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이 용품 이벤트 할때마다 당첨이네요.
크흐흐 고마워요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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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5-02-28 1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축하합니다♥ 냥이 선물이라 더 기뻐하실 듯^^

라로 2015-02-28 1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개님께 넘 반가운 선물이네요!!!! 축하해요!!! 알라딘은 이렇게 세심하구나!!!!!❤️❤️

다락방 2015-02-28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앙 축하해요 아무개님!

비로그인 2015-02-28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나도 막 응모해서 아무개님 드리고 싶어요!

2015-03-03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03 1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본론을 읽다 - 마르크스와 자본을 공부하는 이유 유유 고전강의 2
양자오 지음, 김태성 옮김 / 유유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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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적으며 복습.


이 점이야말로 마르크스의 관찰이자 대단한 통찰이다.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자체적인 작동 논리를 갖추고 있으며, 그 움직임은 자본을 쥐고 있는 자본가마저도 주관적인 의지로 통제할수 없다는 사실이다. 자본가가 자본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자본가를 통제한다. 자본은 인위적인 것이고 자본가가 투자를 통해 창출한 것이지만 일정한 정도에이르면 오히려 자본가의 행위를 결정하고 자본가를 조종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헤겔로부터 물려받아 더욱 확장하고 변화시킨 `소외`의 개념이다. 이 개념은 사물의 발전이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오히려 그 적대자가 되어, 원래 인간에 의해 창조된 사물이 반대로 인간을 통제하고 심지어 완전히 새로운 인간으로 창조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100여 년 전, 마르크스는 관찰과 사유를 통해 이런 현상을 예견했다. 이 때문에 그는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라는 운동 구호를 `졸렌`차원의 해결책 혹은 대항 방법으로 삼았다. 노동자가 자주성을 확보하려면 자본가에게 `잉여 가치`를 창출해 주는 도구로 전락하지 말고 `자본에는 조국이 없다`라는 본질에 맞서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라는 국경을 초월해 연대해야한다는 것이다.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라는 말은 현실의 묘사가 아니라 당위 명제이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원래의 의도로 돌아가 보면 우리는 `제1차 세계 대전`이 그의 착오를 증명한다는 오해에서 벗어나 반대로 그가 100여 년 전에 세운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라는 당위 명제와 그 이론이 20세기 절대 다수의 경제학자가 제시한 그림보다 오늘날 세계의 현실에 휠씬 가깝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라는 말은 우리에게 자본과 자본가를 제압할 수 있는, 국경을 초월한 조직이 필요하다는 현대적 계시를 던지고 있다. 어쩌면 이런 조직은 전통적인 의미의 노동 운동 조직이 아니라 보다 다원화된 국제 비정부기구 international NGOs 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첫째, 국경을 초월해야 하고 둘째, 자본이 욕망을 의해 발위하는 거대한 힘을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두가지 모두 당시 마르크스가 제시했던 `졸렌`의 명제와 일맥상통한다.

다윈은 우리에게 생물 종의 변화는 주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한 걸음 더 나아가 질문을 던질 것이다. 어째서 환경에 변화가 발생하는 것인가?(...)변화는 왜 발생하는가? 변화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변화에는 어떤 방향과 복적이 있는가? 이렇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질의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어떤 좋은 사물, 심지어 `정상적인`범주에 속하는 어떤 사물에도 증가하는 동력이 있다. 세상에 사람의 존재가 바람직하고 정상적인 것이라면 아담과 하와 이외에 다른 세 번째 사람과 네 번째, 다섯 번째 사람의 존재를 거부하거나 저지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이것이 좋은 일이라고 긍정한다. 이리하여 이런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무언의 도덕적 훈령이 내려진다. 이것이 헤겔이 말하는 `정립`이자 모든 것의 시작이다.

이것이 `변증법`의 첫 번째 변화의 법칙인 양에서 질로의 변화다(...)좋은 사물들이 끊임없이 증가하여 일정한 정도에 이르면 그 성질이 변한다.(...)이처럼 양질의 변화는 원래 `좋은`것을 `나쁜`것으로 변하게 하고`정립`을 `반정립`으로 변하게 한다.
`정립`에서 `반정립`으로 변해 `반정립`이 일정 정도 누적되면 원래의 `정립`의 가치가 다시 각도와 방식을 바꾸어 모습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서 `정립`에서 `반정립`으로 변화한 다음에도 모든것이 `반정립`의 단계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계속하여 `반정립`의 상태를 회의하거나 더 나아가 뒤집게 된다. 하지만 변화의 다음 단계는 `정립`의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립`과 `반정립`양자 사이에서 `종합`을 형성한다. 이는 `정립`도 받아들이고 `반정립`도 받아들여 창조해 내는 새로운 가치다.(...)그렇다면 `종합`은 대단원의 결말인 셈일까? 아니다. 변증법은 우리에게 `종합`이 새로운 긍정적 가치이자 변화를 통해 얻은 좋고 아름다운 답안이긴 하지만 동시에 또 하나의 `정립`이 되어 그다음 `정립-반정립-종합`의 순환에 진입하도록 정해져 있음을 말해 준다.

헤겔 철학의 시작점은 `초월적 정신`이다. 먼저 `초월적 정신`이 있어야 타락이 있고 현실 세계가 있을 수 있다. 세계는 `초월적 정신`의 물화, 객관화이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기원 관계를 전도시켜 `초월적 정신`과 `신`이 인간 이상의 투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헤겔은 세계가 `정신`의 물화라고 말하는 반면 마르크스는 `정신`혹은 `신`이 인간의 이상화라고 말하는 셈이다.

인간, 즉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실현할 수 없는 것을 사유하고 상상하는 인간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 이모든 것의 기원은 자신의 삶을 초월해 자기의 존재보다 높은 사물을 상상해 내는 인간의 독특한 능력에서 온다. 인간은 이러한 능력으로 `신`을 만들어 냈고, 이러한 능력으로 이상적인 존재와 이상적인 감정을 만들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자질과 특성을 `신`또는 헤겔이 말한 `정신`에 투영했다.

`신`은 원래 인간과 인간의 이상과 인간의 추구를 대표한다. 다시 말해 `신`이 존재하는 목적은 인간을 `신`으로 만드는 것, 인간을 `신`처럼 순수하고 진실하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신`을 창조한 이상 본질적으로 인간이 `신`의 주인이 되어야 했지만 `소외`를 통해 위치가 완전히 뒤바뀌었고, 인간은 자발적으로 `신`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 사람이 `소외`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어 `진실한`삶을 추구하고 실천할 수 있게 해 주는 사회일 것이다. 역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각 역사 단계에서 인간이 얼마나`진실`했는지, 얼마나 `소외`의 역량에 견제당했는지 유익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관찰하고 판단해야한다.

<자본론>의 근본 문제는 자본을 운용하여 생산을 진행하는 시대에 창출된 재부와 인가의 자원을 누가 누려야 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누릴 자격을 분배해야 공평한가, 누가 좀 더 갖고 누가 좀 덜 갖는 것을 어떤 이유로 판단할 것인가 하는데 있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당연히 우리가 현상을 그래도 받아들일 수 없고, 기존의 방식으로 모든 것을 정리할 수도 없으며, 부와 자원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분배할 대 이처럼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나는 현실을 좌시할 수 없다는 의미다.

공산당 독재와 계획 경제가 만든 갖가지 논쟁이 모두 마르크스에게 떠넘겨지면서 본래적인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은 오늘날 자본주의 시장 경제학을 만날 때마다 패퇴하며 빠르게 몰락하고 있다. 아울러 세계는 경제 사안을 다룰 때 반드시 제기되어야 할 질문, 즉 공정과 정의의 이념이 시장 원칙보다 우선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잃어버렸다.

시장 경제학에서는 가격이 가치의 관념을 대신하거나 심지어 없애면서 이미 이 시대에 수많은 황당한 현사, 나아가 무수한 재난을 일으키고 있다. (...)그 기업이 매년 어느 정도의 영업 이익과 이윤을 거두고 있는지도 알아보지 않는다. 그저 그 기업의 주식 가격만 본다, 주식 시장에 나타난 가격이 바로그 기업의 가치다. (...)금융 위기가 발생하여 전 세계의 경제를 위기로 내몬 것도 같은 원인에 의한 것이다. (...)이처럼 가격만 신봉하고 가치를 경시하는 한 혼란과 재난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현실에서는 이처럼 이상화된 시장이 존재하지 않고 항상 각양각색의 힘이 끼어들어 시장의 조작에 개입한다는 사실이다.(...)시장 운용은 상당 부분 정보에 의존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어디에서 어떤 가격으로 어떤 물건을 사는지 알고 있거나 상품이 현재 혹은 미래에 어떤 기능을 갖추거나 어떤 효과를 발휘할지 알고 있다면, 우리의 행위에 직접 영향을 미치거나 행위를 변화시킬 수 있다. 교환할 때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이성적 결정`은 사실 상당한 제한을 받는다. 누구나 자신이 확보한 정보에 따라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으므로 전면적이지도 못하고 완전하지도 않은 정보는 당연히 불완전한 결정을 내리도록 이끈다. 불완전한 `이성적 결정`을 어떻게 합리적이라고 할수 있겠는가?

왜 노동자는 착취당하는 상태에서 계속 노동을 하는 것일까? 한 가지 원인은 노동 시장의 `조작`에 대한 마르크스의 개념을 연갤해 보면 우리는 시장 경제학 자체가 시장을 조작하는 강력한 힘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시장 경제학이 시장 운용의 법칙을 설명하는 것 같지만, 사실 시장 경제학의 가장 뚜렷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노동자로 하여금 이처럼 착취하는 생산관계를 받아들이고 이런 상태를 당연하며 합당하다고 여기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방식이 `계급`을 결정하고 `계급`은 다시 생산 활동을 대하는 우리의 관점에 영향을 미친다. 계급이 다른 사람들은 분업의 생산 과정 내지 분업의 생산 성과에 대한 견해가 완전히 같을 수 없다.

오늘날의 노동자가 기본 권리를 가질 수 있게 된 부분적인 원인은 마르크스와 마르크스 사상에 있다. 자본주의의 붕괴와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마르크스의주장과 예언은 자본주의 사회에 전해졌고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주장으로 겁을 먹은 자본가는 혁명을 일으킬 단계까지 감히 노동자를 압박하지 않고 손을 거두어들였다. 또한 자본주의의 붕괴에 대한 예언에 자극을 받아 기존의 체제를 수정함으로써 마르크스가 예언한 상황이 실현되지 않도록 막았다.(...)마르크스가 꿈꾸었던 공산주의 사회는 악몽이 되고 말았다. 이는 마르크스의 실패임에 틀림이 없다.(...)그러나 이러한 실패는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균형을 유지하면서 지나치게 잔혹하지 않은 `수정판 자본주의` 시스템을 남겨 주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가 너무 잔혹하고 무서운 방향으로 치우치는 것을 막을 방법은 한가지밖에 없다. 이 시스템을 되돌릴 수 있는 힘이 항상 존재하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제한을 받지 않고, 자본주의 가치의 맹점을 폭로하며 우리에게 자본주의 이외의 삶의 의미를 일깨울 수 있는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떤 경제 생산 방식이 있으면 그에 따라 어떤 예의와 습관, 풍속, 제도, 사회 조직 내지 문학, 철학, 예술이 출현한다. 이로써 `하부 구조`가 `상부 구조`를 결정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부 구조`에서는 특히 생산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생산관계에서 가장 우세를 점하고,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쪽은 무슨수를 써서라도 기존의 생산 이이익과 생산 형식을 유지하려 들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지의와 우세로 `상부 구조`의 내용을 조작 살 수 있고, 당연히 자신의 가치를 `상부 구조`에 주입할 수도 있다.

"하부 구조가 상부 구조를 결정한다." 민족과 국가는 누가 뭐래도 `상부 구조`이기 때문에 생산력과 생산관계에 좌우되지 않을 수 없고 통치 계급의 이익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말해서 국가는 자산 계급이 노동자 계급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라는 구호를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마땅히 우리를 위해 복무해야 할 국가가 갑자기 몸을 쥐집어 우리 등에 올라타고 주인행세를 하며 자본가를 대표해 더 효율적으로 노동자의이익을 착취할 때, 노동자는 왜 멍청하게 자신의 국가에 충성을 다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가 국가에 충성을 다한다는 것은 자신을 도구화하고 `비인간화`하는 것과 같고, 순순히 자신의 목을 조를 밧줄을 사는 셈이 된다.

"서른 살 이전에 죄파였던 적이 없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잔혹한 냉혈한일 것이다. 서른 이유에도 여전히 좌파라면 그는 약으로도 구제할 수 없는 멍청이임에 틀림없다." 왜 이런 말이 나오게 된 걸까? 사람은 서른 살 이전에는 너무나 쉽게 보편적 이상을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좌파와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보편적 이상이다. 보통 서른 살이 넘으면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변해 자아를 중시하게되고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 이리하여 영리하게 좌파의 입장을 버리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이상을 포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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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께서 마르크스를 잊지 말아 주시길 삼가 바란다. 남이 부여한 관념과 해답 속에서 안일하고 구차하게

살지말라고 일깨워 준 거인을. p290


이미 현실적으로 실패한 공산주의 이론을 받아 들이자는 말이 아니다.

마르크스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마치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하고 그것이 최상이라고 '조작'하는 세계에

'다른 길은 분명히 있다'라고, 그 답만이 최상이 아니라는 것을

그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 이다.


유유 출판사, 양자오 님 앞으로도 좋은 책들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종의 기원을 읽다>, <꿈의 해석을 읽다> 그리고 마지막 <자본론을 읽다>.

유유출판사와 저자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책의 크기와 글자 크기, 책의 내용. 무엇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것이 없다.

한손에 쏙 들어 오는 사이즈에, 큼직한 글씨 그리고 무엇보다

무려 종의 기원과 꿈의 해석을 마치 나도 읽어 볼수 있지 않을까 싶게 만드는 저자의 엄청난 내공.

(이것은 단점이기도 하다...이것이 큰 착각이라는 것은 원전을 한 페이지만 읽어봐도 알수 있다 ㅠ..ㅠ )



<종의 기원을 읽다>를 읽고 <종의 기원>을 샀고,














<꿈의 해석을 읽다>를 읽고 <꿈의 해석>을 샀는데














 '가지고만(는) 있어요'가 되었다.


만약 <종의 기원을 읽다>나<꿈의 해석을 읽다>가 아닌<자본론을 읽다>가 먼저 나왔더라면 어쩔뻔했는가.














난 분명 이걸 다 샀을꺼다. ㅡ..ㅡ














위의 세권중 역시나 자본론을 읽다가 가장 어려웠다. 물론 나머지 두권의 책들도 감히 다 이해했다고는 .....



특히나 헤겔아저씨의 변증법은 도대체 뭔소린지 머리가 핑핑.........



작년 10월 부터 식이조절과 운동으로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중이다. 초반에 살이 많이 빠지긴 했는데,

현재 정체기인지 이주가 되도록 단 일그램의 변화도 없다.

물론 내가 먹는 것-그러니까 술과 치킨과 족발-들 때문 일수도 있다.

하지만 난 살을 뺀 후에도 아마도 술을 마실꺼고 치킨과 족발을 뜯을 것이다. 그러니까 결론은.

먹으면서 운동하면서 천천히 살빼자. 다만, 포기만 하지 말자. 이렇게 계속 하다보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목표치에 다다르겠지. 그러니까 포기만 하지 말자. 라고 오늘 아침에 생각했다.

-어제 먹은것을 후회하며, 다이어트 그만 할까 생각하며.


지금은 머리가 핑핑 돌고 한장도 채 읽지 못하고 잠들게 만드는 책들이지만,

언젠가는, 내가 포기만 하지 않으면...언젠가는 조금 덜 어지럽고 조금 덜 졸립게 되겠지.

포기만 하지 말자. 포기는 하지 말자.


지금은 자본주의가 

이것만이 최선이고 또한 차선이라고 생각될지 몰라도

그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자꾸만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포기만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언젠가는....

지금과는 다른 길, 다른 방법으로 만들어지는 세상도 오겠지.





그런데 오늘 왜 이렇게 방문자가 많지? 뭐지? 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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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2-25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종의 기원을 읽다>를 `가지고만` 있는데 말입니다. 킁.

단발머리 2015-03-06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본론>은 꼭 한 번 읽어야지, 하는 책인데, 아무개님 페이퍼 보니까, 저는 <자본론을 읽다>로 시작해야겠네요.
어쩌면 거기에서 마칠수도 있겠지만요.*^^*

위의 밑줄그어 놓은신 것도 읽고 가요. 많이 어렵지만, 아무개님 말씀대로 포기하지 말아야죠.
읽는다는 것을, 그리고 다른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을요. 헤헤

아무개 2015-03-06 10:30   좋아요 1 | URL
진심으로 강력추천합니다
초반에 헤겔님 이론 설명부분이 좀 난해하지만 저같은 사람도
충분히 읽을수 있게
잘 풀어써진 책이에요.
종의기원을 읽다와 꿈의해석을 읽다도 정말 좋아요
기회되시면 세권 함께 읽으시길권합니다.
세가지 책들은
서로 연결점이 있거든요

alummii 2015-12-11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의 기원 사볼라다가 이 글보고 빵 터졌어요 ㅎㅎㅎㅎ ...읽다 시리즈 세권도 볼게요! Thanks to 하고 친추하고 갑니다 ㅎㅎㅎ
걸어놓으신 페미니즘 책들도 제 취향저격이네요! ㅎㅎ
 

전도중인 아저씨.
매일 아침마다 본다.

그런데
예수님 사랑이, 하느님 은총이
정말 필요한건
그 학생이 아니라
그 옆 노숙자 같은데
등돌리고 보질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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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2-25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넘 가까이 붙으셔서 학생 불편하겠다요~~^^;;

아무개 2015-02-25 12:11   좋아요 0 | URL
가까이 딱 붙어서 손도 꼭 잡고 그러십니다..

moonnight 2015-02-25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진짜 가깝게 붙으셨네요. 학생 내리고 싶을 듯 ㅠㅠ

아무개 2015-02-25 12:11   좋아요 0 | URL
꼭 남학생들에게만 전도를 하시더라구요.
뭔가 따로 생각한 바가 있으시겠지요...
 
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도가니, 즐거운 나의집,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고등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의자놀이

그러고 보니 이렇게 한 작가의 책을 많이 읽은건 공지영이 처음인듯. 그만큼 애정했다는거겠지...

여지껏 읽은 공지영의 소설중에 가장 실망스럽다.

왜....?


아마도 그녀 혼자 묻고 답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고통속에서만 성장할수 있다니...정말 꼭 그런것일까?

신, 그 자신을 닮게 만들었다는 그의 모습을 한 피조물들이

반드시 고통을 통해서만 성장할수 있게

그 완벽한 신이 만들었다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알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의 신'이라고 한다....



베네딕도 성인은 `네가 오만을 가지고 선을 행하느니 차라리 겸손으로 실수를 해라`하셨다는데 낮에 안젤로에게 화를 냈던 게 맘에 걸리네.

우리가 해야 하고 오직 하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우리의 먹을 것, 우리의 입을 것, 우리의 시간과 선의를 그것이 모자라는 이웃과 나누는 거지요, 예수님은 교회 건물을 세우지도 않앗고 시위를 주동하지도 않았으며 학교를 창립하지도 않았으며 한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전쟁터에 가시지도 않았잖아요.

요한 수사님, 악은 수많은 얼굴로 다가옵니다. 사실 사람인 우리가 그것을 식별하는 것은 은총에 의지할 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도 있어요. 우리가 사랑하려고 할 때 그 모든 사랑을 무의미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모든 폭력, 모든 설득, 모든 수사는 악입니다. 너 한사람이 무슨 소용이야, 네가 좀 애쓴다고 누가 바뀌겠어. 네가 사랑한들 아는 사람 하나도 없어...속삭이는 모든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어쩌면 옥사덕이나 남미 로메로의 피살이나 유신 혹은 광주 학살 같은 것은 아직 난이도가 높은 것은 아닐지도 모르죠, 이제 악은 다른 얼굴로 우리에게 달려듭니다. 소리 없는 풀 모기처럼 우리를 각개격파하러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무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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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5-02-24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즐거운 나의 집, 의자놀이,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이렇게 읽었네요.
아,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도요.
저도 공지영 좋아해요. 잘 읽히고 다독이는 마음도 좋구요. 요즘에 한겨레에 칼럼도 연재하던데 그것도 챙겨 읽고 있거든요.
이 소설도 아직인데, 인용해두신 것 보니 급 읽고 싶어져요.
아무개님은 가장 실망스럽다고 하셨는데, 왜... 일까요?
나는, 청개구리일까요?

아무개 2015-02-25 08:11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신앙인이시죠?
신앙을 가진 분들이라면 읽어 봄직 합니다.

예수 그리고 마르크스가 왜 한 문장에 존재 할수 있는지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에요.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에 대한 사랑.....

저도 공지영 애정합니다. 그런데 이번책은 제가 기대했던 것과는 좀 많이 거리가 있네요.
문체도 맘에 안들고, 내용도 너무 뻔한 스토리라
이쯤에서 눈물나게 하려고 그러는군...뭐 이러면서 읽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