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을 읽다 - 마르크스와 자본을 공부하는 이유 유유 고전강의 2
양자오 지음, 김태성 옮김 / 유유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옮겨적으며 복습.


이 점이야말로 마르크스의 관찰이자 대단한 통찰이다.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자체적인 작동 논리를 갖추고 있으며, 그 움직임은 자본을 쥐고 있는 자본가마저도 주관적인 의지로 통제할수 없다는 사실이다. 자본가가 자본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자본가를 통제한다. 자본은 인위적인 것이고 자본가가 투자를 통해 창출한 것이지만 일정한 정도에이르면 오히려 자본가의 행위를 결정하고 자본가를 조종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헤겔로부터 물려받아 더욱 확장하고 변화시킨 `소외`의 개념이다. 이 개념은 사물의 발전이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오히려 그 적대자가 되어, 원래 인간에 의해 창조된 사물이 반대로 인간을 통제하고 심지어 완전히 새로운 인간으로 창조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100여 년 전, 마르크스는 관찰과 사유를 통해 이런 현상을 예견했다. 이 때문에 그는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라는 운동 구호를 `졸렌`차원의 해결책 혹은 대항 방법으로 삼았다. 노동자가 자주성을 확보하려면 자본가에게 `잉여 가치`를 창출해 주는 도구로 전락하지 말고 `자본에는 조국이 없다`라는 본질에 맞서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라는 국경을 초월해 연대해야한다는 것이다.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라는 말은 현실의 묘사가 아니라 당위 명제이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원래의 의도로 돌아가 보면 우리는 `제1차 세계 대전`이 그의 착오를 증명한다는 오해에서 벗어나 반대로 그가 100여 년 전에 세운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라는 당위 명제와 그 이론이 20세기 절대 다수의 경제학자가 제시한 그림보다 오늘날 세계의 현실에 휠씬 가깝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라는 말은 우리에게 자본과 자본가를 제압할 수 있는, 국경을 초월한 조직이 필요하다는 현대적 계시를 던지고 있다. 어쩌면 이런 조직은 전통적인 의미의 노동 운동 조직이 아니라 보다 다원화된 국제 비정부기구 international NGOs 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첫째, 국경을 초월해야 하고 둘째, 자본이 욕망을 의해 발위하는 거대한 힘을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두가지 모두 당시 마르크스가 제시했던 `졸렌`의 명제와 일맥상통한다.

다윈은 우리에게 생물 종의 변화는 주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한 걸음 더 나아가 질문을 던질 것이다. 어째서 환경에 변화가 발생하는 것인가?(...)변화는 왜 발생하는가? 변화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변화에는 어떤 방향과 복적이 있는가? 이렇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질의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어떤 좋은 사물, 심지어 `정상적인`범주에 속하는 어떤 사물에도 증가하는 동력이 있다. 세상에 사람의 존재가 바람직하고 정상적인 것이라면 아담과 하와 이외에 다른 세 번째 사람과 네 번째, 다섯 번째 사람의 존재를 거부하거나 저지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이것이 좋은 일이라고 긍정한다. 이리하여 이런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무언의 도덕적 훈령이 내려진다. 이것이 헤겔이 말하는 `정립`이자 모든 것의 시작이다.

이것이 `변증법`의 첫 번째 변화의 법칙인 양에서 질로의 변화다(...)좋은 사물들이 끊임없이 증가하여 일정한 정도에 이르면 그 성질이 변한다.(...)이처럼 양질의 변화는 원래 `좋은`것을 `나쁜`것으로 변하게 하고`정립`을 `반정립`으로 변하게 한다.
`정립`에서 `반정립`으로 변해 `반정립`이 일정 정도 누적되면 원래의 `정립`의 가치가 다시 각도와 방식을 바꾸어 모습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서 `정립`에서 `반정립`으로 변화한 다음에도 모든것이 `반정립`의 단계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계속하여 `반정립`의 상태를 회의하거나 더 나아가 뒤집게 된다. 하지만 변화의 다음 단계는 `정립`의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립`과 `반정립`양자 사이에서 `종합`을 형성한다. 이는 `정립`도 받아들이고 `반정립`도 받아들여 창조해 내는 새로운 가치다.(...)그렇다면 `종합`은 대단원의 결말인 셈일까? 아니다. 변증법은 우리에게 `종합`이 새로운 긍정적 가치이자 변화를 통해 얻은 좋고 아름다운 답안이긴 하지만 동시에 또 하나의 `정립`이 되어 그다음 `정립-반정립-종합`의 순환에 진입하도록 정해져 있음을 말해 준다.

헤겔 철학의 시작점은 `초월적 정신`이다. 먼저 `초월적 정신`이 있어야 타락이 있고 현실 세계가 있을 수 있다. 세계는 `초월적 정신`의 물화, 객관화이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기원 관계를 전도시켜 `초월적 정신`과 `신`이 인간 이상의 투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헤겔은 세계가 `정신`의 물화라고 말하는 반면 마르크스는 `정신`혹은 `신`이 인간의 이상화라고 말하는 셈이다.

인간, 즉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실현할 수 없는 것을 사유하고 상상하는 인간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 이모든 것의 기원은 자신의 삶을 초월해 자기의 존재보다 높은 사물을 상상해 내는 인간의 독특한 능력에서 온다. 인간은 이러한 능력으로 `신`을 만들어 냈고, 이러한 능력으로 이상적인 존재와 이상적인 감정을 만들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자질과 특성을 `신`또는 헤겔이 말한 `정신`에 투영했다.

`신`은 원래 인간과 인간의 이상과 인간의 추구를 대표한다. 다시 말해 `신`이 존재하는 목적은 인간을 `신`으로 만드는 것, 인간을 `신`처럼 순수하고 진실하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신`을 창조한 이상 본질적으로 인간이 `신`의 주인이 되어야 했지만 `소외`를 통해 위치가 완전히 뒤바뀌었고, 인간은 자발적으로 `신`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 사람이 `소외`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어 `진실한`삶을 추구하고 실천할 수 있게 해 주는 사회일 것이다. 역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각 역사 단계에서 인간이 얼마나`진실`했는지, 얼마나 `소외`의 역량에 견제당했는지 유익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관찰하고 판단해야한다.

<자본론>의 근본 문제는 자본을 운용하여 생산을 진행하는 시대에 창출된 재부와 인가의 자원을 누가 누려야 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누릴 자격을 분배해야 공평한가, 누가 좀 더 갖고 누가 좀 덜 갖는 것을 어떤 이유로 판단할 것인가 하는데 있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당연히 우리가 현상을 그래도 받아들일 수 없고, 기존의 방식으로 모든 것을 정리할 수도 없으며, 부와 자원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분배할 대 이처럼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나는 현실을 좌시할 수 없다는 의미다.

공산당 독재와 계획 경제가 만든 갖가지 논쟁이 모두 마르크스에게 떠넘겨지면서 본래적인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은 오늘날 자본주의 시장 경제학을 만날 때마다 패퇴하며 빠르게 몰락하고 있다. 아울러 세계는 경제 사안을 다룰 때 반드시 제기되어야 할 질문, 즉 공정과 정의의 이념이 시장 원칙보다 우선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잃어버렸다.

시장 경제학에서는 가격이 가치의 관념을 대신하거나 심지어 없애면서 이미 이 시대에 수많은 황당한 현사, 나아가 무수한 재난을 일으키고 있다. (...)그 기업이 매년 어느 정도의 영업 이익과 이윤을 거두고 있는지도 알아보지 않는다. 그저 그 기업의 주식 가격만 본다, 주식 시장에 나타난 가격이 바로그 기업의 가치다. (...)금융 위기가 발생하여 전 세계의 경제를 위기로 내몬 것도 같은 원인에 의한 것이다. (...)이처럼 가격만 신봉하고 가치를 경시하는 한 혼란과 재난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현실에서는 이처럼 이상화된 시장이 존재하지 않고 항상 각양각색의 힘이 끼어들어 시장의 조작에 개입한다는 사실이다.(...)시장 운용은 상당 부분 정보에 의존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어디에서 어떤 가격으로 어떤 물건을 사는지 알고 있거나 상품이 현재 혹은 미래에 어떤 기능을 갖추거나 어떤 효과를 발휘할지 알고 있다면, 우리의 행위에 직접 영향을 미치거나 행위를 변화시킬 수 있다. 교환할 때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이성적 결정`은 사실 상당한 제한을 받는다. 누구나 자신이 확보한 정보에 따라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으므로 전면적이지도 못하고 완전하지도 않은 정보는 당연히 불완전한 결정을 내리도록 이끈다. 불완전한 `이성적 결정`을 어떻게 합리적이라고 할수 있겠는가?

왜 노동자는 착취당하는 상태에서 계속 노동을 하는 것일까? 한 가지 원인은 노동 시장의 `조작`에 대한 마르크스의 개념을 연갤해 보면 우리는 시장 경제학 자체가 시장을 조작하는 강력한 힘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시장 경제학이 시장 운용의 법칙을 설명하는 것 같지만, 사실 시장 경제학의 가장 뚜렷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노동자로 하여금 이처럼 착취하는 생산관계를 받아들이고 이런 상태를 당연하며 합당하다고 여기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방식이 `계급`을 결정하고 `계급`은 다시 생산 활동을 대하는 우리의 관점에 영향을 미친다. 계급이 다른 사람들은 분업의 생산 과정 내지 분업의 생산 성과에 대한 견해가 완전히 같을 수 없다.

오늘날의 노동자가 기본 권리를 가질 수 있게 된 부분적인 원인은 마르크스와 마르크스 사상에 있다. 자본주의의 붕괴와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마르크스의주장과 예언은 자본주의 사회에 전해졌고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주장으로 겁을 먹은 자본가는 혁명을 일으킬 단계까지 감히 노동자를 압박하지 않고 손을 거두어들였다. 또한 자본주의의 붕괴에 대한 예언에 자극을 받아 기존의 체제를 수정함으로써 마르크스가 예언한 상황이 실현되지 않도록 막았다.(...)마르크스가 꿈꾸었던 공산주의 사회는 악몽이 되고 말았다. 이는 마르크스의 실패임에 틀림이 없다.(...)그러나 이러한 실패는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균형을 유지하면서 지나치게 잔혹하지 않은 `수정판 자본주의` 시스템을 남겨 주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가 너무 잔혹하고 무서운 방향으로 치우치는 것을 막을 방법은 한가지밖에 없다. 이 시스템을 되돌릴 수 있는 힘이 항상 존재하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제한을 받지 않고, 자본주의 가치의 맹점을 폭로하며 우리에게 자본주의 이외의 삶의 의미를 일깨울 수 있는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떤 경제 생산 방식이 있으면 그에 따라 어떤 예의와 습관, 풍속, 제도, 사회 조직 내지 문학, 철학, 예술이 출현한다. 이로써 `하부 구조`가 `상부 구조`를 결정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부 구조`에서는 특히 생산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생산관계에서 가장 우세를 점하고,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쪽은 무슨수를 써서라도 기존의 생산 이이익과 생산 형식을 유지하려 들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지의와 우세로 `상부 구조`의 내용을 조작 살 수 있고, 당연히 자신의 가치를 `상부 구조`에 주입할 수도 있다.

"하부 구조가 상부 구조를 결정한다." 민족과 국가는 누가 뭐래도 `상부 구조`이기 때문에 생산력과 생산관계에 좌우되지 않을 수 없고 통치 계급의 이익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말해서 국가는 자산 계급이 노동자 계급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라는 구호를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마땅히 우리를 위해 복무해야 할 국가가 갑자기 몸을 쥐집어 우리 등에 올라타고 주인행세를 하며 자본가를 대표해 더 효율적으로 노동자의이익을 착취할 때, 노동자는 왜 멍청하게 자신의 국가에 충성을 다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가 국가에 충성을 다한다는 것은 자신을 도구화하고 `비인간화`하는 것과 같고, 순순히 자신의 목을 조를 밧줄을 사는 셈이 된다.

"서른 살 이전에 죄파였던 적이 없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잔혹한 냉혈한일 것이다. 서른 이유에도 여전히 좌파라면 그는 약으로도 구제할 수 없는 멍청이임에 틀림없다." 왜 이런 말이 나오게 된 걸까? 사람은 서른 살 이전에는 너무나 쉽게 보편적 이상을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좌파와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보편적 이상이다. 보통 서른 살이 넘으면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변해 자아를 중시하게되고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 이리하여 영리하게 좌파의 입장을 버리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이상을 포기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