀족)문화재로 구분되는 듯 보입니다. 유형별로 봄 회화와 서예, 조각과 공예품으로 분류될 듯 보이구요. 개인적으로는 사찰에 관심이 많은 관계로 아무래도 불교문화재에 눈길이 가고 더 많은 관심이 가는데요. 그런데 일일이 헤아려보니 책에는 불교문화재가 10개 밖에 안되던데 생각보다 적은 비중에 좀 실망스러웠어요.. 그간 많은 사찰들을 순례하고 방문하였지만 책에는 듣도 보도 못한 불상들이 참 많이 나옵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책에 나오는 문화재들은 대부분 사찰이 아닌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죠. 예술성 뛰어나고 역사적, 학술적으로도 그 가치가 매우 큰많은 문화재들이 이처럼 국보나 보물에 지정되지 않은 채 수장고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하네요..










사찰이나 개인이 소장한 문화재들은 舊 보물 제479호였던 낙산사 동종처럼 화재로 소실되거나 불상이나 회화, 공예품들이 도난되는 일이 종종 뉴스에 나오는 걸 보면 안전한 보관상의 문제를 생각해서라도 국가지정 문화재로 등록되어 국가 차원의 관리를 받는게 매우 필요할 듯 합니다. 실제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들을 보존하고 있는 사찰에 가보면 그 문화재 주변에는 꽤 많은 CCTV들이 설치되어 있고 심지어는 소방용수시설까지 구비되어 있더군요.



그 유명한 김명국의 '달마도'나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역시 국보나 보물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 작품들은 세계적으로도 극찬을 받고 인정받는 세계유산급의 문화재들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관계로 비지정 문화재라는군요. 책을 읽고 보니 이러한 수준급의 문화재들이 비지정 문화재로 전해지고 있는건지, 대체 얼마나 많이 존재하고 있는건지 감 조차 잡히질 않습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비지정문화재라고 유물로서의 격이 떨어지거나 가치가 감소하는건 아니니까 비지정이라 해서 좋지 않은거라 볼 수만도 없을거 같긴 합니다. 소중한 문화재를 안전하게 유지, 보관하여 후손들에게 전해주는게 더 중요한 것일테니까요.










책을 읽다가 눈에 확 들어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 전국에는 왕실 전용 사찰이 몇개나 있었을까'란 질문이었죠. 책에 따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를 조사했는데 95개가 있었다는데 능침사찰 71개, 태실사찰, 11개, 원찰 13개로 파악되었다는군요. 그간 여기에 해당하는 사찰들 여러 곳을 방문했었으면서도 능침사찰과 원찰의 구분법도 모르고 있었네요.. 불교와 사찰에 별 관심 없는 분들에게는 그다지 의미없는 사소한 내용이겠지만 저처럼 사찰과 불교문화재에 관심많은 이에겐 매우 유용한 지식이지요. 이처럼 귀한 지식도 알려주고 있으니 참 고마운 책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이 책을 읽다가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주말이나 공휴일에 사찰 탐방 다시 재개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잡게 되었어요. 생각해보니 회사에서 집중근무제라는 희한한 제도를 시행하여 주중 내내 회사일로 피곤함에 찌들어 주말에는 내내 잠만 자는 통에 사찰 순례 가지 못하게 된지도 몇달이 되었네요.. 그리고 하나 더 언급하자면 우리나라의 귀중한 문화재들 다시 살펴보러 국립중앙박물관에 대여섯번은 찾아가봐야겠단 생각이 들었구요. 이처럼 이 책은 문화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불교와 사원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더욱 좋은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런 책이라 여겨지네요. 관심 있으신 분은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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