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을 들어보니 언론탄압. 세월호 사고만으로는 탄핵되기는 어려웠을것 같다.
추상적 개념이라. . .앞으로는
구인광고에 성실한분 이라고 쓰지말자!
여하튼
최순실을 세상밖으로 끄집어 내어준
이대생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제 시작이다.
세월호부터 시작해 써야하는 곳에 쓰지 않고
쓰지 말아야 하는 곳에만
권력을 사용했던 박근혜 전대통령과 그 일당들
그리고 삼성까지 쭉쭉 밀고 나가자.

오늘 애인이 또 애인이 나대신 힘든일을 한다.
이틀이나 고생시켰더니 입병까지 났던데...
탄핵축하기념과 애인고마워 마음을 담아
저녁은 삼겹살에 쏘주다.

아. . 근데 조기대선!
흠 심상정을 뽑는게 맞다.
근데 정의당은 싫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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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3-10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심상정!

아무개 2017-03-10 13:52   좋아요 0 | URL
심상정도 사실 딱히 마음에 들진 않지만
달리 뽑을 사람이 없어요.
에휴. .
 

봉현님의 고양이 여백이가 많이 아프다고 한다.
남의집 고양이가 아파도 눈물이 찔찔난다.
어마무시한 병원비에 몇푼 보태려고
봉현님 책 세권과
어마무시한 리뷰 덕분에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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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토익점수가 필요하게 되었다.

토익을 공부해야 하니, 책이 읽고 싶어지네.

책을 읽을수 있는 시간들이 많을때는 책읽기 싫어서 일을 해야겠다 생각했었는데..

나 도대체 뭐가 하고 싶은건가.

 

 

 

 

이 자리에서 이런 사실을 강조하는 까닭은, 성차를 지닌 정서가 최은영의 소설이 지니고 있는 매우 현저한 특성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앞에서는 순하고 맑은 힘이라고 표현했거니와,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전형적인 모습으로 떠오르는 페르소나는, 조부모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난 착한 여성의 형상이다. 그냥 착한 것이 아니라 고집스럽게 착한 사람, 억세고 강한 것을 견뎌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통념적인 의미에서의 남성적인 것을 거부하고 반대로 여성적인 정서의 유대를 강하게 당겨 안는, 집요하고 독하게 착한 사람이다. -해설 중 발췌-

 

 

소설맹인 나는 역시나 페이퍼를 쓰지도 못하겠다.  해설 글 발췌로 마무리.

 

 

 

 

 보고서 때문에 자료제공을 요청했더니, 자기 부서 책임자가 더이상 그 양식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면서

나에게 보내주는걸 거부했다. 자기들이 쓰는 시스템에 접속하면 볼수 있는 자료라며 나에게도 그 시스템을 쓰라고 하지만,

내 컴에는 그 시스템이 없고, 나는 그 시스템을 사용할 권리가 없는 사람이다.

그쪽 부서 책임자에에게 말하지 않고 내게 자료만 보내주면 될일인데, 시말서 쓸까봐 무서워서 못해주겠다고 한다.

아...나의 상관은 이런 일을 조율한 능력도 의지도 없다.

그냥 있는 서류 내게 이메일만 보내라 계속 말했는데도 안들어 쳐먹길래, 내가 직접 그쪽 책임자에게 요구하겠다고 하니까

자신이 대신 물어봐 준다고 기다리란다.

아침부터 짜증 한사발 쏟아진다. 월요일은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샘솟는데!

 

28일에 중성화 수술받은 뎅이, 지난 토욜에 퇴원시켜서 방사했다. 사진에는 없지만 뎅이가 달려가는 곳에는

엄마 미미가 있다. 엄마와 딸을 모두 중성화 시켜본건 처음인듯. 수술비, 입원비, x-ray 비용...

돈이 모라자서 애인이 보태주었다. 지난 주 복순이 병원비도 애인이 내주었는데....

매일 아침 사무실 밖에서 간식캔을 기다리던 뎅이가 오늘은 오지 않았다. 아마도 한동안은 나를 피하겠지.

수술부위가 잘 아물기만을 바랄뿐..

 

이번주도 일이 많다. 8일에는 오전에 납골당에 갔다가 오후에는 운전면허 갱신해야하고 9일에는 오전에 서울에 있는 동물병원가서 복순이 치과진료가 있고 오후에는 아버지의  요양병원에 가봐야 한다. 11일에는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북콘서트가 오후1시부터 6시까지 있다.  이모든 일정은 애인과 함께 한다. 이제 고작 1년 조금 넘었지만, 일상의 공유하는 시간들이 많다보니 주말에 만날때면 마치 주말부부 같은 느낌이 든다. 세상은 엿같아 를 기본으로 장착한 나와, 세상은 꽤 괜찮은 곳이야 를 기본으로 장착한 애인. 그래서 나보다는 애인이 훨씬 더 상처를 많이 받는다. 나는 기대같은걸 거의 하지 않지만, 애인은 그렇지 않기때문인듯 싶다. 점점 못난이 꼴만 보여줘서 많이 미안하긴 하지만, 이것도 나이니 그냥 받아줘 라고 응석을 피우는 내 모습. 정말. 연애에는 프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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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명 소설이 읽고 싶었는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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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2-24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게 뭡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설 한 권이라도 넣어주지!!! 너무해!!!

다락방 2017-02-24 1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가 소설책 한 권 기프티북으로 보냈소. 받아보시오.
 

인간적 성숙은 낯선 대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혼란과 갈들을 겪으며 자기와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때 일어나는 것이다. 엄마라는 생태적 지위는 성숙에 이르는여러 기회 가운데 하나일 뿐, 저절로 성불하는 코스가 아니다. 그나마 출산과 육아로 인한 고통의 자산화가 가능하려면 어느 정도 문화적 자원이 있어야 한다. 애 키우고 먹고사느라 하루하루 허덕이는 여성은 그럴 겨를조차 없다.

요즘은 소신 있게 출산을 거부하는 이들도 많다. 불임 여성도 느는 추세다, 그래서 애 낳은 여자, 애 안(못)낳는 여자의 일상의 구체적 고통을 외면한 '모성의 이상화'는 참 나쁜 관념이다.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고 윤리적으로도 옳지 않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애를 안 낳아봐서가 아니라 해결하지 않아도 권력을 유지하는 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권력을 떠받치는 것은 온갖 나쁜 관념에 휩싸여 주변의 여린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 주변 사람들이다. P32

 

 열 번 잘하다가도 어느 순간 남처럼 등 돌리는 남자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서 씻지도 못하고 이틀때 널려 있는 빨래를 걷는데도 꼼짝 않고 누워 있는 남편, 결혼 전에 아빠를 볼 때면 좀 궁금했다. 옆 사람 힘든 게 왜 안 보일까….나중에 알고 보니 못 본 척하는 게 아니라 아예 안 보이는 거다. 대대손손 소통 불능의 장애를 겪는 남성들, 그렇게 살아도 삶이 유지됐으므로 타인의 심정을 헤아리는 능력이 퇴화한 것이다. 무심함에 무뚝뚝함, 남자다움으로 미화된데다가 학교나 학원에서 안 가르쳐주니까 관 뚜껑 닫힐 때까지 모른다. 모르고 편하게 살다가 죽느 ㄴ남자들이 많으니까 그만큼 한평생 고생만 하다가 죽는 여자들도 많다.P58                        

 

사는 일에 크게 미련이 없다. 이 말을 예사롭게 했다. 이는 죽음이 목전에 닿지 않았기에 가능한 팔자 좋은 말잔치 같아 부끄럽지만 나름의 진심이다.

엄마의 돌연한 죽음, 가정 경제의 돌연한 몰락, 이성복 시인의 시구절처럼"몊 개의 돌부리 같은 사건"을 지나면서 삶의 감각이 달라졌다. 자식 두고 죽는 여자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쯤이면 나한테는 생의 마지노선까지 다녀온 거다. 지금도 크게 바뀐 건 아니다. 삶이 시시해졌다기보다 죽음이 생생해진 것뿐. 전에는 죽음이 생의 막다른 길에 반쯤 열린 문의 이미지였다면, 지금은 생의 광장에 입 벌리고 있는 웅덩이로 떠오른다. 삼신할머니 랜덤으로 태어났듯이 삑사리로 미끄러지는 것도 순간이겠지 생각한다. P138

 

니체가 남을 동정하고 연민할 때는 섬세한 기예가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이런 거였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 졌다. 쟤한테 받은 건 얘한테 줘도 되니까, 지금 받고 이따 줘도 되니까 돌봄의 우주적 순환원리가 수건돌리기처럼 재밌고 흥미로운 이세계의 운동으로 이해됐다. 그러고 보니 텔레비전 프로그램<사랑의 리퀘스트>처럼 나에게 답지하는 온정의 손길로 나는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학력 자본 화폐 자본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내가 밥 먹고 사는 건 누군가의 지극한 돌봄 덕분이었구나, 깨달았다. 신세 한탄 그만하고 나의 돌봄은 어디를 어떻게 향해야 하는가를 연구해야겠구나 마음 다잡았다. 그런데,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글픔은 긴 속삭임처럼 흘러다녔다. 난방비 폭탄이 나온 관리비 고지서 앞에서는 그토록 아름다운 이론도 힘을 잃는다. 본디 이데아적 세계는 감각의 세계 앞에서 무기력하다. 바람 앞 등불처럼 흔들리면서 꺼지지도 못하는 질긴 인생. 바늘방석 같은 사람. 때로는 망각의 잠을 청하고 싶은. P256    

 

황지우 시인의 말대로 "삶을 한 번쯤 되물릴 수 있는 그곳"에 간다면 난 얼마나 다르게 살 것인가. 아파하고 아파하는 이를 알아보면서 이 아픔의 전승 구조에 몸을 싣고 아마 지금처럼 살고 있을것 같다. 그것밖에 힘이 없다. 누구나 지금이 존재의 최선이다. 262

 

허수경의 시 구절처럼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나를 울게 한다. 명함과 소속이 없으면 이리저리 치인다. 직장 다니는 여자가 살림하는 건 당연시되지만, 살림하는 여자가 공부하는 건 수시로 이유를 추궁당한다. 학위와 등단과 취직을 위한 공부가 아니어서, 그냥 글 쓰고 싶은 삶이어서 나는 긴 세월 난감했다. 사회적 약자는 가진 게 없는 사람이 아니라 무지한 질문에 답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몸으로 겪었다. 내가 책을 냈다고 했을 때도 가장 먼저 듣는 질문은 이거였다. "어느 출판사예요?"

사람이나 책이나 이름 대면 알 만한 반듯한 명패가 방패가 되어주는 세상에서 , 불확실성의 살아가기로 버티려면 아버지들의 말씀을 반사시킬 질문 카드라도 한 장 준비해야 할까 보다.

"근데 그게 왜 긍금한 거죠?"

얼굴도 잘 모르는 아저씨가 올해는 국수 먹는거냐고 물어서 국수가 드시고 싶으시면 사서 드시면 된다고 했더니, 그런거 말고 올해는 꼭 국수를 먹여 달라고 해서 니국수는 니가 내국수는 내가 알아서 먹자 라고 대답했다.

그 질문이 무례한 질문이라는 사실을 조근조근 설명할 기력이 없다.

 

 

발췌해 놓은 글들처럼 누가누가 말했듯이, 라는 인용이 과하게 많다. 그렇지만 그 어떤 정체성을 가진 여성이라도  충분히 공감할수 있는 이야기 들이 많다.

 

2월 14일은 여성문화이론연구소의 2월 강좌 두번째 시간이었다.

페미니즘 책을 읽고, 강죄를 찾아 듣고 나면 늘 같은 질문이 생긴다.

그래. 그래서 지금부터 뭘 어떻게 하라는 거지?

강좌의 주제는 억압을 '폭로'해서 사회의 층에 균열을 만들고 흔들어야 한다  가 주제 였다고 생각한다. 트위터에 ~계의 성폭력 폭로로 그동안 모른체하고 없었던것처럼 숨겨왔던 하지만 너무나 공공했던 성폭력 사태들이 드러나고 가해자의 실명이 공개되고 피해자들에게 연대와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 진것으로 안다.

그러나  현재까지 그 가해자들이 사회적·법적으로 처벌 받았다는 이야기는 둗지 못했다. 오리려 피해자를 역으로 고소하거나, 가해자 자신들의 생활이 불편해진것을 피해자에게 그 탓을 돌리고 있다. '폭로'는 발화하는 사람의 상처를 기반으로 힘으로 갖는다. '고백'은 발화자가 특정한 청자에게 죄사함을 약속받는다. 고백과는 다른 불특정 한 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폭로, 자신의 생살을 가르고 내장을 꺼보여야 하는  피해자들의 이 폭로는 어디까지 계속 되어야 하는가? 

그래서 그러니까 나는 이들의 폭로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대학내 생리대 자판기가 역차별이고, 메갈때문에 페미니즘 못하겠다고 하고, 지금은 성소수자의 인권따위는 시기상조라 하고, 남녀 임금격차가 60%인 나라에서 더치패이 해야 개념녀라 하고, 출산과 양육의 독박으로 인한 경력단절을 겪어야 하는 여자들에게 이기적이라서 애 안낳는다고 하고, 그래도 여자들 예전 보다 살기 편해지지 않았냐고 하는 태어날때부터 권력자인 그들에게 나는  투명해질 때까지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인가?

 

페미니즘은 피곤하고 지겨워서 싫다는 어떤 쿨한 작가의 말처럼

피로감이 쌓이고 지겨워지려고 한다.

이번만은 쉽게 지치고 싶지 않은데....

 

 

 

강의날이 발렌타인 데이라 애인애게 받은 커피콩 초코렛. 맛이 굉장히 독특하다. 고마워요. 애인님.

 

어제는 회사에서 개나소나말이나 또는 인간일수도 있는 사람들에게  공로패 수여식이 있었다.

이런것을 받았는데, 이거 가슴에 달고 태극기 시위 가면 포털 메인에 뜰것이라고 했다.

주말에 애인과 광장에 가기로 했는데 이참에 메스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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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7-02-16 1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피곤하고 지겨운 페미니즘을 상쇄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페미니즘 에피소드를 아무개 님의 서재에서 읽기를 기대합니다.

아무개 2017-02-17 15:05   좋아요 1 | URL
공부가 너무 많이 부족해서 그런듯 싶습니다.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페미니즘 에피소드를 마립간 님의 서재에서도 읽을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마립간 2017-02-17 15:18   좋아요 1 | URL
아무개 님이 말씀하는 페미니즘과 제 가치관는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기 때문에 아우개 님의 기대에 부응하기는 (불가능은 아니더라도) 어려울 것을 예상됩니다.

대신 이렇게는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이것을 페미니즘이라고 부르든, 여성혐오로 부르든)에 맞춰 딸아이에게 모범을 보이고 이에 따라 자라는 아이에 모습은 저에게 보람(이것이 카타르시스를 의미하는지 모르겠지만.)입니다.

아무개 2017-02-17 15:38   좋아요 3 | URL
마립간 님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에 맞춰 딸아이에게 모범을 보이고
‘딸아이가 행복해‘ 하는 모습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
페미니스트 남성성으로 더 훌륭하다고 생각되기는 합니다만,
저는 육아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전무 하므로
대부분의 한국 여성들이 남자에 대한 나쁜 기억을 갖게 되는 첫번째 남자가
대부분 자신의 아버지인점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하는 말씀만 드립니다.


마립간 2017-02-17 16:07   좋아요 1 | URL
아무개 님께서 지적하신 시항은 제가 묻고 싶었던 (그러나 조심스러워 묻지 못했던) 사항입니다.

제 짧은 소견에는 대부분의 여성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칠 남자가 아버지와 남편으로 생각되고, 저와 대립되는 페미니스트를 선언하신 미혼 여성의 경우, 아버지와의 관계가 궁금했습니다. 딸과 아들을 떠나서 아버지가 양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과소평가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일반화하기 곤란한 제 짧은 개인적 경험에 제 딸을 비롯하여, 기저귀 찰 때부터 계속 알고 지내는 고등학교 두 친구의 딸들, 친여동생의 딸, 처가 조카딸 등. 부녀 관계가 (어쩌면 모녀 관계보다 더) 좋은 관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아무개 님의 충고는 각골,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댓글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17-02-16 1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말은... 맞는 것 같아요.
페미니즘은 피곤하고 지겹다는 말. 깨닫는 순간, 혹은 결심하는 순간들이 금세 절망의 순간으로 변하고 마니까요.

공부 시작하신 것 축하드려요.^^
그래, 그래서, 어떻게... 물음표의 시간들 많이 많이 올려주세요~~~
공로패도 초콜릿도 마냥 부럽네요~~~ ㅎㅎㅎ

아무개 2017-02-17 15:11   좋아요 1 | URL
누군가 페미니즘이 피곤하고 지겨운게 아니고
그런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을 페미니즘이 일깨워 준거라고 하더라구요.
상식과 양식의 기준점이 점점 낮아져 가는것 같아요.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니, 인권은 다음에 나중에 가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약자들이 당연히 받아들여야만 하는 전제가 되어버렸어요.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