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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역사산책 : 개항도시편 ㅣ 골목길 역사산책
최석호 지음 / 시루 / 2018년 7월
평점 :
[도서리뷰] '골목길 역사산책 개항도시편'
- 걷는 만큼 보이는 역사, 역사를 찾아서 골목길을 걷는다! -
지은이 : 최석호
펴낸곳 : 가디언
발행일 : 2018년 7월 25일 초판1쇄
도서가 : 16,000원
우리나라 근대화는 언제부터 시작한 것일까요? 알아본 결과 그 시작시기로 여러가지 주장들이 있었는데요. 17세기 실학사상의 태동이 그 시작이라는 주장에서부터 19세기 동학혁명이 시초라는 주장, 경인선 철도 부설이 근대화의 시작이라는 주장,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근대화의 시작이라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참 다양하게 있더군요. 아마도 근대화의 기준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만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과 함께 이어진 개항(부산,인천,원산항)이 되던 시기(19세기말 20세기초)가 일반적인거 같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근대화 과정을 살펴보면 제국주의 국가들이 수탈을 목적으로 전파한 것도 계기였지만 선교사들을 통해 도입되고 전파된 근대적 문물과 가치관 또한 중요한 계기였답니다. 이번 도서리뷰는 이러한 근대화로 상징되는 개항도시들과 개항과 관련된 개항도시의 골목길을 살펴보는 <골목길 역사산책 ; 개항도시편>란 책이 대상입니다. 책 뒷편에는 이 책 이전에 '골목길 역사산책 ; 서울편'이 먼저 출간되었다더군요. '개항도시편'을 다 읽고 나니 그 '서울편'의 내용이 궁금해지면서 서울에도 근대화의 흔적이 남은 길이 있나 싶었죠. 날이 좀 선선해지면 구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저자는 레저관광사회학을 전공하고 현재는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분입니다. 레저, 관광과 관련된 여러 학회에서도 이사 등 직책을 맡고 있는 등 대외활동도 활발하신 것 같습니다. 저술한 도서를 검색해 보니 골목길과 여가를 주제로 이 책까지 총 6권을 집필하셨더군요. 여가를 주제로 한 도서라니 좀 생경했습니다.
책은 개항도시/골목길을 주제로 모두 다섯군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책에 수록된 곳들은 직접 가서 탐방해 본 곳도 있지만 생소한 곳도 있었습니다. 책에 기재된 순서대로 나열하면 <부산 개항장 소통길>, <인천 개항장 평화길>, <광주 양림동 근대길>, <순천 꽃길>, <목포 개항장 생명길>인데요. 골목길 이름들은 모두 처음 보지만 소개하고 있는 부산과 인천의 골목길들은 익숙한 곳이더군요. 의외인 것은 군산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죠. 책을 읽다가 떠오른 것인데요. 군산은 근대화가 시작된 개항도시라기보다는 일제가 수탈을 위해 변모시킨 도시이기에 제외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목포도 좀 그렇긴 하지만요..
책의 시작은 좀 특이합니다. 서론으로 '개항도시를 걷다'라는 제목인데 '브레맨 음악대' 이야기로 시작된다는 것이죠. 이어지는 내용은 '발트의 길'인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길이 갖는 역사와 그 의미라 보여집니다. 다음 내용인 '개항도시 역사산책'를 보니 그 의도를 명확히 알 수 있었죠.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문장이 매끄럽게 이어진다기 보다는 좀 산만하단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확정적 단문들이 연속되다 보니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네요..
책에 수록된 개항도시로 처음 나오는 곳은 부산입니다. 부산은 한반도 남동쪽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는 대한민국 제2의 도시입니다. 625전쟁 당시 수많은 피난민들을 껴안고 더불어 살아가던 그런 도시죠. 부산은 삼포(부산포,내포,염포)를 연 조선시대 때부터 개항도시라 할 것입니다. 고려때부터 창궐하던 왜구들을 소탕하기 위해 조선의 왕들은 정벌과 함께 왜관을 설치하여 교역을 할 수 있게 해줍니다. 조선 세종때 삼포에 왜관을 설치하였지만 80여년 뒤 삼포왜변으로 폐쇄되고 맙니다. 이후 중종때 제포왜관과 부산포왜관을 다시 여는 등 부산은 왜인들에게 교역을 할 수 있게 해주었던 대표적인 도시였습니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관계가 단절되지만 광해군때 기유약조와 함께 두모포왜관을 설치하고 숙종때에는 부산 용두산 일대에 초량왜관이 설치되죠. 1875년 강화도조약 후에는 이곳 초량왜관 일대에 일본조계를 설정하게 됩니다. 책에서는 이러한 부산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개항장의 역사, 부산 개항장의 사람들(장기려, 김영삼)을 소개하고 난 다음에 부산개항장 산책이라 하여 소통길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지만 여기에 대한 약술은 하지 않으렵니다. 대신 산책로 약도를 남깁니다.^^ 부산 개항장의 마지막은 소통길 산책로에 대한 약도로 마무리됩니다. 이후 다른 개항도시 장에서도 이와 같은 공통된 포멧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부산 개항장 소통길 산책로 : 부산역 → 브라운핸즈 백제 → 초량교회 → 168계단 → 김민부 전망대 → 장기려 기념관 → 이바구공작소 → 역사의 디오라마 → 40계단 문화관 → 백산기념관 → 용두산공원 → 부산근대역사관 → 보수동 책방골목 → 부평동 깡통시장 → 국제시장 → 자갈치시장 → 남포역 → 부산역
두번째로 등장하는 인천은 엄연한 우리의 영토지만 다른 나라들의 전쟁터로 많이 시달렸던 지역이랍니다. 이곳은 수도 한양으로 들어가는 좁은 한강길목에 자리하고 있었기에 근대화시기 제국주의 열강들의 상선과 군함들이 몰려들었다죠. 청일전쟁의 풍도해전, 러일전쟁의 제물포해전, 625전쟁의 인천상륙작전 등이 그것이랍니다. 인천은 고구려 때 미출홀 또는 매소홀현이라 했었고, 신라 경덕왕 때에는 소성이라 고쳐 부르면서 율진군에 복속시켰으며, 고려 현종 때에는 수주에 복속시켰답니다. 숙종때 경원군으로, 인종때에는 지인주사로, 공양왕 때에는 다시 경원부로 하였으며, 조선 태조때에는 다시 인주로, 태종때엔 인천군으로 세조때에는 인천도호부로 승격시켰지만 인조때 제물포로 다시 환원했답니다. 이러한 인천의 사람들에는 한국미술사의 기틀을 세웠다는 고유섭이 있는데요. 일제식민사관의 영향을 받았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가 1944년 간경화로 사망할 때까지 그가 일생에 걸쳐 탐구하여 남긴 10권의 전집을 보면 그가 왜 한국 미학의 정초자라 하는지 이해가 된답니다. 그가 1930년경 강진의 청자기와에 관심을 가졌기에 그의 제자 최순우가 이용희 청자장을 통해 청자기와를 찾아내고 가마터를 발굴하게 되어 청자기와의 양이정을 복원까지 하게 되었다죠.
인천 개항장 평화길 산책로 : 동인천역 → 내리교회 → 웨슬리기념관 → 인천내동교회 → 홍예문 → 자유공원 → 짜장면박물관 → 해인성당 → 인천개항박물관 → 인천근대건축전시관 → 신포시장 → 답동성당 → 커피숍 싸리재 → 62번길 용동권번 계단길 → 용동 큰 우물 → 동인천역
세번째로는 양림동이 나오는데요. 양림동은 광주광역시 남구에 있는 행정동으로 바로 옆 남광주역 너머에 조선대학교가 있는 동네입니다. 양림동은 1904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처음 자리를 잡게 된 곳이랍니다. 그런데 그 자리가 광주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풍장하던 무덤자리였다네요. 현지주민들은 그곳에 가기를 꺼려했던 곳이지만 선교사들은 단지 전망 좋은 언덕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그러한 그곳에 선교사들이 사택을 짓고 처음 들어온 때가 1904년 성탄절날이라고 하구요. 선교사들은 풍장 하던 자리에 광주선교부를 세우고 양림교회, 광주제중원,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오웸기념각 등 근대식 병원과 교육기관, 공연장을 차례로 만들었답니다. 이것으로 인해 광주사람들은 처음으로 근대문물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이곳 양림동의 사람들로는 유진 벨과 최흥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진 벨 선교사 부부는 미국 켄터키 출신으로 처음엔 나주로 선교를 가지만 실패를 하고목포 유달산 양동에서 선교부 개척을 합니다. 목포에 교회를 안착시킨 후 다시 양림산 기슭에 광주선교부를 개척하게 되죠. 이분으로 인해 시작된 양림동의 근대문물 도입은 그가 1925년 양림동에서 소천할 떄까지 계속되었답니다. 광주 사람들은 최흥종을 나환자의 아버지라 부른답니다. 젊어서는 건달로 살았었지만 양림동 의료선교를 하던 포사이드 의사가 한센병자를 부축하고 데려갈 때 병자가 떨어뜨린 피고름 묻은 지팡이를 집어 들면서 대오각성을 하게 되었답니다. 남은 일생을 완전히 새롭게 살아가면서 삼애(三愛-하나님사랑,이웃사랑,나라사랑)를 실천했답니다.
광주 양림동 근대길 산책로 : 남광주역 → 정율성거리 → 펭귄마을 → 양림마을이야기관 → 최승효 가옥 → 한희원미술관 → 이장우 가옥 → 오웬기념관 → 에비슨기념관 → 조아라기념관 → 윌슨 선교사 사택 → 커티스 메모리얼 홀 → 선교사 묘역 → 유진벨 선교기념관
네번째로 나오는 도시는 전남 순천입니다. 순천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꽃이 피는 곳이 있답니다. 그곳은 순천시 매곡동 탐매마을로 이 마을의 김준선 교수댁 앞마당에 자라는 매화나무에서 가장 먼저 꽃이 핀답니다. 양지바른 언덕 위에 있는 교수댁 마당의 매화나무는 1월말 또는 2월초에 홍매화를 꽃피운다는데요. 매년 그 시기에 참매축제가 열리고 곧 이어서 구례 산수유축제가 열린답니다. 순천은 1913년 광주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프레스톤과 코잇 두 선교사가 순천 북문 밖 매곡동 언덕에 순천 선교부를 개설한 것이 근대화의 시작이랍니다. 두 선교사는 전주, 군산, 목포, 광주에서 선교부를 개설한 경험이 있었기에 다른 지역 선교부와는 그 시작부터가 좀 달랐다는군요. 먼저 선교사 사택을 짓고 상수도시설을 갖춘 다음 매산학교와 알렉산더 병원을 설립하였답니다. 매산 언덕 선교사 마을은 도시기반시설을 먼저 갖추면서 마을을 확장해 가는 근대도시의 전형을 보여주었다네요. 순천의 사람들로는 김굉필과 존 커티스 크레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동방5현 중 으뜸이라는 한훤당 김굉필은 호남 최초의 사액사원이라는 옥천서원에 배향되어 있습니다. 이분은 무오사화로 평안도 희천으로 유배를 가 그곳에서 조광조를 가르치고 다시 순천으로 이배되어서는 최산두와 유계린 등 호남 신진사림파들을 가르치게 됩니다. 이로 인해 형성된 학맥이 바로 기호학파로 이들이 서인으로 발전하게 되지요. 존 커티스 크레인 선교사는 미국 미시시피 태생으로 1913년 순천으로 들어와 1915년부터 매산학교를 맡아 교육선교를 시작했답니다. 1941년 일제의 탄압으로 연금되지만 극적으로 미국으로 탈출하게 됩니다. 하지만 1946년 다시 순천으로 돌아온 크레인 선교사는 순천 선교부 복구에 매진하였고, 한국전쟁 와중에도 조직신학을 가르쳤다는군요. 그의 아내 플로렌스 크레인과 누나 자넷 크레인, 아들 폴 쉴즈 크레인과 아내 소피 몽고매리 크레인 등 2대에 걸친 크레인 가문의 선교사들은 순천의 근대화를 위해 의료와 교육 등 많은 부분에서 지대한 공헌을 하였답니다.
순천 꽃길 산책로 : 순천역 → 탐매마을 → 김준선 교수댁 → 탐매희망센터 → 효자손 → 메모리얼 파크 → 기독진료소 →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 → 옥천서원 → 순천향교 → 순천읍성 서문터사거리 → 행동골목길 → 팔마비비각 → 창작아트센터 → 화월당 → 순천역
목포는 1897년 10월 고종에 의해 부산과 인천에 이어 자주적으로 개항된 도시라 합니다. 개항될 당시 목포는 156호 600여명 밖에 되지 않은 작은 마을이었지만 목포가 개항되면서 무안군은 무안부로 승격되었답니다. 곡창지대인 호남의 물산을 집결하고 유통하기 좋은 위치였기에 일제는 1913년 부제를 실시하면서 전통적인 도시는 서울,평양,대구 외에는 모두 제외시키고 해안 도시를 선정하면서 목포도 부로 지정하였답니다. 이러한 일제의 목적으로 목포는 급격하게 인구가 증가하지만 인구분포는 부산, 군산에 이어 일본인 비율이 세번째로 높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조선내화 외에는 이렇다 할 산업시설이 없었던 걸 보면 군산과 같이 목포 역시 철저히 수탈을 위해 일제에 의해 변모된 도시였다는게죠.. 이러한 목포에 1896년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사들이 목포가 곧 개항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목포 양동 언덕배기 땅을 매입하여 선교의 거점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개항이 계속 연기되면서 1897년 5월 선교지를 나주로 바꾸게 되었다는데요. 나주 유생들의 거센 반대로 선교에 실패하여 1898년 다시 목포로 돌아오게 됩니다. 선교사 유진 벨은 양동교회를, 의료선교사 오웬은 프렌치병원을, 교육선교사 스트래퍼는 정명여학교와 영흥학교를 개교함으로써 목표선교부를 완성하였답니다. 목포 개항장의 사람들로는 와카마쓰 도사부로와 김대중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와카마쓰 도사부로는 1902년부터 1907년까지 목포 일본영사관에서 영사로 근무한 일본인으로 저자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순결하고 바르게 산 고마운 일본인 와카마쓰"랍니다. 이분은 목포를 에워싸고 있는 섬 고하도에서 재래종보다 수확량이 월등히 많은 미국종 육지면을 시험재배에 성공하여 농가소득 증대에 커다란 기여를 해주었고, 전통자염법보다 월등히 적은 비용으로 소금을 생산할 수 있는 천일염 제조법을 보급하여 어민들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해주었답니다. 게다가 1927년 고향 교토로 돌아가서도 교토의 조선 그리스도인 편에 서서 많은 도움을 주고 1940년에는 교토교회 입당예배를 드리고 봉헌까지 했다 합니다. 아무리 일본인이지만 당시의 제국주의 극성기라는 시대상을 생각해 봄 대단한 일이었다 생각되네요..
목포 생명길 산책로 : 목포역 → 목포정명여자고등학교 → 코롬방제과 → 유달산 노적봉 → 공생원 → 조선내화 → 다순구미 → 성옥문화재단 → 이훈동가 정원 → 목포근대역사관 → 목포진역사공원 → 목포역
이처럼 책은 개항도시에 대한 소개에서부터 개항장의 역사, 개항장의 사람들, 그리고 개항장 산책이라 하여 부산 소통길, 인천 평화길, 광주 근대길, 순천 꽃길, 목포 생명길을 명소별로 세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내용과 함께 여행기스런 구성과 내용으로 개인적으로 참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지요. 이담에 이곳으로 자유여행을 가게 되면 책 소개 내용 그대로 탐방해봐야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무척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골목길과 역사, 그렇게 연관성이 있어 보이지 않은 단어이지만 이 책에 소개된 길들 중 가본 곳을 떠올려 보면 19세기말 20세기초 근대화가 시작되던 당시의 모습이 아른거리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개항장의 경우에는 일제시대 건축물이 남아 있기 때문이겠죠. 근대화 역사가 아로 새겨진 골목길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이 책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